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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이자 인생의 활력소가 가끔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이 짓을 왜 시작했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갑자기 멈춰선 방문자 수가 위산을 분비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블로그라는 놈을 시작한게 2006년 5월 1일, 지금의 집으로 옮겨 온게 작년 5월입니다. 정든 옛 집을 떠날 때에는 그동안 쌓아온 히스토리가 아깝기도 했지만 옮기고 보니 훨씬 요란한 새집이 돼 버렸습니다.

800만 조금 넘었을 무렵에 떠나온 그 옛날 집에도 하루에 1000명, 2000명씩 방문자가 발생해서(검색 엔진의 힘인지, 아직도 즐겨찾기를 움직이지 않고 옛날 집을 통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는지^) 그래도 조금씩은 숫자가 늘고 있었는데, 간밤에 숫자가 역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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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900만을 넘었습니다.

물론 최근 몇달은 한달에 100만 이상 방문자수가 붙었기 때문에 900만이 그리 오래 갈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블로그 시작하고 처음 도달한 숫자라 느낌이 각별합니다.

요즘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라 자축 모임이나 이벤트는 좀 힘들 것 같고, 포스팅으로 그냥 의미를 남길까 합니다(사실 퀴즈 낼 여력이 좀 부족합니다^^). 현재 목표는 이번 달 안으로 천만을 넘는 건데, 그때는 반드시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축곡은 당연히 -




가사가 들어 있는 버전도 있지만 일본어 노래에 거부감을 느낄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연주곡 버전으로 들어 봅니다. 지금도 가사가 귓전에 맴도는 듯 합니다.

저넓은 은하수 헤쳐나가는 달려라 009 우리의 용사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아아아 무적의 009

라고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스폰서가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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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27일 오후 9시 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http://isplus.joins.com/100sang/) 에 몇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약 3일 동안 응모를 받았는데 벌써 지나치게 많은 분들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끊었어야 했는데... 아무튼 먼저 약속한 15분에게 초대권을 2매씩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대권을 받을 분들은 다음 포스팅에 공지했습니다.





누가 나오는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이 친구들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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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성인블로그의 제왕이신 Lezhin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얼마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축전'이란 말도 처음 들었는데 두 개의 포스팅이 사람을 쓰러뜨리더군요.

문제의 포스팅은 http://lezhin.com/186 과 http://lezhin.com/187 입니다. 반드시 순서대로 보셔야 합니다. Lezhin님, 존경합니다. (아, 제 메일 주소는 fivecard@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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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KBS 2TV '꽃보다 남자'의 연출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10일 방송된 12부를 보다가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구준표(이민호)는 이날 제하(정의철) 패거리에게 죽도록 맞다가 나머지 F3에 의해 구출됩니다.

다음 장면. 구준표가 여기 저기 다친 얼굴로 금잔디(구혜선)의 병상을 지킵니다. 이어지는 닭살 신을 생략하고,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된 금잔디 아버지를 건너 뛰어 F4와 금잔디는 스키장으로 갑니다. 놀랍게도 구준표의 모든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군요! 얼굴 어디에도 죽도록 맞은 상처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타박상과 멍이 그렇게 말끔하게 다 가시려면 한달은 걸렸을텐데(폭행 내용으로 보아 갈비뼈도 몇개 부러졌을텐데 스키 타는 몸놀림을 보면 전혀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갈비뼈가 붙으려면 최소 두달은 걸릴텐데...^^), 그 한달 동안 구준표의 어머니 강희수 여사(이혜영)는 구준표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거겠군요. 그리고 금잔디가 돈도 돌려줬으니, 그 한달 동안 금잔디의 아버지는 사채업자들에게 과연 무슨 꼴을 당했을까요. 그걸 뻔히 알면서도 구준표와 먹을 계란말이 도시락을 싸고 있는 금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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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습니다. 스키장. '강원도 일대의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고...'라는 뉴스를 윤지후(김현중)가 보고 있고, 가을(김소은)이 달려와 잔디가 없어졌다며 걱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교통이 두절'됐다는 그 순간, 구준표를 서울로 데려가는 보디가드들의 차는 깨끗한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고 있습니다. 구준표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건너편의 길도 마찬가지. 눈은 커녕 얼음 한조각 보이지 않는 길에서 차들이 쌩쌩 구준표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차가 빨리 달려서 폭설구역을 이미 지나갔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구준표는 다시 폭설 속의 스키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럼 구준표는 대체 무슨 수로 폭설구역을 지나서 금잔디를 찾으러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이 두 장면을 종합해 볼 때 구준표는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입니다. 그래서 포장마차 오뎅을 한 자리에서 50개씩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상처도 며칠이면 싹 나아 버리고, 차도 다닐 수 없는 폭설의 강원도 산길을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 약한 척 하는 건... 아무래도 금잔디에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연극인 거죠. (남산타워에서도 감기 증세를 보인 걸 보면 외계인이기 때문에 지구의 감기 바이러스에는 약점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실제 모습은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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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자식을 두지 못한 구본형 회장과 강희수 회장이 만들어 낸 인조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신화전자의 첨단 공학의 집합체인 셈이죠. 그래서 고교생으로 설정되어 있고 극강의 전투력과 체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세살바기 아기의 지능만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인공지능에 학습능력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물에는 대단히 호기심을 느끼죠(계란말이도, 오뎅도, 김장도 모르는 건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 늘 보던 쭉쭉 빵빵 아이들과 전혀 다른 금잔디에게도 연구 의욕을 느끼는 겁니다. 나머지 F3는 이 비밀을 알고 있지만, 신화그룹의 후계자로 구준표를 키워내야 하는 비밀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에 항상 구준표를 뒤에서 따라다니며 그의 결점을 감춰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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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마지막에서 강회장이 긴급히 중국으로 구준표를 데려가는 것도 구준표의 인공지능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한 강회장이 중국 오지에 있는 신화전자 비밀연구소에 가서 정밀진단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13부에서 금잔디는 마카오에서 구준표를 만나지만 싸늘한 대접에 놀랍니다. 강회장이 칩을 몇개 바꿔 넣었기 때문입니다. (쓰다 보니 자꾸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제가 중독되는 느낌입니다. 그만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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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와서...

사실 스키장에서의 조난 장면 역시 아무리 이해하려 해 줘도 어이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스키장에서 과연 조난을 당하는게 가능한지를 접어 둡니다. 드라마의 진행상 금잔디는 스키 극 초보인데, 그럼 가 봐야 가장 완만하고 낮은 초보자 코스였을 겁니다. 초보자 코스 꼭대기에 대체 무슨 장작까지 있는 피난용 오두막이 있는지도 참 안습입니다. 심지어 금잔디를 구하는 구준표의 저 머리 뒤로는 스키장 콘도의 불빛이 반짝이더군요. 대단한 눈보라입니다. 바람을 피할 오두막에, 장작불까지 피워 놓고, 두 사람 모두 방한복을 입은 상태에서 얼어 죽을 것 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뭐 요즘 애들의 특징이라고 치겠지만,

아무튼 제작진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궁금합니다. 뭐 요즘처럼 우울한 시절에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 주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정교한 내러티브나 한 회 한 회의 완결성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좀 너무 막 나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꼭 절반 지났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무책임한 진행을 보인다면 마지막 무렵엔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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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다음번에는 유령 아니면 닌자일 듯한 윤지후(서울 시내 어디에 있든 금잔디의 위치를 찾아낸다)의 정체나, 대체 소이정 김범이 왜 '꽃보다 남자'에서 조연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지(정답을 슬쩍 공개하자면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하숙범으로 변신, 이원장 댁에 놀러가서 정일우 - 김혜성 형제와 놀고 있다는...)에 대해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공약을 지켰습니다.


p.s.2. 그러고보니 '꽃보다 남자' 시작 이후 F4 멤버들은 모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멤버가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반면, 구준표 이민호만큼은 전혀 다치지 않았죠.

...그럼 혹시 구준표가 아니라 이민호가... (심각해지면 지는겁니다.^)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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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심의의 잣대라는 건 참 균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TV에서 여자 연예인의 비키니 차림이라는 건 대단히 음란한 표현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여름의 특집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이 모두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껴입거나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건 패션 감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수영복만 입고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보기에 편치 않다'고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아니 수영장만 가도 요새는 일반인들도 다 저러고 다니는데...'라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청학동에서 인터넷 하시는 분들이 '그럼 TV를 수영장으로 만들겠다는 거냐'고 수염을 부르르 떨고 하시는데, 뭐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좋아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예전부터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SBS TV에서 곧 방송될 '자명고' 팀이 사진 두 장을 공개했습니다. 자명공주 역의 정려원과 낙랑공주 역의 박민영이 잇달아 '목욕신'을 찍었더군요. 네. 아주 옛날부터 자주 보던, 사극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바로 그 '쇄골 아래 10cm' 짜리 목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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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화끈거리십니까? 애들이 볼까봐 두려우십니까(엄살은...)? 그런데 이런 장면은 벌써 수십번 안방극장에서 재현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죠.

현대극에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득달같이 들고 일어날 장면도 사극에 삽입되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것이 흔히 있던 일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한 2년 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좀 수정했습니다. 고려하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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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사극에만 목욕신이 나올까?

사극이 강하다. 2006년 MBC TV '주몽'의 빅 히트 이후 주중 시간대에도 사극과 퓨전 사극 드라마의 고정 편성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이산',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등이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주말 사극인 '대조영'과 '대왕 세종', '천추태후', 그리고 퓨전 사극인 '일지매'와 '홍길동'까지 더하면 사극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은 주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케이블TV에서도 사극(풍) 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다. 조선시대의 수사드라마 '별순검'은 지상파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인 4%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OCN의 '메디컬기방 영화관', CGV의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극이 왜 인기일까. 수만가지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사극 붐을 설명할 때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온 주위를 둘러 봐도 신나는 일이 없을 때. 현실이 너무도 심각하고 각박할 때 사극은 도피의 공간을 제공한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수백년전에 흙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떤 위기에 처하든 그건 모두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고로 편안하다.

게다가 사극에는 상당히 풍부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 '라쇼몽'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현대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다가와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는 일찌기 역사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내가 원하는 설정을 마음대로 맞춰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적절한 시대와 배경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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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반드시 이렇지는 않더라도 사극이 현대극보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훨씬 적절한 형태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극의 고증이 훨씬 어려울 것 같지만 최근의 퓨전 사극 붐은 이마저도 흐트러놓은지 오래다. 현대극이라면 대단히 민감할 내용도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훨씬 매끄럽게 전달된다.

심지어 사극은 방송에서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섹스와 폭력의 문제에서도 현대극보다 훨씬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메디컬기방 영화관'이나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 같은 케이블 TV 드라마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중에서 여주인공의 목욕신이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현대극이라면 꽤나 화제가 될법한 수준이 일반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노출만도 아니다. '태왕사신기'에서의 피가 튀는 살육 장면 역시 현대극에서 재현됐다면 방송위원회의 규제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몇년새 붐을 이뤘던 '로마'나 '튜더스'같은 사극에서의 노출이나 폭력 강도는 현대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마도 '이건 다 현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서슬 푸른 검열의 손길도 멎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재미있는 사극을 많이 보여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것이 드라마 바깥, 실제 세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상당히 우울해진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주식회사 한국'의 앞날이 밝을 때에는 드라마도 밝았지만 어느새 TV의 현대극에서는 치정과 불륜 드라마만 살아남게 돼 버렸다. 과연 내년에는 '밝은 현대극'을 볼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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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밝은 현대극이 나왔습니다. (이건 농담.^)

현대극이 싫어서 사극을 본다... 이건 좀 말장난같긴 하지만 현 상황에선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사극에는 목욕신이 나와도 괜찮다'는 선입견 역시, '저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아무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극이 더 야하고 잔인하다'는 것 또한 절묘하게도 사실입니다. 위에 예로 든 '튜더스'나 '로마'는 정말 대담하죠.




아울러 사극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의 목욕신들.

(왜 꼭 하얀 속곳을 입고 목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장희빈'의 김혜수



'황진이'의 하지원




'왕과 나'의 구혜선




그리고 충격(?)이라는 표현도 나왔던 '신돈'의 서지혜




'여인천하'의 강수연






'왕의 여자'의 박선영까지.


정말 너무나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독 사극에만 관대한 한국 방송이 모든 시대에 좀 더 관대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자들만 나온다고 뭐라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영화 '스카페이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누가 기억이나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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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 정도면 기억할 만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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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의 '꽃보다 남자'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마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고, 그가 뜻밖에도 인상 좋은 호남형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의 전설적인 미남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를 연상시키면서 잇달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연쇄살인자가 연예인 수준의 미남인 것도 아니고, 미남이 평범한 외모의 남자들보다 더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위험한 성향을 가진 사람, 전문 용어로 사이코패스인 인물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위험성은 배가될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미남 연쇄 살인범에 대한 기록들은, 이들이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일찌감치 수사선상에서 제외되거나 체포된 뒤에도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던 전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죄라는 증거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이런 추종자들은 그들이 무죄라고 믿고, 심지어 남편으로 삼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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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보다 살인마

1980년 2월9일, 30여 명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미국의 살인마 테드 번디(위 사진)는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재판 도중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캐럴 앤 분에게 “나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법정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번디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에다 법대 졸업 학력까지 갖춘 번디는 매스컴의 주목으로 '살인 귀공자'란 별명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팬레터가 밀어닥쳤고 일부는 그가 진범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번디는 89년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자신의 변호인과도 염문을 뿌렸다.

미남 살인마에 대한 기록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 여성들의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샌디 폭스는 74년 미국 애틀랜타의 한 바에서 미남 청년 폴 존 노울스(아래 사진)를 만났다. 폭스는 77년 쓴 책 『킬링 타임』에서 노울스가 “확 눈에 들어오는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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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미 18명을 죽인 노울스는 그날 밤 자신의 범행을 상당 부분 털어놨고, 폭스는 “섬뜩함을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뒷날 체포된 그에게는 면회를 요청하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카사노바 킬러'라고 명명했다.

미남 살인자들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범죄심리학자들은 위험한 범죄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향을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고 통칭한다.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은 구원 판타지다. 여성들은 설혹 상대가 연쇄살인마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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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재판이 주는 긴박감이 보는 이를 성적으로 흥분시킨다는 가설, 또 유명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 범죄자 내면의 외로움을 자신만이 달랠 수 있다는 믿음 등이 있다. 그리고 간혹 발견되는 미남형 범인들은 이런 경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는 것.

살인마 강호순의 미남형 외모가 공개되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그가 자신의 매력을 피해 대상인 여성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다는 수사 보고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인터넷에는 '강호순 팬카페'까지 등장했다. 누군가의 치기 어린 장난이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도 일각에서는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 TV 프로그램들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들 한다. 하지만 미남 살인마들을 둘러싼 기록을 보면 외모에 대한 선호는 이미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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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는 30여명의 살해를 인정했지만 실제로 그가 죽인 여자는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번디는 1980년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줄곧 "속죄의 의미에서 경찰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전모를 밝히겠다"며 사형 집행을 1989년까지 연장했지만, 결국 재판 결과 외에는 아무 것도 더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9년 동안 수없이 많은 경찰, 기자, 성직자, 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들을 만났지만 주장에는 일관성도 없었고,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고백과 면담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려는 술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날까지도 유명한 포르노 반대자인 제임스 돕슨 목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포르노를 금지하지 않으면 소년들이 제2, 제3의 번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수사관들은 "그 이전까지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범행이 포르노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고, 그의 소지품에서 포르노가 나온 적도 없었다"고 비웃었습니다. 결국 이 인터뷰 역시 돕슨 목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대가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돕슨 목사가 자신의 사형 집행을 연기시켜 줄 것을 기대한 쇼였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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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캐럴 앤 분과의 결혼 역시 대중을 의식한 연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번디와 분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은 번디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믿었습니다. 분은 번디가 주로 살해한 피해자들과 비슷한 특징 - 긴 갈색 머리,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마, 가녀린 몸매 - 을 갖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번디는 분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분은,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은 것은 그가 일련의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거죠. 유력한 증거였던 던디가 사체에 남긴 깨문 흔적조차도 분은 "경찰의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법정에서 결혼한 뒤 1982년 번디의 딸까지 낳은 분은 그러나 1986년의 어느날, 번디와 이혼을 선언한 뒤 이름을 바꾸고 사라졌습니다. 뒤늦게나마 환상이 깨진 모양이죠. 번디의 딸이 살아있다면 현재 27세. 과연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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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 리오이라는 여자는 13건의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리처드 라미레스(위 사진)에게 구애하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리오이는 라미레스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자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미레스는.... 살인범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흉악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본다면 '강렬한 개성의 특이한 얼굴'로 볼 수 있는 용모입니다.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는 생소한 용어는 성도착의 여러 증상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에게 끌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가끔 '보니 앤 클라이드 신드롬', 혹은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라고 불리던 현상들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모성애의 발로에서든, 아니면 다른 증세에서든 여자들은 악한 남자의 내면에서 구원의 여지를 찾고 거기에 헌신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죠. 물론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비약하자면 많은 여자들이 순박하고 착한 남자보다 거칠고 못된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슬쩍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살인자에게 느끼는 위험한 매력과 비교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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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까지는 미남 살인자에 대한 여자들의 막연한 호감을 주로 얘기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반대의 경우를 온 국민이 겪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1988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에 이런 일이 있었죠. 미모 때문에 저지른 범죄의 어마어마한 죄과는 슬쩍 묻혀 버렸던 경험 말입니다. 어찌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은 여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란 말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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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쓸데없이 무거워진 것 같으니 유머로 마감하겠습니다. ^

얼마 전 조인성이 출연한 커피 광고가 '음악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사이코패스 드라마로 바뀌는 동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이건 '음악하나 바꿨을 뿐인데' 꽃보다 남자의 미남들이 사이코패스로 둔갑하는 마술들입니다. 먼저 윤지후 김현중 편입니다.




다음은 소이정 김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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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의 제목은 '테이큰'입니다. 네. 혹시나 해서 다시 봐도 우리가 아는, 리암 니슨이 주연한 그 '테이큰'입니다.

작년에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김회장이 생각난다'는 제목을 달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테이큰'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어떤 폭력도 무릅쓰는 비밀 요원 출신 아버지의 맹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진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술집에서 싸우다 맞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수십명의 조폭을 이끌고 현장으로 돌진하신 김 모 회장님이 화제가 됐었죠. 참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중년 남성들 가운데에는 '내 자식이 어디서 맞고 왔으면 야구 방망이라도 들고 보복하러 가는게 인지상정 아니냐'며 은근히 김회장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해하세요. 남자들은 원래 철이 늦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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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미국에서 이제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한국이 세계 영화 시장에서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한국에서 되면 세계에서 된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봉하면 한국에서의 장사는 포기해야 한다(불법복제 때문에)'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해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느낌은 이 정도. 이 단순무식과격한 영화를 본 첫 느낌은 바로 이랬습니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바로 이겁니다.

저 포스터를 보는 순간, TAKEN이라는 영문 표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저 TEKKEN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나 TEKKEN의 분위기더라는...^^




브라이언(리암 니슨)은 은퇴한 안티테러리스트 에이전트. 지금은 사설 경호원 아르바이트나 하는 처지지만, 한때 나라를 위해 봉사하느라 아내 레노어(팸케 얀슨)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상탭니다. 17세인 딸 킴(메기 그레이스) 역시 거의 만날 수 없게 돼 버렸죠.

그런데 킴이 어느날 유럽으로 연수를 가겠다고 동의서를 받으러 옵니다(미국 법규상 미성년자의 외국 여행엔 친부의 동의가 필요한 모양이더군요). 애를 물가에 내놓듯 걱정이 만발해 있던 브라이언. 결국 마지못해 동의를 해 줍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킴은 긴급 구조 요청을 해오고... 브라이언은 모처럼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혼한 아내가 키워온 귀여운 딸을 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파리로 날아가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 이런 설정은 제작진에게 몇가지 안전판을 제공해 줍니다. 특히 '테이큰'은 그 이점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액션 영화의 팬들이 기본적으로 남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초로의 리엄 니슨은 상당히 동정표를 얻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또 주인공이 전문직(특수 요원 또는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점은, 폭력의 묘사와 수위,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과격하고 비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줍니다. '딸이 죽게 생겼는데' 라는 상황에서,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심정을 이입시켜 주는 거죠.



그 결과, '테이큰'의 브라이언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인명의 소중함? 이런 건 먼 은하계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재수없게도 총에 맞아 즉사하지 못한 불쌍한 범인은 즉석에서 빨래집게로 전기고문까지 당하죠.

이 장면에서 리엄 니슨은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럼 난 이걸 켜놓고 가지. 정전이라도 되면 누가 와서 꺼 주지 않을까?" 누군가 영화평에 '악당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라고 했던데 적합한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얘들은 '잘못 걸린' 거죠.

이 대목에서는 사실 이 분이 잠시 생각납니다.



("내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왔다는데, 어떻게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냐구!")

네.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공감이 가신다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실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펼치는 액션에 비하면 김회장이 하신 정도는 애교로 보이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럼 김회장이 잘 했다는 거냐"며 흥분하시는 분들, 가만 계세요. '테이큰'은 어디까지나 영홥니다. 그것도 킬링타임용 울트라 액션 영화죠. 영화는 그냥 영홥니다. 영화에서 자식사랑이 눈물겹다고 해서,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 회장이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했다는 게 다시 한번 생각나서 들쳐 봤습니다.



실종된 가족 찾기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진짜 영화 중에는 이런게 있었죠.



갑자기 파리에서 사라진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해리슨 포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프랜틱'. 아마 비디오 제목이 '해리슨 포드의 실종'이었을겁니다.

물론 배경이 파리라서 '실종'이 먼저 기억나지만 사실 더 비슷한 영화가 있죠.



진 해크먼과 맷 딜런이 부자간으로 나온 '타깃'.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실종되고, 젊은 아들을 혈기로 방방 뜨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겁니다. 매력이라곤 전혀 없던 소심쟁이 중년 남성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실종 이후 냉철한 눈빛을 뿜어내며 범인을 추격한다는 분위기 전환이 감상 포인트였죠.




아무튼 '테이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미국산 십대용 공포영화와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스크림' 이전에 나온 십대용 공포영화(물론 그 뒤에도)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른 말 안 듣고 니들끼리 위험한 데 가면 사고난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특히 수많은 슬래셔 무비에서 괴물(혹은 범인)은 주인공들 중 유일한 **에 의해 퇴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브라이언의 딸 킴은 **였기 때문에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뭐 스포일러긴 합니다만, 설마 이런 영화에서 리암 니슨이 파리까지 갔다가 사랑하는 딸의 시체를 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시겠죠?).

게다가 남자에게 방종한 태도를 보이면 벌을 받는다는 것 또한 슬래셔 무비의 법칙 중 하나죠. 문란하게 구는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꼭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뭐 길게 썼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평소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보다가 지나치게 심약하고 도덕심이 투철한 주인공, 그리고 인명를 지극히 중시하는 '착한 주인공'들(이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일수록 주인공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습니다) 때문에 짜증을 느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이상의 강추 영화는 없습니다. 리엄 니슨은 절대로 이 영화에서, '쓸데없이' 착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영화는 또 짧고(90분이면 끝납니다), 간명합니다. 구질구질한 사설도 없고, 거창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설파해서 졸음을 유발하는 등장인물도 없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바보가 아니면 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리엄 니슨은 소심하고 인정 많은 주인공들(그들이 "죽이면 안돼! 그에게도 정식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라며 파트너를 제지하는 순간, 죽어가는 척 하던 악당들은 비웃으며 파트너에게 총알을 퍼붓죠)이 그동안 관객들에게 끼쳐 온 폐해를 보상하기 위해 영화 나라에서 온 구호 자원봉사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런 걸 기대했던 관객 - 뭐 그 중에 저도 있습니다만 - 에게는 '테이큰'은 정말 신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1년에 영화 두세편 보는데 그래도 영화 한편 보고 나면 뭐 남는게 있어야지'라는 분이라면 절대 보면 안 될 영화죠. 그런 분들에게는... 음...

('남는게' 너무 많아서 소화불량이 될 것 같은 영화가 갑자기 한편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무튼 이 영화를 굳이 보신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가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에서 청순녀 킴 역할을 맡은 매기 그레이스. 17세 역을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듯도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 크기.








사실 이런 사진이나 '로스트'에서는 이 배우가 이렇게 눈이 작다는 걸 몰랐습니다.

알고 나서 보니 눈 화장이 장난 아니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테이큰'은 매기 그레이스의 '눈 커밍아웃' 작품으로 기억되겠더군요.

저 속눈썹과 메이컵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나면 그의 눈 크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이 영화의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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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중국 연예계의 대부 성룡이 김장훈에게 돌연 편지 한장과 함께 1만 달러의 돈을 보내왔습니다. 선행에 앞장서고 있는 김장훈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젊은 친구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며 자신의 선의를 보탠 것입니다.

김장훈이 성룡을 직접 만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아시아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룡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게다가 기부의 액수로 따진다면 성룡은 그야말로 자선의 황제 격입니다. 지난번에도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자선활동, 한국에 대해 보여온 지속적인 호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서의 탁월한 성과 때문에 아마도 성룡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해외 스타 중에서 호감도 1, 2위를 다툴만한 인물입니다. ('추석이나 설 연휴때면 생각나는 인물 1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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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눈여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룡이 보낸 편지는 순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틀린 부분도 없는 깔끔한 한글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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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은 공식석상에서 일부러 한국어를 자제하지만 사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70년대 초, 한국 액션영화의 전성기 때 성룡은 충무로에서 스턴트맨으로 활동했고, 한국 여자친구와도 오래 사귄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홍금보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기도 했죠. 기자회견이라도 하면 성룡은 이미 한국 기자가 던진 질문을 다 알아 듣고 씩 웃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대답은 농담할 때를 빼면 전부 중국어로 합니다.

저 편지를 받은 김장훈 측도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룡의 친필 편지'라고 말했지만, 뒤늦게 성룡 측에 의해 이 편지를 대필한 사람이 유승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좋은 기사'에 과연 유승준의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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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유승준을 자신의 매니지먼트사인 JC 소속 연예인으로 만든 이상, 성룡의 급선무는 한국 내에서 유승준의 복권을 이루는 것이죠. 그 방안의 하나로 성룡은 한국에서 호감도 1위인 김장훈과 외국인 스타 중 호감도 1위인 자신의 좋은 사연 속에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슬쩍 끼워 넣은 것입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성룡의 선의나 김장훈에 대한 경의를 부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성룡의 입장에서는, '마침 이런 좋은 일을 하자니 여기에 승준이도 한몫 하게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구상은 좋았지만, 이 정도로 얼음이 녹기엔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너무도 공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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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햇동안 유승준은 한국 방송과 관련해 두 차례의 논란을 겪었습니다.

하나는 MBC TV '무릎팍 도사' 이범수 편에서 나온 유승준의 자료 화면입니다. 왕년의 자료 화면 한번 보여준 것 갖고도 여론이 들끓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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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MBC TV '네버엔딩 스토리'가 홍콩에 가서 성룡을 인터뷰하면서 유승준을 함께 동석시켰던 사건입니다. '성룡 편에 유승준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여론은 죽창을 세웠고, 결국 MBC는 유승준이 등장하는 부분을 싹 편집하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사실 성룡 측에서는 이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가 바로 유승준을 한국 TV에 한번 내보내 보자는 의도였다는 후문인데, 이것도 실패한 셈입니다.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유승준은 국적 변경과 함께 한국 입국이 좌절된 뒤로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시도해왔습니다. 몇몇 기자들과는 실제로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그때마다 데스크 선에서 모두 게재가 좌절됐습니다. 일부 매체는 - 좀 코믹하지만 - 유승준의 이름을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이라고 표기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유승준의 앞잡이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그렇게 '폭탄돌리기'를 하던 사이 최근 한 여성지가 용기있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성룡은 한국인의 문화와 스타일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유승준의 한국 연예계 복귀는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대병소장'이라는 새 영화에 유승준을 기용하면서 다시 유승준의 복권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유승준에게 공을 기울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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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승준은 중국에서도 장나라 급의 최고 한류 스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스타덤을 구축하고 있는 연예인입니다. 춤과 노래 실력은 이미 10년 전에 정평이 났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타이즈 프로그램이 예능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빼어난 용모는 기본이고 한국어-영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3개 국어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이제 고작 만 33세. 제작자라면 당연히 탐낼 재목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폭발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점이 성룡의 고민입니다. 더구나 한류 시장에서도 '한국산 한국 연예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즉 성룡+유승준의 시너지가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선 유승준이 한국 시장에서 복권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영화 촬영 계획이 밝혀졌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한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유승준과 관련된 화제에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성룡의 한국측 대리인이 "유승준 하나 나온다고 이 영화의 한국 상영을 고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보였으니 어떻게든 공개는 되겠죠. 관객들이 극장 앞에서 시위를 하든, 스크린에 계란을 던지든, 그건 그때 가 봐야 알 일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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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 국민정서법 위반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통장에 26만원밖에 없는 아무개씨도 돌 맞을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병역 비리 사범으로 몰렸다가 뒤늦게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다른 연예인들도 왕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나라에서 왜 유독 유승준에게는 여론의 손길이 가혹한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유승준의 가장 큰 잘못은 병역 기피 그 자체보다도 "당당히 군대를 가겠다"고 선언했다가 뒤늦게 공인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물 위에 쓴 글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의도 서쪽의 둥근 지붕 아래에도 우글우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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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25명이 전과자인 나라(그나마 지난 17대의 60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셈이더군요)에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출마자 6869명 중 10.5%인 725명이 전과자(그것도 대부분 뇌물공여, 부정수표단속법, 사기 등 죄질이 나쁜 종목)였던 나라에서 과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연예인' 하나가 이 나라 땅조차 밟을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인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인 듯 합니다.

누구도 유승준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대체 그가 자신의 잘못을 정말 뉘우치고 있는지, 얼마나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라도 한번 드러낼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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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재미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이 영화를 보고 '재미'를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발키리'는 본래 국내에서는 '발퀴레'라는 표기가 더 익숙한 단어입니다. 바그너의 악극 제목이자, 북구 신화의 등장인물이죠.

이 '발퀴레'라는 음악과 관련된 지휘자 중에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래 세계적인 명지휘자였던 이 사람은 '발퀴레'를 잘 연주해서가 아니라 '발퀴레'를 연주하려다 좌절한 사연 때문에 세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바렌보임의 '발퀴레'와 톰 크루즈의 '발키리'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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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키리 - 발퀴레

22일 개봉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는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식시키려던 독일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담고 있다. 최근 내한한 주인공 톰 크루즈는 출연 이유를 묻자 “당시 독일의 모든 사람이 나치의 꼭두각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제목의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퀴레(Walkure)의 영어식 발음. 흔히 갑옷 차림에 하늘을 나는 여신들로 묘사되는 발퀴레는 전사한 영웅들의 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의 2부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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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게르만 신화를 소재로 한 바그너의 작품들이 독일 민족혼을 고취시킨다며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었다. 특히 애용된 것이 '발퀴레' 3막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騎行)'이다. 당시 독일 전차부대는 외부 스피커로 '발퀴레의 기행'을 쩌렁쩌렁 틀어 놓고 진군하기도 했다.

이런 악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음악회에서든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금기로 취급돼 왔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고, 바그너 자신이 유명한 반(反)유대주의자란 사실도 한몫했다. 이 금기는 2001년 7월 7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굳게 지켜져 왔다.

여기에도 곡절이 있다. 평소 이스라엘의 대아랍 강경책을 비판해 온 바렌보임은 이 해 예루살렘에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발퀴레'의 하이라이트를 연주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족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타의에 의해 레퍼토리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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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렌보임은 연주 당일, 즉석에서 청중에게 앙코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한 곡을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야유가 나왔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우리만 희생자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서슬이 시퍼런 나치 치하에서도 모든 독일인이 권력에 굴종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고, 바렌보임의 '발퀴레'는 모든 유대인이 아랍과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렸다. 히틀러의 상징 음악으로 쓰였던 '발퀴레'가 시대를 뛰어 넘어 다수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양심의 소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자 지구의 현실은 바렌보임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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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름(?) 수려한 용모의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바렌보임은 25세 때이던 1967년, 당시 22세의 세계적인 미녀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와 이스라엘에서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결합은 당시 '20세기의 슈만과 클라라'라고 불릴 정도의 반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프레는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으로 연주 능력을 잃게 되고, 결국 1987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사망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음악청년 바렌보임(일각에서는 아내가 죽어가는데도 콘서트 연습을 하고 있었다며 냉혈한이라고 그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사실 음악 말고 뭘 할수 있었겠습니까)은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또 한번 주목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 알 자지라 영어 방송의 토크쇼 '프로스트'에 출연한 바렌보임입니다.

바렌보임은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격의 종료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이 현재의 이스라엘 점령지구가 직면한 문제에는 아랍과 이스라엘 양측의 책임이 공존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좋다. 그런데 그 지역은 이스라엘이 40년간 점유해온 지역이다. 40년을 다스렸다면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에 대해선 점유하고 있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아랍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함께 연주하는 '웨스트 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세계적인 연주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발퀴레'의 일부분입니다. 이 곡에 한이 어지간히 맺혔던 모양입니다.^




사실 국내에 나와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1992년 유로피언 콘서트 DVD에도 바렌보임의 지휘로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르는 '발퀴레' 1막에 나오는 사랑의 아리아 '겨울 바람은 우아한 달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mond'가 수록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도밍고의 애창곡으로, 이번 내한 공연때도 리스트에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 만 합니다. 2005년 BBC 프롬에서 '발퀴레' 특집이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그문트 역의 도밍고가 지글린데 역의 발트라우드 마이어와 함께 이 노래를 부릅니다. (도밍고 형님 특유의 '소프라노 만지며 노래하기' 신공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마지막은 정말 시원시원한 '발퀴레의 기행'입니다. 역시 같은 2005년 BBC 프롬에서 안토니오 파파게노가 지휘하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리사 가스텐을 비롯한 발퀴레 군단의 노래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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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의 도입부를 보면 구준표는 참 찌질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집안 돈으로 학교에서 왕 노릇이나 하고,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이유로 동급생을 자살 위기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의 전체 구조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저런 '이상한 놈'이 주인공으로 인기를 얻는다는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찌질한 남자'라는 점에서 구준표 말고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천추태후'의 경종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KBS 2TV '천추태후'를 볼 맛이 없어졌습니다. 잘 나가던 드라마에서 휙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천추태후'의 도입부에는 상당히 매력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린 천추태후 역의 김소은('꽃보다 남자'의 가을이기도 하죠)과 그 남편인 경종 역의 최철호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세월이 흐르면서 경종과 어린 천추태후가 사라져 버렸더군요. 그에 비해 성인 역의 인물들은 좀 지나치게 평면적입니다.

아무튼 구준표나 경종 같은, 종래의 의미로는 '전혀 멋지지 않은' 남자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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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남자'가 뜨는 이유

KBS 2TV 대하사극 '천추태후'가 인기다. 투입된 물량이며 공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인기의 진원지가 예상과는 전혀 달라 관계자들도 놀라고 있다. 타이틀 롤인 천추태후 역의 채시라가 1, 2회에만 출연하고 빠진 가운데서도 20%대의 시청률을 기록중인 건 누가 뭐래도 경종 역을 맡은 최철호의 힘이다.

24일 방송된 7회에서 경종이 죽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제 무슨 재미로 보겠느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드라마 속 경종은 전혀 멋지지 않다. 정사는 돌보지 않는 술꾼에다 함부로 말을 내뱉고, 사리 분별이 없는 폭군의 모습이다.

안 좋은 면 투성이지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던 '나쁜 남자'와도 전혀 다르다. '나쁜 남자'들이 용모와 능력은 뛰어나지만 차가운 성격 때문에 여자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인물형을 가리킨다면 최철호의 경종은 그저 '못난 남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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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못난 남자가 인기일까. 어찌 보면 최철호의 인기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욕은 먹었지만 지난해 SBS TV '조강지처 클럽'의 인기를 이끈 안내상이나 현재 SBS TV '아내의 유혹' 인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변우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악당 축에도 못 드는 찌질함'이다. 악인은 악인이되 자기가 지은 잘못을 감당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약하다. 가끔은 극중 여성들에게 너무 당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안내상은 오현경의 복수로 인생 밑바닥을 맛보고, 변우민 역시 전처 장서희와 현재 아내 김서형의 협공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최철호 역시 당찬 어린 아내 김소은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이 당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주고 있다.

어쨌든 다른 드라마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캐릭터들이 좋은 배우들을 만나 빛을 봤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최철호와 안내상, 변우민은 모두 한심한 인물들을 다소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희화화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승화시켰고, 가끔은 동정을 사기도 하는 내공을 발휘했다.

문득 이런 찌질남들의 인기는 결국 영웅이 사라진 시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힘든 현실에서 시대를 이끄는 멋진 남자들의 모습을 볼 길이 없으니 드라마 속에서도 영웅호걸이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현실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속히 시대를 타개할 영웅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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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구준표나 경종은 뒤에 가서 개과천선이라도 하지만 철저하게 응징당하는 '원수씨' 안내상이나 아마도 크게 응징을 당할 '교빈씨' 변우민은 또 뭐란 말입니까.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 -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 인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은 도대체 대책이 안 나오는 무심한 대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캐릭터나 배우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작가의 오만이 잘 나가던 드라마를 망쳤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에덴의 동쪽'은 실력 이상으로 운의 뒷받침을 받았죠. 마땅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만한 경쟁작이 없는 가운데 순항했던 것을 100% 모두 실력이라고 믿고, 방만하게 스토리를 풀어헤쳐 놓은 채 진도를 나가지 않는 사이 지칠대로 지친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습니다.

결국 현재 시청자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영웅이 고생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기운 것 같습니다.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시청자들은 현실의 고민을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마 올해 내내 좀 더 가벼운 이야기,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의미로 사극의 강세도 계속되겠죠. 드라마 속에서 진정한 영웅 캐릭터가 우뚝 서는 것과, 현실을 타개할 진짜 영웅이 나타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빠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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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한국의 구준표는 일본의 츠카사에 비해 너무 빨리 착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쉽게 달라질 놈이 그동안 그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죠.

그나자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꽃보다 남자'같은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처음 본다"며 방송심의위원회에 강력 항의했다는 시청자에 대한 기사가 떴더군요. 이 분, '반지의 제왕'을 보고는 어디에 항의했을까요? 뉴질랜드 대사관?






혹시 이 글에 나오는 '꽃보다 남자'에 대한 언급에 불만 있는 분들(예: '준표님은 찌질하지 않아요. 님하 드라마나 좀 보셈' 등등)이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썼던 '꽃남' 관련 글들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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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인기, 그 가운데서도 이민호와 김현중의 인기 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오는 27일 열리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후보로 나란히 올라 있습니다.

현재도 온라인으로 진행중인 인기투표 득표 현황(http://isplus.joins.com/100sang/vote/vote.html)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박빙의 대결이라는 말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득표율 면에서 0.1% 단위까지 차이가 없는 40.4% 동률. 줄곧 0.1% 이내의 승부입니다. 투표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0.2% 이상 벌어진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3위인 이준기가 10%도 안 나올 정도로 두 사람에게 투표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기존의 지명도나 단순한 꽃미남으로서의 외형에서는 김현중이 훨씬 앞서 있었지만 막상 드라마가 방송을 타자 무명시절 다져온 연기력과 결국 금잔디와 맺어질 것이라는 주인공 구준표 캐릭터의 위용, 그리고 남성적인 매력에선 이민호가 한발 앞서 나가는 모습입니다. 좋은 라이벌이죠. 이런 인기투표 등을 보면 두 사람이 경쟁자인 것처럼 보이고, 벌써 어느 한쪽의 광팬들은 다른 한쪽을 깎아내리기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최소한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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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남'은 짧은 시간에 네 주인공의 매력, 워낙 유명한 원작의 지명도, 만화적인 상상력과 1회의 폭력 논란이 불러 일으킨 화제, 여기에 별 관심 없던 사람까지 몰입하게 했던 설 연휴의 집중 재방송까지 호재로 작용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짧은 시간에 확 떠 버렸다는 겁니다. 2일 방송이 9회. 총 24부작이니 이제 3분의 1 가량 달려온 셈이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지난 7, 8회에서 스토리는 구준표 - 금잔디의 아기자기한 사랑 만들기 이야기에서 구준표 - 윤지후 - 금잔디의 삼각관계로 급속히 전환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대결을 거쳐 금잔디는 다시 준표 쪽으로 기울죠. 윤지후는 언제 경쟁자로 나섰냐 싶게 후원자로 변신했습니다. 구준표는 김장과 오뎅 먹기 등 서민 생활 체험을 통해 시청자들의 호감도를 더욱 높였죠.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걸어 온 길을 생각하면, 앞으로 다뤄질 사건은 어머니의 방해 - 잔디의 TOJ(한국식이면 TOK쯤 되려나요?) 출전 - F4의 졸업 - 준표의 유학 등일 겁니다. 어쨌든 총 24부 중에서 전반 12부는 준표와 금잔디가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후반 12부는 F4가 졸업한 뒤(또는 금잔디도 졸업한 뒤까지) 일어나는 상황이 다뤄질 겁니다. 후반 12부 중에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준표-잔디 관계의 위기와 우연한 사고로 인한 준표의 기억상실 등이 중요한 사건이 되겠죠. 그리고 13회부터 등장하는 준표의 약혼녀도 꽤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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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드라마의 투톱은 구준표-금잔디에서 윤지후-금잔디로 슬몃 이동하는게 순리라는 점입니다. 구준표-금잔디의 관계만으로 24편의 드라마를 끌고 가는 건 누가 봐도 무리입니다. 일본은 비슷한 기간을 1부 9편, 2부 11편의 20부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2부(리턴즈)의 주인공은 하나자와 루이(윤지후)"라고들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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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부 얘기를 잠깐 하자면, 츠카사(구준표)는 미국 유학을 간 뒤 츠쿠시(금잔디)를 멀리합니다. 어머니의 음모에 의해 세계적인 대재벌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몸가짐에 지나친 강박관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게 곧 알려집니다. 게다가 가문을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주어집니다.

당연히 츠쿠시는 상처를 받고, 이런 츠쿠시를 위해 루이가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츠카사가 "어떻게 친구의 여자에게..."라며 항변하지만 루이는 "내가 말했지. 네가 츠쿠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면 절대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거라고"라며 당당하게 맞섭니다.

(솔직히 말해 대체 츠쿠시가 왜 이런 남자를 두고 츠카사 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 한눈을 파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일본판 '꽃보다 남자' 2부에서 루이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물론 오구리 슌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오구리 슌의 스타일은 영화 '크로우즈 제로' 쪽이 하나자와 루이 역보다는 훨씬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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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판 드라마가 이렇게 나갔다고 해서 한국판 '꽃보다 남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될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결국 원작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사소한 에피소드를 빼고 중요한 사건들이 그대로 재현됐다는 점(9부의 더블 데이트 신도 그중 하나입니다)을 감안 한다면, 24부작이라는 긴 드라마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구준표-금잔디의 사이가 쉽게 맺어져서는 안되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긴장을 유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바로 금잔디의 첫사랑인 윤지후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윤지후가 멋져 보이지 않으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빛을 잃는 겁니다. 윤지후가 멋진 놈으로 그려질수록, 그 멋진 놈을 뛰어 넘어 구준표와 금잔디가 맺어질 때 시청자들이 긴장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을 하려면 브라질을 꺾고 우승을 해야 하는 거죠. '슬램 덩크'는 북산이 산왕과 붙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만약 산왕이 엉뚱한 학교에게 졸전 끝에 진다면 북산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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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김현중의 윤지후가 살지 못하면 그건 구준표에게도 치명적입니다. 윤지후가 강적일수록 구준표가 부각되기 때문이죠. 윤지후는 거의 마지막까지 - 시청자들에게는 "혹시 작가가 미쳐서 구준표와 금잔디 대신 윤지후와 금잔디를 맺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져야 합니다.

이민호는 이제 뜰만큼 다 떴는데 무슨소리냐...고 하실 분들도 있지만 24부작이 다 방송되려면 줄잡아 3개월. 꽤 긴 시간입니다. 지난 연말만 해도 '에덴의 동쪽'이 이렇게 고전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한 발 삐끗해서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벌어 놓은 시청률 까먹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꽃보다 남자'에 달려든 수많은 휘발성 팬들은 질리는 시간도 짧습니다. '...짜증나' 한마디면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최소한 이 24부작이 끝날 때까지는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느 쪽 팬이건, 다른 한 쪽을 깎아내리는 것은 곧 자신이 응원하는 쪽에게도 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편이 낫습니다. 오히려 모자라 보이면 격려하고 부추겨 줘야 한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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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이런 구상에 가장 부족한 부분은 김현중의 연기력일 겁니다. 드라마라고는 처음(시트콤은 드라마가 아닙니다)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본인의 진짜 성격에 비해 윤지후의 대사는 "너무나 낮간지럽고 쑥스럽다"는 김현중의 설명을 볼 때에는 차라리 작가가 '우결'에 나오는 김현중의 캐릭터에 맞게 윤지후 역을 좀 다듬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건 뒤로 갈수록 나아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드라마의 진짜 위험은 금잔디 캐릭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김현중의 연기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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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고 나자 '꽃보다 남자'의 위력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물론 취재 일선에서는 이미 처음 1,2주 사이에 '이건 대형사고다'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지만, 회사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느낌은 늦게 전달됩니다.

특히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꽃보다 남자'가 뭔지를 모르거나 어쩌다 눈에 띄어도 "뭐 저런 유치찬란하고 황당한 드라마가 있어"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설 연휴는 온 가족이 모이는 시기입니다. 70대 할머니와 10대 손녀가 함께 앉아서 이민호와 김현중의 화려한 미모에 정신을 잃고 빠져드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다들 "아, 이 드라마에 뭔가 있구나"라는 걸 절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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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운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아내의 유혹' 못잖은 막장 드라마고, 교훈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생각도 없는 한심한 작품이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한글을 해독할 수 있는 여성 시청자들은 모두 '꽃남'의 노예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30일, 여러 매체에 의해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 사진'이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요즘 같은 인기라면 대체 이민호와 한때라도 사귀었던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런 사진이 나온다고 해서 이민호가 손해를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혈기방장하고 매력만점인 20대 젊은이가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번 사귄 일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경악할 일이죠. 만약 이민호가 어떤 인터뷰에서건 "지금까지 여자 손목도 안 잡아봤다"고 얘기한다면 그날로 바로 이민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정작 곤란한 건 바로 그 옛날 여자친구겠죠. 이런 식으로 얼굴이 공개되면 불편할 일이 꽤 있을텐데 말입니다. 심지어 일부 매체는 얼굴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싣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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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일제히 보도된 사진 외에도 현재 인터넷에는 '이민호의 전 여자친구'라고 돌아다니는 사진이 2-3 종 정도 있습니다. 화질이 선명치 않아 같은 인물인지, 그냥 닮은 사람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진들에 대해 이민호의 소속사 측 역시 너무도 평온한 반응입니다. "이민호가 고교시절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한 2-3번 정도 여자를 사귄 걸로 알고 있다. 아마 그 중 한명인가보다"라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럼 여자도 안 사귀어 봤겠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입장이죠.

(흥미롭게도 그 상황에서 이런 사진을 갖고 이민호에게 협박(?)을 시도한 웃기는 기자 - 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 나부랭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료를 확보했다.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는 식으로 접근을 하더라는군요. 어쩌다 이 바닥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민호 본인도 쿨하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저런 먼 과거의 일들 말고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한때 일각에서 다비치 멤버 강민경과 사귀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민호는 "앞으로 박보영, 문채원, 최은서까지 3번은 더 열애설이 날 것 같다"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끼리 스스럼없이 놀러 다니다 보니 함께 찍은 사진도 많고 본 사람도 많을 거란 얘기죠. 이렇게 떳떳한데 뭐 더 보탤 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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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왔던 강민경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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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학교 ET' 시사때 박보영과의 모습.

(울학교 ET 시절 이야기는 이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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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소속사 후배이자 친구인 최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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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장 절친한 친구라면 일지매군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평온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미남 미녀들끼리 만났나"하는 찬탄과 부러움이 대세를 이루고 있죠. 몇해 전만 해도 일부 아이들 그룹의 경우, 소속사가 멤버들의 과거 사진까지도 '세탁'을 하고 입단속을 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성숙해졌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유독 '옛날 여자친구' 들로 화제가 된 건 아무래도 무명이었던 시기가 길었고, 현재 너무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명 시절은 어딜 가도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일도 없었겠죠.

그나자나 지금은 드라마 찍느라 정신이 없어 개인 행동은 할 시간이 없겠지만, 이제부터 F4 멤버들은 어딜 가나 세상의 눈길에 시달릴텐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스스로 달라진 위상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충격도 만만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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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남자들은 대개 현재의 F4 중에서 외모로는 김현중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아무래도 이민호 쪽으로 몰리는 듯 합니다. 한국판 '꽃남'의 특징은 김현중이 연기하는 윤지후(하나자와 루이) 캐릭터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윤지후는 원작이나 일본판 드라마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인물이더군요. 김현중이 '야심만만'에서 "친구의 애인이건 뭐건, 마음에 들면 일단 대시하고 본다"고 말했듯 극중의 윤지후도 금잔디에게 서슴없이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김현중의 연기력도 그만큼 뒷받침이 되어야겠죠. 물론 연기가 태어나서 처음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재 하고 있는 것도 대견하긴 합니다만, 회를 거듭하면서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에 대한 글



김현중과 이민호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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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쇼! 비디오자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이때가 바로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였습니다.

지금도 '개그콘서트'나 '웃찾사'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지 않느냐구요? 몇해 전 '개그콘서트' 초창기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지 않았냐구요? 그건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당시 '쇼! 비디오자키'의 인기는 지금의 '개그콘서트'와 '패밀리가 떴다'를 합쳐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쇼! 비디오자키'에서 유행어가 하나 뜨면 그게 전 사회의 유행어였죠. 매주 화요일에 방송되던 '쇼! 비디오자키'를 보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사람들의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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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김형곤 최양락 이봉원 장두석 심형래는 정말 최고의 스타들이었습니다. 오프닝 코너로 는 임하룡과 김정식의 '도시의 천사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쉰옥수수' 임하룡과 '밥풀떼기' 김정식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뒤에 서 있던 양종철 서원섭 조문식 등의 모습도 말입니다.

이 프로그램 전성기에는 "오! 신이시여!"를 외치던 최양락이 네로, 임미숙이 황후 날라리아 역으로 나오는 '네로 25시'가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조연들도 엄청난 인기였죠. 못된 메기테리우스 이상운, 평소에는 강직하기 그지없다가도 술만 먹으면 호스테스 버전으로 급변신하던 페트로니우스 정명재, 항상 강직하게 옳은 말만 하다가 네로에게 학대를 당하던 당돌리우스 엄용수, 이상한 캐릭터의 쌍벽이었던 얼떨리우스 하상훈과 헷갈리우스 김용, 그리고 발바리우스 이경래 등이 바로 '네로25시의 주역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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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네로 25시'에는 세계 코미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로 '침묵리우스' 손경수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합니다. 가끔 네로가 부르기는 하죠. '침묵리우스'라고.

최양락은 얼마 전 그런 캐릭터를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고 언급하면서 "심지어 대사 한마디 없던 침묵리우스까지도 CF를 두 개나 할 수 있게 해 줬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쇼! 비디오 자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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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흘러가던 '쇼! 비디오 자키'의 마무리는 김한국-김미화의 '쓰리랑 부부'였습니다. 물론 여기에 국악인 '북치는 소녀' 신영희씨와 강아지 행국이, 그리고 '지씨 조이너' 지영옥이 가세해야 완벽한 팀이 만들어지죠. 최근 예능 활동을 재개한 김한국이 "그때 사실 김미화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행국이는 단 한번도 같은 개가 두번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놔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펭귄 심형래와 곰 박승대의 '동물의 왕국', 이봉원-장두석의 '시커먼스', 이경래-이경옥의 '달빛 소나타' 등이 '쇼! 비디오자키'를 빛낸 코너들입니다.

이 '쇼! 비디오자키'와 함께 주말에 방송되던 '유머 1번지'는 김형곤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들이 돋보였습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가 있었고, 심형래 임하룡의 '변방의 북소리', 그리고 김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작그만'이 역시 최고의 인기 코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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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사이에 당시의 주역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김형곤과 양종철은 고인이 됐고 김정식은 종교에 투신했죠. 임하룡은 영화배우가 됐고 심형래는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이 시대의 주역 중 가장 오래 코미디를 지킨 김미화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했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장두석이 오랜 명상을 끊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고, 김한국 김학래 최양락 이봉원 등이 이제 예능계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현재를 지배하는 유재석-강호동 중심 체제에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일단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접어드는 이들이 미리 잘 짜여진 콩트보다는 순간적인 순발력을 중시하는 최근의 예능 동향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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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워낙 얘깃거리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노장들인 만큼 한 6개월 정도는 왕년의 추억담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들을 잘 모르는 신세대 연예인들과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상황이죠. 오래된 얘기거리를 털어내고, 이제 이들이 신진급 연예인들과 마주하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됐을 때, 과연 이들은 무엇을 무기로 계속 자신의 가치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일단 새로운 분위기에의 적응력 면에서는 최양락의 실력을 믿어도 충분할 듯 합니다. 최양락은 최근까지도 예능 프로그램의 물길을 자기 쪽으로 돌린 적이 있었죠. 바로 몇년 전 불같이 일어났던 '알까기 열풍'입니다. 어떤 사전 맥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원로기사 윤기현 9단의 말투를 흉내낸 느릿느릿한 바둑 해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런 기량을 보여준 최양락이기 때문에 '감'을 찾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최양락에게 '복귀'라는 말을 쓰는 것은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라디오에서는 발군의 진행 솜씨를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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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것은 협력체제입니다. 현재의 예능계는 독불장군이 살아남기 힘든 형태입니다. 유라인과 강라인은 물론이고 대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윤종신-신정환-김구라-김국진의 라디오 스타 팀, 또는 송은이-신봉선의 패키지를 보듯 팀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라인의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그럼 과연 최양락의 곁에는 누가 있게 될까요?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입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왕년에 잘 나갔던 노장들'만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상당한 약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지금은 강호동이 살짝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은 쪽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노장 노장 하지만 최양락은 1962년생. 이경규보다 2년 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비교하면 최화정과 황신혜의 사이에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나이입니다. 모처럼 노장들의 성공적인 행진이 오래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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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흥행의 최대 강적은 일단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영화 속에서는 슈타펜버그라는 미국식 발음으로 나옵니다. 앞으론 슈타펜버그로 통일합니다)의 음모가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슈타펜버그와 그밖의 음모가들이 꾸민 1944년 7월20일의 히틀러 암살과 쿠데타 시도가 실패했다는 건 모르더라도, 히틀러가 베를린 함락 직전인 1945년 4월30일 벙커에서 정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는 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죠. 정확한 날짜까진 모르더라도 최소한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미 이 영화의 결말은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경우는 한둘이 아닙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고 트로이에서 아킬레스와 파리스가 모두 죽는다는 것 역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최근들어 줄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이런 영화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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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작전명 발키리'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먼저 줄거리입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왼쪽 눈과 오른손, 왼손의 손가락 2개를 잃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은 승전의 가망은 없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를 지켜보던 폰 트레스코프 장군(케니스 브라나)과 노장 벡(테렌스 스탬프) 등 반 히틀러 음모가들은 대령을 실제 작전 책임자로 영입하죠.

이들은 베를린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예비군이 베를린 지역을 계엄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발키리(발퀴레) 계획을 이용, 히틀러를 암살한 뒤 베를린을 접수하고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꾸밉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현장에서의 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틀어지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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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슈타펜버그 이전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히틀러도 암살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계획을 변경했고 자신의 동선을 쉽게 눈치채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위협을 뚫고 히틀러 암살 직전까지 갔던 1944년 7월20일의 음모는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만약 이들의 거사가 성공했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겠죠. 독일이 아직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서 나치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부가 휴전 협상에 들어갔다면 최소한 동서 분단은 막을 수 있었을테고, 냉전시대의 양상도 상당히 크게 변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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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유럽에서의 전쟁을 마감하고 태평양 쪽으로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게다가 전후에 세워진 독일 정권을 공산주의의 서진을 막는 보루로 이용한다면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는 휴전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히틀러를 보호했고 수많은 위험을 넘어 살아남은 히틀러는 결국 조국을 미국과 러시아군의 발길 아래 짓밟히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9개월 동안 독일 전토는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고 나라는 44년 동안 분단되는 고통을 맛보게 됐죠. 지금도 부강한 독일을 보면 그게 그거랄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 70년대의 시각에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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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 반드시 흥미로운 사건이란 법은 없죠. 더구나 이런 음모와 모의는 대개 담배 연기 속에서 남자들끼리의 은밀한 대화로 이뤄집니다. 스크린을 채울만한 볼거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엑스맨' 시리즈를 만든 흥행의 귀재 브라이언 싱어가 이걸 모를 리는 없죠. 당초 싱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앞부분의 아프리카 전투 신도 없는, 저예산의 암울한 영화였지만 톰 크루즈가 스타펜버그 역에 관심을 느끼면서 규모가 갑자기 커져 버린 영홥니다. 그런데도 흥행에서도 제법 성공을 거뒀죠.

싱어는 다 아는 결말 대신, 음모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좌절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의 영상이 보여준 것은 쿠데타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분쇄되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쿠데타를 통해 본 인간의 단면'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군들과 장교들은 총 대신 전화기를 붙잡고 전투를 벌이지만, 이 전투는 직접 몸을 날리는 싸움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박진감을 제공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영화도 있습니다.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모든 영화가 방 하나 안에 앉은 12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하지만 결코 정적인 영화가 아니죠.) 그런 면에서 싱어는 자신의 재능을 다시 과시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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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작전명 발키리'의 운명은 관객이 이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매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 관객들은 미국 관객들에 비해 이 영화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제5공화국' 드라마를 한국 아닌 다른 나라 국민들이 재미있어 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예상을 뒤엎고 흥행에서도 꽤 성공한 것은 당연히 톰 크루즈의 힘일 겁니다. 슈타펜버그의 유족들은 "키가 너무 작다"며 불평했다지만 타고난 닮은 얼굴에 힘입어 크루즈는 배우로서 할만큼 했습니다. 아마도 목표로 했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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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의 매력은 아무래도 쿠데타라는 작업의 현실적인 묘사죠.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30대 이상의 한국 남성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를 광경은 바로 12.12일 겁니다. 어느 나라나 쿠데타라는 것이 일어나는 과정은 비슷합니다.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음모를 탐지해 방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어느 쪽에 가담하는 것이 좋을까 저울질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음모를 눈치챈 사람의 수에 비해 적극적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람이 항상 부족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누구라도 음모를 꾸미는 쪽이나 막으려는 쪽에 적극 가담하기 보다는, 음모의 결과에 관계없이 살아남는 쪽을 우선 선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냉엄한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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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정경이 매우 친숙합니다. 이미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두 차례 모두 쿠데타를 주도한 장군들은 대단히 관대했습니다. 쿠데타에 맞섰던 장군들 중 끝까지 항거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 걸 보면 말입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어쩌면 그 '항거'의 진실성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5.16 때에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까지도 '긴가민가'한 태도로 일관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작전명 발키리'의 홍보 담당자들이 왜 한국인에게 친숙한 5.16이나 12.12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초기에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영웅' 톰 크루즈가 나타나 나치의 잔당들을 쓸어 버리는 활극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관객들은 영화의 수준에 대대적인 실망을 했을테고 최악의 입소문이 돌았겠죠.

톰 크루즈를 한국에까지 데려온 것으로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했다고 판단했다면 참 안이한 생각입니다. 5.16이나 12.12를 마케팅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영화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좋은 편'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는 '나쁜 편'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상의 논의가 지루한 분이라면, '작전명 발키리'는 전혀 볼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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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7월20일의 음모로 인한 가장 유명한 피해자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원수(위 사진)일 겁니다. 롬멜이 이 음모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음모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롬멜의 유족들은 롬멜이 "이렇게 히틀러를 해치우면 전쟁을 끝내더라도 '내부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이길수 있는(!) 전쟁에서 패했다'고 주장하는 히틀러 광신도들로부터 역습을 당해 반역자로 몰릴 것"이라는 이유로 가담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독일은 1차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내부의 적 때문에 패할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우매한 군중의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히틀러는 1944년 10월14일 롬멜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공개 재판으로 가면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자살하면 전쟁 영웅의 지위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밀약이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에는 '혹시 롬멜일 지도 모르는' 장군이 아프리카 신에 등장했다가 죽을 뿐, 롬멜이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유명한 장군이 등장하면 주인공 슈타펜버그에게 몰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p.s.2. 잘 알려진대로 발키리(Valkyrie)는 북구 신화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혼을 천국 발할라로 인도하는 여신들입니다. 전통적으로 바그너 악극의 제목인 '발퀴레'라는 표기로 알려졌죠. 이를 굳이 '발키리'라고 쓴 건, 스타크래프트 유닛 이름을 사용해서 10-20대 관객들을 끌어들이려는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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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들을 발표됐습니다. 올해는 좀 특별한 해였죠. 작품상, 남녀 주연상 후보보다 남우조연상 후보가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 후보, 안젤리나 졸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간 것도 흥미로웠지만 히스 레저라는 이름이 올라가기를 기대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죠.

'다크 나이트'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히스 레저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주연상 후보래도 뭐 크게 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조연상 후보로 올라가는 쪽이 수상 가능성이 훨씬 높은 편이죠.

이미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히스 레저가 과연 오스카에서도 사상 두번째로 사후 수상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이지만 오스카라는 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픈 예측은 금물입니다. 일단 사후 수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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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후수상

1993년 3월 8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상인 세자르상 시상식장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 수상작으로 시릴 콜라르가 감독·주연한 영화 '사베지 나이트(Les Nuits Fauves)'가 호명됐다. 하지만 콜라르는 금빛 세자르상 트로피에 키스하지 못했다. 에이즈에 걸려 있던 콜라르는 시상식 3일 전 병원에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12일(한국시간) 열린 2009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도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명성을 떨친 히스 레저가 극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수상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동성애자 연기로 2006년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나이답잖게 연기파 배우의 명성을 쌓아온 레저는 영화가 개봉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1월, 29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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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상의 결과에 따라 레저의 팬들은 '32년 만의 오스카 사후 수상'이라는 기대에 한껏 차 있다. 아카데미상의 80년 역사에서 사후에 연기상을 받은 인물은 1977년 '네트워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터 핀치 단 한 명뿐이다.

영원한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은 55년 사망한 뒤 이듬해엔 '에덴의 동쪽'으로, 57년엔 '자이언트'로 두 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다. 스펜서 트레이시(68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 랄프 리처드슨(85년 '그레이스토크'), 마시모 트로이지(96년 '일 포스티노') 등 일세를 풍미한 명배우들도 후보에 그쳤다. 그만치 생과 사의 벽은 높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사후 수상이란 매우 감동적인 이벤트다. 불의의 사고사든, 예고된 죽음이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불사른 위대한 장인에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이기도 하다. 물론 분야에 따라 경우가 다를 수 있다. 무공훈장이라면 생존한 수상자보다 사망한 수상자가 더 많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반면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인물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감정의 개입 없이 오로지 업적으로만 엄격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오스카상도 지금까지는 '망자에게는 공로상, 산 배우에게는 연기상'이란 원칙에 비교적 충실해 왔다. 역대 최고의 악역 연기라는 평가를 얻었던 히스 레저는 원칙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음 달 23일의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결과가 기대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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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베지 나이트'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국내에 공개됐던 이 영화는 에이즈 감염자인 남자와, 그 남자와 동침한 뒤에야 그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사랑과 좌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영화의 구상에 들어간 시릴 콜라르는 결국 죽기 전에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물론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사베지 나이트'를 보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인공들의 자기연민과 이기적인 행동에 도저히 동정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죠. 기억나는 건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콜라르의 모습 정도지만 세자르상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주고 콜라르를 기렸습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 보다는 좀 더 인정에 약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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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핀치의 '네트워크'는 미디어의 본질을 파헤친 문제작이었고, 어느날 갑자기 현대의 예언자가 되어 버린 핀치의 명연기는 상이 아깝지 않은 호연입니다. 저보다 몇년 윗 분들은 이 영화의 페이 더너웨이를 '지적인 미녀'의 대명사로 기억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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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수상이 이번만큼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마 제임스 딘의 사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주연한 영화라고는 단 3편. 그중 2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나머지 한 편은 '이유없는 반항'입니다) 이 배우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카데미는 이 배우에게 상을 주기를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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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에 올랐던 나머지 배우들도 모두 상을 탈만 했던 배우들이었죠. 남우주연상으로만 9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올라 이미 2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진 스펜서 트레이시는 마지막 후보작이었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세번째 수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당시의 인종 문제를 엿볼 수 있는 사회성있는 작품이었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오랜 연인이었죠) 부부의 중산층 백인 가정에 어느날 딸이 남자친구라며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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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리처드슨의 '그레이스토크'는 타잔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걷어 내고 '과연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실종돼 원숭이의 손에서 자란 청년이 런던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지켜본 작품입니다. 크리스토퍼 람베르가 이 영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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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는 '시네마천국' '지중해' 등과 함께 이 시기의 대중적인 유럽영화를 대표하던 작품입니다.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집배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죠. 집배원 역을 맡았던 트로이지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도 동시에 올랐으나 결국 수상엔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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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해 히스 레저와 경쟁할 후보들은 '밀크'의 조쉬 브롤린, '트로픽 선더'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다우트'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그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논입니다. 본 작품은 아직 '다크 나이트'와 '트로픽 선더' 뿐인데 다우니의 후보 지명은 좀 많이 의외군요.^

과연 이들과의 경쟁에서 레저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시상식은 다음달 23일(한국시간), 전체 수상 후보는 http://www.imdb.com/features/rto/2009/oscars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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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영화 '적벽대전 2'가 실망스럽다는 글을 올렸더니 예상대로 불쾌하다는 반응이 제법 있더군요. 물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도 꽤 있을 겁니다. 1편은 국내에서 15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뭐 영화 한편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거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대부'보다 '트와일라잇'이 훨씬 더 감동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뭐든 민주주의가 통하지는 않습니다. CG를 많이 쓴게 공통점이라고 해서 '반지의 제왕'과 '디 워'가 비슷하게 평가받는다면 그 또한 서운해 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문득 '적벽대전'과 '트로이'가 겹쳐지면서 영화가 원작을 제대로 살렸네, 원작을 망쳤네 하는 논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원작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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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벽대전

미모를 재는 단위가 있을까. 참 할 일도 없었다 싶지만 어느 시대인가 서양 지식인들은 헬렌(Helen)이란 단위를 만들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이 트로이의 파리스와 함께 사라지자 그리스 전역에서 1000척의 대함대가 동원되어 구출에 나섰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만약 한 미녀가 1척의 배를 동원했다면 1밀리헬렌급의 미모로 인정된다. 즉, 1헬렌=1000밀리헬렌이다.

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구상은 동양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주유를 흥분시키기 위해 조조가 강동의 유명한 미녀인 교씨 자매를 얻으려 동오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속인다. 교씨 자매의 언니인 대교는 동오의 군주 손권의 형수요, 동생인 소교는 주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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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이 구상이 제갈량의 계략이었지만 오우삼(吳宇森) 감독은 아예 이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 '적벽대전' 1, 2편을 만들었다. '영웅본색'으로 유명한 오감독은 방대한 적벽대전 이야기를 2편의 영화로 나눠 1편은 지난해 여름, 그리고 2편은 지난 22일 공개했다.

아킬레스와 헥토르가 헬렌을 두고 격돌하듯 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소교를 두고 조조와 주유가 대립한다. 소설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는 소교가 영화에선 양측의 진영을 오가며 전쟁의 승부를 좌우하고, 영웅들의 피와 땀은 멜로드라마 속으로 슬쩍 가려진다.

애당초 삼국지라는 원작에 무지할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니 오히려 서구인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이해가 더 빠를 법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가 10대 이후 삼국지의 문화적 영향 속에서 성장하는 동아시아 남성 관객들에게는 원작의 향취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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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비판은 유명한 원작을 둔 영화라면 반드시 거치는 원죄에 해당한다. 1956년 오드리 헵번 주연의 '전쟁과 평화'가 개봉됐을 때에도 미국 평론가들은 일제히 “제작진을 통틀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헨리 폰다뿐인 것 같다”며 비난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독자들의 관심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 양쪽에 모두 고무적이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언젠가 원작의 훼손과 관련된 논란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다. 2004년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가 개봉됐을 때, 아킬레스의 죽음이 거론된 영화평을 두고 네티즌들로부터 “왜 결말을 공개하느냐”는 항의가 줄을 이은 적이 있었다. 고전이 사라진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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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헬렌과 밀리헬렌 이야기는 2년 전쯤 다른 글을 쓸 때 써먹은 적이 있어서 약간 찔리지만, '분수대'에는 어차피 처음 나오는 이야기일 것 같아 다시 울궈 먹었습니다. 아무튼 저런 것까지 단위를 만들어 재고 싶어 했다는 데서 서구 합리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합니다. 적벽대전에 동원된 조조의 배가 몇 척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우삼의 해석대로라면 소교는 한 0.3 헬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고 욕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어떤 원작도 화면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재현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좋은 재현'과 '나쁜 재현'이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재현일까요. 당연히 이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각자가 생각하는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린 것이 좋은 재현일 겁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짜장면에는 짜장과 돼지고기, 양파와 국수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짜장면을 창조적으로 재해석 한다 해도, 어쨌든 짜장과 국수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짜장과 밥을 버무려 놓고 이것이 새로운 짜장면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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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본래 객관화되기 힘든 것인 터라, 유명한 원작을 갖고 만든 드라마나 영화는 어쨌든 원작을 훼손했다(즉 망쳤다)는 주장에 거의 항상 맞닥뜨리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처럼 호평받는 각색이라도 "왜 봄바딜이 안 나와!" 수준의 교조적인 애독자도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도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은 원작을 읽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이런 추세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원작이라는 걸 왜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늘고 있죠.

윗글에서는 영화 '트로이' 때의 코믹한 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디즈니 시대 이후에 성장한 세대 가운데에는 '인어공주'가 본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영화 '발퀴레'에서 톰 크루즈가 실패한다는 것도 스포일러요(네.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걸 모르셨군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진다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참 암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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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지만 소교를 이용한 적벽대전의 전개 자체는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퍽퍽해 질 수 있는 적벽대전 이야기에 양념으로는 매우 좋은 선택이죠. 특히 소교 역할을 임지령 같은 미녀가 맡는 한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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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생각보다는 꽤 나이가 있는 편입니다. 물론 잘 늙지 않는 중국 미녀들의 전통을 이어 영화에서는 아직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왕년의 헬렌(헬레네)들과 비교해볼까요.

사상 최악의 헬레네로 거론됐던 다이안 크루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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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판 '헬렌 오브 트로이'의 시에나 길로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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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헬렌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5년작 영화 '헬렌 오브 트로이'의 로사나 포데스타(Rossana Podesta)입니다. '율리시즈' 등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영화에 자주 얼굴이 나왔던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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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80년대, 난데없이 '원 플러스 식스'라는 희한한 이탈리아제 섹스 코미디로 나이든 모습을 보여 기억하는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던 배우죠.

임지령도 부디 '적벽대전'을 통해 월드 스타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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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대작 사극을 볼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전쟁에 대한 개념이 있는 전쟁신'입니다. 이 부분에서 '적벽대전 2'는 초실망작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전쟁신을 다시 보게 될까요. 이 이야기는 따로 하겠습니다.





'적벽대전2'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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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이 설 연휴를 맞아 개봉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1편은 형주를 차지한 조조가 마침내 장강을 건너 동오까지 평정하려는 각오를 품고, 오의 손권은 유비와 제갈양의 협력을 얻어 조조와 맞서 싸우기로 하는 데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2편. 동시에 촬영된 영화긴 하지만 2편을 보고 나니 1편에 쏟아진 비판을 상당히 의식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두 편을 합치면 5시간 가까이 되는 대작이니 그 긴 작품을 통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만약 두 편을 한번에 연결해 보시는 분이 있다면 '이거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더군요.

1편과 2편을 모두 본 뒤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어떤 판본이든, 3번 이상 읽은 분이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모든 기대는 집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꽤 일치하지만, 이건 여러분이 알고 계신 삼국지와 적벽대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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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적벽대전 2'는 장강 북쪽 조조(장풍의)의 진영에 침투한 손상향(조미)의 간첩 활약상에서 시작합니다. 조조는 전염병 작전을 통해 상대 연합군의 와해를 노리고 마침내 견디다 못한 유비는 전군을 거느리고 후퇴해 동맹이 깨져 버립니다. 하지만 제갈양(금성무)은 남아 주유(양조위)를 돕기로 하죠.

제갈양과 주유는 각기 지모를 발휘해 조조의 화살 10만개를 훔쳐오고, 또 조조의 수군 도독인 채모와 장윤을 제거해 싸울 준비를 갖춥니다. 하지만 여전한 병력 열세. 중과부적을 극복하려면 화공뿐이지만 때는 겨울. 동남풍이 없어 화공이 곤란해 질 때 소교(임지령)는 조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강북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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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설 삼국지연의를 알고 계신 분들. 이 스토리를 보고 나면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 나오지 않습니까? 요즘 '꽃보다 남자'를 보고 발가락이 오그라든다는 분들이 꽤 있는데 오우삼이 망가뜨려 놓은 적벽대전 스토리를 보면 손발이 다 꼬이는 듯 합니다.

각색자의 권리도 다 좋습니다. 뭐 소교를 이용해 적벽대전을 트로이 전쟁처럼 만들어 버린 것도 그럴 수 있다 칩시다. 하지만 어느 정도라야죠.

1편에서 어이없이 유비와 손권이 합동사령부를 차려 놓고 조자룡과 감녕을 절친으로 만들더니 스스로 만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갑자기 유비를 비겁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우삼이 만든 스토리대로라면 유비는 갈 곳이 없습니다. 유비가 전염병이 싫어 후퇴한다면 대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동오의 후방인 더 동쪽? 손권이 함께 싸우기 싫다는 동맹군을 자기 진영의 후방으로 가도록 허용한단 말입니까? 애당초 원작대로 유비의 위치를 조조의 측면 후방, 즉 유사시에 조조를 협공할 수 있는 지역으로 지정해 뒀다면 이런 바보같은 진행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누구나 알고 있듯 적벽대전의 시점은 한겨울입니다. 북서풍이 불고 있는 철이죠. 영화 속에서도 동지떡을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동지때는 전염병이 돌아 수만 장병이 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아닙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의상은 대부분 겨울옷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북서풍이 불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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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오우삼이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3세 이상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주 유치한 수준의 반전의식이죠. 손상향은 조조군에 침투해 있는 사이 아무 생각 없는 조조군 병사와 친구가 됩니다. 이 병사에게 전쟁과 군대란 굶주리는 고향 집에서 입을 덜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누가 이기건 지건 그건 아무 상관 없는 일이죠.

이런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서 너무나 저열하고 전형적일 뿐만 아니라, 수십만 군사의 몰살을 그려내는 오우삼의 얄팍한 자기합리화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즉 '내가 이런 대살육을 그려내면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는 하지만,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니야'라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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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의 인물과 줄거리는 1편에 이어 최악입니다. 행동에 아무런 개연성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은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그저 멋지게 보여 살아남기 위해 헛웃음 나오는 오버액션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장풍의의 카리스마로도, 양조위의 우수 어린 눈빛으로도 이런 한심한 캐릭터들을 살려내지는 못합니다.

그나마 평가할만한 부분은 전투신입니다. 물론 모든 전투신은 아닙니다. 그 중 딱 한장면, 화공이 시작되어 조조의 함대를 불사르는 장면이 유일하게 박진감을 넘치게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전체를 보여주는 부감 신이 거의 나오지 않아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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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전투신들은 지금까지 본 오만 전쟁영화들의 허술한 짜깁기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트로이'가 시시각가으로 화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역시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대체 왜 적벽대전에서 공성전이 펼쳐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아무 전쟁이나 닥치는대로 갖다 붙였다는 것이 너무 선명합니다. 이 시대의 중국군이 로마 군단의 대표적인 전술인 테스튜도(Testudo)를 사용하는 걸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테스튜도는 라틴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며 로마군이 사용하던 큰 직사각형 방패를 사용해 하나의 방진을 탱크처럼 만드는 전술입니다.

바로 아래 사진 같은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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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 정도도 그 사이 사이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만화적인 장면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조조의 인질극 신은 정말 목불인견입니다.

삼국지 팬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오우삼은 적벽대전에서 본격적인 화공전 못잖게 중요한 순간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바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는 시점이죠. 소설에서 제갈양은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 도술의 힘으로 동남풍을 불게 하겠다며 멀리 강가에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립니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주유와 동오 대장들.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동남풍이 불 기색이 보이지 않자 욕설과 한탄이 나오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뀝니다. 경악의 외침 속에서 주유의 마음 속에서는 한가지 결단이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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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도 껄끄러운 라이벌로 여겨지던 제갈양이 이제 한 순간도 더 살려둘 수 없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는 것이죠. 원하던 바람을 얻은 이상 유비의 협조 없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확신이 생긴데다 이제부터 제갈양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은 비와 바람까지도 지배하는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빠른 판단이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다들 바뀐 바람의 방향을 기뻐하는 사이 주유는 수하 정예병을 보내 제갈양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오우삼은 어처구니없는 초등학생용 우정놀이 때문에 이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날려 버립니다. 아무튼 모든 걸 다 떠나서 한겨울(전염병 도는 한겨울!) 쌩쌩 불던 북서풍이 승리의 동남풍으로 바뀌는 순간,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박력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바뀐 바람의 방향'조차도 관객의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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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우삼은 "관객은 내가 잘 안다. 내가 아는 관객의 수준이라는 것은 그따위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고 봐라. 주유 역의 양조위만 멋지게 나오면 아무 문제 없을테니까"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일부 맞아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 중에는 '장대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호연'을 칭찬하는 내용도 꽤 많더군요. 또 양조위 - 금성무를 '꽃보다 남자'처럼 소비하는 관객들도 '적벽대전' 1, 2편에 만족을 표하곤 합니다. 취향은 제각각인게 당연하지만, 대체 뭘 봤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보셔도 좋고, 안 보셔도 좋습니다. 미리 마음의 다짐만 하고 가신다면 의외의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기대를 확 낮추고, 감독과 제작진의 실책을 비웃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할 수도 있거든요. 제가 걱정하는 건 '삼국지의 웅장한 모습이 제대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할 분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원작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별 관심 없는 분들은 보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대자면, 제발 이 영화를 보고 '삼국지를 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초등학교 극단이 공연한 '햄릿'을 보고 "뭐야,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더니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거나, 어린이들이 리코더로 연주하는 합창교향곡을 듣고 베토벤을 폄하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p.s. 글을 쓰고 나면 내용에 동의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이런건 너무 당연한 건데 꼭 써야 할까' 싶은 부분을 빼놓으면 거기에 대해 논의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더군요.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는 당연히 역사 자체가 아닙니다(물론 진수의 정사 삼국지 또한 부분적으로 그렇죠). 또 원작이나 역사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인물이며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이기도 하죠. (이런게 바로 너무 당연한 얘기기 때문에 생략되는 부분입니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1,2편이 비판을 받는 것은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이 원작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형편없음의 기준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죠. 감독이 애써 공들여 만든 영화를, 누군가는 재미있게 봤을 영화를 왜 네 맘대로 폄훼하냐는 분들, 그럼 대체 블로그라는건 뭐하러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난해 썼던 1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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