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끝납니다. 막판에 영 힘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아쉬워하는 분들이 꽤 많은 듯 합니다.

쉬운 퀴즈를 하나 내자면: '꽃남' 출연자 중에서 가장 출연료가 비쌌던 배우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이혜영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의 출연료가 가장 비쌀 것'이라는 드라마의 기본 원칙과 동떨어진 답이긴 합니다. 그만치 이번 '꽃남'은 신인들로 채워져 투자 대비 압도적인 효율을 기록했습니다. 주인공 F4는 물론이고 그 주변의 수많은 출연진이 모두 '꽃남 효과'를 누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럼 '꽃남' 출연을 통해 최고의 수혜를 누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개인적인 편견을 기준으로 했다는 걸 전제로 하고, 순위를 매겨 보겠습니다. 불만 있는 분은 오늘이라도 블로그를 개설하시고 자신의 순위를 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위=이민호

아마도 이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무슨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이민호 개인으로 보나, 드라마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나 최고의 소득은 이민호의 발굴입니다.

외모에 대해서는 굳이 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은근히 연기력(특히 코믹 연기에 대한 감각)을 요하는 구준표 역할을 이렇게 잘 소화해냈다는 건 정말 기대 이상의 소득일 겁니다. 어찌 보면 '인재는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낭중지추의 법칙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요즘 케이블TV로 재방송되는 '달려라 고등어'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민호의 스타성에는 큰 차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2위=김현중

사실 김현중이 1위라고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굳이 김현중이 2위인 것은 이 드라마 출연 직전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또 멀게는 SS501의 캡틴 역할을 통해 이미 만만찮은 스타덤이 형성돼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연기라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이만치 성과를 거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평가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아직 연기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5년, 6년씩 연기를 하고 있는 선배들 중에도 아직 용모에 연기력이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널려 있죠. 굳이 연기 첫 경험인 김현중에게만 냉랭하게 대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단지 용모와 재능만으로도 김현중은 윤지후를 충분히 빛냈고, 자신도 그 과실을 다 충분히 따 먹었습니다. SS501이 그로 인해 받은 후광까지 감안하면 '꽃남' 출연의 소득은 이민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위=이민정

일본 드라마를 참고한다면 이 역할은 전형적인 '치고 빠지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한국판 드라마에서는 4각 관계에 너무 깊이 빠져들다보니 이민정이 연기한 하재경의 비중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민정이 거둔 최대의 성과라면 쉬크해 보이는 외모와는 정 반대로 엉뚱한 성격인 하재경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평가를 얻은 것이죠. 두번째로는 도회적인 미모와는 달리 '수더분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덤으로 얻은 것입니다.

물론 배우로 갈 길은 아직 꽤 멉니다. 특히 '앵앵거리는' 목소리는 다른 역할을 맡는 데 있어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발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4위=김소은

'천추태후'와 '꽃남'의 동시 출연이 훌륭한 시너지가 된 경우입니다. 물론 앞으로 한동안 단독으로 주연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풋풋하고 상큼한 이미지는 '김소은'이라는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심는 데 큰 역할을 했죠.

김소은이 이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소이정-추가을 커플이 지금처럼 높은 지지를 얻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나이를 감안하면 아직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위=김준

F4의 나머지 두 멤버, 김준과 김범의 활약상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김범의 극중 비중이 훨씬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이익'을 따지자면 김준을 더 위로 놓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역시 이유는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드라마 출연 전까지 김준이 누군지, 티맥스가 누군지 알던 사람들은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의 위치를 보면 김준이 얻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보게 됩니다.

또 김준은 당당한 F4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F3에 비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동정표의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F3가 모두 여성 상대역과의 신이 있고,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하는 신마저 얼마 안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김준에게 쏟아진 많은 관심과 격려는 모두 그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앞날은 그 하기에 달렸지만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6위=이시영

사실 효과로만 본다면 김소은보다는 이시영을 4위에 올려놓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명도의 상승이나 부수적으로 누리게 된 인기의 크기, 화제성 등을 감안할 때 이시영이 얻은 것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시영의 현재 지위는 '꽃남'에 출연함으로써 얻은 것이라기보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의 엉뚱한 모습, 또 인터뷰 과정에서 보여진 오다쿠(?)적인 면모가 화제를 촉발시킨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단계 아래로 뒀습니다. 어쨌든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꽃남'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을테니 이 정도 대접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위=김범

물론 김범 역시 이 드라마의 수혜자입니다. 단지 7위까지 밀려 온 것은, 당초 이 드라마를 통해 김범이 얻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 것에 비해 다른 젊은 배우들이 훨씬 잘 치고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꽃남'이란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 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에덴의 동쪽'의 김범이었습니다. 그만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연기력을 일찌감치 평가받은 것이죠. 그에 비해 '꽃남'의 소이정 역할을 연기하는 김범의 모습은 어쩐지 살짝 어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바람둥이 역할이 좀 불편한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금까지 거론된 모든 배우들 중에서 연기자로서의 강점을 생각하면 김범을 최우선으로 놓는 데 별로 주저하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소년이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할 김범의 모습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할 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밖의 출연진들 가운데 '꽃남' 출연으로 굳이 뭔가를 얻었다고 할 만한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부모 세대의 연기자들 가운데서도 그렇고,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올라 있는 구혜선이나 박지빈이 특별이 뭔가 소득을 얻었다고 보기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너무 상식적인 순위일까요? 여러분의 순위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결산에 맞춰 그동안 '꽃보다 남자'에 대해 썼던 글들을 대략 모아 봤습니다.

이민호의 정체(?)에 대한 글
 

그 시리즈로 김범의 실상에 대한 글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728x90
김연아의 정상 도전이 한껏 끓어올랐던 WBC의 분위기를 쫙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지만, 아직 WBC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하는 얘기지만,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일전에서 패하고도 이렇게 성원을 받은 것은 2009 WBC 대표팀 외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한-일전에서 지고도 박수갈채를 받게 했을까요. 문득 또 다른 도전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고 나서도 퉁퉁 부은 눈으로 "에이드리언!"이라고 외치던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척 웨프너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도전자

1975년 3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의 링에 오른 무하마드 알리는 도전자인 척 웨프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5개월 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무적의 철권 조지 포먼을 꺾고 WBA·WBC 통합 챔피언에 오른 알리가 36세의 한물간 백인 복서 앞에서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누구도 도전자가 3라운드 이상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웨프너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5회를 넘겼다. 심지어 9회에는 알리를 다운시키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한 알리는 전력을 다해 웨프너를 맹폭했지만 도전자는 양 눈 위가 찢겨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번번이 되살아났다. 마침내 15회, 경기 종료 19초를 남겨 두고 알리의 TKO승이 선언됐지만 관중은 오히려 웨프너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왠지 낯익은 이야기인 게 당연하다. 무명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 경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순식간에 시나리오를 썼고, 그가 직접 주연한 영화 ‘록키’는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따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록키’에는 그때까지의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공 록키는 15라운드의 혈투가 끝난 뒤에도 자신이 이겼는지 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단지 무적의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런 도전자 록키의 순수한 열정은 30여 년간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웨프너의 투혼이 빛난 지 정확하게 34년 만인 지난 3월 24일, LA 다저스 구장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열렸다. 알리와 차이가 있다면 지난 대회 챔피언인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것. 하지만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과 2승2패로 균형을 이뤘고, 결승에선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명승부로 전 세계 야구 팬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어느 종목이건 일본과의 대결에서 지고도 이처럼 갈채를 받은 것은 아마도 이번 야구 대표팀이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선수들의 도전자 정신이 빛났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리는 산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영화 ‘록키’의 마지막 장면. 15라운드의 사투 끝에 기진맥진한 챔피언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내뱉는다. “다시는 너와 붙고 싶지 않아(Ain’t gonna be no rematch).” 아마도 WBC 결승에 임했던 일본 선수들의 심정도 딱 이랬을 터. 이렇게 챔피언의 진을 빼놓는 도전자라면, 이기든 지든 박수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제의 대결이 벌어지게 된 건, 아무래도 '1차 방어전은 손쉬운 상대로 가자'는 생각의 반영일 겁니다. 척 웨프너의 당시 전적인 30승 9패. 한때 켄 노튼과도 싸워 본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졌고, 그는 복서 인생 내내 보디가드와 주류 세일즈맨으로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복싱 훈련을 시작한 것은 '알리와의 타이틀전이 잡힌 뒤'였다는군요.

알리의 파이트머니는 150만불(당시로선 대단히 큰 돈이죠.^)인데 비해 웨프너는 10만불. 하지만 웨프너는 '지금까지 뭘 해서 번 돈보다 많다'며 대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웨프너가 훈련을 하건 뭘 하건, 알리 쪽은 신나게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를 백인으로 고른 것이 얼마나 흥행에 탁월한 선택이었나를 자찬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록키가 아폴로와의 경기를 앞두고 아내에게 하는 유명한 대사, "내가 15회가 끝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있으면 그건 내가 건달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도 실제로 웨프너가 아내에게 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을 스탤론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웨프너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웨프너는 나중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스토리를 도용했다'며 스탤론을 고소하기 때문이죠. 결국 스탤론은 알려지지 않은 액수의 돈을 주고 웨프너와 화해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웨프너의 예상 밖 선전은 위에 쓴 바와 같습니다. 문제는 9회 알리를 다운시켰을 때. 자신의 코너로 돌아온 웨프너는 세컨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웨프너: 봤어? 내가 다운시킨거?
세컨: 그래. 그런데 저 사람 진짜 뚜껑 열린 거 같은데.

한마디로 10회부터 14회까지 웨프너는 '샌드백처럼 맞았다'고 합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알리가 얼마나 KO를 노렸을지는 안 봐도 알만 하죠. 결국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알리는 TKO 승을 거둡니다.

알리와의 대전이 웨프너에게 유명인의 자리를 줬지만 그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링에 올랐지만 다시는 유명 선수와 붙지도 못했고, 나중에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친선경기(이종격투기가 없던 시절이라...)를 벌이는 등 그저 그런 일거리들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어진 듯 합니다.

웨프너의 인생을 바꾼 일전과 WBC 결승 한-일전의 날짜가 같다는 건 참 묘한 인연인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9회말 이범호의 동점타가 터졌을 때의 환희는 승리나 다름없더군요. 엄밀히 말해 이날 경기는 이미 져 있는 경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대 5라는 안타 수에서도 보듯 일본은 수없이 많은 찬스를 날려 버렸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꼬여도 정말 더럽게 꼬이는' 경기였죠. 반면 한국은 얼마 되지 않는 찬스를 모두 살려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운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전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봉중근, 정현욱, 임창용이 모두 조금씩 불안했지만 바꾸지 않은 것은, 구위 면에서 이들보다 나은 투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양팀간의 전력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네번째 대결, 2라운드 1-2위 결정전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여유 전력을 가동한 경기였죠. 한국은 장원삼 임태훈 등 대표팀 내의 2진 투수들을 냈고, 일본 역시 그동안 가동하지 않던 투수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대표팀 내) 2진 경기에선 일본이 압승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승패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선수 층의 두터움에서 일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던 거죠.

게다가 한국이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 등 베테랑이 빠진 팀이긴 했지만 일본은 이번 대표팀 정도의 팀을 두 팀 이상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야구 저변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팀 안에서도 1진과 2진의 기량 차이가 있는 한국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뭐 김광현에 대한 그간의 분석과, 세번째 나온 봉중근에 대한 분석 등 정보파악과 분석력에서도 어쨌든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것 역시 인정할수밖에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대회에서 두 나라가 무려 다섯번의 대결을 벌이게 된 이번 대회의 진행 방식은,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극악무도한 대전방식이라고 지탄을 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다 야구 본연의 성격에 맞는, '진짜 강자가 이길 수 있는' 진행방식이기도 합니다. 야구란 서로를 알면 알수록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너먼트 방식의 약점을 극복하고 가능한 한 경기 수를 늘려서 같은 팀이 여러번 맞붙을수록 요행은 사라지고 실력에서 앞서는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게 하는 건 어찌 보면 현명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꽤 짜증이 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결승에서 그렇게 선전했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방심으로 러키 펀치를 터뜨린게 아니라, 승리에 대한 집념과 투지가 전력차를 밀어내 버린 경기였다는 거죠. 그래서 그토록 큰 감동과 박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록키'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위대한 패배'를 모티브로 삼아 크게 성공했죠. '쿨 러닝'에서 '우생순'까지 사례는 충분히 있습니다. 승리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가르쳐준 것이 '록키'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다른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지난 2주 동안, WBC가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온갖 환경이 모두 악화되어가는 가운데서도 연일 승전보를 터뜨려 주는 김인식사단이야말로 온 국민의 영웅 칭호를 받을만 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위대한 승리는 승리 그 자체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회 WBC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미국과의 대결,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더군요. "이봐, 지금 봤어? 미국이 한국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고 있다고!"

이런 감동적인 장면은 매일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대회만 거치고 나면 일본과 한국의 야구 환경 비교, 저변의 부족 등등이 시리즈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팬들은 할 일이 없을까요? 그래서 쓴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저변'은 공짜가 아니다

하라 다쓰노리. 현역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붙박이 4번 타자. 미남형 얼굴과 호쾌한 홈런포를 장착한 80년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스타 중 한명. 감독 데뷔 후에는 거인군을 세 차례나 센트럴리그 1위에 올려놓은 명장.

현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인 하라 감독의 얼굴에 이럴 수가 없다는 당혹이 스쳤다. 지난 24일 열린 WBC 결승 9회말, 2사 1,2루에서 이범호의 좌전적시타가 터져 스코어가 다시 3-3 동점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이렇게 또 한국에게 당하는구나' 하는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런 표정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한국 야구는 제몫을 했다. 결과는 한국의 석패로 끝났지만 '져도 이렇게만 지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국은 불타는 투지로 한사코 달아나려는 일본을 옭아맸다. 하지만 전력차는 분명히 느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은 한국이 따르지 못할 두터움을 갖고 있었고, 상대 전력을 분석하는 힘에서도 한 수 위였다. 일본을 상대로 세번째 등판하는 봉중근의 구질이 분석됐을 거란 사실은 한국 코칭스태프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대안은 없었다. 마쓰자카가 안되면 다르빗슈, 그래도 안되면 이와쿠마가 나오는 일본과는 달랐다.

이런 두터움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야구 팬은 없다. 그건 바로 저변의 차이다. 일본의 고교 야구 팀 수는 한국의 80배다. 동네마다 어린이들도 뛸 수 있는 야구장이 있다. 반면 출범 28년째의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흑자 구단 하나를 내놓지 못했고, 고교야구와 유소년 야구 팀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이런 저변을 말할 때마다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저변에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나 기업의 투자도 필요하지만, 팬들의 사랑 없는 생존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식물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돔 구장 하나 없는 한국 야구가 이만치 성장한 데에는 자기 돈으로 표를 사서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의 투자가 절대적인 힘이 됐다.

한데 가끔 공짜로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교야구가 열리는 경기장은 텅텅 비는데도 프로 야구의 젖줄인 학원 야구가 융성하기를 바라는 건 꿈일 뿐이다. 생전 콘서트 장 한번 가지 않고 음반 한 장 사지 않으면서 세계 수준의 싱어송라이터가 나오길 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서편제'나 '쉬리'에 한국 관객들의 사랑이 몰리지 않았다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들의 출현은 감히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건 대중문화건 스타들은 팬들의 사랑과 투자를 받아 자란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아무리 우수하다 한들 김연아와 박태환의 기적은 매번 일어나지 않는다. 스타의 출현을 기대한다면, 2013년 WBC의 우승을 꿈꾼다면 '팬으로서의 투자'를 시작하자. 기업이나 정부는 절로 따라올 것이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WBC가 끝나고 수많은 '앞으로 할 일' '일본을 넘어 정상에 서려면'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교야구 팀 수가 4천개가 넘고 한국은 60개도 안 되는데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아마 요즘 너무 많이 들어서 신물이 나실 겁니다. (물론 '야구 직업훈련원'화 되어 있는 한국의 고교야구가 일본의 고교야구만큼 건강하냐...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될 겁니다. 이런 얘기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혹시 관심있는 분은 2006년 WBC를 마쳤을 때 나왔던 이런 시리즈들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과연 그 중 바뀐 내용이 얼마나 있는지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거의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을 겁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투자는 이익이 있을 때 이뤄집니다. 지금까지의 야구에 대한 투자는 '모기업의 홈보'라는 차원에서만 이뤄져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팬들의 사랑이 아직 부족했는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야구건, 축구건, 한국 스포츠가 최정상에 오르는 데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김연아나 박태환도 물론 개인적으로는 공짜가 아니었지만, 팬들의 입장에선 어느날 맞아 떨어진 로또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천재들이 잇달아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말고, 팬들도 팬들로서의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온 국민이 보여주는 사랑이 시즌 내내 계속된다면, 무슨 변화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요. 8개 구단 중 가장 팬들의 사랑이 뜨거운 걸로 유명한 롯데에서부터 흑자 구단의 기미가 슬슬 보이는 걸 보면 말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참 많습니다만, 여러가지 사정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728x90






...고장이 좀 심하게 난 듯 합니다. 무리하지 말걸.

'블로그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on 18th  (52) 2009.06.19
한번 모일 때가 됐죠?  (71) 2009.06.12
옛말 틀린게 없죠.  (30) 2009.03.16
13명의 금요일  (62) 2009.03.07
천만돌파 스핑라간  (56) 2009.03.05
728x90
그동안 간혹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내용을 표방한 글들을 올리곤 했습니다. 여기서의 '인간답게'란 잘 먹고,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불행히도 그런 호사를 누린지가 꽤 됩니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날 지경입니다.

놀러 다니는 호사는 접어 두더라도 아쉬운대로 먹는 호사는 좀 누려 보려 하는데, 똑같은 걸 먹어도 서울 시내에서 먹으면 그 맛이 안 난다는게 참 불만입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냉면의 경우에는 오히려 서울 밖으로 나가면 제 맛을 내는 집을 발견하기 힘든게(남한에서 그렇다는 얘깁니다)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맛집들은 다 제 고장에 있을 때 제 맛을 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북에 냉면이 있다면 강원도에는 막국수가 있다 -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어 온 말입니다. 특히 춘천은 오래 전부터 막국수의 고장으로 유명했죠. 하지만 요즘 춘천에 가면 너무 천편일률적인 막국수 맛에 실망하기 십상입니다. 춘천이 소양호를 끼고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80년대에서 90년대 초 사이, 시내 막국수 집들의 맛이 전부 똑같아지더군요.

(물론 요즘은 또 달라졌을 수도 있겠죠? 춘천 주변 사시는 분들의 적극적인 반론 부탁드립니다. 그 10여년 사이에 새롭고 개성있는 막국수집들이 많이 등장해 호황을 누리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샘밭막국수처럼 이미 유명한 집 말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국수 종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냉면이든 막국수든, 맛만 좋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또 희한한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의 등장입니다.

제 기억으로 80년대까지 막국수집에 '물막국수, 비빔막국수'라는 메뉴의 구분은 없었습니다. 막국수면 막국수지 대체 물, 비빔이 무슨 소용?

물론 이건 편의에 따라 구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운 음식을 못 드시는 분들은 비빔막국수를 기피할 수 있고, 그런 분들을 위해 물막국수라는 메뉴가 따로 탄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막국수의 본령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막국수를 먹는 기본 방식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사진 자료와 함께 설명 들어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부분의 내력 있는 막국수집에는 이런 주전자가 있습니다.

물론 물주전자는 아닙니다. 당연히... 육수 주전자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시킨 막국수가 나옵니다. 당연히 이 집에는 막국수에 '물, 비빔'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냥 '막국수'를 시키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왜 두 덩이냐구요. 곱배기를 시킨 겁니다. (당연한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이 곱배기에 육수를 휙 부어 버립니다.

물론 너무 철철 넘치게 부으면 못 씁니다. 저는 국수 양의 1/2 - 2/3 정도가 잠길 정도 붓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다음에 양념을 육수와 함께 이렇게 휘딱 말아 먹는 겁니다.

맛있냐구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즉, 막국수란 본래 나온 양념에 육수를 부어서 잘박잘박하게 비벼 먹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맛있는 막국수를 드실 때에는 다음 조건을 지키시는 걸 권장합니다.

1. '물, 비빔'의 구분이 없는 집으로 간다.

원래 전통있는 막국수 맛집들은 이런 구분이 없죠. 하지만 요즘은 전국 최고의 인기 맛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서리 홍원막국수에 가도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다음 단계.

2. 구분이 있다면 무조건 비빔막국수를 시킨 뒤, '찬 육수 한사발'을 청한다.

(사실 냉면광들이 많이 쓰는 수법입니다. 처음 가는 냉면집을 갔을 때, 이 집이 비빔에 강한 집인지 물에 강한 집인지를 알 수 없다면 정석은 비빔냉면을 시키고, 따로 '찬 육수 한사발'을 요청하는 겁니다. 육수 맛을 보면 그 집의 물냉면 맛은 익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죠. 일부 주인들은 '한큐에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모두 맛보려는 잔꾀'라고 이런 행동을 미워하기도 합니다만.)

대개의 막국수집은 저런 요청을 받으면 육수를 주전자째로 갖다 주고, 아닌 경우라도 사발에 담아 줍니다. 이걸 갖고 인상을 쓴다던가, 눈살을 찌푸리는 집이 있다면 그 집은 막국수가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집입니다. 그런 집을 가서는 안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널리 소문내고, 망하게 해야 합니다.

비빔막국수를 시켜서 비빔냉면처럼 그냥 비벼 드시면 탈락입니다. 제대로 된 막국수집의 비빔막국수라면, 육수를 부어서 찰박찰박한 상태가 됐을 때 비빔 양념의 맛이 최고조로 올라와야 합니다.

3. 시킨대로 육수를 부어서 같이 비볐는데 이상하다! 이게 뭐야?

네.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집들이 가끔 있죠. 과감하게 '이따위 집은 다시는 안 온다'고 생각하시고, 주위에도 소문을 내십쇼. 어줍잖은 집들이 비빔냉면인지 막국수인지도 알 수 없는 요상한 물건들을 내놓고 막국수 전문 운운하는데, 그런 집들은 망해도 쌉니다. 막국수에 '막'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막 대하면 곤란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국수'가 야식으로 시켜 먹는 족발에 딸려 나오는, 원가도 의심스러운 '쟁반막국수' 나부랭이라는 건 화가 납니다. 고추장에 식초와 겨자를 푼 물에 말아먹는 이상한 국수를 막국수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건 왕년에 빈병을 모아 오면 강냉이 아저씨가 바꿔주던 진로 포도주와 샤토 마고를 같은 부류라고 쳐 버리는 만행입니다.



위의 먹는 법 사진에 나온 집은 을지로 4가 전철역 한켠에 숨어 있는 춘천막국수(일명 산골면옥, 2266-5409)입니다. 1972년 개업했다니 40년이 되어 가는 셈이죠. 한 입만 먹어 봐도 지금까지 드셔 본 막국수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쟁반막국수 따위에 길들여진 분들의 설태(혀 상태) 교정을 위한 방문을 권합니다.

이 집에 처음 가 본 게 벌써 20년이 넘었군요. 지금도 이 자극적이지 않은 토속적인 맛이 생각나면 한걸음에 달려가곤 합니다. 을지로 4가 전철역의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간판이 보입니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지만, 중요한 건 느낌입니다.




728x90

한국에서도 '퀴즈가 좋다'로 잘 알려진 포맷의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온 세계 만방에서 리메이크된 퀴즈쇼입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퀴즈 프로그램은 인도에서도 초절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자말이 도전하는 것이 바로 이 퀴즈쇼죠. 인도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Kaun Banega Crorepati'고 열 개의 문제를 연속으로 모두 맞추면 도달할 수 있는 상금은 2천만 루피(시작할 때에는 1천만 루피였다는군요)입니다. 1루피가 30원 정도 하니까 약 6억원인 셈입니다.

인도 갑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라고도 하지만 흔히 인도 서민의 한 가족 한달 생활비가 1000루피 정도라고들 하는데, 거기 비하면 정말 팔자 고칠 거액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의 제목대로 왕년에 그래도 각종 퀴즈쇼에 한 15회 정도 출연해 봤고, 지난해에는 퀴즈 프로그램도 하나 진행해 본 사람으로서 '퀴즈쇼 영화'로서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쓰는 글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 리뷰의 탈을 쓰고 있는 만큼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자라나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자말(데브 파텔)이 어느날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 쇼에 등장합니다.

('대체 퀴즈인이 뭐냐'는 질문이 나와서 약간 덧붙였습니다.)

퀴즈를 풀어나가는 동안 그의 어린 시절이 문제 풀이와 함께 조명됩니다. 형 살림과 함께 뭄바이 빈민가의 이슬람계 주민으로 살아온 자말은 어린 시절부터 온 몸으로 인도 사회의 모순을 경험합니다. 힌두-이슬람계 주민의 갈등 폭발로 어머니를 잃고, 어린이들을 이용한 앵벌이 조직에 속해 있기도 하고, 타지 마할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엉터리 가이드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역시 고아 소녀인 라티카(프리다 핀토)를 만나게 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쉽게 재회하게 하지 않습니다. 과연 자말은 라티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니 보일이 만든 이 영화의 위대성은 퀴즈라는 게임의 양식에 자말의 인생사와 급격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인도의 변화상을 한 사발에 제대로 풀어 넣어 관객이 한 방에 후루룩 마셔 버릴 수 있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플롯이 워낙 잘 되어 있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책을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 간편하게 '후루룩' 마실 수 있게 한 덕분에, 그 사발 속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고 들이키는 관객도 꽤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냥 마셨어도 맛만 있었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재료 각각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훨씬 더 음식 맛을 즐길 수 있었겠죠.

예를 들어 자말의 직장은 다국적 기업의 콜센터입니다. 영미권의 수많은 대기업들은 국내 고객들을 상대하는 콜센터도 인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건비가 싸고 영어 사용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이죠(한국 기업들의 콜센터도 상당수가 연변 지역에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건너에서 자신들의 컴플레인을 처리한다는 것은 고객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죠. 그래서 이들은 전화를 걸어 오는 고객들과 같은 지역에서 거주하는 척 하기 위해 '연기하는 법'까지도 교육을 받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정경이 꽤 실감나게 묘사됩니다만, 이런 정황을 모르는 분들은 '쟤네 뭐하는 거야?'라고 어물어물 넘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혹자는 뭄바이 시내에 쑥쑥 올라가고 있는 고층건물과 그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빈민가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니 보일의 시선을 향해 '세계화 속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평자가 대니 보일의 영화를 이 한편밖에 보지 않았다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최소한 '트레인스포팅'에 그려진 스코틀랜드만 봤더라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비치'에 그려진 태국의 서구 관광객들을 보면, 현대 인도의 우스꽝스러운 모순들을 들춰내는 대니 보일의 손길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구와 동양, 개발과 미개발 사이를 자유자재로 쑤시는 '대니 보일식 인류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퀴즈 얘기를 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이 퀴즈의 방식은 그야말로 운과의 싸움입니다. 복수의 출연자가 있고, 출제된 총 20개의 문제 중 10개를 맞추는 것과 혼자 출연해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10개의 문제를 모두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주제나 범위도 없이 무차별로 주어지는 10개의 문제 중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건 정말 하늘이 돕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퀴즈 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대개는 자신의 상식 수준이 일반인들보다는 꽤 높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보면 퀴즈왕이나 일반인이나, 그 차이는 고등어와 참치 정도쯤이나 되려나요. 태평양 전체를 기준으로 할때 고등어 한 마리와 참치 한 마리의 비중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포맷의 퀴즈는 절대적으로 운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식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제작자들은 문제의 수준을 유치할 정도로 낮췄습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수의 참가자가 몰리고, 진짜 운은 그 많은 출연자 중에서 선발돼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느냐에서 먼저 시험을 받습니다. (영화에서 자말은 콜센터에서 일한 바람에 전화 신청에서 당첨되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참가 신청자 수가 어마어마할텐데 어떻게 자말이 거기 나갈 수 있느냐'는 비판을 피하자는 얘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자말이 비정상적으로 문제를 잘 맞추는 바람에 경찰까지 동원돼 조사를 벌인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 영화 속 퀴즈 쇼의 문제들은 초보 수준입니다. 세계 관객들은 모르지만 인도인에게 '라마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이라는 문제는 '환웅의 명에 따라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은 식물은' 수준의 문제라고 봐야겠죠. (아무리 자말이 힌두계 아닌 이슬람계로 묘사돼 있다 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겁니다.^)

게다가 마지막 문제. 2천만 루피가 걸린 마지막 문제 치고는 지나치게 쉽지만, 이건 퀴즈 참가자들의 심리를 아는 연출입니다. 누구에게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찾아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지식의 단편이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 격인 로씨니의 오페라 제목이 뭐더라' 하고 생각만 하고, 찾아 보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그 문제가 결정적일 때 딱 출제됩니다. 이건 퀴즈인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죠. 알았다가 잊어버린 거라면 더 죽을 맛입니다.

아무튼 마지막 문제를 앞둔 자말의 행태는 퀴즈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는 퀴즈인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 모든 퀴즈를 로또와 동일시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어떤 만행인지는 차마 밝힐 수 없으니 영화를 보시길). 영화의 맨 앞부분에서 대니 보일은 관객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네 개의 보기는 '1. 사기를 쳐서   2. 운으로    3. 천재라서   4. 운명이니까(혹은 대본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입니다. 이 네 개의 보기 중 어느 것이 답인지 알려 주기 위한 장면이라고나 할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역시 영화를 보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동안 방황했던 대니 보일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특기인 유머감각은 더욱 살리고, 치기 어린 비판의식은 매끄럽게 다듬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솜씨를 자랑합니다. 캐스팅상의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자말 역의 데브 파텔이 아무리 봐도 빈민가 출신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아니나 다를까, 역시 영국 출신의 인도계 배우더군요), 뭐 영화의 흥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에서 자말이 풀어가는 문제의 답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말이 생존을 위해 현장에서 배운 것이라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감동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인생에서, 누군가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어렵게 배운 것들'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자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판타지적 성격을 덮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퀴즈 쇼와 조명을 이용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혹시라도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상이 그동안 편애해 왔던 묵직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분이라면 미리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분이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치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단 퀴즈 쇼 묘사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야구 영화에서 야구 경기 묘사가 엉망인 것과 비슷한 비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대다수 관객들에겐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문제의 답 중 하나인 인도의 톱스타 아미타브 바흐찬은 사실 인도판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오리지널 사회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슈와라 라이의 시아버지이며 자신, 아내, 아들, 며느리까지 모두 인도의 톱스타인 연예계 명문가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2. 참, 이 장면에서 * 역으로 동원된 건 초콜릿과 땅콩 버터라는군요. 이 정도면 그리 심한(?) 아동 학대는 아니라고 봐도 되겠죠?




** 예전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아역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728x90

이번 주말 열릴 예정이던 X-재팬의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습니다. 지난해 8월15일, 11월에 이어 세번째 바뀐 날짜가 또 연기라니, 정말 팬들의 입장에선 화가 날만도 합니다. 일본에서 흘러 들어 온 얘기로는 한국 공연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니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

이번 연기(사실상 취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는 멤버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베이시스트 히스의 소속사와의 문제라는 얘기도 있어서 확실치는 않습니다. 물론 지난해 3월 도쿄돔에서 열린 10년만의 재결합 콘서트에서도 요시키가 중간에 실신하는 등 그룹의 핵인 요시키의 건강 문제는 항상 돌발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꼬이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악연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X-재팬의 열렬한 팬은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움 때문에 쓴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엑스 재팬

서태지라는 예명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시절, 그 이름이 일본 록 밴드 엑스 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Taiji)에게서 따 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서태지도 한때 록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으므로 꽤 그럴싸한 얘기였지만 팬들은 엑스 재팬이라는 상징적인 이름 탓인지 "서태지를 일본 음악의 주구로 매도하려는 흠집내기"라며 격분했다. 결국 서태지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공식 해명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 엑스 재팬의 첫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다. 당초 3월21, 22일 양일간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이들은 돌연 13일 아침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공연 연기를 선언했다. 5월로 잡혔던 일본 공연까지도 환불에 들어갔다니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없던 시절, 1985년 결성된 엑스 재팬은 '일본 음악을 개방하는 순간 한국 대중음악은 고사해 버릴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처럼 보였다.

그만치 당시 이들이 보여준 음악적 성과는 국내 음악과 수준차가 있었다. 이들의 히트곡 '엔들리스 레인'이나 '세이 애니싱'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왠지 익숙한 느낌을 준다. 1990년대 초반, 수많은 한국의 작곡가와 가수들이 이들의 노래를 번안하다시피 그냥 베껴 불렀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식 수입은 꿈도 꿀 수 없던 무렵에도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에선 이들의 베스트 앨범인 '베스트 오브 엑스(B.O.X)'를 구할 수 있었다. 보따리 장사들이 한국에 들여 온 양만 20만장 정도는 될 거란 추측이 나돌았다. 세월이 흘러 1998년부터 일본 대중음악이 순차 개방됐을 때 가장 먼저 발매된 음반도 바로 저 B.O.X 앨범의 연주곡 버전이었다.

개방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엑스 재팬의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는 없었다. 이들은 1997년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재결성 선언과 함께 8월15일 잠실 주경기장 공연이 추진됐지만 "광복절날 서울에서 일본 밴드가 공연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잡음만 쏟아졌다. 다시 11월로, 3월로 재차 연기된 공연은 멤버간 불화설 속에 또다시 무기 연기됐다. 서울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는 일은 참 지난하기만 하다. 잠잠하다가도 한 순간 어디선가 터져나오는 망언으로 꼬여 드는 한일관계처럼.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8년 이전 일본 대중음악의 한국 유입을 막은 것은 사실 꽤나 근거 없는 두려움, 무시할 수 없는 적대감, 그리고 한국 가요 제작자들의 장삿속이었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적대감에 대해서는 사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1980년대 학교를 다니면서, 안전지대나 튜브의 노래를 듣는 친구들에게 침을 뱉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그 노래들이 엇비슷한 한국 가요로 개편되어 나온다는 건 굳이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적대감을 해소시켜 준 것이 카시오페아와 T-스퀘어였고, 은근히 그 음악 잘 한다는 X-재팬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음악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죠. 그래도 90년대라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X-재팬의 싱글들이나 'Blue Blood', 'Jealousy' 앨범을 사 들여 오곤 했습니다. 물론 유입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고 국내에서 X-재팬의 붐이 절정을 이룬 건 1996년, 위에서 말한 B.O.X 앨범의 발매 이후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죠. 일본 출신의 록 밴드 라우드니스가 80년대 중반 영어 가사의 노래들만 부른다는 조건으로 내한 공연에 성공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90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X-재팬의 내한공연이 언제쯤 열릴 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수시로 등장했지만, 실제 가능성은 별로 없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이들이 영어로만 노래를 했대도 아마 마찬가지였을겁니다. 뭣보다 X-재팬이라는 이름, 요상한 화장과 요란한 머리 모양이 당시의 '어르신'들에겐 끔찍하게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죠. 서태지도 '복장과 두발 상태 불량'을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던 게 90년대의 한국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거없는 두려움이나 장삿속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결과를 볼 때 개방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 향상을 가져왔고, 시장의 확대 측면에서도 일본보다는 한국 쪽에 훨씬 큰 득이 됐습니다. 표절 사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전처럼 '표절 아닌게 없다'는 수준에서는 크게 벗어났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개방은 천천히 이뤄졌습니다. 그중 관심 가질만 한건 2000년 초, 1998년 2000명 이하의 공연장에서만 가능했던 일본 가수의 국내 공연 관객 제한이 없어진 조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빅 스타는 차게&아스카였습니다. 이들의 인기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면을 감안하면 역시 이 때 왔어야 하는 건 X-재팬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건 불가능했습니다. 1997년 라스트 라이브 이후 해체된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 뒤로 11년, 2008년 8월 15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릴 뻔 했던' 공연은 '광복절에 쪽바리들이...'라는 여론과 함께 사라졌고, 이후 요시키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습니다. 이제는 정말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공연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이들이 한국 무대에 한번 서야 그 길고 길었던 상호 불신과 고집을 나날에 한번 쉼표가 찍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재주의 부족으로 저 짧은 글에는 여운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요상한 화장을 한 일본 딴따라들'을 병균 취급하던 시대에 대한 추억도 잠깐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1992년 1월 도쿄돔에서 열린 'On the Verge of Destruction 1992.1.7 Tokyo Dome Live'를 다시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들의 전성기는 타이지가 함께 했던, 'Jealousy' 앨범이 나왔던 90년대 초 까지라는 생각입니다.

92년 라이브는 유튜브에서 잘 보이지 않는군요. 많이 알려진 1997년 라스트 라이브 때의 'Endless Rain'입니다. 라이브에서의 이 노래는 정말 endless하게 계속됩니다.^^








728x90

   사람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의혹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완패한 상황에서 지난 21일 내린 단비는 한화의 숨통을 터 줬고, 하루 연기돼 열린 2차전에서는 바람이 매 상황마다 한화에 유리하게 불었다. 1회말 삼성 조동찬의 홈런성 타구가 역풍에 꺾여 잡히는가 하면 기회 때마다 한화 타자들의 타구는 순풍을 탔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린 적벽대전같은 한판 승부였다. (이건 2007년 한국시리즈의 상황을 놓고 한 얘깁니다.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이 자리에 최근 벌어진 WBC 멕시코전 상황을 대입하면 같은 결론이 됩니다. 더블스틸, 번트, 버스터, 좌-우 투수들의 정신 없는 계투, 여기에 때맞춰 터져 준 타자들의 장타... 그야말로 현란한 '야구의 모든 것'이었죠.)

 아직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김인식 감독의 이런 스토리가 실제상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흥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독이 무슨 마술사라도 되나. 세상에 저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냐. 대본에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야구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극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야구장에 갈 때와 극장에 갈 때에는 기대하는 극적 감동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현실이 극적 상상력을 능가해 버리는 상황은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의외로 히트작이 드물다. 야구를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라고 부르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메이저 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다.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을 뿐, 전설의 고교야구 영화 <자, 지금부터야>에서 <YMCA 야구단>, <슈퍼스타 감사용>에 이르기까지 '야구 영화'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딱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야구영화는 안된다고 말해 버리기엔 저변이 너무 아쉽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만도 300만. 이승엽이며 박찬호의 성공 스토리, 올 연초 WBC 4강에 열광했던 잠재적인 야구 팬들은 한둘이 아니다. 프로 야구가 등장한지도 24년이나 돼 기반도 성숙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기 연예인들이 팀을 구성해 직접 공을 던지고 때리며 정규 리그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까지 하는 나라다. 개중에는 장진, 김상진 감독이 소속된 팀도 있고, 리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에는 장동건 김승우 주진모 황정민 조인성 등 현역 최고의 톱스타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정도 저변이면 이제는 한국에도 '이런 야구 영화가 있다'고 말할만한 영화 한 편쯤이 나올 때가 된게 아닐까. 연예계 애구파(愛球派)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끝)





굳이 지금 이 글을 다시 올린 건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묻힌 데 대한 아쉬움입니다.



김인식 감독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분의 야구관에는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김감독의 두산 재임 시절 한 선수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선수: 감독님은 땅볼 치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나: 왜?

선수: 사실 땅볼로 깔아 쳐도 각 잡아서 잘 갈라 치면 안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플라이로 날아가는 공 치라고 맨날 그러세요. 신인들이 땅볼 치면 물어봐요.

나: 뭐라고?

선수: 이렇게요.


(김감독): 야, 내야에 (수비가) 몇명 서 있냐?
(신인): 여섯명요.
(김감독): 그럼 외야엔 몇명 서 있냐?
(신인): 세명요.
(김감독): 그럼 내야가 더 넓어, 외야가 더 넓어?
(신인): ...외야요.
(김감독): 그럼 자식아, 내야로 쳐야 되냐, 외야로 쳐야 되냐?
(신인): ...외야요.



나: 음.... 맞는 말이잖아. ;

선수: 맞는 말이긴 해요.


뭐, 감독님의 유머였는지, 진지한 얘기였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네요. 하여간 김인식 감독님, 같이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 않은 특급 유머감각의 소유자셨습니다. 건강 때문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신다는데 참 아쉬울 뿐입니다.


728x90

과중되는 업무로 짜증만 늘어가는 나날에 WBC 경기는 단비와도 같더군요. 초반에 류현진이 살짝 흔들릴 때만 해도 잠시 불안하더니, 여지없이 뒤집는 솜씨는 짜릿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본전 콜드게임패 이후 김인식 감독님을 비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찌질이들의 손질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이렇게 모든 걸 보여주시는 데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감독님의 '집안 칼' 들인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가 이렇게 펄펄 날아 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이 한화 팬들에게 점심이라도 사야 할 듯 합니다.

모처럼 이른 야구의 계절을 맞아 옛날 추억을 되살려 써 본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구 감독과 영화 감독

90년대 초. 처음 신문사에 들어가자 야구 담당을 시켰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던 터라 거리낄 건 없었지만 야구 담당 기자라는 건 알고 보니 장돌뱅이였다. 노트북과 속옷을 둘러메고 전국 산천을 유람하는게 일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된 어느 날, 한 야구단 직원과 여유있게 노닥거리고 있었다. 서로 야구관이 달라서(물론 팬과 경기인의 시각 차이였겠지만) 옥신각신하던 차에 살짝 흥분한 그 양반이 물었다. "그래서 송기자가 생각하기에 한국 최고의 감독은 누구요?"

아니 그렇게 쉬운 걸 묻다니. "그야 임권택 감독이지." 그 다음날부터 다른 구단 직원들의 눈길이 달라진 걸 느꼈다. 그 양반이 "되게 웃기는 기자가 들어왔다"고 소문을 냈다나.

야구에도 감독이 있고 영화계에도 감독이 있다. 한국에선 다 감독이지만 원산지에선 야구 감독은 매니저(manager)고 영화 감독은 디렉터(director)다. 야구 감독은 운영자고 영화 감독은 지시자인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복장 김경문 감독이 거짓말같은 한점차의 명승부를 연발하며 8전 전승, 감동의 금메달로 전 국민을 오르가즘에 빠뜨렸다. 이때 메달권에도 들지 못한 일본 야구 팬들은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WBC가 있다." 나오는 스타들을 보자면 솔직히 그렇다. 올림픽이 선댄스라면 WBC는 오스카다.

WBC를 앞두고 한국엔 썩 좋지 않은 소식이 잇달아 들려왔다. 영화로 치자면 흥행이 보장된 톱스타 이승엽과 박찬호의 캐스팅이 잇달아 불발됐고,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추신수는 깐깐한 소속사에서 액션 신은 촬영해선 안된다고 감시 매니저를 붙였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영화를 살리는 최고의 조연배우 박진만마저 만두를 먹다 체해서 촬영장에 나오지 못했다. 명장 중의 명장 김인식 감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지만 스타 없는 영화는 소 없는 찐만두다(박진만씨, 죄송합니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을 만드는 재팬 픽처스는 신바람이 났다.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조지마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연 요청을 한데다 할리우드(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를 선언했다. 그나마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가 빠져 1.00군이 아닌게 다행이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니나 다를까, 개봉 첫주는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일본 작품은 작품성과 재미를 겸비했다는 극찬을 받은 반면 한국의 주인공 김광현은 "가서 다트 게임 CF나 더 찍으라"는 혹평을 받았다. 냄비같은 언론들이 또다시 '한국영화 위기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은 패자부활전을 딛고 일어섰고, 결국 30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가 걸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제압했다. 김인식 감독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영화 감독과 야구 감독 얘기로 돌아간다. 두 감독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야구 감독은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과 모자를 쓰지만(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감독이 배우처럼 입고 메이컵을 하면 스태프들이 수근거린다. 영화 감독은 배우의 동작이 마음에 안 들면 들때까지 다시 시킬 수 있지만 야구 감독에겐 한 번의 기회뿐이다. 즉 영화 감독은 각본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야구 감독은 각본 없이 드라마를 만든다. 배우 출신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고 명감독으로 남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누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는 없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야구감독이 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두 사람 모두 수십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자기 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며, 연패를 당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해도 자기가 스타로 만들어 준 새파란 녀석들만큼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도 양쪽 모두 현장에서 감독이 죽으라면 톱스타들도 죽는 척 해야 한다.

얘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대한민국 최고의 덕장 김인식 감독님! 영국의 대니 보일이란 감독은 '공도 못 만져본' 인도 꼬마들을 데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냈습니다. 이번 한국 팀도 간판들이 빠져 김이 새지만 감독님을 믿습니다! 파이팅!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저 맨 위의 질문을 받은 순간엔 참 난감했습니다. 그 구단 직원 형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그 구단의 감독님이자 당시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불리던 분이 바로 옆에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때까지 제가 하고 있던 얘기는 '그 감독님이 왜 최고 감독이 아닌지'를 역설하는 거였기 때문에, 무척 곤란해 질 상황이었죠. 그걸 보고 이 직원 형님이 저를 궁지에 몰기 위해 그런 질문을 느닷없이 던진 거였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무튼 WBC 얘기로 돌아가서,

실제로 베이징에 왔던 일본 팀도 강팀이었지만, 그 팀과 이번 팀은 무게가 다릅니다. 영화 캐스팅으로 치자면 '오션스 11'에 로버트 드 니로와 안젤리나 졸리가 조연으로 나오는 식이랄까요. 물론 일본 야구의 정식 1군(위에서 말한 1.00군)이 되려면 양키스의 마쓰이가 참가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진정한 일본 야구의 진짜 실력을 대변해주는 팀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굳이 숫자를 매기자면 1.05군 정도?

반면 한국은 1.2군 정도로 평가해야 할 듯 합니다. 어쨌든 베이징 대표팀보다 현재의 진용이 살짝 무게가 부족하죠. 지금까지 한국이 해외에 내보냈던 최강팀은 개인적으로 1차 WBC 대표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의 시점에서 볼 때 박찬호는 몰라도 이승엽이 빠진 건 한국에겐 실제 전력을 떠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허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1.2군이 일본의 1.05군과 당당히 맞서 1승1패를 했다는 건 두고 두고 자랑할 일입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2006년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이 병역 혜택 없이 벌이는 최초의 빅게임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야구의 힘 = 국방부의 힘이라고 비아냥거려온 일부 사람들에게 진정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계기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성근 감독님의 사퇴에 대해 이래 저래 말이 많지만, 솔직히 말해 한-미-일 대표팀이 최소 팀간 10차전 이상의 리그를 벌인다면, 김성근 감독님만한 적임자는 없겠죠. '김성근식 야구'는 상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조금씩 더 강해집니다.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죠.

반면 WBC처럼 단기전에다, 상대에 대한 전력을 거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해야 한다면, 김인식 감독님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나, 자신이 키운 선수 아닌 여러 구단 출신의 톱스타들에게 두루두루 존경을 받는 인화의 힘 등에서 그렇죠. 물론 대표팀 감독 선정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알맞은 감독에게 지휘봉이 넘어간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한번 우승을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떨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야구장의 봉중근 의사처럼 극장가에서는 봉테일 열풍도 기대해봅니다.


728x9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냥 이런 좋은 말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Telling the truth to people who misunderstand you is generally promoting falsehood."
 
Anthony Hope Hawkins가 이런 말도 남겼군요.

네. 반성하고 있습니다.



p.s. 아, 참고로 4번은 "도둑이 제발 저리다"라는 뜻입니다.^^


'블로그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번 모일 때가 됐죠?  (71) 2009.06.12
며칠 쉬겠습니다.  (28) 2009.03.24
13명의 금요일  (62) 2009.03.07
천만돌파 스핑라간  (56) 2009.03.05
千萬多幸  (55) 2009.03.03
728x90

지난 14일 고 장자연씨의 가족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이번 사건 이후 한번도 언론과 마주 대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분들이어서 그만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로 그동안 유족들에게 쏟아졌던 오해나 어이없는 비방이 어느 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유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저도 속이 좀 탔습니다. 지난번 글, '장자연을 두번 죽인 KBS 보도'라는 글에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 읽어보지 않아도 90%가 욕설에 가까운 내용이었죠. 아주 노골적인 욕설은 몇개 삭제하기도 했지만, 부분 부분 포함된 욕설은 뭐 다 보이지도 않더군요.

욕설은 아니더라도 저주에 가까운 악플도 많았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욕을 섞지 않으면 자기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참 안된 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장자연 유족과의 인터뷰 기사를 먼저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903/16/200903160300249506020100000201040002010401.html?click=isplus

만난 건 14일이지만 유족과의 교감은 사건 직후 계속 있었습니다. 다년간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누군가 이승을 떠난 사람이 있었을 때 누구보다 아파하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자살 사건의 경우, 유족들은 항상 말을 아낍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이 아끼던 사람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죠. 그러는 사이 사방에선 의혹이 판을 치고,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저 멀리 물 건너간 얘기가 되어 버립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갑작스럽게 나타난 H 기획사 대표 유모씨가 던진 파문이 워낙 컸습니다. 돌연 빈소에 나타나 '죽음의 원인을 입증할 문서를 갖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족들은 문서 내용의 공개를 거부했고, 파문은 그냥 잦아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발인 다음날인 10일, 조선일보와 노컷뉴스에 '문서가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듯 '딱 한줄'의 문장이 공개됐습니다. 유족들은 이에 맞서 '제발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문건을 여러 언론사에 보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대체 저 유족들은 왜 저러냐.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진실을 밝혀 줘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대체 어떤 가족이 자신의 딸, 자신의 여동생의 평판이 망가지기를 원하겠습니까. 더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처자에게 말입니다.

가족들의 분노는 13일 KBS 1TV '뉴스9' 보도에 극에 달했습니다. 오빠 장씨는 지금도 '그런 보도를 내보내려면 가족들에게 사전 상의는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특히 보도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한 목소리마저 녹취해서 방송에 사용한 데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더군요.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 그 전후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보도가 쏟아졌죠. 문제의 문서를 '유서'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가족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남에게 맡긴 것'이라는 폭언에서 장자연을 '목숨을 바쳐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잔다르크' 처럼 몰고 가는 이상한 논설까지 나타났습니다.

문서의 본질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유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지장을 찍는 유서도 있답니까. 게다가 죽기 일주일 전에 유서를 써놓고 남에게 맡긴 다음 집에서 죽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물론 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는 것은 이런 추측이 아니라, 유족과의 교감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유족들의 코멘트를 이용해 기사를 쓸 수 없었죠. 유족이 그것 조차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꾸만 쓸데없는 오해가 확산되는 것이 안타까워서 블로그에 한 줄 붙였습니다.

p.s. 아직도 장자연이 남긴 이 글이 '유서'였다고 생각하고, 장자연이 이 문서의 내용을 밝히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군요. 여기에 대해 제가 말할 권리는 없지만, 이 문서는 유서도 아니고, 장자연이 그 내용을 이렇게 대중 앞에 공개하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점 만큼은 분명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대체 네가 뭔데, 장자연이 그걸 알리려고 했는지 어떻게 아냐. 유서인지 아닌지 네가 알게 뭐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유족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제의 문서는 계약관계 해지를 위해 작성한 것일 뿐입니다. 결코 죽음을 예견하고 쓴 글도 아닐뿐더러, 그 글을 쓰고 나서 장자연씨는 장래의 활동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는 것이 유족과 측근의 증언입니다. 결코 '죽음을 예견하고 한 고백' 따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장자연씨는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이 몰고 가려 했던 '죽음을 무릅쓰고 연예계 비리를 폭로한 잔다르크'는 아니었습니다. 그 자신이 쓴 대로 '힘없는 연예인'이었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내민 손을 선뜻 잡았던, 그리고 그 뒤로도 마음의 그늘을 극복하지 못했던 가엾은 아가씨였습니다. 스타덤을 꿈꾸고 연예계에 뛰어들었지만, 결코 이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별로 궁금해하시지 않을 우여곡절 끝에, 14일 낮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집으로 간 것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밖에 나가기가 겁난다'는 유족들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장자연씨의 지인들과 함께 분당에 있는 집 대문으로 들어서는데 몇몇 기자들이 다가섰습니다. 추운 날씨인데 집 밖을 지키고 있더군요. 멀리 차 안에서 카메라를 대 놓은 사진기자도 보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아는 얼굴은 없었습니다. 다른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고 있는 공간에 이렇게 태연히 들어간 적은 처음이라 저도 내심 긴장이 되더군요.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부모 없이 살아온 삼남매가 막내 여동생을 잃은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아주 미세하나마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남매만 있으면 집안이 너무 어두워질까를 우려한 듯, 친척들이 집에 와 있었습니다. 알려진대로 이 집은 장자연과 언니가 단 둘이 살던 집입니다. 자매가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가 빤히 쳐다보더군요.

인터뷰를 하던 도중 눈길을 끈 것은 장자연의 친언니가 손에 꼭 쥐고 있던 흰 천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옷이었습니다. 왜 옷을 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연이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라는 겁니다. 옆에 와 있던 장자연의 작은어머니며 다른 친척들이 "그러면 안된다. 이제 그냥 보내 줘야지"하고 야단을 쳤지만 언니는 그 옷을 놓지 않았습니다. 동생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더 끌고 가려는 언니의 심정이 너무도 짙게 와 닿았습니다.

지난번 글에 유족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악플을 단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악플을 단 사람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너 대체 기획사에서 얼마나 받아먹고 이런 글을 쓰느냐'는 것도 꽤 있었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악플러들이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안한 사람들 투성이입니다. 언니는 언니대로 동생이 죽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몰랐다는 사실을 미안해 했고, 오빠는 오빠대로 바쁘게 사느라 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걸 미안해 했습니다. 친한 언니는 친한 언니대로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을 진작 언니 오빠와 나누지 않았다는 걸 죄스러워 했습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산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시간으로 치자면 두어 시간이 눈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지만, 불과 일주일 전 젊디 젊은 혼이 이승을 등진 공간의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자마자 몸이 천근이라 쓰러지게 되더군요.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두 사람의 매니저에게 가족들이 느낀 실망과 분노는 여러분이 상상하기 힘든 크기일 겁니다. 경찰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장씨의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세요?"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표정이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누가 나쁜 사람인지는 세상이 다 알 것"이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흥분하고 분노하셨던 분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 뿐입니다. 잊지 않는 것.


p.s. 상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는 듯 해서 한줄만 덧붙입니다.

지금 경찰 수사 진행중입니다. 유족도 협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수사를 가로막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도 수사하지 말자고 한 적 한번도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보도할 겁니다.



728x90

'떼시스'라는 스페인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1996년작인 이 영화는 스너프(정사 뒤에 여자를 죽이는 포르노의 일종) 필름을 우연히 발견한 대학생들이 그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과 관계없이 마지막 장면은 TV 뉴스 화면입니다. 여성 앵커는 말합니다. "저희는 이 필름을 단독 입수하고, 공개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여러분의 볼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이 영상을 공개합니다."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아메나바르의 통렬한 '한방'입니다.

그리고 어젯밤 KBS에서 거의 비슷한 멘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3일 방송된 KBS 1TV '뉴스9'의 보도 리드 멘트입니다.

자살한 탤런트 장자연씨가 숨지기 직전에 남긴 자필 문건을, KBS가 단독입수했습니다. 술접대에 잠자리 강요까지, 연예계의 추악한 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KBS는 숨진 장씨의 명예와 불법행위 사이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 문건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KBS가 이런 보도를 했다는 사실은 다시 다른 매체들에 의해 널리 퍼졌습니다. 유족들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 문서의 공개를 거부해왔습니다.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 중 수많은 댓글들 가운데서 "대체 왜 유족들은 이 공개를 꺼린 것이냐. 문서를 공개해서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들이 꽤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지금 이런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가족의 심정입니다. 이번 사건이 있은 뒤 유족들은 일관되게 문서의 공개를 거부해왔습니다. 문서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족의 입장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느 가족이, 자신들의 여동생이, 그것도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여동생이 저런 식으로 언급되기를 바라겠습니까.

두번째는 과연 문서의 공개가 불가피한 것이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위 리드 멘트를 보면 KBS의 명분은 '고인의 명예와 불법행위(에 대한 고발이라는 언론의 사명)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것이 더 공익에 부합한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과연 공개한다고 처벌이 이뤄지고, 공개하지 않는 것은 악을 덮는 일일까요?

자, 여기서 전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악을 처단해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 멘트는 변명입니다. 왜냐하면, 어제 보도가 나간 문건을 최초 확보한 기자에게는 일단 장자연의 명예를 지키면서도 불법행위를 견제하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확보한 문건을 경찰에게 인계하고, 비공개 수사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미 유족들은 10일 경찰에 문서를 확보하고 수사를 하더라도 절대 내용이 새 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일반인들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듯, 문서의 내용이 공개된다고 해서 그 문건에 명시된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이 곧바로 단죄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KBS 보도국과 해당 기자가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보도는 너무나도 기계적인 보도였던 겁니다.

세번째, 아직도 왜 문건의 공개가 공익적이지 않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실 분들을 위해 덧붙입니다. 장자연이 남긴 문서의 내용에 따라 연예계 폭력의 실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검증이 필요합니다.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KBS도 저 보도를 할 때 문제의 매니저 이름을 '김모씨'라는 익명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과연 KBS에서 저 보도가 나간다고 해서 저절로 검증이 될까요? 과연 문서에 기록된 불법행위를 문제의 '가해자'들이 바로 인정하고 죄값을 받게 될까요? 이거야말로 수사 전문기관이 달라붙어서 해결해야 할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아무튼 정의의 구현이 목적이라면, 기자는 문서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진실이 입증되고, 책임자의 처벌이 가능해졌을 때 문서의 내용이 보도됐다면 아마도 KBS의 '진정성'을 믿어 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의 이런 보도는, 일반 국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외에는 실제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KBS 측은 "그건 경찰이 고민할 일이지 기자가 고민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겁니다. 또는 "미쳤어? 우리가 보도 안 한다고 그 문서가 끝까지 안 나올 것 같아? 비공개 수사 요청? 제정신이야? 그러다 다른 놈들이 냄새 맡고 기사 쓰면 우리는 뭐가 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보도를 할 때에는 더 신중했어야 했던 겁니다. 특종 욕심에 온 정신이 가 있다면 이런 데에 생각이 미칠 리가 없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는 저 고상한 KBS가 '저질 황색언론'이라고 가끔 표현하는 스포츠지 기자로 10년 넘게 일해왔습니다. 연예인들의 열애설 나부랭이를 팔아먹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을 놓고 장난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의 죽음을 지켜봤지만, 이렇게 유족들의 간청을 무시해가면서 일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제 KBS가 보도한 '유족과의 인터뷰'는 장씨의 오빠가 "제발 그런 보도로 자연이의 명예를 해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려고 직접 건 전화였습니다. 그 전화마저도 KBS는 녹취해서 보도에 이용했습니다. 과연 이 보도를 보고도 장자연이 편히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s. 아직도 장자연이 남긴 이 글이 '유서'였다고 생각하고, 장자연이 이 문서의 내용을 밝히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군요. 여기에 대해 제가 말할 권리는 없지만, 이 문서는 유서도 아니고, 장자연이 그 내용을 이렇게 대중 앞에 공개하려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 점 만큼은 분명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728x90

"행복하길 바라. 나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을거야." 가끔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대사지만, 현실에서의 이 말은 주로 "이제 네가 지긋지긋해"라는 말의 '고운 말'로 사용되곤 합니다. "어딘가에 네 짝이 있겠지만 난 아니다"라는 뜻이죠.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첫번째 시사회는 다른 바쁜 일로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했죠. 첫번째 사람에게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냉철하게 보고, 특히 이런 멜러 영화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후배였죠. 그런데 "나쁘지 않다"는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두번째 사람에게 물었을 때엔 놀랄만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람은 업계에 종사한지 10년이 넘은 노련한 여자 관계자. '어땠냐'고 묻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끝나고 여자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자들이 눈이 벌겋더라. 몇몇은 그때까지도 훌쩍거리고, 내가 들어가니까 다들 민망해하면서 시선을 피하던 걸." 다른 여자 후배 기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나도 좀 찡하더라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래 어떤 영화 제작자도 기자 시사회의 반응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객들보다 냉정하기 때문이죠. '가문의 영광'도 기자 시사회때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정준호 등 배우들이 무척 불안해 하자 제작자는 "야, 이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야(?)^^. 진짜 반응을 보려면 일반 시사회때 봐야 돼"라고 안심을 시켰다는군요. 그리고 이 영화는 실제로 '터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자들도 울었다니, 관심이 안 갈 수 없는 얘기더군요. 그래서 부리나케 영화를 봤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뮤직비디오와는 많이 다릅니다)

케이(권상우)와 크림(이보영)은 고교시절부터 단짝처럼 지내던 사이. 서로 부모 형제 없이 외톨이인 둘은 케이의 부모가 남긴 집에서 남매처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다 케이는 라디오 PD가 되고, 크림은 작사가가 되죠.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케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바로 옆 스튜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치과 의사 닥터 차(이범수)에게 크림이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닥터 차에게는 집안에 맺어준 약혼녀(정애연)가 있습니다. 케이는 약혼녀와 닥터 차를 헤어지게 해서라도 크림이 닥터 차와 결혼하게 해 주려고 애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지는 줄거리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와 맺어주려고 애쓰는 남자?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남자가 불치병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물론 스포일러도 아닙니다. 둔한 분들도 영화를 10분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치병이라도 이런 진행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성패는 자명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그럴법하게 여겨지게 포장되어 있다면 성공이고, 아니라면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겠죠. 과연 원태연 감독은 이 한편의 뮤직비디오같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했을까요.

아마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는 다들 비슷할 겁니다. 권상우 주연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심 저의 첫번째 반응은 '이 뭥미?'였습니다. 영화가 원태연 시인의 영화 데뷔작이 될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권상우가 또 가시밭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권상우가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을 기회가 무산된 직후라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검증된 4번 타자를 빼고 무명 신인을 대타로 내는 감독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원감독은 괜히 스타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인답지 않게 노련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케이의 시선으로 사건의 진행을 죽 서술해준 다음, 이번엔 크림의 시선으로 같은 사건에서 케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정리해줍니다. 마무리는 닥터 차의 몫입니다.

케이의 시선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상당히 답답해합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 뒤로 크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왠지 이 이야기를 납득해야만 한다는 묘한 설득을 당하게 됩니다. 아, 그렇다고 말이 안 되던 스토리가 갑자기 말이 된다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걸 꼭 짚어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되는 겁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원태연 시인, 아니 원감독의 설득력은 본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 저런 스토리가 실제로도 가능할거야'라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얘기가 사실이었으면(혹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라고 기대(또는 개입)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죠.

일각에선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양치질이라고 답하는 권상우의 말("남들이 안 볼 때엔 양치질 안 하세요?" - 언제나 하고 있다는 뜻) 같은 감각적인 대사가 원감독의 장점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 이상의 기획력이 돋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우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동안 수많은 액션 느와르에 출연했지만 아직 권상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이런 식의 감성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편없는 진행과 플롯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히트한 것은 결국 권상우의 얼굴이 그런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극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보영도 어느새 늘어난 주름살이 좀 아쉬움을 남깁니다만 탄탄한 기본기를 이용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범수 역시 흠잡을 데는 하나 없지만 역할이 너무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뮤직비디오에서 더 큰 활약을 하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을 배우는 정애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4년 영화 '아홉살 인생'에 피아노 선생님 역으로 출연했을 때부터 '흔치 않은 느낌의 좋은 마스크'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세월이 꽤 흘렀군요. 이 영화에서는 쉬크한 느낌의 사진작가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단지 이런 마스크의 캐스팅 범위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커플을 괴롭히는 부잣집 딸 이미지로 너무 한정되어 있는 듯 해서 좀 더 넓은 도전을 위해선 본인의 노력도 꽤 따라야 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밖의 배우로는 가수 이승철 역의 이승철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 일했던 관록의 배우 출신답게 매우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한폭의 뮤직비디오'같은 영화입니다. 이런 스토리에 진력이 나고 몸서리가 쳐 지는 분들도 많겠지만, 같은 재료라도 주방장의 솜씨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법입니다. 제가 보기에 주방장의 솜씨는 A급입니다.

 

화이트데이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함께 할 일이 필요한 연인들이라면 매우 좋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40대 이상의 관객들이라면...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p.s 주제가는... 빨리 연습해야겠습니다.^^



728x90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가끔 주위 사람들이 "우리 애가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소개시켜 줄 데 없느냐"는 질문을 해 오는 편입니다. 이럴 때 저의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웬만하면 클 때까진 시키지 마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역 이기는 성인 배우 없다는 건 TV 드라마 시장의 철칙 중 하나입니다. 뒤로 가면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드라마도 앞 부분, 아역들이 나오는 부분만큼은 어느 정도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트작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종영한 MBC TV '에덴의 동쪽'역시 장기간 히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송승헌의 아역으로 출연한 김범의 활약에 기댄 부분이 꽤 큽니다.

그럼 아역배우 본인의 삶은 어떨까요. 실제로 촬영장에 따라다니면서 본 결과, 아역배우들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이 문제일 수도 있고, 본질적으로 어린 나이에 생활 현장에 나와 있는 데서 오는 피로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생각과 관련된 글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아역 스타

올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성장한 청년 자말이 100만 달러가 걸린 퀴즈쇼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명 배우라곤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의 작품상을 휩쓸면서 일약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실제 빈민가 출신인 아역 배우 아자르 무하마드 이스마일(10)과 루비아나 알리(9)는 오스카 시상식장에도 등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관심이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스마일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이 “피곤해 인터뷰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투정하자 보도진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때려 쓰러뜨렸다. (위 사진입니다.) 인도 정부는 이들에게 살 집을 주고, 제작진은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에 대비해 신탁기금을 마련했지만 부모들은 “지금 당장 돈을 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린 스타들과 돈에 눈먼 부모들의 문제는 할리우드 최초의 스타 아역 배우가 출현했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화 '키드'(1921년)에서 찰리 채플린과 공연, 7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재키 쿠건은 21세가 되자 그가 번 400만 달러를 탕진했다며 어머니와 계부를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쿠건이 되찾은 것은 12만 달러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역 배우의 재산 보호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성년 배우가 벌어들인 돈 중 최소 15%는 성년이 될 때까지 제3자가 신탁 관리해야 한다는 법규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금도 '재키 쿠건 법'이라고 불린다. 이 법은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과 촬영 시간 등 미성년 배우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루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머물 수 없었고, 그중 3시간은 영화사가 고용한 교사와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행히도 한국의 경우 아역 스타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연기나 노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교육은 방임 상태에 놓인다. 한국의 미성년 연예인에게 가장 큰 위험은 부모의 탐욕보다 '어른 대접'의 유혹이다. 최근 왕년의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소년 노마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가 한의사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보다 유명했던 금동이 역의 아역 배우는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10대 스타들의 성공이 각광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부모와 아이들로 연예 관련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지금, 재키 쿠건 법의 취지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키 쿠건이 벌어들인 1930년대의 400만달러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입니다. 그런 거액을 부모가 보호자라는 이유로 탕진해버린 것은 아역 배우 입장에선 참 기가 막힐 일이죠.

더 잘 알려진 경우로는 매컬리 컬킨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0년생인 컬킨은 1990년 '나홀로 집에 (Home Alone)'에 출연하면서 당대의 영화 흥행 성적표를 모두 바꿔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스타덤은 굵고 짧았죠. 부모의 이혼, 이혼 후의 양육권 다툼 등 다양한 사건으로 골치를 앓던 그는 15세 때 부모로부터 법적으로 독립하고(내 재산은 내가 지킨다!) 아버지를 매니저로 고용해 월급을 주고 일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이 때 이미 귀여운 맛이 사라지며 상품성을 잃기 시작한 컬킨은 18세때 동갑내기인 아역 배우 출신 레이첼 마이너와 결혼, 20세때 이혼하는 등 성인으로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으로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2004년에는 마약 소지로 체포되는 물의를 빚기도 했죠. 여전히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꽤 벗어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아역 출신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례는 여러 번 보고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윗글에서도 살짝 다뤘듯 아역 스타들이 일찍부터 어른들의 세계에 노출된다는 것이죠. 이른 나이에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받고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미성년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일찍부터 음주나 흡연을 비롯한 어른들의 오락거리에 눈을 뜨고 비뚤어진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기 자체도 큰 스트레스입니다. 제가 옛날에 본 한 촬영장에서는, 활발한 성격의 아역 배우가 하루 종일 우울한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늘 주사 맞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로 주사를 놓을 거다"라고 얘기를 했다더군요. 그래서 이 배우는 신이 끝날 때면 조연출에게 "정말 주사 맞아요? 오늘 찍어요?"라고 계속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사 맞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 아역 배우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요. 이 정도면 거의 아동학대입니다.

아역들이 겪는 스트레스에 대한 글은 전에 따로 쓴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아역 출신 배우들은 "그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게 한"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식은 물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에도 꽤 큰 영향을 줍니다. 물론 지식 자체는 말할 것도 없죠.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하루빨리 한국에서도 선진국들처럼 아역 배우들의 인권과 건강, 교육을 감안한 규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초등학생에서 멀리는 '사실상 고교 휴학생'이 되어 버리는 10대 아이들 스타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활동을 막는 방안 말입니다. 비록 당장은 '열심히 활동해서 성적을 내야 특차로 대학에 가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자녀의 인생을 생각하면 꼭 그게 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p.s. 아무튼 요즘 자꾸 무거운 얘기만 올리는 것 같아(심정 탓인가...) 분위기 전환용입니다.



728x90

아나테이너 어쩌고 하는 얘기가 유행하던게 벌써 오랜 옛날 일 같습니다. 애당초 별 의미가 없는 말이기도 했는데 이름을 지어 부추기다 보니 한때는 떠들썩 했습니다만, 지금은 싹 사라진 분위기입니다.

사실 최근 몇해 동안 아나운서들이 떴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따지고 보면 유명했던 건 훨씬 더 옛날의 아나운서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름을 대자면 숱하게 댈 수 있죠. 그런데 지난해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라도 유명한 아나운서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왜 요즘은 아나운서들이 전처럼 활개를 치지 못할까요? 그런 저런 궁금증에 대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스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스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태희의 외모도, 김제동의 개인기도, 강호동의 우기기도 없이 마이크 하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며 온 국민을 사각 화면 앞으로 끌어모으던 왕년의 제왕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말을 듣고 '그러게. 한때 김성주, 강수정, 노현정이 방송을 다 하는 듯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더니 어떻게 된걸까'하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아직 아마추어 시청자다. 그럼 아직도 가끔 화제에 오르는 황현정-황수경-황정민 '황 트리오'의 전성기 때 얘길까? 아니면 온 국민의 일요일 아침을 깨웠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의 최선규나 손범수 아나운서를 떠올려야 할까?

그 정도도 아직 멀었다. 진정한 스타 아나운서라면 왕년의 MBC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양분했던 '장학퀴즈'의 차인태, '명랑운동회'의 변웅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밖에 KBS를 대표했던 미스코리아 전담 MC 김동건, '장수만세'에서 팝 DJ까지 TBC를 개인 방송처럼 휘저었던 황인용을 빼놓을 수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모두를 무색하게 만드는 '임택근'이라는 이름도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가수 임재범과 탤런트 손지창의 아버지로나 알려져 있지만 50대 이상 연령층에게는 김지미나 신성일보다도 한 단계 위의 스타다. 톱스타 엄앵란과 춤 한번 춘 죄로 스캔들의 주역이 되고, 4.19때 KBS 앞에 몰려든 시위대가 '사장 나오라'가 아니라 '임택근 나오라'고 외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물론 오늘날의 방송환경에서 이런 전설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1950년대의 스타 아나운서 임택근은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었다. 인기는 곧 권력이 되었고, 한번 스타가 된 이들은 새로 올라오는 후배들의 진출을 막고 자신의 치세를 늘려 나갈 힘을 얻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0년대 이전만 해도 한두명의 탁월한 방송인은 전체 편성을 좌우할 수 있었다. MBC의 경우에도 변웅전과 차인태라는 두 스타가 각각 교양은 차인태, 오락은 변웅전이라는 식으로 황금분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스타는 수시로 이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신군부의 방송 장악과 함께 상황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 MBC TV '영 일레븐', KBS 2TV '젊음의 행진'을 시작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예능 프로그램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이런 프로그램에는 새로운 감각의 진행자들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재빨리 상식이 됐다. 개그맨 출신의 주병진, 가수 출신의 이문세, 배우 출신의 송승환 등 '젊은' 전문 MC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런 예능 MC 전문화는 전 연령대에서 활기차게 이뤄졌다. '가족오락관'의 허참, '사랑의 스튜디오'의 임성훈, '우정의 무대'의 이상용,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등이 전면으로 나섰다.
이런 경향은 아나운서들의 활동 영역 축소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반발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80년대 이후 3S 정책하에서 예능 프로그램들은 급격하게 저질화(?) 되기 시작했고 대다수 아나운서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체면이 깎이는 일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아나운서들은 9시 뉴스의 메인 앵커라는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데 있어 예능 프로그램 진행 경력이 오히려 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KBS의 전직 예능 PD는 "90년대 초에는 '연예가 중계'의 MC를 사내 공모했는데 지원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를 꺼리지 않았던 손범수, 김병찬 등은 동료들이 외면하던 예능 진행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결국 스타 아나운서의 자리에 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변화는 경제 상황에서 왔다. 1997년, 한국이 IMF 시대를 맞자 온갖 기업이 경비절감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아도는 내부 인력 때문에 고민하던 KBS는 그 즉시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비쌌던 외부 진행자들을 정리하고 소속 아나운서들을 대거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위에서도 거론한 황정민-황현정-황수경의 3황 아나운서가 방송계의 신데렐라로 다시 태어났다.

2006년 전후, '아나테이너 붐'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독일 월드컵 중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진행력을 바탕으로 김성주가 스타 아나운서로 뜨기 시작했고 KBS 2TV '여걸 식스'에서 소탈함을 뽐낸 강수정도 각광을 받았다. 이어 새로운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인 KBS 2TV '상상플러스'의 노현정, '스펀지'의 2대 진행자인 김경란 '하이파이브'에 투입된 이정민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미 아나운서들의 스타 만들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데다 어느 방송사보다 풍부한 인력을 자랑하는 KBS는 이번에도 한발 앞서갔다.

이들의 성공사례와 함께 다시 한번 각 방송사는 아나운서들의 스타 만들기에 전념했다. 무엇보다 싸고, 정확한 한국어 교육으로 자질 시비에 휘말릴 여지도 없고, 이미 선발할 때부터 외모를 고려했으니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들이 MC로 성공하기만 한다면 더 좋을 일이 없었다. SBS는 뻔한 논란을 무릅쓰고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김주희의 해외 미인대회 수영복 심사를 용인했고, MBC는 아예 서현진, 최현정, 손정은, 문지애 등 신인급 아나운서들을 한꺼번에 투입한 예능프로그램 '지피지기'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 2년간에 대해 '아나테이너 전성시대'라는 말을 만들어 냈지만 사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일 뿐이다. 예능에 재능이 있던 몇몇 아나운서들이 우연히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이들 가운데 방송계의 스타로 불릴 만한 인물은 배출되지 않았다. 여론의 호들갑이 거품만 키웠을 뿐이다.

강제형 아나운서 협회장은 스타 아나운서의 부재에 대해 "과거처럼 긴 호흡으로 사람을 키우지 않고, 장수 프로그램도 없는 방송의 '경박단소(輕薄短小)화'가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왕년의 대형 아나운서들이 스포츠 중계에서부터 바닥을 다져 올라온 데 비하면 최근의 인기를 얻은 아나운서들은 2∼3년차의 경력 때부터 오락 프로그램에 투입되고, 빠른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일이 거듭되는게 스타 아나운서의 배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한 각 방송사의 냉담한 분위기가 스타 아나운서의 출현에 가장 큰 장벽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각 방송사의 예능국에서는 일정한 MC 풀을 갖고 오락 프로그램 진용을 짠다.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 인정받으면 유재석, 강호동, 이휘재, 탁재훈 등의 위치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하지만 스타 아나운서에게 과연 무엇이 따라오느냐"고 반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 같으면 인기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로 독립해 고액 출연료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지만 지난해 이후 이건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KBS 노사는 최근 PD와 아나운서를 막론하고 프리랜서로 나선 전직 직원에게는 사직후 3년간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다른 방송사들 역시 자사 출신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에게 비싼 출연료를 주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의 푸념은 이어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뜨기' 위해서는 온 몸을 던져야 한다. 연예인 MC들이 개다리 춤을 추고, 한겨울에 얼음물에 뛰어들고, 까나리액젓을 자진해서 마시는 건 스타만 되면 그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봉급생활자인 아나운서에게 프리랜서로 클 통로까지 막아 놓으면 대체 뭘 기대하고 그 고생을 하겠나. 회당 몇만원의 수당을 받으면서 500만원, 1000만원 받는 '동료'들과 나란히 서는 게 '스타 아나운서'의 본질이라면 말이다."

어렵게 스타가 되어도 따라오는게 상대적 박탈감뿐이라면 과연 누가 스타가 되고 싶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아나운서의 정도(正道)'만 지켜선 스타가 될 수 없는 방송 환경이 유죄일까, 스타가 되어도 기대할게 없다는 매몰찬 현실이 문제일까.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이 변한건 분명합니다. 또렷또렷한 전달력보다는 프로그램의 맥을 꿰뚫는 재치가 훨씬 높은 가치로 평가받게 됐기 때문이고, 그런 식의 헝그리 정신을 갖춘 전문 방송인들에 비해 아나운서들이 갖고 있는 자산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건 현재의 아나운서들이 진지하게 해야 할 고민입니다. 과연 '선진국에는 없는' 방송사의 공채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왜 한국에는 있는 것일까. 대외적으로는 스타지만 방송국 내부적으로는 '앵무새'라고 비하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나운서는 과연 언론인일까. 그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는 열쇠가 있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