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요즘 부산이 국내외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당연히 고환율이 첫번째 이유겠죠. 일단 시간 나면 일본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연초 데뷔 1.5배 이상 오른 일본 돈 때문에 포기를 했겠고, 그래도 어딘가 쉬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제 1감으로 떠오르는 곳이 부산일겁니다.

서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제주도만 해도 한참 오른 항공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바다를 건너 가는 건 좀 부담스럽죠. KTX 덕분에 서울-부산간의 심리적 거리가 3시간 이내로 줄어들었기도 합니다. 물론 오해도 있죠. '따뜻한 남쪽'이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사실 부산은 바람이 셉니다. 그리 '따뜻한 남쪽'은 아닙니다.

제 경우에 부산을 가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풍부한 먹거리죠. 사실 부산을 생각하면 머리 속에 온갖 해산물이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지만 회 말고도 좋은 먹거리가 널렸습니다. 전국 주요 도시는 꽤 다녀 봤지만, 미향으로 소문난 전주나 광주보다 부산의 먹거리들이 제게는 매력적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분들에 비하면 어림없겠지만, 제 경우에는 지난 2002년 아시안게임 때 한달 동안 지옥의(^^) 합숙생활을 한 것이 부산의 맛에 익숙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장돌뱅이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부산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더군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라면 '부산의 맛'으로 꼼장어와 복어를 가장 먼저 꼽겠습니다. 꼼장어라면 제가 경험해 본 걸로는 일단 자갈치 시장 주변의 꼼장어구이, 동래의 돌판 꼼장어, 기장의 짚불구이 장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래의 돌판 꼼장어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복어는 조리법이 정말 다양합니다. 우선 복국은 서울에도 분점을 낸 유명한 복국들보다 해운대 끄트머리 미포에 있는 할매복국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뭐랄까, 좀 소박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복국보다 우선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복불고기입니다.

'복불고기 서울에도 많은데...'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일단 부산에 가서 드셔 보시면,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서울이나 여타 지역의 복불고기집들은 대개 돼지고기를 요리하듯 고추장 범벅이 된 복불고기를 내놓습니다만, 진짜 복불고기의 맛은 간장 양념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16년 동안 복불고기만 먹어 온 알독 김병만 선생은 말합니다. "간장 복불고기 먹어 봤어?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마."

제가 찾는 집은 부산 연산동의 '제일복집(051-851-3263)'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제일복집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장사를 그만두셨을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부산 사시는 분들 가운데 이 제일복집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소식 좀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산동역 6번출구로 나와 반도보라아파트쪽으로 100m 정도만 가면, 아파트 담벼락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이 집에 처음 갔을 때는 크로바 호텔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위 사진의 안 보이는 오른쪽이 바로 반도보라아파트 담벼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지막으로 가본 게 2004년. 놀랍게도 2002년과 대략 거의 비슷한 가격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인장은 한술 더 떠서 "10년 전과 똑같은 가격"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10년 전에도 왔었는데 그때는 25000원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뭐 아무튼 착한 가격입니다. 복불고기는 3만원에 2인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개 기사를 보면 복샤부샤부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집을 대표하는 메뉴는 간장 복불고기라고 생각합니다. 소불고기 양념과 거의 흡사한 소스에 팽이버섯과 미나리,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솥뚜껑같은 번철에 구워 먹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삽시간에 이렇게 되죠.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소주보다는 맥주가 더 어울립니다. 껍질 무침과 콩나물 무침을 안주로 홀짝홀짝 맥주를 들이키면서 복살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다 익으면 차가운 맥주로 혀를 식히면서 야들야들한 복살과 미나리를 씹는 맛... 침샘이 터질 것 같군요.

당장 KTX 표를 끊고 싶어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깔끔한 복죽으로 마무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1박 2일 일정이라면 복불고기로 한 끼, 저녁은 적당한 곳에서 회로 한 끼 정도 때워야겠죠. 횟집도 횟감과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일테니 그건 알아서 고르셔야 할 겁니다.

10년 전 회사 선배에게 소개받아 동래의 신화정이라는 횟집에 갔습니다. '이 집에서 양식 회가 발견되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자신만만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때 이 집에서 먹은 돌도다리(이시가리)회와 광어 서더리를 넣고 끌인 미역국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 횟집을 가도 광어 뼈로 끓인 미역국이 있는지 물어보게 되더군요.

최근 갑자기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여전히 번창하고 있더군요.

밤에 술을 드신 분이라면 다음날은 더더욱 복국을 드셔야 합니다. 숙소가 해운대 쪽이라면 위에서 말한 할매복국이나 서울에서 더 유명한 금수복국이 좋겠죠. 뭐 여행지의 아침이니 아점 정도의 시간대가 되겠지만.^

리듬이 깨져서 점심을 걸러야 하거나, 아니면 집으로 향하는 차편 시간 때문에 뭘 먹기가 애매하신 분들에게는 부산 역전의 신발원 만두를 추천하게 됩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서면 가야밀면도 좋겠죠.

부산역 바로 길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세계 어디서나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의 황금색 용문이 서 있습니다. 물론 이 골목은 차이나타운+러시아타운이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문에서 몇미터 안 되는 곳에 신발원(新發園) 간판이 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지만, 의외로 가게와 간판이 작아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곳의 명성을 듣고 처음 간 사람은 테이블이 세개밖에 없는 초간편 매장 규모에 놀랍니다. 대다수 중국집과는 달리 매장보다 주방이 더 크죠.^

메뉴에도 짜장면 탕수육은 없습니다. 신발원은 그냥, 너무도 순수하게 '만두집'이자 '빵집'이기 때문입니다. 고기만두와 물만두를 빼면 나머지는 단팥빵, 커빙(중식 식빵), 꽈배기 등을 팝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것이 바로 신발원이 자랑하는 고기만두. 돼지고기와 생강 마늘 부추 맛이 나는 전형적인 중국식 만두입니다. 제갈공명이 남만의 원귀들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을 바로 그 만두 맛이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

돼지고기를 평소 선호하지 않는 마나님과 순식간에 한 접시를 해치우고, "이거 포장해서 기차에서도 먹을까?"했더니 0.1초만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신발원 만두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전혀 담백하지 않습니다. 진짜 그 고기만두 맛입니다. 그리고 일품입니다. 기차 안에서 냄새를 풍기면서 만두를 먹으면 옆 자리 사람들이 큼큼거리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아마 그 분들도 침을 삼켰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챙겨 먹는 사이사이에 뭘 하냐구요? 그런건 각자 알아서...^






728x90
불경기때 광고를 하는 것이 경기 회복 후의 급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경기가 나빠지면 홍보 예산부터 줄이는 것이 그리 좋은 방안은 아니라는 얘기죠. 그렇다고 억지로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서 광고를 집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시사주간지 TIME 온라인판은 대중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2008 베스트10을 선정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를 9위에 올린 2008 영화 베스트 10인데(뭐 타임의 한해 베스트 무비 선정은 예전부터 괴팍하기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TV 광고 베스트 10에 관심이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위의 '백악관, 새벽 3시에 누가 전화를 받을까' 광고가 마음에 들더군요. 가끔 '이에 대체 왜 베스트10일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한 광고에 높은 점수가 매겨진 듯도 합니다.


1. T-Mobile's NBA series

 
찰스 바클리 경(?)의 입담이야 전 세계가 알아주는 터. 그가 마이애미의 영웅 드웨인 웨이드에게 '정말 아무때나' 전화하는 주책맞은 아저씨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 냅니다. 웨이드의 연기력도 일품.


2. Fed Ex's horror flick
 

비둘기가 물건을 나른다. "큰 물건들은 어떡하지?" 거대 비둘기가 등장하지만, 이내 온갖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페덱스를 쓰는거야."


3. Fate, according to Nike

 
엔니오 모리코네의 '석양에 돌아오다'에 나오는 The Extacy of Gold 가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사나이는 대결하기 위해 태어났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는 메시지가 간명하면서도 강렬하군요. 감독은 '세븐'의 데이빗 핀처.


4. I'm a PC
 

마지막에 아주 작은 윈도우 마크. 빌 게이츠가 살짝 등장합니다(안경을 쓴...). 메시지는 "이제 PC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 듯 합니다. 꽤 특이하군요.

 
5. Scorsese to direct AT&T

 
침대 안의 어린이가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마틴 스콜시스가 나타나 평화로운 가족의 한 장면을 느와르 영화로 바꿔놓으려 합니다. 메시지는 "우리는 당신의 통화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우리의 영화를 방해하지 마세요." A급 유머. (극장 통화 예절을 가르치는 광고로도 제격입니다-이동통신 광고라면 더 잘 어울리겠군요.)



6. Old Spice's meta-humor 

 
'천재소년 두기'로 유명한 닐 패트릭 해리스가 "지속적인 몸냄새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코멘트로 올드 스파이스 스킨로션을 광고합니다. 그런데 뭐가 그리 뛰어난 유머인지 모르겠군요. 누가 설명 좀 해 주시면...



7. Visa's Olympic Tearjerker


'쇼생크 탈출'로 귀에 익은 모건 프리맨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400m 준결승에서 갑작스런 부상으로 쓰러진 영국의 데렉 레드먼드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끝내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였다는 점을 동원한 비자카드의 광고. 개인적으로는 좀 너무 상투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이건 '감동 마케팅'이라면 한국이 한발 앞서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 Obama's infomercial


명성이 자자한 오바마 선생의 선거용 인포머셜 광고입니다. 7분이 넘는 길이라 미니다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 살림살이가 악화된 사람들의 경우들을 직접 보여주며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제법 설득력있어 보입니다.


9. Guitar Hero's dream band


보컬 코비 브라이언트, 퍼스트 기타 알렉스 로드리게스, 세컨 기타 마이크 '피시' 펠프스, 드럼은 토니 호크(유명 스케이트 보더라는군요). 스포츠계의 톱스타들로 구성된 대형 밴드가 밥 시거의 'Old Time Rock and Roll'을 부르며 '기타 히어로' 게임을 광고합니다. 코비는 거의 연예인인데 펠프스는 아직 촌티(^^)를 다 벗지 못한 듯 합니다.

사실 하이디 클럼 버전이 더 관심이 가죠.^^ 이 버전은 TV용으로는 방송 불허랍니다.





10. It's 3 a.m.


역시 대선이 있던 해다 보니 정치광고가 두개나 올라와 있군요. 사실 '광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오바마 것보단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새벽 3시, 아이들은 잠들어 있습니다. 이때 백악관에는 위기를 알리는 긴박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대체 누가 그 전화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일까요, 초보자일까요?' 훌륭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은 추억어린 패러디입니다.^



자, 여러분의 취향은 어느 쪽입니까?




p.s. 혹시 2007년의 베스트 10이 궁금하시면:




728x90

조성민이 결국 양육권과 재산관리, 법률대리권 등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최진실이 고인이 된지 60여일만의 일이었죠. 아버지로서의 의무만을 다 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진실 사후 두 자녀에게 남겨진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조성민 측과 최진실 유족 측의 시비는 가라앉게 된 셈입니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씨가 "조성민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거둬 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조성민으로서는 상처뿐인 결말인 셈입니다. 사실 8일 나온 화해의 내용은 지난달 18일 조성민이 MBC TV 'PD 수첩'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과 거의 차이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성민은 최진실의 유족 측에게 "(유산을)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좋고, 그쪽에서 모두 맡아서 관리하셔도 좋다. 다만 아이들을 걱정하는 아빠로서의 마음만 알아 주시고, 나중에 아이들만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만 해 주시길 바란다"고 제의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성민은 당초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최진실의 유산을 가족 아닌 누군가가 맡아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이날(18일), 처음으로 재산관리에 대해 아무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양육권은 처음부터 주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조성민은 이날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막자는 마음 뿐이었는데,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에 문제가 불거져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이미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갈라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로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하지만 인터넷 댓글로 상징되는 여론은 이런 조성민의 '항복 선언' 이후에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민법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살아가면서 이 말이 의미가 있을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던 '친권'이라는 법률 용어를 거의 모든 국민이 숙지하게 됐고, 그와 동시에 우리 민법이 얼마나 '만약의 사태'에 대해 미비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 사건이 만약 법원 책상 위에 놓이게 됐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기나긴 재판이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혼한 부부 중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아버지가 자동으로 친권자가 되는(혹시나 아버지가 친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포기 자체가 인정되지 않고, 다른 한쪽 친권자 - 즉 어머니 - 가 사망함과 동시에 되살아나는) 것이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맞아 수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과연 조성민의 친권도 자동으로 부활되는 것인가(혹은 애당초 포기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는가)?

놀랍게도 의견은 너무도 다양했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선 "당연히 친아버지가 친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다소 진보적인 쪽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친권의 부활 여부를 법정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조성민의 경우처럼, 아이의 양육과 별개로 친권을 주장하는 경우 그 향방은 뭐라 말하기 힘들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혼란처럼 온 사방에서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쏟아진 말의 90%는 너무도 일방적이었습니다. 특히 소설가 김연, 여성학자 오한숙희 처럼 이혼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죠. 이 분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한번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사람에게, 법이 그냥 '아버지로서의 권리(물론 의무를 포함해)'를 자동으로 부활시켜 줘서는 안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경우만 있을까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은 단호하게 반대쪽에 있습니다. 이른바 '핏줄은 가까운 쪽일수록 끌린다'는 논리죠. '착한 외삼촌보단 못된 아버지가 낫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조성민 때문에 되찾는 쪽을 아버지로 상정해서 좀 그런데, 되찾는 쪽이 어머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죠. 부부가 이혼해 꽤 많은 재산을 가진 아버지가 아이들을 맡았고,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했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빼앗긴' 자녀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민법이 친권의 자동 부활을 부정한다면, 이 친어머니는 자녀와 거기에 자동으로 딸려 있는 재산을 놓고 남편이 재혼한 여성(아이들의 양어머니)과 법정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자, 되찾는 쪽과 빼앗은 쪽(?)의 성별을 바꿔 놓고 보면 상황이 무척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이밖에 또 다른 입장은, 이처럼 아이를 맡는 경우 '상당한 수준의 유산에 대한 관리권'이라는 보너스가 함께 따라 오는 경우가 아닌, 아무도 아이를 맡지 않으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친권이란 권리를 넘어 의무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즉 미성년자인 자녀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이 경우 '가장 그 권리를 무겁게 갖는 사람은 바로 친 부모'라는 것이 친권의 의미라는 겁니다.

물론 현재의 민법 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부모든, 양부모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서 결정에 관여한다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쪽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모처럼 이런 이야기가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을 때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런 두 개의 주장 중에서 어느 쪽이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보다 적합한 것인지, 결론을 끌어내야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친권'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경우들과, 이런 다양한 경우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처리 방안들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민법상의 친권 개념과 그 시행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런 부분들이 빠짐 없이 고려되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번 사건 내내 조성민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 부은 사람들이 과연 이번 사건이 갖고 있는 이런 다양한 측면들에 시선을 돌렸을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으로 표출되는 대다수 여론은 거의 모두 한 쪽에 치우친 주장만을 수용했고, 조성민 쪽의 이야기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사기꾼이며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심지어 한 방송 프로그램까지 최진실 유족 측의 주장만을 거의 수용해서 방송해 '조성민 매도'에 불을 질렀습니다. 남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치 눈 앞에서 본 듯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론이 비명에 간 최진실을 옹호하고 동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 경로를 살펴보면, 조성민은 내세운 주장에 비해 너무 심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돈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쳤고, 그 주장을 입증한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에게 쏟아진 매도는 대단히 부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친권'이라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조성된 여론과 관심이 과연 이 친권 이슈를 기억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될까요?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온 사회를 휩쓸었던 뜨거운 관심과 에너지가 그저 순간의 관심과 한 개인에 대한 매도로 끝나고 만다면 그저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기왕 이슈가 되었다면 그저 구호와 목청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진정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개그 콘서트'가 다시 전성기입니다. 7일 방송에서는 간판 스타 중 하나인 강유미가 '가문이 영꽝'으로 복귀해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달인'이며 '박대박'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할매가 뿔났다' 등 한마디로 현재는 버릴 코너가 없을 정도로 알찹니다.

몇번째 전성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99년 시작된 프로그램이니 내년이면 10주년. '웃으면 복이 와요'도 아니고 스탠딩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흘러든 결과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체 '개콘'의 이런 융성에 비해 다른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힘은 왜 예전같지 않은 것일까요. '개그야'나 '웃찾사'는 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일까요. '개콘'과 여타 비슷한 프로그램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명한 것은 어떤 프로그램이든 부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콘'을 원조로 하는 3대 지상파 방송사의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서 한때 '웃찾사'가 가장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고, 또 한때는 '개그야'가 지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그중에서도 '개콘'이 전성기를 누린 기간이 제일 길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게다가 '개콘'이 현재 누리고 있는 전성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청률의 급상승은 일요일 오후 10시대에서 9시대로 한시간 빨라진데 따른 이익이지만 10시대일 때도 다른 개그 프로그램들이 무너져 갈 때 개콘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개콘의 힘은 무엇일까요? 스포츠 기사에서 어느 팀이든 우승의 원인을 분석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바로 '신구의 조화'입니다. 노장이 자기 몫을 다하고, 신인이 조기에 주전으로 정착해 주면 성적 안 나올 팀이 없겠죠. 현재의 개콘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노장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 '개콘 1세대'들이 여전히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있고,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데뷔한 김병만(2002) 이수근 변기수(2003)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 김대범 강유미 황현희(2004) 등이 주전으로 만개한 상태에서 신봉선을 필두로 '왕비호' 윤형빈, '수제자' 노우진, '박대박'의 박성광-박영진, '여성학자' 박지선 등 데뷔 만 3년 이내의 신진들이 자리를 잡아 주고 있습니다. 출연진의 폭이나 활약에서 역대 어느 세대의 '개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화려한 진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다 보니 코너의 생사와 '편집에서 살아남기'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을 볼 때도 '살릴건 살리고 죽일 건 죽인다'는 편집 방침이 확실해 진 것이 눈길을 끕니다. 최근 새로운 코너로 등장했던 '뜬금뉴스', '변수무당' 코너는 신속하게 사라졌지만, 그중 반응이 있었던 캐릭터인 안상태의 '난...'과 박휘순의 '미쳤어, 미쳤어'는 '봉숭아학당2008''에 흡수됐습니다.

또 개그 코너들의 전반적인 향상에 대해선 최근 5-6년 동안 KBS가 기울여 온 코미디 개발의 노력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개그사냥'과 '폭소클럽'의 존재죠. 다양한 스타일의 코미디 개발을 모토로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되었던 프로젝트들입니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이 발굴되어 KBS의 공채 개그맨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마땅히 출연할 프로그램이 없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우기도 해왔습니다. 한때 KBS의 한 관계자는 "'개그사냥'이 싱글 A, '폭소클럽'이 더블-트리플 A, '개그콘서트'가 메이저"라는 식으로, KBS 개그의 팜(Farm) 시스템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행히도 이 두 프로그램은 모두 폐지됐습니다. 아무래도 시청률 면에서 대박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개콘'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영광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개콘'에도 위기가 올 거란 예감을 갖게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 없이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곤 대학로의 공연 무대뿐입니다. 이런 무대의 현장감각도 중요하지만, 방송 적응이라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진짜 방송 프로그램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 효과는 두통약처럼 즉각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이 등장해서 성과로 연결되기까지 3-4년이 걸린 걸 보면, 위기가 찾아오기 까지도 꽤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오랜만에 강유미가 복귀한 '가문이 영꽝', 재미있더군요. 왠지 강유미의 얼굴에서 고생(?)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728x90
요즘은 발라드 가수들도 데뷔하는 데 2-3년 이상 걸립니다. 노래 실력을 다듬느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단 '외모'를 데뷔하는데 맞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형수술도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죠. 수술 한번에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여러 차례 성형해 조각같은 얼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수의 힘은 역시 가창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노래를 하면 듣는이의 간장이 다 녹아 내리고, 듣는 순간 팬이 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똑같은 소리를 내도 어떤 사람은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펼쳐지는데 다른 사람은 목소리 곱고 음정이 정확한데도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가수는 타고 나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굴곡진 삶을 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소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주장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가수로는 위 사진에 나오는 빌리 홀리데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드리지만 주말은 재방송^^)




빌리 홀리데이는 1915년 태어나 1959년 숨을 거뒀습니다. 할아버지는 형제가 16명이나 됐던 버지니아의 노예였고, 어머니는 홀리데이를 낳았을 때 겨우 13세였다고도, 16세였다고도 합니다.

홀리데이는 볼티모어의 빈민가에서 성장했고 부모는 그녀가 세살때 결혼했지만 곧 이혼해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11세때 성폭행을 당했고 이 일을 계기로 무단결석 증세를 보여 가톨릭계의 교정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1928년 뉴욕으로 이주해서도 다시 이웃집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런 전력 이후 그녀는 한때 창녀로 일했고, 옥살이도 경험합니다. 그래도 타고난 가창력 때문에 한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자 청중들은 눈물을 흘렸고, 이로 인해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뉴욕의 수많은 클럽들을 통해 입소문을 충분히 남긴 뒤에 1935년부터는 음반으로 빛을 보게 되죠.

이후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재즈계에서 불멸의 여성 보컬로 각광받았지만 이미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고, 1959년 죽기 직전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간경화 때문에 4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죠. 하지만 죽기 1년 전인 1958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Lady in Satin> - <I'm a fool to want you>가 수록된 - 을 내놓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 건 우리나라의 다른 가수 한 분이 생각나서입니다. 예전에 거기에 대해 써 둔 글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홀리데이의 사연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 분의 사연을 알고 나면 어떻게 해서 그런 절창이 가능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편의상 이니셜을 사용했지만 짐작하기 그리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제목: 어떤 사람이 가수가 되나

S씨의 아버지는 판소리 중고제(동편제 서편제 외에도 있다)의 명창. 고모는 승무의 대가였다. S씨를 낳을 때 아버지는 이미 60대였지만 그의 제자였던 어머니는 갓 스무살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S씨를 데리고 개가를 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사내아이는 내주고 S씨와 함께 또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늘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눈물짓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자란 S씨는 매우 병약한 아이였다. 급기야 중학교때에는 심장병으로 2년 정도 학교를 쉬게 된다. 그 뒤로도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느라 학교 생활이나 교우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머니가 S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오랜 병끝에도 가정교사(흔히 S씨의 첫 히트곡의 주인공이라고들 한다)를 둘 수 있었던 걸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매사 우울하고 예민한 성격이던 그가 1979년 10월, 감히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거물급 인사가 바로 눈앞에서 심복에게 사살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 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S씨는 이미 스타가 된 뒤에 세번의 결혼을 했다. 첫번째 남편은 역술인. 그는 S를 보자 마자 "우리는 몇 세기 전부터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사이"라며 못을 박아 버렸다. S는 그의 그런 태도에 감히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자란 S는 남자를 만날 때 항상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남자를 찾았다고 한다. 권위있는 남자야말로 자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남편은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파경으로 이어졌고, 결혼 생활에 관심이 없던 남편은 아들을 쉽게 내줬다. 아이를 기르며 살던 S는 이번엔 진해 출신의 호걸풍 사업가와 재혼을 했다. 매사 순조로워보였다.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어둠의 세계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알고 보니 본처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같이 살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딸 아이는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감히 맞설 수 없었던 S는 늘 딸 아이가 눈에 선했다. 그래서 '아이야'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세번째 남편은 방송사 PD. 이미 이혼 경력이 있고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던 PD의 남자다운 리더십에 S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결국 S가 PD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남편이 사업도 망하고, 병들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편은 딸을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S는 세번째 남편에게 "딸에게 그동안 못한 엄마 노릇을 해 주고 싶다"며 딸을 미국으로 데려가 1년간 함께 살면서 음악을 가르쳤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자 두번째 남편으로부터 "딸이 너무 보고 싶으니 좀 내려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개통한지 며칠 안 된 KTX를 타고 딸이 내려가던 날, 두번째 남편은 마중을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절명했다.

S는 현재 부모가 엇갈리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다. 다행히 세번째 남편은 절세호인이라 그의 굴곡 많은 삶에도 평화가 깃들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S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겹겹이 쌓인 한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분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목소리에서 뿜어나오는 겹겹이 싸인 한에 감탄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편제의 송화도 장님이 된 뒤에 그 한이 맺혀 나오는 목소리가 더욱 절창으로 꼽혔다고 하죠. 유독 맹인 명가수들이 많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 작용을 하는게 아닐까요.

하긴 명배우 중에도 인생에 고달픈 역정이 담긴 사람들이 많이 있죠. 작가들 중에도 남다른 가족사를 가진 분들이 많은 걸 보면 '한'이라는 것이 창작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작게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연재를 했다가 > 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배우를 여왕으로 인정하기까지  (69) 2008.10.19
728x90

이 글을 처음 쓴게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정리된 이야기를 고치지 않았다는 데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조금 내용을 손봤습니다. (2022. 2. 28)

 

---------------------------------------------------------------------------------
오래 전에 스타들의 식성에 대한 얘기를 '송승헌이 설렁탕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 어떤 분이 질문을 던지셨더군요. 바로 '대체 설렁탕과 곰탕은 뭐가 다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막연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설렁탕은...이러이러한 거고, 곰탕은 저러저러한... 그런데 막상 말로 정리하려고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대체 뭐가 다르지?

궁금하면 못 참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한두성상이 아닙니다. 수사에 착수해 봤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에 대한 추적보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명 식당 이남장의 전형적인 설렁탕 모습)

일단 전문가들의 해석은 단호합니다. 많은 분들이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11권에 나오는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지적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고, 곰탕은 고기 국물이다."

맛 전문기자로 10년을 보내신 요식업계의 거물 선배 기자께도 여쭤봤습니다. 역시 마찬가지.

"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와 내장로 국물을 낸 것이 곰탕이다. 그래서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국물이 맑다. 국물이 투명하면 곰탕이라고 불러도 좋다."

명료합니다. 더 이상 토를 달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곰탕의 명가 하동관의 투명한 국물을 생각하면 너무도 명백하게 구분됩니다. 일단은 이런 설명이 정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곰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하동관 곰탕밖에 없느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동관 곰탕은 소위 서울식 곰탕의 대표라고 해야겠죠.

일단 하동관 못잖게 유명한 현풍할매곰탕이 있습니다. 영남지방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서울에도 진출했죠. 물론 원조 논쟁이 아직도 치열하지만, 일단 현풍할매곰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은 죄다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중 한 집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대체 곰탕 국물은 뭘로 내나요? 사골도 들어갑니까?

"그럼 곰탕 국물을 사골로 내지 뭘로 내요? 물론 내장도 넣고 고기도 넣지만."

전문가들은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할 때, '사골곰탕'이라는 등의 말은 민간에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상당수 지역에서는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꼬리곰탕'이라는 표현 역시 제대로 정착해 있죠. 꼬리곰탕집 치고 국물이 말간 집은(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꼬리곰탕도 분명히 곰탕이되, 뼈 위주의 국물이 나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회사 바로 옆에는 1972년에 개업했다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유서깊은 설렁탕집이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메뉴를 설렁탕으로 집중했지만, 그동안은 도가니탕과 꼬리곰탕도 함께 팔았습니다. 이 집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가 뭡니까?

"국물은 같아요. 같은 국물에 건더기가 다른 거지."

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20년 전 쯤 충북 청주의 한 식당에서 메뉴판에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주인에게 대체 둘이 뭐가 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의 증언은 이랬답니다.

"국물은 똑같소. 수육만 나오는지, 수육하고 내장이 같이 나오는지 차이지."

뭐 당시의 식당 주인이 한식 전문가는 절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이런 통념도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데 기준이 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설렁탕에는 뼈는 물론이고 소 머리와 양지머리, 기타 소의 온몸 부위가 다 들어간다. 뼈가 주 재료이기 때문에 뽀얀 국물이 특색이다. (물론 선농단 제사가 기본이 됐다는 설은 현재에는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이 서민의 음식이기 때문에 시커먼 뚝배기를 주로 쓴다. 

2. 곰탕은 기본적으로 내장과 고기로 국물을 낸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곰탕의 원형에 충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경계가 흐려졌지만 분명 원래는 '설렁탕은 뼈가 들어가 뽀얀 국물, 곰탕은 내장과 고기로 끓여 맑고 투명한 국물'이 구분의 기준이다. 또 곰탕은 태생이 양반집의 귀한 보양 음식이기 때문에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다. 

3. 어쨌든 설렁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은 그 기원이 언제든, 20세기 이후에 서울의 시장 음식(서울 구경을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틀이 잡혔기 때문에 전국으로 퍼진 뒤에도 어디서나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뼈 국물을 곰탕이라 부르는 지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라는 말 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설렁탕은 뼈 국물, 곰탕은 고기 국물'이라는 구분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음에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법'에 '소면이 들어 있으면 설렁탕, 소면 대신 당면이 들어 있으면 곰탕'이라는 말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 보니 이게 웃을 수가 없는 얘기더군요. 재료나 전통을 가지고 설렁탕과 곰탕을 정확하게 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국수의 유무만큼 선명한 구분의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설렁탕 맛집인 이남장의 경우, 설렁탕 국물(뼈국물)과 곰탕 국물(고기 국물)을 따로 따로 끓여 적정한 비율로 섞습니다. 반면 곰탕 맛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명동 하동관은 본래 고기와 내장으로만 국물을 냈지만, 언젠가부터 사골도 재료에 포함시킵니다. 물론 그 양으로 따지면 사골은 결코 주 재료가 아니고, 국물이 뽀얗게 변하지 않을 정도로만 들어갑니다. 

그렇게 점점 음식들이 섞여 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본래는 분명히 다른 음식이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을 참고하시라고 권합니다. 

더욱 깊숙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728x90
서태지가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바람에 SBS TV '김정은의 초콜릿' 출연이 무산됐다는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서태지의 특별 대우 요구 - 이를테면 사전 녹화 - 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는 했죠. 하지만 세상이 변해 요즘은 웬만한 가수는 웬만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전녹화를 합니다.

그밖에도 서태지는 까다로운 요구를 많이 하는 연예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편집권이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편집권이란 과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한일까요?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편집권이란 PD의 성역이며,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해당 PD가 'PD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을 요구해서 거절했다'는 것은 현재의 관행을 볼 때 상식 밖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방송가에선 오래 전부터 서태지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얼마든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김정은의 초콜릿' 등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TV 쇼에 나갈 때, 여건이 되는 가수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편집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이승철이며 김장훈 등 많은 가수들이 직접 편집권을 행사해왔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수들은 라이브 공연이라도 할라치면 대단히 세심하게 자신의 무대와 음향을 손질합니다. 몇번이고 조율을 하면서 스피커의 방향이나 각 악기 사이의 음량 균형을 맞춰 최고의 소리가 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TV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2,3곡을 부르기 위해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적인 여건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은 대신 자신들의 출연분을 가져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편집합니다. 물론 이미 치러진 녹음에서 손질을 하는 정도일 뿐, 새로 녹음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런 손질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음질은 놀랍게 좋아집니다. 또 녹화중의 커트나 카메라의 방향, 소도구나 인력(댄스팀이나 합창단, 심지어 오케스트라의 등장) 등도 얼마든지 PD와 가수, 혹은 제작자 사이에서 협의가 가능합니다. 물론 전체 프로그램의 편집권을 요구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분적으로 PD가 권한을 양보한다 해도 결국 프로그램의 공과는 PD가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방송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방송사가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구현해주지 못하는 좋은 품질의 방송을 위해 가수나 제작자가 노력을 보탠다고 생각하죠. 이런 걸 말릴 PD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겁니다.

이 문제 때문에 흥분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이제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서태지는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할 수도 있고,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태지가 요구한 것은 일반적으로 현재 방송가에서 'PD의 권한 침해'로 간주되는 것들은 아닙니다. 만약 출연이 없던 일이 된다면 무슨 다른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깁니다.^^


p.s. 저희 기자가 쓴 좀 긴 글을 링크합니다.

'서태지, 방송사에 까다로운 요구... 비난 받을 일인가?'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812/05/2008120516440804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728x90
'바람의 화원'이 마침내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마지막회를 남겨 둔 상태에서 소설 원작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사대결, 즉 그림 대결 장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방송계에서는 '경합이나 대결이 나오지 않으면 사극이 아니다'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대결'의 미학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한방의학 드라마 '허준'에서는 살아있는 닭의 몸에 아홉개씩의 침을 놓는 구침지희가 나왔고, '대장금'에선 끊이지 않는 후계자 선발이 열렸죠. '주몽'에서는 태자 자리를 놓고 세 왕자가 경합을 벌였고, '이산'에서는 그리 중요하진 않았지만 송연(한지민)이 화사경합에 참가해 기량을 겨뤘습니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에서의 화사경합은 '이산'에서의 경합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참가자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인 단원과 혜원이었기 때문이죠.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마저도 '그림 대결에서의 박진감 묘사에는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던 화사경합을 '바람의 화원'은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바람의 화원' 전체의 공과를 떠나 3일 방송된 화사대결은 한국 드라마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을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화사대결을 위해 지난 몇회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던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진행은 비판받아도 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조년은 정향과 윤복의 관계에 대한 질투로 사제간의 화사 대결을 벌이게 만듭니다. 이 부분에서 동기가 좀 납득이 안 가는 부분도 있고, 뭐하러 이런 짓을 벌이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최고의 가상 대결을 보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대결에 등장하는 그림은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와 김홍도의 '씨름도'. 두 사람은 김조년의 발제에 따라 '쟁투'라는 주제에 맞는 그림을 각각 그려 제출합니다...라는 것은 물론 작품의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런 대결이 있었다는 근거도, 두 그림이 같은 시기의 작품이라는 근거도 실제로는 전혀 없죠. 다만 '대결'을 소재로 한 두 작가의 작품을 갖고 이런 설정을 만들어 낸 이정명 작가의 상상력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쌍검대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것이 씨름도입니다. 두 그림 모두 너무나 유명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름도에서 동그라미를 친 부분이 바로 이 화사대결의 승부를 가를 수 있었던 김홍도의 '왼손 오른손 실수' 장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어 있지요.

알고 보면 유명 화가들도 이런 실수를 한다고 합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도 그런 실수가 있다는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12/2007111200050.html

드라마에서는 이 실수가 김홍도의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살짝 풍깁니다. 또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김홍도는 황혼을 이용하죠. 황토색과 주황색을 주로 쓴 이 씨름도가 황혼녘의 햇살을 받으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황토색 위주의 채색이 쓰인 것은 김홍도가 사실은 색맹이었다는 역사적으로 아무 근거 없는 설정과 맞물린 것입니다.

사실 김홍도는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무동도'에서도 오른쪽 아래에 앉은 악공의 손이 거꾸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 각도로도 악기를 잡을 수는 있지만, 연주를 할 수는 없겠죠.

아무튼, 장태유 PD의 사설을 풀어가는 솜씨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화사 대결을 묘사한 손길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특히 씨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홍도가 정지 상태의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장면이나 두 기생의 실제 검무 장면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만 원작에 나와 있는 두 그림의 숫자 균형 중 '쌍검대무'쪽의 7+2+7(그림의 상단, 중단, 하단의 사람 수)만을 살리고, 씨름도의 숫자 균형을 다루지 않은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날 방송이 55분여만에 끝난 걸 봐선 편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 듯 하기도 하고...

보충 설명하자면 김홍도의 '씨름도'의 사람 수 배치는 좌측 상단에 8명, 우측 상단에 5명, 중앙에 2명, 좌측 하단에 5명, 우측 하단에 2명씩입니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놓고 보면, 정확한 대칭이 이뤄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또 이 선을 따라서 배치된 사람 수는 12명, 그리고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봐도 12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숫자의 배열을 보면 불균형 속의 균형이 보입니다. 이런 계산이 다 되고 나서 비로소 '거장 김홍도'가 그려 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대결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주고 있을까요. 소설이든 드라마든, 두 사람의 대결은 무승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무승부란 신윤복의 승리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한번 얘기했듯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대화원 김홍도에 맞서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화원 신윤복이 그 시대를 넘어 지금에 와서 동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관련글은 아래 링크 참조)



당대에는 비루하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던 파격적인 화풍이 세월이 흐른 뒤에 제 값을 인정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당시의 환경에서 이런 그림을 계속 그려왔던 신윤복이란 화가의 고집을 생각하면, 이 드라마를 반체제 드라마 취급했던 지만원씨의 얘기가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농담이지만 역시 무슨 얘긴가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



아무튼 '바람의 화원'은 두 화원의 대결을 통해 지지부진했던 중반의 기억을 씻고 깔끔한 마무리를 이룰 수 있을 듯 합니다. 비록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10%대 중반을 넘지 못한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겠지만 나름대로 명품 드라마라는 이름도 얻었고, '그림그리기'라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영상으로 옮겨 놓은 최초의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람의 화원'과는 이렇게 안녕이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p.s. 위에서 잠시 얘기한 유명 화가 실수 시리즈 중의 하납니다. 이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수많은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로 일명 '14송이 해바라기'입니다. 고흐 자신이 '14송이를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라고 이 그림을 지칭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림의 해바라기는 분명히 15송이라는 겁니다. 고흐가 잘못 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





 


728x90

요즘 방송계의 가장 큰 화제는 '출연료 삭감'입니다. 배용준 2억5000만원, 송승헌 7000만원 등의 숫자가 여기저기서 들먹여집니다. 경기 악화로 인해 방송사의 수지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에, 출연료 삭감을 통한 제작비 절감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사실 예전같지 않다 뿐이지, '대출이라도 받고 싶다'는 외주제작사들과 비교할 처지는 아닙니다.

방송국의 경영 상태 악화는 가장 쉽게, 광고의 개수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시작할 때 타이틀이 나간 뒤 방송되는 전 CM과 끝나자마자 방송되는 후 CM이 있죠. 얼마전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드라마가 타이틀이 나간 뒤 전 CM이 단 한개도 붙지 않고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청률이 난조라지만 현빈 송혜교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참 처절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경기 좋을 때는 시청률이 꽤 낮은 드라마도 광고가 법정 최대치까지 꽉꽉 차는 '완판(완전 판매)'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해 사이 방송 광고량 자체가 차츰 줄어들고 있었죠. 그러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셈입니다. 오죽하면 지상파 방송사가 앞장서서 출연료를 깎자고 나섰겠습니까.

하지만 과연, 출연료 폭등만이 이런 상황의 원인일까요. 한번 생각해볼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원섭의 두루두루] 꼭 매일 세편의 드라마가 맞붙어야 했나?

왜곡된 드라마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지상파 3사 드라마 PD들이 뭉쳤다. 이들은 지난 24일(11월24일을 말합니다) 간담회를 갖고, '위기의 시작'을 지난 2005년으로 지목했다.

2005년 이후 드라마 제작 시장의 혼란이 가중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스닥 시장과 우회 상장이 유행처럼 시장을 휩쓸면서 연예계로 진출한 투기성 자본들은 단기간에 큰 폭의 주가 상승을 위해 외형을 부풀리는 수법을 썼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선 '실적'이 필요했고, 이들은 드라마든 영화든 제작을 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대외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톱스타 캐스팅이 중요하기도 했다.

그 결과 스타급 연기자들의 몸값은 끝간 데 없이 치솟고 외주 제작사들의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됐지만, 어쨌든 드라마 공급이 확대되자 방송사는 오히려 편성을 늘렸다. 공백 지역이던 금요일 밤에도 연속극이 방송됐고, MBC와 SBS는 주말 드라마를 각각 두개씩으로 늘렸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는 광고 물량이 뚝 떨어지자 이제사 방송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인식은 드라마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날 PD들은 "최근 3년간 방송된 미니시리즈 84편 중 60편이 방송사에 적자 고통을 안겨줬다"며 "적자 해소를 위해 2005년 수준으로 출연료와 제 비용을 삭감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안방극장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10시대에는 세 방송사가 동시에 드라마로 경쟁을 벌인다. 대개 승자는 하나다. 전체 드라마 중 3분의 1 가량이 시청률 경쟁의 승자라면 3분의 2는 피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적자 드라마 출현의 본질적인 원인은 매일 밤마다 세 방송사가 모두 드라마로 맞불을 지핀 데 있었던 것이다. 경제 상황만 좋았다면 세 편의 드라마를 모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광고 물량이 충분했겠지만,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곪고 있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 뿐이다.

현재 드라마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을 외주 제작사의 난립이 본격화된 2005년 이후의 상황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가장 큰 책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중이건 주말이건 똑같은 시간에 드라마를 편성해 맞불 작전을 펴 왔고,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드라마를 늘려 온 방송사의 편성 정책에 있다. 비용 절감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도 뭔가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2005년 수준으로의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2005년에도 '스타들의 고액 출연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1000만원, 2000만원 수준의 출연료도 외주 제작사들의 취약한 경영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도 계속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주제작사들은 잇달아 껍데기 회사로 변해가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은 일정했습니다. '그건 그쪽에서 출연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일어난 문제이니, 그쪽에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외주 제작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상파의 드라마 라인업에 자신들이 만드는 드라마를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 했고, 그러려면 화려한 캐스팅이 필수였습니다. 즉 '그쪽의 문제'일 수가 없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는 한 방송사 고위 간부로부터 이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무리하게 스타를 동원해 편성을 잡아 놓고, 계약서 사인을 미룬 뒤 방송 직전에 방송사를 협박하듯 해 출연료를 대폭 인상시킨 제작사도 있었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우리가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를 거절했다면 다른 방송사로 넘어갈 것이고, 거기서 그 드라마가 성공을 거뒀다면 월급 받는 입장에서 심각한 문책을 받을 일이었을 것"이란 얘깁니다.

이 이야기는 최근 3년 동안의 방송 드라마 현황을 적나라하게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외주 제작사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톱스타들을 끌어 모아 출연 승락을 받으면, 어느 방송사든 편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기를 쓰고 스타를 모으려 합니다. 스타들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몸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죠.

아주 단순하게, 방송사든 외주 제작사든 충실한 대본과 연출력을 바탕으로, '싼 배우'들을 써서 내실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톱스타 연기자, 스타 작가, 스타 PD들이 짠 진용을 거부하고 이런 드라마를 편성하는 것은 방송사의 실무자(심지어 드라마국 간부라 해도)에겐 대단한 부담이죠. 그렇게 해서 소신있게 기획한 드라마가 성공이라도 하면 대단한 선구안의 소유자로 칭찬을 받겠지만, 드라마의 성공이라는 건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일에 속합니다.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망신은 물론이고 부정을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왜 누가 봐도 성공할 것 같은 드라마를 거부하고 저런 '후진' 드라마를 편성했지? 혹시 커미션이라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1주일 내내 드라마들끼리 치열한 삼국지를 벌이게 되어 있는 현재의 방송 구도입니다. 월-화, 수-목은 매일 오후 10시부터 세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들이 격돌하죠. 현재의 HUT를 감안하면, 드라마 한 편이 시청률 20-25%를 기록하면 2등은 10-15%, 꼴찌는 7-12% 정도를 차지하는게 보통입니다. 한 팀은 행복하지만 다른 한 팀은 어정쩡,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완전히 코피가 터지는 수준입니다.

현재 주말에는 세 편의 드라마가 동시에 경쟁하는 시간대가 없습니다(재방송 제외). 드라마의 시청률도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지더라도' 주중의 세 드라마 경쟁중의 꼴찌처럼 처참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스타 출연료를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각 방송사들은 단막극, 청소년 드라마, 학원 드라마 등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이런 드라마들은 당장의 시청률은 확보하기 힘들지만, 연출자의 훈련과 연기자의 육성에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즉, 당장의 시청률 경쟁에 도움이 안 되는 장기적인 투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방송사가 분명히 한 것입니다.

출연료 삭감을 주장하는 것과 함께, 방송사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소모적인 주중 10시대의 세 드라마 출혈 경쟁 체제부터 바꿔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캐스팅이나 편성 라인업에서 한결 나은 여유를 갖게 됩니다. 드라마 편수를 줄이지 않아도, 방송시간의 앞뒤를 조정해(주말처럼) 맞물리지 않게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또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 중 일부를 위에서 말한 '육성형 드라마' 로 바꿔 놓는 방안도 있습니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 3사간 한번 합의를 하면, 서로 신뢰하고 합의를 준수할 수 있을 만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 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할 얘기는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겁니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기엔, 역시 현재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이 방송사에 있는 만큼, 방송사가 자신들이 할 몫을 먼저 해결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728x90

조니 뎁이 새로 만들어질 영화에서 젊은 날의 로저 무어 역할 물망에 올라 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그냥 듣보잡 뉴스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꽤 공신력이 있는 WENN의 기사입니다.

얘기인 즉 미국의 초대행 프로덕션 두 군데에서 로저 무어의 회고록 '내 말이 곧 본드(My Word Is My Bond)'의 영화화 판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저번에 한번 소개한 적 있는 이 책은 제임스 본드 시절의 흥미진진한 일화는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 라나 터너, 데이비드 니븐 등 1950년에서 60년대에 걸친 세계적인 스타들과의 일화들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책 관련 얘기는 이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얘기들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구미에 맞았고,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주로 본드 역할을 맡기 이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거란 얘기가 돌아다니고 있답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소식은 로저 무어의 젊은 날을 연기할 스타로 조니 뎁이 첫 손에 꼽히고 있다는 겁니다. 글쎄, 솔직히 말해 그리 닮았다고 볼만한 얼굴은 아닌 것 같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어스 브로스넌이 한 15년만 젊었어도 똑 떨어지는 닮은꼴인데 너무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곤란할 듯 합니다. '세인트' 역할을 이어받은 아이언 오질비나 최근 리메이크중인 '전격대작전'을 이어받은 휴 그랜트도 너무 늙어서 곤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젊은 피를 과감하게 수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더스트'와 '나니아 연대기'에서 판타지형 미남의 본색을 보여준 벤 번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몸에 007의 피가 흐르는 이 총각도 괜찮을 듯 합니다. 좀 낯선 얼굴이죠? 바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 션 브로스넌입니다. 영국산 꽃미남으로 쓸만할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쌍둥이처럼 닮지는 않았다 해도 조니 뎁이 하기만 한다면 불만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섹시함이나, 마술같은 변신 능력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혹시 로저 무어 본인이 마음에 안 들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신에 따르면 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하군요. WENN은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사안은 모두 극비리에 진행중이지만, 로저 무어 경은 최근 친구들에게 '나도 조니 뎁의 열렬한 팬'이라고 털어놨다"고 측근의 입을 빌어 전했습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본다면, 그 시절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해야 할테니 닮은꼴 배우들이 잇달아 등장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얘기가 될 것 같군요.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젊은 날은 누구 연기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사실 닮았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휴 잭맨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떻습니까. 정말 후계자로 부를 만 하죠?



728x90
어지간한 스타들은 미식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스타들과의 한끼 식사를 위해서는 자기가 아는 최고의 장소를 마련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정은이나 손예진처럼 아직도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떡볶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톱스타로 대접받을만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일가견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스타들이 식당을 내면 잘 되는 것은 결코 손님들이 스타들을 보러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맛'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계층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일가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수의 면모는 항상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송승헌군이 어느날 문득 설렁탕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맛에 대해 감각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그냥 그런 얘깁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나오는 이승연의 골뱅이 먹는 법, 제가 실험해 봤습니다. 얼핏 생각과는 매우 다릅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여러분도 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공지: 주말은 재방송.^^




각양각색 스타들의 다양한 미각

스타들은 미식가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스타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가 생기면 자기가 아는 한 가장 고급스럽고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자 한다. 가는 곳마다 맛난 것, 멋진 곳만 보고 다니면 자연히 기준이 높아질 밖에.

음식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스타들도 많다. 원로 스타인 신성일은 쇠고기를 먹되 살코기 쪽은 손도 대지 않고 내장을 탐식한다. 코미디언 고영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냉면 마니아. 그가 서울 시내에서 최고로 꼽는 집은 주교동 우래옥과 대한극장 뒤편의 필동면옥이다. 스물 세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아귀찜을 먹어보지 못한 김하늘은 스물 네살때 처음 먹어 본 목동의 한 아귀찜집을 잊지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간다.

물론 음식에 대해 남들에 비해 날카로운 주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송승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송승헌이지만 설렁탕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설렁탕이 나올 때, 보글보글 끓으면서 나오는 집은 다시는 안 가요. 국물에서 김이 나되 끓지는 않는 집이 맛있더라구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유도 알 수 있다. 국물이 막 끓고 있는 집은 뚝배기로 국물을 잡아 따로 끓여 나온 집이고, 김만 나는 집은 큰 솥으로 오래 오래 끓이다가 작은 그릇에 덜어 나온 집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큰 솥으로 끓이는 집 중에도 주문 받을 때마다 작은 뚝배기에 옮겨 다시 끓여주는 집이 있다는 항변이 있을 수 있지만, 원래 설렁탕은 그렇게까지 뜨거울 필요는 없는 법이다.

요리에 대한 지식으로는 명세빈도 한 몫 한다. 명세빈은 된장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주 재료를 차돌박이로 하느냐, 야채로만 끓이느냐, 멸치 국물로 끓이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면 비슷한 이미지지만 손예진은 부대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끓여는 봤는데 뭘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




연예계에는 소품으로 나온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오랜 관습이 있다. 소품을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소품을 건드리면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나온 말인 듯 싶지만,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김혜수다. 김혜수는 "내가 열일곱살 이후에는 소품으로 컸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것 저것 집어먹곤 한다.

김혜수 외에도 대부분 스타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탤런트 김소연은 중국에서 튀긴 전갈까지 먹을 정도로 비위가 좋고 성시경은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삼겹살을 따로 구운 뒤 같이 끓여 먹을 정도로 느끼한 음식에 강하다. 반면 레스토랑 경영자인 어머니와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누나를 둔 싸이는 첨단의 입맛을 자랑하지만 오이와 날 토마토를 먹지 못한다는 의외의 약점이 있다.

입맛을 살려 식당 경영으로 각광받고 있는 연예인들은 한둘이 아니다. 선우재덕은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분식점을 10년 이상 경영한 경험을 살려 파스타 체인점 <스게티>를 성공시켰다. 늘 TV 출연때마다 고기 먹는 이야기를 하는 강호동도 역시 고기집 체인 <육칠팔>로 재벌 분위기를 내고 있다. 치킨과 피자 가게로 요식업계에 진출한 박명수는 자신의 히트곡 <바다의 왕자>를 따서 해산물 전문점 <바다의 왕자>를 역시 체인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경석도 양화대교 남단에서 삼겹살과 칼국수 전문점 <경서기네>를 운영하고 있고(얼마 전 서경석씨가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집은 이제 서경석씨와 무관하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영화 <시월애>에서 자신이 살던 집 이름과 같은 대학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마레>를 경영한다. 춘천 부근에서 탤런트 정보석이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 <스타스클럽>은 아예 '정보석 카페'라는 이름으로 관광 명소가 되어 있을 정도다.



필자는 최근 이승연으로부터 특이한 '별미 식사법'을 들었다. 준비물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골뱅이 통조림, 그리고 구운 김이다. 밥 한 숟가락에 골뱅이를 하나 얹고, 김으로 싼 다음 골뱅이가 잠긴 국물에 폭 찍어 입에 넣는다. 잘 어울릴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한번만 먹어 보면 모두 승복하고 만다는 얘기. 여러분도 한번 '이승연의 미각'을 시험해보시기 바란다. (끝)


최근 연예인 중에서 요식사업으로 가장 잘 나가는 분은 아무래도 한류스타 배용준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용준은 서울에서 건강식 레스토랑 '고릴라 인 더 키친'을 성업중인데다 도쿄에서는 한정식 '고시레'로 성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고시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 일본에서 도시락과 김치(위 사진들)까지 내놓고 있죠. '그분의 밥'을 먹을 때마다 그분의 따뜻한 미소를 느끼는 일본 아주머니들의 정성이 외화 획득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아무리 톱스타들이 하는 식당이라도 맛이 없으면 망하는게 세상의 원리라는 점 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되겠죠.



728x90

'베토벤 바이러스'가 끝난지 2주가 지났습니다. 후속 드라마 '종합병원 2'도 시청률 고공 행진을 하고 있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2008년의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전망입니다. 시청률은 간신히 20%에 턱걸이한 정도였지만, 화제성과 파급력은 시청률 40%대를 넘나드는 드라마 이상이었습니다.

수천개의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졌고, 저도 이 드라마와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 캐릭터의 인기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해괴한 주장들이 발견되더군요. '우리도 강마에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강마에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하는 류의 주장들이었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에서 '강마에 리더십'이라고 부를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발견된 일이 있던가요? 실력만 좋으면 자신의 지휘하에 놓인 사람들을 그렇게 공깃돌 놀리듯 다뤄도 되고, 그렇게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일까요? 문득 20여년 전의 또 다른 신드롬이 생각났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글은 '베토벤 바이러스'에 열광한 모든 시청자들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 말했듯 '비정상적으로', '강마에 리더십'이라는 키워드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입니다. 이 점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 '강마에의 외인구단', 그렇게 마음에 드시던가요?

 1983년, 대한민국 곳곳의 만화 대본소에서는 비슷한 대화가 수없이 오고 갔다. "'외인구단' 9권 나왔어요?" "네. 나왔어요." "어디 있어요?" "지금 누가 보시는데. 줄 섰어요. 기다리세요."

이현세의 장편 극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30권으로 완간될 때까지 당대 대중문화의 코드를 지배했다. 처음에는 만화에 친숙했던 10대들이, 곧이어 대학생을 거쳐 사회인들까지도 이 만화의 영향권에 흡수돼 버렸다. 1986년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도 원작 마니아들에겐 혹평을 받았지만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떤 내용이었을까. 잠시 기억을 되살려 보자. 한국에도 프로야구라는 것이 생긴지 얼마 안 됐을 즈음, "강해져라, 그럼 아무도 너희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손병호라는 광적인 지도자가 야구계의 루저들을 불러 모은다.

주인공 까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수들은 무인도에서 손 감독의 지휘로 1년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혹독한 훈련을 받아 무적의 야구 전사로 거듭난 뒤, 꼴찌 구단과 단체 계약을 한다. 조건은 후기리그 50전 전승에 1인당 2억원씩(당시 물가로는 서울 시내 아파트 5채 값 정도 된다)의 보너스를 맞바꾸는 것. 물론 구단주는 야구에서 50전 전승이란게 가능할 리 없으니 날로 먹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차근차근 목표를 달성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스토리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손병호 감독의 메시지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돈 없고 가방끈 짧고 빽 없어서 한탄하던 사람들에게, 유능하고 집념에 불타는 지도자가 나를 단련시켜 최강의 승부사로 거듭 나게 해 준다는 얘기가 더없이 매력적인 판타지로 여겨진 거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얘기 아닌가? 최근 한국 시청자들은 어중이 떠중이 단원들에게 "이기적이 되어라. 남들을 위해 희생해서 얻은 게 뭐냐"고 강변하는 한 곱슬머리 지휘자에게 푹 빠져 있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단원들의 볼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니들은 내가 연주하는 악기일 뿐"이며, 심지어 "니들은 그냥 개고 난 주인이니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나 짖으라"고 소리친다. 이런데도 차츰 단원들은 그의 가르침에 동화되어 간다.

물론 현실에선 어림없는 얘기다. 그래도 실력은 있으니 따르는 거 아니냐고? 강마에는 커녕 카라얀이 다시 살아 온다 해도 이런 막말을 참고 견딜 단원들이 있을 리 없다. 야구 감독이라면 당장 선수들이 태업에 들어간다. 담임 선생님이 이런 식이면 교육청에 신고할 학생들이 줄을 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 전 '외인구단' 분위기 그대로 '강마에 신드롬'이 등장한 건 무슨 이유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억울한 사람이 너무 많은 거다. 즉, 내가 성공하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다. 머리 좋게 낳아 주지도, 엄청난 재산을 물려 주지도 않은 부모 탓이며, 일찌기 재벌 2세와 초등학교 동창이 되지 못한 탓이고, 욕설과 구타를 퍼부어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유능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이다.

강마에는 자녀들을 과외로 뺑뺑이 돌리는 학부모들과도 코드가 맞는다.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신경써서 교육했다면 내가 뭐가 되어도 됐을 것"이므로, "우리 애들이 나를 똑같이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혹독한 강훈으로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건 당연하다.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님이 바로 강마에였다는 걸 알아 줘야 할텐데. 글쎄다.

아무튼 온 세상이 강마에를 동경하는 사람들 판인 걸 보면 세상이 지나치게 빨리 변한다 싶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공포의 외인구단'도 내년에 드라마로 나온다던데, 무대를 입시학원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0년대의 '외인구단' 신드롬은 두 가지 면에서 전근대적인 판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옥훈련' 만능주의였죠. '실미도'에서 보듯 '지독하게 굴리면' 다들 '붕붕 날아다닐 수 있다'는 군대식 문화가 온 사회에 확산된 경우였습니다.

지금 들으면 웃어 넘길 일이지만, 고 김동엽 감독은 롯데 자이언츠(아마추어 시절의 실업 구단 이름입니다) 창단 감독을 맡아 전 선수단을 이끌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 구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해 롯데가 실업야구 우승을 차지하자 당시의 매스컴은 '스파르타식 훈련'의 미덕을 칭송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겪었던 야구인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세상에 그거보다 무식한 짓이 없었다. 감독이 뛰라는데 안 뛸수도 없고, 그 첫해 이후로 몸이 망가져서 옷 벗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이런 문화의 잔재는 지금도 사회 각계에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대표 축구팀이 졸전 끝에 패하기라도 하면 바로 "군기가 빠졌다. 더 굴려야 한다"는 비난이 쇄도하죠. 어떤 조직이든 '쥐잡듯 잡으면' 능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풀어 주면 기어 오르는' 게 세상 이치라는 논리가 거의 항상 득세합니다.

인격이나 자율성 따위를 인정하는 리더는 그날로 '나약하고 조직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딱지가 붙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강마에가 멋진 리더로 착각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욕먹는 사람들이 남들일 때 얘기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번째는 '남 탓'과 자율성의 실종입니다(남 탓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기대는 경향도 강합니다). 내가 지도자는 아니지만, 지도자는 전지전능해야 하고 청렴결백해야 하며, 인격적으로도 완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완성된 스승이나 리더가 나타나 나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용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는 리더나 스승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게 보통입니다. 내가 바람직한 인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죠. 유능한 리더의 출현을 동경하고, 그 리더의 성공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권위를 인정하는 짓은 죽어도 못한다는 이율배반입니다.

거스 히딩크의 성공을 찬양하고, 히딩크같은 지도자가 다시 없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칭찬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지도(휘)하는 사람들이 그때 '태극전사들'이 치른 파워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마구 굴림'을 시도라도 할라치면 도끼눈을 뜨는게 인지상정입니다. 어떤 지도자도 스스로 변할 의지가 없는 구성원을 드림팀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물론 동기부여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것도 베이스가 있을 때 얘기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 서서히 식어가고 있지만, '강마에에 대한 열광'은 좀 쓴 웃음을 짓게 합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요.  



p.s. 좀 생뚱맞기도 하지만 정말 찾아보니 별게 다 있군요.^^



그나자나 까치 오혜성 역으로 윤태영은 너무 건장한게 아닌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이 드라마 초창기에 썼던 글-


728x90
 

(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동방불패' 이전에도 여러번 임청하를 접했지만 그게 임청하인지 몰랐던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촉산'에서 선녀, '폴리스 스토리'에서 기업형 악당 두목 애인 역할로 이미 국내에서 꽤 많은 관객들에게 노출됐었지만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임청하였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성룡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폴리스 스토리'는 4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대단히 히트하고,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지만 사람들은 '폴리스 스토리'하면 장만옥만 기억할 뿐입니다. 1편에서 성룡과 경찰들은 한 기업형 악당을 처벌하기 위해 그의 내연의 여자인 임청하를 검찰측 증인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당연히 보호가 필요하고, 그 보호자 역할을 성룡이 맡죠. 이때부터 이미 성룡의 여자친구 역이었던 장만옥과는 묘한 긴장을 주고 받습니다. (이때의 장만옥을 생각하면, 그 뒤로 장만옥은 상당히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 영화 속의 임청하는 단발 커트였습니다.^)



(도입부에서 비탈길의 판자촌 하나를 박살내고 내려오는 카 체이싱 신은 당시로선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이클 베이의 '나쁜 녀석들 2'를 먼저 보고 이 '폴리스 스토리'를 보신 분이 있다면 꽤 충격을 받을 겁니다. '나쁜 녀석들 2' 마지막 부분에도 이를 베낀 것이 분명한 액션 시퀀스가 나오기 때문이죠. 80년대 홍콩 영화, 특히 성룡 영화의 액션은 정교함 뿐만 아니라 규모에서도 대단했습니다.)

 

주윤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1986년작 '몽중인'은 '폴리스 스토리'에 비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지만, 임청하의 존재감은 이 쪽이 훨씬 강했던 모양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국내에서는 '천녀유혼'의 대성공 이후, 그리고 '화중선' 같은 일련의 모방작들이 한 차례 쓸고 지나간 이후에 등장했던 작품이라 큰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일부 격렬한 주윤발 팬들에 의해 기억되는 작품이죠. 아무튼 이 작품에서 주윤발과 임청하는 진시황 때 서로 사랑했다가 2000년이 지나 다시 교감하게 되는 비운의 커플을 연기합니다.

80년대의 임청하를 대표하는 작품은 아무래도 서극 감독의 '도마단(刀馬旦)'일 듯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청하-종초홍-섭천문이라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한 작품에 집결했다는 것도 화제지만, 특히나 임청하는 여기서 또다시 남장을 하고 묘한 중성적 매력을 뽐냅니다. 이 작품에서의 임청하는 남성 관객들보다는 여성 팬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습니다. 어찌 보면 다카라즈카 극의 남자 주인공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는 '동방불패'의 성공 이후 '동방여신'이라는 아주 해괴한 제목을 달고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합니다. 이미 '도마단'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된지 한참 다음에 말입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도마단'이란 경극에 나오는 여장부 역할을 말합니다.

이 비슷한 시기, 홍콩발로 장국영이 한때 임청하를 짝사랑했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는 풍설이 들려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임청하라는 여배우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죠. 대체 임청하가 누구길래 '영웅본색' '천녀유혼'의 대 스타 장국영이 그렇게 힘들어 한단 말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당대 홍콩 최고의 여배우는 당연히 임청하와 종초홍이었지만, 전편에서도 말했듯 이들을 스타로 만든 멜로드라마는 한국 시장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가 생긴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결국 한국에서 임청하의 스타성이 폭발한 것은 1992년, '동방불패'가 개봉됐을 때의 일입니다. 1990년, '소오강호'의 성공은 홍콩 영화계에 김용 원작 붐과 정통 무협 붐에 불을 지릅니다. 물론 '소오강호'는 어느 정도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속편격인 '동방불패'는 주요 캐릭터들을 이어받았을 뿐 거의 새로운 작품입니다. 원작의 동방불패는 무공을 위해 거세를 하긴 하지만 영호충과 로맨스를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가 전혀 아니었죠.



하지만 영화 제작진은 이 역할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을 더했고, 임청하라는 스타에게 이 역할을 맡깁니다. 이미 '도마단'에서 임청하의 중성적인 매력이 갖고 있는 폭발력을 확인한 서극과 정소동에게 임청하를 이용한 동방불패 캐릭터의 구현이라는 시도는 정말 '바로 이거다' 싶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미 촬영 당시 나이 37세, 하지만 놀랍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있던 임청하는 이 작품 하나로 홍콩 영화의 구원자가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위 사진은 안 나오느니만 못했던 '동방불패 2'의 홍보용 사진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방불패'의 성공 덕분에 양우생 원작의 '백발마녀전', 김용 원작의 '녹정기'와 '천룡팔부' '동사서독(사조영웅문)', 고룡 원작의 '절대쌍교'가 모두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화되죠. 이들 대부분이 히트하면서, 임청하는 '정통 무협물의 여왕'으로 다시 부각됐고 70년대와 80년대를 넘어 90년대에까지, 3 decade에 걸친 스타덤을 구축합니다.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청하가 1인2역을 연기한 '동사서독'을 최근 왕가위 감독이 '동사서독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놨습니다. 이번엔 DVD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 예고편.



그러나 90년대의 임청하는 스스로 성공일로의 경력을 끊어 버립니다. '중경삼림'의 히트 이후, 임청하는 갑작스레 결혼을 발표합니다. 상대는 홍콩의 유명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 그룹의 거물인 형리원(邢李원, 마지막 글자는 火+原, Michael Ying Lee Yuen). 주윤발, 성룡 등 숱한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그의 대모라고 할 수 있는 작가 경요가 "임청하가 진정 사랑한 사람은 진한 뿐이었다"고 말했듯, 팬들은 "어쨌든 언젠가 결혼을 한다면 진한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군요.
나이든 뒤의 진한과 임청하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한, 임청하


이건 결혼 발표 보도 화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형리원-임청하 부부

 

물론 형리원과의 결혼은 임청하를 여왕 중의 여왕으로 만들었습니다. 형리원은 한때 에스프리 그룹 지분의 45%를 보유하기도 했고, 2007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40대 거부 중 12위에 올랐을 정도의 자산가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 14년 동안 가끔 잡음이 일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낳고 잘 살아왔습니다.

'에스프리 사모님'이던 시절의 임청하를 만난 사람 중 하나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송승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2001년 송승헌은 홍콩에서 서기, 막문위와 함께 영화 '버추얼 웨폰(당시에는 '석양천사'라는 한자 제목으로 불렸습니다)'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촬영장으로 임청하가 딸과 함께 구경을 왔다는 겁니다. '가을동화'의 열렬한 팬이라면서 말입니다.

 

임청하는 송승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당연히 송승헌도 응했습니다. "어려서 본 '동방불패'에서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더라"는 증언입니다. 언어 장벽 때문에 대화가 여의치 않아 "한국 배우들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다는군요.

식사를 마칠 무렵 형리원 당시 에스프리 사장이 등장해 인사를 나눴고, 이별이 아쉬웠는지 임청하는 송승헌 일행을 에스프리 본점 매장으로 데리고 가 "선물하고 싶다. 마음대로 골라라. 매장을 다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는 큰 통(?)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송군이 "그럴 수는 없다. 사양하겠다"고 예의를 차리자(물론 브랜드가 에스프리여서 그랬을 수도 있죠^^), 못내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언제든 홍콩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했었답니다.

(불행히도 송군은 이런 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찍은 기념사진은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임청하는 47세. 뭐 이 정도 모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승헌의 홍콩 촬영 회고를 통해 이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이 아마 임청하가 한국 미디어의 관심을 끈 사실상 마지막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뒤로 임청하에 대해 들려온 소식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과의 불화가 있다는 등 단발성의 잡음 정도였습니다.

임청하는 공식적으로 은퇴 여부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종초홍이 그랬듯 그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을 뿐입니다. 아마 그 자신도 중단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나레이션을 맡아 영화계와의 끈을 완전히 놓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다시 한번 일선에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합니다. 임청하가 일선에 복귀한다면, 그가 시발점이 되어 지난해 남편의 사망으로 거액의 유산 상속자가 돼 화제를 모았던 종초홍이나 소식도 알 수 없는 섭천문 등이 장만옥과 유가령 등 아직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왕년의 전설적 여배우군에 합류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보너스샷.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노래가 빠지면 안되겠죠? 장국영이 부른 '백발마녀전'의 주제가 '홍안백발'의 MV.



이상입니다.




임청하 지난 이야기를 못 보신 분은 이쪽으로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왕조현편입니다.

전편



후편입니다.

 





728x90

사실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 중 이걸로 진짜 돈(돈이라고 생각되는 액수의 돈)을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해외에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버시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그 정도 되는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블로그에는 두가지 광고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유명한 구글 애드센스고 또 하나는 다음 광고입니다. 매커니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는 클릭을 하면 돈이 되고, 후자는 눈으로 보면 돈이 된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구글에서 난생 처음 수표를 받아 봤다는 얘기는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궁금해서 여기저기 엿보고 다녔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블로그 트래픽은 이 블로그의 1/10 쯤 되는 분들이 한 10배쯤 되는(여기서 뻥이라는게 들통난다)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겁니다.

이유가 뭘까 찾아보니 '타겟의 중요성'이라는게 부각되더군요. 검색을 쓰든 추천을 쓰든 어떤 토픽에 관심있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에 맞춰진 광고가 제공된다는,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블로그는 도대체 돈 될 여지가 없군요. 다이어트법 소개도 없고, 성형수술 후유증 얘기도 없고, 현명한 대출방법에 대한 내용도 없고... 여기까지가 한계인가봅니다.

아무튼 결론은 그냥 '포스팅이나 하자'였습니다. 뭐 이걸 해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의 심정이 되는 거죠. 그렇다고 광고를 떼 버리거나 하는 과격한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구요.

혹시 기업체 근무하시는 분들 중에, 이 블로그에 내면 적당할 것 같은 광고 아이템 같은 게 있으시면 말씀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사람은 많이 오니까요.

안정된 수입이 확보되면 회사를 관둬 버릴 수도 있고 뭐 그렇게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혹시 이런 툴을 어디론가 이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냥 오늘 포스팅 안 한 김에 이런 걸로 하루 때우자는 뜻도 있죠.)

'블로그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식은땀  (28) 2009.01.05
진정한 낚시를 원하신다면  (28) 2008.12.26
감사합니다. reunion.  (35) 2008.11.08
확인사살, D-1  (22) 2008.11.06
새집 첫 모임: 1107  (42) 2008.10.28
728x90

얼마 전 영화 '화피' 때문에 왕조현에 대한 옛 기억이 되살아났는데, 이번엔 임청하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벌써 14년이나 됐군요. 임청하는 최근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동을 주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몇 차례 컴백설이 흘러나온 적이 있지만, 대개는 임청하의 이혼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곁다리로 나온 소식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혼설은 전혀 거론되지 않고 컴백 가능성만이 부각되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임청하를 촬영장으로 다시 끌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나이 54세. 대개의 여배우들이 50대가 되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게 정상일 겁니다(간혹 과도한 성형 수술이나 미용 시술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1954년생인 배우들로는 성룡과 존 트래볼타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연배 여배우가 컴백 하건 말건, 누가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임청하는 다르더군요. 대체 그 전설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한번 돌아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0년대 홍콩영화를 대표한 것이 성룡을 중심으로 한 코믹 액션과 '영웅본색'으로 대변되는 느와르의 흐름이었다면, 90년대는 시대극을 표방한 리얼 액션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는 1991년작 '동방불패'와 임청하가 있었죠. 이 시기의 홍콩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임청하와 '동방불패', '백발마녀전', '신용문객잔'과 '동사서독'을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임청하는 그 시기에 이미 30대 후반(37세)의 나이였죠. 그때까지 임청하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많은 한국 팬들은 임청하를 '젊은 날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다 나이 먹어서 뜬 배우' 정도로들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국에선 잘 몰랐지만, 임청하는 70년대부터 이미 중국어권을 통틀어 여배우 중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임청하는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났고, 1972년 경요(瓊瑤) 원작 영화 '창외'에 캐스팅됩니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탓인지 '17세'로 소개되기도 했군요.

 

이때부터 미모가 각광을 받아 일약 대만의 톱스타가 됩니다. 특히 대만 최고의 인기 작가 경요(흔히 '대만의 김수현'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주로 남녀간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 발표하는 족족 메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죠)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가 될 때 응당 주인공은 임청하가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경요의 소설과 영상 작품들은 대만에서뿐만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동남아 일대는 물론 중국 본토와 해외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이면 어디서나 인기 폭발이었기 때문에 임청하의 스타덤은 일찌감치 국제적이었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스무살도 되기 전에 온갖 남자들의 구애로 요란한 스캔들이 시작됩니다.

 

임청하의 오랜 스캔들 중 첫 남자이자 끝까지 가는 남자는 바로 진한(秦漢, 1946년생)입니다. 이 스캔들이 절정에 올랐을 때에는 진상림(秦祥林, 1948년생)과의 삼각관계가 온 중국계 호사가들의 관심사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역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어권에서는 당대의 미남 톱스타들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배우들이 잘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내에서 흥행이 되는 중국어권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쿵후 액션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멜로드라마형 스타들은 드러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거죠. 아비와 진추하 주연의 '사랑의 스잔나' 같은 경우가 좀 드문 예외였고, 진추하조차도 그 이후의 스타덤을 이어 갈만한 히트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왼쪽이 진한, 오른쪽이 진상림.)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만 드라마. 초반 몇분은 그냥 지나치면 얼음여왕님의 앳된 비키니 장면이 나옵니다. 제목은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진한.





임청하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는 세 스타가 공연한 1976년작 '아시일편운(我是一片雲, 역시 경요 원작)'에서 최고조에 달합니다. 여기서 승자가 되는 진한은 국내에서는 관금붕 감독,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에 중간 정도 비중으로 얼굴을 비춥니다. 이에 비해 진상림은 국내 팬들이 이름을 몰라서 그렇지 얼굴은 꽤 알려진 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뒷날 성룡, 홍금보와 함께 80년대에 '오복성' '복성고조' '하일복성' 시리즈에 참여하기 때문이죠. 다섯 멤버 중 얼굴만 번드르하고 실속은 없는 바로 그 남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간 네 사람 중 맨 오른쪽이 진상림. 옆의 배우 이름에도 성룡, 홍금보, 종초홍과 함께 진상림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아무튼 국내에 임청하가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은 1978년작 한-홍콩 합작 '백사전(眞白蛇傳)'인 것으로 보입니다. 흰 뱀이 변한 여자가 인간의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지만 요물을 용서하지 않는 인간들에 의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슬픈 전설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하고, 뒷날 왕조현 장만옥 주연의 '청사'와도 사실상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도 진상림이군요.

임청하가 언제 홍콩으로 본격 진출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977년 쇼 브라더스 영화 '홍루몽'에도 나오는 걸 보면 교류는 일찍부터 있었을 듯 합니다.

이한상 감독의 '홍루몽' 앞 부분입니다. 이때부터 소년 역으로 나오니 임청하의 남장은 정말 역사가 길다고 해야겠죠.




1980년, 당대의 검술 액션 1인자 정소추와 공연한 1980년작 '정인간도(情人看刀)'가 히트할 무렵에는 스타덤의 중심지가 대만에서 홍콩으로 이동해 있습니다. 그리고 1982년, '미니특공대(迷니特攻隊)'로 더 이상 멜로 스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직히 1985년 국내에서 '대복성'이란 제목으로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본 저로서도 이 영화에 임청하가 무슨 역으로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만들어진지 3년이나 지나 개봉된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원제와 전혀 무관한 '대복성'인 이유는 '오복성'의 히트 때문이라는 건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룡과 왕우, 정소추와 임청하 등 호화 배역진이 출동한 이 영화의 배경은 참으로 황당무계합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열대지방의 전선(?)에서 뭔가 미션을 이행하기 위해 왕우가 인솔하는 특공대가 길을 떠납니다. 특공대원 중 성룡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죠. 네. 리 마빈 주연의 '특공대작전(Dirty Dozen)'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길을 떠난 뒤로 여인족(?)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귀신나오는 집(?)에서 귀신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아무튼 결말은 장렬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 영화 보신 분들 있나요? 영상을 보시면 기억이 좀 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복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니까 순서대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국내에서 임청하를 볼 기회는 1978년 개봉된 '백사전', 1983년의 '촉산', 그리고 1985년의 '대복성'과 '폴리스 스토리'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역할은 '촉산'이죠. 물론 이때까지도 '악의 화신이 된 정소추 때문에 번민하는 예쁜 그녀' 정도로만 기억될 뿐이지 임청하라는 이름은 전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중반까지밖에 못 왔는데, 예상대로 너무 길어지는군요. 이번엔 이 정도에서 끊겠습니다. 나머지 얘기들은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 편입니다.



대개 이런데 관심이 있으면 다음 글들도 관심이 가시겠죠?

전편



후편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