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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를 꽤 기다렸다. 2023년 연말,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예고편을 보고 와 정말 할리우드는 다이내믹하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미국 개봉도 4월로 늦어지고(아마도 예측 불가능한 미국 대선과 정치적 상황이 편집 과정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12월31일에야 개봉이 이뤄졌다. 

미국은 대략 160년 전에 내전(civil war)을 겪은 나라다. 여러가지 이유로 연방을 박차고 나간 남부 연합을 상대로 대통령은 탈퇴 불가를 선언했고, 결국 전쟁이 터졌고, 연방의 승리로 미국은 다시 한 나라가 되었다. 나라를 지켜낸 대통령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워싱턴엔 미국의 신전같은 기념관이 세워졌다. 

 

영화 <시빌 워> 속 미국은 좀 다르다. 적극적으로 분열을 부추기고 독재에 나선 대통령에 맞서 나라가 여러 갈래로 분열되었고,  그중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힘을 합친(사실 영화 속이니 가능한 조합이다) 서부군이 워싱턴을 위협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시작 부분. 뉴욕에 머물던 베테랑 저널리스트 리(커스틴 던스트)는 서부군의 우세 속에 워싱턴에 고립된 대통령을 인터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전쟁의 끝을 보기 전, 벙커에 숨은 독재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할지가 가장 세상이 궁금해 하는 뉴스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가능만 하다면야 누군들 1945년 8월의 히틀러를 인터뷰하고 싶지 않았을까). 

 

역시 베테랑인 동료 조엘과 둘이만 갈 계획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은퇴를 앞둔 노장 새미, 그리고 종군기자를 꿈꾸는 스무살 안팎의 제시가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리와 제시

보고 난 느낌: 저널리스트를 앞세운 것은 탁월한 판단. 미국의 내전을 '미국인 종군기자'의 눈으로 지켜보게 한다는 시선이 좋았다. 내전을 누가 일으켰는가, 내전의 대의명분은 어느 쪽에 있는가, 누가 어떻게 전쟁 후의 세계를 건설하는가는 영화 밖에 있다. 전쟁이 일어난 뒤 벌어질 일들과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랙스 갈랜드는 냉철하고 차분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2025년이 방금 시작했지만 올해 연말에 꼭 넣고 말 수작. 강추한다. 

(아울러 마지막 30분 정도에 걸쳐 벌어지는 시가전 장면은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 속 교전 장면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훌륭하다. 실제 전쟁 속에 들어가 아드레날린에 중독되는 제시의 마음 속을 이해할 수 있는 명장면이 이어진다. 대강 엑스트라들에게 자동화기만 쥐어 주면 저절로 총격 액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몇몇 영화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 영화가 시작될 때, 전쟁중인 미국은 어떤 형국인가?

미국 개봉때 만들어진 자료 중 하나가 가장 정확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대략 4개 정도의 큰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고,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서부군(Western Forces)과 충성파(Loyalist States)사이의 전쟁이다. 충성파는 현 대통령과 그를 중심으로 한 미 합중국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것이고, 서부군은 대통령의 독주와 헌정파괴에 대한 항의로 독립을 선언한 세력을 말한다. 

 

2. 서부군의 주력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로 되어 있는데 이건 무슨 얘긴가. 

영화 막판에 공개되는 서부군의 깃발. 미국 국기에서 50개의 별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두개의 별이 있다. 두 별은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의미하고, 이 깃발에 13개의 붉고 흰 줄이 있는 것은 이 깃발을 지지하는 자들이야말로 미국 독립 당시 13주의 정신, 즉 미국의 헌법과 수정헌법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두 주의 깃발에 모두 별이 하나씩 들어 있기는 하다. 

사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하나로 힘을 합친다는 것 자체가 농담이다. 캘리포니아는 가장 확실한 민주당 지지 주고 텍사스는 공화당, 특히 트럼프 지지의 중심 거점이기 때문이다(특히 이민 문제에 있어, 멕시코 접경인 텍사스가 가장 강경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런 두 주가 힘을 합쳐 괴물 같은 독재자 대통령에게 대항한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특정 정파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감독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알렉스 갈랜드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 속 대통령이 트럼프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물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3. 그럼 영화 시작 시점의 뉴욕은 어느 파벌의 소속인가?

지역적으로 동부 끝인 뉴욕은 당연히 충성파 지역이어야 하겠지만 영화 속 설정은 뉴욕의 특수성(UN 본부가 있는 국제 도시)을 감안한 중립 지역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수시로 정전되고 길에서 물 배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화 속에서 기자들이 머무는 호텔과 로비(기자 클럽?)는 교전지역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에서 베이루트나 사이공의 외신기자들이 머무는 호텔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도 그런 느낌을 주려는 것이 연출 의도였을 것이다. 여기서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면서 속으로는 특종 경쟁을 하는 기자 집단의 아지트 같은. 

4. 뉴욕에서 워싱턴을 가는데 며칠이 걸린다고?

영화 속에서 '고속도로는 파괴되고, 교전지역을 피해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뉴욕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거리는 233마일(약 375km) 정도라 대략 네 시간이면 차로 주파 가능한 거리지만, 영화 속 이동 거리는 857마일, 약 1379km 정도다. 워싱턴을 포위하고 있는 최전선을 우회해 펜실베이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를 거쳐 둘러둘러 갔다는 얘기. 

서부군의 사령부가 설치되어 있다는 샬러츠빌 Charlottesville 이 워싱턴 DC 전의 최종 목적지로 되어 있는데(새미와 제시를 내려놓겠다고 리가 마음먹었던 곳), 이 샬러츠빌도 워싱턴 DC 보다 훨씬 남서쪽 아래에 있다. 

 

 

[스포일러 경고.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일단 보시고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사람 따라 취향도 각각이라, 일단 난 다 알아도 상관없어 하는 분도 있는데, 아무튼 나라면 나머지는 영화 보고 와서 읽어볼 듯.]

 

5. 그래서 어느 쪽이 좋은 쪽인가 

영화 속에서 어느 편이 어떤 이념으로 누구를 죽이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두고 있지는 않다. 영화 속 리와 노엘의 집단도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과, 어떤 지역에서는 군복 입은 쪽을 상대로 싸우는 민병대 같은 복장의 집단과 주로 소통한다. 그나마 이들에게 다행인 것은, 양쪽 집단 모두 저널리스트 혹은 프레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용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세력이건 자신들의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와 명분 쌓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일 듯. 아울러 '후세에 물려줄 자신들의 모습'을 저널리스트들이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결론은 누가 정의인지는 제작진이 구분할 의사가 없다는 쪽. 저널리스트들과 소통하는 민병대 세력이 유색인을 다소 포함하고 있고, 백악관 진입 세력을 흑인 여지휘관이 이끌고 있지만 대통령 경호실을 대표해 나온 경호원도 흑인이다. 

6. 인종차별이 영화 속 이슈인가?

노엘의 아시아인 동료들을 사살하는 백인 병사(아이러니컬하게도 커스틴 던스트의 진짜 남편인 제시 플레먼스)를 보면 인종주의는 이 전쟁의 이슈 중 하나지만, 드러난 이슈는 아닐 것 같다. 만약 이게 그렇게 부각되는 이슈였다면, 아무리 목숨 걸고 막 나가는 두 동양인 저널리스트들이라 해도, 교전지역으로 그렇게 대책없이 들어가지는 않지 않았을까. 

(혹은 그런 명시적인 경고도 무시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병사가 말하는 '리얼 아메리카'는 최소한 아시아계 이민을 '미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인종주의가 전쟁의 원인이었다기 보다는, 영화 앞부분에서 린치가 자행되는 시골 주유소의 모습처럼, 헌법이 무시되고 질서와 공권력이 사라진 공간에서는 개개인의 편견과 본성, 총 든 자가 정의라는 원시적 폭력성이 무한대로 제약 없이 노출될 수 있다는 삽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7. 대통령의 죽음과 조엘의 질문이 뜻하는 것은.

연장선상에서, 하나의 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관용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 내란의 주범이며, 더 이상의 발언권을 보장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만, 조엘은 저널리스트로서, 이 역사의 현장에서 전쟁의 한 주역인 대통령에게 마지막 코멘트를 요청한다. (사실 이들의 목적이 바로 전쟁의 막판에 몰린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진영을 이끌던 수장 치고는 참으로 비겁한 한마디밖에 들을 수 없었다. "나 죽이지 말라고 해줘. Don't let them kill me." 그동안 온갖 수사로 강한 모습을 보였던 권력자가, 끝까지 측근들을 앞세워 목숨을 구걸하고 결국 이렇게 비루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다니.... 라는 갈랜드 감독의 조소가 담겨 있다. 

 

8. 리는 왜 그렇게 최후를 맞나.

몇 차례의 사건을 거치며 제시는 변한다.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인 만큼, 아드레날린 분비로 겁도 없어진다. 리가 보기에는 '그 일'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다. 목숨도 아깝지 않다. 반면, 이런 과정을 모두 겪었을 리는 새미의 죽음을 겪은 뒤 모든 것에 염증을 느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워싱턴 진입 후에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한다. 

결국 마지막 희생은 '제발 너도 나처럼 되지 마. 무감각하게 스릴에 중독되어 판단 없이 뛰어들지마' 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설명된다. 물론 리가 쓰러진 뒤에도 제시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총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들어간다. 리의 메시지는 전해진 것일까, 아닐까. 그건 한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과연 저널리즘이란 뭘까. 저널리스트란 뭘까. 전쟁터에서 누구의 편도 아닌 채, 총든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인가. 네 편도 내 편도 아니라는 것이 이제 의미가 있는 시대인가. 쓰러진 리의 모습이 던지는 질문들. 

(사실 쓰러진 리는 방탄조끼같은 것을 입고 있었고, 어쩌면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다. 이 또한 분명치는 않다.)

9.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대체 뭘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듯,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이 꼴 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이민의 나라'에서 빗장을 걸어 잠그는 현실, 다양성에 대한 거부, 대놓고 지지세력에게 폭력을 선동하는 대통령, 과연 이런 불확실성이 문명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설정에 대한 해설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깊다고 본다. 적의 수괴를 사살하고 만세를 부르는 서부군 병사들. 과연 이 사건 이후의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10년 뒤, 30년 뒤에 그 장면을 찍은 제시의 사진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까. 폭군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승리의 상징으로 남을 지, 아니면 이유야 어쨌든 야만의 도래와 문명의 후퇴를 알리는 신호로 여겨질지. 

워싱턴에 진입한 서부군이 첫 시가전을 벌이는 장소가 하필 링컨 기념관이다. 링컨 기념관 기둥 뒤에 숨어 저항하는 수비대나, 거기에 화력을 퍼붓는 서부군이나. 링컨, "내가 이 꼴을 보려고 그렇게..."

 

 

 P.S. '내전'은 좀 민감했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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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영화보다는 드라마를 더 많이 봤고, 물론 드라마라는 장르 특징상 1,2회 보다가 때려 친 것도 많고, 일단 완주한 것 위주로 꼽아 봤습니다. 영화나 마찬가지로 순서는 무의미. 맨 위에 있다고 1등이라는 뜻 아닙니다. 

물론, 제목에도 있지만 기준은 개취입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작품이 꽤 많았네요. 

졸업

대치동. 학원에서 장학금까지 줘 가며 성공 사례로 잘 키운 우수한 학생이 어느날 대기업을 때려치고 대치동 일타강사가 꿈이라며 돌아온다. 대체 왜? 제일 반대한 건 그 학생을 키워 오늘날 일타강사가 되어 있는 여선생. 그리고 그 둘은... 뭐 그 뒤는 안 봐도 알 것 같겠지만, 이 시대의 드라마 장인 중 하나인 안판석은 어찌 보면 뻔한 연하남-연상녀의 러브 스토리 속에 학교, 청소년, 수업, 장래, 꿈, 교육, 이 시대의 가장 무겁다 싶은 키워드들이 생생하게 뛰어놀게 했다. 지금이라도 찾아 보시길. 려원의 재발견도 놀랍다. (tvN - 티빙)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졸업, 당신의 염치는 안녕하신지 묻는 드라마

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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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거나 나쁜 동재

'이런 드라마가 있었다고?' 하실 분이 적지 않을 듯. 이 재미있는 드라마를 모르는 건 고사하고, 심지어 동재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하긴 사람에 따라서는 <비밀의 숲>조차도 들어본 적 없는 마이너 드라마 취급을 받으니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좋거나 나쁜 동재>는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좋지도, 딱히 나쁘지도 않은 성정의 주인공이 끝까지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실상 최초의 드라마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미드에 비교하자면 한국판 <Better Call Saul>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지금 바라는 건 동재2건 비숲3이건, 이 유니버스가 계속 이어지는 것 뿐. (티빙 오리지날)

 

지배종 

역시 이런 드라마는 처음 들어 보시는 분이 많을 듯. 디즈니 플러스가 반성해야 할 이유 중 하나. 미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한국의 신기술기업이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고, 그 회사의 존재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이수연 작가의 본격 SF로는 두번째 시도라 할 수 있겠는데, 여러가지로 아쉬웠던 <그리드>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매끄러워졌다. 한효주-주지훈의 호흡도 제대로다. 그런데, 이수연 월드에서 이 정도의 주인공 커플은 사실상 처음 아닌가? (디즈니)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지배종, 새로운 한국 드라마의 또 다른 시작

이라는 새로운 드라마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이수연 작가의 작품이고 한효주 주지훈이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작품이 한방에 다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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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올해 가장 할 얘기가 많았던 드라마. 임진왜란 2년 뒤인 서기 1600년, 일본의 미래를 건 다이묘들간의 최종전이 펼쳐진다.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휘하에는 영국 항해사 출신의 사무라이가 있었다는 것 까진 실제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고, 이걸 제임스 클라벨이라는 아시아 덕후 작가가 소설로 쓰고(일본의 역사적 인물들은 모두 이름을 고쳤다), 그걸 미국 제작자들이 1980년에 만들어 히트하고, 2024년에 다시 만들어 또 히트시켰다. 디즈니 플러스 사상 최고 히트작이라나. 

백인들이 쓴 얘기다 보니 영국인 주인공의 눈으로 센고쿠시대의 끝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1980년과 2024년은 비교할 수 없는 시대인 것 같지만 내용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은 거의 차이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이 드라마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워낙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당대에 할 수 없었던 화려한 미술과 특수효과가 놀라운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은.... 아무래도 1980년판의 배우들보다 못한 느낌이. 물론 개취. (디즈니)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디즈니 플러스의 10부작 . 드라마 한편을 보고 나서 이렇게 할 얘기가 많은 작품도 정말 오랜만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배경은 서기 1600년의 일본. 타이코(태합) 나카야마는 1598년 사망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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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에미상을 휩쓴 쇼군, 1980 vs 2024

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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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태양은 가득히>에서 <리플리>까지, 이미 두 차례의 굵직한 영화로 친숙해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이번엔 흑백 드라마로 만들었다. 왜 하필 흑백인가, 왜 하필 이번 주인공은 왜 이렇게 늙고 못생겼나 싶기도 하지만 단 한회만 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사기에는 별 소질 없는 리플리가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서사. 1950 혹은 6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도 일품. 2024년의 드라마로 단 한편을 찍으라면 여기에 투표할 것 같다. (넷플릭스)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리플리, 흑백 영상이 이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처음 공개됐을 무렵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를 보다가 에 눈길이 갔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를 써서 두번이나 영화화된 작품. 그걸 심지어 드라마로? 결과 다 아는 얘기로 8부작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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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여왕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란 종목이 있기는 했지만, 일본만큼 뭔가 제대로 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이 드라마는 1980년대 초, 일세를 풍미했던 악역 전문 레슬러에 초점을 맞춘다. <극악여왕>을 먼저 보고 <정년이>를 보게 되니 어찌나 그 정서가 비슷한지. '그리 팬시하지 않았던 과거의 유행을 오늘날의 시선에 맞춰 팬시하게 바꿔놓은 무대'라는게 2024년의 트렌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나 공들여 찍은 액션 신이 일품인 반면, 그렇게 공들여 찍은 장면을 차마 편집할 수 없어 너무 길어진 액션신이 단점이기도 한 묘한 드라마다. 그렇지만 강추. 개인적으론 오랜만에 보게 된 카라타 에리카도 반갑기 그지없네.  (넷플릭스)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극악여왕, 과거를 살려내되 오늘날의 감각으로.

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 있었다. TV에서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을 중계방송하던 시절, 오프닝으로 여자 경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선 여자 경기가 오프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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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2

1편을 추천했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오히려 2편에서 이야기가 더 진화했다. 워싱턴의 정치 구도 속에서, 직업 외교관이면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을 제치고 주영 미국 대사가 된 주인공.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이라는 '영원한 같은 편'이면서 '어딘가 그래도 낯선' 나라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물론 드라마인 만큼 이 안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실제라고 오해해선 안되겠지만, 충분히 몰입할 만한 전문성이 담긴 대본과, 그걸 소화해 내는 배우들에 대한 존경이 앞선다.  특히 주인공 케리 러셀의 캐릭터 창조가 압권이고, 루퍼스 시웰을 비롯한 영국 배우들이 탄탄하다.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

미국 서부의 전설 와이어트 어프는 유명한 'OK목장의 결투' 사건으로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총잡이가 되는데,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결투로 악을 물리친 보안관은 오히려 공권력으로 시민을 압박한 악당으로 몰리고, 그 정서의 배경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지역감정이 있고, 대륙을 철도로 관통하려는 자본가들의 동기가 있다. 

거의 정석적인 선과 악 대결 스토리로만 알려졌던 이야기에서 이런 중층적인 분석이 나오다니.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오가는 형식이 너무나 적절했던 걸작. (넷플릭스)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와이어트 어프, OK 목장은 시작이었다.

'OK목장'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의 목장이 실제로 미국 아리조나주 툼스톤에 있었고, 와이어트 어프라는 유명한 보안관이 전설을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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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영국 MI5에는 007만 있는게 아니다. 거기서 일 못하는 걸로 찍힌 요원들은 시내 슬럼가의 허술한 사무실에서, 도저히 '본사'가 처리할 수 없는 허드렛일들을 수행하게 된다(설마 실제로 이런 건 아니겠지). 그 부서로 가 있는 루저들을 '본사'에서는 슬로 호시스, 즉 느린 말이라고 부른다. 

그 느린 말들의 보스가 게리 올드먼. 물론 이게 드라마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그 느린 말들이 수트를 빼입은 본사 요원들이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척척 해결해 낸다. 왜? 리더가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느린 말들이 정말로 무능하다기 보다는 너무나 개성이 강하다 보니 본사의 딱딱한 관료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거였기 때문에. 긴 말이 필요 없다. 문제는 한번 발을 들이면 시즌5까지 도저히 발을 뺄수 없다는 것. 역시 만두는 중국에서, 소프라노는 발트해 연안에서, 그리고 스파이 드라마는 영국에서 찾아야 제대로다. (애플티비)

가족계획

지난해의 <소년시대>에 이어 쿠팡도 연말에 한칼을 보여줬다. 김곡/김선 콤비의 새 작품.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두 10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인데 - 사실 진짜 가족인지도 좀 의심스럽지만 - 각 개인의 개인기가 어지간한 나라 하나는 말아먹을만큼 무시무시하다. 당연히 조용히 살고 싶은 가족인데, 하필 정착한 지역에도 만만찮은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다. 정의구현 같은 걸 하고 싶은게 아닌데 강제로 정의구현을 하게 되는 이야기야말로 이 시대의 정서.

작품 특성상 잔혹한 장면이 적잖게 등장하지만, 그만치 웃긴다. 올해 가장 시원한 드라마. 탄산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 (쿠팡)

 

그리고 그밖에 꼭 언급해야 할 드라마들

중간에 흐름이 좀 요상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 <정년이>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 안 끝나 뭐라 할 수 없지만 <옥씨부인전>도 그 줄에 충분히 들어설만 한 작품. 

넷플릭스 드라마로는 위에 든 세 편 외에는 사실 취향인 작품이 없었고, <삼체>가 볼만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추천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시즌2는 없을테니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으시는게 좋을지도. 

넷플릭스가 양으로 민다면 애플티비는 질로 앞선다는 세평이 있는데, 물론 개인적인 취향으로 애플티비는 너무 무거운 작품이 많다는 게 약점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테드 라소 3>(이 얘기를 이제 하는 걸 보면 애플티비를 한동안 외면했다는 걸 눈치채실듯)는 역시 걸작이었고, 원제가 <Shrink> 인 <맵다 매워 지미의 상담소>가 딱 취향이었다. 물론 케이트 블랜칫의 <디스클레이머>도 딱 취향은 아니었지만 볼만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2025년쯤에나 한번 다시 살려 볼 생각)

 

그리고 드라마 아닌 시리즈들도 한번 언급하자면,

더 커뮤니티

이런 소재로 이런 신선한 리얼리티 쇼를 만들 수 있다니. 이 쇼를 아직 모르는 사람은, 여기서 길게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주 시민의 자격이 없다. 벤자민 화이팅. 

곽튜브의 기사식당

왜 그렇게 여행 프로그램이 많은데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적을까. 역시 이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진정성'을 설명해주는 교과서. 

흑백요리사

설명이 필요 없는 2024년의 빅 콘텐트. 물론 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외식업계나 고급 레스토랑업계가 살아날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좀 과했지만,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던 프로그램이라 불러 손색이 없다.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흑백요리사, 콜로세움을 허물다

수만개의 품평이 올라오고 있는 . 굳이 말을 보태기보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김.[주: 지난 9월28일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늦었지만 옮겨 봅니다. 당시의 느낌을 보관하기 위해. 사실 드라마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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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해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려 고민하시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1년 동안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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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개됐을 무렵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왔습니다.]
 
<삼체>를 보다가 <리플리>에 눈길이 갔다. 이미 세계적인 스타를 써서 두번이나 영화화된 작품. 그걸 심지어 드라마로? 결과 다 아는 얘기로 8부작이나 할 얘기가 있겠어?
 
하지만 감독과 각본을 겸한 스티븐 제일런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오스카 각본상/각색상 후보에 5회나 올랐던(1회 수상, 쉰들러 리스트) 대가의 말씀인데 누가 감히 토를 달았을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8회를 넋놓고 정주행했다.
 
 
앤드루 스코트는 개인적으로 <셜록>의 모리어티 교수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배우. 그가 리플리 역을 하기에는 너무 늙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 한데, 사실 리플리 역을 했던 배우들 중에는 존 말코비치도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마셨으면.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알랭 들롱의 그림자가 워낙 커서 그렇지, 솔직히 맷 데이먼도 그닥 꽃미남 계열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제작진도 18년 차이 나는 다코타 패닝과의 로맨스는 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이번 작품에서 이 부분은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마지라는 캐릭터가 리플리가 디키에게 갖는 동경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은 좀 아쉬운데, 그 밖에도 앤드루 스코트의 리플리는 보여줄 것이 많았다.
 
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이 작품의 리플리는 사기꾼의 재능이 매우 떨어진다. 능력보다는 동기가 앞서고, 충동적인 시도가 겹쳐지다 보니 스스로도 내릴 기회를 놓친 비극의 주인공이다. 일단 사고를 쳐 놓고 고민하는 리플리가 신선했다.
 
옆엣분은 이탈리아의 멋진 풍광이 흑백 영상에 갇힌 게 매우 유감이라는 평을 남겼는데, 개인적으로는 펠리니와 데 시카의 이탈리아가 다시 살아오는 듯한 느낌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뭣보다 계속 인용되는 카라밧지오. 화면의 미학적으로도 근래 보기힘든 걸작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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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목장'이란 이름은 어린 시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우스꽝스런 이름의 목장이 실제로 미국 아리조나주 툼스톤에 있었고, 와이어트 어프라는 유명한 보안관이 전설을 남긴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란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결투라고 썼지만, 사실 진짜 결투는 아니었다. 카우보이와 보안관이 등을 지고 열 걸음을 걸어가 총을 쏘거나 하는 사건은 OK목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 수입업자들은 Gunfight 라는 말을 '총격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손님을 쫓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정말 볼게 하나도 없는 넷플릭스에서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을 근 한달에 걸쳐 봤다. 1881년 10월26일, 툼스톤의 보안관보로 일하던 어프 3형제와 와이어트의 친구 닥 할리데이는 카우보이 갱 두목인 아이크 클린턴과 그 무리들에게 추방 명령을 집행하러 OK목장으로 향했다.
 
반대로 아이크 패거리는 명령에 따르긴커녕 어프 형제를 손보러 시내로 향하던 길. 양쪽 모두 무장중이었으로 마주치자 바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어프 쪽이 4:6으로 불리했지만, 30초만에 아이크 쪽 3명이 사살됐고 나머지는 도주했다. 어프 쪽은 두명이 총에 맞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완승.
 
이것이 잘 알려진 'OK목장의 결투'의 내용인데, 알고 보니 이 사건은 넷플릭스 6부작 다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 유명한 총격전 이후, 와이어트 어프는 도박을 좋아하는 보안관에서 자경단(posse) 리더로 변신하는 기구한 운명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남북전쟁의 상처인 '남북감정', JP모건의 사업 확장, 무능한 대통령의 대처 같은 복합적인 상황이 있었다. 흥미진진.
 
드라마와 사학자들의 증언이 엇갈리는 다큐드라마 형식. 한때 서부극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중간에 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와이어트 어프 역을 맡은 팀 펠링햄은 어쩌면 차세대 비고 모텐슨이 될 수도 있을듯.
 
 
이건 실제 와이어트 어프.

 

그리고 이게 바로 전설의 영화 <OK목장의 결투>.

 

만년의 와이어트 어프. 초기 할리우드 서부극에서 '기술고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소림사 고승이 무술영화의 무술감독을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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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졸업>. 지나가는 버스의 불빛, 차창에 비친 그림자, 밤거리 편의점 창을 통해 보이는 삼각 김밥 하나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미경으로 보던 세상이 어느 한 순간, 드론에서 보는 지형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안판석의 드라마다.
 
이제 4회인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를 무대로 한 러브스토리'로 곱게 포장됐지만, 이미 공교육과 사교육의 자리 싸움으로 논란을 겪고 있다. 물론 또 그렇게 삭막한 이야기만은 절대 아닌 것이, 위하준의 오랜 동경이 필터가 되어 정려원을 바라보는 장면, '작가를 사랑하게 하지 못하는 국어교육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같은 문제제기에선 은근히 가슴이 뛴다.
 
단지 이 치열한 세계, '고1 국어 문제 하나의 답이 한개냐 두개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처럼 여겨지는 세계. 이 세계를 소파에 기대 편안히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육아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스친다. 혹시 저 현장 당사자들에겐 이 드라마가 지옥도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강추. #졸업
 
P.S. 정려원과 위하준이 소속된 학원 원장 이름이 '현탁'인 것은 혹시 <스카이캐슬>에 대한 오마주인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조현탁/안판석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
P.S.2. 제목이 <졸업>인데, 어, 이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인가...? 응 아니야. 신곡이야. ㅎㅎ

[그리고 <졸업>에 대해서는 끝나고 한번 더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홍콩 누아르 전성기에 중국어 영화들을 보다 보면 수시로 등장하는 욕 중에 "왕빠다!"가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일까 궁금해 했는데, 한자로 忘八蛋, 즉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여덟가지 핵심도덕(예의염치 효제충신)을 모두 까먹은 버러지같은 놈이란 뜻이었다. 제 발음은 '왕바단'.
 
간밤에 끝난 안판석의 <졸업>은 바로 염치와 망각에 대한 드라마였다. 우리는 얼마나 저열해질수 있고, 얼마나 염치 없는 삶에 뻔뻔해질수 있는가. 얼마나 어른의 삶이란 핑계로, 내 몸의 편안함을 위해 내 마음 따위는 가볍게 쓰레기통에 쳐박을수 있는가. 위선도 가식도 귀찮다며 다 떨궈 낸 욕심 가득한 얼굴로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말할 셈인가.
 
<졸업> 속 주요 인물들은 서로 염치를 깨닫게 해주고, 결국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차린다. 비록 드라마지만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라서 다행'이 아니라서 더 다행이란 생각. 두달 내내 정주행하면서 행복했다.
 
 

 
P.S.수많은 명배우들. 정려원과 김정영 배우의 재발견. 진짜 선생님 같은 김송일 배우를 보면서 자꾸 페친 한분이 떠올라 내내 혼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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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여자 레슬링이 있었다. TV에서 김일 천규덕의 레슬링을 중계방송하던 시절, 오프닝으로 여자 경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선 여자 경기가 오프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지만, 희귀취향의 왕국 일본에선 여자 프로레슬링이 자립 가능한 규모의 영역으로 꽤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다는걸 이번에 알았다. 5부작 <극악여왕>은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의 치열한 라이벌 시기를 그린 드라마다.
 
1980년대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에는 정도를 걷는 '크래쉬걸스'와 닥치는대로 반칙을 일삼는 악역 '극악동맹'이 있었는데 크래쉬 걸스의 리더격인 나가요 치구사는 숏헤어가 어울리는 미소년스러운 외모로 여학생 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의 인기를 자랑했다.
 
드라마 속 말고 실제의 크래쉬걸스. 왼쪽이 아마조네스 아스카, 오른쪽이 나가요 치구사.
나가요 치구사가 역경을 딛고 챔피언에도 오르고, 여자 레슬러들을 규합해 경기단체도 만들고 업계의 큰언니로 성공하는 이야기(실화다) 였다면 그걸로 한폭의 드라마가 나왔겠는데, 뜻밖에도 이 <극악여왕>은 제목 그대로 극악동맹의 리더, 90kg대에 가부끼 분장을 즐기던 덤프 마츠모토가 주인공이다.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그런데도(혹은 그래서) 드라마는 재미있다. 핵심 질문은 "덤프 마츠모토는 왜 악역 여왕이 될수밖에 없었나'. 이 사연을 꽤 그럴듯하게 풀어낸다. 덤프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크러쉬 걸스의 나가요 치구사가 아닌, 흉악무도한 덤프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엔딩도 자못 감동적.
(물론 드라마상의 '사건'들은 거의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 위주로 진행되지만, 내용은 거의 허구라고. 예를들어 무대에서 덤프가 치구사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원인이나 동기는..)
 
카라타 에리카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최근의 나가요 치구사.
이 드라마의 강점 중엔 나가요 치구사 역을 맡은 배우가 카라타 에리카라는 점을 빼놓을수 없다. 낯익은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면, 맞다. 몇해전 LG폰 광고에 나와서 세상을 술렁이게 했던 바로 그 배우다. 레슬러 연기를 위해 10KG를 불렸다는데도 여전히 가냘프고, 여전히 예쁘다.
사실 <극악여왕>도 일본 드라마 특유의 느린 전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특히 유혈낭자한 레슬링 경기 장면이 너무 자주 나오고 너무 긴데, 보다 보면 약간은 면죄부를 줄만하단 생각이 든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수없이 잔부상을 겪어가며(안 봐도 느껴진다) 애써 촬영한 레슬링 장면(심지어 퀄리티도 높다)을 그냥 편집해버리기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 같다. 저런 장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상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 근데 아무래도 취향을 꽤 탈 거같다.
 
[여자 프로레슬링은 일본에서는 지금도 꽤 인기를 얻고 있다고. 이 드라마를 보시면 어쩐지 '정년이'가 생각날수도...]
 
당시의 실제 경기 장면. 드라마와 비교해보시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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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개의 품평이 올라오고 있는 <흑백요리사>. 굳이 말을 보태기보다 개인 기록용으로 남김.
[주: 지난 9월28일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늦었지만 옮겨 봅니다. 당시의 느낌을 보관하기 위해. 사실 드라마가 아닌데 딱히 이런 종류의 글을 올려 놓을 다른 카테고리를 만들기도 애매한 것 같아 이 페이지로.]
 
 
1. 요리를 주제로 한 서바이벌 게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뛰어난 심사위원의 날카롭고 정리된 평가가 처음도 아니고, 처음인 건 압도적인 규모. <피지컬100>과 <더 인플루언서>를 넘어 이제 예능은 실내체육관급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힘든 시대로.
 
2. 흑과 백. 1층과 2층. 이보다 시대정신에 맞는 구도는 없을 듯. 스튜디오 슬램은 정말 대단하다. 이미 <슈가맨> 시리즈와 <싱어게인>으로 얻은 언더독 스토리텔링과 일반인 판정의 노하우가 요리에 덧씌워졌다.
 
3. 1층에서 흑셰프들이 싸울 때 스튜디오는 콜로세움 같았다. 검투사들이 거친 운동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울때 객석의 로마 귀족들은 흰 토가를 나부끼며, 꿀과 포도를 맛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여기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진짜 관객들은 화면 밖에 있었고, 이들은 우아하게 관전하던 귀족들의 흰 토가가 피와 먼지로 더럽혀지는 모습을 보며 열광한다.
 
4. 사실 공정한 심사란 환상이다. 특히 미각의 공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기 미각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권위(ex. 미슐랭)에 기대고, 남의 눈치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맛을 상찬하는 일은 너무 흔하다. 어쨌든 <흑백요리사>는 그 안에서 성공적인 권위와 승복을 만들어냈다. 일부 시청자들은 불만일수도 있겠으나, 저 100명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백종원/안성재라는 이름을, 그 심사를 받아들이고 출연을 결심한 상태에서 이미 <흑백요리사>는 성공한 셈이다.
 
5. 누가 이익인가. 쉽게 생각하면 잃을게 많은 백셰프들이 손해일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예능에서 이들을 '한번 대결해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존경의 대상으로 예우해 줄 것인가. 그 업장들의 예약 리스트만 봐도 모두 위너.
 
6. 서울의 파인 다이닝 시장이 이 프로그램으로 살아날까 하는 건 너무 지나친 기대. 한국인에게 파인 다이닝은 아직 '정말 맛있는 걸 먹으러'가는 곳이 아니라 '특별한 자리'를 위해 가는 곳이다. 이게 바뀌려면 서울이 더 글로벌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비교의 기준이 도쿄, 홍콩, 싱가포르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파인 다이닝 신이 빈약해 보이는 것은 한국의 특급 호텔 라인업이 빈약해 보이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분은 서울에 진정한 5성급 호텔이 몇이나 되는지, 왜 그런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길.
(물론, 그래서 안타깝다는 말도 아니고, 이게 잘못됐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것 뿐이다.)
 
7. 어찌됐건 예능은 예능. 아무리 재미있어도 <흑백요리사>가 보여주는 맛에 과몰입은 금물이다. 실제 가보니 실망했다면 그건 당신 책임. 리조또가 알덴테건 죽이건, 가장 소중한건 내 취향과 기준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최현석 셰프의 명언. "주방에서 셰프보다 높은게 딱 하나 있죠. 재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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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민했다. 열편의 영화를 꼽을 수 있을까. 올해 그렇게 괜찮은 영화를 많이 봤나? 영화 자체를 많이 보지 못했다. 대신 드라마 시리즈는 평소보다 더 본 것 같기도 한데, 극장에 간 횟수가 매우 줄어들었고, 솔직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많이 보지 못했다. 특히 한국 영화는, 만드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좀 그랬다.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Perfect Days

대체 왜 저 남자는 아무 불만 없다는 표정으로 도시의 변기를 닦고 있을까. 평온하고 소박한, 아무 욕심도 없어 보이는 한 남자의 일상 속에 얼마나 큰 폭풍우가 감춰져 있는지 보여준 걸작. 야쿠쇼 코지라는 훌륭한 배우의 힘으로 이야기는 절로 설득력을 얻었다. 속죄, 욕망, 번뇌 같은 단어들이 햇살처럼 마음에 박힌다.

퍼펙트 데이즈, 속죄와 구원의 우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퍼펙트 데이즈, 속죄와 구원의 우화

를 뒤늦게 봤다. 주위의 찬사와 추천 속에서도 사실 비슷한 영화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연말을 맞아 보길 잘 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모레비 (木漏れ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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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Anatomie d'une chute

눈 덮인 산 속, 추락한 남자의 시체. 과연 범인은 아내인가, 아닌가. 미스터리가 형성될 수 없을 것 같은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미스터리. 여자가 무죄라면, 과연 왜 무죄인가. 죄의 유무는 범행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되어야 하는가. 도저히 공이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페널리 에리어 안에서 절묘하게 슈팅을 뽑아내는 쥐스틴 트리에의 솜씨가 놀랍다. 

추락의 해부,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추락의 해부, 오랜만에 본 '진짜 영화'

프랑스 동남부 산악지대의 어느 외딴 산장. 작가 부부와 시각장애인 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갑자기 남편이 죽은 채 발견됩니다. 집에서 눈밭으로 떨어진 듯한 시체. 경찰이 출동해 수사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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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 (조지 밀러) Furiosa: A Mad Max Saga

전작 <매드맥스4>로 사령관 퓨리오사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조지 밀러 옹의 노익장이 빛나는 또 한편의 걸작. <매드맥스4>가 워낙 기대치를 높여 놓은 탓에 좀 더 박한 평을 얻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퓨리오사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이제 <빨간 내복 사가>도 혹시 볼 수 있으면 어떨까.

퓨리오사, 남신들의 성전을 박살내는 여신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퓨리오사, 남신들의 성전을 박살내는 여신 이야기

의 프리퀄 는 문명의 종말을 맞은 호주 대륙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경작이 가능한 땅, 녹색의 낙원에서 시작한다. 열살 남짓한 소녀 퓨리오사는 엄마(찰리 프레이저)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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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2 (드니 빌뇌브) Dune: Part Two

이 시대의 완벽주의자 드니 빌뇌브의 야망이 빚어낸 결정체. 물론 1편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OTT  시대의 관객에게 영화란 무엇인지 알려주기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원작의 한계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지만, 부디  이 듄 시리즈도 조금만 더 21세기의 관객들도 만족할 수 있도록 서사에 좀 더 신경을 써 주길. 1편도 그랬지만 2편의 주인공은 확실히 '벌레'.

듄2, 장대한 빛과 소리의 걸작, 그러나 아쉬운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듄2, 장대한 빛과 소리의 걸작, 그러나 아쉬운 이야기.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영화가 TV에 의해 타락했다. 나는 대사가 싫다"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야말로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도 한 것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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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나선 글레이저) The Zone of Interest

아우슈비츠의 담벼락 밖.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간이기를 선택한 자들은 떠나고, 일신의 안위를 선택한 자들은 남아서 즐긴 곳. 누군가는 이런 고발에 왜 은유가 필요하냐고 비판했지만,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다큐멘터리가 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는 거울을 볼 줄 몰랐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는 거울을 볼 줄 몰랐다.

1.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수용소에서 일하는 독일군들은 당연히 수용된 유태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특히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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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스 (루카 구아다니노) Challengers

가장 중요한 것은 승부였나, 사랑이었나, 혹은 그 둘은 따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나. 두 명의 하이틴 테니스 유망주가 어느날 여신같은 주니어 테니스 스타를 만났고, 둘 다 사랑에 빠졌다. 여신은 두 남자에게 이기는 자를 사랑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뒤로 대략 15년에 걸쳐 두 남자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나의 가장 치명적인 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승부 속의 은유. 이걸 청춘과 패션으로 녹여낸 구아다니노의 솜씨가 놀랍다. 

이소룡들 (데이빗 그레고리) Enter the Clones of Bruce 

한글 제목은 직관적이지만 영어 제목은 여러가지 주변 정보를 알아야 웃을 수 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이 리스트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제목의 '개취'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영어 제목의 브루스 리란 우리 모두가 아는 Bruce Lee. 그리고 출연자 리스트에는 Bruce Le, Bruce Li, Bruce Lau가 총출동한다. 홍콩 영화의 주류를 쇼 브라더스에서 골든 하베스트로 바꿔놓은 영웅. 우리가 아는 이소룡의 영화는 <당산대형>에서 <사망유희>까지 억지로 늘려도 5편 뿐이지만, 당시 서구에서는 수십편의 영화가 브루스 리의 영화로 공개됐다. 왜? "동양인 얼굴은 구별하기 힘들어서." 이런 얘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재미있을 영화. 

아 개취라니까요.

 

위키드 (존 추) Wicked

무대극 원작에 대해서도 한동안 사람들은 "어떤 영화화도 원작을 능가할 수 없다"고들 했다. 하지만 피터 셰퍼의 위대한 대본을 밀로스 포먼이 영화화한 <아마데우스> 이후, 그런 시비는 사라졌다. 특히 뮤지컬 분야에서는 물리적인 제약이 큰 무대를 벗어날 때 더 놀라운 결과물이 나오곤 했다.

<위키드>는 3시간 내외의 무대 뮤지컬을 두 편의 영화로 나누다 보니 앞부분의 진행이 더뎌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 뮤지컬의 주제곡이라고 할 수 있는 <Defying Gravity> 시퀀스에서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압도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누군가가 왜 아직도 극장에 가야 하냐고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위키드> 포스터를 가리키라고 말하고 싶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넷플릭스 오리지널, 바오 응우옌) The Greatest Night in Pop

2024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날로서 3시간 이하의 단편 영상물 중에서 볼만한 게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유일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작품. 물론 '그 세대'가 아니라면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당대의 제왕과 제왕의 형님, 모든 것을 기획한 사람, 그 핵심이 되고 싶었지만 겉돌았던 사람, 이 자리에 선 것이 정말 일생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를 위한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쉬움과 분노를 느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그날의 이벤트를 조명한 바오 응우옌의 솜씨도 탁월했다. 

 

파묘(장재현)

이 영화가 없었다면 과연 2024년의 한국 메이저 영화 중에 뭘 이 리스트에 넣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일본 귀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국 영화의 신기원이라고 할 정도로 몰입감이 엄청난 걸작이었고, 그 뒤로는 앞부분의 성취를 조금씩 깎아먹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다음번에도 장재현 감독의 영화를 꼭 보겠다는 믿음은 분명하다. 차 번호판이니 포스터니 하는 것들이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 없이도 충분히 훌륭했던 작품. 

 

페르시아어 수업 (바딤 페럴먼) The Persian Lessons

2차대전 독일 수용소. 한 독일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한 수감자가 살기 위해 "나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 압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결국 한 남자는 자기가 만들어 낸 가공의 세계로 다른 남자를 끌어들인다는 설정인데... 좀 늦게 봤지만 '이런 소재로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에서 충격을 받았던 작품. 사기꾼의 사기가 들통나느냐 마느냐 하는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정말 저런 식으로 세계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2022년작이라 맨 뒤로 밀렸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  

 

...뭐 이렇습니다. 예전에 기운 뻗치고 뭘 모를 때에는 추천 영화와 망작을 같이 꼽기도 했는데, 나이 먹고 보니 그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고, 뭔가 콘텐트들을 만드는 데 관여해 보니 그런거 저런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만드는 사람들은 피똥 싸면서 만드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새해에도 이 글 읽는 분들 다들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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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를 뒤늦게 봤다. 주위의 찬사와 추천 속에서도 사실 <패터슨> 비슷한 영화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연말을 맞아 보길 잘 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영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코모레비 (木漏れ日: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라는 새로운 명사를 이야기했다.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리건, 자동차로 달리건, 걸어가며 바라보건, 아니면 제 자리에 누워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건 코모레비는 아름답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도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쓴들, 이 세상의 모든 코모레비를 가질 수 없고, 내가 없다 한들, 심지어 아무도 즐기는 사람이 없다 한들 코모레비는 변함 없이 어딘가에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한때 '코모레비'가 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보고 나니, 그 코모레비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코모레비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같은 순간은 하나도 없는, 변화 없는 것 같은 나날들 속의 코모레비같은 햇살의 가치'에 큰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물론 그게 중요한 영화긴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속죄와 욕망에 대한 영화로 읽혀서 매우 와 닿았다. 

일상의 소중함? 잔잔한 감동? 천만에. 



2. 히라야마는 왜 화장실 청소부가 되었을까. 누가 봐도 '이런거 하실 분' 혹은 '이렇게 사실 분'이 아닌 사람이 매일 아침일찍 일어나 토사물 쌓인 아침의 공공화장실을 꼼꼼하게 닦고 정리한다. 대체 왜.

누가 봐도 '닦음'의 의미는 선명하다. 그는 지우고 싶고, 펴고 싶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고 싶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그 노력은 결실을 이룬듯 했다. 

 


3. 다만 빔 벤더스가 그리 친절할리 없고, 사실 친절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 사연을 깔끔하게 털어줬더라면 영화의 아우라는 확 사라져 버렸을게다. 그저 이 정도로 짐작하고 상상하게 하는게 좋다.

히라야마의 동기 가운데 단지 느낄수 있는 것은, 배운 사람인 그에게 어느 한 순간 자신과 주변에 대해 견딜수 없는 환멸이 찾아왔고, 기존의 삶을 도저히 유지할수 없는 계기가 있었을 거란 정도였다. 맨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4. 조카, 동생, 술집 여주인, 안경 쓴 남자와 일련의 만남은 그에게 그가 왜 현재의 삶을 택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 일들이 한방(대략 2주 사이)에 찾아오는 바람에, 그는 지난 수년간의 삶이(최소 6년, 대략 10년? 15년?), 혹은 치열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닫게 된다.

긴 시간 변기를 닦으며 속죄(수행)를 했건만, 그렇게 쌓아올린 마음이 이렇게 한방에 무너져버리고 마는구나. 여전히 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다가가려 하고, 질투하고 좌절하는구나. 그냥 그런 인간의 삶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구나. 그렇게 울고 웃을수밖에 없었구나. 



5. 그렇게 폭풍우가 이는 듯한 영화를 봤다. 영화는 결코 잔잔하지 않았다. 야쿠쇼 코지는 치열했다.


대략 여기까지가 페북에 썼던 글. 사실 여기서 할 얘기를 다 하긴 했지만, 한발 더 들어가보려 한다. 역시 결말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혹은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도, 이 영화에 대한 좋은 감정만을 갖고 싶은 분도 멈추시기를 권장한다.

물론 이런 해석 역시 개인적인 시각일 뿐이고, 민주적으로 1/n의 가치를 갖는다. 반대로, 빔 벤더스가 어떤 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했거나 야쿠쇼 코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든, 그것이 절대적인 해석의 기준일 수도 없다. 이미 해석은 관객의 것이니까. 

 

 

 

 

6. 히라야마는 계속 꿈을 꾼다. 꿈은 흑백으로 묘사되어 확실히 현실과 구분된다.

7. 조카 니코가 찾아온 날, 히라야마는 니코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만치 그가 기존의 가족들을 떠나온 것이 오래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던 그는 이 낯선 소녀가 누군가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니코니?"라고 묻는다. 

8. 그날 밤, 그의 꿈에는 니코가 나타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니코가 아니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상, 바로 오늘 처음 본, 지금 위층에서 자고 있는 조카가 나온다는 것은 넌센스다. 이 꿈에 나타난 소녀는 아주 오래 전, 그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소녀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소녀가 왜 니코와 똑같이 생겼을까

9. 며칠 뒤, 기사가 모는 렉서스를 타고 여동생이 딸을 데리러 나타난다. 여동생은 "요양원으로 아버지를 방문해 보라. 예전처럼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치매 상태일 수도 있고, 그냥 노쇠했을 뿐일 수도 있다. 어쨌든 히라야마의 가출은 아버지와의 심각한 갈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버지로부터 내쫓김을 당했을 수도, 내쫓기기 전에 그 스스로 떠났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히라야마의 '죄'는 가족 내부의 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카의 비밀을 상상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10. 히라야마는 바 여사장과 전남편이 포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사장과 눈이 마주친 히라야마는 맥주 세 캔을 사들고 도망친다. 강가에서 술을 마시는 그를 발견한 전남편(어떻게 히라야마를 찾았고, 어떻게 알아봤는지를 따지지는 말자 ㅎ)은 그와 여사장 사이의 서사를 말해주고, 그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히라야마가 도망쳤다는 것은 그 역시 여사장과의 관계가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그림자 놀이는 좀 난감하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과 관계라는 것은 논리와 주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짙다면 그냥 짙은 것이고, 안 짙다고 하면 안 짙은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11. 사실 이 영화가 사람들이 말하듯,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말하자는 거였다면, 마지막에 울었다 웃었다 하는 히라야마를 설명할 수 없다. 히라야마는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미션>의 로버트 드 니로가 갑옷 뭉치를 끌고 이구아수 폭포의 절벽을 오르듯, 남의 오물을 씻는 행동으로 속죄를 꾀했다. 가끔씩 '난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아'라는 듯한 몸짓의 노숙자가 악몽처럼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조카와의 해후 전까지 그는 자신의 속죄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조카와 여사장의 사건으로 그는 자신의 속죄가 눈속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울고 웃음을 반복하게 된다. 좌절일까. 좌절만은 아니다. 삶이란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고, 그는 자신의 삶을 이제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릴 지도 모른다. 즉 '사는' 것에서 '살아지는' 삶을 이어갈 수도 있고, 속죄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깨달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코모레비는 번뇌의 다른 표현일 뿐. 번뇌가 싫어 인간의 삶을 떠났다면(떠날 수 있었다면), 사실은 코모레비도 사라졌어야 한다. 찰나가 영원이고, 영원이 곧 찰나라면 코모레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나는 이 열린 결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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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올해는 읽은게 없는데 10권 뽑기가 쉽지 않겠네, 하다가 막상 꼽기 시작하면 12권 정도를 꼽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올해도 골라 놓고 보니 12권인데 굳이 2권을 잘라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룩백>같은 책만 접하게 된다면야 20권도 고를 수 있겠지만, 어쨌든 먹고 살고, 녹슬지 않으려면 벽돌 책도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읽다가 던져 버리기도 해야 한다. 

연간 50권 60권 80권씩 읽고 별점을 매기는 다독가들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리스트지만 그래도 아직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로 기록을 남긴다. 이 책들 덕분에 올 한해도 꽤 즐거웠고, 침대에 누운 뒤 숙면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을 참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AI 쇼크, 다가올 미래 (모 가댓)

따로 길게 쓴 글이 있으니 그쪽을 참고하시길 권장. 어쨌든 제프리 힌튼의 경고나 모 가댓의 경고는 거의 비슷한 톤을 갖고 있지만, 가댓의 서술이 훨씬 더 구체적이다. "현재의 인류는 자신을 지적으로 훨씬 상회하는 10대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상황과 같다.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그래도 나를 사랑했던 부모로 나를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학대하고 의심하고 이용하려고만 들었던 부모로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AI 에 대해 자고 일어나면 쏟아지는 수많은 사설들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와 닿았던 책.

AI와 인간, 부모-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AI와 인간, 부모-자식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시대의 대세. 장강의 큰 물결인 AI. 뭐라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 읽어보고 있다. 그중 는 제목 때문에 별 기대 없었던 책. ‘초대형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라는 부제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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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유발 하라리)

또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연장선상에서 볼 때' 라는 관점을 고집하는 하라리의 시선은 여전히 설득력이 넘친다. 점토판에 글자를 새겨 넣을 때의 인간은 이미 블록체인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정보의 본질은 네트워킹'이기 때문에 과도한 정보는 해가 될 수 있다는 관점, '인간'과 '이야기'의 연결과 구분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가 맞아야 할 세계에 대해 유익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읽고 나서 잊어버린 <사피엔스>의 여러 관점들에 대한 복습의 의미로라도, 하라리는 계속 책을 써 주면 고마울 것 같다.)

불변의 법칙,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모건 하우절)

개인적인 취향을 묻는다면, '현재 변하고 있는 것'과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 중에서 나는 후자의 편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물론 이 책은 '그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네가 앞으로 부자가 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꼭 돈벌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미래에 어떤 리스크가 있을 것이라고 지금 예측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리스크가 아니다', '평화로운 시기야말로 불안정의 씨앗이 싹트는 시기다' 등, 예사롭지 않은 통찰이 넘친다. 감동적.

불안 세대(조나선 하이트)

왜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모바일 기기를 빼앗지 않을까. 내 생각처럼 모든 학부모들이 이 생각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청소년기에 현재 수준의 모바일 스마트 기기에 노출되는 것이 단지 '새로운 시대의 문명'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끼치고 소위 '학업'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큰 해악을 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선명한데 말이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짚어주고 있는 좋은 책. 부디 하이트의 조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길 바라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베릿)

오래 전부터 그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감정을 갖고 있을까. 그렇든 아니든, 어떤 감정을 말로 접했을 때, 이 단어로 표현된 감정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사실 이건 감정이 아닌 감각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내가 느끼는 '저리다'는 감정이 내 옆 사람이 느끼는 '저림'과 같은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에 대해 꽤 정리된 답을 주는 책. 지난해의 책이었던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과 함께 매우 추천한다. 

우리는 가상세계로 간다 (허만 나틀라)

가상세계라고 부르건, 메타버스라고 부르건, 그것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가, 모든 종교의 경전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모두 메타버스의 역할을 해 왔다. 단지 기술의 발달은 그것을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쉽게 하거나, 반대로 문턱을 넘기 어렵게 했을 뿐. 어쨌든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결국 그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역시 다가올 세계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책. 

히치콕 (패트릭 맥길리건)

영화라는 장르에서 최고라고 인정할만한 장인 두 사람을 꼽으라면 여전히 알프레드 히치콕과 구로사와 아키라를 꼽게 된다(누군들 아닐까 ㅎ). 맥길리건은 그 존경을 흥신소 탐정의 자세로 표현하기로 결정한 듯 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예전에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을 읽었을 때에는 크로키로 슥슥 그린 듯한 묘사에 감동했는데, 맥길리건이 그려년 히치콕에 대해서는 그 정 반대의 치열한 디테일에 감탄하게 된다. 아주 많은 부정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치콕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았다. 

세설 (다니자키 준이치로)

20세기 일본 작가들의 단편은 면도칼 같은 재미를 준다. 한국에선 자주 언급되지 않는 일본 작가들 중에서 나카지마 아쓰시의 <산월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신>을 읽고 감탄하다가 마침내 우연히 <세설>을 접했다. 1930년대 오사카/고베 지방에서 부유한 상인 가문의 네 자매가 세상의 변화를 맞이하며 삶을 가꿔가는(이 표현을 선택하면서, 여기서 분재나 꽃꽂이를 연상하게 된다) 이야기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늘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에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함.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세설, 벚꽃이 지는 간사이의 봄날같은.

물론 벚꽃철에 교토에 간 적은 없었다. 단지 상상했을 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세상을 화려하게 뒤덮다 강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을 노래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사라지는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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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아마도 성인이 된 뒤에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분명 세 손가락 안에는 확실히 포함될 것이다(이 애정에 비례해서, 영화화된 작품에 대해서는 저주에 가까운 악감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과 뭔가 끈을 잇고 싶었던 출판사는 거의 그 제목과 댓구를 이루는 제목을 내놨다. 물론  Sense of an Ending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옮긴 것은 탁월한 감각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비해  Elizabeth Finch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로 옮긴 것은 좀 지나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전한 반스 옹의 꼬장꼬장함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부디 오래 오래 사시면서 또 좋은 작품을, 한번만 읽고 말 수 없는 작품을 계속 써 주시길. 

룩백 (후지모토 타쓰키)

만화가를 꿈꾸는 두 소녀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면 두 소녀가 모두 만화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한 소녀는 분명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고 있었고, 다른 소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가 날개를 펴는데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꿈을 이뤘던 소녀는, 평생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비록 너무 늦기는 했지만. (애니메이션도 그리 좋다는데, 현재의 느낌으론 이 만화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사강을 흔히 '통속 작가'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종류의 책을 근래 거의 읽지 않은 것은 이런 책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런 종류의 서사는 읽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워낙 많이 접하고, 또 그렇게 접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10분의 독서가 10분의 시청보다 훨씬 더 함축적이고 상상을 자극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문화가 오래 오래 지속되길. 

패배의 신호, 서늘한 섬세함을 즐기려면.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패배의 신호, 서늘한 섬세함을 즐기려면.

1960년대의 파리. 30세 가량의 루실은 50대의 재력가 샤를과 함께 살고 있다. 한때 사교계의 여왕이던 40세의 디안은 10년 어린 미남 앙트완을 사귀는 중. 어느날 이들은 모두 상류층 사교 모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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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이 책 때문에 꽤 비슷한 주제인 <유년기의 끝>과 사실 별 공통점 없는 주제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 오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멈추면 안 된다는 자극과 함께,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익하다고 생각했지만 올해의 책까지는 아니었던 <더 커밍 웨이브 (무스타파 술레이만)>, 즐겁게 읽은 책으로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실버 센류 모음집)>, <한국 요약 금지(콜린 마샬)>, <키르케(매들린 밀러)>,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김기태)> 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한강)>를 다시 읽은 것도 2024년의 기억할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전에 이 책을 접할 때의 내가 얼마나 부실한 독자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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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벚꽃철에 교토에 간 적은 없었다. 단지 상상했을 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세상을 화려하게 뒤덮다 강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꽃잎을 노래하고, 그렇게 처절하게 사라지는 벚꽃의 부질없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부질있다'는 말이 왜 없겠나. 부질없는 것은 그걸로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강을 분홍색으로 메우고 떠내려가는 벚꽃 꽃잎을 볼 때 문득 '우키요에'라고 읽는,  '浮世絵'의 한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저러나, 이 포스팅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을 읽은 이야기다.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대략 고침. 



1. 일본에선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몇년 더 살았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다니자키는 1965년에 죽었고, 3년 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2. <설국> 대신 노벨상 수상작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세설>을 읽었다. 묘하게 둘 다 눈이다. 



3. 1930년대, 고베의 몰락한 무사 가문의 네 딸들(실제로 등장인물의 역할을 하는것은 그중 세 딸)이 세상의 변화 속에서 각자의 삶을 가꾸어 가는 이야기다. 

4. '가꾸어 간다'는 부분에서 뭐라 쓸까 잠시 망설였다. 그 자리에 개척한다든가 영위한다든가, 버틴다든가 이겨낸다든가, 다른 어떤 말을 넣어도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여인들은 그야말로 정교한 자수를 뜨듯, 화병에 꽃을 꽂듯 자기 삶을 꾸며간다, 는 느낌이 든다. 

5. 다니자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때(1943년)의 나이가 57세. 이 작품을 쓰려고 수십년간 여자들의 세계를 곁에서 관찰한 듯한 치열함에 감탄하게 된다. 대체 어떤 작가가 저 나이에 이 정도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여자들 이야기를 쓸수있단 말인가. 

이건 연극판인듯



6. 바로 그 디테일의 재미가 기막히다. 간사이-간토의 묘한 자존심 싸움이랄까 하는 감정과 당시 풍물이 너무나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 그 시절의 일본에서 그럴듯한 집안들은 혼사를 앞두고 흥신소를 동원해 상대방의 레퍼런스체크를 거의 수사하듯 진행했다. 유전병, 전처의 사인, 전처 소생 아이의 성격까지 철저한 체크.
- 혼인 당사자가 얼굴을 보는 맞선 정도는 흔한 풍습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퇴짜를 놓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겨진 반면 어떤 이유를 대도 여자가 퇴짜를 놓는건 원한을 남겼다.
- 당시 일본에서는 이모와 언니를 가르는 촌수에 예민하지 않아 젊은 이모는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회사의 일본 직원에게 물어보니 요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한다.] 
- 외래 문화에 민감한 고베 지역 상류층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이미 이 시절에도 생선회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건 매우 자연스러웠다. [고베는 지금도 이진칸이라는 20세기 초 외국인 거주 지역이 관광 명소로 남아 있을 정도로,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일찍부터 수행했다. 지금도 양과나 양식 요리의 수준이 높다고 일컬어진다.]
- 간사이에선 역시 도미. 참치는 상스러운 생선이라 해서 고급 스시야에선 취급하지 않았다. [기름진 참치, 특히 오도로를 맛있다고 먹기 시작한 것은 육고기의 지방을 받아들인 뒤의 일이라고 한다.]

...등등 



7.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지금까지 최소 3회 이상 영화화됐다. 가장 유명한 것이 1983년판인데, 그 유명한 요시나가 사유리가 세째 유키코 역을 맡았다. 당시 38세. 아직 사진만 봤지만 '30대 초반인데 다들 20대로 보는 일본풍 미인' 유키코 역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1983년작은 구미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Makioka Sisters 라는 제목으로 꽤 매니악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전해진다. [네. 지금은 영화를 구해서 봤습니다.]

오른쪽부터 장녀 쓰루코 역의 기시 게이코, 차녀 사치코 역이 사쿠마 요시코, 3녀 유키코 역의 요시나가 사유, 4녀 타에코 역의 고테가와 유코. 셋째 역의 요시나가 사유리야 말할 것 없는 일본 영화의 전설이지만, 둘째 사치코 역을 맡은 사쿠마 요시코 (佐久間良子) 도 전 세대의 톱스타였다고 전해진다. 원작에도 셋째는 일본적인, 다소 수동적인 태도의 미인이지만 둘째는 활짝 피어난 미인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셋째의 맞선 자리에 "웬만하면 언니는 나가지 않는게 어떨까"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 

1950년작 영화. 왼쪽 두번째가 유키코 역의 야마네 히사코.

영화를 본 소감: 1983년작 <세설>은 물론 2권의 책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는 부담 때문에 상당 부분을 덜어낸, 다소 다이제스트 판 같은 느낌의 작품이지만 그래도 화려한 기모노 패션과 당대 간사이 상류층의 분위기를 잘 살린 수작이라는 느낌. 캐스팅도 좋고 바로 그 '벚꽃 지는 시절 교토'의 풍광과 함께 사라진 시대의 미감이 훌륭하다.

그런데 각색에도 참여한 이치가와 곤 감독은 작품의 해석에서 상당히 큰 월권을 저지른다. 40년 전의 작품을 놓고 스포일러 타령을 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까지만. 

 

 

영화판에서는 사치코의 남편, 그러니까 유키코의 형부와 유키코가 내연의 관계인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중간에 두 사람이 묘한 애정 표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우연히 사치코가 목격하지만 남편과 의 좋은 여동생의 관계를 자신이 오해(?) 해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큰 죄라고 느끼는 듯 덮어 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노처녀 유키코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자 형부는 혼자 요리집에서 술을 시켜 마시며 처제에 대한 그리움의 눈물을 흘린다. 

원작에서 그런 뉘앙스를 굳이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으나,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두 사람의 감정을 묘사한 부분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혹시 발견하신 분 있으면 알려주시길). 이건 좀 너무한게 아닌가 싶은데, 뭐 이 정도는 각색자의 권리라고 한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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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18개 부문 수상. 디즈니 플러스 <쇼군>이 엄청난 기록으로 미국 TV 역사에 발자국을 남겼다. 쇼군 이야기는 지난번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사실 나오자마자 보지는 않았다. 이 드라마를 늦게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여주인공에게서 고전적인 일본 미인의 느낌을 받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쇼군, 미국이 만든 '할복하는 일본인' 이야기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누가 뭐래도 2024년 <쇼군>의 주인공인 애나 사와이는 전통적인 일본 미인상이라기 보다는 하와이-폴리네시안 얼굴로 보였다. 이런 얼굴이 마리코 역을 맡는다는 것은, 왕년의 마리코 역을 연기한 시마다 요코에 대한 모욕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라...

 

혹시 영상이 궁금하신 분은 이쪽

아무튼 앞의 글, <쇼군(2024)>에 대한 글에서 제임스 클라벨의 베스트셀러 소설 <쇼군>은 1975년에 출간됐고, 미국에서 1980년 NBC 5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히트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부터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1980년 버전의 미니시리즈, 그러니까 내가 1981년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극장판으로 본 그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도대체 나는 그때 그걸 왜 보고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1980년 12월25일자 매일경제 지면에는 베스트셀러 집계 단신이 실렸다. 국내 소설로는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이 1위, 국외소설로는 제임스 클라벨의 <장군>이 1위였다. 클라벨의 <장군>, 즉 <쇼군>은 일단 미국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일본으로 역수입되어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물론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이걸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명목상의 주인공인 파란 눈의 사무라이 안진 역에는 리처드 체임벌린이 캐스팅됐다. 체임벌린으로 말하자면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잘 나가던 TV 스타 중 하나라고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쇼군>으로 골든 글로브 TV 부문 남우주연상을 꿰찼고, 3년 뒤, 한국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시나무새>를 통해 다시 한번 같은 상을 차지했다. 오죽하면 공식 별명이 '킹 오브 미니시리즈'다.

<가시나무새>의 레이첼 워드와 리처드 체임벌린. 49세의 나이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소화해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대단한 양반.

당시 미국 TV에서 가장 핫한 장르는 '미니시리즈'였다. <달라스>나 <다이내스티>로 잘 알려진 이 장르는 짧으면 4부작, 길면 10부작 정도의 길이로 영화 못잖은 제작비를 투입해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쇼군>이나 <가시나무새>은 물론이고, 그 시절 한국 시청자들의 기억에 생생할 대표적인 미니시리즈들로는 남북전쟁을 그린 <남과 북>,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 공격과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그린 <V>, 닉 놀테-피터 슈트라우스 형제를 스타로 만든 <야망의 계절>, 시드니 셀든 원작의 <내일이 오면> 등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조금 모자라지만, 일반적인 TV 드라마 배우들보다는 지명도에서 앞서는 배우들이 딱 이 장르의 주인공 감이었다. 한국 TV의 드라마 장인들도 이 장르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부터  '미니시리즈'라는 이름의 드라마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한국에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 16부작이 기본 틀이 되었다. 그래도 핫한 배우들이 나오고, 보다 젊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일반적인 드라마보다 훨씬 큰 제작비를 투입한다는 면에선 같은 맥락 위에 있었다. 

영화 <타워링>의 주역들.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어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1950년대~70년대의 빅 스타들이 포진한, 뒷날의 <오션스 11> 못지 않은 화려한 출연진이다. 여기서 지명도로 따지면 체임벌린이 최하위 급?

아무튼 체임벌린은 이 영역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다. 그는 대형 스튜디오들이 억대 예산을 투입할 만한 배우는 아니었다. 할리우드 빅 스타들이 총출동한 대작 <타워링>에도 출연했지만, 그의 역할은 꼴사납게 구명대에서 떨어져 죽는 악당 사위 역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TV에서는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4차례나 노미네이트되는 거물 대접을 받았다. 그 시절엔 TV 배우(한국식 영어로는 '탤런트'?)와 영화 배우사이에 매우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영화 <타워링> 출연진을 한 자리에 모은 사진. 위 사진의 배우들 이름을 7명 이상 댈 수 있다면 1950~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해 뭔가 한마디 해도 좋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왼쪽부터 스티브 맥퀸, 로버트 와그너,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제니퍼 존스, 프레드 아스테어, 폴 뉴먼, 리처드 체임벌린, 로버트 본, 그리고... O.J. 심슨. 모두 다 설명하려면 각각 한 문단씩은 충분히 채울만한, 당대/전세대의 슈퍼스타들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극장에서 영화 <솔로몬 왕의 보물>과 그 속편(무명 시절의 샤론 스톤이 나온다)을 매우 재미있게 봤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아라미스 역을 맡았던 <삼총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영화 커리어의 실패는 좀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그 많은 그의 TV 미니시리즈 주연작들 중에는 뒷날 영화로 리메이크돼 대박을 친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도 있었다. 이 오리지널 시리즈도 매우 재미있었던 기억.)  만년엔 커밍아웃을 하고 이런 톱스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성 정체성(!)을 꼭꼭 감춰야 했던 아픈 추억을 털어놔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사실 세계 영화계를 기준으로 하면 체임벌린보다 도라나가 역의  미후네 도시로가 훨씬 더 슈퍼스타였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몬>,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 칸 영화제를 휩쓴 걸작들 덕분인데, 이런 명성에서 한국은 분명 예외였다. 철저한 일본 영화/음악에 대한 금수 조치 때문에, 아마 <쇼군> 당시 국내에서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유학생들 외엔 거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비디오 테이프도 구할 수 없던 시절이다).

한국 관객들이 그나마 미후네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진주만 기습을 다룬 <토라 토라 토라>나, 알란 들롱과 공연한 <레드 썬> 등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왕년의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영화광들이 아니라면, 굳이 '자막 붙은 영화'를 볼 이유가 없었던 미국의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냥 마토(Mato)나 별 차이 없는, '영어 못하는 동양인 배우'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쇼군>은 미후네가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53년생인 시마다 요코는 이때까지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톱스타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도 '할리우드의 주목'에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고, 시마다 요코는 체임벌린과 함께 골든 글로브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 덕분에 일약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일본 TV는 <쇼군>을 수입 방송하면서, 매회 시마다 요코를 기용, 시청의 편의를 돕는 '해설'을 제작해 덧붙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미모와 지성(?)으로 주목받은 요코였지만 사생활에서 유부남과의 관계, 알콜 중독으로 인한 파산,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누드 사진집 발간, 만년엔 58세의 나이로 성인용 비디오 출연 등 파란만장한 사건사고를 기록하며 69세로 삶을 마감했다. 비운의 스타라 할만 하다.  

 

 

아무튼 이야기는 다시 한국으로. 당초 일본에서도 1980년 11월 극장판이 먼저 공개되었고, 한국에서도 상영될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쏟아졌던 느낌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는 가당치 않은 얘기였다. 1962년, 한국 정부는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영화 <콰이강의 다리> 상영을 불허한 적이 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영국군 포로들을 상대로 가혹행위를 벌이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당연히 지식인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는 집단 항의에 나섰고, 결국 이듬해 상영이 허락되기도 했다.

 

그만치 한국 사회에서 '왜색'이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범죄였다. 한국 영화에 한국 배우들이 일본 의상을 입고 일본인으로 출연하는 것은 허용이 되었지만(물론 그래봐야 왜구 역이나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군 역 들, 혹은 개화기 조선에 들어와 여기저기서 폐를 끼치는 낭인들 정도), 미국 혹은 다른 나라 영화라도 일본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들은 아예 수입사들이 처음부터 시도를 안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그 수많은 닌자 영화, 사무라이 검술 영화들이 한국에서 전혀 공개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런데 <쇼군>의 경우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980년부터 미국에서 드라마로 방송된 <쇼군>이 엄청난 화제작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1981년에는 수입추진중이란 이야기가 돌았고, 개봉이 결정된 뒤 일본 배우 미후네 도시로와 시마다 요코가 내한해 영화를 홍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 같으면 상식적인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1981년 12월26일,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물론 저때에는 저걸 <쇼군>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당연히 <장군>이지. 

 

솔직히 수입업자들의 촉으로는 당연히 수입해서 상영관에만 걸리면 대박이 날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 다음으로 이 영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한국 관객들이었을테니 말이다. 소설 <쇼군>은 물론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이 '지식인의 필독서'였던 시절. 게다가 전 중장년층의 80~90%가 일제시대에 교육받은 일본어 회화 가능자들(즉 은근히 일본 문화에 대한 향수가 어딘가에 남아 있는 분들). 

물론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그리 듣던 만큼 대단한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좀 심심하기도 했고(대규모 전투신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내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수준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일본의 쇼군 이야기라더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 가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도라나가가 주인공이냐는 의아함도 있었다. 게다가 그때까지 일본 역사나 문화를 깊이 있게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젊은 관객(나다)들에겐 대체 영화 속의 정치 상황이 어떤 것인지, 마리코가 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지 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코의 실제 모델은 아케치 다마 혹은 호소카와 카라샤 라고 불리던 인물.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죽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딸이다. 호소카와가의 며느리가 되었는데, 대역죄인의 딸이라 마땅히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이미 출가외인이고, 호소카와 가문은 아케치에게 동조하지 않고 맞선 공이 있어 '멀리 유폐' 되는 선에서 끝났다.

아무튼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기독교에 투신하고, 뒷날 호소카와 가문이 도쿠가와의 편에 서자 이시다 미츠나리가 가라샤를 인질로 잡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이때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폭탄에 불을 붙여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쇼군>의 마리코와 상당 부분 행적이 일치한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실제 모델이 있었는지, 아케치 미쓰히데가 대체 누구인지, 남편과는 왜 사이가 나빠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으니 당최 이해를 하지 못했다.)

 



물론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청춘/틴에이저 영화로 유명했던 문여송 감독이 동아일보에 기고한 감상문을 보면, 마침내 금기를 뚫고 극장에서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된 감회가 넘쳐 흐른다. 

'마리코는 분명 블랙슨의 침실에 침입했다. 그러나 뒷날 간밤에 침실에 침입했던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보낸 하녀였다고 시침떼는 장면은 모든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쇼군에서 느낀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늘 갈구하던 영화 에로티시즘의 한 단면, 어떤 기교를 다시 한번 생각케 했다.  (1982. 2. 4. 동아일보)'

그랬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장면은 2024년에도 그대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재현되었다. 아무튼 그때 그 <쇼군>이 부활해 에미상을 휩쓰는 공전의 히트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참... 감회가 새롭다. 어쨌든 왕년의 <쇼군>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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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도리. 구운 새. 좋은 닭 구우면 당연히 맛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일본은 닭이 다르다고. 닭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싶다가, 모처럼 한번 경험해보는걸로.
 
 
 
결론부터 말하면, 달랐다.
 
 
닭도 닭이지만 들인 정성과 공력에서 차이가 났다. 에비스 가든 부근의 야키도리 오하나. 딱 10석, 카운터석뿐인 매장인데 매달 예약을 오픈하자마자 예약완료가 뜬다. 2시간에 걸쳐 총 17개의 접시가 나왔다.
 

김 위에 익힌 얇은 닭가슴살을 깔고, 그 위에 시소잎과 오이를 펼친 뒤 다시 닭가슴살 회를 얹어 만다.

그렇게 해서 첫 접시는 '시소와 오이가 들어간 닭가슴살회 마끼'.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대가 두배로 급상승했다. 감탄. 이어서 줄줄이 감탄의 연속이다.

2. 다진 닭고기 춘권
 
예상할 수 있는 맛이지만 당연히 맛있었다. 매우 뜨거움.
3. 튀긴 쌀전병 위의 닭무침
 
뜨거운 것 다음에는 식은 것인가. 바삭바삭한 전병까지 같이 먹어 식감이 즐겁다.
 
4. 진한 닭육수의 죽순과 완탕
 
가장 인상적인 메뉴 중 하나. 닭육수의 강렬함에 국물을 완샷하지 읺을수 없었다. 
5. 다릿살 간장양념구이
 
역시 예측 가능한 맛이었지만 아삭이는 실채소와의 조화가 좋았다.
6. 튀긴 미니옥수수와 채소
 
이쯤 되니 셰프와 장난을 치고 싶어진다. "닭을 먹으러 왔는데 닭은 어디 있나! 닭을 달라!"고 항의(?)를 하니 "닭 기름에 튀긴 미니 옥수수"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옥수수에서 꽤 진한 맛이 났다.
7. 오리 가슴살 미디엄레어 구이
 
왜 갑자기 오리인가. 닭가슴살은 지방이 너무 적어 퍽퍽한 반면, 오리는 가슴살에도 지방이 꽤 있어 촉촉하기 때문이라나(이건 셰프가 아닌 옆자리에 혼자 왔던 중국 손님의 주장). 오리 특유의 쇠 맛이 좀 나긴 했지만, 아무튼 맛이 좋았다.
8. 츠쿠네(완자)
 
이건 뭐...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기본적인 맛. "왜 피망을 주지 않는가"라고 항의(?)했더니 셰프들끼리 서로 "쟤가 뭘 봤는지 피망을 달래"라며 낄낄대고 웃더라. 빨간 무 절임과 같이 제공.
9. 고기볶음 미소를 얹은 두부튀김
 
미소 안에 닭이 좀 들었던 듯? 
10. 목껍질(쿠비가와) 볶음
 
요즘 야키토리 집들도 세세리(목살)을 많이 내놓곤 하는데, 이건 세세리가 아니라 그 부위의 껍질. 짭조롬.
11. 닭 갈비끝 연골(난코츠) 주변살 구이
닭 한마리에 하나씩 든,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그 하얀 연골. 신선했다.
12. 생강을 박은 허벅지살 말이와 고추
 
별 생각 없이 깨물었다가 속에 박힌 생강 맛에 깜놀. 생강과 감싼 살 맛이 잘 어우러졌다. 
아무리 닭이라도 계속 먹으면 느끼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그걸 억누르기 위한 고안들이 다양하다.
13. 날개 튀김
 
한국식 치킨에서도 이렇게 펼쳐 튀긴 날개맛을 볼수는 없을까. 절정의 튀김. 바삭함과 고소함의 끝.
14. 군고구마
 
신선하고, 활기차다.
 
15. 껍질째 구운 등살
 
라임을 뿌려 단숨에 해치웠다. "고기로는 이게 마지막"이라는 안도와 함께. 
 
사실 양이 좀 많게 느껴지긴 했다. 점심을 굶고 왔어야...
 
16. 기름발라 구운 오니기리와 닭육수 오차즈케
 
마지막까지 온 이상 다들 배가 차서 살짝 진력이 날 시점. 그런데 오독오독 오니기리 누룽지를 씹고 있으니 믿을수없게 식욕이 살아난다. 여기에 닭 육수까지.
 
 
밥을 말고, 곁들여 나온 향채들을 넣고 저으니 군침이 돈다. 미니 닭곰탕 후루룩 원샷.

 

 
17. 유자빙수
 
앙증맞은 빙수기까지 센스 만점. 가득찬 배와 기름 맛을 걷어준다. 최고.
 
(여기다 대고도 '아즈키를 내놔! 아즈키가 없으면 카기고오리가 아니야!'라고 진상을 부림.)
 
 
대략 한 접시에 7000~8000원 정도니 절대 싸지는 않은 가격. 하지만 감동적인 맛, 감동적인 장인 정신. 앞으로 6개월은 다른 닭 생각이 안 날테니 내년쯤 다시 시도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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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식 문화가 한국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건 사실 상식이다. 19세기 개항 시절부터 해외 문물의 도입에 워낙 적극적이었던 일본. 온갖 나라의 온갖 식재료와 기술이 세계적인 대도시 도쿄로 몰려든 결과일테고, 1980년대 버블 시대를 거치며 그 모든 취향이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됐을 터. 

(이런 '취향'의 허세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무라카미 류의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라고 생각한다. 읽어 보신 분은 잘 아실 터. 세기말적인 허세와 극도로 발달한 욕구가 '정말 이렇게까지 했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버블 시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어쨌든 서울에도 정통 나폴리식 피자를 굽는 집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얼마 전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 군이 '아시아 최고의 피자'라고 극찬한 집이 도쿄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또 도쿄를 가는 김에, 그럼 그런 집은 가 봐야지. 점심에는 예약을 받지 않아 상당한 웨이팅을 각오하고 고고.

웨이팅을 각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자집 '리스토(Risto)' 자체도 핫하지만 피자집이 있는 곳이 바로 도쿄의 최신 핫플레이스 아자부다이 힐스이기 때문.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건축가인 토마스 헤더윅의 헤더윅 스튜디오가 설계한 곳. 안 그래도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는데, 바로 이렇게 기회가 생겼다. 

일류 건축가들이라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헤더윅의 스타일은 뭔가 자연과의 공존에 무게를 두는 느낌이 짙다. 

아자부 언덕을 올라가며 구축된 건물들이다 보니 뭔가 능선을 연상시키는 그런 설계. 

명품 샵들이 그득한,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언덕 아래에서부터 죽 줄지어 올라가고(가 보면 실제로 건물들이 언덕을 기어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덕을 꽤 올라간 곳에 메인 빌딩인 타워 플라자를 비롯, 몇개의 건물들로 둘러 싸인 중앙 정원이 나타난다.

어느새 그 정원의 명물이 된 크레페 가게. 

3층으로 올라가면 리스토가 나온다. 

오픈 직전에 도착. 줄은 서 있지만 대기 없이 앉을 수 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화덕. 뻬뻬가 화덕이란 뜻은 아니겠지?

피자 가격은 대략 저 정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비싼 거 인정. 시그니처인 별 모양 피자와, 하루 5개 씩만 만든다는 한정판 피자를 시켜봤다. 그게 뭐지. 

"나폴리에선 와인을 피자 안주로 먹나?"

"아뇨. 이탈리아 사람도 와인이랑 피자는 같이 잘 안 먹어요."

"그럼 뭘 먹어?"

"대개 맥주랑 먹죠."

오호. 이딸리아에서도 피맥이 정석. 알베군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암. 

주방장 특선 모듬 전채. 프로슈토, 모짜렐라, 말린 토마토 등등. 맛난 것들. 

그리고 시그니처 별 피자. 물론 내용물은 아주 충실한 나폴리식 마르게리타 피자다. 

당연히 맛있는데, 아주 충실하게 맛있다. 그리고 저 별의 뿔 모양 손잡이 속까지 매콤한 양념이 잘 되어 있다. 

이것이 한정판이라는 Il futuro della salsiccia e friarielli. 생 소시지를 까서 채소와 함께 마구 볶은 뒤 반죽에 녹아들게 해서 같이 구운 피자. 맛있다. 뭐라 더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대책없이 맛있다. 

아쉬워서 시켜 본 봉골레. 양이 너무 치명적이긴 한데, 저 국수가 믿을 수 없게 맛있다. 국수가 바지락과 홍합의 맛을 쪽쪽 빨아들인 그런 맛. 국수라기보다는 길게 늘인 수제비를 먹는 맛? 놀랍다. 

그리고 나폴리탄 라구 파스타를 더 먹었는데, 이건 너무 맛있어서 그랬는지 사진찍는 걸 잊었나보다. 없어짐. 

점심을 두둑하게 먹고 아자부다이 힐스의 상징 같은 뚜껑 아래서 크레페로 마무리. 

총평: 아자부다이 힐스는 괜찮은 피자집이었다. 좀 비싼 것만 빼면 아주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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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탄다(五反田)은 훈독과 음독이 섞여 있어서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지명이라고 들었을 뿐, 거기 뭐가 있는지 알 일이 없었다. 한번 이쪽에 호텔을 잡으려 했더니 밤에 좀 시끄러울 수 있다고 해서 피한 정도. 

그런데 육식 대가들께서 이 동네가 의외로 맛집이 많다고 하심. 직장인들이 많아서 점심 먹으러 오기 좋은 곳인가? 아무튼 육타 오너 이남곤 셰프의 '인생 함박스텍'이라는 추천을 듣고, 불원천리 달려왔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이렇게 생긴 입구. 바로 왼쪽에 대기석이 넉넉하게 확보되어 있는 것이 '우리는 줄 서는 가게'라는 자부심을 돋보이게 한다. 

(야외 좌석 아님)

메인은 누가 뭐래도 함박스텍. 와규 100%를 자랑하는 집이다 보니 함박스텍과 비프 스테이크의 병합 상품도 여러가지 눈에 띈다. 평소같으면 병합 상품에도 관심을 가질만 하지만, 이른 저녁 예약이 기다리고 있는 터라 눈물을 머금고 함박스텍만 시키는 것으로. 

그런데 일행은 3명인데 이 식당의 함박스텍 종류는 4가지다. 

"그래도 네개 다 시켜봐야겠죠.?"

"그럼요."

대강 이런 분위기. 아주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딱 맛집 사이즈. 

먼저 샐러드를 준다.

뭐.... 샐러드다. 

가장 먼저 나온 1호.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다. 체다 치즈를 얹은 함바그와 데미그라스 소스라는 정통의 조합. 가지, 당근, 구운 감자, 매쉬드 포테이토, 머리 뗀 숙주가 같이 익어가고 있다. 

사실 모든 함박은 거죽만 익힌 레어 상태로 서빙되기 때문에, 더 익히고 싶은 사람은 저 상태에서 반으로 갈라 아직도 쩔쩔 끓는 철판에 익혀야 한다. 

2번. 계란 후라이를 얹은 함바그에 야자와 소스. 먹어 보니 우스터 소스와 간장의 조합 같은 느낌이다. 간장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좋은 선택일수도. 

아, 여기에 공기밥과 미소시루가 나온다. 

3번 조합.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함바그와 토마토 소스. 

4번은 소바 장국에 많이 넣는 간 무(오로시)와 폰즈 소스. 느끼한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선호할 수도. 

개인적으로 3번-1번-2번-4번의 순. 다음에 다시 갈 의사는 매우 크고, 만약 다시 간다면 토마토 소스와 데미그라스 소스 중에서 고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사진의 모델과 똑같이 생긴 종업원이 서빙을 하고 있다. '혹시 이 가게 모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차를 불렀는데 차가 엉뚱한 위치에 있다고 그 위치까지 달려가서 차를 다시 잡아 준 기타야마상, 감사합니다.

그 밖에도 서빙이 세련되고 친절한 가게. 

그리고 식사 후에는 누구나 다 가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이제야 처음 가 봤다. 

(내가 얘기했잖아. 도쿄 잘 모른다고.)

눈길을 끈 것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화집. 

제목 자체가  Gaps in the film, 촬영 중간중간 짬 날때마다 그렸다는 얘기 아닌가. 

워낙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더 호감이 가네, 이 아저씨.

서점에 왜 이런게? ;

아무튼 이런 서점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고 나서 한 10년 전, 이 츠타야 서점이 생기기 전에 이 동네를 와 봤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무튼 도쿄는 계속 발전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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