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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보일이 확실하게 '제2의 폴 포츠'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30일 열린 영국 ITV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의 시즌 3 결승전에서 보일은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우승을 하기엔 좀 모자라지 않느냐는 예측이 적중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우승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될 전망입니다.

영국 미러(Mirror) 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잔 보일은 다음주가 시작하자마자 프라하에서 체코 필하모니와 녹음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폴 포츠가 우승했을 때에 비해 모든 것이 한 템포 빠릅니다. 이유는 당연히 폴 포츠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죠. 또 녹음이 끝나고 음반이 출시되는 것과 때를 같이 해 전미 투어가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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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선 결승 퍼포먼스를 일단 보시겠습니다. 세미 파이널에서 혹평을 받았던 Memory를 접고 다시 예선 때의 I Dreamed a Dream을 불렀습니다. 변한게 있다면 패션입니다.

(언제 잘릴지 몰라서 링크를 덧붙입니다. 요즘 유튜브가 BGT 관련 동영상에 민감해서.
http://www.youtube.com/watch?v=b2xiAQCTy2E)


역시 감동이 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감동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열광도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많이 다뤄지고, 순간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식어가는 속도도 빠르기 마련입니다.

준결승에서 불렀던 노래는 왜 혹평을 받았는지도 확인해 보시죠.

 http://www.youtube.com/watch?v=YpJsinIr_8Q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수잔 보일이나 폴 포츠나, 진지한 가수의 길을 걷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실력의 소유자들입니다. 단지 그들의 인생사와 극적인 장기 자랑 대회의 후광이 덧씌워지면서 부족한 부분들이 메워지는 효과를 낳고 있을 뿐이죠.

그렇긴 하지만 이 Memory에 대한 부분에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을 겁니다. 그만큼 Memory는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 이상으로 부르기 힘든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수잔 보일이 첫 음부터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이 노래는 빼어난 기교는 물론이고, 그 기교로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성량을 필요로 하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어려운 노래로 만든 주역은 이 노래를 유명하게 만든 엘레인 페이지가 아니라, 초절정의 위력으로 이 노래를 녹음한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입니다. 잘 알려진 스트라이젠드의 Memory가 표준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다른 어떤 가수가 부른 노래도 거기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어떤 가수도, 어떤 뮤지컬 배우도 스트라이잰드가 개척한 영역에 감히 필적하는 노래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스트라이잰드도 라이브로 부르는 모습을 제가 보거나 들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좀 무리일 수도 있겠죠.)

그런 만큼 보일이 저 노래를 기대 이하로 부르는 건 어찌 보면 아주 정상적인 일입니다. 아마 이 노래의 원조격으로 꼽히는 엘레인 페이지가 부른 노래를 들어 보셔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한마디로 Memory는 선곡의 극악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거나 말거나, 보일은 이제 돈방석에 앉았다는 것이 보도 내용의 요지입니다. 폴 포츠의 전례를 따라 대강 계산해 본 결과, 수잔 보일이 벌어들일 돈의 규모를 600만 파운드(약 120억원) 정도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수잔 보일의 새 매니저는 "한번 공연당 보일의 개런티가 약 6만 파운드(1억2000만원 정도) 쯤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는군요.

물론 폴 포츠에 비해 수잔 보일은 꽤 말이 많은 편입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비쳤던 포츠에 비해 보일은 적극적이고 수다스러운 편이라 말이 많으면 실언도 나오게 돼 있죠. 이미 몇몇 타블로이드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말인즉 보일이 무대 뒤에서 다른 출연자인 소년 샤힌 자파골리에게 심사위원들이 칭찬을 던지자 "집어쳐(Fuck off)"라고 욕설을 했고, 런던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 로비에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오자 욕설을 퍼부었다는 식의 주장입니다. 물론 제작진은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라고 공식 부정했습니다. 아무튼 결승을 앞두고 "출전하지 말라"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흠집이 허물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수잔 보일의 스타덤은 공고합니다. 유튜브를 통해 기록된 6000만회라는 기록적인 조회수가 뒷받침해주는 셈이죠. 물론 언제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폴 포츠처럼 2집을 낼 수 있다는 보장도 물론 없죠.

(폴 포츠 2집에 대해 써둔 글도 곧 이리로 옮겨 오겠습니다.)


아무튼 1등을 한 다이버시티는 어떤 팀인지도 한번 보시죠.

 http://www.youtube.com/watch?v=KJIz8BgRQc0

 

그리고 제가 아까워하는 소녀 가수 홀리 스틸의 결승 모습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cqxzWBV1qc4

이번엔 팬텀에서 크리스틴이 부르는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 을 불렀군요.
 


영원한 크리스틴, 사라 브라이트먼이 부른 버전입니다. 앞에 다른 노래가 좀 깁니다.

 


물론 홀리 스틸이 자라면 더 잘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p.s. 관련 자료를 찾다가 희한한 Memory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누군지 맞춰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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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큰 일을 겪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피력합니다. 어떤 말들은 명언이 되어 남고, 어떤 말들은 망언으로 기록됩니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는 육손에게 패해 죽기 직전, "새가 죽을 때가 되면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人之將死, 其言也善)"고 말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 되면 누구든 자신이 어떤 말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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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 한마디

오슨 웰스의 고전 명작 영화 ‘시민 케인’은 언론 재벌 케인이 숨을 거두는 순간 중얼거린 “로즈버드”라는 말의 의미를 찾는 미스터리 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유명 인사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유사 이래 수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카이사르의 “브루투스, 너마저도” 이후 수많은 말이 때로는 교훈으로, 때로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회자(膾炙)됐다.

마지막 말들은 망자의 일생을 압축해 보여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좀 더 좋은 작품을 남겼어야 했다”며 마지막까지 겸손했고, 골프광이던 가수 빙 크로스비는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18홀을 돈 뒤 “이봐, 정말 멋진 게임 아니었나?”라고 말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하기 전 남긴 메모의 “슬픔은 끝없이 지속된다”는 말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때론 죽음에 대한 태도도 엿볼 수 있다. 마르코 폴로는 “내가 본 것 중 절반도 얘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지만, 카를 마르크스는 “마지막 말 따위는 살아서 할 말을 다 못한 바보들에게나 들으라고”라며 후회 없음을 피력했다.

해학으로 후인들을 위로한 사람도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편하게 옆으로 누워 보라는 딸에게 “죽는 사람에게 쉬운 일이란 없단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버나드 쇼도 “죽는 게 웃기는 것보다 쉽군”이라며 위트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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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그가 완성하지 못한 문장의 첫머리인 ‘인용하자면(Citater fra)’은 끝없는 연구자의 자세를 가리키는 격언으로도 쓰인다. 위대한 과학자들에게도 죽음은 외경의 대상이었다. 찰스 다윈은 “나라고 죽는 게 겁이 안 날 리가 있나”라고 말했고,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이건 말도 안 돼!”라며 강한 의혹을 표현했다. 가끔은 가공의 한마디가 조작되기도 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여러분, 희극은 끝났소. 박수를 치시오”라는 멋진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 여부는 지금껏 논란의 대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은 “담배 있나?”로 기억되겠지만 유훈(遺訓)은 29일 영결식장에서 낭독된 14행의 유언 가운데서 찾아야 할 듯하다. 과연 그는 그 14행 중 어느 말이 가장 오래 기억되길 원했을까. 마지막 가는 길에도 “원망하지 말라”며 후인들의 화합을 꾀했던 그의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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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고인들이 수없이 많은 말들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는 굳이 보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마지막 말들은 '훈요십조'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어처구니없이 수백년 뒤 호남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 말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찾으라면 화합의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주변 정황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남기고 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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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달변가 김제동이 이날도 명언 하나를 남겼습니다.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유언에 대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비석 하나씩을 세우겠다"고 한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빙 크로스비(알고보니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이 있다는군요)의 노래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이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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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시티홀'이 요즘 김선아의 시장 출마로 요란합니다. 일각에서는 돈 없고, 빽 없고, 서민을 위해 출마한 신미래 - 극중 김선아의 이름 - 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는 듯 하다고 해서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일찌기 '프라하의 연인'때에도 대통령 역을 맡았던 이정길(여주인공 전도연의 아버지 역)에게서 노 전 대통령의 향취가 묻어나게 했던 김은숙 작가인 만큼 이번 '시티홀'의 주인공에게 그런 느낌을 투사한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드라마 '시티홀'의 입장에선 사실 신미래의 출마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신미래와 조국(차승원)을 중심으로 한 코믹한 분위기가 축소되고, 신미래가 현실과 맞닥뜨리는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중심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딱딱한 분위기를 해소하는 인물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바로 박전진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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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5번 신미래에 앞서 기호 4번으로 등장한 박전진 후보는 '황당 공약'으로 웃음을 주는 후보였습니다. 그의 공약이란 '세금낸 만큼 돌려주겠다. 현금 백만원씩 당일 계좌이체, 노총각 노처녀 주 1회 미팅 의무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떠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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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박전진 후보의 스샷을 구할수 없어서 죄송. 왼쪽이 기호 4번 박전진 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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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역할을 맡은 분은 이 분.)


한때 허본좌라고도 불렸던 허경영. 인터넷에서는 꽤나 인기를 떨쳤던 인물입니다.

그분의 주요 공약을 슬쩍 훑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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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으로 매월 50만원씩 지급

-결혼하면 남녀 각 5000만원, 애 낳으면 1명당 3000만원 지급

-중소기업 취업자 100만원 쿠폰, 5년 이상 근무자에게 3억 지원

-400만 신용불량자에게 20년 무이자 융자 실시.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정당제 폐지

-경기도 전체를 서울특별시로

-상속세 폐지

-농약생산 금지

-택시 기사 민정경찰 임용

그리고 대망의 최대 공약,

-UN본부 판문점 이전

이 분의 지지율은 0.4% 정도였습니다. 96756표를 얻었죠. 그리 적다고는 보기 힘든 숫자입니다. 성인 10만명이 - 물론 그냥 사는게 따분하고 짜증스러워서 그런 분들이 꽤 있다고 생각하지만 - 저런 황당무계한 공약에 마음을 돌렸다는 뜻입니다.

뭐 이 블로그에도 가끔 나타나시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저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듯 합니다. 그래서 정치란 참 알수 없는 것이겠죠. 앞으로 저런 분이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 허경영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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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전진 역을 맡은 배우에게도 관심이 갑니다.

이름은 이도경. 1953년생이니 56세의 관록파 배우입니다. 이분을 처음 본 것이 대학로에서 공연된 '불좀 꺼주세요'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최근에 영화에서도 몇 차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로 악당 역이었죠. 양동근 주연 '와일드 카드'에서도 룸싸롱 사장 역으로 나왔고, 류승범 황정민의 '사생결단'에서도 지하세계의 마왕 역으로 나왔죠.

요즘도 연극계에서는 활발한 현역이라고 합니다. '용띠 위의 개띠'.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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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날이 나날인데 '시티홀'에서의 선거열기를 보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나서 포스팅이 산만합니다. 오늘은 그냥 이걸로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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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리뷰를 쓰는 것보다 '요리로 푸는' 시리즈가 더 몸에 맞는 것 같습니다. 뭐 이런게 스타일이라는 거겠죠. 이미 리뷰를 썼지만,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도 도마에 올려놓고 채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터미네이터4'에 대한 기본 입장은 이미 지난번 리뷰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냥 웃자고 써 본게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별 대단한 내용은 없습니다. 의외로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는 개봉 첫주에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 이어 2위를 했더군요. 아무래도 어린이 관객들에겐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그리 약발이 없는 듯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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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CG 콘테이너로 1대분. 세번 우려낸 터미네이터 사골 300개, 크리스천 베일 75kg, 샘 워딩톤 80kg, 문 블러드굿 50kg, 기타재료(안톤 옐친, 헬레나 본햄 카터,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취향대로.
준비물: 작은 저수지 하나. 대형 토치 램프. 발전용 증기 터빈.

사회자: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요리입니다. 오늘은 맥지(McG) 선생님을 모시고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제목이 좀 길군요. 그냥 'T4'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맥: 저를 좀 소개해 주시는게...
사회자: 아유, 성질도 급하시간. 당연히 소개해 드립니다. 맥지 선생님이 그동안 만들어 오신 요리 중에서 그리 심각하게 소개드릴만한 건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오래 종사하시다가 어느날 갑자기 희귀어 세 마리를 한데 넣고 푹 고은 요리에 '미녀 삼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맥: (헛기침) 미녀 삼총사.
사: 아, 네. 미녀 삼총사. 하하. 맞습니다. 가끔 그렇게 헷갈리기도 하죠. 그런데 정작 그 미녀 삼총사 요리에 진짜 미녀라고 할만한 재료는 하나밖에 없더라는 주장도 있더군요.
맥: 셋 다 미녀 맞습니다. 그러니까 두번이나 우렸는데도 국물이 나오죠.
사: 네. 그러고 보니 푹 고는데 재능을 보여주신 맥지 감독님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재료 역시 재탕도 아니고, 삼탕도 아니고, 무려 사탕입니다.
맥: 뭘 4탄 갖고 그래요. 저 사거리 007탕집은 지금 몇탕째 우려먹고 있는줄 알아요?
사: 거기는 그래도 이름만 똑같지 재료는 늘 바꾸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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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우리도 재료는 바꿔요. 이번엔 최초로 아놀드 햄이 안 들어간 터미네이터 요리를 선보일 생각이라구요.
사: 오오. 아놀드 햄이라면 쫀득한 육질 때문에 터미네이터 요리에는 필수 조건이라고 꼽히던 것인데 얼마전에 생산중단됐다더군요.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어? 그런데 저 재료 더미에 보니까 아놀드 햄이 있네요?
맥: 아. 그건 사실 포장만 똑같은 모조품입니다. 뭐 대략 맛은 나요. 사실 진짜 아놀드 햄을 넣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 햄이 벌써 유효기간이 다 지났더라구요. 만들던 회사 사장이 뭐 정치를 한다고 공장을 접었다든가... 아무튼 그래서 이번 탕에는 그냥 모조품만 살짝 들어갑니다.
사: 그런데 요리의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그릇에 넣고 끓이고 고는 수준이 아니라 저수지를 요리 도구로 쓰신다구요?
맥: 하하하. 이거야말로 진정한 요리의 블록버스터지요.
사: 감동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끓이죠? 바닥에 땅굴을 파고 불을 지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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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만화같은 얘기 하지 말아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일단 터미네이터 금속 사골을 대형 토치에 가열합니다.
사: 그래서요?
맥: 자 이렇게 빨갛게 달아오르죠? 그럼 물에 던집니다.
사: 아이고, 칙 소리가 나는군요.
맥: 네. 이렇게 계속 달궈서 물에 던지는 겁니다. 이렇게 던지다 보면 물이 끓게 돼 있죠.
사: 얼마나요?
맥: 팔팔 끓을 때까지요. 블록버스터 정신을 모르시는군. 닥치는대로 쏟아 붓는거야! 물이 안 끓어? 그럼 끓을 때까지 붓는 거지! 자, 보라구. 끓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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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아, 네. 정말 장관입니다. 시청자여러분, 보이시죠? 네. 끓고 있습니다. 거의 국물이 쇳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이야, 보고만 있어도 흥분되는데요. 그런데 저 대형 토치는 뭘로 가동되는겁니까? 동력이 만만찮게 필요할텐데.
맥: 동력 하나도 필요없어요. 저 물이 끓잔아? 그럼 증기 터빈을 돌려서 토치가 가동되게 되는거죠.
사: 이상한데? 토치로 터미네이터를 달궈야 물이 끓는거 아닌가요?
맥: 그렇지. 그 토치는 물이 끓는 동력으로 움직이는거고.
사: 그럼 말이 안되잖아요. 토치에 동력이 없는데 어떻게 물이 끓...
맥: 다 돼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타임 패러독스 조리법이야. 원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거지. 선배들도 다 이렇게 했어. 새삼스럽게 그런걸로 시비걸면 촌스러워요. 자, 중간에 이렇게 살짝 국자로 떠서 맛을 봐요. 어떻습니까.
사: 네... 그런데 이거 맛이 어디서 많이 보던... CG맛인데요? 한때 크게 유행했던 트랜스포머탕이랑 아주 비슷한 맛입니다그려. 감독 이름에 벌써 CG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맥: 에이 이 양반이 맛을 몰라도, 그게 어디가 비슷해요. 이게 전통의 터미네이터 탕 맛이지. 어디 가서 무슨 사라코너탕 이런거 먹고 와서 딴 얘기 하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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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그게 그렇습니다. 이 T탕이 두번 우릴때까지는 진국이었거든요? 그런데 몇년 전에 어떤 듣보잡 조리장이 '세번 우려도 맛이 난다'면서 완전히 똥국을 만든 적이 있잖습니까. 그걸 보시고도 무려 네번째 재탕에 들어가신 용기가 가상합니다.
맥: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했다구.
사: 뭐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좋아했을 수도 있죠. 아무튼 4탕은 어느 정도 욕먹을 각오를 하신 거 아닙니까.
맥: (입안엣소리로) 이런 사람한테 6탕까지 할 생각이라고 하면 뭐라구 할까?
사: 네? 뭐라구요?
맥: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이번 4탕은 T탕 맛의 신기원이고, 이걸 통해서 그동안 T탕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이 서운하지 않게 계속 T탕 맛을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걸로 마무리...
사: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또 있습니다.
맥: 또 뭐?
사: 원래 T탕의 초탕에서는 터미네이터 사골 국물 맛 말고 다른 맛도 많았거든요. 이를테면 그 콩 재료가 뭐였죠?
맥: 마이클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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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네. 그 아무튼 그런 부재료들의 맛이 감칠맛이 돌았는데, 이건 순전히 터미네이터 사골과 CG 맛이네요. 특히 박쥐 종류인 크리스찬 베일은 그 맛이 진하기로 정평이 난 재료인데, 아무리 맛이 진해도 저수지 물에 박쥐 한마리 넣고 맛이 나길 기대하면 안될 것 아닙니까.
맥: 정확하게 봤어요. 나는 부재료에 연연하는 요리사가 아니에요. 굵고 강하게! 이 음식의 주 재료는 어디까지나 희게 빛나는 터미네이터 사골과 CG란 말이에요!
사: 뭐 그렇게 우기시면 그럴싸하긴 한데, 그렇게 되고 나니 뭐가 특유의 맛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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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그럼 저기 떠 있는 샘 워딩톤이랑 문 블러드굿을 건져서 맛을 보세요. 얼마나 감동적인 맛인지. 이 기계문명과 인간미의 조화!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해!
사: 그런데 이것도 다 예전에 벌써 카메론 주방장이 다 우려먹은 맛입니다 그려. 오히려 왕년의 히트 요리 V탕에 들어갔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맛이 더 인상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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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그럼 카메론 그 양반보고 다시 와서 끓이라고 하든가.
사: 글쎄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명색이 T탕인데 식당가 손님 동원 기록에서 첫주 1위를 못했다는 것도 살짝 망신이군요.
맥: ...한국 분점에선 1등했다던데.
사: 첫주는 그렇더군요. 어디 둘쨋주에는 마더탕이랑 어떻게 되나 봅시다. 자, 오늘의 요리,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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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드라마 '선덕여왕'이 호평 속에 막을 올렸습니다. 신화적인 시청률은 아니지만 첫회와 2회가 모두 경쟁사 드라마들을 압도하는 성적을 거뒀더군요. KBS 2TV '남자 이야기'와 SBS TV '자명고'는 모두 단자리수 시청률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잘 만든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앞날에 대해선 약간 걱정이 됩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배경은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아닌 '화랑세기'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설화와 역사의 사이에서 '선덕여왕' 제작진이 어떤 발걸음을 걸을지에 대한 생각입니다. 특히 미실이나 선덕여왕 같은 여성 등장인물들의 다소 요란한 남녀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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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논란의 대상인 '화랑세기'라는 책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사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김대문이 '화랑세기'라는 책을 썼다"는 것 뿐이죠. 기록에 따르면 이 화랑세기라는 책은 신라가 통일에 이르던 6세기 말에서 7세기에 이르는 시절 화랑들을 이끌었던 풍월주(화랑의 장) 32명의 전기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이 세상에 발견된 것은 20세기의 일입니다. 그것도 최근, 1989년의 일이죠. 일제시대때 박창화라는 분이 일본 황궁 도서관에서 '화랑세기' 원본을 발견하고 손으로 필사해서 남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일본에 그 원본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도입부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등을 비롯해 참 많은 소설가들이 이용하는 트릭이기도 하죠.

이 화랑세기 필사본은 "박창화의 창작이다" "진짜 화랑세기의 필사본이 맞다"는 치열한 논란에 들어갑니다. 사실 그 내용은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미실이라는 여성에 대한 부분이 특히 그렇죠. 5대 풍월주 사다함의 연인이고, 6대 풍월주 세종의 부인이고, 7대 설화랑을 정부로 두고, 10대 미생랑의 누나이며, 11대 하종랑과 16대 보종랑의 어머니인 이 여성을 놓고 보면, 한마디로 '화랑세기'의 진짜 주인공은 미실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창작이건 진짜 역사건, 현재 알려진 '화랑세기'의 내용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요 내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과연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것이냐는 데 대해서도 여러 우려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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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실의 남자관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화랑세기'가 기술하고 있는 당시의 남녀관계나 이성관계는 엄청날 정도로 개방적입니다. 미실이 성장했을 때 진흥왕은 이미 말년에 접어들어 있었지만 어머니가 같은 동생인 세종 전군(아버지는 다릅니다. 왕비와 장군 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아내인 미실을 후궁으로 둡니다. 진흥왕의 아내인 사도부인은 미실을 '3대에 걸쳐 색공을 할 수 있는 여인'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색공이란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며 모시는 것을 말하죠.

미실은 진흥왕 사후 태자 진지왕을 왕으로 옹립하기로 하고 서로 배신하지 말자는 뜻으로 진지왕과 잠자리를 같이 한 뒤, 자신을 황후의 자리에 맞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진지왕은 왕위에 오른 뒤 약속을 깨고, 미실은 화랑들과 대신들을 동원해 진지왕을 왕위에서 쫓아낸 뒤 진평왕을 옹립합니다.

여기까지가 화랑세기의 기록에 나오는 미실의 당시 행적이고,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앞부분과 일치합니다. 지금까지만 보더라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참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문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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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행히도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 KBS의 '천추태후'가 방송됩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고려 초기의 엄청나게 문란(물론 현대인의 시각입니다)한 가족관계였습니다. 친남매끼리도 어머니만 다르면 혼인을 하고, 과부가 된 왕비가 다른 왕족과 불륜을 저지르는데 그 후손이 왕위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관계를 보여준 것이죠.

만약 앞에 '천추태후'가 방송되지 않았더라면, '선덕여왕'은 '사극을 빙자한 패륜 드라마'로 낙인찍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추태후'가 그나마 어느 정도 완충제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사실 '화랑세기'에 나오는 미실의 관계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동생인 미생과의 관계입니다. 남매간에도 근친상간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죠. 아무리 드라마 '선덕여왕'이 파격적인 신라시대의 남녀관계를 가감없이 묘사한다 해도 여기까지는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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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부분으로 가면 내용은 더 심각해집니다. 흔히 선덕여왕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처럼 평생 처녀로 산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화랑세기'에는 네 명의 남편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중 두 사람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와 양아버지인 용수와 용춘이고(게다가 용수는 언니인 천명공주의 남편입니다), 네 명 가운데 지금 신구가 연기하고 있는 재상 을제도 있습니다. (신구-이요원 커플이라... 참 흥미롭군요.^^)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앞으로도 선덕여왕과 김유신을 커플로 묶을 분위기이니 이런 엽기 커플의 등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아무튼 '화랑세기'와 미실, 그리고 드라마 '선덕여왕' 얘기는 한번에 다 풀어내기엔 좀 떡밥이 큰 것 같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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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고현정의 연기력은 정말 발군입니다. 아마도 이 작품이 고현정의 대표작에서 마침내 '모래시계'를 밀어 내는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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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그나자나 결국 선덕여왕도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어린 날을 보낼 전망이군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설정을 울궈먹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사극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이런 어린 날을 보내야 한단 말입니까? 서민으로 살아보지 못하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컴플렉스라도 있는 걸까요? 아마도 김영현 작가 때문이라기보다는 MBC 드라마국이 이런 설정을 고집했을 듯 한데, 시청자를 너무 바보로 보는 듯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아역의 고생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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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보면서 실컷 웃었습니다. 이제는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장면들이 반복되는데도 왜 이렇게 웃기는 걸까요.

다들 아시는대로 '잘 알지도...'는 홍상수 감독이 일찌기 보여준 패턴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특히 '생활의 발견'을 보신 분이라면 데자부 현상이 매우 심할 겁니다. 물론 이 작품만이 아니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나 '극장전'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그대로 재현됩니다. 남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건 어떻게 하면 극중의 여자들과 성적으로 교접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뿐이고, 어떻게 하면 이 놈보다 좀 더 우월하고 강해 보일까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 소름끼치게 리얼한 장면들이 어떻게 웃음으로 소화되는지, 지난번 요리 포맷으로 다시 꾸며 봤습니다. 아, 이 '오늘의 요리' 스타일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 보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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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김태우 통으로 한 개. 고현정 소스, 엄지원 소스, 공형진 800g, 하정우 200g. 유준상 두 큰술, 정유미 1공기. 뒤켠에서 뜯어온 풀. 잔디도 가능. 실수해서 난초 이파리를 뜯어오면 대략 곤란.
준비물: 소주 100병, 담배 100갑. 맥주 50병.

사회자: 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요리는 온 세계에 한국 요리를 널리 알리고 계신 요리연구가 홍상슈 선생님입니다. 특히 비싼 재료를 싸게 써서 싸구려 요리를 맛깔나게 만드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죠.
홍: (눈을 흘긴다.)
사회자: 아, 네. 죄송합니다. 제대로 소개드리겠습니다. 유수의 세계 요리 축전에서 수상해 한국 요리의 명성을 드높이신 분입니다. 한때 또 이 분의 요리는 짙은 육향으로 유명했었죠. 돼지고기는 우물에 담갔다 조리해야 제맛이라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감자를 주 재료로 했던 '강원도의 힘',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탈 그릇을 써야 맛이 난다던 '오! 수정', 그리고 우연히 조리대 근처에서 발견한 재료만 써야 한다던 '생활의 발견'... 모두 살색이 제대로 돌던 요리들입니다. 이야, 지금 생각해도 침이 넘어가네요.
홍: 인사는 안해요?
사: 아, 안녕하시죠?
홍: 엎드려 절받기구만. 대체 왜 그래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구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 까칠하게 왜 그러십니까. 에이, 삐지지 마시구요. 하하. 오늘 소개드릴 요리 제목을 그냥 한번 강조해 보신 거죠? 말씀대로 요리 제목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입니다. 지지난번에 보여주셨던 '해변의 여인'과 재료가 비슷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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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재료가 중요한게 아녜요.
사: 네. 하긴 그렇습니다. 사실 한우 중에서도 김태는 워낙 육질이 좋아서 뭘 해도 맛이 나죠. 얼핏 보면 좀 뻣뻣한 듯 하고 싱거운 듯도 하지만 알고 보면 제맛이거든요. 생각해보면 다른 요리연구가 분들도 육향 짙은 음식에 이 김태우를 사용하더군요. 그 뭐더라, 짙은 김혜를 보글보글 끓이다가 김태우를 넣고 푹 고은...
홍: 얼굴없는 미녀탕.
사: 아, 네. 그겁니다. 드셔 보셨나요?
홍: 전 남의 요리 맛 잘 안 봐요.
사: 그러시군요! 네. 하긴 천재시니까. 아무튼 김태우를 어떻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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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전에도 몇번 해 봤지만, 역시 김태우는 잘게 채쳐야 제맛입니다.
사: 그렇죠.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방식입니다.
홍: 그리고 주의할 건 요리가 정확하게 절반으로, 데칼코마니 형태를 이뤄야 한다는 거죠.
사: 네. 그렇군요. 김태우를 크게 썰어서 접시 가운데 놓고...
홍: 그 전에 숙성을 시켜야죠.
사: 뭘로 합니까?
홍: 소주랑 맥주에 담가요. 꽤 담가서 소맥에 절여졌다 싶으면 담배 연기로 훈제.
사: 왠지 요리하는 광경만 봐도 속이 좀 쓰려옵니다.
홍: 내 음식 처음 봐요? 소주랑 담배연기 빼면 음식이 안 되는데.
사: 알겠습니다. 아무튼 자, 숙성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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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숙성 끝났으면 튀겨요.
사: 튀기니까 꽤 커지는군요? 푸짐해 보이네요.
홍: 자, 이렇게 접시에 담고, 중요한건 아까도 말했지만 좌우 대칭.
사: 그렇군요. 왼쪽에는 엄지원 소스, 오른쪽에는 고현정 소스.... 어째 고현정 소스 쪽은 소나무 냄새도 나는 것이 맛이 더 진한데요.
홍: 농도는 같아요. 뭘 안다구 그래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 (참는다) 재료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은 재료들은 어떻게...?
홍: 뭐, 나머지 재료들은 큰 의미는 없어요. 하정우는 으로 큼직하게 썰어서 후라이팬에 볶으면 되고, 공형진은 좀 진을 짜내면 되고, 정유미는 그걸로 찰밥을 하면 되고... 요리가 끝나면 유준상에 올려 놓고 먹으면 되겠군요.
사: 그런데 듣고 보니 전부 말장난 같군요?
홍: 제법입니다. 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치곤 제법이군요.
사: 자꾸 그러시면 불쾌합니다. 저도 감정이 있습니다.
홍: 감정! 그거 정말 중요해요. 감정이 없으면 요리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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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이 음식에 들어가는 감정은 어떤 겁니까?
홍: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느끼는 감정. 수컷의 감정. 그래서... 직접 맛을 보세요.
사: 네. 맛은 아주 좋은데 먹어도 먹어도 허전하네요. 뻥튀기 맛입니다.
홍: 정확해요! 이제 보니 맹탕은 아니군요. 이 요리의 주제는 수컷들의 허장성세에 대한 비판이죠. 뭘 하려고 해도 서로 더 커보이려고 하고, 그런데 그 속은 이 튀김처럼 공허하죠.
사: 그런데 이 공허한 튀김 요리는 전에도 계속 만들어 오시던 것 아닙니까. 좌우대칭도 그렇고... 뭐 하나 새로운게 없는데요? 대체 이런 요리는 왜 만드는 겁니까?
홍: 그런 유치한 식견으로 요리 프로 진행을 해도 되는 건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 에잇 정말. 유치해서 더 이상 못 보겠네. 다음부터 만나지 맙시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한 얘기로 요리 설명하는데 써먹지 말아요!
홍: 당신이 이 요리의 맛을 모른다면 그건 인생을 모르는 거에요. 인생을 알면 알수록 이 요리의 진미가 느껴진다구.
사: 인생을 살아본 사람 중에도 댁의 요리 싫어하는 사람 많다구요.
홍: 물론이지. 왜 그런지 알아요? 그건 자기 살을 씹는 기분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음식을 먹을 땐 음식의 재료와 자신을 떼놔야 하는 법이거든. 개고기 못 먹는 사람들은 개에 대한 애착을 못 버려서 그런 것처럼. 마찬가지로 자기 살 씹는 느낌인데 요리 맛이 나겠어.
사: ...듣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데요?
홍:  그럴듯하긴 뭐가 그럴듯해? 이게 다 사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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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놓고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해석이란 대개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을 현실의 언어로 푸는 걸 말하는데, 더 이상 리얼할 수 없는 영상을 보면서 그걸 해석이라는 빌미로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가끔 어려운 심리학 용어까지 등장시켜가면서 말이죠.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열한 야심을 비웃고, 낄낄거리고 웃다 나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 값는 다 하는 셈입니다. 아, 물론 몇몇 작품들은 안 그런 부분이 있죠. 그래서 저는 '생활의 발견' '오 수정' '해변의 여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순으로 홍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도 그 계열에 서 있는 것 같군요.

아무튼 이 영화에서 최고의 선택은 제목입니다. 뭐라 말하건, 어떤 상황이건 써먹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저라고 이런 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뭘 안다고 이렇게 주절거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요리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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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3등,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 심사위원 대상, 심사위원상의 세 단계로 작품상을 시상합니다. 지난 2004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이번에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으니 명실공히 '칸의 사나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특히 타임지의 평론에서 "지난번('올드 보이')보다 마땅히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게 했기 때문일 것이고, 아무래도 이미 2등을 해 본 경험이 있끼 때문에 3등은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감독들의 작품 20여편 중에서 네 작품 안에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란 걸 잊어선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겨우 3등?'이란 식으로 대응한다면 그야말로 올챙잇적 시절 모른다는 소리 듣기 딱 좋겠죠.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의 본상 수상 범위에 든 것도 이번이 네번째일 뿐입니다. 일본 영화는 황금종려상만 다섯 번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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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때문인지 슬쩍 아쉬움이 묻어 나는 듯한 표정입니다.

한방에 정리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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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Palme d'Or
- 하얀 리본 Das weiße Band by Michael Haneke

심사위원대상 Grand Prix

- 예언자 Un prophete by Jacques Audiard

감독상 Prix de la mise en scene
- Brillante Mendoza for 키나테이 Kinatay

 심사위원상 Prix du Jury 
-피시 탱크 Fish Tank by Andrea Arnold
-박쥐 Thirst by Park Cha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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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본상 Prix du scenario
-춘곤증 Chun Feng Chen Zui De Ye Wan(Spring Fever) by Lou Ye
오른쪽이 주오 탄, 왼쪽이 웨이 우, 가운데 로 예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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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연기상 Prix d'interpretation feminine
- Charlotte Gainsbourg for Antichrist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아시다시피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사이의 딸이죠. 제인 버킨은 여자분들이 환호하시는 바로 그 버킨 백의 주인공 맞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만은 못하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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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연기상 Prix d'interpretation masculine 
- Christoph Waltz for Inglourious Basterds
시상자는 장자이입니다.

평생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Award for his work
- Alain Resnais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황금종려상은 타기가 어려운 걸까요. 거기에 대해 지난주 토요일자 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닙니다. 1등이 2등보다 반드시 우수한 작품이라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른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등만이 기억된다는게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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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황금종려상

칸 영화제의 대상은 황금종려상(Palme d'Or)이라고 불린다. 1939년 시작된 이 영화제의 대상은 1954년까지 그냥 그랑프리라고 불렸지만 1955년부터 칸의 상징인 종려나무 잎새를 디자인에 활용한 황금종려상이 등장했다. 49년 시작된 베니스 영화제가 황금사자상을, 52년 베를린 영화제가 황금곰상을 시상하자 자극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24일 올해 칸 영화제 수상 결과가 발표된다. 그중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제 주최 측은 매년 명망 있는 세계의 감독들에게 출품을 요청하고, 그중 선택된 소수가 대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경쟁 부문에 포함된다. 올해의 경쟁부문 출품작은 20편.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포함됐지만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제외됐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을 우선한다는 것이 칸 영화제의 표어처럼 돼 있지만 사실 일반인이 보지 못한 영화가 태반이므로 흥행 성적은 반영할래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심사위원도 매년 전원이 교체되므로 일정한 수상 기준이나 예상 답안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해 심사위원장이 누구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혈 낭자한 액션영화의 대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2004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 아니었다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2등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받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거의 정설처럼 되어 있다.

물론 심사위원장의 스타일을 너무 과신해서도 안 된다. 2002년에는 '트윈 픽스'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초현실적 작품이 수상작이 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은 예상 외로 로만 폴란스키의 점잖은 전쟁 서사시 '피아니스트'에 돌아갔다.

송강호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므로 금메달(황금종려상)을 따느냐 못 따느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전례를 살펴볼 때 황금종려상의 수상은 어느 한 해의 출품작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감독은 뒤늦게라도 상을 챙겨 주는 것이 칸의 미풍양속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보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들 중 '가게무샤'를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칸 영화제는 80년, 이 작품을 통해 70세의 노장에게 황금종려상을 선물했다. 마치 '그동안 상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사인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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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 심사위원들입니다. 왼쪽부터 서기, 로빈 라이트 펜, 하니프 쿠레이시(영국 작가), 이창동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 샤밀라 타고르(인도 배우), 이자벨 위페르(프랑스 배우, 위원장), 누리 빌게 세일란(터키 감독), 제임스 그레이(미국 감독)의 순입니다.


뭐 공로상이라는게 따로 있긴 하지만, 평생 애쓴 노장들에게 어느 시점 이후에 상을 몰아 주는 건 어느 장르, 어느 지방에서나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영화계 뿐만이 아닙니다. 기타 황제 에릭 클랩튼만 보더라도 47세 때인 1992년 그래미상 6개 부문을 휩쓸기 전까지는 그래미상에서 단 2회밖에(1972, 1990)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이미 9차례나 더 수상했죠.

그러니 2등 한번, 3등 한번을 했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황금종려상을 손에 쥘 테니까요. 하네케 감독도 지난 2001년(심사위원대상)과 2005년(감독상)으로 두 번 준비동작을 한 뒤에 이번에 최고상을 차지했습니다.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영화인들은 황금종려상을 다섯 번이나 가져간 일본 영화계보다 훨씬 에너지 넘치고 관객들이 호응하는 훌륭한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할 듯 함니다. 아무튼 머지 않은 미래에 황금종려상을 번쩍 들어올릴 박찬욱 감독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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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촬영상 시상자로 등장했던 여신(혹은 마녀?)의 대표 이자벨 아자니입니다. 확대하시면 주름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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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원작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일 겁니다. 만들 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다는 말처럼 장면 전환이나 사건의 연결은 상당히 영화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슨 사건이든 댄 브라운의 작품은 일단 수수께끼를 풀 때 필요한 역사적인 근거나 당위성을 독자/관객에게 말로 설명해 줘야 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1분 1초가 아까운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랭던 교수는 누구에게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현재 상황의 의미를 전문다답게 해설해줘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상으로는 자연히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딛고 만든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에 비해 훨씬 개선된 오락 대작입니다. 일단 그런 말로 하는 설명이 꽤 줄어들었고, 액션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에 바티칸의 찬란한 유적이 볼거리를 제공해주니 금상첨화더군요.

론 하워드는 이번에도 톰 행크스와 음악의 한스 짐머,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 작가로 꼽히는 아키바 골즈만의 도움을 받아 아주 무난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지만 전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리뷰를 그냥 쓰자니 좀 심심해서 스타일을 바꿔 봤습니다.

오늘의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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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댄 브라운 소스 한 병, 톰 행크스 통으로 한개, 이완 맥그리거 2/3개, 스텔란 스카스가드 300g, 아민 뮬러 스탈 100g, 아키바 골즈만 적당량(조미료. 너무 많이 넣으면 느끼함), 아예렛 주어 약간(없을 때에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크리스티나로 대체 가능)
준비물: 바티칸 관광 기념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큰 접시. 각각 물, 불, 공기, 흙이라고 써 있는 인두 네 개, 비상용 램프(영화 '쉬리'에서 썼던 폭탄 소품도 가능),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프린트. 보드카,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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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안녕하세요! 오늘의 요리 시간입니다. 네. 오늘은 '천사와 악마'를 함께 만들어 보겠습니다. 요리연구가 론 하워드씨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시죠?
론 하워드: 아 예, 그럼요.
사: 시청자 여러분을 위해 잠시 설명 드리자면, 하워드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요리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또 요리마다 독특한 이름을 붙이시죠. 그중에서도 인어 요리의 참맛 '스플래시', 불맛이 살아있는 '백드래프트', 무중력공간요리 '아폴로 13' 같은 걸로 특히 유명하십니다. 뭐 이런 요리들에 비하면 정작 요리 아카데미에서 수상하신 '뷰티풀 마인드'요리는 창의성이 좀 떨어진단 평도 들었습니다.
론: (헛기침)
사: 아, 죄송합니다. 그 요리에서도 제니퍼 코넬리 양념은 정말 최고였죠. 네. 최근에도 닉슨을 냉동시켜서 재료로 쓴 '프로스트/닉슨'의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천사와 악마'는 몇년 전에 선보이신 '다빈치 코드' 요리와 참 비슷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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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요리에 대해 모르면 말을 말라고.
사: 아니, 톰 행크스를 뭉텅 넣고 댄 브라운 소스로 지글지글 조린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때도 한스 짐머를 틀어놓고 먹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론: 그때 그건 프랑스 요리잖아요. 이건 이탈리아 요리고. 꼭 파스타가 들어가야 이탈리아 음식이란 편견을 버려요.
사: 아 그렇군요. 그럼 요리를 시작합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뭡니까?
론: 톰 행크스를 통으로 쓰는게 중요해요. 이렇게 껍질을 벗기고, 이제부터 이걸 프로페서 랭돈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사: 랭돈...이 뭡니까?
론: 냉동 돈까스. 이 사람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군. 아무튼 '다빈치 코드' 때보다 재료를 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혼이 나갈 정도로 막 굴려요. 불에도 살짝 그을리고, 물에도 몇번 담갔다 빼요. 피도 좀 뽑아야 합니다. 무산소 상태에서도 처리가 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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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아, 네. 확실히 그렇게 재료를 막 다루니까 맛이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해요.
론: 그렇지? 그리고 요리할 때 계속 옆에서 신부들이 기도 소리를 내는게 중요해요. 이 댄 브라운 소스는...
사: 그 댄 브라운 소스 말인데, 일각에서는 이게 움베르토 에코 소스의 싸구려 대체품이라고도 하더군요.
론: (목소리를 낮춰서) 사실 우리도 알지. 움베르토 에코 소스에 비하면 이건 소스도 아니야. 하지만 그 에코 소스는 맛이 너무 독해요. 특히 애기입맛들은 먹어도 맛을 몰라. 잘못 먹으면 굉장히 힘들어 하더라구요. 그런 걸 생각하면 댄 브라운 소스가 우리같은 싸구려 입맛엔 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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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여기에 아키바 골즈만이라니, 참 MSG 조미료 덩어리를 만드시는군요?
론: MSG가 꼭 몸에 해로운 건 아니에요. 아무튼 이 소스랑 이 조미료를 합치면, 안성맞춤이야.
사: 뭐에 안성맞춤입니까?
론: 뭐긴 뭐야. 당연히 플래닛 할리우드에 안성맞춤이지. 그나자나 톰 행크스가 물에 푹 불었으면 이번엔 이완 맥그리거에 보드카를 뿌리고 불을 붙여요.
사: 이야, 정말 '백 드래프트'를 다시 보는 기분인데요. 그나자나 맥그리거 같은 재료는 이렇게 조미료에 뒤섞지 않아도 맛이 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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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이 음식에서 혼자 MSG를 거부하면 맛이 튀어서 안돼. 뭐 그럭저럭 잘 어울릴거야. 아이고, 좀 많이 탔네. 뭐, 그래도 괜찮아.
사: 제가 보기엔 이 부분의 처리에 당위성이 좀 부족하군요. 그런데 다른 재료들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론: 스텔란이나 아민은 모두 맛이 강한 재료들이니까 잘 씻어서 톰 행크스 위에 얹읍시다. 이렇게.
사: 어느 요리와도 잘 어울리는 재료들이군요. 그럼 아에렛 주어는 어디에 쓰는 겁니까?
론: 아 그거? 그건 없어도 돼요. 습관적으로 향이 나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써 놨군. 지난번에 오드리 토투 향료를 썼다가 행크스 햄이랑 화학반응이 영 없어서 고생했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향료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요. 뭐 이 향초를 쓰나, '미수다'에 나오는 크리스티나를 갖다 놓으나 그게 그거야. 그냥 이탈리아 풍 향초가 들어갔다는 느낌만 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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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근데 정작 그 아에렛 향초는 이스라엘제던데... 참, 댄 브라운 소스도 지난번 요리 때와는 맛이 좀 다른데요?
론: 당연하지. 그때 그 소스를 마트에서 파는 걸 그냥 썼다가 얼마나 욕을 먹었다고. 다들 입맛은 귀신이야.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소스에 나만의 비결을 첨가했지.
사: 그래봐야 아키바 골즈만을 솔솔 뿌린 거겠지. 아무튼 이제 다 된 겁니까?

론: 다 됐소. 자 한입... 어때요?
사: 음.
론: 음 뭐?
사: 이야. 이 바티칸 성 피에트로 대성당 앞에 앉아서 먹으니까 맛이 기가 막합니다. 그런데 이 맛이 경치 맛인지, 음식 맛인지를 잘 모르겠군요?
론: 구별할 필요 없어요. 이 음식은 바티칸 경내에서만 팔 거니까. 밖으로 나가면 아무 의미가 없어. 이렇게 한손에 쥐고 바티칸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한스 짐머의 합창곡이 흘러나올 때 먹어야 제 맛이지.
사: 그렇군요. 그런데 이 톰 행크스 배에 찍힌 이 불도장같은 건 뭡니까?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가 뭐죠? 무슨 조명 회사 이름인가요?
론: (얼굴이 굳는다) 너무 궁금한게 많으면 명이 짧아져요.
사: 아 네. 오늘의 요리,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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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교황 선출 투표가 벌어지는 시스티나 예배당은 바로 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는 그 방입니다.

설마 진짜 저기서 촬영을 했을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세트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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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스티나 예배당과 차이가 없습니다. 문득 20년 전 두고온 저곳이 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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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X-33은 안 나옵니다. 아마도 제작비 탓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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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각종 블로그를 통해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하 T4로 표기합니다)'에 대한 감회를 털어놓는 분들 중에서 1984년 12월 국내에서 개봉한 '터미네이터'를 극장에서 보신 분들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1985년 1월,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아놀드 슈바제네거(당시 표기)'라는 생소한 근육질 남자의 포스터만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모두 기절해 자빠졌습니다. 영화가 너무나 충격적으로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그때 처음 들어 본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이름은 이듬해 겨울, '에일리언 2'를 통해 '영화의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이라는 인식을 굳게 해 줍니다.

사설이 길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경로나 순서로 보게 됐건 T1과 T2 를 보고 감동하고, T3에서 개실망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T4에 대한 최근 반응은 대부분 "T3가 수렁에 빠뜨린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구원이 될 만한 작품'이라는 것이더군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 그런 평가에 찬성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주의: 이하의 글은 지금까지의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다 보지 않았거나, 이 시리즈에 별다른 애착이 없는 분들은 안 보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괜히 골치만 아플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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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미국 텍사스의 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사형수 마커스 라이트(샘 워딩턴)는 한 여의사(헬레나 본햄 카터)로부터 시신 기증 제의를 받고 수락합니다. 물론 사형이 집행되죠. 그리고서 2018년, 그는 자신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도 모른 채 인간들과 기계들의 전쟁이 한창인 아수라장 속에서 깨어납니다.

이미 저항군의 주요 인사가 되어 있던 존 코너(크리스찬 베일)는 어머니가 남긴 유훈에 따라 어딘가에 있을 '아버지' 카일 리스(안톤 옐친)를 구해야 한다는 상념에 젖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류의 저항군 사령부는 기계들과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놀라운 신기술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T4는, 당연한 얘기지만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역할을 할 운명을 띠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작품입니다. 물론 시간상으로는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뒤의 시점을 그리고 있지만, 워낙 시간 여행을 전제로 하고 있는 작품인 만큼 T1의 원인을 제공할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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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 시간표를 잠시 인용합니다.


1984. 5. 12. 사라 코너를 구하기 위해 카일 리스, 미래에서 와 T-800과 혈전 (T1)
1985. 2. 28. 존 코너 출생 (T1과 T2 사이)
1995. 6. 8. 스카이넷, T-1000을 파견. 저항군은 T-800을 보냄 (T2)
1997. 8. 29. 예정됐던 인류 절멸의 날. 그러나 T2의 결과로 사라짐
2004. 7. 24. 스카이넷, T-X를 보내 존 코너와 미래의 아내 케이트를 죽이려 시도. (T3)
2004. 7. 25. 스카이넷의 자각으로 기계의 반란 발생. 저지먼트 데이.
2018.          존 코너, 마침내 소년 카일 리스를 만나다. (T4)
2028.          존 코너, 저항군 사령관으로 열심히 스카이넷과 전투중 (T2의 한 장면)
2029.          (아마도) 저항군 최후의 승리, 존 코너가 카일 리스를 과거로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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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의 도입부. 많은 팬들의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영상이 등장합니다.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미래의 어느 시점, 누드 상태의 터미네이터가 인간의 해골을 밟아 부스러뜨리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고, 미래 시점에서 인간과 기계가 싸우는 처절한 대전쟁 드라마는 누구라도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되어 버리죠.

하지만 카메론이 T2에서 코너 모자가 T-800의 도움으로 사이버다인 사옥을 날려 버림에 따라 당초 예정됐던 저지먼트 데이, 즉 핵전쟁의 날은 오지 않게 됩니다. 영화사들인 아무리 인간과 기계의 미래전쟁을 그리고 싶어도 그 상태로는 이야기가 이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T3의 존재 이유는 그 자체가 아니라(비록 바보같은 속편이라고 온갖 욕을 다 먹더라도), 본격적인 미래 전쟁 이야기가 펼쳐질 T4를 위한 희생타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를 생각하면, T3는 물론이고 T4 역시 아니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터미네이터'의 세계는 과거와 미래가 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단선적 세계입니다. '백 투더 퓨처'와 마찬가지로 과거가 변하면 미래가 바로 변해 버리죠. 이 세계에는 다차원 우주관 같은 것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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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깊이 파헤칠수록 문제가 생깁니다. 이번 T4를 보면 스카이넷은 2018년 이미 존 코너와 카일 리스의 비밀을 알고 있고, 이들을 처단해서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다만 아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시간여행 기술을 갖지 못한 상태죠.

그럼 왜 스카이넷은 - 대체 언제 시간여행 기술을 개발했는지는 모르지만 - 단 세 차례, 그것도 각각 한 시대에 한명씩의 터미네이터만을 보내 어설픈 암살 시도를 한 것일까요. 시간여행 기술을 개발하자마자 인류 저항군에게 박살이 났고, 시간이 없어서 세 번만 보낸 것일까요? 그 세번도 한 시대에 전부 몰아서 보냈다면 효과가 더 확실했을 것을, 굳이 세 시대에 분산시켜 보낸 이유는 또 뭘까요? 점점 얘기가 어설퍼지지 않습니까?

게다가 2018년을 무대로 한 T4에서 이미 아놀드의 얼굴을 한 T-800 모델이 등장합니다. 스카이넷이 과거로 자객을 보내는 2029년에 이 모델은 이미 개발 10년이 넘은 구닥다리 모델인 셈이죠. 그렇다면 살해 시도를 할 때,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았을 1984년(이후의 시도는 사라 코너가 '미래에서 언제 터미네이터가 올지 모른다'고 경계하기 때문에 점점 성공 가능성이 떨어집니다)에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T-800을 보내고, 최강의 T-X는 엉뚱하게도 가장 뒤 시간대로 보내는 이유는 뭘까요. 또 1984년에 암살에 실패했다면 그 다음에는 1983년, 1982년으로 보다 앞선 시대로 보내는 게 당연한 생각 아닐까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런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합니다. T3가 관객들로부터 불평을 들은 것은 영화의 만듦새가 워낙 허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지 못하고 T1과 T2에서 이미 다 써먹은 세계관과 스타일을 별 고민 없이 덧씌워 쓰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T3 제작진은 엉뚱하게도 바보같은 설정을 덧 씌워 이후의 속편 제작진에게 짐을 실컷 안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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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존 코너의 아내 케이트죠.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둘이 부부다"라고 선언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별 로맨스도 없이 그냥 커플이 돼 버립니다. 심지어 존 코너의 죽음과 케이트가 할 일까지 예언(?)을 해 버리죠. 그 바람에 어떤 속편을 만들건, 존 코너는 이미 꽉 잡힌 유부남이 되어 있어 어떤 로맨스도 불가능합니다.

또 이런 바보 짓들 때문에 T4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미래 사회에서 존 코너는 승리하는 직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것이고, 카일 리스 역시 1984년으로 가는 동시에 죽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일은 없지만 사라 코너 역시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쓸쓸히 죽을 겁니다. 한마디로 주인공들이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둘 지 모르지만 모두 비극적인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운명이 다 정해져 버리고 나면 영화 보는 내내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어차피 다 비참하게 죽을 거 아는데 뭘 저렇게 열심히 싸우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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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각한 문제는 존 코너의 역할에도 있습니다. 저항군을 이끄는 존 코너는 2018년, T4의 시점에서 10년 이상 더 싸워야 합니다. 혹시라도 그 전에 기계군단을 파멸시킬 기회가 생겨도, 존 코너는 그 이전에 최후의 승리를 거두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스카이넷이 시간여행 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버리면 존 코너는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못 하신 분들: 그의 아버지 카일 리스가 사라 코너를 만날 방법이 사라지면 그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이길 기회가 있어도, 최소한 10년 이상은 질질 끌면서 싸워야 합니다. 아, 물론 그 전에 져서 전사해도 안되니까 존 코너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결론은, 이렇게 파면 팔수록 허점이 나오는 이야기를 굳이 4편, 5편(아마도 나오고 말 것 같습니다)까지 끌고 가면서 이야기를 질질 끌어 T1과 T2가 보여준 전설적인 완성도에 자꾸만 흠집을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과거의 영광이 흐려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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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베일의 연기야 뭐 당연히 흠잡을 데가 없고, T2에 나오는 존 코너의 얼굴 상처까지 세심하게 재현한 맥G 감독도 할만큼 했습니다. 게다가 맥G 감독과 미술팀이 만들어 낸 다양한 종류의 미래 기계군단의 병기들은 참 찬탄을 자아냅니다. 플롯에서 자꾸만 발생하는 문제들을 볼거리로 덮는 데에 꽤나 성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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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우들도 칭찬할 만 합니다. 마커스 역의 샘 워딩턴은 짧은 등장이 아쉬울 정도의 호연이었고, 문 블러드굿도 훌륭했습니다(화보로 볼 때는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왜 자꾸 박정아의 얼굴이 오버랩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액션 연출은 찬사를 아니 보낼 수가 없더군요.

특히나 안톤 옐친은 '스타 트렉'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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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3에 이어 이 영화 역시 아니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T4가 '인간의 심장과 기계의 몸을 가진' 마커스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고들 하는데, 아니, 깨놓고 얘기해서 이미 10여년 전에 나온 T2에서 인간의 흔적이라곤 껍데기밖에 없는 T-800이 벌써 인간성의 요체를 깨닫고 어린 존 코너의 아버지 흉내까지 냈는데 이제 와서 인간과 기계의 구분 운운 하는 건 무슨 진눈깨비 오는데 매미 우는 소리란 말입니까. 어처구니없는 얘기일 뿐입니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해도 보실 분들은 당연히 다 보셔야겠죠. 네. 영화가 그 자체로 재미 없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보면 볼수록 '이 시리즈는 결국 막장으로 치닫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됩니다. 좋은 시리즈를 한창 좋을 때 끝낼 수 없다는 점, 그 점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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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를 거쳐 국내에서 처음 시사회를 가진 '마더'를 드디어 보게 됐습니다. 상영 개시 시간은 20일 오후 4시30분이었지만 어찌나 사람이 많이 왔는지 5시가 넘어서야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물론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만한 영화였습니다.

개략적인 스토리는 이미 꽤 알려졌습니다. 한 시골 읍내에서 약재상을 하는 어머니(김혜자)는 좀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을 데리고 혼자 살아갑니다. 어느날 동네에서 여고생이 잔혹하게 살해되고, 도준이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상황은 별 의심의 여지 없이 도준이 진범이라는 주장을 확인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어머니는 혼자 애를 태웁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얼떨떨한 도준에게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라고 촉구하고, 한편으로는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단서를 찾아 다닌 끝에 어머니는 뭔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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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대략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과의 유사점입니다. 어느 지방 소읍에서 생긴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살인사건에 그리 익숙지 않은 시골 형사들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벌입니다. 그리고 용의자로 몰린 도준의 모습에서는 아무래도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가 떠오르죠.

박노식이 연기한 백광호가 누군지 모르시겠다구요. '향숙이'라고 해야 아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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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빈이라는 당대의 미남 스타가 연기해서 그렇지, 이 영화에서의 도준은 딱 "향숙이 예쁘다"라는 대사가 입에서 나오는 게 정상일 모습입니다.)

이런 의도적인 유사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다수 관객들이 '살인의 추억'을 봤다고 가정하면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더'에서는 도준이 체포된 뒤의 신문 과정이나 수사 과정, 현장 검증 등이 하이라이트처럼 지나갑니다. 그 과정이 대략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살인의 추억'을 본 관객이라면 안 봐도 본 듯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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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부는 약간 느슨합니다. 도준과 좀 못된 친구 진태(진구), 그리고 도준 어머니를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는 형사 제문(윤제문)의 관계를 설명하고 설정하는 데 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죠.

마침내 사건이 벌어져도 관객의 궁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봉준호 감독의 칼끝은 급소를 한방에 찌르지 않고 슬슬 변죽을 울리죠. 마침내 어머니가 사건 해결에 발벗고 나설 때부터 영화는 박진감있게 성큼성큼 진행되지만, 그 전까지의 진행에는 전에 없던 군더더기가 몇군데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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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일단 다른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잘라 말하면 김혜자 여사의 연기를 빼놓고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이 배우에 대해 대다수 한국 관객들이 갖고 있는 인상은 때로는 인자하고 정 많은, 때로는 지치고 피곤한 어머니의 모습일 겁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무제한의 사랑에서 오는 광기'를 연기합니다.

아마 누구도 김혜자라는 배우의 눈에서 이렇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광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더'라는 영화는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었다고 얘기할 만 합니다.

영화는 김혜자의 1인무(춤)로 시작해 역시 춤추는 김혜자에게서 끝납니다. 두 춤 모두 아주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슴에 사무치는 무언가(無言歌)를 느끼게 합니다. 과연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모자간이란 어떤 사이길래 어머니를 이런 광기 어린 모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이 영원히 안고 갈 것으로 보이는 80년대 운동권 문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당시 한국 운동권에서 가장 강력한 투쟁력을 갖고 있는 단체는 바로 민가협(民家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였습니다. 네. 바로 구속-수감된 양심수들의 어머니들이 주축이 된 단체였죠. 그 위력이 어땠을 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쩐지 이 영화에서도 그 시절의 느낌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김혜자가 연기하는 압도적인 어머니 상 때문에 이 영화는 교향곡이 아니라 김혜자 한 사람과 영화의 나머지 모든 요소가 협연하는 협주곡처럼 보입니다. 원빈과 진구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에서는 굳이 뭘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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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의 두 히트작,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비해 '마더'는 좀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두 형사의 고생담을 통해 80년대라는 시대의 한국을 담아냈습니다. '괴물' 역시 괴물 사냥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미관계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풀어낸 영화였죠. 두 영화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고, 그만큼 영화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니아들은 그런 상징의 의미 찾기로 숨바꼭질을 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죠.

하지만 '마더'는 이 두 편의 영화에 비해 훨씬 직설적입니다. 더 이상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추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골프장과 골프 클럽의 등장이나, 술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공 변호사의 장광설은 사실 지금까지의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은근한 비판'과는 좀 다른 방법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만은 너무 노골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영화의 진행상 저 장면이 꼭 필요할까 싶은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만듦새를 하나 하나 뜯어보자면 참 우아하고 날렵합니다. 대가의 솜씨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살인의 추억'과 비교해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송강호의 공백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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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이 관객들을 상대로 막강한 위력을 뽐낸 데에는 두 가지 무기가 주효했습니다. 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의 긴박감과 수시로 터지는 어둡지만 효과적인 유머였죠. 하지만 이번 '마더'에서는 무겁게 침잠한 분위기에서 관객들을 쉴새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송강호 특유의 유머를 대신 날려 줄 배우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윤제문은 '비열한 거리' 이후 최강의 연기력을 갖춘 조연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머리 위에 드리운 송강호의 그림자가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봉준호 감독에게 매번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라면 그것도 꽤 욕심일 듯 합니다만, '마더'는 놀라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들이 느꼈던 아찔한 충격을 다시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 등을 통해 관객의 눈도 한참 높아진 탓일 겁니다. 과연 이 부분이 관객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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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벌써 꽤 길어졌습니다. 영화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글은 몇번 더 우려먹을 것이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보란 말이냐 말란 말이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영화 보는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두번 보는 건 선택이겠습니다만.]

네. 얼른 보시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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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실상 존엄사 인정'이라는 헤드라인을 본 순간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마지막 대목이었습니다. 요즘 존엄사, 존엄사 하지만 참 귀에 설게 들립니다. 예전에 쓰던 안락사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헛갈리시는 분도 많을 법 합니다.

존엄사로 부르건 안락사로 부르건,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떡밥인 건 분명합니다. 말을 바꿔 놓고 보면 이런 죽음은 일종의 자살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그걸 돕는 사람은 넓은 의미의 살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격하게 보자면 의료진이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심각한 의료 윤리 위반이기도 합니다. 이런 떡밥을 덥썩 물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거기에 대해 쓴 글입니다.

전문가 분들의 지적이나 충고를 환영합니다.

아래 글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 어디선가 들어 보신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혹시 이 영화를 보려고 계획중인 분이 있다면 그냥 지나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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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엄사

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장애인 인권단체로부터는 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늙은 권투코치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딸처럼 아껴온 선수가 사고로 목 아래 전신마비에 빠지자 독극물 주사로 안락사를 돕는다. 극중에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 행위였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장애인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항의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이 18일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하는 방침을 발표해 한바탕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오랜 논쟁거리였던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 대신 언젠가부터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말이 쓰이지만 두 용어의 혼동으로 인한 혼란도 만만찮다. 엄밀히 말해 두 용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치료 방법이 없어 더 이상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 없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 '적극적인 안락사'는 독극물 주사 등으로 환자의 죽음을 야기하는 것이며, '소극적 안락사'는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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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나 지난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모두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 연구자들도 이번 서울대병원의 조치를 비롯해 국내에서 사용되는 존엄사의 의미를 소극적 안락사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1997년 발효된 미국 오리건주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은 6개월 이내 시한부 생명을 진단받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독극물 투여를 허용하고 있다. 보수파인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1년 약물 관리법을 이용해 이 법을 무력화시키려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삶을 마감한 환자는 400명을 넘어섰다.

여기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촉발된 논쟁은 이미 존엄사와 관련된 논의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한계를 넘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존엄사 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좀 더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각계의 지혜가 모이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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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뜻으로만 풀이해도 '존엄사'란 '죽는 순간 만큼은 인간의 존엄성(dignity)을 지키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이미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료진이나 가족의 의무감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연장하고 있을 뿐이라면 과연 그게 인간을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떠오를게 당연합니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 이런 경우, 저런 경우, 경우에 따라 생각할 거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환자가 이미 의식이 없다면? 가족이 치료비 때문에 살 수 있는 환자의 치료 중단을 요구한다면? 환자의 잔여 수명이 1년이 넘게 예측된다면? 암이 아닌 다른 불치병이라면? 환자가 뇌손상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런 경우들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준비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존엄사에 대한 '대표 입장'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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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의료계가 "존업사 입법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카톨릭 생명윤리위원회는 곧바로 "추기경의 죽음을 존엄사로 매도하려는 세력에게 경고하며, 이것이 안락사 허용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엄밀히 말해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존엄사의 개념에 비치면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은 존엄사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걸 '매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굳이 국내에서 통용되는 존엄사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기도 하죠. 물론 자살을 엄금하고 있는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라고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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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존엄사'나 '안락사'라는 말에서, 도저히 후송 불가능한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동료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는 병사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나온 죽음의 형태는 아마도 이쪽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가장 끔찍한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오래 전에 들은 얘기로는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을 시도한 사람 가운데 뇌손상만을 입고 살아남아 침을 질질 흘리며 세살짜리 아이 수준의 지능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온 몸이 전신마비로 꼼짝할수 없는 상태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도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라면 정말 참담한 심경일 겁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결말에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반발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학에 가고, 책을 저술하고, 석학이 되는 사람도 있다"며 "이런 영화의 결말은 그런 악조건에서도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꺾는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죠. 호킹 교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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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상황을 개인의 결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남겨 둘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여기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답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런 일을 당한 당사자의 입장, 또 옆에서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 의료진의 입장이 어차피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다 감안하면 카이자르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연 어떤 죽음이 이상적인 죽음인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답니다. 이때 카이자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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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교황청이 폭파 위협을 받는 동안 진짜 교황까지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영화 '천사와 악마'가 개봉하는 주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중동 지역을 순방하면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유태인들을 하나로 묶는 '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물론 현 교황은 지금까지 입만 열면 사고를 쳐 온 터라 이번 중동 방문을 놓고도 우려가 엇갈렸습니다. 심지어 '교황은 반유태주의자다' '지금이 십자군 전쟁 때인 줄 아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적이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번 중동 방문은 자칫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별 무리 없는 순방을 마쳤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언론들은 "끝내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독일의 책임을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고도 보도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히틀러 유겐트라고 불리는 나치 청년단체의 활동 경력이 있는 것으로 꼽히는 인물인 만큼, 더욱 그런 언급이 필요했겠죠.

사실 평소 여기로 가져오던 글들에 비해 좀 무겁습니다. 어쩔까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아카이브의 의미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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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시대

14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중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톨릭에 의해 탄압당한 중세 과학자들의 후손들이 바티칸을 상대로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의 반성을 은근히 촉구하는 이 영화가 전 세계에 공개될 무렵 진짜 교황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방문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에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스라엘 측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고, 베들레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국가 설립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경의를 표한 셈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은 천주교 교단의 입장에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교황청은 이미 1965년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 즉 노스트라 아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라는 뜻의 라틴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교·힌두교·이슬람교·불교 등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아 배격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그 정신에 역행하는 보수적인 행보로 이미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추기경이던 1990년에는 과학자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지목했던 당시 교황청의 조치를 지지해 물의를 빚었고, 2006년엔 이슬람 비하 발언으로 아랍 국가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더욱이 올 연초엔 공공연히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 1988년 파문당한 네 성직자를 복권시켜 국제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그런 베네딕토 16세인 만큼 이번 방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긴장감이 흘렀지만 교황은 15일 별 무리 없이 일정을 마쳤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유럽 각국 군주들에게 “보병이든 기사든, 가난뱅이든 부자든,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악의 종족을 무찌르라”고 소리 높여 외친 뒤로 수백 년간 중동은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피로 물들었다. 그 성지에서 900여 년 뒤의 후임 교황이 평화를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 아직 존중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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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스트라 아에타테, 즉 '우리 시대'의 정신이란 간단히 말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 사이의 반목이나 대화의 단절, 상호 배타적인 입장의 철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화 발전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 문서가 2221대 81이라는 표차로 채택된 것은 인류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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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아무리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해도, 그 전임자들을 두루두루 훑어보면 꽤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중세의 교황들이 바라보던 유럽의 군주들은 비록 기독교도라고는 하나 사랑의 실천보다는 전투의 영광을 더 높이 사는 인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르반 2세가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구원 요청을 받고 1095년 십자군 파병을 제안한 동기중의 하나가 "같은 기독교도 끼리의 살육을 좀 막아 보자는" 것이기도 했다니 말 다 했죠. 물론 이런 동기에도 불구하고 뒷날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꾀임에 빠져 당시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격분했고 책임자들을 파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어차피 성지로 가서 이교도와의 싸움에 참가하면 다시 사면해줘야 할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의 무수한 교황들 역시 평화 유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에도 2차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피우 12세는 "은근히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지지했다"는 음모설에 시달리기도 했죠. 물론 이 음모설은 거의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유력한 유태인 단체들은 피우 12세의 노력이 없었으면 유태인 희생자들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의 수호자보다는 분란의 기원으로 더 잘 어울렸던 교황이 중동 평화를 위해, 타 종교인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저 글을 쓰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동영상이었습니다.



보고 나면 참 씁쓸합니다. 대체 언제쯤 이런 모습을 안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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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호평받은 미국 '타임'의 리뷰에는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는 누구나 박찬욱 감독을 말할 때면 '복수 3부작'을 얘기하곤 하죠. 잘 아시는 대로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복수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DVD세트가 나와 있을 정돕니다.

사실 어느 정도 박감독에게 관심이 있는 팬들이면 이 '복수 3부작'이라는게 처음부터 존재했던 구상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하지만 어느새 박찬욱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이 되면서, 마치 이 '3부작'이 처음부터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예정됐던 작품인 것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생긴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랄까요.

물론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박감독 본인입니다. 하지만 처음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 때만 해도 '3부작'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2003년 11월, '올드 보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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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감독은 머잖아 다시 털어놓습니다. "솔직히 그냥 우발적으로 한 얘기였다. '올드 보이'를 만들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온갖 기자들이 죄다 '왜 또 복수 얘기냐'고 묻길래 그냥 아예 '복수 3부작을 채울 생각이다'라고 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쩌다 보니 다음 작품이 진짜 복수를 소재로 한 '친절한 금자씨'가 되는 바람에 결국 3부작이 채워진 셈입니다. 반면 이번 '박쥐'는 '올드 보이'보다도 훨씬 먼저 구상했던 작품이지만 뒤로 미뤄진 거였죠.

세 편의 영화는 복수라는 주제 외에는 그리 비슷한 데가 없습니다. '올드 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지만 '복수는 나의 것'은 형식과 플롯, 그리고 다양한 함의를 갖춘 낯선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이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익숙지 않은 데서 오는 자극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쥐'를 본 사람들 가운데서도 '복수는 나의 것'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2002년작인 '복수는 나의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도 나중의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옛날 영화'인 듯한 대접을 받곤 합니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본 사람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박쥐'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복수는 나의 것'이 다시 생각나서, 예전에 써 뒀던 리뷰를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다른 게시판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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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들은 내용은 '엄청나게 잔인하다' 였고, 그 다음은 '뭔지 모르겠어, 이상해'였다. 그리고는 극장에서 보려고 짬을 내다가 어느날 보니 개봉관에서 사라져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체질상, 그리고 그가 살아온 영화 인생상 '흥행 감독'이 되기 힘든 사람이다. 차라리 임권택은 될지언정 강우석은 절대 될 수 없다. 그런 그가 'JSA'라는 영화 때문에 온 영화계의 기대(물론 여기서 '기대'란 '대박 기대'를 말한다)를 짊어지게 된 것도 약간의 넌센스다.

물론 정작 본인은 그런 기대에 크게 구애당하지 않는 것처럼, 즉 "누가 너네보고 언제 기대하래?"라는 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분이 직접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영화는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유쾌해하는 놈이 있다면 당장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무척 재미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영화다.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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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유괴범에 대한 영화다. 그럼 유괴범이 죽일 놈이고, '복수'하는 애 아버지가 착한 사람이냐, 그렇지는 않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계급간의 몰이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원초적으로, '남의 살의 아픔에 대한 무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장기밀매범들이 '남의 살'에 대해 생각한다면 신장만 떼낸 채 신하균을 길바닥에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역시 '남의 고통'을 안다면 장난이거나 선의라도 남의 딸내미를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며, 사장인 송강호 역시 기주봉의 온 가족이 그렇게 될줄 알았다면 함부로 사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착한 동생'의 정체를 안 다음 상품 걱정부터 하는 아나운서도 없을 거다.

그럼 또 그게 모르는 사람 쪽의 잘못이냐. 꼭 그렇지도 않다. 심지어 누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착한 동생 신하균조차 고통에 몸부림치는 누나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라면이나 먹고 있게 된다. 이건 그가 나쁜놈이라서 아니라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아닌 옆집 총각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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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시각은 대단히 구조주의적이다. 사람은 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기의 입장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갈등은 필연적이고, 해소는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는 개개인의 입장으로 문제를 치환시키지만, 넓은 시각에서 보면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 '피'를 볼 수 있는 긴장이 내재돼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6.25 이후 만들어진 한국영화중 가장 위험한 영화다. (심지어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대체 그 영화들을 몇명이나 봤냐.)

때로 자신의 계급을 망각하고, 이런 갈등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순간의 송강호, 즉 "너, 착한 놈인거 안다"라고 말하는 송강호가 그렇다. 그러나 그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섣불리 관용을 취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와 신하균은 이미 충돌을 예상하고 달리는 기차다. 그리고 복수를 하건 안 하건, 그에게 남은 길은 어차피 파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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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때로 섬뜩하면서도, 때로 코믹하게 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무표정한 유머'의 힘이다. 특히 배두나가 말하는 "아저씨, 백 퍼센트야. 정말이야."가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야말로 관객은 기절할 정도가 된다.

(여기에 대해 박감독은 "아무리 평소에 뻥 치고 다니는 애들이라도, 그 말을 허투루 들으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딱 저런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화는 시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평론가 출신 감독'이라는 딱지 만큼이나,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볼 것인가...'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명료하기보다는 약간 고의적으로 초점을 흐린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 고상하게 말하자면 '해석자의 공간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겠고, 좀 천박하게 말하면 '너무 뻔히 다 보이는 영화'라는, 먹물들의 비틀린 비난을 피하려는 세련된 몸놀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상태에서도 '복수는 나의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영화다. 특히나 이런 영화를, 송강호나 신하균 같은 재능있고 비싼 배우들을 데리고 만들 수 있다는 건 그의 행운이기도 하다.

다음번엔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지가 자못 궁금하다. 갑자기, 예전에 한 10분 보다가 만 '삼인조'를 어디 가면 다시 볼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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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단역진은 꽤 화려합니다. 아나운서 역으로 이금희씨가 나오고, 장애인 역으로 류승범이 나옵니다. 사실은 형인 류승완 감독도 배달원 역으로 잠깐 나오죠. 신하균이 맡은 류 역의 이름은 '류완범'이라고 돼 있는데 이게 아예 류승완-승범 형제의 이름을 하나로 합친 거라는군요.

이밖에 이 영화 얘기를 하자면 오광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봉고차를 타고 달려온 일행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었죠.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밖에 정재영도 나온다고 하는데 무슨 장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다시 찾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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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영화의 영화 제목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영어 제목은 'Sympathy for Mr. Vengeance'죠. 그냥 직역하면 'Vengeance is Mine'이겠지만 아마도 이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와 제목이 똑같아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제목이 바로 저 제목이고, 이 제목이 해외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자 아예 '친절한 금자씨'의 영어 제목도 'Sympathy for Lady Vengeance'로 붙여집니다. 이때는 이미 세 편의 영화가 모두 나온 뒤였으니까 '3부작'으로서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데 아무 하자가 없는 셈입니다.



p.s. 그러고보니 요즘 유행하는 '백프롭니다'의 원조가 배두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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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극찬을 날렸습니다. 이어지는 분위기가 너무나 뜨겁습니다. 칸에서 열린 '박쥐' 상영 때에는 온 관객이 10분간 기립박수를 쳤다는군요. 심지어 타임의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마지막날 뭔가 상을 타고 말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칸 영화에제 공식 초청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초청은 됐지만 수상이야...'하는 게 국내의 중론이었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워낙 화려한 감독들이 총출동한 분위기라서 무슨 상이든 받는다는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주목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5일자 '타임'에 실린 '박쥐' 리뷰입니다. 글에서도 흥분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링크를 하면 안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그냥 전문을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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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A Priest Becomes a Vampire
http://www.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898196_1898204_1898882,00.html


러브 스토리를 고를 거라면 기왕이면 미친 러브 스토리를 골라라. 키워드는 이렇다: 환락, 고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체액(주로 피). 박찬욱은 DVD 전문가들에겐 '복수 3부작'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감성적 폭력물의 숙달된 대가다. 그는 요즘 한창 뜨고 있고, 그리 기괴하지는 않은 한국산 심리 액션 영화 장르의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박쥐'는 -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아주 매혹적인 한 줄의 광고 문구와 더불어 - 박찬욱의 작품 중 가장 풍성하고, 가장 미친 듯 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성숙한 영화다.

If you're going to do a love story, make it a mad love story. Get down into the essentials: ecstasy, pain and all the bodily fluids, especially blood. Park Chan-wook, best known to DVD connoisseurs for his Vengeance trilogy, is a past master of emotional violence. He's the soul of South Korea's vigorous, not to say kinky, psychological action movies. And Thirst — with its irresistible one-line sales pitch: a priest becomes a vampire — is his richest, craziest, most mature work yet.

신부 상현(한국의 슈퍼스타 송강호가 연기하는)은 친절하면서도 깨인 천주교 사제다. 그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마지막 기도를 낭송해주며, 한 고민하는 간호사의 고해성사에서 속죄를 위해 성모송을 20회 외우고,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고, 항우울제를 먹어 보라고 권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 심각한 채찍질 고행자여서 솟구치는 성적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허벅지를 내리친다(박찬욱의 '올드보이' 역시 좀 도가 지나친 자해행위를 자랑한 바 있다). 그는 고행을 통해 온 세계를 구원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그 소명은 그로 하여금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의학 실험으로 이끈다. 그 실험을 받은 다른 모든 사람은 죽었다.

Father Sang-hyun (Korean superstar Song Kang-ho) is a Catholic priest who's both caring and modern. He intones the last rites over terminally ill patients at the local hospital, and in confession he gives one troubled nurse the penance of 20 Hail Marys, a walk in the sun and a recommendation to take antidepressants. He is also a serious flagellant, whipping his thighs in mortification to suppress sexual urges. (Park's Oldboy also boasted more than its share of self-mutilation.) He has a Christ-like desire to save the world through suffering, and that vocation leads him into a medical experiment with dire effects: everyone else who's undergone it has died. (See pictures of the Cannes 2009 Red Carpet.)

그 실험 - 도대체 말이 안되지만 상관없다. 이건 공포영화니까 - 을 통해 혼자 살아남은 바람에 그는 소수의 신도 집단으로부터 모든 병증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상현의 허약한 학교 동창생 강우(신하균)의 희망이기도 하다. 강우는 괄괄한 성격의 엄마(김해숙),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음울한 젊은 아내 태주(김옥빈)와 함께 살고 있다. 가족이 몰랐던 것은 그 훌륭한 신부가 실험 참여로 사소한 부작용-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그는 가로등을 구부러뜨리고, 높은 담 위를 오르는 등의 장점도 얻지만, 이런 모든 장점은 단점에 비해 별 소용이 없다. 그에게 필요한 식량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병원으로 침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신부복을 입은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환자의 링거 호스를 통해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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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eriment — makes no sense, doesn't matter, this is a horror movie — is one he somehow survives, making him a figure of veneration to a small cult believing he can cure all ailments. That's the hope of Father Hyun's feeble school chum Kang-woo (Shin Ha-kyun), who lives with his termagant mom (Kim Hae-sook) and his strangely silent, sullen young wife Tae-ju (Kim Ok-vin). What the family doesn't know is that the good father has picked up a little side effect of the experiment: vampirism. The condition's benefits — he can bend lampposts, scale high walls — don't always outweighs its liabilities. The food supply he needs is hard to find in the local market. So, as you walk unawares into a hospital room, you might find a man in a collar and cassock supine on the floor, sucking the blood from a patient's IV bottle.

태주야말로 이 동정의 뱀파이어에게 딱 맞는 바로 그 여인이란 점이 드러난다. 성적 긴장감이 팽배한 한 긴 신에서, 그녀는 상현에게 키스하며 거의 그를 유혹에 빠뜨린다: 반면 그는 그녀의 매력과 그의 탐욕스러운 새로운 본성을 알아차리고, 두 남녀는 합방에 이른다. 이 관계로 인한 과도한 황홀경(ecstatic excess)은 영화의 후반부를 결정짓는다. 신성하기도 하면서 미치기도 한 이들의 사랑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 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은 성찬식때 사제의 말을 연상시키는 '이것은 나의 피'다 - 그들과 함께 미쳐간다. 캐릭터들의 강박관념을 혼합시키며, 장르상의 구속을 여지없이 풀어 버리며, 관객들에게 미친 것이 영화인지, 아니면 관객들 자신인지를 묻는 이 작품을 보는 것은 꽤나 해방감을 준다. 올해 하반기에 미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조언은 "'박쥐'가 미친듯이 달릴 때 당신도 같이 미치라"는 것이다.

Turns out that Tae-ju is just the woman for this virgin vampire. In one long scene of sexual tension, she kisses Hyun and nearly seduces him; in another, he acknowledges both her attractiveness and his rapacious new nature and they consummate their relationship, one whose ecstatic excess will define the rest of the film. Their love is both sacred and insane: sacra-Mental. And the movie — whose French title translates as the liturgically evocative "This Is My Blood" — goes mad with them. It's liberating to watch a film that melds with the obsessions of its characters, that strips the moorings from genre expectations and leaves viewers asking whether the film has lost its mind or they have. Our advice to those who see Thirst in its U.S. release later this year: when Thirst goes nuts, go with it. (See the top 10 Cannes Film Festival movies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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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쉬리', '반칙왕', '살인의 추억', '괴물', '밀양'과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이 배우는 트레이드마크인 둔감함(stolidity)을 통해 포복절도할 코미디에서 맹렬한 마초 역할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어울려 왔으며, 자신의 몸에 침투한 충동과 싸우는 신부 상현의 금욕적인 투쟁을 연기하는 데 있어 매우 적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의외의 발견은 바로 22세의 아름다운 김옥빈이다. 그녀는 침묵으로 순종하며, 그리고는 열정을 추구하고, 그리고는 폭발하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태주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 아니, 아예 그 인물 자체다. 그녀는 채털리 부인과 맥베스 부인이 하나의 우아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형태로 결합한 것 같다.

Song Kang-ho has starred in many of the films that mark the Korean renaissance: Shiri, The Foul King, Memories of Murder, The Host, Secret Sunshine and Park's Joint Security Area, Sympathy for Mr. Vengeance and Lady Vengeance. The actor's trademark stolidity, which lends itself equally well to deadpan comedy and high-voltage macho roles, is a suitable vessel for Father Hyun's stoic battle against the impulses that have invaded his system. But it's the lovely Kim, just 22, who is the revelation here. She can play — no, she can be — a creature of mute docility, then searching ardor, then explosive eroticism, then murderous intent. She is Lady Chatterley and Lady Macbeth in one gorgeous, smoldering package.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Double Indemnity)'과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의 플롯 요소에다 프란시스 코폴라가 '드라큘라'에서 보여준 농익은 관능을 더한 이 영화는 이번 칸 영화제의 평론가들에게 놀라운 기쁨으로 충격을 주었다. 마치 그들이 (역주:뱀파이어에게)달콤하고 육감적인 목 물림을 당한 듯이 말이다. 이 영화가 폐막식 날 뭔가 중요한 수상을 할 것임은 거의 보장돼 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지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 우수성으로 볼 때 '박쥐'는 그보다 더 큰 상을 받을 만 하다. (끝)

Blending plot elements of Double Indemnity and Natural Born Killers with the ripe sensuality of Francis Coppola's take on Dracula, the film has made festival critics sit up in startled pleasure, as if they'd just received the most luscious neck-bite. It's almost guaranteed to get an important citation on closing night. Park's Oldboy won the Grand Jury Prize, the second-place award here at Cannes, in 2004. On its merits, Thirst should do bett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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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너무 심한 격찬(?)이라 오히려 뭐가 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글을 쓴 리처드 콜리스(Richard Corliss)는 이번 영화제에 대해 타임에 기고한 다른 글, 'Cannes 2009: Great — or the Greatest — Festival?'에서 수많은 거장들과 명배우들의 등장으로 이번 칸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이번이 칸 영화제만 36번째 방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베테랑 평론가의 말이니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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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는 이번 61번째. 그 절반 이상을 참여했다는 얘기군요. 이 글은 아내이며 역시 평론가인 메리 콜리스와 함께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For two TIME.com critics, this is our 36th festival on the Cote d'Azur.'라고 되어 있으니 어쩌면 36회에서 몇번쯤 빠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후덜덜한 숫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09 칸 영화제에 대한 개괄 형식인 이 글은 http://www.time.com/time/arts/article/0,8599,1897891,00.html)

아무튼 콜리스는 그 글에서도 박찬욱, 미하엘 하네케, 마르코 벨로키오, 알랭 레네를 이번 칸을 빛내는 선두 거장들로 꼽고 있습니다. 이들 넷을 가장 먼저 꼽은 다음에야 이안, 샘 레이미, 페드로 알모도바르, 퀜틴 타란티노와 제인 캠피언을 꼽을 정도로 우리의 박찬욱 선생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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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드보이' 때의 이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불과 5년 전인데 당시만 해도 박찬욱 감독이 이상할 정도로 어려 보이는군요.^^

일전에 썼던 '박쥐'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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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이 첫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바로 '텐프로(룸살롱) 아가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던 그 방송입니다. 시청률은 동시간대에 방송된 세 프로그램 중에서 꼴찌를 했습니다.

'텐프로 아가씨 출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마자 인터넷은 들끓었습니다. 꽤 인기있다는 연예 블로거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더군요. 한마디 하고도 싶었지만 방송을 볼 때까지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텐프로 아가씨'가 출연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대체 '텐프로 종사자'가 방송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까? 그 방송이 그 '텐프로 종사자'를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다루는지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욕부터 하는 것이 온당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5일, 이 프로가 방송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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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김시은(가명). 현재 대학생이고 텐프로 룸살롱에 나가고 있습니다. 텐프로 룸살롱이라는 세계는 사실 이 세상에 있는 90%의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세계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위 최고급 룸살롱이라는 '텐프로'에 나가거나, 변두리 대폿집에 나가거나, 술집여자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웃음과 교태, 때로는 몸을 파는 가격에 차이가 있을 뿐 그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텐프로'에 가는 손님이나 업소 종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님들은 손님들대로 그런 비싼 술값을 감수하고 그런 업소에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엘리트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게 보통입니다. 마찬가지로, 종사자들 - 즉 '텐프로 아가씨' 들 역시 자신들이 최상위의 엘리트들만을 상대하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업 종사자'라는 식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런 업소에 가는 손님들 - 거액의 술값을 지불하는 그 사람들 - 가운데는 이런 아가씨들과의 성적인 관계를 '사귄다'고 포장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방송에서도 이런 내용이 나왔지만, 돈과 명품 선물, 심지어 살 집까지 제공해주며 갖는 성관계를 '사귄다'고 지칭하는 것은 일반인들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얘깁니다. 이처럼 이 세계의 사람들과 바깥 세계의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만만찮은 인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날 방송에 나온 김시은씨는 그런 기만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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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나침반'의 패널들은 나름대로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이행했습니다. 김시은씨는

"월 1000만원 정도 벌어서 700만원 정도 쓴다"

"가게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다. 평균잡아 월 400만원 정도를 용돈으로 받고 있다. 그래도 나는 '오빠'에게 내가 300만원 정도를 쓰기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 그를 만나는 이유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텐프로 아가씨들? 그 사람들은 스폰서를 만난다"

"집에서 받는 용돈은 고작 70만원 정도 뿐이다.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집세는 누가 내 주나? 공주만 택시를 타고 다니는 건 아니다"

는 식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해서 패널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아마 절대 다수 시청자들도 분개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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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이 느꼈을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 사람은 김어준씨였습니다. 김시은씨의 논리를 가장 잘 파헤친 사람은 단연 김어준씨였죠. 물론 방향을 잘못 잡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패널1: 혹시 그 일을 하면서 보람같은걸 느낀 적 있나
김시은: 뭐 힘든 일이 있는 사람을 위로해줬다든가 할때...
김어준: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하러 업소에 나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김시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것도 이유 중 하나로...
김어준: 생각해보라. 돈을 안 줘도 가게에 나가서 술마시는 손님들을 상대하겠나?
김시은: 오빠(김어준을 지칭)는 돈 안 줘도 이 프로에 나오시겠어요?

네. 이런 부분은 좀 논리의 부족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돈을 안 받고 환자들의 고민을 들어 주지는 않죠. 위 대화에서도 보듯 김시은씨는 만만찮은 '말빨'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이 화법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만 했습니다. 논지를 슬쩍 슬쩍 비껴가는 교묘한 화법이었죠. 김어준씨는 "핵심적인 비판은 슬쩍 흘려보내는 화법이다. 말하는 태도를 보니 술집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김시은씨도 "그 말이 가장 기분이 나빴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날 대화의 핵심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스스로 술집에 나가야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의 논리를 들어 합리화하고 있지만 정작 "술집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 이것이 그녀의 모순을 요약해서 보여준 대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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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황금나침반' 첫회의 룸살롱 아가씨 출연은 제가 보기엔 할만 한 방송이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대체 정신이 어떻게 박혔길래 멀쩡한 여대생이 룸싸롱에 나가냐"고 혀를 끌끌 차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박혔는지'를 알 기회가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얼마나 황당무계한 논리가 있는지 들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비판과 함께라면 말입니다.

게다가 당사자의 나이가 23세.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황금나침반' 첫회는 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텐프로'라는 기형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 23세의 한 개인에 대한 조언이라는 두 개의 차원 사이에서 비교적 적절한 균형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김제동이라는 MC가 자기 몫을 다 했다는 얘기도 됩니다. 단지 시간이 너무 짧았던 탓에 그런 조언과 비판이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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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어준씨와 다른 패널들 사이의 기량 차이가 너무 심했습니다. 다섯 패널 가운데 자기 역할을 다 한 사람은 김어준 김현숙 두 사람 뿐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별 존재감이 없었고, 특히 요즘 유난히 포장되고 있는 이외수씨는 대체 왜 앉아 있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젊어서 아내가 술집에 나간다면 말렸을 거다. 지금 아내가 술집에 나간다면 대 환영이다"라는 식의 얘기를 유머라고 하고 있는 이외수씨의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오더군요.

결론적으로, '황금나침반'의 텐프로 아가씨 출연은 방송이 나가기도 전에 막연히 비판받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 방송은 '텐프로 아가씨'를 돈 잘 버는 신세대 직장인으로 묘사하지도 않았고,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비판의 초점을 놓쳐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방송된 '바람둥이 남자' 쪽에 비판의 여지가 훨씬 많더군요. 별로 관심 갈 만한 얘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p.s. 그나자나 케이블TV에서 방송중인 '화성인 바이러스' 팀이 참 박탈감을 느끼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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