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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외로 탈출한 지사들과 중국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데 뭉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죠. 또 올해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이기도 해서 백범의 유품 19점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품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윤봉길 의사와 바꾼 회중시계'도 있더군요.

마침 매주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 금요일에 이런 발표가 있었는데 이 시계 말고 두 개의 시계가 머리 속을 스쳐 갔습니다.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람들의 염원과 관련된 시계들입니다. 특히나 그중 한 시계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 시계더군요. 그래서 이 시계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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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역사박물관에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품인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 안에는 감춰진 메시지가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3월 11일 그 전설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시계 수리공 조너선 딜런에 의해 1861년 4월 13일 새겨진 메시지는 “포트 섬터가 반란군(남군)에 의해 공격당했다. 우리에게 정부를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남북전쟁 발발 당시, 마침 딜런은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초의 우국충정이 남북전쟁 기간 동안 대통령의 품 안에 늘 간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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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인 오는 13일을 앞두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물 19점을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다. 『백범일지』는 거사일인 1932년 4월 29일 아침의 정경을 이렇게 전한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살아서 조국의 광복까지 매진할 사람과 몸은 버리고 이름만을 청사에 남길 사람. 두 장부의 맞잡은 손길을 따라 전해진 것이 시계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문화재 지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문득 꽤 유명하되,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사연을 담은 시계 하나가 떠오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0·26의 두 달 전인 197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62회 생일 선물용으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메이커에 2만 달러짜리 순금 손목시계를 주문했다. 이렇게 충성을 과시하려던 인물이 어떻게 시해자로 변신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결국 이 시계는 정작 선물로 쓰여야 했을 그해 11월 14일에는 주문한 사람도, 받을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비운의 미아가 됐다.

두 개의 시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참 이채롭다. 한 시계에 구국의 신념과 사나이들의 정이 담겨 있다면, 다른 시계가 보여주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헛된 야심과 표변하는 인심뿐이다. 가능하면 두 개의 시계를 어디엔가 나란히 전시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을 더욱 깊게 해주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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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WBC 얘기를 쓸 때, 척 웨프너가 알리와 경기한 날짜가 한국이 WBC에서 일본과 결승전을 벌인 날짜와 같은 3월 24일이라는 걸 알고 참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도 날짜가 겹치더군요. 조너선 딜런이 링컨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던 날은 4월 13일, 바로 남군이 포트 섬터를 공격해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4월 12일의 바로 다음 날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도 얘기했듯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기념일이죠. 따로 따로 떼놓고 보면 별 상관 없는 날이지만, 이렇게 한 칼럼 안에 모아 놓고 보니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링컨 대통령은 딜런이 자신의 시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한 시계수리공의 마음이 위대한 대통령에게 금속 표피를 뚫고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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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 교과서나 학교에서 주는 교양도서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정된 내용 때문에 좀 축소했지만 저 앞 뒤에도 이야기가 조금씩 붙어 있습니다. 다 복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튿날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에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군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은 무엇이요?"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은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장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향하여 달렸다.
(이하 생략)


'제 시계는 한 시간 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읽으면 아직도 가슴이 찡 해 옵니다.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한 남자의 결연하면서도 담담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어설픈 호기와는 다른 진정한 용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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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라는 구멍을 통해서 보자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선물하려 했던 시계는 이와 정 반대인 헛된 의리와 충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부장도 혁명을 함께 할 때에는 나름대로 사나이의 의리로 뭉쳐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이 시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0.26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89년, 박근혜 의원이 MBC TV에서 가진 박경재 변호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몇몇 시사지들이 이 시계와 관련된 추적 보도를 한 적도 있죠. 혹시 더 빠른 기록이 있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담에서 박근혜 의원은 '10.26은 김재규가 오래 전부터 기회를 노려 계획하던 일'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시계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러니까, 그 우발적이라는게 아주 무모한, 자기 자신이 앞으로 이 사건으로 해서 사형을 당한다던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했다 이런 말씀이신지요. 그 10.26 저녁 궁정동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지 사전에 김재규 피고인이 법정에서 얘기한 그대로 건설부 장관을 할 때, 또 그후에도 계속 기회를 노렸다, 이런 말은 믿지 않으신다는 말씀이군요. 
"아, 말이 안돼요. 아버지 생신이 11월 14일 이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제가 물건 을 하나받은게 있어요. 11월 14일 조금 못돼선가 그런데, 김재규 그 당시 정보부장이 아버지 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시계 선물이에요 몸에다 이렇게 차는 선물인데 어쨌든 아버지께 좋은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금시계로, 거기에다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글씨도 박고 또 아버지가 훈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새겼고, 국내에서 선물을 준비해도 될 것을 스위스의 유명회사에 다 일부러 맞춰서 11월 14일날 드리려고 했었던 거죠. 그런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뭐 있 었겠어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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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소도구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윗글에 쓴 대로 두 개의 시계가 보여주는 대조가 참 극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한쪽은 명품 금시계, 한쪽은 가난한 독립 지사의 시계지만 두 개의 시계가 나란히 있을 때 정작 빛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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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는 지금도 저런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저 장소에 직접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에서 간 방문단이 폭탄이 터졌던 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일행 중의 미녀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앞길로 기차가 다녔던 건가요?"

약 2초 동안의 침묵. 아니 공원 한 복판에서 웬 기차?

"...기차에서 내리는 걸 총으로 쏜 거 아니었어요?"

그 다음부터 이 미녀의 별명은 '미스 돌고래'가 되었다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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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라는 이름을 듣고 "누구야?" 할 사람에겐 별 의미 없는 포스팅입니다.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라고 하면 좀 달라지겠지만, 역시 요즘 분위기로 봐선 "딥 퍼플이 뭐야?"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테죠. 하긴 딥 퍼플이라고 해도 '하이웨이 스타'나 '스모크 온 더 워터'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별 관심 없을 공연입니다.

'존 로드 콘체르토-에이프릴(Jon Lord Concerto - April)'이라고 이름붙여진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이상하게 꼬인 일정 때문에 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 결국 시작 시간을 념겨 도착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안 왔더라면 정말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릴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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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같이 갈 사람을 꾀는 것부터 난항을 겪었습니다. 마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존 로드라는 사람이 공연을 하는데..."
"그게 누구야?"
"딥 퍼플이라는 그룹에서 키보드를 치던 아저씨야. 딥 퍼플은..."
"나도 딥 퍼플은 알아. 그런데 별로 안 내키네."
"...스티브 발사모가 보컬로 같이 와."
"그건 또 누군데?"
"왜 전에 '게세마네' 잘 부르던 잘생긴 뮤지컬 스타 있잖아."
"아 그래?"

네. 존 로드 선생이 발사모의 덕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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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나 딥 퍼플의 역사에 대해 맘 먹고 얘기를 하자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일단 딥 퍼플이라는 이름과 거의 비슷한 무게를 갖고 있는 리치 블랙모어 선생을 빼고 나면 그들의 사운드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가진 사람은 이 로드 형님일 겁니다.

특히 전자 사운드의 개척기인 1970년대, 하먼드 B3와 C3 오르간으로 이 분이 보여준 절정의 무공은 당대 최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릭 웨이크먼이나 키스 에머슨 같은 거인들과 견줘 한 치의 손색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록 사운드와 하먼드 오르간의 결합이라는 건 이 분에 의해 진정한 궤도에 올랐습니다.

리치 블랙모어를 제외한 나머지 딥 퍼플 멤버들이 존 로드의 사운드와 공헌에 대해 얘기합니다. 잠시 'Highway Star'의 솔로 부분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죠.

 

내친 김에 그냥 원곡까지. 1972년 라이브입니다. 로드 형님의 얼굴은 막 피해가는군요.



로드는 딥 퍼플의 음악과 클래식의 결합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 결실이 1969년의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같은 곡이죠.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S&M을 하기 수십년 전에 이미 이들은 자신들의 히트곡이 아닌 독자적인 곡으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도했던 겁니다.

이미 딥 퍼플 멤버들과 함께 두어 차례 한국에 온 적이 있지만 존 로드는 이번엔 스티브 발사모, 카시아 라스카(여)라는 두 보컬과 함께 왔습니다. 밴드는 국내 멤버들로 채워졌고 서울 아트 오케스트라가 협연했죠.

이날 연주 곡목은 이랬습니다.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3 movements)
Pictures of Home
One from the meadow
Bourre
Pictured within
The Telemann Experiment
Wait a while
Gigue

Encore: Soldier of fortune, Child in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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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정으로 Concerto 2악장 때에야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그리 많이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2부 시작부터 로드 선생은 마이크를 잡고 나서시더군요. 2부 시작 첫 멘트는 누가 영국 사람 아니랄까봐 "다들 바에 갔다 오셨나요?"였습니다.

(그쪽 나라에서는 인터미션 때면 다들 바에 가서 한 파인트 정도 맥주를 마시고 오곤 하죠. 불행히도 세종문화회관엔 그런 바가 없답니다.ㅋ)

Pictures of Home을 연주하자 다들 열광. 하지만 2부에서 딥 퍼플 시절의 곡은 이 곡 한곡 뿐이었씁니다. 나머지는 전부 로드 선생의 솔로 활동 앨범 수록곡들이었죠. 생소한 곡도 많더군요. 보컬이 없는 Bourre같은 곡은 집시의 멜로디를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 The Telemann Experiment는 바흐 시대의 작곡가인 텔레만의 멜로디 하나를 듣고 이리저리 변형시켜 만든 곡이라는 설명이 따라왔습니다. 이렇게 진행이 되다 보니 은근히 본 공연보다 앵콜이라는 떡밥 쪽에 더 마음이 쏠렸습니다.

마지막 곡인 Gigue는 대단히 규모가 큰 록 협주곡 형식이었습니다. 스스로 '크레이지 피스'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연주 중간에는 살짝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메리카'와 드보르작 교향곡 9번 4악장의 멜로디를 섞여 연주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 하여간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형님이었습니다.


드디어 예정됐던 앵콜. 객석의 아저씨 관객들은 "하이웨이 스타!" "번!"을 외치고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여유있는 미소의 로드 형님은 "그건 다음 기회에"라고 넘기며 "아마도 오늘 곡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작곡에 손대지 않은 곡일 것"이라며 'Soldier of Fortune'을 연주했습니다. 아아, 해 주시면 고맙기 짝이 없을 뿐이죠.

노래가 끝나고 로드 형님은 '한 곡만 더 하겠다. 이번엔 제목은 말하지 않겠다'며 다시 하먼드 오르간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단 세개의 음표만 듣고도 객석은 들끓어 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세 음만 듣고 이 곡을 모르면 감히 딥 퍼플 팬이라고 할 수가 없죠.




발사모는 그가 왜 뮤지컬을 떠난지 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최고의 예수로 꼽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특히 Child in Time의 고음부에서는 절로 소름이 끼치더군요. 노래 중간에서 쉴새없이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전성기의 길런이 아니라는 게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모르시는 분이라면 발사모의 노래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게세마네'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노래가 끝날 때만 해도 아무도 이게 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공연의 제목이 'April'인데다 4월 아닙니까. 당연히 문제의 노래가 나올 줄 알았죠. 그런데 웬걸, 피곤하셨는지 로드 형님은 그냥 자리를 뜨셨습니다. '누가 공연 끝이래'는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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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Child in Time의 고음부를 따라하다가 동승자들에게 구박받은 사람이 저 하나만은 아니었을 듯 합니다.

문득 존 로드 선생을 위시한 당시 록의 거장들이 하먼드 오르간을 연주하던 시대가 그리워집니다. 창작력과 에너지가 온 사방에서 뭉클거리고 쏟아져 나오던 그 시대 말입니다. 그래서 골라 봤습니다.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입니다. 매튜 피셔의 하먼드 오르간은 지금 들어도 영롱하기만 합니다.

 

언제건 다른 멤버들은 떨구더라도^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다시 뭉쳐서 딥 퍼플의 사운드를 재현해 준다면 참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0이라는게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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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나 이슬람교의 신자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 분들을 아예 적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드시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삶의 양식이 등장하는 데에는 그 배후에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슬람교 교단에서 돼지고기나 술을 금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초코파이를 '먹을 수 없는 음식'의 범주에 넣는다고 하는 건 좀 생소하실 겁니다. 물론 초콜렛은 먹을 수 있지만, 초코파이는 안 된다고 하는군요. 마찬가지로 우유는 마셔도 되지만 요플레는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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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halal)

미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한국계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의 취임에 보수파의 반발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즈가 2일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고 학장의 발언에서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은 일상 생활에서 투자-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규정해 놓았다.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 중 하나인 초코파이를 먹어선 안 된다는 것도 있다.

초코파이의 젤라틴 성분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질감을 내는 제과용 젤라틴은 돼지 가죽에서 추출한다. 무슬림에겐 최대의 금기인 돼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성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각국 이슬람 교단에서는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식품의 목록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알려 준다. 이를 할랄 푸드(halal food)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공인 할랄 푸드 시장 규모는 580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 이슬람교 교단에서도 지난달부터 '먹어도 좋은 한국 과자'의 목록을 공지하고 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육류의 경우 돼지고기, 피,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등은 먹어선 안된다. 허용된 고기라 해도 율법 규정에 따라 도살된 것이어야 할랄 푸드로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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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돼지가 금기일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 이유를 돌린다. 유목민들에게 최고의 가축인 양이 풀만 있으면 자라는데 비해 돼지는 사람과 양곡을 나눠 먹어야 하고, 젖이나 털 등 부가 자원도 얻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사치품인 돼지를 키우느라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도가 금기로 변한 것이란 설명이다.

결국 모든 금기의 이면에는 그 사회 특유의 필연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금기의 무시는 때로 유혈 사태로 이어지곤 한다. 1857년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반란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금기를 경시했던 영국 통치 세력의 오만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슬람 세력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경계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의 거부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할랄의 이해는 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 대한 아랍권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도 지난달 말 무슬림 모델을 기용한 한국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할랄 푸드 제공 식당을 안내하는 등 아랍권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기회에 다른 경로로 젤라틴을 추출한 '할랄 초코파이'를 만드는 건 어떨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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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이처럼 할랄 확인 마크를 만들어 식품에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품목'임을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랄의 상대 개념인 '금지'는 '하람(haraam)'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이렇게 잘난 척 하고 끝맺음을 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오리온제과의 김태욱 홍보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는 오래 전부터 중동 및 이슬람 국가에 수출되는 초코파이에는 돼지 추출 젤라틴 대신에 소 추출 젤라틴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 이상 없이 소비됩니다."

아앗 이런;;;; 역시 글쟁이보단 업계에 계신 분들의 손이 훨씬 빨랐던 거군요. 그런데 사막에서는 초코파이가 너무 빨리 녹지 않을까요?

"다 안 녹게 처리를 했죠."

그랬군요. 알고 보니 온 세계로 수출되는 초코파이는 소비되는 나라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성분이 다르다고 합니다. 덜 녹거나 덜 얼도록 처리가 되어 있다는 거군요. 훌륭합니다,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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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안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조금 보충하자면 이렇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 현지인들을 세포이라는 이름의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당연히 이들은 거의 모두 힌두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였죠. 당시 이들에게 지급된 총의 탄약통(magazine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의 총에 탄창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은 입으로 물어 뜯어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는군요.

이 물어 뜯는 부분이 기름 먹인 종이였는데, 문제는 그 기름이 소 기름 아니면 돼지 기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소=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 돼지=이슬람의 금기이니 둘 다 입에 댈 수 없다는 반발을 낳은 겁니다.

처음에 이 문제를 무시하던 영국 당국은 뒤늦게에야 '탄통에 먹이는 기름은 염소기름만 사용한다'는 식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불만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 결국 세포이들은 반란을 일으킨다...는 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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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 할랄을 준수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추정치로는 약 70% 정도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전 세계 시장이 56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죠.

아무튼 요즘 무슬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마음 놓고 식사를 하려면 할랄 여부를 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일 듯 합니다. 또 설명에 따르면 아랍 여성들도 이제는 히잡을 패션으로 인식할 정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확산이 오일달러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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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중동 지역의 최신 유행 수영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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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미워도 다시한번'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결국은 근친상간 테마의 드라마였던 거죠. 박상원-최명길 부부의 아들 정겨운으로부터 청혼을 받은 박예진이 사실은 자신이 박상원-전인화 사이의 불륜에서 태어난 딸이란 걸 알게 된 거죠. 죽은 걸로 알려져 있던 이들 커플 사이의 첫 딸이 살아서 자라난 거였습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공포영화 수준으로 죽었던 사람이 반드시 되살아나는 막장 드라마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렇다고 정겨운-박예진이 모두 박상원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아예 여기서 끝나 버려야겠죠. 다행히도(?) 정겨운은 최명길이 박상원과 결혼하기 전, 옛 애인인 화가 선우재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정겨운과 박예진 사이의 혈연은 아슬아슬하게 꼬이지 않고 비껴 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게 아니겠지만, 이런 진행 왠지 너무 낯익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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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안방극장을 흥분시켰던 '하늘이시여'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남자주인공 이태곤은 여주인공 윤정희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결혼을 하죠. 그런데 자신의 어머니 한혜숙이 사실은 윤정희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한혜숙은 이태곤이 태어난 다음 그의 아버지와 재혼한 계모이기 때문에 자신과는 혈연이 닿지 않지만, 윤정희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한 순간에 친어머니로 둔갑하는 순간입니다.

윤정희의 아이를 두고 이태곤의 여동생인 이수경이 하던 대사가 걸작입니다. "그럼 얘는 내 친조카야, 외조카야?" 이 사실을 윤정희에게 알린 못된 계모 박해미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던 이태곤이 화장대 거울을 깨던 소란스러운 장면만 기억에 남지만, 아무튼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틀어 놓으면 또 보게 되는 중독성 강한 막장 드라마였죠.

시아버지가 친아버지가 된 박예진, 시어머니가 친어머니가 된 2005년의 윤정희. 그대로 베꼈다는 평을 피하기 위해 살짝 성별을 바꿔 가는 패턴도 고전적인 스타일을 따랐습니다. 정말 '미워도 하늘이시여 다시한번' 혹은 '하늘이시여, 미워도 다시한번' 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딱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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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전개는 새롭거나 특이한 건 아닙니다. 문득 오래 된 서양 농담이 생각납니다. 한 청년이 사귀던 아가씨를 데려가 아버지에게 결혼 승락을 받으려 합니다.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흡족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아가씨의 출신 내력과 부모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얼굴이 흐려졌습니다. 서둘러 아가씨를 돌려보낸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미안하다. 아들아. 그 아가씨의 어머니는 예전에 나와 사귀던 사람이란다. 우리가 불륜의 만남을 갖던 시기에 저 아가씨의 아버지는 해외 체류중이었지. 태어난 달을 보니 저 아가씨는 분명 내 딸이다. 너희는 남매가 되는구나. 이뤄질 수 없는 사이니 어서 잊도록 해라."

비감한 마음을 견딜 수 없던 아들은 그날로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 누웠습니다. 병이 깊어져 사경을 헤메던 아들에게 병상을 지키던 어머니는 고민이 있어 보이는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몸을 해치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던 아들은 결국 어머니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놔 버리죠. 하지만 어머니는 얘기를 다 듣고도 냉소를 지을 뿐입니다.

"걱정마라, 아들아. 너도 네 아버지 아들이 아니야. 너희는 결혼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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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이야기를 자기 작품으로 가장 먼저 승화시킨 사람은 무협의 거장 김용 선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의 작품 '천룡팔부'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뜻인지 금세 이해하실 걸로 믿습니다.

'천룡팔부'는 한 세대를 풍미한 무협지의 주인공이 가장이 되어 아들을 낳은 다음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무협지의 장르 파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초반의 '미워도 다시한번'을 보고 중년 스타들의 연기력에 혹해 '명품 드라마' 운운 하셨던 분들이 이제 이 드라마의 본질을 보시고 충격을 받지나 않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정겨운이라는 새로운 연기파 배우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 외의 부분들은 김종창이라는 명 연출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중견 연기자들의 호연이야.. 그 분들이 연기 잘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대한민국에 있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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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누구나 조금씩 했을 겁니다. 이민호는 KBS 2TV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라는 캐릭터를 만나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잡았고, 대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같은 캐릭터를 또 맡을 수는 없는 일이죠. 팬들이야 1년 뒤든 2년 뒤든 구준표와 금잔디의 결혼을 그리는 속편이 나오길 바랄 수도 있고, 주구장창 두 사람의 부부생활을 그린 100부작 일일드라마가 나와도 좋아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민호나 소속사가 제정신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최근 공개된 사진을 보니 이미 이민호는 '탈출 구준표'를 시작했더군요. 물론 이번 달과 5-6월까지는 '꽃보다 남자'의 일본 프로모션이 잡혀 있으니 다시 구준표 이미지로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모습의 이민호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이 순서입니다. 사진은 카스 모델로 나서 제시카 고메스와 포즈를 취한 이민호입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글 맨 아래 첨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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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카스 뮤직비디오 프로모션입니다. 2x송이라는 노래를 이민호가 직접 불렀다는군요. 가창력은 일반으로선 훌륭하지만 깜짝 놀랄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팬들의 귀에는 천상의 소리로 들리겠죠.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궁금증은 이런 겁니다. 과연 짧게는 2-3년, 길게는 5-10년이 지난 뒤에 살아 남을 것은 이민호일까요, 구준표일까요. 어느 쪽이 과연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을까요.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민호는 구준표라는 강력한 캐릭터를 벗어나서도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까요?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선 우선 역사의 교훈을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년의 선배 구준표들은 과연 어떻게 한방에 벼락같은 인기를 얻었고, 어떻게 그걸 유지했을까요. 과거를 돌이켜 보면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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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호(차인표)

1m80에 탄탄한 근육질의 체구. '기름바른 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선진국형 용모. 빼어난 영어 실력. 다소 어색한 듯 하지만 과묵함으로 커버한 연기력. 이상이 신인 차인표의 스펙이었다면 강풍호는 재벌 2세, 느끼함과 귀여움의 겸비, 뛰어난 두뇌, 손가락 액션과 색소폰 연주에 이르는 다양한 개인기를 갖춘 캐릭터였습니다. 둘이 만나자 저절로 시너지가 폭발했고,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결혼에 이르며 전설이 완성됐습니다.

이후 차인표의 행보는 '단색 귀공자 연기에 머물지 않겠다'는 몸부림의 연속이었죠. '허리케인 블루'가 가장 대표적인 행보였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심하게 망가진 연기 한 번'+'귀공자 연기 한 번'의 패턴을 계속했지만 사실 '망가진 연기' 쪽에서의 히트작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대한민국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라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투철한 신념과 실천으로 장동건과 문근영을 제치고 '안티 제로'라는 신기원에서 독주하고 있는 거죠. 냉정하게 말해 연기력 면에서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널려 있지만 '강풍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멀리 날아오른 걸 따지자면 대단히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민호를 위한 교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인격의 성숙은 연기력과 외모를 뛰어 넘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된다. 오만과 방종, 나태로 인해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스타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연예인과의 사귐은 결코 나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여자 연예인'과 만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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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이정재)

"감독님, 정말 잘생기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간지가 납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연기력이 아직 좀..." "그래? 그럼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겠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전설 속 '침묵의 보디가드'. 그 뒤로 수많은 연출자들이 잘생긴 신인을 섭외할 때마다 "야, 너 이거만 하면 불같이 뜬다. 어떤 역이냐고? 왜 있잖아. '모래시계 이정재' 역할. 니가 아직 연기가 안 돼도 이건 할 수 있어." 물론 그 수많은 이정재의 복사본들이 다 떴다면 지금껏 '모래시계 이정재'가 전설로 남아 있을 리가 없죠. 대사 없이 가만히 서 있어도 멋있어지는 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약 10년 간, 이정재는 '모래시계 이정재'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물론 연기력 면에서는 괄목상대의 변화를 겪었죠. '태양은 없다'에서의 능글맞은 매니저 연기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까지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무시할 수 없는 배우가 된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흥행 운이라는 건 영 따라 주질 않았습니다. 일단 본인이 작품 수를 매우 제한하는 정책을 취했는데, 이 경우 한번 떴을 때 오래 간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실패하면 후유증도 오래 간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민호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작품 수를 너무 제한하는 것도 곤란하다. 지나치게 작품성 위주로 출연작을 선택하는 것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항상 대중과의 호흡을 의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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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윤(이서진)

이서진은 이때까지 절대 무명이 아니었습니다. 나름 주연급 배우로 평가도 받았습니다.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분명 똑같은 이서진이었는데도 수염을 붙이고 상투를 틀자 갑자기 여자들이 쳐다보기 시작했습니다. '투박하게 생겼다'는 평을 듣던 광대뼈가 갑자기 귀골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거죠.

그리고 나서의 이서진은 최고의 섹시 스타로 대접받게 됐습니다. 다만 '다모'의 성공이 다시 이어지지 않은 것 뿐이었죠. '불새'가 히트했지만 황보 종사관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은 한풀 꺾인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인기는 상투를 틀자 마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바로 '이산'이죠. 이산가족이 됐던 이서진의 팬들은 어느새 다시 뭉쳤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거죠. 아무튼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이서진이 확인한 것은 시대극에서의 폭발력이 훨씬 앞선다는 거였습니다.

이민호를 위한 교훈: 왠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장 잘 나갔을 때의 모습으로 잠시 돌아오는 것도 괜찮다. 야구선수들도 슬럼프 때는 '제일 잘 맞을 때의 폼'을 확인하기 위해 옛날 비디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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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안재욱)

돌이켜 생각해보면 안재욱 역시 '별은 내 가슴에' 이전에도 꽤 촉망받는 배우였습니다. '눈먼 새의 노래' 이후 '연기력은 동년배 중 최고'라는 평가를 얻고 있었죠. 다만 '외모가 주는 임팩트가 약해 원톱 주인공은 무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을 뿐입니다.

'별은...'에 캐스팅될때만 해도 이 드라마의 최초 구상은 차인표-최진실 커플을 축으로 한 것이었죠. 하지만 앞머리를 기른 가수 강민역의 안재욱이 보여준 폭발력은 드라마의 결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여느 배우들을 뛰어넘는 가창력은 '가수 겸엄 안재욱'의 시대를 열었죠.

그 뒤로도 안재욱은 4-5년간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약간 소강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예상 밖의 일이지만 지나간 나날을 해석해 보자면 당시의 틴 아이들 이미지가 신인 시절의 안재욱이 추구하던 연기파 배우로서의 꾸준한 성장을 잠시 가로막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게 안재욱의 경력에 쉼표나 마침표를 찍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도 비슷한 또래에서 안재욱을 뛰어넘을 진지한 연기파 배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나이와 함께 오히려 그동안 '강민 이미지'에 묻혀 있던 안재욱의 진짜 강점이 드러날 시기가 온 것 뿐이죠.

이민호를 위한 교훈: 한때 주춤할 지는 몰라도 연기력에는 슬럼프가 없다. 용모는 언젠가 쇠퇴할 수 있어도, 연기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짝 아이들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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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이민호는 그 나이 때의 차인표나 이정재보다 훨씬 뛰어난 연기력, 이서진이나 안재욱보다 훨씬 뛰어난 신장과 외모라는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현재로서는 성장을 가로막을 장애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험요소는 언제든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일단 위에 나오는 선배들은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성공했나, 혹은 왜 한때 주춤했나를 알아 두는 것이 본인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본인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말입니다. 위에서는 기술하지 않았지만 이준기가 '개념준기'로 큰 가닥을 잡은 데에는 '스타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고 계속 채찍질한 팬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민호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팬들은 또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할 지, 자못 기대가 큽니다. 본인은 올해 학교에도 좀 다니고 싶다고 했다는데...^^

보너스컷을 몇장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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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은 다니엘 헤니처럼 보이기도 하는군요. 마지막 컷은 카스 광고와는 무관하지만 남성 독자들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너무 한국에서 활동이 많다보니 이제 고메스는 한국 연예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면 꽃남에 대한 글을 꽤 썼지 말입니다.

이건 꽃남 출연자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이건 PPL에 대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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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태연의 푸딩-젤리 커플이 파국을 맞았더군요. 정형돈의 '실제' 연애가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 커플을 무참하게 깨 놓은 셈입니다. 구분을 하자면 정형돈이 출연하고 있는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계열의 프로그램이지만, '무한도전'에서는 정형돈의 연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소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우리 결혼했어요'는 당연히 다르죠. 이 프로그램이 발을 딛고 있는 건 아무래도 가상현실이니까요. 이 쇼의 생존은 사람들이 얼마나 이 쇼를 철석같이 믿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만큼, 프로그램 안에서 달달한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따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있다는 것 만큼이나 '확 깨는' 일은 또 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이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부터 연출진과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얘기가 충분히 오갔기 때문이죠.

"출연자 중에서 누가 열애설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게 해야죠."

하지만 그 우려하던 일이 이번에 일어났고, 누구나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속으로는 알고 있었겠지만, 이제부터 '우결'을 보는 눈은 달라질 겁니다. 제작진은 즉시 정형돈-태연 커플을 퇴장시켰지만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닐 겁니다. 안 그래도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지만 이제 '우결'을 지탱하고 있던 심리적 방어선이 무너졌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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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전에 '우리 결혼했어요' 가 처음 화제를 일으킬 때 썼던 글로 넘어갑니다. 새로 글을 써도 되겠지만, 어차피 지금부터 하려던 말도 그 때 이미 했던 말과 거의 흡사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런 사태는 '우결'이 시작하던 지난해 5월에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대목에서 질문을 해 봅니다. 리얼리티 쇼는 정말로 리얼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리얼리티 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서바이버'나 '배철러' 같은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의 상당 부분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믿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쇼의 진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우승자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든가 하는 정도까지 미리 다 짜여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배철러'같은 경우에는 1위로 뽑힌 여자와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하는 일도 있죠. 하지만 이런 리얼리티 쇼에서 가끔씩 악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작설'이 믿고 싶어집니다.

누구라도 잘 보이고 싶을 게임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건 다른 보상을 약속받고 하는 행동일 거란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리얼리티 쇼를 표방하는 '심플 라이프' 같은 쇼에 나오는 것처럼 패리스 힐튼이 저능아일 거라고는 절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역시 리얼리티 쇼인 '밀착취재, 스타의 신혼(Newlywed)'에서 '참치는 물고기가 아니라 새'라고 주장해 화제가 됐던 제시카 심슨도 쇼가 끝난 뒤 "이 쇼는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쇼 아니냐"며 자기를 바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웃었습니다. 제목에 리얼리티가 들어간다고 다 사실은 아닌 겁니다.

그리고, 최소한 미국의 리얼리티 쇼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출연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래야 진짜 리얼리티 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리얼리티 쇼'라는 간판을 내걸고 연예인들이 출연합니다. 말하자면 '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내놓고(가수도 포함됩니다. 가수는 노래가 곧 연기죠) 그걸 믿어달라고 하는 셈인데, 그걸 또 악착같이 믿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걸 보다가 쓴 글입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이건 현실이 아니야!"

1938년. 미국 뉴저지주가 발칵 뒤집혔다. 라디오에서 "화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미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급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 물론 이건 진짜 뉴스가 아니었고, 뒷날 '시민 케인'을 내놓은 천재 영화감독 오손 웰스가 H.G. 웰스의 SF소설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실감나는 라디오 드라마였다.

방송극 중간 중간 여러 차례 '이 방송은 실제가 아니라 구성된 드라마'라는 고지 방송이 나갔고, 심지어 광고도 끼어 있었지만 속은 사람들은 그런 건 고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부분만을 들었기 때문이다.

뒷날 미디어 연구자들은 이 사례에서 '매스컴은 사람들에게 탄환이나 피하주사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강효과이론을 주창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 사건의 교훈은 다른 데 있다.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무엇을 보여 주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쪽이다.

바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코너 얘기다. 남녀 네 쌍이 각각 둘만의 공간에서 밤을 지새며 나누는 '결혼 역할극'이 이 프로그램의 실체지만, 여기에 열광하는 여성 시청자들에겐 마지막의 '극', 혹은 '역할극'이라는 부분은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예전부터 드라마 속 커플들의 희로애락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열혈 시청자들은 많았지만, '우결'의 경우는 또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들이 실제로 결혼했거나,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전판이 드라마보다 훨씬 더 많다. 하지만 열혈 팬들은 이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출연자들이 이런 상황에서의 연기에 매우 능숙한 전문가들이라는 사실도 그냥 무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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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들에게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통해 최고의 '훈남'으로 떠오른 알렉스가 음반 준비를 위해 이 코너에서 빠졌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마치 알렉스가 파트너 신애를 차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라도 한 듯 아우성 일색이었다.

문득 오래 전 사무실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이 생각난다. 기운 빠진 목소리의 한 여자가 당시 인기 절정이던 배우 H의 전화번호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사기를 당하고 식구들이 병이 있는데 전부 길에 나앉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H씨의 전화번호가 필요할까. "도와주실 것 같아서요."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희 사연을 알면 꼭 도와주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리고 싶어요."

최신 미디어 이론들은 대부분 '매스컴에 의해 섣불리 휘둘리지 않는 똑똑한 정보 수집자'로서의 대중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이건 연기야. 실제가 아니야'라는 말을 무시하고 방송이 주는 판타지에 푹 빠져 있는 시청자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들에겐 누가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줄지 궁금하다. (끝)



혹시 마지막의 빨간 알약 얘기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신 분들은 없겠죠.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개의 알약을 내밉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이 상황이 모두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매트릭스가 주는 환상 속에서 잘 살게 되죠. 하지만 빨간 알약을 먹으면 꿈에서 깨고, 잔혹한 현실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바로 뒤에도 나오지만 모피어스와 함께 싸우는 전사들 중에도 '차라리 그때 파란 알약을 먹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연하죠.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아무튼 이 프로그램의 팬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는 현실과 이 프로그램 내용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난해, 알렉스가 새 앨범 준비를 위해 '신애와의 신혼 생활'을 포기한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의 함성이 일었죠.

하지만 알렉스가 군에 입대하는 성시경의 뒤를 이어 6월 초부터 라디오 DJ를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이 아쉬움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악플이 달리기 시작한거죠. 물론 그 수가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알렉스의 소속사 쪽에선 경악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팬들은 '어떻게 DJ할 시간은 있고, 신애와 달콤하게 속삭일 시간은 없느냐'는데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알렉스의 죄(?)라면 너무도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한 죄겠군요. 만약 이 대목에서 알렉스가 따로 사귀는 여자친구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이 대목은 지난해 5월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형돈- 저 위 사진을 보니 심지어 재혼이었던 - 이 이 가정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최근 결혼 발표를 한 신애는 과연 저 때 '그분'을 사귀고 있었을까요, 아닐까요. 그것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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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예화로 들어간 전화는 제가 직접 받은 거였습니다. 사연은 위에 적은 그대로입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은 무척이나 절박해 보였습니다. 도저히 매니저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그 뒤로 진짜 도움이 갔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런 식의 도움을 구하는 목소리가 '이미지가 좋은' 스타들에게 직접 전달되기 시작한다면 그 또한 당혹스러운 일이겠죠. 아무튼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우리 결혼했어요'를 소비하시는 분들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지나치게 빠져서, 현실과 방송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분들은 빨리 주변 분들이 깨워주셔야겠죠.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점점 똑똑한 정보 추구자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정론인데, 21세기에도 이런 판타지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참 놀랍기만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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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의 후속으로 박용하 박시연 주연의 '남자 이야기'가 6일 처음으로 방송됐습니다. 첫회에는 사회적 이슈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듯한 시도가 엿보이더군요. 박용하가 석궁을 들고 방송사 생방송 스튜디오로 난입하는 장면이나, 박용하의 형이 경영하는 만두 공장이 쓰레기 만두 파동에 휘말리는 장면 등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좀 어처구니없는 것은 아직도 그 시절의 '만두 파동'에 대해 엉뚱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쓰레기 만두'라는 말을 유행시킨 당시의 만두 파동은 한국 언론의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만한 사건인데, 아직도 그 실수를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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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박용하의 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만두가게를 만두공장으로 끌어올린 성공적인 기업인입니다. 하지만 회사로 찾아온 방송사 기자가 만두의 제조 공정을 오도할만한 화면을 촬영해 방송하면서 '비위생적인 만두가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를 터뜨립니다.

이어 각종 언론사가 이를 이어받아 보도하고, 네티즌들은 '먹을 것 갖고 장난치는 놈들은 사형대로 보내라'며 들끓어 오릅니다. 사태가 커지자 식약청은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일단 여러 개 업체의 만두를 불량식품으로 낙인찍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조사결과가 밝혀졌을 때, 각종 매체에 보도가 나가지만 이미 그때는 1단짜리 기사만 나갈 뿐입니다. 이미 공장은 망해 있고, 명예는 회복되지 않은 채 박용하의 형은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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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은 지난 2004년 한국을 뒤흔들었던 소위 '쓰레기 만두 파동'을 대략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의 파동은 방송사 기자가 독자적으로 엉터리 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각 방송사가 경찰이 촬영한 자료 화면을 그대로 쓰면서 경찰의 초기 수사 결과를 아무 검증 없이 방송하면서 이뤄진 것입니다. 문제의 보도는 '만두 소를 공급하는 소형 식품사들이 단무지 공장에서 버리는 쓰레기 단무지로 만두 소 원료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죠. 이 보도는 대기업 식품사들도 이 소형 식품사들이 공급하는 만두 소로 만두를 만든다는 사실로 이어지며 대대적인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폭등한 여론은 "즉시 '쓰레기 만두'를 만드는 회사의 이름을 공개하라며 관계 당국을 압박했고, 식약청은 여론에 밀려 제대로 조사도 해 보지 않고 25개 업체를 공개합니다. 결국 이 리스트에 오른 만두 회사들은 거의 폐업 위기에 몰리고, 그중 한 회사의 대표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감행합니다.

조사 결과는 씁쓸했습니다. 문제의 '쓰레기 단무지'라는 것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죠. 단무지 회사들은 단무지를 담근 다음 상품으로 포장할 때 둥글게 쓸 수 없는 무우의 양쪽 끝 부분은 '버립니다'. 이 '버리는 부분'이 만두 원료로 만두 소 회사에 팔려갔다는 것이죠. 즉 '모양 때문에 상품화할 수는 없지만 먹는 데에는 지장 없는 부분'을 판 겁니다. 문제될 게 없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어 다르고 아 다른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건 말하자면 김밥을 예쁘게 썰어 도시락에 담기 위해 각 줄에서 양쪽 끝 부분은 '버린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즉 예쁘지 않기 때문에 '버리는' 것이지, 그걸 '쓰레기'라고 불러서는 안 됐던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한탕'을 위해 이를 '쓰레기 단무지' 혹은 '단무지 공장의 폐기물'이라고 불렀고, 이런 선정적인 표현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한 것입니다.

뒤늦게 식약청 조사 결과 많은 업체가 누명을 벗게 되지만 이미 이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서 있었던 터라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신을 표명합니다. 또 언론의 본질상 '터뜨릴 때는 크게, 해명은 조용하게'가 여기서도 적용됩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반성'하는 두 개의 기사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55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0276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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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번 머리에 박힌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입니다. 최근들어 '남자 이야기' 방송을 앞두고, 1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 여러 인터넷 매체의 기사들입니다. 한번 보시죠.

'남자이야기'의 첫번째 에피소드는 극중 ‘김신’(박용하 분)의 형 ‘김욱’(안내상 분)이 운영하는 만두공장이 ‘쓰레기만두’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사건이다. ‘쓰레기만두’ 파동은 지난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으로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이다.

실제로 쓰레기 만두 파동은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으로 큰 파동을 일으켰던 사건. 우리 사회가 식품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 주었던 실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 같은 사건은 지난 2003년 거대 만두제조업체들에서 단무지 공장에서 버려진 쓰레기 단무지를 만두속 재료로 사용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아이템.


아주 사이 좋게 연도도 틀린데다(위에서도 말했듯 2004년 6월의 일입니다. 누가 하나 잘못 쓰면 끝없이 베껴 쓰는 인터넷 보도의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쓰레기 만두'를 들고 나와 당시 처참한 피해를 입은 만두 회사 관계자들을 두번 죽이고 있습니다. 결국은 '사고는 크게 치고 해명은 작았던' 당시의 보도 행태가 이런 식으로 또 한번의 오류를 낳은 것이겠죠. 이 사건은 식품 위생에 대한 경각심도 경각심이지만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하는데, 비록 인터넷 매체라지만 아직도 저런 보도가 나오고 있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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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가 또 하나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흥분의 폐해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댓글 알바'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식품 회사의 M&A를 위해 만두 파동을 조작하고 크게 확대시키는 주범들이 알바들을 동원해 뉴스 댓글로 만두 사건을 확대시키는 장면이었죠.

알바 몇명으로 여론이 좌우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정확한 정보 없는 속단이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경우, 그 폭발력은 지금까지 수없이 지켜본 바와 같습니다. 집단지성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끔은 과연 집단에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 드라마에 등장한 두번째 소재, '석궁 테러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법치 국가에서 피고인이 판사를 석궁 같은 흉기로 쏘아 부상시킨 것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입니다. 한데 이런 사건을 놓고도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랬겠느냐'는 여론과 함께 사건 당사자를 로빈 훗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여론이 일어난 것은 도저히 합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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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식으로 꽤 생각할 여지가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로 풀어내는 것은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자칫하면 사건의 의미를 엉뚱하게 오도하는 우스꽝스러운 드라마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이야기' 첫회는 '역시 송지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박용하와 박시연의 연기도 칭찬할만 했습니다. 박용하는 본래의 모습인 터프가이로 유감없는 매력을 발산했고, 박시연은 이제 연기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프트가 인프라를 따라가지 못한다(죄송합니다. 전문용어라서^)를 평가는 이제 접어도 좋을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아빠와 크레파스' 신, 뱅 앤 올룹슨 오디오를 이용한 '고급 악당' 김강우의 연출 등은 좀 의욕 과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첫회가 이 정도라면 꽤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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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중훈쇼'가 오는 1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시청률은 참담할 정도입니다. 5일 엄정화-신영옥 출연편이 3.4%로 지금까지 방송된 내용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최근 방송분이 3~4%대를 오르내리는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갑자기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예 회복이 안 되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연말, 방송 전만 해도 '박중훈 쇼'는 방송가의 최대 화제가 될만 했습니다. 아마도 방송-영화계를 망라해서 지금 연예 대통령을 뽑는다면, 스스로 고사하지 않는 한 박중훈이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겁니다. 물론 연예계에는 그보다 훨씬 관록이 두터운 선배들도 있지만, 그만큼 연륜과 인망, 친화력에서 넓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중훈쇼는 4개월만에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가장 책임이 큰 것은 이 쇼의 제작진입니다. 박중훈 본인이 이 멍에를 다 뒤집어쓰기엔 제작진의 책임이 너무도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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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박중훈 쇼'는 본래 SB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었습니다. 일이 잘 풀렸다면 1년 전에 이미 방송을 하고 있을 상황이었죠. 하지만 방송 계획이 이미 언론에 공개된 이후, 방송의 세세한 조건을 놓고 이견이 발생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박중훈은 제작진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KBS가 먼저 제의를 했는지, 박중훈 측에서 제의가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아무튼 박중훈은 "SBS만 아니면 어떤 방송사든 좋다. 당초 SBS가 내건 조건보다 나쁜 조건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입장이었고, KBS건 MBC건, "박중훈이 토크쇼를 진행한다"는 호재를 놓칠 방송사는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덥석 물었죠.

하지만 '박중훈 쇼'라는 이벤트는 현재의 제작진에겐 너무 큰 고깃덩이였습니다. 소화시킬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현재의 제작진들의 전력을 살펴보면 '예능 전력'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마도 교양/다큐멘터리 영역에서는 훌륭한 연출자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교양 출신으로 예능으로 전업해서도 훌륭한 재능을 발휘하는 연출자들도 간혹 눈에 띄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 교양과 예능은 동양과 서양처럼 쉽게 만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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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쇼'에 불만을 느낀 시청자들의 반응 중 가장 큰 목소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재미가 없었을까요. 많은 시청자들은 '다 아는 얘기,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만 골라 물어보는데 어떻게 재미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합니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와 제작진이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중훈은 여러 차례 '정통 토크쇼를 하겠다(품위있게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작진도 재현 화면이나 자막 같은 것이 없는 토크쇼를 하겠다고 이 말을 뒷받침했습니다. 좀 답답한 노릇입니다. 박중훈이라는 MC는 이름 값이 무겁지만 TV 토크쇼 진행자로서는 초보입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을 요구하는지를 체크해서 MC에게 전달해야 할 사람이 바로 제작진인데, 제작진도 MC와 마찬가지로 시청자의 요구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시간이 흘러도 쇼가 달라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겁니다.

'감히' 톱스타 박중훈에게 진행의 방향을 이러이러하게 가는게 좋겠다는 말을 누가 하냐구요.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제작진이 있고, 전문 작가진이 있는 겁니다. 초보 MC가 '내가 생각하는 토크쇼는 이렇다'고 할 때 잘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걷는 사람은 박중훈씨의 개인 스태프입니다. 방송 제작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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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인 장동건 편에서 이미 제작진의 한계는 드러났습니다. 박중훈과 장동건이 친한 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제작진은 여기서 '장동건이 나온다' 이상의 욕심을 내야 했습니다. 물론 친하다고 아무거나 물어볼 수 있는건 아니지만, '박중훈의 품위'와 '장동건의 몸 사림' 사이에서 신선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방송에 낼 수 있도록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쇼의 제작진은 '무릎팍도사' 식의 토크쇼가 경박하고 저열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한 것은, '무릎팍도사'의 질문들은 출연자에 대한 치열한 연구, 수년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예능 전문 작가들과 연출자들)에 의해 나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 받는 사람도 뜨끔하고, 보는 사람도 아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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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중훈 쇼'의 질문들은 '우리는 사실 장동건(혹은 김태희, 혹은 주진모, 혹은 김혜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명색이 토크쇼인데 질문자가 일반 시청자보다도 식견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어 온 것이죠.

그동안 이 쇼의 내용 중 가장 진부했던 것이 소녀시대 편, 흥미로웠던게 장기하 편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유는 뭘까요. 장기하라는 새로운 인물에 대해서는 어차피 제작진도 잘 모르고, 시청자도 잘 몰랐기 때문에 격차가 그만큼 좁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쇼의 제작진이 '예능을 다루는 태도'는 5일 엄정화 편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날 '엄정화의 패션 변천사'라는 간단한 구성 화면이 나왔습니다. 3-4곡 정도의 과거 히트곡 뮤직비디오를 짜깁기한, 상당히 성의 없는 화면이었는데 배경음악은 전부 'D.I.S.C.O'였죠. 이 때문에 화면은 과거 화면이었는데, 박중훈이 "아, 저게 'D.I.S.C.O'때의 모습이군요"라고 얘기하는 실수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청자들이 충분히 채널을 돌릴 만한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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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제작진은 구성 단계에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자막 나오는거 봤어?"하면서 '자막으로 도배된' 무릎팍 도사를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제작진은 오프라 윈프리 쇼의 소파와 세트는 참고할 줄 알았어도, 그 쇼에 나오는 질문과 대답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하지 않은 태가 역력했습니다. 미국 시청자들이 세트가 멋져서 오프라 윈프리 쇼를 열심히 본 줄 알았나보죠.

'박중훈 쇼'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아무리 달변의 진행력과 톱스타의 섭외력을 갖춘 훌륭한 MC를 데려다 놓아도 제작진이 그걸 훌륭한 방송으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는 한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톱스타를 데려와서도 망하는 드라마가 한둘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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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갖고 "박중훈은 역시 방송용은 아니었어" 라든가, "&&&는 인제 텄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제작진이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해에도 '교양 마인드로 예능을 건드린' 시도는 몇 차례 있었습니다. MBC에서도 주말 다큐멘터리 코너를 통해 이영애와 비를 밀착 취재(?) 한 적이 있었죠. 두 번 모두 시청자들로부터 '잔뜩 기대했는데 보여준 게 뭐냐'는 질책을 면치 못했습니다. 방송의 내용으로 봐선 피사체가 된 스타들은 만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꽃등심이나 바닷가재가 만족하면 뭘 합니까. 손님이 좋아해야 식당이 잘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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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돈 관련 일을 하는 후배와 식사를 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동안 잘 살던 돈 관련 일들을 하는 친구들이 아주 죽을 맛인 모양이더군요. "그러게 돈이란 건 원래 땀 흘려서 벌었어야지!"라고 농담을 했지만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영국 시간에 맞춰 업무를 보고, 뉴욕 시간에 맞춰 오후 11시에 회의를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참 저러고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돈이야 저보다 훨씬 많이 벌겠지만 그래도...

4월이면 벚꽃, 벚꽃하면 4월이죠. 이놈의 벚꽃이라는 꽃은 의외로 수명도 짧습니다. 2주 정도 활짝 피었다가 슬쩍 져 버리는게 일이더군요. 이게 일본의 국화라는 이유로 뜻없이 미움도 받지만, 뭐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 중에서 장미를 미워하는 나라는 못 본 듯 합니다. 그걸 나라 꽃으로 고른 사람들이 문제지 뭐 꽃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본래 없던 꽃도 아니고.

아무튼 다른 뜻 하나도 없이 좀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뜻으로 경주를 휙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네. 돈은 좀 깨집니다만...ㅠㅠ 그래도 활짝 핀 벚꽃 터널에서 산보도 해 보고 하니, 그래도 사람이 이런 맛에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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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문단지에 벚꽃 보러 처음 간 건 지난 3년 전입니다. 그때는 4월중순쯤이었는데 이미 벚나무들이 저런 모양이 되어 있더군요. 물론 저건 좀 심한 가지를 찍은 거고, 대부분 꽃이 볼만큼은 있었지만 언제고 한번쯤 꽃이 확 피어 있을 때 한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드랬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날짜를 좀 빨리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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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한풀이를 했습니다. 꽃이 아주 탱글탱글 꽉 차 있더군요.

벚꽃이라는 게 한껏 피어 있을 때는 흰 색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질 때가 되면 붉은 빛으로 보이더군요. 위 사진도 있지만, 저게 꽃 자체가 붉은 빛으로 바뀌는지, 아니면 꽃이 지고 난 대궁이 붉은 색이라서 비쳐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꽃 구경 하실 여유 없는 분들, 구경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더 크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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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 꽃길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문단지 주변에는 북군동이라고 식당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 동네의 지존은 유명한 맷돌순두부. 하지만 최근에는 게장순두부집이 출현해 화제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가 봤습니다. 북군동 식당가로 진입해 바로 왼쪽 골목으로 죽 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맷돌순두부를 지나 골목 끝쪽에 게장순두부 간판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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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장순두부 + 비빕밥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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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순두부의 게장이란 간장에 게를 재운 그 게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게의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게장을 가리키는 겁니다. 게장과 게살을 갈아서 국물을 내고, 그 국물에 순두부를 말아 냈다는 것이죠.

콤콤한 게 국물 맛이 나긴 합니다만, 결국은 순두부 맛입니다. 대단한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 좋겠지만, 아무튼 한끼 식사로는 만족스럽습니다. 가격이 7000원이라는 거야... 관광지니까.


저녁은 경주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경주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아화리라는 동네가 있고, 거기에 서면식육식당(054-751-1173)이 있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북쪽으로 다리를 하나 건너면 김유신장군묘와 태종무열왕릉으로 가는 사거리가 나옵니다. 그 길에서 왼쪽, 무열왕릉쪽으로 사정없이 달리다 보면 고속도로 같은 길이 나오고, 한 30분 지나 아화리 이정표가 보입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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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를 직접 키운다고 하는데, 사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가격표를 한번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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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 '갈비살'이 서울에서 파는 그 길쭉길쭉한 수입 갈비살이 아니라 '꽃등심+갈비살'이라는 데 있습니다. 갈비살 2인분을 시켜 봅니다.

고기 좀 드셔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저 때깔이 그냥 나오는게 아니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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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절반은 이미 불 위에 올려 놓은 다음입니다. 고기를 보자 이성을 잃어서, 나오자마자 사진 찍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아무튼 이 가격이 이런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서울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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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에게 아양도 떨어 봅니다.

"하도 맛있다길래 서울서 여기까지 왔어요. 잘 좀..."
"네. 존 데로 드릴께예."

고기맛은 눈으로 보는 대로 g.o.o.d. 양이 좀 적다고 엄살 컴플레인을 해 봅니다.

"무슨 말씀? 서울 손님들 다 와서 싸고 양 많다고 좋아하던데."

어라? 예상했던 반응과는 좀 다릅니다. 아니나다를까.

"작년에 인터넷에 떴다면서 서울 손님들 엄청나게 왔다 갔어요."

...안 통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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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맛도 맛이지만 이 물김치 엄청나게 시원합니다. 소면 삶아서 여기다 바로 말아 먹으면 일품이겠건만... 메뉴판에도 있는 소면, 국수가 없다며 주문 불가를 외치십니다.

아. 여기 경상도였지.


아무튼 경주 요맘때면 참 좋습니다. 이번엔 가보지 않았지만 감포 앞의 저 파란 바다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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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지 않게 다들 나들이 한번 짜 보시죠.

하기야 올해 아니면 어떻습니까. 내년에도 벚꽃은 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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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락이 돌아왔다'. 각종 매체들이 '개그 왕의 귀환'을 소리높여 외친 지 약 100일이 지났습니다. 100일이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죠. 그 사이 '꽃보다 남자'는 25부작 방송을 마쳤고, '에덴의 동쪽'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송승헌이 뭘 하는지 가물가물해 졌습니다.

과연 '왕의 복귀' 100일 성적은 어땠을까요. 초반의 화제는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최양락 아저씨가 누군가요?'하고 호기심을 가졌던 10대들도 이제 최양락이 누군지는 다 알았습니다. 최양락이 복귀하면서 함께 합류한 이봉원에 이어 양원경, 홍기훈 등도 방송 활동을 재개했고, '저그(아저씨 개그맨)' 라는 신조어까지 꽤 귀에 익었습니다.

과연 저그의 전성기는 다시 올까요? 이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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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최양락의 '왕의 귀환'이 한창 화제일 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최양락이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개그맨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쇼 비디오 자키' '유머 1번지'에 대한 추억을 기록한 글이었죠. 그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협력체제입니다. 현재의 예능계는 독불장군이 살아남기 힘든 형태입니다. 유라인과 강라인은 물론이고 대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윤종신-신정환-김구라-김국진의 라디오 스타 팀, 또는 송은이-신봉선의 패키지를 보듯 팀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라인의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그럼 과연 최양락의 곁에는 누가 있게 될까요?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입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왕년에 잘 나갔던 노장들'만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상당한 약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지금은 강호동이 살짝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은 쪽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노장 노장 하지만 최양락은 1962년생. 이경규보다 2년 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비교하면 최화정과 황신혜의 사이에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나이입니다. 모처럼 노장들의 성공적인 행진이 오래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전문은 이쪽에 있습니다.


이 글을 쓸 당시,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저그', '저그시대'라는 말은 매우 폐쇄적입니다. 이건 '아저씨 개그맨들끼리의 연대' 혹은 '80년대 개그맨들의 회귀'라는, 듣기 좋고 기사 제목 뽑기 좋은 허울 안에 갇히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들이 '옛날식 개그'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옛날과는 다른, 새로운 감각의 개그를 구사한다 해도 스스로가 이렇게 '나는 옛날 사람'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으면 현재의 방송환경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연하 예능인들과의 과감한 연대죠. 물론 1962년생인 최양락씨는 '지금도 젊은 사람들과 충분히 연대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젊은 사람'이 우리 나이로 40줄에 접어든 강호동(1970년생)이라면 매우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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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이 차이로 계산해봅시다. 최양락과 강호동은 8세 차이가 납니다. 강호동에게 8세 차이가 나는 후배는 은지원, 9세 차이가 나는 후배는 MC몽입니다. 치고 받고 하는 스스럼없는 사이를 생각하면 최양락-강호동의 관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깝습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최양락과 강호동의 관계는 강호동과 이승기(17년 차이)의 관계보다 더 멀어 보입니다.

비슷한 경우는 강호동보다 두 살 어린 유재석에서게 볼 수 있습니다. 유재석의 요즘 파트너는 1989년생인 대성입니다. 강호동-이승기와 마찬가지인 17년 차이죠. 현재 정상에 서 있는 이들은 그 정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무려 17년이나 어린 동생들의 정기(?)를 흡수하며 견고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좀 더 세월이 흘러 20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도 훌륭하게 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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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하면 현재의 '저그'들은 아래로의 연대가 매우 힘겨워 보입니다. 최양락과 17년 차이가 나는 후배라면 이효리나 김동완 정도의 1979년생들이 되겠군요. 이들과 최양락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풍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당장 시도한다 해도 될 일은 아니지만, 최양락이 '그래도 말이 통하는' 강호동이나 윤종신의 보호벽 안에 있는 한 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은 요원할 뿐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그들에게는 40대-50대에 이미 구축된 팬층이 있고, 이들을 친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굳이 부담을 감수해 가면서 '아래로 내려가라'고 강요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방송 환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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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들이 드라마 위주의 연기자라면 전혀 '아래로 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능은 이야기가 다르죠. 예능에서 40대 이상의 성인 시청자들이 마이너 계층이라는 것은 매우 선명합니다. 10대와 20대를 겨냥하고 40대까지 흡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40대와 5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이 한국의 지상파 방송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일단 이런 프로그램은 광고주들이 외면합니다. 각 방송사들은 대외적으로는 '온 세대를 아우르는' 방송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광고주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을 굳이 살려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면피용으로 일요일 새벽 6시-7시대 정도에는 편성할 수 있겠죠. 한국의 중년층이 또 다른 소비 시장으로 거듭나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이 연령대 시청자들은 과외비를 대느라 자기 본인들에게 투자할 여력이 거의 없는 불쌍한 부모들입니다. 광고주들이 매력을 느낄 여지는 별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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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예능인들은 나이를 먹어도 젊은 세대와 연대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필연입니다. 이런 논리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당장 1958년생인 조형기와 4세 연하인 최양락 중 누가 더 젊은 세대에 친근하게 느껴질까요. 이들보다 훨씬 젊은 박명수는 이미 데뷔 초부터 이런 논리를 깨달았습니다.

그 자신의 입으로 그런 비결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내가 장수하는 이유를 알아요? 나는 항상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친구들과 방송을 했어요. 그 기를 흡수해야 나도 살거든." 이 말을 들은 것이 3년 전. 그의 '제8, 제9의 전성기'는 그저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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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저그'들의 앞날은 그리 선명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복귀를 앞다퉈 환영했던 미디어는 벌써 시들해졌습니다. 이들은 냉혹합니다. 절대 생존에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내일에는 또 내일의 스타가 뜨고, 미디어는 다시 그들을 쫓기 바쁠 겁니다. 그건 본래 미디어의 속성이니까요.

가장 좋은 대책은 '아래로 아래로'입니다. 이를 부정하고 '저그들끼리의 더 공고한 연대'나 독자적인 생존을 노린다면, 그나마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저그에 대한 특수'가 사라진 다음에도 이들이 지금같은 관심과 인기를 누릴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능하면 이들이 오래 오래 현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도 그 세대이기 때문이죠. 저도 어린 시절의 영웅들이 계속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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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당연히 '막장성을 갖춘 드라마', 혹은 '막장스러운 드라마'라고 규정해야 할 겁니다. 막장성이란 스토리상의 막장성(이른바 작가가 원하는 것은 뭐든 이뤄지는 비비디 바비디 부 스토리), 연기의 막장성(소리만 지르고 막말로 싸늘하게 쏘아붙이기만 하면 '탁월한 감정 연기'냐), 연출이나 설정의 막장성(정말 점만 붙이면 아무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 모두를 갖춘 막강 드라마도 있겠죠.

그런데 요즘 이 막장성 풍부한 드라마들 가운데 희한한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만 보고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거죠. 이게 바로 공포영화와의 공통점입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할로윈',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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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포영화들을 보면 많은 주인공들이 범인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보는 관객들을 짜증나게 합니다. 목을 조른다든가, 몸에 불을 지른다든가, 쇠몽둥이로 머리를 때린다든가 하는 방식은 도대체 소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총에 맞는 것도 불충분합니다. 사지가 붙어 있기만 하면 괴물은 무조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공포영화의 원칙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확실한 건 '13일의 금요일' 1편 이후로 머리를 날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제작자들이 속편을 만들지 못하죠. 그래서 항상 제작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공포영화 출연자들을 바보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략 어정쩡하게 죽여서 꼭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막장드라마 출연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요즘 드라마들 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죄다 살아 돌아옵니다. 막장계의 선두주자인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장서희와 채영인은 모두 죽음에도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이 드라마의 세계에선 아무리 아이를 막 놓아 기르다 잃어버려도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어느새 부모의 주변으로 돌아와 있곤 합니다. (참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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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버지가 쓰러져 있어도 시청자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비탄에 젖은 출연자들이 지겨울 뿐입니다. 깔끔한 연출과 중년 연기자들의 호연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은 '미워도 다시한번'의 막장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최명길의 옛 애인 선우재덕은 '당연히' 살아 있습니다. 하긴 도입부에서부터 냄새를 적잖이 풍겼죠.

'카인과 아벨'에 나오는 소지섭의 죽음 연출에 이르면 짜증이 날 뿐입니다. 대체 이 드라마에서 소지섭이 정말로 죽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요. 이렇게 뻔하다 못해 뻔뻔한 진행에도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는게 참 안습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후손들이 아무 고민없이 브라운관을 누비고 다니고 있을까요. 좀 전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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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장 드라마

남편이 정부와 작당해 아내를 죽이려 하는데 그 아내는 살아 돌아와 다른 인물로 변신해 복수를 노린다. 그런데 그 변신이란 게 얄궂어서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남편은 물론 부모와 친오빠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6개월 만에 4개 국어와 골프, 수영을 마스터하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SBS TV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울고 갈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요즘 이 드라마를 모르면 주부들 사이에선 대화가 힘들다.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소위 ‘막장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채널을 돌려도 소용이 없다. 등장인물의 내면묘사나 정교한 내러티브는 모두 뒷전, 비정상적인 인물과 개연성을 무시한 사건 진행이 드라마마다 넘쳐난다.

국어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면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인생 막장’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정도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선정성이 ‘막장 드라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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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 쏟아지지만 방송사는 아랑곳없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광고를 앞뒤로 꽉꽉 붙여주는 효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극에도 소위 ‘막장성 요소’는 있다”며 이 계열의 드라마들을 옹호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는 자신의 손에 남편을 잃은 여인에게 뻔뻔스레 청혼하는가 하면 어머니와 형수의 저주를 받으면서 조카딸에게 청혼한다. 이 밖에도 남녀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야기(‘십이야’),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신비의 약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로미오와 줄리엣’) 정도는 쉽게 발견된다.

물론 대문호의 작품에서도 이런 요소가 보이는데 한낱 TV 드라마에서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다른 논의를 다 미뤄 두고,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가 언제인지만 살펴보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전’과 비슷한 연대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자를 400년 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황의 영향일 듯하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경기침체 탓으로 대형 뮤지컬들이 잇따라 막을 내리고, 스트립쇼 위주의 오락 공연 벌레스크(burlesque)가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도 세계의 첨단 조류인 ‘대중문화 퇴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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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나오는 벌레스크란 뮤지컬의 초기 시대에 등장했던, 노래와 춤이 있는 극장용의 버라이어티 쇼, 유흥거리입니다. 이렇게만 쓰면 보더빌(vaudeville)과 차이가 없게 보이지만, 대략 벌레스크는 여자의 나체나 나체에 가까운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성인용 오락거리인 반면 보더빌은 줄거리와 노래, 춤에다 마술 등의 볼거리까지 결합해 보다 수용층이 넓은 형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아무튼 세상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생각이 없어진다고 해서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각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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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글은 이쪽으로 옮겨 오는데 시간이 살짝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공공기관장께서 '막장이란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장소'라며 '막장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말씀하셨더군요. 하지만 그냥 이 말은 영어의 dead-end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 듯 할 뿐, 저런 식의 확대 해석은 오히려 좀 과민반응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다간 '개판', '개고생' '개수작' 등의 말이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동물인 개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표현이니 자제하자'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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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일은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의 1주기입니다. 벌써 1년이 지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4월1일자로 장국영 관련 포스팅을 할까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어제 어떤 분도 댓글을 다셨지만 이 무렵이 되면 장국영의 신화가 되살아나곤 하죠.

이상할 정도로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는 아까운 한창 나이에 일찍 가버린 스타들이 많이 몰려 있습니다. 제목에도 있듯 장국영 뿐만 아니라 브랜든 리, 커트 코베인이 모두 이맘때 이승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봤습니다.

4월, 완연한 봄날이고 꽃은 피었지만 이상하게도 찬 바람이 가시질 않는군요. 옛날 글을 다시 읽어봐도 처연한 느낌은 여전합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4월, 왜 이다지도 잔인한가

4월.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라디오 DJ들은 '잔인한 달…'을 오프닝 멘트로 흘렸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묘하게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스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1993년 3월 31일은 '브루스 리' 이소룡의 아들인 영화배우 브랜든 리가 촬영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숨을 거둔 날이다. 당시 나이는 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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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1987년, 그가 이국호(李國豪)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출연한 영화 데뷔작 '용재강호(龍在江湖)'가 개봉됐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비록 백인 혼혈이라 상당히 서구적인 얼굴이었지만 뚫어질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은 누가 뭐래도 이소룡의 재림을 알리고 있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묘한 분위기의 영웅 '크로우'로 기억되는 그는 '크로우' 촬영장에서 빈 총이어야 할 총이 발사되는 바람에 숨을 거둔다. 부자 2대가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2003년 4월 1일 세상을 떠난 장국영은 6주기를 맞았다. 47세의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마음의 그늘을 이기지는 못했다.

1994년 4월 5일에는 그런지 록의 대명사였던 밴드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27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유서까지 발견됐는데도 아내 코트니 러브가 개입됐다는 등 음모설이 끊이지 않았다. 생전에도 처절한 고독과 절망, 허무를 노래했던 그였기에 팬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았다.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은 사람은 누구라도 안타까움의 대상이 된다. 하물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들의 경우임에랴. 해가 바뀔 때마다 팬들은 나이를 먹어 가고, 언제나 젊은 채로 남아 있는 스타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그 위에는 팬들 자신의 젊은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움과 슬픔이 한데 합쳐지는 까닭이다.

더구나 올해는 국내에서도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지난 2일 38세의 한창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언제나 즐거운 노래로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주던 그였던 탓에, 애도의 눈물이 어색하면서도 더욱 애틋하다.

4월이 왜 이토록 잔인한지, 답은 물론 없다. 다만 한창 피는 꽃소식 속에 못다 이룬 젊은 스타들의 꿈과 그들을 그리는 팬들의 눈물이 있어 이 봄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끝)








이국호(李國豪, Brandon Bruce Lee)
1965년 2월 1일 출생  - 1993년 3월 31일 사망.






브랜든 리 아닌 이국호의 데뷔작, '용재강호'가 국내에서 개봉됐을 때의 포스터입니다. 네이버 그래플러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NBlogMain.nhn?blogId=grappler39 에서 퍼 왔습니다. 이런 포스터가 남아 있다니 믿어지질 않는군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이소룡의 아들'이라는 선전 문구 때문에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물론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국호의 눈빛, 상대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정면으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는 순간 '그래, 저 눈빛이야!'라는 생각이 뇌리를 때렸습니다. 역시 씨는 속일 수 없는 법이더군요.

예고편에 미국 버전과 홍콩 버전이 있습니다만, 홍콩 버전이 역시 제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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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란했던 시절의 이소룡 일가 사진입니다. 당연히 왼쪽 아래가 브랜든 리, 그리고 엄마 품에 안긴 소녀가 샤론 리죠.  어렸을 때는 혼혈이라기보다는 백인 아이 같던 이 소년은 지금 아버지 곁에 누웠습니다.



이제 이렇게 시애틀의 한 묘역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장국영(張國榮)
1956년 9월 12일 출생 - 2003년 4월 1일 사망




장국영 얘기를 하자니 너무 할 얘기가 많습니다. 그건 곧 다른 포스팅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엔 2003년의 비극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애잔한 마음을 전한 '천장지구' 이야기만 잠깐 보태겠습니다.

홍콩 언론에 따르면 당학덕은 장국영의 장례식장에서 '아자, 천장지구유시진, 차애면면무절기(阿仔,天長地久有時盡 此愛綿綿無絶期)'라는 헌시를 전했다고 합니다.

영화 '천장지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 구절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서 한 글자만을 바꾼 것입니다.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옛 노래죠. 대단한 장시지만 유명한 끝부분만 보면 이렇습니다.


臨別殷勤重奇詞
헤어질 무렵 간곡히 다시금 전할 말 부탁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그 말 중에는 두 사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밤 깊어 사람 없자 은밀히 속삭였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 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里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이 하늘과 이 땅도 언젠가는 다할 날 있으련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만은 영원히 이어져 끝이 없으리.

당학덕의 노래는 이 마지막 구 구절에서 한(恨)을 사랑(愛)으로 바꾼 것입니다.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밖에 없어 암수가 같이 있어야 날 수 있는 새죠. 연리지는 두 그루의 나무가 줄기가 붙어 하나의 나무가 됐다는 채옹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 깊음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부부의 연이 두터움, 가끔은 친구 사이의 우정이 두터움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천장지구유시진, 차한면면무절기. '장구한 천지도 언젠가는 다할 날이 오겠지만, 이 한만은 끝내 이어져 끝날 날이 없으리'라는 말을 열 네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간결미는 한문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 수 없죠.

장국영이 부른 수많은 주옥같은 곡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곡 한 곡을 골랐습니다. '영웅본색'의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이죠. 요즘은 바비 킴의 '사표를- 던져라-'로 더욱 익숙해진 곡이 돼 버렸지만.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
1967년 2월 20일 출생 - 1994년 4월 5일 사망





코베인에 대해서도 그리 길게 보탤 말은 없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사연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니 저와 동갑이군요.^





유서의 마지막에도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썼지만




팬들은 그의 아내를 증오하죠.

그를 생각하면 저는 항상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너바나의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잘 알려진 MTV 언플러그드 버전입니다.



...과연 코트니는 그날 어디서 자고 들어갔기에 이렇게 남자를 비탄에 빠지게 했을까요.



임성훈(Turtleman)
1970년 9월 3일 출생 - 2008년 4월 2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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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데뷔해 운동가요 '사계'를 댄스곡으로 편곡한다는 발랄한 상상력을 보여준 터틀맨은 2005년 이미 심근경색 판정을 받고 수술도 받았습니다. 심근경색과 댄스가수란 거의 양립할 수 없는 영역이죠.

하지만 그는 '병원에 누워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며 계속해서 곡을 쓰고 무대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명을 재촉하는 일이었겠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었지만 그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터틀맨이 남긴 노래들을 고르다 보니, 추모곡으로 걸맞은 노래는 한 곡도 없더군요. 하긴, 병마와 싸우면서도 밝고 즐거운 노래들을 만든 터틀맨이고 보면 자신의 추모 분위기를 어둡고 칙칙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입니다.






마지막 노래로는 이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퀸의 'No One But You', 부제는 'Only the good die young' 입니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일찍 죽고, 좋은 일들은 이미 끝나 버린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똑같의 제목의 노래를 빌리 조엘도 불렀지만 아무래도 이 노래의 분위기가 훨씬 어울리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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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물론 성공한 드라마들은 다 겪는 일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악착같아지는 PPL의 러시가 시청자들에게는 상당히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작진의 변명은 '이렇게 해서라도 수지를 맞추지 않으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꽃보다 남자'가 생각보다 회당 제작비도 많이 들었더군요. 자세한 수지는 준비가 되면 나중에 다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회는 다들 보셨습니까? 25회는 그냥 '시리즈를 끝내기 위한 60분'에 충실한 의미였군요. 후반부(13회 이후) 들어 윤지후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던 구준표는 마지막회를 맞아 윤지후를 제치고 다시 주인공의 위용을 회복했습니다.

혹시 못보신 분들을 위해 살짝 결말 설명부터 잠시 하자면, 구준표는 금잔디의 졸업식날 미국으로 함께 유학가자고 청하지만 잔디는 한국에서 의대 입학을 위해 더 공부하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4년 뒤, 준표는 의젓한 차세대 경영자가 되어 돌아오고, 3수끝에 의대에 들어간 잔디가 봉사활동을 간 지방으로 헬기를 타고 찾아갑니다. 스웨덴으로 유학갔던 소이정도 돌아오고, 윤지후는 의대 상급생으로 여전히 잔디 곁에 있습니다. 불쌍한 송우빈만 4년 뒤에도 뭘 하는지 전혀 설명이 나오질 않는군요. 아무튼 네 남자와 잔디가 해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멋진 엔딩 장면을 연출합니다.

다른 결말을 기대한 분들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제목이 '꽃보다 남자'인 이상 츠쿠시는 츠카사와 맺어지는게 순리죠. 변화를 준답시고 결말을 바꿨다가는 열혈 시청자 몇명쯤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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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드라마의 성격에 맞는 결산을 뭘로 할까 생각하다가, 혜택받은 연기자들을 지난번에 했으니 이번엔 혜택받은 사물 위주로 정리를 해 볼까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의 꽃은 찬란한 PPL이었죠.

물론 이 순위는 전적으로 제가 개인적인 편견으로 추린 겁니다. 다른 분들은 각자 자기 생각으로 순위를 매겨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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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는 뭐니뭐니해도 애니콜 햅틱팝입니다. 극중에서 '구준표가 쓰는 전화기'로 소문났지만 사실은 F4 모두가 쓰는 전화기였죠. 특히 구준표가 사용하던 일명 추파춥스폰, 즉 색동무늬 커버 버전이 대단한 인기를 모았습니다.

사실 이 전화기는 이민호에겐 영욕이 함께 어린 상징입니다. 시청자들로부터 일찌감치 '구준표폰'이라는 영예의 명칭을 얻었지만 정작 이 전화기 CF의 메인 모델은 김현중에게 양보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LG텔레콤과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은 당사자들에게도 '광고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됐을 듯 합니다.

그나자나 이 전화기 사 달라는 자녀들 때문에 고민하시는 부모님들이 꽤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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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는 배스킨 라빈스와 본죽의 공동 수상으로 하겠습니다. 잔디와 가을의 아르바이트 장소로 늘 등장하던 '봄죽'이 노출로는 단연 앞섰다고 볼 수 있겠지만, 수시로 등장해 신제품 아이스크림을 먹는 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준 배스킨 라빈스의 수혜도 만만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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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부터는 배경이 된 장소들이 대거 등장할텐데, 아무래도 장소라면 남산 N타워만큼 혜택을 본 곳도 없을 듯 합니다. 일단 서울 시내에 있는데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서울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강조됐으니 관광객 유치에도 꽤나 큰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꽃보다 남자'가 한류 드라마로도 뜬다면 곧 남산 케이블카 정거장 앞에서 두 손을 꼭 모으고 줄서 있는 일본 아줌마들을 보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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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는 하얏트 호텔입니다. 각종 객실과 볼룸이 수시로 등장했지만 아마도 서울 남산 하얏트에서 가장 멋진 장소로 꼽을 수 있는 수영장과 풀사이드가 집중적으로 노출된 점이 큰 소득이라 하겠습니다.

이 수영장은 겨울에는 스케이트 링크로 변신해 수많은 남녀들에게 역사가 이뤄지는 장소를 제공해왔습니다. 마지막회의 풀사이드 파티 신도 괜찮았지만 아마 내년 겨울이면 '그 스케이트 신을 찍은 곳'을 찾아 오는 사람들이 제법 될 것 같습니다. 워낙 비싸서 만만치 않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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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는 마카오 베네시안 호텔. 사실 드라마 노출의 정도는 훨씬 심했지만 드라마를 광고 영상으로 삼았다는 반발이 드러나며 마케팅 효과가 오히려 감소한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드라마라면 사람이 주인공이어야지, 건물이나 배경이 주인공이어서는 안 됩니다. 돈 들여 드라마에 협찬을 제공한 쪽에서는 가능한 한 자신들의 시설물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좋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적당한 선을 지키는게 훨씬 낫습니다. 공연히 반감을 불러 일으켜 봐야 득 될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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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가 말 많은 누벨 칼레도니아. 초기에 잔디가 준표에서 지후로 미끄러져가는 중요한 부분이 촬영된 곳인데 본 드라마의 촬영 이전이었으므로 배우들이 꽤나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아시다시피 누벨 칼레도니아는 신혼 여행 장소로 꽤나 뜨고 있는 장소입니다. 하트섬을 비롯해 이 섬의 풍불과 리조트 풍경이 자세히 소개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역시 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살짝 눈썹을 찌푸리게 됩니다. 또 배우들 몇몇이 "보기보단 참 개발이 덜 됐더라"는 식으로 현지 촬영중의 고생담을 털어놔 한때 필화 사건으로 번질 뻔 한 일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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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는 농심...을 꼽아야 할 듯 합니다. 유난히 라면을 좋아하는 준표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농심은 초기 스폰서가 아니었죠. 그래서 '스폰서 유치를 위한 의도적인 장면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는데 제작진의 해명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는군요.

아무튼 라면 먹는 장면은 많이 봤건만 어느 라면인지를 구별해서 생각나지 않으니 라면 PPL은 그리 큰 성공이라고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그냥 김현중의 라면 CF를 더 자주 방송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게 나을 듯. (그런데 정작 '꽃보다 남자' 방송 때에는 이들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CF가 그리 많이 방송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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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는 로터스. 스포츠카의 명성이 국내에서까지 그리 높지 않던 로터스는 세련된 디자인을 통해 젊은이들의 드림카로 꼽힐만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구준표가 몰고 다니던 파란색 유로파 모델과 소이정이 타던 주황색 엑시지 모델이 강한 인상을 남겼죠. (여기서 또 불쌍하게도 송우빈의 차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윤지후가 타던 모터사이클은 엠비 아구스타라는 명품이라는데, 특이하게도 모델명이 F4라는군요. 잘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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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가 아쉬운 빈폴. 물론 초기에만 해도 프레피 룩이라는 이 드라마의 간판 스타일과 함께 대단한 호응을 얻은 듯 합니다만, 뒤로 갈수록 쏟아지는 명품 러시 속에서 좀 빛을 잃었다는 느낌입니다. 재벌가 자제들의 의상이라 워낙 화려했던 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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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 봤던 구준표의 이 트레이닝(추리닝이라고 해야 느낌이 나는데..) 복도 사실은 대단한 명품이라는군요. 프레드 페리라는 브랜드인데 국내에는 정식 수입도 되지 않은 브랜드랍니다.





정식 순위는 이 정도로 해 두고... 이밖에도 수많은 협찬사들이 있지만 다 기억이 나질 않아 여기서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아차상이라면 '부산오뎅연합회' 정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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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단일 브랜드였다면 대단한 성공을 누렸을텐데요. 아깝습니다. 날씨가 아직도 쌀쌀하던데, 혹시 여자친구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한번에 오뎅 20개씩 먹는 젊은이들 덕분에 포장마차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으로 '꽃남의 유산'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또 어떤 브랜드가 꽃남의 수혜자로 우뚝 설지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기억 못한 브랜드가 있으면 추가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그나자나 다음주 월,화요일부터 심각한 금단 증상에 시달릴 분들이 꽤 있겠군요. 뭐 떠나 보낼 건 떠나 보내야죠.






p.s. 물론 아무리 상품들이 크게 성공했다 해도 가장 성공한 건 이 드라마에 출연한 꽃미남 꽃미녀들이죠. 과연 누가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큰 성장을 이뤘을까요. 그건 지난번에 따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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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남긴 여러가지 유산들 중 하나는 프레피 룩의 유행입니다. 사실 새삼스러운 유행이랄 것도 없을 듯 합니다. 프레피 룩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옥스포드 스타일의 버튼 다운 셔츠, 브이넥 스웨터, 치노 팬츠 등은 이미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학생복의 주요 요소로 여겨졌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남자' 이후에는 여기에 자켓이며 타이 등의 요소가 첨가되면서 좀 더 연령대가 확대되고, 프레피 룩이라는 말이 미국 동부의 귀족(?) 가문 청년들의 패션인 양 지나치게 미화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프레피'라는 말이 그리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말 만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프레피 룩의 대유행에는 뒤에는 한번 쯤 생각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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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프레피(Preppy, Preppie)란 동부의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고교, 즉 프렙 스쿨(Prep School: Preparatory School)의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학교들이 '예비 학교'라고 불리는 것은 재학생들이 대학 진학, 특히 동부의 아이비리그 명문교들을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반 고교와는 차별화된 교육이 진행되고, 기숙사 제도를 통해 운영되는 학교도 많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미드 '가십 걸 Gossip Girl'에 나오는 학교도 당연히 프렙 스쿨이죠. 물론 더욱 당연하게, 이 학교 학생들의 패션 역시 프레피 룩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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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프레피 룩의 물결을 처음으로 일으킨 작품은 '꽃보다 남자'나 '가십 걸'이 아닙니다. 바로 1989년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죠. 엄격한 프렙 스쿨에서 입시와 진학 이외의 인생을 가르치다가 좌절하고 마는 키팅 선생님의 감동적인 일화를 담은 이 영화가 공개된 뒤, 10년 사이 한국 중-고생의 겨울 외투는 모두 더플 코트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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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원을 따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이 프레피라는 말은 40대 이상에게 더욱 친숙한 말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10대나 20대들은 '그런 영화가 있었나' 싶을 고전 로맨틱 무비 '러브 스토리'에서 이 말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1970년작인 '러브 스토리'는 WASP 명문가 출신의 하버드 법대생 올리버 배릿 4세(라이언 오닐)와 이탈리아계(미국 사회의 백인 중에서는 가장 낮은 레벨입니다) 래드클리프 여대생 제니퍼 캐발레리(알리 맥그로)의 사랑을 다룬 작품입니다. 당시의 한국인들에게는 '미국 사회에서도 빈부격차가 있고,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힘들어진다'는 충격(^^)을 준 작품이라고도 전해집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알리 맥그로는 라이언 오닐을 계속 '프레피'라고 부르는데 그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는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라이언 오닐의 독백이 끝나고, 바로 다음 장면입니다.)



하버드 도서관을 두고 래드클리프 도서관에 책 한권을 빌리러 온 올리버에게 제니퍼는 "500만권의 장서량을 자랑하는 니네 도서관을 두고 왜 우리 도서관에 왔느냐"며 쌀쌀맞게 대하는데, 말끝마다 올리버를 '프레피'라고 부르며 경우도 모르는 바보 취급을 합니다.

올리버: '***'라는 책 있나요?
제니퍼: 당신네 도서관이 있을텐데요. 프레피.
올리버: 질문에 대답하세요.
제니퍼: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요.
올리버: 우리도 래드클리프 도서관을 쓸 권리가 있어요.
제니퍼: 내가 말하는건 규정이 아니라 도의 문제에요, 프레피. 그쪽엔 500만권이나 있잖아요? 우리는 몇천권 뿐인데.
올리버: 내가 원하는 건 한 권 뿐이라구요. 제길, 내일 시험이 있어요!
제니퍼: 입 조심해요, 프레피.

Oliver Barrett IV: Do you have this book?
Jennifer Cavalieri:  You have your own library. Preppy
Oliver Barrett IV: Answer my question.
Jennifer Cavalieri:  Answer mine first.
Oliver Barrett IV: We're allowed to use the Radcliffe library.
Jennifer Cavalieri: I'm not talking legality, Preppy. I'm talking ethics. Harvard's got five million books, Radcliffe a few thousand.
Oliver Barrett IV: I only want one. I've got an hour exam tomorrow, damn it!
Jennifer Cavalieri: Please watch your profanity, preppy.


그러자 발끈한 올리버는 "대체 왜 날 자꾸 프레피라고 부르냐"고 반항합니다.

올리버: 뭘 보고 내가 프렙 스쿨에 다녔을 거라고 확신하는 거죠?
제니퍼: 당신은 부자에다 멍청하게 생겼거든요.
올리버: 하지만 사실은 난 가난한 집의 수재인데.
제니퍼: 하. 내가 바로 가난한 집의 수재에요.
올리버: 당신이 수재라는 근거라도 있어요?
제니퍼: 당신같은 남자랑 커피 마시러 가지 않으니까요.
올리버: (기가 막힌다) 하지만 난 당신이랑 커피 마시러 가자고 얘기하지도 않잖아요.
제니퍼: 그러니까 멍청하다는거죠.

Oliver Barrett IV: What makes you so sure I went to prep school?
Jennifer Cavalieri: You look stupid and rich.
Oliver Barrett IV: Well, Actually I'm smart and poor.
Jennifer Cavalieri: *I'm* smart and poor.
Oliver Barrett IV: what makes you so smart?
Jennifer Cavalieri: I wouldn't go out for coffee with you that's what.
Oliver Barrett IV: what if I wasn't even gonna ask you to go out for coffee with me?
Jennifer Cavalieri:l that's what makes you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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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음 장면은 당연히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러 간 장면이죠.

아무튼 이상의 내용에서도 볼 수 있듯, '프레피'라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고 우기는 부잣집 도령'이라는 식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물론 늘 이런 뜻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 말이 충분히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됐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실 '프레피'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고 이 장면을 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장면입니다. 심지어 TV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를 겁니다. 제가 TV에서 볼 때 이 장면의 '프레피'는 '촌뜨기'라고 더빙이 돼 있더군요. 물론 의미가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더빙입니다.)

그러니 '프레피처럼 입는다'는게 그리 좋은 의미만은 아니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옷차림은 말쑥하고 깔끔하지만 속으론 야무지지 못하고 멍청하다는 뜻도 될 수가 있으니까요. 물론 어떻게 해서든 겉모습만큼은 '강남 도련님, 아가씨 처럼 보이는' 것이 이 시대의 목표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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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어찌 하다 보니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 선생의 부음을 모르고 지나칠 뻔 했군요. 1924년 9월13일 생이니 향년 85세. 30일 미국 LA의 자택에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솔직히 이분의 전성기가 1980년대 이전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관객들은 모리스 자르라는 이름이 그리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엔니오 모리코네가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 비하면 모리스 자르의 시대는 너무 일찍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모리스 자르의 시대는 스케일 큰 '에픽' 무비의 시대와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장 데이비드 린으로 대표되는, 시대착오적으로 큰 영화들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작곡에의 의욕을 잃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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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아무래도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입니다.

사막과 인간, 역사와 인간, 엄청난 규모와 스토리를 엄청난 배우들과 함께 엄청난 화면으로 잡아 넣은 이 영화(제가 계속 '엄청나다'는 말을 남발하고 있는건 그보다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어서입니다. 21세기의 영화 기술로 이보다 방대하게 보이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 영화만큼 오만하고 방대한 구상을 영상에 담을 사람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에서 모리스 자르의 웅장한 음악은 관객들 KO시키는데 역시 큰 몫을 합니다.

1992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대한 헌정 공연에서 직접 지휘봉을 잡은 자르의 모습입니다.




사실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대단했지만, 같은 해의 다른 영화에서도 자르는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지상최대의 작전 The Longest Day'. 역시 이 영화보다 더 규모가 커 보이는 영화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 영화보다 더 큰 규모의 대작은 앞으로도 다시 볼 수 없을 겁니다. 그 영화의 음악 역시 자르의 작품입니다.



1980년대. 자르는 '인도로 가는 길'로 또 한번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에 이은 세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나 이 음악은 그리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공로상의 성격이랄까요.

오히려 1980년대의 자르 옹은 아들 장 미셀 자르의 영향인지,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소품에서 잔잔한 재미를 봅니다. 자르 옹이 선택한 영화들 중에 상업적으로 크게 히트한 영화들이 많지 않아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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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 가운데 '사랑과 영혼 Ghost'같은 작품도 있긴 합니다. 그가 작곡한 메인 테마보다 'Unchained Melody'가 훨씬 더 기억되고 있어서 그렇지.)

1980년대의 자르의 작품 중 저는 이 곡에 유난히 애정이 갑니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에서, 아미쉬 마을에 간 포드가 헛간 짓는 행사를 돕는 장면에서 잔잔하게 울려퍼지던 곡이죠. Raising Barn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영화상으로는 켈리 맥길리스가 예쁘게 보이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대사는 더빙이지만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음악.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역시 자르 선생의 입김을 받았습니다. 음악으로는 크게 기억나지 않을 작품이긴 합니다만,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할 이 마지막 장면에 잔잔하게 깔리는 곡이 바로 자르 선생의 곡이죠.

'하우스 M.D'의 윌슨 선생의 앳된 모습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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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장 미셀 자르도 1980년대에는 반젤리스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전자음악 아티스트였는데 요즘은 영 조용하군요. 요즘은 어디서 이런 음악이 나오면 촌스럽다고 질색을 할 사람들 천지지만, 한때는 이 음악이야말로 첨단 유행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훈: 어느 시대든 최첨단으로 여겨지는 것일수록 빨리 퇴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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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곡은 '닥터 지바고'.

'라라의 테마'입니다. 역시 데이비드 린 헌정 공연때의 실황.


 
이 곡을 빼놓으면 자르 선생에 대한 결례가 되겠죠. 그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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