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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교황청이 폭파 위협을 받는 동안 진짜 교황까지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영화 '천사와 악마'가 개봉하는 주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중동 지역을 순방하면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유태인들을 하나로 묶는 '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물론 현 교황은 지금까지 입만 열면 사고를 쳐 온 터라 이번 중동 방문을 놓고도 우려가 엇갈렸습니다. 심지어 '교황은 반유태주의자다' '지금이 십자군 전쟁 때인 줄 아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적이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번 중동 방문은 자칫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별 무리 없는 순방을 마쳤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언론들은 "끝내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독일의 책임을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고도 보도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히틀러 유겐트라고 불리는 나치 청년단체의 활동 경력이 있는 것으로 꼽히는 인물인 만큼, 더욱 그런 언급이 필요했겠죠.

사실 평소 여기로 가져오던 글들에 비해 좀 무겁습니다. 어쩔까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아카이브의 의미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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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시대

14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중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톨릭에 의해 탄압당한 중세 과학자들의 후손들이 바티칸을 상대로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의 반성을 은근히 촉구하는 이 영화가 전 세계에 공개될 무렵 진짜 교황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방문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에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스라엘 측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고, 베들레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국가 설립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경의를 표한 셈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은 천주교 교단의 입장에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교황청은 이미 1965년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 즉 노스트라 아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라는 뜻의 라틴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교·힌두교·이슬람교·불교 등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아 배격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그 정신에 역행하는 보수적인 행보로 이미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추기경이던 1990년에는 과학자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지목했던 당시 교황청의 조치를 지지해 물의를 빚었고, 2006년엔 이슬람 비하 발언으로 아랍 국가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더욱이 올 연초엔 공공연히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 1988년 파문당한 네 성직자를 복권시켜 국제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그런 베네딕토 16세인 만큼 이번 방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긴장감이 흘렀지만 교황은 15일 별 무리 없이 일정을 마쳤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유럽 각국 군주들에게 “보병이든 기사든, 가난뱅이든 부자든,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악의 종족을 무찌르라”고 소리 높여 외친 뒤로 수백 년간 중동은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피로 물들었다. 그 성지에서 900여 년 뒤의 후임 교황이 평화를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 아직 존중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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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스트라 아에타테, 즉 '우리 시대'의 정신이란 간단히 말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 사이의 반목이나 대화의 단절, 상호 배타적인 입장의 철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화 발전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 문서가 2221대 81이라는 표차로 채택된 것은 인류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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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아무리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해도, 그 전임자들을 두루두루 훑어보면 꽤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중세의 교황들이 바라보던 유럽의 군주들은 비록 기독교도라고는 하나 사랑의 실천보다는 전투의 영광을 더 높이 사는 인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르반 2세가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구원 요청을 받고 1095년 십자군 파병을 제안한 동기중의 하나가 "같은 기독교도 끼리의 살육을 좀 막아 보자는" 것이기도 했다니 말 다 했죠. 물론 이런 동기에도 불구하고 뒷날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꾀임에 빠져 당시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격분했고 책임자들을 파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어차피 성지로 가서 이교도와의 싸움에 참가하면 다시 사면해줘야 할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의 무수한 교황들 역시 평화 유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에도 2차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피우 12세는 "은근히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지지했다"는 음모설에 시달리기도 했죠. 물론 이 음모설은 거의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유력한 유태인 단체들은 피우 12세의 노력이 없었으면 유태인 희생자들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의 수호자보다는 분란의 기원으로 더 잘 어울렸던 교황이 중동 평화를 위해, 타 종교인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저 글을 쓰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동영상이었습니다.



보고 나면 참 씁쓸합니다. 대체 언제쯤 이런 모습을 안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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