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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란 영화가 개봉하니 링컨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조명해 보자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부터 '이달의 문화인물'이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매거진 M'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이 '문화인물'이긴 합니다만, 정작 내용은 '문화 속에 비쳐 그려진 유명인물의 실상' 쪽에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쓰려니 너무 길어서 아마도 편집 측에서 그냥 '문화 인물'이라고 뭉뚱그려 묘사한 듯 합니다.^

 

아무튼 책에 나온 순서와는 달리 블로그에는 '링컨' 편부터 소개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약간 타이밍이 안 맞기 때문이죠. 물론 그 사람들도 이쪽으로 모셔올 계획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1865 1, 에이브러햄 링컨은 어느 전장에서 말단 병사들과 격의 없이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 병사의 입에서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가 흘러 나오자 병사들은 앞다퉈 다음 문장을 줄줄 외운다. 소집 나팔이 울리고, 부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흑인 병사도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의 첫 장면.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게티스버그 연설은 1863 11월의 일이니 시간적으론 가능했겠지만 역사가들은 고개를 흔든다. 거의 모든 미국인이 이 연설문을 줄줄 외우게 된 건 링컨이 죽고 나서도 한참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니까 ’.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2.12~1865.4.15)은 가장 유명한 지구인 중 한 사람이다. 그 지명도에 걸맞게 대중 문화 속에서도 넘치는 사랑을 받아왔다. 수많은 전기 영화가 일찌감치 만들어졌고(결정판은 존 포드의 1939년작 젊은 링컨이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류의 영화에선 미국을 대표하는 위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엔 뱀파이어(‘링컨:뱀파이어 헌터’)나 좀비(‘링컨 VS 좀비’)와 싸우는 히어로로 변신하기도 했다.

 

대중의 속성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 민중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삼국지의 영웅 관우는 사후 관성대제라는 이름의 신으로 승격됐고, 천년 넘게 악귀 퇴치와 재복 기원은 물론 무좀 치료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대중의 친근감이 전쟁의 승리나 노예 해방 같은 거대한 업적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통나무집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가난, 독학으로 변호사를 거쳐 대통령에 이른 입지전, 비극적인 최후 까지 성공 신화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여기에 유머 감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패션에 둔감한 촌사람의 이미지를 스스로 비웃는 자학 개그의 달인이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에도 그의 유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날 국무장관 에드먼드 스탠튼이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이 전선에서 늘 술에 취해 있다고 험담을 했다. 링컨의 대답. “그 양반이 마시는 위스키 상표를 좀 알아 오게.” “왜요?” “다른 장군들에게도 돌리려고.”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술 좀 마시는게 대수냐는 식이다.

 

고지식한 스탠튼은 이런 그가 못마땅했다. “각하, 왜 늘 농담만 하십니까.” 대답은 그것도 안 하면 난 당장 죽네.” 링컨의 가족을 살펴보면 이런 심정도 이해가 간다. 네 아이 중 셋이 미성년일 때 죽었고 장남 로버트만 성인이 됐다(영화에서 조셉 고든 래빗이 연기한 로버트는 뒷날 미국 육군 장관을 지냈다). 아내 메리 토드는 평생 강한 집착과 낭비벽으로 링컨을 괴롭혔고, 링컨 사후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링컨 본인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 속 링컨은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미국 영토 내에서 모든 노예 제도를 금지하는수정헌법 13조의 의회 통과를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 역사가들로부터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목이다. ‘노예 해방은 영화 링컨의 시점 보다 2년 전(1863 1)에 링컨 자신에 의해 이미 실현됐고, 수정헌법 13조의 통과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 영화는 영화다. 그리고 스필버그가 역설하고 있는 것은 링컨 같은 인물 조차도 목적 달성을 위해선 다소 치사해 보이는 정치적 행위를 불사해야 했다는 점이다. 측근을 이용해 은밀하게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의원들에게 남부 연합의 평화 사절단의 방문 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뇌물까지 사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면서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아마도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 과정에 무관심한 이상주의자들, 타이핑만 하면 저절로 멋진 나라가 만들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교육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P.S. 많은 한국인들은 링컨이 아주 먼 옛날, 아무 상관 없는 먼 나라에서 위대한 일을 하다가 비명에 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시대에 이미 우리는 미국과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다. 링컨이 사망하고 16개월 뒤인 1866 8, 대동강 입구에 제너럴 셔먼 호라는 미국 상선이 나타난다. 이 배는 조선 관민과의 시비 끝에 불태워지는 운명을 맞는다.

 

배 이름의 셔먼 장군은 바로 링컨을 도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윌리엄 T 셔먼 장군이다. 미국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1871년 강화도로 함대를 보낸다. 이것이 신미양요. 만약 링컨이 암살당하지 않고 3선에 성공했다면, 위대한 대통령 링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을 침략한 대통령으로 기록됐을 수도 있었다. 참고로 신미양요를 일으킨 대통령은 위에도 나오는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였다. (끝)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에서 링컨은 세종대왕이고, 태종무열왕이고, 광개토대왕입니다. 'For the people, by the people, of the people'의 게티스버스 연설은 미국 초등학생들도 외우는 고전이고, 링컨 메모리얼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대표하는 조형물 중 하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실 그렇게 옛날 사람도 아닙니다. 링컨에게 "여자들은 턱수염 기른 남자를 좋아하는데 아저씨도 길러보면 어때요?"라는 편지를 보내 턱수염을 기르게 한 전설의 소녀 그레이스 베델(Grace Bedell)은 1936년에 죽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생생한 인물일 수 밖에요.

 

링컨의 농담은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만도 수백가지지만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때 그렇게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이 스스로의 용모에 대한 자학 개그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

 

"내가 시골 살 때 어떤 놈이 총을 들고 눈을 부라리면서 술집에 들어와 '여기 나보다 못생긴 놈이 있으면 쏴 죽여 버리겠어!'라고 소리치며 나를 딱 바라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보다 못생겼다면 차라리 내가 내 머리를 쏘겠다!' 라고."

 

네. 딱 웃기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의 개그가 링컨의 특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링컨을 목격한 사람의 기록. "코트는 흉측하게 길고, 소매는 너무 짧고, 바지 한 쪽은 괜찮은데 다른 한 쪽은 양말에서 적어도 2인치는 모자라는 위치까지밖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극악의 패션 센스입니다.

 

 

 

 

영화 '링컨'은 좀 지루하다는 점만 빼면 매우 훌륭한 영화입니다. 특히 영화를 완성도보다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숭고하고 거룩한 메시지'에 따라 평가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는 극찬을 받아도 부족할 영화죠. 이런 영화를 따로 떼어 성화(聖畵) 정도로 구분해야 할지도.

다만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예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1864년 11월, 링컨은 미국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지 B 맥클렐런(McClellan)에 압승을 거두고 연임에 성공합니다(물론 우리가 흔히 링컨을 16대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은 재선을 감안하지 않고 사람 머릿수 대로 센 것입니다). '남부의 반란'에 대한 승리는 결정적이었고, 모든 국민 여론은 링컨에 대한 절대 지지로 나타났습니다. 한마디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어떤 정책이든 통과시킬 수 있는 상황.

 

(영화에서는) 이 시기의 링컨은 이미 노예해방 선언(1863.1)을 해 놓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남부 각 주가 법원을 앞세워 이 노예 해방 조치에 대한 위헌 심판같은 것을 냈을 때, 소위 '법적인 판단'에 의해 이미 해방된 노예들이 다시 농장주들의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개헌을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겠다고 다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수정헌법 13조'. 내용은 아주 짧고 간단합니다.

 

Section 1.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shall exist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lace subject to their jurisdiction.

Section 2. Congress shall have power to enforce this article by appropriate legislation

 

'그러니까 미국의 주권이 닿는 지역에서 모든 노예 제도와 비 자발적 노동 강요는,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닌 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헌법으로 규정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듯 보이는 훌륭한 정책에도 반발은 만만찮았고, 링컨은 이 수정헌법의 의회 통과를 위해 갖가지 꼼수를 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남부에서는 때마침 평화 사절을 보냅니다. 북부의 입장은 '항복'이지만 남부에서는 끝까지 '평화 협상'을 요구하고, 즉각적인 항복이 있기 위해서는 '수정헌법의 통과'를 없던 일로 해 달라는 조건이 첨부됩니다.

 

여기서 링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죠. 며칠이라도 전쟁을 더 빨리 끝내 무고한 병사들의 희생을 막을 것이냐, 아니면 두고 두고 역사에 남을 옳은 일을 위해 얼마간 더 희생을 감수할 것이냐.

 

(이것이 영화 '링컨'의 내용. 이런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분들은 도대체 저게 뭔 소리냐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가들은 영화 '링컨'의 이런 내용들이 꽤나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답니다. 의회 통과를 위한 노력은 꽤 사실적인 것 같으나 일단 수정헌법 자체가 저 시점에선 그리 심각한 얘기가 아니었고, 따라서 남부 평화협상단의 요구 같은 것도 당시로선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는 주장들.) 

 

하지만 그런 요소들만 극복하면 대단히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당연하지. 누가 만든 영환데). 그리고 연기의 신(한때 연애의 신이기도 했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소름이 쪽쪽 끼칩니다. 톰 행크스가 해내지 못한 남우주연상 3회 수상이 루이스에게 돌아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링컨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위에서 언급한 존 포드의 영화 '영 링컨(바로 위 사진. 헨리 폰다)' 까지만 해도 링컨의 아내  메리 토드 역시 위대한 대통령을 잘 보필한 위대한 퍼스트레이디 정도로 미화됐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본래 명문가의 딸인 메리 토드는 오로지 '영부인'이 되기 위해 링컨과 결혼했고, 링컨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채찍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병이 발병하고, 장남 로버트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 로버트도 '링컨의 아들'이란 후광을 업고 공화당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정치인으로 손꼽힌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 '링컨 아들이 왜 저 모양이야?'를 넘지 못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무튼 영화 '링컨'이 주는 메시지는 자명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숭고한 이상을 관철시킬 수는 없다는 것. 일찌기 정조의 한글 서간이 공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반대파인 노론 대신들과 주고 받은 서신에서 때로는 욕을 하고, 때로는 어르고 협박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인간적인 풍모'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죠.

 

위대한 성군으로 불리는 정조도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늘 입으로 도학을 주장하며 높은 이념으로 아랫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제대로 된 정치란, 곁에서 보고 '이건 잘 했고, 이건 잘못 했고' 하는 식으로 훈수나 늘어놓는 평론가들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영화는 훌륭하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왔던 제너럴 셔먼 호의 '제네럴 셔먼'이 그 셔먼 장군이라는 건 쓴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링컨이 3선만 했다면 '조선의 침략자 링컨'이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여담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제너럴 셔먼 호 격침 사건을 주도했다는 우상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P.S. 마지막 사진은 신미양요 때 미군에 의해 탈취된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帥字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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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줄곧 궁금해하긴 했지만, 3월13일 이전까지는 아무도 미리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극도로 커져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의 팬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분은 제작에 있어선 지독한 완벽주의자입니다. 방마다 놓여 있는 소품 하나, 쓰레기통에서 나오는 영수증 하나, 약 봉지에 쓰인 이름이나 주소 하나 허술하게 촬영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윤제문' 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만들어진 1회를 보고 난 사람들은 일제히 납득했습니다. 사실 3월13일 공개된 분량은 정규 1회를 넘어 2부 앞부분까지 포함되는, 약 80분 가량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으론 긴 시간이었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대단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걸작이다.'

 

 

 

3월13일 공개한 1회 선공개 영상은 여기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1회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계의 끝' 첫회는 원양어선 문양호의 마지막 생존자 기영(김용민)이 고무 보트에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장쾌한 헬리콥터 샷으로 시작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 첫 출근한 나현(장경아). 첫날부터 팀원들은 나현을 놀리기 위해 '셜록'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주헌(윤제문)에게 나현이 뭘 타고 왔는지, 뭘 먹었는지를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정확하게 다 맞춰 내는 주헌을 보고 놀라는 나현.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고, 질병관리본부의 수뇌부 회의가 열립니다. 보름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괴 바이러스에는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첫 희생자의 직업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취미는 사진 촬영. 다각도로 수색에 들어가지만 발병 원인에 대한 단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첫번째 희생자를 이송한 구급요원도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희생자의 집에 누군가 이틀간 머물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 인물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한 주헌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됩니다.

 

한편 '그 인물'인 기영도 자신이 들렀다 간 흔적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바로 자신이 죽음의 존재라는 것을 안 기영은 자수를 생각해 보지만, 생체 실험 재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디론가 달아나려 합니다. 그래도 2년간 원양어선 생활을 기다려 준 여자친구는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세계의 끝'의 전제가 되는 이야기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라는 의학적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그 사람은 감염되든가, 아니면 자연치유되든가 할 겁니다. 그런데 몸 속에 그 병원체가 우글거리는데도 그 사람은 멀쩡하고, 그 사람과 접촉한 다른 사람은 병에 걸리는 존재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장티푸스가 유행하던 20세기 초,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메리 말론이라는 여성에게서 이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무려 51명이 장티푸스로 사망했지만, 정작 그녀는 너무나 멀쩡했습니다. 1907년 마침내 관계 당국이 그녀의 정체를 알고 조사를 시작했죠.

 

 

 

 

'세계의 끝'은 몸서리쳐지는 재난 드라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주헌을 비롯한 조사반원들은 목숨을 걸고 질병과의 전면전을 벌이지만, 사실 이 병난의 문제는 바로 장티푸스 메리와 같은 존재인 기영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기영이 치료약 개발에 협조한다면 상황은 훨씬 좋아질 수 있겠지만, 자신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안 다음에도 기영은 어디론가 달아날 생각만을 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이 다 죽었어"라고 괴로워하면서도 그 다음의 선택은 "나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거야"라는 식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원초적인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되는 건 싫어' 이면서 동시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죽어도 알게 뭐냐' 인 겁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기영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과연 나는 어떤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영과 여자친구도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왕년의 명작 '여명의 눈동자'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철조망 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안판석 감독은 윤제문, 장현성, 박혁권 등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기자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낯설 뿐이지 다들 연극계에서는 이미 연기력이 입증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 연출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의 벽을 가능한 한 엷게 하기 위해 이런 캐스팅을 합니다. 다큐멘터리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죠.

 

제목과 배우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http://fivecard.joins.com/1106

 

안 감독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인생에 갑작스레 던져진 재난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현주소를 파악하게 된다. '아내의 자격'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에 '불륜'이라는 재앙이 밀려오면서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던 가족이 일순 붕괴된다. '세계의 끝'도 마찬가지"라는 요지의 말을 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재난 드라마이면서 휴먼드라마인 '세계의 끝', 만듦새에서는 이미 동급 최강이라는 점이 입증됐습니다. 제작진도 '옥의 티 0'라는 자신감을 내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매주 주말 밤마다, 온 세계가 종말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음산한 체험이 기다릴 겁니다. 3월16일(토) 오후 9시55분 첫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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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은 아직 그리 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끝'이라고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소설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기억하실 겁니다(초기엔 '일각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죠).

 

이 소설의 도입부에는 너무나 유명한 노래, 스키터 데이비스의 'The End of the World'의 가사가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제목은 귀에 익지 않아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노래? 하실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가사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Why does the sun go on shiny

Why does the sea rush to shore

Don't they know it's the end of the world

Cause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이제 세상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녀풍의 노래입니다. 스키터 데이비스의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전 세계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들을 수 있는 노래죠.

 

그런데 그 노래를 이렇게 번역해 놓으면 느낌이 영 다르더라는 겁니다.

 

왜 태양은 아직도 반짝이는 것일까

왜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 것일까.

그들은 모르는 걸까,

이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어떻습니까. 스산한 느낌이 감돌지 않으시나요?

 

이 제목은 바로 이런 느낌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의 어느날. 서울 시내에 정체불명의 괴질이 발생합니다. 치사율은 100%. 관계 당국에 비상이 걸리고 TF가 발족하지만 감염원은 오리무중. 치열한 추적 끝에 원양어선을 타던 복학생이 최초의 보균자로 파악되지만 그의 소재는 쉽게 파악되지 않습니다. 괴 바이러스는 현미경으로 보면 달처럼 보이기 때문에 '문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주인공 강주헌은 헌병 장교 출신이란 독특한 경력의 질병관리본부 역학 조사과장. 치열한 조사 끝에 감염원을 찾아내지만, 괴 바이러스의 치료는 그걸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미친 바이러스의 발생 뒤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던 거죠.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1회를 그냥 통으로 보여 드립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물량 규모가 만만찮습니다.

 

일단 맛뵈기부터 보고 싶은 분은 다음 티저 영상을 먼저 보셔도 좋습니다.

 

 

 

 

네. 돈 좀 들었습니다.

 

 

 

 

강주헌 역을 맡은 배우는 윤제문. 의외로 사람들이 이름을 잘 모르는(!) 배우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의 사수 건달 역으로 이 배우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품 조연', '신 스틸러' '이름은 생각 안 나는데 그 왜 연기 죽이는 놈 있잖아' 등으로 명성을 날렸죠.

 

그리고 나서 '뿌리깊은 나무'의 가리온, '더 킹 투 하츠'의 악당 김봉구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그냥 '윤제문' 하면 아직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보단 '가리온'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죠.

 

사실 캐스팅 리스트에는 윤제문보다 잘생긴 배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완벽주의자 안판석 감독님이 이 배우를 콕 찍은 겁니다. 이 친구와 하겠다고. 뭐 거기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거죠.

 

다른 사람들이 아쉬울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전달하는 사람이 지어낸 얘긴지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하얀 거탑'으로 김명민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듯, '세계의 끝'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에 윤제문이 각인될 거라고. 뭐 '하얀 거탑', '아내의 자격'을 만든 양반이 그렇다면 그런 거죠. 누가 감히 토를 달겠습니까.

 

 

 

 

주인공이 윤제문이면 주인공의 파트너인 이나현 역이라도 좀 있어보이는 배우가 뽑히길 기대했지만 전화로 캐스팅 소식을 듣고 "누구?" 라고 한 세번 물어봐야 했습니다. 장경아랍니다. 대체 장경아가 누구야.

 

 

 

 

 

1987년생. 26세. 드라마가 드라마다 보니 위 사진에선 심각하고 초췌한 모습만 보이지만, '여고괴담' 때만 해도 이랬습니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박혁권, 장현성 등 '아내의 자격'을 통해 '안 사단'으로 불리게 된 배우들이 줄줄이 나옵니다. 역시 이 배우들도 저희 회사 근처에선 '김희애 남편'이나 '김희애 시누이 남편'으로 더 유명한 분들이기도 합니다만.^^ (죄송합니다. '아내의 자격'의 여파가 아직 안 가시고 있어서...)

 

 

 

아무튼 아직 쇼킹한 비주얼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배우가 아니라 시체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오가곤 했지만, 밀도 있는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룰 것 같습니다.

 

'세계의 끝' 1회는 JTBC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다음(위에 퍼온 영상)을 통해 선공개됩니다. 미리 보시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규 방송은 16일 오후 9시55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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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포스터나 홍보물을 보면 이 영화를 수입해 흥행시켜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화는 타겟팅이 중요할테지요. 즉 '어떤 사람이 볼 만한 영화다'라는 것이 바로 계산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소수의 영화광들은 일단 스크린에 틀어 주기만 하면 뭐든 보겠다는 마음이 들 지 모르지만 '프린세스 다이어리'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과 '제로 다크 서티' 같은 초절정 드라이 액션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측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랑에 맛(?)간 남자/사랑에 훅(?)간 여자'라는 식의 헤드라인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한 변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가지 쯤 되는 사랑의 오만가지 양상을 비틀고 비틀어 영화를 만들다가 마침내 '둘 다 맛이 간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사랑 이야기를 해 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냥 둘이 그렇게 해서 잘 먹고 잘 살았대(Happily ever after)'를 미덕으로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서 나온 물건 치고는 그 잔향이 만만찮습니다.

 

그야말로 아찔하다고나 할까요. 미리 설레발을 치자면, 아직 3월이지만 제게는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엄마의 도움으로 퇴원하는 팻(브래들리 쿠퍼).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정신 줄을 놓아 버려 입원하는 신세가 됐지만 막상 퇴원하자마자 어떻게 하면 아내를 되찾을까 하는 생각 뿐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 남편과 사별한 뒤, 역시 정신 줄을 놓고 주변 온갖 사람들과 섹스를 해 맛간 여자 취급을 받으며 주위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팻에게 어렴풋이 호감을 갖지만 팻은 티파니 앞에서도 늘 아내 얘기 뿐입니다.

 

 

 

 

분명히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상,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이성적인 행동을 할 리는 없습니다. 쓰레기봉투를 쓰고 조깅을 하고, 농구 유니폼이 정장이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무조건 따라 뛰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독특한 점은, 이 영화 속의 비정상적 인물들이 나름대로는 열심히 생각해서 최선의 방책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팻이며 티파니, 그리고 일종의 스포츠 도박 중독인 팻의 아버지와 그 친구까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미친 듯 행동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최선의 길을 택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는 것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 감정이입까지 가능하게 해 줍니다. 저런 우스꽝스러운 행동 속에, 멀쩡한 남들이 다 하는 고민과 눈물, 밀당과 감정의 폭발이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할리우드의 마법이 한몫을 거듭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팻과 티파니처럼 살짝 맛이 간 사람들은 브래들리 쿠퍼나 제니퍼 로렌스처럼, 1000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장 눈에 띌 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살짝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쓰고 뛰어도 멋지게 보일 만큼 잘 생기고 쭉빵 미인이라면 평가가 달라지는게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타고난 미모와 감독의 지원에 의해 두 배우는 '비호감형 캐릭터'들을 사랑스러운 주인공으로 승화시킵니다. 두 배우 모두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에 팻의 아버지는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수시로 탈출을 시도하는 팻의 병원 동기(?) 대니 역으로 크리스 터커가 나옵니다. 친근감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하나는 잭 니콜슨 주연 '이보다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또 하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드렁크 러브'입니다. 두 편 모두 '예사롭지 않은 사랑'을 담은 영화죠. 특히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는 명대사로 지금껏 기억되는 '이보다...'는 괴상한 행동을 일삼던 작가 잭 니콜슨이 '사랑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아 전 세계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나도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공감을 저절로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에 비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주는 구원의 메시지는 쌍뱡향입니다. 팻과 티파니는 모두 결함이 큰 사람들이지만, 구원은 어느 한 쪽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양쪽이 서로에 대개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이 균등하지는 않지만(어느 순간까지는 굉장히 한쪽이 더 적극적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 뿐만 아니고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서로는 서로의 구원자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낙관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모르셨다구요. 그럴 리가 없지요. 이 영화는 제목부터 그런 뜻인데 말입니다.

 

silver lining은 구름 가장자리의, 밝고 투명하게 보이는 윤곽 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구름이 가리고 있지만 그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죠. 이 말 자체가 '희망'의 상징입니다(물론 영화 속에서도 그 말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playbook은 '계획'이란 뜻이지만 미식축구에서 다양한 공격 포맷을 도식화해서 기록한 '작전집' 정도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포스터 중 하나는 아예 그런 '작전도'를 이용한 비주얼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행복을 찾기 위한 작전집', '행복 찾기 대작전'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다른 이유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 수도 있고, 경제난이 이들의 앞에 암운을 드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라는 물건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끝을 맺어 주죠.

 

전작에서부터 가족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만약 OCD(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사람들(흔히 '일반인'이라고 하죠)이 성취하는 것, 혹은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행복과 성취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이 8점을 노리고, 우승을 노릴 때 5점이면 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도 행복과 만족이 올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해 주고, 1등병이나 경쟁 지상주의에 찌들어가는 현대인(특히 한국인)에게 힐링 무비의 역할을 할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의 치유를 받아들일지는.

 

아무튼, 본래 강추지만,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특히 강추.

 

 

P.S.1. 영화적으론 좀 사족같지만 이런 아버지의 충고는 굉장히 와 닿습니다. 영화의 어느 시점에서 팻의 아버지가 팻에게 티파니를 놓치지 말라고 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Let me tell you, I know you don't want to listen to your father, I didn't listen to mine, and I am telling you you gotta pay attention this time. When life reaches out with a woman like this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m telling you it's a sin if you don't reach back! It'll haunt you the rest of your days like a curse. You're facing a big challenge in your life right now at this very moment, right here. That girl loves you. she really really loves you. I don't know if Nicky(팻의 전처) ever did, but she sure as shit doesn't right now. So don't fuck this up.

 

P.S.2. 좋은 가사. 저는 스티비 원더의 원곡보다 이 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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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신입생의 달입니다. 뭐 학생들이라면 딱 신입생이 아니더라도 신입생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맞는 달이기도 하죠. 직장인들에게는 크게 다를 것 없는 달이지만 말입니다.

 

3월에는 여기저기서 꽤 그럴싸한 문화행사가 펼쳐집니다. 지난달에 비해 매우 풍성해 보입니다. 특히 이번 문화가이드상으로 3월의 테마는 '발레'. 뭐 저도 개인적으로 크게 발레에 관심있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번 달엔 모처럼 저렴한 가격에 고품격 발레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좀 있어서 소개합니다.

 

어쨌든, 뭐든 최대한 가격 배리어를 넘고 보자는 문화가이드 정신.

 

3월분을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3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3월이야. 직장인들은 설 연휴나 스키 휴가가 이미 지나간 꿈이라는 게 안타깝고, 학생들은 뭔가 새 학기의 분주함과 설렘으로 마음이 바쁠 때지. 또 애인 있는 남자들은 314, 화이트데이를 어떻게 넘길까 고민하게 되어 있고, 솔로들은 이런 고민이 마냥 배부른 투정으로 보이는 달이기도 해.

 

사실 지난달에 발렌타인 데이용 스케줄을 소개하지 못해 좀 찜찜했는데, 올해는 314일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공연이 있어. 그것도 갑자기 생겼어.

 

본래 서울시향은 315일에 베토벤의 3중협주곡과 교향곡 7번을 공연할 예정이었어. 이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지. 그런데 표 못 산 분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14일에 추가 공연 스케줄이 생긴 거야.

 

베토벤 교향곡은 전부 9곡인데 그중 3,5,6,9번에는 부제가 있지. 사실 웃자는 얘긴데, 클래식에 별 조예가 없는 사람일수록 곡의 제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그래서 부제가 없는 다섯 교향곡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곡이 바로 7번이야. 개인적으로는 5운명다음으로 대중적이고 매력적인 곡이라고 생각해(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타이틀로 괜히 쓰인 게 아님). 3만원짜리 B석 권장. 단 화이트데이 데이트라면 이날 교통 정체가 심할 테니 시간 잘 맞춰야 할 거야.

 

다음. 3월의 테마 장르는 발레야. 남자들 중엔 발레란 말만 들어도 낯빛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겠지만, 마침 이번 달엔 저렴한 가격에 클래식 발레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두 가지나 있어.

 

하나는 319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물론 이번 시즌 들어 열리는 6차례의 공연 중 세번째지만 이번엔 좀 특별해. 주제가 ‘17세기 말부터 19세기 말까지 클래식 발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 이름도 유명한 백조의 호수라 바야데르를 소개해.

 

백조의 호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생략. 그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인도를 배경으로 한 라 바야데르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클래식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이야. 게다가 국립 발레단은 올해 49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란 게 포인트야. 팬들로선 예술의 전당 공연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하이라이트를 미리 볼 수 있는거지. 해설까지 곁들여서.  2만원.

 

또 하나는 38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물론 비싸. R석은 10만원이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할 필요 없어. 1만원짜리 C(4)도 있으니까 내가 과연 발레를 좋아하는지, 한번쯤 테스트해 볼 수 있어. 혹시 알아? 지금부터 발레에 확 꽂힐 수도 있잖아. 나라면 이미 검증된 백조 강예나의 11일 공연으로 적성검사를 해 볼 것 같아.

 

 

, 그럼 DVD 코너. 아시겠지만 올해는 1813년생 동갑인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고 있어. 여러분도 여기에 살짝 동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야. 현재 나와 있는 DVD 중에서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건 안나 네트렙코와 롤란도 비아존이 출연한 라 트라비아타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실황 공연이야.

 

DVD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어. 일단 전 세계적으로 오페라 DVD 시장을 살려 놓은 타이틀로 평가돼. 왜냐. 흔히 오페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뚱보 아저씨와 뚱보 아줌마가 폐병 걸려 애처롭게 죽어가는 장르라고 비웃곤 하는데, DVD를 보면 그런 말을 못 해. 당대의 미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지.

 

그렇다고 네트렙코가 노래도 못 하면서 얼굴로 미는 인물이냐면 절대 그렇지 않아. 노래는 물론이고 연기도 A급이지. 게다가 빌리 데커라는 천재 연출가가 만들어 낸 미니멀한 무대도 감탄을 자아내. 그야말로 소장가치 100점의 DVD. 인터넷에서 2700~25000원 정도에 살 수 있어. (주의사항: 한글 자막이 있는 상품인지 꼭 확인할 것.)

 

마지막으로 3월의 책은 이시은 작 짜릿하고 따뜻하게.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일본의 히트 광고 카피와 해제를 모아 놓은 책인데, 만약 어떤 일에서든 새로운 영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 후루룩 한번에 읽어 보기는 좀 아깝고, 생각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어보는 화장실 용 책으로도 활용가치가 높아 보여. 인터넷으로 11000원 정도.

 

말이 많았는지 작별할 공간이 없네. 4월에 만나.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7                         3만원

국립발레단 해설이 있는 발레                          2만원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                           1만원

DVD ‘라 트라비아타                                  2700~25천원

책 짜릿하고 따뜻하게                                 11000

                                                     96천원

 

 

발레는 발레고, 여기서 저화질 동영상으로 보여드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발레는 현장에서 볼 때가 다르고, 뭔가 좌정하고 볼 때 또 다릅니다. 정말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나 발레 봤는데 그거 영 나랑 안 맞는 것 같아"라고 하시는 분들께 '뭘 봤냐'고 물으면 절대 다수가 '호두까기 인형'이라고 합니다. 뭐 훌륭한 작품이지만,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발레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건 '해리 포터'를 보고 난 다음에 "난 영화는 이제 안 볼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만치 발레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특히 추천 공연인 11일 강예나의 공연은 한국을 대표하는 백조 중 하나인 강예나가 스스로 '백조는 이제 마지막'이라고 부르는 공연입니다. 여러 모로 의미가 있죠.

 

그리고 이번 달에 추천한 '백조의 호수'나 '라 바야데르'는 '지젤'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과 함께 고전 발레를 대표하는 명작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전 발레만 발레라고 생각하셔도 곤란합니다. 시대의 변천과 함께 모던 발레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지 킬리안(Jiri Kylian: 이 스펠링에서 대체 왜 이런 발음이 나오는지 제가 설명할 길은 없지만 체코어로는 이렇게 표기한다고 합니다)의 발레 소품 'Petite Mort(작은 죽음)'을 보시면 '이런 발레도 있다'는 말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은 오페라. '네가 뭘 안다고 되도 않는 오페라 타령이냐'고 할까봐 늘 겁나는 장르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 잘 모릅니다. 제대로 배운 적도 없습니다. 그냥 듣고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겁니다. 유명한 아리아나 합창곡은 들어보면 아 이게 어디 나오는 뭐구나 좀 알지만, 레시타티보를 들으면서 음 좋구나 하는 분들은 신선의 경지라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수준이다 보니, 노래만 잘 하는 가수(특히 소프라노..;;)에게선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인지상정이죠. '라 보엠'같은 오페라를 볼 때 덩치가 산만한 소프라노가 고혈압이나 당뇨가 아니라 폐결핵으로 죽어간다는 얘기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낄지는 솔직히 저도 의문입니다. 심지어 카라얀 선생도 일찌기 왜 뚱뚱한 소프라노들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네는 오페라 볼 때 눈 감고 보나"라고 반문하셨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런 면에서 안젤라 게오르규나 안나 네트렙코 같은 가수들은 신의 선물이라 여길만 합니다. 최근에는 네트렙코도 나잇살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2005년 '라 트라비아타' DVD에 출연할 때만 해도 인기는 하늘을 찔렀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축배의 노래(Brindisi)'를 비롯해 수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프라노 비올레타를 대표하는 곡은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노래.

 

 

들어 보시면 안나 네트렙코가 얼굴만으로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의 주역을 따내고 있는 가수가 아니라는 것은 금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사실 문외한이 들어도 위 노래와 아래 노래 사이의 차이는 제법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한 세기에 몇명 안 될 겁니다. 게다가 보는 즐거움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죠. 모든 여배우가 메릴 스트립처럼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적으로 이 노래는 조운 서덜랜드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Memory'의 표준이 엘렌 페이지가 아니라 바브라 스트라이잰드가 되었듯 말이죠.)

 

 

 

아무튼 근래 들어 세계적인 주역 소프라노들의 외모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한번 거기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죠.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법의 다이어트에 나서다 http://5card.tistory.com/1042

 

그때 소개한 슈퍼모델 소프라노 발렌티나 나포르니타(Nafornita를 나포니타 혹은 나폴니타로 쓸 수 도 있을 듯 합니다)가 부르는 '라 트라비아타'의 브린디시입니다. 상대는 블라드 미리짜(Vlad Mirita). 

 

 

마지막으로 3월의 책 한권. 제목은 '짜릿하고 따뜻하게' 입니다. 산토리 올드 위스키 광고 카피인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등 일본 광고의 명 카피들을 모아 해설한 책입니다.

 

'일본 광고는 참 착하다'는 하지현 박사님의 추천으로 보게 된 책입니다. 기한을 읽을 책도 아니고, 심각하게 공부하면서 볼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위에서 소개했듯, 화장실 문 앞에 두고 들어갈 때마다 한 장씩 읽고 나오면 너무나 적절할 그런 책입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달은 여기까지. 풍성한 3월 즐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야구도 보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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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경우의수 정리] 네덜란드-대만전은 최악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덜란드-대만전 결과가 네덜란드가 이기면 최선, 대만이 큰 점수차로 이기면 그 다음, 접전으로 이기는게 그 다음, 3~6점차로 이기는게 최악이었는데 하필 딱 5점차 승부가 났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네덜란드가 호주를 이긴다고 가정하고, 한국은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되 특히 대만을 6점차로 꺾어야 2라운드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겨도 5점 차라면 한국/대만/네덜란드간의 득실점 중 자책점의 비율까지 계산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4점 차 이하로 이기면 같은 2승1패라도 한국이 무조건 탈락합니다.

 

물론 열심히 기도하면 호주가 네덜란드를 잡아 주는 로또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실제론 지금부터 대표팀 타선이 심기일전, 막강 공격력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대표팀 타선, 특히 중심타선이 살아나주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 시작합니다.

 

 

 

 

모든 대회는 그 대회만의 고유 룰이 있는 법입니다. 특히 이번 WBC는 동률 팀이 나왔을 때 아주 고약하게 구분을 해 놓고 있습니다.

 

일단 원문을 그대로 가져와 봤습니다.

http://web.worldbaseballclassic.com/wbc/2013/about/rules.jsp#pool_first

 

 

POOL PLAY AND TIE-BREAKING PROCEDURES

First Round

The First Round of the Tournament shall be conducted in a round-robin format.

In the First Round, the Federation Teams in each pool shall be ranked according to the winning percentage of games in the First Round. The two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such winning percentages in each pool shall advance to the Second Round as the Pool Winner and the Pool Runner-Up.

If at the end of pool play in the First Round of the Tournament two or more Federation Teams within a pool are tied with an identical winning percentage, the tie shall be broken based on head-to-head records or by ranking each team's "Team Quality Balance" (TQB), as set forth below:

  • Scenario 1
    Two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Winner designation.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in the First Round shall be declared the Pool Winner, and the loser of that game shall be declared the Pool Runner-Up.

  • Scenario 2
    Three Federation Teams with the high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Winner designation.

    To determine the Pool Winner and Pool Runner-Up,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i.e., the sum of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RS/IPO)-(RA/IPD)=TQB)). For purposes of determining TQB only the scores from the games between the tied teams are to be used in the calculation.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Earned Runs Team's Quality Balance ("ER-TQB", i.e., the sum of earned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earned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ERS/IPO)-(ERA/IPD)=ER-TQB)).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batting average in games between the tied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ER-TQB, and ranking the Federation Teams by batting average,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winner of the tie between the two remaining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each of the foregoing procedures have been applied, such remaining ties shall be determined by coin flip.
  • Scenario 3
    Three Federation Teams with the lowest winning percentage tied for Pool Runner-Up designation.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to determine the Pool Runner-Up.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the Pool Runner-Up designation after determining 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Earned Runs Team’s Quality Balance (ER-TQB). In the event two or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as follows:
      1.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2.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after determining TQB and ER-TQB, such tie(s) shall be broken by ranking batting average in games between the tied Federation Teams. In the event two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Pool Runner-Up after determining TQB, ER-TQB, and ranking the Federation Teams by batting average, the Federation Team that won the game played in the First Round between the two Federation Teams that remain tied shall be designated the Pool Runner-Up. In the event three Federation Teams remain tied for the Pool Runner-Up designation after each of the foregoing procedures have been applied, such remaining ties shall be determined by coin flip.

 

 

상당히 깁니다만, 이번 대회의 동률 처리 규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한 조 안에서 두 팀이 동률일 때: 무조건 두 팀 사이의 승자승.

 

2) 세 팀이 동률일 때: 세 팀간 TQB에 따라 결정.

    TQB(Team Quality Balance)란 다음과 같습니다.

 

To determine the Pool Winner and Pool Runner-Up,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i.e., the sum of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RS/IPO)-(RA/IPD)=TQB)). For purposes of determining TQB only the scores from the games between the tied teams are to be used in the calculation.

 

그러니까 (낸 점수/공격 이닝 수) - (잃은 점수/수비 이닝 수) = TQB인 것입니다.

 

이제 그럼 한국이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I. 2승1패 3자 동률이 되고, 대만에 6점차 이상 승리하는 경우

 

일단 호주가 3패를 기록하고, 한국/대만/네덜란드가 2승1패 동률이 되는 경우를 상정해서 계산해 보겠습니다. 물론 한국이 나머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이 경우 동률팀간의 득실만을 따진다는 규칙에 따라 호주전에서의 득실점은 계산에서 제외됩니다.

 

한국과 대만을 모두 상대한 네덜란드는 17이닝을 공격해서 8점을 냈고, 역시 17이닝을 수비해서 8점을 잃었습니다. TQB 공식에 넣어 보면, (8/17)-(8/17)=0, 합계 0점이 됩니다.

 

대만과 한국은 5일 경기에 따라 결과가 나옵니다. 현재는 한국이 -.625, 대만은 +.667이지만 이 수치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한국이 대만을 5:0으로 이긴다고 가정하면,

 

한국 (5/17)-(5/17)=0

대만 (8/17)-(8/17)=0

 

이렇게 해서 역시 세 팀이 다시 TQB 0점으로 3자 동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건 5:0이건 6:1이건, 5점차가 나는 경우에는 불변입니다. (물론 9회까지 0:0으로 비기다가 10회에 5점차가 나는 경우라면 달라지지만, 가능성 희박한 경우는 제외합니다.)

 

한국이 만약 6:0으로 이기는 경우라면,

 

한국 (6/17)-(5/17)= .059

대만 (8/17)-(9/17)= -.059

 

그러니까 대만을 6점차로 이기면 TQB 점수에 따라 한국과 네덜란드가 올라가고 대만은 탈락합니다.

 

대만에 5점차로 이겨 다시 3자 동률이 되는 경우에는, 역시 대회 규정에 따라 ER TQB라는 더 복잡한 수치가 등장합니다. 저 득점과 실점 중에서 자책점의 비율이 높은 팀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냥 TQB에선 한국의 실점이 5점이지만 1점은 실책으로 인한 점수였으므로 ER TQB에서는 4점만 계산된다는 것이죠.

 

즉 '진정한 실력으로 점수를 낸 팀에게 어드밴티지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1점이 나중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II. 호주가 네덜란드를 꺾고, 한국이 남은 2승을 올리는 경우

 

이렇게만 된다면 득실 따질 필요 없이 한국과 대만이 올라갑니다. 한국이 대만을 이기면 승자승에 따라 자연히 조1위가 되죠.

 

 

III. 호주가 네덜란드를 꺾고, 한국이 대만에 지는 경우

 

이 경우엔 한국/네덜란드/호주가 1승2패로 3자 동률이 됩니다. 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만, 다시 위의 해설처럼 세 팀간의 TQB를 계산해야 합니다. 이 경우라면 호주와의 경기에서도 얼마나 큰 점수차로 이기느냐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실낱같은 희망은 있습니다.

 

 

 

결론은 한국은 무슨 수를 쓰든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이기더라도 그냥 이기는 것 만으론 부족하고 점수를 많이 뽑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투수들도 투수들이지만, 타자들의 분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따져 볼수록 네덜란드전에서 몇점이라도 점수를 뽑았어야 한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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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1회 그 수비 좋던 강정호 정근우가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저지를 때부터 뭔가 불안하다 했습니다. 점수를 낼 듯 낼 듯 하면서 한 점도 못 내고 끌려갈 때 들던 불안간 느낌이, 끝내 현실이 될 줄이야.

 

물론 네덜란드가 한국 야구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전력이 탄탄한 팀이라는 건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야구를 이끌고 가는 선수들과 류중일 감독에 대한 신뢰가 워낙 컸기 때문에, 2라운드는 몰라도 1라운드는 여유있게 통과할 거라고 기대했던 겁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네덜란드 타자들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번 대회의 복잡한 조건 때문에 앞날은 더욱 점치기 힘듭니다.

 

3일 경기 결과에 따라 경우의 수 예측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한국, 결론은 대만에 6점차 승리가 답. http://fivecard.joins.com/1104

 

 

 

 

 

 

이 글은 3일 네덜란드-대만전 이전의 예측입니다.

3일 경기 결과에 따라 경우의 수 예측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한국, 결론은 대만에 6점차 승리가 답. http://fivecard.joins.com/1104

 

 

4팀으로 한 조가 짜여지고, 조 안에서 라운드 로빙 방식(흔히 말하는 일반 리그 방식)으로 네 팀이 각각 세 경기씩을 치러서 그중 상위 두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은 각종 대회에서 매우 널리 쓰이지만 보기보다 변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네 팀이 각각 3승, 2승1패, 1승2패, 3패로 한줄로 늘어선다면 계산하기 편하겠지만 이렇게 실력 순으로 정렬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가장 골치아픈 경우는 한 팀이 전패를 해서 세 팀이 2승1패로 동률을 이루는 경우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호주가 다른 세 팀에 비해 전력이 상당히 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호주가 3패를 할 것으로 예상할 때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 집니다.

 

어쨌든 한국은 이제 남은 두 경기를 무조건 다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2승1패로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최소 조건이 갖춰집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대회의 특별한 규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회의 동률 처리 규정은 이렇습니다.

 

1) 한 조 안에서 두 팀이 동률일 때: 무조건 두 팀 사이의 승자승.

 

2) 세 팀이 동률일 때: 세 팀간 TQB에 따라 결정

 

TQB(Team Quality Balance)란 다음과 같습니다.

 

To determine the Pool Winner and Pool Runner-Up, the three Federation Teams shall be ranked in order of TQB (i.e., the sum of runs scor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offense, minus the number of runs allowed, divided by the number of innings played on defense (RS/IPO)-(RA/IPD)=TQB)). For purposes of determining TQB only the scores from the games between the tied teams are to be used in the calculation.

 

그러니까 (낸 점수/공격 이닝 수) - (잃은 점수/수비 이닝 수) = TQB인 것입니다.

 

한국이 네덜란드 전에서 낸 TQB는 (0/9)-(5/8)= -0.625입니다.

 

반대로 네덜란드는(5/8)-(0/9)이므로 그냥 0.625죠.

 

단순 득실차와는 좀 다르지만, 어쨌든 큰 점수차로 이긴 팀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세 팀이 2승1패 동률이고 호주가 3패로 탈락이라면, 호주전에서의 득실차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동률인 팀들간의 득실차만 의미가 있습니다.

 

(하다보면 TQB로도 동점인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일단 무시!)

 

 

 

 

이걸 전제로 한국의 앞날을 생각하면, 일단 호주가 3패 전력이라고 가정할 때 한국의 상황은 4일 네덜란드-대만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첫째: 네덜란드가 승리할 때.

 

이 경우 네덜란드는 3승이 유력해집니다. 그럼 한국이 호주를 이긴다고 보고, 마지막 날 한국과 대만은 같은 1승1패 상태에서 나머지 한 장의 카드를 놓고 생사의 일전을 갖게 됩니다. 이기면 무조건 2라운드, 지면 무조건 탈락입니다. 쉽죠.

 

하지만,

 

둘째: 대만이 승리할 때.

 

복잡합니다. 이때도 네덜란드와 한국이 모두 호주에게는 이긴다고 보고, 네덜란드는 일단 2승1패를 확보합니다. 대만은 2승을 깔고 한국과 겨뤄 이기면 3승, 지면 2승1패가 되죠. 한국의 희망은 대만을 이겨 세 팀이 2승1패 동률이 되는 겁니다. 그럼 위에서 얘기한 TQB를 따지는 상황이 오죠.

 

하지만 이미 한국은 -0.625를 안고 있는 상태. 따라서 대만이 네덜란드를 이길 때 접전 끝에 근소하게 이기게 되면, 한국은 대만을 상대로 5점차 정도는 내야 TQB에서 유리한 위치에 갈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대만이 3점차~7점차 사이의 승부로 이기는 경우죠. 그래서 만약 대만이 호주에게 이긴다면, 아예 대승을 거둬야 한국에게 유리합니다.

 

따라서,

 

네덜란드-대만전를 지켜보는 한국 팬들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우선 1지망은 '네덜란드의 승리 기원' 입니다. 이러면 '어쨌든 대만만 이기면 되는'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반에 승세가 대만으로 몰리면, 그때부터는 대만이 점수차를 벌리도록 응원해야 할 겁니다.

 

정리하면,

 

1) 네덜란드가 대만을 꺾는다(점수차 무관)

2) 대만이 네덜란드를 최소 7점차 이상의 큰 점수차로 꺾는다

3) 접전 끝에 대만이 근소하게 이긴다

4) 대만이 네덜란드에 3~6점차 정도로 이긴다

 

의 순으로 한국에게 좋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경우는... 무조건 대만에 대량득점을 성공해 우리가 5점차 이상으로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냥 이기기도 쉽지 않은데 대량득점까지 요구해야 한다는 건 참.

 

 

 

물론 이런 저런 얘기를 해 봐야 대만에게 지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어떻게든 대표팀이 심기일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원할 뿐입니다. 뭐 야구라는게 하루 이틀 사이에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라 희망은 아직 충분합니다.

 

한대화의 역전 홈런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이때도 한국은 서전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이탈리아에 첫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그 경기 이후 선수들의 정신력이 대폭 강화됐고, 결국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번에도 첫 경기의 패배가 선수들의 분발을 가져오길 기대해 봅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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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를 보면서 '무간도'와 '대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이 두 영화 이후에 나온 갱 영화나 언더커버 캅에 대한 영화가 두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평을 듣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세계'가 이 두 영화에 대해 지고 있는 빚은 흔히 말하는 '영향'을 넘어 서 있습니다. 이른바 오마주의 세계라고 할까요.

 

사실 개인적으로 '신세계'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무간도'가 아니라 '무간도2'입니다. 전편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무간도'를 훨씬 능가하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수백편(수천편?) 쯤 만들어졌을, '대부 오마주' 영화들 가운데서도 손꼽을만한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안 보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신세계'는 굳이 말하자면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대부 오마주' 영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을 꼽자면 아마도 '신세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른바 '풍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국내 최대 폭력조직이며 합법적인 기업으로 진화한 골드문파의 보스 석회장(이경영)은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고 풀려난 직후 의문의 사고로 사망합니다. 후계자가 필요해진 상황. 연합 조직인 골드문파의 특성상 최대 계파인 재범파의 보스 중구(박성웅)와 여수 화교 중심의 파벌인 북대문파의 정청(황정민)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릅니다.

 

이런 상황은 본래 경찰이지만 비밀리에 조직에 잠입한 자성(이정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8년 노력한 끝에 정청의 오른팔이 된 자성은 자신을 투입한 강과장(최민식)에게 그만 풀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강과장은 자성에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합니다. 소위 '신세계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죠.

 

 

 

일각에서 흐름이 좀 느리다는 평이 있었지만 2시간14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단 세 남자의 대립이 촘촘하게 짜여 있고, 세 주인공의 조합은 예상대로 매우 훌륭합니다. 셋 중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아무래도 황정민이겠죠.

 

'달콤한 인생'에서 건달 중의 상건달 - 흔히 말하는 '양아치'에 가까운 - 역할로 연기력을 과시했던 황정민은 그와 비슷하지만 좀 더 복잡한 인물 정청 역을 맡아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달콤한 인생'의 백사장이 정말 본능만 있는 벌레같은 인간이라면, '신세계'의 정청은 동네 아저씨같은 인간미와 하이에나같은 악착스러움에다 뱀 같은 냉정함까지, 한 작품 안에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주연을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만만찮은 비중을 자랑한 박성웅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구가 지나치게 냉정한 인물로 그려졌다는 점. 그런 냉정한 톤을 유지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미친개가 되는, 좀 더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 합니다.

 

사실 '신세계'는 전형적인 영화이긴 합니다만, 배우들이 연기하기는 또 쉽지 않은 영화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판타지 느와르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한국 경찰과 조폭의 관계에서 이런 식의 언더커버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경찰이 8년씩 조폭 밑에 들어가서 발각되면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 있으며, 수시로 인사조치가 있는 한국 조직의 특성상 어떤 중간 간부가 -이를테면 강과장이- 8년씩 그런 장기 프로젝트를 보안 위험을 감수해 가며 추진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이나 미국 같이 넓은 나라에서는 혹시 또 가능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한 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알고, 출신 지역이나 학력만 추적해 봐도 어느 집 누가 뭘 하는지 다 드러나는 나라에서 과연 이런 식의 철저한 은폐가 가능할까요. 더구나 경찰/검찰과 조폭의 인맥이 이렇게 촘촘하게 엮여 있는 나라에서 말이죠.^^ - 물론 '신세계' 같은 영화를 볼 때에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어쨌든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 영화니까 말입니다.

 

다만 '무간도'나 '디파티드' 같은 영화들은 가능한 한 그 현실과의 괴리를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개연성을 보강하고 있는 반면, '신세계'는 그런 부분에서 덜 치밀합니다. 예를 들어 송지효가 연기하는 바둑 선생 같은 캐릭터는 오히려 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면을 더 강조해 버리는 면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야쿠자 영화를 의식한 듯한 두 차례의 장례식 장면도 비슷한 효과를 냅니다.

 

 

 

 

물론 많은 관객들은 무협영화나 '스타 워즈'를 보듯, 이 '언더커버 판타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세계'를 볼 겁니다. 그리고 이 장르에 애정을 갖고 있는 관객이라면 '신세계'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관객 상당수가 '무간도'나 '도니 브래스코'류의 영화에 노출되어 있었을 거라고 전제하면, 자성이 당연히 겪어야 할 정체성의 혼란 같은 장면은 과감하게 제거하는게 당연했을 겁니다. '우리 외국 나가서 살까?' 정도의 대사로 쉽게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다만 영화 전반적으로 유머감각이 다소 어정쩡한 위치에 머물러 있는 건 좀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연변 거지 개그는 무거운 흐름을 풀어 주는데 꽤 역할을 합니다만,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한우 개그 같은 것은 들어 냈어도 되지 않을까요?)

 

 

 

 

결론적으로 '신세계'는 그동안 '대부'의 영향권에서 다소 먼, 비교적 독자적인 길을 걸어 온 한국 느와르가, 전 세계적인 '정통'에 다가선 물건을 내놨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아주 매끄럽고 정교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풍미를 자랑하는 관객에게는 좋은 선물입니다. 특히 여성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다는 장점이 있죠. 전체 영화보다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 잘 부각되지만, 휴일을 즐기는 데 후회 없는 선택일 듯 합니다. 추천.

 

 

 

 

P.S.1. 언더커버 캅이 자기 패거리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이란 소재에 관심 있는 분들이 꼭 보셔야 할 영화는 '도니 브래스코'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논픽션에서, 마약 조직에 투입돼 상당 기간 동안 조직원 행세를 했던 주인공은 이런 후일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조직이 일망타진되고 작전이 마무리됐을 때, 법정에서 만난 한 조직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이봐. 내가 잡혔을 때 경찰은 내게 전화를 딱 한 통 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어. 나는 그 전화를 변호사도 아니고, 두목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너에게 걸었지. 도망치라고. 그런데 네가 경찰이었다니.' "

 

이런 말을 듣고도 동요가 없다면 그건 정말 냉혈한이겠죠.

 

 

 

 

P.S.2. 몇가지 질문에 대해서 박훈정 감독은 고의로 대답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건 속편 제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면 석회장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강과장이 언급하는 '언더커버에서 끈을 끊어 버리고 진짜 조폭이 된 전직 경찰'은 누구일까 하는 것 등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예견하듯,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 내용은 '신세계'의 프리퀄, 그러니까 이 주인공들의 과거 사연 이야기가 될 전망입니다. 이미 '신세계'의 흥행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는 만큼 배우들만 동의하면 우리는 그 궁금증을 속편에서 해소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 그 답이 정 궁금한 분들은 주위 사람들을 설득해서 '신세계'의 흥행 스코어를 좀 더 올려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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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WBC가 이틀 앞으로 다가와 버렸습니다.

 

작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언제나 다시 야구를 시작하려나 했는데, 어느새 얼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3월2일이면 한국의 WBC 첫 경기가 열립니다.

 

본선 1라운드는 한국, 대만, 네덜란드, 호주의 네 팀 중 두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하는 조별 리그 방식입니다. 네덜란드와 호주가 언제부터 야구를 했다고 그러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지만, 막상 내용을 까뒤집어 보면 그렇게 만만한 상대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대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까다로운 상대죠.

 

그러니 응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류현진 추신수 등 핵심 선수들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강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에는 그냥 건너가는 팀들로 여겨졌던 상대들도 상당히 업그레이드 됐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는 오래 전, 대륙간컵 시절에도 한국이 너무 만만하게 봤다가 몇번 덴 적이 있는 팀들입니다. 제 기억으로 대략 4~5년에 한번씩은 한국이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에게 '덜미'를 잡힌 적이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대회에는, 원산지(?) 개념이 별로 없는 선수들도 굳이 혈통을 따져 고향 앞으로 간 경우들이 적지 않은데, 네덜란드 팀에는 유명한 쌍포가 있습니다.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런왕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이번 시즌부터 라쿠텐에서 뛰기로 한 앤드류 존스죠.

 

발렌틴은 2011-12 센트럴리그 홈런왕이고, 존스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 434홈런. 애틀란타 시절부터 치퍼 존스와 함께 존스-존스 타선을 구성했던 강타잡니다. 쇠퇴기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이승엽보다 한살 적은 1977년생.

 

호주는 단 한명의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입니다. 옥스프링. LG의 10승 투수였던 그가 한국전에 등판한다면 낙승을 예상하긴 쉽지 않습니다. 옥스프링급의 투수가 물론 많지는 않겠지만, 호주가 투수진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호주는 두려운 상대가 될 수 있겠죠.

 

물론 네 팀 모두가 각각 10경기 정도씩 한다면 한국이 최소 6승4패, 적어도 7승3패 정도는 유지할 수 있는 상대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단 한판 치르는 단기전에서는 어찌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위험은 그동안 WBC에서 한국이 한수 위인 것으로 알려진 일본을 연파해온 과거를 통해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그래서 응원이 필요하다는 거죠.

 

 

두준-이준도,

 

 

 

손나은을 비롯한 '무자식 상팔자' 팀도,

 

 

 

수지와 민, 강호동, 하일성 위원도,

 

 

 

소녀시대도,

 

 

 

김구라-이훈-이상민도,

 

 

 

씨스타와 나인뮤지스도,

 

 

 

김병만-이수근-신동-성규(인피니트)도,

 

 

 

 

그렇게 해서 다 모아 놓으면 이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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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라는 제목만 듣고 벤 애플렉이 신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려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특수효과의 거장 래리 해리하우젠의 [아르고 황금 대탐험(Jason and the Argonauts)]의 리메이크 쯤 되는 영화가 아닐까 말이죠.

 

그런데 의외로 영화는 매우 건조한 느낌의 첩보(?) 영화였고, 사실 아르고라는 제목은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보가 들어오는데, 약간 황당무계한 이 영화의 내용이 모두 실화라는 겁니다.

 

지난 연말에는 개봉하자마자 밤 12시대 외에는 개봉관이 없는 상태로 2~3주만에 사라지는 바람에 [아르고]는 자칫하면 전설 속의(?) 영화가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아르고]가 각종 영화상의 주요 후보로 떠오르면서 다시 이 영화를 볼 방법이 생기더군요.

 

 

 

1979년, 이란 혁명의 뒤끝에서 축출된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이란 내부에서는 팔레비를 내놓으라는 국민들의 분노가 솟구치고, 급기야는 미 대사관이 점거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그대로 인질 상태로 억류됩니다.

 

하지만 정작 대사관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대사관이 점거되기 직전 도망친 6명의 대사관 직원들이 문제가 됩니다. 대사관 안에 억류된 사람들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이란 정부의 관리 아래 있는 만큼 이란의 원리주의 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 한 건드릴 수 없지만, 대사관 밖의 사람들은 이란 민간인들에게 발견되는 즉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인 것이죠.

 

일단 그 6명이 캐나다 대사 관저에 숨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대사관 안의 사람들보다 이들을 우선적으로 탈출시켜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집니다. 문제는 방법이죠. 이미 서구 백인들은 거의 모두 이란을 떠나 있는 상황. CIA는 이란으로부터 사람을 빼내 온 전문가 토니 멘데스(벤 애플렉)을 불러들입니다.

 

 

 

 

'아르고'는 실화를 근거로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건의 궤적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가운데 절대 다수는 이 영화가 어떤 결말을 맺을 지 알고 있다는 것이죠. 네. 1980년 1월 29일, 토니 멘데스는 이 6명을 성공적으로 탈출시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킬 것인가' 입니다.

 

 

이런 부분은 실제 사건, 혹은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가장 먼저 봉착하는 한계입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몇몇 영화들은 실제 역사에서 한사코 벗어나려 하고(그래서 늘 '영화와 실제는 별개'라는 이야기가 나오곤 하죠), 가끔 유별난 영화들은 아예 역사 자체를 무시하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퀜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입니다. 이 영화는 아예 죽어선 안 될 유명 인물을 죽여 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릅니다. 아예 역사를 바꿔 버리겠다는 심사죠.

 

(물론 타란티노나 되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라는 식의 엄청난 짓을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벤 애플렉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도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또 절묘한 편집을 통해, 유명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관객이 억류자들의 운명을 걱정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감독 벤 애플렉'의 놀라운 역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당시 이란의 원리주의 정권을 악의 상징으로 규정해버리거나, CIA를 정의의 사도들로 묘사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칭찬할 만 합니다. 애당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는 내용을 깔아 놓고 시작하죠.

 

거대한 폭발이나 대단한 볼거리 보다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움직임, 조금씩 변화해 가는 사람들, 그리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디테일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아르고'는 참 훌륭한 스릴러의 전범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화면에서 3분에 하나씩 뭔가 터져 주지 않으면 잠이 들어 버리는 분들에겐 중간에 잠들어 깨어 보니 끝나 있는 영화일 수도 있을 겁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자잘한 얘깃거리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국내에서도 꽤 크게 보도됐더군요. (왼쪽 위 사진은 다른 기사의 사진입니다. 혼동 없으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도 다뤄졌듯, 이때까지 이 탈출은 철저하게 캐나다 정부의 공작으로만 발표됐습니다. 대사관에 억류돼 있던 나머지 인질들의 안전 때문이죠.

 

 

 

실제 제작됐던 포스터 'ARGO'. 아래의 영화 속 포스터와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아래와 같은 포스터도 실제로 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CIA가 하는 일마다 이렇게 '영화처럼' 매끄러웠던 건 아니죠.

 

 

병력을 동원해 대사관 인질들을 구조해 보려던 시도는 이렇게 헬기 추락 사고와 함게 비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SEAL 대원들이 사진처럼 희생됐죠. 척 노리스 주연 '델타 포스'는 이 실패에 대한 정신 승리의 의미를 갖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에 왜 등장하지 않았을까 궁금할 정도로 영화 같은 실제 사건.

 

 

그러니까 'ARGO' 작전의 마지막에 실제 탈출자들이 탑승한 비행기의 이름이 'ARGAU'였다는 것인데, 참 희한하군요.

 

 

 

그리고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실제 인물들과 상당한 싱크로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된 것이 분명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은 그럴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실제 토니 멘데스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실 벤 애플렉 같이 생긴 요원은 상당히 써먹기 불편하겠죠. 어디 가나 눈길을 끌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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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우습게 아는 분들은 "10%? 10% 짜리 프로는 지상파에 널렸어"라고 말하지만 지상파에서의 5%와 비 지상파 채널에서의 10%는 참여의 질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아직 어지간해서 지상파 3사, 4개 채널의 테두리를 벗어냐려 하지 않습니다. 그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만치 '끙'하는 작심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죠. 채널 번호도 잘 모릅니다. 대개 채널을 돌리다가 어 이거 재미있을거 같은데 하면 그냥 시청하는 식의 패턴이죠.

 

그런 상황에서 10%라는 건 엄청나게 목적성이 강한 시청자의 수가 만만찮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채널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 가서 본 채널이라는 얘기죠. 매일 신도림역을 지나가는 5만명이 '신도림역'에 부여하는 가치와, 단풍철에 설악산을 찾은 5만명이 '설악산'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는 결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JTBC에서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가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제도 뜨겁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의아해 지기도 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우수성이 의심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드라마들과 비교해 볼 때, '무자식 상팔자'는 유난히도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방송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대체 왜 그런 걸까요.

 

문득,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김수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이미 2,30년 전부터.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무자식 상팔자'의 등장인물 가운데 준기(이도영)-수미(손나은) 커플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습니다.

 

 

 

 

무자식 상팔자, 학습된 가족 판타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같은 말이 튀어나온다. “야, 정말 리얼하지 않냐?”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처절한 격전 장면에 대한 평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의문. 과연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 영화를 ‘리얼하다’고 말할까. 관객 중 실제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가 봤거나, 사람이 총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관객은 이 영화가 리얼한지 리얼하지 않은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데도, “리얼하다”는 표현을 입에 올린다.

 

분명 어색한 일이다. 대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전혀 보지 못한 장면을 ‘리얼하다’고 느끼게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2차대전 기록영화와 라이프 사진집에서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오마하 비치라는 격전지의 이름을 이 영화를 통해 안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관객들이 느끼는 이 가짜 리얼함이야말로 스필버그가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사기꾼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에는 흔히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부모 자식간의 예의에 충실한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대가족이 등장한다. 3대의 한집 거주는 필수. 그런데 이런 대가족은 사실 50대 이하의 시청자들 중 절대 다수에겐 판타지다. 한국 사회는 4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이미 핵가족화를 시작했다. 20년 전엔 이미 조손(祖孫)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무자식 상팔자’ 속의 가족 관계를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호평까지 쏟아진다.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이 향수는 허구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존재한 적도 없는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

 

 

 

‘시나리오 마스터’라고 불리는 미국 USC의 로버트 맥키 교수가 한 말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가를 가정하고, 잘 만들어진 서사가 읽는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통찰력있게 묘사했다.

 

“읽어가는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중략) 나는 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가족이라는 사회 형식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 살고 있는 관객들은 나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중략) 나는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들을 표현하지만 관객 모두는 그 느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가장 적절한 예로 떠오른다. ‘가짜 리얼리티’의 원천은 치밀한 디테일에서 비롯된 공감가는 인물 설정과 전개다. 시청자들 중 누군가는 드라마 속 장남과 맏며느리의 대화에서, 다른 누군가는 막내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갈등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맏손녀와 엄마의 말다툼에서 자신이나 자기 가족 중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 요소가 더 있다. 우리가 이미 김수현의 드라마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시청자들의 경우, 지금 보고 있는 김수현 드라마 속의 어떤 대사는 30년 전 어느 드라마 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30여년 전에 시청률 50%~70%를 오갔던 그녀의 드라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득했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그 규범의 영향을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매트릭스‘ 속 아키텍트처럼) 우리의 삶의 일부를 그려낸 셈이다. 그런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언젠가 내가 실제로 겪었던 것 같은’ 향수를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굳이 보드리야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끝)

 

 

 

 

극중 상황. 스물다섯 나이에 학력은 고졸,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 장인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준기는 어느날 같은 커피전문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고생 수미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미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결손가정 출신의 '사실상' 가출 여고생입니다. 커피숍 알바로 근근이 고시원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죠. 하지만 천부적인 붙임성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준기를 사로잡습니다.

 

마침내 수미에 대한 동정이 그냥 동정이 아님을 알아차린 준기는 아직 미성년인 수미와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처합니다. 당연한 어른들의 반대. 하지만 수미를 직접 만난 아버지-할아버지의 순으로 수미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결국 '3년간 연애 인턴 기간(?)'을 두고 준기와 수미의 관계가 반 허락을 받습니다.

 

 

 

현실에선 있을 법 하지 않을 일입니다.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20대 중반의 아들이 아직 만 18세도 안 된 여고생과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내버려 둘 부모가 있을 리 없죠.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요즘 분위기에서 그 나이에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설 젊은이도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배경은 철저한 판타지입니다. 과연 요즘 10대 여고생들 가운데 수미 같은 말투와 생각을 보여주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미는 요즘의 '5,60대 어른들이 바라는 여고생'의 형상화죠. 혹은 70년대 쯤 존재했을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립의 꿈을 키우는' 여고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옮겨 온 모습입니다.

 

 

 

(문득 1976년작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의 실제 나이 16세 임예진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부잣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지만 언젠가 항공사 여승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쾌활하고 똘똘한 소녀 캐릭터죠. 사실상 '무자식 상팔자'의 수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수미와 준기의 관계를 허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이순재)인데, 이 할아버지의 허락을 위해선 김수현 작가의 치밀한 배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준기의 누나인 소영(엄지원)이 미혼모가 됐을 때 가족들은 여자보다는 그래도 남자가 운신하기 좋으니 태어난 아기를 '준기가 어디서 사고 쳐 낳아 들어온 아기'로 포장하자는 꾀를 냅니다. 사실 이 거짓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우연한 기회에 그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당연히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할아버지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소영의 눈물 앞에 아무 말 없이 현관을 나섭니다. 그 앞에 서 있던 것이 바로 준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준기의 뺨을 살짝 어루만지고 문 밖으로 나가죠.

 

대사 한마디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손짓은 '그러니까 네가 누나의 곤란함을 알고, 밖에서 아이를 낳아 들어온 칠칠치 못한 놈 행세를 하려고 했던 거구나. 착한 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너희 애비와 삼촌들은 정말 죽일 놈이지만 너는 정말 가족을 위할 줄 아는 놈이구나'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던 것이죠.

 

그 뒤에도 온 가족은 '평소 밖에서 병든 강아지 하나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던' 준기의 심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준기는 3남매의 막내. 맏이 소영은 판사에 둘째 성기(하석진)는 의사인데 비해 변변찮은 스펙입니다. 하지만 그런 '착함' 때문에 할아버지가 막내 손자를 바라보는 눈길은 각별한 것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조건이며 상황 따지지 않고' 준기가 데려온 수미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요즘 세상이 이렇게 '우리가 먹고 살만 하니 불쌍한 아이(수미-손나은) 하나 정도 품을 수 있다'는 쪽에 가까운지, 아니면 '있는 사람이 더 한' 쪽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더 듣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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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 참 많고도 많습니다. 특히 한국 안방극장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꽤 많이 인기를 누렸습니다. 다들 잘 아시는 '점 하나 찍고'의 원조인 '아내의 유혹' 이후 특히 많아졌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JTBC '가시꽃'도 그런 유형의 드라마입니다.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여자가 죽음을 가장하고 기회를 노린 다음, 새롭게 태어나 돌아와서 자신을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많이 듣던 얘기긴 합니다.

 

물론 '아내의 유혹'이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의 원조라고 보기에 '아내의 유혹'은 참 젊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원형을 살펴보려면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수 이야기, 특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와 벌이는 복수 이야기의 고전은 뭐니뭐니해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쓰여진 것이 1845년이고 보면 그 전이라고 이런 이야기가 없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품의 지명도나 완성도, 대표성 등을 고려할 때 '원조'라는 이름을 가질만 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남자라는 점. 여자의 복수 이야기도 장화홍련전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널렸지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귀신이 주인공이면 안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웃자는 얘기지만, 시각을 좀 돌려 보면 셰익스피어의 '헛 소동'이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여주인공 히어로가 행실이 나쁘다는 모함을 받아 결혼이 깨지고, 히어로가 죽음을 가장한 뒤 진실이 밝혀지자 히어로의 아버지는 남자들에게 '내 딸은 이미 죽었지만 똑같이 생긴 조카딸이 있는데 그 아이와 결혼하라'고 하죠. ...네. 사실 전혀 다른 느낌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죽은 여자가 돌아오는' 상황은 아마도 '헛 소동'이 원조일 것 같다는 얘기.)

 

그러다 문득 한 후배가 "선배, 혹시 예전에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서 잘나가는 모델로 변신해 복수하는 외국 드라마 본 기억 나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앗.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날듯 말듯. 남편이 아내를 악어 밥으로 던졌는데 여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성형수술로 더욱 미인이 되어 복수하는....?

 

그래서 찾아냈습니다. 바로 '에덴으로 돌아오다'.

 

 

 

1983년작 호주 드라마 '에덴으로 돌아오다(Return to Eden)'는 이런 내용입니다.

 

부유한 40세 여성 스테파니(레베카 질링)는 유명 테니스 선수이자 미남인 그렉(제임스 레인)과 결혼, 온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 상태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렉의 진짜 연인은 스테파니의 절친인 질리(웬디 휴즈). 세 사람은 늪지대로 여행을 떠나고, 배 위에서 악어를 바라보며 스테파니가 탄성을 지르고 있을 때 그렉은 스테파니를 뒤에서 밀어 버립니다. 악어 밥을 만들어 버리고자 한 거죠.

 

그렉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테파니를 향해 총을 겨눕니다. 악어가 시원찮으면 구하기 위해 악어를 쏘다가 실수로 스테파니를 맞혔다고 하려고 했던 듯. 하지만 악어는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스테파니를 공격하고, 피투성이가 된 스테파니는 조용히 물 속으로 사라집니다. 어쩔 줄 모르는 질리를 한 팔로 제지하며 지는 해를 향해 총 한방을 쏘는 냉혹한 그렉.

 

(이 장면은 위 동영상 27분30초 지점부터 꽤 실감나게 나옵니다.)

 

 

 

 

"말도 안 돼! 악어한테 저렇게 물려 가서 살아났다고?" 라고 화내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악어의 평소 습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악어는 일단 잡은 먹이를 그 자리에서 토막낸다거나 하지 않고, 일단 물속으로 끌어들인 뒤 익사시키는 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바로 먹지 않고 물 속의 수초 줄기나 돌 틈에 끼워 '저장'해 두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니 '저장'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스테파니가 살아 나올 가능성도 있는 셈이죠.

 

(어디까지나 가능성!)

 

 

1983년의 '미니시리즈(한국 미니시리즈는 16부가 기본이지만 70~80년대 영미권에서는 3~6회 정도의 연작 드라마를 미니시리즈라고 불렀습니다)' 판 '에덴으로 돌아오다'는 불과 딱 세편짜리 소품이었지만, 호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만만찮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1986년에는 22부작의 정규 시리즈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리즈도 제목이 'Return to Eden'이라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미니시리즈'라는 설명이 붙은 것이 원편.)

 

 

 

 

 

한국에서는 1989년 신년 특집으로 방송돼 상당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연히 여러 차례 앵콜 방송됐고, 얼마 뒤에는 '시드니 셸던 원작'의 소설이 발간되기도 했죠. 왜 ' '를 쳤느냐... 이유는 이 소설이 시드니 셀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랍지만 사실. 이 시절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수법이 통할 정도로 허술한 나라였다는 겁니다. (또는 그럴 정도로 시드니 셀던은 구매력 있는 작가였다든가.)

 

 

 

아무튼 결론.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장르에서 원조격인 작품을 찾으라면 이 '에덴으로 돌아오다'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가장한 트릭은 샤론 스톤, 이자벨 아자니 주연 '디아볼릭'의 원작인 1955년작 프랑스 영화 'Les diaboliques'이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여자의 죽음이 소재가 아니라서 제외.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도 '아내의 유혹'이 인기를 얻었고, 현재는 '가시꽃'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유망한 신인에서 깜짝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은 세미(장신영). 하지만 세미에게 그 기회를 빼앗긴 유명 스타 지민(사희)은 복수를 다짐합니다. 세미는 재벌집 외동딸인 지민의 집 별장 관리인의 딸이었기 때문에 지민은 깨진 자존심에 몸을 떨었던 거죠.

 

그 별장에서 파티가 열리고, 세미는 술에 취한 지민의 오빠 혁민(강경준)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결국 혁민을 피해 달아나던 세미는 2층에서 추락해 식물인간이 되고, 혁민 일행을 저지하려던 세미의 아버지도 계단에서 밀려 떨어져 죽음을 맞습니다. 재벌 2세와 국회의원 아들 등으로 구성된 혁민의 일행 특성상 부모들은 모든 연줄을 동원해 사건을 무산시키고,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세미의 어머니도 사고를 위장해 살해합니다.

 

  (실제 드라마 장면과는 좀 다른, 장신영의 여유 컷)

 

남은 것은 식물인간이 된 세미. 일당은 세미마저 조용히 없애 후환을 없애려 하지만 세미는 깨어나고, 혁민/지민의 집안에 원한을 갖고 있는 남준(서도영)의 도움으로 복수를 준비합니다. 물론 집에 불을 질러 세미가 죽은 것으로 꾸미는 것은 필수. 그리고 7년 뒤, 세미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해 복수를 시작합니다.

 

 

 

 

...이런 어디서 살짝 본 듯한 스토리. 하지만 '가시꽃'은 스피디한 전개(어차피 다 짐작하실 만한 내용은 과감히 통과!)와 적절한 악역들의 배치(특히 악당 중에서도 잡초같은 3류 악당 백춘 역을 맡은 이철민씨가 압권입니다. 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실 듯...)로 놀라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방송 7회만에 시청률이 3배로 급상승중입니다. (아, 물론 출발점이 좀 낮긴 했죠.^^)

 

전형적인 복수극의 외양을 갖춘 '가시꽃'이 어느 정도까지 주부 시청층을 흡수할 지 개인적으로 참 궁금합니다.

 

(보너스는 1~7회까지의 하이라이트 요약. 이 정도면 지금부터 '가시꽃'을 보시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주요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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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도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유 넘치는 분들은 2월이면 리오데자네이루로 날아가 카니발의 삼바 구경을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보고 즐길 것들은 날로 넘쳐납니다.

 

12월, 1월에 이어 2월의 문화가이드입니다. 물론 예산 10만원은 1인 기준. 홀몸이 아닌 분들은 이 금액에 x2(아 물론 책은 돌려읽을 수 있으니 빼고) 하셔야 하니까 제법 부담이 되는 금액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애인은 깨져도 문화적 소양은 남는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뭐 전혀 위안이 안 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럼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2월은 다른 달보다 짧아. 그리고 전반적으로 모든 공연의 비수기이기도 해. 또 많은 사람들에겐 졸업과 새 학기 준비의 달이기 때문에 문화 생활을 즐기기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달이지. 하지만 영화광들에게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이 열리면서 반짝 특수를 노리는(평소 같으면 그리 호객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우루루 밀려오기 때문에 행복한 시기이기도 해.

 

2월의 공연 스케줄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어.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가 2월24일에 내한공연을 한다는거야. 벤 폴즈가 누구냐고? 아무래도 유튜브에 접속해서 ‘브릭(Brick)’이나 ‘매직(Magic)’같은 노래를 들어보는게 가장 좋은 설명이 아닐까.

 
한없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완 달리 팀의 리더 벤 폴즈는 무척 괴짜야. 얼마나 괴짜냐고? 일단 밴드의 구성이 기타 없이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라는 것부터 독특하지. 게다가 멤버가 세 명인데 밴드 이름이 ‘파이브(five)’야. 대체 왜 파이브냐고 물으니 “그게 쿨해서”라고 했다나. 문제는 티켓 가격이 11만원. 이 칼럼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좀 어긋나 있어서 이 얘기는 여기서 끝(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걸 보면 진심으로 강추라는 걸 알 수 있겠지?).

정식으로 소개하고픈 2월의 대표 공연은 이자람의 ‘사천가’야. 성남 아트센터라는 지역적인 약점이 있고, 5만원이면 이 칼럼에서 소개하는 공연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이런 무대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 왜냐고? 이자람이 나오기 때문이야. 물론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여.

 

 

 

 

이자람을 1984년 나온 동요 ‘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재의 이자람은 대한민국이 낳은 가장 빛나는 무대 예술인으로 꼽아 손색이 없어. 창작 판소리 ‘억척가’나 ‘사천가’, 뮤지컬 ‘서편제’ 등 그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거야. 정말 대단한 소리꾼이지.

다음. 오페라라는 장르를 소개하자니 좀 망설여지네. 더구나 어쨌든 제목만이라도 친숙한 ‘아이다’나 ‘라 트라비아타’도 아니고, ‘라보엠’도 아니고 ‘안드레아 세니에’라니. 베르디도 바그너도 아닌 지오르다노의 작품이라니.

 

그렇지만 메가박스에서 2월에 상영되는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는 여러가지 면에서 볼만한 점이 있어. 혹시 유럽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이라면 브레겐츠(Bregenz)의 수상 무대 오페라를 들어 봤을거야. 유럽에서 가장 유니크한 오페라 공연장으론 브레겐츠의 호반 무대와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오페라를 꼽는게 보통이지.


 

그러니까 이번 안드레아 세니에를 보는 건 단순히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하는 이상으로, 브레겐츠 수상 무대라는 독특한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인 거지. 특히 테너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좋은 아리아가 많아. 4막의 ‘5월의 어느 맑은 날에(Come un bel di di Maggio)’ 같은 아리아를 들어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어. 게다가 정통 오페라 공연은 대개 3시간 정도 걸리지만 이건 110분에 오페라의 정수를 한껏 보여준다는 점에서 입문용으로도 제격이야.

 

 

 

 

자, 이번 달엔 추천할 책이 세 권이야. 일단 ‘위대한 개츠비’. 나가사와 선배가 와타나베에게 “세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그 책이야(멀뚱멀뚱 보고 있는 당신,  뭐야. 설마 ‘상실의 시대’ 도 안 읽은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위대한 개츠비’ 가 개봉해. 바즈 루어만이 감독인데 재즈 시대의 감성을 어떻게 일렉트로니카에 실어 낼지 무척 궁금한 작품이지.

 

아무튼 사설 빼고, ‘위대한 개츠비’(4800원)는 꼭 읽어볼 만한 작품이야. 그리고 민음사에서 나온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선’ 두 권(각각 7000원, 6650원)을 추천하지. 저자가 생전에 썼던 수백편(?)의 단편 중에 10여편을 골랐어. 이 단편들을 읽으면 섬세하고도 풍부한 감성에 일단 놀라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소재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나 다시 한번 놀랄 거야.

 

 

 

 

아, 단편선 2권에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인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도 실려 있어. 물론 원작이라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 아무튼 읽고 나면 왜 겨울엔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하는지 느끼게 될거야.

 

참고로 위에 쓴 가격은 모두 인터넷 서점 yes24 가격이야. 세 권 합해 2만원이 채 안 돼. 이렇게 고전은 여러 가지로 이익이야.

그럼 다들 2월 잘 보내. 3월에 만나자고.


이자람 ‘사천가’                                                                  5만원
브레겐츠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3만원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단편선 1’ ‘단편선 2’     1만8450원
합계                                                                           9만8450원

 

 

 

브레겐츠 오페라의 호반무대입니다. '안드레아 세니에' 무대는 유명한 그림 '마라의 죽음'을 테마로 만들어졌더군요. 혁명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선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많은 분들이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라스'에서 이 브레겐츠 오페라 장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극중의 공연은 '토스카'였죠.

 

 

 

 

저도 브레겐츠는 가보지 못했지만 베로나는 가 봤습니다. 로마시대에 건설된 돌 건물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게 참 놀랍기도 했고 분위기는 그만입니다만, 사실 저만한 크기의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건 살짝 만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본 공연은 '아이다'였는데 아쉽게도 라다메스 역의 테너가 이런 대공연장을 감당할 수 있는 음량을 가진 가수가 아니더군요. 물론 무대 앞쪽 분들에게는 별 문제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공연이 '아이다'였기에 원형경기장에 걸맞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만으로도 불만은 없었습니다. (진짜 코끼리도 나오더군요.)

 

이제부터는 각론. '안드레아 세니에' 4막에서 죽음을 앞둔 세니에가 부르는 '5월의 어느 맑은 날에 Come un bel di di maggio'. 개인적으로 역사상 최고의 세니에라고 생각하는 마리오 델 모나코의 노래입니다.

 

 

 

 

1막에서 세니에가 부르는 '어느날 파란 하늘을 보다가 Un di all 'azzurro spazio (Improvviso)'. 마르첼로 알바레스의 절창. 호쾌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가 그만입니다.

 

 

 

 

너무 '안드레아 세니에'로 몰고 가서 그렇습니다만, '사천가'는 그닥 따로 소개할만한 영상이 만만치 않군요. 직접 가서 감동을 느끼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소개했는데 정작 2월이 되자 메가박스 측이 브레겐츠 오페라를 아이다로 바꿔 버렸다는... ㅠㅠ 뭐 다시 안드레아 세니에로 돌아올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새삼 이 공간에 풀어놓을 방법은 없는 듯 합니다. 흔히 이 이야기는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로 소개되곤 합니다. 젊은 날의 열정을 잊지 않은 남자의 고독한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바쳤던 여신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였는가 하는 처절한 반성이 읽는 이를 서늘하고 축축한 냉기 속으로 이끄는 작품이죠.

 

 

 

단편선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다시 찾아온 바빌론'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장수 안에 한 남자의 반생과 반성, 그리고 재생의 가능성이 차곡 차곡 정리 잘 된 서랍 안처럼 담겨 있기 때문...이라면 너무 도식적인 표현이군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파리'의 원작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아시는 분이라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위 사진의 남자는 무명 시절의 로저 무어.)

 

사실 피츠제럴드는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한 가지의 정서를 수십개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재능이 기가 막힙니다. 열정과 의욕을 가진 젊은 남자가 있고, 그 남자의 혼을 뽑아낼 정도로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젊은 미녀가 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위해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지만, 여자는 그리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고, 그 실패는 남자에게 좀 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사실 피츠제럴드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이런 식의 여성혐오(?)^^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의 여주인공들은 남자에게 어떤 영감도 주지 않죠. 남자들에게 있어 인생의 트로피 역할을 합니다만 동시에 남자들을 파멸시키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와 아내 젤다의 사연을 보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의 어떤 작품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불균형을 전제로 쓰여진 작품들이기 때문에, 남자의 열정 역시 결국은 무의미한 집념으로 밝혀지고 맙니다. 가끔 '개츠비 같은 식지 않는 사랑'을 여자에게 말하는 남자들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건 사실은 '당신에 대한 내 열정은 결국 착각에서 비롯된 인생의 낭비였다는 것이 증명될 거야'라는 뜻입니다. 피츠제럴드 식으로 말하자면.)

 

 

아무튼 2월이 무르익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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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시사회를 연 뒤부터 '물건이 하나 터졌다'는 소문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간간이 '재미있는데 와 닿지 않는다'는 평도 섞여 있었지만, 아무튼 최근에 개봉했던 수많은 영화들에 비해 [베를린]이 '급이 다르다'는 느낌은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사실 직접 보기 전에 오는 이런 호평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호평들에 발맞춰 기대치도 그만치 급격하게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기대치가 오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면 실망하기도 쉽고, 사소한 꼬투리도 크게 보이는 면이 있죠. 반면 많은 사람들이 '너무 기대는 안 하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영화에서는 의외의 장점이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요즘 홍보사 직원들은 시사회에 오는 기자들에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도 합니다. 무조건 걸작이라고 칭찬하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거죠.^^)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큰 기대를 하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물건'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사실 그 정도를 넘어서 최근 수년 내 개봉했던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였습니다.

 

 

 

베를린의 한 호텔. 러시아인 무기상과 아랍 테러리스트, 그리고 북한 요원 표종성(하정우)이 한 객실에서 비밀리에 모의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산 무기를 아랍 조직에 팔기 위한 비즈니스 미팅인 것이죠. 호텔 밖에는 이 미팅을 감시하는 정진수 반장(한석규)의 국정원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을 덮치려는 순간, 스스로를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 요원들이라고 밝히는 무리들이 먼저 방을 습격합니다. 이들은 북한 요원인 표종성에게 '너에겐 관심 없으니 자리를 뜨라'고 요구하죠. 정진수 팀은 방을 떠난 표종성을 추적해 결국 머리에 총을 겨누기까지 하지만 현장에서 놓쳐 버리고 맙니다.

 

국정원 베를린 지부는 초상집. 반면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이경영)은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의아해 하고, 북한은 베를린 대사관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군부 실세의 아들이며 엘리트 요원인 동명수(류승범)를 파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통역요원이며 표종성의 아내인 련정희(전지현)에 대한 의혹이 발생합니다.

 

 

 

 

'베를린'은 굳이 강점과 약점을 말하기가 힘든 영화입니다. 우선 시나리오 단계에서 완결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납니다. 한마디로 '말 안 되는 장면', 그리고 감정선을 강화한답시고 영화의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지루한 장면이 없습니다. 액션이 화면을 지배하고, 질주하는 스포츠카에서 물건을 떨구듯 관객에게 액션 틈틈이 사건을 툭툭 던지는 진행이지만, 그렇다고 뒤에 가서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빈틈이 거의 없습니다.

 

이야기 부분이 이럴진대 액션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 부분은 이미 10년 전에도 국내 1인자였던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니 말입니다. 배우들은 더더욱 할 말이 없죠. 많은 사람들이 한석규-하정우-류승범-전지현이라는 라인업에서 이미 사기 라인업이라는 생각을 했을테니 말입니다. 여기에 이경영 곽도원 최무성 김서형 같은 조연진들까지, 짜임새로는 '도둑들'을 능가하는 올스타 팀입니다.

 

특히 90년대의 최강 멜로드라마 주역에서 '색깔있는 악역' 중심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짜고 있는 한석규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이 영화에서 하정우와 류승범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21세기 이후 한국 영화 최고의 대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전부터 류승완 감독의 능력 중에서 '류승범이라는 동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적잖은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베를린'에서 이 생각이 더욱 굳어집니다.

 

(얼마전 '무비위크'에 '왜 돈 들인 영화일수록 촌스러워질까' 라는 식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아마도 '베를린'을 보고 난 뒤에는 그런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아래 부분,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영화 보시는 데 방해될 것 같진 않습니다. 혹시나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게 좀 불편하신 분이라면, 미리 보시는 것도 좋을 정도 수준입니다.

 

이번엔 알아서 판단하시길.^^

 

그리고 어쩌나 저쩌나, '베를린'은 강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한국판 본 시리즈'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제이슨 본이 생각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본 시리즈'를 단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하이테크 시대에 걸맞지 않는 맨손 격투 위주의 액션 신, 그리고 숨쉴 새 없이 흘러가는 진행 속도, 마지막으로 개개인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 없이 국가와 조직 사이의 '큰 그림' 속에서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 등에서 이 영화는 '본 시리즈'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본 시리즈'가 한 획을 그은 뒤, 스파이 액션 장르의 영화 가운데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일단 본 시리즈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007 시리즈가 아예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린 채 '007판 제이슨 본 시리즈'로 간판을 바꿔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두고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 무비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국내 관객들은 '베를린'을 가리켜 '본 시리즈의 복사판'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는 듯 합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장 강하게 하는 분들은 본 시리즈와 '베를린' 외에는 본 영화가 거의 없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미국 드라마 '24'와 '베를린'만을 본 사람이라면 "이거 뭐야. '24'의 복사판이잖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죠.

 

(이런 예는 사실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음악 쪽 얘기지만, 한 10년 전에는 "모든 애시드 재즈 뮤지션들은 스티비 원더의 표절"이라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죠. 90년대에는 신해철이 "오오 듀스는 서태지의 표절이구나"라는 말로 댄스 뮤직에 무지한 사람들을 비꼬기도 했고. 또 일부 관객들은 '한국판 본 시리즈'라는 말을 칭찬으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밖에 의외의 반응 중에는 '와 닿지 않는다' 는 것이 있었는데, 오히려 이 영화의 강점으로 '불필요한 감정선을 제거했다'는 점을 꼽는 저로서는 참 이해하기 힘든 반응입니다. 하정우와 전지현의 묘한 부부관계는 많은 부분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입장인데, 그 부분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당과 국가의 명령이 인생에 있어 최우선인 '공화국 영웅' 표종성과 부부로 살기 위해서 련정희는 많은 것을 희생했을 겁니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부부로 맺어졌는지, 그리고 첫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쪽은 관객의 상상력이 채워 줘야 할 부분이죠. 영화상으로는 전지현의 쓸쓸한 눈빛이면 충분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전지현의 발전은 참 놀랍습니다. 이미 인생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된 여자. 수많은 상처를 안으로 향하게 해서 가슴 속 응어리가 천근은 될 듯한 여자의 눈빛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승맞으면서도 강인함을 품은 이런 여자의 역할을 전지현이 제대로 연기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역시 세월과 경험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엄밀히 말해 가장 동기가 불분명한 인물은 한석규가 연기하는 정진수 반장인데, 이 부분은 표종성의 대사인 "난 외려 당신(정진수)이 왜 이 일에 목숨거는지 이해가 안 되오"로 만사 OK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어디에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영화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던 장면.)

 

 

 

 

그밖에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는 평에 대해서는 감히 반박하기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모사드와 CIA, 아랍 테러 조직이 한 자리에 있으면 대략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북한의 해외 대사관이 외화 벌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사전 이해가 없는 사람(더 단적으로 말해 모사드가 이스라엘 정보기구의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영화의 도입부는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마도 이 영화 전체가 그리 친절하지 않게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영화 앞 부분에 '모사드' '슈퍼노트(자막에는 그냥 '위조지폐'라고 나왔죠)' 같은 단어들이 아무 추가 설명 없이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거 말 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여기에 대한 불만이 적잖이 있는 듯 합니다.

 

이 맥락에서 더 많은 관객을 위해서 좀 더 친절한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부분은 감독보다는 제작자가 더 강력한 입장을 내세웠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런 '불친절함'이 약점이라면 약점일 수 있겠습니다.

 

(뭐, 그런데 "대체 블라디보스톡은 생뚱맞게 왜 가는 거냐?"는 수준의 관객들도 적지 않은 것 같고...^^  <- 영화를 보신 분이라야 무슨 말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한국 영화가 발전하는 데 있어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을 벤치마킹 하는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베를린'과 본 시리즈의 관계는 'R2B'와 '탑 건'의 관계 혹은 '타워'와 '타워링'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적이고 깔끔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취향도 있겠지만 '베를린'을 보지 않고 2013년에 영화를 봤다고 말하시면 참 곤란할 듯 합니다. 초대행 배급사의 극장 싹쓸이 만행이 불쾌하신 분들이라도, 그런 어마어마한 힘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데 쓰인다면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지 않을까요.

 

P.S. 많은 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속편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하네요.

 

P.S.2. '세계에서 가장 밥을 맛있게 먹는 배우' 하정우의 솜씨는 그 짧은 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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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행복자판기] 새로운 회사, 새로운 브랜드를 알리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융단폭격하듯 이미지를 쏟아내는 방법이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나 그 널리 알려야 할 새로운 브랜드가 방송사인 경우에는 참 난처합니다.

 

우리나라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지상파 4개 채널입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노력을 해도, 지상파 3사에서 다른 채널 홍보를 위한 콘텐트를 방송해 줄 리는 없겠죠. 그러다 보니 신생 방송사는 스스로를 알릴 방법이 참 마땅치 않습니다.

 

특히나 그 브랜드가, 별 이유 없이 몇몇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거나, 실제 담고 있는 콘텐트와는 달리 뭔가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한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피하고 싶을 때 참 할 일이 막막해집니다.

 

그래서 별별 생각을 다 해 본 끝에 나온 게 'JTBC 행복자판기'였습니다.

 

 

 

처음 봐선 뭐라 하기 힘든 기계입니다.

 

 

이렇게 생긴 기계가 지난 1월19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1층 광장에 나타났습니다.

 

(물론 끝난게 아닙니다. 26일과 2월2일에도 같은 장소에 서 있을 겁니다.)

 

 

 

일반 음료수 자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크기. 그리고 컨셉트는 맨인 블랙입니다. 요원들의 보호를 받는 비싼 기계죠.

 

(사실 기계를 보호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 앞에 모이실 분들의 안전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행사 전반을 간단하게 보시려면 이 동영상이 도움이 될 겁니다.

 

청소 아주머니를 당황하게 한 기계의 정체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담고 싶은 생각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희는 여러분과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존의 방송사들이 하지 않는 참신한 방법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 곁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위해 직접 유동인구 많은 공간으로 나섰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저렇게 성황이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좀 눈치 보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러다 슬슬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건 터칭 게임.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만큼 정해진 시간 동안 버튼을 두들기면 상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 감각? 전혀 필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체력과 끈기. 두들기면 두들기는 만큼 상품이 나옵니다. 상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죠?

 

동남아 2인 여행권이 최고상품입니다. 그리고는 2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 역시 20만원 상당의 목걸이(여자용), 5만원 상당의 외식상품권, 장미꽃다발, 그밖에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무릎담요, 보온병, 장갑, 목도리, 그리고 핸드폰 거치대에서 (간신히 꽝을 면한 분들을 위한^^) 뻥튀기까지 다양한 선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다수 이벤트와는 달리 제세공과금도 저희가 부담합니다. 도전자들은 몸만 있으면 됩니다.

 

아, 몸으로 하실 일은 참 많습니다.

 

 

 

제기를 차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몸을 쓴다면 춤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이런 외국인에서,

 

 

 

이런 어르신까지 다양한 분들이 도전합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프로 수준의 열정!

 

 

 

 

 

이런 어린이들은 저희 맨인블랙 요원들이 나서기도 합니다.

 

 

물론 커플들이 도전하시면 더 할 일이 많습니다.

 

연인 안아 올리기는 기본이죠.

 

 

아, 물론 모든 남자친구가 연인들을 솜사탕처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안전요원들을 긴장시키는 분도...^^

 

 

 

 

뭐 풍선 터뜨리기 게임은 어린애 장난 같을 수도 있겠죠?

 

 

 

 

 

약간 과격한 분들.... 아, 커플댄스 현장입니다.^ (저 아래 동영상 3편을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관심 많은 어린이들은 단체로 댄스 경연대회를 펼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TV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등장하는 '대박 터뜨리기' 게임이 현장에서 대 히트였는데, 사진상으로는 보여드릴 방법이 없군요. 저 위에 있는 동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벤트 첫날 진행 후 가장 많이 놀란 것이 젊은이들의 거침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댄스나 미션 도전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커플 미션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이' 키스 10초' 미션이더군요. 당당하고 깔끔하게. 음;;; (개인적으로도 좀 늦게 태어나 볼 걸 하는 아쉬움이...^^)

 

그리고 이번 주, 다음 주 이어질 2, 3차 이벤트 때에는 또 어떤 모습들이 나올 지 기대가 더욱 커졌습니다. 물론 행사에 참여한 분들이나, 구경하는 분들이나 모두 웃음을 띄우고 계셨다는 점에서, 이런 행사를 하는 보람이 더욱 커졌습니다.

 

아무튼 다양한 도전자들이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은 동영상 한 편에 다 담기엔 모자라더군요. 아래 동영상들이 더 재미있습니다.

 

 

 

다양한 커플들의 키스 퍼레이드가 담긴 2탄...^^

 

 

 

 

그리고 화려한 댄스 위주로 편집된 3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지.

 

JTBC 행복자판기 이벤트는 이번 26일(토), 그리고 2월2일(토)에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펼쳐집니다. 대략 피크 타임은 낮 12시에서 오후 5시 사이 쯤 될 듯 합니다. 물론 상품이 다 떨어지면 시간 전에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한번쯤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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