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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롯데 자이언츠의 11번은 영구결번이 됐군요. 과연 이제 와서 구단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이 팬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최동원 잔혹사' 풍의 냄새를 풍기기는 합니다만, 최동원이 속해 있던 '70년대 야구'의 풍경을 바라볼 때 최동원의 혹사는 어찌 보면 거의 모든 투수들, 특히 에이스 급 투수들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김경홍(가네다 마사이치. 한때 김정일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의 투구사를 보면 50~60년대 일본 프로야구 역시 '투수 혹사'라는 면에선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매년 투구 이닝이 300이닝이 넘고 '25승20패' '24승24패' 등의 연간 기록을 보다 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최동원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것을 안 세대입니다. 어찌 보면 불행한 세대일 수도 있겠죠.


순서대로: 1편은 이쪽입니다. http://5card.tistory.com/m/post/view/id/954


고교생 최동원이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관심사였듯 연세대 에이스이자 한국 최고 투수 최동원의 졸업 후 진로는 국민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국내 실업야구 사정상 최동원을 데려갈 수 있을만한 팀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은행팀이 아닌 기업 팀, 즉 롯데, 한국화장품, 포철 등이나 그만한 스카우트 비용을 낼 거라는 게 기정사실이었죠. 특히 롯데는 김동엽 감독에 의한 창단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세미 프로 냄새를 강하게 풍겼습니다. 부산 지역과의 끈끈한 연고 의식으로 박영길 감독을 비롯해 경남고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는 점 역시 최동원이 롯데로 갈 것이라는 예상을 짙게 했습니다.

하지만 롯데 입단도 만만찮은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게 '최윤식씨'와 '선판규씨'는 스타플레이어나 감독 못잖은 유명인이었습니다. 당연히 두 분은 최동원과 선동렬, 두 국보급 투수의 아버지들이고 그만치 열성적으로 아들을 보살핀 분들입니다.


대학 이후 최동원의 진로에 대한 입장들은 대부분 최윤식씨의 입을 통해 알려졌는데, 그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주장들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대학 시절 구타 사건 뒤엔 "동아대로 전학시켜 달라. 맞아 가면서 연세대에서 운동을 시키지 않겠다", 대학 졸업반일 때에는 "롯데에 가지 않고 그냥 군 입대를 시키겠다", 81년 실업야구 코리안시리즈를 앞두곤 "시리즈가 끝나면 은퇴시키겠다"는 등의 말들이 최윤식씨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당연히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억지였고 이런 주장들은 최동원 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일생을 둔 동갑내기 라이벌 김시진은 포철과 입단 줄다리기를 하다가 이른 군입대를 선택, 경리단 소속이 됩니다. 포철이 '거액의 스카우트 비용을 지출할 상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대체 그 '거액'은 얼마쯤이었을까요.



그렇게 해서 81년. 곡절 끝에 최동원은 "무려 3000만원의 계약금에" 아마추어 롯데자이언츠의 에이스가 됐습니다. 그해 롯데는 사실상 투수 최동원과 강만식을 스카우트하는 정도로 선수 보강을 마쳤습니다. 역시 이미 최강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기 방식상 여러 명의 투수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포철은 상당히 가난한 기업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과 당시의 물가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해야겠죠.^^)

당시의 각 팀 전력을 정리한 기사입니다. 초기 프로야구를 휩쓴 스타들이 당시엔 어떤 팀 소속으로 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성인야구의 특성상 경리단과 성무, 두개의 군 팀이 가장 유리한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지난번 글에서 충분히 설명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81년 방식은 10개 팀이 4차례의 리그(전기 1,2차와 후기 1,2차)를 펼치는 것. 그래서 총 36게임을 치르게 됐고 롯데와 경리단이 각각 전,후기를 나눠 가져 코리언시리즈에서 맞붙었습니다.

관심이 가는 건 최동원의 등판입니다. 총 36경기 가운데 무려 30경기에 등판, 17승4패를 기록했습니다. 매일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지나치다 싶은데... 전기리그만 놓고 보면 더 기가 막힙니다. 총 18경기에서 최동원이 13승1패를 기록한 겁니다. 전기 1,2차 리그를 합한 롯데의 성적은 18승2패.

이런 말이 안 되는 기록이 가능했던 건 당시의 진행 방식입니다. 일단 10팀이 풀리그를 벌이면 경기수는 총 45경기. 하루 3~4경기씩 약 2주에 걸쳐 대회가 진행됩니다. 매일 한 경기씩 완투하던 최동원에겐 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대회 끝나면 또 몇달 푹 쉬지 뭐", 이런 식). 성인야구라고는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얘기했듯 30대 선수라곤 리그 전체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 한 젊은 리그에서 최동원을 막을 적수는 김시진 정도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전기 1,2차 리그를 휩쓴 롯데는 후기 리그에선 다소 부진합니다. 최동원이 지친 탓인지, 아니면 굳이 코리언시리즈를 없앨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후기 우승은 경리단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5판 3선승제의 코리언시리즈가 개막된 겁니다.

이 무렵, 메이저리그의 관심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같은해 9월, 결국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는 AP 통신의 보도, 그리고 계약이 "사기계약이라 무산됐다"는 최윤식씨의 발표, 이어 왜 사기계약인지에 대한 해설 기사 등등이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을 정리한 1981년 9월24일자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좀 길지만,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재합니다.

금테안경을 끼고 시속 1백5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야구의 간판스타 최동원(23·롯데자이언츠)이 미국 프로야구 아메리컨리그 소속인 터론토 블루 제이즈팀과 입단계약을 맺었다는 23일의 AP통신 보도는 국내 야구계를 흥분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뉴스였다.
결론적으로 최동원의 캐나다 터론토에 프랜차이즈(전용구장)를 둔 블루 제이즈 입단은 현재 양측의 조건이 엇갈려 결렬상태에 있다고 최의 전권을 쥐고있는 부친 최윤식씨(52)가 23일 밝혔다.
<정부차원 타결모색>
그러나 최에 대한 미련을 못버린 블루제이즈 구단은 스카우트의 관건이 되는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의 고위인사가 오는 27일 방한하는 캐나다 「트뤼도」수상 일행과 함께 와 한국정부측에 비공식으로 요청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는 AP통신이 『블루제이즈측은 최의 병역문제를 28일 한국정부가 보류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보도한 기사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농구 전 국가대표 김명자씨가 통역>
한편 최동원의 블루 제이즈 입단계약은 지난 15일 서울 플라자호텔 18층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고 부친 최씨가 말했다.
전 국가대표 여자 농구선수인 김명자씨(36)가 스카우터들이 와 14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롯데-성무와의 경기를 보고 15일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 경기에서 최동원은 완투, 2-0으로 패했으나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잰 이들은 만족을 표시했다.
김명자씨의 남편인 미국인「프랭키·위키」씨(미8군 골프클럽지배인)는 터론토에 오래 거주한 일이 있어 블루제이즈측은 이들 부부를 통역으로 내세운 것이다.
열렬한 스포츠맨인「위키」씨는 『만일 내 한 팔을 잘라 내 아들이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만 들어갈 수 있다면 기꺼이 이를 해내겠다』고 극언할 정도로 흥분되어 이번 일에 성의를 다해 도와주었다는 최씨의 설명이다. 15일 밤 플라자호텔에서 블루제이즈 구단의 지난25년동안 스카우트요원으로 활약한 「엘리어트·웨일」인사담당관을 비롯, 「봅·주크」감독, 그리고 「웨인·모건」스카우터 등 3명을 혼자서 만난 최씨는 계약금 20만 달러(약1억4천 만원)에 연봉 20만 달러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메이저리그 규약상 신인에겐 첫해에 연봉 3만2천5백 달러(약2천2백75만원)이상을 줄 수 없으며 2년째부터 향후 4년 동안 총계 61만 달러(약4억2천7백만원)를 지급하는 조건의 계약서를 제시해왔다.
<깨알같은 계약서>
최씨는 약간 미심쩍기는 했지만 깨알같은 글씨로 장장 7면에 걸친 계약서를 얼른 알 수도 없어 사인을 한 뒤 사본을 하나 얻어 돌아왔다. 그러나 최씨는 메이저리그 신인선수의 연봉 최하한선이 3만2천5백 달러라는 조항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계약에 따라선 이 이상 제한 없이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씨가 사기계약을 했으므로 계약서를 파기하고 안하는 경우 출국정지를 요청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당황한 이들은 계약은 무효로 하되 본사와의 관계로 계약서를 폐기할 수는 없다며 17일 떠났다. 최씨는 자기아들을 높이 평가하여 이역만리를 찾아온 손님들이어서 계약파기만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23일 느닷없이 외신으로 입단계약이 이루어졌다는 보도에 놀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최동원은 최근 로스앤젤레스 다저즈 팀에서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되는 경우엔 이 블루제이즈와의 계약이 불씨로 남게 됐는데 최씨도 이점은 시인하고 있다.
한편 최동원은 오는 28일 병역문제가 해결되는 경우 블루제이즈 팀의 입단가능성이 남아있어 앞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면, 신인 연봉 상한선이라는 말을 믿고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하한선이었다는 것이고, 이를 속인 데 항의해 계약무효를 선언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블루제이스 측은 최윤식씨가 서명한 계약서를 파기하지 않았고, 향후 몇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최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은퇴설이 아버지 최윤식씨에 의해 제기됩니다. 이런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단과 최동원 측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별 실현 가능성 없는 '은퇴'같은 말이 나온 것은 좀 아쉽다고나 할까요.

○…한국야구의 간판투수인 최동원 (23·롯데) 을 둘러싸고 화제와 잡음이 꼬리를 물고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인 터론토 블루제이즈 입단여부로 화재를 뿌렸던 최동원이 이번에는 은퇴설이 나돌아 야구계를 아연케하고 있다. 연세대 진학과 지난해 롯데입단 때도 잦은 후문을 낳았던 최동원의 이번 은퇴설은 잡음의 극치를 이룬 느낌.
부산에 머무르고 있는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씨(51)는『잘하면 잘하는 대로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데도 조금만 잘못하면 탓하고 인기에 먹칠을 하는 현재의 국내야구풍토에서는 더 이상 야구를 시키고 싶지 않다』면서『롯데를 떠나기 위해서라도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롯데­경리단의 코리언시리즈를 끝으로 은튀 시킬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해 롯데와의 심한 불화관계를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최씨는 『외국에 나가는 길이 있으면 내보내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해 은퇴는 미국프로야구진출을 위한 연막으로 해석하는 야구인들이 많다.
이같은 최씨의 발언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둔데다 체육특기자의 병역혜택이 발표된·직후에 일어난 것이어서 야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약삭 빠른 태도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최동원과 함께 청주에 전지훈련중인 박영길 롯데감독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하고 『더구나 코리언시리즈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일어난 것이어서 지극히 유감스럽다』고 불쾌한 표정이었다.
아뭏든 앞으로의 최동원의 진로가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있다.

네. 진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렇게 뒤숭숭한 가운데 코리언시리즈가 시작됩니다. 후기리그 들어 최동원이 부진 아닌 부진을 보인 결과 롯데가 후기 우승을 경리단에 내줬다는 점에서, 혹시 최동원이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에 따른 의욕 부진으로 흔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건 기우였습니다.

(물론 롯데 구단이 메이저리그 진출 포기에 상응하는 다른 당근을 제시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또 이해 하반기부터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 새롭게 의욕에 불을 질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81년의 최동원-김시진 시리즈를 84년 한국시리즈의 전초전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맞는 말입니다. 필생의 동갑내기 라이벌과 맞붙어 6경기 전부를 등판하고 2승을 올려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 84년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3승1무2패로 롯데가 경리단을 꺾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거죠.

당시의 보도.

끈기의 롯데가 2년만에 실업야구 왕자자리에 복귀했다. 초반2연패를 기록했던 롯데는 31일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코리언시리즈 6차전에서 7회초 9번 손상대의 천금같은 결승꼴로훔런으로 지난해 우승팀인 훈리단을 6-4로 물리치고 79년에 이어 2년만에우승을 되찾았다.
롯데는 월드시리즈에서의 로스앤젤레스다저즈가 2연패후 내리 4연승을 거두고 괘권을 안은 것처럼 초반 2연패 후. 3연승을 기록, 일대 역전승을 장식한것이다.
한편 롯데의 최동원은 최우수선수 (MVP)·최다승리투수 (17승4패) 그리고 신인투수상등 3관왕을, 이해창은 최고 수훈상을 각각 차지했다.
이날 롯데는 최동원을 6게임째 등판시켰고, 경리단은 권영호·김시진 (6회)을 계투시켜 숨가쁜 한판승부를 펼쳤다.


다만 이때 적인 경리단에 김시진과 권영호만 있었다면 84년에는 황금박쥐 김일융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이 하나 더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드라마틱하다고 할까요. 어쨌든 이 81년 시리즈가 '최동원의 전설'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당시를 사셨던 분들에게도 이 81년 시리즈는 큰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만치 '실업야구' 자체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아니었죠. 코리언 시리즈 기사가 신문 스포츠면의 톱도 아니고 2단 기사 정도로 처리됐으니 말입니다. 81년 한국 야구계의 가장 큰 스타는 이미 최동원이 아니라 박노준이었고, 이 해의 가장 큰 사건은 최동원의 성인야구 데뷔와 스윕이 아니라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박노준의 발목이 부러진 것이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얘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최동원이 우승을 했다 해도 '뭐 한국 야구는 원래 최동원인데...'하는 것이 일반 통념이었기 때문에 큰 관심이 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최동원이 실업야구에 진출해 우승하지 못했다면 '최동원도 이제 한물 갔구나'하는 게 뉴스가 됐을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틱하게 바뀝니다. 1981년 10월말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긴다"는 발표가 나자 이듬해인 82년부터 당장 리그 시작이 확정될 정도로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82년 서울에서 세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릴 예정이라 83년에 개막한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도 당시의 '하면 된다' 분위기에서는 어림없었을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가 한국의 우승으로 끝났고, 선동렬이라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투수가 발굴됐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대표팀의 면면을 소개하는 선에서 마쳐야 할 듯 합니다. 감질나시겠지만 하나 더 써야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한야구협회는 20일 오는 9월4일부터 18일까지 서울잠실구장및 서울운동장·인천구장에서 열릴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23명을 최종확정하고 단장에 김상겸 부회장을 선임했다.
12월 선발한 국가대표상비군 28명중 그동안 국내성적과 대만전지훈련 (2월)결과를 토대로 윤학길 김정수(이상 연세대) 이상군(한양대) 김봉근(동국대) 김상기(인하대) 등 투수5명을 제외하고 포수및 내·외야수들은 그대로 선발, 오는 26일부터 영동유드호스텔에서 합동훈련에 들어가기로했다.
최종확정돤 대표선수를 보면 실업에서는 최동원 임호균 (이상한전) 김시진 장효조(이상경리단) 김재박 이해창 (이상한화) 등 11명이며 대학에서는 선동렬 박노준 김정수(이상고려대) 박영태 조성옥 김상훈 (이상동아대) 오영일 김진우(이상인하대)등 12명으로 구성, 대학과 실업, 노장과 신예가 조화를 이루고있다. 사상 처음 대회를 유치한 한국은 이번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고있으나 힘의 야구를 구사하고있는 쿠바·미국·일본등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올해 프로야구출범으로 경험있는 많은 유망선수들이 프로로 진출, 우승을 차지하는데는 다소 어두운 전망이다.
이번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1.1세에 평균신장 178.2cm, 타율2할8푼으로 되어있다.
한편 어우홍대표팀 감독(한전)은 『프로로 많은 선수를 빼앗겨 경험이 부족한것이 흠이지만 노련한 실업선수들과 패기의 대학선수들이 잘만 조화된다면 쿠바·미국등과 한번 겨뤄볼만하다』면서『14일동안 11게임을 치러야하기때문에 평균연령이 22.1세로 구성된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표팁명단
▲단강=김상겸 ▲총무=김진영(인하대감독) ▲감독=어우홍 ▲코치=배성서(한양대) 김 충 (상업은)▲투수=김시진 (23 189cm) 최동원 (25·179cm) 임호균 (26·l75cm·이상 한전) 선동렬(20·183cm) 박노준(21·178cm·이상 고려대) 오영일(22·185m·인하대) 박동수(22· 174cm·동아대) ▲포수=심재원(29·178cm·한화) 김진우(25·l88cm·인하대) 한문연(22·l73cm·동아대) ▲내야수=김상훈(23·180cm) 박영태(24·180cm·이상 동아대) 이석규(24·178cm ) 정구선(25·178cm·이상경리단)한대화(21·177cm·동국대) 김재박(28·174cm·한화) 이선웅(22·173cm·인하대)▲외야수=이해창 (29·180cm·한화) 장효조 (25·174cm·경리단) 박종훈 (23·176cm·상업은) 유두열 (27·172cm·한전) 조성옥 (22·176cm·동아대) 김정수(23·177cm·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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