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우결수] 두 편의 따끈따끈한 드라마가 방송 대기중입니다. 그중에도 '무자식 상팔자'는 전 방송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상품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작가이면서 연기자의 지명도를 능가하는 유일한 작가, 김수현 작가의 신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배우들까지 이순재, 유동근, 김해숙, 송승환, 임예진, 윤다훈 등등등 이름만 대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연기 9단들로 포진해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가대표 드라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사실 그런 가운데서 찜찜했던 것은 다른 한 편의 드라마, 바로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였습니다. 전사적으로 '무자식 상팔자'를 지원하는 분위기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면서도 안팎의 관심이 덜 몰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 (개인적으로는 '엄마 왜 나는 학원 안 보내줘?'라고 묻는 둘째의 눈망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런 미안한 마음을 물리쳐주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23일의 온라인 공개.

 

 

 

사실 두 편의 드라마 모두 1회를 인터넷을 통해 선공개하면서도, 아무래도 더 큰 관심이 몰렸던 쪽은 '무자식 상팔자'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작가와 배우들의 지명도에서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공개의 장이 된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도 '무자식 상팔자' 쪽에 훨씬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온라인에서 힘을 발휘할 쪽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는 성준/김영광 투탑. 10대와 20대 여성층을 사로잡을 수 있는 모델 출신의 두 신인이 어지간히 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우결수'는 방송 첫날 이미 3만 뷰를 넘기며 돌진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래 보시는 바와 같이 첫 방송 당일인 29일에는 12만 뷰를 바라볼 정도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너무 많이 보시는게 아닌가 우려될 지경입니다.^^)

 

 

 

물론 다른 무엇보다 연출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전력의 핵심입니다. 김윤철 감독은 누가 뭐래도 당시의 국민 드라마였던 '내이름은 김삼순'의 연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명희 작가는 지명도에서는 다소 뒤질지 몰라도 매주 금요일 밤 주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사랑과 전쟁'을 오랫동안 지휘한 베테랑입니다.

 

스토리라인도 20대에서 50대까지 여성 시청층의 관심을 끌 만 합니다. 여기 한 엄마가 있습니다. 이름은 들자(이미숙). 남자 하나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탓에 두 딸의 결혼에 자신의 인생을 겁니다. 애들 시집 잘 보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죠.

 

 

 

그런 소신 덕분에 큰 딸 혜진(정애연)을 의사 남편(김성민)에게 시집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죠. 아무튼 그러고 나니 눈에 걸리는 것이 둘째 혜윤(정소민)입니다. 탐문해 본 결과 혜윤이 사귀고 있고, 결혼하겠다고 나선 상대는 겉보기에 그냥 그저 그런 정훈(성준)입니다. 아버지가 소아과 의사라는 것 외에는 탐탁치 않습니다.

 

당연히 들자의 평소 성격대로 갈라놓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훈네 집이 그렇게 희망 없는 집은 아니라는 정보가.... 이때부터 '그렇다면 너는 내 사위' 작전이 시작되겠죠?

 

 

 

이런 들자와 두 딸 커플 사이로 들자의 동생 들레(최화정)과 40대 후반 노총각 민호(김진수), 그리고 정훈의 선배이며 둘도 없는 '원조 나쁜 남자'인 레스토랑 사장 기종(김영광)과 겉보기에만 여권론자인 동비(한그루) 커플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바람기 있는 의사 남편과 재혼한 커플, 그저 사랑밖에 믿는게 없는 젊은 커플, 뒤늦게 사랑에 눈뜬 중년 처녀총각 커플, 그리고 나쁜 남자인 걸 뻔히 알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겉으로만 쿨한 커플까지 네 커플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 네 커플이 서로 죽이네 살리네, 오만가지 사랑의 양상을 그려내는 드라마가 바로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줄여서 '우결수' 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비록 자신은 연애 상대가 없지만 온 커플을 다 휘젓는 엄마 들자입니다. 두 딸, 여동생, 그리고 둘째딸의 친구까지 네 커플의 여자 쪽은 모두 들자의 영향권에 있는 인물들이죠.

 

그런 들자 역을 맡은 이미숙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훨씬 크고 우렁찼습니다. "난 겁날게 없는 사람이야! 남자 없는 집이라고 우습게 볼 생각이거들랑 애저녁에 집어 치워! 내 딸 해치는 놈은 난 죽을 때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봐!" (뭐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대사를 이미숙보다 더 잘 소화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보다 전투적이고, '천일의 약속'에서보다 딸 사랑이 지극합니다. 그리고 1부 엔딩의 바나나 우유 신... 압권입니다.^^)

 

 

 

 

23일 시사회장에서 유리알같이 매끄러운 '우결수' 1회를 봤습니다. 영상미 하나만큼은 정말 대한민국 어떤 드라마에 비겨도 부족함이 없는 장인 정신이 돋보입니다.

 

 

솔직히 말해, 같은 편이지만 흠을 잡자면, 약간 아쉬웠습니다. 대본으로 보았을 때의 재미가 95라면 드라마로 느낀 재미는 88 정도? 그만큼 대본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의 완성도가 높았던 반면, 역시 20대 초반 연기자들의 대본 구현 능력은 좀 떨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쪽에서 퉁 때리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주 적절한 간격을 두고 저쪽에서도 퉁 때리며 대사의 랠리가 이어지는 리듬감, 그 화려한 리듬감까지 기대하기엔 성준-김영광-정소민-한그루 라인은 아직 더 많은 숙련이 필요할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네 젊은 배우들은 비주얼의 위력을 뽐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굳이 꼽자면 어린 시절의 송승헌을 연상시키는 성준이 역시 발군.

 

 

 

 

또 하루 종일 정애연과 함께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던 한그루도 차세대 베이글녀 자리를 내놓지 않을 분위기였습니다.

 

아무튼 여기 저기서 하명희 작가의 '대삿발'은 불을 뿜었습니다. "내가, 니가 며칠 안에 다시 나 찾아온다는데 10원 건다." "돈 잘버는 아들은 며느리 거, 똑똑하고 학벌좋은 아들은 장모 거, 그리고 신용불량자 아들만 내 거라더라" 같은 대사는 쉽게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여자가 살아가는 데 있어 신경써야 할 돈이라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뭣보다 첫째는 혼수, 그리고 둘째는 위자료일 겁니다. 결국 '우결수'는 그 두 가지 돈에 대한 드라마가 될 전망입니다.

 

 

 

20대라면 '바로 내 연애' 이야기, 30대라면 '내가 왜 연애에서 성공하지 못했나'하는 이야기, 40대라면 '내가 노처녀라면 겪었을 법한 이야기', 50대라면 '내 딸들이 내 속 썩였던 이야기'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아내의 자격'이 방송되던 시절, 많은 20대, 30대 미혼녀들이 "내가 결혼하면 겪게 될, 너무 리얼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호러 같더라"는 애기를 했습니다. '우결수'도 그 못잖은 리얼한 이야기지만 호러보다는 웃음이 넘칩니다. 일단 1회를 보시고 직접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매주 월,화요일 11시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물론 밤입니다.

 

728x90

[무자식상팔자] 새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 첫회가 27일 방송됐습니다. 물론 이미 지난 22일, 제작발표회와 함께 온라인으로 1회가 선공개된 터라 미리 보신 분들도 적지 않겠지만, 역시 드라마는 본 방송으로 봐야 제맛인 듯. 방송 시간에 맞춰 여러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모습이 역시 믿음직 합니다.

 

'무자식 상팔자'는 방송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는 김수현 작가의 집필로 가장 큰 관심을 모아 왔습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로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분이기도 하죠.

 

그리고 오랜만에 자신의 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주말형 홈 드라마로 돌아왔습니다. 일찌기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그리고 최근에는 '인생은 아름다워'로 건재를 과시했던 장르죠. 이번에는 '무자식 상팔자'.

 

대본을 보는 순간 '이것이 최고 작가의 관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대사의 위력.

 

 

 

 

사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가 어떤 스타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겠고, 어지간한 배우들은 아예 그 대본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본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보면 제아무리 최고의 연기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 대본을 100%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눈으로 대본을 읽으면 10초 정도에 뇌에서 처리하게 될 정보를 드라마로 보게 되면 4~5초에 지나가게 됩니다. 대부분 작가들의 드라마는 그 속도에 맞춰 쓰여지는게 보통이죠. 하지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꼬박 10초를 써야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꽉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로 만들어진 상태에선 대사의 맛이 100% 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건 드라마를 먼저 보고 대본으로 나중에 보는 분들도 공통적으로 느끼곤 합니다. '아, 그때 그 대사에 이런 의미가 또 들어 있었구나'하는 걸 발견하게 된다는거죠. 재방송을 봐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랄까요.^^)

 

 

 

 

'무자식 상팔자' 첫회는 그 '대사의 신'이 또 한번 화력시범을 시작했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서울 근교의 지방 소도시. 아직도 정정한 80대 부모와 세 아들 부부, 그리고 손자들이 한 동네 이웃 사이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첫회에선 일단 이렇게 '어른들'의 캐릭터가 소개되고, 장남의 맏딸이며 판사인 소영(엄지원)이 느닷없는 임신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정말이지 속도감이며 말맛이 지금까지의 대표작들에 비쳐 손색이 없습니다.

 

 

 

 

김수현 선생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이번 드라마도 마땅히 딱 꼬집어 누가 주인공이라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건으로 보면 핵심 인물은 혼전 임신으로 초점이 된 엄지원이라고 봐야겠지만, 세 형제와 며느리 사이에 이야기가 충분히 분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무자식 상팔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버지와 세 형제의 캐릭터입니다. 특히 아버지 역의 이순재. 언제 어떤 작품에서든 진가를 드러내는 한국 드라마의 간판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이번 캐릭터는 '잔소리 폭격기'.

 

수돗물 한방울에서 더덕구이에 붙은 고추장 양념까지 어느 것 하나 눈에 거스르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하기도 쉽지 않지만, 원래 잔소리는 맞는 말이 더 지긋지긋하 법이죠. 게다가 한번에 끝나는 법도 없고, 한번 꼬투리를 잡히면 죽을 때까지 되풀이하는 집요함까지 갖춘 캐릭터.^^

 

평생을 같이 살아 온 할머니(서우림)는 이제 습관이 됐을 법도 하지만, 60년을 함께 있어도 잔소리는 역시 잔소리. 서서히 할머니도 이 끝없는 잔소리에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합니다.

 

 

 

 

장남 희재 역의 유동근은 속없는 무골 호인.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듯,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듯. 일생을 조용조용 지내온 소심한 장남이지만 한 순간에 일생의 수양이 물거품이 됩니다. 시집 안 간 딸이 만삭이 되어 온 광경을 보면 아니 그럴 수가 없겠죠.

 

 

 

둘째 희명 역의 송승환. 중견 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인물. 회사 생활에선 유연하고 원만한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막상 출근할 일이 없으면 급속도로 위축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히나 경제권을 아내(임예진)에게 빼앗긴 뒤라 더욱 심합니다.

 

 

 

세째 희규 역의 윤다훈. 두 형에 비해 공부도 짧고 생각도 짧은 막내. 대신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고 나이에 비해 생각도 젊은 인물입니다. 사실 어찌 보면 '김수현 드라마'에서 윤다훈이 계속 유지해 가고 있는 그런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추가된 건 '닭살 부부'. 슬하에 아이 없는 커플로, 아내 역의 견미리와 나이를 잊고 펼치는 닭살 행각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첫회의 엔딩은 다시 한번 갈등이 폭발한 희명 부부가 신음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는 데서 끝났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엔딩 때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가며 넘어졌던 걸 생각하면 이번엔 혹시 매회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마지막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아무튼 대본을 다 읽어 본 저로서도 2회가 어떻게 만들어져 나올지 궁금합니다.

 

 

이번 작품을 앞두고 이번달 여성중앙과 함께 하신 인터뷰입니다. 흥미롭습니다.

http://woman.joinsmsn.com/article/article.asp?aid=12126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스카이폴]의 예고편은 너무나 멋졌습니다. 스피디하면서도 품격있고, 스토리를 내비치는 듯 하면서도 정작 궁금할만한 점은 그대로 남겨둔, 그야말로 예고편의 클래식이라고 부를 만 했습니다.

 

특히나 감독의 이름은 샘 멘데스. 물론 아직도 1999년작인 '아메리칸 뷰티'의 명성을 뛰어넘을만한 영화를 내놓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정교하고 세련된 연출은 일찌기 정평이 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든다는 것도 상당히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물론 만족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겁니다. 액션 영화가 갖고 있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 정교한 이야기 구조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 007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낙천적 세계관에도 역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그저 다니엘 크레이그만 멋지게 나오면 다른 건 무시해도 좋은 사람, 이 영화의 PPL에 자사 상품을 넣은 사람, 그리고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지상 최고의 영화이고, 심지어 주인공만 바꿔 이 영화들을 다시 찍어도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박수갈채를 보낼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목부터 이상합니다. '스카이폴'이 아니고, '다크 본드' 혹은 '다크 본드 라이징'이라고 지었어야 할 영화죠.

 

 

 

일단 대략의 줄거리.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이스탄불에서 빼앗긴 하드 디스크를 회수하는 작전에 투입됩니다. 나토 공작원들의 리스트가 담긴 디스크를 회수하기 위해 M(주디 덴치)은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태도. 본드와 탈취범이 격투를 벌이고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M은 저격수에게 냉정하고도 잔혹한 명령을 내립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런던의 MI6 본부가 사이버 테러로 공격당하고, 사라진 리스트에 포함됐던 스파이들이 여기저기서 정체가 드러나 살해당합니다. M은 은퇴 압력을 받게 되고, MI6에 대해 원한을 품은 듯한 적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23번째, 원조 '카지노 로얄'과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을 포함하면 25번째 007 영화인 '스카이폴'은 놀랄만큼 매끄러운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합니다. 오프닝의 마지막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지며, 몇몇 관객들의 마음 속에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불어 넣지만, 이어지는 아델의 주제가 'Skyfall'과 거기에 곁들여진 매혹적인 영상 구성이 다시 관객을 매료시킵니다.

 

하지만 바로 위에 쓴 '줄거리' 까지의 부분, 그 이후로 영화는 도저히 건질 수 없는 수렁으로 점점 빠져듭니다. 최소한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물량도, 배우도, 만듦새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은 '이야기'의 흐름입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스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관객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그 반대로 졸음의 세계로 내몰아 버립니다.

 

 

 

 

이 영화는 앞 시리즈에 대한 철저한 부정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수준의 지능을 가진 M이라면 도저히 MI6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고, 역시 제임스 본드가 이 영화 수준의 지능이었다면 '카지노 로열'이나 '퀀텀 오브 솔라스'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상당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크 나이트'를 두번 보는 효과를 강요합니다.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무책임한 인용(내지는 내놓고 리메이크)의 연속입니다. 007은 대놓고 배트맨 흉내를 내고, 악당 실바(하비에르 바르뎀)는 아예 조커의 쌍둥이입니다. "007도 만들고 싶고, 생각있어 보이고도 싶은" 욕심이 이 영화를 망친 주범입니다.

 

길게 얘기해 봐야 스포일러만 나올 듯 하니 일단 여기서 한번 접겠습니다. 전혀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 애스턴 마틴 DB5의 광팬이시거나, 아래 상품들이 이 영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스카이폴'은 근래 본 영화들 중 가장 화려한 광고판입니다. 아래 주장에 따르면 PPL 수입이 2900만파운드에 달한다는군요.

 

The London 'Mirror' newspaper reported that about £29 million or about a third of the film's budget was raised from commercial deals. Product placements, brand integrations and promotional tie-ins for 'Skyfall' include Heineken Lager Beer; Coca Cola's Coke Zero; Visit Britain Tourism's 'Live Like Bond' campaign; Procter & Gamble fragrance; Virgin Atlantic; 'Literary Review' magazine; Tom Ford clothing; Omega Watches including a 50th anniversary 007 watch; Swarovski jewelery; the London 2012 Olympics; Hornby Scalextric car sets; Jaguar & Land Rover vehicles; Activision's video-game; Sky TV's Sky Movies 007 HD Bond channel and Sony Electronics products including Bravia TVs, Vaio laptops & computers, and Xperia tablets & smart-phones, the Sony Xperia TL phone and Heineken beer being two of the products making brandcameos in the film.

 

 

 

 


(정작 애스턴 마틴은 스폰서 리스트에서 잘 보이지 않는...?)

 

 

 

(심지어 이런 것도 70불이나...^^)

 

그리고 아래는 줄거리를 건드리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이야기들. 영화 보실 분들은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의 첫 시퀀스부터 M은 장기를 이기기 위해 하위 기물들을 닥치는대로 희생시키는 잔혹한 체스꾼의 면모를 과시합니다. 죽어가는 요원을 발견한 본드에게 "내버려두고 범인이나 추적하라"고 강요합니다. 본드가 기차 위에서 탈취범과 맨손 격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선 저격 라이플을 조준하고 있는 요원 이브(나오미 해리스)에게 기다리지 말고 쏴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M의 이런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바보가 아니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악당 실바가 MI6와 M을 증오하게 된 이유를 강조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자는 것이죠. 뭐 스파이 마스터가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고 있다는데 뭐랄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첫 시퀀스의 억지가 바로 '스카이폴'의 정체를 결정해 줍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드와 탈취범은 기차 지붕 위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브는 저격 가능지점에서 총을 겨누고 있죠. 기차는 곧 터널로 들어가고, 격투중인 두 사람은 곧 이브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본드가 이긴다면 다행이지만, 진다면 하드 디스크 회수는 어려워집니다.

 

 

 

 

이 대목에서 M이 "쏴버려"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 이길지 모르니 지금 네가 막아야 한다. 어쨌든 최대한 적을 겨냥하고 쏴라. 본드가 맞아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이 상태로 터널에 들어가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브가 다마고치가 아니라면 "쏴버려"라는 말이 이런 뜻임을 이해하지 못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이브는 단 한발의 총을 쏘고, 본드가 그 총에 맞고 철교 아래로 떨어지고, 탈취범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가운데 "AGENT DOWN"이라고 보고해 버립니다. 마치 명령이 본드만 쏴 버리라는 뜻인 듯 말이죠. 정상인이라면 표적을 가리는 본드가 사라진 뒤 100발을 더 쏴서 탈취범을 쓰러뜨렸을 겁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건 이브가 MI6의 적이라는 복선일까? (아닌데, 복선 치고는 너무 노골적인데...?) 아니면 맨데스는 '왜 이브가 단 한방만 총을 쏘고 탈취범은 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전혀 느끼지 않은 걸까? (에이 설마...?) 혹시 이브가 자신이 쏜 총에 본드가 맞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자신의 임무를 망각해버린 걸까? (훈련받은 요원이...?)

 

그런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2번이더군요. '스카이폴'을 보다 보면 MI6는 천하의 무능한 세금 도둑 기관입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배트맨 시리즈의 뉴욕 경찰이지 007 영화의 MI6가 아닙니다. 제임스 본드 혼자 기를 쓰고 뛰는 동안 관객을 머리 속엔 의문이 떠오릅니다. '대체 MI6엔 다른 요원은 하나도 없나?'

 

 

 

 

그럼 그동안은 007이 제임스 본드의 독무대가 아니었느냐는 반론이 나올 법 합니다. 당연히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과정은, '이 정도는 남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어. 나 혼자 해결해도 충분한 걸'이라는 식이었죠. 반면 '스카이폴'의 제임스 본드는 뭐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쩔쩔 매는데도, 조직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합니다. 실바가 탈출한 가운데서도 본드 혼자 실바를 쫓아 뛰어갈 뿐, 목표가 M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Q는 현장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네. M에게 '얼른 피신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긴 합니다. 하지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청문회장 주변에 '위험 인물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경비를 강화하지 않았을까요. 실바 일행이 도착할 때 청문회장은 사실상 무방비상태입니다.)

 

정말 웃기는 최후의 대결 장면. Q와 본드, 그리고 새로운 M이 되는 말로리(레이프 파인즈)는 기껏 머리를 쓴답시고 써서 스코틀랜드의 스카이폴 저택으로 실바 일당을 유인합니다. 그리고 본드는 장비 하나 없이 두 노인과 함께 몇명이 올 지 모르는 적을 맞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이건 뭔가요. '나홀로 집에?' 아니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패러디?) 그 많은 다른 MI6 요원이며 SAS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이 영화의 MI6는 '지원'이란 개념이 없는 걸까요?

 

한마디로 처음 30분을 제외하면 뭔가 시원한 맛이라곤 없습니다. 일상의 권태와 피로를 잊기 위해 극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짜증을 더해 주는 007이란... 참 상상하기 힘듭니다. 과연 그런 것이 007의 본분일까요.

 

 

 

 

언제부터 007 영화에서 논리적인 진행을 따졌느냐고 묻는 분들, 맞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007은 '어쨌든 우리 편이 다 이겨' 혹은 '본드 혼자도 다 처리할 수 있어'라는, 아주 낙관적이고 동화적인 세계 위에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크레이그 이후의 본드는 종래의 본드보다는 제이슨 본을 더 추종하는 캐릭터입니다. 세계관도 진짜 피가 튀는 세상으로 바뀌었죠. 리얼 액션은 리얼 월드의 리얼 플롯을 필요로 합니다. 만약 제이슨 본 시리즈가 이따위의 형편없는 플롯으로 만들어졌다면 2편과 3편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샘 멘데스가 "007을 연출하면서도 생각 있는 지적인 감독으로 보이고 싶다"는 이상한 야망을 품은 것이 실패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불편한 야심 탓에 '액션 영화에도 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고의 성공사례'에 집착하게 되고,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고, 아예 그의 최고 성공작에 007의 껍질만 입혀서 다시 만들어 보겠다는 정신나간 판단을 하게 된 듯 합니다.

 

그 결과는 엉망진창의 혼란입니다. 실바 같은 위험한 적에게 "다음 총알은 빗나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제임스 본드가 과연 제임스 본드일까요(본드라면 그냥 쏜 다음에 농담 한마디를 남기죠). 악당은 노골적으로 조커 코스프레를 하고, 본드는 배트맨이 빙의된 양 본분을 잊고 살인을 주저합니다. 물론 그 한 순간 뿐, KILLER LICENSE의 소유자답게 그 앞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재개합니다. 한마디로 본드 캐릭터의 일관성 같은 것은 샘 멘데스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작 메시지는 공허합니다. 정말 공허합니다. 영화 속에서 M은 "이 냉전도 사라진지 오래인 고도 정보화 사회에 구태의연한 스파이 조직이 필요하냐"는 비판에 봉착합니다. 거기에 M은 "그래도 필요하다"는 논지로 맞서죠.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이 영화를 가리켜 "오늘날에도 왜 007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던지는 영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전형적인 '받아쓰기'입니다.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 영화에 '고전적 첩보원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내용'이 나오긴 하는 걸까요?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본드 같은 바보 요원보다는 Q 같은 똑똑한 해커들을 양산하는 것이 21세기 형 지능 범죄와 머리 좋은 악당들을 막는 데 훨씬 더 바람직한 방안으로 보입니다.

 

샘 멘데스는 이 영화 이후에 다시 007 영화를 연출할 생각이 없다고 했답니다. 시리즈의 운명을 위해서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M(레이프 파인즈,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볼드모트가 좋은 역이라는 점입니다), 새로운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 '캐리비안의 해적'과는 전혀 다른 모습^^), 새로운 Q(벤 위쇼, '향수'의 그르누이군)의 진용은 나쁘지 않습니다. 부디 새로운 멤버들이 새로운 감독과 협력해서 다시 새로운 007의 역사를 잘 써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영화의 소득 중 하나라면 33세의 모델 출신 베레니스 말로히. 중국계 캄보디아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이라고 하는데 최소 4개 민족이 섞인 듯한, 오래 전 실크로드 한복판에서나 보였을 법한 독특한 외모가 특징입니다. 강렬합니다.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아주 오래 전, 지상파 TV가 방송의 전부이던 시절의 방송인들은 흔히 그런 말을 했습니다. "방송이 제일 강력한 미디어인데 대체 방송을 어떻게 다른 매체로 홍보하냐?" 그래서 TV 드라마를 널리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채널을 통해 예고를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아마도 이 상식이 아직 깨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루 평균 시청률 5%가 넘는 채널을 갖고 있다면 자기 채널을 이용한 홍보가 최고일 수밖에 없죠. 물론 현재 지상파 방송보다 유력한 매체가 없는 건 아니죠. 주요 포털의 메인 홈페이지에 노출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거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사실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지상파가 아닌 방송사가 콘텐트를 널리 알리고 살아남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고심 끝에 한가지 수를 냈습니다. [만약 방송 드라마를 방송이 아닌,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죠.

 

 

 

 

JTBC는 이번에 한국 TV 사상 처음으로 두 편의 드라마를 본 방송보다 앞서 온라인으로 론칭시켰습니다. 바로 27일부터 방송되는 '무자식 상팔자'와 29일부터 방송되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입니다. '무자식'은 22일, '우결수'는 23일부터 온라인으로 공개됩니다. 포털사이트 다음, 그리고 JTBC(www.jtbc.co.kr)와 중앙일보(joongang.co.kr) 홈페이지를 통해서입니다.

 

 

 

 

('무자식 상팔자'나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동영상을 카페, 블로그, SNS로 공유하시기만 해도 캔커피가 공짜! 이벤트 진행중입니다. 선착순입니다.

 이벤트 페이지 바로가기는 이쪽: http://home.jtbc.co.kr/Event/Event.aspx?prog_id=PR10010127&menu_id=PM10015634 )

 

드라마를 '첫 방송 10월27일 오후 8시50분'이라고 예고하면서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니까 예고편도 아니고, 특집판도 아니고, '미리보기'도 아니고 정규 1회를 먼저 온라인으로 내놓는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반대도 만만찮았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상식적인 반응은 당연히 이런 겁니다. "아니, 그걸 인터넷으로 먼저 다 보여주면, 누가 본방을 봅니까?"

 

물론 다 보여주는게 아니라 1회만 보여준다고 해도 불안해 하시는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뿐이지,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상식이 되어 가고 있는 사전 홍보 방법입니다.

 

 

 

 

올해 7월, 미국 NBC는 9월에 시작하는 새 시리즈 6편의 첫회(파일럿)를 온라인으로 먼저 풀었습니다. 'The New Normal' 'Go On' 'Guys With Kids' 'REVOLUTION' 'Animal Practice' 'Chicago Fire' 까지 6편을 길게는 한달 전, 짧게는 2주 전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것입니다. 방송사 자체 홈페이지는 물론, 유튜브나 훌루 등 온갖 사이트가 동원됐습니다. 물론 광고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온라인으로 먼저 보여주면 본방 시청률이 떨어질 게 아니냐는 얘기였죠. NBC 드라마의 온라인 론칭을 다룬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들입니다.

 

맨 위의 댓글이 그런 우려를 담고 있지만 그 아래 댓글들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 줍니다.

 

 

 

 

미국 드라마업계에서 수년간의 실험 끝에 확인한 것은, "온라인 선공개가 본방 시청률을 떨어뜨리는 경우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그 첫회를 먼저 본 사람들이 본방송 1회를 다시 볼 가능성은 별로 없겠죠. 하지만 먼저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그 드라마에 대한 평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온라인 선공개를 경험한 사람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새로운 시청자들이 본 방송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얘깁니다.

 

NBC가 온라인 선공개에 적극적인 것은 당연히 올 연초, 뮤지컬 드라마 'SMASH'를 온라인으로 론칭한 것이 드라마의 성공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NBC만 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FOX의 'New Girl', ABC의 'The River'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그리고 온라인선공개는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드라마를 론칭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홍보나 마케팅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일 뿐, 드라마 성공의 키는 작품의 질이 쥐고 있죠.

 

 

 

 

사실 드라마의 질이 문제가 있는 경우,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쥐약'이 될 수 있습니다. 악평이 더 널리 퍼질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온라인으로 선공개를 하건 말건 망가지는 데에는 전혀 차이가 없을 겁니다. 본 방송으로 시작해도 망할 드라마는 망하고 말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JTBC가 공개하는 두 편의 드라마는 모두 퀄리티 면에서 확신을 갖게 합니다. '무자식 상팔자'는 김수현-정을영 콤비에 이순재 유동근 김해숙 송승환 등 연기 9단들이 즐비합니다.

 

 

 

29일부터 방송되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도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윤철 PD가 연출을 맡고 이미숙 최화정 김성민 김진수 등 베테랑들이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론칭을 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시청자의 선택입니다. 좀 더 긴 유효기간에 걸쳐 좀 더 많은 시청자들이 JTBC의 콘텐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죠. 늘 보시던 채널만 고집하다 보니, 굳이 채널 바꿀 필요성을 못 느껴서, 어쩐지 별로 볼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시도하지 않았던 분들이라면 이 기회에 한번 자신의 취향을 시험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지금 '무자식 상팔자' 관련 이벤트는 너무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버스 사냥 이벤트를 비롯해 티저 사냥 이벤트, 동영상 퍼가기 이벤트 등등, 상품 갯수만도 2000개 이상입니다.

 

http://drama.jtbc.co.kr/mujasik/?cloc=jtbc|header|drama

 

이런 기회를 놓치시면 억울하겠죠?

 

 

조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실비아 크리스텔(1952-2012)]. 1980년대를 살아온 남자들에게 있어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이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포스팅했던 '책받침 속의 요정들', 그러니까 브룩 실즈나 소피 마르소, 왕조현 등과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개인교수'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듯, 실비아 크리스텔은 그 시절에 10대의 나날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여선생님의 느낌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말 문화적으로 척박했던 1980년대, 그 어두웠던 시절에 처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신 분이랄까요.

 

젊은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한 30년 지나 아** *라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마 너희가 느낄 감정과 비슷할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크리스텔 여사님은 소라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포스를 가진 분입니다. 한마디로 레벨이 다른 배우였죠.

 

 

 

 

1980년대 초. 까까머리는 아니었지만(두발 자유화는 일찌감치 이뤄졌습니다) 교복과 자유복을 왔다갔다 했던 시절, '차타레부인의 사랑'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됐습니다. 1981년의 일입니다. 그야말로 1980년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만 합니다. '레이디 채털레이'가 아니라 '차타레 부인'이라는 게 1980년대 한국의 문화 저변을 대변해주는 표현인 것이죠.

 

[두발 자유화는 1982년입니다. 공연히 혼동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쓰다 보니 시제가 좀 헝클어졌군요.^^]

 

이 영화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수많은 '부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유명한 애마부인(애마=엠마누엘이라는 것도 유명한 얘기죠)을 비롯해 강남부인 장미부인... 뭐 끝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 시절, 남학생들에게는 '반드시 봐야 할' 몇 편의 영상물이 있었습니다. 브룩 실즈의 '푸른 산호초', 피비 케이츠의 '파라다이스' 등이 대표적이었죠. 절대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갖가기 경로를 통해 반드시 봐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VHS를 통해 계속해서 복제가 이뤄졌고,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볼 수 있었던 건 거의 끊어지기 직전의 더러운 화질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엔 모두 황홀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 궁극의 자리에 '엠마뉴엘'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럼 자네 '엠마뉴엘'은 봤나? 오. 같이 얘기할 레벨이 되는군. 우리 더 깊이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세. 이를테면 입술에 침을 놓는 행위가 정말 환각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을까?" 뭐 이런.^^)

 

 

 

 

'엠마뉴엘' 시리즈는 솔직히 당시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저렇게 자유분방한 생각의 사람들과, 저런 행위를 해도 받아들여지는 세계, 그리고 이런 영상물을 유명 배우들이 찍고, 그런 영화를 사람들이 버젓이 볼 수 있는 세계. 이런 당시의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인 것이죠.

 

(이같은 분위기는 사실 2012년의 한국과 1970년대의 프랑스를 비교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으로 유명한 77년작 '빌리티스'같은 영화를 35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도 불가능하거나, 참여자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일겁니다.)

 

아무튼 이 영화들이 흔히 말하는 포르노(네. 요즘보다는 한 1000배쯤 구하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있었습니다)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장님도 알 수 있었습니다. 형편없는 화질이었지만 그 영상미, 음악, 감각적인 연출, 배우의 연기, 모든 면에서 비교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죠. 그 당시에도 일부 교사들이나 몰지각한 학생들은 "엠마뉴엘? 그거 프랑스 포르노 아니야?"하는 망발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즉시 '도저히 같이 인생을 논할 수 없는 자'들의 낙인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극장에서 '개인교수'가 개봉하고, 이 영화는 서울시내 각급 재개봉관(당시에는 극장마다 등급이 확실했습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외화를 1차 상영할 수 있는 '개봉관'은 서울 시내에 불과 10개 정도. 나머지는 이 극장들이 1차 상영한 영화를 받아 재개봉했죠)으로 풀려 나가면서 엄청난 열풍을 일으킵니다.

 

당연히 이 영화도 미성년자 관람불가. 하지만 관리감독이 치열한 개봉관과는 달리 재개봉관들은 사실상 단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인교수'는 재개봉관, 재재개봉관(대개 영화 2편을 한꺼번에 트는 동시상영관이었습니다)에서 대박을 기록합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 주변에는 몇개의 이런 재개봉관(뭐 흔히 3류극장이라고 불렀습니다)이 있었는데, 그중 여러가지 여건으로 보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던 J극장은 이 영화를 무려 6개월 넘게 상영했습니다. 동시상영관이었으니, 파트너 영화를 계속 바꿔 가며 6개월간 이 영화를 틀어 댄 것이죠. 물론 손님이 없었으면 틀었을 리가 없겠죠.^^

 

('개인교수'가 상영중인 극장에선 매번 비슷한 장난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저 뒷자리에서 '꼰대다!'라고 소리를 치며 후다닥 뛰어나갑니다. 그럼 전 극장의 수백명 관객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 우루루 몰려나가다가 장난이란 걸 알고 '어떤 XX야!'라고 소리치며 자리로 돌아오는 뭐 그런 식이죠. 네. 80년대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폭발적인 호응을 보인 건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야말로 10대 소년들을 위한 맞춤형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엄마 없이 부자 아버지와 함께 저택에 혼자 사는 소년. 아버지가 사업차 집을 떠나고 빈 집엔 늙은 가정부, 젊은 가정부, 운전기사뿐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젊고 예쁜 가정부가 묻습니다. "내 알몸이 보고 싶어? 그럼 오늘밤 내 방으로 와."

 

15세라기엔 너무나 순진해빠진 주인공(물론 그 덕분에 위기를 모면합니다만...). 그리고 옆에는 그때그때 맞는 듯 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조언을 해 주는, 딱 납득이같은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통해 주인공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고, 바람처럼 그의 곁을 떠나갑니다.

 

청소년기의 남성에게 이보다 더 황홀한 판타지는 없다고 봐도 좋겠죠. 그래서 이 영화의 전반부, 주인공 필리가 공항에서 아버지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Fantasy'가 내내 흐릅니다. 이것이 바로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배우를 한국에 연착륙시킨 작품, '개인교수'의 핵심입니다. 영화의 성애 묘사 수위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이 훨씬 높지만, 바로 이 '관객 맞춤형 서비스'가 위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위력은 끊임없는 재생산에서도 나타납니다. 매트 라탄지 주연의 '마이 튜터'같은 짝퉁 영화를 비롯해 일본에서는 SMAP의 이나가키 고로와 조애나 파큘라가 주연한 '일본판 개인교수'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리고 수없이 많은 AV나 포르노를 통해 이런 류의 판타지가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서 개봉되진 않았지만 '에어포트79'도 TV를 통해 소개됩니다. 흔히 '에로 배우' 취급을 받았던 크리스텔이 알랑 들롱의 상대역인 미녀 스튜어디스로 나오는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그래. 우리의 크리스텔 선생님은 그냥 그런 영화에만 나오는 후진 배우는 아니었어!' (으응?)

 

 

 

 

1985년, 크리스텔은 영화 '마타하리' 개봉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합니다. 당시 포르노와 자신의 영화를 구별하는 기준에 대해 "포르노에선 그냥 성행위를 하지만 나는 감독의 연출에 따라 성애를 연기한다"고 대답한 것은 이후에도 많은 경우에 기준이 됐습니다. 어딘가의 인터뷰에서는 IQ가 150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적도 있었는데 뭐...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 아무튼 당시 MBC TV '쇼 2000'에 출연해 이덕화 아저씨와 끈끈한 눈길을 나누며 농담을 하던 장면은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사실 크리스텔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까지의 10년 정도였던 듯 합니다. '엠마뉴엘'의 정규 시리즈는 4편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실제 시리즈는 '엠마뉴엘'에서 '굿바이 엠마뉴엘'까지 세 편이라고 봐야죠. 1984년의 4편째는 크리스텔의 매력을 어떻게든 이어가 보자는 비즈니스의 결과물입니다.

 

 

 

 

'나이든(사실 요즘의 32세면 날아 다닐 나이지만 당시 32세의 여배우는 '중견급'이었습니다) 엠마뉴엘'이 최첨단 전신 성형 기술을 통해 젊고 파릇파릇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이었는데, 그 '새로운 엠마뉴엘' 역으로 미아 니그렌이라는 신예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 탄생은 실패.

 

 

 

 

이후에도 1993년 '포에버 엠마뉴엘'을 필두로 '늙은 엠마' 크리스텔과 '젊은 엠마' 마르셀라 월러스타인(Marcela Walerstein, 하나 위 사진입니다)을 포진시킨 7편의 TV 시리즈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만, 이 역시 별 반향은 일으키지 못합니다. 아, 1992년에는 정인엽 감독의 '성애의 침묵'에서 유혜리와도 공연.

 

결과적으로 90년대 초 이후에는 괄목할만한 활동이 없었던 셈이니 만년에 생활고를 겪었다는 이야기도 아마 사실일 듯. 사실 크리스텔은 연기력으로 평가받을만한 명 연기자는 아니었습니다. 경력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커리어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나 훈련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보기에 크리스텔은 그냥 경력의 정점에서 소비된 배우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 크리스텔은 절세의 미모를 가진 배우는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글래머도 아니었죠. '개인교수'에서 유명한 '옷 벗는 신'에서의 가슴 클로즈업은 대역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크리스텔을 생각해보면 그 외모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치명적인 백치미'라고도 불렸던 '아무것도 몰라요' 풍의 눈빛이 그랬고, 세상 어떤 것을 보여줘도 '난 이해해요'라고 말할 듯한 입술이 그랬죠.

 

 

 

 

 

이 모습은 2003년. 물론 이 이후의 사진도 있겠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모습으로 기억하렵니다. 편히 쉬시길.

 

전 세계의 소년들에게 좋은 일 많이 하셨으니 아마도 좋은 데로 가셨을 겁니다.

 

 

728x90

빌보드 정상을 눈앞에 둔 싸이. 이제 한국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정일, 문선명, 싸이라는 우스개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살아있는 인물은 싸이 하나뿐인이니 당대에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 셈이군요(반기문 총장과 잠시 고민했지만, 식자층이 아닌 전체 인류를 기준으로 할 때 UN 사무총장보다는 싸이가 더 유명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싸이의 '위업'은 이제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가 버렸습니다. 한국인이 메이저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도, 메트로폴리탄이나 바이로이트에서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올랐어도, 칸 영화제 주연상을 받아도, 심지어 유엔 사무총장이 됐어도 '빌보드 차트 정상'은 아직 꿈의 영역이었던 거죠.

 

그가 거둔 성공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에 지금은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싸이가 '미국에서 뜬다'는 소문이 돌 때만 해도 그 성취를 폄훼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중음악 안의 '고급음악 애호가' 계층이었던 거죠. '아이돌이 판을 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저열함'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싸이가 엄청나게 떠 버렸다. 이제는 세계인의 노래가 된 강남스타일때문이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서 1억회가 훨씬 넘게 플레이됐다. 톰 크루즈가 트위터에서 싸이를 먼저 팔로(follow) 했고(싸이월드로 쳐서 설명하자면 먼저 일촌 신청을 한 셈이라고 치면 된다), 인기 여가수 케이티 페리가 미국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시상식장에서 싸이의 볼에 키스하는 장면을 전 세계 네티즌들이 지켜봤다. 최고의 팝 아이돌 저스틴 비버의 프로듀서 스쿠터 브라운과 매니지먼트 계약까지 했으니 미국 시장 진출도 초읽기다.

 

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국내 반응은 어떨까. 당연히 대중은 환호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도 1996년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의 아저씨 듀오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에 비교하며 21세기 SNS 시대의 새로운 성공 사례로 꼽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싸이의 성공을 폄훼하려는 시선이 보인다. 이른바 수준있는 음악 청취층이 그 핵심에 있다.

 

이들이 싸이를 보는 시선은 신기해서 어떻게 떴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느냐에 머물러 있다. 세계 최고 시장인 미국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마카레나가 그랬듯 재미 요소가 주목받는 것이지 싸이라는 뮤지션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싸이의 미국 진출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과 ‘K POP의 인기는 실체가 없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평소에도 아이돌 음악 중심의 국내 음악시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일본 대중음악의 힘은 수많은 장르의 음악이 공존할 수 있을만한 시장의 포용력에 있으며, 따라서 10대 아이돌 그룹만이 구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은 발전 동력이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과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과 유럽, 남미 시장에서까지 물론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 K POP의 시장 형성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 이건 한국 대중음악의 후진성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사람들에겐 참을 수 없는 현상이다. 영화계로 치자면 심형래 감독의 ‘D-WAR’가 미국 시장에서 호평 받았을 때(물론 다행히도 그런 일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국내 영화 평단이 받았을 충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선은 최근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 때도 흔히 볼 수 있었다. 폴 매카트니에서 뮤즈, 퀸에서 조지 마이클까지 지난 50년간 세계 음악시장을 지배했던 수많은 영국 뮤지션들의 향연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이때 등장한 논리가 과연 한국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소녀시대? 빅뱅?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의외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궁금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가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어야 부끄럽지 않을까.. 혹시 조수미나 신영옥,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하는 것은 소위 '국위선양'이고 싸이나 소녀시대는 아니라는 이분법일까.

 

 

 

 

한국인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십년간 고요한 아침의 나라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같은 고상한 인상을 심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현재 세계인이 인식하는 한국의 이미지는 조용하긴커녕 무서운 변신 속도로 선진국에 진입하는 역동적인 나라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렇듯 '남들의 시선'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인들이 싸이의 말춤이나 한국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만의 고유 상품이면서 젊은이들을 끌어당기는 세련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외의 한국 문화 요소들이 그동안 이런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은 세계 각국에 충분히 대체할만한 자체적인 유사 상품이 있거나, 드물기는 하되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그들의 판단 기준과 취향이 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의 강점이 온 세상에 드러나면서 우리 스스로도 놀라는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떠나기 전, 우리는 미국의 홈런 타자들이 한국 투수의 공에 줄줄이 삼진을 당하는 날이 올 거라고 꿈꾸지 못했다. 삼성이 소니를 앞지르는 회사가 될 줄도 몰랐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귀한 줄 몰랐던 것들이 남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는 일들도 나타난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해외 시청자들이 밤잠을 설치게 될 줄 몰랐다.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싸이의 춤을 따라 춘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다.

 

싸이나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유치하고 난잡하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물론 있을 수 있다. 그건 분명히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공 사례에서 굳이 그들만 제외하려 들어선 곤란하다. 싸이, 부끄럽지 않다. (끝)

 

 

 

 

시청앞 광장의 열기, 빌보드 차트의 영광 속에서 감히 싸이를 폄훼할 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없는 듯 합니다만, 8월말~9월초까지만 해도 애써 싸이의 미국 시장 성취를 깎아내리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이를테면 국내에서 한때 온라인으로 붐을 이뤘던 '뚫훅송' (인도 가수 달라맨디의 '투낙투낙툰'입니다. 웬만하면 다들 아시겠지만 한때 SBS TV '웃찾사'에서 만사마 정만호가 등장할 때 나왔던 '뚜룩뚜룩뚜~~'로 시작되는 곡이죠) 정도로 그냥 그러다 말 것이다, 미국에서도 주류 음악 듣는 사람들은 안 좋아한다, 그리고 늘 등장하는 '우리 사촌이 미국 사는데 전혀 인기 없다고 하더라' 등등.

 

 

(물론 이 노래가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도 이 노래 좋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것이 '전문가 집단'의 '한번은 어쩌다 됐을지 모르지만 그냥 그러다 말지 않겠느냐'는 평가들이었습니다. 왜 이런 평들이 나왔을까요. 간단합니다. 한국에서도 인정하기 힘든 노래가 '팝의 본고장'에서 뜬다는 것을 용서하기 힘들었던 겁니다.

 

 

몇년 전의 일입니다. 어떤 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앞둔 준비 회의에 선정위원(심사위원은 아닙니다) 자격으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그래미상을 표방하는, 음악 장르별 시상식이었습니다.

 

꽤 옛날 얘기인 것이, 이 시상식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 예비 후보에 '텔미' '아이러니'가 수록된 원더걸스의 데뷔 앨범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선정위원 중의 한명인 대중음악 전문가 한 분이 마침 앞에 있던 원더걸스의 앨범을 두 손가락(네. 두 손가락입니다)으로 들고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후보로 추천해야 합니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선정위원들이 앨범은 들어 봤냐고 묻자 "들어보진 않았는데 뻔한 것 아니냐"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물론 전원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 자리의 다른 인사들이 강력하게 맞서 원더걸스는 후보에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분을 포함해 당시 그 자리에는 '어떻게 원더걸스 같은 앨범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정말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뮤지션이 어느날 갑자기 해외에서 붐을 일으켰다면, 싸이나 아이돌을 싫어하시던 분들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싸이의 경우도 오늘날같은 '빌보드 2위'의 쾌거가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분명 가능성의 차이는 큽니다. 싸이나 슈퍼주니어의 노래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퍼포먼스죠. 강렬한 안무와 리듬, 반복적인 후렴구는 분명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싸이에 앞서 비 영어권 언어로 된 노래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사례들을 살펴봤는데, 6곡 중 리듬감이 강조되지 않은 노래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유튜브의 시대, 안무와 비주얼의 중요성은 더욱 더 중시됩니다.)

 

 

 

(한달 전쯤 올라온 영상이지만, 미국 대학 마칭 밴드(Marching Band)들이 싸이의 노래를 갖고 공연을 한다... 저는 사실 이게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이건 정말 '외국 문물, 신기한 것에 관심이 많은 일부 얼리 어돕터들' 만의 인기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내 록이나 힙합 뮤지션에게 과연 언어의 벽을 넘을 수 있는 무기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윗글에서도 강조했지만 K-POP이 먹히고 있는 것은 현재 그들에게 없는 요소를 강점으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한국의 언더그라운드가 같은 장르의 미국 주류 뮤지션들(네. 이쪽에서는 주류죠)의 틈새를 공략할만한 독자적인 무기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아이돌과 대형 기획사 중심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문제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국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문제는 문제고, 박태환이나 김연아의 성취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김연아를 가리켜 "정상적인 학교 교육의 테두리 밖에서 오직 한가지만 한 덕분에 전인교육이 부족한 한국적인 기현상이 낳은 결과"라고 비아냥거려 봐야 과연 누구에게 설득력이 있을까요.

 

(아울러 '대체 왜 싸이를 가리켜 B급이라고 하는지', 혹은 '싸이의 성공과 김기덕의 성공을 왜 비슷한 선상에 놓고 보는지'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 얘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그건 다음 기회에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싸이의 성공, 맘껏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728x90

한국 방송계에서 '김수현 드라마'만큼 확고부동한 브랜드는 없습니다. 그 뒤를 잇는 스타 작가들도 즐비하지만, 그 누구도 '김수현'이라는 이름만큼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런 김수현 작가의 새 드라마가 오는 27일부터 JTBC에서 방송됩니다. 제목은 '무자식 상팔자'. 들어 보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겠지만, 이순재 서우림 유동근 김해숙 송승환 임예진 윤다훈 견미리 엄지원 등 출연진도 화려합니다.

 

눈을 크게 뜨시면 시내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광고를 옆구리에 붙인 버스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버스를 사냥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패드2, 에스프레소 머신 등 상품이 쏟아집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찍으시면 됩니다.

 

(안내 페이지는 이쪽)

http://home.jtbc.co.kr/Board/Bbs.aspx?prog_id=PR10010127&menu_id=PM10015317&bbs_code=BB10010230

 

 

그렇게 썩 잘 찍지 않아도 됩니다.

 

대강만 보이면 합격!

 

 

 

사실 이렇게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려면 아무래도 작품에 자신감이 있어야 할 건 당연지사. 그리고 그 방송 한달 전인 지난 25일,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서 그런 신뢰를 확인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국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열린 '방송전 드라마 시사회' 입니다. 드라마 방송 직전 열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전편을 상영한 드라마는 몇번 있었지만, 일반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드라마 시사회는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사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 방송 관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일반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입니다. 대본을 보고 짐작하는 방법이 있지만, 대본을 보고 나서 이 드라마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일반 시청자가 아닙니다. 대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는 사람인 경우가 많죠.

 

그래서 한번쯤 우리가 방송할 드라마를 일반 시청자들이 먼저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배우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죠. 극장을 빌려 상영하면 간단하지만 사실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만원 기준으로 표값을 다 계산해야 합니다. 즉 시청자 한 분을 모시는데 극장표 1장 값이 드는 겁니다.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다 문득 백화점마다 있는 문화공간에 생각이 닿았습니다. 신세계 백화점 측도 OK. 당초 목적대로 2~3회 정도 시사회를 하는 것은 불발이었지만 어쨌든 첫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9월25일로 시사 날짜가 잡혔습니다.

 

(그러니까 저 위에 있는 분들이 저희 사장님보다 먼저 이 드라마를 보신 겁니다.)

 

 

 

물론 뭐든 처음 하려면 문제가 생기는 법. 회사에선 멀쩡하게 돌아가던 DVD가 현장에서 말썽을 부립니다. 회사에서 황급히 테이프와 데크를 공수했습니다. 아찔한 순간은 지나가고, 시청자들이 입장하셨습니다. 약 200분 정도.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느낌으로는 당연히 시사 성공. 하지만 뭔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설문지 수거 및 분석.

 

 

 

 

그렇게 해서 약 200명의 시청자 중 144분이 응답해 주신 설문지 분석 결과 10점 만점에 9.07의 평점으로 '무자식 상팔자'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필요하다면 드라마를 여기서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사실 모든 분들이 선명하게 사진을 찍지는 못합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게라도 버스 사냥에 참여해 보시라는 얘깁니다.

 

의외로 찍기가 쉽지 않아서(폰카 켜는 사이에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경쟁률 그리 높지 않습니다. 당첨 기회를 보면 이만한 이벤트도 드물 겁니다.

 

항상 긴장을 놓치지 마시고, 버스 정류장에서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계세요. 그럼 행운이 찾아올겁니다.^^

 

 

 

 

728x90

'테이큰'은 그저 그런 액션 영화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할리우드에서 한발 앞선 잔혹성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브라이언 밀스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에 비해 생명 존중 사상이 심하게 부족한 캐릭터였죠.

 

밀스는 모든 도구를 사용해 확실하게 악당들을 해치워주는 확실한 실력과, 절대 주저하지 않는 결단력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덕분에 2500만달러 제작비의 저예산(?) 영화였던 '테이큰'은 미국에서만 1억 달러 넘는 흥행 성공을 거뒀습니다. 덕분에 '테이큰2'가 만들어지게 됐죠.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다 보면 다음과 같은 시퀀스와 쉽게 마주치게 됩니다. 주인공의 조력자가 범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으면 주인공은 "쏘면 안돼! 그놈을 데려다 정당한 재판을 받게 한 뒤에 감옥에 쳐 넣어 죄값을 치르게 하자구!"라고 주절주절 떠들고, '우리편'이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악당은 벌떡 일어나 기관총으로 '우리편'의 몸에 수십개의 구멍을 내 놓는 뭐 이런 진행 말입니다. 하지만 '테이큰' 시리즈라면 이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죠.

 

'테이큰'이 미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것은 미국 관객들도 판에 박힌 '소심한 주인공'에는 질려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테이큰2'는 1편으로부터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동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 1편에서 밀스(리암 니슨)에게 죽음을 당한 인신매매 조직원들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마을의 좌장인 무라드(라데 세르베지야)는 밀스를 찾아 복수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밀스는 딸 킴(매기 그레이스)의 안전에 더욱 민감해지고, 전처 레니(팸키 젠슨)는 남편과 문제가 생깁니다. 밀스는 모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이 이스탄불에서 일을 마치면 함께 휴가를 즐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세 가족(?)은 밀스를 잡기 위해 이스탄불로 찾아온 무라드 일파에 의해 안전을 위협받게 됩니다.

 

 

 

 

감독은 1편의 피에르 모렐에서 '트랜스포터3'의 올리비에 메가톤(물론 예명입니다. 그런데 설마 메가톤이라는 성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으로 바뀌었지만 그로 인한 위화감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1편의 주역들이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데다, 왕년의 명감독 뤽 베송이 제작자 겸 시나리오 라이터로 시리즈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테이큰2'의 긴장감은 1편에 비해 심하게 떨어집니다. 니슨이 연기하는 밀스는 여전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양민(?)들을 학살하는데, 1편에 비해 악당들이 뭔가 강화됐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적 장치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무도 밀스 가족의 안전한 구출을 의심하지 않는 가운데, 크로아티아 배우 라데 세르베지야(Rade Serbedzija)는 훌륭한 악역을 보여주지만 이미 주인공 니슨부터 맥이 풀린 느낌을 주는 만큼, 그의 힘으로 영화를 일으켜 세울 수는 없습니다.

 

뭐 영화가 잘 되고 못 되고에 대해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듯 합니다. '테이큰'을 보신 분에겐 그냥 또 다른 '테이큰'일 뿐이고, 자극의 강도는 확실히 약하다는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여기까지. 이후부터는 이 영화에 나타난 '미국 시민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얘기하려 합니다. 스포일러(라는 것이 과연 이 영화에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지만^^)가 싫은 분들은 여기서 아래로 내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목의 '미국 시민'이라는 말은 American Citizen의 번역입니다. 모든 미국인이 city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민'이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만 '시민권' 등의 말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알란 파커 감독의 1978년작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터키에서 마약 밀매 관련 협의로 체포된 미국 청년이 터키의 법에 따라 형무소에 수감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말도 안 되는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터키 사람들이 보기에 이 영화는 편견의 덩어리입니다.

 

'터키에서 죄를 지으면 터키 사법제도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정당한 질문 앞에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매우 뻔뻔스럽습니다.  "아니 우리 미국 시티즌을 너희 나라의 법 따위로 구속한다고? 심지어 너희 나라의 감옥 따위에 가둔단 말이야?" 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뭐 이런 생각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엔 좀 과도한 판타지도 등장합니다. 세계 어디에 있건 미국 시민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미국 정부가 그를 위해 하는 행위는 다소 거칠어 보여도 일단 정당하다는 식의 미화 말입니다.

 

앙트완 후쿠아의 '태양의 눈물'에서는 미국 정부가 미국인 여성 모니카 벨루치(그것도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아니고 미국 남자와 결혼해 미국 시민이 된 여자)를 구출하기 위해 브루스 윌리스가 이끄는 특공대를 파견합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유발된 판타지라기엔 좀 너무 심합니다. 당연히 이 특공대는 아메리칸 시티즌 구출을 위해 현지인들을 거리낌없이 살해합니다. (뭐 정당방위처럼 보이긴 하죠.^^)

 

 

 

아마도 이같은 성향의 최고봉은 마이클 베이의 '나쁜 녀석들 2'가 아닐까 합니다. 미국 마이애미 경찰의 특수기동대는 아예 대규모 인원이 무기와 장비를 갖고 쿠바에 침투해 작전을 펼칩니다.

 

이게 독립국가인 쿠바의 주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고, 말하자면 전쟁 행위라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아주 조용히 작전을 치르고 무사히 빠져나왔다면 또 모를까, 백주에 살상행위(물론, 대상은 끔찍한 악당들이죠)를 실컷 저지른 다음, 쿠바 영토 끝에 있는 미국령 관타나모로 탈출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테이큰'에서도 전직 첩보원 밀스는 프랑스의 사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프랑스 경찰의 친구(?)는 이런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고도 하지만 사실은 그의 행동에 다른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영화 속에서 무마됩니다.

 

하지만 '테이큰2'에서는 도를 넘습니다. 밀스는 터키 경찰을 살해하고(물론 그 경찰이 터키 폭력조직과 내통한다는 설정이지만, 밀스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단지 그가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는 이유로 사살합니다), 그로 인한 터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시내를 다 뒤집어놓는 자동차 경주 끝에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합니다.

 

심지어 그러고 난 바로 다음날, 밀스는 총기까지 휴대하고 다시 이스탄불 시내를 휘젓습니다. 네. 전처가 악당들의 손아귀에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건 관객들이 잘 알고 있지만 남의 나라에서 이건 좀 너무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어처구니없는 영화 속 이야기지만, 한국 해경 선박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의 어부들을 별 책임도 묻지 않고 풀어주는 한국 경찰의 처지를 보거나, 심지어 한국 해경을 살해한 중국 어부들을 자기네 나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하는 일부 중국내 세력들의 시위를 보고 있으면, '테이큰' 시리즈 속의 이야기들이 반드시 허무맹랑한 얘기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도 듭니다.

 

 

 

 

P.S. 밀스는 폭력과 피가 피를 낳는 복수의 고리를 끊으려 제의를 하지만 결국 그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스는 결국 다시 폭력을 행사하죠. 이게 만약 미국과 테러리즘에 대한 거대한 비유라면, 이런 논리는 9.11 전에나 통했을 법한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 본토도 안전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테이큰2'에선 밀스 가족이 미국에서 행복한 일상을 찾지만, 만약 '테이큰3'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LA 시내가 생지옥이 되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총지휘하고 있는 것이 프랑스인 뤽 베송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혹시 '테이큰' 시리즈는 은근히 미국민에게는 반성을, 비 미국인들에게는 반미감정을 촉진하려는 프랑스제 프로파간다였던 걸까요?^^)

 

조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에 가속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추석 연휴도 '광해'의 차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광해'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상상력에서 발생한 픽션이죠. '바람의 화원'이란 드라마에서 화가 신윤복이 '혹시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상상에서부터 이야기를 끌어나갔고,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의 아들과 세조의 딸이 연인 사이였다면 하는 상상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해군과 쌍둥이처럼 닮은 남자가 있었는지 말았는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물론 이 정도는 당연히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그 밖의 이야기들, 영화 '광해'가 다루고 있는 광해군 시대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가끔씩 영화를 역사 교과서로 생각하고 '아~~ 정말 그랬었구나. 난 몰랐네'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한 선 긋기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분명히 말해 둘 것은, 이 글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작품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글이라는 점입니다. '광해'는 매우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고, 영화는 본래 역사 교과서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도 저랬나?' 라든가, '저건 실제론 어땠지?'라는 궁금증을 느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그냥 리뷰가 필요하신 분은 이쪽:

'이병헌, 사실은 1인3역이었다. http://fivecard.joins.com/1050 '

 

사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지 않은 분이 이 글을 읽으면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주 당연히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거론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미 영화를 보신 분이나, '나는 결말을 알고 가야 영화가 더 잘 들어온다(네. 이런 분 분명히 있습니다)'는 분들만 이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서 스포일러당했네 어쩌네 하는 분들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1. 광해군 8년, 광해는 위기였나?

 

사실 광해군은 즉위 내내 위기였다고 말해도 좋을, 매우 불안한 권력 위에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중 이미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국정을 맡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지만, 선조는 뒤늦게 정궁에서 낳은 아들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뒤에도 왜 형 임해군이 아닌 둘째 광해군이냐는 명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결국 형 임해군의 의문사에 이어 즉위 6년차에는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귀양지에서 죽게 하는 데 이릅니다.

 

이런 상황이니 언제 반대파가 들고 일어나든, 누군가 수라에 독을 타든 그리 놀라울게 없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그런 상황이고 보면, 광해군이 '나와 똑같은 가짜를 써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광해'의 설정은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여기서 한번 광해군 관련 연보를 짚고 넘어갑니다.


1569 허균 탄생
1575 광해 출생

1576 중전 유씨 탄생

1592 임진왜란
1600 인목대비, 19세 나이로 51세 선조와 혼인
1606 영창 출생
1608 즉위, 대동법 실시
1613 5년 칠서지옥, 영창대군 서인
1614 6년 영창 살해
1616 8년. 2. 28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1618 10년 강홍립 파병, 인목대비 서궁유폐, 허균 역모로 능지처참

1623 15년 인조반정. 광해군 폐위

1641 광해군 사망

 

 

 

2. 중전 유씨는 한효주의 느낌이 났을까?

 

사실 사극에 나오는 중전마마들은 거의 한결같이 우아하고 기품있는 미인들인데 과연 모든 중전마마들이 그랬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때 본 사람이 지금 있을 수 없으니 이건 뭐 하나마나한 얘기.

 

그런데 사실 나이 부분은 좀 걸립니다. 왕비 유씨는 1576년생으로 광해군 보다 한살 아래. 이 말은 문제의 광해군 8년인 1616년에 유씨가 만 40세라는 뜻이 됩니다. 물론 하선도 실제 광해군과 비슷한 또래였긴 했겠지만 17세기의 40세는 지금의 40세와 상당히 다른 느낌이죠. 최소한 한효주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이 부분을 아래 댓글 지적을 받아 수정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게 틀리면 안되는데...;;)

 

그리고 실제 왕비 유씨는 柳씨지만 영화 속의 유씨는 兪씨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왜 굳이 성의 한자를 바꿨는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아울러 영화 속 중전의 오빠는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실제 중전 유씨의 오빠는 광해군 때의 권신 유희분입니다.)

 

 

 

 

3. 허균은 도승지가 아니었다?

 

영화 속 허균은 도승지로 광해군의 최측근 역할을 하지만 사실 허균은 도승지라는 벼슬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한때 좌승지로 임금의 비서 역할을 한 적은 있죠.

 

하지만 역시 1616년의 허균은 종계변무의 마무리를 위해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형조판서-좌참찬으로 출세일로를 걷습니다.

 

물론 판서는 정2품으로 정3품의 도승지보다 높은 자리지만, 도승지는 왕을 측근에서 보좌한다는 특별한 역할 때문에 품계에 관계없이 요직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작 광해군 시대에 도승지 자리를 가장 오래 유지한 사람은 이덕형입니다. 바로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그분이죠. 이덕형은 허균보다 8년이나 연상이지만 광해군이 밀려나는 그날까지도 도승지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류를 범했습니다. 광해군 때 오래 도승지 자리를 유지한 사람은 한음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 아니라 또 다른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이덕형'이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래 댓글 지적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되면 이덕형은 허균보다 8년이 아닌 3년 연상이 됩니다.]

 

아무튼 허균이 1616~1617년에 걸쳐 광해군의 총신이었던 것은 분명하니 뭐 벼슬이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4. 서인 정권 속의 외로운 왕?

 

'광해'에는 하선이 백관들과 마주해 명에 보내는 공물 등을 논하며 "그대들같은 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라고 질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광해'와 현실이 가장 크게 빗나가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 대신들은 대부분 서인이 아닌 북인의 일부, 대북파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권을 좌우하던 당은 바로 광해군을 옹립한 세력으로, 이이첨을 중심으로 한 대복이었습니다. 서인은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 세력 들 중 중앙 고위직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부분 지방의 부사, 부윤 급 정도였습니다.

 

물론 광해군이 매사에 대북 일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광해'는 '보수파=서인=친명 세력=수구적=주자학 교조적'이라는 국사교과서의 상식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광해군도 서인 대신들 속에 파묻힌 것으로 오도하고 있습니다. '광해'와 '영원한 제국'을 혼동할 정도로 말입니다.^^

 

 

 

 

5. 광해군은 반명(反明)적이었나

 

사실 광해군의 정책은 똑부러지게 '반명'이라든가 '친청'이라고 규정하기 힘듭니다. 당시 조선 사대부의 여론은 확실히 재조지은, 즉 임진왜란 때 원병을 파견해 왜군을 물리쳐 준 명과의 의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히 광해군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대의였죠. 광해군도 후금과의 관계 조정은 어디까지나 '미봉'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619년의 실록. 명의 요청에 따라 조선군을 이끌고 후금과 전투를 벌인 강홍립이 광해군의 밀명에 따라 전투를 회피하다가 패전 후 항복한 데 대해 신하들이 강홍립의 가족을 벌주자는 건의를 하고, 거기에 광해군이 답변한 내용입니다.

 

 

광해 139권, 11년(1619 기미 / 명 만력(萬曆) 47년) 4월 8일(신유) 1번째기사
왕이 노추를 잘 미봉하고 명에 대한 의리로 국방의 계책을 삼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적신 강홍립 등이 명을 받고 싸움터로 나갔다면 오직 적만을 쫓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먼저 통역을 보내어 미리 출병하는 까닭을 통지하는 등 마치 당초에 싸울 뜻이 없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이어,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하였다가 그들의 장계를 보니, 힘이 모자라 함락을 당하였다는 정상은 조금도 없고 또한 구차하게 살아난 것을 부끄러워하는 뜻도 없이 가는 길의 행군한 절차를 차례로 서술하고 감히 미리 통지하여 낭패하였다는 등의 말을 버젓이 아뢰면서 스스로 그들이 한 일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며, 끝에 가서는 다시 회답할 말을 지시해 주어 살아서 돌아오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신하로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천하에 가장 나쁜 행실입니다. 이것을 범하였을 경우 그 처자를 감금하여 법으로 처치하는 것이 국가의 일상적인 형법인데 (중략) 이 때문에 신들이 그들의 처자를 감금하고 정응정 등을 나포하여 문초하는 일에 대해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누누이 청한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지금 계사를 보니, 뜻은 좋다. 그러나 내 비록 혼미하고 병들어 맑은 정신은 아니지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경들은 이 적을 어떻게 보는가? 우리 나라의 병력을 가지고 추호라도 막을 형세가 있다고 여기는가? (중략)


지난해 군병을 들여보낼 때 경들은 마치 일거에 탕평할 것처럼 여겼는데, 병가(兵家)의 일은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옛사람들이 감히 가벼이 사용하지 아니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명나라에서 만약 군병을 진열하여 무력을 과시하고 중국의 국경을 굳게 지킨다면 마치 호랑이나 표범이 산 속에 있는 형세와 같아 적이 비록 날뛴다고 하더라도 감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생각지 않고 가벼이 깊이 들어갔으니 반드시 패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었다. (중략)


강홍립 등의 사건에 있어서도 비록 적에게 항복하였다고 하나 이처럼 급하게 다스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강홍립 등이 불행히 적진 중에 함몰되었으나 보고 들은 것들을 밀서로 계문하는 것이 무엇이 안 될 것이 있는가. 진실로 본사의 계문과 같이 한다면 비록 노중(虜中)에 함락되었더라도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하여 보내지 않아야 옳다는 말인가. 아, 묘당에 사려 깊은 노성(老成)한 인재는 거의 죄다 내쫓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젊고 일에 서투른 사람이 비국에 많이 들어갔으니 국가 운영을 잘 못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길 것조차도 없다.

대국 섬기는 성의를 더욱 다하여 붙들어 잡는 계책을 조금도 해이하게 하지 말고 한창 기세가 왕성한 적을 잘 미봉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좋은 계책이다. 그런데 이것을 버려두고 생각지 않은 채 번번이 강홍립 등의 처자를 구금하는 일만 가지고 줄곧 계문하여 번거롭히고 있으니, 나는 마음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본사에서 누차 청하는 뜻을 나 또한 어찌 모르겠는가. 천천히 선처하여도 진실로 늦지 않다. 오직 국가의 다급한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추의 서신이 들어온 지 이미 7일이 되었는데 아직도 처결하지 못하였다. 국가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하늘의 운수이니 더욱 통탄스럽기만 하다.”

하였다. 당초에 강홍립 등이 압록강을 건너게 된 것은, 상이 명나라 조정의 징병 독촉을 어기기 어려워 억지로 출사(出師)시킨 것이었지, 우리 나라는 애초부터 그들을 원수로 적대하지 않아 실로 상대하여 싸울 뜻이 없었다. 그래서 강홍립에게 비밀리에 하유하여 노혈(虜穴)과 몰래 통하게 하였던 것인데 이 때문에 심하(深河)의 싸움에서 오랑캐의 진중에서 먼저 통사를 부르자 강홍립이 때를 맞추어 투항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구금되어 있으면서 장계를 써서 종이 노끈을 만들어 보냈는데, 화친을 맺어 병화를 늦추자는 뜻을 자세히 언급하였다. 정응정 등은 도망쳐 온 것이 아니고 오랑캐가 풀어 보낸 것인데, 보는 이들은 모두 노추(奴酋)가 전쟁을 늦추려는 계획이라고들 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 기록은 모두 광해군이 폐위된 뒤에 편집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광해군의 패륜과 실정에 주목하고,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기록은 사관이 광해군의 말에 심히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시절 조정 대신들이 명분론에 매달려 나라를 망쳤다고 한탄하지만, 이 명분론이란 역사에 대의와 인과응보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과거사'와 '역사의 정의'를 말하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광해군도 명을 부정하기 보다는, 다만 '미봉'이라는 말로 한창 일어나고 있는 후금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할 뿐입니다. (광해군이 어떻게 조정 대신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정보력을 갖게 됐는지도 사실 궁금합니다. 비밀 정보조직이라도 운영한 것인지...)

 

 

 

 

6. 허균은 역성혁명을 일으켰나?

 

이건 제작진이 '역성혁명'이란 말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했는지 몰라 약간 애매합니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란 글자 그대로의 의미, 그러니까 '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성씨의 왕조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대로만 보면, 허균에게 씌워진 혐의는 역성혁명이 아니라 의창군 광을 추대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의창군은 광해군의 막내 동생뻘이며 허균의 조카사위입니다. 의창군 역시 조선의 왕족이므로 이건 역성혁명이 될 수가 없는 것이죠. (조선시대에도 역성혁명을 시도한 사람은 꽤 됩니다. 유명한 정여립이 - 물론 진짜 반란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렇듯 허균이 '역성혁명'을 시도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이 부분은 시나리오의 마지막 수정자가 역성혁명이란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지, 아니면 김탁환의 '허균의 마지막 19일' 등에 나오는 '허균 역성혁명 가설'을 선택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 안의 맥락으로 봐선 허균이 하선을 보고 '새로운 왕'의 가능성을 봤고, 하선을 살려 보낸 사실이 광해군에게 드러나면서 '역성혁명을 시도했다'는 죄목으로 처단됐다는 설명이 맞아 떨어집니다.

 

(어쩌면 제작진의 머리 속에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끝난 뒤 허균이 다시 하선을 찾아 나서고, 하선을 다시 왕으로 만들기 위해 거대한 음모를 짜다가 들통나고, 결국 하선과 허균이 함께 능지처참을 당하는 장대한 속편의 구상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마치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속속편인 브라즐론 자작의 3부 - 흔히 '철가면'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 같은 느낌이군요.^)

 

 

 

거듭 말씀드리자만 '광해'은 오락 영화로서 탁월한 완성도를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역사를 상상력으로 다시 재단해 자유롭게 구성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 보다는 꽤 많이 - 영화 속의 역사 재구성을 마치 '감춰진 역사 발굴'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그러니 '영화는 그냥 영화로 봐라'라는 말씀 사절.)

 

 

조 아래쪽 추천 상자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싸이, 빌보드 석권] 싸이가 빌보드 차트 11위까지 오르는 초강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주 64위에 오른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는데 2주만에 11위라니, 이제는 1위에 오른다 해도 놀랍지 않을 듯 합니다. 하긴 이미 소셜 차트 1위와 아이튠스 1위를 차지했으니 빌보드 1위도 결코 꿈이 아닙니다.

 

'강남스타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제2의 마카레나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글을 쓴지 한달 남짓 지났는데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속이 붙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아무튼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춤을 가르치고, 사이먼 코웰과 인증샷을 찍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럽에서 술잔을 나눈다니, 이제 국내에서 싸이를 보기 힘들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목 설명 들어갑니다. 싸이가 만약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면 대략 사상 7번째 기록을 세우는 셈입니다. 무슨 기록일까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겠지만, 바로 '영어가 아닌 언어 가사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노래' 부문에서 역대 일곱번째라는 뜻입니다.

 

 

 

서구인들, 특히 미국인들의 자국어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자막으로 외국영화 보기'가 그들에겐 대부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마찬가지로 외국 언어로 된 노래를 소비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차라리 연주곡이 히트하기가 훨씬 쉽죠.)

 

지금까지 여섯 곡의 '비 영어 가사'로 된 노래들이 빌보드 핫100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물론 그중 한 곡은 잘 알려진 '마카레나'입니다. 그럼 그 전의 노래들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놀랍게도 리키 마틴이나 샤키라, 셀린 디온은 아닙니다.

 

 

 

 

90년대의 슈퍼스타 리키 마틴이 부른 노래들 가운데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는 '리빈 라 비다 로카(Livin la Vida Loca)' 단 한곡 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제목만 스페인어 일 뿐(영어로는 대개 'crazy life'라고 번역됩니다), 가사는 모두 영어죠.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foreign language hit 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샤키라도 2005년의 'La Tortuna'가 차트 22위에 오른 정도가 최선입니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그 유명한 '헤이'도 미국 핫100 성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HOT100에 올라 미국 시장을 석권했던 노래들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 역사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핫100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1958년 이후 핫100 1위를 기록한 '비 영어 가사' 히트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 제가 알기론 6곡인데 좀 불안합니다.^^ 혹시 다른 사례를 알고 계신 분들의 제보 부탁드립니다. 당장 수정하겠습니다.

 

 

 

 

Volare - Domenico Modugno, 이탈리아

1958. 8월부터 5주간 1위(연속은 아님)

 

이탈리아 가수 도메니코 모두뇨의 '볼라레'가 현재까지는 가장 오랜 기록인 듯 합니다. 요즘도 각종 CF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죠. '볼! 라~레'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집시 킹스(Gipsy Kings)가 리메이크한 빠른 템포의 뉴 버전이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곡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Dominique - the Singing Nun (Sister Smile)  벨기에

1963. 12.7~4주 연속

 

'싱잉 넌'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벨기에 수녀(진짜 수녀 맞습니다) 지니 데커스(Jeannie Deckers)가 부른 노래입니다. 가사는 불어. 국내에도 오래 전부터 '도미 니크니크니크니크 즈을거워라~~~'하는 번안 가사로 잘 알려진 노래죠.

 

이 노래 외에도 왕년의 '비 영어 히트곡'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히트곡들이기 때문에 제목은 몰라도 들어 보면 너무나 친숙한 곡들입니다.

 

 

 

 


Sukiyaki - Kyu Sakamoto 일본

1963. 6.15~29 (3주)

 

지금까지 '아시아권에서 미국 진출에 성공한 가수'를 꼽으라면 항상 큐 사카모토가 거론됐고, 사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이 노래의 제목은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上を向いて歩こう), 즉 '위로 보고 걷자'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영국 음반사 사장이 이 노래의 영국 발매를 결정하면서 '저 제목으론 도저히 승부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이죠. 그래서 일본어 단어 중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스키야키'를 제목으로 붙이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리메이크 연주곡으로 발매된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친근한 멜로디 덕분에 히트하게 됐고, 일단 곡이 히트하자 음반사에선 아예 일본어 가사가 있는 원곡을 다시 발매했습니다. 이것이 미국까지 퍼지며 불같은 인기를 누렸고, 핫100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싱글 음반이 1300만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미국내 발매 음반 사상 역대 10위권의 기록입니다.

 

 

 

 


Rock Me, Amadeus - Falco 오스트리아
1986. 3.29~4.12(3주)

 

이제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남 가수 팔코는 독일어 노래로 핫100을 석권했습니다. 제목과는 달리 일렉트로닉 댄스 곡이라는게 특징. 비슷한 아이디어로 가제보의 'I Like Chopin'이라는 노래도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Chopin이 '초핀'이 아니라 '쇼팽'이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팔코는 이 노래 외에도 비장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Jeannie'라는 노래(한때 나이트클럽의 '부르스 타임'에 단골로 등장했던 곡입니다)로 미국은 아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상당한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이 노래는 거의 금지곡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가사가 '강간 미화'라는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뮤직비디오는 알고 보면 살인범 스토커와 그 피해자 사이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것이었죠. 후렴구 외에는 전부 독일어 가사라 아시아 지역에선 반향이 적었던 듯...^^

 

 

 

 

La Bamba - Los Lobos 멕시코

1987. 8.29~9.3 (3주)

 

비행기 사고로 간 비운의 초기 록 스타 리치 발렌스는 이 노래 한 곡으로 지금껏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87년, 그를 추모하는 영화 '라 밤바'가 개봉됐죠.

 

영화 자체는 엄청난 히트작이 아니지만 멕시코 뮤지션 로스 로보스에 의해 리메이크된 노래 '라 밤바'는 다시 한번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습니다. 리치 발렌스가 1958년에 부른 원곡은 차트 22위 정도에 그쳤지만 1987년의 '라 밤바'는 3주 연속 핫100 정상을 지켰습니다.

 

 

 

 

 

Macarena - Los Del Rio 스페인
1996. 8.3~11.2 (14주)

 

마지막은 지난번에도 소개했던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입니다. 당시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겠습니다. 못 보신 분은 이쪽.

 

강남스타일, 제2의 마카레나 될 수 있을까? http://fivecard.joins.com/1030

 

 

 

지금까지 예로 등장한 노래들을 보면 스페인어가 2곡이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과 일본이 하나씩입니다. 사실 미국 내 인종 비율을 생각하면 스페인어 노래는 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빌보드 핫100 1위를 다섯번이나 기록한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도 그 1위곡들은 모두 영어 노래들입니다.

 

현재의 기세를 볼 때 싸이는 아마도 핫100에서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현재까지의 히트 사례들을 볼 때, 비록 싸이가 지금 '강남스타일'을 영어로 개사할 필요는 없겠지만, 미국에서의 그 다음 히트를 기대한다면 아무래도 영어 가사로 된 신곡을 내놓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합니다. 단독 작업이든, 저스틴 비버와 같은 히트 아이돌과의 공동 작업이든 말입니다.

 

(물론 이 '신곡'에는 과거의 히트곡들을 영어로 개사해 발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쪽 시장에서는 뭐든 다 신곡일테니.)

 

 

 

(그리고 아래는 '강남스타일'에 심취하신 어느 백인 아저씨. ㅋ)

 

 

 

쇼 비즈니스만큼 예측이 어려운 세계도 드문 만큼, 싸이가 '강남스타일' 이후에 어떤 식으로 미국 커리어를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위에 있는 여섯 뮤지션 가운데 저런 불멸의 히트곡 외에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이어간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이 '로또에 맞듯' 성공을 경험했고, 그 이후 새로운 시장에 적응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싸이 역시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깜짝 성공이란 면에선 마찬가지지만, 현재 상황은 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 작곡을 도와주는 파트너 유건형(왕년에 '언타이틀'로 유명했죠), 유창한 영어 실력과 타고난 언변, 전 세계적으로 밀리지 않을 끼, YG의 본격적인 뒷받침, 미국 내 메이저들의 지원 등 상당히 유력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근래 몇년 사이 세계 시장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POP의 저변도 싸이의 지원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걸스도 화이팅.^^

 

그런 의미에서 싸이가 21세기의 '마카레나'를 넘어 21세기의 '리키 마틴'이 될지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될 듯 합니다(뭐 외모를 얘기한 건 아닙니다^^). 너무 야무진 꿈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싸이가 엘렌 드 제너리스 쇼나 SNL에 출연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한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기원의 뜻에서.

 

 

 

조 아래쪽 네모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갓 태어난 북극곰 사진의 진실] 그러니까 발단은 한 후배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너무나 귀여운, 갓 태어난 북극곰 사진 하나를 본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클릭해 보니 해외 무슨 공공 페이스북에서 공유된 사진이었고, 설명은 아주 간단히 '어린 북극곰(Polar bear cub)'이라는 것이었죠.

 

후배 기자의 설명은 '너무 작긴 하지만, 공룡 알도 타조알 사이즈인 걸 보면 쑥쑥 자라는 모양...' 운운 하는 것이었고, 그땐 그냥 '뭐, 좀 작은가보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네. 인터넷의 세계,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세계에는 그냥 믿으면 안되는 지뢰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사진입니다. 백곰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귀엽고 조그만 생명체가 사람의 손에서 귀염을 떨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사진설명에 백곰이라고 되어 있으니 "세상에!"하고 백곰이라고 믿었죠.

 

그리고 이 사진을 트위터로 내보냈습니다.

 

 

 

그랬더니 600회가 넘는 리트윗. 역시 '사람들은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트위터에 날려 보낸 수천개의 트윗이 이 곰새끼 사진 하나만도 못하구나'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 중에는 '이거 인형이에요'라는 것들이 몇개 있었습니다. 뭐 처음엔 그냥 무시했죠. 예쁜 여자 사진 올리면 '이거 뽀샵이에요' '이거 인형이에요' 라는 댓글이 기본으로 달리던 시절도 있었고...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영 찜찜한겁니다. 아니 무슨 백곰이 강아지도 아니고, 어떻게 조만한 새끼를 낳을수 있나 싶은 거죠. 게다가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백곰은 꽤 자라야 눈을 뜬다더라'라는 것도 생각나고. 혹시 저게 정말로 인형? 아니면 다른 동물의 새끼? 혹시 처음 생각한대로 코알라? 아니면 백곰 조산아?

 

...뭐 갖가지 의혹이 밀려옵니다.

 

검색 개시.

 

그리곤 이상한 것이 발견됩니다.

 

문제의 백곰?은 생명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타티아나 스칼로주브(Tatiana Scalozub)라는 분이 팔고 있는 곰 인형 패턴의 페이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은 자기가 만든 곰 인형 사진을 올려 놓고, 그 인형들을 만들 수 있는 봉제 패턴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분이었습니다.

 

거기엔 우리의 백곰이가 'best seller'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패턴에 관심 있는 분은 이쪽:

 

(http://www.etsy.com/people/TSminibears?ref=pr_profile)

 

여기 다양한 다른 포즈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것이, 한번 인형이라는 생각을 갖고 보니 또 이게 인형으로 보이는 겁니다. 특히나 입 모양을 보고 나니 이건 참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아무튼 참 잘 만든 인형입니다.

 

 

 

이분의 또다른 작품인 초미니 팬더. 더 작아서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아무튼 같은 장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작품에서는 그닥 사실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던 타티아나씨가 유독 심혈을 기울여 재현해 낸 바람에 저 위의 귀여운 백곰이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농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만 낚인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드리기 위해 퍼왔습니다. 해외의 한 애완동물 전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백곰이의 사진. "이 아기 백곰은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다. 이건 급성장(growth spurt)하기 직전의 모습"이라는 뻔뻔한 설명까지 붙어있군요.^^

 

(Tatiana Scalozub Polar Bear가 구글 검색어에 있는 걸 보면 이 사진에 엮인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널려 있다는 느낌입니다.^)

 

 

내친김에, 그럼 진짜 꼬마 백곰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코펜하겐의 한 동물원에서 찍혔다는 갓난이 백곰의 사진입니다. 생각보다 입도 크고, 눈은 더 폭 들어가 있습니다. 털의 느낌은 인형보다 훨씬 짧으면서 부숭부숭합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차이의 기본은 '싸이즈'.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그러니까 갓난이 백곰도 30cm 정도, 무게는 454~600g 정도 나간다는 겁니다. 함부로 손바닥 위나 그런데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가 절대 아닙니다. ;

 

 

 

이 친구는 생후 한달 정도 지난 사이즈라고 합니다.

 

 

 

그렇게 자라면 이런 멋진 가족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죠.

 

 

아무튼 곰돌이 사진 때문에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들은 아무리 의심하고 또 의심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Cogito, Ergo Sum. 역시 옛말 틀린게 없더군요.

 

 

조 아래 네모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이 있고,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있습니다. 영화적으로는 당연합니다. 두 인물은 1인 2역으로 같은 배우가 연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다 보면 1인2역이 아니라 1인3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드시 왕이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가 효과적이려면 두 남자는 생김새와 목소리가 똑같지만 신분상으로서는 상당한 격차가 나야 합니다. '왕자와 거지'를 보건, '가게무샤'를 보건 한쪽 남자가 비천한 신분인 것은 매우 당연한 공식입니다. 그리고 그 비천한 남자는 빠른 속도로 변해갑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하선이라는 한 평범한 남자가 왕과 닮았다는 이유로 15일간 왕 노릇을 하고, 그 길지 않은 시간 사이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변신 이야기는 놀라운 완성도로 이미 큰 성공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조선의 왕 광해(이병헌)은 암살의 위협을 다시 한번 넘기고 심복 허균(류승룡)에게 "나와 용모가 꼭 닮은 자를 구해 오라"고 지시합니다.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기방에 출입하며 광대놀음을 하던 하선(이병헌). 왕의 용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똑같이 흉내내며 글도 읽을 줄 아는 하선에게 왕과 허균은 만족하고, 하선은 이따금씩 왕의 미행을 감추는 대리 역할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해가 알 수 없는 독극물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허균은 왕의 변고를 감추기 위해 하선을 궁으로 데려온 뒤 왕을 은밀한 곳에 숨겨 치료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선은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광해를 대신해 조선의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허균과 조내관(장광) 두사람 뿐. 비밀이 드러날 것에 대비해 "비빈들, 특히나 중전(한효주)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지지만....

 

 

 

 

 

 

조선의 여러 왕들 가운데 조선시대와 대한민국 시대에 가장 큰 평가의 변화를 겪은 임금을 하나 꼽으라면 광해군을 빼고 생각하기 힘들 듯 합니다. 연산군과 함께 패륜과 폭정의 상징이었던 광해군은 20세기의 눈으로 볼 때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현명한 판단으로 전쟁 개입을 피하려 했던 외교의 대가요, 대동법을 도입한 선각자에다 임진왜란의 피해 극복을 지휘한 위대한 지도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사실 다들 아시겠지만 조선은 충보다도 효를 더 강조했던 윤리의 나라였습니다. 20세기 초, 전국에서 모인 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진공하려던 의병장 이인영이 모친상을 당한 몸으로 군을 이끌 수 없다며 귀향해 상을 치르고 체포된 것이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광해군 시대를 기록한 사서의 표현에서는 광해군의 정책에 대해 일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해당하는 인목대비(선조의 계비)를 유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하는 등 '패륜'을 저지르고서는 왕위를 제대로 보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해도 지도자를 선정할 때 개인적인 윤리 차원의 '검증'이 필요 이상으로 중시되는 걸 보면 이건 한국인의 내재된 속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광해에 대한 아쉬움이 이 영화에서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슷하게 왕과 똑같이 생긴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세종 때라는 배경이 특별한 의미가 아니지만, 이 '광해'는 비슷비슷한 다른 영화들에 비해 '시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모든 시대극은 그냥 시대극으로만 그쳐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듭니다. 일본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가 "나는 단지 내 이야기에 가장 맞는 시대적 배경을 고를 뿐"이라고 말한 이후 이건 상식이 됐죠.

 

'광해' 역시 사극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물론 많은 한국 영화들이 이걸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광해' 역시 이런 부분에서 다소 무리수가 보이지만, 그동안 나왔던 수많은 팩션 가운데 그래도 '역사의 무게'에 대한 인식에선 확실히 한발 앞서 있는 영화가 바로 '광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게 '광해' 속의 당시 정치 상황이 역사에 기록된 모습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역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존중할 만 하다는 것입니다. 뭐 '높은 것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아랫 것들은 사소한 의리에 따라 목숨을 건다'는 식의 지나치게 도식적인 배치는 아니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말입니다.^)

 

 

 

 

이를 포함해 '광해'에서 가장 두드러진 강점은 '무거운 이야기'와 '가벼운 이야기'의 황금비율입니다. '둘 다'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배우 중 하나인 류승룡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류승룡의 움직임에 따라 두 이야기의 배분이 조절되기 때문이죠. 류승룡이 중심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코믹함이 돋보이는 배우 김인권이 강직함을 표상으로 하는 도부장 역을 맡아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칼 관련 에피소드, 즉 김인권의 "저~~~~~언 하~~~ 히잉" 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전반적으로 코미디와 관련된 '호흡'과 '박자' 면에서 추창민 감독은 장인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배우들 이야기로 넘어가면 이병헌의 호연은 굳이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 영화 초반에는 하선과 왕을 가르는 선이 그리 분명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왕은 그 자리에 있지만 하선이 지나치게 지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선이 지나치게 시정 잡배처럼 보여선 안된다'는 제작진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하선1(광대놀음을 하던 원래 하선)이 하선2(왕이 된 뒤 변모한 하선)로 바뀌어 가면서 이병헌의 연기는 빛을 발합니다.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왕 하선2와, "용상에 앉았던 천한 것을..."이라며 서늘한 분노를 감추는 광해는 선명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이병헌은 세 인물을 연기하는 셈이 됩니다. 물론 광고 영화인 '인플루언스'에서 이미 1인3역을 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하선이라는 인물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세 인물 가운데서도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하선2'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효주는 이미 사극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비련의 중전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아우라를 풍겼습니다. 역할의 특성상 눈에 띄는 자극적인 연기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광해'의 중전 역할을 할 배우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관객의 공감'입니다. 즉 '저런 중전이라면 하선이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해 가면서도 보호하려 기를 쓰는게 당연해'라는 생각을 줄 수 있는 배우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효주의 캐스팅은 탁월했습니다.

 

 

 

 

 

가짜와 진짜 사이의 에피소드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입니다만 '광해'에서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카게무샤'의 영향이 좀 더 느껴집니다. 가짜가 어느 한 순간 자신의 가능성을 각성하고, 진짜가 되어도 큰 무리가 없는 '가짜 진짜'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하나 기억나는 영화는 션 코너리 주연의 고전 영화 '왕이 될뻔한 사나이 (The man who would be king)' 입니다. 국내에서 극장 개봉은 없었던 듯 하고, TV에서 방송될 때에는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을 달았던 작품이죠. 인도에 파병됐던 두 명의 영국군 낙오병이 네팔 부근의 오지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중 한 병사(션 코너리)는 몇번의 우연이 겹치면서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으로 오해받게 되고, 서서히 그 자신도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나 혼동을 일으킵니다.

 

널리 알려진 영화는 아니고, 쌍둥이가 나오지도 않지만 가짜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새로운 삶에 눈을 뜨면서 벌어지는 사소한 성공들, 도주의 기회, 자발적인 거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비참한 몰락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은 광해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이 주인공에 대한 안타까움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양쪽 영화 모두 성공적입니다.

 

(DVD 출시명은 '왕이 되려고 한 사나이'로군요.)

  

 

 

'광해'에서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빛의 사용입니다. 진짜 왕 광해는 빛을 등에 이고(후광이라고 할까요^) 있거나, 인공적인 조명의 도움을 받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선은 왕위에 있을 때도 자연광 앞에 노출됩니다. 이런 배치는 '태어난 왕'과 '만들어진 왕'의 차이를 은연중에 관객에게 심어주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입니다.

 

길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얼른 보세요.

 

 

 

P.S. 사실 광해군은 33세에 왕이 됐고 중전 유씨는 당시 30세. 배경이 광해군 8년이므로 광해군은 41세고 유씨는 40세... 뭐 이런 생각을 하면 '광해'의 로맨스가 깨질 우려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얘깁니다. 이런 이야기는 별도 포스팅으로.^^

 

 

 

 

바로 위 네모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익스펜더블 2, 실베스터 스탤론, 척 노리스] 1985년, 노량진 대성학원 옆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다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커피는 한잔에 천원. 그런데 특징이라면 차를 파는게 주업이 아니라 비디오를 틀어 주는게 주업이라는 점이었죠.

 

비디오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시절에 '빨간 비디오'를 틀어 주려면 시간이 그래도 새벽 한시는 넘어야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 야한 영화가 아니라, 당시 극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할리우드의 최신작 영화들을 틀어 주는 전문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커녕 삐삐도 없었고, LP와 카세트 테이프가 음반 산업의 주축이던 시절, 어디서 그런 영화들을 구해 오는지 매우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그해 여름, 학원생들 사이에서 당시 화제의 영화였던 '람보2'를 '그 다방'에서 틀어 준다는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극장 개봉 전이기도 했거니와, 극장 영화 표값이 한 2500원 정도 했던 시절. 가 보니 다방 안에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항의로 상영(?)이 중단될 뻔 했습니다. 아무리 무지몽매한 재수생들이었지만 보다 보니 주인공이 실베스터 스탤론이 아니고, 영화도 람보2가 아닌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혀 그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날 본 그 영화가 람보2였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명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별로 항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진짜가 아닌 짝퉁 람보2였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넘어갈 만큼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월남전 배경 영화는 흔치 않았던데다 서부극 못잖게 '쏘면 다 맞는' 영화는 현대전 영화에서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죠. 아울러 수염 기른 남자주인공 또한 사뭇 매력적이었습니다.

 

 

 

 

짐작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 영화는 'Missing in Action(1984)'이었고, 그 주인공은 척 노리스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재수생의 머리 속에서 인연을 맺은 척 노리스와 실베스터 스랠론은 27년만에 한 영화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익스펜더블2'.

 

 

 

1편을 보신 분이나 안 보신 분이나, 아무 상관없는 줄거리지만,

 

바니 로스(실베스터 스탤론), 크리스마스(제이슨 스타댐), 양(이연걸) 등은 1편의 악역이었던 거너 젠슨(돌프 룬그렌)을 멤버로 받아들여 여전히 용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는 네팔 어딘가에서 이들이 포로가 된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구해 주는 장면. 신나는 불꽃놀이가 펼쳐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정부 일을 하고 있는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가 과거의 부채를 거론하며 로스에게 동구권 어딘가에 추락한 비행기 금고에서 모종의 물건을 가져오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들을 돕는 요원으로 젊은 중국인 여성 매기(여남餘男, 흔히 위난이라고 불립니다)가 파견되죠. 하지만 로스 일당은 현장에서 빌런(장 클로드 반담) 일당에게 기습을 당해 물건도 빼앗기고 인명 피해도 입죠. 분노한 로스는 매기의 도움으로 빌런 일당을 추격해 러시아로 갑니다.

 

 

 

 

이후의 전개에도 놀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반전도, 복선도, 보는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편은 악당들을 뭉개 버리고, 모든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결론을 향해 영화는 달려갑니다.

 

물론 이건 영화를 보기 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영화 한 편에 실베스터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다 나오고 이들이 같은 편인데 대체 누가 그걸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장 클로드 반담? 어림없죠.

 

 

 

 

이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마음 자세는 - 당연히 그렇겠지만 - 지금 현재가 아니라 '왕년'에 가 있어야 합니다. '왕년'의 극장가를 뒤흔들었던,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바로 그 액션 영웅들이 얼마나 늙고 몸도 굼뜨게 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은지원이나 문희준이 여전히 팬들을 졸도하게 할만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응답하라 1997'은 그 시절을 보냈던 연령층에게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유머 역시 철저하게 관객의 추억에 기대고 있죠.

 

 

더 알아듣기 쉽게 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총알이 떨어졌다. I'll be back('터미네이터'의 상징적 대사).

브루스 윌리스: 그만 좀 돌아와! 이제 내 차례야. (제발 그 'I'll be back' 좀 그만 써먹어!)

아놀드 슈워제네거: 그래. Yippe-kai-yay ('다이 하드'에서 맥클레인의 상징적 대사)

 

 

 

 

1편에서 이미 그런 정서를 이용해 꽤 많은 돈을 번 '익스펜더블' 프로젝트는 2편에 들어가면서 부커(척 노리스)와 트렌치(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강하고, 미스터 처치(브루스 윌리스)까지 실전에 투입하며 기세를 올립니다.

 

 

 

 

사실 이 시리즈의 아이디어는 역시 추억의 명화인 '지옥의 특전대(Wild Geese)'에 가깝지만, 그 어떤 비장미도 찾아볼 수 없다는게 특징이죠. 영화 중반에서는 어쩐지 '황야의 7인(혹은 '7인의 사무라이')' 쪽으로 흘러가려는 듯한 느낌이 잠시 조성되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으시는게 좋습니다.

 

1편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몇몇 추가 멤버들과 함께 구질구질한 멜로드라마가 아예 삭제됐다는 것 뿐인데, IMDB 평점(6점대에서 7점대로), 로튼토마토 지수(41->64) 모두 상승했습니다. 글쎄 뭐가 그리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긴 하지만, 지금의 3,4,50대 남성 관객들이 두어 시간 동안 세상 시름을 잊고 1,2,30년 전을 그려 보기엔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뭐 여자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그런데 굳이 따져 보니 척 노리스는 70대였군요.^^ 진짜 액션 그랜드파...

 

척 노리스 1940.3.10

실베스터 스탤론, 1946. 7.6.

아놀드 슈워제네거 1947.7.30

브루스 윌리스 1955.3.19

돌프 룬그렌 1957.11.3

장 클로드 반담 1960.10.18

이연걸 1963.4.26

제이슨 스타댐 1967.9.12

 

 

 

 

자, 이제 3편에서는 누가 기다리고 있나 보겠습니다. 웨슬리 스나입스(1962.7.31)와 스티븐 시걸(1952.4.10)이 있군요. 1편에서 악역을 거부했던 반담도 가세했으니 시걸에게는 다이어트만 남은 셈인가 봅니다.

 

 

 

조 아래쪽 네모 안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스마트폰에서도 추천이 가능합니다. 한번씩 터치해 주세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더 좋은 포스팅을 만듭니다.

@fivecard5를 팔로우하시면 새글 소식을 더 빨리 알수 있습니다.

 

728x90

요즘은 좀 다양해졌습니다만 예전엔 야외에 나가면 먹는 음식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토종닭 백숙, 민물매운탕, 닭도리탕(닭볶음탕이라고도 합니다만...) 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오래 매력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 바로 토종닭 백숙이라고 하겠습니다.

 

토종닭을 먹어 본 일반인들에게 토종닭의 특징을 물으면, 백이면 백 '질기다'고 합니다. 저도 그리 많이 먹어 본 것은 아니지만, 다릿살조차도 가슴살 못잖게 퍽퍽하고 질겼던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야외까지 나와서, 비싼 토종닭을 먹어야 할 이유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런데 최근 방송된 '미각스캔들'을 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먹어 온 토종닭은 토종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군요.

 

 

 

 

토종닭이 질긴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댑니다. 요즘 많이 먹는 일반 양계장 닭은 한정된 공간에서 먹이를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자라기 때문에 지방 함량도 높고 살이 무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토종닭은 풀어 놓고 기르기 때문에 온 몸이 근육질(?)이고, 그래서 질기다는 것이죠.

 

이때문에 시골 토종닭 전문점(?)에 가 봐도 주문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토종닭이라 삶는데 오래 걸린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또 그렇게 오래 삶아서 나온 닭도 턱이 아플 정도로 질긴게 보통이죠.

 

 

 

 

그렇지만 방송에서 직접 닭을 삶아 본 결과, 토종닭이라고 살이 질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반 육계와 비교해 볼 때 비슷한 시간을 삶으면 거의 비슷하게 살이 문드러집니다.

 

게다가 맛을 보는 사람들도 "생각과는 달리 쫄깃쫄깃하다"고들 합니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현재 유통중인 공인 토종닭, '우리맛 닭'과 '한협 3호' 중 '한협 3호'를 삶은 것입니다.

 

 

 

 

그럼 대체 왜 식당에서 파는 토종닭은 질겼던 것일까요. 이유는 진짜 질긴 닭, 즉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노계들이 토종닭으로 둔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산업계에서 규정하는 노계란 그냥 나이 먹은 닭이 아니라 산란종의 닭 가운데서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알 생산력이 없어 헐값에 팔려 나온 닭이라는군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토종닭은 질기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오히려 역이용해서, 본래 요리용이 아닌 닭(노계는 보통 동물 사료나 닭고기를 이용한 소시지 등 육가공식품용으로 팔린다고 합니다)을 속여 팔고 있었던 겁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이런 '질긴 토종닭'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보면 몇해 전 불처럼 일어났던 '수타면 논란'이 생각납니다.

 

방송을 통해 면을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뽑는 '수타면 짜장'들이 각광받으면서 너도 나도 수타면으로 짜장면을 요리한다고 나섰을 때 일입니다. 이때 수타면을 처음 먹어 본 사람들은 '이게 국수냐 수제비냐' '수타면 수타면 하더니 영 아닌 것 같다'는 혹평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한가지. 수타면이라는 간판을 걸고 실제로 '손으로 국수를 뽑아 내기는' 하되 기술자도 제대로 배운 기술자가 아니고, 손님이 늘자 시간도 부족하고 하다 보니 대충 만들다 만 수타면이라 국수의 굵기가 일반 기계면의 1.5~2배 가량 되는 수타면이 나온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국수에 양념이 제대로 배지도 않고, 최악의 경우 국수가 덜 삶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본래 장인들이 만든 수타면, 약간 과장을 보태면 머리칼처럼 가느다란 수타면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당시의 '수타면 붐' 때문에 오히려 수타면을 거부하게 된 것이 어쩌면 근래의 토종닭 상황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당장 저부터도 '토종닭=질기고 맛없는 닭'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토종닭은 위에서 말했듯 '우리맛닭'과 '한협 3호' 두 종류입니다. 그나마도 6.25 등을 거치며 아예 토종닭의 씨가 말랐던 것을 어렵게 종을 보존해 길러낸 것이 이 두 종류라는군요.

 

일반적으로 진짜 토종닭은 다리가 늘씬하고 발달해 있어 육안으로 구별된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맛닭은 발목이 저렇게 검은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또 일부러 닭을 염색하기라도 하는 작자들이 나타날까 겁납니다.

 

문제는 일반 육계가 30일이면 상품으로 나오는데 비해 토종닭은 60일 이상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2배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고급 음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나고야코친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뭐 그냥 '닭고기가 뭐 그리 비싸'라고 할게 아니라, 명품은 명품으로 취급하는 태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이런 표지가 붙은 곳에선 안심하고 진짜 토종닭을 맛볼수 있다는데, 궁금합니다.^

 

 

728x90

사실 오페라를 가끔 봅니다만, 거기에 대해 포스팅하는 건 대단히 조심스럽습니다. 네가 언제부터 오페라 타령이냐고 면박을 당할 걱정도 좀 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철저한 무관심을,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는 지식 부족에 대한 지적이나 받을 거라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하지만 2012년 8월24일의 위대한 공연에 대해서는 뭔가 개인적으로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는 정명훈 지휘, 서울 시향의 연주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국내 초연이 이뤄졌습니다.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음악당인 이유는 무대 진행이 없는 스탠딩 콘서트 형식의 공연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국내 초연이라니... 바그너 오페라 공연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실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의 공연이 이뤄진 사례 자체가 대단히 드물더군요. 저도 언젠가 '탄호이저'를 공연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게 자그마치 1979년이더군요. 그 뒤로는 2005년 일본 오페라단 초청 공연, 그리고 2009년의 바그너협회 공연 정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08575)

 

 

 

 

물론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무대 장식이나 대형 합창단 등 '규모'가 크게 필요 없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무대가 거의 필요없어 이런 형식의 콘서트 퍼포먼스에 적절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도 힘든 것은 일단 공연 시간의 문제가 크다는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대개의 오페라가 4시간을 넘나드는 만큼 연주가 어렵고, 그 어려운 공연을 소화해 낼만한 바그너 전문 성악가(한 관계자에 따르면 '소처럼 노래하는 성악가'^)가 드물다는게 문젭니다. 물론 국내에 없다는 거지 한국이 낳은 위대한 베이스 연광철 같은 바그너 전문 가수들은 본고장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단 공연 개요부터 정리.

 

트리스탄과 이졸데

 

지휘 정명훈

연주 서울 시향

출연

테너 (트리스탄) : 존 맥 매스터 _ John Mac Master, tenor (Tristan)

 

 


소프라노 (이졸데) : 이름가르트 필스마이어 _ Irmgard Vilsmaier, soprano (Isolde)

 



메조소프라노 (브랑게네) :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_ Ekaterina Gubanova, (Brangane)

 


 
바리톤 (쿠르베날) : 크리스토퍼 몰트먼 Christopher Maltman, baritone
베이스 (마르케 왕) : 미하일 페트렌코 _ Mikhail Petrenko, bass (Konig Marke)
테너(젊은 선원, 목동) : 진성원 _ Sung Won Jin, tenor (Ein junger Seemann, Ein Hirt)
테너(멜로트) : 박의준 _ Eui Joon Park, tenor (Melot)
베이스(조타수) : 김장현 _ Jang Hyun Kim, bass (Ein Steuermann)

합창 : 국립합창단 _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합창 : 안양시립합창단 _ Anyang Civic Chorale
연주 : 서울시립교향악단 _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공연의 우수함을 제가 감히 평할 수는 없겠지만, 전막 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바그너 오페라는 '마이너 공연'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날 공연은 이미 두어달 전에 매진이었습니다. 저도 공연 약 5일 전, 예매 취소된 표를 운 좋게 사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자발적 관객'은 역시 '공짜표 관객'과는 엄청난 차이였습니다. 일단 국내 어지간한 오페라 공연과 기침소리의 양에서 비교가 안 될만큼 정숙성이 뛰어났습니다. (제발 기침 참기 힘든 분들, 지루한 공연 보고 있으면 목이 간질간질해서 미칠 것 같은 분들, 굳이 예술의전당까지 와서 기침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비싼 공짜 표도 있는데 오페라 한번 보러 갈까' 하시는 분들, 괜히 가래 돋는 공연 보면서 기침 하지 마시고 차라리 그냥 버리세요. 어차피 1막 끝나고 다 가실 거잖습니까.) 아무튼 지금껏 본 어느 오페라 공연과 비교해도 만족도 면에서 뛰어난 공연이었습니다.

 

(괜히 또 흥분... 저도 뭐 사실 가끔 졸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유명한 유럽 중세의 전설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1막

아일랜드에서 콘월로 건너가는 배 위. 트리스탄이 숙부인 웨일즈와 잉글랜드의 왕 마르케의 신부감인 이졸데를 호위하고 가는 여정입니다. 아일랜드는 마르케 왕의 군대에 패했고 강화를 위해 공주인 이졸데를 왕비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배 위에서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미워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합니다. 이졸데의 약혼자였던 아일랜드 기사 모롤드가 마크 왕을 선제공격했지만 실패하고, 모롤드는 목이 잘려 돌아옵니다.

얼마 뒤 아일랜드 해안에서 이졸데는 표류된 사람을 발견합니다. 이졸데는 비전의 의술로 그를 살려내는데, 본인은 가명을 대지만 이졸데는 그가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기사 트리스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보고 차마 죽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트리스탄은 건강을 회복하고 아일랜드를 떠나지만 얼마 뒤 마르케 왕의 군대를 거느리고 돌아와 이졸데를 왕의 신부감으로 데려간다고 말합니다.

배 위에서도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눈길을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을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라고 부르며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고 강요합니다. 그리고 시녀 브랑게네를 시켜 가전의 비약 중 죽음의 약을 가져오게 합니다. 적국의 왕비가 되는 치욕을 감내할 수 없으니 원수 트리스탄과 함께 죽겠다는 거죠.

하지만 브랑게네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놓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죽는 대신 불같은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2막

콘월의 성에서 마르케 왕의 왕비가 된 이졸데와 트리스탄은 밤을 틈타 밀애를 이어갑니다. 브랑게네는 트리스탄의 친구 멜로트가 눈치챈듯 하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사랑에 눈먼 이졸데에겐 조심성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 왕이 사냥을 떠난 사이 밤이 새도록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밀회를 즐깁니다. 이들에겐 밤이 해방이요, 낮은 죽음입니다.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죽음은 이들에겐 하나입니다.

 

So sturben wir, um ungetrennt. 우리 죽어요, 떨어지지 말고

ewig einig ohne End' 끝없이 영원한 하나로

 

하지만 날이 새자 마르케 왕과 멜로트가 들이닥칩니다. 마르케 왕은 '네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믿을수 없는 미녀를 데려오더니 이게 무슨 배신이냐'라며 참혹한 배신감을 토로합니다.

변명할 수 없는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같이 죽겠느냐고 묻고, 이졸데는 호응하는 가운데 이들을 용서할 수 없는 멜로트가 공격해 옵니다. 트리스탄은 싸움에 응하는 대신 멜로트의 칼에 몸을 던져 치명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3막

브르타뉴에 있는 트리스탄의 성. 충실한 시종 쿠르베날에 의해 브르타뉴로 옮겨진 트리스탄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 중태였지만 이졸데가 오고 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연인의 얼굴을 보려는 일념으로 몸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졸데와 마주하는 순간, 숨이 끊어지고 맙니다.

절망하는 이졸데. 이어 마르케 왕과 멜로트, 브랑게네가 다른 배로 따라와 상륙합니다. 쿠르베날은 이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잡으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공격해 멜로트를 죽이고 자신 또한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마르케 왕은 이들을 용서하고 두 사람을 맺어 주기 위해 온 것이었죠.

결국 비탄에 빠진 이졸데는 유명한 사랑의 죽음(liebestod)를 부르고 쓰러져 죽어갑니다.

 

이 아리아가 결국 한편의 오페라를 압축한 느낌을 줍니다. 트리스탄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이름조차도 어원은 '슬픔'이라는군요), 어둠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다가 연애마저도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이졸데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가 이승에서는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저승으로 미뤄 버립니다. 이 정서가 총정리된 것이 바로 이 아리아입니다.

 

이 오페라가 초연될 무렵(1859년)에는 이 노래를 가리켜 '로렐라이의 노래와 가장 유사한 노래'라는 평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사공의 넋을 빼어 배를 침몰시켰다는 로렐라이의 요정이 부른 노래가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을 거란 얘기죠. 그럴싸하게 이승의 노래가 아닌 듯, 노래는 몽환적이고 관능적입니다.

 

전설적인 바그너 가수 비르기트 닐손의 노래입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이졸데 전문가 발트라우트 마이어의 버전.

 

 

마이어가 부른 이 노래의 버전만 해도 10여개 검색될 정도.

 

제가 갖고 있는 DVD도 마이어의 1995년 바이로이트 판입니다.

 

 

 

르네 콜로와 기네스 존스가 부른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듀엣입니다. 이 오페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리베스토드'의 멜로디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사실상 같은 노래인 셈입니다.

 

중세 전설의 트리스탄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됩니다. 서로 뒤섞이는 전설의 속성에 따라 어떤 버전에서는 트리스탄이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가운데 한 멤버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영화 '킹 아서'에도 트리스탄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는 랜슬로트도 같이 나오는게 좀 어색합니다.

 

랜슬롯과 트리스탄이 공존하기 힘든 것은, 아서 왕의 이야기에서는 본래 랜슬롯이 트리스탄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친구이자 군주인 아서를 배신하고 왕비 기네비어와 불륜을 맺는 주역 말입니다.

 

그래서 아서 왕 이야기를 다룬 최고의 영화 '엑스칼리버'에서는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밀회 장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사용합니다. 관능적인 느낌이 일품입니다.

 

 

 

뭐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바그너 음악을 많이 차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인트로에서부터 '신들의 황혼'에 나오는 '지그프리트의 장례' 음악을 쓰고 있죠. 이 음악은 마지막 장면, 아서 왕의 죽음 때에도 되풀이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은 그 당시까지 마이너 음악이었던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브라나' 지만, 아서 왕 전설과 성배, 그리고 이 영화 속 퍼시벌이 바로 바그너 악극 '파르지팔'의 주인공이라는 점 등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 속의 바그너 사용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랜슬롯-기네비어 이야기와 트리스탄-이졸데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약물'의 존재입니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랜/기 커플과는 달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약물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약물의 존재는, 마지막에 마르케 왕이 두 사람을 용서하는 이유(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뭔가 멜로드라마의 요소가 약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애절함도 훨씬 덜하죠. 물론 해석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스토리로 보면 이졸데가 트리스탄에게 그토록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처음에 그를 치료하고 살려 보낸 것이 이미 감정의 동요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트리스탄이 배 위에서 한사코 이졸데와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것, 또 본능적으로 이졸데가 건네는 약이 독약이라고 느끼면서도 복용을 거부하지 않는 것은 - 트리스탄이 기회만 있으면 죽고 싶어 안달인 염세적인 인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 이졸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미 끌리고 있었고, 약물의 역할은 도덕률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의 본능을 일시에 폭발시킨 정도...라고 보는 것으 적절한 해석일 듯 합니다. 그리고 마르케 왕이 굳이 미약의 핑계를 댄 것은 사랑하는 조카의 사랑을 용서해 주기 위한 언턱거리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 하루 빨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포함해 국내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