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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청춘시대' 티저에 쓰였던 윤동주 시인의 시 '병원' 입니다. 이미 대본을다 읽은 뒤였기 때문에, 티저에 들어간 저 싯구절이 더욱 적확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청춘시대'를 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예상대로, '너무 자극이 약하지 않느냐' '전개가 느리다' '대체 누가 남자 주인공이냐'는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기간이 지나고, 서서히 이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폭발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이 드라마에 굳이 주인공이 있다면 주인공일' 윤진명, 즉 한예리의 지독한 불행입니다. 그 불행이 단적으로 나타난 장면은 지긋지긋한 알바와 그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든 매니저의 갑질이 아니라, 어느날 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윤진명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복도. 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는 "수명아, 그동안 엄마 불쌍해서 못 간 거지? 내가 안다. 우리 아들. 6년 동안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를 되뇌며 주위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 어디선가 다가온 의사는 말합니다.

 

"걱정마십시오. 안정됐습니다."

"...?"

"바이탈이 안정됐습니다."

"예?"

"원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서 침묵하는 어머니. 어떤 어머니들에게든 '아들의 죽음'보다 절망적인 상황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지만 '청춘시대' 4회의 이 장면은 아들의 죽음보다 더 큰 절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들의 죽음에 오열하던 어머니가 '아들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에 고개를 떨궈야 하는 무서운 상황입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던 윤진명은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하고 돌아서 가 버립니다. 그리고는 박재완(윤박)에게 '날 좋아하지 말라'는 말을 던지고 집(벨 에포크)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눈물을 보입니다. 우는 이유는 "삶이 고달파서"가 아니라 "손톱이 빠진게 너무 아파서".

 

스물 여덟의 대학 졸업반. 세 군데 알바를 뛰어야 간신히 이어갈 수 있는 삶. 항상 바라보고 있는 두 사채업자의 그림자. 병원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 남동생. 그 손을 놓지 못하고 빚만 쌓아 가고 있는 어머니. '절망적'이란 말 하나로 설명하기 힘든 한 여자의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의 어깨를 눌러 옵니다.

 

어쩌면 이런 무게를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그 이유로 이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은 그래도 윤진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람들이라야 이런 드라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 '절실함'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때립니다.

 

 

 

 

 

 

 

또 하나의 동력은 막내 유은재(박혜수)의 첫사랑입니다. 은재가 은근히 좋아하는 복고풍 미남(대본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은재가 귀여워 미치겠지만 그 눈치없음에 환장할 것 같은 선배 윤종열(신현수). 이 구도가 너무나 깜찍했습니다.

 

과연 요즘의 스무살 안팎 청년들이 아직도 저렇게 깜찍하게 연애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저 유은재와 윤종열의 모습은 '요즘 대학생'이라기 보다는 한 10여년 전 대학생들의 모습과 더 닮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아직 철이 덜 든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처음 다가가 보여주는 동작이 상대에겐 '시비 걸기' 내지는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아 괴롭히기'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특히나 상대가 경험이라곤 저혀 없는 초짜 중의 초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둘의 연애는 시작하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것을 시청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콧물 흘리는 모습조차도 귀여운 박혜수, 그 박혜수를 자기도 어찌할 줄 몰라 바라보지만 어쨌든 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은 신현수. 두 배우의 매력이 이 드라마를 살린 원동력 중 하나라는 건 아마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리얼한지'에 대해서는 큰 자신은 없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는 2016년의 진짜 대학생들 이야기이기 보다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진짜 순수했던 그 시절'의 그림에 더 가까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드라마의 젊은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아마도 매우 중요한 한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 배우들은 시청자들과 함께 시공을 넘어 누구에게나 있을 '젊은 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태곤 감독의 세심한 연출은 그 공감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몇 회 남지 않은 '청춘시대'. 일단 이 드라마는 12회로 끝나지만 이 끝이 그냥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어디 가서 이만한 완성도의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확히 언제가 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어디서든 윤진명, 강이나, 정예은, 송지원, 유은재의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될 날을 은근히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부터는 한껏 웃으면서 현실 세계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판타스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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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거의 1년 전 일입니다. 어찌 어찌 하다가 '벨 에포크'라는 대본을 받아 보게 됐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박연선 작가님의 작품이라 두 손으로 고이 받들어 읽어 봤는데(당시엔 5부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1부 읽고 나면 2부가 궁금하고, 2부 읽고 나면 3부가 궁금하고, 아무튼 그래서 순식간에 5부까지 읽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또 뒷 얘기가 궁금하더군요.

 

하지만 팬으로서의 자세는 자세고, 일단 냉정을 되찾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어디 있지? 로맨스는? 연애 상황에서의 긴장감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뭐 당연합니다. 원래 없었으니까요. 뜯어볼수록 정말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1년 전이라니까 엄청나게 옛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 제작에서 1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농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태양의 후예'와 '닥터스'의 원본 대본은 이미 5년 전에 나와 있었습니다.)

 

 

 

 

사실 용기의 문제였습니다. 네. 위에 말한 '드라마의 흥행 요소들' 없이도 잘 되는 드라마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꽃같은 여대생 다섯이 한 집에 사는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이 기대할 만한 상업적인 요소는 굉장히 적은 드라마가 분명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잠시 오고 가다가 어찌 어찌 해서 이 드라마는 다른 방향을 타게 되고, '그래, 좋은 대본은 다 임자가 있는 거구나' 하고 미련을 접었드랬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 대본이 다시 시장에 등장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뭐랄까, 내가 어쩔수 없이 떠나 보낸 옛 애인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배경음악: '마치 어제 만난 것 처럼~~')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용자, 함영훈 CP가 "이 작품을 우리가 해 보자"고 주장했습니다. 뭐 불감청 고소원이지요. 상업적으로 큰 기대를 할 만한 로맨틱 코미디 종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품성 있는 좋은 드라마가 될 것은 분명했으니까요. 시일도 촉박했지만 아무튼 '지금 와서 이름 있는 스타들이 이 드라마에 출연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신선한 얼굴들로 여대생들을 채우고, 원작의 품격을 최대한 살려 가 보자'는데 다들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연출해 보고 싶어하던 이태곤 감독도 순식간에 섭외됐습니다.

 

그 준비과정에서 제가 한 거라곤 가끔 옆에서 구경하는 것 밖에 없었지만(아 네, 저는 다른 작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 차곡차곡 들어차는 젊은 배우들의 면면을 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주축인 다섯 여대생이 관건인데, 대략 이렇습니다.

 

 

 

 

 

유은재(박혜수) :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신입생. 어찌 보면 작중 화자 역할. 네 선배들이 모여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유은재가 들어 오면서 드라마가 시작됨.

 

용팔이 동생 박혜수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내기 여대생 느낌이 팍 납니다. 대본을 찢고 나온 듯한 적역.

 

 

 

 

정예은(한승연) : 가장 여성적인 성격. 살짝 평범한 자신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는 여대생.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목을 매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친구가 항상 가장 속을 썩임.

 

카라의 한승연인데 뭐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까?

 

 

 

 

송지원(박은빈) :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연상되는 선머슴아. 입심은 신동엽인데 사실 실전 경험은 없고 입만 열면 어디서 주워들은 구라가 쏟아짐. 사람들 많은 자리에선 조용하고 어색한 걸 못 참아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지만 그러다 보면 항상 집엔 혼자 돌아오는 타입.

 

사실 박은빈이라면 단아한 한복 차림이 기억에 남는데, 이렇게 단장하니 또 새로운 느낌이군요. 아래 예고에서 막춤 신을 보시면 그 '단아한 느낌' 속에 감춰진 끼를 느낄수 있습니다.

 

 

 

 

강이나(류화영) : 직선적이고 솔직하고 화려하고 섹시한데다 개방적인 성격. 후원해 주는 '오빠'가 셋은 있어야 생활이 유지된다. 셰어하우스 멤버들 중 가장 먼저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는 역할.

 

제작진이 가장 고심 끝에 캐스팅한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력 면에선 류화영보다 훨씬 앞선 후보들이 꽤 많았지만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은 류화영의 눈빛 하나에 올인. 기대됩니다.

 

 

 

 

윤진명(한예리) : 공부와 알바 외에는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경주마 인생. 아무 여유 없는 청춘이지만 그래도 청춘에겐 청춘의 빛이 내리쬐기 마련. 대체 그녀 인생의 봄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는 타입.

 

연기력으로 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로 보나 이 드라마를 이끌어가 줄 맏이(극중에서도 맏이). 어떻게 봐도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예리라는 배우에겐 그리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멜로멜로한 장면들이 기대되는 작품.

 

 

 

 

 

 

 

 

이렇게 서로 섞이지 않는 다섯 색깔의 여대생들이 한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여대생 밀착 동거담'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습니다. 사실 기운 팔팔한 여자 다섯이 한 집에 머리 맞대고 있으면 가장 큰 화제가 뭐겠습니까. 남자와 연애겠죠. 그래서 이 드라마의 '대사 수위'는 어찌 보면 꽤 높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게 중요한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프니까 청춘' 어쩌고 하는 말도 꼰대들의 짜증나는 헛소리로 여겨지는 지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냥 그대로 놔 두고 봐 줘'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청춘이라고 늘 즐거울 수도 없고, 아무리 세상이 힘들다고 절망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는데 뭘 그리 분석하고 위로하려고 애쓰느냐는 얘기죠.

 

그냥 그대로 두고 보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티저.

 

 

 

 

이 드라마의 원 제목이자 이들이 모여 사는 셰어하우스의 이름인 '벨 에포크 Belle epoque' 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말~1차대전 발발 전까지의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만,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제목과 드라마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윤동주 시인의 시가 깔려 있는 이 티저의 영상과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됩니다.

 

하긴. 그 언제라고 청춘이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 있었을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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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지난주 '욱씨남정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욱다정의 시원한 던지기 한판이었습니다.

 

화려한 손기술이었는데, 정확하게 이런 동작을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도 경기 중계방송에서 보던 빗당겨치기와 비슷한 한판이었는데,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영상 준비했습니다.

 

 

 

비교적 촬영 초기에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찍은 장면이라 이때까지는 욱다정 역의 이요원과 남정기 역의 윤상현이 아직 서먹서먹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잔혹한 액션 소화가 가능했는지도...(물론 농담입니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이요원이 몇 차례나 '빵' 터지는 바람에 촬영이 계속 중단됐습니다^^).

 

아무튼 현장에서 이 장면의 촬영을 지켜보며, 짧은 액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몇 차례씩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던지며 노력하신 스턴트맨들의 프로 정신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볼 수 있는 현장 메이킹 영상. 아는 얼굴(?)이 나와도 너무 놀라지 마시길.^^

 

 

 

 

 

 

 

그런데 욱다정은 대체 어디서 그런 고급 격투기를 익혔을까요? 사실은 3부 앞부분에 그 답이 숨어 있었습니다.

 

 

 

 

3부의 한 장면. 이요원의 머리 뒤로 사진 같은 것이 보입니다.

 

 

 

 

위치를 바꿔 봅니다. 벽장에 뭔가 상장 같은 것과 사진이 같이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궁금증 해결을 위해 경기도 모처에 있는 '욱씨남정기' 세트로 가 봅니다.

 

 

엘리베이터 홀을 지나

 

 

 

다정의 방으로 갑니다. 거실과 방 하나를 터서 아주 큰 원룸식 거주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위 장면에 나온 다정의 책상을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반대쪽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

 

 

 

방 한 구석에는 강한 여자를 상징하는 케틀벨이,

 

 

그리고 책장에 마침내 문제의 그 사진이 보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유도 단증과 검은 띠 도복을 입은 옥다정의 모습입니다.

 

욱다정은 본래 유도 유단자였던 것입니다.

 

단증은 대한유도회가 발행한 실제 단증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습니다. 진짜 단증은 대개 초단이든 3단이든 '몇 단을 수여함'이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는 그게 없군요.^^ 그리고 눈이 좋은 분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대한유도회장은 김정행 金正幸  현 대한체육회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단증에 도장을 찍어 주신 분은 '김정신 金正辛' 회장입니다.

 

(이 표기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소품 제작 과정의 실수인지는 물론 모릅니다.^^) 

 

책장 속의 이 사진이 드라마 속에서 공개될 날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건 아직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개되던 아니건, 제가 가까이서 지켜본 드라마 제작진들은 보통 이 정도의 디테일은 반드시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김희애 이성재 주연 '아내의 자격' 촬영장에는 극중 치과의사로 나온 이성재의 치과 의사 자격증이 극중 이름으로 만들어져 진료실에 걸려 있었고(물론 이 자격증을 클로즈업하는 장면 같은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수현 작가의 '무자식 상팔자' 때에는 이순재 서우림 할머니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모여 찍은 팔순 잔치 기념사진이 장지문 위에 걸려 있었습니다(물론 이 사진 역시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 단 한번도 가까이서 비쳐진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소품들이 놓여 있는 공간, 그 공간이 출연자와 제작진에게 거는 마법의 힘을 무시해선 안될 듯 합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 하나가 모여서 일단 만드는 사람들을 홀리고, 나아가 시청자를 홀리는 것이니까요.

 

 

 

여기는 욱다정의 침실.

 

 

욱다정은 자기 전에 만화를 즐겨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방. 거실과 마찬가지로 화이트와 아이보리 톤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략하게 욱다정의 집을 살펴봤습니다. 이 집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사용하는 남정기네 집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다음 기회에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황찬성 군의 활약이 5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더 이상 민폐 봉기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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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꼴갑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첫 두 편의 방송이 나간 뒤, 많은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뭣보다 두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특히나 윤상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재평가의 기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대의 찌질남 남정기가 그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받았을 때, 남정기라는 역할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할지는 상당히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의 화제성이 우선이냐, 연기력이 우선이냐도 논의의 대상이었습니다.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 특히나 남정기 같은 캐릭터는 - 연기력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지만 요즘은 점점 화제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윤상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본인도 대본을 읽어보고 즉시 '이건 나만큼 잘 할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뭣보다 윤상현 카드가 현실이 됐을 때, 대본을 읽어 본 사람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배우의 열의와 연기가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윤상현이라고 완벽한 배우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목소리는 좋지만, 열연을 하다 보면 가끔 발음이 뭉개질 때가 있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경우에 성우 같은 발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 때로 그런 발성이 역할에 훨씬 더 어울리기 마련입니다. 결점이 결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어느 일터에나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윤상현은 압도적으로 전자에 속합니다. 육아...라기 보다는 아기 사랑 때문에 늘 붉은 눈으로 촬영장을 오가지만(새벽까지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서 눈을 붙여야 할 때에도 아기를 보면 너무 예뻐서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늘 밝은 모습으로 다른 출연자들에게 에너지를 전파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사실 남정기는 소심을 넘어 자칫하면 발암 캐릭터입니다. 누구든 자기 집에 호수도 확인하지 않고 신발 신고 들어와 여기저기 발자국을 남긴다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당장 발끈해서 화를 내고 싸움을 벌였겠지만, 우리의 남정기는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죠. 연애를 했어도 정말 속터지게 했을 것 같고, 한마디로 21세기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되기엔 덜 떨어져도 한참 덜 떨어진 캐릭터입니다. 실수도 잦아서 거기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불쌍한 토끼처럼 움츠러들어서 심하게 뭐라 하기도 어려운, 마음 놓고 화내기도 쉽지 않은 답답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윤상현을 통해 표현되는 순간, 남정기 과장은 안쓰러운 마음에 왠지 도와주고 싶은 인물로 묘하게 살아납니다. 애정이 생겨 버리는 거죠. 이게 바로 이 배우의 진정한 능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끝까지 답답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답답이 남정기가 욱다정이라는 인생의 웬수이자 멘토를 만나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갈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1회를 보고 나니 윤상현 이외의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했더라면 이 드라마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뭐 저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더군요. 쏟아지는 호평을 바라보면 배가 부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1,2회를 보시고 엉뚱한 장면에서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남정기는 왜 갑자기 방에서 묘한 소리를 내면서 파스를 붙이냐, 대체 낮에 뭐 하는 거냐 (대부분은 다 아시겠지만 그 인부 아저씨 대신 일당을 벌어 갚기 위해 이삿짐 나르는 알바를 한 거죠) 등에서부터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냐까지 다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뭐 여기에 한꺼번에 묶어서 대답을 해 드립니다. 또 궁금하신 게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 남정기는 왜 부인이 없나?

▲ 상처를 한 것인지, 이혼을 한 것인지 궁금하실 분들이 꽤 있겠지만 남정기는 이혼남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 아니 그 성격에 왜 이혼을? 부인이 웬만큼 바가지 긁어도 잘 맞춰줬을 것 같은데?

▲ 전처 쪽에서 '너같은 남자랑 못 살겠다'고 한 셈인 거죠.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요. 이해가 갑니다.

 

- 동생 봉기(황찬성)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듯?

▲ 1회에 나왔듯 정기의 현재 나이는 마흔하나. 봉기는 20대 중후반이니 최하 띠동갑 정도 되는 형제간입니다. 1회 아버지 용갑(임하룡)의 대사에도 있듯 "늘그막에 어디서 저런게 하나 튀어나와서..." 인 형제간이죠. 매일 맞을 짓을 하는 동생이지만 정기에게는 아들(?) 같아서 애틋한 동생입니다. 그래서 용돈까지 챙겨 줄 마음이 생기는 것이죠.

 

 

 

 

- 그런데 봉기를 너무 실감나게 때린다.

▲ 원래 친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영화 '덕수리 5형제'에서도 이미 많이 맞았다고... (참고로 임하룡씨는 제작발표회 때 "(황)찬성이는 심형래 이후로 가장 나에게 많이 맞고 있다. 이걸로 곧 큰 인물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뭐 맞는 역할은 원래 맞아야 크는 겁니다.

 

- 1회에 엘리베이터에서 정기를 강제로 내리게 하는 사람은 누구?

▲ 1부엔 출연 분량이 없었지만 정기의 회사인 러블리 코스메틱의 실권자인 인사팀 신팀장(안상우)입니다. 본래 이 회사는 조사장(유재명)의 처가집 지분이 훨씬 컸고, 그래서 조사장도 처남인 신팀장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는 처지죠. 그래서 신팀장은 회사 인에선 안하무인으로 행동랍니다.

 

- 정기네는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인 서민이고 욱다정은 나름 상류층인데 같은 아파트 이웃이라는게 말이 되나?

▲ 혼자 살지만 넓은 집을 좋아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한 재산 형성에 아무 관심이 없는 욱다정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주보는 집이라도 집안 인테리어를 보면 같은 단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을 듯.

 

 

- 2회에 남정기에게 로케트 펀치 쏘는 여자는 누구?

▲ 은행 대출담당 여직원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김은지입니다. 참고로 윤상현씨와 한 집 사시는 분.

 

- 대체 아파트 복도에 자전거를 세워 놨는데 왜 65만원을 내야 하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10조 2항에 보면 "피난시설, 방화구획 및 방화시설의 주위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파트 복도 계단 등에 유모차나 자전거 등을 세워놓는 행위는 불법인 거죠. 그래서 이삿짐 나르던 인부는 그 자전거에 걸려 넘어지면서 팔을 다쳤다고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한 것이고, 욱다정은 그 원인을 제공한 자전거 주인을 찾아 책임지고 보상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 조사장은 왜 계속 양갱을 먹나?

▲ 원래 긴장하면 당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인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 혹시 양갱이 협찬인가?

▲ 협찬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제과업체든 협찬해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꾸벅)

 

- 황금화학은 욱다정도 그렇고 지팀장(송재희)도 그렇고 너무 김상무한테 막말을 한다. 한국 회사에서 그게 가능한가?

▲ 좋은 회사라서... (먼산)

 

- 결국 이 드라마도 끝에 가면 남정기랑 욱다정이 연애하는 얘기로 갈거 아님?

▲ 사람 일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 같은...  글쎄, 일단 둘이 잘 어울리기는 할까요?

 

(뭐 오늘은 이 정도. 옥다정 쪽의 궁금증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3부는 3월25일(금) 저녁 8시30분에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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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씨남정기]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회사에 그런 얘기를 듣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3대 마녀'니 '5대 마녀'니 하는 여자들 말입니다.

 

개중에는 진짜 성격이 나쁜 여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이 친목 단체도 아니고, 다 같이 만나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애당초 개개인의 인성에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들 가운데 '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과 남의 일을 똑부러지게 구분하는 경우, 남자들의 보조 역할을 하기 거부하는 경우, 최상층의 신뢰가 두터운 경우 등에 '마녀'라는 호칭이 붙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됐던 일'을 해 내는 여자를 '마녀'라고 부르기도 하고, 대략 미모가 뛰어난 여직원은 대개 일 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많다는 통념(물론 이런 통념은 당연히 편견의 영역에 해당합니다)을 깨고 '미모에 비해 지나치게(?) 일과 성공에 의욕을 보이는' 경우를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우들이 있지만 최소한 한 가지 정도의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유능함을 발휘하고, 그 유능함이 아직 대다수인 남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때 '마녀'라는 호칭이 절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유능하다고 해서 다 마녀로 불리는 것도 아니고, 마녀라고 불린다고 다 유능한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요약해 보면 능력이 출중하건 아니건, 백이 있건 아니건, 외모가 빼어나건 아니건, 명문대를 나왔건 아니건 '무능한 여직원'을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위협'이라는 요소와 매우 관계가 깊은 듯 합니다.

 

(중간에 불쑥 얘기하자면, 이 글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왜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집어 들었나'에 대한 글입니다. 그러자니 당연하게 '우리 편 입장'만 나옵니다. )

 

 

 

 

 

'욱씨남정기'라는 대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옥다정은 한번 불끈 하면 자제가 안 되는 성격 때문에 '욱씨' 혹은 '욱팀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 '더러운 성격' 때문에 이혼을 세 번이나 했고, 꽤 능력이 있어 나이에 비해 일찍 팀장까지 승진했지만 그 뒤에는 별별 소문이 다 따라다닙니다. 성격이 지랄같은 것은 기본, 사내 스캔들이 수차례 있었고 고위층과는 소파 승진의 의혹도 있습니다. 심지어 연상 연하 가리지 않고 남자를 밝힌다는 이야기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다 보면 드러나는 여자는 이와는 좀 다른 여자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수시로 '욱'하고 나서서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이 먼저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일에 함부로 '욱'하는 여자는 아닙니다. 오히려 욱다정이 분노하는 일들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해야 하지만, 다들 후환이 두렵거나 '좋은 게 좋은 거' 기 때문에 슬쩍 못본 채 넘어가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남의 시선을 굳이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 연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욱다정의 첫번째 남편은 같은 회사 동료였습니다), 타고 난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습니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에 남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같이 일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 한국 사회에서 웬만한 회사의 관리직에 오르려면 사회관계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건 남녀를 불문하고 당연한 얘기고, '서글서글한 여걸스러움'이 여성 관리자들에게는 필수 요소가 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 그런 태도를 곱게 보지 않는 누군가의 술자리 뒷담화에는 이런 여자들이 수시로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나 남자들이 이끌어가기 마련인 회사 집단. 그 회사 집단에서 남자들의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여자들 중에 바로 욱다정이 있었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던 것이죠.  

 

 

 

 

꼴갑(甲) 저격 사이다 드라마 '욱씨남정기' 의 초반 에피소드들을 언뜻 보면 왠지 하청기업 과장인 남정기(윤상현)를 욱다정(이요원)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내용을 따라가면, 사실 옥다정이 실수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청을 원하는 기업이 부실한 자료를 제출한 것에 대해 화를 낸 것, 다소 무례한 실수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한 것,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반발한 것, 같은 아파트 주민의 부당한 복도 점유(복도에 자전거나 가구를 내 놓는 것은 소방법 위반이라고 합니다)를 지적한 것 등 모두 따지고 보면 옥다정이 정당한 판단과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워 '먹고 살기 힘든데' '뭐 고작 그정도 가지고' '그런 일 안 당해 본 사람이 누가 있나' '하여간 유난을 떤다' 며 욱다정에게 '역시 듣던대로 성질이 더럽다'는 말을 합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어차피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욱다정, 변명을 하거나 자기 편을 만들어 하소연을 하거나 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평판은 점점 굳어가고, 소문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이유가 '욱씨남정기'인 이유는 욱다정의 정 반대편에 있는 인간, 즉 '책임을 지는 순간 명이 짧아진다'는 소심함과 무사안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남정기가 처음으로 욱다정이 '소문으로 듣던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욱다정에게 가장 많이 당한 남정기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 앞서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차리고, 그 여자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 가면서 지지리도 못났던 자신의 지나간 삶을 반성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인 전개로 느껴졌습니다. 

 

'욱씨남정기'는 그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아 온 탓에 '드센 여자' 혹은 '지랄맞은 여자'로 낙인 찍혀 온 한 여자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녀 또한 완벽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옆집의 속터지는 '고구마 가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고 그 자신에게 부족했던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서서히 찾아 가게 됩니다.

 

본질적으로 코미디라서 일단 보고 있는 동안 눈이 즐겁고 입이 즐겁지만, 그 속에 주변의 오해 속에서 '강한 여자'를 넘어 '마녀'로 치부되고 있는 한 여자. 그 여자가 인간으로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욱씨남정기'는 해 볼만한 드라마라고 느꼈습니다. 일단 다들 한번씩 보시면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겁니다.

  

 

 

 

그럼 남정기는 그냥 별 의미 없는 고구마 인생이냐.... 그건 또 아니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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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은 첫 대국이 끝나고 습관적으로 복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복기에 응해줄 사람은 없었다. 아자황씨는 그냥 돌을 놓아 주는 사람일 뿐, 알파고가 왜 그 자리에 돌을 놓았는지 설명해줄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세돌 역시 그런 복기 시도가 부질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듯 했다. 그런데 이세돌이 이해할 수 없다면, 인간 중에 그런 수를 예측하거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알파고의 1승은 단순한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 그리고 그 판단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인류 최고의 전문가를 꺾었다. 인공지능이 인류 최고 전문가보다 합리적인 판단, 더 최적화된 판단을 한다고 인정받은 순간이다.

 

본래 나보다 나은 전문가의 판단은 즉시 이해할수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바둑에서도 조훈현9단이나 이세돌9단의 실전을 중계하는 해설가는 "이런 수는 감히 제가 좋다 나쁘다 말할수가 없네요. 저보다 훨씬 고수가 두신 거라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겁난다.  

 

 

 

인류는 이제 앞으로 인공지능에게 많은 판단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금융, 군사, 행정, 의료... 수많은 분야에서. 거기에 환호하면서 인간은 인공지능이 준 답을 충실히 수행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찍어 준 장소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아무 미련 없이 노후된 주택단지를 철거하고 거기에 녹지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대학 입시 정원을 늘리고, 금리를 올리고 내리고,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내놓고, 커피값을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결정해 줄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부패하지 않는다. 학연이나 지연에 따라, 당리 당략에 따라, 지지율이나 득표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자식의 노후를 챙겨줄 이유도 없다. 정말 사리사욕 없이, 공명정대하게, 주어진 자원과 상황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뭔가 이상한 판단(혹은 명령), 인간이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다. 인간의 통념에 어긋나거나, 뭔가 상당히 큰 희생을 요구하거나, 지나치게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이는 판단이라 즉시 따르기를 주저하게 되는 상황이다. 뜬금없는 명령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당장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훌륭한 판단이었음이 입증된', 감히 인간의 작은 뇌로는 가질 수 없는 통찰력을 인정받은 뒤다. 거기에 이론을 제기하는 인간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도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의 그런 판단이 그릇된 데이터에 기인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데이터상의 작은 차이가 최종 판단에서 심각한 차이를 만들어 낼 가능성은 늘 있다. 물론 뛰어난 인공지능은 데이터 입력 오류 내지는 잘못 측정된 데이터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기능(예를 들어 숙련된 분석자가 입력된 데이터만 훑어보다가도 '여기서 왜 이런 엉뚱한 숫자가 나와?'라고 의혹을 제기할 수 있듯)을 보유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오류는 적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현장에서 오는 데이터라고 모두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악의적으로 조작된 데이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인공지능의 그 '이상한 판단'을 의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뭐 아주 멀리 가면 스카이넷 수준의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 사리사욕에 따라 이상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차마 상상하지 못하겠다). 그 시점이 되면,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 되어 버려 있을 것이다. "감히 네녀석 따위가 인공지능님의 답을 의심해?"  

 

이미 2016년에 이세돌도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어 승리를 이끌어 낸 인공지능이다. 물론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들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을 한 단계 한 단계 분석해 보면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혹은 오류인지 분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런 분석을 시도한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할 이유가 없다. 충분한 시간이 없는, 시급한 결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라면, 인간은 어느새 인공지능의 권유대로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둔 판단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누구보다 똑똑하다. 직관적으로 그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옳다. 인간은 거기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이런 순간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진정 두렵다. '프로그램을 짠 인간과 바둑 공부를 한 인간의 대결에서 프로그래머가 이겼으니 결국 인간의 승리'라고 말할수 있는 낙관적인 사람이 부럽다.

 

 

 

한문장 요약: 일각에서 자의식을 가진 스카이넷을 걱정하지만 그건 진짜 다음 얘기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하에' 활성화됐을 때, 인공지능이 준 답이라는 이유로 그 답을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시대, 최소한 '니들 인간들이 내놓은 답보다는 이 답이 훨씬 나을 수밖에 없어'가 상식이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P.S. 구글과 알파고의 정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전문가의 글 한편을 소개합니다. 아래 글을 쓴 사람은 슈퍼컴퓨팅 전문기업 클루닉스의 대표이자 베스트셀러 '빅데이터 혁명'의 저자인 권대석 박사입니다. 일찌기 왕년에 장학퀴즈 기장원을 하신 분이기도 하지요.^^

 

"예상대로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http://blog.naver.com/hyntel/220650239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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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밥만 먹고 살 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동네에 가면 구경을 해야 합니다.

 

애당초 목적지를 다낭과 훼의 중간에 있는 리조트로 잡았을 때부터 훼 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훼를 가리켜 '베트남의 경주'라고 합니다. 그만치 유적이 풍부하다는 뜻. 물론 시대를 따지면 1802년부터 1945년까지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브로 경주라는 호칭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리조트가 훼 중심가에서 약 40Km 정도. 고속도로(?)에서도 시속 60 이상을 내지 못하는 베트남의 교통 법규때문에 대략 1시간 정도를 잡아야 합니다. 여러가지 여건을 감안해 기사 딸린 택시를 하루 전세 내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택시 회사와 교섭해 50달러에 합의를 봤는데, 막상 실제 길에 나가니 약간의 하소연(?)이 있어 60달러로 10달러를 더 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쪽에서 합의를 깬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맞설 수도 있었지만 굳이 한국 돈 1만원 정도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아무튼 그 정도의 시세라는 것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인건비에 비해 운전 관련 비용은 아주 싸지는 않은 듯.)

 

아무튼 첫번째 목적지로 삼은 곳은 카이딘(Khai Dinh) 황릉입니다.

 

 

 

카이 딘 황제는 1916년에서 25년까지 재위했던 응우옌 왕조의 12대 황제입니다. 연호를 따서 홍종 계정제(弘宗 啓定帝)라고도 불렸던 황제입니다. 카이 딘은 '계정'이란 이란 이름을 베트남어로 읽은 것입니다.

 

물론 저도 베트남 역사엔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이름과 한국 사람의 이름이 한자로 써 놓았을 때 거의 똑같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더군요. 카이 딘 황제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완복창(阮福昶), 왕조의 이름인 응우옌은 한자로 완(阮)씨를 가리킵니다. 이밖에도 유물에 남은 한자의 사용을 보면, 베트남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는 한국이나 일본에 가까운 나라입니다. '동남아'라는 지역명으로 뭉뚱그려 얘기하곤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올라가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정교한 건물 생김새가 매력적입니다만, 건립 연대가 20세기다보니 많은 부분이 시멘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흥미가 좀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능 앞의 이런 문신상도 중국이나 한국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볼만한데 재질이 시멘트라 큰 감동은 없는.

 

 

거대 석비가 있습니다만, 비문은 어느새 해독 불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유적은 20세기 초에 축조된 것입니다.

 

 

 

뭔가 십자가 모양의 느낌이나,

 

 

정자 실루엣의 가시 모양이나,

 

 

건물의 모양새에서 누가 봐도 유럽 풍의 영향이 역력합니다.

 

 

아무튼 저 멀리 관음상(?)이 보입니다.

 

 

 

 

훼 근처의 명물로 유명한 이 해수관음상인 듯. 낙산사 해수관음보다는 좀 더 서구형의 세련된 모습입니다. 색도 순백색...

 

 

 

 

 

 

 

 

 

 

그리고 내부의 계성전. 이곳이 바로 황제의 묘입니다.

 

 

 

베트남이 한국과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이렇게 보고 있으면 자꾸 정신을 차리게 되죠.

 

 

 

자, 빨리 택시 안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타죽을 것 같습니다. 거의 40도.

 

본격적인 훼 시내 관광이 시작됩니다.

 

시내 한복판으로 오면 바로 이 거대한 국기봉에 도달합니다.

 

 

 

 

 

바로 이 쑹 강 앞에 국기봉이 있고, 그 뒤가 황궁입니다.

 

 

 

황궁의 남쪽 입구인 오문(午門). 자금성과 마찬가지 배치입니다. 여기까진 거의 중국인데,

 

 

 

해자가 녹차색이라는 데서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연꽃(?) 종류가 피어있을 때엔 장관이라고 하더군요.

 

 

굳이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홍살문 비슷한 것이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태화전. 그러니까 자금성의 정전과 이름이 같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근정전이겠죠. 내부는 촬영 금지.

 

 

그런데 이 태화전 뒤가 너무나 허전합니다. 엄청난 넓이가 전성기 때 황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습니다.

 

 

 

간혹 이렇게 건물이 한채씩 덩그러니 있을 뿐,

 

 

 

쇠락의 흔적이 가슴아픕니다. 이곳이 다 전각과 나인들로 가득 찼던 곳이라는 거죠.

 

 

 

그나마 중간에 이런 회랑이 복원되어 과거의 영화를 되새길 수 있게 합니다.

 

 

 

 

 

여기가 거의 황궁의 끝자락. 그래도 남아 있는 황금 용이 과거의 영화를 되새기게 합니다.

 

 

 

 

택시 기사에게 본래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들었지만, 도저히 두 시간을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궁궐의 동쪽 입구로 바로 빠져 나올 수밖에 없더군요.

 

다낭-훼 부근은 북위 17도선, 그러니까 한국의 38선 부근입니다. 치열한 전투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곳이죠.

 

하루빨리 베트남 사람들도 훼의 황궁을 복원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잊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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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일단 리조트의 꽃인 아침식사부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베다나 리조트의 레스토랑은 한 곳입니다. 여기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처리합니다.

 

 

베트남의 아침은 베트남 커피로 시작합니다. 전 세계 모든 호텔에서는 아침식사를 위해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Tea or Coffee?"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아이스커피를 요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덥기도 했고, 베트남 커피가 워낙 유명하기도 했고... 아, 물론 베트남의 아이스커피는 기본이 연유 추가 상태입니다. 그냥 블랙 상태의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려면 반드시 'no sugar, no milk' 라고 말을 해 줘야 합니다.

 

 

저는 커피든 아이스 커피든 평소엔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시고, 쓰고, 속이 아프고, 오히려 갈증을 더 부추기기 때문인데 처음 가본 베트남에서 마신 커피는 달랐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두잔까지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설탕을 조금 넣어도 좋고, 아예 베트남식으로 연유를 타도 좋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 자리에 bucket of ice 는 필수. 아침부터 푹푹 찝니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놓칠 수 없는 것은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이 쌀국수. 제가 별로 먹어 본 게 없어서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 먹어 본 쌀국수는 쌀국수가 아니더군요.

 

 

저렇게 생긴 누들 바에서 아침마다 취향대로 국수를 만들어 줍니다. 일반적인 쌀국수와 당면처럼 생긴 버미셀리 국수 중 선택, 그리고 쇠고기/닭고기/해산물(새우) 육수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닭 육수에 새우 꾸미를 얹고 숙주와 야채, 고수를 듬뿍 넣은 다음, 베트남에서 느억맘 Nuoc Mam 이라고 부르는 피시 소스에 엇 Ot 이라고 부르는 쥐똥고추를 썰어 넣은 장(태국에서는 똑같은 배합을 삑 남쁠라라고 부르죠)을 살짝 두릅니다. 여기에 다진 고추 양념을 조금 풀고 라임을 쭉 짜 넣으면 - 여기까지만 해도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후루룩 후루룩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더위와 매운 고추 맛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힌 콧등을 슥 문지르는 맛. 달콤하면서도 시고 매운 국물을 쭉 들이키고 얼얼해진 혀를 아이스커피로 달래는 데 까지가 자동으로 연결되는 기본 동작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한국에선 저런 베트남 국수를 먹을 수 없는 거냔 말입니까. 무슨 이유로 어디 가나 똑같은, 베트남 다시다 국물에 얇은 쇠고기 수육 말아넣고 억센 숙주 말아넣는 국수만 팔고 있는 것인지.)

 

 

 

아무튼 저렇게 테라스 같은 자리가 있고, 실내의 선풍기 아래 자리가 있는데, 비록 아침이라도 혹서기에는 감히 밖에 앉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쌀국수의 유혹은 이길 수 없으니 참.

 

 

 

가짓수가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쌀국수도 있습니다. (밥 종류도 미리 주문만 하면 해 준다는...)

 

 

 

아, 주스 종류는 확실히 다양합니다. 오렌지, 파인애플, 수박, 패션푸르트, 믹스 푸르트 주스가 기본입니다. 모두 직접 간 것.

 

 

 

열대의 낙원답게 과일 테이블을 볼 때마다 행복해집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망고스틴은 기본 제공은 아니고 - 아마도 잘 상하기 때문인지 - 미리 말만 하면 준비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망고스틴을 굉장히 좋아하는 터라 이번에도 50개는 먹고 온 듯...

 

계절 탓인지, 베트남의 식생이 원래 그런지 망고와 드래곤프루트가 유난히 맛이 좋습니다. 수박은 요즘 지구상에 한국산 수박보다 맛있는 수박이 사라진 듯.

 

오른쪽에 나란히 있는 작은 항아리들에는 리조트에서 만든 잼이 담겨 있는데 파인애플 잼과 패션 푸르트 잼을 추천합니다. 특히 파인애플 잼은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밀어 내고, 크루아쌍의 no.1 파트너가 될 만 합니다.

 

 

 

아침 식사는 이 정도로 해 두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어 본 현지식을 일단 소개합니다.

 

 

 

이번에 베트남에서 만난 인생의 음식 중 하나인 분 띳 느엉 Bun Thit Nuong. 한국의 소면 비슷한 국수에 숯불에 양념해 구운 돼지고기를 얹고 약간의 야채, 느억맘과 베트남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음식인데 날 덥고 입맛 떨어질 때 정말 딱입니다.

 

어찌 보면 국내에서도 가끔 먹는 분 보 싸오 Bun Bo Xao라는 음식과 흡사한데, 직원에게 문의한 결과 분 띳 느엉은 넓게 펴서 구운 고기를, 분 보 싸오는 다져서 볶은 고기를 꾸미로 얹는다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건 뭐 그닥 크게 두드러진 게 없었던 구운 새우+야채 볶음.

 

참. 새우는 베트남에선 톰 tom 이라고 부릅니다. '똠 얌 꿍'에도 '똠'이 들어가 태국어와 혼동하기 쉽지만, 태국어의 똠은 그냥 '국물'이란 뜻이고 새우는 꿍 Koong 입니다. 그래서 새우 국물이 '똠 얌 꿍'이 되는 것이더군요.  

 

 

 

일종의 퓨전식인 듯한 해산물 샐러드. 오징어, 새우, 견과류, 야채, 망고, 말린 국수 등등을 느억맘에 비벼 먹습니다. 무난하고 맛있습니다. 다만 전통 베트남 식은 아닌 듯.

 

 

 

국내에서도 많이 먹는 새우 쌈 전채 요리 고이 꾸옹 톰 Goi Cuon Tom. 고이 꾸옹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라이스페이퍼 쌈 요리의 통칭입니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야생 파 같은 식물을 저렇게 길게 뽑아 준다는 것. 물론 한국에서 먹을 때처럼 땅콩장이나 느억맘에 찍어 먹습니다. 역시 실패하기 힘든 음식.

 

 

 

해산물 볶음밥 Com Chien Hai San. 밥이 꼼 Com 이라서 볶음밥은 꼼랑 Com Rang 혹은 꼼찐 Com Chien 이라고 쓰는데 그 뒤에 밥 외의 부재료 이름이 들어갑니다. Hai San 은 글자 그대로 해산물. 거의 베트남을 대표하는 국민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 것 같고, 어디 가나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음식입니다.

 

물론 느억맘을 뿌려 먹는 게 포인트.

 

 

나가서 먹는 게 귀찮아 룸 서비스를 차려 봤습니다.

 

어쨌든 밖으로 나가기 쉽지 않은 리조트 특성상 한국에서 음식을 적당히 준비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 컵라면이나 봉지 김치는 기본 중의 기본. 전자렌지가 없어서 햇반을 못 드신다는 분들은 욕조나 세면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 적당히 담가 두면 밥이 됩니다. 각종 레토르트 식품도 같은 요령으로 드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여행 비용도 상당히 절감되겠죠.

 

베다나 리조트도 절대적으로 비싼 리조트는 아니지만 식비는 꽤 듭니다. 주변에 식당이 없기 때문이죠. 호텔 식당에선 요리 1개 당 20만 동, 한화로 1만원 정도는 책정해야 하니 베트남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편입니다. 아무튼 요리 2개에 음료면 50만, 3개면 70만 동 정도는 한끼 식사 비용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은 바깥 식당.

 

훼 시내 레스토랑 중 트립어드바이저에서도 꽤 높은 평점을 받고 있는 유명 맛집 Les Jardins De La Carambole 를 들렀습니다. 불어는 일자무식이지만 카람볼레는 거리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카람볼레 거리의 정원' 뭐 대략 이런 뜻이 되겠죠.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만큼, 여기저기에 프랑스 문화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는 느낌입니다.

 

 

 

뭔가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연상시키는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

 

 

에어콘을 틀어 달라고 요청하면 대략 한쪽을 막아 놓고 틀어 줍니다. 하지만 지역 특성인지 얼음같은 냉풍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맥주 이외의 음료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도 아직은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느낌.

 

(의아해 하실 분들을 위해: 베트남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게 대단히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중부를 대표하는 요리인 반 베오 Banh Beo. 찹쌀가루 반죽에 양념한 새우 소를 넣고 바나나 잎으로 싸서 찐 음식.

 

 

그런데 이것이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습니다(새우찰떡?).

 

양도 많지 않아 순식간에 홀라당.

 

 

 

동남아 지역에선 국가를 막론하고 흔히 먹을 수 있는 볶음 국수. 이 식당에선 유난히 버터 향이 강했습니다.

 

 

 

구운 새우와 밥(은 따로 시키지 않았는데 그냥 딸려 나옵니다). 익히 아시는 구운 새우 맛. 위에 얹힌 것은 고추와 파...같이 생겼지만 파가 아니고, 질겨서 씹히지 않는 그 동남아 특유의 야채입니다.

 

음식은 꽤 정갈하고 맛있는 편인데, 이렇게 세 가지 요리를 시키면 이 식당도 대략 70~80만 동 정도의 계산서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영어 메뉴판이 있고, 종업원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깔끔하고 아담한 분위기의 관광객 용 레스토랑은 이 정도가 평균 가격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끼니딩 최소 한화 2만원 정도 소요.

 

하지만 현지 식당 에 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놀랍게 싸고, 놀랍게 맛있습니다.

 

 

Nhà Hàng Bà Chanh (나항 바찬. 나항은 베트남어로 식당)

117 Bà Triệu, Xuân Phú, tp. Huế, Huế, 베트남

 

훼를 다녀오신 분이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보고 찾아갔습니다.

 

다만 주소는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식당의 페이스북에는 주소가 9 Truong Chinh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117 Ba Trieu 로 찾아갔을 때 택시 기사가 '저 주소는 여긴데 여기는 식당이 아니네...?' 하더니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 다른 지점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짐작해 볼 때 어쩐지 실제 주소는  9 Truong Chinh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시 물어 찾아간 장소도 원래 장소에서 멀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Ba Trieu 주변에 있는 것은 분명한 듯.

 

 

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소인 빅C(큰 쇼핑몰...이라기 보다는 마트)를 바라보고 오른쪽 길이 Ba Trieu 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쨌든 나항 바찬이 나오는 건 분명합니다.  

 

 

 

들어가 보면 한국에도 아직 많은 해변 가건물 횟집이나 서울의 염가 횟집 같은 느낌입니다.

 

 

 

수저 통과 땡땡무늬 컵이 정겨운 느낌.

 

 

 

일단 기본적으로 이따시만한 얼음통이 테이블마다 기본 제공됩니다. 저희는 외국인 식(?)으로 저 얼음통 속에 맥주와 음료를 담가 먹었는데 현지인들은 기본적으로 저 얼음으로 잔을 가득 채운 다음 맥주를 따라 마십니다.

 

일단 야채 요리가 먹어 보고 싶었습니다.

 

 

베트남어로 라 무엉 Rau Muong, 흔히 우리 말로 공심채, 혹은 물시금치라고 불리는 이 식물은 본래 나팔꽃 종류라 영어로는 그냥 Morning Glory라고 불립니다. 아무튼 저 공심채를 마늘을 넣고 살짝 볶아주면 아주 맛있는 나물이 됩니다. 이 볶은 음식을 라 무엉 싸오 토이 Rau Muong Xao Toi 라고 부릅니다. 한 접시에 3~4000원 정도. 그런데 반찬처럼 먹기에 딱 좋습니다.  

 

(물론 중국 음식이나 태국 음식 등에도 이 공심채 볶음은 자주 등장하는 메뉴죠)

 

 

 

뭐 봐도 알듯 말듯 한 메뉴판. 좌하단의 CAC MON KHAC 코너를 보면 맨 위의 Com Chien Hai San은 해산물 볶음밥, Com Chien Tom은 새우 볶음밥을 뜻한다는 정도만 알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밥 종류는 대개 3000~4000원 수준.

 

 

 

게 종류는 베트남에서도 아주 싼 편은 아니라서 저 게 1Kg이 50만 동이었습니다. 알 밴 암케는 60만동. 게는 베트남어로 꾸아 Cua 라고 합니다.

 

꽃게는 아니고 미국 서해안에서 먹는 던전 크랩과 비슷한 모양과 맛입니다. 조리 방식은 찜, 튀김, 팬 구이 등이 있는데 그냥 찌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크기 판단을 위한 손 등장.

 

 

단면입니다. 알과 살이 꽉 차 있어 한 사람이 한 마리 먹기가 힘들 정도.

 

 

...과 새우 볶음밥. 볶음밥도 베트남 특유의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가 위력을 발휘하는 제대로 된 볶음밥입니다.

 

이렇게 배 터지게 먹고 65만 동. 이런 놀라운 가격이야말로 베트남 여행의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료.

 

태국을 대표하는 거리 음료가 흔히 땡 모 반 이라고 부르는 수박 주스라면,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료는 이 넉 미아 Nuok Mia. 바로 사탕수수 주스입니다. 물론 베트남이라고 수박 주스를 안 파는 건 절대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보면 '넉 미아'라고 써 있는 가판대가 수없이 서 있습니다. 

 

 

이런 환경. 옆에 있는 사탕수수 수수깡을 그냥 착즙기에 꽂으면 요란한 커억 소리와 함께 즙이 아래로 흘러나옵니다. 거기에 얼음을 가득 넣고 마시면 끝. 사실 환경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위생적인 불량식품임에는 분명합니다만, 현지 기분을 내고 싶다면 넉 미아 한잔 정도는 마셔 주는게 좋을 듯 합니다.

 

(몇번 시도를 해 봤지만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는 절대 넉 미아를 팔지 않습니다. 오직 거리에서만!)

 

 

 

물론 먹는게 인생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구경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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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밤에는 꽤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베트남의 밤 열시는 서울의 밤 열 두시. 두 시간의 시차라는 건 사실 시차 축에도 못 드는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찍 잠들고 일찍 깨어났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 네 시 가량.

 

어렴풋이 커튼 너머로 밝은 기운이 비치는 것 같아 욕실을 통해 조용 조용 테라스로 나갔습니다.

 

그 다음엔 오 마이 갓.

 

 

난간 너머로 동쪽 하늘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더군요.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하늘을 보면 아직도 집 못 찾아간 별들이 가득.

 

 

 

이른 새벽 일 나온 어선들의 통통통 엔진 소리가 새벽을 가르고 지나갑니다.

 

 

정말 바라바고 또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광경.

 

 

 

몇해 전 스페인 여행 때문에 산 RX100-2의 성능에는 100% 만족합니다. 오히려 가끔은 실제 눈으로 보는 것 보다 지나치게 과장된 색조를 뽑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새벽 풍경만큼은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현장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내가 이 나이까지 산 것이 바로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목을 메게 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날보다는 대략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슬슬 시차가 없어져 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리고 또 한번 오 마이 갓.

 

 

사실 이 사진은 폰카로 찍은 겁니다.

 

 

 

정말 뭘 다른 걸 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정경.

 

새벽 다섯시에 그냥 아무 갈등 없이 맥주 캔을 땄습니다. 행복합니다.

 

한시간 쯤 뒤,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트기 직전의 핑크색 구름.

 

 

 

 

 

검은 산 실루엣을 감싸는 황금색 띠가 이렇게 아름다운줄 미처 몰랐습니다.  

 

 

 

 

조금씩 더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고 아침을 맞으면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리조트 웨딩(?) 같은 것을 고려한 수변 공간. 밤에도 저기에 테이블을 놓고 앉으면 좋을 듯 합니다.

 

 

역시 물 위에 건설된 요가 공간.

 

 

친환경 리조트답게 이런 운동 공간에는 전혀 냉방 시설이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개별 객실과 스파 공간 외에는 에어콘 가동을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게 방침인 듯 합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는 요가 수업. 하지만 몸은 확실히 가벼워 진다는 느낌. ㅎ

 

 

 

그리고 모든 리조트의 로망, 수영장.

 

긴쪽은 약 50m, 짧은 쪽은 15m 가량 되는 긴 직사각형 모습입니다.

 

선베드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객실 수에 비하면 적은 편도 아닙니다.

 

 

 

현지 웨딩 촬영 광경 도촬.

 

 

단지 수영장 수면에 그늘이 지는 자리가 없고, 저희의 방문 기간 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은 데다 날씨가 워낙 뜨거워 수영장이 아예 기능 마비가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낮에는 수영장 물 조차도 차갑지 않게 느껴지는 불상사가.

 

 

 

 

 

오히려 밤 수영이 권장할 만 합니다.

 

아 물론 폭염 때문에, 밤 사이에도 물이 차갑게 식지는 않았습니다. (대낮보다는 나은 정도)

 

하지만 수영장 물에 누워 밤하늘에 가득 찬 별을 바라보는 맛은 또 다른 어디에 비교하기 힘든 재미입니다.

 

지저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별이 꽉 찼던 하늘을 한번 찍어 봤습니다. 

 

 

 

  

 

 

역시 다른 말이 뭐가 더 필요할까 싶은.

 

문명의 혜택이 그리운 분들에게 베다나 리조트는 약간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와이파이는 빵빵하게 터지지만, 가장 가까운 도시가 1시간 밖에 위치해 있어 다른 소통은 포기해야 합니다. 레스토랑도 사실상 1개 뿐이라 식사도 자칫 물릴 가능성이 있겠죠.

 

하지만 정말 문명으로부터의 도피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역시 perfect retreat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하늘 구경만으로도 숙박비를 다 뽑은 듯한 느낌이.

 

 

 

 

먹거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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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은 한번의 검색에서 비롯됐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해외 유명 여행지의 사진을 검색해 보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번 발리의 마야 우붓을 가게 된 것도 우연히 검색질을 하다가 보게 된, 우붓 행잉 가든 리조트의 사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어찌 어찌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보게 됐습니다.

 

바로 이 사진.

 

 

 

이 사진 한 장에 매혹돼 버렸습니다.

 

물론 페이스북을 보고 소개팅 상대의 외모를 판단하는 것이 위험하듯 단 한장의 사진으로 리조트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때부터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취합해 나갑니다. 리조트의 이름이 베다나 리조트 앤드 스파 Vedana Resort and Spa 이고, 베트남의 다낭 Da Nang과 Hue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는 내용 정도가 바로 파악됩니다.

 

다낭이야 어린 시절 청룡부대 국군장병 아저씨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성장한 세대이니 당연히 들어 본 이름이지만 훼('후에'라고도 쓰는데 현지 발음은 확연히 '훼')라는 도시는 처음 들어 봅니다. 어쨌든 그 다음 순서는 리조트의 가격과 항공편 검색. 다낭까지는 인천 공항에서 직항이 수시로 다니고 있고, 리조트는 꽤 합리적인 가격(물론 약간의 행운이 겹치면서 초저가에 예약을 할 수 있었지만)입니다. 올 여름 휴가지로 결정합니다.

 

대개의 경우 리조트의 숙박 가격은 tripadvisor를 거치면 윤곽이 잡힙니다. expedia, hotels.com 등 세계 유명 예약 사이트들의 가격을 비교해 주기 때문이죠. 물론 동남아 지역 리조트의 경우에는 이런 예약 사이트에 비해 개별 호텔의 자기 사이트에서 더 싼 요금을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아울러 제 경험에 비쳐 볼 때, 국내 여행사 가운데 '**지역 전문 여행사'들은 최하 하루 5천원 정도 씩이라도 싼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있으니, 충분히 검색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베트남을 그냥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수도 하노이에서 구 월남의 수도 호치민(왕년의 사이공)까지가 육로로 1700KM나 되는, 남북으로 꽤 긴 나라죠.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1.7배 정도 면적입니다. 인구도 1억에 육박하는 큰 나라로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한국처럼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남과 북의 경계가 위 지도의 후에-다낭보다 살짝 위쪽인 북위 17도 선이었습니다. 이후 남쪽을 지지하던 미국이 1975년 대대적인 철수를 감행하고, 통일을 이룬 뒤 한동안 심각한 경제 침체와 사회주의 철권 통치의 곤란을 겪다가 1990년대 이후에야 개방이 시작된 상황. 어쨌든 다 과거의 이야기고 21세기의 베트남은 한국인 관광객을 선호하는 나라가 된지 오래입니다. 베트남 지도에서 목적지 베다나 라군 리조트는 위의 빨간 화살표 지역.

 

 

베다나 라군 리조트는 엄밀히 말해 다낭 보다는 후에 인근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후에 공항이고 약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리조트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대략 50만 동(VND) 정도. 베트남과의 환율은 통상 20대 1로 계산하면 한국 돈으로 근사치가 나옵니다. 즉 50만 동이면 2만5천원. 10만 동 지폐가 5천원 짜리 지폐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죠.

 

어쨌든 후에 공항에 내리는 경우는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다른 공항에 일단 기착한 다음 베트남 국내선을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될테니 여기에 갈 일은 없습니다. 뭐 장기 베트남 여행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후에 공항이 유리하겠죠.

 

 

 

한국에서 직항이 운영되는 다낭 공항까지는 대략 베트남항공이 가장 싼 요금을 제시하는 듯 합니다(저가항공 제외). 대략 4시간 소요. 화장실이 적다는 것을 제외하면 베트남 항공과 국적기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유리한 점이라면 서울-다낭 노선에 오전 출발편이 있다는 것. 아쉬운 점은 귀환편의 서울 도착 시간이 오전 6시대라 짐을 찾고 나오면 시내 귀환이 강변북로/올림픽대로의 출근 정체를 피할 수 없다는 정도. 물론 전철을 이용하신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습니다.

 

다낭 공항에서 베다나 라군 지역까지는 대략 9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63Km밖에 안 되는데 대체 왜 90분이나 걸려야 하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일단 속도 제한으로 시속 60km 이상으로 달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도로 사정도 원활치 않습니다. 물론 동남아시아 다른 지역이나 우즈베키스탄 외곽 지역도 도로 사정은 비슷했지만 이 나라 운전자들의 속도 제한 준수는 대단히 엄격하더군요.

 

그런 이유로 공항-리조트 이동 비용은 꽤 비싼 편입니다. 현지 택시 회사의 대절 차량을 미리 예약해 이용하는 것이 45달러로 가장 싼 편. 사실 이 정도 가격도 베트남의 기본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참고로 베다나 리조트의 호텔 픽업 차량을 이용하면 140만 동(VND), 약 63달러 정도 합니다. 모 한국 렌트카 업체에 문의해 봤더니 240만 동(약 110달러)을 부르더군요.

 

물론 얼마 전 인터파크 투어를 이용한 관광객이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안전을 중시해 믿을 수 있는 업체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의 그 베트남 투어가 '믿을 수 있는' 인터파크라는 브랜드 아래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그러니 판단은 자기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사용한 택시 회사입니다. http://www.lefamilytaxi.com/hue-city-tour/

 

이 회사에 대한 트립어드바이저 이용자들의 평. 주장이 좀 엇갈리는 편입니다. 기사에 따라 복불복...? ^^

 

http://www.tripadvisor.co.kr/Attraction_Review-g298085-d5501680-Reviews-Le_Family_Taxi_Private_Day_Tours-Da_Nang_Quang_Nam_Province.html#mtreview_211212768

 

아무튼 저도 가는 길에는 이 택시를, 귀국편을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할 때에는 호텔 차량을 이용했습니다. 마지막날은 밤 이동이라 그래도 좀 더 조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오전 11시20분 서울을 출발해 오후 2시 다낭 도착. 거의 없다시피 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무시무시한 열기가 밀려옵니다. 차량 사진을 찍고 말고 할 의사를 싹 씻어내는 더위입니다. 얼른 차에 짐을 싣고 출발하자는 생각 뿐.

 

나이 지긋한 기사 양반 믹(Mihk) 씨는 인사 수준의 영어 실력. 호텔로 향하는 길에 하이 반 고개(Hi Van Pass)를 타고 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수락합니다.

 

 

 

하이반 패스란 다낭-베다나 리조트(혹은 후에) 노선의 중간에 있는 고갯길을 말합니다. 위 지도의 2번 노란 도로를 말하는 것이죠. 현재는 1번의 산을 뚫고 직진하는 터널이 건설되어 있어서, 굳이 다닐 필요가 없는 길이 됐지만 그래도 인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전망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동해안으로 가는 한계령이나 미시령 길과 비슷한 의미라고나 할까요.

 

 

 

 

사실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세계 10대 드라이빙 로드' 운운 하는 선전 문구를 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낭 근처 현지 여행사들의 여행 상품에도 이 길이 있을 정도더군요. 그래서 시험삼아 기사 양반에게 '터널 말고 그 길로 가 달라'고 한 겁니다.

 

이렇게 길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이고, 멀리 다낭 시내가 보입니다.

 

 

 

구름과 바다를 보며 어느새 고갯마루에 도착.

 

 

 

 

가운데 차가 저희가 타고 온 찹니다. 토요타 VIOS. 현대 액센트 급의 차량이죠. 쾌적합니다.

 

 

 

월남전 시절의 유물인 듯한 경비탑이 있고, 위에서 보듯 간단한 음료류와 기념품을 파는 노점들이 있습니다.

 

캔 음료 하나에 3만 동. 베트남 물가의 첫 경험입니다. 일반 상점에선 2만 동 정도 받습니다.

 

정상이 약간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곶 같은 지점에 있어서 양쪽 모두 바다가 보인다는 게 특이합니다.

 

 

 

 

동남쪽을 보면 이렇게 다낭 쪽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다시 다른 바다가 보이는 형태.

 

 

고개를 다 내려온 곳에 아름다운 해변 마을이 보입니다. 랑 코 Lang Co 라는 곳입니다. 이곳도 유명 리조트가 건설되어 있고, 관광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에는 '직접 가 보는 것보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보는게 더 아름답다'라고도...)

 

 

 

이렇게 물과 산이 보이는 길을 따라 하염없이 차를 달리면,

 

 

 

 물 한 가운데 있는 리조트에 도착합니다.

 

전체 객실은 빌라형이고 수영장 없는 육지의 빌라, 수영장이 붙은 풀빌라, 물 위에 있는 아쿠아 빌라의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풀빌라 중에 침실이 2개인 대형이 몇개 있죠. 아쿠아 빌라 중에도 침실 2개+수영장이 있는 대형이 하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객실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예약한 객실은 아쿠아 빌라.

 

 

이렇게 물 위에 건설되어 있는 집.

 

들어가면 넓고 으자자한 침대가 있고,

 

 

 

뭐 식탁과 TV,

 

 

왼쪽 창으로 보는 뷰는 이렇고,

 

 

 

침대에 누워 정면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옵니다.

 

비가 잠시 뿌린 뒤라 살짝 흐린 모습.

 

그런데 9월이 우기라는 주장과는 달리 도착한 첫날 이후엔 아예 비 구경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대신 37도의 폭염이...;; 차라리 비가 좀 와 주길 바라게 됩니다.)

 

 

 

테라스로 나가 밖을 내다보면 이런 느낌.

 

 

 

오른쪽을 보면 올망졸망 다른 빌라들이 보입니다.

 

절대 프라이버시를 침해받지 않을 거리가 유지돼 있죠.

 

 

 

위성으로 크게 확대해 본 모습. 그러니까 아래쪽 1번 아래 지역에 메인 로비와 테니스 코트, 라이브러리(비즈니스룸) 등이 있고, 중간에 객실들이 있습니다. 2번 지역이 수영장과 레스토랑이 있는 지역, 3번 지역이 스파 및 요가 공간입니다.

 

메인 로비에서 스파까지는 넉넉잡아 7,800m 정도? 만약 낮에 걷는다면 단단히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구내 이동은 로비에 버기카를 요청하거나, 객실마다 자가용처럼 딸려 있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왼쪽 뷰.

 

 

 

욕실로 들어가면 2인이 충분히 들어갈 사이즈의 대리석 욕조가 있고,

 

 

아무튼 넓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변기가 욕실 바로 밖, 노천에 있다는 것.

 

 

 변기 뷰(?)는 이렇습니다. 하늘과 밀림을 보면서 용변을 보게 설계됐죠.

 

이 밖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친환경 리조트의 면모가 드러납니다.

 

 

 

한국보다 2시간 늦은 표준시 때문에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편입니다.

 

노닥노닥 짐 정리와 휴식을 취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은 이런 모습.

 

 

 

 뒤를 돌아 보면 이런 모습.

 

 

 

레스토랑 자리에서 바라본 이른 저녁 풍경은 이런 모습.

 

 

 

너무나 맛 좋은 후다 Fuda 맥주로 마침내 휴가가 시작됐음을 느낍니다.

 

살면서 가장 보람 넘치는 순간.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다음날 새벽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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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인데다 온천 지대인 유후인의 2월은 꽤 따뜻했습니다만 곳곳에 눈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습니다. 워낙 큐슈 지역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동네이기도 하다더군요. 심지어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버스 예매 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기도 했습니다. <눈으로 인해 버스 운행이 예고 없이 중단될 수도 있음>.

 

이런 안내를 보면 한번쯤 '그럼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몇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은 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우선 첫째, 버스가 훨씬 쌉니다. 둘째, 시간 면에서도 버스는 후쿠오카 공항에서 직접 유후인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반면 기차는 하카다 역(후쿠오카 시내)까지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기차로 움직여야 하므로 시간과 번거로움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 뭐 인생에 한번 쯤은 '예. 접니다. 지금 유후인인데 여기가 산골이라 폭설로 길이 끊겼다네요. 죄송합니다. 기차요? 기차는 현지 승객들로 꽉 차서 입석표도 없다고... 예. 상황 정리되는대로 복귀하겠습니다' 같은 전화도 한번쯤 해 볼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20여년간 회사 생활을 해 본 경험에 따르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고민 말고...

 

유후인의 눈 흔적입니다.

 

 

유후인 온천장 료칸이나 호텔들은 거의 대부분 오전 10:30~11시에 체크아웃, 오후 2:30~3시 체크인의 스케줄을 따르고 있습니다. 2박 이상 투숙한 사람에게도 점심 식사는 제공되지 않으며, 특히 약간 외진 지역에 위치한 료칸들은 주변에 점심을 해결할만한 식당이 흔치 않은 편입니다. 대신 료칸들은 대부분 체크인/아웃 시간에 맞춰 무료 송영(送迎) 서비스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동네 구경에 나섰습니다. 나선 결론은... '왜 유후인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이 다 똑같은 지 알겠다' 였습니다.

 

 

 

민가의 정원.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예쁜 장식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료칸에서 시내 어디에 내려 주면 좋겠다고 묻기에 일단 유후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긴린코(金鱗湖)를 가 보자고 했습니다.

 

 

조용하고 예쁜, 그냥 관광엽서에 흔히 등장할 것 같은,

 

 

이름 그대로 금잉어가 헤엄치는 그런 호수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습니다.

 

혹시 경기도 운천의 산정호수를 가 보신 분이라면, 그 1/5 정도 크기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한바퀴 도는데 15분이면 충분한 규모.

 

 

뒤편으로는 신사와 신수가 있고,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도 있습니다. 굳이 가 볼만한 풍광은 아닐 듯 해서 패스.

 

 

 

한국과 일본 관광지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1) 뽕짝민요메들리 등의 기괴한 소음이 없다 2) 기념품 가게의 물건 종류와 품질이 확연히 다르다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큐슈산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가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몇 군데를 돌아 봤는데 저 식재료의 종류가 거의 겹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어느 가게를 가 보나 똑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한국과는 전혀 다릅니다.

 

 

 

 

긴린코 주변의 개천 운하(?)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걸어나옵니다. 날도 따스하고, 절로 걷고 싶어지는 길입니다.

 

 

크고작은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계속 만나게 됩니다. 가격이 싼 편은 결코 아니고, 최대한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를 생각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간판들만 봐도 매력적이죠.

 

 

 

 

예를 들면 고양이와 관련된 물건을 전문적으로 파는 이런 가게.

 

 

 

저의 상징물인 냥코센세가 가득합니다. 집안을 냥코센세로 채워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집에 냥코센세는 너 하나면 충분해!"라는 마나님의 일갈에 움찔.

 

 

 

반면 또 바로 그 앞집에는 강아지 관련 소품들을 집중적으로 파는 상점이 성업중입니다.

 

 

걷다 보면 유후인의 명소인 크라프토관 하치노스 게텐하신(クラフト館 蜂の巣 月點波心)이라는 가게를 만나게 됩니다. 크라프토(craft)라는 이름대로 목공예 중심의 공방. 비싸지만 정말 세심하게 만들어진 수많은 물건들이 여행자를 노립니다. 특히 여성 여행자를 동반한 분들이라면 매우 조심하셔야 할, 위험한 곳입니다. 눈이 뒤집어 집니다.

 

실내는 촬영 금지 지역.

 

 

걷다 보면 어느새 역전까지 와 버립니다.

 

유후인 시내 어디를 가든, 택시로 료칸까지 1000엔 이내에 도달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 택시비 만원이면 꽤 먼 거리도 갈 수 있는 가격이지만, 유후인의 택시 기본 요금은 660엔... 1000엔이라봐야 한국 택시의 5천원 거리도 안 됩니다.

 

 

 

관광객들을 겨냥한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좋지만 이런 오래된 간판들도 뭔가 마음을 끄는 데가 있습니다.

 

 

한 60~70년대부터 그냥 그대로 이 모습이었을 것 같은 료칸.

 

물론 구경만 하고 간식을 챙기지 않으면 곤란하죠.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는 미르히 Milch.

 

 

맛있지만 홋카이도에서 매일 먹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에 비견될 정도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느꼈던, 삿포로 스스키노의 제과점 센슈안(千秋庵)의 아이스크림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처럼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우유맛과 얼음맛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성지 홋카이도로 직행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1921년 개점한 센슈안 본점을 꼭.

 

 

 

유후인 제일의 생크림 롤 가게라는 B-SPEAK에서는 정석대로 미리 주문한 뒤 보냉 팩으로 포장.

 

 

아, 물론 생크림 롤은 그냥 생크림 롤 맛입니다. 죽은 사람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벌떡 일어날 맛은 아닙니다.

 

원래 생크림 롤이라는게 다 맛있는거 아닌가요? (개인적으로 맛없는 생크림 롤이 없음)

 

 

 

어쨌든 아무리 좁다고 해도 마냥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잠시 쉬어 가고 싶어집니다.

 

눈길을 끄는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습니다. 쿠쿠치(麴智)라는 이름.

 

 

유후인 역에서 도보 10분(이 정도면 유후인에선 꽤 먼 거리입니다^^).

 

뭐 다녀와서 검색해 보니 이미 꽤 유명한 곳이더군요.

 

 

 

일단 나무를 중심으로 한 정원과 인테리어가 탁월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춘 듯한 석유 스토브의 정겨움까지.

 

 

 

홍차와 유자 모나카를 주문했습니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유자 모나카. 바삭한 껍질 안에 유자 향 가득한 팥 잼이 들어 있습니다. 절묘합니다.

 

 

 

바깥쪽에서 본 쿠쿠치의 정원.

 

 

 

도로 쪽에서 보면 왼쪽은 카페, 오른쪽은 제과 판매점입니다. 오른쪽 가게에선 유자 모나카를 비롯해 이 집에서 만든 다양한 과자와 수재 잼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뭔가 성의 있는 선물을 하시고 싶은 분들에게 적절합니다. 매번 공항에서 도쿄 바나나(이름과는 달리 일본 전국 각지에서 판매중)나 공항제 도리야키만 사 가신 분들이라면 특히.

 

 

메인 관광로는 다양한 상점과 카페, 관광객들로 붐비지만(이 거리의 모국어는 아마도 한국어인 듯. 일본어보다 더 많이 들립니다) 한 꺼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시골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산책에 최적화.

 

 

 

귀환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들어가 본 유후인 역 대합실(버스 터미널과 도보 2분 거리인데 역 대합실이 훨씬 넓고 쾌적합니다).

 

 

동네 주민 미술 동호회(?)의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듯. 갤러리 느낌의 높은 천장과 채광창이 예쁘고 플랫폼으로 통하는 문도 뭔가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딱 마음에 드는 공간입니다.

 

 

 

어떤 분들은 '여름 온천이 제 맛'이라고도 하시지만 그래도 온천은 한겨울. 같은 곳을 또 가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다시 찬바람이 불면, 분명 유후인 온천 료칸이 다시 생각날 듯 합니다.

 

 

 

 

수시로 뭔 짓(?)을 벌이던 이 두 녀석도.

 

 

 

 

지금까지 보신 내용은 2015년 2월 기준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여름엔 이런 델 가야죠.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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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놓고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잊고 있었습니다.

 

뭐 유후인을 여름에 가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올려 봅니다.

(저는 2015년 2월에 유후인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니 이 글은 겨울 기준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빨리 겨울 포스팅을 정리해야 여름 포스팅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럼 시작. 앞글에서 이어집니다.

 

1. 유후인 료칸 야스하, 살짝 들여다 보기  http://fivecard.joins.com/1304

2.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3. 유후인, 야스하 료칸의 아침 식사는?  http://fivecard.joins.com/1306

4. 유후인, 왜 모든 사진들이 다 똑같을까?  http://fivecard.joins.com/1307 (예정)

 

 

저녁은 료칸 특유의 가이세키 요리로 배가 터지게 먹었으면, 아침과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소개를 해야 정상이겠죠?

 

아침은 저녁에 비하면 상당히 소박(?)합니다. 상식선에서..

 

 

일단 보시는 바와 같이 생선구이, 된장, 젓갈(명란젓), 샐러드, 나물 반찬, 연두부, 우메보시, 해초 반찬, 그리고 계란입니다.

 

계란은 온천에 찐 것.

 

 

 

조개국물의 미소시루가 일품. 옆에는 튀긴 두부찜입니다.

 

 

첫날의 생선은 삼치였습니다. 명란젓과 강된장 풍의 졸인 된장이 같이 나옵니다.

 

 

밥은 따로 큰 밥통에 나옵니다.

 

그런데 아침의 주인공은 바로 이 밥.

 

그냥 밥만 먹어도 기가 막힌 맛입니다. 밥에 대체 뭘 뿌렸는지 의심이 날 정도.

 

전기밥통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메보시.

 

연두부.

 

 

사실 일본식 아침식사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터지만, 큰 밥통을 긁어 먹게 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담갔던 온천의 힘인지 모르겠습니다.

 

 

 

둘쨋날 아침은 살짝 메뉴가 달라져 있습니다. 삼치 대신 연어, 연두부 대신 각두부... 물론 뭐 밑반찬들은 비슷합니다. 명란젓과 샐러드, 우메보시 등은 공통 요소.

 

 

대신 다른 점은 이렇게 1인용 풍로에 베이컨 에그를 먹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

 

 

돼지고기 간장조림입니다. 흔히 니쿠자카라고 부르는 종류와 비슷합니다.

 

다른 음식은 다 맛있었습니다만 이 니쿠자카는 일본 요리의 특징상 비계를 제거하지 않아 상당히 기름진 맛이 납니다. 평균적인 한국 사람의 입맛으로는 그리 좋다고 하기 힘든... 뭐 그런 맛입니다. 물론 외국에 나와 모든 음식이 다 입에 착착 맞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잘못이죠.

 

어쨌든 아침밥을 싹싹 긁어 먹고, 부른 배로 다시 한번 온천에 풍덩 뛰어들었다 나온 다음 시내 구경을 나옵니다.

 

시내라고 해 봐야 읍내만도 못한 규모. 그래도 조그만 읍내에 꽤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시내 나들이는 곧 식도락 나들이가 됩니다.

 

 

 

자. 일단 유명한 금상 고로케. '일본 제일' 이라는 간판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습니다.

 

 

 

심지어 한글로까지. 그 좁은 유후인 바닥에 두 개의 매장이 있습니다. 정말 잘 되나 봅니다.

 

 

이것이 바로 개당 160엔 짜리 고로케. 물론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도 맛난, 기본에 충실한 고로케 맛입니다만 뭔가 좀 예민한 사람에게는 살짝 고기냄새가 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혹시 평소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고로케를 고르는 것도 방법일 듯 합니다.

 

 

 

이건 끼니 용으로 먹은 템뿌라소바. 그냥 기본적인 맛.

 

 

 

그리고 유후인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라고 소개받은 유후인버거. 자부심이 대단해 보입니다.

 

 

특별히 패티가 크거나 두껍거나, 고기 맛이 남다르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마늘과 토마토 퓨레가 많이 들어간 듯한 소스가 독특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버거킹의 갈릭스테이크버거에 딸려 나오는 소스와 비슷한 맛...?

 

아무튼 특이하고 맛있습니다. 눈이 번쩍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게 느끼지 않은 것은 제가 평소 햄버거 종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오히려 살짝 케찹+양파+피클 맛이 아닌 햄버거가 좀 이단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훌륭합니다. 한번쯤 드셔 봐도 좋을 듯.

 

이렇게 해서 유후인에서 먹었던 '식사용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다음은 자질구레한 간식거리와 시내 구경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역시 동네가 조그맣다보니 별 신기한 건 없었습니다. 뭣보다 '왜 유후인에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사진이 똑같을까'에 대한 답을 알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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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뜻]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은 시리즈 5편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편이 극장에 등장한 것이 1996년이니 19년에 걸쳐 다섯 편이 나온 셈입니다. 1962년부터 53년 동안 24편이 나온 007 시리즈(거의 공식 작품으로 인정받는 왕년의 '카지노 로얄'과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까지 치면 26편)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일반적인 다른 시리즈들에 비해도 상당히 무성의한 진행입니다.

 

시리즈의 위기는 오우삼이 연출한 2편 때 찾아왔습니다. 흥행에서는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가 다른 시리즈와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겼기 때문이었죠. 결국 6년을 건너 뛰고 J.J.에이브럼스가 투입되면서 사실상의 리부트가 이뤄집니다. 사이먼 펙과 빙 레임스(한국에선 흔히 라메스라고 불리죠)가 사이드킥으로 자리잡고, 4편에선 제레미 레너가 이단 헌트보다 좀 더 내근지향적인 요원으로 등장하면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5편은 이들 셋과 이단 헌트가 마침내 하나의 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5편은 지금까지 '미션 임파서블' 극장판 시리즈가 보여준 가장 완성도 높은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주인공 이단 헌트와 그 조력자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도 완벽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스토리와의 조화도 찬탄을 낳게 합니다. 과연 이 안정된 체제하에서 몇 편의 시리즈가 더 나올 수 있을지.

 

 

 

 

물론 이 팀플레이의 완성이라는 점 외에도 5편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톰 크루즈가 여자와 함께 등장해 뭔가 연인 사이처럼 보이는 케미스트리를 보인 작품이라면 개인적으로 '탑 건'을 마지막으로 꼽습니다. 네. 켈리 멕길리스가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5'는 멕길리스 이후 그 어떤 여자와 마주 서도 통나무같기만 하던 톰 크루즈가 처음으로 뭔가 썸 타는 분위기를 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울 정도죠.

 

 

 

 

스웨덴에서 1983년 태어난 여배우 레베카 페르구손, 즉 레베카 퍼거슨이 이전까지 크루즈가 공연했던 여배우들, 즉 니콜 키드먼(그러고 보니 3편이나 같이 찍었군요), 데미 무어,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등등을 기준으로 할 때 이들을 압도하는 환상적인 미모를 가졌거나, 말도 못하게 연기를 잘 해서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점에서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손을 번쩍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란도트'의 멜로디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맥쿼리 감독은 퍼거슨의 인생 최고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 분은 퍼거슨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 보시길. 그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 6'가 아닌 한, 분명 퍼거슨이 여기서 보여준 매력은 재현되지 않을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정말 한 여배우에게 뽑아낼 수 있는 매력이란 매력은 모두 보여준 한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면에선 왕조현의 '천녀유혼'과 비견될 만한 영화라고 할까요.)

 

여주인공의 매력 외에 '미션 임파서블5'의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자면 바로 '로그 네이션'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로그 네이션이란 대체 뭘까요. 아마도 그 의미를 한번에 설명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주의: '미션 임파서블5'의 스포일러가 다수 존재합니다. 뭐 이제 웬만한 분들은 영화를 다 보셨을테죠?

 

 

 

불량 국가

[명사] 일반적으로는 rogue state, 테러 행위를 지원하며 세계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 되는 나라들을 가리키는 정치 용어. 반면 rogue nation이라는 표기는 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는 유일 최강대국, 미국을 뜻하는 말로 쓰인 적이 있다. 물론 rogue nation을 그냥 rogue state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시 한번 강조: 뒷부분에 영화 미션 임파서블5-로그네이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정 국가들을 가리켜 불량국가’, 혹은 깡패 같은 나라라고 부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1985년 한 연설에서 우리는 더 이상 범법 국가들(outlaw states)로부터의 공격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불량국가(rogue nation, 공식적으로 불량국가라는 표현이 번역어로 더 널리 사용되지만, 이보다는 깡패 국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라는 표현이 공식 용어로 등장한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의 일이다. 당시 클린턴의 국가 안보 자문이던 앤서니 레이크는 1994포린 어페어즈기고를 통해 고집불통에다 무법적인 일부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진영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들에 해를 끼친다 5개국을 대표적인 깡패 국가로 지목했다. 바로 북한, 쿠바, 이라크, 이란, 리비아였다. 그 실체는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획책하고, 테러를 지원하며, 자국 국민들을 심하게 탄압하고, 특히 반미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으로 규정됐다.

 

 

 

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게 맞서는 자를 나는 깡패라 부르겠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21세기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시대의 미국에서는 또 하나의 불량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통상관료였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2003‘Rogue Nation’이라는 책을 썼다(Rogue State가 아닌 Rogue Nation이란 표현의 기원으로 보인다). 이 책에 나오는 깡패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대의 미국은 세계 각국, 미국의 적대국가는 물론 우방들로부터도 일방주의(unilateralism)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무역협정과 통상압력, 군사 파견과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미국의 국익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작된 깡패 국가이론도 한 단계 발전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Axis of Evils)’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란, 이라크, 북한을 3대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의 배후 국가로 쿠바, 리비아, 시리아를 지목했고 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독재 전초국가(Outpost of tyranny)’라는 이름으로 짐바브웨, 벨라루스, 미얀마를 우려 대상인 관심 국가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프레스토위츠는 남들을 깡패국가라고 부르기 전에,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이 오히려 깡패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세계 평화에 기여할 생각이 있다면 동네 짱 먹는 형의 모습이 아닌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권유다.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5편의 부제인 로그 네이션깡패 국가는 기존 미국 대통령들의 테러하는 놈들=깡패 국가개념과도, 프레스토위츠의 미국이야말로 깡패 국가이론과도 조금 다르다. 다만 굳이 말하자면 후자에 조금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악당들은 기존 테러국가 수준의 허약한 존재를 이미 넘어선 슈퍼 스파이 조직 신디케이트(Syndicate)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정보를 쥐고 흔들며, 일개 국가 수준에서 감행할 수 없는 온갖 음모와 공작으로 경제와 군사의 흐름을 조작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 신디케이트는 기존 강대국(혹은 초국가적 규모의 다국적 기업)의 국익과 부합할 때에만 존재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제목의 로그 네이션이 악의로 이뤄진 초 국가적 존재인 신디케이트를 가리키는 것인지, 영화 속에서 신디케이트의 모태로 지적된 영국 MI6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결국 신디케이트든 대량 살상 무기(실체가 있건 없건) 자신들의 물리적인 힘을 보유할 수 있는 명분으로 강력한 인류의 적을 지목해야 하는 존재는 결국 초강대국 뿐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rogue nation’‘rogue state’가 많은 경우 혼용되고 있지만, 굳이 더 보편적인 ‘rogue state’ 대신에 ‘rogue nation’을 제목에 사용한 것은 이런 함의를 읽어 달라는 제작진의 요청이 아닐지. ‘유주얼 서스펙트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대본을 쓴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톰 크루즈, 즉 이단 헌트 급의 요원이라면 이제는 얼마나 막강한 상대를 데려다 놔야 게임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결국 이단 헌트의 존재 목적은 '미국의 국익'인데 이게 과연 어디까지 '온 인류의 이익'과 일치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007이 전성기를 누리던 냉전 시대에는 '악의 제국' 소련이 건재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베를린 장벽이 사라진 뒤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던' 영웅적인 스파이들의 그림자에서 다국적 자본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신자유의주의의 냄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로그 네이션', 즉 거대한 음모를 현실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슈퍼 스파이가 한 발 삐끗하면 거대한 슈퍼 악당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설정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적절합니다.

 

P.S. 그런데 검색하다 보니 이런 레베카 퍼거슨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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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과 '베테랑'이 쌍끌이 천만 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2015 여름, 다른 한국 영화들은 소리소문없이 꼬리를 마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난해의 기대작이었던 '협녀'조차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큰 호응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서 그리 큰 영화로 보이지 않았던 영화 한 편이 우뚝 일어섰습니다. 바로 '뷰티 인사이드'.

 

백감독의 유려한 영상과 조성욱 감독의 음악 역시 영화를 이끄는 강력한 힘입니다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효주라는 배우의 힘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앳되고 청순한 얼굴이 표상이었던 한효주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원톱 여배우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더군요.

 

 

 

 

 

영화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일단 정리해 봅니다.

 

 

 

 

 

 

웬만한 분들은 아실 얘기지만 이 영화는 도시바의 '뷰티 인사이드'라는 온라인 광고 시리즈에서 시작됐습니다. 총 6편, 모두 합해 약 39분 분량인 이 광고영화는 2013년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 광고 필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기본 설정과 도입부는 거의 똑같습니다. 한국판에서는 뚱뚱한 남자(김대명)가 여자가 깨지 않도록 몰래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습니다. 맞지 않는 바지와 신발에 한숨을 쉬면서.

 

(아래는 한국 네티즌들이 한글 자막까지 입혀 놓은 원작 광고입니다. 영화와 비교해 보실 분들은 한번 보시는 것도. 존재 목적이 목적인 만큼 광고에서는 노트북이 큰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 유난히 안경테가 강조되는 것과도 비교 가능.^^)

 

 

 

 

이 남자, 우진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어 있는 남자입니다. 물론 남자라고는 하지만 '태어날 때 원래 남자'였다는 것 뿐이지 매일 아침 일어나 보면 어떤 날은 남자, 어떤 날은 여자, 어떤 날은 노인, 어떤 날은 외국인으로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떤 날은 이진욱처럼 잘생긴 남자가 되고, 어떤 날은 조달환처럼 코믹한 얼굴로 깨어납니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란 당연히 가능할 리가 없는 그. 당연히 잘 생긴 날은 밖에 나가 여자를 유혹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관계란 아예 기대하지 않는 삶이 이어집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나타나면,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이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입니다.

 

 

모든 창작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야기는 훨씬 쉽게 풀립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메인 아이디어 하나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30초 짜리 이야기(대부분의 광고), 5분 짜리 이야기(인터넷 광고), 15분 짜리 이야기(웹 드라마), 20분 짜리 이야기(단편 영화), 70분 짜리 이야기(TV 단막극 드라마), 2시간 짜리 이야기(극장용 영화), 16시간짜리 이야기(TV 미니시리즈) 로 바꾸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혹은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들은 그 자체로 이야기의 규모(어느 정도의 길이에 적합한 이야기인가)를 한정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확장이 불가능할 것 같던 아이디어가 새로운 아이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생명 연장(?)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이 영화, '뷰티 인사이드'만 해도 기존의 39분짜리 광고 필름에서 2시간 짜리 극장용 영화가 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아이디어의 확장이 이뤄졌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절친 상백(이동휘)이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울러 또 세상과 우진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진의 어머니(문숙),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이수(한효주)가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이수의 주변 사람들, 예를 들어 실장님(신동미) 같은 캐릭터들이 추가됐습니다.

 

 

(이분이 바로 문숙씨.)

 

한 두 장면 지나가면 될 단편과는 달리 이야기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판타지는 설정이 중요해집니다. 많은 판타지들이 여기서 무너지는 건 '어차피 판타지인데 어때'라는 생각에서 정교한 설정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경우라면  우진이 '자고 일어나면 바뀐다'는 것이 핵심 설정인데,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면 '그럼 대체 변하는 시점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필요해집니다. 즉 우진이 아침에 눈을 뜰 때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인지, 잠이 가장 깊이 든 시점에 바뀌는 것인지, 자는 동안 서서히 조금씩 변해 가다가 깨면 완성되는 것인지, 밤에만 바뀌는 것인지, 낮잠 때에도 바뀌는 것인지...

 

이런 설정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간이건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 덕분에 이진욱의 등장 장면은 풍성한 재미를 이끌어 낼 수가 있습니다. 반면 하루 한번, 심야 시간에 바뀌는 것이 설정이었다면 또 거기에 맞는 장면이 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잔재미도 가능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사실 뒤로 가면서 조금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원작인 광고가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비밀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데서 끝나는 반면, 극장용 영화는 그 뒤로 죽 이어져 '정말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다 보니 뭔가 불필요한 이야기가 추가된 듯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이디어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한 연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환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이수, 한효주의 힘입니다. 한효주가 연기하는 이수를 보고 있으면, 만약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일 변하는 얼굴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1000년을 살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10년 밖에 못 산다(뭐 이건 좀 뭔가 구미호같은 설정입니다. 물론 영화에는 이런 유치한 설정 같은 건 없습니다)고 하더라도, 이수에게 고백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개연성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예쁜 얼굴은 기본. 뭐든 다 이해해 주고 뭐든 다 받아들여 줄 것 같은 이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라고 표현하는게 자연스러울 듯 합니다. 

'뷰티 인사이드'는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가 되기는 다소 힘에 부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 먼 훗날 2015년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고 기억할 것은 분명한 영화입니다. 연일 격무에 지친, 메마른 감성의 아저씨에게도 달달한 꿈을 꾸게 할 만한.

 

 

 

P.S.1.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을 털어놓습니다만, 이 영화는 사실 '사랑이란 그 사람의 외면보다는 내면에 빠져 드는 것'이라는 뜻의 제목과는 달리 '뷰티 아웃사이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듯, 스토리는 우진이 배성우 김상호 김희원 조달환일 때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짜 러브 스토리는 박서준 이진욱 유연석일 때 이뤄집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한효주의 경우 역시 굳이 외모의 중요성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죠.

 

(물론 '우진은 우월한 외모일 때 수많은 미녀들을 유혹하지만, 그 중에서 미모 뿐만 아니라 내면의 매력을 갖춘 이수를 만났을 때 진정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데에 '뷰티 인사이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죠.^^)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인정할 건 인정해라'입니다. 수많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연구에서도 외모라는 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합니다. 물론 이 '외모'의 판단은 매우 주관적인 평가의 결과물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상대를 사랑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동물입니다. 그걸 처음부터 부정하거나 죄악시하는 건 그리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결론이 보여주는 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은 외면이지만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내면'이라는 정도의 실용적인 태도입니다. 평생을 관통하는 사랑이란 일순간의 매혹과는 크게 다른 것이며, 외모로 그런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교훈인 셈이죠.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의 삶에는 좋은 날과 나쁜 날이 있기 마련입니다. 매일 좋은 날이 이어지는 행운의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좋은 날의 기억으로 운 나쁜 날의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른 좋은 날을 기대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좋은 하루는 끝없이 지속되고, 나쁜 하루는 조금이라도 짧게 끝났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 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사람의 외모에 대입한다면 '뷰티 인사이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우화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P.S.2.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사실 가장 반가운 배우는 박민수 군입니다. 이유는 당연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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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끝이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 5월29일 첫 방송된 '사랑하는 은동아'가 7월18일 16회로 막을 내립니다.

 

 

 

 

현수와 은동이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 춘천 근교의 공원으로 설정된 원당 승마공원에서 마지막 촬영이 있었습니다.

 

날씨와 풍경이 너무 예쁘군요.

 

 

 

 

 

 

 

 

 

 

 

 

 

일조량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제 이 웃음도 오늘이 마지막.

 

 

 

 

감독님의 파이팅 넘치는 디렉션도 오늘이 마지막.

 

 

 

 

 

마지막 촬영을 위해선 크레인이 동원됐습니다.

 

 

 

뭐랄까,

 

하직 인사는 나중에 다시 드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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