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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론 에저튼)는 곡절 끝에 킹스맨의 멤버가 되기 위한 테스트에 응합니다. 그 사이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세계적인 IT기업가 발렌타인(새뮤얼 잭슨)은 지구에 붙어 사는 바이러스적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 음모는 엄청나게 위험한 계획이란 사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킹스맨]을 즐기기 위해 사전에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어떤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단순합니다. 사실 기본 설정부터 말이 안 됩니다. '유명 양복점들과 연관된 재력가들이 뭉쳐 전 세계 어떤 정부, 어떤 권력과도 관련이 없는 정의 수호를 위한 국제 정보기관을 만들었다'라뇨.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팍한 설정과 막나가는 진행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킹스맨'의 첫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스파이는 영국산'이라는 교훈의 부활입니다. 물론 너무 늦게 태어난 까닭에 이미 스파이 세계가 이선 헌트와 제이슨 본이 지배하던 세계였던 분들, 그리고 007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극약 처방으로 본래의 색채를 잃은 시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분들에겐 참 죄송하기 짝이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과거 션 코너리와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던 시대를 얘기하는 것은 참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그보다 더 마이너한 TV 시리즈들인 '어벤저(The Avengers)'나 '전격대작전(The Persuaders)', '세인트(The Saint)' 등을 얘기하면 이 뭔 선사시대 이야기인가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이런 '수트를 폼나게 갖춰 입은 영국제 스파이'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킹스맨'이 가장 반가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격 제로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방송된 'New Avengers'의 패트릭 맥니. 존 스티드라는 빛나는 '영국 스파이' 캐릭터로 20여년에 걸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007 이전, 카리스마 넘치는 '세인트'로 인기 스타의 자리를 굳힌 로저 무어.)

 

그 전통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는 불행히도 그 맥을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2006년작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007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그 본질적인 정취가 사라져 버렸죠. 일부 본드 마니아 중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거칠고 냉혹한 이미지가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초기 본드의 모습과 어울린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플레밍이 왜 '근육질의 액션 스타형 젊은이' 션 코너리를 캐스팅 한 데 실망감을 표하고 "내가 원했던 본드는 데이빗 니븐"이라고 말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플레밍은 이미 이 시절에 '영국산 스파이'의 본질이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로 극복해 나가는, 여유 있는 신사의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예상과는 달리 션 코너리는 역사에 남을 영국산 스파이의 전형을 멋지게 연기해 냈고, 그 연기를 본 플레밍이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다"며 만족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007 시리즈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넌 체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전성기만큼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시리즈의 색채를 짝퉁 제이슨 본 시리즈로 만들어 놓은 뒤 흥행 면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통 영국산 스파이'의 정취는 영영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국 귀족의 후예로 태어날 때에는 드 비어 드루먼드 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던 매튜 본이 칼을 뽑고 나선 것입니다. ('드 비어'라는 이름은 '킹스맨'에도 등장하죠. 갤러해드가 발렌타인에게 접근했을 때 쓰는 가명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킹스맨'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체제의 007을 비롯해 일단 뛰고 달리고 아크로바트 액션을 펼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 21세기 초반의 스파이 영화 시장입니다. 과연 관객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스파이 영화 뿐만이겠느냐는 냉소가 담겨 있죠. 물론 '오스틴 파워'나 '자니 잉글리시'도 방향만 보자면 비슷한 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미덕을 '킹스맨'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수트 포르노'라고 불리는 진정한 '수트 입은, 섹시한 영국 스파이' 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발몽'의 꽃미남 시절 콜린 퍼스. 누군가 '킹스맨'을 보고 "왜 콜린 퍼스는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오르지 않은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 오르지 않았을 리야 없지만 사실 경쟁이 너무 치열했던 거죠.)

 

사실 콜린 퍼스는 경력만 놓고 보면 '대영제국 스파이'의 이력이 없는 배우지만, 어쨌든 전 세계 여성 팬들을 녹일 수 있는 댄디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매튜 본의 의도는 타론 애저튼을 앞세워 '귀족인 척 하는 자들의 희화화'였는지도 모르지만, '킹스맨'을 본 전 세계의 대다수 여성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서 애저튼은 퍼스의 비중에 비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라는 점에서, 별 의미 없는 얘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영화를 본 거의 모든 분, 특히 여성 관객들은 콜린 퍼스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아울러 1960년대, 또 다른 히트 스파이 시리즈인 '해리 팔머' 시리즈를 주도한 마이클 케인이 아서 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에 '영국산 스파이'와 '안경 쓴 쉬크한 스파이'의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물론 킹스맨 2층의 회의실이 원형 테이블이 아니라는 건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지만요.

 

 

(해리 팔머 시리즈 시절의 풋풋한 마이클 케인.)

 

 

 

 

이런 맥락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과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비판이나 계도성 메시지가 담겨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를 좀 왜곡하는 느낌이 듭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매튜 본의 영화 이력은 사실상 가이 리치의 히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프로듀서 역할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로 직접 감독으로 나서 만든 영화들 - 가이 리치 의 영화라고 해도 아무도 신기해 하지 않을 '레이어 케이크'에서 이번 '킹스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B급이면 어때'와 '주인공만 주인공이란 법 있어' 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과연 그의 영화에서 몇몇 평론가들이 읽어 내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서태지의 '소격동'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려는 것 만큼이나 억지로 느껴집니다. 뭐 이 영화에 귀족과 기득권층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로 '킹스맨'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인종차별국가 미국을 전복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라고 보아야 할 정도겠죠.

 

사실 '킹스맨'은 매우 비교육적인 영화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 담긴 생명 경시나 성차별, 인종 차별,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이란 말 자체를 비웃는 듯한 표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저속함을 이유로 무시하기엔 이 막나가는 코미디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코미디는 그냥 코미디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돈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가이 리치, 오른쪽이 매튜 본)

 

P.S. 한때 매튜 본은 '가이 리치의 재능을 흠모해 따라다니는 돈 많은 친구' 정도의 대접을 받았지만, '킹스맨'을 통해 마침내 가이 리치와의 위치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가이 리치가 데뷔 초의 재능은 어디로 팔아먹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영혼 없는 영화로 흥행 감독의 면모만 유지하게 되어 버린 결과죠.

 

흥미롭게도 가이 리치 또한 나폴레옹 솔로라는 슈퍼 스파이로 유명한 왕년의 인기 시리즈 '첩보원 0011(Man from U.N.C.L.E)'의 리메이크와 함께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제작을 발표해, '고전적 스파이 이야기'와 '아서왕 이야기'를 한방에 버무린 매튜 본과 평행선을 그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 두 작품에서 가이 리치가 왕년의 기발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 옛날, 매튜 본의 '스타더스트'에 대한 글 http://blog.joins.com/fivecard/8417922

 

매튜 본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리뷰 http://fivecard.joins.com/939

 

그리고 가끔 혼동되는 또 다른 매튜 본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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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들] 서서히 인기에 불이 붙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하녀들'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나라가 선 지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한 사회가 아니고 보면 10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닙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두메산골에서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란 새 나라가 섰다는 사실도 최신 뉴스일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나라의 주역들이 가장 경계할 일은 아무래도 전 왕조의 후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동태 파악입니다. 백제가 망한 뒤에도 백제의 강역에서 부흥운동이 펼쳐졌고, 고구려도 부흥운동이 일어난 데 이어 그 땅에서 고구려의 후신임을 주장하는 발해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자료를 보면 태조 이성계는 공양왕을 비롯한 고려 왕실의 후예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듯 하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죠. 자신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조선이 망한 뒤 고려 왕씨들이 어떤 운명을 걸었는지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은 바로 '왕 거을오미' 입니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 1393~) [가장 극적으로 살아남은 고려의 후예]

 

드라마 하녀들에는 조선 초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반목하는 사이 고려를 수복하려는 왕씨들과 그 유신들로 구성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가 망한 뒤 두문동에 들어간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누군가 조직적으로 고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운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구려의 안승이나 백제의 귀실복신 같은 인물은 고려가 망한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고려 왕씨의 후손들은 조선 건국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집권 직후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공양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 둔 데 이어 태조 2(1393) 526일에는 거제도를 비롯한 낙도로 유배가 있던 공양왕의 후손들을 육지로 나오게 해 생업을 주고 안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들 중 왕강은 위화도 회군 당시 이성계에게 동조한 공이 있어 조선 건국 뒤에도 벼슬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성계 본인보다 정도전을 비롯한 공신들은 훨씬 더 강력하게 왕씨들을 처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을 내버려 둘 경우 새로운 왕조에 해가 될 것이라는 상소가 빗발쳤고, 마침내 1394226일에는 이성계가 직접 보호하던 왕강와 왕승보 등도 귀양가는 몸이 되었다. 이어 414일 윤방경 등을 강화에, 손흥종 등을 거제에 보내 왕씨 일족을 단속하라는 명을 내렸다. 말인즉 파견되는 관리가 재량껏 단속하라는 것이었으나, 조정의 여론을 감안하면, ‘재량껏이란 씨를 말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삼척에 귀양 가 있던 공양왕도 이때 아들과 함께 처형됐다.

 

야담집 추강냉화에는 당시 학살의 풍경이 기록돼 있다. 파견된 관원들이 왕씨들에게 육지에서 떨어진 낙도에 모두 모여 살게 해 주겠다며 거짓 포고령을 내려 포구에 모은 뒤, 배에 싣고 가다가 가라앉혀 몰살시키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때 고려 태조 왕건이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죄없는 내 후손들을 몰살시키니 네 아들들도 뒤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어 426일에는 아예 왕씨라는 성의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다. 본래 왕씨면 어머니의 성을 쓰고, 사성(賜姓)으로 왕씨를 받은 자들도 본래의 성으로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이때 왕씨들이 전()씨나 옥(), ()씨로 성울 바꾼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다들 한자로 보면 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이다.

 

공양왕의 형인 왕우는 태조의 8남 방번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귀의군에 봉해진 뒤, 이런 변란 속에서도 왕씨의 제사가 끊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목숨을 보존했다. 하지만 1397년 왕우가 죽고 장남 왕조가 귀의군의 칭호를 물려받은 뒤, 이듬해인 1398 826일엔 귀의군 왕조와 그 아우 왕관이 죽었다는 기록이 실렸다. 이날은 1차 왕자의 난으로 방번-방석 형제와 정도전, 남은 등이 주살당한 날이다. 방번이 죽었으니 그 처남들인 왕조와 왕관을 더 이상 살려 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에서는 공식적으로 왕씨가 사라졌다.

 

하지만 태종 13(1413) 11, 고려 왕족인 왕휴의 서자 왕거을오미가 발견되어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왕휴가 이밀충이란 사람의 누이를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인데 20세가 되어 호패를 마련하려는 것을 지신사 김여지가 조정에 보고한 것이었다.

 

 

 

관계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 공초가 있었으나 태종은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전조의 자손들을 아예 멸족시킨 경우는 없었다. 특히 태조의 경우 왕씨들을 몰살시킨 것이 본의가 아니었고, 당시만 해도 내가 나이 어려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이제 내가 왕씨의 자손들을 보호하겠다며 거을오미의 석방령을 내렸다. 이후 문종 1(1451)에는 왕씨의 사용 금지령을 해제하고 임금이 직접 "왕씨의 후손들을 찾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오늘날까지 개성 왕씨의 후손들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가 망한 뒤 부흥의 움직임이 공식 문서에 기록된 바 없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가혹한 박해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왕거을오미도 왕씨에 대한 박해가 끝났음을 알린 인물이기는 하나, 관직이나 토지를 주어 잘 살게 했다는 기록 역시 없는 것을 보면 무슨 특전이 주어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문종 때 왕씨의 사당인 숭의전을 짓고 왕우지를 발탁해 왕순례라는 이름을 내린 뒤 숭의전 부사로 봉해 토지와 집을 주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한 것이 완전한 사면의 첫 기록이다.

 

이렇듯 조선 왕조가 왕씨를 받아들이는 데 대략 건국에서 60년이 걸렸다. 다시 한번 망국의 비애를 느끼게 된다.

 

P.S. 고려 왕씨에서 비롯된 성씨 중에는 위에서 거론한 성씨 외에 개성 내()씨가 있다. 일설에 따르면 조선 초 검문하던 군관이 무슨 성씨냐고 묻는 말에 당황한 왕씨 일족이 ?”하고 반문하는 바람에 내씨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인데, 믿을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개성 내씨 이야기는 참 코믹합니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았다니 다행이라는 생각.

 

뭐 역사의 만약이란 얘기해 봐야 그냥 재미를 위한 것일 뿐이지만, 왕우와 이성계가 사돈을 맺을 때 하필 방번과 왕우의 딸을 결혼시킨 것이 묘한 상황입니다. 이성계가 후계자로 삼으려 한 아들은 방번과 어머니가 같은 방석이었으니, 그대로만 됐으면 왕우의 집안은 누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왕자의 난으로 태종 방원이 방번-방석 형제를 처지했으니 왕우의 자손들은 두 겹의 역적이 된 셈이죠. 망국의 왕손인데다 난신적자의 집안... 이것이 팔자 소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끔 전씨(全이든 田이든) 중에 고려 왕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설에 따르면 가능성은 꽤 있는 편입니다. 한때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측근들도 넌즈시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경우를 부여 서씨의 경우에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왕성은 본래 부여(夫餘)씨인데, 나라가 망한 뒤 여(餘)자의 일부를 변형해 여(余)씨나 서(徐)씨로 성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왕씨의 후손들은 이렇게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문종 때 세워진 왕씨들의 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니, 굳이 누가 진짜 고려의 후손인지를 따질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하녀들'은 태종 초, 함흥차사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시작했으니 왕씨의 후예들은 모조리 참살당한 뒤의 상황입니다. 그래도 고려 부흥의 음모가 등장하니 왕씨가 아예 안 나올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하녀들'의 등장인물 중에는 누가 고려 왕실의 후예일까요. 뭐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눈치 빠른 분들은 대략 짐작을 하실 듯 합니다. 당연히 비밀조직 만월당의 주역들 중에 있겠죠.^^

 

('하녀들'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김치권[김갑수]와 아들 은기[김동욱]가 고려 왕실의 자손이고, 무명[오지호]은 이방원의 아들이란 게 밝혀졌습니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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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2월입니다. 세월 참 빠르죠?

 

이달의 기대는 바로 이것.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가이드 (2015)

 

이번달 예술의 전당 공연 중에는 향수라는 표제의 공연이 눈길을 끌어. 대부분의 연주회들이 별 설명 없이 레퍼토리를 내놓는 데 비해 이 공연은 향수라는 주제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 첼로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 9신세계를 연주해. KBS 상임지휘자였던 함신익과 심포니송의 연주. 첼로 독주자는 인기 최고인 송영훈이야.

 

함신익과 심포니송은 지난해에는 황홀이란 표제를 달고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교향곡 4번을 연주했는데, 한 작곡가를 이렇게 한 단어로 압축하는 건 무리가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 반편, 참신하고 대중적인 접근이란 면에서 그럴듯하기도 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드보르작의 음악 세계를 설명할 때 미국에서 활동하며 고향 보히미아를 그리던 작곡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걸 보면 드보르작과 향수를 연결하는 건 무리가 없어 보여. C 3만원이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거야.

 

다음. 국립극장에서 영국 국립극장(NT, National Theatere)의 공연을 그대로 녹화한 영상을 가끔씩 상영하고 있다는 걸 아는 분들은 이제 아실 거야. 그런데 이번 공연은 그야말로 마니아들을 흥분시킬만한 대박이야.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미국 뉴욕판 셜록 드라마인 엘리멘트리의 셜록 조니 리 밀러가 함께 무대에 서거든. 작품은 메리 셸리 원작 프랑켄슈타인’.

 

누가 프랑켄슈타인 박사고 누가 괴물이냐고? 둘 다야. 두 스타 배우가 공연에 따라 번갈아가며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을 바꿔 연기해. 이번 국립극장에선 두 가지 버전의 공연을 각각 3회씩 상영하지. 게다가 연출은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 이 글을 쓰는 나부터도 마음이 급해지네. R 15000, S 1만원. 알았으면 서둘러야겠지?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다니구치 지로의 선생님의 가방이야. 1년에 150권을 읽는(정상이 아닌) 다독가 하지현 교수가 추천한 책인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술 좋아하는 37세의 골드미스 츠키코가 우연히 술집에서 옛날 고교시절 선생님을 만나 차츰 남녀관계로 발전해가는 이야기야. 3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남녀, 그것도 노인의 연애 이야기인 거지.

 

하 교수에 따르면 나이가 만큼 사람 사이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와 관계의 감정이 무르익어 자연스럽게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일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좋은 책이라고 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이제 나이 들어 의미가 가슴에 닿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 두권 짜리 만화의 울림이 만만치 않아. ‘고독한 미식가등을 통해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체를 접해 사람은 알겠지만, 정말 한컷 한컷이 작품이라는 생각이 정도의 공력이 느껴져.

 

 

 

 

문득 반대쪽에 있는 책을 하나 추천하고 싶어지네. 배명훈의 책을 추천하는 이번이 두번째인 같은데, ‘맛집 폭격이라는 제목을 들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 한국과 곳에 있는 어떤 나라가 묘한 긴장 상태에 들어가. 워낙 거리라 직접 교전은 없지만 양쪽 상대방의 본토에 대해 미사일로 정밀 공격을 가하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인 거지. 그런데 한국의 상황 분석자가 보기엔 정말 묘할 정도로, 적의 공격 목표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 함께 가던 추억의 맛집들이더라는 거야. 과연 메시지가 뜻하는 뭘까.

 

선생님의 가방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쳐 어떤 감정을 감정이라고 말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맛집 폭격 감정 대놓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쿨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행동이라서 차마 그렇게 말할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야. 그렇게 너무나 달라. 아마 작품 모두를 좋아하는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인터넷 서점 기준으로 맛집 폭격 12000 , ‘선생님의 가방 권당 1만원 .

 

 

 

마지막으로 이달의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작년 128일부터 열리고 있는 폼페이. 중앙박물관 전시 중에는 드물게 유료 행사야. 기원 79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유적은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봐야 곳으로 꼽히지. 이번에는 폼페이에서 나온 유물 300여점이 전시돼. 폼페이 유적이 특별한 도시가 서서히 몰락해 가면서 텅빈 유령도시가 되어 유적화한 것이 아니고, 어느날 갑자기, 생활이 진행되던 상태에서 화산재로 덮여 정지화면처럼 그대로 남았다는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당시 생활을 재현할 있는 유물이 풍성한 편이지. 성인 13000.

정도면 2월은 심심찮게 보낼 있을거야. 3월에 만나.  

 

 

향수 드보르작                                            C 3만원

국립극장,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밀러의 프랑켄슈타인  R 15000

다니구치 지로, ‘선생님의 가방’ 1,2                            1만원

배명훈, ‘맛집 폭격                                          12000

국립중앙박물관, ‘폼페이                                     13000

 

                                                           9만원

 

 

 

그러니까 긴말 할 것 없이,

 

 

 

 

그리고

 

 

 

이렇게 두가지를 볼 수 있다는 거죠.

 

뭐 굳이 말을 더 길게 할 필요가 없을 듯. 팬들은 얼른 예매하세요.

 

이달의 음악도 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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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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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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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라고 원대한 포부와 인생의 계획을 정립하는 건 그냥 부지런히 살아서 큰 일 하실 분들의 얘기인 것 같고, 이런 블로그를 돌아보실 여유를 가진 분들은 그냥 사시던 대로 사시는 게 좋겠습니다.

 

 

 

Paul, Stella and James, Scotland © 1982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그러니까 저 밑에 쭈그리고 앉은 소녀가 아디다스 삼선을 촌스러움의 상징에서 벗어나게 한 그 분이란 얘기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5)

 

송년 모임으로 퀭한 눈을 하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세번째 새해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리네. 어찌나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혹시 그 전에 이 칼럼을 본 사람이라면 새해라는 건 그냥 달력 위로 지나가는 표시일 뿐이야. 1월 한달 어떻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냥 살던 대로 살라는 지침은 지난해와 똑같아.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안달복달하지 말고 살아. 남들이 뭘 하고 얼마나 앞서 가건, 조금만 길게 보면 언젠가 다 비슷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있어.

 

새해의 첫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118, ‘정명훈과 서울시향 10이라는 10주년 기념 공연이었어. 서울시향을 두고 시민의 혈세로 1%의 상류층을 위한 서비스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절인데, 그런 사람들에겐 세금으로 뭘 해야 낭비가 아닌지 궁금해. 도로 포장? 하수도 보수? 정말 그거면 충분해?

 

또 다른 일각에선 정명훈이 온 뒤와 오기 전 서울시향의 연주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일각에선 무식한 게 죄냐고 방어벽을 쳐 주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은 무식한 게 죄야. 자기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건 더 큰 죄고.

 

아무튼 그런 분들의 생각보다는 이런 공연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티켓 가격은 무려 1만원 부터시작해) 상류층이 꽤 많은 덕분인지, 이 공연은 거의 매진 직전이야. 이 칼럼이 책으로 나갈 때에는 매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 추천하기는 곤란하네.. 연주 곡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황제’(협연자가 심지어 김선욱이야),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 혹시 취소표가 나오는지 각자 확인해 보도록 해.

 

이 공연을 포기하면 아쉽긴 하지만 1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요엘 레비 지휘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 B 3만원, C 2만원. 

 

오랜만에 연극 한 편. 국립극장에선 118일부터 해롤드 앤 모드라는 연극이 공연돼. 늘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19세 소년이 삶에 무한히 긍정적인 80세 할머니를 만나면서 훈훈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는 줄거리.

 

 

 

잠깐, 그런데 이거 내가 아는 연극 같은데?’라고 말하려는 분? 그거 맞아. 지난해까지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 맞아. 다만 원작자 측에서 원제 해롤드 앤 모드를 그냥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해. 벌써 한국에선 여섯번째 공연인 셈이지. 할머니 모드 역은 계속해서 박정자가 나서고, 19세 소년 해롤드 역은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으로 주목을 끈 강하늘이 맡게 됐어.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극중 40) – 유아인(극중 20) 커플은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최강 연상연하 커플의 훈훈함이 추위를 날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이런 추운 날씨엔 집에 콕 박혀 볼 책을 소개하는게 더 맞을 것 같지만, 건강을 위해선 추워도 바깥 출입을 좀 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1월은 아시다시피 전시의 성수기잖아. 방학이기도 해서 괜찮은 전시들이 몰리는 시점이지.

 

우선 지난 1213일부터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리, 일상의 유혹전에 눈길이 가.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Les Arts Decoratifs)에 소장된 장식 예술품과 가구, 식기, 기타 생활용품 등을 통해 18세기 파리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야. 그동안 흔히 있었던 예술품이나 사진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네. 13000. 329일까지.

 

 

Jimi Hendrix Experience, London © 1967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서울 대림미술관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전시야. ‘매카트니라는 이름에서 바로 느낌이 오겠지. 비틀즈의 리더 폴 매카트니의 전처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어머니인 린다 매카트니는 그룹 윙즈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래 출발점이 사진작가야.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해. 물론 이런 칭찬은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동세대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사진(바로 위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처럼) 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야.

5000. 116일부터 426일까지.

 

1. 16. KBS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B 3만원

1.18~2.28 연극 해롤드 앤 모드                                 S 5만원

11.6~4.26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5000

12.13~3.29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파리, 일상의 유혹     13000

                                                                      98000

 

 

 

사실 한달에 10만원을 자기를 위한 비용으로 쓰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한달에 10만원을 쓴다면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 한두번, 혹은 괜찮은 바에서 마시는 보드카 한 병 정도의 값으로 쓰는 게 훨씬 더 효용이 높은 분도 계실 겁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새해 담배값이 많이 올랐더군요)을 한달간 매일 즐길 수 있는 돈이기도 하군요. 옷이나 가방, 화장품 가격으로 따지면.... 비교하는 게 바보같을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10만원을 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아주 한정된 방법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어느게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소비의 방법에 우열을 두고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는 이상,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소비는 모두 욕먹어 마땅한 짓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종문화회관 앞을 그냥 지나치는 대중'에 대한 헛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몰입해서 즐길 거리가 있는 삶이(다른 말로 하자면 '취향을 가진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골프와 온천, 여행과 쇼핑, 그리고 낮 시간의 정치 토크쇼만이 인생의 전부인 노장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 두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뭐든 말입니다.

 

어쨌든 새해니까. 

 

그러고 보니 저렇게 팔팔하게 활동하시던 로린 마젤 옹도 지난해 이승을 뜨셨더군요.

 

살아 있을 때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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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neujahrskonzert 실황을 메가박스 생중계로 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생중계' 라든가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 '생중계' 등이 있긴 했지만 사실 진짜 생중계는 거의 없었죠(일단 그쪽에서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저녁 시간일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대략 24시간 이내에 다른 국가의 극장에서 방송되는 건 '생중계'로 친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1월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진짜 생중계였습니다. 주빈 메타 지휘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빈 현지 시각으로 1월1일 오전 11시15분부터 치러진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빈의 시차는 8시간. 대략 7시20분 쯤 중계방송(?)이 시작됐으니 생중계 맞습니다.

 

 

 

 

사실 저도 보기 전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본 건 아니고, 그냥 대략 "시간으로 볼 때 이번엔 진짜 '거의' 생중계겠구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시차를 따져 보니 진짜 생중계라서 좀 놀랐습니다. (분명히 생중계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 영상에서는 앵콜 곡이었는데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고, 생중계 방송사에선 자막까지 다 만들어 놓고 뭐 이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예전에도 몇 차례 쯤 국내 방송에서 신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방송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시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BGM으론 가능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사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소감을 좀 기록해 놓을까 합니다.

 

 

 

 

 

1. 생중계의 품질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 대략 15분에서 20분마다 화면과 음향이 LP 튀듯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영상과 음향이 싱크로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물론 결정적으로 방송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30분짜리 '음악' 콘텐트를 중계하는 데 7~8회 정도(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수신 이상이 발생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2.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5개관이 동원됐고 기타 지점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석 매진이란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콘텐트를 신년 이벤트로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 과장하면 '매년 1월1일은 메가박스에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3.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약 150여곡,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170여곡의 월츠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사실 월츠라는 음악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위한, '실용음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월츠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콘서트장이나 이런 이벤트를 통해 월츠를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것은 댄스뮤직을 좌정하고 앉아 '감상'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

 

4. 그러다 보니 전반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미션이 지난 뒤, 2부부터는 주빈 메타의 적극적인 진행 감각이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을 연주할 때에는 곡 후반을 피아니시모로 유지하다가 관객을 향해 큰 소리로 "etc, etc, etc" 라고 외쳐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더군요. 끝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곡 특성을 유머로 승화시킨.

 

5. 처음 들어 본 곡입니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학생 폴카'라는 곡이 연주됐는데, 이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곡이더군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에 나오는 '가우디아무스 이기투르 Gaudeamus Igitur' 파트의 변주로 보이던데... 이건 브람스의 패러디지, 아니면 브람스와 슈트라우스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래가 그 가우디아무스...

 

 

 

 

6. 이밖에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곡들에 발레 안무를 덧붙이는 아이디어(물론 공연 주최측보다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ORF가 짜낸 것이겠지만)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마음에 든 연출은 바로 Hans Christian Lumbye 의 곡인 Champagner-Galopp 을 연주할 때 등장한 '샴페인 병 따는 소리 내는 악기'와 단원들에게 술잔을 권하던 메타 옹의 퍼포먼스.  

 

8.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엔딩 곡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때 보여준 메타 옹의 박수 지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 음악의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크기의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얻어 내는 노련한 지휘자의 기량을 통해 '과연 음악에서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보여줬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앞부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메타 옹이 단원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빈 거주자, 독일어 능통자 내지는 음악 고수 여러분의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

 

9. 결론은 강추. 다음 기회에라도 한번 보실만한 콘텐트입니다. 정 뭐하면 2016년 1월1일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10. 이 이벤트를 놓친 분들께 추천 하나. 1월3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5 신년음악회'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단, 제목은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2014년 12월29일(현지시간) 열린 '새해맞이 음악회'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제목은 '신년음악회 New Year Concert'가 아니라 '새해맞이 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20332/ ) 인 겁니다. 뭐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죠.^ 물론 이런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1항 에서 지적한 생중계의 문제도 없고, 오히려 감상용 공연으로는 훨씬 더 좋을 듯.

 

 

P.S. 일본의 상류층 여성 사이에는 '기모노 입고 1월1일 빈에서 신년음악회 보기' 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기모노 입은 일본 여성 관객들이 최소 10명은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1090유로급  좌석인 모양이던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가장 싼 좌석은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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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순화동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9년.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2015년은 상암동에서 시작합니다. 새로운 방송 메카로 부각되고 있는 상암동...이지만 주변 환경은 아직 척박하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특히나 순화동 주변의 오래된, 혹은 내공 있는 맛집들이 매우 그리워 질 듯 합니다.

 

시청-순화동-충정로 주변에서 자주 가던 맛집들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순화동 주변에는 워낙 오래된 맛집들이 많습니다. 아시는 맛집이 없어서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텐데, 뭐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들은 제외했습니다. 유명하긴 한데 왜 유명한지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제외한 집들도 있습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맛집은 취향. 따지지 맙시다.

 

[지금부터 반말 모드]

 

 

 

1. 비진도 해물뚝배기 (A+뚝배기)

 

 

 

 

사진을 보고, 저 앞을 수십번 지나간 사람도 "아, 저 집이 그런 집이야?"라고 물어볼 정도. 주변을 잘 아는 사람에게 "고가도로 밑에 한정식 은정과 중국집 한성각이 있고, 그 건물 1층에 있는 집"이라고 설명해도 "거기에...?"라는 반응이 나옴.

 

이렇듯 존재감은 없으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충정로 최강의 맛집으로 정평이 난 집. 뚝배기에 해물을 그득 담아 국물을 내 주는데, 국물에서 MSG 맛이 거의 나지 않으나 놀랍게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남. (참고로 글쓴이는 절대 MSG 배제론자가 아님. MSG 맛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함. 다만 MSG 맛이 나지 않는 소박한 맛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비진도 해물뚝배기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서울 시내 여타 지역의 지점들과 이 집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 집이 그중 원조격인 것은 분명함.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비진도 해물뚝배기 충정로 직영점'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지점이 표시되는데, 아래 지도에 나오는 지점이 맞음.

 

단 테이블이 4~5개 뿐이고 11:30에 정확하게 오픈하기 때문에 경쟁률 장난 아님. 정말 앉기 힘든 집이라 더욱 가치가 드높은.

 

 

 

 

2. 진주회관(콩국수)

 

한여름에는 20~30분 대기가 필수인 서울시내 굴지의 콩국수. 일단 콩국수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젓가락 뜨는 순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콩국수 좀 빨아 봤다고 주장하면서 이 집을 부정하는 사람은 클래식 좀 듣는다면서 "난 베토벤은 좀 별로더라" 라는 식의 코멘트를 던지는 사람과 비슷한 대접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1만원 넘는 가격은 좀 아쉽.

 

여의도 백화점 지하를 통일한 진주집과는 친척이라는 후문. 사실 콩국수를 1년 내내 팔지는 않고, 콩국수 철에는 매우 불친절해진다는 특징이 있음. 이렇게 이미 유명한 집을 굳이 다시 소개한 건, 비수기에는 섞어찌개(내용은 부대찌개+오징어)와 김치볶음밥(이라기보다는 깁치철판비빔밥)이 맛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히 섞어찌개는 근동의 부대찌개류 중 최고.

 

 

 

 

 

 

 

3. 원조집 (닭한마리)

 

공식명칭은 "닭한마리 칼국수 원조집". 사진은 찍어놓은게 없는 것 같고, 비주얼은 맑은 국물의 일반 닭한마리와 매우 유사. 그런데 뭣보다 닭고기의 질이 순화동 주변의 여타 닭한마리 집들과 비교가 안 되는 양질이고,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와 나박김치의 중간 형태 쯤 되는 국물 시원한 배추김치가 일품.

 

남비를 올릴 때 마늘을 추가로 요청해 잔뜩 국물이 넣고, 간장소스+식초+겨자+매운 양념을 배합해 고기를 찍어 먹고, 국물이 적당히 졸았을 때 익은 마늘과 국물을 같이 먹는 맛이 일품. 배추김치로 국물 뒷맛을 없애면서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으면 식사 끝. 인당 1만5천원 정도 소요.

 

 

 

 

 

 

4. 남도식당 (추어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동 한복판의 추어탕집. 가벼운 된장 기운에 부담스럽지 않은 국물이 시원하고, 정갈한 반찬에 상을 받으면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워지는 명문의 위력이 여전하다. 서울 전역에 있는 추어탕집들의 내공이 동반 상승해 요즘은 웬만한 집이면 비슷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집의 매력은 여전하다. 특히 추운 날 강추.

 

다만 어느 시간에 가도 붐빈다는 점 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 눈으로 보는 줄의 길이에 비하면 회전률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그러니까 기다릴 만 하다. 그래도 죽어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정동까지 가기 전 전통찻집 덕수궁 옆 골목에 있는 '월매네남원추어탕'을 가셔도 된다. 이 집도 남도식당 근처라 인정을 못 받아 그렇지, 꽤 한다.

 

 

 

 

5. 버즈 앤 벅스 (각종 샌드위치)

 

일단 정동으로 접어들면 절대 가면 안 되는 집이 '길***기'라는 아주 으리으리하고 멋진 집. 뭐 워낙 입지가 좋아 늘 손님으로 미어 터지는 집이니 여러분이 안 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앞을 주저없이 지나 경향신문 쪽으로 죽 가면 왼쪽으로 고풍창연한 한옥 대문 형식의 이화여고 구 교문이 있고, 그 교문 안으로 들어가면 버즈 앤 벅스가 있다.

 

각종 샌드위치와 파이, 정식류를 비롯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맛을 낸다. 채광이나 조경도 일품. 근동의 '예쁜 밥집' 중 최고.

 

 

 

 

 

 

6. 진주집 (꼬리곰탕)

 

부근에서 추운 날, 중년 남자와 약속이 있다면 필승의 집. 유명한 갈치조림 골목 안에 있다. 꼬리곰탕이 워낙 비싼 음식이다 보니 보통 꼬리곰탕으로는 면이 안 살고, 이집 비장의 '토막'을 시켜야 하는데 19,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다만 비슷한 가격의 파스타 한 접시로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차가운 한파가 두렵지 않은 짙은 고기 국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4인 기준으로 6만원 정도 하는 꼬리찜을 시키고, 고기를 건져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과 국수를 끓여먹는 것도 별미. 남대문 시장의 꼬리곰탕이라면 올리브타워 지하에도 분점이 있는 은호식당이 라이벌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방 맛이 좀 과한 은호식당보다 다소 은은한 진주집을 훨씬 선호함. (이 정도는 취향 차이로 인정 가능)

 

 

 

 

7. 중림장 (설렁탕)

 

순화동 주변의 설렁탕이라면 전통의 잼베옥과 중림장이 쟁패를 벌인다. 가장 큰 차이는 MSG의 촉촉한 맛. 잼베옥은 거의 MSG의 수혜를 못 본, 다소 슴슴한 국물 맛이 일품이고 중림장은 상대적으로 고소하고 감칠맛도는 M의 세례가 선명하다. 김치도 중림장 쪽이 단맛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중림장 국물 맛이 훨씬 친숙한데, 이 집을 두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어마어마한 냄새. 한경빌딩 주변 50M 반경에까지 꼬랑꼬랑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밥을 먹고 나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생각나는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8. 고려정 (국수전골)

 

이 동네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가는데 가장 고민이 덜할 집. 가츠오부시+다시마+멸치 베이스 육수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여 먹는, 전형적인 국수전골이 일품이다. 물론 주 1회 이상 먹으면 금세 물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우 감동스럽다. 예전엔 낮에는 한정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방을 내주지 않는 거친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 1만2천원 정도. 아울러 밤에는 상당히 양질의 삼겹살을 낸다.

 

 

 

 

 

9. 마마스 (각종 샌드위치)

 

뭐 워낙 유명한 집이고, 여전히 경쟁력도 넘쳐난다. 1만원대 초반의 샐러드로 2인 식사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필리치즈샌드위치가 최근 질이 낮아지고 있어 아쉽긴 하다. 아무튼 최고.

 

 

 

 

10. 부원면옥 (냉면)

 

생각해보면 냉면이 그리 고급 음식이었을 리 없건만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인 시내 고급 냉면집들이 야속한 분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냉면집. 적당히 시장스럽고, 적당히 전통미 있는 달달한 국물이 씨원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빈대떡을 부치는 데 쓰는 돼지 비계 냄새가 확 풍기지만,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그 냄새 또한 이 집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부원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걸어 내려 오면서 적절한 지점에 있는 옛날식 팥도너츠를 사먹는게 부원면옥 방문의 완성.

 

 

 

11. 버거B

 

번지도 없는 위치라 좀 의아하지만, 프레이저 플레이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정면에 교통센터같은 건물(실제 왕년엔 교통센터였다고)에 있다. 맛 매우 훌륭. 이 근방에 이런 맛을 내는 수제버거집이 있다는 게 감동일 뿐이다.

 

아울러 이 집의 진정한 강점은 옥상. 야외가 부담스럽지 않은 계절에 옥상에서 식사를 하거나, 해가 저문 뒤 가로등 불빛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 도심 속의 낙원이 따로 없다. 언젠가 이 옥상에서 가든 파티를 해보겠다는 작은 꿈이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 슬프다.

 

 

 

12. 센나리

 

시청역 부근의 메밀국수집으로는 전통의 유림면(김수현이 별그대에서 간 그 집)이 있어 다른 집은 아예 안 보인다. 유림면의 명성에 누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물이며 단무지가 좀 짜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냄비우동은 비추지만 비빔메밀은 강추.

 

그런데 유림면이 부럽지 않은 작은 식당이 하나 감춰져 있다. 센나리(千成)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작은 집. 테이블이 4개 정도 뿐인 작은 집인데 소바 정식이나 오뎅 정식이 먹을만. 밤에는 간단한 안주에 한잔 술을 곁들이는 작은 술집으로 변신한다. 운치있다.

 

 

 

13. 해원각

 

원래 신문사의 로망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맛있는, 오래된 중국집 골방인데 불행히도 순화동에는 그런 중국집이 드물다. 가장 기본인 짜장면 맛이 약하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집으로는 한경빌딩 바로 옆에 있는 해원각을 추천하고 싶다. 단 기본 메뉴 - 짜장 짬뽕 탕수육 깐풍기 - 에서 벗어나면 책임지기 힘들다.

 

 

 

14. 산수갑산 (삼수갑산)

 

양질의 목살구이로 정평이 난 집. 낮시간에는 목살과 된장찌개를 결합한 목살구이 정식으로 유명했다. 저녁에는 목살 못잖게 곱창전골이 맛있다. 가끔 순화동의 다른 집이 곱창전골 맛집으로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데, 이 집을 한번 가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지실 듯.

 

물론 본래 지명은 '삼수갑산'이 맞는데, 이 집 안에는 두 표기가 다 써 있다. 그냥 혼동을 피해 병기.

 

 

 

 

15. 안춘선 갈비배추탕

 

좀 멀리 갈 각오가 돼 있을 때 가는 집. 제목은 갈비배추탕이지만 돼지고기 수육이 우선 일품. 절대 싼 집은 아니지만 음식이 그만한 값을 한다.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앉아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집. 삶은 돼지고기를 깍두기 국물과 깻잎에 싸 먹으면 시름이 절로 가신다. 엷게 된장을 푼 갈비배추탕에선 우거지 갈비탕과 또 다른 달콤한 배추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보다는 '저녁에 한잔'이 어울림.

 

 

 

16. 뚜껑집

 

서울 시내에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고 부르는 집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태원의 바다식당과 서대문 경찰서 뒤의 뚜껑집 정도? 물론 이름만 같을 뿐,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뚜껑집은 그냥 '전형적인' 부대찌개. 칼칼하고 진한 맛이다. 햄 구워 먹다가 찌개 해서 소주 한잔 하면 좋을 집.

 

 

 

 

17. 중림집

 

정작 사무실이 한경빌딩에 있을 때는 존재를 몰랐던 집. 꽤 연식이 있다. 점심 메뉴로는 갈치조림, 동태탕, 제육볶음이 인기다. 가격도 1인분 만원 미만인데 내용이 실하다는게 놀랍다. 제법 두툼한 갈치를 보고 '어떻게 이 가격에...?'라고 물으면 '중국산이야. 그런데 어차피 서해바다에서 잡은 거라 똑같애'라고 시원하게 말해주시는 사장님. 사실 이 집을 한번 가 보면 남대문시장의 희락을 갈 수 없게 된다. 메뉴는 파전, 두루치기, 제육 등이 있어 저녁에 슴슴하게 소주 한잔 하기에도 딱 어울린다.  

 

 

 

 

18. 대보찻집

 

밥집은 아니고 찻집.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외부 찻집 중 하나. 호암아트홀 맞은 편, 마마스와 장호왕곱창 사이 지하에 있다. 굉장히 허름하고, 70년대 역전 다방 같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전통차는 진하고 맛있다. 특히 여름에 마시는 냉대추가 일품이다.

 

그런데 검색하니 2호점이라고 나와서 깜짝 놀람. 대체 1호점은...?

 

 

 

 

19. 에가오

 

에가오라는 집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체인인 듯. 나름 괜찮은 케이크와 커피를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집의 빙수맛이 일품이다. 가격도 7~8천원대. 물론 아티제도 빙수가 좋지만 가성비로는 에가오에 당할 수 없다. 우유맛이 너무 진하지도 않은 것이, 팥을 너무 많이 주지도 않는 것이 은은하고 적당한 맛.

 

 

대략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집은 이 정도. 물론 독립문 바로 옆으로 이사간 대성집 도가니탕이나 청파동의 민물매운탕집, 마포의 진미게장, 명동 중국대사관 입구의 오래된 화상들 등 '범 서소문권'의 맛집들도 생각이 간절할 것 같다.

 

이 동네에 남아 계신, 혹은 새로 오신 분들에겐 이 리스트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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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그룹 어나니머스의 활동,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홍콩 민주화 시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공통점은 뭘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뾰족한 코와 팔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어떤 남자의 얼굴을 묘사한 가면이죠. 그런데 최근까지 이 가면이 누구의 얼굴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가이 폭스, 가이 포크스라는 남자는 한때 영국인들에게 반역자, 혹은 악당의 대명사로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이 폭스 데이'라고 불리는 매년 11월5일 밤이면 영국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 뒤꽁무니에 폭죽을 달아 공중으로 날려버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다 보니 어느새 이 남자는 자유와 민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가이 폭스

[인명] Guy Fawkes(1570~1606).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에 폭탄을 설치해 국왕 제임스 1세와 주요 귀족들을 몰살시키려다 실패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21세기 들어 그의 얼굴을 본딴 가면이 민중 저항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로 변신했다.

 

비슷한 얼굴의 가면을 쓴 시위 인파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를 메우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시작으로, 프랑스 터키 헝가리 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같은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추고 구호를 외쳤다. 웃는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자 형으로 멋지게 치켜올라간 콧수염이 특징으로 누구나 같은 얼굴의 가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2014 11월에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이 가면을 쓴 시위대가 포착됐다.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도 자신들의 상징으로 같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거나, 웹상에 표시되는 영상에 이 가면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때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가면을 가리켜 어나니머스 가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면은 가이 폭스 마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귀도 폭스(Guido Fox)라고도 불리는 가이 폭스(한글 표기로는 가이 포크스라고 쓰기도 한다) 1570년 영국 중부 요크의 가톨릭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군인의 길을 걸었고, 스페인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페인 군에 가담해 싸울 정도로 골수 카톨릭 전사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영국 국왕이 된 제임스 1세는 본래 스코틀랜드 왕가 출신으로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왕위에 오른 뒤에는 국론 통합을 위해 영국 국교만을 인정하고, 이에 반발하는 카톨릭과 청교도 모두를 탄압했다. 폭스는 제임스 1세의 배신에 분개했고, 동지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지하로 땅굴을 판 뒤 폭약을 설치해 왕과 그 측근들을 일거에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음모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 일이 너무 커질 것을 겁낸 음모자 중 누군가가 왕의 측근 몬티글남작에게 익명의 편지로 계획을 고발했다. 몬티글 남작의 하인 중 하나가 다시 일당들에게 음모가 들통났다고 알려 줬지만, 눈에 띄는 대응 조치가 없자 폭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을 끌자 제임스 1세 본인도 음모를 전해 듣게 됐고, 폭스는 거사를 저지르려던 115일 당일 밤 체포됐다. 폭스와 동지들은 1606 131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영국인들에게 가이 폭스라는 국왕 시해를 시도했던 흉악범으로 유명해졌다. 115일은 가이 폭스 데이’, 혹은 음모의 밤(Plot Night)’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 노는 축제일이 됐다. 미국 학원문학의 고전인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골목대장(The Story of a Bad Boy)’에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소년들이 가이 폭스 데이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가면을 쓰거나, 가이 폭스 인형에 폭약을 달고 거기에 불을 붙여 인형을 불태우는 놀이를 했다. 한마디로 아주 유명한 악당이었던 셈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이뤄졌다. 몇몇 역사가들은 그의 계획이 단순한 역모가 아니라 종교 탄압에 대항한 민중 봉기라고 해석했고, 미국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는 이런 재해석을 바탕으로 1982년 만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내놨다. 전 세계적인 민중의 저항을 주도하는 주인공 V가 가이 폭스의 가면 뒤에 얼굴을 감췄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주인공 V(휴고위빙)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중이 가이 폭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동참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후 이 가면은 세계 곳곳에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이 폭스 자신도 음모에 성공한 것 보다 이런 명성을 더 흡족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기다.

 

사실 그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다. 그의 이름인 ‘guy’이상한 옷을 입은 기이한 남자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됐고, 19세기 쯤 미국으로 건너가녀석, 친구라는 의미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guy’라는 단어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끝>

 

뉴욕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홍콩에서도, 가이 폭스의 물결입니다.

 

가이 폭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영국의 종교 지도에 대한 지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영국 인구의 절대 다수는 기독교도이지만 그 분포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파는 흔히 성공회(Anglican Church)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입니다. 카톨릭에 대항해 만들어진 교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동기가 다른 신교(protestant) 교파와는 매우 다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스페인 출신인 왕비 캐서린(원래 형수였던)과의 이혼을 반대하는 카톨릭 교회에 한대 먹이기 위해 '영국 국왕의 명은 교황의 명보다 우선한다'고 선포한 데서 비롯된 교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聖公會 라고 부르는 것인데,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된 헨리 8세의 사적을 보면 과연 '성공'이라고 불릴만한 왕인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아무튼 헨리 8세와 아들 에드워드 6세, 그 뒤를 이은 제인 여왕(재위 9일만에 왕위에서 밀려난)에 이어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외가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므로 영국을 다시 카톨릭의 나라로 되돌려놨지만 그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가 아버지 헨리 8세의 유지를 이어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잉글랜드'만의 이야기고, 저 북쪽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카톨릭의 땅이었습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당연히 후사가 없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엘리자베스 1세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장남인 제임스 1세였습니다. 당연히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탄압(?) 당했던 카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1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수장답게 성공회를 장려하고 카톨릭을 억눌렀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가이 폭스를 비롯한 카톨릭 과격파들은 제임스 1세를 배신자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P.S. 가이 폭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 소설 'A story of a bad boy'는 '얄개전'의 저자인 조흔파 선생에 의해 '골목대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바 있습니다.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같은 분들이 쓰신 '얄개전'이나 '남궁동자', '에너지 선생', '6학년 0반 아이들', '아파도 웃는다', '나는 둘' 등의 학원 문학 장르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유산이랄까요. 그래서 지금도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라는 표기보다는 '토마스 베리 올드릿취'라는 표기가 훨씬 정겹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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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쓴 글들을 방출합니다. 물론 이미 '매거진 M'을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십상시의 여파가 남은 동안 매년 연말 등장하는 교수협회의 고사성어에 '지록위마'가 등장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0.2초 내로 답이 나옵니다. '환관'이죠.

 

어째서 우리는 2014년에 환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이고 중간에 조고와 지록위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록위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더군요.

(마지막에 2001~2014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들이 궁금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거의 '동의어 찾기' 수준.)

 

 

 

 

 

십상시

 

[명사] 十常侍.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세를 장악했던 장양 등 열 명의 환관을 통칭해 부르던 말.

 

500여년간 동양 남성의 필독서였던 소설 삼국지연의천하의 대세란 본래 갈라지면 하나로 합쳐지고, 합쳐지면 또 갈라지는 것(天下大勢, 分久必合,合久必分)이란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광무제에 의해 시작된 후한(後漢)의 정세가 어떻게 어지러워지면서 위, , 촉 삼국의 뿌리가 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서기 168,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영제(靈帝)는 평생을 환관들의 영향 속에 살았다. 몇몇 신하들이 도전했으나 영제는 매번 결정적인 시기에 환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선대 환제(桓帝) 때 부터 황제를 모신 열 명의 내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권을 농단했다. ‘삼국지연의는 이들의 이름을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건석、정광、하휘、곽승이라 기록하고 있다. 정사인 후한서도 장양, 조충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그 수가 12명이다.

 

이들의 폐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의 통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됐지만 영제는 주색에만 탐닉하다 189, 34세로 숨을 거뒀다. 16세인 영제의 장남 유변(劉辯)이 뒤를 이었으나 5개월 만에 십상시의 난을 겪으며 동탁에 의해 쫓겨나 소제(少帝)라 불렸다.

 

명색이 십상시의 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와 그 일족들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정권 탈취 음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는 이름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환관들의 권력이 철저하게 황제의 총애에 기반한 것이고 보면, 환관들이 황제를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었다. 하지만 해바라기 권력의 속성상 이들은 군왕의 심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였으므로, 대개 국정은 극도로 어지러워졌다.

 

십상시 외에도 중국 역사에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진시황 때의 조고를 비롯해 촉한의 황호, 당 현종 때의 고역사, 당 희종 때의 전영자 등 부지기수다. 명 태조 주원장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환관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정치 참여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엄한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고작 37년 뒤인 1435, 5대 영종 때 다시 환관 왕진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시대를 전횡한 내시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치 사대부들의 견제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5(1494)에는 임금이 몇몇 환관들과 의관들에게 가자(加資, 관료들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를 내리자 조정 백관들이 크게 반발한 기록이 있다. 특히 대사간 윤민은 한나라 원제가 석현 한 사람을 등용했을 때 뒷날 오후(아래에 자세히 설명)나 십상시의 권세를 예견했겠느냐228일부터 312일까지 11회나 상소를 올리며 가자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성종 또한 결국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훨씬 신중해졌다.

 

이렇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내시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수준의 학문과 교양을 갖춘 이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학식을 갖추면 정치에 관여한다 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업무 수행에 걸맞는 교양을 쌓는 것을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연구서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엔 내시부에 환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3명의 내시고관을 상주시키고 어린 내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순조 때 시문집 노곡만영을 남긴 이윤묵 같은 문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중국 내시가 조선 내시에 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이유를 황제의 권력과 조선 국왕의 권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은 일찍이 사대부의 나라로 자리잡았고, 어떤 군왕도 중국 황제처럼 전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 황제들이 권력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던 두 축은 종실(또는 외척)과 환관이었다.

 

환관 권력의 대명사인 십상시는 본래 영제의 전임자 환제의 시대에서 태동했다. 환제는 외척 세력 타도를 위해 암암리에 환관들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공을 세운 다섯 환관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오후(五侯).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영제는 자연스럽게 환관들을 자신의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인의 장막이 최고 통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제와 십상시의 시대에서 2천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외척환관의 권력 암투가 뉴스가 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담일 수도 있겠다(끝)

 

 

 

 

 

요약하자면 내시 권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척? 자기 집안 생각 뿐이고 삼촌? 사촌? 다들 내가 어떻게 되면 이 자리를 탐낼 자들이야. 아예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환관들? 저들에겐 가문도 없고, 그저 믿을 건 나 뿐이잖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주고, 나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은 쟤들밖에 없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시 권력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 옆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안위가 내시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시 권력은 '어르신'의 기분과 안전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흉악하고 불측한 것들'과 '어르신'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죠. 그러는 사이 국정은 개판이 되고 맙니다.

 

정치는 본래 욕망의 콜로세움입니다. 그 다양한 욕망과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해서 스스로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때로 그 욕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로를 수정하는 것이 통수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듣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을 던져 주는 오래된 측근들, 그들의 인의 장벽에 갇혀 '욕망의 정치판'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시 권력'의 핵심이고, 세간에서 말하는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현실인 것입니다.

 

 

 

 

아울러 2001년부터 교수신문의 한해 정리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01 오리무중 五里霧中  설명이 필요 없는.
02 이합집산 離合集散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국론 분열
03 우왕좌왕 右往左往  설명이 필요 없는.
04 당동벌이 黨同伐異  같은 편끼리 떼지어 상대방을 치는 국론분열에 대한 개탄
05 상하화택上火下澤   위는 불이요, 아래는 못. 다급한 상황

06 밀운불우 密雲不雨  구름은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07 자기기인 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누구를 속이려느냐는 개탄

08 호질기의 護疾忌醫  의사를 믿지 못해 병을 더 키움. 누가 자기 편인지도 모르고 충고를 무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탄
09 방기곡경 旁岐曲逕  곧은 길이 아닌 구부러진 골목길. 한마디로 '정도를 가라'는 뜻.
10 장두노미 藏頭露尾  머리는 감췄는데 꼬리는 뻔히 보임.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11 엄이도종 掩耳盜鐘  자기 귀만 막고 종을 훔치다. 역시 눈 가리고 아웅.
12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 썩은 세상.
13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

(하지만 '도행역시'의 경우에는 고사를 살펴보면 본래의 맥락은 "어쩔수 없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이므로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절한 사용은 아닙니다. 이건 교수신문의 무리수.)

그리고... 올해의 지록위마 指鹿爲馬. 뭐 속성상 어떤 해라도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탄 일변도인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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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vecard.joins.com/1278 에서 이어집니다.

 

마야 우붓의 그림 같은 숲속 수영장.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리버 카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화창한 날씨 속이지만 오전까진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셀카봉의 성능 테스트를 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아직 좀 차갑다.

 

 

 

사진으로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 정글 속의 수영장은 진정 아름답다.

 

 

 

리버카페 뒤로 나 있는 샛길로 언덕을 올라가 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계곡을 따라 가면 끝없는 밀림.

 

약간 과장이 보태지긴 했지만 정말 밀림이다.

 

 

 

 

기억나시겠지만 마야 우붓은 호텔 경내로 강이 흐른다. 물론 강을 보려면 계속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꽤 한참.

 

그리고 강이 나온다.

 

 

 

 

 

호텔 경내에 이런 밀림과 급류가 흐른다. 어마어마하다.

 

 

 

위쪽을 쳐다보면 까마득한 밀림 속 절벽.

(그런데 이게 호텔 안의 정원...이라니까.)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면 폭포도 나온다.

 

 

                                                                다시 올라갈 길이 막막한 수준.

 

 

 

이렇게 호텔 안에서 대자연을 만끽하고, 흐르는 땀을 씻는다.

 

 

                                                  간신히 돌아온 지상. 이제야 살 것 같다.

 

 

저녁에는 호텔의 유일한 바에서 이브닝 드링크를.

 

영국식 풍습인지 오후 4시에 애프터눈 티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기대할 만한 서비스는 아니다. 티 두어 종류에 과일과 인도네시아 식 떡 종류가 나오는데 가짓수도 한가지 뿐인데다 양도 부실하다. 떨어지면 바로 바로 리필해 놓지 않는다. 예전에 다녀오신 분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 애프터눈 티가 식사 대용이 될 정도로 풍성했다던데, 그게 호텔 경영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무튼 호텔에서 우붓 시내로 가는 셔틀이 오후 5시, 시내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셔틀이 5시30분에 끊긴다는 건 여행자 입장에선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물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손님의 수를 늘려 보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사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차라리 우붓에서 식사와 유흥을 좀 즐기고 사설 택시를 이용해 호텔로 돌아오는 편을 더 선호한다. 호텔 택시(라이드)를 부르면 4~5만 루피아, 우붓 시내에서 마야 우붓 정도로 들어오는 택시를 잡아 타면 딜 하기 나름인데 3만 루피아 내외다(처음에는 거리에 서 있는 택시 - 라기보다는 나라시 - 기사들이 한 5만 정도를 부른다). 어차피 한화로 3천원 내외라 크게 다투게 되지는 않는다.

 

우붓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대략 10만 루피 이내에서 2인 식사와 음료가 해결된다. 반면 호텔 구내에서는 1인에 최하 15만 루피는 든다고 봐야 한다. 뭐 체면이 깎인다고 싫어할 사람도 있겠으나, 비용 절감을 생각하면 컵라면(포트 이용)이나 햇반(뜨거운 욕조 이용^^) 등을 사용해 방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셔틀을 타러 나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호텔 로비를 보게 됐다.

 

 

우붓 시내는 그리 큰 볼거리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붓 시내에 장신구며 전통 예술품, 혹은 공예품 등 살 거리가 많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우붓의 인사동'이라는 잘란 드위시타(Jalan Dewisita)를 가 봐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붉은 선 정도가 가장 잘 발달한 쇼핑가. 그리고 왼쪽 아래로 보이는 사각형 운동장 아래 쪽으로 죽 내려가면 역시 번화가인 몽키 포리스트 로드가 나온다. 거의 한 집 건너 맛사지 샵과 식당, 카페가 있다. 맛사지는 60분 기준 10만 루피아, 한국 돈으로 1만원 정도. 태국보다도 엄청나게 싸다. 다만 스타일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흔히 타이 마사지라고 불리는 종류는 관절을 꺾고 근육을 주물러서 맺힌 곳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안마에 더 가깝다. 하지만 발리 마사지는 진짜 마사지, 즉 기름을 피부에 문질러 흡수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많이 걷거나 수영으로 지친 근육을 풀어 주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다. 피부에는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가격이 워낙 싼 탓인지 마사지 샵의 시설에 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좀 강하게 주무르는 안마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지 발리에서의 마사지에 큰 감흥을 느껴 보지 못했다.

 

물론 음식에 대한 한 우붓은 어느 집을 가거나 신뢰해도 좋다. MSG를 넉넉하게 써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뭘 먹어도 입맛을 당긴다. TRIPADVISOR에서 추천한 멜팅 웍 아룽(Melting Wok Arung)을 가 봤다.

 

 

 

이 집에서 추천하는 정식류가 4800~5800 원 수준. 저렴한데 맛도 훌륭하다.

 

 

인도네시아 전통주인 아락(Arak)에 레몬과 꿀을 탄 음료. 아락은 40도 가량의 독주다. 쨍한 느낌이 온다. 고량주같은 깔끔한 맛이라기보다는, 많이 마시면 바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열대산 스피릿의 느낌이 있다.^

 

 

 

 

손님 중에는 서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프랑스계로 알려진 여주인은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센스를 갖췄다. 월드와이드 맛집의 지위를 즐기는 모양새라고나. 아무튼 맛도, 서비스도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우붓 야경. 밤에는 제법 운치가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이 길을 세계 각국 청춘들이 가득 메운다고 한다. 10월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거리는 한산했다. 쿠타나 짐바란 같은 해변에는 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고들 하는데, 과연 산속인 우붓에 오는 젊은이들은 뭘 기대할지 궁금했다. 래프팅? 하이킹?

 

 

우붓의 할거리 중에는 리조트 투어도 있다.

 

흔히 우붓 지역 리조트에는 두가지 뷰(view)가 있다고들 한다. 바로 밸리 뷰(Valley view)와 논 뷰(^^)다.

 

밸리 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조트 중에 앞서 말한 행잉 가든이 있고, 이 바이스로이(Viceroy)가 있다. 바이스로이는 모든 객실이 풀빌라인 고급 리조트다. 가격도 1박에 150만원 이상. 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식사를 하러 갔다.

 

 

 

바이스로이 메인 풀의 위용. 저 수영장도 우붓 특유의 인피니티 풀(infiniti pool)이라 끝에서 저절로 물이 흘러 넘쳐 공중에 뜬 느낌을 준다. 저 밀림지대는 건너편 언덕이라, 수영장 끝 벽에 매달리면 일망무제의 호쾌한 뷰를 즐길 수 있다.

 

다만 뭘 먹어도 맛난 우붓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식사가 바로 이 바이스로이에서의 식사였다. 가격에 비해 맛은 그닥. 어쩌면 주 고객인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춰진 탓일 수도 있겠다.

 

 

 

식사 후에 정중하게 요청하면 버기 카를 이용해 리조트 구경을 시켜준다. 물론 구경은 공짜다.

 

 

150만원짜리 풀빌라의 위용. 모든 객실에서도 메인 풀에서 볼 수 있는 밸리 뷰의 위용을 즐길 수 있다.

 

다만...이런 리조트에서 1박을 하느니 나같으면 마야 우붓에서 5박을 하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바이스로이가 멋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치 마야 우붓이 마음에 들었다.

 

 

 

마야 우붓에서는 밤 시간에 야외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엄밀히 말해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 앞 테이블을 예약해야 하지만, 사실 2층의 바에서 내려다 보면 공짜다.^^

 

 

 

이렇게.

 

 

 

 

밤하늘과 리조트의 조명은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너무 좋아서 생긴 풍경. 저 점점이 다 별이다.

 

바이스로이의 쭉 펼친 뷰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마야 우붓의 메인 풀 역시 뒤지지 않는다.

 

수영장 저 끝에 매달려 건너편의 계곡과 밀림을 바라보면, 1년 내내 그러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지치면 이런 옆 동굴 공간까지 완비.

 

 

 

동굴 공간에 음식과 음료를 넉넉하게 배달시키면 2인 기준 한화로 3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아주 싼 비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호텔 휴가라고 생각하면 지출할 수 있는 가격.

 

 

그리고 종일 있어도 동포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야 우붓이 취향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다들 관광을 나가신 것인지.

 

 

바에서 맥주 한잔을 즐긴 뒤 바라본 메인 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휴양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했다.

 

다양한 외부 활동과 관광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호텔. 하지만 어딘가 조용히 콕 박혀서 한없는 휴식과 낮잠, 햇살과 독서, 약간의 수영을 즐기면서 그야말로 retreat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호텔을 권하고 싶다. 글자 그대로 낙원의 다른 이름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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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늦은 휴가를 발리로 다녀왔다. 발리 얘기를 하면 다들 "해변에서... 좋았겠다" 라고 얘기하지만 이번엔 바다 짠 내음도 맡지 않고 돌아왔다. 발리 섬 한 복판의 우붓(Ubud) 지역에 있는 마야 우붓 (Maya Ubud resort & spa) 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야 우붓을 가리라고 마음 먹은지는 꽤 됐지만 이번에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된 것. 그리고 마야 우붓은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껏 가 본 리조트 호텔 가운데 당당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야 우붓의 메인 수영장. 한달 가량 지났는데 벌써 그립다.

 

 

 

 

이번에는 발리의 우붓 지역을 가겠다고 했더니, 현재 발리에 거주하며 발리 지역 탑클래스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발리 전문가 K씨는 "형, 우붓을 누가 가요? 한국 사람 아무도 안 가요. 거기 너무 멀고 별로야"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에 마음이 흔들려선 안된다. ;;  

 

 

지도상의 위치는 보는 바와 같다. 아래쪽, Kuta라는 지명 바로 아래,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곳이 발리 웅우라이 국제공항의 위치다. 한국에서 발리로 가는 관광객의 90% 이상은 그 아래, 그러니까 South Kuta라고 써 있는 작은 반도 지역으로 간다. 공항에서 가까운 이 지역에 누사두아, 짐바란, 쿠타, 레기안, 스미냑 등 중요한 해변 관광지대가 몰려 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명 리조트 호텔들도 거의 다 이 지역에 있다.

 

하지만 처음 발리에 갔을 때 누사두아의 인터콘티넨탈을 갔고, 두번째는 짐바란 부근의 풀빌라를 갔기 때문에 이번엔 색다른 발리를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우붓 지역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위 지도에서 보듯, 우붓 지역은 공항에서 북북동으로 꽤 떨어져 있다. 물론 절대 거리가 먼 것은 아니나 발리의 교통 사정이 썩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구글맵으로 때려 보면 공항에서 마야 우붓 리조트까지 40km 내외. 택시를 이용하는데 갈때는 약 70분, 귀국 길에는 50분 정도 걸렸다. 갈 때 시간이 오후 6시 정도로 퇴근시간이 막 시작될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양호한 듯 하다. 하긴 공항에서 출발할 때 택시 기사가 "노 트래픽, 노 트래픽" 하면서 기도하는 시늉을 한 걸로 볼 때, "발리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듯. 전언으로는 공항에서 우붓 갈 때 90분 쯤 걸렸다는 주장도 있었다.

 

말 난 김에 얘기하자면 공항의 택시 서비스에서 우붓까지는 25만 루피아로 가격이 매겨져 있었지만, 목적지인 마야 우붓은 우붓 외곽이므로 35만 루피아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단호하게 "30만 루피아"를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환율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놓인 시점의 여행이었으므로 대략 1USD = 1,000원 = 10,000 루피아로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싼 가격도 가능. 한국어 상담이 가능한 우리발리 www.uribali.com 를 이용하면 25달러에 공항 픽업 또는 송영을 받을 수 있다. 5천원 차이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발리에서는 꽤 큰 돈이다.

 

 

 

 

우붓이 뭐하는 데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대개 이런 사진을 보여 준다. 처음 보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머, 이 호텔로 가시는 거에요?" 라고 말하면 조금 머쓱해진다.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붓의 행잉 가든(Hanging Garden) 리조트 사진이기 때문이다.

 

발리 남쪽의 해안가 호텔들이 자랑하는 것이 오션 뷰라면, 우붓 지역의 리조트들은 저 밸리 뷰(Valley View)를 자랑거리로 갖고 있다. 사진만 봐선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 수영장과 건너편의 원시림 사이에는 거대한 계곡이 있고, 수영장 끄트머리에서 건너편 원시림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나 행잉 가든은 수영장을 2단으로 배치해 사진을 찍었을 때 밸리 뷰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즉 사진발이 최고인 리조트다.

 

행잉 가든은 이 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1) 우붓 시내에서도 차로 20분 이상 떨어진 외진 곳에 있고 2) 이름 값을 하느라 비싸고(전체 룸이 풀빌라고 1박 최하 500불 수준), 3) 직원들의 수준이 떨어져 불친절하고 4) 음식이 그저 그렇다는 평도 얻고 있었다(tripadvisor에 나온 내용들이니, 행잉 가든 관계자가 혹시 항의하시려거든 그 쪽으로 하시기 바란다).

 

반면 마야 우붓은 1) 우붓 시내에서 차로 5분(3분?) 거리고, 2)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계절에 따라 조식 포함으로 230~300불 정도), 3) 음식 및 서비스가 최고라는 평이었다. 여기 하나 보태자면 사실 행잉 가든은 저 밸리 뷰 하나 뿐이지만 마야 우붓은 광대한 대지 위의 조경 하나하나가 예술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숙박비의 차이는 행잉 가든은 룸 전체가 풀빌라고, 마야 우붓은 풀빌라 외에도 일반 객실이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풀빌라끼리만 비교한다면 행잉 가든이 훨씬 더 비싸다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개인적으로 풀빌라라는 형태의 방이 왜 선호되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절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싶지 않은 셀렙이거나, 수영복 알러지가 있어서 수영을 반드시 알몸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비싼 풀빌라에 묵는 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야 우붓으로 마음을 정하고 호텔 예약에 들어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호텔 홈페이지보다는 익스페디아나 호텔스닷컴이 더 싸야 정상인데 마야 우붓은 메인 홈페이지가 더 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 사람이 사기에 가장 싼 곳은 국내 사이트인 트래블발리(http://www.travelbali.co.kr/) 였다. 무슨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발리에 대한 한 분명히 가장 싸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이트다. 비교해 본 결과 확실히 그렇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마야 우붓의 모양. 남북으로 엄청나게 길다. 사진 위쪽, 그러니까 북쪽에 메인 출입구가 있고, 출입구에서 차로 1분 정도 더 들어 와야 로비와 메인 빌딩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 왼쪽(서쪽)은 논, 오른쪽(동쪽)은 강이 흐른다. 강이 있다는 것은 깊숙한 계곡이 있다는 뜻.

 

 

마야 우붓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위성 사진. 왼쪽이 우붓 시내 중심가, 오른쪽이 거기서 동쪽으로 쭉 가면 있는 마야 우붓이다. 왼쪽 중간의 네모 칸이 우붓 한복판의 운동장(아마 우붓에 가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보셨을 그 운동장이다). 호텔 하나가 우붓 다운타운 거리의 크기와 맞먹는다. 직접 가 보면 그 규모에 일단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호텔 한 복판의 메인 빌딩 확대 사진. 1번이 웨스트 윙, 2번이 로비, 3번이 이스트 윙이다. 4번은 레스토랑과 라운지 등 부속 건물, 5번 위치에 메인 풀이 있다. 웨스트 윙과 이스트 윙은 일반 객실이 있는 3층 건물. 사진 아래 쪽으로 이빨같이 풀빌라들이 박혀 있다.

 

 

 

웨스트 윙 2층의 일반 객실(수피리어 룸)은 평범한 동남아 지역의 호텔 객실이다. 당연히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온다. 별 장식 없는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좋았다.

 

 

침대 쪽에서 본 화장대와 기타 집기들. 왼쪽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발코니가 있다. 물론 마야 우붓에서 발코니에 앉을 일은 별로 없을 듯 하고, 주로 빨래 너는데 사용한다.

 

웨스트 윙에 객실을 잡으면 서쪽의 논 뷰(Rice Field View), 이스트 윙에 묵으면 밸리 뷰가 보인다는 설명인데, 이 말만 들으면 이스트 윙이 좋아 보이지만 불행히도 이스트 윙은 울창한 숲 때문에 밸리 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반면 웨스트 윙은 논 뷰..가 제법 쓸만하다.  

 

 

 

 

도착 첫날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펼쳐지는 논 뷰. 평화롭고 정겹다.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풍경. 가슴이 설렌다.

 

아침 식사!

 

 

레스토랑은 메인 빌딩 1층에 하나, 그리고 남쪽 끝에 있는 리버 카페에 하나 있다. 메인 빌딩 2층엔 바가 있다.

 

 

개방형 구조가 아름답다. 특이한 건, 이런 개방형 구조인데도 레스토랑 안에서 벌레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점.

 

 

음식의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지만, 맛은 매우 훌륭하다. 오믈렛도 잘 부치고, 특히 빵 종류의 수준이 높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과일에 탐닉했다. 특히 망고스틴. 조식 때마다 10개씩은 먹었다.

 

...그리고 바로 딴 망고스틴은 개미의 서식지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저 윗부분의 녹색 이파리를 뜯어내면 개미가 20마리씩은 나온다. 유독 망고스틴을 개미가 좋아하는 듯.

 

 

 

식당에서도 바로 밸리 뷰가 보인다.

 

사실 사진으로 이 밸리 뷰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말로 설명하자면, 사진 아래쪽의 연한 녹색 식물군과 사진 위쪽의 진한 녹색 식물군 사이에 바로 페타누 강이 흐르는 큰 협곡이 있다.

 

그러니까 이 뷰가 협곡을 끼고 있는 건너편의 밀림지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쾌한 뷰인데, 사진상으로는 그 효과를 표현할 재간이 없다. 아무튼 직접 보는 뷰는 이 사진보다 1,000배 이상 멋지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있는 메인 풀 역시 마찬가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끄트머리로 가면 일망무제의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밀림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줄 정도.

 

하지만 일단 메인 풀보다 먼저 남쪽의 리버 카페 앞 수영장을 가 보기로 한다.

 

 

호텔 남쪽으로 향하는 길. 야자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다.

 

 

남쪽 끝. 리버 카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 엘리베이터 타워 앞에서 이 계곡 뷰는 절정을 이룬다. 물론 이런 사진으로 보는 뷰는 실제 풍경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직접 가서 보신다면 절대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남쪽 수영장을 내려다 본 모습.

 

이 두번째, 남쪽 수영장은 메인 빌딩이 있는 지대에서 약 5~60미터 가량 낮은 지대에 있다. 즉, 강이 굽이치는 계곡 아래 쪽에 있다는 말이다.강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밀림 속에 폭 파묻힌 느낌을 준다.

 

 

 

수영장 바로 밑으로 강이 굽이쳐 흘러간다.

 

 

 

내려와서 보면 이렇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선베드도 5~6개 뿐이므로, 오전인데도 경쟁이 치열하다. 숲과 계곡에 폭 파묻힌 곳이므로, 오전에는 사실상 수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이 차다. 당연히 물속에는 아무도 없다.

 

 ....지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수영장 바로 아래로 저렇게 강이 흐른다. 셀카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각도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음;;;

 

 

 

에라. 쉬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문제는 이게 이미 과거 시제라는 것... ㅠㅠ. 돌아가고 싶어요.)

 

 

http://fivecard.joins.com/1286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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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뜨린 것 같은데...하면 역시 빠뜨린게 있습니다. 네. 12월이 1주일 지난 12월 가이드.

 

다행히 아직 유효기간이 지난 볼거리는 없네요. 잘 나가시는 분들은 송년회 날짜가 부족해 두탕씩 뛰기도 하신다던데, 이젠 그냥 마음 편히, 시간 안 되는 사람은 다음달에 본다고 생각하시고, 이런 속세의 번뇌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분들은 좀 조용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2월의 문화가이드 (2014)

 

12월이야. 1년이 다 갔어. 가슴이 저리지? 이렇게 또 해놓은 것도 없이 한살을 더 먹는다는게 답답하겠지? 그런데 남들도 다 그래. 그건 그냥 원래 그런 거야. 금세 새해가 오고, 또 그렇게 부대끼다가그렇게 인생이 가.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는데, 12월은 온갖 공연이 넘쳐 나는 달이라 볼 거리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12월은 한해를 정리하는 고급 공연들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 칼럼에서 주로 다루는 가격대 성능비 높은 공연은 오히려 부족하기 마련이지. 혹시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이 나오는 으리으리한 공연에 못 간다고 한탄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 얼마 전 한 고마운 분의 성의 덕분에 비싼 연주회를 간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진리를 확인했어. ‘관객의 수준은 공연장 좌석 가격과 완전히 반비례한다는 것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바이올린 솔로의 피아니시모에 딱 맞춰 기침들을 하시는지. 반면 여기서 추천하는 공연들은 실제 공연장에 가 봐도 기분 잡칠 일이 없어. 훨씬 고품격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야. 믿어도 좋아.

 

지난달에 얘기한대로 12월 들어 갑자기 합창교향곡 공연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야. 올해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 공연은 2회 모두 매진이거든. 그러니 적당한 DVD를 사서 집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1222, 국립합창단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 아닐까 싶어.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아니지만 어쨌든 할렐루야코러스도 송년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S석이 3만원, A석이 2만원으로 저렴해.

 

 

 

좀 더 특이한 송년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1231일 밤 8시에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를 권하고 싶어. 현존하는 명창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안숙선 명창의 완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다, 공연이 끝나면 국립극장 앞에서 불꽃놀이도 구경할 수 있어. 전석 3만원. 같은 날 열리는 예술의전당 제야 음악회보다는 이쪽을 추천.

 

더 활기찬 연말을 누리고 싶은 사람에겐 딱 맞는 공연이 있어.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일부터 111일까지. 지난 30년간 마당놀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해 온 손진책 김성녀 국수호 같은 대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고 볼만한 공연이지. 굳이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S 4만원, A 3만원.

 

 

 

연말이라 책 읽을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건너 뛸까도 했는데 그래도 올해를 마감하면서 국내 작가의 소설을 한권 정도 소개하고 싶었어. 그래서 결론은 이재찬 작가의 안젤라 신드롬이야.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며 밝게 살아가던 한 10대 소녀가 인간극장류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일약 주목받게 되는데, 그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야. 언뜻 봐도 TV 단막극 류의 코믹 설정 같지만, 페이지를 조금만 넘기면 예상 밖의 큰 스케일과 탄탄한 플롯에 놀라게 돼. 이 수준이라면 한국 소설은 도대체 재미라는 걸 어디다 팔아 먹은 거냐는 욕은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야. 인터넷 가격으로 11000원 선.

 

마지막으로 12월은 방학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 성수기인데, 올해는 그닥 개성있는 전시가 별로 눈에 띄질 않네. 그래서 뽑은 건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불멸의 여배우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스타일 아이콘이기도 한 이 분의 그림자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 13000.

 

전시를 보고 나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다시 보고 싶어질텐데 이건 각자의 선택에 맡길게. 아마도 이 칼럼의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소설이 집에 있을 테니(2014 1월 추천) 그걸 다시 읽어 봐도 좋고, 영화를 다시 볼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서 DVD 3천원대에 구할 수 있어. 물론 IPTV를 이용해도 되겠지. 그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자면 좋은 꿈을 꿀 거야. 새해에 만나.

 

국립합창단, 헨델, ‘메시아’ 12.22    A 2만원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 12.31  전석 3만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1.11  A 3만원

이재찬, ‘안젤라 신드롬   11000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11.29~3.8  13000

합계 약 104000

 

 

'연말=합창'이라는 등식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된 듯 한데 그 '합창'을 꼭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뭐 저는 2014년과 2015년은 예매 완료...^^ 2015년도 다들 서두르셔야 할 듯). 그런 의미에서 헨델의 '메시아' 도 좋고, 아래 곡 같은 합창도 연말 공연에선 충분히 시도해 볼 만 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 곡이 그닥 자주 연주되지 않는 듯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입니다.

 

 

최상의 녹음과 연주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 곡이 갖고 있는 고양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듯한 패기 넘치는 공연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혹시 이 곡 때문에 '탄호이저'를 집에서라도 감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콜린 데이비스 경의 1978년 바이로이트 실황 DVD를 권하고 싶습니다. 늘 제임스 레바인의 메트로폴리탄 판이 화질 등에선 좀 더 낫기도 하지만, 바로 저 곡, '순례자의 합창'이 매우 실망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띠 해가 가고 있죠.)

 

특히 저는 12월24일 저녁에 외출하고 뭐 이런 사람들은 정상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를 만나더라도 변두리나 각자의 집/하숙집/원룸/펜션 등등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강남역, 명동, 종로, 홍대, 연남동, 가로수길, 대학로 등등에서 방황하시는 분들은 정말 지긋지긋한 기억(추억이 아니라)을 남기게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반백년 가까이 살아 본 결과, 뭔가 이름 있는 날 사람 많은 데 가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동네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빼고.

 

뭐 이런다고 바뀔 분들이면 애당초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뭔가 영상 시설이 갖춰진(뭐 대단할 필요는 없고, 요즘은 그냥 디지털 TV와 블루레이 플레이어 한대 정도만 있으면 뭐든 가능) 장소에 모여서 고전 명화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겁니다. 가능하면 러닝타임이 긴 것들이 좋겠죠. 대부1,2,3편을 몰아 보시는 것도 좋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1,2,3편, 혹은 매트릭스 1,2,3편, 혹은 스타워즈 4,5,6편을 보셔도 괜찮습니다(취향에 따라 터미네이터 1,2,3이나 죠스 1,2,3일 수도...). 더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히치콕의 이창-현기증-레베카를 몰아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소파며 마루에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시간 잘 갑니다.

 

좀 더 수다에 초점이 맞춰진 분들이라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로열 알버트홀 축하 공연(절판된 모양인데 중고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혹은 카메론 매킨토시를 그리는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이건 아직 만원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같은 DVD를 BGM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의 영상물들은 조금만 품팔이 하시면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뭐 이건 그냥 예로 든 거고, 아무튼 명절날은 좋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TV만 같이 봐도 즐겁죠.)

 

 

술 마시다 노래가 하고 싶은 분들은 아이패드(뭐 아쉬운대로 스마트폰이라도) 하나만 있으면 노래방 앱 다운로드로 만사 해결. http://www.enuri.com/knowbox/KbCopy.jsp?kbno=322636 뭐 이건 옆집 항의받을 우려가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

 

아무튼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석양'으로 정했으니 석양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 한 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추위에 과음하지 마시고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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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참 많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지로 결정한 뒤부터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역시 현지에 가 보니 놓친 것들이 꽤 있었다.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하면 이렇다. 최신 유행에 따라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대체 언제 다녀온 여행을 여태 우려먹고 있느냐는 분들이 꽤 많다. 하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아직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마지막 마무리. 혹시 스페인에 가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지금까지 했던 포스팅들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http://fivecard.joins.com/search/스페인

 

 

 

 

 

 

1. 과일, 최고다.

 

 

오렌지, 멜론, 포도 등 거의 모든 과일이 상상 이상의 맛을 낸다. 특히 감 맛이 최고다.

(물론 사과,배와 딸기는 현재까지 한국산이 최고)

 

특히 위 사진, 'KAKI'라고 되어 있는 은 가을이라면 꼭 드셔 보시기 바란다. 수십년간 감을 먹어 온 한국인으로서 인생 최고의 감을 스페인에서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시와 단감, 대봉시의 장점만을 취한 환상의 감이다.

 

 

 

2. 예약 시스템, 뭔가 조금씩 이상하지만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셨다면 아마 렌페(Renfe)의 자주 다운되는 예약 시스템에 당황하셨을 듯.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건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거의 반드시 T10(10회 탈 수 있는 지하철 패스. 저 위의 기계에서 살 수 있다)을 사용하시는 게 좋고, 알함브라 궁전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공연 티켓을 인터넷으로 예매한다면, 어느 도시에서나 잘 보이는 라 카이샤(La Caixa) 은행 앞에 ATM 기계와 함께 있는 티켓 발매기에서 출력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길. 

 

 

3. 유로자전거 나라, 싸진 않지만 유용하다

 

 

여행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 안내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유로자전거 나라의 가이드들든 새로운 도시를 돌아 보는데 매우 유용했다. 특히 피카소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피카소의 일생 스토리를 듣고 피카소 미술관에 들르는 구성은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됐다.

 

 

4. 시장, 무조건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든,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이든, 시장을 가 보면 스페인이 달라 보인다.

 

시장(식료품 시장으로 특화된)을 가 보면,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밤낮도 없다. 광장시장의 약간 밝고 예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5. 타파스라는 종류의 음식은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타파스(Tapas)는 음식의 사이즈다. 한국에서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도 먹고 싶고, 깐풍기도 먹고 싶고, 난자완스도 먹고 싶을 때 인원이 적으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그걸 모두 타파스로 시키면 된다. 서너 입씩 먹을 분량으로 여러가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의 식문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혹시 가게 된다면 타파스보다 더욱 미니멀한 핀초(Pincho)도 잊지 말고 드시길.

 

 

6. 식사 시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식당이고 가게고 모두 쉰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지만, 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에스타의 개념이 점점 흐려져 간다고도 하고, 그 시간에 사람들은 낮잠을 자는게 아니라 카페며 식당에서 계속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다.

 

아무 시간이나 가서 먹고 떠들고 마셔도 된다. 웬만한 바나 레스토랑은 심야까지 한다. 한국과 비슷한, 참 좋은 나라다.

 

 

7. 하늘, 평원의 하늘은 다르다

 

 

 

안달루시아의 하늘. 평원 위의 하늘은 구름부터 다르다.

 

 

8. 알함브라, 역사를 알아야 보인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결혼으로 맺어지며 탄생한 대 스페인 왕국, 그리고 알함브라의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남부 스페인 여행은 의미가 반감된다. 가기 전에 대략의 윤곽이라도 파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물론 유로자전거 투어 같은 곳에선 어느 정도 설명을 해 주지만, 공부는 스스로.

 

 

 

9. 달리, 상상 그 이상

 

 

바르셀로나를 간다면 인근 피게레스(Figueres)에 있는 달리 미술관을 꼭 가 보시길 권한다. 난 미술엔 개뿔 흥미 없어, 하시는 분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10. 야경, 가는 곳마다 꼭 놓치지 말길

 

 

밤의 고딕 지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으슥할 것 같지만 오히려 한밤중에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그래도 멋지다. 그리고 알함브라의 야경은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길(안타깝게도 봄, 여름에만 가능해서 나는 실패).

 

그리고 다음에 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

 

- 바르셀로나에서 분수 쇼 보기 (왜 매일 안 하냐고)

- 리세우 오페라 (그 날짜에 적절한 공연이 있는지가 행운의 시작)

- 톨레도에서 1박 (밤의 톨레도가 진짜라던데)

- 세고비아에서 돼지 통구이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 달리가 살던 지중해의 어촌까지, 더 나아가 프랑스 국경까지.

- 그리고 국경을 넘어 모든 방문자가 '거기서 살고 싶다'던 리스본.

 

 

 

 

 

 

물론 이곳은 언제 가도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매혹의 공간.

 

이렇게 해서 1년여(;;)에 걸친 스페인 여행기 끝.

 

곧이어 발리 방문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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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에 우연찮은 인연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긴 인연이었기를 바라던 사람을 얼마 전 잃었습니다.

 

며칠 되지도 않아 늘 샘나던, 사람다움과 재능이 넘쳐 나던 친구 하나를 또 잃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란. 그 가볍고도 얇음이란.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그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In heißem Liebesstreben,
Werd'ich entschweben
Zum Licht, zu dem kein Aug' gedrung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Herz, in einem Nu!
Was du geschlagen
Was du geschlagen
zu Gott wird es dich tragen!

 

 

 

 

 

And, 제목 그대로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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