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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스타의 나무'를 클로즈업해서 찍어봤다.

 

사실 이 나무가 뭐 대단하다고 눈길을 운전해서 찾아가 사진을 찍는지 이해 못 하실 분도 많을 거다.

 

 

그런데 이 정적 속에 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그드라실을 연상하기엔 아주 작은 나무 한그루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거다.

 

그런데 이런 나무들을 허허벌판에서 무슨 수로 찾아 사진을 찍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지난번에 올린 '켄과 메리의 나무', 그리고 오늘올린 '세븐스타의 나무' 모두 구글맵에 실린 고급 관광지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에서 그걸 어떻게 찾나 걱정하시는 분들, 일본 네비게이션은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네비게이션 용 코드(숫자)다. 비에이의 모든 숙박업소나 안내소에서는 이 관광지(나무)들의 네비게이션 코드가 적혀 있는 지도를 뿌리고 있다. 그러니 저 나무들을 어떻게 찾나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물론 반대로, "비에이 어차피 넓어 봐야 손바닥 만한데 돌아다니다 보면 다 나오겠지" 하고 별 준비없이 다니는 분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큰일난다. 그 지형이 그 지형이고 더구나 눈까지 쌓이면 방금 지나온 길도 그 길 맞나 싶다. 그러니 반드시 지도와 네비게이션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버스나 택시 투어를 하시는 분들은 이런 걱정 뚝. 기사님들이 알아서 한다.)

 

아무튼 료칸을 나서 5군데의 스팟을 도는데 거리는 약 43km에 불과하지만 구글맵의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그만치 속도 내기가 힘든 길들이다. 그러니... 오만은 금물.

 

 

컬러지만 흑백 사진의 느낌.

 

구글로 'seven star tree'를 검색해 보면 저 나무 하나를 찍은 오만장의 사진이 나온다. 똑같은 나무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다른 각도에서 제각기 찍어 올린다. 세븐 스타의 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담배 '세븐 스타'의 광고 모델이 됐던 나무이기 때문인데, 그 많은 사진들 중 어떤 것이 실제로 광고에 쓰였던 오리지널 사진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잘 생긴 나무다.

 

 

 

그리고 이것이 오야코나무.

 

세 그루의 나무가 지평산에 보이는데 두 개의 큰 나무 사이로 하나의 여리여리한 나무가 서 있다. 다른 사진들을 보면 가운데 나무는 거의 묘목 분위기인데, 직접 찍어 보니 가운데 나무도 꽤 자랐다.^^ (세월의 흐름!)

 

언젠가는 가운데 나무가 더 키 큰 나무가 되어 있을지도.

 

 

그러는 사이 다시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마일드세븐의 언덕. 이것도 역시 담배 마일드 세븐 광고에 출연해 유명해진 나무들이다.

 

파란 하늘을 기대했지만 흐린 하늘이 오히려 더 환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세 그루의 나무도 멋지지만 사실 여기선 조연이다.

 

엄청난 악천후인데도 꽤 손님이 보인다.

 

 

유명한 나무임을 증명하는 비석(?)

 

 

저 나무들을 어떻게 담아 볼까 고민이 시작된다.

 

 

이렇게 한 절반 정도만...?

 

 

하늘과 눈밭을 절반 비율로...?

 

 

왠지 이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 꽉 채운 것 보다는 절반이 좋다.

 

 

이런 사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찍고 보니 내 사진도 마음에 든다.

 

뭐 언젠가는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겠지.^^

 

 

사실 저렇게 생긴 방풍림은 이 비에이 근처에 매우 흔하다.

 

단지 주변 언덕과 하늘과 그 조화를 이모저모로 따져서 그 일군이 선택된 것 뿐.

 

 

아무튼 행인을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부탁해본다.

 

자, 시즌이 시즌이니만큼 크리스마스 트리 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들 나무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렇게 정확하게 화살표 모양으로 생긴 나무는 참 보기 힘들다. 그런데 저기 그런 나무가 있다.

 

잘 다듬어서 저렇게 된 거 아니냐고? 솔직히 모른다. 아무튼 아는 건 잘 생겼다는 것 뿐.

 

고쳐서 저렇게 됐건, 기적처럼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저렇게 됐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마침 근처에 있던 잘 생긴 피사체끼리 한 화면에 모아 봤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크기기 짐작되지 않는다. 그냥 모형같기도 하고...

 

 

뭐 이렇게 봐도 마찬가지긴 한데, 아무튼 꽤 큰 나무다. 그리고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현장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주변에 전깃줄도 있고, 건너편에 무슨 창고 같은 것도 있고 그렇다. 그래서 저렇게 곱게만 찍는 데에는 꽤 수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그냥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크리스마스 나무의 교훈대로 앞으로도 잘 가꾸려 한다. (응?)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시키사이 언덕으로 가본다.

 

 

2012년 여름에 왔던 시키사이 언덕은 이렇게 원색의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언덕이었는데,

 

 

사실 겨울에 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까지 본 겨울 풍경만 못하다.

 

 

그래도 왔으니 사진 한 장.

 

이렇게 해서 비에이 주변의 꽤 유명하다는 스팟들을 돌아봤다.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정도. 내려서 사진 찍고 다시 출발하고 하는 식으로 했는데도 이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날씨 때문에라도 내려서 그리 오랜 시간을 한군데 머물 수 없었다. 아무튼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으므로 만족도는 매우 높다. 한번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차를 달려 일단 후라노로.

 

 

후라노 가는 길로 접어드니 어느새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 야속하기도 하다.

 

 

후라노 뒷산은 스키 리조트.

 

본래 후라노에 들어서면 唯我独尊(유이가도쿠손) 이라는 유명한 오믈렛카레집을 가려 했는데

 

 

...휴일이다. (사진은 유이가도쿠손 옆의 도나리노도쿠손이라는 계열 빵집)

 

 

그래서 온통 거리가 눈빛으로 반짝이는 후라노 시내를 달려,

 

 

그 집 못지않게 유명하다는 마사야를 갔다.

 

오무카레(오믈렛 커리)를 시켰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아, 먹기 전에 찍을 걸...

 

그리고 다시 차를 달려 삿포로 시내로 진입해 렌트카를 반납하니...

 

 

해가 저물었다.

 

 

그럼 삿포로의 겨울 밤을 장식하는 화이또 이루미네이숑 (최대한 현지 발음을 살림)을 봐야지

 

 

오랜만에 사람 많은 데 오니 좀 이상하다 ㅎ

 

 

그런데 한 20년 전에도 느꼈지만, 이 화이또 이루미네이숑은 사진이 제일 예쁘다.

 

실제로 보면 절대 이렇게 예쁘지 않다.

 

그리고 얼음이 조명 때문에 녹았다가 다시 얼기 때문에 엄청나게 미끄럽다. 조심해야 한다.

 

 

저 멀리 삿포로 TV타워가 보이고,

 

 

TV 타워 바로 앞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들어가 본다.

 

 

먹을 건 꽤 많은데 살 물건은 사실 없다.

 

 

제일 맛나게 보였던 통닭.

 

응? 근데 좌상단에... 수거구(收据口)라고 쓰고 RECEIPT MOUTH...?

 

한글로는 수취 입?

 

여러분 한국만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뭔가 조명이 지나쳤는지 그림처럼 찍힌 광경.

 

 

그래도 높은 곳에 오면 일단 올라가라고 배웠다.

 

사진에 밝게 보이는 곳에 라운지가 있다. 심지어 커피값도 한국돈 5000원 정도.

 

한국같으면 만원은 받았을 것 같다.

 

라운지에 자리 잡고 앉아 방금 지나온 오오토리 공원 방향을 찍었다.

 

비행접시 아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4박5일간의 혹한기 일본 운전 훈련을 마쳤다(다녀와서 2주간 몸살).

 

 

 

4박5일 동안 달린 코스가 대략 이런 그림으로 나온다. 810km 정도의 거리로, 구글맵 예상 주행 시간은 12시간30분 정도 된다. 물론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갈 때 길 잘못 들어 헤멘 거리, 비에이에서 돌아다닌 거리, 기타 등등의 자질구레한 주행을 합하면 900km 정도 될 것 같다. 이렇게 보면 하루 200km도 안 달린 셈이지만, 눈길인데다 낯선 객지라는 이유만으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운전자 피로는 상당히 심하다. (특히 조금이라도 빨리 달려 보려고 애쓸수록 피로는 가중된다. 게다가 그런다고 예상소요시간보다 빨리 도착하지도 않는다. 홋카이도의 신비?)  

 

핵심적인 교훈을 정리하면

 

1. 같이 가는 사람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차내에서 꽤 긴 시간을 보내는데 거기서 투닥거리면 여행은 악몽.

 

2. 일정에 욕심을 내지 말자. 충분히 숙달된 운전자로 수시 교체가 가능하다면 더 달려도 되겠지만, 혼자 운전하는 경우 하루 주행거리는 200km 미만으로 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을 것 같다.  (물론 각자의 체력에 따라. 혼자 운전해 본 사람으로선 하루 200km도 길었다.)

 

3. 운전 시간을 줄이려 조바심을 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결국은 네비게이션이 예언한 시간만큼 걸린다.

 

4. 사진 욕심은 내면 낼수록 좋다. 특히 사진에 담지 못한 웅대한 자연 풍경이 너무 많아 아쉽다.

 

5. 료칸은 당연히 좋지만 매일 료칸 숙박을 하는 것도 지친다. 가이세키도 매일 먹으면 지겹다.

 

6. 어쨌든 홋카이도의 진짜 매력은 도시 밖에 있다. 과감하게 도시로 나가라. 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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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다음날, 료칸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森の旅亭びえい 의 아침.

 

 

독채 방에서 나와 아침 먹으러 가는 길이 찬탄을 자아낸다. 아름답다.

 

 

 

가져다 대면 전부 그림.

 

 

창문 하나 하나도 모두 사진 액자처럼 보이게 신경을 기울인 태가 역력하다.

 

 

그 많이 보시던 그 일본식 조식.

 

 

안 예쁜 각도가 없다.

 

 

라비스타 아칸가와도 그랬지만, 모리노료테이도 지형 때문에 전경을 찍기가 힘들다.

 

 

그리고 못다 푼 온천의 한을 다시 한번 풀어보리라

 

 

담가도 담가도 풀리지 않는 온천욕망.

 

전생에 온천 못하고 쓰러져 죽은 귀신이었나보다.

 

파란 하늘과 고드름. 겨울 온천을 그리는 자들의 로망 그 자체.

 

그런데,

 

 

홋카이도 날씨는 귀신도 모른다더니, 막상 길을 나서는데 어느새 해가 숨바꼭질을 한다.

 

 

온통 사방에 눈. 일단 료칸을 나서자마자 인근에 있는 '흰수염폭포'를 찾아간다.

 

시라히게 폭포(しらひげの滝) 말이다. 

 

 

모리노료테이를 나와 한 100미터쯤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면 이런 철교를 만난다.

 

 

철교 왼쪽을 바라보면 이런 한겨울의 예쁜 경치가,

 

 

그리고 오른 쪽 아래에는 요런 자그마한 폭포가 있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규모를 알 수 없고 얼핏 웅대한 폭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높이가 5m 정도인 미니 폭포. 규모는 '애개' 할 정도지만, 아래를 흐르는 물 색깔과 함께 조형미는 기가 막히다. 덩치가 컸더라면 세계적인 경승이 될 뻔 했다. 

 

 

그 시간에도 해 쪽은 이런데

 

 

반대쪽은 아직 파란 하늘.

 

파란 하늘 아래 하얀 눈의 로망이 뭉클뭉클.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비에이의 잘생긴, 눈밭에서 더욱 잘생겨 보이는 나무들을 찍으러 간다.

 

후라노와 비에이를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름의 비이에는 패치워크(patchwork)라고 불릴 정도로 알록달록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벌판이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하지만 여름 못지 않게, 겨울에도 이 벌판은 매혹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면 이런 나무. '켄과 메리의 나무'라고 불리는 나무다.

 

별 것 아닌 그냥 나무 한 그루지만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눈밭 한 가운데 이 나무 혼자 서 있는 걸 보면 어쩐지 가슴이 싸해진다.

 

비에이 역을 중심으로 대략 10km 사방에는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나 주변에 인가나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어쩐지 쓸쓸한 풍경이 비에이의 마력이다.

 

 

그런데 이런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렌터카가 필수. 물론 비에이에 내려서 12시간 기준으로 단기 렌트를 하는 방법도 있고, 택시를 대절해서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홋카이도라는 곳 자체가 '나만의 발'을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홋카이도 여행 레벨 1으로 삿포로-오타루-노보리베츠-팜 도미타를 돌고 말 게 아니라면, 아무리 봐도 렌트는 필수다.

 

(여름에는 비에이를 중심으로 자전거 투어를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는데 글쎄, 그 자체도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특히나 겨울에는 무리라고 본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미끄러워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늘이 파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흐린 하늘은 흐린 하늘대로 또 매력이 있다.

 

그런 파란 하늘을 보기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렇게 작심한대로 차를 몰고 료칸을 출발.

 

오늘(4일째)의 목표는 료칸을 떠나 비에이의 포토제닉한 명소들을 몇군데 돌아 본 뒤 후라노를 거쳐 삿포로까지 가는 거다.

 

일단 이 구간에는 산길이나 험지가 없어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이미 오전의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눈발이 날렸다 사라졌다 하는 날씨.

 

그런데 저 구름 너머로 햇살이 비치는 날씨가 어찌 보면 눈밭을 더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한 30분을 이렇게 달려도 다른 차를 만날 수가 없다. 이게 바로 비에이의 가장 큰 매력.

 

 

켄과 메리의 나무를 지나 한참을 달리면 '세븐 스타 나무'가 나온다.

 

비에이의 명소들을 골라 다니는 관광버스가 저 멀리 서 있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비에이 나무 투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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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 출발은 참 창대했다.

 

사실 저런 하늘 아래서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린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 아님?

 

 

셋째날의 코스는 지도 오른쪽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에서 오른쪽 빨간 표시, 즉 모리노료테이 비에이 료칸까지다.

 

대략 240~260km, 4시간에서 4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라고 보여진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좀 코웃음을 쳤다. 240km에 4시간이면 누가 봐도 시삭 60km 아닌가.

 

누가 60을 지켜,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좀 오산이었다.

 

아무튼 달리는 길엔 처음엔 햇살도 좋고,

 

 

그런데 길이 슬슬 이렇게 되더니,

 

 

잠시후 결국은 이렇게 됐다.

 

가는 동안에도 눈이 펑펑. 그런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제설차가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이날의 끝은 결국 이런 것.... ㅜㅜ

 

뭐 조난의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건 한참 나중, 해진 뒤의 일이고...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우리는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홋카이도 고속도로엔 간혹 휴게소가 있다 해도 한국 같은 식당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

 

허기도 허기인데다 차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토카치시미즈(十勝淸水)에서 잠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지나가다가 '소바'라는 큰 간판을 보고 들어간 집.

 

이름은 메분료(目分料, めぶんりょう), 주소는 다음과 같다.

 

〒089-0113 北海道上川郡清水町南5条3丁目1

 

 

 

이 집의 대표는 오리탕에 간장을 섞은 오리 장국에 찍어먹는 소바였다. 맛있었다.

 

위쪽의 쯔유도 그리 진한 맛은 아닌데 아무튼 소바인들이 찾아가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미슐랭가이드2017의 미슐랭플레이트에 선정된 집이라고! (으쓱)

 

 

그러나 그 뒤로 다시는 저런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심지어 고속도로 분기점을 지나치는(!) 참사...

(2차선인 홋카이도 고속도로는 한번 지나치면 한시간은 더 달려야 돌리는 길이 나옴)

 

그리고 그걸 좀 만회해 보겠다고 중간 산길로 빠져나왔다가 정말 한 2시간 동안 다른 차를 하나도 만나지 않는 산길을 실컷 달렸다. 나중엔 정말 무서울 정도.

 

그 덕분에 진정한 설산의 비경을 여러번 봤지만 내려서 사진을 찍을 만한 여유도 부리지 못하고 ㅠㅠ

 

그렇게 해서 후라노를 지나 비에이 지역으로 접어들었으니, 꼭 보고 가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비에이 지역의 경승 중 하나로 유명한 아오이이케(青い池).

 

〒071-0235 北海道上川郡美瑛町白金

 

천연호수는 아니고 인공호수지만, 저 푸른 물빛으로 유명한 곳이다.

 

당연히 겨울에는 저 물도 어는데, 그 얼어붙은 수면을 이용한 조명 쇼가 겨울용 특선 상품.

 

아칸호에서 출발한지 약 7시간만에 아오이이케에 도착, 거의 조명 쇼 시간에 딱 맞출 수 있었다.

 

(이게 어쩌면 행운이랄까? 한 30분 먼저 도착했으면 료칸에서 눈길을 뚫고 다시 나오기 귀찮아서 못 봤을 수도 있다.)

 

 

 

 

사진상으로는 꽤 밝게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

(RX 100 시리즈의 왜곡. 사진은 나오지만 흔들리기 쉽다.)

 

 

왼쪽에서 이렇게 조명을 때리고 있고, 그 조명 아래에 제법 많은 사람이 조명 색이 바뀔 때마다 탄성을.

 

 

눈은 끝없이 쏟아진다.

 

 

 

뒤쪽에서 보면 이렇다.

 

서울에서 1년치 맞을 눈을 하루에 다 맞은 듯.

 

볼만큼 봤으니 철수.

 

 

BLUE FOND라고 써 있는 아오이이케에서 모리노료테이는 3.4KM, 정상적으로 5분 이내 거리다.

 

하지만 폭설 속에서 이 3.4KM는 정말 30KM같은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간판이 하나도 안 보여서 지나칠 뻔했다.

 

 

아무튼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모리노료테이.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이미 꽤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거의 모든 객실이 별채처럼 되어 있고, 개별 노천탕이 딸려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 개별노천탕이다.

 

즉 객실마다 탕이 딸려 있다는 것인데... 방마다 독탕이 딸려 있는 것과 모든 손님이 함께 사용하는 대욕장만 있는 것의 차이는,

 

뭐랄까 화장실이 딸린 방과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방의 차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큰 차이다.

 

 

그리고 이렇게 욕탕에서 눈이 쌓인 바깥 숲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이만저만한 메리트가 아니다.

 

대부분의 노천탕들이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사실상 하늘만 겨우 볼 수 있게 해놓은 데 비하면 엄청난 개방감이다.

 

 

젠사이

 

 

스이모노

 

 

오쓰구리

 

 

음...니모노? 전복찜.

 

 

야키모노? ;;

 

 

요우자라? ^^ 로스트비프가 나왔다.

 

아게모노!

 

갑자기 왜...? ;;

 

 

도메자카나

 

미즈가시. 샤베트를 얹은 푸딩.

 

플레이팅이며 격식은 모리노료테이의 승리. 그릇 하나에도 꽤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데 재료나 맛은 아무래도 라비스타 아칸가와의 편을 들게 된다.

 

물론 저녁 세끼 연속으로 가이세키 요리를 먹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진종일 눈길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을 한 뒤 밥까지 잔뜩 먹었으니 더 버틸 재간이 없다.

 

시체가 된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런 설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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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게 원래 먹자고 가는 건데 먹는 얘기를 너무 부실하게 취급한 것 같아서.

 

그럼 지금부터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름 참 길다)에서 이틀동안 먹은 식사를 석-조-석-조의 순으로 소개한다.

 

 

대개 온천 호텔이나 료칸에서는 조식/석식을 제공하는데 저녁식사는 보통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제공된다.

일본식의 코스 정식을 말하는데, 가끔 발음이 같은 가이세키(懷石)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인들은 대개 이해가 높지 않다.

 

거기에 대해서는 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요리란? http://fivecard.joins.com/1305

 

이처럼 코스의 이름과 순서가 제공하는 업소에 따라 꽤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틀 안에서 운영된다.

 

그래서 이 호텔, 카무이 에서는 다음 순서로 저녁밥을 줬다.

 

 

前菜 젠사이 - 전채. 모듬 전식 요리.

先椀 센완 - 밥공기 같은 그릇에 담긴 찜 요리

造里 쓰쿠리 - 생선회

台の物  타이노모노 - 상 위에 놓인 요리. 즉 직접 조리해가며 먹는 요리

洋皿 요우자라  - 서양 요리

止肴 도메자카나 - 마지막 안주(?). 다른 곳에선 이 이름으로 밥이 나왔는데 여기는 아래 보시다시피 식사가 따로 있다.

食事 - 카레라이스와 죽 중 선택하게 되어 있다. 죽 선택..

水菓子 - 디저트 1

甘味 - 디저트 2

 

대략의 틀은 따라가고 있지만 뭐랄까, 격식 없이 자유롭게 차려진 가이세키라는 느낌이 들었다.

 

 

 

 

 

前菜 젠사이와 先椀 센완이 함께 나와 있는 모습. 완(椀)은 밥공기같은 둥근 그릇을 말한다.

(뚜껑을 열고 내용을 찍은 사진 없음. 패스)

 

 

밥을 먹기 위해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창밖으로 개울(아칸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아칸가와)이 흐르고,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개울가에 이 호텔에서 키우는 사슴이 왔다갔다 한다.

 

자연 속으로 푹 들어온 느낌이 난다.

 

 

 

이것이 造里 쓰쿠리,

 

날씨에 맞춰서인지 방어(鰤, 일본 발음으로 부리)가 나왔다.

 

 

이것이 台の物  타이노모노,

 

연한 육수에 게살, 고기, 야채를 담가 먹는 샤부샤부가 나왔다. 맛이 없을 수 없는 종목. 

 

 

 

洋皿 요우자라. 소고기와 돼지고기 로스트가 나왔다. 소고기는 그럴듯 했는데 돼지고기를 미디엄으로 구운 느낌은 좀 낯설었다.

 

이렇게 첫날 저녁 식사 완료. 당연히 다 먹으면 배가 상당히 부르다.

 

 

그러는 사이 스키야키 냄비에서 우동이 익고,

 

 

남은 국물에 쌀을 투척해 죽으로 재탄생.

 

이 죽을 조우스이 雜炊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보던 스타일이다. 맑은 탕이나 스키야키를 먹은 뒤 밥과 파, 계란을 훌훌 풀어 끓이는 그런 죽. 단지 한국식 죽은 좀 퍼질 때까지 끓이는 반면, 이 조우스이는 밥알이 아직 단단함을 잃지 않은 상태까지만 살짝 끓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남은 국물을 이용해 죽을 만드는 방법은 아무래도 일본인 원조인 것 같다.

 

(양국에서 자연발생했을 수 있겠으나 식당가에서 흔히 하는, 계랸과 파, 잘게 썬 야채를 가져와 같이 끓이는 스타일이 정형화된걸 보면)

 

 

 

그리고는 수수 무스(무로코시 무스라고 되어 있는데 찾아 보니 무로코시는 수수다. 옥수수도 무로코시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토카시 산 팥무리떡으로 마무리.

 

 

아울러 식사 때마다 제공되는 아이스바. 홋카이도는 유제품이 좋아서 이런 종류는 웬만하면 다 맛있다.

 

아무튼 이렇게 잔뜩 먹고 온천을 텀벙텀벙 뛰어다닌 뒤에 푹 퍼져 잤다.

 

다음날 아침.

 

 

 

 

 

식당으로 내려오니 온천이 김을 뿜으며 개울로 흘러들어가는 광경이 보인다.

 

 

이렇게 조반. 다 아시는 그 일본식 조반.

 

본래 화/양식 중에서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별 고민 없이 그냥 '일본이니까 화식!'이라고 해 버렸다. 양식은 내일 먹지, 라는 생각.

(하지만 다음날 이것 때문에 약간의 후회...)

 

밥이 유난히 맛있다. 쌀이 좋아서인지... 반찬은 뭐 그냥 그런 반찬.

 

 

이렇게 좋은 햇살과 전망 앞에서 먹으면 뭐 맛없을 밥이 있을지.

 

 

개인용 반노천탕도 한번 들어가 봤다. 그런데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물도 미지근하고 좀 그렇다. 비추.

 

어쨌든 이렇게 해서 둘쨋날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뤘듯 부근 호숫가 노천온천을 누비며 씬나게...

 

달리고 돌아온 뒤 다시 가이세키로 저녁.

 

 

뭐 늘 보시는 거니까 설명은 생략.

 

일본에서도 곶감을 먹는지 몰랐다.^^ 생선은 참치 중심.

 

 

솥밥이 식사고, 1병 제공되는 맥주.

 

 

철판구이 고기가 나왔다.

 

 

같이 나온 빠다를 녹여서 이렇게 ~

 

 

생선 이름이 뭐더라... 긴메타이(金目鯛, 우리말로는 금눈돔?). 돔 종류 치고는 작은데 크기에 비해 알차다.

 

 

그리고 이렇게 연어를 넣은 솥밥으로 푸짐하게.

 

사실 이 호텔은 본래 밤 10시에 야식으로 라멘을 준다.

 

처음엔 라멘 맛이라도 좀 볼까 생각을 했지만 저녁식사만으로도 충분히 헤비해서 그런 만용은 버리는 것으로.

 

그리고 다음날 아침.

 

 

 

셋째날 아침.

 

보시다시피 구성이 약간 모호,

 

사실 화식에 약간 질려 가던 터라 두번째 날 조식은 '양식'이라고 자신있게 외쳤는데,

 

직원이 "오늘은 화식 양식 구분 없고 화양식(?)으로 통일"이라는 거다.

 

화양식은 또 뭔가 했더니 바로 저 차림, 좋게 말해 퓨전이고 먹어 본 솔직한 결과로는 양식도 아니고 일식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그리고 아침부터 삼겹살 샤부샤부라니.

 

아 느끼해... 는 아니고 실제로는 뭐 맛은 괜찮았음.

 

 

다만 당초 기대했던 대로 빵 맛은 베리 굿.

 

같이 먹는 우유도 좋아서 석잔이나 드링킹.

 

 

그리고 저녁에 아이스바를 가져다 놓은 데 이어 오전에는 소프트 가츠켄이라는 음료가 제공된다.

 

맛은 바로 드링킹 요구르트.

 

 

아무튼 날씨 얘기가 뒤로 왔는데, 둘쨋날 아침까지만 해도 신록이 우거졌던 숲이 셋째날 아침엔 완전히 눈 속 나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이런거. 이런 걸 보러 온 거야

 

그렇다면 한국인의 로망을 실천할 때가 온 것 같다.

 

 

자, 노천탕으로 달려가서,

.

 

몸을 푹 담그고 설경을 바라본다.

 

크허허허 정말 세상에 부러울게 없다.

 

 

이럴땐 이렇게 발을 내놓고 싶더라고.

 

여기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길을 떠나야 하는 날.

 

 

차가 이렇게 돼 있다. 과연 이날 이 차는 무사히 목적지까지 갔을까?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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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5일(2017년임) 아침, 파란 하늘을 안고 흡족한 마음으로 오전 9시30분 정도에 길을 떠났다.

사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앞두고 별다른 연구가 없었음을 알려주는 것이, 이 둘쨋날 코스도 본래 만만치 않았던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지도상으로 보니까 다 근처야' 하는 마음에 아주 가볍게 출발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환 후 몸살로 나타나지만... 아무튼 이때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좋기만 했다. 

일단 첫번째 목표. 호텔을 나와 동쪽으로 10여분 정도 차를 달리면 소우코다이(双湖台)라는 첫번째 목표가 등장한다. 한자 세대라면 쌍호대, 즉 두개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전망대 이름이 호수 두개가 보여서 쌍호대라는 것인데, 하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아무튼 아칸 호수는 잘 보인다. 예쁘다.

파란 하늘, 하얀 눈이 쌓인 길, 뭐 여기서 더 바라면 도둑이다.

근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 일본 렌터카 중엔 와이파이로 음악 들을 수 있는 차종이 별로 없다고 한다. 처음엔 경차라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 그런 옵션이 없다고... 그렇다고 홋카이도 FM이 빵빵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운전할 때 BGM이 필요하면 작은 거라도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가시도록.

물론 저 쌍호대는 이날 여정의 아주 아주 이른 시작. 북쪽으로 차를 돌려 일단 목적지인 비호로(美幌) 전망대를 향해 달려 본다.

비호로 전망대는 굿샤로 호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유명한 곳. 대략 대관령을 연상키시는 비호로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는 굿샤로 호수는 일찍이 절경이라고 알려졌다.

비호로 주차장에 차를 댈 때까지만 해도 푸른 하늘이 보였는데,

바로 옆, 전망대 쪽으로 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해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오묘한 홋카이도의 날씨.

구름 속의 태양 방향으로 5분쯤 걸어 올라가니,

오옷.

조금 와이드하게 찍으면 이런 느낌.

희한하게도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파란 하늘이 보이는데,

호수 상공은 안개와 짙은 구름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그런데 기막히게 멋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운이 좋은 편. 어떤 분들은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못 봤다고도 한다.

호수 가운데 보이는 섬은 나카지마 中島 라고 부른다는데, 호수 중간에 있는 섬은 모두 나카지마인듯.

파란 하늘과 구름낀 태양 아래 굿샤로 호수.

경치는 너무나 기가막히게 좋은데 추워서 살 수가 없다. 고지대라 쌩쌩 부는 바람이 제법 사납다.

아무튼 비호로 인증샷.

내려와서 전망대 휴게소를 들어가니 굿샤로 호수에도 괴수가 산다고 한다.

귀엽다.

바람에 맞서 호수 구경을 하고 오니 다른 생각 1도 없이 뜨거운 국물이 땡긴다.

뭐 관광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사악한 가격은 아니다.

성수기도 아니고 휴일도 아니라서인지 휴게소는 한산.

카니라멘, 1500엔. 비주얼은 어째 게다리가 모형 같은데 실제론 맛이 그만이었다. 강추.

뎀푸라 우동. 980엔. 물론 이것도 당연히 맛있다.

휴게소 음식 치고는 기대 이상의 맛. 뜨거운 국물에 언 몸이 스스르 녹는다.

그리고 차를 돌려 내려온 곳이 와코토 和琴 노천온천.

 

호수의 아주 작은 반도(?)로 잡어들어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고 2분 정도 걸으면 나타나는 노천 온천이다. 사진 위쪽은 굿샤로 호수, 그리고 아래쪽 김 나는 곳이 온천이다. 한 구석에 탈의장 비슷하게 동네에서 지어 놓은 목조 건물이 있고, 사방에 아무 것도 없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길손이 들어가서 온천욕을 하라는 그런 탕이다.

그래서

 

 

쑥 들어갔다.

수영복 입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

바닥은 생각보다 매끈한데 잔돌과 나뭇잎 등이 바닥에 깔려 있다. 자연탕이란 느낌이 확실히 강하게 든다.

영하의 날씨지만 물이 엄청나게 뜨겁다. 금세 땀이 나고 열이 식지 않는다. 기분도 아주 좋아진다.

갈 길이 멀어 얼른 나왔다. 안 그랬으면 죙일 뽕을 뽑았을 듯.

그리고 두번째, 코탄コタン 노천온천인데 여기가 더 대박.

여기는 큰길에서 3분 정도 동네 길로 들어간 다음 시키는대로 차를 세우고 몇발짝 걸어가는데,

우왕.

와코토 온천과는 달리 코탄 온천은 그렇게 호쾌하게 호수 뷰가 펼쳐지는 바로 그 앞에 있다.

백조가 노니는 호수 바로 앞에.

짜잔.

아무 터치도 안 했는데(포토샵 할줄 모른다) 이런 거짓말같은 뷰가 나온다. 너무 아름답다.

온천이 나올 정도로 지열이 있으니 당연히 호수가 거의 얼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또 들어갔다. ;;

보나마나 눈 버렸다 어쩌고 하시겠지만 댁들이 가 보세요. 들어가시고 싶어질 거에요.

이러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들어온다. 좋으시겠어요. 동네에 이런 게 있다니.

 

온천을 했더니 너무 더워서(는 뻥이고) 맛있다고 소문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아이스크림집은 마슈호 가는 길에 있다.

이런 소박한 외경. 이름도 멋지게 짓겠다는 야심 없이 그냥 '마슈호의 아이스(摩周湖の あいす)'다. 저 위 지도에 위치 표시가 있다.

그리고 원래 목표는 이렇게 해서 마슈호까지 세 호수를 모두 보고 오는 거였는데 개인착용 장비에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그냥 호텔로 귀환하기로. 사실 전날의 피로가 다 풀리기 전에 나온 거라 이 정도 운전으로도 좀 피곤했다.

빨리 가서 저녁밥을... (아 첫날도 저녁먹은 얘기를 안 했구나.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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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말~12월초의 여행기입니다. 지금 가 있는 게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갈 팔자가 못 됩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충동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안 가보신 분들께 도움이 되길.

 

여행은 충동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 11월. '사위가 조용하고, 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설경이 보고 싶어'. 물론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 멀지도 않다. 비행기를 타고 두시간만 날아가면 홋카이도가 있다.

 

홋카이도는 두 번 간 적이 있다. 한번은 일전에 얘기한 것 처럼 2001년, 김민종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팀에 끼어서 처음 구경한 적이 있다. 이때 삿포로의 화이트 일루미네이션과 오타루, 조잔케이 등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2년, 이번엔 여름의 홋카이도를 택했다. 다들 홋카이도 하면 설원과 온천을 떠올리지만 여름이 더 좋더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놋포로 숲, 아사히카와 동물원, 그리고 후라노와 비에이 등지를 돌아봤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직접 운전을 하고 이 동네를 돌아다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심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서 목표를 세웠다.

 

1. 목표는 설경이다.

 

11월 말. 날씨가 애매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눈이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 눈이 오지 않는다면 홋카이도의 11월은 대단히 을씨년스럽기만 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9월초까지는 여름이고 10월과 11월 초는 화려한 단풍의 계절. 그리고 11월 말이면 단풍은 확실히 진다. 그런데 과연 거기에 눈이 없다면? 상상만 해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12월 중순에 갈 수는 없었고, 막상 12월로 넘어가면 비행기 표, 호텔, 갑자기 모든 가격이 급등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11월 말 계획을 강행했다. 대략 수년간의 이런 저런 수치들을 본 결과 눈은 와 줄 거라고 확신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목표는 달성됐다.)

  

 

 

2. 교통수단은 렌터카.

 

이 부분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과연 대중교통수단과 렌터카를 어느 정도 비율로 조합할 것인가? 본인은 절대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몇시간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녹초가 되는 체질이다. 그렇다면 일정 비율로 기차와 렌터카를 조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리 현명한 생각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교통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이었고, 렌터카 요금은 하루 일정 지분을 대중교통이 담당해준다는 점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았다. 아예 렌터카를 타는 날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이 구분되지 않는 한 비용은 전혀 절감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 여정을 대중교통에만 의존한다는 것 역시 당초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전 구간을 렌터카로 이용할 경우 유류대 포함 30만원 이내로 전체 교통비를 커버할 수 있었지만 전 구간을 대중교통으로 이용할 경우 이미 40만원 이상(그리고 사소한 볼거리는 모두 포기해야 한다)이 들었고, 둘을 조합할 경우 교통비만 70만원대(예: 료칸에서 택시를 대절해 주변을 관광한다든가 하는. 버스? 없다고 보면 됨)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실상 전 구간을 렌터카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3. 좀 더 구석진 곳으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이상, 홋카이도라는 큰 섬 깊숙히 진출한다는 목표가 자동으로 설정됐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홋카이도 여행에는 대략 3~4단계 정도가 있다. 1단계에서는 삿포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맥주공장도 가보고, 노보리베츠나 조잔케이에 가서 온천을 하고, 오타루에서 가서 다시는 열어 보지 않을 오르골을 사 온다. 용기를 내서 저 남쪽의 하코다테 야경을 보고 오기도 한다.

 

2단계가 되면 도야 호수를 보러 가고, 팜 도미타에 가서 라벤더 밭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비에이의 패치워크를 보면서 이곳의 설경을 보리라 다짐한다. 아사히카와의 동물원을 보거나 멜론을 먹으러 유바리에 가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삿포로가 중심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다.

 

3단계가 되면 내륙으로 길을 떠난다. '쿠시로 습원'이라거나 토카치카와, 다이세츠산, 아칸 호수 등의 지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시간을 달려도 차 한대 마주치지 않는 '사람 없는 대자연'의 매력에 빠져드는 시기다.

 

4단계는 이제 홋카이도의 동 서 남 북 끝을 정복하고 싶은 야망(?)에 눈을 뜨는 시기다. 아바시리, 네모토, 와카나이 유빙 등의 화제가 등장한다. 이건 거리상으로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간혹 홋카이도를 제주도 수준으로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들도 있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홋카이도는 약 8만 제곱킬로미터, 남한이 약 10만제곱 킬로미터다. 남한 전체에서 강원도 정도를 뺀 넓이다.)  상당한 시일과 체력을 요한다. 특히 운전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이 이런 코스에 도전하면 상당히 난감해 질 수도 있다. 물론 동쪽 끝, 북쪽 끝 등을 나눠 가는 요령있는 사람도 있다.

 

위 구분에 따르면 홋카이도를 세번째 가는 나는 대략 2.5단계 정도에 있는 것 같았다. 적당한 선에서 치토세(공항) - 쿠시로 - 비에이를 잇는 큰 삼각형을 설계했다.

 

 

예쁜 그림이 나왔다. 좌하단의 신치토세 공항을 출발, 동쪽으로 달려서 라 비스타 아칸가와 호텔이라고 써 있는 곳까지 가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서쪽으로 쭉 가서 비에이를 거쳐 삿포로에 이르는, 그러니까 저 순환형 코스를 공항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코스를 구상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1월말~12월초의 기후. 가끔은 이때까지도 홋카이도에눈이 안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물론 약 90% 확률로 이미 눈 천지가 되어 있다), 눈을 보러 가는 것인 만큼 눈이 안 내려도 낭패지만, 눈이 너무 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위 지도에서 북쪽, 그러니까 기타미에서 아사히카와 구간은 산속 도로이기 때문에 얼어붙으면 꽤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제 경로는,

 

 

이렇게 약간 덜 예쁜 그림이 됐는데 겨울의 북쪽 산악도로를 피하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론 길을 잘못 들기도 해서 산길을 실컷 달리게 됐다. 그냥 북쪽으로 갔어도 큰 차이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11월 말 출발을 권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항공 요금을 체크해보시면 바로 알 수 있다. 11월말 출발과 12월 출발, 대략 1주일 사이에 항공료가 40% 이상 오른다(그만치 '12월 홋카이도'에 대한 로망이 꽤 있는 것 같다). 만약 휴가를 내는 게 양쪽 다 가능하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요인이다.

 

 

 

첫날은 신 치토세 공항에 내려 곧바로 렌터카를 이용해 쿠시로 방향으로 간 뒤, 내륙으로 들어가는 목표를 세웠다. 거기 뭐가 있냐 하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라는 아칸 호, 굿샤로 호, 마슈 호라는 세 개의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칸 호수 부근에 있는 라비스타 아칸가와 호텔 (풀네임은 카무이노유: 라비스타 아칸가와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은 한번 가 보고 싶은 숙소였다.

 

(창밖으로 이런 뷰가 펼쳐진다)

 

カムイの湯 ラビスタ阿寒川, 일본 〒085-0000 Hokkaido, Kushiro, Akancho Okurushube, 3−1

 

공항에서 호텔까지 260km. 구글 지도상으로는 약 3시간 40분 정도가 소요된다는 정보가 나왔다. 하지만 겨울 홋카이도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60km. 4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생각해야 했다.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어느 정도 걸릴 거라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5시간 넘게 걸렸다)

 

 

그리고 두번째 숙소는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난 비에이의 모리노테이 료칸. 사진을 보고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森の旅亭びえい, 일본 〒071-0235 Hokkaido, Kamikawa District, 美瑛町Shirogane, 10522−1

 

 

그래서 기본 일정은 세워졌다.

 

첫날        인천 - 신 치토세공항 - 아칸가와 라비스타 이동

둘쨋날     아칸 호수 주변 관광, 아칸가와 라비스타 숙박(2박)

셋째날     아칸 호수 - 비에이 모리노테이 료칸 이동

넷째날     비에이 주변 관광, 삿포로로 이동 (렌터카 반납)

다섯째날  기상, 빈둥거리다 리무진버스로 공항 이동, 인천으로 귀국

 

따라서 숙박은 아칸가와 라비스타(2박), 모리노테이(1박), 삿포로 시내 호텔(1박)으로 정리됐다. 당초 구상 중에는 라비스타 2박, 모리노테이 2박을 한 뒤 바로 공항으로 렌터카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도 있었으나 도로 사정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일정을 세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해서 당일. 신 치토세 공항 1층으로 내려가면 렌터카 종합 라운지가 있고, 거기서 예약자를 확인해 필요한 곳으로 안내해 준다.

 

물론 성격 느긋한 분들은 공항에 내려서 렌터카 알아보시고 하겠지만 역시 뭐든 예약하는 게 좋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닛산 렌터카 직원이 등장, 미니버스로 공항 외곽에 있는 닛산 렌터카 사무소로 실어다 준다.

 

 

닛산 마치(マーチ). 경차급이지만 4륜구동이고, 겨울 홋카이도의 렌터카는 스노 타이어가 기본이다.

(단, 4륜 모드에서는 연비가 상당히 안 좋아진다. 물론 겨울이니 감수해야 한다.)

 

굳이 닛산을 선택한 건 일본 최대 렌터카 업체인 토요타가 경쟁업체 대비 20% 정도 가격이 비쌌기 때문. 대신 대리점도 가장 많고 아무래도 공신력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지만, 역시 대기업이면서 토요타보다 싼 닛산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물론 닛산보다 싼 회사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런 회사들은 차가 좀 낡았다든가 하는 몇가지 겁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신 치토세 공항 근처의 닛산 렌터카 공항점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터라 그쪽에서도 여유있게 응대한다. 아주 독특한 요구사항만 없다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약간 발음이 이상하긴 해도 대강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데에는 별 무리 없는 수준의 영어로 차량 제공과 안내가 이뤄진다.

 

물론 빼놓으면 안되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일단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니 ETC카드(한국의 하이패스카드)도 기본이고, 외국인에게는 고속도로 통행료가 대폭 할인되는 정액제 HEP라는 것이 있다. 반드시 신청해야 한다. 홋카이도는 대중교통 요금이 비싼 만큼 고속도로 통행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그러니 하루 2,3만원 정도로 고속도로 요금은 모두 해결되는 HEP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선수들은 HEP도 아깝다고 국도로 다닌다고 하는데, 솔직히 네비게이션도 감지덕지인 초보 처지에 어느게 국도고 어느게 고속도로인지 구별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HEP 해달라고 해라. <- 이상 ETC나 HEP 등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잘 설명해 놓은 블로그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

 

그리고 주의사항: 이 마치는 그냥 경차급인데, 한국 경차보다 트렁크는 확실히 작다. 그래서 문제인 것이, 좌석은 네개지만 그냥 2인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한 차다. 절대 네 사람과 네 사람분의 짐을 실을 수 없는 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약 정상적인 성인 4인이 이 차를 빌리면, 뒷좌석 사람들은 짐을 안고 타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그러니 성인 4인이라면 너무 돈 아낄 생각 말고, 그냥 일반 승용차를 빌려길 권한다(사실 짐 없이 4인이 타도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어쨌든 의례적인 교육을 받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공항을 빠져나와 처음 달리기 사작할 때 길은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이었는데(아 이거 눈 보러 왔는데 망했구나 잠시 생각),

 

외곽으로 나가자 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만세).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아싸 눈이다' )

 

사실 왼쪽 오른쪽 운전석의 차이에 대해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별것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해 말하면, 일단 운전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

 

30분 이내에 딱 한가지만 빼고 다 적응된다.

 

(다른 건 문제 아닌데 깜빡이를 넣으려고 하면 와이퍼가 움직인다. 이것 하나만큼은 돌아올 때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일본 고속도로에 나가 보고 놀란 것

 

1. (홋카이도라 그런 거겠지만) 양쪽 합해 2차선이다. 고속도로인데... 그래서인지 심지어 제한속도는 60.

 

2.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10분 쯤 있으면 제설차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다. 고속도로 요금이 왜 비싼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3은,

 

 

3. 고속도로 휴게소에 한국 같으면 상식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식당, 편의점 등이 거의 없다.

 

위 사진이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비히로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난 휴게소인데, 이런 식의 간이 판매소가 두 개 있었다.

 

그런데 이날 이후로, 고속도로상에서 음식물을 파는 곳은 다시 보지 못했다.

(그냥 대부분의 휴게소에는 화장실과 음료수 자판기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뭐 여기도 파는 음식은 오뎅, 고로케, 핫도그 정도인데,

 

 

 

심지어 산 음식을 먹을 공간도 없다. 차로 가져가서 먹어야 한다.

 

 

눈은 그쳤지만 강풍이 부는 쓸쓸한 노점.

 

 

그래도 이 휴게소가 이번 여행에서 가본 휴게소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시설이 좋았다. 정말이다. ;;

 

분명히 다시 한번 얘기해 둬야 할 것: 홋카이도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는 60km다. 물론 지키는 건 제설차밖에 없다고 봐도 좋다. 다들 쌩쌩 달린다. 겨울이고 뭐고 없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면 결국 한시간에 60km 이상 이동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간에 경치 구경 때문에 세울 수도 있고, 화장실에 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구간에선가 진행을 방해하는 느린 차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컴컴해진 뒤에야 아칸가와 라비스타 호텔에 떨어졌다.

 

(그래서 호텔 사진은 없다. 그리고 호텔 전경을 찍기가 굉장히 애매한 구조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일단 호텔 전경이 저렇게 생겼는데, 저런 각도에서 이 건물을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강, 그러니까 아칸가와 쪽에서 호텔을 보려면 상당히 험난한 지형을 뚫고 일부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방마다 꽤 큰 통유리 창이 강 방향으로 있는데,

 

 

 

 

방에서 밖을 보면 이런 느낌이다.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홈페이지 사진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창문을 보다가 몸을 180도 돌리면,

 

 

침대가 보인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히노키 욕조가 좀 작고, 밖을 보는 창이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설명에는 반노천탕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노천탕 느낌은 전혀 아니고, 방에서 온천욕을 하면서 바깥 찬 공기를 쐴 수 있다 정도?

 

아무튼 이 욕조는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가기엔 좀 무리다. (어린이들은 가능.)

 

이 호텔을 이용할 분들은 아무래도 온천욕은 대욕장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침대 쪽에서 창문 쪽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 긴 직사각형 모습이다.

 

 

 

저 호텔 홈페이지 사진은 여름 사진인데, 우리가 도착한 날 밤에 눈이 펑펑 내려서 다음날 이렇게 됐다.

 

방에서 이런 풍경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이 호텔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지 않았다.

 

 

욕조에서 창을 열고 밖을 보면 이런 느낌.

 

 

그래도 그럴듯하다.

 

 

북해도의 겨울엔 5시면 해가 똑 떨어진다.

 

해진 뒤 도착후 저녁시간이 8시라는 안내를 받았다.

 

뭘 하겠어, 일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야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광경. 이때까지만 해도 아칸가와 지역에는 눈이 안 왔다. 그런데 이날 밤...

 

 

 

도착하지마자 탕욕을 마치고 느긋하게 휴식. 그리고 8시에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메뉴 안내 종이를 준다. 뭐 늘 먹는 그런 가이세키 요리지, 별 거 있겠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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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후에도 한참을 못 보고 있다가 드디어 봄.

페이스북에나 몇줄 쓰려다 너무 길어져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이리로 가져왔습니다. 중간에 반말 존댓말 왔다갔다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올립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다듬을 수도.


사실 이 영화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퀸 노래를 많이 들려주면서, 그 사이 사이에 스토리를 배치하느냐를 고민한 영상물, 즉 초장편 뮤직비디오에 해당하는 영화이므로 영화 자체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분들이 아무래도 80% 이상이라는 점에서, 왜 줄거리가 이렇게 짜여졌는지가 좀 의아해집니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영화 제작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앨범 출시가 퀸의 분열 내지는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했다는, 별로 믿어지지 않는 스토리가 왜 영화의 축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죠.

아마도 제작진의 설득에 메이와 테일러가 '수긍'을 한 쪽으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일수도 있으니 그만 보실 분은 여기서 그만 두시길.>

 

0. 잠시 영화 진행 리마인드. 매니저 중 하나가 "CBS에서 400만 달러에 솔로 앨범을 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며 프레디 머큐리의 귀에 속닥질을 하고, 여기 솔깃한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내겠다고 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멤버들은 "너는 퀸을 죽였어!" "어떻게 상의도 없이!" 하고 흥분하고 등을 돌리고, 상심한 머큐리는 더욱 매니저의 말만 들으면서 앨범 작업만 하고, 심지어 매니저는 라이브 에이드에 나가라는 말 조차도 차단해서 알려주지 않고, 결국 전 애인인 메리가 나타나서 모든 걸 알려주기 전까지 머큐리와 다른 멤버들의 갈등은 깊어지기만 하고.... 그래서 반성한 머큐리가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고... 이런 스토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1. 퀸 멤버 중 솔로 앨범을 낸 건 머큐리 혼자만이 아니고, 심지어 머큐리가 첫 솔로 앨범 'Mr. Bad Guy' 를 내기 전 로저 테일러는 이미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밴드 전체의 음악성과 별개의 '자기 음악 세계 실현'은 퀸 뿐만 아니라 많은 밴드에서 이뤄진 관행. 그러니 머큐리가 솔로 앨범을 낸다고 해서 다른 멤버들이 "어떻게 니가 그럴수가!"라고 분개하는 건 좀 이상한 일. 신해철이나 김종서처럼 밴드를 버리고 아예 솔로 가수로 새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2. 라이브 에이드가 85.7.15의 일이니 영화상으로 표현된 심각한 갈등과 머큐리의 고립은 85년 상반기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85년 상반기 퀸은 84년 앨범 Works의 홍보를 위한 전 세계 순회공연 Works Tour를 진행중이었더군요. 84년 8월 시작된 이 공연은 85.5.15 일본 오사카에서 끝났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래야 고작 2개월.  즉 실제로는 매일 같이 먹고 자고 비행기타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해서 다시 공연하고 먹고 자고 파티하고 하고 있을 시절인데 영화 속에서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어딘가 따로 떨어져서 남남처럼 지내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영화와 현실의 시간표는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

3. MR. BAD GUY 앨범은 83년부터 녹음을 시작해 85.4.29 발매.

그러니까 머큐리가 이 시점에 솔로 음반 발매를 털어놓고, 갈등을 빚고, 멤버들과 소원해지고, 라이브 에이드라는 것이 열리는 지도 모르고, 화해하고, 다시 라이브 에이드에서 멋진 공연을 펼친다는 건 몽창 지어낸 이야기. 갈등이 있었다면 The Works 앨범을 녹음하기 이전의 일일테니 83년 쯤인데, 이미 그 갈등을 극복하고 Works 앨범을 내고, 같이 전 세계 투어도 다니고 한 다음에 올 85년의 라이브 에이드에다 이 갈등을 갖다 붙였으니 이건 실제 역사와는 영 딴판.

4. 라이브 에이드를 앞둔 화해(?)의 조건이 '앞으로 모든 노래를 니 노래 내 노래 하지 말고 모두 퀸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수익분배도 1/4로 하자'는 것이었다고 나오는데, 그래서 그 화해(?)의 산물로 나온 86년 앨범 'A KInd of Magic'에서 첫곡 One Vision은 작곡자가 'Queen'이지만, 타이틀 트랙인 A Kind of Magic은 '로저 테일러 작곡'이라고 되어 있음.

한마디로 이 역시 실제와는 영 딴판인 얘기.

5. 퀸이나 핑크 플로이드가 위대한 점 중 하나는 10만명씩을 수용할 수 있는 웸블리 구장 같은 초대형 공연장에서, 어디서 들어도 훌륭한 음향 배치를 독자적인 기술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어딘가 인터뷰를 보면 브라이언 메이가 이걸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게 나온다). 그런 퀸이 '라이브 에이드에 나와' 라는 요청을 받으면 '거기는 음향 시스템을 어떻게 해놨대? 드럼 세트도 하나 갖고 다 돌려가며 써야 한다는데?' 라는 점에서라도 참여를 주저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무튼 그래서 라이브 에이드는 끝까지 참가를 망설인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

6. 아무튼 현실과 영화의 괴리는 이런데, 영화 시나리오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전에 몰랐을 리 없는 퀸 멤버들이 왜 이런 요상한 갈등설(?)을 영화에 넣는데 반대하지 않았을까가 매우 의문입니다. "...미안해, 그때는 말 못했지만 사실 네가 솔로 앨범 내는게 우리는 너무 싫었어. 우리도 내지 않았냐고? 너는 너고 우리는 우리잖아." 뭐 이런 게 진실이었을지?

아울러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의 입장: "그래, 영화 속에서 우리는 파티도 싫어하고 난잡하게 여자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싫어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게 최고였어. 응. 그냥 그렇게 믿어 줘. 우리는 살아 있고, 마누라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잖아. 이제 늙어서 갈 데도 없어. 받아 줄 데도 없고. 그러니까 나쁜 건 다 네가 가지고 가. 프레디. 사랑해." 뭐 이런 것이었는지도.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든 몇가지 생각. 

<아셔도 그만, 모르셔도 그만.>

 
1. 머큐리가 내놓은 문제의 솔로 앨범 Mr. Bad Guy 수록곡 중 영화에 나오는 곡은 단 한 곡, 바로 타이틀 트랙인 Mr. Bad Guy 입니다.

머큐리가 폐인(?)이 되어 가며 '다들 좋다는 얘기만 하는' 녹음실에서 솔로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뿜빰뿜빰뿜빰하는 전주가 잠시 흘러 나옵니다. (아주 오래 전, 서울음반의 상징인 녹색 껍질이 씌워진 카세트 테이프로 열심히 듣고 다녔죠. 곡들의 면면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친구들은 모두 이 음반을 싫어했습니다. 하긴, 이 친구들은 퀸의 Works 앨범도 인정하지 않았죠.^^)

2. 사실 이 앨범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곡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냥 '퀸의 노래'라고 알고 있는 I was born to love you. 이 곡은 나중에 퀸의 다른 멤버들이 반주를 다시 녹음해 머큐리 사후 발매 앨범인 Made in Heaven에 슬쩍(그것도 처음엔 일본 발매분에만! ) 끼워 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 보시면 반주가 두가지. 머큐리 솔로 앨범 버전은 전자악기 중심의 약간 저렴한 듯한 반주고 퀸 리메이크 버전은 처음에 천둥소리가 나면서 메이의 기타 사운드가 울려퍼집니다. 아무튼 뭔가 께름칙한 부분이 있었는지, 웬만한 히트곡은 다 들어 있는 퀸의 그레이티스트 히츠 1, 2, 3 앨범에도 이 곡은 들어 있지 않지요.

(그러니 앞으로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곡'이라고 족보를 제대로 찾아 주기 바람.)

3. Mr. Bad Guy 전주가 잠시 나오는 것 외에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밴드의 곡은 아마도 Dire Straits의 Sultans of Swing 이 유일한 듯.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기 전, 퀸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이 곡의 일부가 잠시 들립니다. Dire Straits는 퀸의 바로 앞은 아니고 앞의 앞 순서죠.


(그런데 이런 것까지 정확하게 재현한 이 영화에서 왜 스토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상.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도, 이 영화에서 스토리가 솔직히 뭐가 중요하겠어. 노래가 주인공이고, 노래가 열일 다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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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요리랄 것도 없는 음식을 야매로 만들어 먹곤 합니다만, 이번 경우엔 노력 대비 효과가 깜짝 놀랄 정도라 올려 봅니다.

위에서 보이는 비주얼을 보면 대략 뭐가 들어갔는지 보이실 겁니다.

이름은 카르토치오(Cartoccio), 이탈리아어로는 '봉지'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재료 리스트 나갑니다.

- 흰살 생선 (도미, 가자미, 광어, 민어 등등. 그런데 검색해보면 연어로 하신 분도 있고, 고등어나 꽁치를 쓰신 분도 있다고 합니다.)

- 마늘 (다진 것. 꽤 많이)

- 올리브유, 식용유, 버터 (대략 적당량)

- 조개류 (바지락, 모시조개, 홍합 등등 아무거나)

- 양파, 토마토

- 그밖의 야채 (뭐든지. 샐러리, 당근, 감자, 아스파라가스, 있으면 있는대로 다)

- 소금, 후추, (기타 허브 종류 뭐든지. 케이퍼, 바질, 딜, 등등등)

야매 요리는 본래 분량 표시가 없습니다. 그냥 다 "대강" 넣으시면 됩니다. 간은 원래 알아서 맞추는 겁니다.

흰살 생선이면 된다길래 마침 마트에서 파는 냉동 가자미살을 썼습니다. 뼈와 껍질을 제거해 바로 쓰면 되는 간편상품입니다. 물론 맛은 생물이 당연히 더 낫겠죠. 여유 되시는 분은 수산시장 가서 도미 잡아 손질해 오시면 됩니다.

500g에 9800원인가 하는데 300g을 해동해서 썼습니다. 올리브유, 소금, 후추를 손가락으로 살살 발라 둔 뒤 조금 휴식시간을 줍니다.

다음 바지락. 이것도 마트 상품으로 2000원짜리 2봉지 사서 해감을 시켰습니다. (해감법은 각자 알아서 하시구요)

싼 바지락이라 그런지 알도 작고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다진마늘과 함께 약한 불로 볶기 시작하면 금세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확 납니다. 이때 버터를 약간 넣으시면 풍미가 더 좋아집니다.

주의사항: 물은 절대 넣을 필요 없습니다. 이 요리 자체가 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렇게 볶다 보면 바지락들이 줄줄이 입을 벌리고, 거기서 물이 나옵니다. 물이 흥건해지면 불을 빨리 꺼야 합니다. 국물이 다 졸아붙을 때까지 볶으면 큰일납니다.

조개를 건져내고, 국물을 따로 모아 둡니다. 이 국물이 제일 중요합니다.

은박지를 넓게 펴고, 가장자리를 접어 그릇처럼 만든 다음, 거기에 재료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합니다.

1. 제일 먼저 은박지 바닥에 버터나 식용유, 올리브유를 바릅니다. 당연히 재료가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섭니다.

2. 맨 아래층은 양파. 오래 조리할 게 아니기 때문에 얇게 썰어야 합니다.

3. 그 다음 층은 감자(있으면). 저는 이번엔 귀찮아서 안 넣었습니다. 아무튼 역시 얇게 써는게 중요.

4. 그 위에 생선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5. 그 위엔 아무거나. 제가 넣은 건 토마토, 올리브, 케이퍼, 조개, 쓰다 남은 다진 마늘입니다.

6. 아까 조개를 볶아 나온 진국을 살살 뿌립니다. 국물이 넘치지 않도록 은박지 주변을 잘 접은 뒤에 뿌리는 겁니다.

7. 그리고 술을 좀 뿌립니다. 저는 맛술과 먹다 남은 소주를 뿌렸습니다.

정상적으로는 화이트와인을 넣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엔 확실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호일을 대략 여미고(아마 위까지 여며지지 않을 겁니다), 위까지 호일로 뚜껑을 만들어 덮습니다.

대강 덮는게 아니라 안에서 국물이 새 나오지 않도록 밀폐하는게 중요합니다.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뿐만 아니라 국물이 끓으면서 올라오는 증기로 재료들이 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와인 향이 온 재료에 배는 것이 포인트라고 합니다.

싸맨 다음에는 본래 오븐에 넣고 찌는 것이 정식 방법인데 솔직히 말해 저는 오븐 사용법을 모릅니다.

저렇게 무쇠 팬 위에 올려 놓고 찌면 됩니다.

(저걸 어떻게 올려 하는 분들, 그러니까 처음부터 무쇠 팬 위에 은박지를 깔고 그 위에 재료를 쌓는 겁니다. 이해 가시죠?)

그리고 약한 불로 찝니다.

찌는 시간은 - 알아서 쪄야 합니다. 저는 생선 두께가 1cm 미만이라서 한 10분 쪘습니다.

주의: 찌는 동안 은박지 위쪽에 손 대면 큰일 납니다. 뜨거워요.

다 쪄 지고 뚜껑을 개봉하면 이렇습니다.

원래 뚜껑을 개봉할 때 나는 향기가 이 요리의 핵심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항상 밀봉상태에서 식탁으로 가져와 개봉한다네요.

화이트와인을 썼다면 이때 효과가 확실했을텐데, 뭐 조개 국물 냄새 자체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이 냄새도 맡을 만 했습니다.

제가 처음 먹어 본 이 요리의 상태도 이랬습니다. 이건 종이 호일에 싸서 오븐에 구운 프로의 솜씨...

아무튼 이걸 먹어 보고, '내가 직접 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한 거였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뭐 생선 300g과 바지락 두봉지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죠.

아무튼 잠시 후 이렇게 됐습니다. 2인분으로 적당한 양이었던 듯.

그런데 저 국물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맛나서.

그래서 적당량의 스파게티 면 투입.

(혹시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봐: 스파게티 면은 따로 삶아서 넣어야 합니다. 저 위에 스파게티 넣고 끓이는 거 아닙니다. ;; )

문득 라면사리라면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을 좀 부어서...

스파게티 면도 타오르는 식욕 앞에선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설거지감이 좀 나와서 그렇지 만드는 법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아무튼 한번 해보고 얻은 교훈:

1. 생선이 좋을수록 맛있을 것이 분명하다. 냉동 가자미로 이 정도라면 생물은 정말 환상적일 듯.

2. 싼 화이트와인을 한병 사 둬야겠다. 요리용으로.

3. 새우를 몇마리 넣는 것도 좋겠다. (오징어...?)

4. 토마토 소스, 청양고추, 타바스코 소스 등도 활용 가능할 듯.

5. 어차피 먹을 거라면 스파게티 면은 좀 일찍 삶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최소한 먹기 시작할 때 물도 끓이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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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이었던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속편 '신과함께 2: 인과 연'이 개봉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신과 함께'의 흥행 열풍이 갖는 의미를 물어보곤 합니다. 물론 흔히 거론되는 의미만 해도 이미 여러가지입니다. 우선 한국영화 최초로 대작 2편을 동시에 제작했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한 용감한^^ 기획입니다. '신과 함께'가 흥행 초대박을 기록하면서 1편만으로 두 편 모두의 순익분기점을 넘기는 쾌거가 이뤄졌지만, 만약 1편이 흥행에서 쓴 맛을 봤다면 2편은 아예... 상상하기도 싫은 대재앙이죠. 또 '판타지=마법사, 요정, 드라곤이 등장하는 서구풍 이야기' 라는 등식을 깨고, 한국 고유의 설정을 기반으로 최초의 본격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뭣보다 웹툰 원작의 폭발력을 입증한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밖에, 얼마전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두 가지 면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얘기했습니다.

첫째. '수출용 상품으로 적절한 한국 영화는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가장 충실한 답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근래 한국의 대형 흥행작들을 살펴 볼 때, 철저하게 한국 로컬 관객들을 노린 '한국형 블럭버스터'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점이 특징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1987'이나 '택시운전사'가 대표적이고, 흥행 참사를 기록하긴 했지만 '군함도'도 개봉 직전까지 '실패할 수 없는 영화'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듯, 일단 소재면에서 철저하게 한국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해외 진출에서는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낳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해 '신과 함께'는 누가 봐도 훨씬 문화적 장벽을 넘기 쉬운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 1편의 모자간 정서 같은 것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전 인류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죠. 그 밖에도 '신과 함께'를 보는데 한국 현대사나 정치 구도에 대한 선이해, 혹은 큰 관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편성이야말로 '신과 함께' 프랜차이즈의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둘째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의외로 천대(?) 받아온 가족영화의 성공입니다. 한국 영화 제작자들에게 왜 가족영화, 즉 패밀리 무비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떤 제작자들은 약간 모욕을 받은 표정을 짓곤 합니다. "내가 그 따위 영화나 만들 사람으로 보이냐"는 속내인 것이죠. 이런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족영화'란 '유치한 저예산 영화'와 거의 동의어로 느껴지는 듯 합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제작자들은 아직도 '한 시대를 관통하는 뜨거운 메시지를 담아 성인 관객들을 격동시키는' 작품들을 선호합니다. 사회성 강한 영화와 폭력물, 메시지가 강한 사극 등이 주로 한국 영화에서 흥행이 잘 되는 장르로 여겨지는 것도 한 몫을 하겠죠.

그런데 굳이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역대 할리우드 영화 흥행 순위를 보면 상위권에는 PG, 혹은 PG-13 등급의 가족 관람을 겨냥한 영화, 즉 패밀리 무비들이 압도적입니다. 왕좌의 게임, 쥬라기공원, 해리 포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죠. 특히 여름/겨울 방학 시즌을 노리는 영화라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패밀리 무비의 수요는 압도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인 '명량'이 동원한 1700만명의 관객 중에도 부모님과 함께 온 초등학생들의 수가 만만찮게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무공의 위업을 다룬 영화'의 교육적인 효과 때문에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부모님들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신과 함께' 이전에도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흥행 대작으로 '국제시장'을 들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 역시 지금 이 글에서 의미하는 패밀리 무비를 겨냥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 라는 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반면 '신과 함께'는 개봉 직후부터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한국영화 대작'임을 대대적으로 알린 작품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속편들을 통해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가족 영화 프랜차이즈 블럭버스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요약하면

1. 최근 한국 흥행작 가운데 드물게 해외 시장에서 수출용 상품으로 가치를 가진 영화다. 

2. 어른들도 흔쾌히 함께 볼 수 있는 온 가족용 프랜차이즈라는 새 시장을 개척했다. 

..도입부가 너무 길었군요. 2부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48번째 귀인인 자홍(차태현. 2부엔 안 나옵니다)의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 차사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 앞에 또 하나의 귀인 수홍(김동욱)이 등장합니다. 자홍의 동생 수홍이 49번째 귀인이므로, 수홍까지 환생시키면 세 차사 역시 천년의 의무에서 풀려나 환생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수홍의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는 세 차사에게 염라대왕(이정재)은 두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당연히) 49일 안에 수홍의 재판을 모두 마칠 것. 그리고 지상에서 많은 차사들을 괴롭혀 온 성주신(마동석)을 제압하고 허춘삼(남일우) 노인을 저승으로 데려오라는 것.

하지만 성주신은 전투력이라면 절대 남부럽지 않았던 해원맥을 한방에 무릎꿀립니다. 게다가 성주신은 "너희 죽을 때 내가 저승사자였는데... 나 기억 안 나냐?"는 충격적인 말까지 던집니다. 과거를 잊은 해원맥과 덕춘은 큰 충격을 받죠. 아울러 수홍은 자신을 지옥 재판정으로 인도하는 강림에게 끈질기게 캐묻습니다. "대체 왜 내 재판에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내 재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신과 함께2'는 해원맥과 덕춘이 어떻게 저승사자가 됐는지, 그리고 성주신과 허춘삼 노인은 어떻게 되는지, 전편에 이어 등장하는 염라대왕과 강림은 대체 무슨 사연인지 세 갈래의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사실 수홍은 1편에서만큼 중요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엔딩에서 그가 뭔가 더 큰 빅 픽처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알려지면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참 많아 조심스럽네요. 게다가 뒤집은 32의 등장은 정말이지... ^^]

1편이 자홍의 죽음, 망자가 저승에서 겪어야 할 재판의 과정, 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평가 등을 보여주며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도달하는 다소 단순한 흐름이라면, 2편에서는 지상과 저승의 이야기가 비틀리고 꼬이며 비슷한 비중으로 흘러갑니다. 특히 2편에서는 성주신-해원맥-덕춘 라인과 강림-수홍-염라 라인이 팽팽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논리적인 얼개도 1편보다는 2편이 더 탄탄합니다.

게다가 1편에 없었던 철학적인 질문이 2편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현세에서 죄를 지은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 죽음, 즉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도록 강제로 차단하는 것'이라면 이미 죽음을 맞은 이후인 저승에서 죄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무엇일까요?

말을 바꿔 보면, 만약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 뒤 저승에서도 한 인격의 정체성이 유지된다면, 그래서 그 인격이 소멸되지 않고 존재를 이어간다면, 영원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존재를 가장 괴롭게 할 형벌은 무엇일까요? 불구덩이? 얼음 벌판? 매일 날아와 심장을 파 먹는 독수리? '신과 함께 2'는 한 인간을 천년 동안 괴롭힐 수 있는 신선한 방안을 제시합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인간으로부터 레테 여신의 선물을 빼앗는다는 것인데요, 그게 어떤 것인지는 직접 영화를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  

1편에 비해 2편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주지훈의 매력 발산입니다. 1편에서도 나름 멋졌던 해원맥은 2편에서 고려 최강의 무사, 여진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흰 삵' 으로 변신해 여심을 강타합니다. '뇌는 없고 행동력만 최강인' 현재의 해원맥에 비해, '흰 삵' 버전의 주지훈은 쓸쓸한 눈빛의 츤데레 검객,  즉 고전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예고편 2초 등장 만으로도 2편에 대한 흥미를 100포인트 이상 상승시켰던 마동석의 근육미(?)도 열일을 합니다. 마동석 표 코미디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마동석은 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열연을 펼칩니다. 마동석이 아니라면 누가 했어도 '이렇게 적절할 수' 없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신과 함께 2'는 전편에 비해 손색 없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의 도가니에 관객을 집어던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편의 강렬한 결정타 - 많은 지식인들이 '신파'라고 짜증스러워했던 -가 2편에는 없고, 전반부 수홍의 발걸음이 좀 무겁다는 점에서 2편보다는 1편이 더 가슴에 와 닿지만(개취입니다)이미 1편을 보신 분들은 2편에 올라타지 않을 재간이 없겠죠. 뭣보다 2편을 보시면 다시 3편을 기다리게 될 겁니다. 벌써 2편은 개봉일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군요.

1편도 그랬지만 '신과 함께' 시리즈의 관람이란 행위는 전통적인 영화 관람이라기보다는 롤러코스터 탑승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그 흐름에 저항하면 턱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두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저 새까만 곳에서 떨어지는 청룡열차에, 독수리요새에 몸을 맡기고 그 아찔함을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원해집니다.

P.S. 그런데 이미 나오기로 했다는 3편은 언제쯤 개봉? 아무래도 내년 여름은 힘들겠죠? (염라는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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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며칠 전에 냈던 문제의 정답과 관련된 해설입니다.

혹시라도 "어, 나 퀴즈 좋아하는데, 퀴즈라면 풀어봐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신작 '열두 발자국'을 읽다가 떠오른 예수와 십자가의 비밀 http://fivecard.joins.com/1387

이 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라면 그냥 아래 글을 계속 읽거나, 그냥 나가셔도 됩니다.

참여는 겁나게 저조했지만 아무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으니 답을 공개합니다.

 

일단 시간 제한도 없고, 공간 제약도 없는 퀴즈에선 검색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문제를 내는 사람도 그걸 전제로 문제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겠죠. 이 문제를 이미 머리 속에 있는 지식만으로 해결하려 하셨다면 거기서 이미 자격 미달입니다. 세상 그렇게 쉽게 살려 하시면 안 됩니다.^^

구글에는 이미지 검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어진 이미지를 넣고 검색을 해 봅니다.

 

 

사실 별 쓸만한 결과를 주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뒤에 있는 배경이 에펠탑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쓸데없는 정보가 먼저 나옵니다.

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가면,

 

 

사진에 있는 다섯 명의 촌스러운 옛날 남자들을 Duran Duran 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물론 총기 있는 분들은 이 페이지를 죽 넘기다가,

 

 

이런 페이지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주어진 사진이 Duran Duran 이라는 그룹이 007 시리즈 중 하나인 A view to a kill 이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을 때의 모습이라는 걸 가르쳐주는 웹 페이지입니다.

물론 여기까지 한방에 도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단계, 그러니까

google 에서 duran duran과 eiffel tower 를 한꺼번에 입력하면 결국은 A view to a kill 로 연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약간 돌아 오긴 했지만 이제 출제자가 원하는 것이 바로 영화 A view to a kill 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체 십자가와 성 요한에 대한 글과 무슨 관련이 있어서 저 영화가 떠올랐다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키워드를 몇개 추려서 조합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1. A view to a kill + 정재승

2. A view to a kill + 열두 발자국

3. A view to a kill + Salvadore Dali

4. A view to a kill + St. John

(극적인 효과를 위해 순서를 4번으로 배치했지만 사실 정상적으로는 4번을 가장 먼저 검색해 보는게 답이겠죠.)

 

 

이걸로 끝.

로저 무어가 주연한 007 시리즈 영화인 A view to a kill 에는 St. John 이라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영화에서 로저 무어가 쓰는 가명이 St. John Smythe 입니다. 그런데 발음이 매우 특이합니다. 세인트 존 스미스라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름인데, 실제 발음은 '신 진 스마이드' 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로저 무어가 초대장에 쓰인 이름을 읽지 못하는 직원에게 '스마이드, 신진 스마이드' 라고 정정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이 장면이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007 영화에서 지켜지는, '007은 가명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호텔 예약 등은 가명으로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 눈 앞에서 이름을 밝혀야 할 때 우리의 007은 거의 언제나 느끼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보온드, 제임스 보온드' 라고 실명을 밝혀 왔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다 그냥 그렇다 치고.)

어쨌든 그래서 정답은,

"St John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영화 A view to a kill 에서 로저 무어가 사용했던 가명인 'St. John'이 생각났다"

입니다.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

그럼 제가 여기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이름은 뭔가요?" 같은 문제를 낼 거라고 기대하셨단 말입니까?

뭐 아무튼 이 책들에게 지속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차이나는 클라스 이벤트 http://fivecard.joins.com/1388  는 아직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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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질문 못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선 똑똑한 질문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질문이 건방지거나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꼰대들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비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 갔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놓을 시도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런 분도 나오고

이런 분도 나왔습니다.

물론 이런 분도 나왔죠.

그리고 판이 열렸습니다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죠.

영특한 손님들도 많이 왔습니다.

가슴 떨리는 손님도 왔었고,

아무튼 판이 점점 커지고

주제도 다양해졌습니다.

내용은 점점 더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이런 강연들을 한번 방송으로만 보기엔 아쉽다는 의견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책이 나왔습니다.

60여회를 진행하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명강연이었지만, 그 중에서 일단 아홉 분의 강연을 먼저 담았습니다.

이름들만 봐도 한국 지성계의 에이스들이십니다.

프로그램의 특징에 맞게 강연을 질문/응답의 구조로 구성했습니다.

또 차이나는 클라스의 특징인 화려한 도해 CG들도 책으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시청자들이 보시는 강연은 한시간 내외지만, 실제 녹화장에서는 네 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물론 강연의 고갱이는 방송본에 고스란히 담깁니다만, 간혹 분량 때문에 빠지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책에는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들도 함께 수록됐습니다.

지식에 대한 갈증을 이렇게 시원하게 풀어주는. 차이나는 클라스 제1권,

다음 질문에 답을 주시는 분들 중 3분을 추첨(!) 해서 책을 보내 드립니다.

본래 퀴즈를 낼까 했지만, 요 바로 전번 퀴즈 이벤트 참여가 저조한 탓에 일종의 앙케이트로 전환합니다.

문제 나갑니다.

 

1. '차이나는 클라스'의 가장 좋았던 강연은? 그리고 그 이유는?

2.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앞으로 들어 보고 싶은 강연 주제나 강사는?

3. '차이나는 클라스'에 느끼는 아쉬움이나 기대, 조언이 있다면? (없으면 안 쓰셔도 됩니다)

 

위 문항에 대한 답과 함께 본인의 실명, 그리고 연락처 를 담아서 fivecard@naver.com 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께 책을 드리면 참 좋겠지만, 보내주신 분들 중 3분을 추첨해 책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모 인원이 많아지면 출판사에서 드리는 책 수를 늘릴 수도 있겠죠? ^^ 열심히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기한이 빠졌네요. 기한은 이번주 일요일(15일) 밤 11시 까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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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느 한 순간, 정재승 교수님의 신작 '열두 발자국'을 읽다가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제목대로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일곱번째 발자국, 즉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는 여러분들이 어디선가 익히 보셨을 유명한 그림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네. 많이 보시던 그림이죠.

살바도르 달리 의 1951년작,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 입니다.

(책과 제목을 다르게 쓴 이유가 있습니다. 조금 더 보시면 알게 됩니다.^^)

컬러로 보시면 이런 그림입니다.

 '열두 발자국'에서는 이 그림을 창의적 발상을 설명하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를 그려 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우리가 많이 보던, 정면에서 보는 십자가와 거기 매달린 예수님을 그릴 겁니다. 화가들의 그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십자가와 예수를 그린 수만장의 그림 가운데 99% 이상은 아마 정면에서 본 예수님의 모습일겁니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혁신적인 구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 구도는 하나님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저 높은 곳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을 형상화 한 듯한 구도인 것이죠.

상당수 해석자들은 이 구도가 바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어제 처음으로 이 그림의 제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Christ of Saint John of the Cross. 묘한 제목입니다. 한글로는 뭐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대체 저게 무슨 뜻인가 검색해 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다짜고짜 영어로 세인트 존(St. John), 즉 성 요한 이라고 하면 1차적으로 복음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 을,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세례 요한 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요한이라는 이름은 성경시대나 지금이나 넘쳐 나기 때문에 '성 요한'은 한두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듣도 보도 못했다는 것은 제 기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저 그림 제목에 나오는 성 요한은 바로 이 스케치를 남긴 사람의 이름이고, 카톨릭에서는 매우 유명한 성자였습니다. 이 분의 이름은 바로 '십자가의 성 요한 Saint John of the Cross' 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이 저 스케치를 남긴 것은 대략 1574~1577년 정도로 추정되며, 그 당시에도 '아니, 예수님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다니!'라는 시선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여겨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의 유물이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소중한 보물로 간직되어 왔고, 어느날 저 스케치를 본 살바도르 달리가 저 구도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유명한 십자가 그림을 남긴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그 유명한 '십자가의 성 요한' 님입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이 분은 1542년에 태어나 1591년에 돌아가신 스페인의 성직자입니다. 종교개혁의 물결 속에서 오랜 전통의 카톨릭 교단은 개혁의 필요성에 맞닥뜨리게 되었죠. 마침 그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 로욜라의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받은 요한님은 카톨릭 개혁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아빌라의 테레사와 함께 맨발의 가르멜(Carmelite) 수도회를 일으키게 되고... 뭐 다양한 업적을 남기시고 카톨릭 교회의 성인에 오른 분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분은 왜 '십자가의 요한 John of the Cross'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요? 혹시 저 유명한 '위에서 내려다 본 예수' 스케치 때문에? 이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것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일단 밝혀졌습니다. 이 분이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 것이 1568년. 저 그림을 그리기 전의 일입니다. 그럼 혹시 십자가에 매달려서 순교라도? ...아닙니다. 이분은 단독(丹毒)에 걸려서 사망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십자가의 요한의 일생을 소개한 글 에 답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면 볼수록 십자가의 요한, 대단한 분입니다.)

원문은 http://w2.vatican.va/content/benedict-xvi/en/audiences/2011/documents/hf_ben-xvi_aud_20110216.html 

For several months they worked together, sharing ideals and proposals aiming to inaugurate the first house of Discalced Carmelites as soon as possible. It was opened on 28 December 1568 at Duruelo in a remote part of the Province of Avila.

This first reformed male community consisted of John and three companions. In renewing their religious profession in accordance with the primitive Rule, each of the four took a new name: it was from this time that John called himself “of the Cross”, as he came to be known subsequently throughout the world.

그러니까 무슨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순수했던 원시 기독교의 믿음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에서 스스로를 '십자가의 요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 분이 모셨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 역시 스스로 '예수의 테레사 Teresa of Jesus' 라고 불렸다니, '십자가의 요한'과 손발이 척 맞는 작명이네요.

결론적으로 저 그림의 제목은 한글로 하자면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글에 밝은 사람들에겐 뭔가 어색한 제목이지만, 저 제목이 붙은 이유를 생각하면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기까지 쓰고 나서 다시 한번 후회되는 것은...

남들은 12회나 기념비적인 명강의를 해서 이런 책까지 쓰고 있는데 너는 지금 이 시간에 블로그에 이런 글이나 쓰고 혼자 씩 웃고 있다니 이게 참 할 말이냐... 라는 자괴감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도 이 글을 누가 읽고 공감해 주리라는 기대보다는, 대체 저 그림 제목은 무슨 뜻일까,,, 를 알아내는 데 쓴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기록이라도 남겨 두자는 차원인 것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읭?) '열두 발자국'은 참 읽으면 읽을 수록 대단한 책입니다.

대체 뭐 하자는 짓이냐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글 어스를 개발한 존 행크 가 이걸 어디다 써먹을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결국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포켓몬 고 였다는 대목에서는 절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톰과 비트의 결합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얼마전 "만약 아인슈타인에게 자동차 운전자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프로젝트를 줬다면 결코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글을 읽고 그게 그렇구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와 묶어 보니 이런 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무용(無用)의 대용(大用) 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또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려면 빅 데이터가 필수적인데 한국은 빅 데이터는 커녕 데이터 자체가 없다... 이 역시 평소 생각했던 문제지만 이 책에서 읽고 보니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공허함의 뿌리와, 그동안 빅데이터라는 이름을 걸고 혹세무민을 시도했던 몇몇 분들의 얼굴이 새삼 스쳐가는. (왜 그런지는 책에서 확인하시는 걸로.)

아무튼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매우 친숙한^^)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에서 '혁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까지 읽고 보면, 과연 한 사람이 이 방대한 내용을 다 건드릴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경이적인 사고와 지식의 스펙트럼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여기저기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술은 안 드시지만) 이 분을 보고 있으면 혹시 이미 집안에 대필 인공지능 시스템이 완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곤 합니다. 대략 1.4KG 내외, 누구나 비슷비슷한 크기의 뇌인데 어디서 이런 차이가.

(지금 막 뭐라고 항변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이 책에는 '얼굴이 크다고 뇌가 큰 것은 아니다'라는 방어벽이 쳐져 있습니다. 네. 철벽이죠.)

조금 이상한 내용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 생각의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거의 대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만-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P.S. 그리고 이런 책은 가능하면 남들보다 빨리 읽으시는게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써먹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그득하거든요. 어젯밤 술자리에서 상무님을 감탄하게 했던 김대리 의 구라가 이 책에 나오는 얘기라는 걸 오늘 알고 나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시겠어요. 그러니까...

 

 

P.S.2. 그리고 마지막으로 퀴즈 하나.

이 글을 읽는 동안 저는 줄곧 이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번째로 정답을 맞추시는 분에게는 제가 맛난 밥 한끼 정도 사겠습니다. 응모는 여기 쓰시든, 페북에 댓글로 다시든, 트위터에 다시든 알아서. (넌센스 아님. 의외로 쉬울지도...) 노파심에서 단서 하나 달자면, '음반 관계자' 관련은 답이 아닙니다.

키워드 몇개를 조합하시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상품으로 방금 나온 '차이나는 클라스' 1권 단행본도 추가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책도 따로 리뷰가 있을 겁니다.)

자, 분발하세요.^^

 

 

** 요즘 나오는 '열두 발자국'에는 본문의 내용이 수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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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제로 이랬을 리는 절대 없을]

 

"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통역 필요 없지? 지금부터 잘 듣게."

방에 들어서자마자 D는 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뭐라는 거야, 대꾸할 새도 없이 D는 통역을 한쪽 구석 화장실로 몰아넣고 문을 잠갔다. 방 한켠의 디지털 타이머에서 시간이 조금씩 깎여 나가고 있었다. 43:36, 43:35, 43:34...

방에 들어온지 2분도 지나지 않아 이 키 큰 백인 남자와 단 둘만 남게 되고 보니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은은 콜라를 마시고 싶었다.

"은. 퀴즈를 하나 내겠네. 자네는 내가 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나?"

뭐지? 이건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닌가?

"젊은 시절부터 꿈이 대통령 아니었습니까?"

"낫 배드 앤써.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렇게 얘기하면 대통령 되는게 내 인생의 얼티밋 골 처럼 들리잖아. 그런 사람이 꽤 많겠지만 나는 아니야."

이렇게 질문의 여지를 남기고 대화를 주도하는 스타일은 싫다. 은은 잠자코 D의 눈을 바라봤다. 1946년생. 일흔 두 살. 나이는 노인의 초입이지만 장난기 내지 광기는 젊은 사람 같았다. 며칠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단 둘이 있을 때 그걸 물어봐도 될까? D는 은의 마음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대통령을 내 커리어의 마지막으로 삼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나이? 그게 뭐 문제야. 내게 있어 유에스 프레지던시란 그 다음 비즈니스들을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경험일 뿐이야. 유 노, 대통령이란게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역시 그런가. 이렇게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다.

"감동적입네다."

"대통령 임기, 재선 해봐야 8년이야. 특히 자네를 위해선 내가 재선되는게 아주 좋을 거야. 내가 시간 절약을 위해 영상을 하나 준비했어. 길지 않으니까 같이 한번 보자고."

 

4분 정도 길이였다. 그리 잘 만든 영상은 아니었다. 편집은 좀 촌스러운 80년대 감성이었고, 대사는 누군가 영어로 쓴 것을 한국을 떠난지 꽤 오래 된 사람이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이 끝날 때 쯤 은은 눈물이 찔끔 나오려 했다.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은, 잘 듣게. 내가 이걸 다 해 줄 수 있어. 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물론이다. 다 해서 떠먹여 주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열어줄 수 있을 거다.

"자네 나라의 예쁜 비치들마다 자네가 숙박중인 세인트 레지스 처럼 멋진 호텔들을 백사장 삥 둘러 지어줄 수 있어. 아시아의 어틀랜틱 시티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마카오에 질린 중국 갑부들이 떼돈을 들고 바카라 테이블을 꽉꽉 채우겠지. 하지만 이건 공짜가 아니야. 그것도 알고 있지? 자, 나 같은 부동산 전문가가 내 돈을 어디엔가 투자하려면 그 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조금도 불안감이 있어선 안 돼."

"물론입니다. 하지만..."

"말해보게."

"그 핵폐기 말인데요,"

"핵폐기가 뭐가 어쨌다는 건가. 그건 그동안 보고받은 걸로 다 알고 있다고."

이 늙은이, 나도 말 좀 하자.

"솔직히 CVID가 정말로 가능한 건가? 아니라는 거 알아. 심지어 자네는 황해북도 평산에 꽤 훌륭한 유레이니엄 마인까지 갖고 있잖아. 아이 노. 남한처럼 핵원료를 전량 수입하는 나라도 가끔 장부상 보유 물량이 실제 보유량과 안 맞아 난리가 날 때가 있는데, 우라늄을 채굴할 수 있는 나라의 핵원료 잔량을 어떻게 정확하게 체크하겠나. 재주 있으면 갖고 있어 보라고. 하지만 갖고 있다 걸리면 바로 죽음이야. 알지? 중요한 건 '없다'고 자네 입으로 공언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거야."

물론이다. 핵무기의 의미는 갖고 있다고 얼러댈 수 있는 데 까지다. 직접 쓰는 건 정말 최후에나, 아니,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입으로 없다고 선언한 뒤에는 그건 갖고 있어도 갖고 있는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적절한 대답일까?

"제일 좋은 방법은, 그걸 쓸 이유가 없게 만들어 주는 거겠죠."

D의 얼굴이 확 펴졌다.

"부라보. 그거지 그거.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어. 물론 1,2년에 뭐가 확 달라지진 않을거야.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자네가 '내가 그때 이걸 안 했으면 어쩔뻔 했을까'라고 생각하게 해 줄거야. 그걸 위해서 나는 앞으로 한 7년 더 대통령을 할 거고, 그 동안 우리의 사업을 위해 모든 조건을 마련해 놓을 거야. 그 뒤에는 자네랑 사업을 할걸세. 파트너."

"파트너?"

"자네도 아직 젊잖아. 한 10년 더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 그건 자네 선택이니까 강요하진 않겠네. 하지만 말이야, 남자는 일단 돈을 벌어야 해. 돈을."

사실 지금까지 은의 인생에서 '돈'이라는 게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다. 2009년, 화폐개혁 대 실패 때 겁먹었던 아버지와 새파랗게 질린 장성들의 모습을 보고 돈이라는건 양 같은 인민들도 늑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D의 입에서 나오는 '머니'라는 말은 마치 여가수의 비음처럼 끈끈하게 사람을 잡아 끄는 데가 있었다.

"그렇지. 머니. 이 세상에서 아워 헤븐리 파더,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시는 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산의 축적 뿐이야. 그래서 남자는 일단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해. 잠들었을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언제나 돈을 생각해야지. 머니. 유 노, 자네가 좋아하는 그 요다 같이 생긴 포머 차이니즈 체어맨이 얘기한 적 있지. 검은 고양이나 황색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흰 고양이 아닙니까?"

"와튼 스쿨에선 정설만 취급한다네, 파트너. 내가 확인한 바론 중국에는 퓨어 화이트 캣이 없어. 그리고 쓰촨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헤이마오후앙마오(黑猫黃猫)라는 속담이 있다네. 아무튼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혹시 자네 슈퍼마켓이 뭔지 아나?"

"평양에도 마켓 있습니다."

"굿. 그 마켓에 살 물건이 넘쳐 나고, 내 주머니에 그 물건들 살 돈이 있는데 오디너리 피플이 무슨 불만이 있겠나. 분명히 말할게. 돈을 벌어. 자네도 벌고, 유어 피플도 벌어. 그걸로 행복하게 살아. 그럼 자네도 안전하고, 피플도 행복하고, 아메리칸 시티즌도 좋아할거야. 2차대전 이후에 아메리카 합중국은 이 나라 저 나라 수도없이 돈을 퍼 줬어. 근데 한국 빼면 미국 원조 받아서 안 망한 나라가 별로 없어. 나는 한국 사람 DNA를 믿어. 다 잘 될거야."

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조선? 남조선이라면 너무나 잘 안다. 그 흐물흐물하고 설렁설렁하는 것들도 지구상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부지런하단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그런 걸로 따지면 우리 인민들은 상질중의 상질이다. 그것들도 저렇게 잘 벌고 잘 먹고 사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가 있나. 할 수 있다.

"다 좋은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D의 얼굴에 잠깐 긴장이 흘렀다. 무슨 시간?

"지금 그동안 인민들한테 해 놓은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 말을 주워담고 자 이제는 정의의 보검이 중요한게 아니라 인민의 풍요가 진짜로 중요한 거다, 이런 걸 납득을 시킬라문 지금까지 우리가 잘 해왔다. 그러면서..."

"오케이, 아이 풀리 언더스탠. 그러니까 당장 대외적인 합의에 뭔가 구체적인 얘기를 쓰는 건 부담스럽다, 뭐 그런 거지? 아이 노. 돈 워리. 발표문 같은 건 대강 하자고. 진짜 중요한 건 사업이야. 유 노, 우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비즈니스가 뭔지 합의했으면 그걸로 됐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만 알아 둬."

그 다음, 은은 태어나서 가장 무서운 인간의 얼굴을 봤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자네가 실수든 아니든, 뭔가 밑의 애들 컨트롤을 잘못해서 내 비즈니스에 1달라라도 손해를 끼치면, 그 다음엔 진심으로 각오해야 할거야. 명심해. 나 아직 미국 대통령이야. 캐리어와 F35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야."

은은 얼굴에서 싹 빠져나갔던 피가 다시 들어오는 걸 느꼈다. 잠시 쫄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 뭔가 인상적인 말을 해서 국면 전환을 해야지.  

"그럼 일 잘 되면 조단 한번 만날 수 있습니까?"

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엉뚱한 얘기였다. 하지만 D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건 자네 하기 달렸지. 미스터 조단도 훌륭한 비즈니스맨이야. 명예욕도 큰 사람이고. 북한 땅 한 구석에 최초로 건설되는 72홀짜리 컨트리 클럽 이름이 마이클 조단 CC라면 그렇게 기분나빠할 것 같지는 않군."

"어디에 지으면 좋을까요?"

"음... 곧 지어질 NK 디즈니 월드 근처가 어떨까?"

하하하. 타이머는 아직 5분 정도를 남겨 놓고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이 기회에 한미연합훈련 이런 거 중단합시다. 평화의 상징으로 좋지 않습니까. 어차피 주한미군 인제 주둔해 봐야 별로 할 일도 없을테고..."

호오. D는 생각했다. 이건 꽤 날카로운데? 이 아이는 지금 주한미군이 자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이렇게 순진한 데가 있는지 몰랐는걸? 하지만 다음 순간, D의 머리엔 노회한 X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주한미군을 본토로 철수시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할 사람은 X다. 아마 그 주한미군의 가족들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이 아이가 지금 X의 사주를 받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은이 X의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에 왔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D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D는 금세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까짓 거, 지금은 하잔 대로 다 해 주자. 뭐 훈련이야 안 하면 기름 값 굳고 좋지. 이럴 때 면도 살려 주고, 이걸로 M에겐 군 주둔 비용과 관련해 또 다른 계산서를 내밀 수도 있다. 

물론 어떤 경우든, 작은 내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있는 중국의 동향을 체크할 수 있는 뷰티풀 군산 에어 베이스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지금은 모든 것에 살짝 ? 표를 그려 놓아야 할 시점일 뿐이다.

"자네 말대로 하지. 은. 좋은 생각이야. 당장 공동 훈련 취소하겠네. 자, 그럼 기다리고 있는 애들 다 들어오라고 할까?"

 

건물 밖 주차장, 작전차량 안의 P는 D의 말에 헤드폰을 벗었다. 굳이 두 사람이 먼저 만나겠다는 이유가 이런 것이었군. 그렇다고 정말 둘만의 대화가 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우리 CIA를 뭘로 보는 건가.

이 시대의 만남은 결국 D의 치적이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P 자신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D가 왜 그렇게 NK 해결에 매달리는지 P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듣고 보니 그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던 퍼줄이 한방에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까짓 거, 어쨌든 핵을 실은 ICBM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은 미 합중국의 국익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거기까지는 협조다. NK를 위험하지 않은 나라로 돌려놓는 것 역시 OK.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하려면 분명히 내게 잘 보여야 해. D. 왜냐하면 나는 그때 유 에스 프레지던트가 되어 있을테니까. 

 

보좌 인력들의 입장을 기다리던 은은 둘만 있을 때 미처 묻지 못한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D의 머리는 가발일까 아닐까. 가발이라면 어디부터 가발일까. 아 왜 이런게 갑자기 궁금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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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영화가 끝나 갈 무렵, 이 영화, '쓰리 빌보드' 의 악영향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꽤 적지 않은 수의 시나리오 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키보드를 던져 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플롯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진정 신의 축복이기란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 정도로 '쓰리 빌보드'는 대략 근 5년간 본 영화들 가운데 최소한 대본에서만큼은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시작. 

 

살인사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미국 남부의 어느 조용한 읍내. 한 여자가 그 시골에서도 외진 길 쪽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광고판 세 개를 사서 광고를 냅니다. 광고의 내용은,

 

RAPED WHILE DYING

내 딸이 강간당해 죽었어.

 

AND STILL NO ARRESTS?

그런데 아직 아무도 체포하지 못했다고?

 

HOW COME, CHIEF WILLOUGHBY?

윌로비 서장,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가출한 10대 딸이 강간당해 죽고, 불에 타다 만 시신이 발견되고, 그 뒤로 7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도 체포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어머니의 분노가 이렇게 표현됩니다.

 

이 부분까지 보고 나면 관객의 90%는 영화의 방향을 짐작합니다. 이것은 딸을 잃고 분노에 가득 찬 백인 하층민 엄마의 외로운 싸움을 그린 사회성 영화로구나. 이 엄마는 결국 무능하고 나태한 시골 경찰을 질타하고, 어디선가 론 레인저 한 사람이 나타나고, 이 영웅(혹은 반영웅)은 대다수 사람들의 외면 속에 엄마를 도와 딸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정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우수한 관객입니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를 계속해서 본다면 당신의 그 모든 예측이 이렇게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진정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분이 있다면, 지금 바로 키보드 앞에 앉아서 샘솟는 아이디어로 바로 대본을 쓰시기 바랍니다. 정말입니다. 한국의 영화계/드라마 업계는 바로 당신 같은 분을 찾고 있습니다.)

 

사실 글 첫머리에서는 이 작품으로 인해 좌절할 작가 지망생들에 대해서만 썼지만, 반대로 한 두 작품 해 보고 아 난 안 되는구나 하신 분들에게도 이 영화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각본/감독을 겸한 마틴 맥도나의 이전 작품들을 보면 이런 수준의 작품을 써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작 중 제가 본 작품은 '킬러들의 도시(In Bruge)' 하나 뿐인데, 일부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본상으로 별로 뛰어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맥도나 감독의 세번째 장편영화 시나리오입니다. 최소한 세 번은 써 봐야 하실 이유가 또 생긴 셈입니다.  

 

자꾸 다른 얘기로 빠지지만, 이 영화의 리뷰를 쓰면서 줄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건 별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할 말은 딱 한마디. 지금 바로 극장으로 달려가세요. 언제 상영관이 없어질지 모릅니다. 다음주까지... 물론 국산이든 외산이든 흥행용 대작 영화가 없는 3월이긴 하지만, 한국의 극장 상황에선 낙관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지금부터는 스포일러 작렬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여기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은 세 사람. 간판에도 언급된 시골 읍내 경찰서장인 윌로비(우디 해럴슨), 문제의 엄마인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그리고 윌로비의 부하인 꼴통 경찰관 딕슨(샘 록웰)입니다.

 

 

 

세 사람 중 아마도 전통적인 주인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윌로비 서장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꽤 자주 등장하는 미국 소규모 지역사회의 영웅이죠. 굳이 고전 영화로 비교하자면 '앵무새 죽이기'의 아티커스 핀치 변호사(그레고리 펙이 연기하는)같은 인물입니다. 정의감이 투철한데다 두뇌가 명석하고, 딕슨 같은 개망나니도 따르게 하는 이상적인 인간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도 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로서도 밀드레드 딸의 강간 살인 사건은 난제입니다. 수사를 하려 해도 증거도 증인도 없습니다. 시체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되긴 했지만 비교할 용의자가 없는 실정입니다. 

 

반면 밀드레드에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윌로비의 말에 왜 이 동네의 모든 남자, 나아가 전 미국의 모든 남자로부터 DNA를 추출하지 않느냐고 우겨댑니다. 자신이 중시하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선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이를테면 국가 권력이 닥치는대로 민간인의 DNA를 추출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인권 침해 같은)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매우 극단적이긴 하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이익이 주어질 때 내놓아야 할,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편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법입니다.

 

밀드레드의 일방통행적인 생각은, 딸을 잃은 엄마라는 당위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사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밀드레드가 공격하는 윌로비 서장이 평판 좋은 인물인데다 암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밀드레드는 자신이 암에 걸려 있다는 윌로비의 말에도 "그럼 시간이 없을테니 더 서둘러 수사하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진정 비호감 캐릭터죠. 이런 밀드레드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딕슨이 있습니다.

 

 

 

물론 딕슨에겐 밀드레드에 대한 구체적인 미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애당초 딕슨은 스스로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일찍 죽은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그의 성장 과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고, 인종주의를 비롯한 갖가지 편견도 다 어머니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그 결과 딕슨은 엄청난 효자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어머니 외에 그가 믿고 따르는 것은 윌로비 서장 뿐이고, 그 윌로비 서장에게 맞서다 결국 윌로비 서장을 죽게 하는(이건 좀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죠) 밀드레드는 진정 용서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윌로비 스스로 밝히고 있듯, 그의 죽음은 더 지속해 봐야 고통만 더할 뿐인 암 치료의 연장을 피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광고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 때문에 밀드레드를 더욱 비난할 것임을 짐작하고 있고, 그 때문에 밀드레드에게 광고판 임대료를 자신이 지불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당연히 그의 예견대로 밀드레드는 더욱 고립되지만 밀드레드는 서장의 마지막 편지를 공개하지 못합니다. 죽을 사람을,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고 선량한 사람을 괴롭혔다는 죄책감 때문이죠.

 

이 영화는 '인간의 용서와 화해', '다른 인간의 입장에 대한 역지사지', '더불어 살기의 미묘함' 처럼 너무나 기본적인, 심지어 너무 자주 다뤄져서 하품이 날 지경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제껏 관객들이 접해 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관객들을 몰아넣고 절묘한 공감의 체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아울러 그 가운데서도 코미디, 특히 블랙코미디로서의 위치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강점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이야기'와 '유머 감각'은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해 버리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의 추억'과 송강호의 개그가 절대 따로 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쓰리 빌보드'에서는 딕슨이 주로 이 역할을 맡습니다. "아니에요! 열두시까지 들어간다고 했다구요!" "왜? 소금은 원래 상처에 좋은 것 아닌가?" 같은 대사는 너무나 유쾌합니다. (개인적 취향이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겠죠.^^)

 

 

 

이 세 사람을 둘러 싼 여러 마을 사람들은 각각 이 세 사람 중 한쪽 편에 서서 갈등과 웃음을 조율합니다. 특히 '왕좌의 게임'으로 월드스타가 된 난장이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연기하는 제임스는 몇 신 나오지 않지만 이 영화의 색깔을 대변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습니다. 그가 맡은 역할을 '낙관'이죠. 희망이라곤 없는 밀드레드에게 잠시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인물입니다. 역시 같은 역할을 하는 페넬로페(사마라 위빙)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빙 Weaving 이란 이름에서 '혹시?' 하셨다면: 네. 스미스 요원님의 조카딸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대단한 이야기를 봤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누군가로부터 '대체 그 영화는 뭐에 대한 영환데?'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두 마디로 이 영화가 어떤 영화라는 점일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다룬 다른 위대한 영화들, 예를 들어 '타인의 삶' 같은 영화를 설명한다면 '도청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다, 그 사람의 인생에 감화되어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이야기' 처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쓰리 빌보드'를 이런 식으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 어머니가 딸이 죽은 사건을 추적하다가 인생에 눈뜨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던 사람들이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든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이야기'라고 하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특별한 사건이랄 게 딱히 등장하지 않는데도, 놀랍도록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신비로운 요소라 할 수 있겠습니다.

 

라스트 시퀀스.

 

차 안에서 딕슨과 밀드레드는 발견된 악을 스스로 징벌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오히려 덜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그 둘은 이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서로를 지지해 주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습니다. 이 낙관이 너무 나이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이런 마무리를 충분히 싫어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 물론 저 이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맥도먼드와 록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는 것은 시간낭비. 그 밖의 배우들도 눈부십니다. 이 화려한 연기가 맥도나 감독의 대본과 디렉션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작품상, 최소한 각본상은 주어졌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물론 상은 운이죠. 어쩌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게 불운의 시작...

 

 

 

 

 

P.S.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는 라스트 신 직전에 나오는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 = "이봐, 사실 그때 경찰서에 불 지른 건 나였어." "...그럼 당신 아니면 대체 누구겠어?" - 입니다. 아마도 오래 전,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키즈 리턴') 이후 가장 훈훈한 대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 2 이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들을 만한 노래는 아마도 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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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를린 동물원 Zoologischer Garten Berlin 정문이 동아시아식(뭔가 한국/중국/일본/베트남/태국식을 조금씩 합한 듯한 느낌?)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원으로 유명한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샌디에에고? 아사히카와? 사실 내가 동물원을 꽤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베를린 동물원은 무려 1844년에 개장한데다 현재도 전 세계 동물원 가운데 사육 종수 1위라는 기록을 갖고 있는 곳이다.

 

 

위 지도에서 '베를린'이라는 글자 위치가 대략 박물관 섬 정도 되는 지역인데, 통일이 된 지금 사람들은 베를린의 중심이 대략 저 정도 위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쳐도 동물원은 그 중심에서 차로 20분 이내 정도의 위치(저 지도 왼쪽의 붉게 표시된 지역이다).

 

그리고 통일 전에는 이 동물원이야말로 서베를린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베를린에서 가장 부티나는 동네가 바로 이 베를린 동물원 부근인 거다. 지금도 오래된 베를린 토박이 상류층들은 '동물원 동쪽으로는 안 가'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그런 건 동물원에 뭐가 있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고, 동물원은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있었다. 정문까지 걸어서 10분 이내. 그리고 베를린 웰컴 카드로 무료입장할 수 있는 시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마지막날의 비행 스케줄이 오후인데다 베를린은 공항과 시내가 매우 가까워서(정확하게 말하면 초 역에서 가까워서), 오전 시간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베를린 웰컴 패스로 무료 입장할 수 있는 시설 중 하나. 이런데 안 갈 이유가 없잖아!

 

 

 

...해서 호텔 체크아웃 때까지 시체놀이를 하고 싶었던 동행인을 설득,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동물원 구경에 나섰다.

 

그런데 입장 직후부터 뭔가 살짝 꼬이는 느낌을 받았다. 맹수관이 수리중이라는 거다.

 

아니 뭐니 뭐니 해도 동물원은 사자 호랑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그래서 안내판이 인도하는대로, 아쉽지만 사자/호랑이를 볼 수 있는 실내 축사로 향했는데...

 

 

 

이 친구는 아마도 삵쾡이 종류인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끼 사자였던 것 같다.

 

매우 수줍음을 타서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야행성인 고양이과 동물인데 오전에 밖에 나와 있다는게 신기하다 싶더니...?

 

 

바로 옆 칸에 이 암사자 언니가 있었다.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꽤 가깝다.

 

 

사실 동물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맹수 축사는 대개 관람 라인으로부터 동물이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대개 - 특히 고양이과의 큰 맹수들은 - 축 늘어져 있는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누나는 뭔가 아침부터 심사가 뒤틀린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엔 아마도 조반 시간인데 사육사가 늦잠을 자서 타이밍을 못 맟춘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으르렁 으르렁 어흥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철창에 바로 코를 박고 어흥 하는데... 오줌 쌀뻔 했다.

 

이게 실내라 소리가 좀 울려 주는 효과도 있긴 했을텐데, 바로 저 약 2m 거리에서 라이브로 사자후를 들으니 그냥 오금이 저리고 도망가고 싶어지는 거였다. 금세라도 저 철창을 뜯어내고 내 내장을 파먹으러 뚸쳐나오실 것 같은 박력이 느껴지더란 얘기다. 사자후라는 말은 괜히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아무튼 그만치 무시무시했다.

 

아 무서. 생각해 보면 지금도 오금이 저리다.

 

 

그리고 밖에 나오니 표범과 저 이름 모를 새의 조화가.

 

 

37만 제곱미터라고 하는데, 이렇게 도심 한 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아름다울 뿐이다.

 

물론 37만 제곱미터도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사실 규모는 과천대공원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동물과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 크다.

 

이를테면 기린 같은 경우엔 아예 맘 먹으면 슥 나올 수도 있을 정도.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하마관.

 

 

이런 식으로 물 반, 땅 반의 구조다. 물론 땅 쪽에선 봐도 별 게 없다.

 

 

다들 물 쪽에서 하마를 보고 있다.

 

 

사실 누가 봐도 그렇게 환영받을 생김새는 아닌데,

 

 

이 상황에선 다들 너무 반가워한다.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위풍당당

 

 

그리 날렵하진 않지만

 

 

 

어쨌든 물속 모습을 보여주니 다들 너무나 좋아한다.

 

 

 

하마인가 바다코끼리인가

 

 

아무튼 하마 안녕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단히 애착을 갖고 있는 백곰을 보러 갔다.

 

 

애착의 이유를 묻지 말라고

 

 

아 씨원해

 

 

야 콜라 마셔

 

 

응 콜라 어디?

 

 

에잇 젠장

 

아무튼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북극에서 이 정도 거리였다면... 그냥 점심이 되었겠지만.

 

 

그리고 또 매우 감명깊었던 늑대 축사

 

 

이렇게 먹이를 준다.

 

대략 봐도 소고기인 듯 한데 덩어리가 2kg 정도는 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좋은 고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쟤 먹이려면 비용이 장난 아닐 듯.

 

 

아무튼 적나라하게 먹어준다.

 

 

가깝긴 한데 얘도 가끔씩 고기 먹다가 고개 들어 쳐다보면 눈빛이 일반 개 종류는 아니다.

 

 

조금 떨어져서 사진.

 

 

그리고 바다사자관.

 

 

먹이 주고 할건 다 하는데 다른 동물원처럼 특별히 교육받은 애교나 쇼는 없다.

 

뭐 동물 스트레스 주지 않으려는 의도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런 거 보시려면 한국이나 일본 가세요.

 

 

아무튼 5일간 웰컴카드, 뮤지엄 패스 사서 잘 쓰고 다녔다.

 

베를린에선 꼭 필요합니다. 사 두세요.

 

아, 내가 태어나서 택시 이하론 타 본 적이 없어 하는 분들은 없어도 됩니다. 죄송.

 

 

베를린 공항 라운지. 규모는 프랑크푸르트가 훨씬 크지만 이쪽이 더 알차다.

 

음식도 맛나고.

 

 

유럽 대륙 내에서의 항공사 비즈니스석은 사실 좌석 편의성 면에선 아무 의미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풀 플랫, 그러니까 180도로 펴지는 좌석 절대 아니고, 다소 무시하듯 부르는 '우등고속형 좌석' 도 물론 아니다. 그냥 똑같은 이코노미 좌석이 3석 나란히 있으면 그 중 가운데 좌석을 비워 주는 것 정도가 비즈니스석의 현실이다.

(안 타본 사람은 잘 모름)

 

 

그래서 비즈니스석의 유일한 장점이라봐야 '라운지에서 술과 밥을 준다' 정도.  

 

 

독일답게 상당히 양질의 화이트 와인을 준다.

 

 

그렇게 해서 근 열흘간의 프라하/베를린 여행이 끝났다.

 

 

폴커 안녕. 다음에는 좀 더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지역으로 가 봐야겠다.

 

베를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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