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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학생 손수경(24)씨가 '브리튼스 갓 탤런트'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 손(Sue Son)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혹시 한국인일까...'하는 궁금증만 낳았지만 곧 발빠른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 덕분에 한국인임이 밝혀졌습니다. 하긴 중국계 손씨들은 대개 'Son' 아닌 'Sun'이라고 영문 표기를 하죠.

아무튼 손수경씨는 이날 바네사 메이(키가 좀 클 뿐 스타일도 꽤 흡사합니다)의 'Storm'을 신나게 연주해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도를 생각하면 수잔 보일, 샤힌 자파골리, 홀리 스틸 등과 함께 거의 4강 수준인 셈이죠(과대평가인가...). 그런데 그녀의 이 프로그램 출연에는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소재가 개입됐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일단 그 경과를 좀 보시겠습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의리와 기회 사이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I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한국인 손수경씨가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일반인들이 출연해 장기자랑을 펼치는 이 프로그램에서 손씨는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바네사 메이의 '스톰'을 멋지게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손씨는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 뒤 펄쩍 뛰며 좋아했지만 그 뒷얘기가 만만찮다. 당초 손씨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제니 칼릴과 함께 예선에 출연했지만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은 "둘 사이의 불협화음이 너무 심하다. 차라리 혼자 연주를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결국 손씨는 솔로로 다시 도전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추천을 받았지만 대신 친구를 잃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보도에 따르면 손씨는 "제니가 페이스북(한국의 싸이월드와 유사한 네트워크 사이트)의 친구 목록에서 나를 삭제했다는 걸 알게 됐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제니에게 먼저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몫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손씨는 또 "용서를 바랄 뿐이다. 놓치기엔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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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제니의 어머니는 "손씨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내 딸은 애당초 그 쇼에 출연할 생각도 없었다"며 손씨에 대한 비난을 그치지 않았다.

유력한 성공의 기회와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일은 연예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유명 밴드의 보컬 중에는 솔로로 데뷔하라는 제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스타들이 무명시절부터 고락을 함께 한 소속사를 버리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돈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약속의 소중함을 지켜 가끔 세상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최근 종영한 SBS TV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으로 소지섭이 캐스팅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이 말은 그가 주인공을 맡은 뒤로 이 드라마가 1년 이상 표류했다는 뜻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수차례 바뀌었고, 작가와 연출자도 교체됐다.

1년이나 제작이 지연됐다면 일반적으로 배우가 계약금만 챙기고 계약 무효화를 주장해도 책임이 없다. 이 경우 계약금은 그 작품 때문에 흘려 버린 다른 기회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지섭은 영화 '영화는 영화다' 한 편을 촬영했을 뿐, 끝내 '카인과 아벨'로 안방극장에 복귀해 제작사와의 의리를 지켰다.

의리보다 이익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는 이익보다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결국 우리가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도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경우든 정답은 없지만 의리와 기회가 충돌할 때, 일단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 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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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용 칼럼이라는 건 짧은 지면 안에 뭔가 세상에 교훈이 될 얘기를 꾸려 넣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쓰고 나서도 이걸 이렇게 짧게 쓰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지섭과 손수경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손수경씨는 연예인도 아니고, 누구와 계약을 한 것도 아닙니다. 이 글에 두 사람이 나오는 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자는 게 아닙니다. 요즘 이러이러한 일이 화제가 됐는데, 연예계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한 배신도 날마다 벌어진다(굳이 다 예로 들 수는 없지만^^). 그런데 그 중에서도 소지섭이라는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 같은 경우도 있었다... 뭐 그런 얘깁니다.

손수경씨도 꽤 상심이 컸겠지만, 데일리 메일의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댓글로 '진정한 친구라면 제니가 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친구가 잘 됐으면 축하해주는 게 진짜 친구 아닌가? 섭섭하겠지만 용서하라'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더군요.

(댓글은
http://www.dailymail.co.uk/tvshowbiz/article-1176746/Britains-Got-Talent-cost-best-friend-says-violinist-stormed-semi-finals.html)


맞는 말입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손수경씨가 재도전을 결심해서 말하기 전에 제스처라도 그 자리에 있던 제니양에게 '미안하지만 도저히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혼자 해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진짜 친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겠죠.

(손수경씨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는 이쪽에 있습니다.
http://www.sueson.me.uk/sue-son/sue-son-loses-best-friend/)


진짜 친구라면, '내 실력이 모자라서 미안하다. 그래.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해라' 라고 했겠죠. 만약 여기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 혼자 잘 되겠다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너 성공이 그렇게 좋아? 사람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 볼지 생각도 안 해봤니?'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입장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이 상태라면 설사 재도전을 포기한다 해도, 우정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겁니다.

(물론 손수경씨의 경우라면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태라서 진심이 나오기 쉽지 않았겠지만, 실제로는 친구의 심중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아예 물어보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인 거죠. 아, '너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남자가 나타났어. 그 남자와 결혼할건데, 날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행복해지길 기도해 줄 거지?'라는 식의 배신이라면 전화하지 않는게 나을 겁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길게 쓴 글은 '우정을 위해서는 기회를 포기할 수 있어야 진짜 훌륭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역시 중요한 건 역지사지 죠. 만약 x표 3개를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재도전을 하고 싶어 죽겠을 때 친구에게 솔직히 심정을 털어 놓고 허락을 구하는 형식이라도 취해야 했을 겁니다. 반면 그 친구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어 안달복달하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가 혼자 나가 재도전을 하고 싶어 할 때 굳이 그걸 막지 않을 겁니다.

좋은 기회를 잡아 떠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지내느냐도 중요하겠죠. 아무튼 손수경씨가 하루빨리 친구와의 우정도 회복하고, 앞으로 좋은 연주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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