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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봉테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테일의 제왕은 단연 '안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안판석의 드라마는 10억 픽셀의 해상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졸업>. 지나가는 버스의 불빛, 차창에 비친 그림자, 밤거리 편의점 창을 통해 보이는 삼각 김밥 하나도 우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현미경으로 보던 세상이 어느 한 순간, 드론에서 보는 지형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안판석의 드라마다.
 
이제 4회인 <졸업>은 '대치동 학원가를 무대로 한 러브스토리'로 곱게 포장됐지만, 이미 공교육과 사교육의 자리 싸움으로 논란을 겪고 있다. 물론 또 그렇게 삭막한 이야기만은 절대 아닌 것이, 위하준의 오랜 동경이 필터가 되어 정려원을 바라보는 장면, '작가를 사랑하게 하지 못하는 국어교육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같은 문제제기에선 은근히 가슴이 뛴다.
 
단지 이 치열한 세계, '고1 국어 문제 하나의 답이 한개냐 두개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처럼 여겨지는 세계. 이 세계를 소파에 기대 편안히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육아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스친다. 혹시 저 현장 당사자들에겐 이 드라마가 지옥도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강추. #졸업
 
P.S. 정려원과 위하준이 소속된 학원 원장 이름이 '현탁'인 것은 혹시 <스카이캐슬>에 대한 오마주인 것인가 잠시 생각해보기도. (조현탁/안판석 감독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
P.S.2. 제목이 <졸업>인데, 어, 이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인가...? 응 아니야. 신곡이야. ㅎㅎ

[그리고 <졸업>에 대해서는 끝나고 한번 더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홍콩 누아르 전성기에 중국어 영화들을 보다 보면 수시로 등장하는 욕 중에 "왕빠다!"가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말일까 궁금해 했는데, 한자로 忘八蛋, 즉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여덟가지 핵심도덕(예의염치 효제충신)을 모두 까먹은 버러지같은 놈이란 뜻이었다. 제 발음은 '왕바단'.
 
간밤에 끝난 안판석의 <졸업>은 바로 염치와 망각에 대한 드라마였다. 우리는 얼마나 저열해질수 있고, 얼마나 염치 없는 삶에 뻔뻔해질수 있는가. 얼마나 어른의 삶이란 핑계로, 내 몸의 편안함을 위해 내 마음 따위는 가볍게 쓰레기통에 쳐박을수 있는가. 위선도 가식도 귀찮다며 다 떨궈 낸 욕심 가득한 얼굴로 너는 세상을 모른다고 말할 셈인가.
 
<졸업> 속 주요 인물들은 서로 염치를 깨닫게 해주고, 결국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차린다. 비록 드라마지만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라서 다행'이 아니라서 더 다행이란 생각. 두달 내내 정주행하면서 행복했다.
 
 

 
P.S.수많은 명배우들. 정려원과 김정영 배우의 재발견. 진짜 선생님 같은 김송일 배우를 보면서 자꾸 페친 한분이 떠올라 내내 혼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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