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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갓 건너온 한채영을 봤을 때, 이런 보석이 있나 싶었습니다. 특히 국내 여자 연예인들에게서 흔히 보기 힘든 글래머 체형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죠. 조랑말을 보다가 서러브렛 순종 말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한채영은 사진 찍을 일이 있을 때마다 헐렁한 옷을 걸치고 나타났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2년전 드라마 <불꽃놀이> 제작발표회장에 나타난 한채영의 모습은 그날의 헤드라인을 휩쓸어버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쓴 글입니다. 그게 벌써 2년이나 지났군요. 그 사이 한채영은 유부녀가 됐죠.



'초원이 다리'만 백만불 짜리는 아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한 장면. 호텔 펜트하우스로 돌아온 리처드 기어는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에게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렸다"며 측은한 표정을 짓는다. 이때 줄리아 로버츠의 대답. "이리 와요. 내가 '80인치'로 위로해 드릴게요."

여기서 말하는 80인치란 로버츠의 두 다리 길이. 1인치가 2.54㎝이니 말대로라면 한쪽 다리가 1m를 넘는다는 얘기다.

'다리가 아무리 길다 한들 설마 1m나 되랴' 싶기도 하지만 최근 MBC TV 새 드라마 <불꽃놀이> 제작발표회에 등장한 한채영의 위용은 이런 의심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한 위력을 과시했다. 그야말로 '각선미란 이런 것'임을 백마디 말이 필요없게 만드는 무력시위라고나 할까.

동양적인 신체미의 핵심이 목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가녀린 선이라면 쭉 뻗은 각선미는 그야말로 근대 이후 도입된 서구적인 미의 상징. 이런 면에서 한채영의 다리가 주는 느낌은 1980년대 국산 자동차 개발자들이나 90년대 반도체 연구원들이 느꼈을 법한 감회를 줬다. '이제 더 이상 수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물론 한채영에게도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 데뷔작이 2000년 <가을동화>이니 결코 신인은 아닌 한채영. 하지만 데뷔 초에는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포대자루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소속사 스타제이의 정영범 대표에게 물으니 "몸매를 드러내는 걸 쑥스러워한다"는 거였다.

저런 몸매를 쑥스러워하다니. 당시 필자의 머릿속에는 초패왕 항우의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고사가 스쳐갔다. 항우의 라이벌인 유방의 참모들은 전국의 노른자위인 함양을 장악한 항우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공을 세워도 고향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비단옷(錦衣)을 입고 밤길을 가는(夜行) 격'이라는 말을 퍼뜨렸다고 한다. 자랑해야 할 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도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얘기. 이런 맥락에서 세월이 흘러 한채영의 생각이 바뀐 것은 본인을 위해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백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리 얘기를 하자면 제이미 리 커티스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왕년의 명우 토니 커티스의 딸이며 영화 <트루 라이즈>의 주인공 커티스는 한때 스타킹 모델로 나서면서 100만 달러의 '다리 보험'을 들어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도 몇몇 연예인들이 유사한 보험을 들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지만 해당 보험사에 확인해 보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 그저 명목상의 보험일 뿐'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이쯤해서 보험사 하나가 나서 '한채영 다리보험'을 유치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보험료가 부담스럽다면 그 정도는 보험사가 부담해도 되지 않을까? 최근 며칠 사이 '한채영의 다리'에 쏟아진 뜨거운 관심과 회사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별로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 같다. '초원이 다리'만 백만불짜리는 아닐 텐데 말이다.
(신문에 실렸던 글은 여기까지.)




아참,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한채영이 몸매 드러내기를 꺼리던 시절'의 증거사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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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푸대자루같군요.^^





물론 한채영의 생각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채영이 몸매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한 것은, '연기자라면 몸매나 외모보다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박찬호가 '그저 공을 빨리만 던질 수 있는 어깨'를 부끄러워하거나, 차범근이 '발만 빠르면 뭘하나'라고 생각했더라면 과연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타고난 재능이나 천분을 과시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도, 부당한 일도 아닙니다.

오늘의 교훈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을 깨닫는 순간이 진정한 자각이 오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말을 해놓고 보니 그렇게 '자각' 할만한 장점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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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는 사람들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이크 사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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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자이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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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자이크를 말하는 겁니다. 방송국에서 모자이크를 하고 음성변조를 할 때 신문들은 이니셜 기사를 씁니다. 물론 이니셜 기사는 '선정적인 나쁜 기사'의 표본처럼 되어 있긴 하지만, 다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니셜 기사가 없어지면 필요 이상으로 피해를 보실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Start.



배도환씨, 죄송했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신문에 자기 기사가 나오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밥은 굶어도 체면 구겨지는 일은 못 참는다.

그렇다면 연예인과 정치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정치인들은 자기가 이것으로 불리는 걸 영광으로 알지만 연예인들은 이걸 죽기보다 싫어한다. 정답은 바로 `이니셜`이다.

일찌기 JP에서 시작해 DJ, YS를 거쳐 KT, DY까지 내려오는 이니셜은 바로 `저렇게만 불러도 누구나 다 안다`는 지명도의 상징이자 거물의 증거였다. 최근엔 고작 30대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ES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는데, 물론 정치인이 아니긴 하지만 이 두 글자 이니셜의 유구한 전통을 생각하면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반면 연예인들은 이니셜로 불리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IS는 얼마전 조폭 관련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연예인들에 대한 보도를 하며 이니셜을 사용했다. 그중 L씨는 "경찰이 신원을 철저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고 해서 조사에 응했고, 혐의 내용을 전부 부인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내 이름이 마구 나돌고 있더라. 도대체 인권 보호에 관심이 있기나 하다는 얘기냐"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연예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무분별한 이니셜 보도` 운운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여기서도 보듯 이니셜 사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당사자의 신원은 보호하되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내용만큼은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까지 실명을 밝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나쁜 이니셜 보도는 있다. 첫번째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는 이니셜 보도다. 예를 들어 `동남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겸 탤런트 B`라고 쓰려면 차라리 그냥 실명으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두번째는 이니셜을 쓰는 것이 기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쓰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다. 즉 사실이라는 확증도 없는 내용을 기사화하면서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항의를 피해 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이니셜 기사를 말하는 것이다. 심각한 내용보다는 요조숙녀 A양이 드라마 쫑파티를 하다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는 정도의, 장난기어린 정도가 대부분이었긴 했지만 대부분의 연예 기사에서 비난받았던 이니셜 기사는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무튼 최근에는 K씨, M씨, T씨처럼 구체적인 이니셜은 사라지고, 기사 안에 이름이 나오는 순서대로 A씨, B씨, C씨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경우가 익명으로 처리된 연예인들의 신상을 보호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을 가진 분들은 여전히 있었다. 예전에 한 동료 기자는 이런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이것 봐요, 이기자, 아니 왜 이니셜로 기사를 써서 사람을 귀찮게 해."

"저희는 선생님 기사를 이니셜로 쓴 적이 없는데요."

"글쎄 며칠 전에 A양이 B군이랑 어쩌고 저쨌다고 기사가 났다면서?"

"예, 그런데요?"

"사람들이 죄다 날 보고 난리야. 당신이랑 안문숙이랑 사귄다고 신문에 났던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하던 사람은 바로 배도환. `B군 맞잖아, 나, B군` 하던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항의받던 기자는 물론,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모두 웃다가 쓰러져 버렸다. 안문숙씨, 배도환씨, 사소한 일로 가끔 귀찮게 해드린 데 대해 업계 종사자로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p.s. 이 글을 쓰고 났더니 나이 어린 시청자들은 '배도환씨가 누구에요'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니, 국민배우 배도환씨를 모른단 말입니까.

바로 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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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의 어린이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배도환씨의 사진을 보니 웬만한 사진은 모두 어린이를 안고 있군요. 정치인의 특징 중에는 '사진찍을 때는 무조건 가까이 있는 어린이를 덥썩 안아든다'는 것도 있는데, 이분도 기질이 좀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늘 '이니셜이 소용없는 연예인'으로 통하는 가수 겸 탤런트 B군(RAIN), 안재욱씨, 배용준씨 등 여러 A군과 B군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한가지만 더. 신문에 가수 J양 혹은 가수 J라고 나오면 그냥 이 분인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거 아주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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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의 가수 제이입니다. 이 분을 쓸 때는 대개 제이(J)라고 쓰죠. 그냥 J양이라고 나오는 건 이니셜이 J로 시작하는 여자 연예인의 신원을 가리기 위해 쓴 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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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마돈나’ 꿈꾸며 일본으로
가수 이효리
송원섭 | 제12호 | 20070602 입력
 사진 뉴시스 


가수 겸 엔터테이너 이효리가 바다를 건넜다. 3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리는 ‘SG 워너비’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 20여 분간 무대에 선다. 4일에는 효리 자신이 주제가를 부르고 주인공까지 맡은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유료 시사회도 열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효리의 하이라이트를 일본 관객과 연예 관계자들 앞에 펼쳐 보이는 셈이다. 양쪽 모두 티켓은 매진됐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은 상대 국가의 어떤 사물을 소개할 때 자국의 것에 비교해서 설명하곤 한다. 고도(古都) 경주를 설명할 때 일본에서는 ‘한국의 교토’라고 하고, 요코즈나(橫綱ㆍ일본 씨름인 스모의 최고 지위)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도 흔히 ‘일본의 천하장사’라고 말한다.

한국에 이효리가 있다면 일본에는 고다 구미라는 여가수가 있다. 2005년과 2006년 일본 골든디스크 대상을 2연패한 고다 구미는 가창력도 수준급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인기의 원천은 과감한 노출을 피하지 않는 섹시하고도 역동적인 이미지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두 가수는 그래서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각각 ‘한국의 고다 구미’와 ‘일본의 이효리’로 불릴 때가 많다.

그 ‘일본의 효리’ 고다 구미가 지난해 6월 전남 담양에서 열린 ‘아시아 송 페스티벌’ 참가차 내한했을 때 누군가 “한국의 이효리와 비교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좋다’도 ‘나쁘다’도 아닌, “한국 연예인과 비교하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였다. 그래서 현장에선 “고다가 이효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사실 이효리는 이번이 첫 번째 공식 일본 프로모션이다. 지난해 4월 케이블TV M.net의 일본 개국 축하 공연차 다른 가수들과 함께 한 차례 도쿄 무대에 선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인터뷰도, 집중 조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연예계가 이효리에 대해 보인 관심은 적지 않았다. 올해 국내 무대에 서기 시작한 소녀가수 윤하는 “일본에서 활동할 때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효리 언니에 대해 묻는 사람이 단연 많았다”고 털어놨다.

최근 국내 활동 성과가 성에 차지 않았던 이효리는 과연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일각에서는 이효리를 ‘한류의 미래’라고 보기도 하지만, 계은숙 이후로 한국 여가수가 일본에 연착륙한 적이 없다는 우려 섞인 비관론도 있다.

고다 구미가 불편해한 것은 자기는 ‘일본의 이효리’가 아니라 ‘일본의 마돈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효리 역시 지향점은 ‘한국의 마돈나’. 효리가 다시 바다를 건너올 때쯤이면 누가 ‘아시아의 마돈나’인지 판가름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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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인간, 이눔시키, 왜 정신 사납게 날아다녀?"

영화배우 김수미씨가 전면에 나섰다. 한국 영화계를 덮친 ‘거미 인간’과의 한 판 승부다. 김수미 주연 영화 ‘못말리는 결혼’이 10일 280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좀 외로워 보인다. 무려 800개 상영관을 장악한 외화 ‘스파이더맨 3’의 기세등등한 모습 앞에서 웬만한 한국 영화는 죄다 개봉을 미루거나 피했기 때문이다.

김수미씨로서는 오랜만에 “내가 주인공”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만한 작품을 내놓은 참인데, 어쩌다 보니 한국 영화의 명예를 건 전사가 돼버렸다.

그가 드라마건 영화건, 단독 주인공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을까? 있긴 있었다. 1982년 이상언 감독의 영화 ‘화순이’에서 그는 타이틀 롤을 맡았다. 당시 방송되던 MBC TV 드라마 ‘새 아씨’에서 아씨 김영란을 모시는 몸종 화순이 역을 맡았는데, 이 수다스럽고 조심성 없는 캐릭터가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아예 화순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된 것이다.

이때를 빼고 그는 항상 조연이었다. 물론 조연이되 MBC TV ‘전원일기’의 일용엄니처럼 주연보다 인기 있는 조연인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항상 그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반면 영화 ‘못말리는 결혼’은 김수미에 의한, 김수미를 위한 영화다. ‘가문의 부활’과 ‘가문의 위기’에서도 비중이 작지 않았지만 ‘못말리는 결혼’은 김수미를 빼면 아예 영화가 이뤄지질 않는다. 대체 그녀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출연한 최근 히트작들인 ‘가문…’시리즈와 ‘맨발의 기봉이’의 시나리오 작가 김영찬씨는 “김수미씨의 출연이 결정되고 나면 최소 두 번은 시나리오를 고치게 된다”고 말한다. 연습 리딩 때 김수미의 애드리브가 터져나오고, 이 즉흥 대사를 주워 담아 대본을 수정한 뒤 다시 현장에서 김수미의 아이디어를 추가한다는 얘기다.

‘가문의 부활’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홈쇼핑 신은 대부분 그가 즉석에서 쏟아 부은 애드리브의 잔치다. 그는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입심을 뽐냈는데 사실 이런 식의 토크도 어찌 보면 김수미가 원조다.

중년이 지나 ‘낼모레 환갑’인 이 배우에게 책(대본)이 쌓이는 이유는 많다.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말맛’,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힘 등. 지난해 MBC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에서 이사벨 역을 맡아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는 이 배우는 “내 라이벌은 김태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줄도 안다.

과연 김수미는 이번에 만난 스파이더맨에게는 뭐라고 일갈을 날릴까. “이눔시키, 왜 정신 사납게 날아다녀? 시커먼 거 뒤집어쓴 건 또 뭐야? 한 번 지대로 맞아볼 텨?” 하면서 제대로 맞상대를 해줄 것 같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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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 - 160만을 넘지는 못했지만 140만까지 선전하면서 그나마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살짝 지켰습니다. 배급사인 롯데까지도 시네플렉스 롯데시네마의 상영관을 뽑아 가는 상황이었으니 그만하면 선전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과연 김수미의 원맨 쇼 외에 무엇이 더 볼게 있었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도 대개는 짐 캐리가 유일한 볼거리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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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몇 글자 안 들어가다 보니 넣어야 할 내용을 많이 빠뜨렸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소룡, 600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소머즈와 맞장을 뜨고 A특공대와 5-0수사대를 위협했으며, 프레디 크루거와도 한판 승부를 벌인 남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터프가이 아닙니까? 저런 조건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냐구요? 분명히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존 색슨 John Saxon입니다.

<용쟁호투> 팬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는 없겠죠. 위의 포스터에서 이소룡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사람입니다. 한때 '금발의 사무라이'라고도 불렸던 가라테 고수 색슨은 35년생으로 비록 톱스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와 미국 TV의 액션 시리즈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보인 사람입니다.

아직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잘 모르시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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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흑백영화가 아닌데도 흑백 사진밖에 없군요. 특히 두 사람 다 나온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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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소룡의 영화에서 이소룡에게 맞고 위험에 빠지는 백인 액션 스타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는 80년대에 와서 <람보2>보다 한술 더 뜨는 정글전 액션의 <MIA: Missing In Action>의 히트에 이어 <델타포스> <사일런스> 등으로 한때 할리우드 최고 액션 스타의 위치(요즘으로 치면 스티븐 시걸 쯤 되겠군요)를 차지했던 척 노리스도 있습니다. 바로 <맹룡과강>에서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이소룡에게 신나게 맞던 그 아저씨입니다. 주한미군 출신으로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웠다고 말해 친근감을 더하기도 했죠.

이 형이 바로 척 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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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존 색슨은 얼굴을 보니 누군지 알겠는데 이 사람이 <600만불의 사나이>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는 분, 색슨은 73년 <용쟁호투>에 출연한 뒤 <600만불의 사나이>에 두 차례나 각각 다른 역할로 나왔습니다. 모두 스티브 오스틴을 위협하는 악역이었죠. 그가 첫번째 등장한 에피소드는 74년 2월8일 방송된 Day of the Robot 편이었습니다. 오스틴의 동료와 그 동료를 가장한 로봇의 1인 2역이었죠. 언제나 그렇듯 가공할 힘을 가진 이 로봇은 오스틴을 최후까지 위협하지만 결국 오스틴에 의해 퇴치되고 맙니다.

두번째 출연은 76년 9월22일과 27일 방송된 The Return of the Big Foot I & II. 저번에 말한 사스콰치가 다시 등장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여기서 존 색슨은 오스틴과 소머즈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질 외계인 역으로 등장합니다. 문제가 있다가 보다는 잘 생긴 얼굴인데도 날카로운 눈매 때문인지 색슨은 늘 악역으로만 출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긴 악당 중에서는 항상 중량급 악당이긴 하죠.

<용쟁호투>의 한 장면입니다.




너무 길어져서 원더우먼 등등의 이야기는 좀 나중에 잇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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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분들은 600만불의 사나이에 무려 4회나 출연해 스티브 오스틴과 격돌했던 사스콰치sasquatch를 기억하실 겁니다. 인디언 말로는 사스콰치, 영어로는 big foot이라고도 불리는 이 괴물은 북미 지역에 사는 전설상의 괴물입니다. 히말라야 산지에 사는 설인 Yeti의 북미판 변형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2~2.5m의 신장, 털로 뒤덮인 체구, 놀랍도록 빠른 스피드 등 설인과 사스콰치는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화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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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바로 바야바입니다. 전에도 어떤 분이 '초등학교때는 별명이 사스콰치인 선생님이 있었고 중학교 때엔 별명이 바야바인 선생님이 있었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이 바야바도 한때 놀라운 지명도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두 괴물을 다 보신 분들은 두 괴물이 너무도 흡사하게 생겼다는 걸 느끼셨을겁니다.

사실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바야바의 원제는 'Big Foot and Wild Boy'였거든요. 그러니까 소년과 함께 나오는 저 털복숭이 괴물이 바로 빅풋, 즉 사스콰치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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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한국에서는 저 드라마의 제목이 <바야바>였던 걸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대체 왜 본명과 다른 이름을 써야 했는지... 글쎄, 굳이 해명을 하자면 '아스트로징가'가 '짱가'가 됐듯, 그냥 원제와는 다른 이름을 붙여 보고 싶었던 누군가가 방송국 간부 중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정말 왜 빅풋이 바야바가 됐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사스콰치는 76년 2월 The Secret of Big Foot I & II로, 76년 9월엔 Return of the Big Foot I & II로 시청자들을 만납니다. 여기서의 사스콰치는 외계인들의 창조물이었죠. 첫번째에는 오스틴의 적 개념이었지만 두번째에는 아예 대놓고 협력을 하죠. 두번째 나올 때엔 소머즈까지 합류를 합니다.

그럼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실 분들에 대한 대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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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더 자이언트는 처음 에피소드에서 사스콰치 역을 맡았습니다. 뭐 빨리 뛰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2m20, 200kg의 앙드레는 글자 그대로 살아 있는 사스콰치나 마찬가지였죠. 그저 털 코트만 입으면 완벽한 분장이 됐을 겁니다. <프린세스 브라이드>며 <코난2>에도 출연할 정도로 연예계와 친근했던 성격 좋은 앙드레에게는 좋은 부업거리였겠죠.

프랑스 출신인 앙드레를 미국으로 데려와 WWF 무대에 세워 헐크 호건과 맞붙게 한 것은 흥행의 귀재 빈스 맥마흔이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앙드레의 실제 키는 6피트10인치(약 2m8)에 불과하지만 맥마흔은 그의 키를 7피트 4인치(약 2m22)로 부풀리고 무적의 거인으로 홍보했다고 합니다.

앙드레에 이어 2대 사스콰치 역할을 한 사람은 신장 2m5의 배우 테드 캐시디였습니다. 이 사람은 70년대 초 TV판 아담스 패밀리에서 거인 삼촌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사스콰치는 외계인의 창조물이었지만 회의론자들은 이 동물의 존재를 지극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봅니다. 일단 가장 유명한 사스콰치의 촬영 화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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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조작된 것이라는게 이제는 주류 의견이기 때문이고, 사스콰치의 존재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가 지극히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긴 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는 히말라야 주변의 주민들이 예티를 잡아서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덤을 파 본 결과, 기골이 장대한 백인의 유골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살갗이 비정상적으로 흰 털복숭이 인간을 발견을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라면 자신들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해도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유명한 600만불의 사나이와 사스콰치의 대결 장면입니다.

 

쓰다 보니 해야 할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적의 금성우주차, 가짜 소머즈, 사이보그 개 맥스, 그리고 얼굴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펨봇... 아무튼 남는게 세월이니 천천히 반추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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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99년 영화 <카라>의 한 장면입니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연출하고 송승헌 김희선 김현주 등 호화 출연진이 출동했는데도 흥행에서는 참패한 비운의 영화죠.

얼마전 이효리가 방송에서 고교시절 강타를 알고 지낸 이야기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톱스타들이 데뷔하기 전에 서로 알고 지낸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거주지역이 비슷한 경우에는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맞을 겁니다. 한혜진과 송혜교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서 미모 대결을 벌인 얘기도 유명하죠.

물론 안면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관계일리는 없습니다. 성시경의 세화고 선배인 싸이는 학교 다닐 때 주먹 깨나 쓰는 친구들을 시켜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시경을 '잡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써 본 글입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톱스타가 되어 다시 만난다면?

톱스타 A와 역시 여성 톱스타인 B에게는 사실 남들이 모르는 비밀 하나가 있다. 바로 어린 시절 함께 발가벗고 물놀이하던 친구 사이라는 것. 이들은 자신들의 우정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우정이 사랑으로 바뀐다…?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스타들 중에서도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던 사이가 아주 없지는 않다. 국가대표급 미남 미녀라고 할 수 있는 송승헌과 김희선이 한 동네 친구라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까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얘기였다. 송승헌이 나온 영훈고는 미아동, 김희선이 나온 혜성여고는 하계동에 위치하고 있어 한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송승헌은 "어린 시절부터 김희선이라는 예쁜 여학생이 있다는 사실은 인근 남학교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서로 아는 친구들이 있어 어린 시절 몇 차례 얼굴을 마주치곤 했다"고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물론 김희선은 고2때인 93년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했으므로 당시 그냥 일반인이었던 송승헌과는 신분의 격차(?)가 있었던 셈. 송승헌도 96년 MBC TV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을 통해 방송에 데뷔한 뒤 지금의 톱스타로 성장했으니 결코 짧지 않은 이력을 자랑하지만 이들은 지난해 1월 방송된 MBC TV <슬픈 연가>에 캐스팅되기 이전까지는 함께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송승헌은 군 면제 파문으로 빠져나갔고, 송승헌의 역할은 연정훈이 대신 하게 됐다. 이들이 함께 <슬픈 연가>를 촬영했더라면 혹시 어떤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효리는 최근 동갑내기인 신화 멤버 김동완과 고교시절 소개팅을 했던 사연을 공개했다. 이효리가 서문여고, 김동완이 휘문고 출신이니 이들 역시 '강남 8학군'이라는 같은 커뮤니티 출신.

이효리는 일찍부터 '서문여고 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소개팅은 김동완이 '이효리를 소개시켜 달라'고 친구들을 졸라 이뤄졌다. 당시 김동완은 록 그룹 멤버로 활동하며 연기자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라 가죽 바지 차림으로 소개팅을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효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김동완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만나자마자 반말로 '네가 효리냐? 네가 예쁘다기에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며 천연덕스럽게 반말을 하는 태도에 질려 그날 이후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과거의 비화를 소개했다.

김동완은 이때부터 연예인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효리가 핑클로 데뷔한 것은 국민대 연영과 진학 뒤의 일. 만약 이효리가 나중에라도 김동완의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이것 역시 그저 상상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를 따지자면 세븐과 박한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안양예고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연예계에 데뷔한 것과 동시에 열애설의 주인공이 됐다는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본인들은 '별 사이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하지만(물론 10대들이 사귀었대봐야 무슨 일이 있었을까마는)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 이들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떠돈 것도 2002년 월드컵 현장에서의 응원 광경 사진, 그리고 안양예고의 소풍 기념 사진 등 인터넷에서 떠도는 온갖 사진마다 두 사람이 바로 옆에 꼭꼭 붙어있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들 역시 앞날이 어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이다.

이런 동화가 현실이 된 케이스라면 여의도중학교 선후배간인 손지창-오연수 부부의 스토리. 평소 너무 친해서 '혹시 사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던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잘 살고 있는 이야기처럼, 어린 시절의 친구가 함께 스타가 되어 맺어지는 순정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선가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연예계에 대한 흥미를 부풀리는 요인 중 하나다.

200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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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주간 <프라이데이>에 쓴 첫번째 칼럼입니다.

당시는 WBC가 한창일 때라 야구 열기가 뜨거웠죠. 마침 ESPN 연예인 야구리그도 시작됐고, 실력으로 한국 연예인 야구리그의 최고 선수들은 누군인지 뽑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야구기자를 거친 만큼 야구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터라 말이죠.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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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휩쓴 한국 야구의 위력이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다. 하긴, 그럴 만 하다. 한국인의 야구열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프로야구 리그는 물론이고 연예인들이 주축이 되어 뛰는 전 세계 유일의 '연예인 야구 리그'가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케이블 TV 스포츠채널 MBC ESPN은 요즘 주말마다 연예인 리그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다. 정준하 이휘재 유재석 등이 주축이 된 '한', 박상원 김태균 이종원 등의 '조마조마', 강성진 손무현 정웅인 등이 뛰는 'CRP', 그리고 양상문 김용철 등 왕년의 스타들이 나서는 'MBC 올스타(아나운서-해설위원 팀)' 등 4개 구단이 매주 2경기씩을 펼친다.

이들 외에도 연예인이 주축을 이룬 팀으로는 안재욱 김건모 이성진 등이 주축인 '재미삼아'와 장동건 주진모 정우성 조인성 등 초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플레이보이스'가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두 팀이 MBC ESPN 리그에는 참가하지 않게 됐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장 역사가 오랜 한과 재미삼아의 라이벌전은 '연예인 야구'를 대표하는 명승부로 꼽혔다.

그렇다면 연예인 야구계를 뒤흔드는 스타플레이어들 중 베스트9은 과연 누구일까. 이쯤에서 '연예인 드림팀'을 한번 뽑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 싶다. 경기 결과가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야구의 생명인 통계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각 구단 관계자들과 상대 팀 선수들의 평가에 따라 포지션별로 베스트 플레이어를 꼽아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연예인 야구계 최강의 에이스는 함정엽 지티비엔터테인먼트 대표(CRP). 차승원 유지태 허준호 김소연 등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함대표는 서울고 재학시절 시속 154km를 던져 1년 아래인 부산고의 박동희와 함께 80년대 중반 고교야구계의 양대 강속구 투수로 군림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한양대 진학후 부상으로 야구계를 떠나 매니지먼트계로 진출했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 <웰컴 투 동막골>의 장진 감독(CRP)과 의기투합, 연예인리그에 뛰어들었다. 물론 왕년에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으니 연예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도 시속 13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상대 팀들이 일제히 항의, 연예인리그에서는 '선수 출신은 한 경기에서 3이닝 이상을 못 던진다'는 '함정엽 룰'을 만들었다. MC로 변신한 프로야구 10승 투수 강병규(전 두산)가 오지 않는 한 '이 판'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다.

SBS 염용석 아나운서(한)와 장동건(플레이보이스)도 시속 120km대의 수준급 구속을 자랑한다. 특히 염용석은 볼끝이 좋아 '라이징 패스트볼'로 불릴 정도. 반면 만화가 박광수(조마조마)는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하는 변화무쌍한 구질로 에이스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3D 직종인 포수는 '연예인 야구단'에서는 기피 포지션이다. 가끔이라도 포수를 보는 선수는 해설위원 겸 선수인 배칠수(한)나 개그맨 위양호(조마조마) 정도.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1루수로는 현재 정준하를 위협할만한 선수가 없다. 거구에서 뿜어나오는 힘과 유연한 허리, 여기다 드문 왼손잡이라는 이점도 겹쳐 '연예인야구의 이승엽'으로 군림하고 있다.

2루수에는 야구 명문 신일고의 내야수였던 허준호(한)의 아성에 수비가 좋은 스위치 히터 윤종신(한)과 강타자 이종원(조마조마)이 도전하는 양상. 3루수로는 NRG 이성진(재미삼아)이 최고로 꼽히고 유격수 부문에선 연예인 야구계 최고의 강타자 중 하나인 김승우(플레이보이스)가 '재치있는 야구'로 손꼽히는 안재욱(재미삼아), 이휘재(한)과 경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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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에서는 춘천고 재학중 선수로 뛰었던 가수 김C(한), 사회인야구 8년의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는 강성진(CRP), 영화 <사랑니>의 주인공으로 2년전 서울고 재학중 청소년대표 상비군에도 뽑혔던 신인 배우 이태성(한)이 각각 중견수-좌익수-우익수의 베스트로 꼽힌다. 여기 경합하는 선수들은 호타준족의 공형진(플레이보이스)과 김태균(조마조마) 정도.

궁금한 것은 이렇게 야구라면 죽고 못 사는 스타들이 많은데 <YMCA야구단>이며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야구 영화에선 왜 이들 스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하는 점. 할리우드에서 야구광을 꼽자면 요즘은 별 소식이 없는 케빈 코스트너가 첫 손에 꼽힌다. <19번째 남자(Bull Durham)>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the Game)> 등 야구영화만 3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케빈 코스트너처럼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도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의 케빈 코스트너'는 과연 누가 될지도 궁금하다.

혹시 아나. 이들이 당장 내일 의기투합, 세계 4강에 오른 한국 WBC 대표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을지.

2006. 3. 16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런 스타들이 대거 야구영화에 뛰어든다는 소문도 아직 전혀 없고. 취미는 취미로 그냥 즐기자는 생각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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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동네 골목길은 '또또또또' 혹은 '차차차차'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꼬마들로 들끓었습니다. 60마일로 달리는 두 다리와 무적 오른팔, 전자 줌렌즈를 장착한 스티브 오스틴은 그야말로 무적의 주인공이었죠.

하지만 그는 정말 무적이었을까요? 사실 <600만불의 사나이>에는 그보다 강한 주인공들이 몇몇 나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그보다 강한 존재는 바로 그보다 100만달러를 더 들인 바이오닉 인간,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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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늙은 사진밖에 구할 수 없었지만 몬티 마컴 Monte Markham은 바로 스티브 오스틴을 위협했던 그 700만불의 사나이였습니다. 양 팔과 양 다리를 모두 바이오닉 조직으로 바꿔 친 700만불의 사나이 바니 밀러는 74년 11월1일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첫회에서 자동차 선수 출신인 바니 밀러는 OSI가 스티브 오스틴에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예비용 바이오닉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오스틴이 없어야 자신이 세계에서 유일한 바이오닉 인간이라는 망상에 빠져 오스틴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두 사람의 팔씨름 장면입니다. 바니 밀러는 오스틴을 팔씨름으로 눌러 버리고 씩 웃죠. 이 인상적인 악당은 이듬해인 75년 11월9일 방송된 THE Bionic Criminal 편으로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이 드라마에서 퇴장합니다.

솔직히 말해 600만불이건, 700만불이건, 지금으로서는 영화 한 편 찍을 수 없는 푼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제법 큰 돈이었습니다. 한국이 70년대말 미국에서 F-4 팬텀 전투기를 들여올 때 600~700만불 정도의 가격을 매겼기 때문이죠. 물론 대당 1억3000만달러나 하는 F-22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오늘에 와서 이 정도의 돈이 크게 느껴질 리는 없죠. F-22 한대 값이면 600만불의 사나이들로 축구팀의 풀 엔트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선수들로 나가면 월드컵은 문제가 아니겠군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몬티 마컴은 이 작품 이후로 별 신통한 역할을 맡지 못하다가 <SOS 해상기동대 Bay Watch> 에서 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왕년의 날카로운 700만불의 사나이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다음 적수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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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의 올드 팬들은 기억할 지도 모르는 이 남자. 바로 프랑스의 거인 앙드레 더 자이언트 입니다.

이 사람이 600만불의 사나이와 무슨 관계? 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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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도 신랑 신부가 모두 조글조글합니다. 어떤 사연이냐구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75년 9월14일과 21일 방송된 The Return of the Bionic Woman 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스티브 오스틴은 어느날 바이오닉 조직의 다리에 이상을 느껴 OSI의 의료원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눈 좋은 죄로, 어느 건물 방의 커튼 사이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제이미 소머즈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잘못 봤을리가 없다고 확신한 오스틴은 루디 웰스 박사를 집중 추궁하고, 제이미 소머즈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결국 제이미 앞에 서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감았던 눈을 뜬 소머즈는 오스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냉동치료 끝에 바이오닉 조직에 대한 거부반응은 극복했지만 그로 인한 뇌손상이 기억상실을 유발한 것이죠.

오스틴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주치의인 젊은 미남 의사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소머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소머즈는 서서히 오스틴에게 마음을 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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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머즈는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오스틴과 함께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납니다.

이 장면은 이상하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는 소머즈에게 오스카 국장이 몸조심을 당부하자 소머즈는 오스틴의 손을 잡고 웃으며 오스카에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오스틴을 보며) 오빠같은 분이 있으니까요."

오빠같은 분. 오빠같은 분. 이 말 앞에 좌절한 작업남은 대체 인류 역사상 몇명이나 될까요. "오빠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진짜 친오빠 같은 걸요." 반대로 "너는 나에게 그냥 여동생 같은 존재야" 이런 말 앞에 좌절한 여자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이런 남녀관계의 요체를 알 나이가 아니었건만, 저 대사가 가슴 한 구석에 던졌던 찌릿한 느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별일이군요.

...아무튼 오스틴과 소머즈는 임무 수행을 위해 노력하지만, 소머즈는 갑자기 오스틴과의 옛일이 환상처럼 눈 앞에 드리우며 발작을 일으킵니다. 오스틴과의 옛 기억이 현실과 충돌한 것이죠. 결국 임무 수행은 실패하고, 두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옵니다.

결국 오스틴은 결단을 내리죠. 둘이 같이 있는 것은 또 이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소머즈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고, 둘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떨어져서 별도의 임무만 수행하게 하라니! 솔직히 저는 감동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핀오프(물론 그때는 이런 말을 몰랐지만)라는 것이 가능해지는구나. 이렇게 해서 <600만불의 사나이>와 <특수공작원 소머즈>라는 두 개의 시리즈가 별도로 진행될 수 있게 되는 거였구나. 무릎을 쳤죠.

4개월 뒤인 76년 1월11일, Welcome Home, Jaime라는 두 편짜리 에피소드의 첫회가 방송됩니다. 바로 새로운 시리즈 Bionic Woman의 첫회였던 것이죠. 이렇게 해서 소머즈라는 미녀 공작원이 자신만의 새로운 모헙을 시작합니다. 물론 자매 시리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시리즈에 우정출연합니다. 특히 사스콰치와의 두번째 에피소드인 The Return of Big Foot이나 로보트인 가짜 오스카가 등장하는 Kill Oscar 등에서는 멋진 협력을 펼치죠.

그럼 두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되느냐. 해피엔딩이냐는 것이 궁금해지는데, 두개의 드라마를 통해 두 사람은 그냥 어정쩡한 상태로 시리즈의 끝을 봅니다. 후반으로 가며 소머즈 쪽이 다른 방송사에서 나가게 되면서 협력 체제에도 금이 가고, 그러다보니 두 사람을 맺어줄 여유 같은 건 제작진에게 기대할 수 없었죠.

린제이 와그너는 83년, 리 메이저스가 주연하던 드라마 <스턴트 맨 Fall Guy>에 우정출연합니다. 이게 아마 바이오닉 시리즈가 끝난 뒤의 첫번째 재회일 겁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3편의 TV용 영화에서 공연합니다. 모두 바이오닉 시리즈의 후속편격입니다.

The Return of the Six Million Dollar Man and the Bionic Woman (May 17, 1987)
Bionic Showdown: The Six Million Dollar Man and the Bionic Woman (April 30, 1989)
Bionic Ever After? (a.k.a Bionic Breakdown. November 29, 1994)

이 중에서 두번째 편인 Bionic Showdown은 <돌아온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주말명화 시간에 방송됐습니다. 두 늙은;; 바이오닉 영웅과 두 젊은 신세대 바이오닉 영웅의 이야기가 엇갈렸는데 여기서 젊은 여자 '소머즈' 역으로 산드라 불록이 나왔죠. 하지만 두 사람은 애틋하기만 할 뿐, 맺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스틴은 한번 결혼해 아들을 두고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죠. 아무튼 추억을 반추시키는 효과 정도만 있을 뿐, 영화적인 재미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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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은 94년, Bionic Ever After에서 웨딩마치를 올립니다.


스티브 오스틴이 바이오닉 파워를 잃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뭐 안 봐서 모르겠지만 참 기구한 인연의 연인들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75년에 처음 만났으니 19년만에 드디어 면사포를 쓴 것 아닙니까. 방송의 상업성(?)에 끌려다니다 결국 온 인생을 허비한 비운의 커플인 셈이죠. 아무튼 그 기구한 사연 끝에 결국 두 사람을 맺어준 것이 드라마 세계의 의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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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늘그막에야 맺어 주다니. 린제이 와그너가 수영복 입은 사진 찾느라 제법 힘들었습니다. 노출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이렇게 해서 3편에 걸쳐 소머즈의 탄생신화를 정리했습니다. 다음번부터는 두 바이오닉 영웅들을 위협했던 막강한 적수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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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600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에게 여자친구를 붙여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멋진 터프가이에게 여자가 없다는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시즌2의 13번째 에피소드인 Lost Love에 출연한 린다 마쉬를 비롯해 오스틴을 거쳐간 여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75년 3월16일. 이미 OSI의 비밀 공작원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던 스티브 오스틴은 고향 동네에서 옛 여자친구 제이미 소머즈를 만납니다. 둘 사이에는 어느새 다시 불꽃이 튀기고, 둘은 어느새 약혼을 하기에 이르릅니다. 이 내용이 동네 신문에 실릴 정도로 우주비행사 출신의 오스틴 대령은 유명인사였죠. 그러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스포츠를 즐기던 소머즈는 어느날 스카이다이빙 중 추락 사고로 오른쪽 귀와 오른쪽 팔, 두 다리를 잃고 목숨도 위험해집니다.

오스틴은 소머즈를 구하기 위해 오스카 국장에게 그녀를 자기같은 바이오닉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수술은 성공합니다. 그러나 소머즈의 몸은 새로 이식된 바이오닉 조직을 거부하고, 결국 소머즈는 근육 이상 반응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I love you, Jaime'라는 가사의 애절한 노래가 마지막에 깔리고, 말탄 소머즈의 모습이 눈물을 흘리는 오스틴의 얼굴에 오버랩되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상-하편으로 나뉜 이 에피소드는 국내에선 <600만불의 사나이>와 <특수공작원 소머즈>가 양 채널에서 열심히 방송되고 있던 한 중간에 방송됐습니다. 당연히 소머즈가 뒷날(?) 바이오닉 공작원으로 맹활약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내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해졌죠. 이렇게 소머즈가 죽어 버린다니? 아무튼 언제든 소머즈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국내 시청자들은 무척 재미있어하긴 했지만 그리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그저 <600만불의 사나이>의 두 회 에피소드로 이 스토리를 접한 미국 시청자들은 엄청난 정서적인 충격에 사로잡힙니다. 저렇게 예쁜 애인을 잃다니, 불쌍한 오스틴. 그러다 보니 "오스틴이 안됐다. 왜 소머즈를 죽게 내버려뒀느냐, 도로 살려내라"는 항의가 빗발칩니다. 돈 되는 거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미국 방송사들이 이런 호재를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프로덕션 측은 당초 이 역할을 샐리 필드(국내에선 나중에 <포레스트 검프>의 엄마 역으로 늘그막에 유명해집니다)나 스테파니 파워스(<부부탐정 Hart to Hart>에서 로버트 와그너의 상대역으로 나옵니다) 등에게 맡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26세였던 린제이 와그너의 이전 경력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꼭 이 사람을 써야겠다고 생각할만한 거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사는 아예 The Bionic Woman이란 새 시리즈를 만들 때에도 다른 배우를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팬들의 반응을 체크해 본 결과 린제이 와그너에 대한 충성도가 예상외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괜히 다른 사람을 새로 띄우느니 이 배우를 밀고 나가는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하게 할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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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고민의 여지는 별로 없을 듯 한데.

결국 제작진은 75년 9월14일과 21일, <600만불의 사나이> 시즌 3의 첫 두 에피소드로 The Return of the Bionic Woman 1편과 2편을 내보냅니다. 물론 국내에서는 이 두 에피소드가 앞서 말한 두 에피소드, 즉 '소머즈가 죽는 에피소드'에 곧바로 이어서 방송됐습니다. 즉 <600만불의 사나이> 시간에 소머즈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4편을 연이어 '소머즈 특집'으로 방송한 거죠. 이 두 편의 에피소드 또한 당시 국내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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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가 월요일 밤 <600만불의 사나이>로 한창 장안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을 무렵, MBC는 목요일 밤 <특수공작원 소머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시청자들은 잠시 의아해했지만 곧 적응했습니다. 두 시리즈는 주인공 외에는 모든 배경이 똑같았기 때문이죠.

두 시리즈는 쌍둥이입니다.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과 제이미 소머즈(린제이 와그너)는 모두 오스카 골드맨(리처드 앤더슨)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OSI의 요원들입니다. 시청자들은 자세한 속사정은 몰랐지만, 아무튼 두 드라마가 같은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 차립니다. 심지어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몇몇 에피소드에는 '오스틴 대령'이 함께 등장합니다. 단지 방송사가 달랐기 때문에 귀에 익은 양지운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는 게 불만인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한국 시청자들은 몰랐지만 <특수공작원 소머즈>, 즉 Bionic Woman은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갈라져 나온 드라마입니다. 인기 절정이던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오스틴 대령에게 여자친구를 마련해 주고, 그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자 이 여자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탄생시킨 것이죠.

한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설정을 그대로 끌고 나와 또 하나의 새로운 드라마를 론칭시키는 것을 흔히 스핀오프 Spin-off라고 부릅니다. 이 두 드라마는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스핀오프의 모범 사례로 꼽히죠. 최근의 히트 시트콤이었던 <프렌즈>는 스핀오프로 <조이>를 탄생시켰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데어데블>과 스핀오프인 <엘렉트라>는 두 편 모두 신통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죠.


아무튼 처음으로 제이미 소머즈, 미모의 프로 테니스 선수이며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의 옛 애인이었다는 스펙을 가진 이 여인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등장한 것은 1975년 3월16일의 일입니다. 두번째 시즌으로 접어든 <600만불의 사나이>의 19번째 에피소드였죠.

이 에피소드의 소제목이 바로 The Bionic Woman입니다. 이듬해부터 3시즌에 걸쳐 방송될 인기 시리즈의 제목이 이때 정해진 것입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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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그렇게 온 반 아이들(특히 남자 아이들)의 화제가 한 곳에 집중되는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셨는데, 절반 이상이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그 전날이 바로 <원더우먼>의 첫회, 트레버 소령(라일 와고너)이 버뮤다 삼각지대에 떨어져 원더우먼 린다 카터를 처음 만나 인간 세계로 데려오는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방송된 날이었거든요.

전 세계인에게 원더우먼=린다 카터라는 등식은 깨진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 시리즈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사진을 보면 "원더우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린다 카터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원더우먼'이라고 말하면 '아하'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인데다, 린다 카터는 그 역할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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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배우들의 기준으로 볼 때 분명히 빠지는 얼굴은 아닙니다. 5피트 7인치(1m68 정도 되는군요)의 키에 35-23-34의 몸매, 윔블던 본선에도 올라간 적이 있는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에 저 정도의 외모라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1974년, 미국 방송이 린다 카터보다 2년 전에 원더우먼 역할을 할 여배우를 찾았을 때 선택된 것은 캐시 리 크로스비였습니다. 크로스비라는 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빙 크로스비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이 <원더우먼>은 코믹스 판 <원더우먼>에서 다이애나 프린스와 트레버 소령이라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갖고 오긴 했지만 코믹스의 세계와는 사실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 원더우먼의 능력도 뛰어나긴 했지만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에 비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총알을 막는 팔찌 따위도 없었고, 대신 정교한 폭발물과 기계 장비가 임무 수행을 도왔을 뿐입니다. 의상도 독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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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원더우먼>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저 파일럿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 이 1974년판 <원더우먼>은 한국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이 한창 방송되던 도중-아마도 TBC의 구매 담당자와 미국 프로그램 판매사 사이에 뭔가 차질이 빚어진게 아닌가 추측해보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캐시 리 크로스비의 <원더우먼>이 방송된 것이죠. 물론 성우까지도 다른 성우들을 썼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방송이 나간 뒤에 시청자들로부터 상당한 항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체 '우리의 린다'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대역으로 데리고 왔느냐"는게 항의의 주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크로스비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였다 해도 그가 린다 카터를 이기기는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누가 저런 '국제 표준 미녀'에게 감히 대항할 수 있었을까요.

린다 카터에게 극장판 원더우먼 역할은 누가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캐서린 제타 존스...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차라리 린다 카터가 그냥 하라"는 약간 정신나간 팬들도 상당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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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얘기 나오는 산드라 블록요? 그냥 영화 예산을 현찰로 바꿔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 외에는 배우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갑부 변호사 로버트 알트만(BCCI 스캔들이라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관련된 엄청난 금융 스캔들의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돈과 권력도 장난 아니란 얘기죠)과 결혼해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반면 크로스비는 근육에서 힘이 빠지는 희귀병으로 불행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운명이 그에겐 지나치게 가혹했다고나 할까요.


캐시 리 크로스비판 원더우먼의 오프닝입니다.




그중 한 장면. 함정에 빠진 원더우먼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린다 카터 원더우먼. 위기 돌파가 훨씬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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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됩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13)


흔히 조선 3대 악녀(?)로 정난정, 장녹수, 장희빈을 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개똥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조선같은 신분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정권을 농단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봐야겠죠.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에 비해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강성연은 농염한 연기로 전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TV에선 지나치게 바른생활소녀 역할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무튼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실제로는 강성연 만한 미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녀가 아닌데도 남자를 녹이는 별난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 요지인데, 한번 자세한 내용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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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연산군이 정씨와 엄씨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은 원문에는 '裂而?之, 散棄山野'라고 되어 있다. '잘게 찢어 해(?, 젓갈)로 담가 산과 들에 흩뿌렸다'는 뜻이다. 시신마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최고의 형벌을 뜻한다. 일찌기 한고조 유방이 통일의 공신인 팽월을 죽인 뒤 시체를 해(?)로 만들어 각지의 장수들에게 돌려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내용은 뒷날 '중국인은 사람 고기를 수시로 먹었다'는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분풀이가 되지 않았던 새디스트들이 개발한 복수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4. 장녹수는 정말로 연산군을 아이 다루듯 했나?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연산군을 아기 다루듯 하며 공길과 연산의 관계를 질투하는 드센 여자로 나온다. 과연 실제의 장녹수는 어떤 여자였을까.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는 이팔 청춘도 아니었고, 빼어난 미인도 아닌 30여세의 농염한 여인이었으며 특히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온다. 실록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보통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엄청난 상을 내렸다. (중략)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려 있었다.'


5. 이극균은 정말 역모를 일으켰나?

광대들을 동물처럼 풀어놓은 사냥놀이에서 진짜 화살을 쏘다 잡힌 신하에게 연산군은 "네놈은 내 어머니에게 사약을 안긴 놈이 아니냐"고 말한다. 대본상으로 이 인물은 이극균이다(사실 진짜 이극균은 연산군에게 처단될 때 이미 67세의 노인이었으므로 활을 쏘아 누구를 노리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종조에 북방의 야인들을 무찔러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공이 많았으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당할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사약을 받든 탓에 갑자사화의 희생양이 됐다. 영화와 같은 사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연산군은 이극균이 '나라의 명을 따랐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가 없다'며 사약을 먹지 않고 목을 매어 죽자 시신의 목을 베어 효수한 뒤, 나중에는 무덤을 파 백골을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복수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극균과 이세좌의 운명은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뒷날 숙종 때의 장희빈은 사약을 거부하며 "나에게 사약을 안기는 자는 뒷날 이세좌의 꼴이 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가 뒷날 경종이 될 운명이었으니 그리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다만 경종이 단명하는 바람에 갑자사화와 같은 피바람은 다시 일지 않았다.


6. 한글로 연산군을 욕한 벽보가 붙었나?


이것이 유명한 익명서 사건이다. 1504년 7월, 신수영의 집에 익명으로 된 투서가 날아들어왔다. 살펴보니 3명의 의녀들이 모여서 임금을 비판했다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익명서가 순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한 의녀가 '옛 임금은 난시(亂時)일지라도 이토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지금 우리 임금은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를 파리 머리를 끊듯이 죽이는가. 아아! 어느 때나 이를 분별할까?’ 하고 묻자 다른 의녀가 ‘그렇다면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하려니와, 무슨 의심이 있으랴’라고 대답했다는 등의 대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이 익명서를 보고 연산군은 대노하여 익명서의 등장인물들인 실재 인물들을 잡아들여 문초를 했으나 다들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대신들은 '고발하는 자에게는 범인의 재산과 베 500필을 주고, 벼슬이 없는 자라면 3품 벼슬을 주며, 천민이면 양인을 만들어 준다'는 후한 상을 내걸기를 주청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범인이 잡히자 않자 연산군은 몸이 달았다. 7월22일에는 한글을 쓰는 자를 처벌하고, 한글로 구결을 단 책까지 불태우라는 '언문 금지령'이 내려지고, 7월23일에는 한글을 잘 쓰는 자들의 필체를 보고하게 하여 필적 대조를 통해 범인을 잡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결국 25일에는 한글과 한문을 잘 쓰는 자들의 필적을 사헌부 등에서 보관하게 하여 뒷날의 사단에 대비하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이렇게 난리를 피운 데 비하면 범인이 잡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필적 대조 사태는 영화에 나온 것과 과히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7. 연산군은 동성애자였나?

정사든 야사든 '연산군과 동성애'에 대한 암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산군에게서는 과도한 이성애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나중에 숙원의 직첩을 받은 장녹수를 비롯해 전향, 수근비 등의 수많은 여인들이 실록에 이름을 드러낸다. 특히 '사대부가의 여인들을 잔치에 불러 오래도록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종친인 월산대군부인 박씨와도 관계를 맺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월산대군은 아버지 성종의 친형이니 자신의 큰어머니를 능욕한 셈이다.

연산군 12년(1506년) 7월20일, 월산대군부인 박씨가 사망한 내용을 다루며 실록은 '사람들은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자결한 것이라고 쑥덕거렸다(人言見幸於王, 有胎候, 服藥死)'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스캔들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바로 이 대군부인 박씨의 남동생이었던 것이다. 박원종은 누이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고 그로부터 불과 40여일 뒤인 9월2일, 성희안 유자광 등과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물리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옹립한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연산군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 인용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의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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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와 관련된 코멘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만들걸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한 30% 정도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독의 '역사 비틀기' 솜씨는 이미 <황산벌>에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 부문에서는 <황산벌>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햄릿>을 이용한 경극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기에는 약간 부족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아무튼 국민의 1/4이 봤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지독하게 못난 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은 영화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릴 무렵인 지난 2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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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1)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갖 대작들이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 대목을 겨냥하고 일제히 포문을 여는 12월. '킹콩'과 '태풍'의 쌍끌이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던 '왕의 남자'는 예상밖의 선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관객 동원면에서는 '태풍'의 절반 정도인 200만명 선을 웃돌고 있지만 제작비는 '태풍'의 1/4 수준이니 효율면에서는 두배가 넘는 셈이다.

원작 연극 '이'가 보여준 이색적인 소재, 감우성과 정진영에서 신인 이준기에 이르는 출연진의 호연, 이미 '황산벌'에서 역사의 재해석에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 그런데 '왕의 남자'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과연 이 영화는 얼마나 역사 속의 사실과 일치하고 있을까? 예전같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최근 전산화된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의 힘으로 일반인들도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단, 이하의 내용은 그냥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글일 뿐, 영화의 공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찌기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개봉됐을 때 한 재야사학자는 '최제우와 전봉준은 보은 집회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영화에서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부정확한 고증'을 지적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는 영화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영화 작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사건들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울 권리가 있다.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장생과 공길은 실존 인물인가?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의 연산군조에 장생이란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길은 딱 한번 나온다. 연산군 11년(폐위되기 1년 전) 12월 29일의 일이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중략)'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날 왕은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로 모이면 도둑이 된다"는 이유로 아예 광대들이 대거 참석하던 전통 유희인 나례를 폐지시켜버렸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지간히 비위가 상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이보다 6년 전인 연산군 5년(1499년) 12월19일만 해도 은손(銀孫)이라는 뛰어났던 광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은퇴했으니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대신들에게 요구할 정도로 연희에 애정이 두터웠던 연산군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런 기록 한 줄로 추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길이 미소년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2. '왕의 남자'가 커버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

시작의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부분의 내용이 갑자사화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 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1506년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체 시간은 약 2년에 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년이 흘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연산군은 정말 성종의 후궁들을 영화처럼 죽였나?

놀랍게도 실록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20일,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마침내 모친에 대한 복수의 칼을 뽑았다. 폐비 윤씨의 죽음이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 그리고 이들을 궁으로 들인 할머니 인수대비의 참소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산군은 일단 정씨의 소생인 두 동생,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잡아들여 곤장을 친다. 그 다음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기 힘든 패륜의 극치였다.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은)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중략)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다음날 왕은 자신의 명대로 어머니를 곤장으로 친 안양군에게 말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는, 제 정신인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안양군 봉안군 형제는 1년 뒤 유배를 거쳐 사약을 받는다.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기 전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첩들을 다른 종친들에게 첩으로 보내는 등 악착같은 복수의 집념을 보였다. (2편에서 계속  http://isblog.joins.com/fivecard/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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