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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 조(G.I. Joe)'가 마침내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를 모으지 못했지만 G.I 조 인형은 미국의 남자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놀만큼 인기 만점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죠.

물론 아무리 인기 있는 원작이라고 하더라도 이병헌이 듣보잡 캐릭터로 나오면 의미가 없겠죠. 한국이나 아시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비 미국 출신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엉성한 캐릭터를 맡아 무너지는 경우는 한두번 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병헌이 스톰 섀도우 역을 맡았다고 할 때부터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만, 영화상으로도 훌륭한 모양입니다.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병헌에게 할리우드 진출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제목에 썼으면서 이런..). 바로 성룡입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병헌과 성룡의 사연은 맨 뒤쪽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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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헌, 할리우드는 가서 뭘 하게?"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언뜻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오버랩된다. 그렇다. 교집합은 바로 아시아의 보석 공리다.

연인 장예모 감독과 함께 중국 영화를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 내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이미 공리도 40대.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미모와 카리스마는 어떤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에 있어 <게이샤의 추억>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모국인 중국 국민들은 장자이와 공리를 '일본 창녀가 됐다'며 매국노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공리는 세계인의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재 공리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한국 여배우가 설 수도 있었다. 스필버그와 드림웍스 관계자들은 이 작품의 제작에 앞서 줄잡아 100여명의 한-중-일 3국 여배우들을 만났다.

김희선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드림웍스는 장자이와 공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아시아 배우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현재 <로스트>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리를 구축한 한국 배우가 된 김윤진을보면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물론 역시 영어 실력이 뛰어난 김민(성룡과 공연했던 <액시덴털 스파이>로 세계 무대에 나설 기회가 있었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갖춘 상태에서 뛰어난 영어 구사력을 갖춘 김윤진에게 미국 시장은 그리 높은 벽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데뷔하던 시절의 김윤진은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 구사력이 뛰어난 배우였다. 중학교때 이민을 가 미국 보스턴대에서 셰익스피어극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도 연극 활동을 하던 김윤진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질투>와 <국희> 등으로 잘 알려진 드라마의 거장 이승렬PD였다. 그는 지난 96년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며 최재성의 여동생 역으로 김윤진을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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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가 만난 김윤진은 교포 치고는 정확한 발음을 갖고 있었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가끔 "그걸 한국말로 뭐라고 하죠?"라며 자기가 표현하려는 단어를 찾았다. 대본에 나오는 어려운 말은 일단 외우고 나중에 뜻을 물어본다던 김윤진은 그러면서도 항상 사전을 갖고 다니고, 밑줄을 치며 신문을 읽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에서도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진 외에도 할리우드의 제의를 받았던 배우들은 대부분 영어구사력의 관문을 넘은 인물들이었다. 차인표가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캐스팅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지만 당시 그는 이 영화가 한국의 실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다. 결국 그 배역은 재미교포 배우 윌 윤 리에게 돌아갔고, 역시 재미교포인 릭 윤이 악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양들의 침묵>의 조나선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던 박중훈 이후 남자 연기자 중에서 '꿈의 할리우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배우로는 이병헌이 첫 손에 꼽힌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다 그를 캐스팅하면 한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흥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한류 스타로서의 지명도는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호조건이다. 이런 이병헌에게 대놓고 "할리우드에 가면 뭘 하냐"고 만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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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병헌보다 먼저 할리우드를 밟은 아시아의 스타 성룡이었다.


지난 2005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성룡은 이병헌을 만나 반가운 술자리를 가졌다. 술잔이 도는 사이 이병헌이 할리우드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성룡은 "할리우드에 왜 가려고 하느냐. '가 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할리우드에 가는 것 보다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는 게 훨씬 낫다. 일단 당신이 노려야 할 것은 아시아 최고의 스타다. 그리고 나서 할리우드에서 모시러 오면 가고, 아니면 말면 그 뿐이다."


이날 성룡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할리우드에서 <러시 아워> 시리즈의 흥행 대박을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변함 없는 편견 때문에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것이 동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과연 성룡의 이 한마디가 이병헌의 야망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답은 몇년 뒤의 결과로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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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실제로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도 진정으로 이병헌에 대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죠.

아무튼 이 무렵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어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려 온 이병헌은 마침내 입성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중 하나인 스티븐 소머즈와도 친분을 쌓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글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몇년 뒤'가 벌써 왔군요. 이런 이병헌의 모습을 보면 성룡도 옛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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