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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이 마침내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마지막회를 남겨 둔 상태에서 소설 원작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사대결, 즉 그림 대결 장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국 방송계에서는 '경합이나 대결이 나오지 않으면 사극이 아니다'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대결'의 미학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한방의학 드라마 '허준'에서는 살아있는 닭의 몸에 아홉개씩의 침을 놓는 구침지희가 나왔고, '대장금'에선 끊이지 않는 후계자 선발이 열렸죠. '주몽'에서는 태자 자리를 놓고 세 왕자가 경합을 벌였고, '이산'에서는 그리 중요하진 않았지만 송연(한지민)이 화사경합에 참가해 기량을 겨뤘습니다.

하지만 '바람의 화원'에서의 화사경합은 '이산'에서의 경합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참가자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인 단원과 혜원이었기 때문이죠.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마저도 '그림 대결에서의 박진감 묘사에는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놨던 화사경합을 '바람의 화원'은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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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바람의 화원' 전체의 공과를 떠나 3일 방송된 화사대결은 한국 드라마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꼽을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화사대결을 위해 지난 몇회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던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진행은 비판받아도 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김조년은 정향과 윤복의 관계에 대한 질투로 사제간의 화사 대결을 벌이게 만듭니다. 이 부분에서 동기가 좀 납득이 안 가는 부분도 있고, 뭐하러 이런 짓을 벌이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최고의 가상 대결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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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결에 등장하는 그림은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와 김홍도의 '씨름도'. 두 사람은 김조년의 발제에 따라 '쟁투'라는 주제에 맞는 그림을 각각 그려 제출합니다...라는 것은 물론 작품의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런 대결이 있었다는 근거도, 두 그림이 같은 시기의 작품이라는 근거도 실제로는 전혀 없죠. 다만 '대결'을 소재로 한 두 작가의 작품을 갖고 이런 설정을 만들어 낸 이정명 작가의 상상력은 참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쌍검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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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씨름도입니다. 두 그림 모두 너무나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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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도에서 동그라미를 친 부분이 바로 이 화사대결의 승부를 가를 수 있었던 김홍도의 '왼손 오른손 실수' 장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왼손과 오른손이 바뀌어 있지요.

알고 보면 유명 화가들도 이런 실수를 한다고 합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도 그런 실수가 있다는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1/12/2007111200050.html

드라마에서는 이 실수가 김홍도의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살짝 풍깁니다. 또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김홍도는 황혼을 이용하죠. 황토색과 주황색을 주로 쓴 이 씨름도가 황혼녘의 햇살을 받으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황토색 위주의 채색이 쓰인 것은 김홍도가 사실은 색맹이었다는 역사적으로 아무 근거 없는 설정과 맞물린 것입니다.

사실 김홍도는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또 있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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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동도'에서도 오른쪽 아래에 앉은 악공의 손이 거꾸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 각도로도 악기를 잡을 수는 있지만, 연주를 할 수는 없겠죠.

아무튼, 장태유 PD의 사설을 풀어가는 솜씨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화사 대결을 묘사한 손길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특히 씨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김홍도가 정지 상태의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장면이나 두 기생의 실제 검무 장면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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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작에 나와 있는 두 그림의 숫자 균형 중 '쌍검대무'쪽의 7+2+7(그림의 상단, 중단, 하단의 사람 수)만을 살리고, 씨름도의 숫자 균형을 다루지 않은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날 방송이 55분여만에 끝난 걸 봐선 편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인 듯 하기도 하고...

보충 설명하자면 김홍도의 '씨름도'의 사람 수 배치는 좌측 상단에 8명, 우측 상단에 5명, 중앙에 2명, 좌측 하단에 5명, 우측 하단에 2명씩입니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놓고 보면, 정확한 대칭이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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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선을 따라서 배치된 사람 수는 12명, 그리고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대각선을 그어 봐도 12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숫자의 배열을 보면 불균형 속의 균형이 보입니다. 이런 계산이 다 되고 나서 비로소 '거장 김홍도'가 그려 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대결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 주고 있을까요. 소설이든 드라마든, 두 사람의 대결은 무승부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무승부란 신윤복의 승리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지난번에도 한번 얘기했듯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대화원 김홍도에 맞서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화원 신윤복이 그 시대를 넘어 지금에 와서 동등하게 평가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관련글은 아래 링크 참조)



당대에는 비루하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던 파격적인 화풍이 세월이 흐른 뒤에 제 값을 인정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당시의 환경에서 이런 그림을 계속 그려왔던 신윤복이란 화가의 고집을 생각하면, 이 드라마를 반체제 드라마 취급했던 지만원씨의 얘기가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농담이지만 역시 무슨 얘긴가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



아무튼 '바람의 화원'은 두 화원의 대결을 통해 지지부진했던 중반의 기억을 씻고 깔끔한 마무리를 이룰 수 있을 듯 합니다. 비록 배우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10%대 중반을 넘지 못한 시청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겠지만 나름대로 명품 드라마라는 이름도 얻었고, '그림그리기'라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영상으로 옮겨 놓은 최초의 드라마라는 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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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과는 이렇게 안녕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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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에서 잠시 얘기한 유명 화가 실수 시리즈 중의 하납니다. 이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Sunflowers)'. 수많은 해바라기 그림 중 하나로 일명 '14송이 해바라기'입니다. 고흐 자신이 '14송이를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라고 이 그림을 지칭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림의 해바라기는 분명히 15송이라는 겁니다. 고흐가 잘못 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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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2'는 전형적인 추억 마케팅입니다. 어찌 보면 14년 전의 인기 드라마 '종합병원' 동창회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994년 '종합병원'이 방송될 때에 비해 환경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당시의 '종합병원'은 그저 배우들이 하얀 가운에 차트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애정행각을 벌였던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 달리 '본격' 병원 드라마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최근 들어 메디컬 드라마는 아예 순번이 돌아가면서 고정 배치될 정도로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얀 거탑', '외과의사 봉달희', '뉴 하트'의 순으로 방송되면서 모두 일정선 이상의 히트를 기록했죠.

그렇다고 셀레브리티들의 성형수술 열풍을 풍자한 미국 드라마 '닙턱' 처럼 특이한 설정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방송 전의 '종합병원 2'에는 '막차'를 탄 듯한 불안감도 있습니다. 그래서 19일 방송된 첫회는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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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첫회는 일단 스토리나 형식상의 차별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본래 '종합병원'은 '연속극'이 아니라 매회 하나의 에피소드를 수행하는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었고, '종합병원 2' 역시 첫회에서 수술 시연회와 동남아 근로자들의 숙소 붕괴 사고 대량 입원, 외과 신입 레지던트들의 면접이라는 세 가지 사건이 한 회에 완결되는 형태를 보였습니다.

김정은-차태현 조는 왕년의 '정신과 인턴 - 환자' 커플 때부터 다져 온 호흡이 유감 없이 빛을 발했고(자꾸만 그 드라마가 '종합병원'이었던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김정은-차태현이 함께 출연한 의학 드라마는 '종합병원'이 아니라 안재욱-김희선 주연의 '해바라기'였습니다. 그닥 나이가 어리지 않은 분들도 두 드라마를 혼동하시더군요.^^), '독사' 오욱철의 캐릭터를 이어 받은 군기반장 류승수의 모습도 친근감을 자아내더군요.

물론 이재룡-이종원의 '좋은 의사 - 나쁜 의사' 구도는 너무 많이 써먹은 전가의 보도지만 메디컬 드라마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종원은 전형적인 '나쁜 의사'라고 보기 어려울 듯 해서, 오히려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보는 '악역 없는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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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면들이 있었던 반면, '종합병원 2'는 보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문제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묘하게도 첫회 에피소드가 '의사는 어쨌든 환자 치료가 최우선이고, 병원은 치료도 치료지만 기본 수칙의 준수가 필수'라는 식으로 '기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몇 군데에서 '기본'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바로 연출의 문제입니다. 70~80년대 한국 액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격투 장면 도중 장면이 전환될 때, 배우나 엑스트라들이 '차렷 자세로 있다가' 갑자기 서로 치고 받기 시작하는 장면이 꽤 자주 눈에 띄곤 했습니다. 편집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정교함이 결여된 연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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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감독 중에도 기타노 다케시처럼, 다소 어설퍼 보이는 액션 신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영화에 엮어 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라는 식의 거만한 당당함을 느끼게 할 지경입니다. 물론 기타노의 영화들은 피가 튀고 총알이 난무하는 장면까지도 어린아이들이 주먹다짐 하는 장면처럼 전혀 심각성 없이 가볍게 넘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실함까지도 의도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종합병원 2'의 매끄럽지 않은 액션 연결은 진지함이 생명인 메디컬 드라마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시체도 연기를 한다'는 봉준호 식의 디테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심각한 응급 상황의 병원 장면에서 간신히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의 엑스트라들은 통제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완전히 정지해 있다가 카메라의 주목을 받고서야 주-조연 배우들이 움직이는 장면이 몇 차례나 등장하는 건 비전문가인 저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더군요.

노도철 PD가 시트콤 연출자 출신이라서 "감히 시트콤 출신이 무슨 드라마를..."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누구 못지 않게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이 연출자가 드라마 연출이 요구하는 정교함의 수준을 너무 안이하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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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2' 첫회에서 지적할만한 부분들은, 만약 '종합병원 2'가 시트콤이었다면 오히려 웃음을 주는 장치의 일부로 여겨질 수도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의 살짝 어설픈 장면들은 시트콤이라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트콤을 보는 시청자들과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조연들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응급상황이라지만 주연급 배우들의 대사가 도대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좀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응급실 장면에서는 이재룡 외의 배우는 무슨 말을 하는지 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연기를 하더군요. 물론 의학 용어는 발음하기 어렵고, 배우들의 입에 붙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웅얼웅얼 왈그락 하는 수준으로 떠들고 지나가서는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이것 역시 연출자가 바로잡았어야 할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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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고 탈락을 예감한 차태현의 전화기 배터리가 어머니와 통화할 때에는 딱 한칸 남아 있다가, 김정은의 자취방에 실려 간 다음날 새벽 합격 통지를 받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풀로 충전되어 있는 장면은 다른 드라마라면 '옥에 티'로 대접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아닙니다. '옥에 티'가 아니라 '티 속의 티'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드라마의 완성도가 끝날 때 쯤에는 어느 정도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좋다 해도 디테일이 내내 이 정도라면, '종합병원 2'는 결코 '잘 만든 드라마'로 기억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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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드라마가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차태현은 대체 언제까지 '엽기적인 그녀'에서 정지해 있을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p.s.2. 앞부분에도 '닙턱' 얘기가 나왔지만, 이런 대학병원 이야기 말고 성형외과-피부과 이야기라면 오히려 한국에서 정말 엽기적인 드라마가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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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와 대표적인 우익 인사로 꼽히는 원로 작가 이문열씨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문열씨는 미국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요즘 우익에 자살골을 넣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지만원씨는 "지적한 내용으로 보아 나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좌경 방송이 내 발언의 요지를 왜곡한 것인데, 그것을 보고 나를 매도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문열씨의 사과로 대략 마무리가 된 듯 합니다.

이 사건에서 누가 잘못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의 일들을 눈여겨 보니 대체 자살골이란 게 어떤 것인지는 잘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니면 이번 사태가 지만원씨의 사상적 커밍아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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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씨의 홈페이지(http://www.systemclub.co.kr)에 올라온 수많은 문근영 관련 글들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초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혼동을 막기 위해 지만원씨의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은 모두 파란 색으로 표시합니다.)


'다음'에서 류낙진 검색어를 치니 동영상이 뜬다. 내용은 예측한대로였다.

문근영은 얼굴 예쁘고, 연기 잘 하고, 마음도 예쁘고, 집안까지 훌륭하니 엄친딸에 딱이라는 광고를 하고 있다. 그녀는 국민의 여동생이고, 그녀의 외조부는 통일운동가, 작은 외조부는 민주화투사, 외삼촌과 이모도 경찰 조사를 받을 반큼 애국자라는 뜻으로 선전을 한다.

빨치산은 통일운동가이고, 빨치산 가족은 집안 좋은 가족이고,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을 하고 엄친딸을 키운 집안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빨치산 집안은 아주 훌륭한 집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빨치산들의 심리전이며, 문근영의 선행이 선전되는 것만큼 빨치산 집안은 좋은 집안이라는 선전도 동시에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저들은 문근영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만들어 놓고 빨치산에 대한 혐오감을 희석시키고, 호남에 대한 호의적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다목적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근영과 신윤복 프로를 띄워주는 조중동은 이런 심리전에 착안하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문양의 선행을 문제 삼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그녀의 선행을 등에 업고 "보아라 문양은 훙륭하다. 그런데 그 가문은 빷치산 가족이다. 빨치산이란 통일운동가이고, 그래서 문양의 가문은 명분가문(좋은 집안)이다" 이렇게 선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만원씨를 이렇게 분노하게 한 것은 와이텐이라는 인터넷 방송사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방송 내용에 분명히 '....집안도 좋고, 엄친딸 맞는 것 같다'는 내용이 나오긴 나옵니다.



뭐 그런 방송을 보셨다면 흥분하시는게 어쩌면 우익 인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비쳐 보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걸 '조직적인 심리전'이며 '조중동도 현혹되어 있다'고 주장하시는 건 참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게다가 다음 부분은 한 단계 위의 상상력을 볼 수 있게 합니다. 바로 드라마 '바람의 화원' 속에 숨어 있는 좌익의 음모(!)에 대한 내용입니다.


갑자기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을 띄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자를 띄워서 기존의 정통사관을 뒤집는 것이며, 사회 저항을 정당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는 역사에 기록된 인물, 신윤복은 기록되지 못한 인물이다. 기록된 이승만, 기록되지 못한 김구, 기록된 박정희와 기록되지 못한 장준하. 주몽을 통해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는 등의 심리전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최근 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신윤복 신드롬도 이런 차원의 심리전이라고 생각한다. 패자의 역사를 정사로 만들고 기득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저항을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것이다. 국가를 뒤엎자는 정신을 불어 넣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그러니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띄우는 것' = '좌익의 심리전' 이군요. 이 분의 다른 글을 보면(홈페이지가 다운되는 바람에 퍼올 수 없었습니다), 영화 '미인도'에서 신윤복 역을 맡은 배우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과격한 발언으로 논란을 유발시켰던 김민선이라는 것 역시 거대한 음모의 일각을 보여주는 증거인가봅니다.

'미인도'와 '바람의 화원'을 살펴보다가 신윤복 역을 맡은 두 여배우를 보고 "하나는 빨치산 손녀, 또 하나는 '청산가리',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다 증거가 드러나잖아!"라고 발견의 기쁨을 느끼신 듯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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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은 물론이고 전혀 역사에 기록된 바 없는 의녀 장금을 주인공으로 한 '대장금' 역시 대단한 좌경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허준 역시 별로 기록된 바가 없군요. '허준'도 좌경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좌경 색채가 강한 '대장금'같은 드라마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는 한국은 좌경 이념을 세계로 퍼뜨리고 있는 선도국가였군요. '주몽' 외에도 '승리하지 못한 고구려'를 띄우려 했던 '태왕사신기'며 '바람의 나라', 곧 방송될 '자명고' 역시 좌경 드라마라는 굴레를 벗기 힘들 듯 합니다.

차라리 사극을 아예 금지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글에서는 또 문근영과 다른 의인들을 비교합니다.



(전략: 앞부분은 동아일보 광고 취소사태에 대한 내용입니다)

문근영 Vs. 다른 의인들

이 세상에는 평인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러는 언론에 발표되지만 대부분은 오직 자신과 하늘만이 알고 넘어 간다. 일생을 바쳐 나병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 오웅진 꽃동네에 가서 온갖 궂은 일들을 묵묵히 해내며 일생을 바친 사람들,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든 형편에 있으면서도 산동네를 매일 다니면서 세상이 외면한 인생들을 보살피는 사람들 등등 하늘만 아는 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다. 이들은 언론들을 장식할 만큼 화려하게 큰돈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돈보다 더 귀중한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지난 2001년 일본 유학 중인 이수현씨가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졌다. 그 후 일본인들은 해마다 그를 초무하는 행사를 진행해 왔고, 2006년에는 영화가 제작되어 10주간 연속 박스오피스에 오를 정도의 반응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일본과는 정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하루 이틀 기사로 뜬 후 이내 잠이 들었고,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도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을 것이라며 수입이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2006년 05월 25일에는 또 다른 지하철 의인이 일본에서 탄생했다. 한국 유학생 신현구씨(27세), 선로에 넘어져 있는 여학생을 보고도 승강장에 있던 20여 명 정도의 일본인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는 거침없이 뛰어 내려 여학생을 구했다 한다. 한국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타인을 살려내는 의로운 선행들이 많이 있었지만 크게 기사화되지는 못했다.

그 다음의 의인들은 돈을 내놓는 사람들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를테면 빌케이츠 같은 사람들이 그가 가진 돈의 일부를 헐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없는 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해도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것은 빌게이츠 유의 의인들보다 한층 더 하기 어려운 의로운 선행이다.

얼른 과거의 기사를 몇 개 찾아보았다.  2002.05.30에는 40대 초반에 막 접어든 젊은 의사가 모교에 6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내놔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대구시내 중심가인 중구 삼덕2가 삼성안과의원 이승현(41), “그는 또 5년전부터 경북 군위·고령군 등 산골마을에 한 달에 한 번씩 무료진료,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수술, 부정기적으로 대학생 학자금 지원 등의 봉사와 기부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04.19.에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80대 노인이 건국대에 장학금을 기탁해 화제”라는 기사가 있다.

2008.4.15.에는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다는 할머니가 노년에 갑자기 손에 쥐게 된 토지보상금을 연세대에 찾아가 장학금으로 과감히 기탁했다”는 기사가 있다.

2008.8.14.에는 류근청 박사가 자식들에게는 돈 한 푼 안주고 모두를 털어 578억원을 KAIST에 기탁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이야기도 하루 이틀 언론에 뜨더니 이내 잠잠해 졌다.

문근영이 6년간 8억5천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사실은 위와 같은 의로운 선행 중 어디에 속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데 문근영의 선행은 위의 선행과는 달리 파장이 아주 크다. 조중동까지 나서서 문근영을 띄우고, 다음에서는 전달력이 매우 큰 동영상까지 만들어 이상한 메시지를 확산하고 있다.

조선과 동아가 연일 문근영을 띄우더니 오늘(11.17)은 동아일보에 “제2의 문근영 자주 보고싶다”는 제하의 시론이 실렸다.(김용희, 평택대 교수·문학평론가) “익명의 기부자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자 누리꾼들은 ‘이름 없는 천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문근영씨.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 씨였다. 누리꾼들의 놀라움과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의 선행을 미화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뜬  동영상과 글들은 선행을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종의 음모를 연출하고 있다. 문근영은 예쁘고, 연기도 잘하고, 마음씨가 아름답고, 출신(광주)도 좋고, 외할아버지가 통일운동가이고, 작은 외할아버지와 외가 식구들이 민주화운동가라 집안이 좋으니 엄친딸(엄마친구 딸, 가장 이상형이라는 뜻)의 전형이라는 메시지요, 비전향장기수 빨치산을 통일 운동가로 승화시키고, 광주와 김대중을 함께 승화시키는 메시지인 것이다.      

문근영의 선행, 이 하나만을 놓고 보면 참으로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며 기부의 모범으로 칭송할만하다. 그래서 그녀를 칭송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하고 사람들은 이를 문제 삼는 필자를 매우 이상한 꼴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꼴통, 꼴통이라는 의미는 고정관념에서 편집증 환자처럼 색깔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꼴통이라는 필자는 선행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선행과 선행을 띄워주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띄워주는 행태와 띄움에 내재한 숨은 메시지를 문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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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략 요약하면 다른 의인들도 많은데, 그 분들은 그리 화제가 되지 않았다. 문근영을 지속적으로 띄우는 데에도 음모가 숨어 있다는 얘기 되겠습니다.

물론 - 그래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해 팔순 할머니 기부왕보다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여동생이 알고 보니 익명의 기부왕이었다는 것이 훨씬 더 화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써놓고 보니 너무 당연한 얘기라 죄송합니다.)

아마도 지만원씨가 문제삼은 동영상보다, 지만원씨의 글이 훨씬 더 '빨치산의 손녀이며 좌익 선동의 정수인 문근영에 대한 호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과연 지만원씨가 흔히 말하는 '고도의 **'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합니다. 대체 지만원씨는 어느 쪽 편 일까요?

지만원씨는 17일 밤부터 시작된 수많은 보도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해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해명이 잘 됐는지는 직접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문근영에 대한 문답
 
 

문1: 지만원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 문양의 선행에 대해 문양 집안의 좌익이념을 문제삼아 파문을 일으켰는데 이는 구시대적 연좌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답: 어제부터 인터넷과 언론들은 저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확산히고 있습니다.

첫째, 지만원은 기부 문화에 찬 물을 끼얹은 사람이다.

둘째, 지만원은 아름다운 기부자를 빨치산 가족이라며 문제를 삼으면서 색깔을 씌우고 있다.

셋째, 지만원은 악풀의 진원지다.

이 모두가 거짓 모략입니다. 좌익세력에 의한 인민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행위에 딴지를 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기부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부행위를 등에 업고 빨치산 집안을 미화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기부 기사가 나온 11월13일부터 대다수 인터넷 매체들에는 문양의 외조부에 대한 기사가 도배돼 있었습니다. 저도 인터넷을 보고 비로소 외조부 류낙진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빨치산 생활과 감옥생활로 채웠더군요. 그런데 도배된 글들의 대부분은 문양의 외조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라, 문양은 훌륭하다. 문양의 외조부가 통일운동가다. 빨치산 가문은 명문가다” 이런 식으로 표현돼 있었습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인터넷 방송 why 10 news의 11월14일자 동영상이었습니다. 좌익이 아닌 이상 이 동영상을 보고 어찌 속이 상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문양의 기부행위에 감동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선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좌익들이 벌이는 심리전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2: 문근영 양의 외조부와 식구들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답: 저는 문양의 외조부가 빨치산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11월14일, 갑자기 인터넷에 도배된 글들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글들의 대부분은 외조부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만 올린 것이 아니라 “문양의 가문이 통일운동가문이자 민주화 가문이고 그래서 명문가다” 이런 글들이었습니다. 저는 빨치산 기문이 명문가라는 표현들을 문제삼은 것이지 선행에 딴지를 건 것이 아닙니다. 악풀의 진원지라는 말은 모략인 것입니다.

문3: 문양에게 전신적 고통을 주고, 불우이웃돕기에 찬물을 끼얹은 행동이 아닌가요?

답: 결과적으로 문양의 입장에서는 서글프고 속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양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사람들은 제가 아니라 문양의 아름다운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 가문을 명문가문으로 왜곡하는 불순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들 역시 이런 불순세력, 플러스, 일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언론들이 제 글과 인터넷 글들을 비교하여 정확한 기사를 쓰지 않고 인민재판으로 지만원이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고, 악풀의 진원지라고 매도한 것입니다. 언론들은 어째서 선행을 등에 업고 빨치산을 미화한 불순세력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런 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저를 공격하는 것이지 참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많은 언론들이 좌경화됐나요? 언론왜곡이 매우 심각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5년 3월 SBS방송이 "지만원이 강연에서 위안보 할머니들에게 은장도로 자살하라 했다"는 방송을 했습니다. 허위였지요. "은장도로 성을 지키던 시절에 국가는 아녀자를 보호하지 못했다. 위안부들의 울굴을 정치목적으로 거리에 내돌리지 말고 국가가 먼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왜곡한 것입니다. SBS는 언론중재위의 권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인사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면 되느냐?"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판사가 써준 대로 정정과 사과의 의미가 드러 있는 보도를 하라고 했는데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3천만원 손해배상청구를 했지요. 2천만원 승소판결이 나왔습니다. 공정을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들이 어러면 되겠습니가? 이렇게 사람 잡는게 언론의 현실인 것입니다.

문4: 문양에 대해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 가운데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나요?

광화문 폭력 시위를 옹호하고 경찰을 매도하는 네티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들이 사상적으로 건전합니까?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문양의 선행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선행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가 왜 딴지를 걸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선행을 격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선행을 배경으로 빨치산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이 사상적으로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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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사랑의 연탄 5만장 북한에 전달(2004년 북한 직접 방문)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409200439

문근영 불법 이적단체에 거금 지원(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08)

영화배우 문근영씨(18)가 최근 타계한 외조부 류낙진옹의 부의금 전액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 전달, ‘통일기금’으로 써 줄 것을 당부했다. 부의금의 액수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5000만원에 달하는 큰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낙진의 묘비문: "통일애국열사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7152



이상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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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 사이트로 열리면서 참 여러가지로 역사가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역사상의 인물들을 한번씩 검색해 보는 재미도 있고, 거기서 가끔씩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하지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좀 힘든 사람들입니다. 왕조실록은 아무래도 왕과 근신들에 의한 통치행위에 대한 일기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한 화공들이 다뤄지기엔 좀 무리가 있죠. 하긴 연산군일기에는 '왕의 남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공길이란 광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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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검색 결과. 우선 '신윤복'을 검색했지만 영-정조대에 신윤복이란 이름의 인물과 관련된 기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실망.

하지만 김홍도는 달랐습니다. 일단 첫번째 기록은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8월 26일(병신)의 기사로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申漢枰) · 김홍도(金弘道) 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신한평은 바로 신윤복의 아버지죠. 그럼 김홍도와 신윤복이 알고 지냈을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해집니다. 아들이었건 딸이었건(^^) 이렇게 어진을 함께 모사할 정도의 사이라면 어려서라도 보긴 봤겠죠. 이때 김홍도는 36세의 한창 나이입니다. 기록대로 신윤복이 1758년생이라면 이때 23세로군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은 두 차례 더 나옵니다. 저 기사가 나오고 바로 다음달인 9월 3일(임인),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김홍도에게 어용을 그리게 하다'라는 기록이죠. '희우정(喜雨亭) 에 나아가 승지·각신을 소견하였다.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화사(畵師) 김홍도(金弘道) 에게 어용(御容)의 초본(初本)을 그리라고 명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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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은 창덕궁의 후원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마포구 합정동에도 희우정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 희우정은 아니겠죠.

아무튼 14년 뒤인 정조 19년(1795년) 정월 연풍현감 김홍도에게 재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물으라는 공론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화공으로 출세해 현감 벼슬까지 누리고 있었지만 정사에는 그리 밝지 못했던 듯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김홍도 관련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 화가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실록에 이름이 세번이나 오르내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신윤복은 물론이고 조선 3대 화가로 거론되는 안견 역시 단 한번 이름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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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는 지난주부터 화산관 이명기라는 당대의 유명 화가가 등장했습니다. 김홍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드라마에 흥미를 더 할 인물이죠.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초상화의 1인자로 불리던 이명기는 생몰연대가 불분명하지만 1791년 어진화사를 맡았고 1795년 김홍도와 함께 '서직수 초상'을 합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시대의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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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직수 초상. 오른쪽에 '얼굴은 이명기가, 몸은 김홍도가 그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명기가 등장하고 보면 아쉬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긍재 김득신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게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득신의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위트있고 서민적인 화풍이 매우 닮아 있죠.

가장 대표적인 그림, '파적도(破寂圖)'입니다. 일명 '야묘도추(野猫盜雛: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고도 하지요.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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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생으로 김홍도보다 9세 연하, 신윤복보다는 4세 연상인 김득신은 이처럼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한 탁월한 화가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자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1712년생인 최북입니다. 최산수, 최칠칠이라고도 불리는 최북은 상당히 광화사의 표본 같은 인물이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는 최북은 호방한 성품으로 널리 친구를 사귀고, 금강산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관에 취해 물에 빠져 죽겠다고 시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 질 정도로 기인의 풍모가 깃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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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회에 안경을 쓴 김홍도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는데, 최북이야말로 눈을 다쳐 줄곧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1786년 술을 마시고 길에서 객사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인데, 이 드라마가 현재 조명하고 있는 시기가 정조의 즉위초인 1770년대 말에서 80년대 정도라고 할 때,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는 인물인데 좀 아쉽습니다.

최북의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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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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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렸던 이 그림은 제목이 같은 겸재 정선의 '한강조어도'였습니다.


아무튼 '바람의 화원'으로 인해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나자나 간송 미술관은 10년 전에 가 보고 못 가봤군요. 어떻게 좀 더 넓고 시설 좋은 곳으로 옮기면 안될지 참 궁금합니다. 리움 정도의 시설이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말입니다.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문근영.



다음은 왕년의 박신양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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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다, 라는 말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섬유나 암석 등의 질감을 표현해주던 것이 어느새 사람에게로 옮겨 와 그 전까지 '퉁명스럽다', '싸늘하다', '냉랭하다', '딱딱하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냉소적이다' 등으로 표현되던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까칠함이 하나의 매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방송을 통해서 그렇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아직은 좀 힘들 지 모르지만, 최소한 드라마든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든, '까칠한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물론 눈치채셨겠지만 이 까칠남들은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요즘 인기 좋은 까칠남의 선두 주자로는 바로 이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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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박', '하박'이라고 불리는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님입니다.

하우스 박사의 까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진단 전문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한쪽 다리에서 여전히 주기적인 통증이 밀려와 진통제를 사탕처럼 와작와작 씹어 먹고 다니는 사람이 신경질적이 아닐 리가 없겠죠. 그런데 신경질을 뿜어도 참 머리를 써서 뿌려댑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보통 사람이라면 한 2초 정도 생각해야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High Sense of Humor를 담고 있죠. 물론 유머는 유머이되 매우 뒤틀려 있습니다. 내장이 꼬여도 힘 좋은 아낙네 둘이 열심히 빙빙 돌린 홑이불 빨래만큼 꼬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여인네들이 세상에 널렸습니다. 오래 전의 드라마들에 나오던 주인공들처럼 내면은 사실 따뜻하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워낙 많이 받은 터라, 혹은 알게 모르게 불치병의 소유자라서 세상 사람들이 행여 자신에게 정을 줬다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악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못됐고 진짜로 꼬인 심성의 소유자인데도 사람들이 그에게 환호하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단 다른건 다 몰라도 그의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라는 데서 찾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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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이라면 애저녁에 보따리를 싸서 달아났을 그의 수하 의사 세 사람이 악착같이 하우스의 곁에 붙어 있었던 것도(물론 지금은 다 떠나 있지만) 그의 탁월한 실력과 경험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또 흔한 얘기로 '위급상황에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인간성 좋은 의사보다는 못됐더라도 실력 좋은 의사를 만나게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기도 하죠. 아무튼 하우스 박사를 인기남으로 남아 있게 하는 건 우선 그의 뛰어난 실력과 뛰어난 두뇌, 그리고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바이크도 잘 타는 그의 다양한 개인기, 마지막으로 한번 싫으면 무작정 싫다는 단순한 태도가 다소 어린애같은 면을 보여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한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 더 보탠다면 TV에선 냄새가 안 난다는 점을 꼽아야겠죠. 하우스의 스타일을 보면 대체 옷을 언제 갈아입는지, 머리는 감는지 궁금합니다. 자연 냄새가 풀풀 나겠죠. 하우스의 '수려한 용모'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순전히 여성 시청자들에게만 수시로 일어나는 전형적인 캐릭터의 음덕 현상(캐릭터의 매력이 배우의 외모로 전이, 본래 그 배우가 잘 생겼던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가까이는 생쥐 아빠일 때, 멀게는 로완 애킨슨과 공연했던 영국의 걸작 고전 코미디 '블랙애더'(요즘 BBC 위성채널에서 일요일 오전마다 틀어주고 있습니다) 시리즈를 본 사람이 휴 로리의 외모에 대해 높이 평가할지는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하우스 박사님의 인기가 유일한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이를테면 오만 개성질 다 부리기의 고수 고든 램지 선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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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가수면 난 파바로티다 스타일의 인간 말종 스타일 사이먼 코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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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픽션 속 인물로 돌아가 정말 싸가지없는 강마에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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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강마에씨가 자꾸 착해지는 바람에 드라마의 재미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시청자들은 강마에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계속 못되게 굴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하박사님을 포함해 이런 캐릭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입니다. 뭘 조언을 하건, 남들의 약점을 짚어 내건 틀리는 법이 거의 없죠.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게다가 이 사람들은 모두 솔직 담백면에선 확실한 믿음을 줍니다. 남들처럼 돌려서 얘기하는 법을 아예 모릅니다. 램지나 코웰은 나름 꿈을 안고 온 도전자들에게 "실력도 없는게 왜 여기서 시간낭비 하고 있어? 얼른 딴데 가서 알아봐"라며 쏘아붙입니다. 강마에씨야...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최고의 전문가라는 점', 그리고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당한 매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라고 해서 실생활에서도 그 흉내를 내거나, 저런 캐릭터로 보여서 이성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참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라고 쓰고 보니 거의 똑같은 기사(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335317)가 이미 나와 있더군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 포스팅을 한 시간이 10월12일, 링크의 기사가 나온 건 14일입니다 - 베낀 건 아니란 뜻입니다.

아무튼 확 지워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길게 쓴게 아까워서 그냥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하의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까칠한 캐릭터들에게 열광하는 이유, 일단 그들이 잘났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런 캐릭터들이 통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둘째, 그게 자기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TV 속 강마에를 보면서 깔깔 웃던 사람들이 과연, 실제로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이 속엔 뭐가 들었을까, 똥.덩.어.리"해도 웃음이 나올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실생활에서 저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독설을 정면으로 받는다면 아마 안색이 변하고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끼얹거나 하는 반응을 보일 겁니다. 사람들이 저런 캐릭터를 좋아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닐 때까집니다. '남들이 당할 때'와 '내가 당할 때'의 차이를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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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위의 캐릭터들은 모두 허구 속의 존재들입니다. 저들의 완벽함은 실생활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나 강마에는 픽션 속 인물이니 당연한 얘기고 램지나 코웰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램지도 고기를 설익히거나 수프를 망칠 수 있습니다. 코웰 또한 정말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를 못 알아볼 수도 있겠죠. 이들 역시 방송 속에서만 전지전능합니다. 방송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들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고 말 겁니다.

물론 실생활에서도 '상당히' 까칠한데 '상당히' 인기 있는 사람들은 꽤 있죠.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틀림없이 까칠하지만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까칠한게 통한다'는 착각으로 이 아저씨들의 흉내를 내시려는 분이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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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두 편을 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에 와서 털어놓자면, 박신양이라는 배우가 왜 그렇게 인기있는지 오랜 시간 동안 이해하지 못했더랬습니다. 프로필상으로는 1993년작인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데뷔작으로 되어 있지만 존재감 없는 역할인게 확실하고, 1996년 그가 처음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1996년 당시 MBC TV에서는 '사과꽃 향기'라는 드라마를 내놨습니다. '사춘기'에서 정준을 하이틴 스타로 만들고, 뒷날 '왕초'나 '복수혈전'같은 히트작을 만드는 장용우 PD의 작품이었죠. 유호정 김혜수 염정아 김윤정이 네 자매로 나오고, 김승우와 윤동환이 김혜수의 두 상대역으로 등장했습니다. 박신양은 김혜수를 짝사랑하는 직장(방송국) 동료 역이었죠. 남자 3번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배우여서 내력을 물으니 김혜수의 동국대 선배였고 김혜수의 추천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데 일조했다는 거였습니다. 러시아 유학을 다녀온 배우로 양윤호 감독(알고 보니 동국대 연영과 동기더군요. 나중에 함께 일하게 되는 IHQ의 정훈탁 대표와도 모두 동기생입니다)과 '유리'라는 영화를 찍어 놓고 아직 개봉은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이 대단한 배우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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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초반에는 박신양의 재즈 댄스 장면이 삽입돼 있었습니다. 장PD에 따르면 "우연히 춤 실력을 보게 됐는데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드라마 내용을 수정해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설정이었죠. 김혜수의 직장 동료들이 회식 자리에서 나이트클럽에 갑니다. 다들 술을 마시고 떠드는데 워낙 내성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던 박신양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죠.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박신양이 스테이지로 나가 열정적인 춤을 춥니다. 물론 '나이트 댄스'와는 거리가 먼 춤이지만 대단히 역동적이었고, 극중에서 김혜수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이 박신양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때 드라마가 폭발력이 있었다면 이 장면도 꽤 화제가 됐겠지만 불행히도 '사과꽃향기'는 시청률 면에서 그닥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박신양도 이 드라마로 주목받지는 못했죠. 뒤이어 '유리'도 개봉됐지만 난해하기로 소문난 박상륭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이 화제가 됐을 뿐, 실제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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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신양은 이듬해인 1997년 최진실과 공연한 '편지', 98년엔 전도연과 공연한 '약속'을 히트시키면서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이 시기, 저는 참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건 박신양의 '외모'가 여성들에게 먹힌다는 거였습니다.

대다수 남자들이 보기에 박신양은 결코 미남이 아닙니다. 심지어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그래도 외모는 내가 박신양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여자들은 비웃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자들은 박신양에게서 '젠틀함+순정을 지키는 남자+소극적이지만 정직한 남자=믿을 수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읽어내더군요. 이런 이미지가 집대성+극대화된 것이 바로 '파리의 연인'이겠죠. 하지만 솔직히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도 그런 열광을 이해하는 데에는 참 곤란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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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배우는 그 바깥에 순수 야성에 가까운 이미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배우가 그렇게나 범죄자 역할을 많이 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쪽의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킬리만자로'를 비롯해 '범죄의 재구성'이나, 거슬러 올라가 '약속'의 공상두처럼 자기 생각에 외곬수로 빠져 있는 양아치 연기를 할 때 박신양의 연기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남자들은 이 쪽에 훨씬 가까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람의 화원'에서의 김홍도 연기는 이제까지 박신양의 이미지를 다져온 두 개의 선에서 어긋나 있었습니다. 물론 외곬수의 고집장이 캐릭터라고 하자면 지금까지 박신양이 지켜온 수많은 이미지의 교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 예술가 연기는 그중 어떤 캐릭터와도 좀 달랐습니다.

'바람의 화원'에서 박신양의 첫 등장이 어떤 장면일지가 참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첫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의 광화사의 모습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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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나뭇잎을 잔뜩 꽃고 얼굴에는 흙칠을 한 김홍도의 모습. 이 인상적인 첫 장면을 통해 박신양은 '그림에 환장한 사람', 그리고 '그림을 위해서는 심지어 목숨까지 아랑곳않는, 그림에 미친 사람'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었습니다. 안경과 더부룩한 수염에서는 '빠삐용'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무튼 강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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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초기에는 박신양의 합류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민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박신양의 성품과 초고액 출연료가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고 나니 박신양의 가치가 새삼 느껴집니다. 형식과 전통에 꽉꽉 갇혀 있던 당시의 화단에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강인한 소신과 타고난 재능을 갖춘 대 화가이면서, 동시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린 아이와도 소리를 지르며 싸울 수 있는 천재 화가의 이미지를 첫회 30분 정도의 분량에 쉽게 각인시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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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채널에서는 또 다른 천재가 인기몰이에 한창입니다. '강마에' 김명민이죠. 이 천재는 천재이긴 하되 진짜 천재에 대한 컴플렉스를 안고 있는 가짜 천재입니다. 전형적인 살리에리 증후군 환자죠. 이런 억눌린 감정이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할 때에는 더욱 예술의 엄정성과 고귀함을 강조하는 권위주의로 발산되는 인물입니다.

참으로 복잡다단한 인물이지만, 김명민의 솜씨에 의해 이 인물은 너무나 편안하게 시청자들에게 소화됩니다. 인물을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도 없이, 그냥 꿀꺽꿀꺽 마시면 '아, 이게 강마에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요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게 대단한 배우와 보통 배우의 차이일 겁니다.

사실 김명민은 데뷔할 때 일각에서 '제2의 박신양'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외모에(글쎄 남자들에겐 이렇게 보인다니까요;;) 선이 굵은 연기를 한다는 면은 공통점으로 꼽을 만 하죠. 그런데 두 배우가 이제 맞대결을 펼치고 있으니 참 흥미로운 일이죠. 시청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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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대체 왜 드라마 '타짜'의 배경이 부산일까, 왜 이 드라마에는 '우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주 나올까. 그리고 왜 고니의 패거리는 네 명이고, 원작에 없는 건달들이 이렇게 많이 나올까.

뭐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바로 이 냄새를 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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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타짜'는 고니(장혁)과 영민(김민준)이라는 두 친구를 주역으로 내세웠습니다. 드라마의 진행 방향으로 보아 영민은 타짜 아귀(김갑수)의 수하로 들어가고, 고니는 세상을 돌면서 스승 평경장(임현식)을 만나 최고의 타짜가 되어 다시 만날 모양입니다. 물론 그때는 두 사람이 적수가 되어 있겠죠. 그 사이에 난숙(한예슬)과 정마담(강성연) 이야기도 나오겠지만, 어차피 드라마의 큰 흐름에는 둘 다 별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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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의 1부인 '지리산 작두'를 시대만 조금 바꿔 거의 그대로 재현했던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와 어쨌든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듯 합니다. 그래서 1부 '지리산 작두'와 2부 '신의 손'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선에서 각색이 이뤄졌죠.

만화에서 1부의 주인공은 고니, 2부의 주인공은 고니의 누나의 아들인 대길이지만 드라마판의 주인공인 고니는 고니와 대길이를 합쳐 놓은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대길이의 평생 연인인 광숙이-미나는 난숙이-미나로 이름을 살짝 바꾸고, 식당을 하는 어머니(박순천)와 사진관 아저씨(이기영)의 로맨스는 그대로 살리되, 사진관 아저씨가 왕년의 타짜 '지리산 작두'가 됩니다. 이 '지리산 작두'는 바로 만화에서 고니의 별명이니 족보가 어지러워지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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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다 보니 영민이란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됐고, 아귀의 캐릭터도 원작이나 영화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만화와 영화판에 나오는 본래의 아귀는 돈과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원시적인 공포를 자아내는 악의 화신이지만 김갑수가 연기하는 아귀는 머리좋고 영악한 사업가처럼 보입니다.

여차하면 상대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본래의 아귀와는 달리 이 새로운 아귀는 너무 머리를 많이 굴리죠. 말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아귀라는 캐릭터가 본래 갖고 있던 위압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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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 캐릭터로 넘어가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캐릭터가 어디서 온 것인지가 너무도 잘 보이기 때문이죠. 김민준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영화 '사랑'의 치권을 쉽게 연상시킵니다. 부산 출신인 김민준에게 '사투리로 하니까 연기가 되는구나!'라는 칭찬을 듣게 했던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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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민준의 연기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라는 점이 걸립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 캐릭터를 만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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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굳이 부산이 무대인 점이며 굳이 폭력배들이 처음부터 치고 받고 하는 점, 패거리가 네 명인 점 등이 모두 희대의 히트작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 계열의 흐름과 영화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 함께 뒤섞여 흘러가는 작품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두 흐름이 그리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는게 문젭니다.

허영만 원작 만화 '타짜'가 희대의 히트작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연재로 이 만화를 지켜보신 분들은 잘 느끼시겠지만, 이 만화의 특징은 하루 이틀만 연재를 놓쳐도 따라가기 쉽지 않을 만큼 스토리의 진행이 빠르다는 데 있죠. '이런 정도의 스토리라면 좀 더 늘려도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하지만 '친구' 스토리의 수혈은 이야기를 다양하게 한 것이 아니라, 진행을 더디게 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돼 버렸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심지어) 영화 '친구'를 보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박장 장면을 통해 한껏 흥미를 올려 놓으면, 우정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친구 스토리'가 들어와서 분위기를 흐려 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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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원작 만화의 각색이라고 해서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틀어 볼 때 '가능한 한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한 작품'일수록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틀을 가능한 한 유지하려고 애썼던 영화 '식객'과 '타짜', '비트', 드라마 '식객'이 전자의 예라면 '사랑해'나 '아스팔트 사나이'가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원작의 구성과 전개가 탁월하기 때문에, 손을 대면 댈수록 망가진다는 쪽에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타짜'도 굳이 원작의 설정에 왜 그렇게 많이 손을 대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더구나 그 '손질'이 창의적인 시도였다면 모를까, 이미 초대박이 난 영화와 그 아류작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익을 대로 익은, 어쩌면 슬슬 싫증이 났을 수도 있는 터치라면 말입니다. '타짜'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현재의 시청률은 단지 '에덴의 동쪽'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왠지 교각살우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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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ROCK' 이 2년 연속 에미상 수상 작품이 됐습니다.

지난해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30ROCK'은 22일 올해 에미상에서도 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알렉 볼드윈), 여우주연상(티나 페이)을 휩쓸었습니다. 명실공히 최고의 코미디 시리즈임을 인정받은 거죠. 그것도 두 시즌 방송해서 두 시즌 연속 상을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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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ROCK'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국내에서도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됐다는군요). 하지만 미드 팬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작품이죠. 특히 작가 겸 배우인 티나 페이도 페이지만 젊은 시절의 미남 스타에서 능글능글한 너구리같은 중년 연기자로 변신한 알렉 볼드윈의 연기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볼드윈은 '프렌즈'에서 피비를 좋아하는 감정과잉남으로 출연했을 때의 연기도 빛을 발했지만, '30ROCK'에서의 연기는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번 수상이 무척 반갑기도 합니다.

NBC TV에서 방송되는(오는 10월 시즌 3가 시작됩니다) '30ROCK'은 NBC TV 사옥을 무대로, 가상의 버라이어티 쇼 'TGS with Tracy Jordan'을 진행하는 제작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티나 페이는 제작진을 이끄는 고참 작가(PD보다 실질적으로 권한이 더 큽니다) 리즈 레몬 역으로, 알렉 볼드윈은 계열사에서 와 방송국 운영을 맡게 된 전문경영인 잭 도너기 역을 맡았습니다.

제목인 '30ROCK'은 미국 맨하탄에 있는 NBC TV 본사의 주소라고 합니다. 30은 번지, ROCK은 록펠러 센터를 말하죠.

주요 캐릭터를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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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레몬(티나 페이)

일 중독에다 섹시함이 부족한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방송국 여자'. 버라이어티 쇼를 이끄는 수석작가로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묘하게도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잭 도너기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똑부러지게 반박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반면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도너기가 레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드러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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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도너기(알렉 볼드윈)

최고 학벌과 최고 경력을 거친 전문 경영인 출신의 방송사 간부. 어떤 사람이든 모두 실적으로 평가하는 냉정함을 갖췄고, 성공과 승리 외에는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족적인 팀 분위기에서 일하던 리즈 레몬으로서는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죠. 하지만 어머니에게 약점이 있고, 애정 문제에 있어서도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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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조던(트레이시 모건)

꽤나 인기있는 흑인 코미디언 겸 래퍼지만 도대체 예측이 불가능한 4차원 인간입니다. 우여곡절끝에 리즈의 쇼에서 메인 MC를 맡게 돼 무던히 속을 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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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말로니(제인 크라코스키)

자신이 지나치게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쇼의 고정 출연자. 리즈와 제나는 본래 수많은 프로그램을 함께 한 친구 사이라서 방송에도 사사로운 정이 개입되곤 합니다. 가끔 안 통하는 섹시함을 밀어붙일 때에는 연민을 자아내기도 하죠.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후계자를 향한 몸짓이 일품이었다고나. 전반적으로 '앨리 맥빌'에서의 캐릭터에서 악의를 뺀 것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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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잭 맥브라이어)

'30ROCK'이 창조해 낸 최고의 캐릭터입니다. 누가 봐도 지능이나 판단력이 정상인에 못 미치는 NBC 방송사의 안내 직원. 트레이스 조던 쇼 스태프들이 일하는 층의 담당이어서 항상 모든 사람의 잔심부름까지 맡아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발가락의 때로밖에 여기지 않는 잭 도너기가 케네스를 처음 본 순간, "언젠가 우리는 모두 저 친구 밑에서 일하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한 예언은 지금까지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습니다. 과연 케네스는 언제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발휘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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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딘 윈터스)

언제 다시 등장할 지 모르는 리즈의 옛 애인. 찌질이에다 삐삐 세일즈맨이라는 희한한 직업의 남자. 하지만 가끔 지독하게 남자다운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정상적으로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리즈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끔씩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한 타입입니다.

이밖에도 온갖 괴짜들을 모아놓은 제작진의 작가들, 특히 눈길을 확 끄는 섹시 보조작가 역의 카트리나 보든 등의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무대가 방송국인 만큼 간혹 톱스타들이 슬쩍 슬쩍 지나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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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의 성장사를 보여주는 캐릭터로 등장했던 리즈 레몬의 부모들)



지금까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재미는 리즈 레몬과 잭 도너기 사이의 신경전에서 왔습니다.

어느 나라나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 성향은 대략 비슷합니다. 리즈 레몬은 30대 중반이며 소시민 집안 출신으로 꽤 괜찮은 학교를 나왔고, 학교를 다닐 때건 지금이건 상당히 깨어 있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민주당 지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게이 문제며 각종 정치 사안에 대해 상당히 지식인다운 진보적인 입장을 유지하죠. 방송 일을 하는 것도 사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반면 도너기는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이었고, 톱클래스의 교육을 받았고, 어려서부터 선민의식이 몸에 밴 사람입니다. 당연히 공화당 지지자지만 정치적 성향 따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람이고, 직업적인 성공과 부,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바보 취급합니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언젠가는 NBC TV와 유니버설 영화사를 갖고 있는 초대형 그룹인 GE(제너럴 일렉트릭)의 최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죠. 사귀는 여자도 콘돌리자 라이스(!) 정도 되어야 하고, 아무튼 최고의 엘리트나 슈퍼모델 같은 여자들과 어울립니다.

이런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자신의 장기말들을 굴리는 도너기에게 사소한 의리나 우정, 감정적인 문제 따위를 고려하는 레몬이 어린애로 보일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반면 레몬은 '뭐 저따위 인간이 다 있나'라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30ROCK'은 이런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 의미를 인정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전혀 일방적이지 않고, 레몬도 나름 도너기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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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코미디에서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바보 캐릭터인 케네스입니다. 물론 케네스가 중요해진 것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도너기가 그를 인정했기 때문이죠. 그 이후로 케네스의 행동 하나 하나는 각별한 의미를 띕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곧 시작할 시즌 3가 무척 기대됩니다.

새 시즌엔 체리 역할이 더 커지기를 기대하면서 카트리나 보든으로 마감합니다. 만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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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받은 '매드 맨'은 저도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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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고구려가 섰습니다. 여전히 귀족은 위협적입니다. 뭐 '태왕사신기'를 보면 광개토대왕 시절까지도 고구려 왕은 귀족연합체의 수장 정도였던 모양이니 2대 유리왕때 강력한 왕권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칩시다.

신당이라는 조직은 부여 금와왕에게도, 광개토대왕의 아버지 고국양왕에게도, 그리고 유리왕에게도 제멋대로 굽니다. 이건 무슨 신정국가도 아니고...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고구려가 나오는 드라마마다 죄다 이런건 무슨 조화속입니까.

네. 바로 '바람의 나라'에 대한 불만입니다.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고, 시청률도 지난주엔 혼전 속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존재 이유는 영 떨어지는 편입니다.

일단 송일국이 연기하는 주인공 무휼은 정작 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당에서 어이없이 저주가 붙었네 어쩌네 하는 바람에 불쌍한 무휼은 고구려판 오이디푸스가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또 자기가 왕자인지도 모르고 가는 곳이 하필 부여랍니까. '주몽'과 '바람의 나라'를 구별 못 하게 하는 것이 제작진의 목표란 말입니까?

물론 주몽과 무휼의 캐릭터도 살짝 다르고, 겪어야 하는 갈등도 조금씩은 다르겠죠. 그것까지 똑같으면 아예 재방송일테니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뭣보다 이 두 드라마가 넘어야 할 벽은 똑같이 생긴 주인공입니다. 이거야말로 처음부터 넌센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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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이 써 있지 않으면 어느 드라마인지 정말 구별할 수 없는 스틸입니다.)

송일국이 이 역할을 수락한 것도, 송일국에게 제의한 제작진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뭐 하다 보면 아들 역을 하던 배우가 나이를 먹어서 아버지 역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주몽 역을 한 배우가 2년만에 그 손자 역을 또 한다는 건 좀 어이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있는 역사적 사실까지 다 뜯어 고쳐서 무휼이 걸어가야 할 길도 주몽이 걸었던 것과 거의 흡사한 고난의 성장드라마로 바꿔 놓는 건 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오는 무휼은 사실 슈퍼 차일드입니다. AD 4년생인 무휼은 AD 9년(만 5세)에 동부여의 사신을 말솜씨로 제압하고, AD 13년에 대군을 이끌고 대소의 동부여군을 무찌르는 장군이 됩니다. 네. 9세죠.

10세에 세자가 된 무휼은 14세에 유리왕의 죽음으로 왕이 됩니다. 워낙 어린 나이에 왕이 된 터라 27년나 재위하고도 40세에 숨을 거둡니다. 동부여를 공격해서 대소를 죽이고 3대에 걸친 원한을 갚는 것도 재위 5년째인 18세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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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미 왕이 되어 동부여를 때려 부술 나이에 부여 땅에서 목숨을 걸고 모험하고 있어야 하는 팔자라니, 이거야말로 안습입니다. '태왕사신기'보다 더 심한 왜곡을 하고 있는 거죠.

물론 9세 어린이가 장군이 되어 적을 무찌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굳이 가정을 하자면 고구려군이 부여군을 모욕하기 위해 9세의 왕자를 명목상의 허수아비 장군으로 두고, 실제로는 다른 장군이 지휘를 해서 전쟁을 치렀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에 대해 보완을 하는 것이 14세에 왕이 된 무휼을 거의 스무살이 다 되어 보이는 나이로 부여에서 뛰어다니게 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사극적 상상력'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영특한 아역 탤런트를 써서 '소년 무휼의 모험'을 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초반 아역들의 활약으로 점수를 따는 상황에서 이 드라마는 좋은 흥행 요소를 놓쳐 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군요. 그랬더라면 성인 왕 역으로 송일국이 등장하더라도 이런 비판을 덜 받을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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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는 그런대로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극이 이병훈-최완규 라인의 영향으로 '주인공이 죽도록 고생한다 - 경쟁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 - 마침내 빅 맨이 된다'의 과정을 마치 무슨 교과서처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안 그래도 '주몽'이나 '태왕사신기'와 여러가지로 비슷해 질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구성 면에서 전혀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중에 왕이 되는 소년의 지긋지긋한 고생담을 드라마로 하려면 차라리 나중에 미천왕(AD 313년, 낙랑군 병합의 공적으로 국사 교과서에 등장하죠)이 되는 소년 을불의 이야기라도 만들 것이지, 굳이 멀쩡한 무휼을 방랑소년(?)으로 만들어 놓는 심사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무신왕 드라마는 제발 대무신왕 얘기로 만들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용감하고 영특했다는 소년 왕의 소재를 날려버린 것도 아쉽거니와,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진 대소 같은 캐릭터에 편승해서 대무신왕을 그냥 제2의 주몽으로 만들려는 듯한 '바람의 나라'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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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옛날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가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내용에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 퍼 왔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궁금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얼마전 '온에어'가 방송계의 현실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관심과 인기를 끈 적이 있었죠. 근처에서 맴도는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정도면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저래?'싶은 장면이 예전의 다른 드라마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적나라한' 편에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물론 문화의 차이도 있고, 감출 건 감추는게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미국 드라마들 중에는 이보다 훨씬 연예계의 이면을 확실하게 '까발리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드라마로 '앙투라지'가 있습니다.

(물론 '앙투라지'는 할리우드 이야기고, "니가 할리우드 애들이 저러고 노는지, 저 드라마가 정말 리얼한지 알게 뭐냐?"고 물어보시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옆에서 본 한국 연예계 풍경을 보면, 충분히 저 정도는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또 '앙투라지'가 진짜 '리얼'한 드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들여다 볼까?'라는 식의 접근 방법에선 감히 한국 드라마들이 따라갈 수가 없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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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ourage는 불어로 '측근' 정도의 뜻을 갖고 있는 말인데, 이 단어를 알고 보니 의외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흑인 래퍼들이 나오는 장면에 이 단어가 많이 등장하더군요. 연예인 하나가 움직일 때 옆에 별 할일 없는 친구들을 포함해 그 family들 대여섯명이 따라 다니죠. 그들을 흔히 '앙투라지'라고 칭하더라구요.

드라마 '앙투라지'도 바로 그 측근들의 이야기입니다. 잘 나가는 20대 초반의 스타 빈센트 체이스(에이드리언 그레니어)가 뉴욕 퀸즈(썩 좋은 동네는 아닙니다. 한인 타운도 퀸즈 가까이 있죠)에서 함께 자란 형 조니 '드라마'(케빈 딜론)와 두 친구, 에릭(케빈 코널리)과 터틀(제리 페라라)을 LA로 불러 함께 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빈센트는 죽마고우이자 생각이 깊은 에릭을 자신의 매니저로 고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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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부터 빈센트, 아리, 터틀, 드라마, 에릭.)

하지만 에릭은 전문지식은 커녕 전 직장이 피자집 주방이었습니다. 그래서 빈센트의 에이전트이자 하버드를 포함한 으자자한 MBA 학력을 갖고 있는 아리 골드(제레미 피븐)는 대놓고 에릭을 무시합니다. 그래도 빈센트의 측근이니 늘 으르렁거리면서도 두 사람은 어떻게든 빈센트를 톱스타의 자리로 올려놓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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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와 매니저 에릭


자, 매니저는 뭐고 에이전트는 뭔지 아리송해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길게 말하면 끝이 없지만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매니저와 에이전트의 역할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영화 출연, 광고 출연을 포함해 한 배우가 맺는 모든 법적인 계약은 에이전트를 통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신 에이전트는 영화나 음반을 직접 제작할 수 없죠.

그럼 매니저는 뭘 하냐, 늘 스타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필요한 일을 챙겨 줍니다. 대신 매니저는 계약에 관여하지 못하고, 스타로부터 급여를 받습니다. 물론 매니저는 에이전트와는 달리 영화나 음반 제작을 할 수도 있고, 직접 투자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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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에이전트 아리


제가 읽은 간단한 설명에는 이런 게 있었습니다. "대학 밴드의 경우를 예로 들자. 별볼일 없는 대학가 밴드에도 매니저는 있다. 이들은 악기 운반, 공연장 섭외, 티켓 판매, 포스터 부착 및 홍보, 트럭 운전 등을 맡는다. 이 밴드가 스타가 되더라도 학생 시절의 매니저가 그대로 매니저 일을 맡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음반사나 방송사와 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에이전트를 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에이전트 중에는 변호사 자격을 갖춘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무튼 '앙투라지'는 절반 이상이 에릭과 아리가 빈센트의 장래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입니다. 닳고 닳은 아리는 작품의 질은 어쨌든(대본을 읽지 않습니다) 돈이 실제로 생기는 방향을 고집하죠. 하지만 에릭은 궁극적으로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빈센트(물론 대본을 읽지 않습니다)의 소망에 맞추기 위한 노선을 잡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타를 빼앗기 위한 에이전트들끼리의 암투, 영화사와의 갈등, 영화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 등이 실감나게 펼쳐집니다.

에릭과 아리의 대립은 때로 '톰과 제리'를 연상시킵니다. 똑똑하고 지나치게 합리적인 아리에게는 '머리도 텅 빈 주제에 빈센트와 친한 것 하나 믿고 설치는' 에릭이 눈의 가시고, 에릭의 눈에는 '실제론 빈센트를 위한 마음따위는 없고 대본은 읽지도 않으면서 돈만 밝히는 냉혈한' 아리가 좋게 보이질 않죠. 하지만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은 수시로 힘을 합치고, 또 서로 삐치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리' 에릭보다 '톰' 아리가 더 많이 당합니다. 나중엔 아리가 좀 불쌍해 질 정도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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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앙투라지'는 그냥 직업 드라마가 아닙니다. 일단 네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드라마의 나머지 절반은 네 친구들이 벌이는 헌팅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도 빈센트는 정말 많은 상대들을 차지합니다. 에릭도 그만그만. 문제는 조니와 터틀입니다. 이들은 정말 '건지면 다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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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드라마 체이스 역의 케빈 딜런.


주인공은 빈센트와 에릭이지만 사실 조니의 캐릭터는 대단히 눈길을 끕니다. 이 인물은 본래 마크 월버그의 사촌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사실 배우 케빈 딜런의 이력이 더 눈길을 끕니다. 그의 한살 위인 형이 바로 맷 딜런이기 때문이죠.

기타 등장인물들 중에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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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자 쇼나 역의 데비 마자. 아리를 우습게 아는 앙투라지 4인조도 설설 기는 공포의 입심을 가진 아줌마죠. 아리에게는 좋은 파트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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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의 비서이며 중국계 게이 로이드 역을 연기하는 렉스 리. '전국 에이전트 비서 연합'의 중심 인물이기도 합니다. 동성애 혐오자인 아리의 심한 언어 폭력에도 절대 굴하지 않으면서 아리를 위해 대단한 위기 돌파력을 보여줍니다.

'앙투라지' 후반부에서 가장 성공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아, 한국계로 밝혀지기도 했었죠. 69년 생입니다. 뒤늦게 성공하느라 애썼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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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상 천재인 빌리 월쉬 역의 리스 코와로. 다루기 힘든 기인이며 이상할 정도로 빈센트하고만 잘 맞는 궁합 때문에 아리를 환장하게 하는 영화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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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 때문에 연기 경력을 포기한(?) 전직 여배우인 아리 부인 역의 페리 리브스.

그밖에 제시카 알바를 비롯,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할리우드의 진짜 현역 스타들이 각자 himself, 혹은 herself 역으로 등장합니다. 그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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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난해 작가 파업으로 대부분의 미국 드라마가 중단됐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드라마가 바로 이 '앙투라지'였습니다. 언제쯤 새로운 시리즈가 재개될지 정말 기대해마지 않습니다.

연예계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드라마죠. 단 'E!뉴스'를 봐도 저게 무슨 세상 얘긴가 싶은 분들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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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TV 드라마 '내 여자'가 방송중입니다. 고주원 박솔미 박정철 최여진 주연의 드라마인데, 여자에게 버림받은 한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매번 지켜보게 되지는 않지만, 왠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왠지 정이 가는 드라마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내 여자'는 1980년작인 MBC TV 드라마 '종점'의 리메이크입니다. 이병주 원작 '망향'을 각색한 작품으로, 이제 방송작가 중 최고 원로급인 이희우 작가가 '종점'에 이어 여전히 '내 여자'도 집필하고 있더군요.

당시 '종점'의 네 주인공은 현재 고주원 역이 이정길, 박솔미 역은 김자옥, 박정철 역은 박근형, 그리고 최여진 역은 김보연이 연기했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바보같은 보도자료 때문에 최여진=고두심이라는 보도가 몇번 나온 것 같은데, 김보연이 재벌집 딸 역이었습니다.
 
사실 '청춘의 덫'이 방송되고 몇년 지난 뒤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방송 당시에도 '청춘의 덫'과의 유사성이 여러 번 지목됐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죠. 남자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여자가 복수한다는 부분에서 성별이 바뀐 걸 제외하면 재벌 남녀가 각각 문제의 '헤어진 남녀'를 좋아한다는 내용, 그리고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정길, 박근형)이 같다는 점 등에서 유사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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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이 방송된 건 중학교 2학년 때. 그리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청춘의 덫'과 '종점'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이정길이 연기한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안현상'이었다는 것, 그리고 김자옥이 변심해 갈라서는 장면이 선명합니다.

재벌집 아들 박근형은 마음에 두고 있던 김자옥을 비서로 기용한 다음 지방으로 함께 출장을 갑니다(당시만 해도 해외 로케이션은 힘들던 시절이라...). 하지만 가 보니 출장은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었어고, 박근형은 김자옥을 호텔 나이트클럽으로 데리고 가 술을 마시고 춤을 청합니다. 카메라는 박근형의 어깨 너머로, 뭔가를 결심하려는 표정의 김자옥을 클로즈업하죠.

이들의 관계가 만들어진 뒤, 모든 것을 알게 된 남자와 여자가 만납니다. 밤의 공원 정도로 설정된 세트. 배경의 서울 야경이 사진인 태가 너무도 역력한 세트였지만 연기는 진지했습니다.

"...말 해!"
"뭘 말하라구요."
"...가난이 싫어서 가는 거라고 말해! 쪼들리기 싫어서 가는 거라고!"
"그래요. 토큰 짤랑거리면서 버스 타기 싫어서 가는 거에요. 됐어요?"
(그 당시엔 버스를 탈 때 토큰이란 걸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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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를 때리는 짜악 소리와 함께 남자는 떠나갑니다. 이런 장면에서 이정길-김자옥의 연기는 불꽃을 튀깁니다. 옛날 배우와 요즘 배우를 비교하는 건 좀 가혹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런 장면에서의 연기는 희미한 기억으로도 절로 비교가 됩니다.

그래서 이정길은 회사에서도 묘한 혐의로 해직당하고, 용달차 사업을 하면서(구레나룻을 기른 이정길의 모습은 사극 외에선 처음 본 듯 합니다) 살아가다가 어찌어찌해서 복수의 꿈을 키우게 되죠. 남자의 복수 앞에서 배신자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후반의 볼거리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현재까지의 '내 여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참 많은 변명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28년 전보다는 지금의 드라마 분위기가 '악역도 미워할 수 없게 해 줘야 한다'는 쪽의 생각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따지고 보면 이런 것도 최신 유행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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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엔딩은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종점'은 재벌집 딸 김보연과 이정길이 맺어지는 걸로 끝납니다. 이정길에게 사랑을 고백한 김보연은 "나 현상씨 시골 집 가서 현상씨가 좋아하는 반찬 다 알아왔어요. 그거 매일 만들게요. 나 요리도 꽤 잘 해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웃습니다.

'내 여자'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뭐 제작진이 제정신이라면 용서와 재결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상당히 제한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주제를 살리려면 박정철-박솔미 커플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고, 원작의 김자옥처럼 박솔미가 병상에 눕게 될지는... 그건 작가의 선택이겠군요.

아무튼 왕년의 '종점'에 비해 '내 여자'는 큰 스케일의 기업드라마로서도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특히 조선산업이라는 한국의 심장 같은 사업을 배경으로 한 점도 눈에 띄더군요. 그래도 드라마 자체의 얼개가 옛날 드라마이다 보니, 21세기의 분위기를 내는 데 제작진의 고민이 꽤 따를 것 같습니다.


 




p.s. 1980년 당시엔 드라마와 함께 주제곡 '종점'도 꽤나 인기를 끌었습니다. 김추자라는 가수는 당시 이미 공개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 노래만큼은 드라마의 인기를 업고 상당히 히트했죠. 훨씬 나중에 나온 '서울의 달'의 느낌도 꽤 납니다만.

이 노래를 들어 보실 곳은 이쪽입니다. 온 인터넷을 다 뒤져도 '종점'의 스틸 컷 하나 구할 수 없던데 이분은 어디서 이런 슬라이드까지 만들어 놓으셨는지 놀랍습니다.

http://blog.naver.com/kurt0181?Redirect=Log&logNo=2002745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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