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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의 '굿바이 평양'을 보고 왔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제주도 출신(양씨라는 데서 일단 짐작 가능하죠^^)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고, 특히 북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인정받아 김일성과 함께 사진 촬영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세 아들을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10대 후반의 세 아들을 보냅니다.

막내인 양영희 감독은 세 오빠가 하루 아침에 집을 떠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세 오빠의 이후 삶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원망도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영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2004년까지 북한으로 가족을 방문하러 갈 때마다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습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전편과 속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같은 시기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되 조금 자제한 이야기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로 나눠집니다. '디어 평양'을 만든 죄(!)로 양 감독은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고 여기에 대한 반발(?)로 '굿바이 평양'을 내놨습니다.

영화는 1995년, 다섯살 난 선화가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선화는 양 감독의 둘째 오빠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입니다. 양 감독은 이것이 선화와의 첫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방문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1991년생(어쩌면 1992년생)인 선화는 1996년 엄마를 잃고, 1999년 새엄마를 맞습니다(그러니까 선화 아빠는 결혼을 세번 하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화는 구김살없이 명랑하고 씩씩한 아가씨로 자라납니다. 영화는 곧 선화의 성장사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기는 엄마의 묘소 앞에서도 방긋 방긋 웃는 아기가 되어 있고, 어느새 학교에서 배운 시 낭송을 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냥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이, 그동안 '식량난, 꽃잽이, 대량 탈출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만 부각될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북한의 실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수돗물은 하루에 두 시간 나오고 수시로 정전이 찾아오는 평양의 아파트(생일 축하를 위해 불을 껐을 때 아버지가 "어, 정전이냐?"고 물으면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도 평양 사람 다 되셨다"며 웃습니다. "영광스런 정전입니다" 하며 까르르 웃는 선화의 대사도 나옵니다), 어머니가 3년만에 닭고기 요리를 해 준다는 조카들, 미키마우스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는 선화에게 고모(양 감독)가 "이거 신어도 괜찮아? 하고 묻자 "다들 잘 몰라"라고 대답하는 선화, 그 선화보다 머리 하나씩은 작은 선화네 학교의 아이들(선화네 가족이 그나마 평양에서는 살림새가 괜찮은 편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은 양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영 신기한 듯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물질적인 빈곤 외에도, 고모가 자꾸만 선화에게 미안해 지는 이유는 여러 군데서 드러납니다. 해외 방문객이 머무는 호텔 식당에서 "먹어 본 게 없어서 고를 수가 없다"며 한동안 메뉴판만 뒤적이던 선화는 고모가 약간 민감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자 "카메라 꺼요"라며 눈치를 살핍니다. 열세살 나이에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될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양 감독이 선화에게 보여주는 애착은 오빠들 사이에서 혼자 자라나고 있는 고명딸이라는 공통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겁니다. 선화를 바라보는 양 감독의 시선에선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이 조카가 평양에서 자라야만 하는 데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디어 평양'이나 '굿바이 평양'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그런 나라에서 말입니다.




북한 입국을 금지당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오가고, 선화는 어느 새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고생하다 숨을 거두고, 아버지가 죽기 직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큰오빠(선화의 큰아버지)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큰오빠의 아들은 북한의 음악 영재로 자란 듯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양 감독이 담고 싶었던 것은 세 아들의 삶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대한 아버지의 깊은 후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특이한 가족사를 담아낸 '굿바이 평양'의 시선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따스합니다. 북한과 재일교포, 진실보다는 신화만 요란한 두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져야 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P.S. 아무쪼록 '굿바이 평양'의 공개가 선화나 그 가족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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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가 아카데미상 시상식 이틀 전에야 그 소문이 파다한 '블랙 스완'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완성도와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을 칭송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발레라는 소재,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의 분위기, 발레리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엄청난 변신 노력 등이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완벽을 향한 집념과 그 집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그리고 그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여리디 여린 신경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예술을 통한 성취 그 자체보다는, 세심하게도 이 여배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깔아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의 원천은 바로 '마마걸'이란 요소입니다.


미국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니나 세이어(나탈리 포트만)는 이 발레단을 이끌어 온 스타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은퇴와 함께 새 시즌의 개막작인 '백조의 호수'의 여주인공을 따내기 위해 엄청나게 긴장합니다. 단장(?)인 토마(뱅상 카셀)는 니나의 테크닉을 높이 평가하지만, 백조 여왕 오데트와 쌍둥이 흑조 오딜을 동시에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감정 표현이 완벽하지 않다며 의구심을 보입니다.

토마는 니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여주인공 역할을 맡기지만, 악의 상징이며 남자를 유혹해 오데트를 파멸에 빠뜨리는 오딜 역을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니나를 압박합니다. 이때문에 안 그래도 여린 니나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몇 분들이 오데트와 오딜을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토마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오해하시곤 하는데 사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거의 초연 때부터 오데트와 오딜을 한 무용수가 춤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백조의 호수'나 발레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는 결국 재능과 성공, 노력과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며, 그 단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아주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한 연출로 만만찮은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의 니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극중 발레 장면에서 보여주는 발레리나 연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설탕 인형 같은 니나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기하는 데 있어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 골든 글로브와 영국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BAFTA를 비롯해 13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여주인공의 극중 비중이나 연기력 면에서 2010년의 영화들 가운데 따라올 작품이 없다는 압도적인 성과인 셈입니다. 물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배우들 중 무시할 수 있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 올해만큼은 포트만의 독주에 제동을 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요소들에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이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웅대한 스케일, 피로를 날려 줄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약 두시간 동안 송곳으로 놋그릇을 긁는 소리를 듣는 감정의 혹사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블랙 스완'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건, 나탈리 포트만이 여우주연상을 받건 말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영화를 보는게 좋습니다. '명화'라는 말이나 지적 허영에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영화 소개는 이 정도.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니나 못잖게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의 세 여자입니다. 첫째는 예전 발레단의 여왕이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 천재성을 상징하는 릴리(밀라 쿠니스), 그리고 니나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엄마(바브라 허쉬)입니다. 사실 니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클리셰 덩어리 같은 캐릭터일 뿐입니다. 이 세 인물과의 관계가 니나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베스는 니나가 닮고 싶은 존재, 니나가 지향하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니나는 심지어 베스의 물건들을 훔쳐 가면서까지 베스의 세계에 접근하려 합니다.




릴리는 니나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무대공포증도 없고, 완벽에 대한 압박도 없이 발레를 즐길 수 있는 발레리나입니다. 니나와 같은 자기 혹사도 없고(자몽 반개로 끼니를 때우는 니나와는 달리 릴리는 치즈버거 -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다이어트로 인한 욕구불만의 상징으로 그려지죠 - 를 먹으며 춤을 춥니다), 목숨을 걸고 연습하지도 않지만 노련한 안무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유형의 예술가입니다.

릴리와 니나의 관계는 고전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릴리는 모짜르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예술이 원하는 완벽성을 희생시키는 존재입니다. 다만 니나가 90에서 100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의 90 이상을 투입해는 삶을 살고 있다면, 릴리는 80에서 90 정도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 인생의 50 정도(니나의 시선에서는 더 낮아 보입니다)를 투입하는 캐릭터입니다. (예술가의 노력과 결과로 나타나는 성취의 관계는 흔히 지수함수로 표현됩니다. 최정상의 단계에서 1%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선 그 전보다 몇 배의 투입 요소가 필요한 법입니다.)

니나가 본능적으로 릴리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 릴리처럼 역량의 50 정도를 투입한다면 릴리가 보여주는 80 정도의 퍼포먼스를 결코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릴리가 만약 인생의 100을 발레에 투입한다면 - 물론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 자신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릴리의 자유분방함은 니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상대에 대한 공포는 흔히 혐오로 바뀌기 마련이죠.




니나의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엄마와의 삶입니다. 영화 속 내용으로 짜 맞춰 보면 엄마는 그닥 재능있지는 않은 발레리나였고, 28세때 니나를 임신한 이후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니나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뒤로 다른 남자와의 삶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하고, 마찬가지로 니나의 성장과정에서 연애 같은 것은 아예 배제시켜버린 주역이기도 합니다.

니나를 사랑하고 니나를 통해 자신이 못 이룬 프리마돈나의 꿈을 이뤄보려 하지만 한편으로 니나는 자신의 발레 인생을 강제로 끝내게 한 존재(사실과 다르지만 니나 엄마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넘어 너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니나가 오데트 역을 따냈을 때 엄마는 니나에게 케이크를 먹이려 하고, 니나가 케이크를 거부하자(자몽 반개 먹는 사람에게 케이크라니...) 바로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 시도합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정상적인 딸이 자랐을 리 만무합니다.



물론 니나와 니나 엄마 같은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 쉽게 발견됩니다. 딸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장래의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딸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교우, 취미, 사회생활, 특히 연애 등을 철저하게 차단해 스파르타식으로 단련시키는 어머니들과 그 밑에서 경주마처럼 키워지는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성공하고, 어차피 몇몇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딸의 실적이 성공이냐 실패냐와는 별개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에선 엄청난 긴장과 비극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 '블랙 스완'은 좀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속 요소들이 대단히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위에서 소개한대로 아로노프스키의 섬세한 영화 작법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재능있는 딸에게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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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 인도네시아 특사들의 롯데호텔 방 침입 사건이 국정원의 망신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아테나'에 나오는 민완 요원들은 드라마 속에나 있는 거냐"며 비웃었죠.

그런데 드라마를 봐도 사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국정원은 아니고 NTS(...세무서?) 요원들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요원들은 총 쏘고 차고 때리는 법만 배웠지 총 피하는 법(?)이나 머리 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듯 합니다.

더구나 어제 방송된 마지막회... 드라마 '아테나'나, 현실의 국정원 망신이나, 드라마 속의 요원들이나 다 그 밥의 그 나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참 실망이 큽니다.



이 드라마가 시작할 때 '아줌마를 위한 드라마는 없다 http://fivecard.joins.com/893 '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만치 '아테나'의 도입부는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국내 드라마들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지 않고, 정우성이라는 주인공의 캐릭터에 맞게 다소 엉뚱하면서도 밝고 활기찬 첩보 액션 드라마가 나오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회를 거듭할수록 무참히 무너져갔습니다. 초반에는 '스토리가 없다'는 일부의 지적에 '전형적인 멜로드라마가 없다는 걸 스토리가 없다고 말하면 곤란하다'고 옹호도 했었는데 드라마가 진행되고 나니 오히려 어정쩡한 멜로드라마만 남고 진짜 스토리가 사라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도대체 맥락 없이 이어지는 진행. 최소한의 리얼리티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주요 캐릭터들은 '날아다니는 것'과 '머리 쓰는 것' 외에는 뭐든 다 합니다. 특히 마지막 두 회 분량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액션영화의 짜증나는 클리셰, '총 겨누고 서서 안 쏘고 말 많이 하다가 당하기'는 마지막 2회에만도 서너번 등장하는 듯 합니다. 주인공들 중 아무도 '다이 하드'를 못 본 모양입니다.

차승원으로부터 미사일을 발사하는 노트북 컴퓨터를 빼앗은 이지아는 3층에서 혹시나 컴퓨터가 망가질까, 고이 고이 받쳐 들고(총까지 맞아 가면서) 내려와서는, 1층에서 노트북에 총을 쏴 망가뜨립니다. 그리곤 "노트북을 던져서 망가뜨릴 힘만 있었어도 마지막 한발을...(그러니까 그 총알로 너를 쏴 죽였을 거란 얘기죠)" 하죠.  ...그럴 거면 대체 왜 3층에서 노트북을 내던지지 않았던 걸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NTS 과학수사실장인 오윤아는 괴한들에게 납치되자 핸드폰을 이용해 비상 구조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현장에 출동한 최시원과 심창민은 차 바퀴 자국을 보며 한참 뭔가 생각하더니 그제서야 "납치된 것 같다"고 보고합니다.  ...그럼 대체 NTS요원은 어떨 때 구조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그제서야 심각한 표정을 짓는 유동근 국장의 수준도 역시 안습. (그런 반면 납치된 오윤아는 맘 먹자마자 순식간에 찾아냅니다. 대단해!)

어쨌든 이지아는 차승원에게 총을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고, 아테나 요원들은 수애에게 총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고, 차승원도 정우성에게 총 겨눈 채 말 많이 하다가 죽습니다. 네. 어쨌든 '총을 겨눈 상태에서는 말을 하지 말라'는 교훈만큼은 확실히 전달됐습니다.



사고현장에서 여러 차례 총상을 입은 채 병원으로 실려간 수애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자 마자 앰뷸런스에 실려 어디론가 갑니다. 그리고 그 호송을 맡은 것은 북한 특수요원인 김민종입니다. "내가 이런 미친 짓 하는 것도 정우(정우성) 놈 속을 알기 때문"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 호송은 NTS 몰래 하는 '수애 빼돌리기'입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NTS 본부를 초토화시킨 사건 현장의 주요 인물인 수애가, 이렇게 병원에서 아무런 경호나 감시 없이 실려 나가는 것도 일단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수애가 사라질 때 유일하게 병원에 있던 NTS 요원 정우성에게 아무도 수애가 어떻게 됐는지 책임을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해직당한 거리면 최시원이 '정말 안 돌아올 거냐'고 묻지 않겠죠.) 수애 정도를 마음대로 풀어 줄 권한은 원래부터 정우성에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북한 요원인 김민종이 국내에서 중상을 입은 수애를 회복시키고, 해외로 빼돌릴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뭐 그렇다고 넘어가겠습니다. 결국 뉴질랜드에서 수애와 정우성은 감격적인 해후를 하고, 드라마는 마치 해피엔딩인 양 포장되지만 수많은 한국 요원들을 무참히 살해한 수애의 죄과가 한방에 세탁되는 것이 과연 이 드라마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마지막 두 회분만 따져도 이렇습니다. 게다가 더 근본적인 질문, 대체 차승원이 뭐가 아쉬워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냉혹한 국제 스파이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살 테러범으로 급변신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말하듯 수애를 잃은 좌절감으로? 일반적으로 배신을 당하면 배신한 '연놈'들을 죽이려 하는게 보통인데, 왜 애꿎은 원자로에 미사일을 쏴 대는 걸까요. 원자로가 파괴되고 NTS가 해체되어 정우성이 직장을 잃고 노숙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대단한 정교한 음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국민에게 실망감을 준 건 아마도 제대로 본받을 드라마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의 재기발랄하던 '아테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더 심해 집니다. 앞으로 첩보 액션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실 분들, 제대로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P.S. 이 드라마로 유일하게 득을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 최시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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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아주 오래 전, 국사 시간의 660-668-676 을 기억나게 하는 영화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 축출이라는 시간표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각각 정확하게 8년차가 나서 기억하기 쉬웠던 숫자였죠.

이준익 감독은 일찌기 세 편의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산벌'이 6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번 '평양성'은 668년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는 676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세력을 흡수해 당과 일전을 벌이고 한반도 경략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을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꽤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갑니다. 각각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공해 평양성에서 만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문무왕(황정민)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신(정진영)은 신라군 본진을 한성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 남생(윤제문), 남건(류승룡), 남산(강하늘)의 3형제가 항전을 이끌지만 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남생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남건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끝내 남생이 축출됩니다.

한편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으로 참전했던 거시기(이문식)는 이번 전쟁에는 신라군으로 징발돼 참전해 있습니다. 신라를 원수로 생각했던 거시기에게 신라군으로 뛰라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고구려군의 미녀 갑순이(선우선)을 보고 뭔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합니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평양성'이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과연 '평양성'을 극장에서 보는 관객 중 몇명이나 660-668-676을 기억하고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초반에 아무 설명 없이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를 몇명이나 제대로 느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전개는 '황산벌'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관객 대다수는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이 모두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며 형제간이라는 것, 김유신과 김흠순도 역시 형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자인 김인문은 오래 전부터 당과의 연락 담당(인질이라면 인질, 현지화 조기 유학생이라면 유학생)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 왜 맨날 뒷처리는 내가 하는 거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이라는 점, 이들 형제는 김유신과 군신관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처형이자 신라 군사력의 핵심인 김유신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황산벌' 때에도 이런 이유로 관객 중 절대 다수는 '황산벌'의 코미디 요소 중 상당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 절대 다수에게 '황산벌'은 백제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서로 사투리로 욕을 하는 코미디 영화였을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민초들에게 갖는 전쟁의 의미 등 정작 이 영화에서 중요했을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었고, 당시 삼국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이나 이해는 전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좋은 배우가 계백장군이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상황들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놀랐던 것은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평양성'은 '황산벌'의 맥을 제대로 잇고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인 만큼 TV 사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량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진행도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마구잡이 개싸움'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투 진행에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준익 식의 유머도 제몫을 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을 보다 보니 이준익-조철현 콤비는 '황산벌'의 성공 요인을 좀 오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양성'은 엄밀히 말해 '황산벌'보다 훨씬 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김유신이 평양성 내의 고구려 잔존 세력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읽힐 뿐입니다.


실제로 668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1년전 당은 백제의 영토를 관장하는 웅진도독부에 의자왕의 아들 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과 백마의 목을 잘라 화친을 맹세하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구 백제 지역 영토를 신라에게 넘겨줄 뜻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결과 고구려 멸망 2년만인 670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을 꾀하는 왕족 안승을 지원해 고구려 왕에 임명, 당에 반발하게 하고 웅진도독부 지역을 공격해 백제 영토의 본격적 병합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당과의 전투가 이어지고 결국 676년,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 전략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그 순간마다 당과 결전을 벌일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당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병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황산벌'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수많은 TV 사극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실제 당시에 펼쳐졌던 사건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과거'에 '현대'의 의미를 담으려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판단이 어쩌면 관객들에게는 지나친 역사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시도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됐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준익 감독의 역사 강론은 자칫 관객들에게 '너무 직설적인 강의'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양성'의 코미디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문식을 비롯한 백제 출신 병사들이 부르는 '쌀노래'는 포복절도할 환경을 만들고 독특한 유머감각은 각처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만 고구려와 그 백성들에게 놓인 운명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밝은 면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 9단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선우선이 아쉽습니다. 선우선이 구사하는 이북 사투리 연기 가운데 제대로 소화됐다고 보이는 것은 '어찌 보니(왜 쳐다보니)?' 정도일 뿐, 나머지는 뭉개지고 흩어져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지만 '조선명탐정'에게 워낙 밀리다 보니 불길한 예감(이준익, "관객 250만을 넘지 않으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도 들지만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을 둘러 봤지만 제 취향에는 '평양성'이 가장 맞는 듯 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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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작, 황정민 주연의 '그림자 살인'입니다. 시대극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시대극이 아니고, 코믹한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군요.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림자 살인'도 190만명대의 관객을 동원했고, '조선명탐정' 역시 개봉 첫주 1위를 기록하며 순항중입니다. 이런 특이한 분위기의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정조 때인 1782년. 왕은 조정 대신들의 세금 포탈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探正)이라는 관직을 마련해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탐정(김명민. 끝까지 극중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름 비상한 현장감식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살해한 혐의로 옥에 갇힙니다.

어느새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개장수(오달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립니다. 왕(남성진)과의 호흡으로 열녀 감찰을 위해 떠나지만 실제로는 역시 비리 조사가 목적. 음모세력의 암살 도구를 쫓다 보니 만나게 된 한객주(한지민)에게 반하랴, 악당들과 치고 받고 싸우랴, 개장수와 코미디 하랴 마냥 바쁜 명탐정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려다 보니 참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는 추리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를 쓰는 추리는 저 멀리 가고 엎치락 뒤치락, 탐정 일행의 슬랩스틱과 말장난이 주요 내용입니다.

아마도 역시 2009년작인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역시 전통적인 셜록 홈즈 상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흥행 면에서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대변신입니다. 천의 얼굴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살짝 보여주다 만 코미디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쳐 줍니다. 첫 등장부터 몸개그를 작렬하는 데 이어 비속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상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튕겨 주는 '새끼' '자식' '임마'로 웃겨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변신의 백미는 한지민. '이산'을 생각하면 충격입니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그 변신(골...)이 매우 강조됐죠.



늘 청초한 눈빛 하나로 먹어주던 한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팜므 파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나이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늘 '다 큰 여자'라기 보다는 소녀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배우였기에 더욱 놀라운 변신입니다.

한국 여배우들에게 가장 부담없는 노출의 자리인 시상식 무대도 극구 거부하던 한지민이었기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ㅋ) 참 이런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잘 어울리더라는 것.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의 히트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한지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다소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는 배역 선정이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번 작품은 확실한 선을 긋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달수를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물론 늘 보던 모습이라 새로운 맛은 없지만, 최근 '높낮이없는 말투 개그' 부문에서 송새벽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던 터라 이 영화에서의 호연이 더욱 반갑습니다.



김석윤 감독의 예능 전력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 '조선명탐정'을 논리적인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의 차원에서 접근하신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플롯의 개연성이란 기대할 수 없고,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좀 의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비슷할지 매우 의문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일찌감치 퇴출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명탐정'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오달수의 찬탄을 자아내는 코믹 호흡과 함께 한지민의 새로운 매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슬랩스틱성 코믹 컷들이 관객을 계속해서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롯에서 좀 더 큰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단편적인 즐거움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가려줍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연기상을 줄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트 갓파더' 처럼 관객을 화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두어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설 극장가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S. 그런데 굳이 그런 영화에 '감동'이 비집고 들어가려 한 건 좀...^^


P.S. 영화 시작 때 나오는 '탐정'이란 관직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이건 그냥 뻥입니다. 그런 관직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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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대략 이러이러하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예측은 거의 틀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 영화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은 예상을 벗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고, 또 충주 성심학교라는 실제 청각장애인 고등학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거기에 '강우석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해진 길로 다니는 지하철처럼 '뻔한 영화'인 것이 분명한데도 '글러브'는 여전히 위력적인 상품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강철처럼 심장이 단련된 사람들이라 해도 '글러브'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것이 분명 '덜 가공되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세 차례나 MVP에 올랐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이었지만 이제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인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여러 차례 누적된 음주 사고로 선수 생활이 끝장날 위기에 놓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매니저 철수(조진웅)는 왕년의 은사인 KBO 상벌위원장의 주선으로 상남을 충주 성심학교로 보내 코치 자원봉사를 하게 합니다.

'전국대회 1승'이라는 이들의 목표를 보고 코웃음을 치던 상남. 하지만 교감(강신일)과 나선생(유선), 열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열정은 상남을 움직이고, 결국 상남은 아이들이 봉황대기에 나가 진짜 고교야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뻔할 뻔짜의 스토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중간 중간 들어가는 70년대풍의 닭살 대사 또한 무척 거슬립니다. 인물들은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두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는 상남-나선생-상남-철수-상남-교장선생-상남-아이들 사이를 계속 오가지만, 카메라 밖의 시간은 아예 정지해 있습니다. 어떤 상상력도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꽤 긴 상영시간 동안 스토리의 진행은 하품이 날 정도밖에 진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최악의 캐릭터는 유선이 연기하는 나선생입니다. 이 역할은 스토리 진행(그나마)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되는 듯 합니다. 상남이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냉정하게 굴면 "아이들은 어쩌구요?", 상남이 화를 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상남이 유난히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나선생을 보며 "이건 숫제 엄마구만"하고 빈정대면 보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전 그냥 이 아이들이 좋아요(네. 정말 2011년 한국 영화 최악의 대사로 꼽힐 만 합니다. 19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가면 "이제 그만해요!"하고 울부짖는 역할이죠.



그야말로 '전형성 100%'의, 뻔하디 뻔뻔뻔뻔뻔한 캐릭터입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위원이 공모작에서 발견하면 빨간 줄로 북북 그었을 것 같은 캐릭터죠. 이런 캐릭터이니 유선 아니라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 헬렌 미렌을 데려다 놔도 제대로 된 연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편집 과정에서 완벽하게 들어 내도 영화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대사량은 전체 출연진 가운데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는 건 이 영화의 성격을 제대로 말해 주는 요소입니다. 이런 쓸데 없는 대사와 감정 전개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정작 있어야 할 아이들과 상남의 관계나 아이들 서로간의 관계 같은 건 그냥 휙휙 넘어 갑니다. 본래 시나리오에도 없었는지, 아니면 찍어 놓고 다 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관객은 "여러분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하시죠? 네. 맞아요. 자, 그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수준의 내용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 투수 역의 장기범이나 포수 역의 김혜성 등 열명의 선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김혜성의 러브라인이 잠시 눈에 띌 뿐, 최소한 각각의 아이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비쳐질 기회는 전혀 없죠. 그냥 '선수 1, 선수 2, 선수 3....'일 뿐입니다.



또 '명색이 야구 영화인데 야구 장면을 보여줘야지' 라는 강박관념도 높은 점수를 보기 힘듭니다. 세 차례의 야구 경기 장면이 나오는데, 첫 경기와 둘째 경기는 크게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세번째 경기는 아무리 봐도 너무 길고, 너무 산만합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그 많은 커트를 찍기 위해 고생했을 양팀 선수 역의 배우들과 스태프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대체 왜 이렇게 긴 경기 장면, 그것도 수없이 똑같은 시퀀스가 반복되는 장면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엄청나게 긴 반면, 야구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 봐도 엉성한 진행이 너무나 눈에 띕니다. 손톱이 갈라져 피를 흘리면서도, 정규 이닝에서만 120개 넘게 던지고, 연장전에 들어가 4이닝을 더 역투하는 투수.... 이 정도가 되면 난타를 당하건 말건 다른 선수 중 누군가를 마운드에 올려 놨어야 합니다. 게다가 연장 13회, 전광판을 보면 양팀의 안타 수는 25대27이더군요. 아무리 난타전을 치렀다지만 이건 좀 아니죠. 또 아무 맥락 없이 왜 명재가 SF볼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왜 상남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지 등등은 계속 영화의 구멍으로 남습니다.



뭣보다 '왜 봉황대기인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습니다. 봉황기는 한국 고교야구 대회 중 유일하게 지역 예선이 없는 대회죠. 다시 말해 성심학교로서는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없는 실력을 감안할 때) 유일하게 서울에 올라와 참여할 수 있는 전국대회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 또한 전혀 없습니다.

(더 지적하자면, 이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1승'이지만 봉황대기에서의 1승은 다른 대회 지역예선에서의 1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선 없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전국대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굳이 '전국대회 1승'이라고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전국대회 1승'이 '지역 예선을 통과한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 한 1승'이란 의미라면 청룡기나 대통령배같은 다른 대회 이름을 댔어야죠.)



이 영화의 주역 가운데 유일하게 칭찬할만한 사람은 정재영 하나뿐입니다. 그조차도 영화 전반부에서는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짜증나는 캐릭터에 매달리지만, 이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인 "정말 무서운 적은 우리를 동정하는 놈들이다!" 장면에서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한껏 빛을 뿜습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여럿 있겠지만, '글러브'에서 상남 역을 맡아 이 대사를 이런 분위기로 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역시 정재영일 겁니다. 그 밖에도 영화 전편을 통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은 정재영뿐입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영화의 완성도는 후하게 줘야 70점을 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너무나 뻔한 눈물 코드인데도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참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화를 '더 잘' 만들면 더 많은 눈물이 날지, 아니면 대략 이 정도의 완성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더 큰 것인지, 저는 아직 이런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략 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고, 이런 영화가 던져줄 수 있는 감정의 격동을 원하는 관객에게 '글러브'는 최적의 선택입니다(절대 비아냥거리는게 아닙니다. 정말 눈물이 납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어쩌면 그런 아쉬움은 애당초 지하철을 설계한 감독에게 왜 포르셰 스포츠카를 내놓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바보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바로 '글러브'입니다. 지하철에겐 지하철의 미덕이, 스포츠카에겐 스포츠카의 미덕이 있는 법이죠. 그리고 사람이 더 많이 탈 수 있는 쪽은 역시 지하철인지도.




P.S. 이 만화 수준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한 건 너무 과욕이었을까요. 그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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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최초의 히트작 '시크릿 가든'이 마침내 16일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20회를 앞두고 수많은 예측과 우려가 스쳐갔죠. 작가와 제작진이 모두 해피엔딩임을 공언했지만 마지막까지 드라마 주변에 깔렸던 단서들 가운데서는 불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 아이가 울고 있다"는 아영의 꿈은 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마지막 20회는 그동안 양산된 '시크릿 가든' 마니아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던 듯 합니다. 20회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김주원-길라임 커플의 결혼 후 닭살 행각을 보여주는데 할애됐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은 오래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을 듯 합니다. 긍정적으로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생각이 되풀이될수록 뭔가 앙금이 남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토요일자 신문에도 썼듯 작가의 집필권은 독자의 향유권 위에 있는게 분명합니다. 그 전제를 허물지 않는 한도 안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회, "34년을 어머니의 아들로 살았으니 이제 한 여자의 남자가 되어 살겠다"는 말을 던진 주원은 라임을 데리고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를 해 버립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지 못했으니 결혼식은 올리지 않겠지만 법적으로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결혼식을 올리고, 두 사람은 5년 동안 세 쌍둥이(얼굴은 닮지 않았지만 세 아이 사이에 나이 차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를 낳고 알콩달콩 잘 살아갑니다. 주원은 어머니로부터 의절당하지만 백화점 사장직은 유지하고, 라임은 무술감독이 되어 임감독의 대사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그리고 5년 뒤의 어느날, 라임은 주원에게 "나를 보러 오고서 왜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주원은 그날 밤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사고 후 병원에 입원중인 주원은 환자복 차림으로 라임 아버지의 빈소를 찾고, 통곡하고 있는 교복 차림의 소녀 라임을 봅니다. 죄책감 때문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오래도록 빈소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주원은 문상객이 모두 돌아긴 빈소에 혼자 지쳐 잠든 라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 같이 잠들어 버리죠. 이것이 바로 '시크릿 가든'의 엔딩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 엔딩은 죽었던 라임을 구해낸 주원이 기억상실 증세를 보일 때, 왜 깨나서 처음 본 라임을 낯설어하지 않는지, 그리고 라임의 이름도 귀에 익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니까 주원은 언젠가 라임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고, 그 얼굴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바로 빈소에 지쳐 잠든 라임의 얼굴을 본 것이었다는 얘기죠.

나쁘지 않은 결말입니다만, 역시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의문이 남습니다. 그럼 대체 주원은 언제 기억상실이 된 걸까요? 본래 주원이 엘리베이터 사고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사고 당시의 충격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되고 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사고 이후에도 기억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라임을 찾아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려 한거죠.



그럼 사고를 겪고 난 주원은 왜 또 기억상실이 된 걸까요. 굳이 머리를 굴려 해석을 하자면 라임을 찾아가서, '라임의 모습을 보고 너무 큰 죄책감에 시달린 탓에 기억상실이 된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게 과연 자연스러운 흐름일까요.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라면, 빈소에서 나란히 쓰러져 잠든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눈을 뜨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신을 차리게 될텐데, 그렇다면 주원은 그 상황에서도 자기가 왜 누군가의 빈소에서 눈을 떴는지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냥 병실로 돌아가 기억 안 나는 부분은 기억 안 나는 채로 살아간다는 얘기가 됩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하긴 마지막회 내내 강조되던 메시지가 '기적'이고, '이건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메시지도 반복해서 강조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색함은 왠지 마지막 장면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게 좀 더 매끄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즉 두 사람이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미래는 라임 옆에 쓰러져 잠든 스물 한살의 청년 주원이 그 자리에서 꾼 미래에 대한 꿈이라는 것이죠.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가면서.

.... 이 상태에서 나는 기억을 모두 잊고, 세월이 흐른 뒤 이 여고생과 다시 만난다. 라임. 그래. 이름이 라임이었지. 아버지가 없어도 잘 자라 있으려면 상당히 씩씩하고 남자다운 성격이면 좋겠어. 그럼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냥 평범한 여대생은 아닐 거야. 그렇게 씩씩하다면 음...여군? 여경? 혹시 여자 스턴트? ....


뭐 이런 엔딩도 굳이 말하자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시크릿 가든'의 열혈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해피엔딩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그 열혈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겠지만 아무튼 주원이 꿈꾸는 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란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잠에서 깬 주원은 쑥쓰럽게 그냥 달아날 수도, 라임의 눈을 마주보고 "이제 내가 네 아빠 역할을 해 줄게"라고 말할 수도, 아니면 잠에서 깼을 때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여러 해가 지나서야 그 긴 인연을 다시 시작할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이 쪽이라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튼 제시된 엔딩만으로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원과 그 상황이 그리 썩 잘 어울리지 않는 건 분명합니다. 뭐 '시크릿 가든'의 열혈 팬들이라면 사소한 부조화가 있더라도 맨 처음 제시한 결말을 그냥 간직하실 겁니다.




'시크릿 가든' 20회는 그동안 나왔던 어떤 다른 편보다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는 느낌을 주는 내용으로 채워졌습니다. 오스카와 윤슬의 관계, 김비서와 아영의 관계도 세심하게 정리됐죠.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임감독과 주원의 여동생 사이에서 생길 뻔한 러브라인이 사라진 대신 임감독은 톱스타 손예진을 캐스팅하는 행운을 차지했습니다. (뭐 약간 심술궂게 생각한다면 이런 메시지들은 다 "현실이라면 이런 일이 동시에 다 일어날 리가 없잖아! 이건 꿈이야! 판타지라고!"라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아영이 발견하는 병속에 든 편지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꿈이든 판타지든 시청자에게 희망을 주려는 의도에는 저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단서조차 주어지지 않은 궁금증 하나는 매우 아쉽습니다. 대체 주원이 제주도에서 들은 라임의 비명소리(15회인가 16회에서 주원이 "그런데 정말 그때 비명 지른 적 없어?"라고 상기시키기까지 하죠)는 무슨 의미였을까요?

몇몇 시청자들은 "그냥 라임과 주원을 비밀가든으로 유도하기 위한 라임 아버지의 조작"이라고 해석하는 듯도 합니다만, 정말 그게 전부라면 좀 허무하긴 합니다. 김은숙 작가님, 과연 이게 진짜 의도였던 겁니까?



P.S. 물론 '시크릿 가든'은 이런 사소한 지적질로 흔들릴 정도의 허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꽤 흐른 뒤라면 김은숙 작가의 최고작으로 평가될 작품은 바로 이 '시크릿 가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 왜 좋은 드라마의 종방은 이렇게 빨리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P.S. 2. 그리고 이 엔딩은... 새로운 작품의 시작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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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헌과 김태희의 MBC TV 새해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SBS TV '사인'과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월화 드라마가 '역전의 여왕', '드림하이', '아테나'의 3자 대결 국면인 데 비해 수목 시장은 '마이 프린세스'와 '싸인'이 '프레지던트'를 따돌리고 선두 경쟁을 하는 모습이죠.

'마이 프린세스'는 두 명의 톱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기대를 모은 만큼 우려도 많이 모은 작품이었습니다. 비주얼로는 국내 최강의 자리를 누구에게 내주기 힘든 송승헌-김태희를 남녀 주인공으로 놓고도 우려가 있었다는 것은 대체 왜일까요.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최강 비주얼'을 투톱으로 내놓은 드라마들의 성적이 썩 우수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드라마가 있었는지 살펴보시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뭐 누구랑 누구랑 같이 하는 드라마가 망할 리가 있겠어'라고 쉽게 얘기하곤 하지만, 다음 드라마들을 보시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여기서 예로 드는 드라마들의 시청률은 '그리 낮지 않았던' 작품들도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송 전에 몰렸던 기대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작품들 위주로 꼽았습니다.

남녀 톱 주인공에 대한 기대를 배신한 작품들이라는 면에서 기억해둘만 합니다. (혹은 망각 속에 묻어 두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을지도...^^)




5. 장동건-김현주, '청춘'

이런 드라마가 있었나 싶은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심지어 장동건-김미숙-최지우가 공연한 '사랑'과 혼동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1999년의 장동건은 톱스타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후광이 머리 뒤에 걸려 있는 스타는 아니었고, 김현주는 앳된 미모가 확 피어나던 무렵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률 부진으로 삐걱거린데다, 일본 드라마 '러브 제너레이션'의 표절 시비에까지 말려들며 조기 종영의 비운을 면치 못했습니다. 장동건의 연기 역사상 유일한 조기 종영작...이라고나 할까요.



4. 이정재-최지우 '에어 시티'

비교적 최근작이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공항을 무대로 국정원 요원 이정재와 노련한 공항 운영 전문가 최지우의 활약을 그린 드라마였죠.

물량이며 인물 배치에서 방송사에 남을 드라마 한 편이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기대를 모았지만 개봉 직후 시청률은 연일 급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를 통해 유일하게 위너가 된 건 최지우-이진욱 커플 뿐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3. 권상우-김희선, '슬픈 연가'

도저히 망가질래야 망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프로젝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건 아무래도 송승헌의 중도 하차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송승헌-권상우-김희선의 동갑내기 트리오가 함께 출연한 예고편 형식의 뮤직비디오(라고는 하지만 20여분의 길이입니다. 한편의 단편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는 지금 봐도 가슴 떨리는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시작될 때에는 송승헌 자리에 연정훈이 투입됐고, 한 축이 빠진 멜로드라마는 기운 배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습니다. 물론 10%대 후반의 시청률을 나쁜 시청률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원안이 성사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4. 송승헌-손예진, '여름향기'

'가을동화'의 윤석호 감독, 주인공은 송승헌과 손예진. 어디서도 실패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고 난 뒤 드라마는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멜로드라마는 주인공들 사이의 상성이 중요한데, 송승헌과 손예진은 그리 잘 맞는 파트너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여름향기'는 시청률로 보면 그리 실패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20%대를 넘나들며 선방한 드라마였지만 워낙 '가을동화'와 '겨울연가'의 후광이 강렬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내고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들은 거죠. 아무튼 '여름향기'에서 전작들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윤석호 감독은 서서히 한류 대표 연출자의 자리를 위협받게 됩니다.




1. 배용준-김혜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지난 10년간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김혜수와 당대 최고의 미남 스타 욘사마가 함께 출연했지만 이 드라마는 흥행 면에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고학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가는 배용준이 연상의 대학 강사인 김혜수를 사랑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죠.

하지만 이 드라마를 지금까지 기억에 남게 하는 것은 최초의 '마니아 드라마'라는 기록입니다. 시청률에 비해 그 시청층의 충성도가 엄청나게 높았던 겁니다. 게시판은 격려와 성원의 포스팅으로 가득 찼고, 드라마의 완성도를 칭송하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힘든 사랑의 나날이 지나고 배용준의 죽음으로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에는 탄식이 가득 찼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마니아 드라마'의 특징은 '우정사'를 거쳐 '다모', '아일랜드' 등으로 이어졌고, 노희경, 인정옥 등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작가군의 팬층을 두텁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건 이뤄질 뻔 했던 '슬픈연가' 뮤직비디오 판의 한 장면.)

이상 다섯 편의 드라마를 살펴봤습니다. 이밖에 이병헌 최진실 정우성 이영애라는 당대 최강의 얼굴들을 모아 놓은 '아스팔트 사나이'도 있지만, 1995년작이다 보니 시청률 관련 자료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무튼 당시 이 드라마도 성과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들 작품들 가운데 몇몇 작품은 높은 완성도에 비해 시청자의 성원이 떨어진 작품으로, 또 몇몇 작품은 출연한 배우들의 얼굴이 아까운 졸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겁니다. 어쨌든, 시청률이 낮았다고 해서 드라마의 품질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예로 든 작품들은, 저마마한 주인공들을 내걸고도 실패할 수 있을만큼,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란 천-지-인의 기운을 다 모아야 가능한 어려운 일이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전작들을 감안하면 '마이 프린세스'의 성공 역시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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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년 사이 가장 영화를 덜 본 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가을 이후에는 극장 갈 새가 없을 정도여서 좀 힘들었습니다. 특히 '부당거래', '초능력자' 같은 기대작을 못 본 건 꽤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년 꼽던 순위이니 한번 꼽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외로 연초에 본 영화들 가운데 괜찮은 작품들이 많더군요. 2011년의 첫 영화는 아무래도 잘못 고른 듯 합니다. '라스트 갓파더'... 이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어쨌든 1월이 가기 전에 얼른 이건 하나 정리해놓고 새해에 전념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황해

온 세상이 너무나 비정하고 악의에 가득 찬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을 빼면 완벽에 가까운 영화. 안 좋은 뒷얘기도 있지만 그건 영화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듯.





2. 아저씨

'원빈 사용법'을 숙지한 감독의 승리!




3. 인셉션

"토템이 계속 돌았는지 멈췄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코브가 더 이상 토템이 멈추는지 아닌지를 애타게 바라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놀런 -



4. 예언자

투옥은 사회와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사회로의 입장이었다. 극장에 불이 켜지면 죄수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묘한 영화.




5. 500일의 썸머

거의 모든 성인 남자들의 기억 속에 최소한 하나씩은 박혀 있는, 그 어느 떠꺼머리 시절에 만났던 '그지같은 망할 년'에 대한 탁월한 인류학 보고서. 음악까지 완벽하다.

특히 연애 문제에 고민을 겪고 있는 사회 초년생이나 20대 초반 분들에게 필람을 권합니다. 리뷰는 이쪽: http://fivecard.joins.com/675



6. 인 디 에어

나만을 위한 삶이란 정말 가능할까. '패밀리 맨'과 짝을 이룰만한 싱글남 연구의 결정판. 장거리 항공편의 기내 영화로 보면 효과 200%.


7. 의형제

부지런한 횟집 주인과 검신합일에 이른 주방장의 행복한 만남


8. 전우치

다소 무리일 수도 있는 자신감마저도 만족스러운.




9. 아이언맨 2

'왜 영웅은 오만 풍상을 다 겪고, 개고생을 한 뒤, 자기편이 다 죽고 나서야 비로소 영웅으로 거듭나야 하는가?' 한국인의 이런 불만을 싹 해소해 준 상쾌 영웅의 후속편. '다크 나이트'고 뭐고 한국에선 '아이언맨'이 최고인 이유를 다시 보여준 영화.


10. 소셜 네트워크

비록 페이스북이 뭔지는 모르더라도 자녀를 천재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학부형들이 보면 좋을 영화. '애가 똑똑해지면 다가 아니에요.'

경합작으로는 '하녀', '시라노 연애조작단', '방자전' '드래곤 길들이기' 팀 버튼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생각해보니 2010년의 한국 영화는 예년에 비해 참 풍성했던 듯 합니다. 반면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은 매우 실망스럽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권하고 싶지 않은 2010년의 영화들



1. 악마를 보았다

특이하게 한번 해 보겠다는 의욕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까운 영화



2. 이끼

분위기는 죽이고 원작 줄거리만 살린 평작



3. 슈렉 포에버

아무리 좋은 시리즈도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교훈?


4. 타이탄

신화도, 액션도, 멜로도, 돈값도 모두 놓친 특이한 영화


5. 페르시아의 왕자

...그냥 게임이나 할 걸 그랬어. 그것도 그냥 AT 시절에 나온 걸로.


아울러 2010년의 가장 황당했던 영화는 바로 이 영화.


'익스펜더블'입니다. 물론 제가 때려부수는 액션을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10편의 영화에 꼽지는 않았지만, 이런 영화도 새해엔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속편이 나오긴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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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림하이'는 판타지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건 '궁'을 보면서 "한국에 왕이 어디 있냐?"고 따지는 거나, 혹은 해리 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보면서 대체 뭔 수작이냐고 따지는 셈입니다. 이 드라마의 기획자들(물론 그중에 배용준과 박진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이 '이런 학교가 한국에 있다면 어떨까' 한 상상을 드라마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손발이 오글거리고 세상에 이게 말이 되냐 싶은 대목이 있지만, 일단은 "어쨌든 그런 학교가 있어"라는 데서 시작하면 뭐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1, 2회로 볼 때 이 판타지는 제법 볼만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좋은데, 드라마는 좀 따뜻한 환경에서 찍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보는 내내 들었습니다.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수없이 많은 장면에서 보이는 입김입니다.



동영상으로 볼 때와 캡처 화면으로 볼 때는 사뭇 다릅니다. 그리 선명하지 않죠. 입김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사진상으로는 빛의 산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입김입니다.

무용교사 이윤지의 복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는 분명 실내- 무용연습장입니다. 아무리 바깥 날씨가 춥다지만 저렇게 입김이 나오는 곳에서 실내 활동을 하는 건 무리겠죠. 학생들을 하드트레이닝하려는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교사들부터 솔선수범할 것까지야...

게다가 상대적으로 학생들은 두껍게 입고 있습니다.


아무튼 마구 나옵니다.

연속화면으로 보면 좀 더 선명합니다. 화면이 빛 때문에 뭉개진 것이 아님을 사진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동영상이라면 매우 선명하게 보이죠.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고현정과 문근영이, 물론 말하는 내용과 태도는 전혀 달랐지만 비슷한 취지의 지적을 했습니다. 바로 드라마 촬영 현장의 열악함에 대한 이야기였죠.

물론 가장 크게 지적되어야 할 부분은 몰아찍기와 합리적인 스케줄링이 안 되는 주먹구구식 환경입니다.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할 즈음에야 많으면 5~6회, 적으면 1~2회 정도밖에 완성되어있지 않다는 건 참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집필하고 있는 작가며 연출가들조차도 '그럴 수밖에 없다', 혹은 '그게 더 낫다'고 말하는 건 더욱 놀랍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관찰해가며 드라마를 조율하겠다는 거죠. 스토리의 방향만 잡히면, 생방송으로 드라마를 내보낼 수도 있다는 결의가 넘쳐납니다.

그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촬영장에서의 연기자/스태프 혹사 역시 대단합니다. 드라마건 영화건 '세트는 춥다'는 것은 오랜 상식이기도 하고, 50~60년대 영화를 보면 겨울 장면이 아닌데도 아무데서나 입김이 나오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중견 연기자들은 "대사를 내뱉을 때 얼음을 입에 물어 입김이 나오는 걸 방지했다"고 오래된 추억담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거울빛에 반사돼 입김이 선명하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2011년의 드라마 '드림하이'에서도 수시로 입김이 나옵니다. 야외 신이나 극장 오디션 신에서 나오는 거야 그럴만 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실내 장면에서 잇달아 입김이 눈길을 끄는 건 꼭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그동안도 계속 추웠는데 위에서 말한 대로 얼음을 물고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영화의 경우는 계절상 여름에 개봉하는 영화는 겨울에 여름 신을 찍고, 겨울 영화는 여름에 겨울 신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촬영장이 너무 넓어서 전체 난방을 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 '실내 장면에서의 입김'은 좀 보기에 민망합니다. 이건 리얼리티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되니 말입니다.




좀 있으면 학생들이 "배용준 이사장님, 촬영장에 불좀 때 주세요"라고 항의할지도 모르겠군요.^^


P.S. 이 드라마의 오디션 장면에서 함은정과 수지가 립싱크를 했다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드라마지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판을 한다면 음악과 연주자들의 손도 썩 잘 맞지 않던, 야외 연주 장면 때도 실내 연주장 특유의 울림이 그대로 들리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핑거 싱크'가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에 영향을 준 미국 드라마 '글리'의 노래 장면은 100% 사전 녹음입니다. 물론 영화 '페임'은 더 말할 것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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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낚시라고 생각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영국 날짜로 1월2일 암으로 서거한 피트 포슬스웨이트(Pete Postlethwaite, 향년 64세)가 세계 최고의 연기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누구?" 하고 반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명을 하자면, 그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배우(the best actor in the world)'라고 부른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사는 원래 그렇게 기억되는 겁니다. 아이쉬와라 라이 역시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게 된 건 줄리아 로버츠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인 것이죠.

그리고 그의 이름(네. 매우 발음하기 힘들고, 매우 깁니다)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꽤 있겠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다면 아주 작은 역이라도 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 배우의 위력이겠죠.


그가 어떻게 젊은 날을 보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젊어서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릴 외모는 절대 아니었고, 40대 후반에 들어서야 세계적인 명성을 갖기 시작한 배우입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이 당연히 짐 셰리단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일리언3(1992)'가 1년 정도 빠릅니다. '에일리언3'에서도 그는 죄수들의 행성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은 죄수 데이비드로 출연했습니다.

이후 그가 출연한 작품들 내내 비슷한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대개 머리가 좋고 인간미가 넘치는 남자 역이죠.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따스한 눈매를 가진 덕분입니다.



어쨌든 47세때 '아버지의 이름으로'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이후 포슬스웨이트는 승승장구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굳이 별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아일랜드 분쟁의 격동에 휘말린 부자를 연기한 포슬스웨이트는 오히려 주인공인 루이스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과시했죠. 사실은 11년 차이밖에 안 나는 부자간이었지만(당시 포슬스웨이트는 47세, 루이스는 36세), 타고난 노안 덕분에(?) 실감나는 연기가 펼쳐졌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작품, 감독, 남우주연 등 아카데미 핵심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결과는 참담합니다.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해는 '쉰들러 리스트'의 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우조연상은 좀 아리까리합니다.




이 정도 후보라면 '쉰들러 리스트'에서 눈부신 이상성격 연기를 펼친 레이프 파인즈와 포슬스웨이트가 경합을 펼쳐야 정상일 듯 한데 갑자기 웬 토미 리 존스...

'도망자'도 물론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전혀 오스카 타입의 영화가 아니었던 터라 이건 뭥미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존 말코비치('사선에서')가 같이 후보에 오른 걸 보면 이 해의 트렌드가 좀 희한했구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후 포슬스웨이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펼쳐집니다. 1994년은 미리 계약해 놓은 드라마에 주력했다면(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대박이 날 줄은 몰랐겠죠^^), 1995년부터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품 활동이 이어집니다.

1995년의 대표작은 바로 '유주얼 서스펙트'. 여기서 포슬스웨이트는 커피잔 역으로 나오죠(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실수 없을 겁니다 ㅋ). 전혀 일본 사람같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만, 서구인들이 보기엔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변호사 고바야시라니...


현명하고 선의로 가득한 중년 남자 역이 어울리는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 변호사 고바야시는 말만 공손한 악역입니다. 머리에 총이 겨눠진 상황에서 "미스터 키튼, 지금 저를 쏘시면 심각한 실수를 하시게 됩니다"라고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항변하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거죠.^^)




그 다음은 1996년작 '로미오+줄리엣'.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를 이어 주는 로렌스 신부 역입니다. 물론 전형적인 포슬스웨이트 타입의 연기지만 이 신부는 좀 괴짜죠. 등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문신(아래 사진)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온갖 인기 스타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정통 셰익스피어극 배우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도 받았죠.




이해 '브래스드 오프'같은 작은 영화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1997년 스필버그와 두 편의 프로젝트를 함께 합니다. 바로 '아미스타드'와 '주라기공원 2, 잃어버린 세계'죠. 특히 후자에서는 냉혹한 전문 사냥꾼으로 변신,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1993년에서 1997년 사이 이런 쟁쟁한 경력과 탄탄한 실력을 보여준 포슬스웨이트는 희한하게도 할리우드에서 실종됩니다. 은둔형 배우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그인 터라 갑작스런 세계적인 주목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혹은 매니저와 싸우고 업계에서 매장됐는지도...^^).

그 뒤의 경력은 거의 TV 수준에 머물고, 유명 감독들과도 '작은 영화'에 주력한 경향이 짙습니다. 세계 수준의 주목을 받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지난해의 '인셉션'은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의 운명을 예견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줍니다. 병상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리스 피셔 회장 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향년 64세,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그만한 배우는 세상에 많다고 말할 사람도 많겠지만, 그가 짧은 할리우드 나들이 기간 동안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라는 말이 무리가 아닌 배우였죠. 짧은 글로 고인을 추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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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올해를 대표할만한, 아니, 최근 3년간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연기, 구멍 하나 없는 스토리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복선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몇 분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해설 버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첫번째 느낌은 따로 리뷰로 정리해 뒀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황해'에 대해 혹시라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는 분들을 위한 버전입니다.



** 다시 한번 경고,

'황해'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리뷰는 http://fivecard.joins.com/897 이쪽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를 보신 분이나, 절대 안 보실 분들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왜 김승현(유도선수 출신의 교수/사업가)을 죽이러 간 사람이 셋이었나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꼼꼼하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혼동할 이유가 없겠지만, 김승현을 죽이려고 청부한 사람이 둘이었던 거죠. 한 사람은 김태원 사장이었던 거고, 또 하나는 모 저축은행의 김정환 과장이었던 겁니다.

버스 회사 사장이며 조폭 세력을 거느린 김태원 사장은 자신의 심복인 최성남을 통해 김승현의 운전기사(겸 보디가드)를 포섭했고, 그는 어디선가 두 명의 하수인을 구해 김승현을 살해하게 한 겁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김승현과 싸우다 건물 밖으로 던져졌고, 나머지 한 사람은 김승현에게 죽음을 당했든가,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려는 운전기사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김구남이 나타났고, 김구남이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가자 김태원은 당연히 운전기사가 고용한 하수인이 3명일 것으로 생각했고, 그가 살아나면 자신이 꼬리를 밟힐 여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혼란의 시작이죠.


2. 김태원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신 분이 가끔 있는 듯 합니다. 김태원은 면정환에게 치명상을 입은 뒤 김구남이 현장에 왔을 때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놈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 그놈이 내 여자를..."이라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립니다.

그 앞 장면에서 분당에 있는 내연녀의 집에 간 김태원은 여자에게 "너 나한테 뭐 할말 없냐?"라고 씁쓸하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김태원이 그 집을 나선 뒤, 다른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내연녀의 집으로 향하죠.

김승현이 김태원의 내연녀와 정분이 났고, 그 사실을 안 김태원이 김승현에게 복수를 한 겁니다. 흔히 있는 조폭간의 세력이나 돈 다툼이 아니라, 바로 '여자' 때문이었던 거죠.



3. 김정환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마지막 단서인 김정환을 찾아간 김구남은 죽은 김승현의 아내가 김정환과 은행 직원과 고객으로서 마주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김정환 또한 김구남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죠.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순간 김구남은 허탈감에 빠집니다.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고 김정환이 면정환에게 청부(김정환의 단골 웨이터를 통해서)를 했다면 이유는 한가지. 김승현의 아내와 김정환이 불륜에 빠져 있었을 거란 답이 나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도달한 김구남은 그 며칠 전 김승현의 아내에게 "누가 시켰는지 찾아내서 내가 꼭 죽여 줄게"라고 말한 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그 불륜커플을 보다가 구남은 잠시 아내(라고 생각한)의 유골함을 바라보죠. 자신의 불륜 의심이 아내를 죽게 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을 수 있습니다.


4. 김정환은 진짜 청부를 했나?

일각에서 "세상에 살인 청부하면서 명함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앞글에서 '살인청부란 왜 어려운가'에 대해 좀 설명을 했는데, 세상에 명함을 주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김정환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몇천만원 정도의 돈만 입금하고, 버튼만 누르면 자기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김승현이라는 인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 거죠. 자신은 손끝 하나 더럽히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전자 오락 게임 하듯 사람 하나 죽여달라고 청부한 김정환 때문에 수십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대 참사가 벌어집니다. 나 하나 쯤 아무 상관 없을 거리고 생각한 무분별한 행동이 엄청난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는 것이 바로 이 김정환 캐릭터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5. 김구남의 아내는 돌아왔나?

맨 마지막 장면이 김구남의 상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건 감독의 의도가 뭐건 간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상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죠. 일단 시체는 확인한 대행업자(심부름센터?)가 "이거 영 모르겠네"라고 투덜대는 데서 구남의 아내라고 단정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일각에선 그렇게까지 소식이 없던 아내가 갑자기 그렇게 돌아올리가 있느냐는 지적을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아내가 돌아와야 구남의 헛된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돌아오는게 당연한 결말이라고 합니다. 뭐 후자 쪽이 더 당연한 얘기라는데 동의하고, 아울러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남의 아내와 정분이 났던 수산업자는 구남에게 된통 혼쭐이 나고, 구남의 아내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 아내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을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구남이 한국에서 간 것 중 유일한 결말은 아내를 돌아오게 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돌아올수 있었건 말건.

(구남이 보던 뉴스에서 "...아울러 연변 출신 피살 여성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찾고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문제의 수산업자가 구남의 아내를 이미 죽인 상태에서 구남을 만났다면, 혹시 구남이 먹은 양꼬치가...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수산업자가 갑자기 고기를 납품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너무 지나친 망상.)



6. 대체 두번째 청부업자들은 어떻게 김구남을 찾아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사건의 흐름을 잠시 되살려 봅니다. 구남은 살인 현장이 된 건물 위 살림집(펜트하우스?)에 숨어 있다가 집에 온 피살자 김승현의 아내를 만납니다. 놀라는 여자에게 구남은 "...남편 죽이게 시킨 사람은 내가 반드시 죽여 주겠으니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남은 운전기사의 집을 통해 최성남을 찾아내고, 최성남의 집에 찾아가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러는 사이 김태원의 부하들은 차이나타운에서 김정환의 사주를 받은 웨이터를 찾아 데려옵니다. 이 웨이터로부터 '김정환'이란 이름이 박힌 명함을 본 김태원은 "이놈은 또 누구야? 최성남이 어디 갔어? 최성남이 데려와!"라고 소리치죠.

장면 전환. 최성남의 집을 빠져나가려던 구남의 차를 다른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이받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족 범인들은 의식을 잃은 구남을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죠. (잠시 후 이 범인들은 "너 죽이라고 시킨 놈 명함이 차 안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건 김정환의 명함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입니다. 이 조선족 범인들은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구남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구남이 최성남을 찾아올 줄 알고 최성남의 집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구남을 찾아내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김승현의 아내가 정보를 줬다는 것이지만, 이건 김승현의 아내가 운전기사에서 최성남, 김태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죠. 더구나 그렇다 쳐도 구남에게는 일부러 운전기사 선까지만 가르쳐 주고, 조선족 청부살인 2인조에게는 최성남의 존재를 가르쳐 줘서 속도 조절을 한 뒤에 그 자리에서 딱 마주치게 한다는 것은 신의 솜씨입니다.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시 영화의 구멍? ㅋ )

              (김태원의 정부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이엘입니다. 늘씬하더군요.)

7. 대체 왜 모든 경우에 여자가 문제?

그러게 말입니다. 살인청부 1도 여자 때문, 살인청부 2도 여자 때문, 청부 받아서 살인하러 온 사람도 여자 때문.

...대체 여자랑 무슨 원수가... (전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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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천재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고, 두번째 작품인 '황해'의 개봉이 늦어지자 조심스럽게 소포모어 징크스를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황해'의 봉인이 뜯기자 세상은 곧바로 찬사와 감탄으로 가득찼습니다.

'황해'같은 영화가 예전에 없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만치 치밀하고 집요하게, 빈틈 없는 플롯으로 세 시간을 밀어붙인 작품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신과 충돌 신 등의 완성도는 입이 떡 벌어집니다.

한마디로 2010년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최고의 역작이 나왔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세 시간이 이렇게 짧은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온 세상이 악의로 가득차고, 누군가 뒤에서 등에 칼을 꽂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끈 불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황해'는 연변 어딘가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구남(하정우)이 그날 번 몇푼 안 되는 돈을 마작으로 다 날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국에 일하러 간 아내는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은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죠. 그런 가운데 사채업자들의 혹독한 빚독촉까지 받는 절망적인 나날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구남은 연변의 보스 면사장(김윤석)으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습니다. "한국에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면 빚 탕감을 해 주겠다"는 겁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제의를 받아들인 구남. 천신만고 끝에 밀입국에 성공하지만 달랑 주소와 이름 하나 받아들고 한국에 온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 그 사이에 아내의 행방도 찾고 주어진 일도 마무리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행 단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황해'는 오락 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만만찮습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고 왕래가 가능해진 뒤, 한국인들에게 '연변(옌볜) 동포'란 '언젠가 만나게 될 북한 동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나면서 연변과 조선족 자치구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저 이제는 싸고 말이 통하는 노동력의 공급처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면서 조선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하고, 무시와 모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때로 추격이 힘든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분명히 이 사회의 한 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조선족 아줌마' 없이 돌아가는 식당이 없을 지경인데도 온 세상이 그냥 외면하고 싶은 그런 존재들로 남아 있습니다.

'황해'는 단순히 치고 때리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과연 '조선족'이라는 집단이, 한국에 와 있고, 약간 이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애매한 이 사람들은 대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조선족 관련 다큐멘터리나 시사월간지 기획 특집들 속에 이름과 나이로 표시되는 사람들이, 실제 숨쉬고 생각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김윤석, 하정우의 연기와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 스토리 진행력은 한마디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위에서 거론했던 자동차 추격 신에서 순간 순간 뉴스 화면처럼 보이는 영상(아마도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다 보니 노출 차이가 꽤 있었던 듯 합니다)이 삽입된 것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거기까지 통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문제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 문제 제기를 한다면 하정우의 캐릭터에는 조금 부언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 넘어와 람보가 되는 하정우가 대체 왜 그렇게 잘 싸우고 임기응변이 뛰어난지에 대해서 너무 설명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깨진 결혼사진에서 하정우가 입고 있는 옷이 군복이 아니었나(확실치 않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중국군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입니다. (아니면 연변 남자들에게 그 정도는 기본일까요? ㅋ )

'추적자'와 '황해'를 통해 볼 때 나홍진 감독의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여성관'입니다. '추적자'에서의 여성이란 학대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수난의 대상인 반면 '황해'에서의 여성들은 남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존재들입니다(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실 겁니다). 과연 세번째 작품 쯤에는 '긍정적인 여성'이 등장할 지도 궁금합니다.

화면 전체가 피칠갑이 되는 영화지만 '악마를 보았다'에 비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폭력의 수준으로 본다면 '올드 보이'급?). 아무튼 이제 남은 건 과연 '황해'가 어느 정도 관객을 동원하는가를 넘어, '조선족'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데 대한 궁금증입니다.


P.S. 아울러 빛을 발하는 것은 나감독의 블랙 유머감각. 구남이 개고생을 하며 한국으로 타고 오는 배 이름이 '행복호'인 것을 비롯해 어두운 화면 여기 저기에 유머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저는 면정환이 "어, 그러고 보니 최이사가 안 보이네?"라고 말할 때에도 빵 터졌습니다(물론 뒤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이지만...).

P.S.2. 그런데 이 영화처럼 청부살인이란 쉬운 일일까요? 평범한 회사원도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이는 세상일까요? 조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조폭이라거나, 범죄 집단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구직자(?)도 꽤 있을 것이고, '황해'에서 보듯 조선족을 쓰거나 '달콤한 인생'에서 보듯 다른 동남아 근로자를 고용해 일을 치르거나 등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그냥 평범한 사회인이라면,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자, 우선 어디서 '사람을 죽여 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뭐 세상이 편해졌으니 그런 웹사이트가 있다고 가정하죠. 홈페이지를 통해 당신은 KILLER-1 과 채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한 뒤에, 죽일 사람에 대한 기초 정보를 주고, 거래를 마칩니다.

간단할 것 같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최소 수백만원 단위의 상당한 거금(뭐 사람 하나 죽여 주는데 30만원, 50만원 한다면 그건 더 믿을 수 없겠죠)을 KILLER-1이 시키는대로 입금하는데 그때부터 KILLER-1이 감감소식이 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분명 상당히 고가의 상품일텐데, 대체 뭘 믿고 돈을 주겠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돈만 갖고 튀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KILLER-1을 직접 만나 그가 정말 사람을 죽일 능력과 그걸 사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사실 이것 역시 매우 위험합니다. 만약 만날 사람이 진짜 킬러라면, 그는 귀찮게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을 의뢰인을 등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중에 경찰에 가게 되더라도 대답이 궁색합니다. '평소 알지도 못하던 그 위험한 사람을 왜 으슥한 데서 만났어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요? '사람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려구요'?^^)

그 킬러에게 의뢰인인 당신이 노출되면 될수록 반대로 협박을 받을 가능성만 커집니다. 반드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회사, 혹은 그 죽여달라고 청부한 목표 인물에게 '아무개가 돈을 줄테니 당신을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공개해 버리겠다는 협박은 꽤 유효합니다.

따라서, 살인청부라는 것은, 최소한 그 청부자에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너부터 죽을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협박이 가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살인은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살인 용역을 발주하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히나 '황해'에 나오듯, 어설프게 명함 한장 주고 시킬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황해'의 완성도와는 무관한 얘깁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바로 영화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죠.


P.S.3.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영화에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 프리 버전입니다. 스포일러 만땅 버전, "황해의 모든 것" 편은 곧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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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절정의 드라마 SBS TV '시크릿 가든'의 협찬사인 롯데백화점이 희한한 보도자료를 내놨습니다. 요즘 백화점 매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이 50대 베이비붐 세대 등이며, 남성 고객들의 변화가 눈에 띈다는 등의 내용인데 눈길을 끄는 건 '로엘족'이라는 이름입니다.

예전과는 다른 남성 고객들의 특징이 로엘(LOEL: Life of Open-mind, Entertainment and Luxury)이라는 신조어로 요약된다는 것입니다. 약자야 뭐 가져다 맞추면 되는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로엘'이라는 이름을 한번 더 소비자/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말하자면 이 로엘족의 궁극적인 모습이 '시크릿 가든'의 CEO 김주원(현빈)이고, 그 이름을 쓸 권리가 있는 롯데 백화점은 바로 '시크릿 가든'의 협찬사입니다. 그러니까 '시크릿 가든'의 로엘 백화점이 바로 롯데 백화점인 것이죠. 그런데 왜 굳이 새삼 '로엘족'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된 걸까요?


사실 대다수 관심있는 시청자들은 극중 로엘 백화점의 매장만 봐도 롯데 백화점이라는 걸 알 수 있지만 드라마 시청률이 20~25%를 웃도는데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흑은 효과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윗분들의 닥달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극중 현빈의 별장으로 나오는 마임비전 빌리지라는 장소가 뜬 데 비하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다소 무리한 '로엘족' 이라는 조어까지 등장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로엘'이란 이름을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더 각인시키려는 노력인 것이죠. 약간 쓴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긴 기업의 입장에서는 들인 홍보비에 비해 효과가 적다고 생각하면 악착같이 쥐어 짜려는게 정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가 분명히 대대적으로 노출은 됐는데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을 동원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비슷하다면 비슷한 사례가 생각납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광고인데 그게 어디 광고인지를 모른다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죠. 공교롭게도 이것도 롯데와 관련된 사안이군요.
'따봉'이란 이름을 들으면 나이드신 분들은 생각나시는 게 있을 겁니다. 어떤 오렌지 주스 광고입니다. 이거죠.



이 광고는 엄청나게 히트했습니다. TV 코미디 프로에서도 패러디를 했고, '따봉'이란 말은 대대적인 유행어가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죠.

사람들이 '따봉'이란 말은 너무도 잘 기억한 반면, 그 '따봉'이란 말이 어느 오렌지 주스의 광고인지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당시 롯데는 세계적인 식품 업체 델몬트와, 해태는 선키스트와 합작해서 주스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따봉'이라는 메시지는 너무들 잘 기억한 반면 '그 광고가 어느 회사의 것이었느냐'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선키스트'라고 대답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광고 제작자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인 셈입니다.

마침 당시 학교 수업 시간에는 롯데 계열인 D모 대행사 관계자 한 분이 특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웃지 못할 상황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 도중 이 분은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고, 거기에 "그럼 그 이름을 상표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이런 광고가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예 '따봉 주스'라는 신제품이 나온 겁니다.^^

그 수업 시간에 나온 이야기가 실제 반영됐을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 후속 제품과 최진희의 CM송이 나온 뒤에는 '따봉'이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 헷갈리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따봉'이란 말은 여전히 유행어였죠.

'로엘족'이라는 말이 '따봉' 처럼 히트하는 유행어가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드라마가 대대적으로 히트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로엘족'이라는 조어까지 밀어붙이는 건 약간 지나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뭐 어쨌든, 다 잘 되자고 하는 일이겠죠.^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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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의 대작 '아테나'가 3회만에 10%대, 혹은 20%대 초반으로 내려앉았다는 보도가 요란합니다. 10%대 후반이든, 20% 초반이든, 가장 중요한 건 MBC TV '역전의 여왕'과 3~4% 정도 차이로 근접했다는 것이죠. '동이' 종영 뒤 '자이언트'가 패권을 가져갔고, '자이언트'가 끝나자 그동안 눌려 있던 '역전의 여왕'이 기를 펴는 형국입니다.

사실 '아테나'는 지금부터 어린이 드라마로 돌아서도 별 손해가 없을 전망입니다(물론 과장). 제작사는 제작사대로 사상 초유의 조건으로 지상파와 케이블TV에 방영권을 팔았고,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아테나' 끝날 때까지 법적으로 허용된 광고를 완판(매진) 시켰습니다. 물론 아직 해외 판매가 완료되지 않은 지역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성의를 다해야겠지만, 그것도 실질적으로는 마무리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만에 하나라도 '역전의 여왕'에 이름대로 역전이라도 된다든가 하는 건 자존심의 문제겠죠(여신이 여왕에게 역전..?). 게다가 '아이리스'-'아테나'가 연속 히트하지 못한다면 내년에 예정된 '아이리스 2'의 캐스팅이나 협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럼 외양으로 봐선 완벽한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떨어진 이유는 뭘까요.


물론 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얘기한다면 10%대 후반은 매우 훌륭한 성적입니다. 4개 지상파 채널에다 수십개의 케이블 채널이 경쟁하는 환경에서, 솔직히 20%대 시청률만 해도 놀라운 기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제빵왕 김탁구' 처럼 40% 넘는 시청률의 드라마가 나오는게 훨씬 더 불가사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시청률 저하의 이유는 사실 너무나 명료하게 눈에 보입니다. '동이' - '자이언트' - '역전의 여왕'으로 이동한 시청률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바로 '아줌마'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테나'는 몇가지 부분에서 전통적으로 '아줌마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던 요소들이 부족합니다. 첫째는 '간단한 플롯'입니다. '아테나'의 앞부분은 '도망자'의 1,2회처럼 극악의 혼란스러운 플롯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반 시청자들이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고, 전화도 받아 가면서' 볼 만큼 편안한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열혈 시청자 평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더군요. "정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었다. 그런데 잠시라도 눈을 떼면 이해가 안 간다." 물론 대단한 복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한국의 '주류' 시청자들은 특히 드라마 초반의 사건이 '이곳 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걸 상당히 경계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두번째. 바로 '멜로 라인의 실종'입니다. 이 부분은 '아이리스'와 비교해도 너무나 극명하게 드러나죠. 드라마 첫회에는 40여분이 지나 주인공 정우성이 처음 출연하고, 3회에는 수애가 채 10분도 출연하지 않습니다. 국제적인 음모와 폭력 속에 강제로 헤어진 연인, 서로 그리워하다 정신병이 걸릴 것 같은 안타까운 그리움, 그 과정에서 매달리는 다른 미녀에게도 차가운 정절남, 뭐 이런 '드라마틱' 한 요소들이 없다는 데에 많은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정우성-수애의 키스신이 꿈이었다는 데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분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언젠가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재현된다고 봐야겠죠. ㅋ 일종의 복선?)


혹자는 이걸 싸잡아 '스토리가 없고 액션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분명 '아테나'는 스토리가 없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멜로' 스토리가 없는 드라마였죠. 정우성과 이지아의 과거, 차승원을 짝사랑하는 듯한 수애의 일방적인 모습 같은 것이 암시되고 있지만 분명 '주류 시청자'가 원하는 '가슴저미는 사랑'과는 자못 큰 거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요소 때문에 '아테나'는 더욱 가치 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리스'를 만들고 '아테나'를 만든 제작진을 돌아보면, 위에서 지적된 두 가지 약점을 모를 리가 없는 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은 '아테나'를 만들었고 시청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늘 똑같은 드라마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테나'는 '아이리스'보다 훨씬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드라마입니다. 굳은 얼굴로 비정한 첩보 세계를 누비는 사나이와 미녀들의 이야기보다는, 뭔가 007을 꿈꾸는, 잘생겼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아 보이는 주인공이 다소 경쾌한 스텝으로 위기를 넘어 영웅이 되는 이야기죠. 아마도 '아이리스' 첫회를 본 시청자 중 절반 이상이 "이병헌은 드라마가 끝날 때 살아 있지 못하겠구나"라고 짐작했다면, '아테나'를 보고 정우성이 죽을 거라고 예상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만약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가 정우성이 죽어버리면 정말 어이없는 결말이겠죠^^). 같은 첩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색깔이 다른 드라마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성공한 '블록버스터형' 드라마들의 색채를 되새겨 보시면 훨씬 더 이해가 쉬울 겁니다. 뭔가 그늘이 있는 남자 주인공이, 그늘이 있는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다가, 서로 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주고 받고, 오해와 주변 환경 때문에 덕지덕지 만신창이가 되어 마지막에 피를 토하고 죽기 직전에서야 사랑을 확인하는 뭐 그런, 공식처럼 되어 버린 드라마들 말입니다. 사실 돈을 많이 들인 드라마들일수록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크기 때문에, 그런 필승 공식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이런 드라마들 속에서 '아테나'는 매우 신선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민종과 이한위 같은 캐릭터의 활성화 역시 이런 색깔을 맞추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김민종은 오랜만에 그럴듯한 역할을 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단 3편만 보고 드라마의 앞날을 모두 내다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현재까지 방송된 '아테나'는 실망보다는 기대를 주는 드라마입니다. 비슷한 시도였던 '도망자'는 한번에 너무 먼 걸음을 뛰려 한 탓에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지만, '아테나'는 거기에 비해 훨씬 덜 야심적인 드라마입니다. 평소 안방극장에서 '반드시 통하는' 흥행 공식에서 한 발 정도 비껴갔다고나 할까요.

결론은 지금까지 얘기한 바와 같습니다. '이런 드라마'가 한국 안방에서 통할 때, 그리고 이런 다양성을 충족하는 드라마가 한국에서 공급될 때 진정한 '글로벌 콘텐츠'를 한국에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당장 안방에서 30%, 40%가 나오는 드라마보다 훨씬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테나'의 선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만,



P.S. 대통령의 딸이, 그것도 이보영 같은 미모의 소유자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초등학생까지 다 알 것이고 심지어 아시아권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경호원 하나 없이 해외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죠.

그럼 대체 왜 그런 상황인지를 대사 한두마디로라도 설명을 해야 할텐데(예를 들면 대통령의 감춰진 딸이라든가) 그런 설명 하나 없이 넘어간 건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너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제작진이 제정신이라면 뭔가 이유를 만들었을텐데 그 이유가 3회에 공개되지 않은 건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여러분의 추천 한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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