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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작, 황정민 주연의 '그림자 살인'입니다. 시대극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시대극이 아니고, 코믹한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군요.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림자 살인'도 190만명대의 관객을 동원했고, '조선명탐정' 역시 개봉 첫주 1위를 기록하며 순항중입니다. 이런 특이한 분위기의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정조 때인 1782년. 왕은 조정 대신들의 세금 포탈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探正)이라는 관직을 마련해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탐정(김명민. 끝까지 극중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름 비상한 현장감식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살해한 혐의로 옥에 갇힙니다.

어느새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개장수(오달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립니다. 왕(남성진)과의 호흡으로 열녀 감찰을 위해 떠나지만 실제로는 역시 비리 조사가 목적. 음모세력의 암살 도구를 쫓다 보니 만나게 된 한객주(한지민)에게 반하랴, 악당들과 치고 받고 싸우랴, 개장수와 코미디 하랴 마냥 바쁜 명탐정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려다 보니 참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는 추리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를 쓰는 추리는 저 멀리 가고 엎치락 뒤치락, 탐정 일행의 슬랩스틱과 말장난이 주요 내용입니다.

아마도 역시 2009년작인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역시 전통적인 셜록 홈즈 상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흥행 면에서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대변신입니다. 천의 얼굴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살짝 보여주다 만 코미디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쳐 줍니다. 첫 등장부터 몸개그를 작렬하는 데 이어 비속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상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튕겨 주는 '새끼' '자식' '임마'로 웃겨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변신의 백미는 한지민. '이산'을 생각하면 충격입니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그 변신(골...)이 매우 강조됐죠.



늘 청초한 눈빛 하나로 먹어주던 한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팜므 파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나이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늘 '다 큰 여자'라기 보다는 소녀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배우였기에 더욱 놀라운 변신입니다.

한국 여배우들에게 가장 부담없는 노출의 자리인 시상식 무대도 극구 거부하던 한지민이었기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ㅋ) 참 이런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잘 어울리더라는 것.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의 히트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한지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다소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는 배역 선정이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번 작품은 확실한 선을 긋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달수를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물론 늘 보던 모습이라 새로운 맛은 없지만, 최근 '높낮이없는 말투 개그' 부문에서 송새벽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던 터라 이 영화에서의 호연이 더욱 반갑습니다.



김석윤 감독의 예능 전력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 '조선명탐정'을 논리적인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의 차원에서 접근하신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플롯의 개연성이란 기대할 수 없고,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좀 의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비슷할지 매우 의문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일찌감치 퇴출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명탐정'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오달수의 찬탄을 자아내는 코믹 호흡과 함께 한지민의 새로운 매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슬랩스틱성 코믹 컷들이 관객을 계속해서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롯에서 좀 더 큰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단편적인 즐거움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가려줍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연기상을 줄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트 갓파더' 처럼 관객을 화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두어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설 극장가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S. 그런데 굳이 그런 영화에 '감동'이 비집고 들어가려 한 건 좀...^^


P.S. 영화 시작 때 나오는 '탐정'이란 관직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이건 그냥 뻥입니다. 그런 관직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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