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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보고도 이렇게 흥미가 가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물론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팬들과는 달리 저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불량공주 모모코'는 단 한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불끈 일어나게 한 것은 이 영화의 초기 설정입니다. 한 중학교의 종업식날(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종업식-짧은 봄방학-새 학년 시작의 순서입니다), 여느 날처럼 아이들은 급식으로 나온 팩 우유를 마시고,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평온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페이스에 열중해 있는 아이들. 하지만 교사의 말이 "여러분 가운데 내 아이를 죽인 사람이 있다"는 데 이르자 일시에 교실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집니다.


미혼모인 교사는 처음 자기의 아이 아버지가 존경받아온 교사이며, HIV 보균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혼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교사는 혼자 딸을 키워왔고, 아이 봐 주는 사람의 사정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씩은 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는 교정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사고사. 하지만 몇몇 단서는 사고가 아니라는 단서를 던지고, 결국 교사는 두 명의 자기 반 학생이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네. 의심이 아니라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처벌할 수 없는 미성년자. 그래서 교사는 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그 두 학생의 우유에 뭔가를 주사기로 넣었다"고 하는 거죠.


사실 저는 이 내용이 영화 전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더군요. 이 내용은 말하자면 2시간짜리 영화에서 앞부분 35분 정도, 즉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런 설명이 끝난 뒤, 즉 여교사는 학교를 떠나고 남아 있는 반 아이들과 가해자인 두 아이가 어떻게 학교 생활을 이끌어가는가를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일본 여배우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배우를 꼽으라면 소(아, 이게 아니구나) 아무래도 마츠 다카코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살짝 심심한 듯 다소곳하면서도 엉뚱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강점을 보여 온 배우죠. 그런 배우가 '아이를 잃고, 아이를 죽인 자기 반 학생들에게 보복하는 미혼모 여교사' 역할을 한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변신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카시마 감독의 솜씨를 일단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도 그렇듯 집중 같은 것은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들, 미소까지 머금은 여교사의 표정, 온갖 장르를 오가는 화려한 음악과 유려한 영상 속에서 뼈속까지 시린 대사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연출해 냅니다.

아마 전혀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아름다운 학원드라마 같은 앞부분이 점점 소름끼치는 가면의 공간처럼 변해가는 데 전율을 느낄 듯 합니다. 훌륭합니다. 특히 아래 사진 같은 장면은 배신과 음모의 반전을 다루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에서 현실의 고발이나 진지한 문제제기를 보는 듯 합니다만, 저는 제목에도 썼듯 온 사회에 만연한 '중2병' 환자들에 대한 어른들의 반격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중2병에 대한 수많은 접근이 이뤄졌지만, 대부분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들을 선도한다는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해도, 어른이 좀 참고 양보해서 선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시선이 조금은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너희들이 중2병 수준으로 도발해 오면, 우리 어른들도 중2병의 시선에 맞춰 너를 박살내 주겠다'는, 말하자면 '더 이상 애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엄포가 느껴집니다. 이 자체가 유머일 수도 있겠지만, 이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은 사뭇 진지합니다.



자기보다 젊은 세대를 대할 때 어른의 제대로 된 태도라는 것은, '10대는 20대나 30대를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알 리가 없다. 10대를 살아 본 사람이 10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나카시마는 이미 그런 접근으로 세대간 화해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며 조종을 울립니다. 거기에 희망 같은 것은 없습니다.

'더 이상 대들면 밟아서라도 교정해 주겠다'는 나카시마의 시선이 10대나 20대 관객들에겐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관객들이 더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물론 이 영화의 재미는 '어른들'이 더 느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편에 서 있는 영화기 때문이죠.





(여기까지. 나머지는 스포일러)

'고백'의 구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갈수록 태산'인 반전의 반전입니다. 나름 좋은 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여교사가 아무리 살인범이지만 자기 제자들이 먹는 우유에 에이즈 환자의 피를 넣을 수 있었을까. 이런 순진한 믿음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영화상으로는 피를 넣으려 했지만 남자의 만류로 넣지 못했다고 되어 있는데 어쨌든 방해가 없었다면 넣고도 남았을 겁니다.

마지막 대사, 여교사가 슈야의 의도를 뒤집어 전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교정이 폭파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날려 버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순간 슈야는 발작을 일으키고, 여교사는 이런 요지의 말을 합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것이 너에겐 기회일거야. 그렇게 절망하는 순간에 갱생의 계기가 찾아오는 법이니까..... 물론 농담이지롱."

원작과 영화의 차이는 마지막 대사라고 합니다. 즉 마지막 대사를 넣은 것이 나카시마 테츠야의 의도라는 얘기죠. 이 '농담이지롱'은 한국식으로 하자면 '~~ 막 이래' 라는 식으로 지금 한 말은 나의 진심이 전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체 저 말의 의도가 뭐냐고 고민하시는 분도 있는 듯 한데, 제가 보기엔 그 말을 하기 직전, 마치 자기가 이렇게 슈야를 절망에 빠뜨린 것이 그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절망이란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교육적인 의도에 의한 것인 양 포장한 것이 농담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농담이지롱'은 '내가 너같은 쓰레기의 갱생 따위를 신경쓸 것 같아?'라는 비웃음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말합니다. '어른이니까 참아야죠' '이해해 줘요' '그런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교사가 자기 학생을 외면할 수가 있지? 그건 교사의 의무 아닌가?'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어요' 어른이 기대하는 아이다운 순진함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 이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하는' 어른들의 약점을 다 파악하고 그걸 한껏 사용하자는 영악한 악마들이거나, 욕구와 본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하등동물뿐입니다.

어느 쪽이든 더 이상 관용은 없다, 는 시선은 참 신선하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화처럼 할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요? 과연 '모든 어른들이' 그렇게 하면 정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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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이 된다는 건 한때 세계의 제왕이 되는 것과 거의 비슷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비록 베르사이유나 쉔브룬 궁, 자금성 같은 거대한 궁궐도 없고, 음식은 그냥 그렇고, 본토의 인구 역시 프랑스나 독일의 절반도 안 되는 정도였지만 해가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식민지로부터 거대한 부가 밀려들어오던 시절이 있었죠.

퀸 빅토리아의 기치 아래 영국 신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제적 감각과 함께 가장 발전된 식민 통치 형태를 개발해가며 인류 역사상 이전의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진정한 세계 제국의 엘리트들을 길러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외국어 중 하나만 배워야 한다면 영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이제 영국보다는 미국 때문이라고 할 분도 계시겠지만 그 미국이 영어를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영국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셔야겠죠.ㅋ)


19세기 독보적인 세계 강국의 위치에 올라선 영국은 20세기 이후 후발 유럽 국가들과 세계 전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칩니다. 1차대전의 승전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숨을 죽였다고 생각했던 독일은 어느새 원기를 회복, 총통 각하의 영도하에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일찌기 수백년 동안 유럽 대륙의 균형자 역할을 자임했던 영국이 보기에 상황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인 조지5세는 노쇠해갔고, 영국 왕실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왕위를 이어야 할 왕세자 데이비드(뒷날의 에드워드 8세, 더 뒷날의 윈저 공)는 미국인 이혼녀에게 빠져 보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윈저 공은 비록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해도 히틀러와 나치즘에 상당한 호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장차 독일과 일전을 벌이게 된다면 국가를 대표하는 데 있어 취약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요크 공작으로 불리는(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왕세자는 웨일즈 공작, 그 바로 아래 동생은 요크 공작의 지위를 갖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Prince of Wales'라는 말 자체가 '영국 왕세자'라는 뜻입니다) 둘째 알버트. 그런데 이 알버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더듬이라는 점이었죠. 여기서부터 '킹스 스피치'가 시작됩니다.



요크 공작 알버트(콜린 퍼스)는 대중 연설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자신의 약점을 치료하기 위해 나서지만 뾰족한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아내(헬레나 본햄 카터)를 통해 호주 출신의 언어치료사 로그(제프리 러시)를 만나지만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로그가 녹음해 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난 알버트는 서서히 자신이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 조지5세가 죽고 장남 데이비드가 왕위를 계승, 에드워드 8세가 되지만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의 결혼 논란으로 결국 자진 퇴위합니다. 그 결과 별로 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알버트가 새로운 왕 조지 6세가 됩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다는 건 참 어지간한 사람들에겐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영화에 대해 설명할 때 누가 '무슨 영화냐'고 물으면 '응, 영국 왕이 말더듬이라서 연설을 못해. 그래서 치료받는 얘기야'라고 하면 누가 그 영화를 보고 싶을까요. ㅋ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물론 세 명의 연기 9단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이런 영화는 만들어졌을 리가 없겠지만, 그보다는 영국 영화 특유의 탄탄하고 유머 넘치는 대본에 첫번째 공로를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인물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세심함을 잃지 않았고, 역사의 기록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 냈습니다. (네. 걸핏하면 팩션 타령을 하면서 역사 왜곡을 작가의 창의력과 착각하는 몇몇 작가분들이 참고하셔야 할 작품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걸핏하면 셰익스피어를 인용해대는 이 영화의 대본이야말로 바로 대영제국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반면 '리처드 3세' 오디션을 보는 로그에게 극단 관계자들이 '호주 사투리 쓰는 너따위가 어떻게 영국 왕 역할을 하겠다는 거냐?' '퍼스? 퍼스에도 극단이 있냐?' 고 빈정대는 장면은 대영제국의 다크 사이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조지 6세 가족. 콜린 퍼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 훈남 왕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메시지를 따로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두 남자 어른 사이의 우정이라는 것은 사실 일반인과 별로 대화할 짬이 없었던 왕자가, 자신을 격의 없이 대하는 호주 출신의 아마추어 배우에게 호감을 가질 가능성은 의외로 꽤 큽니다. (말하자면 바로 "날 이렇게 대한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인 거죠. ㅋ) 얼핏 사기성이 엿보이는 이 호주 출신 아저씨에게, 어느날 제발로 찾아온 환자가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왕자님이라는 건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을 겁니다. 인생 역전의 기회였달까...

그러니까 이 두 남자의 관계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계급을 초월한 두 남자의 우정'인지 아닌지는 뭐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깊이 생각할수록 이상해집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여유 넘치는 영국식 코미디로 즐기면 되는 겁니다.



단 이 영화가 전해주는 진실 가운데 분명한 것은 왕이나 왕자로 산다는 것이 그리 편안한 팔자만은 아닐 거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조지 5세의 아들 형제들은 참 복잡한 팔자로 살았습니다. 조지 5세는 다섯 아들을 뒀습니다.

장남 에드워드 8세의 얘기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로 포장됐지만 뒷얘기를 까면 까 볼수록 책임감없는 이상한 왕자와 문란한 이혼녀의 막장 스토리로 가는 기미가 있고, 4남 조지 왕자는 묘한 성적 취향 때문에(bi....) 사회적 물의를 빚었지만 결국 2차대전중 전사하는 바람에 전쟁 영웅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으로 곱게 포장된 해피엔딩(?)의 주인공입니다.

(조지 5세 가족. 남자 왼쪽부터 데이빗-왕세자, 3남 헨리, 조지 5세, 알버트-조지 6세, 그리고 4남 조지. 앞줄 여자는 왼쪽이 메리 공주, 오른쪽이 왕비.)

흔히 2남이자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인 조지 6세야말로 형 때문에 원치 않는 왕좌에 올라 2차대전과 대영제국의 해체를 바라보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형 윈저 공보다 일찍 죽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꼽히지만 이들 형제 가운데 가장 불행했던 것은 막내 존 왕자입니다.

존 왕자는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간질 판정을 받습니다. 이때문에 가족과 함께 윈저 성에 거주하지도 못하고 시골 농장에서 사실상의 유폐 생활을 하다가 14세에 숨을 거둡니다. 간질에 걸린 왕자라는 것은 왕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죽은 뒤에도, 왕가의 가족에 대한 모든 공식 언급에서 존 왕자와 관련된 내용은 제외되어 왔습니다.



(저도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히 케이블TV에서 LOST PRINCE라는 BBC 드라마를 보고 나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20세기에도 간질 때문에 왕가에서 감춰져야 했던 왕자가 있었다니... 케사르도 앓았다는 간질인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왕도 사실은 사람이고,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로 가족과 자신의 장래, 직업과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는 점을 제대로 풀어냈습니다. 그 내용이 100% 사실은 아니더라도 셀레브리티의 인생도 늘 파티만으로 가득 찬 게 아니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스토리로 받아들여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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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에서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은 대단히 흔한 여자 이름입니다. 좀 길기 때문에 리사, 엘리사, 베스, 엘, 등 여러가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엘리자베스의 이름 가운데 대표 애칭이 리즈(Liz)가 된 것이 누구 때문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냥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가운데 영국 여왕보다 유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망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79세면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지만, 육상효 감독님의 한마디, "어릴 때부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나면 삶의 유한성에 대해 아프게 느낄 것을 걱정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니 정말 그렇다"는 말씀에 실로 공감하게 됩니다. 심지어 테일러의 전성기가 저물어 갈 무렵에 태어난 저조차도 이 말과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그 배우가 한때 가졌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할 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50년대'를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두 차례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 모두 60년대의 일이지만 '여신 리즈'가 가장 위력을 뽐낸 시기는 50년대가 아닐까 합니다.


<< 제가 본 영화들만 언급합니다. 못 본 영화들은 패스.>>

1932년 영국에서 태어나 LA로 이주한 뒤 1944년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 1949년 '작은 아씨들'을 통해 국민 미소녀의 자리를 굳힌 리즈는 1950년대 들어 미소녀 아닌 미녀로 탈바꿈해갑니다. 그 첫 시도는 아무래도 '신부의 아버지' 연작이지만 그건 제가 못 본 영화인 관계로 패스. 그리고 1951년, 너무나도 유명한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가 나옵니다.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후 전 세계에서 수만번에 걸쳐 (사실상)리메이크됩니다. '가난한 집의 명석하고 야심만만한 미남 청년이 재벌 집 딸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어려운 시절의 연인을 차 버리는 이야기'의 원조인 겁니다. 2011년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마이더스'의 먼 조상 뻘인 셈이죠.

글자 그대로 영화는 아메리카의 비극, 물신과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의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19세의 리즈는 주인공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해 줄 열쇠' 역할을 합니다. 너무나도 청순하고 아름다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상징이죠. 비록 대단히 큰 비중은 아니지만, 아무튼 리즈의 존재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고민에 너무나 설득력있는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아울러 이 영화 이후 리즈에게는 '부잣집에서 자라난 공주님이며 발랄하고 청순하지만 다른 사람의 상황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캐릭터가 부여됩니다. 이를테면 한국 미니시리즈의 여자 2번으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죠.


1952년. 제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리즈의 모습이 등장하는 영화 '아이반호'가 등장합니다. 아이반호 역은 당대의 미남 스타 로버트 테일러. 사실 월터 스콧 경의 원작을 존중하자면 여주인공은 색슨 족의 로웨나 공주여야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아이반호를 짝사랑하는 유태인 처녀 레베카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에 리즈를 캐스팅 한 데서도 결국 아이반호와 맺어지는 로웨나보다 레베카가 돋보여야 한다는 연출 의도가 엿보입니다.

(여담이지만 조앤 폰테인은 이로써 '레베카'에게 두번째 까임을 당한 셈입니다. 이미 1940년작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에서 폰테인은 '그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미인인' 레베카'-영화 속에 얼굴은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라는 여자와 비교되는 역을 맡았죠. 폰테인도 상당한 금발 미녀지만 어쩌다 이런 역할을 두번이나 맡게 되는지 참...)

아무튼 '아이반호', 우리 제목으로 '흑기사'의 레베카는 그윽한 눈빛으로 한 소년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비련의 주인공으로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본 작품은 1954년작 '랩소디'.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작품일테지만 제게는 매우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또 한번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 역을 맡은 리즈는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홀딱 반합니다. 남자도 여자가 좋지만 연습 조차 하지 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라는 여자의 철없음에 질려 버리고 결별을 선언합니다. 충격을 받은 여자는 주변에 있던 별볼일없는 피아니스트와 결혼해버리죠.

몇년 뒤, 여자에게 얹혀 살다시피 하던 피아니스트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한게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있다는 자각으로 그녀 곁을 떠나려 합니다. 그제서야 정신차린 리즈는 죄책감에 평강공주로 변신, 본래는 재능있던 남편을 정상의 피아니스트로 되돌려 놓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는 사이 옛 애인은 거장으로 승승장구하죠.

여자는 옛 애인과 조우하고, 둘 사이의 감정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하지만 구렁텅이에 빠진 상태로 남편을 버릴 수 없다는 신념에 더욱 훈육을 강화하고, 남편의 재기가 거의 확실해지자 '이제 당신이 두 발로 설 수 있으니 난 떠나련다'는 뜻을 전합니다.
 



연주가 끝나면 아내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처절한 심정으로 남자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단 저 동영상의 끝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닙니다. 그냥 동영상 올린 분이 엔딩 크레딧을 보여주려고 편집한 모양이네요.)


이 영화에서 이 곡의 비장함은, 바이올리니스트 남자의 상징곡인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번의 화려함과 정면으로 대비를 이루면서 최상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실제 피아노 연주는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맡았다는군요. 실제로 제가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느낀 것은 이 영화를 본 다음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거기에 리즈의 미모가 미친 영향은... 뭐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죠.


'내가 마지막 본 파리'에서도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의 이미지는 계속됩니다. 이 시기 리즈의 주연작들이 한국 멜로드라마에 미친 영향은 참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1954년 영화에서 이미 두 자매가 한 남자를 놓고 펼치는 묘한 신경전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검은 터틀넥이 잘어울리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영화는 1956년작 '자이언트'.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세 주인공의 이름만으로도 당대 최고의 작품이 되기에 충분했던 영화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200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다소 긴, 몇 장면을 빼면 그닥 높이 평가하고 싶지는 않은 영화입니다만.... 어쨌든 괴팍한 제임스 딘이 끝까지 순정을 보이는 '마님'역의 리즈는 당연히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리즈의 60년대 작품들에게 오스카상이 주어진 것은 58년작인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와 59년작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 상을 주지 않은 데 대한 반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후반을 맞은 리즈는 그저 별 변동 없는 '철없는 부잣집 딸'에서 순식간에 진짜 배우로 변신합니다. '뜨거운...'에서 알콜 의존증인 남편 폴 뉴먼과 시아버지의 갈등을 보며 괴로워하는 아내 역을 맡아 홈드라마 적응력을 보여준 리즈는 마침내 걸작 '지난 여름 갑자기'를 통해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리즈의 출연작 가운데 가장 화려한 면면의 영화는 '자이언트'라는게 정설이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화(이후 작품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는 바로 '지난 여름 갑자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브의 모든 것' 등으로 이미 두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거장 조셉 L 멘키위츠 감독(물론 뒷날의 '클레오파트라' 때문에 리즈와 싸잡아 욕을 먹지만)의 이 작품은 대부호 집안의 미망인 캐서린 헵번이 젊은 정신과 의사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만나 이야기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1년 전 여름, 헵번의 아들과 그 연인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천천히, 잘 드는 칼로 과일 껍질을 벗기듯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별다른 액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탄탄한 대본, 절묘한 연출에 의해 관객은 보는 내내 긴장을 멈추지 못합니다. 특히 마지막의 충격적인 사건과 영화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배우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에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말이 그저 뻔한 수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만 18세의 나이로 1950년대를 맞은 리즈는 10년 동안 세번의 결혼을 경험하고, 두 차례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고, 평단과 일반 관객으로부터 불멸의 미모와 연기력을 칭송받는 여신의 반열에 오릅니다. 비록 오스카 수상이나 '사상 최고의 실패작'으로 불렸던 '클레오파트라', 리처드 버튼과의 결혼과 이혼 등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리즈의 인생에 남아 있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이름을 불멸에 이르게 하기에는 지금 살펴본 10년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으로 제 방식대로 엘리자베스 여신에 대한 조의를 표명합니다.


P.S. "난 결혼한 남자 말고는 아무와도 함께 자지 않았다"는 등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쿼트 가운데는 유명한 말들이 많은데, 그중엔 "난 리즈라고 불리는게 싫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알지만 본명이 너무 길다 보니 어쩔 수 없더군요.^

윤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부디 얼른 다시 태어나 세상에 또 한명의 여신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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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의 '굿바이 평양'을 보고 왔습니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제주도 출신(양씨라는 데서 일단 짐작 가능하죠^^)의 아버지는 조총련의 핵심 간부였고, 특히 북한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인정받아 김일성과 함께 사진 촬영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런 아버지는 차별이 심한 일본에서 세 아들을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10대 후반의 세 아들을 보냅니다.

막내인 양영희 감독은 세 오빠가 하루 아침에 집을 떠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세 오빠의 이후 삶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원망도 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영희씨는 90년대 중반부터 2004년까지 북한으로 가족을 방문하러 갈 때마다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만들었습니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은 전편과 속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같은 시기와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되 조금 자제한 이야기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로 나눠집니다. '디어 평양'을 만든 죄(!)로 양 감독은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고 여기에 대한 반발(?)로 '굿바이 평양'을 내놨습니다.

영화는 1995년, 다섯살 난 선화가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선화는 양 감독의 둘째 오빠가 두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입니다. 양 감독은 이것이 선화와의 첫 만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는 방문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1991년생(어쩌면 1992년생)인 선화는 1996년 엄마를 잃고, 1999년 새엄마를 맞습니다(그러니까 선화 아빠는 결혼을 세번 하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화는 구김살없이 명랑하고 씩씩한 아가씨로 자라납니다. 영화는 곧 선화의 성장사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아기는 엄마의 묘소 앞에서도 방긋 방긋 웃는 아기가 되어 있고, 어느새 학교에서 배운 시 낭송을 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마냥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 속 북한의 모습이, 그동안 '식량난, 꽃잽이, 대량 탈출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만 부각될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간간이 드러나는 북한의 실상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수돗물은 하루에 두 시간 나오고 수시로 정전이 찾아오는 평양의 아파트(생일 축하를 위해 불을 껐을 때 아버지가 "어, 정전이냐?"고 물으면 다른 가족들은 "아버지도 평양 사람 다 되셨다"며 웃습니다. "영광스런 정전입니다" 하며 까르르 웃는 선화의 대사도 나옵니다), 어머니가 3년만에 닭고기 요리를 해 준다는 조카들, 미키마우스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는 선화에게 고모(양 감독)가 "이거 신어도 괜찮아? 하고 묻자 "다들 잘 몰라"라고 대답하는 선화, 그 선화보다 머리 하나씩은 작은 선화네 학교의 아이들(선화네 가족이 그나마 평양에서는 살림새가 괜찮은 편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은 양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가 영 신기한 듯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런 물질적인 빈곤 외에도, 고모가 자꾸만 선화에게 미안해 지는 이유는 여러 군데서 드러납니다. 해외 방문객이 머무는 호텔 식당에서 "먹어 본 게 없어서 고를 수가 없다"며 한동안 메뉴판만 뒤적이던 선화는 고모가 약간 민감하다 싶은 질문을 던지자 "카메라 꺼요"라며 눈치를 살핍니다. 열세살 나이에도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하면 안 될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양 감독이 선화에게 보여주는 애착은 오빠들 사이에서 혼자 자라나고 있는 고명딸이라는 공통점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겁니다. 선화를 바라보는 양 감독의 시선에선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던 이 조카가 평양에서 자라야만 하는 데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납니다. '디어 평양'이나 '굿바이 평양'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리는 그런 나라에서 말입니다.




북한 입국을 금지당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편지가 오가고, 선화는 어느 새 영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고생하다 숨을 거두고, 아버지가 죽기 직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큰오빠(선화의 큰아버지)도 생을 마감했습니다. 큰오빠의 아들은 북한의 음악 영재로 자란 듯 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양 감독이 담고 싶었던 것은 세 아들의 삶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는 데 대한 아버지의 깊은 후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특이한 가족사를 담아낸 '굿바이 평양'의 시선은 건조한 듯 하면서도 따스합니다. 북한과 재일교포, 진실보다는 신화만 요란한 두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져야 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P.S. 아무쪼록 '굿바이 평양'의 공개가 선화나 그 가족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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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하다가 아카데미상 시상식 이틀 전에야 그 소문이 파다한 '블랙 스완'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완성도와 나탈리 포트만의 열연을 칭송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발레라는 소재, 빛과 어둠을 대표하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라는 작품의 분위기, 발레리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한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엄청난 변신 노력 등이 관객들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완벽을 향한 집념과 그 집념에서 비롯되는 심리적인 압박, 그리고 그때문에 무너질 수 있는 여리디 여린 신경을 다룬 작품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예술을 통한 성취 그 자체보다는, 세심하게도 이 여배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깔아 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극의 원천은 바로 '마마걸'이란 요소입니다.


미국 유명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니나 세이어(나탈리 포트만)는 이 발레단을 이끌어 온 스타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은퇴와 함께 새 시즌의 개막작인 '백조의 호수'의 여주인공을 따내기 위해 엄청나게 긴장합니다. 단장(?)인 토마(뱅상 카셀)는 니나의 테크닉을 높이 평가하지만, 백조 여왕 오데트와 쌍둥이 흑조 오딜을 동시에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감정 표현이 완벽하지 않다며 의구심을 보입니다.

토마는 니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여주인공 역할을 맡기지만, 악의 상징이며 남자를 유혹해 오데트를 파멸에 빠뜨리는 오딜 역을 연기하기에는 니나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니나를 압박합니다. 이때문에 안 그래도 여린 니나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몇 분들이 오데트와 오딜을 한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토마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오해하시곤 하는데 사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거의 초연 때부터 오데트와 오딜을 한 무용수가 춤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백조의 호수'나 발레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는 결국 재능과 성공, 노력과 가능성에 대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며, 그 단계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아주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세심한 연출로 만만찮은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의 니나 연기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찬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극중 발레 장면에서 보여주는 발레리나 연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설탕 인형 같은 니나의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기하는 데 있어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미 골든 글로브와 영국의 아카데미상이라고 할 수 있는 BAFTA를 비롯해 13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여주인공의 극중 비중이나 연기력 면에서 2010년의 영화들 가운데 따라올 작품이 없다는 압도적인 성과인 셈입니다. 물론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배우들 중 무시할 수 있는 후보는 하나도 없다고 봐야겠지만, 올해만큼은 포트만의 독주에 제동을 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요소들에 궁금증을 느끼는 분들은 당연히 보셔야 할 작품이지만 화려한 액션이나 웅대한 스케일, 피로를 날려 줄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약 두시간 동안 송곳으로 놋그릇을 긁는 소리를 듣는 감정의 혹사로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블랙 스완'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건, 나탈리 포트만이 여우주연상을 받건 말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영화를 보는게 좋습니다. '명화'라는 말이나 지적 허영에 매달릴 이유는 없습니다.

영화 소개는 이 정도.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니나 못잖게 눈길을 끄는 것은 주변의 세 여자입니다. 첫째는 예전 발레단의 여왕이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 천재성을 상징하는 릴리(밀라 쿠니스), 그리고 니나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엄마(바브라 허쉬)입니다. 사실 니나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는 그리 선명하지 않은, 클리셰 덩어리 같은 캐릭터일 뿐입니다. 이 세 인물과의 관계가 니나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베스는 니나가 닮고 싶은 존재, 니나가 지향하는 '완벽'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니나는 심지어 베스의 물건들을 훔쳐 가면서까지 베스의 세계에 접근하려 합니다.




릴리는 니나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보여줍니다. 무대공포증도 없고, 완벽에 대한 압박도 없이 발레를 즐길 수 있는 발레리나입니다. 니나와 같은 자기 혹사도 없고(자몽 반개로 끼니를 때우는 니나와는 달리 릴리는 치즈버거 -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다이어트로 인한 욕구불만의 상징으로 그려지죠 - 를 먹으며 춤을 춥니다), 목숨을 걸고 연습하지도 않지만 노련한 안무가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유형의 예술가입니다.

릴리와 니나의 관계는 고전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릴리는 모짜르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예술이 원하는 완벽성을 희생시키는 존재입니다. 다만 니나가 90에서 100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요소의 90 이상을 투입해는 삶을 살고 있다면, 릴리는 80에서 90 정도의 완성도를 내기 위해 인생의 50 정도(니나의 시선에서는 더 낮아 보입니다)를 투입하는 캐릭터입니다. (예술가의 노력과 결과로 나타나는 성취의 관계는 흔히 지수함수로 표현됩니다. 최정상의 단계에서 1%의 완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선 그 전보다 몇 배의 투입 요소가 필요한 법입니다.)

니나가 본능적으로 릴리에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 릴리처럼 역량의 50 정도를 투입한다면 릴리가 보여주는 80 정도의 퍼포먼스를 결코 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릴리가 만약 인생의 100을 발레에 투입한다면 - 물론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 자신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릴리의 자유분방함은 니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상대에 대한 공포는 흔히 혐오로 바뀌기 마련이죠.




니나의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엄마와의 삶입니다. 영화 속 내용으로 짜 맞춰 보면 엄마는 그닥 재능있지는 않은 발레리나였고, 28세때 니나를 임신한 이후 발레리나로서의 인생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니나의 생부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뒤로 다른 남자와의 삶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하고, 마찬가지로 니나의 성장과정에서 연애 같은 것은 아예 배제시켜버린 주역이기도 합니다.

니나를 사랑하고 니나를 통해 자신이 못 이룬 프리마돈나의 꿈을 이뤄보려 하지만 한편으로 니나는 자신의 발레 인생을 강제로 끝내게 한 존재(사실과 다르지만 니나 엄마의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이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넘어 너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니나가 오데트 역을 따냈을 때 엄마는 니나에게 케이크를 먹이려 하고, 니나가 케이크를 거부하자(자몽 반개 먹는 사람에게 케이크라니...) 바로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 시도합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정상적인 딸이 자랐을 리 만무합니다.



물론 니나와 니나 엄마 같은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 쉽게 발견됩니다. 딸의 재능에 확신을 갖고, '장래의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딸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교우, 취미, 사회생활, 특히 연애 등을 철저하게 차단해 스파르타식으로 단련시키는 어머니들과 그 밑에서 경주마처럼 키워지는 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성공하고, 어차피 몇몇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딸의 실적이 성공이냐 실패냐와는 별개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에선 엄청난 긴장과 비극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 '블랙 스완'은 좀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되곤 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 속 요소들이 대단히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위에서 소개한대로 아로노프스키의 섬세한 영화 작법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됩니다. (어쩌면 재능있는 딸에게 올인하고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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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아주 오래 전, 국사 시간의 660-668-676 을 기억나게 하는 영화입니다.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 축출이라는 시간표는 굳이 외우려 하지 않아도 각각 정확하게 8년차가 나서 기억하기 쉬웠던 숫자였죠.

이준익 감독은 일찌기 세 편의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황산벌'이 6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이번 '평양성'은 668년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는 676년,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운동 세력을 흡수해 당과 일전을 벌이고 한반도 경략 야욕을 분쇄하는 내용을 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꽤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코미디로서의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는 관객들이 꽤 있기 때문입니다.



668년, 나당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갑니다. 각각 남과 북에서 동시에 진공해 평양성에서 만나자는 것이죠. 하지만 문무왕(황정민)의 생각과는 달리 김유신(정진영)은 신라군 본진을 한성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 사후 세 아들 남생(윤제문), 남건(류승룡), 남산(강하늘)의 3형제가 항전을 이끌지만 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남생과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남건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 끝내 남생이 축출됩니다.

한편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으로 참전했던 거시기(이문식)는 이번 전쟁에는 신라군으로 징발돼 참전해 있습니다. 신라를 원수로 생각했던 거시기에게 신라군으로 뛰라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로 여겨지지만, 고구려군의 미녀 갑순이(선우선)을 보고 뭔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합니다.



일단 지적해야 할 것은 '평양성'이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과연 '평양성'을 극장에서 보는 관객 중 몇명이나 660-668-676을 기억하고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초반에 아무 설명 없이 나오는 이름들의 의미를 몇명이나 제대로 느낄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전개는 '황산벌' 때와 같습니다. 그때도 관객 대다수는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이 모두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며 형제간이라는 것, 김유신과 김흠순도 역시 형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자인 김인문은 오래 전부터 당과의 연락 담당(인질이라면 인질, 현지화 조기 유학생이라면 유학생)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아 왜 맨날 뒷처리는 내가 하는 거냐"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게 된 것이라는 점, 이들 형제는 김유신과 군신관계이기는 하나 아버지의 처형이자 신라 군사력의 핵심인 김유신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영화를 봤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황산벌' 때에도 이런 이유로 관객 중 절대 다수는 '황산벌'의 코미디 요소 중 상당부분을 소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관객 절대 다수에게 '황산벌'은 백제 군사들과 신라 군사들이 서로 사투리로 욕을 하는 코미디 영화였을 뿐입니다. 군국주의와 민초들에게 갖는 전쟁의 의미 등 정작 이 영화에서 중요했을 부분은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었고, 당시 삼국 정세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이나 이해는 전혀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황산벌'은 박중훈이라는 좋은 배우가 계백장군이라는 유명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그 토대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한 상황들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놀랐던 것은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평양성'은 '황산벌'의 맥을 제대로 잇고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인 만큼 TV 사극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량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진행도 대부분의 사극에 나오는 '마구잡이 개싸움'과는 천지 차이입니다. 전투 진행에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여기서 수시로 터져나오는 이준익 식의 유머도 제몫을 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을 보다 보니 이준익-조철현 콤비는 '황산벌'의 성공 요인을 좀 오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양성'은 엄밀히 말해 '황산벌'보다 훨씬 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영화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에게 김유신이 평양성 내의 고구려 잔존 세력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은 그냥 허무맹랑한 얘기로 읽힐 뿐입니다.


실제로 668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1년전 당은 백제의 영토를 관장하는 웅진도독부에 의자왕의 아들 융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과 백마의 목을 잘라 화친을 맹세하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구 백제 지역 영토를 신라에게 넘겨줄 뜻이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결과 고구려 멸망 2년만인 670년, 신라는 고구려 부흥을 꾀하는 왕족 안승을 지원해 고구려 왕에 임명, 당에 반발하게 하고 웅진도독부 지역을 공격해 백제 영토의 본격적 병합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당과의 전투가 이어지고 결국 676년,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 전략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지만 그 순간마다 당과 결전을 벌일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당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당의 최종 목표가 한반도 전체의 병합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황산벌'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의 역사의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룬 수많은 TV 사극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실제 당시에 펼쳐졌던 사건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아울러 지나치게 '과거'에 '현대'의 의미를 담으려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판단이 어쩌면 관객들에게는 지나친 역사의 무게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문식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실제 역사를 보여주는 시도는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죠. 이런 두 가지 요소가 잘 결합됐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준익 감독의 역사 강론은 자칫 관객들에게 '너무 직설적인 강의'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양성'의 코미디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문식을 비롯한 백제 출신 병사들이 부르는 '쌀노래'는 포복절도할 환경을 만들고 독특한 유머감각은 각처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만 고구려와 그 백성들에게 놓인 운명이 지나치게 무거운 탓에 밝은 면이 제대로 강조되지 못할 뿐입니다.



연기 9단들이 대거 포진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만, 상당히 중요한 역할인 선우선이 아쉽습니다. 선우선이 구사하는 이북 사투리 연기 가운데 제대로 소화됐다고 보이는 것은 '어찌 보니(왜 쳐다보니)?' 정도일 뿐, 나머지는 뭉개지고 흩어져 알아듣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가능하면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지만 '조선명탐정'에게 워낙 밀리다 보니 불길한 예감(이준익, "관객 250만을 넘지 않으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도 들지만 뒷심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설 연휴를 맞아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을 둘러 봤지만 제 취향에는 '평양성'이 가장 맞는 듯 합니다만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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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을 보고 나니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작, 황정민 주연의 '그림자 살인'입니다. 시대극의 표피를 쓰고 있지만 시대극이 아니고, 코믹한 명탐정 캐릭터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군요.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림자 살인'도 190만명대의 관객을 동원했고, '조선명탐정' 역시 개봉 첫주 1위를 기록하며 순항중입니다. 이런 특이한 분위기의 영화가 잇달아 히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한국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부터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정조 때인 1782년. 왕은 조정 대신들의 세금 포탈 비리를 조사하기 위해 탐정(探正)이라는 관직을 마련해 조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탐정(김명민. 끝까지 극중 이름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름 비상한 현장감식력과 추리력을 발휘하지만, 사건의 범인을 살해한 혐의로 옥에 갇힙니다.

어느새 함께 옥에 갇혀 있던 개장수(오달수)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사건이 기다립니다. 왕(남성진)과의 호흡으로 열녀 감찰을 위해 떠나지만 실제로는 역시 비리 조사가 목적. 음모세력의 암살 도구를 쫓다 보니 만나게 된 한객주(한지민)에게 반하랴, 악당들과 치고 받고 싸우랴, 개장수와 코미디 하랴 마냥 바쁜 명탐정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려다 보니 참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명탐정'이란 제목은 이 영화가 추리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영화는 추리극과는 거리가 멉니다. 머리를 쓰는 추리는 저 멀리 가고 엎치락 뒤치락, 탐정 일행의 슬랩스틱과 말장난이 주요 내용입니다.

아마도 역시 2009년작인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 역시 전통적인 셜록 홈즈 상을 파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쨌든 흥행 면에서는 대 성공을 거뒀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대변신입니다. 천의 얼굴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김명민은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살짝 보여주다 만 코미디 본능을 본격적으로 펼쳐 줍니다. 첫 등장부터 몸개그를 작렬하는 데 이어 비속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고상한 표정에서 느닷없이 튕겨 주는 '새끼' '자식' '임마'로 웃겨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에서 변신의 백미는 한지민. '이산'을 생각하면 충격입니다.^^ 이미 포스터를 통해 그 변신(골...)이 매우 강조됐죠.



늘 청초한 눈빛 하나로 먹어주던 한지민은 이 영화를 통해 팜므 파탈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어느새 우리 나이로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늘 '다 큰 여자'라기 보다는 소녀 판타지의 대상이 되어 왔던 배우였기에 더욱 놀라운 변신입니다.

한국 여배우들에게 가장 부담없는 노출의 자리인 시상식 무대도 극구 거부하던 한지민이었기에(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고 하지만...ㅋ) 참 이런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 잘 어울리더라는 것.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역할'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명탐정'의 히트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한지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다소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는 배역 선정이나 필모그래피를 볼 때 이번 작품은 확실한 선을 긋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달수를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물론 늘 보던 모습이라 새로운 맛은 없지만, 최근 '높낮이없는 말투 개그' 부문에서 송새벽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던 터라 이 영화에서의 호연이 더욱 반갑습니다.



김석윤 감독의 예능 전력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 '조선명탐정'을 논리적인 전개나 탄탄한 스토리의 차원에서 접근하신다면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사실 플롯의 개연성이란 기대할 수 없고,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지도 좀 의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비슷할지 매우 의문입니다. 소설이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작가는 일찌감치 퇴출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선명탐정'의 미덕은 그런 곳에 있지 않습니다. 김명민-오달수의 찬탄을 자아내는 코믹 호흡과 함께 한지민의 새로운 매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슬랩스틱성 코믹 컷들이 관객을 계속해서 즐겁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롯에서 좀 더 큰 힘이 발휘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단편적인 즐거움이 전체적인 그림이 없다는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가려줍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연기상을 줄 영화도 아니죠.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트 갓파더' 처럼 관객을 화나게 하는 한심한 수준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두어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설 극장가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P.S. 그런데 굳이 그런 영화에 '감동'이 비집고 들어가려 한 건 좀...^^


P.S. 영화 시작 때 나오는 '탐정'이란 관직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도 있는 듯 한데 이건 그냥 뻥입니다. 그런 관직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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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라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대략 이러이러하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예측은 거의 틀릴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 영화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은 예상을 벗어나기 힘들 수밖에 없고, 또 충주 성심학교라는 실제 청각장애인 고등학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그렇습니다. 거기에 '강우석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정해진 길로 다니는 지하철처럼 '뻔한 영화'인 것이 분명한데도 '글러브'는 여전히 위력적인 상품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강철처럼 심장이 단련된 사람들이라 해도 '글러브'를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이것이 분명 '덜 가공되었기 때문에 더 감동적인'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세 차례나 MVP에 올랐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이었지만 이제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인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여러 차례 누적된 음주 사고로 선수 생활이 끝장날 위기에 놓입니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매니저 철수(조진웅)는 왕년의 은사인 KBO 상벌위원장의 주선으로 상남을 충주 성심학교로 보내 코치 자원봉사를 하게 합니다.

'전국대회 1승'이라는 이들의 목표를 보고 코웃음을 치던 상남. 하지만 교감(강신일)과 나선생(유선), 열명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열정은 상남을 움직이고, 결국 상남은 아이들이 봉황대기에 나가 진짜 고교야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뻔할 뻔짜의 스토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중간 중간 들어가는 70년대풍의 닭살 대사 또한 무척 거슬립니다. 인물들은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두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는 상남-나선생-상남-철수-상남-교장선생-상남-아이들 사이를 계속 오가지만, 카메라 밖의 시간은 아예 정지해 있습니다. 어떤 상상력도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보여지는 것이 전부이고, 꽤 긴 상영시간 동안 스토리의 진행은 하품이 날 정도밖에 진전되지 않습니다.

특히 최악의 캐릭터는 유선이 연기하는 나선생입니다. 이 역할은 스토리 진행(그나마)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되는 듯 합니다. 상남이 아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냉정하게 굴면 "아이들은 어쩌구요?", 상남이 화를 내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상남이 유난히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나선생을 보며 "이건 숫제 엄마구만"하고 빈정대면 보살같은 미소를 지으며 "전 그냥 이 아이들이 좋아요(네. 정말 2011년 한국 영화 최악의 대사로 꼽힐 만 합니다. 1960년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가면 "이제 그만해요!"하고 울부짖는 역할이죠.



그야말로 '전형성 100%'의, 뻔하디 뻔뻔뻔뻔뻔한 캐릭터입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심사위원이 공모작에서 발견하면 빨간 줄로 북북 그었을 것 같은 캐릭터죠. 이런 캐릭터이니 유선 아니라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 헬렌 미렌을 데려다 놔도 제대로 된 연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말 편집 과정에서 완벽하게 들어 내도 영화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대사량은 전체 출연진 가운데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는 건 이 영화의 성격을 제대로 말해 주는 요소입니다. 이런 쓸데 없는 대사와 감정 전개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정작 있어야 할 아이들과 상남의 관계나 아이들 서로간의 관계 같은 건 그냥 휙휙 넘어 갑니다. 본래 시나리오에도 없었는지, 아니면 찍어 놓고 다 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관객은 "여러분 대략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짐작하시죠? 네. 맞아요. 자, 그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수준의 내용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 결과 투수 역의 장기범이나 포수 역의 김혜성 등 열명의 선수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습니다. 김혜성의 러브라인이 잠시 눈에 띌 뿐, 최소한 각각의 아이들이 어떤 캐릭터인지 비쳐질 기회는 전혀 없죠. 그냥 '선수 1, 선수 2, 선수 3....'일 뿐입니다.



또 '명색이 야구 영화인데 야구 장면을 보여줘야지' 라는 강박관념도 높은 점수를 보기 힘듭니다. 세 차례의 야구 경기 장면이 나오는데, 첫 경기와 둘째 경기는 크게 무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만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세번째 경기는 아무리 봐도 너무 길고, 너무 산만합니다. 엄청나게 긴 시간에 걸쳐 그 많은 커트를 찍기 위해 고생했을 양팀 선수 역의 배우들과 스태프에겐 참 미안한 얘기지만, 대체 왜 이렇게 긴 경기 장면, 그것도 수없이 똑같은 시퀀스가 반복되는 장면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은 엄청나게 긴 반면, 야구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 봐도 엉성한 진행이 너무나 눈에 띕니다. 손톱이 갈라져 피를 흘리면서도, 정규 이닝에서만 120개 넘게 던지고, 연장전에 들어가 4이닝을 더 역투하는 투수.... 이 정도가 되면 난타를 당하건 말건 다른 선수 중 누군가를 마운드에 올려 놨어야 합니다. 게다가 연장 13회, 전광판을 보면 양팀의 안타 수는 25대27이더군요. 아무리 난타전을 치렀다지만 이건 좀 아니죠. 또 아무 맥락 없이 왜 명재가 SF볼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왜 상남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지 등등은 계속 영화의 구멍으로 남습니다.



뭣보다 '왜 봉황대기인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습니다. 봉황기는 한국 고교야구 대회 중 유일하게 지역 예선이 없는 대회죠. 다시 말해 성심학교로서는 (지역 예선을 통과할 수 없는 실력을 감안할 때) 유일하게 서울에 올라와 참여할 수 있는 전국대회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 또한 전혀 없습니다.

(더 지적하자면, 이들의 목표는 '전국대회 1승'이지만 봉황대기에서의 1승은 다른 대회 지역예선에서의 1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예선 없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면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전국대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굳이 '전국대회 1승'이라고 포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전국대회 1승'이 '지역 예선을 통과한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 한 1승'이란 의미라면 청룡기나 대통령배같은 다른 대회 이름을 댔어야죠.)



이 영화의 주역 가운데 유일하게 칭찬할만한 사람은 정재영 하나뿐입니다. 그조차도 영화 전반부에서는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짜증나는 캐릭터에 매달리지만, 이 영화를 대표하는 대사인 "정말 무서운 적은 우리를 동정하는 놈들이다!" 장면에서 정재영이라는 배우는 한껏 빛을 뿜습니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여럿 있겠지만, '글러브'에서 상남 역을 맡아 이 대사를 이런 분위기로 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역시 정재영일 겁니다. 그 밖에도 영화 전편을 통해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은 정재영뿐입니다.



이런 저런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영화의 완성도는 후하게 줘야 70점을 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는 겁니다. 너무나 뻔한 눈물 코드인데도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참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화를 '더 잘' 만들면 더 많은 눈물이 날지, 아니면 대략 이 정도의 완성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더 큰 것인지, 저는 아직 이런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대략 이 영화의 내용을 짐작하고, 이런 영화가 던져줄 수 있는 감정의 격동을 원하는 관객에게 '글러브'는 최적의 선택입니다(절대 비아냥거리는게 아닙니다. 정말 눈물이 납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어쩌면 그런 아쉬움은 애당초 지하철을 설계한 감독에게 왜 포르셰 스포츠카를 내놓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바보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바로 '글러브'입니다. 지하철에겐 지하철의 미덕이, 스포츠카에겐 스포츠카의 미덕이 있는 법이죠. 그리고 사람이 더 많이 탈 수 있는 쪽은 역시 지하철인지도.




P.S. 이 만화 수준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기대한 건 너무 과욕이었을까요. 그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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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년 사이 가장 영화를 덜 본 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가을 이후에는 극장 갈 새가 없을 정도여서 좀 힘들었습니다. 특히 '부당거래', '초능력자' 같은 기대작을 못 본 건 꽤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매년 꼽던 순위이니 한번 꼽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외로 연초에 본 영화들 가운데 괜찮은 작품들이 많더군요. 2011년의 첫 영화는 아무래도 잘못 고른 듯 합니다. '라스트 갓파더'... 이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어쨌든 1월이 가기 전에 얼른 이건 하나 정리해놓고 새해에 전념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황해

온 세상이 너무나 비정하고 악의에 가득 찬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을 빼면 완벽에 가까운 영화. 안 좋은 뒷얘기도 있지만 그건 영화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듯.





2. 아저씨

'원빈 사용법'을 숙지한 감독의 승리!




3. 인셉션

"토템이 계속 돌았는지 멈췄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코브가 더 이상 토템이 멈추는지 아닌지를 애타게 바라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놀런 -



4. 예언자

투옥은 사회와의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사회로의 입장이었다. 극장에 불이 켜지면 죄수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출감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묘한 영화.




5. 500일의 썸머

거의 모든 성인 남자들의 기억 속에 최소한 하나씩은 박혀 있는, 그 어느 떠꺼머리 시절에 만났던 '그지같은 망할 년'에 대한 탁월한 인류학 보고서. 음악까지 완벽하다.

특히 연애 문제에 고민을 겪고 있는 사회 초년생이나 20대 초반 분들에게 필람을 권합니다. 리뷰는 이쪽: http://fivecard.joins.com/675



6. 인 디 에어

나만을 위한 삶이란 정말 가능할까. '패밀리 맨'과 짝을 이룰만한 싱글남 연구의 결정판. 장거리 항공편의 기내 영화로 보면 효과 200%.


7. 의형제

부지런한 횟집 주인과 검신합일에 이른 주방장의 행복한 만남


8. 전우치

다소 무리일 수도 있는 자신감마저도 만족스러운.




9. 아이언맨 2

'왜 영웅은 오만 풍상을 다 겪고, 개고생을 한 뒤, 자기편이 다 죽고 나서야 비로소 영웅으로 거듭나야 하는가?' 한국인의 이런 불만을 싹 해소해 준 상쾌 영웅의 후속편. '다크 나이트'고 뭐고 한국에선 '아이언맨'이 최고인 이유를 다시 보여준 영화.


10. 소셜 네트워크

비록 페이스북이 뭔지는 모르더라도 자녀를 천재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학부형들이 보면 좋을 영화. '애가 똑똑해지면 다가 아니에요.'

경합작으로는 '하녀', '시라노 연애조작단', '방자전' '드래곤 길들이기' 팀 버튼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꼽을 수 있겠네요. 생각해보니 2010년의 한국 영화는 예년에 비해 참 풍성했던 듯 합니다. 반면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들은 매우 실망스럽더군요.




그리고 나중에라도 권하고 싶지 않은 2010년의 영화들



1. 악마를 보았다

특이하게 한번 해 보겠다는 의욕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까운 영화



2. 이끼

분위기는 죽이고 원작 줄거리만 살린 평작



3. 슈렉 포에버

아무리 좋은 시리즈도 언젠가는 아이디어가 고갈된다는 교훈?


4. 타이탄

신화도, 액션도, 멜로도, 돈값도 모두 놓친 특이한 영화


5. 페르시아의 왕자

...그냥 게임이나 할 걸 그랬어. 그것도 그냥 AT 시절에 나온 걸로.


아울러 2010년의 가장 황당했던 영화는 바로 이 영화.


'익스펜더블'입니다. 물론 제가 때려부수는 액션을 싫어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10편의 영화에 꼽지는 않았지만, 이런 영화도 새해엔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속편이 나오긴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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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낚시라고 생각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영국 날짜로 1월2일 암으로 서거한 피트 포슬스웨이트(Pete Postlethwaite, 향년 64세)가 세계 최고의 연기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누구?" 하고 반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명을 하자면, 그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배우(the best actor in the world)'라고 부른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사는 원래 그렇게 기억되는 겁니다. 아이쉬와라 라이 역시 '세계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게 된 건 줄리아 로버츠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인 것이죠.

그리고 그의 이름(네. 매우 발음하기 힘들고, 매우 깁니다)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분들은 꽤 있겠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다면 아주 작은 역이라도 그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것이 세계 최고 배우의 위력이겠죠.


그가 어떻게 젊은 날을 보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젊어서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릴 외모는 절대 아니었고, 40대 후반에 들어서야 세계적인 명성을 갖기 시작한 배우입니다.

그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이 당연히 짐 셰리단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에일리언3(1992)'가 1년 정도 빠릅니다. '에일리언3'에서도 그는 죄수들의 행성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은 죄수 데이비드로 출연했습니다.

이후 그가 출연한 작품들 내내 비슷한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대개 머리가 좋고 인간미가 넘치는 남자 역이죠.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따스한 눈매를 가진 덕분입니다.



어쨌든 47세때 '아버지의 이름으로'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이후 포슬스웨이트는 승승장구합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굳이 별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 아일랜드 분쟁의 격동에 휘말린 부자를 연기한 포슬스웨이트는 오히려 주인공인 루이스를 능가하는 존재감을 과시했죠. 사실은 11년 차이밖에 안 나는 부자간이었지만(당시 포슬스웨이트는 47세, 루이스는 36세), 타고난 노안 덕분에(?) 실감나는 연기가 펼쳐졌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작품, 감독, 남우주연 등 아카데미 핵심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결과는 참담합니다.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해는 '쉰들러 리스트'의 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우조연상은 좀 아리까리합니다.




이 정도 후보라면 '쉰들러 리스트'에서 눈부신 이상성격 연기를 펼친 레이프 파인즈와 포슬스웨이트가 경합을 펼쳐야 정상일 듯 한데 갑자기 웬 토미 리 존스...

'도망자'도 물론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전혀 오스카 타입의 영화가 아니었던 터라 이건 뭥미 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존 말코비치('사선에서')가 같이 후보에 오른 걸 보면 이 해의 트렌드가 좀 희한했구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후 포슬스웨이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펼쳐집니다. 1994년은 미리 계약해 놓은 드라마에 주력했다면(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대박이 날 줄은 몰랐겠죠^^), 1995년부터 세계적인 감독들과 작품 활동이 이어집니다.

1995년의 대표작은 바로 '유주얼 서스펙트'. 여기서 포슬스웨이트는 커피잔 역으로 나오죠(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실수 없을 겁니다 ㅋ). 전혀 일본 사람같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만, 서구인들이 보기엔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변호사 고바야시라니...


현명하고 선의로 가득한 중년 남자 역이 어울리는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 변호사 고바야시는 말만 공손한 악역입니다. 머리에 총이 겨눠진 상황에서 "미스터 키튼, 지금 저를 쏘시면 심각한 실수를 하시게 됩니다"라고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항변하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거죠.^^)




그 다음은 1996년작 '로미오+줄리엣'.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를 이어 주는 로렌스 신부 역입니다. 물론 전형적인 포슬스웨이트 타입의 연기지만 이 신부는 좀 괴짜죠. 등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문신(아래 사진)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온갖 인기 스타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정통 셰익스피어극 배우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도 받았죠.




이해 '브래스드 오프'같은 작은 영화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1997년 스필버그와 두 편의 프로젝트를 함께 합니다. 바로 '아미스타드'와 '주라기공원 2, 잃어버린 세계'죠. 특히 후자에서는 냉혹한 전문 사냥꾼으로 변신, 또 한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1993년에서 1997년 사이 이런 쟁쟁한 경력과 탄탄한 실력을 보여준 포슬스웨이트는 희한하게도 할리우드에서 실종됩니다. 은둔형 배우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그인 터라 갑작스런 세계적인 주목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혹은 매니저와 싸우고 업계에서 매장됐는지도...^^).

그 뒤의 경력은 거의 TV 수준에 머물고, 유명 감독들과도 '작은 영화'에 주력한 경향이 짙습니다. 세계 수준의 주목을 받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지난해의 '인셉션'은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작품이라 반갑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의 운명을 예견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줍니다. 병상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리스 피셔 회장 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향년 64세,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그만한 배우는 세상에 많다고 말할 사람도 많겠지만, 그가 짧은 할리우드 나들이 기간 동안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라는 말이 무리가 아닌 배우였죠. 짧은 글로 고인을 추억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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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올해를 대표할만한, 아니, 최근 3년간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긴박감 넘치는 연출, 배우들의 연기, 구멍 하나 없는 스토리까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복선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몇 분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해설 버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첫번째 느낌은 따로 리뷰로 정리해 뒀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황해'에 대해 혹시라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들이 있는 분들을 위한 버전입니다.



** 다시 한번 경고,

'황해'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리뷰는 http://fivecard.joins.com/897 이쪽입니다.

이번 글은 영화를 보신 분이나, 절대 안 보실 분들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왜 김승현(유도선수 출신의 교수/사업가)을 죽이러 간 사람이 셋이었나

가장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꼼꼼하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혼동할 이유가 없겠지만, 김승현을 죽이려고 청부한 사람이 둘이었던 거죠. 한 사람은 김태원 사장이었던 거고, 또 하나는 모 저축은행의 김정환 과장이었던 겁니다.

버스 회사 사장이며 조폭 세력을 거느린 김태원 사장은 자신의 심복인 최성남을 통해 김승현의 운전기사(겸 보디가드)를 포섭했고, 그는 어디선가 두 명의 하수인을 구해 김승현을 살해하게 한 겁니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김승현과 싸우다 건물 밖으로 던져졌고, 나머지 한 사람은 김승현에게 죽음을 당했든가, 일을 깔끔히 마무리하려는 운전기사에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김구남이 나타났고, 김구남이 살아서 현장을 빠져나가자 김태원은 당연히 운전기사가 고용한 하수인이 3명일 것으로 생각했고, 그가 살아나면 자신이 꼬리를 밟힐 여지가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대혼란의 시작이죠.


2. 김태원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신 분이 가끔 있는 듯 합니다. 김태원은 면정환에게 치명상을 입은 뒤 김구남이 현장에 왔을 때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그놈이 내 여자를 건드렸어, 그놈이 내 여자를..."이라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립니다.

그 앞 장면에서 분당에 있는 내연녀의 집에 간 김태원은 여자에게 "너 나한테 뭐 할말 없냐?"라고 씁쓸하게 물어봅니다. 그리고 김태원이 그 집을 나선 뒤, 다른 차에서 내린 남자들이 내연녀의 집으로 향하죠.

김승현이 김태원의 내연녀와 정분이 났고, 그 사실을 안 김태원이 김승현에게 복수를 한 겁니다. 흔히 있는 조폭간의 세력이나 돈 다툼이 아니라, 바로 '여자' 때문이었던 거죠.



3. 김정환은 왜 김승현을 죽이려 했나

마지막 단서인 김정환을 찾아간 김구남은 죽은 김승현의 아내가 김정환과 은행 직원과 고객으로서 마주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김정환 또한 김구남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죠.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안 순간 김구남은 허탈감에 빠집니다.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고 김정환이 면정환에게 청부(김정환의 단골 웨이터를 통해서)를 했다면 이유는 한가지. 김승현의 아내와 김정환이 불륜에 빠져 있었을 거란 답이 나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도달한 김구남은 그 며칠 전 김승현의 아내에게 "누가 시켰는지 찾아내서 내가 꼭 죽여 줄게"라고 말한 게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또 그 불륜커플을 보다가 구남은 잠시 아내(라고 생각한)의 유골함을 바라보죠. 자신의 불륜 의심이 아내를 죽게 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을 수 있습니다.


4. 김정환은 진짜 청부를 했나?

일각에서 "세상에 살인 청부하면서 명함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깁니다. 앞글에서 '살인청부란 왜 어려운가'에 대해 좀 설명을 했는데, 세상에 명함을 주고 사람을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의 김정환은 너무 쉽게 생각한 겁니다. 몇천만원 정도의 돈만 입금하고, 버튼만 누르면 자기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김승현이라는 인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 거죠. 자신은 손끝 하나 더럽히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전자 오락 게임 하듯 사람 하나 죽여달라고 청부한 김정환 때문에 수십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는 대 참사가 벌어집니다. 나 하나 쯤 아무 상관 없을 거리고 생각한 무분별한 행동이 엄청난 짓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겠다는 것이 바로 이 김정환 캐릭터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5. 김구남의 아내는 돌아왔나?

맨 마지막 장면이 김구남의 상상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이건 감독의 의도가 뭐건 간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상상인지 아닌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죠. 일단 시체는 확인한 대행업자(심부름센터?)가 "이거 영 모르겠네"라고 투덜대는 데서 구남의 아내라고 단정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일각에선 그렇게까지 소식이 없던 아내가 갑자기 그렇게 돌아올리가 있느냐는 지적을 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아내가 돌아와야 구남의 헛된 죽음이라는 주제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돌아오는게 당연한 결말이라고 합니다. 뭐 후자 쪽이 더 당연한 얘기라는데 동의하고, 아울러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구남의 아내와 정분이 났던 수산업자는 구남에게 된통 혼쭐이 나고, 구남의 아내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 아내는 서울 생활에 진력이 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가려고 마음먹을 수 있겠죠. 결과적으로 구남이 한국에서 간 것 중 유일한 결말은 아내를 돌아오게 한 것이었던 셈입니다. 자신이 돌아올수 있었건 말건.

(구남이 보던 뉴스에서 "...아울러 연변 출신 피살 여성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찾고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문제의 수산업자가 구남의 아내를 이미 죽인 상태에서 구남을 만났다면, 혹시 구남이 먹은 양꼬치가...하는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수산업자가 갑자기 고기를 납품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너무 지나친 망상.)



6. 대체 두번째 청부업자들은 어떻게 김구남을 찾아냈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사건의 흐름을 잠시 되살려 봅니다. 구남은 살인 현장이 된 건물 위 살림집(펜트하우스?)에 숨어 있다가 집에 온 피살자 김승현의 아내를 만납니다. 놀라는 여자에게 구남은 "...남편 죽이게 시킨 사람은 내가 반드시 죽여 주겠으니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남은 운전기사의 집을 통해 최성남을 찾아내고, 최성남의 집에 찾아가 단서를 찾아냅니다. 그러는 사이 김태원의 부하들은 차이나타운에서 김정환의 사주를 받은 웨이터를 찾아 데려옵니다. 이 웨이터로부터 '김정환'이란 이름이 박힌 명함을 본 김태원은 "이놈은 또 누구야? 최성남이 어디 갔어? 최성남이 데려와!"라고 소리치죠.

장면 전환. 최성남의 집을 빠져나가려던 구남의 차를 다른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이받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족 범인들은 의식을 잃은 구남을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죠. (잠시 후 이 범인들은 "너 죽이라고 시킨 놈 명함이 차 안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건 김정환의 명함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입니다. 이 조선족 범인들은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구남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구남이 최성남을 찾아올 줄 알고 최성남의 집 앞에 매복하고 있다가 구남을 찾아내 공격할 수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김승현의 아내가 정보를 줬다는 것이지만, 이건 김승현의 아내가 운전기사에서 최성남, 김태원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죠. 더구나 그렇다 쳐도 구남에게는 일부러 운전기사 선까지만 가르쳐 주고, 조선족 청부살인 2인조에게는 최성남의 존재를 가르쳐 줘서 속도 조절을 한 뒤에 그 자리에서 딱 마주치게 한다는 것은 신의 솜씨입니다. 인간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혹시 영화의 구멍? ㅋ )

              (김태원의 정부 역으로 출연한 신인 배우 이엘입니다. 늘씬하더군요.)

7. 대체 왜 모든 경우에 여자가 문제?

그러게 말입니다. 살인청부 1도 여자 때문, 살인청부 2도 여자 때문, 청부 받아서 살인하러 온 사람도 여자 때문.

...대체 여자랑 무슨 원수가... (전 이게 제일 궁금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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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천재의 등장에 눈을 크게 떴고, 두번째 작품인 '황해'의 개봉이 늦어지자 조심스럽게 소포모어 징크스를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황해'의 봉인이 뜯기자 세상은 곧바로 찬사와 감탄으로 가득찼습니다.

'황해'같은 영화가 예전에 없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만치 치밀하고 집요하게, 빈틈 없는 플롯으로 세 시간을 밀어붙인 작품이 또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신과 충돌 신 등의 완성도는 입이 떡 벌어집니다.

한마디로 2010년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상태에서 올해 최고의 역작이 나왔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세 시간이 이렇게 짧은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온 세상이 악의로 가득차고, 누군가 뒤에서 등에 칼을 꽂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불끈 불끈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황해'는 연변 어딘가에서 택시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구남(하정우)이 그날 번 몇푼 안 되는 돈을 마작으로 다 날리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국에 일하러 간 아내는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은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죠. 그런 가운데 사채업자들의 혹독한 빚독촉까지 받는 절망적인 나날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구남은 연변의 보스 면사장(김윤석)으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습니다. "한국에 가서 사람 하나 죽이고 오면 빚 탕감을 해 주겠다"는 겁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제의를 받아들인 구남. 천신만고 끝에 밀입국에 성공하지만 달랑 주소와 이름 하나 받아들고 한국에 온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열흘. 그 사이에 아내의 행방도 찾고 주어진 일도 마무리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행 단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황해'는 오락 영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만만찮습니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고 왕래가 가능해진 뒤, 한국인들에게 '연변(옌볜) 동포'란 '언젠가 만나게 될 북한 동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나면서 연변과 조선족 자치구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저 이제는 싸고 말이 통하는 노동력의 공급처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면서 조선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하고, 무시와 모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때로 추격이 힘든 범죄자 집단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분명히 이 사회의 한 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조선족 아줌마' 없이 돌아가는 식당이 없을 지경인데도 온 세상이 그냥 외면하고 싶은 그런 존재들로 남아 있습니다.

'황해'는 단순히 치고 때리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과연 '조선족'이라는 집단이, 한국에 와 있고, 약간 이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애매한 이 사람들은 대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조선족 관련 다큐멘터리나 시사월간지 기획 특집들 속에 이름과 나이로 표시되는 사람들이, 실제 숨쉬고 생각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김윤석, 하정우의 연기와 나홍진 감독의 연출력, 스토리 진행력은 한마디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위에서 거론했던 자동차 추격 신에서 순간 순간 뉴스 화면처럼 보이는 영상(아마도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다 보니 노출 차이가 꽤 있었던 듯 합니다)이 삽입된 것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거기까지 통제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문제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 문제 제기를 한다면 하정우의 캐릭터에는 조금 부언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 넘어와 람보가 되는 하정우가 대체 왜 그렇게 잘 싸우고 임기응변이 뛰어난지에 대해서 너무 설명이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깨진 결혼사진에서 하정우가 입고 있는 옷이 군복이 아니었나(확실치 않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중국군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입니다. (아니면 연변 남자들에게 그 정도는 기본일까요? ㅋ )

'추적자'와 '황해'를 통해 볼 때 나홍진 감독의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여성관'입니다. '추적자'에서의 여성이란 학대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수난의 대상인 반면 '황해'에서의 여성들은 남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남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존재들입니다(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실 겁니다). 과연 세번째 작품 쯤에는 '긍정적인 여성'이 등장할 지도 궁금합니다.

화면 전체가 피칠갑이 되는 영화지만 '악마를 보았다'에 비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폭력의 수준으로 본다면 '올드 보이'급?). 아무튼 이제 남은 건 과연 '황해'가 어느 정도 관객을 동원하는가를 넘어, '조선족'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데 대한 궁금증입니다.


P.S. 아울러 빛을 발하는 것은 나감독의 블랙 유머감각. 구남이 개고생을 하며 한국으로 타고 오는 배 이름이 '행복호'인 것을 비롯해 어두운 화면 여기 저기에 유머 코드가 숨어 있습니다. 저는 면정환이 "어, 그러고 보니 최이사가 안 보이네?"라고 말할 때에도 빵 터졌습니다(물론 뒤의 내용을 오해했기 때문이지만...).

P.S.2. 그런데 이 영화처럼 청부살인이란 쉬운 일일까요? 평범한 회사원도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이는 세상일까요? 조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람을 사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이 조폭이라거나, 범죄 집단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구직자(?)도 꽤 있을 것이고, '황해'에서 보듯 조선족을 쓰거나 '달콤한 인생'에서 보듯 다른 동남아 근로자를 고용해 일을 치르거나 등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그냥 평범한 사회인이라면,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자, 우선 어디서 '사람을 죽여 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뭐 세상이 편해졌으니 그런 웹사이트가 있다고 가정하죠. 홈페이지를 통해 당신은 KILLER-1 과 채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격을 흥정한 뒤에, 죽일 사람에 대한 기초 정보를 주고, 거래를 마칩니다.

간단할 것 같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최소 수백만원 단위의 상당한 거금(뭐 사람 하나 죽여 주는데 30만원, 50만원 한다면 그건 더 믿을 수 없겠죠)을 KILLER-1이 시키는대로 입금하는데 그때부터 KILLER-1이 감감소식이 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분명 상당히 고가의 상품일텐데, 대체 뭘 믿고 돈을 주겠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돈만 갖고 튀어 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KILLER-1을 직접 만나 그가 정말 사람을 죽일 능력과 그걸 사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 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요? 사실 이것 역시 매우 위험합니다. 만약 만날 사람이 진짜 킬러라면, 그는 귀찮게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을 의뢰인을 등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나중에 경찰에 가게 되더라도 대답이 궁색합니다. '평소 알지도 못하던 그 위험한 사람을 왜 으슥한 데서 만났어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까요? '사람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하려구요'?^^)

그 킬러에게 의뢰인인 당신이 노출되면 될수록 반대로 협박을 받을 가능성만 커집니다. 반드시 경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회사, 혹은 그 죽여달라고 청부한 목표 인물에게 '아무개가 돈을 줄테니 당신을 죽여 달라고 하더라'고 공개해 버리겠다는 협박은 꽤 유효합니다.

따라서, 살인청부라는 것은, 최소한 그 청부자에게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면 너부터 죽을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협박이 가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살인은 물론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살인 용역을 발주하는 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히나 '황해'에 나오듯, 어설프게 명함 한장 주고 시킬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이런 얘기는 '황해'의 완성도와는 무관한 얘깁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바로 영화의 의도라고 할 수 있겠죠.


P.S.3.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영화에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이 글은 스포일러 프리 버전입니다. 스포일러 만땅 버전, "황해의 모든 것" 편은 곧 따로 공개하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러분의 추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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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눈이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겨울 하면 눈이죠.^^

물론 제멋대로 고른 리스트입니다. '눈이 소재인 영화 10선'도 아니고, '눈이 소재인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 10선'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눈발이 날릴 때면 그냥 저 혼자 생각나는 영화 10편일 뿐입니다. 대략 1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이긴 하지만,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가 크게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 놓고 시작해도 반드시 왜 그 영화가 있냐, 이 영화는 왜 없냐, 뭐 리스트가 이따위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직접 리스트를 꼽으시라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을 듯 합니다. (네. 많이 겪어 봐서 하는 얘깁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좀 예상을 뒤엎어 보고도 싶지만, 1위는 너무나 뻔한 영화 -


네. 오겡키데스카 맞습니다. 바로 그 영화. 다른 영화가 떠오른다 해도 솔직히 이 영화보다 먼저 떠오르지는 않더군요.

이 영화와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때문에 저 먼 홋카이도의 오타루라는 도시가 관광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물론 다녀오고 나서 만족하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뭐 이런걸 보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 명소로 꼽히는 오타로 운하, 오타루 유리 박물관 등등은 뭐 그냥 예쁜 동네 레벨.

개인적으로 홋카이도의 겨울 관광은 눈, 온천, 식도락 외에는 전부 무시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눈이 오면 러브레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2번은 좀 튑니다. 국내 제목은 '존 카펜터의 괴물'. 영어 제목 'The Thing'이라야 좀 더 아실 분이 늘어나려나요.

북극 기지에 갑자기 개 한마리가 나타나고, 그 개의 뒤를 쫓아 미친듯이 총을 쏴 대는 사람이 보입니다. 어찌 어찌 해서 북극 기지에서 그 개를 키우게 되는데, 그 뒤로 자꾸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개 안에는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 숨어 있었던 거죠.

눈과 얼음으로 고립된 기지. 그 기지 안에서 필사적으로 외계 괴물과 싸우는 인간들. 특히 누가 괴물이고 누가 진짜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지금 보면 특수효과가 좀 유치할 지 모르겠지만, 당대에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1951년작인 '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의 리메이크라고 해도 좋을 듯 한데 리메이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더군요. 물론 줄거리는 흡사하지만 내용은 훨씬 정교합니다.

구해서 보실 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으면 보셔도 좋을 듯. 재미납니다.




하얀 자작나무 숲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신화처럼 떠받드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무튼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흡혈귀 소녀의 종이면서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던, 그리 유능하지는 못한 옆집 아저씨의 운명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안 보신 분은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다음 세 편의 영화는 좀 얼굴을 찌푸리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1년간 산촌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도 하고, 극중 할머니 역의 여배우는 자해 장면을 위해 일부러 돌에 이를 부딪혀 부러뜨리는 연기 아닌 연기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쯤되면 열정을 넘어 광기의 수준이죠.

이런 부분에서는 참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영화입니다만, 마지막 시퀀스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고려장 장면은 참 가슴이 미어지는 명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생각하고 나면 떠오르는 영화 두 편이 있습니다.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년의 '명화극장'에서는 '바렌'이란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입니다. 원제는 'The Savage Innocents', 1960년작입니다. 앤서니 퀸이 에스키모 청년 이누크 역을 맡았고 일본 여배우 타니 요코가 그 아내, 그리고 지성파 배우 피터 오툴이 이들을 이해하는 문명인 역으로 등장합니다.

'바렌'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황무지를 뜻하는 barren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쩌다 저런 '한글 제목'이 붙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주인공 이누크는 빙원의 황무지에서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가끔씩 사냥한 바다표범 가죽 등을 가져가 백인들이 만든 교환 상점에서 쓸만한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 이들에겐 유일한 문명과의 접촉 기회입니다.

그런 이누크가 어쩌다 살인 혐의를 쓰게 되고, 사법관인 피터 오툴은 이누크를 체포하기 위해 빙원을 건너 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고, 오툴은 오히려 이누크 부부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됩니다.

평범한 감독이 만들었다면 매우 서정적이고 슬픈, 문명이 순수한 야만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 없는 반항'의 니콜라스 레이 감독은 이 영화를 문명과 야만에 대한, 놀랍도록 뛰어난 통찰이 담긴 코믹 터치의 걸작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길게 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뭐 아무튼 에스키모 영화이니 당연히 눈과 얼음이 넘쳐 납니다.^^)



그 세번째 영화는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 입니다. 1980년대 그래도 영화에 대해 한마디 하려면 반드시 봐야 했던 영화죠. 한때 '매춘'의 개봉에 즈음한 외국 문화의 일제 해금기에 어쩌다 이 영화도 개봉관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 전편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 남편과 부정을 저지른 아내, 그리고 아들이 눈 덮인 들판을 건너는 에피소드는 정말 집중하고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관객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주는 설득력은 앞부분의 지루함을 충분히 잊게 할만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시작된 세 편의 자유연상은 여기까지.


눈 덮인 환경과 인간의 비극을 그린 작품들을 건너 다시 눈의 서정이 강조된 작품입니다. 바로 '에드워드 가위손'.

뭐 설명이 필요 없겠죠.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에드워드가 만들어 내는 인공 눈(?)을 맞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위노나 라이더의 청순한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네. 솔직히 이 영화가 생각났지만 너무 뻔해 보일까봐 참고 있었던 거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프란시스 레이의 그 유명한 음악과 함께, 이 영화의 눈 장난 장면은 그야말로 클래식이 됐죠.

너무 젊어서 제목을 모르는 분들에게 서비스하자면 제목은 '러브 스토리'입니다. 네. 정말로 영화 제목이 '러브 스토리'라니까요.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집 여자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갖은 고생 끝에 남자가 변호사가 되자 여자가 백혈병으로 죽는 이야기입니다.

네. 정말 그런 뻔한 영화가 있었다니까요. 거 참... ;;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안 보신 분이 의외로 많은 영화입니다. 코엔 형제의 재능이 발휘된 수많은 걸작 중 하나(물론 모든 영화가 걸작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죠. 저는 이 영화와 '밀러스 크로싱'을 최고로 칩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눈 덮인 벌판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영화. '파고' 입니다.

 

이 영화에서 대체 눈이 뭐 중요하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눈에 대한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이 영화가 떠오르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이 영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1편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였지만 공간이 LA였기 때문에 눈발은 날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편은 그야말로 눈밭에서 개고생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분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이 하드 2'는 1편 못잖게 재미있었던 2편의 예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제아무리 항공유라고 해도, 불이 번지는 속도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속도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느리다는 과학적인 상식 따위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꺼 두시는게 좋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효율이 높아지듯 이미 열 편은 찼지만 왠지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 '쿨 러닝'. 이 영화에서 언제 눈 내리는 장면이 있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이 선수들이 밟고 있는 건 모두 눈 맞습니다.

물론 그런 기준이라면 '국가대표'도 꼽고 싶어지는데... 아무튼 패스.


아울러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만, 이 장면에서 날리는 것은 보시다시피 눈이 아니라 종이 테이프입니다. 그럼 대체 이 영화에서 눈이 나오는 장면은 어디일까요? 스케치 북 넘기는 고백 장면의 뒷 배경이 눈 덮인 길이었던가...?

기억이 안 나서 패스.



개인적으로는 위 영화, '프랑켄슈타인, 더 트루 스토리'도 꼽고 싶었지만 너무 마이너해서 빼기로 했습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이었던 레너드 휘팅(화이팅?)이 프랑켄슈타인박사 역으로 나오는 TV판 영화입니다.

1973년작으로 역시 오래 전 베타 VTR과 TV 방영을 통해서만 봤지만 지금까지 본 프랑켄슈타인 영화 중에서는 단연 최고입니다. TV 영화라지만 본드걸 출신인 제인 세이무어, 제임스 메이슨, 데이비드 맥컬럼 등 호화 출연진이 눈길을 끌죠.

이 영화에서도 박사에 의해 창조된 '아담'이 처음 자살을 기도하며 눈밭 위에 뿌리는 검붉은 피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만, 패스.



좀 로컬한 퀴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영화가 생각나시나요? 하긴 이건 퀴즈라기보다는 공감도 테스트 같군요.^^ 힌트는...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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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대략 두개의 키워드로 정리 가능합니다. 바로 '짝사랑'과 '야구'입니다. 후자에는 'YMCA 야구단'과 '스카우트', 그리고 대본을 맡았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전자에는 '광식이 동생 광태'와 이번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들어갈 겁니다. (묘하게도 전자는 흥행 대박을 냈거나 대박이 예상되는 반면, 후자의 야구 소재 영화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미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드러났듯, 김현석 감독은 미묘한 연애심리와 그 예측불가능성을 묘하게 짚어내는 데에는 정말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이번 '시라노'는 '광식이 동생 광태'를 뛰어넘어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를 다시 쓸만한 완성도를 과시하고 있더군요. 더구나, 올 연초부터 이어진 아바타 열풍까지 이 영화의 앞길에 레드 카펫을 깔아 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뜨거운 형제들'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연극 연출을 하던 병훈(엄태웅)은 자금 마련을 위해 '시라노-연애조작단'이라는 회사를 차려 놓고 연애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을 다양한 첨단 기술을 이용해 맺어 주는 사업을 벌입니다. 사업은 날로 번창해가는데 어느날 펀드매니저 상용(최다니엘)이 찾아와 희중(이민정)과 자신을 연결해 달라는 청탁을 해 옵니다. 좋은 조건의 고객이지만 병훈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입니다. 희중이 유학시절 자신의 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진행은 제목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만, 이 영화와 원작이랄 수 있는 희곡 '시라노 드 벨주락'은 사실 어찌 보면 비슷하고 어찌 보면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극중에서도 충분히 설명되듯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벨주락 Cyrano de Bergerac 은 최고의 글재주와 검술 실력을 갖췄지만, 우스꽝스러운 코로 인한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록산느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시라노는 어찌 어찌 하다가 잘생긴 부하인 크리스티앙이 록산느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자신의 글재주를 이용합니다. 연애편지 대필에다 그녀를 만나 읊어 줄 즉흥시까지 써 주는 거죠. 이렇게 해서 크리스티앙과 록산느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으로 시라노는 대리 만족을 합니다.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에서는 그래도 시라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집니다. 크리스티앙이 죽은 뒤, 혼자 살고 있는 록산느에게 중상을 입고 찾아간 시라노는 어둠 속에서 크리스티앙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외워 보이죠. 그제서야 그동안 모든 편지를 쓴 것이 시라노란 것을 알게 된 록산느는 그녀가 시라노 또한 사랑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이 고백을 마지막 위안으로 삼아 시라노는 세상을 등집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맺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은 비슷합니다. 비록 우스꽝스런 외모는 아니지만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할 상황이라는 게 포인트죠.



영화 '시라노'는 전개며 예상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고비 고비마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탄탄한 대본은 이 영화가 가장 자랑할만한 강점입니다. 특히 배우들이 영화의 진행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영화에서, 이 정도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든 대사가 입에 붙은 듯 연기하는 모습을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정말 놀랄만한 호연을 보여주는 배우로는 최다니엘을 반드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과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나이답지 않은 연기적응력을 보였던 최다니엘은 이 영화에서 최상의 캐릭터 몰입력을 보여줍니다. 한국 영화/드라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의 탄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이하의 내용은 영화 내용과는 사실 별 상관이 없습니다. 뭐 스포일러성은 아니니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영화를 보신 뒤에 읽어보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시라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은 기술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기술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에 불과합니다.
영화 '시라노'에 나오는 연애조작단이 하는 일은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랑의 기술'을 다른 데서 가져올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극중에서 최다니엘이 연기하는 상용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잘 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제가 못하는 연애는 아웃소싱하자는 거죠. 이러면 정말 효율이 높아지지 않겠어요?" 하지만 과연 연애라는 것이 '아웃소싱'한다고 해서 정말 시간을 잡아먹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지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사람이 어떤 음식, 어떤 음악,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를 알아내고, 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팁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하루 종일 생각나지 않는다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때에도 모니터에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이뤄져봐야 말짱 꽝'인 사랑일 뿐입니다. 영화의 후반, 최다니엘이 크리스티앙과 시라노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이런 말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는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키스 한번 정도를 얻어내거나, 하룻밤 정도 같이 잘 수 있는 방법도 아마 수없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는 거기서 끝난다는겁니다. 연주하지도 않는 첼로를 가지고 다닌다거나, 별 관심도 없는 스쿠터에 대해 아는 척 한다거나, 누가 만들어 준 요리로 정말 요리에 재능있는 척 하거나, 누가 대신 써 준 편지로 사랑을 고백한다거나 하는 건 누가 녹음해 준 노래를 자기가 부른 척 하는 거나 별반 차이 없는 짓들입니다. 이런 '기술'의 마력은 그 '기술'이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 되는 순간 훅 날아가 버릴 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 '기술'을 기술로 끝내지 않고, 자기의 내재된 속성으로 바꿔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전 물가에도 가지 않던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수영 선수가 되는 일도 있고, 갑자기 섹소폰 연주의 대가가 되기도 합니다. 평생 티셔츠만 입던 사람이 패셔니스타가 되기도 하죠. 이런 '자기화'의 노력은 정말 높이 평가받을 만 합니다.

영화 '시라노'의 앞부분은 이런 '기술'이 사랑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이게 살짝 포장해 놓습니다. 하지만 뒷부분에선 결국 기술은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해 줍니다. 사실 아바타가 진심으로 노력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뜨거운 형제들'만 열심히 본 사람도 알만 하죠.



세상이 아무리 얄팍해졌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습니다. 결국 연애의 성패는 사람1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사람2에게 알리는 데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2가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도 거부하는지, 아니면 진심임을 알고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지에 있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심'을 전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이 생각보다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2가 자기를 향해 던져진 사람1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면서도 뿌리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2 들은 양심의 가책을 피하기 위해 그게 진심이라는 걸 모르는 척 합니다(심지어 그 스스로에게도 모른다고 우기죠). 안타깝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 전달된 진심이 상대에게 승인을 받고, 그 자신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그 '진심'이 사실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을 때 비로소 '사랑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영화 '시라노'는 그런 사실을 꽤 정확하게(때로는 암묵적으로 - 이를테면 이 영화에는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남자에게 구애하는 방법' 같은 건 나오지 않습니다)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저는 이 영화의 대본을 올해 한국 영화 최고의 대본으로 꼽아야 할 듯 합니다.

결론: 이번 추석 연휴 영화 중 '무적자' '아리에티' '퀴즈왕' '시라노'를 본 결과, 최우선순위의 추천작은 역시 '시라노'입니다. 이런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그 완성도는 충분히 인정하실 걸로 믿습니다.

아울러 이 배우가 나온다는 점도 충분한 흥행 포인트죠.^^



P.S. 그런데 대체 이 정도의 장비와 인력, 소품을 운영하려면 대략 천만원대는 받아야 운영이 가능할 듯 한데, 과연 이 정도의 돈을 들여 '사랑을 성취'하려는 사람의 시장이 그렇게 클까요? (뭐 어차피 그것부터 판타지라면...^^)

P.S.2. 희중(이민정)은 병훈(엄태웅)이 "파리에 있을때 오르세 박물관도 못 가봤다"고 하자 "오빠는 루브르도 30분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이잖아.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 한번, 다비드상 앞에서 사진 한번 찍고..."라고(아주 정확하진 않습니다) 합니다만, 이건 좀 그렇습니다. 저 '다비드상'이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말하는 거라면(뭐 다른 군소 다비드상은 있을 수 있겠죠), 그건 루브르가 아니라 피렌체의 아카데미 갤러리에 있죠. 물론 화가 이름인 다비드를 말하는 거라고 우긴다면 별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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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극장에 가서 표값을 볼 때마다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꽤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일단 극장에 걸리면 모두 같은 값입니다. 1억달러를 들여 찍은 영화건, 1억원을 들여 찍은 영화건 관객은 똑같은 돈을 내고 보게 됩니다. 

이런 환경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싼 영화건 비싼 영화건 똑같은 가격이 매겨진다면 비싼 영화 쪽이 손해일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영화가 8000원 받을 때, 대작 영화는 한 10000원이나 12000원 정도 받아서 더 빨리 자본 회수를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이런 시스템은 작은 영화 쪽에 훨씬 더 손해입니다.



티켓 가격이 고정되어 있다면, 관객의 입장에선 기왕이면 좀 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영화를 봐야 '본전을 찾는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실망스럽더라도 대규모 전투신이나 유명 스타의 소문난 베드신, 엄청난 CG등 '볼거리'라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인지상정이죠. 물론 영화를 보면 볼수록, 제작비와 만족도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만 말입니다.

'죽이고 싶은'은 누가 봐도 단촐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단 두명. 전체 출연진을 다 합해 봐야 열명 남짓입니다. 배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두신을 제외하면 병원 주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온 몸에 마비가 진행중인 환자 김민호(천호진)는 옆자리에 새로 온 환자 박상업(유해진)을 보고 평생 잊지 못하던 원수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뇌손상인 박상업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김민호는 원수가 옆에 있건만 일어서서 박상업의 옆까지 걸어갈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박상업이 조금씩 기억을 회복해 가면서, 상황은 또다시 일변합니다.

누가 가해자인지를 가리는 게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기 때문에 흔히 이 영화는 스릴러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액션 스릴러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두 주인공이 모두 침대에 누워 있지만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액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대체 어떻게 액션이 가능하다는 거냐?'는 질문이 떠오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시면 그런 상황에서도 충분히 액션이 펼쳐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워낙 등장인물이 적고 배경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영화는 상당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무대극이었다면 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굳이 영화 중에서 비교하자면 마이클 케인과 주드 로가 열연했던 영화 '추적(Sleuth)' 정도일까요. 두 남자의 치열한 싸움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수트를 입고 우아하게 싸우는 '추적'과는 달리 '죽이고 싶은'의 두 남자는 환자복 차림으로 아주 추하게 진흙탕 싸움을 벌입니다.

거기서 어떻게 싸움이 가능하냐는 대목에서 연출진의 아이디어가 빛납니다. 일단 방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다 사용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특공대원이나 무술 대가를 설명할 때 흔히 '온 몸이 무기'라고 하지만 이 영화의 두 배우에겐 '잡히는게 다 무기' 입니다. 여기서 웃음과 함께 비애가 느껴집니다.

(사실 이 영화의 액션 진을 보다 보면 영화 전체가 악몽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생각될 때도 있었습니다. 악몽 속에선 있는 힘을 다해 적을 공격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죠. 등장인물들의 상태가 바로 그렇습니다. 투지만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 그야말로 악몽인 셈이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야구 한국시리즈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에도 두 남자는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시라고 하면 간단할 듯 합니다.

구성을 보면 다른 어떤 영화보다 배우의 몫이 클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두 배우는 자기 몫을 톡톡히 합니다. 천호진은 마초적인 외양에 비해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배우로 꼽힙니다.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의 형사반장 같은 역에는 미스캐스팅의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뭐 경찰의 무기력함을 상징하는 설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듯^^). 반면 '죽이고 싶은'에서는, 과거는 알수 없지만 어쩐지 연민을 자아내는 초로의 환자 역할에 매우 어울립니다.



물론 영화의 활력은 대부분 유해진에게서 나옵니다. 아마도 상당 부분 애들립일듯한 유해진의 코미디는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에 적절한 조미료로 작용합니다. 그러면서도, 희극적인 얼굴에서 순간 범죄자의 얼굴로 바뀌는 표정 연기는 이미 이 배우가 어느 정도 경지를 넘어 섰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 영화 관계자와 잘 아는 사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상당히 초기부터 지켜 봤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롯데 자이언츠적인 요소(^^)가 정점 강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기도 했습니다(충분히 아실 수 있겠지만 감독이 부산 출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반전의 요소가 조금 더 불명확했던 상태가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현재 극장에 개봉되어 있는 영화는 그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이 말끔하게 의혹을 해소해 줍니다. 분명히 출연하긴 하되, 마지막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한 배우는 대체 출연료를 얼마나 받았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무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대략 합의가 이뤄진 내용이 있습니다. '관건은 극장에까지 관객을 데려오는 거다. 설정과 규모를 보고 이 영화를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일단 보고 나면 괜히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다'라는 겁니다. 이런 의견에는 대다수가 동의하더군요. 그렇습니다. 화려한 캐스팅과 물량으로 관객을 유혹한 뒤 막상 보고 나면 '이 뭥미?'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와는 정 반대 방향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영화는 조원희/김상화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아무쪼록 이 두 사람이 이번 영화로 재능을 인정받아 좀 더 큰 예산의 영화를 만들어 선보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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