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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를 거쳐 국내에서 처음 시사회를 가진 '마더'를 드디어 보게 됐습니다. 상영 개시 시간은 20일 오후 4시30분이었지만 어찌나 사람이 많이 왔는지 5시가 넘어서야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물론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만한 영화였습니다.

개략적인 스토리는 이미 꽤 알려졌습니다. 한 시골 읍내에서 약재상을 하는 어머니(김혜자)는 좀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을 데리고 혼자 살아갑니다. 어느날 동네에서 여고생이 잔혹하게 살해되고, 도준이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상황은 별 의심의 여지 없이 도준이 진범이라는 주장을 확인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어머니는 혼자 애를 태웁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얼떨떨한 도준에게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라고 촉구하고, 한편으로는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단서를 찾아 다닌 끝에 어머니는 뭔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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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대략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 봉준호 감독의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과의 유사점입니다. 어느 지방 소읍에서 생긴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살인사건에 그리 익숙지 않은 시골 형사들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벌입니다. 그리고 용의자로 몰린 도준의 모습에서는 아무래도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가 떠오르죠.

박노식이 연기한 백광호가 누군지 모르시겠다구요. '향숙이'라고 해야 아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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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빈이라는 당대의 미남 스타가 연기해서 그렇지, 이 영화에서의 도준은 딱 "향숙이 예쁘다"라는 대사가 입에서 나오는 게 정상일 모습입니다.)

이런 의도적인 유사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다수 관객들이 '살인의 추억'을 봤다고 가정하면 많은 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더'에서는 도준이 체포된 뒤의 신문 과정이나 수사 과정, 현장 검증 등이 하이라이트처럼 지나갑니다. 그 과정이 대략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살인의 추억'을 본 관객이라면 안 봐도 본 듯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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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부는 약간 느슨합니다. 도준과 좀 못된 친구 진태(진구), 그리고 도준 어머니를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는 형사 제문(윤제문)의 관계를 설명하고 설정하는 데 좀 긴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죠.

마침내 사건이 벌어져도 관객의 궁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봉준호 감독의 칼끝은 급소를 한방에 찌르지 않고 슬슬 변죽을 울리죠. 마침내 어머니가 사건 해결에 발벗고 나설 때부터 영화는 박진감있게 성큼성큼 진행되지만, 그 전까지의 진행에는 전에 없던 군더더기가 몇군데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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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일단 다른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잘라 말하면 김혜자 여사의 연기를 빼놓고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래도 이 배우에 대해 대다수 한국 관객들이 갖고 있는 인상은 때로는 인자하고 정 많은, 때로는 지치고 피곤한 어머니의 모습일 겁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무제한의 사랑에서 오는 광기'를 연기합니다.

아마 누구도 김혜자라는 배우의 눈에서 이렇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광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더'라는 영화는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었다고 얘기할 만 합니다.

영화는 김혜자의 1인무(춤)로 시작해 역시 춤추는 김혜자에게서 끝납니다. 두 춤 모두 아주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슴에 사무치는 무언가(無言歌)를 느끼게 합니다. 과연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모자간이란 어떤 사이길래 어머니를 이런 광기 어린 모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이 영원히 안고 갈 것으로 보이는 80년대 운동권 문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당시 한국 운동권에서 가장 강력한 투쟁력을 갖고 있는 단체는 바로 민가협(民家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였습니다. 네. 바로 구속-수감된 양심수들의 어머니들이 주축이 된 단체였죠. 그 위력이 어땠을 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어쩐지 이 영화에서도 그 시절의 느낌이 묻어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김혜자가 연기하는 압도적인 어머니 상 때문에 이 영화는 교향곡이 아니라 김혜자 한 사람과 영화의 나머지 모든 요소가 협연하는 협주곡처럼 보입니다. 원빈과 진구도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에서는 굳이 뭘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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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의 두 히트작,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비해 '마더'는 좀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두 형사의 고생담을 통해 80년대라는 시대의 한국을 담아냈습니다. '괴물' 역시 괴물 사냥이라는 소재를 통해 한미관계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풀어낸 영화였죠. 두 영화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고, 그만큼 영화는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니아들은 그런 상징의 의미 찾기로 숨바꼭질을 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죠.

하지만 '마더'는 이 두 편의 영화에 비해 훨씬 직설적입니다. 더 이상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추지 않겠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골프장과 골프 클럽의 등장이나, 술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공 변호사의 장광설은 사실 지금까지의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은근한 비판'과는 좀 다른 방법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만은 너무 노골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과연 영화의 진행상 저 장면이 꼭 필요할까 싶은 장면들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만듦새를 하나 하나 뜯어보자면 참 우아하고 날렵합니다. 대가의 솜씨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살인의 추억'과 비교해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송강호의 공백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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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이 관객들을 상대로 막강한 위력을 뽐낸 데에는 두 가지 무기가 주효했습니다. 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의 긴박감과 수시로 터지는 어둡지만 효과적인 유머였죠. 하지만 이번 '마더'에서는 무겁게 침잠한 분위기에서 관객들을 쉴새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송강호 특유의 유머를 대신 날려 줄 배우가 없다는 점이 아쉽기만 합니다. 윤제문은 '비열한 거리' 이후 최강의 연기력을 갖춘 조연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머리 위에 드리운 송강호의 그림자가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봉준호 감독에게 매번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라면 그것도 꽤 욕심일 듯 합니다만, '마더'는 놀라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살인의 추억'에서 관객들이 느꼈던 아찔한 충격을 다시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 등을 통해 관객의 눈도 한참 높아진 탓일 겁니다. 과연 이 부분이 관객들에겐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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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벌써 꽤 길어졌습니다. 영화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글은 몇번 더 우려먹을 것이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보란 말이냐 말란 말이냐는 질문을 하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영화 보는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두번 보는 건 선택이겠습니다만.]

네. 얼른 보시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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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극찬을 날렸습니다. 이어지는 분위기가 너무나 뜨겁습니다. 칸에서 열린 '박쥐' 상영 때에는 온 관객이 10분간 기립박수를 쳤다는군요. 심지어 타임의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는 "마지막날 뭔가 상을 타고 말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칸 영화에제 공식 초청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초청은 됐지만 수상이야...'하는 게 국내의 중론이었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워낙 화려한 감독들이 총출동한 분위기라서 무슨 상이든 받는다는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더군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런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주목이라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5일자 '타임'에 실린 '박쥐' 리뷰입니다. 글에서도 흥분이 느껴집니다. 당연히 링크를 하면 안 보실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그냥 전문을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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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A Priest Becomes a Vampire
http://www.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898196_1898204_1898882,00.html


러브 스토리를 고를 거라면 기왕이면 미친 러브 스토리를 골라라. 키워드는 이렇다: 환락, 고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체액(주로 피). 박찬욱은 DVD 전문가들에겐 '복수 3부작'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감성적 폭력물의 숙달된 대가다. 그는 요즘 한창 뜨고 있고, 그리 기괴하지는 않은 한국산 심리 액션 영화 장르의 핵심 인물이다. 그리고 '박쥐'는 -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 아주 매혹적인 한 줄의 광고 문구와 더불어 - 박찬욱의 작품 중 가장 풍성하고, 가장 미친 듯 하고,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성숙한 영화다.

If you're going to do a love story, make it a mad love story. Get down into the essentials: ecstasy, pain and all the bodily fluids, especially blood. Park Chan-wook, best known to DVD connoisseurs for his Vengeance trilogy, is a past master of emotional violence. He's the soul of South Korea's vigorous, not to say kinky, psychological action movies. And Thirst — with its irresistible one-line sales pitch: a priest becomes a vampire — is his richest, craziest, most mature work yet.

신부 상현(한국의 슈퍼스타 송강호가 연기하는)은 친절하면서도 깨인 천주교 사제다. 그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마지막 기도를 낭송해주며, 한 고민하는 간호사의 고해성사에서 속죄를 위해 성모송을 20회 외우고, 햇볕을 쬐며 산책을 하고, 항우울제를 먹어 보라고 권하는 사람이다. 그는 또 심각한 채찍질 고행자여서 솟구치는 성적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허벅지를 내리친다(박찬욱의 '올드보이' 역시 좀 도가 지나친 자해행위를 자랑한 바 있다). 그는 고행을 통해 온 세계를 구원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적인 욕망을 갖고 있다, 그 소명은 그로 하여금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의학 실험으로 이끈다. 그 실험을 받은 다른 모든 사람은 죽었다.

Father Sang-hyun (Korean superstar Song Kang-ho) is a Catholic priest who's both caring and modern. He intones the last rites over terminally ill patients at the local hospital, and in confession he gives one troubled nurse the penance of 20 Hail Marys, a walk in the sun and a recommendation to take antidepressants. He is also a serious flagellant, whipping his thighs in mortification to suppress sexual urges. (Park's Oldboy also boasted more than its share of self-mutilation.) He has a Christ-like desire to save the world through suffering, and that vocation leads him into a medical experiment with dire effects: everyone else who's undergone it has died. (See pictures of the Cannes 2009 Red Carpet.)

그 실험 - 도대체 말이 안되지만 상관없다. 이건 공포영화니까 - 을 통해 혼자 살아남은 바람에 그는 소수의 신도 집단으로부터 모든 병증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상현의 허약한 학교 동창생 강우(신하균)의 희망이기도 하다. 강우는 괄괄한 성격의 엄마(김해숙),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음울한 젊은 아내 태주(김옥빈)와 함께 살고 있다. 가족이 몰랐던 것은 그 훌륭한 신부가 실험 참여로 사소한 부작용-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그는 가로등을 구부러뜨리고, 높은 담 위를 오르는 등의 장점도 얻지만, 이런 모든 장점은 단점에 비해 별 소용이 없다. 그에게 필요한 식량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병원으로 침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신부복을 입은 한 남자가 바닥에 누워 환자의 링거 호스를 통해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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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xperiment — makes no sense, doesn't matter, this is a horror movie — is one he somehow survives, making him a figure of veneration to a small cult believing he can cure all ailments. That's the hope of Father Hyun's feeble school chum Kang-woo (Shin Ha-kyun), who lives with his termagant mom (Kim Hae-sook) and his strangely silent, sullen young wife Tae-ju (Kim Ok-vin). What the family doesn't know is that the good father has picked up a little side effect of the experiment: vampirism. The condition's benefits — he can bend lampposts, scale high walls — don't always outweighs its liabilities. The food supply he needs is hard to find in the local market. So, as you walk unawares into a hospital room, you might find a man in a collar and cassock supine on the floor, sucking the blood from a patient's IV bottle.

태주야말로 이 동정의 뱀파이어에게 딱 맞는 바로 그 여인이란 점이 드러난다. 성적 긴장감이 팽배한 한 긴 신에서, 그녀는 상현에게 키스하며 거의 그를 유혹에 빠뜨린다: 반면 그는 그녀의 매력과 그의 탐욕스러운 새로운 본성을 알아차리고, 두 남녀는 합방에 이른다. 이 관계로 인한 과도한 황홀경(ecstatic excess)은 영화의 후반부를 결정짓는다. 신성하기도 하면서 미치기도 한 이들의 사랑은 상징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 이 영화의 프랑스어 제목은 성찬식때 사제의 말을 연상시키는 '이것은 나의 피'다 - 그들과 함께 미쳐간다. 캐릭터들의 강박관념을 혼합시키며, 장르상의 구속을 여지없이 풀어 버리며, 관객들에게 미친 것이 영화인지, 아니면 관객들 자신인지를 묻는 이 작품을 보는 것은 꽤나 해방감을 준다. 올해 하반기에 미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한 우리의 조언은 "'박쥐'가 미친듯이 달릴 때 당신도 같이 미치라"는 것이다.

Turns out that Tae-ju is just the woman for this virgin vampire. In one long scene of sexual tension, she kisses Hyun and nearly seduces him; in another, he acknowledges both her attractiveness and his rapacious new nature and they consummate their relationship, one whose ecstatic excess will define the rest of the film. Their love is both sacred and insane: sacra-Mental. And the movie — whose French title translates as the liturgically evocative "This Is My Blood" — goes mad with them. It's liberating to watch a film that melds with the obsessions of its characters, that strips the moorings from genre expectations and leaves viewers asking whether the film has lost its mind or they have. Our advice to those who see Thirst in its U.S. release later this year: when Thirst goes nuts, go with it. (See the top 10 Cannes Film Festival movies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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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쉬리', '반칙왕', '살인의 추억', '괴물', '밀양'과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등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이 배우는 트레이드마크인 둔감함(stolidity)을 통해 포복절도할 코미디에서 맹렬한 마초 역할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어울려 왔으며, 자신의 몸에 침투한 충동과 싸우는 신부 상현의 금욕적인 투쟁을 연기하는 데 있어 매우 적절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의외의 발견은 바로 22세의 아름다운 김옥빈이다. 그녀는 침묵으로 순종하며, 그리고는 열정을 추구하고, 그리고는 폭발하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태주라는 인물을 훌륭하게 연기한다 - 아니, 아예 그 인물 자체다. 그녀는 채털리 부인과 맥베스 부인이 하나의 우아하고 가슴에 사무치는 형태로 결합한 것 같다.

Song Kang-ho has starred in many of the films that mark the Korean renaissance: Shiri, The Foul King, Memories of Murder, The Host, Secret Sunshine and Park's Joint Security Area, Sympathy for Mr. Vengeance and Lady Vengeance. The actor's trademark stolidity, which lends itself equally well to deadpan comedy and high-voltage macho roles, is a suitable vessel for Father Hyun's stoic battle against the impulses that have invaded his system. But it's the lovely Kim, just 22, who is the revelation here. She can play — no, she can be — a creature of mute docility, then searching ardor, then explosive eroticism, then murderous intent. She is Lady Chatterley and Lady Macbeth in one gorgeous, smoldering package.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Double Indemnity)'과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의 플롯 요소에다 프란시스 코폴라가 '드라큘라'에서 보여준 농익은 관능을 더한 이 영화는 이번 칸 영화제의 평론가들에게 놀라운 기쁨으로 충격을 주었다. 마치 그들이 (역주:뱀파이어에게)달콤하고 육감적인 목 물림을 당한 듯이 말이다. 이 영화가 폐막식 날 뭔가 중요한 수상을 할 것임은 거의 보장돼 있다.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지난 2004년 칸 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 우수성으로 볼 때 '박쥐'는 그보다 더 큰 상을 받을 만 하다. (끝)

Blending plot elements of Double Indemnity and Natural Born Killers with the ripe sensuality of Francis Coppola's take on Dracula, the film has made festival critics sit up in startled pleasure, as if they'd just received the most luscious neck-bite. It's almost guaranteed to get an important citation on closing night. Park's Oldboy won the Grand Jury Prize, the second-place award here at Cannes, in 2004. On its merits, Thirst should do bette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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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너무 심한 격찬(?)이라 오히려 뭐가 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글을 쓴 리처드 콜리스(Richard Corliss)는 이번 영화제에 대해 타임에 기고한 다른 글, 'Cannes 2009: Great — or the Greatest — Festival?'에서 수많은 거장들과 명배우들의 등장으로 이번 칸 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이번이 칸 영화제만 36번째 방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베테랑 평론가의 말이니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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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는 이번 61번째. 그 절반 이상을 참여했다는 얘기군요. 이 글은 아내이며 역시 평론가인 메리 콜리스와 함께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For two TIME.com critics, this is our 36th festival on the Cote d'Azur.'라고 되어 있으니 어쩌면 36회에서 몇번쯤 빠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후덜덜한 숫자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2009 칸 영화제에 대한 개괄 형식인 이 글은 http://www.time.com/time/arts/article/0,8599,1897891,00.html)

아무튼 콜리스는 그 글에서도 박찬욱, 미하엘 하네케, 마르코 벨로키오, 알랭 레네를 이번 칸을 빛내는 선두 거장들로 꼽고 있습니다. 이들 넷을 가장 먼저 꼽은 다음에야 이안, 샘 레이미, 페드로 알모도바르, 퀜틴 타란티노와 제인 캠피언을 꼽을 정도로 우리의 박찬욱 선생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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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드보이' 때의 이 영광이 재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불과 5년 전인데 당시만 해도 박찬욱 감독이 이상할 정도로 어려 보이는군요.^^

일전에 썼던 '박쥐'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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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 트렉: 더 비기닝'의 홍보 영상을 우연히 TV에서 봤습니다. 보고 나온 사람들이 무슨 질문엔가 '에? 정말요?'하고 반문하는 광경이 나오더군요. 뭘 물어봤는지는 좀 나중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이 126분(2시간 6분)이란 걸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이었죠.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잇달아 나오는 걸 보면서 참 괜찮은 홍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가 길지 않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치 흥미진진하다는 얘기니까요.

그러고 나서 직접 영화를 봤는데 놀랍게도 그 홍보 영상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가운데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 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롤러코스터의 속도감과 적절한 유머가 '어, 벌써 끝이야?' 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원작? 몰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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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은 없어도, 그런 드라마가 있었다는 걸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1966년 9월8일부터 미국 NBC TV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스타트렉은 우주 공간을 무대로 한 최초이자 최고의 드라마로 공전의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 첫번째 시리즈(T.O.S, 즉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불립니다)는 4년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 뒤로 40년에 걸쳐 수많은 속편과 외전, 그리고 11편의 극장용 영화가 만들어지는 등 외형상으로 볼 때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를 능가하는 최고의 인기 우주 모험담으로 자리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인기를 모았다고 해 봐야 남의 나라 얘기긴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국내에서 더빙 버전으로 이 드라마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AFKN 혹은 AFN은 수시로 이 시리즈를 다시 방송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1970년대며 80년대에도 윌리엄 섀트너가 연기하는 커크 선장과, 레너드 니모이가 귀 뾰족한 스팍(스포크) 부함장으로 나오는 오리지널 시리즈는 계속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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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다시 패트릭 스튜어트가 피카드 함장으로 나오는 후속 시리즈, 또 그 뒤의 후속 시리즈가 줄줄이 나왔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시리즈의 상징은 바로 스포크 부함장이었죠. 레너드 니모이가 이 역할을 한 건 오리지널 시리즈의 4년 정도 뿐이었지만, 그 여파가 어찌나 강했던지, 일상 생활에서도 그를 외계인이라고 착각(?)하는 팬들 때문에 상당한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고 하는군요. 오죽하면 그의 자서전 제목이 '나는 스포크가 아니다'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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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귀 하나 떼고 본다 해도 사실 지구인같지 않은 얼굴.>

아무튼 '스타 트렉'의 장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저는 말할 자격도 없고, 지금부터 연구할 기력도 없으니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물론 이 정도도 몰라도, 영화를 보고 즐기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드라마 '로스트'와 영화 '미션 임파서블 3'를 통해 액션 블록버스터의 총아로 떠오른 J.J 에이브람스는 이 너무도 유명한 '스타 트렉'이야기를 가지고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에 도전합니다. 바로 오리지널 시리즈 주인공들의 젊은 날, 즉 이들이 첫번째 시리즈에서 모험을 펼치기 전 신출내기일 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프리퀄인 셈이죠.

이 용어보다는 리부트(Reboot)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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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사실 원작보다 세월이 흐른 뒤에 나오는 프리퀄에는 몇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양들의 침묵'보다 11년 뒤에 나온 '레드 드래곤' 처럼, 오히려 시간상으로는 앞의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훨씬 늙어 보인다는 점이 대표적인 문제죠. 또 '스타워즈 에피소드 1' 처럼 '에피소드 4, 5, 6'보다 훨씬 앞의 시대인데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영상의 화질 등은 훨씬 뒤의 시대처럼 보인다는 문제도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시리즈는 '주인공들의 젊은 날'이라고 한정해서 새로운 배우들로 왕년 추억의 스타들을 모두 대체해버리고, 익숙한 우주선의 디자인이나 무장 등을 가능한 한 원작에 가깝게 유지합니다. 조종석이나 사용하는 무기, 순간 이동장치 등이 드라마와 거의 똑같아서 감탄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승무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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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체코프, 커크, 스코트, 맥코이, 술루, 우후라>

제임스 T 커크 함장 - 크리스 파인
스포크 부함장 겸 과학장교 - '사일러'로 더 유명해진 재커리 퀸토
레너드 맥코이 군의관 - '반지의 제왕'의 에오메르 칼 어반 (못 알아봤습니다.^)
몽고메리 스코트 기관장 -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사이먼 페그 (기대한 그대로의 모습)
니오타 우후라 통신장교 - 조 살다나
히카루 술루 조타수 - 유일한 동양인 캐릭터. 존 조.
파벨 체코프 항해사 - 안톤 옐친. 개봉할 '터미네이터 4'에선 카일 리스의 어린 시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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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이 스포크 역으로 거론됐다는..>

영화는 커크 함장의 아버지인 조지 커크가 위기를 맞은 전함의 임시 함장을 맡아 장렬히 전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공들은 지구인과 외계인들이 결성한 우주 연합함대(스타플리트 Starfleet)의 승무원 양성 과정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스타플리트에 합류한 외계인 중에는 벌칸 행성 출신의 스포크가 있습니다. 인간에 비해 고도의 지성을 갖고 있는 벌칸인과 지구인 사이에서 태어난 스포크는 이미 스타플리트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지만, 커크는 사고뭉치에 정학을 당하는 존재죠. 그런 그가 우연히 전함 엔터프라이즈에 타게 되고, 자신이 태어날 무렵 스타플리트에 닥쳐 왔던 위기가 재현되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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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타 트렉'은 원작의 존재 유무를 떠나 '60년대 느낌의 SF로 회귀'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1990년대 이후의 SF 판타지는 "유치해 보이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 않았지만, 이 영화는 아예 대놓고 "좀 유치해 보이면 어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라는 태도를 아예 대놓고 과시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낙관과 여유가 넘치던 시대였거든요. 그러니까 90년대 이후의 SF 영화들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 현실에 대한 은유, 철학적인 깊이를 담으려는 시도 등을 싹 쓸어 버리고, '이건 그리스 신화나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이 펼치는 신나는 모험담이면 돼'라는 자세를 꿋꿋하게 밀어부칩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드라마 '스타 트렉'에서도 우주를 누비는 베테랑 승무원인 주인공들이 모두 실수 투성이의 신참들이라는 건 참신하면서도 계속해서 웃음을 자아냅니다. 커크 함장 역의 크리스 파인도 오리지널 시리즈를 모두 봤지만, 거기 나오는 커크 함장의 신중하면서도 원숙한 함장 연기 보다는 '탑 건'의 톰 크루즈나 '스타 워즈'의 해리슨 포드 같은 연기를 지향했다고 하는군요. 실제 모습도 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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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영어 발음이 안 되는 러시아계 항해사 역의 안톤 옐친, 우주전함 워프를 시키지 못하는 조타수역의 존 조, 개발되지 않은 이론 때문에 고초를 겪고 있는 선각자 역의 사이먼 페그 모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명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밖에도 행성 하나를 한방에 날려 버리는 규모의 거대한 액션, 인간 하나는 화면의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우주 전투 등은 '이것이 J.J. 에이브람스의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한마디로 체급이 다릅니다.

5월 이후 한국 영화든, 할리우드 산이든 볼만한 영화들이 쏟아져서 즐겁습니다. 아무래도 시간들을 쪼개서 극장을 좀 더 자주 찾으셔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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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에릭 바나가 이런 분장을 하고 악역으로 나온다는 게 참 충격적입니다만, 정작 놀라운 카메오는 두 사람입니다. 일단 스포크의 지구인 어머니 역으로 위노나 라이더가 나옵니다. 꽤 나이든 모습으로 나오는데, 주름은... 설마 분장이겠죠?

또 한 사람은 이 시리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너드 니모이. 무슨 역으로 나오는지는 그냥 비밀로 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군요.






최근 영화들에 대한 리뷰입니다.


엑스맨 탄생 - 울버린


박쥐
 


똥파리
 


7급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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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X-men)'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엑스멘이라는 코믹스 시리즈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사람으로서, 그 장구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엑스맨' 에서 '이번의 '엑스맨 탄생: 울버린 (X-Men Origins: Wolverine, 2009)'에 이르는 네 편의 극장용 영화들 뿐입니다.

휴 잭맨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오고, 사전에 90% 완성본이 인터넷에 떠도는 등 유난히 화제가 무성했던 작품 - 물론 이런 낚시밥들보다 '절반은 한국인'인 다니엘 헤니의 출연이 훨씬 더 관심을 모았지만 - 이라 냉큼 달려갔습니다. 107분. 딱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입니다. 뭐랄까, '사람 배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정도가 적절할 듯 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에서 본 '우리편 배우', 다니엘 헤니의 활약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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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미국 중서부 어딘가에서 태어난 지미와 빅터 형제. 아버지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친형제인 이들은 각각 로건/울버린(휴 잭맨)과 빅터/세이버투스(리브 슈라이버)로 성장합니다. 성장은 하되 30-40대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성장이 멈춘다는 설정입니다.

이들은 남북전쟁, 1차대전, 2차대전, 월남전을 거쳐 미국의 비밀 특수부대에까지 합류해 거기서 많은 돌연변이 전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울버린은 결국 살육의 나날에 염증을 느끼고 캐나다 오지에서 연인 카일라(린 콜린스)와 함께 도피 생활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갑자기 특수부대의 지휘관이었던 스트라이커(대니 휴스턴 - '엑스맨2'에선 브라이언 콕스가 했던 역할입니다)가 찾아오면서 평화는 깨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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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엑스맨'의 프리퀄입니다. '엑스맨'에서 사실상 주인공 역할을 했던 캐릭터 로건/울버린이 어떻게 해서 돌연변이 전사 울버린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죠. 지금까지의 시리즈를 다 본 관객들은 당연히 이 영화를 보기 전, 몇가지의 필수 조건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엑스맨'이나 '엑스맨 2'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이 영화에서 절대 죽어선 안 됩니다. 반대로, 저 영화들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캐릭터들은 모두 이 영화에서 정리가 되어야 하죠. 주요 인물들의 생사가 이미 결정된 셈입니다.

다시 말해 결말의 윤곽이 대략 다 나와 있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줄거리로 어떻게 해 보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고, 볼거리와 간단한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또 영화 1, 2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이야기를 삽입하면서(예를 들면 어린 사이클롭스^^) 마니아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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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은 그런 교훈에 매우 충실한 영화입니다. 개빈 후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든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걸작을 만들겠다는 식의 야심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팬서비스의 정신 뿐이죠. 그가 만든 이 107분짜리 아드레날린 펌프에는 장광설이나 설교, 거창한 세계관 따위는 나올 시간도, 이유도 없습니다. 엑스맨 1, 2편에서 브라이언 싱어가 구사했던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은유 같은 것은 그에겐 비싼 사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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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덕에 영화는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가끔씩 미국식 코믹스 특유의 바보스러운 도덕관, 즉 '히어로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혹은 '함부로 주요 캐릭터를 죽이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죽일 수 있는 대상은 엑스트라 뿐이다'로 바꿔 부를 수도 있습니다)'가 한국 관객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울버린이 고민하지 않고 똑똑하게만 행동하면 영화는 30분만에 끝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런 문제는 '배트맨'에서 극에 달하고, '슈퍼맨'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들이 악당을 제때 해치우지 않아서 악당들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고, 그때 가서 또다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 나약한 미국제 슈퍼 히어로들은 아무리 봐도 제 취향이 아닙니다. "난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뭐 이런 대사를 들으면 짜증이 솟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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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돌연변이들이 등장하지만 역시 우리의 관심사는 신기에 가까운 총 솜씨를 갖고 있는 에이전트 제로(다니엘 헤니)입니다. 아, 에이전트 제로는 돌연변이가 아니라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원작을 본 적이 없는지라...). 정상적인 인간이 그 정도의 순발력이나 점프력, 조준능력을 갖고 있을 리는 없으니 돌연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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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는 다니엘 헤니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한국에 활동의 근거를 둔 연예인이 할리우드에 블록버스터에 진출해서 확보한 최대의 존재감 있는 배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박중훈의 '찰리의 진실'을 블록버스터가 아니라고 볼 때 그렇습니다. 또 '스피드 레이서'에 나온 비와 비교해 봐도 '울버린'이 '스피드 레이서'보다 흥행 폭발력 면에서 훨씬 더 클 것임을 감안하면 의미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죠. 한국어를 제대로 못 하는 헤니가 한국 배우냐 아니냐 하는 건 일단 접어 놓기로 합니다. 어쨌든 각국의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따졌을 때 다니엘 헤니라는 배우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대한민국일테니까요.

성공일까요? 일단 배우의 존재감은 확실합니다. 에이전트 제로라는 역할은 꽤 의미가 있고,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악당으로서도 기억에 확실히 남습니다. 듣자니 본래 독일인 캐릭터라던데, 굳이 아시아계 배우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 제작진의 의도는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헤니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헤니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은 냉정함보다는 여유로움입니다. 미소짓는 플레이보이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릴 마스크의 그가 시종일관 굳은 얼굴로 연기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갖고 있는 역량을 다 보여주기는 힘들었을 듯 합니다. 대사가 좀 더 많았어도 좋았을 듯 하고. 어쨌든 이제부터는 에이전트의 역할이 중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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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한국 배우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너무나도 선명해 보이던 헤니의 얼굴 윤곽이 진짜 코카서스 인종 배우들과 서 있으니 오히려 부드럽게 보이더라는 경험입니다. 즉, 한국에서 통하던 '얼굴만으로도 확 눈길이 가는 외모'의 효과는 이 영화에선 그리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쪽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강점일지 약점일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런 걸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듯 하고...

아무튼 캐릭터가 100% 적절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떠나서 '울버린'에서 에이전트 제로로 나온 배우라는 간판은 헤니의 앞날에 결코 손해가 되지 않을 듯 합니다. 최소한 '데어데블'에서 콜린 패럴이 여기한 불스아이 역할에 비해선 몇배 더 훌륭한 역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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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잭맨의 연기는... 뭐 별 의미는 없습니다. 이건 그런 걸 따질 영화는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액션은 뛰어나고, CG도 훌륭하고, 이야기도 큰 무리 없이 이어집니다. 약간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지만 그런 건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에서나 따질 일입니다. 두어 시간 정도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휴일 한때를 보내기에는 최적의 영화입니다. 단 옆자리의 여자친구가 휴 잭맨에게 너무 눈길을 빼앗겨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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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코믹스 판의 울버린은 휴 잭맨 같은 멋진 남자는 전혀 아닌 듯 하던데 어쩌다 휴 잭맨이 이 역할을 맡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2000년 '엑스맨' 이후의 만화 그림체가 휴 잭맨의 얼굴을 따라가는 듯 하던데.

그런데 대체 왜 울버린과 세이버투스는 늙지 않는 겁니까? 달이 뜨면 변하는 늑대인간도 아닌데... 혹시 원작에 정통하신 분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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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웨이드/데드풀(라이언 레이널즈)과 뮤턴트XI(스콧 앳킨스)는 당연히 같은 배우일 줄 알았더니 다른 배우더군요. 코믹한 건 라이언 레이널즈가 훨씬 더 키가 크다는 것. 무술 전문 배우인 스콧 앳킨스의 실제 키는 1m80에 불과하더군요. 마지막 시퀀스의 촬영이 쉽지 않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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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찾아서 읽어보기 힘들 만큼 '박쥐'에 대한 세상의 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팔자에 없는 지방행으로 시사회를 놓치는 바람에 개봉날 밤에라도 볼까 했더니 이미 남아있는 좌석이 없더군요.^ 대단한 열기를 느끼면서 간신히 금요일 밤에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은 늦은 시간이지만 꽉 차 있었는데 같이 보시는 관객들의 반응은 대단히 잠잠했습니다. 간간이 웃음이 일긴 했지만 확 퍼지는 그런 웃음은 아니었고, 딱 한번, 송강호의 '문제의 그 신'에서 '아아' 하는 탄성이 일어나더군요. 혹시나 그 장면 하나를 보기 위해 이 많은 관객이 와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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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르실 분이 없겠지만 간단한 줄거리.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의 가르침 속에서 성장한 신부 상현(송강호)은 세상을 위한 희생을 목표로 아프리카의 한 희귀병 연구소에서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를 자원해 떠납니다.

치사율이 사실상 100%인 병에 시달리던 상현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는 대신 뱀파이어가 되고 맙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신 사지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명성은 그를 스타 신부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친구인 강우(신하균)와 엄마(김해숙), 그리고 이 집에 얹혀 살다가 아예 강우의 아내가 된 태주(김옥빈)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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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플롯을 요약하자면 '세속의 욕망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한 신부가 피맛을 알게 된 뒤로 타락해 가면서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은 때로 찬탄을, 때로 안쓰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욕망'입니다. 아마도 이 단어를 빼고 '박쥐'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Thirst, 즉 갈증이라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오히려 한글 제목인 '박쥐'가 더 겉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 욕망의 상징처럼 보여지는 것이 바로 피죠. 이런 박찬욱 감독의 시각은 본질적인 뱀파이어 영화의 함의를 뒤집어 버립니다. 뱀파이어 영화에서 피를 빠는 행위가 섹스의 대체물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흡혈은 착취와 지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고전에서 탐관오리가 '백성의 고혈을 빤다'고 할 때의 의미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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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박찬욱 감독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때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를 '복수에 대한 3부작'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뭐 시각을 약간 비틀어 본 것의 차이일 뿐이지만, '박쥐'가 나온 뒤에는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 그리고 '박쥐'를 한 묶음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다름아닌 '사회에 대한 우화 3부작'이라고 말이죠.

물론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오래 전 본 '복수는 나의 것'이 흥미로웠던 것은, 한 사회 안에서 한 사람의 세계관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서 있는 위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박찬욱 감독의 구조주의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강호와 신하균이 물속에서 마지막 격돌을 하기 직전, 송강호는 "너 좋은 놈인 거 안다"고 내뱉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할 수도 있던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격돌하게 되는 것은 이미 두 사람의 입장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읽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은유는 이보다 훨씬 노골적입니다. 결국 '과거사'와 '고백',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라는 것은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큰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쥐'에서 읽을 수 있는 은유는 매우 중층적입니다. 물론 표면에 나타난 것처럼 이 영화는 구원과 사랑, 선과 악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다른 해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전면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의 배경으로, 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화와 욕망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후의 내용을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그리 스포일러라고 얘기할만한 내용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매우 주관적이고, 감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겠다는 분들이 그렇게 나약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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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공간은 한마디로 '혼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자개 옷장과 열대성 관상식물, 괘종시계와 한복집이 있는 공간은 전형적인 70년대의 부유층 가정 느낌입니다. 반면 강우와 태주의 방에 있는 물침대는 80년대식 타락의 상징이며, 강우 엄마가 마시는 보드카나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당연히 21세기를 보여줍니다.

송강호가 획득하는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은 곧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욕망을 실현하는 힘, 즉 물질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능력과 동일시할 수 있습니다. 이브 바이러스의 체내 투입은 성취에 대한 도전, '50명의 실험 도전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음'은 이 사회 안에서의 물질적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힘을 갖게 됨으로 인해 상현의 세계관은 완전히 뒤집힙니다. 아예 모르고 살았던 세상의 욕망에 눈을 뜸과 동시에, 주기적으로 피를 빠는 행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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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이 태주입니다. 태주를 만나 생리혈의 냄새를 맡기 전까지 영화 속에서 상현이 피를 먹는 장면은 한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는 피를 먹지 않고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태주와의 만남-교통사고 환자의 피 맛 보기-호성씨의 피를 빨기에 이르는 과정이 지나고서야 상현은 피가 이브 바이러스의 발현을 막는다는 걸 깨닫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상현이 언제부터 피를 먹었나 하는 부분은 약간 모호합니다. 뱀파이어의 본능이 태주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그 관심이 다시 뱀파이어의 본능을 일깨운 과정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아무튼 생존을 위해 타인의 피를 빨되 이 뱀파이어는 '절제의 미덕'을 잊지 않습니다. 아울러 함부로 그 능력을 공유해선 안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그에게 눈먼 신부의 갑작스런 욕구는 당혹스러울 뿐이고,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으면 누구에게도 능력을 나눠주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타인에게 능력을 나눠 준 뒤에야 그는 자신의 처음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길은 순교의 길입니다. 그의 순교-자기희생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과 자신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두는 것으로 구현됩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당연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박찬욱 감독이 '무슨 헛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원래 영화란건 각자 알아서 해석하는 재미가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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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의 캐스팅은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영화 속 태주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의 억압과 거기에 대한 폭발적인 반동입니다. '나 부끄럼 타는 사람 아니에요'라는 대사는 태주의 순종하는 모습이 해금됐을 때 얼마나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인지를 예견하게 합니다.

그런 태주의 모습, 순진한 듯 하면서도 냉혹하고 무지한 듯 하면서도 음험한, 본능 그 자체인 태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김옥빈은 최적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해, 경찰 조사 받고 하면 날 샐지도 모르는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김옥빈의 모습은 그동안 감춰진 이 배우의 재능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더군요. 물론 그것이 단순히 디렉션의 승리인지, 이 배우가 연출진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한 결과인지는 김옥빈의 이후 행보를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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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송강호는 10%쯤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첫 대사, '당근이죠'는 유난히 '이건 송강호의 대사다'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 대사를 말하는 순간, 송강호라는 배우는 단지 감독의 도구가 아닌, 그 이상의 배우라는 점을 분명하게 관객에게 선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강호와 박찬욱 감독은 영화 내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합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역시 송강호'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잇달아 등장하지만, 앞부분에서의 송강호는 최적의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 배우의 특징인 능수능란함이 부각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게 된, 순진한 신부의 당혹감 같은 감정은 왠지 자취를 감춘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 정말로 '이 역할을 위해 태어난 배우'가 있지 않은 한 감독은 현존하는 배우들 가운데 자신의 이상을 구현해 줄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우들 가운데 송강호 같은 배우를 쓸 수 있다는 건 감독의 행운이죠. 아무튼 이 역할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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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의 액션이나 긴장감, '친절한 금자씨'의 비틀린 유머가 '박쥐'에서는 많이 약화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관객의 만족도는 꽤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영화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객의 욕구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은 작품들이었다면, '박쥐'는 이 두 편 보다는 훨씬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 쪽으로 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쓰리, 몬스터'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피곤한 일상에 달콤한 자극이 될 스트레스 해소의 방안으로 이 영화를 선택할 관객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런 관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티켓을 취소하고 '7급 공무원'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은 '어쨌든 박찬욱', '아무렴 송강호' 라는 이름 값, 약간의 지적 허영심, 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노출 신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세상의 중요한 이슈에서 빠질 수 없다는 동반자 의식으로 매표에 나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가장 즐기는 방법은... 스스로 보물찾기에 나서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이미 '박찬욱의 영화'를 놓고 한 편 한 편에 평점을 매기는 수준을 넘어 선 관객들에게 '박쥐'는 하나 하나 까볼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보물단지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다른 개봉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중간 중간 시계를 보게 하는 영화일 수도 있죠.

'대체 왜 영화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생각이나 고민 같은 걸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관객에게 굳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선 천왕봉에 올라가야 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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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카톨릭 교단이 왜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이렇게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일찌기 만들어 진 적이 없는 듯 한데 말입니다. 너무 강력한 신성모독이라 아예 영화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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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착 입에 감깁니다. '똥파리'. 그렇게 끈적끈적하고 냄새도 좀 나면서, 구질구질하고 보고만 있어도 없애 버리고 싶어지는, 그리고 당장 파리채로 때려 죽여서 휴지로 닦아 쓰레기통에 치워 버려도 세상에 아무 변화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존재감을 묘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느낌입니다.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가 이런 저런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걸 모르는 분들은 아마 아니 계실 듯 합니다. 그런 똥파리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지난주 극장을 찾았습니다. 의외로 객석은 많이 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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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조폭사회의 맨 아래 층을 담당하는 인력동원 및 수금업에 종사하는 3류 건달 상훈(양익준)은 어느날 기분도 껄쩍지근하던 차에 길에서 자신의 험상궂은 외모와 말투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여고생 연희(김꽃비)를 만납니다. 흔한 날라리만은 아니고, 그렇다고 모범생도 아닌 연희에게 왠지 모르게 친근감을 느끼는 상훈.

전반부에서 영화는 상훈이 왜 아버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며 심지어 구타까지 하는지, 연희는 어떻게 상훈의 심한 욕설과 험악한 태도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둘은 서로의 인생에 조금씩 개입해 가기 시작합니다. 연희는 상훈의 배다른 누나(이승연)와 그 아들인 형인(김희수)을 알게 되고, 상훈은 모르는 사이에 연희의 남동생인 영재(이환)와 인연이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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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의 최대 미덕은 일단 내러티브가 탄탄하고 관객에게 쏙쏙 들어온다는 점입니다. 이야기의 서술 방식은 사실상 상훈의 1인칭에 가깝습니다. 가끔씩 시점이 연희에게 이동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죠. 프롤로그를 빼면 이 영화는 어느날 회사(?)에 출근한 상훈에게서 시작해, 그가 다른 어느날 일과를 대략 마치게 되는 데서 끝납니다.

양익준 감독의 욕이 절반인 구수한(?) 연기와 함께, 상훈의 구구절절 기구한 사연은 당연히 관객에게 이온음료처럼 흡수됩니다. 상훈과 연희의 삶은 정말 처절하다 못해 어떻게 사람의 삶이 이렇게까지 무너져 내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상훈과 연희는 어떻게든 살아 보려는 캐릭터들입니다.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성선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캐릭터는 사실상 없습니다. 이 사회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악의는 이 영화에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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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은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에게 정서적으로 동화되기 쉽다는 강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판의 여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과연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타자에 대한 선의로 행동할까요? 세상이 이렇게 혼탁한 것은 오로지 착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악한 환경에 버려지기 때문일까요?

특히 주인공 상훈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눈물겹습니다. 입만 열면 욕에다 자기에게 잘 한다고 잘 하는 사장 만식에게도 함부로 대하고, 후배들까지도 늘 때려서 말썽을 만드는 사고뭉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상훈의 내면은 꽃밭입니다. 깊은 속정으로 똘똘 뭉친 남자죠. 그가 입만 열면 흘러나오는 욕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안녕하세요'나 비슷하다고 봐야 합니다. 선의를 선의로 포장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애도 딸린데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누나를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따뜻한 말을 한다든가 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돈 뭉치를 건네주고도 "누가 누나야? 너 우리 엄마 알아?"라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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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장면에서 참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한 코미디.>

이렇게 보면 볼수록 이 남자는 미워할 수 없는 남자입니다(심지어 적절한 유머까지 곁들여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하는 일은 사람을 때리고 겁 줘서 밀린 돈을 받아오는 일이라는 겁니다. 이런 시각은 종종 다음과 같은 논리로 연결되곤 합니다. '우범자든, 범죄자든,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들은 모두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살아 보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정작 나쁜 것은 이 사회다. 이 불공평한 사회가 이 사람들로부터 양심과 윤리를 빼앗아 가고, 손쉬운 범죄의 길로 내몬다.'

좀 위험한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는 가끔 법정에서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데 사용되곤 하죠.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주위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사회의 보살핌으로부터도 벗어나 있어 비뚤어진 청소년기를 보낸 끝에.....' 뭐 꼭 맞다, 틀리다로 나눌 수 없는 논리이긴 하지만 이런 논리에 가장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정직하고 규범을 준수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너무 당연한 얘기라는 건 저도 압니다만, '똥파리'라는 영화가 담고 있는 사실 전달, 혹은 진정성이라는 부분을 너무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면에서 한번쯤 짚어 둬야 할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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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영화적으로 '똥파리'는 저예산영화일수는 있지만 전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이지 않습니다. '똥파리'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 즉 아주 단순화해서 '한 건달의 내면에 있는 순수 이야기'는 이미 한국의 상업영화들이 수십번 울궈먹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찌들대로 찌든 삼류 건달이지만 속으로는 가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을 통해 그의 내면을 조명하는 영화들은 꽤 많이 꼽을 수 있습니다.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에서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파이란'의 최민식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초록물고기'의 한석규도 있군요.

다시 말해 '똥파리'는 흔히 독립영화군에 기대하는 '기존의 상업영화들이 다룰 수 없는 신선한 소재나 시각'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상업영화들이 다뤄왔던 이야기 사이에서 상당히 영악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끄집어 낸 영화입니다.

물론 이런 점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아예 대형 영화들과 똑같이 극장에서 경쟁하는 입장에서, '독립영화의 순수성'을 앞세워 '똥파리의 타락'을 꾸짖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무튼 '똥파리'는 그 자체로서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제작비 50억원짜리 영화들과 똑같은 돈을 내고 봐도 절대 손해라는 느낌은 없을 겁니다. 초반과 중간, 원경을 찍을 때 너무 카메라가 흔들린다는 점만 빼면 저예산 영화 특유의 기술적인 허점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양익준 감독과 '똥파리' 팀이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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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장면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옵니다. 어쩐지 양익준 감독은 등으로 연기하는 데에도 꽤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익준 감독이 다른 영화에서 이 상훈 캐릭터를 연기하면 꽤 반응이 있을 듯 한데 그럴 의향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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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공무원'에 대한 호의적인 평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군요. 사실 이 영화 시사회에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더랬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영화는 '서로 신분을 감춘 정보요원 남녀의 엇갈리는 사연'이라는 출발점만 볼 때에도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조악한 복제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예고편은 지나치게 액션을 강조했는데, 꽤 괜찮기는 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액션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 많은 예고편임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촬영 도중 제작비 부족으로 한때 촬영 중단 위기에 놓였다는 소문(대개 이런 경우 영화가 말이 아닌 경우가 많죠)까지 들은 터라 막상 시사회장으로 가면서도 '이거 헛걸음 하는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런 우려는 모두 기우였습니다. 영화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습니다. 바로 뒷자리에 김하늘-강지환씨의 관계자가 앉았었는데, 제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더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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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인 재준(강지환)은 늘 거짓말만 하는 여자친구 수지(김하늘)에게 질려 러시아 근무를 자원해서 떠나 버립니다. 이렇게 이별을 해 버린지 3년,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분주한 수지 앞에 어느날 갑자기 재준이 나타납니다. 의외의 곳에서 조우한 두 사람은 다시 엎치락 뒤치락 하지만 서로의 정체는 굳게 감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지가 뒤쫓는 한국 방위사업체의 노박사(강신일)와 재준이 추적하는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인 테러리스트 빅또르가 관련을 맺으면서, 서로 더 이상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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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에도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계속 마주치는 것이 좀 부자연스럽다, 액션의 질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마지막 액션 시퀀스가 필요 이상으로 길다, 등등의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더군요.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모두 뒤엎을만한 강점이 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그것은 순도 높은 웃음입니다. 코믹 액션 영화로서의 장점이 웬만한 약점을 모두 덮어 버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국산 수작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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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강지환의 영화입니다. 백전노장 김하늘의 감각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영화는 영화다'에서 거친 모습을 보여줬던 강지환은 '경성 스캔들'에서의 코믹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여러가지로 좀 억지스러웠던 '쾌도 홍길동' 풍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더군요. 특히 강지환의 개인기가 십분 발휘되는 러시아 미녀와의 러브신(?) 비슷한 장면은 정말 눈물 콧물을 빼놓습니다.

여기에 코믹 연기의 달인 한 사람이 가세합니다. 바로 류승룡. '바람의 화원'의 김조년이나 '천년학'의 절름발이 용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준의 직속 상관인 하리마오 팀장 역을 맡은 류승룡은 정말 야수같은 코믹 연기로 관객을 집어 삼킵니다. 특히 강지환과의 호흡은 박진만-고영민의 국가대표 키스톤이 부럽지 않습니다.

물론 극장에 걸리는 것에 비해 원본 촬영분은 훨씬 더 많겠지만, 영화를 강지환-류승룡 라인의 주도하에 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앞부분은 다소 산만한 부분도 있지만, 두 남자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는 중반 이후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듯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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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뒷받침하는 신태라 감독의 짜임새있는 구성도 돋보입니다. 한 시퀀스에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는 흐름이 스티브 내쉬가 지휘하는 팀의 패스웍을 보는 듯 합니다. 막힘이 없고, 여유가 빛납니다. 충무로 최고의 편집자 출신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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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영화의 흥행에서 가장 걸림돌로 보이는 부분은 액션 일변도에 맞춰져 있는 영화의 홍보 방식입니다. 이 영화의 극장용 예고편을 보거나,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소개를 보거나, 거의 모든 부분이 액션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영화 맨 앞부분에 나오는 김하늘의 웨딩드레스 차림 수상 액션과 공중제비 시퀀스가 등장합니다.

사실 이 장면, 꽤 애써서 찍었다는 건 알겠지만 보는 이에게 '우와'하는 소리를 내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은 자칫 이 영화를 '조폭마누라'의 아류 정도로 착각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한국식 각색 정도로 착각될 우려가 있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노출은 잠재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에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액션에 찍힌 방점은 빠지는 게 좋습니다. 같은 액션이라도 저 수상 액션이나 마지막의 격투 시퀀스보다 코미디 쪽에 기울어 있는 강지환과 러시아 테러리스트의 BB탄 액션 같은 쪽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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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순도 높은 코미디입니다. 복선이고 영화적 상상력이고 다 집에 두고 가십쇼.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쿵푸 팬더'와 '월 E' 이후 극장에서 가장 많이 웃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인생의 빛이나 지식인의 고뇌를 찾는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 될 영화입니다. 리얼리티나 창작의 고통은 다른 영화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삶이 너무 짜증스러운 분들, '개콘'을 보는게 일주일의 낙인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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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강지환의 어머니 역으로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만 나옴)가 등장합니다. 주의 깊게 목소리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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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하리마오'는 언뜻 일본말 같은 어감이지만 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라는 뜻입니다. 일제시대 건달들에게도 많이 쓰였던 별명이죠.

영화 속 국정원 특별팀의 이름을 하리마오라고 지은 제작진이 나중에는 아예 제작사 이름을 하리마오라고 지어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사는 '하리마오 픽처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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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주연의 탐정 시대극 '그림자 살인'이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직 본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관객 100만을 동원했고, 이번 주까지는 꽤 좋은 성적을 기대할 만 한 상황입니다.

을사조약과 고종 황제 폐위 사이의 어느 시점, 대한제국 시대의 한성을 무대로 하고 있는 이 영화가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영화 속 유머의 성공?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허점 없는 짜임새? 화려한 액션? 어느 이유를 하나 꼭 집어 내기보다는, 자꾸만 SBS TV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해 예능인으로서의 변신 가능성을 뽐낸 황정민의 공로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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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05년에서 07년 사이의 어느 날, 내부대신의 아들이 의문의 실종을 당합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인턴 쯤 될 의사 견습생 광수(류덕환)는 얼마 전 자신이 주워다 쓴 해부용 시체가 바로 대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 시중의 명탐정 진호(황정민)에게 진범을 찾아 달라고 의뢰합니다.

진호는 (당대에 도저히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기 힘든) 여류 발명가 순덕(엄지원)이 만들어 준 갖가지 과학적 수사 도구들을 활용해 수사에 착수합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희생자가 등장하고, 진호는 사건 뒤에 커다란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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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개봉 시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일단 영화를 꽤 보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영상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모던 보이', '라듸오 데이즈', 뭐 좀 넓게 잡으면 '놈놈놈'이 보여줬던 일본 풍이 가미된 이국적인 분위기의 도시 그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또 이 영화가 규정하고 있는 시공간은 1910년 이전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이지만, 아무리 봐도 복색이나 거리는 1930년대 이후, 그러니까 일제에 의한 근대화가 꽤 진행된 다음의 상태로 보입니다. 1907년 치고는 너무나 세련되어 보이죠.

뭐 관객이 그런 데 신경 쓸 이유는 없으니 넘어갑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수사하고 있는 것은 두 건의 연쇄 살인사건인데, 관객이든 제작진이든 모두 일련의 사건들의 진짜 범인은 '조선을 삼키려는 일제의 음모' 여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물론 얼마든지 그 밖의 결과도 상상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20분만 보면, 이 영화의 결말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찾아옵니다). 그러다 보니 수사는 은근히 겉돌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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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의 플롯에 반드시 필요하다기 보다는 '야, 이런 영화면 당연히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하지 않겠어?'라는 식의 클리셰들로 가득합니다.

예를 들자면 삿갓 쓴 남자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진호와 광수가 벌이는 복잡한 거리의 추격 신입니다. 사실 성룡 형님의 수많은 작품들에서 '본' 시리즈의 맨다리 추격전까지 섭렵한 관객들에게 이런 골목 추격전이 신기하게 보일 리는 만무합니다. 물론 제한된 세트 안에서 이 정도의 박진감을 내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건 꽤 칭찬받을 일이겠지만, 제작진은 과연 이 장면이 영화의 흐름에 반드시 필요했던 것인지, 아니면 박대민 감독이 '이런 장면을 꼭 한번 찍어 보고 싶어서' 들어간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의 흐름과 이 장면이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이 되려면 이 삿갓 쓴 인물은 뒤에 나오는 서커스단 단장(윤제문)이거나 그 주변 인물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호와 광수는 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수사중이라는 사실이 이미 노출된 셈이죠. 하지만 진호와 광수가 수사를 위해 서커스 공연장을 찾아 갔을 때, 이 둘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범인' 조차도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죠. 실컷 경주까지 벌이고 나서도 못 알아볼 정도면 대체 감시는 왜 한 겁니까.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들인 공이 아깝긴 하지만 결국 그 삿갓맨과의 추격전은 통째로 들어 내도 영화의 흐름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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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어가자면 플롯의 허점은 계속 쏟아져 나옵니다. 영화 첫 장면, 의생 광수는 자연스럽게 사지가 묶인 시체의 포승을 풀어 수레에 싣고 갑니다. 아주 태연하죠. 하긴 조선시대에는 역병에 걸려 죽은 시체를 자연스럽게 시구문 밖에 내다 버렸다고도 하죠. 우호적으로 생각해서 그 풍습이 구한말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냥 시체도 아니고, 묶여 있는 시체라는 건 이미 범죄를 전제로 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그런 시체를 그렇게 태연히 가져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허점들은 눈에 그리 잘 띄는 편은 아닙니다. 첫째로는 다소 복잡한 시대상(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일제시대인데 왜 황제폐하가 나오냐?"고 궁금해 하더군요)이나 용어에 이해의 한계를 느낀 관객들이 대충 넘어가자는 태도("뭐 그런게 있었나보지")를 취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가능한 한 최대한 속도감을 살린 편집이 그런 허점에 주목할만한 시간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 자, 자세한 건 넘어가고 일단 결말을 향해 달리자"라는 작전이 꽤 먹혀 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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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주인공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엄지원의 경우 배역이 너무 작아(원래 작았는지, 편집 과정에서 작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캐릭터가 낼 수 있었던 풍성한 효과가 사라진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황정민이나 류덕환이야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배우들이죠. 류덕환의 캐릭터가 너무 바보 연기로 일관하는 것 정도는 애교로 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수많은 허점들을 우수수 뿌린 채 결말을 향해 돌진하기만 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영화의 힘은 점점 떨어집니다. 이 영화 속의 야심찬 트릭은 서커스 단장의 알리바이를 설명해 주는 데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맥없이 벗겨져 버리고 말죠. 애당초 미스터리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진은 여러 모로 흡사한 윌 스미스 주연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흥행 실패에서 좀 더 많은 걸 배웠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뭘 더 바라냐는 얘기가 나올 법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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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음 작품을 위해 고칠 부분은 고쳐져야 합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박대민 감독의 다음 작품 때에도 '패밀리가 떴다'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다는 보장은 없을테니 말입니다. 다음번에는 좀 더 신선하고 정교한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자 살인'의 스피드로 볼 때 더 좋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해 보입니다.

코믹 액션 영화에 도대체 얼마나 정교한 플롯이 필요하냐고 반박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은 곧 개봉할 '7급 공무원' 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만든 코믹 액션 영화는 이런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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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영화에서 궁금한 점 중 하나는 무라타 '총감' 이라는 인물의 정체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로 인해 1905년 을사조약으로 설치된 통감을 '총감'으로 표기한 줄 알았습니다. 취임 1주년 기념식에 황제가 초청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당연히 통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행동거지나 위세를 보아 이 무라타는 거의 통감급의 인물로 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통감이라면 이토 히로부미여야 할테니 실제 역사에 혼선이 오겠죠? 그래서 굳이 '총감'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바꿔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통감이 아니라 진짜 '총감'이라면, 총감이라고 불릴 만한 직위로는 경시총감(경찰 총수)이 있겠더군요. 하지만 한국에 경시총감이라는 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에 일본 사람이 취임한 것은 1907년 7월의 일입니다. 경무고문을 맡고 있던 마루야마라는 사람이 초대 경시총감이 됐죠. 그런데 그 7월, 고종 황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인해 폐위됐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무라타 총감의 취임 1주년이 영화의 배경이라면, '황제 폐하'는 이미 야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겠습니다.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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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굳은 마음의 다짐 같은 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측근 한 사람이 이 영화를 극찬한 꼴을 봤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변했습니다. 결국 예매했던 '분노의 질주-오리지널'을 취소하고 '우리 집에 왜 왔니'로 바꿔타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다소 실험적이고 새롭게 보이는 영화들을 고르는 건 상당히 모험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미쓰 홍당무'처럼 신선하고 상쾌했던 기억이 있는 반면, 차마 거론하기도 싫은 실패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약간은 불안한 기분으로 극장에 들어섰는데, 나올 때에는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는 엎치락 뒤치락 코미디일 것이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무척이나 슬픈 영화였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이 잘 만든 영화에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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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삶에 모든 의욕을 잃고, 자살여행에서도 실패하고 돌아온 병희(박희순)는 자살을 감행하려던 순간, 자기 집처럼 불쑥 나타난 노숙자 차림의 수강(강혜정)에 의해 오히려 결박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수강과의 기묘한 동거생활이 시작되고, 병희는 수강이 자기 집에 들어온 이유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인 지민(이승현 - 빅뱅 멤버 승리의 본명입니다)을 감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지민 때문에 두번이나 교도소까지 갔다왔다는 수강은 "저 자식을 납치해다 산 채로 묻어버리겠다"고 투지를 불태웁니다. 네. 수강은 그리 정상적인 성인의 지능이나 판단력을 가진 인물은 아닙니다.

한 여자의 지독한 짝사랑 이야기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살짝 '미쓰 홍당무'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강혜정의 깜찍한 표정에서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리고 극중에서는 노골적으로 대놓고 '미저리'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겠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도 '우리 집에 왜 왔니'에는 퍽 만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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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영화가 시작하고 한 30분 동안은 솔직히 좀 불안했습니다. 박희순의 도주와 추격 장면에서의 핸드헬드 풍 화면은 관객을 어지럽히는 것 외에는 다른 효용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또 강혜정의 등장 직후에서 박휘순과 강혜정이 어느 정도 친분(?)을 쌓기까지의 전개는 좀 아슬아슬합니다. 관객에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맞춰 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관객과 영화의 만남 역시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관객은 이제 막 박희순과 어느 정도 친해졌고, 강혜정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강혜정과도 친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등장한 이수강은 살짝 정신이 이상한 노숙자 치고는 너무 새침떼기처럼 행동합니다. 조금은 관객의 기대에 맞게 행동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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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90분이 충분히 관객을 빨아들여버리기 때문이죠. 수강에게 지민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인물인지, 병희는 왜 서서히 수강에게 마음을 열어 가게 되는지를 두 배우와 황수아 감독이 설득력있게 풀어 줍니다.

물론 지민에게 있어 이 영화의 수강은 스토커입니다. 그것도 매우 위험천만한 스토커죠. 하지만 영화가 끝나 갈수록 관객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수강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만약 이 영화의 수강과 지민이 성별이 바뀌어 있었다면, 황수아 감독은 '스토킹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오아시스' 때 생각이 나는군요.)

촬영 순서와 영화의 진행 순서가 같았다면, 강혜정도 이 영화에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듯 합니다. 영화 뒷부분으로 갈수록 영화에 푹 젖어드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도록 예쁘다는 게 문제긴 합니다만, 연기력만큼은 한국 영화계의 보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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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도 그리 두드러질 데가 없는 역할이었지만, 무리해서 돋보이려 하지 않고 영화의 흐름을 제대로 끌어 주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승리 이승현군도 비중이 크거나 대단한 연기력을 요하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머리 감겨주는 신'일 겁니다. 두 주인공이 이해의 폭을 넓혀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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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추천은 이 정도입니다만, 지난번 '미쓰 홍당무' 때도 강추했던 영화가 흥행에서는 참패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보실 분들은 가능하면 서두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란방'과 '노잉' 등 대작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 이 영화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림자 살인'보다는 훨씬 만족도가 높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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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아주 약한 수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일단은 경고 표지를 붙여 두겠습니다. 영화를 보실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는 걸 꺼리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결국 이 영화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 서는, 혹은 다른 사람을 내 인생에 개입시키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회생활을 통해 조심성을 다진 사람들은 쉽사리 남의 일에 개입하려고도, 다른 사람이 내 일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누구나 내 인생에 남이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원하지 않죠. 다만 내가 남의 인생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을 뿐입니다.

어린 지민은 수강에 대한 자신의 개입이 자신의 인생에 수강을 들여 놓는 것이라는 점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죠. 하지만 어른인 병희는 어느 한 순간에 선을 그어 놓습니다. 호빵을 사다 준 것이 수강에 대한 마지막 감정의 표현이었고, 그 이상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설정하는 행동이기도 했던 거죠. 만약 그 이상이 있었더라면 면회를 가든가 편지를 쓰든가 했을 겁니다.

놀랍게도 아무 분별력이 없을 것 같던 수강은 어느 선에서, 어른이 되어 이런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지민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 만족하게 됩니다(물론 그러기 위해서 병희의 인생에 무단으로 침입하지만, 수강에게 그런 것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만약 지민이 위기에 놓이지 않았다면, 수강과 지민이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병희가 그 선에서 수강에게 잠시 뻗었던 손을 거둬들인 탓에 영화는 지금대로의 결말을 갖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도구로 황수아 감독은 우리가 귀찮아서, 혹은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혹은 나도 먹고 살기 바빠서 다른 사람에게 내민 손을 너무 빨리 거둬들였던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을 예리하게 파고 듭니다. 물론 병희의 죄책감(혹은 관객의 죄책감)을 씻어 주기 위한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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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조은지와 오광록의 카메오 출연에서 빵 터집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강혜정은 '꽃찾으러 왔단다' 라는 TV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군요. 이 제목과 희한한 인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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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퀴즈가 좋다'로 잘 알려진 포맷의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온 세계 만방에서 리메이크된 퀴즈쇼입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퀴즈 프로그램은 인도에서도 초절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자말이 도전하는 것이 바로 이 퀴즈쇼죠. 인도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Kaun Banega Crorepati'고 열 개의 문제를 연속으로 모두 맞추면 도달할 수 있는 상금은 2천만 루피(시작할 때에는 1천만 루피였다는군요)입니다. 1루피가 30원 정도 하니까 약 6억원인 셈입니다.

인도 갑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라고도 하지만 흔히 인도 서민의 한 가족 한달 생활비가 1000루피 정도라고들 하는데, 거기 비하면 정말 팔자 고칠 거액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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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제목대로 왕년에 그래도 각종 퀴즈쇼에 한 15회 정도 출연해 봤고, 지난해에는 퀴즈 프로그램도 하나 진행해 본 사람으로서 '퀴즈쇼 영화'로서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쓰는 글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 리뷰의 탈을 쓰고 있는 만큼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자라나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자말(데브 파텔)이 어느날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 쇼에 등장합니다.

('대체 퀴즈인이 뭐냐'는 질문이 나와서 약간 덧붙였습니다.)

퀴즈를 풀어나가는 동안 그의 어린 시절이 문제 풀이와 함께 조명됩니다. 형 살림과 함께 뭄바이 빈민가의 이슬람계 주민으로 살아온 자말은 어린 시절부터 온 몸으로 인도 사회의 모순을 경험합니다. 힌두-이슬람계 주민의 갈등 폭발로 어머니를 잃고, 어린이들을 이용한 앵벌이 조직에 속해 있기도 하고, 타지 마할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엉터리 가이드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역시 고아 소녀인 라티카(프리다 핀토)를 만나게 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쉽게 재회하게 하지 않습니다. 과연 자말은 라티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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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이 만든 이 영화의 위대성은 퀴즈라는 게임의 양식에 자말의 인생사와 급격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인도의 변화상을 한 사발에 제대로 풀어 넣어 관객이 한 방에 후루룩 마셔 버릴 수 있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플롯이 워낙 잘 되어 있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책을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 간편하게 '후루룩' 마실 수 있게 한 덕분에, 그 사발 속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고 들이키는 관객도 꽤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냥 마셨어도 맛만 있었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재료 각각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훨씬 더 음식 맛을 즐길 수 있었겠죠.

예를 들어 자말의 직장은 다국적 기업의 콜센터입니다. 영미권의 수많은 대기업들은 국내 고객들을 상대하는 콜센터도 인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건비가 싸고 영어 사용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이죠(한국 기업들의 콜센터도 상당수가 연변 지역에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건너에서 자신들의 컴플레인을 처리한다는 것은 고객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죠. 그래서 이들은 전화를 걸어 오는 고객들과 같은 지역에서 거주하는 척 하기 위해 '연기하는 법'까지도 교육을 받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정경이 꽤 실감나게 묘사됩니다만, 이런 정황을 모르는 분들은 '쟤네 뭐하는 거야?'라고 어물어물 넘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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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뭄바이 시내에 쑥쑥 올라가고 있는 고층건물과 그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빈민가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니 보일의 시선을 향해 '세계화 속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평자가 대니 보일의 영화를 이 한편밖에 보지 않았다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최소한 '트레인스포팅'에 그려진 스코틀랜드만 봤더라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비치'에 그려진 태국의 서구 관광객들을 보면, 현대 인도의 우스꽝스러운 모순들을 들춰내는 대니 보일의 손길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구와 동양, 개발과 미개발 사이를 자유자재로 쑤시는 '대니 보일식 인류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퀴즈 얘기를 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이 퀴즈의 방식은 그야말로 운과의 싸움입니다. 복수의 출연자가 있고, 출제된 총 20개의 문제 중 10개를 맞추는 것과 혼자 출연해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10개의 문제를 모두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주제나 범위도 없이 무차별로 주어지는 10개의 문제 중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건 정말 하늘이 돕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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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퀴즈 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대개는 자신의 상식 수준이 일반인들보다는 꽤 높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보면 퀴즈왕이나 일반인이나, 그 차이는 고등어와 참치 정도쯤이나 되려나요. 태평양 전체를 기준으로 할때 고등어 한 마리와 참치 한 마리의 비중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포맷의 퀴즈는 절대적으로 운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식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제작자들은 문제의 수준을 유치할 정도로 낮췄습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수의 참가자가 몰리고, 진짜 운은 그 많은 출연자 중에서 선발돼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느냐에서 먼저 시험을 받습니다. (영화에서 자말은 콜센터에서 일한 바람에 전화 신청에서 당첨되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참가 신청자 수가 어마어마할텐데 어떻게 자말이 거기 나갈 수 있느냐'는 비판을 피하자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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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자말이 비정상적으로 문제를 잘 맞추는 바람에 경찰까지 동원돼 조사를 벌인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 영화 속 퀴즈 쇼의 문제들은 초보 수준입니다. 세계 관객들은 모르지만 인도인에게 '라마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이라는 문제는 '환웅의 명에 따라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은 식물은' 수준의 문제라고 봐야겠죠. (아무리 자말이 힌두계 아닌 이슬람계로 묘사돼 있다 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겁니다.^)

게다가 마지막 문제. 2천만 루피가 걸린 마지막 문제 치고는 지나치게 쉽지만, 이건 퀴즈 참가자들의 심리를 아는 연출입니다. 누구에게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찾아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지식의 단편이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 격인 로씨니의 오페라 제목이 뭐더라' 하고 생각만 하고, 찾아 보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그 문제가 결정적일 때 딱 출제됩니다. 이건 퀴즈인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죠. 알았다가 잊어버린 거라면 더 죽을 맛입니다.

아무튼 마지막 문제를 앞둔 자말의 행태는 퀴즈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는 퀴즈인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 모든 퀴즈를 로또와 동일시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어떤 만행인지는 차마 밝힐 수 없으니 영화를 보시길). 영화의 맨 앞부분에서 대니 보일은 관객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네 개의 보기는 '1. 사기를 쳐서   2. 운으로    3. 천재라서   4. 운명이니까(혹은 대본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입니다. 이 네 개의 보기 중 어느 것이 답인지 알려 주기 위한 장면이라고나 할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역시 영화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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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방황했던 대니 보일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특기인 유머감각은 더욱 살리고, 치기 어린 비판의식은 매끄럽게 다듬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솜씨를 자랑합니다. 캐스팅상의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자말 역의 데브 파텔이 아무리 봐도 빈민가 출신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아니나 다를까, 역시 영국 출신의 인도계 배우더군요), 뭐 영화의 흥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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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자말이 풀어가는 문제의 답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말이 생존을 위해 현장에서 배운 것이라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감동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인생에서, 누군가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어렵게 배운 것들'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자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판타지적 성격을 덮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퀴즈 쇼와 조명을 이용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혹시라도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상이 그동안 편애해 왔던 묵직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분이라면 미리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분이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치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단 퀴즈 쇼 묘사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야구 영화에서 야구 경기 묘사가 엉망인 것과 비슷한 비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대다수 관객들에겐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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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제의 답 중 하나인 인도의 톱스타 아미타브 바흐찬은 사실 인도판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오리지널 사회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슈와라 라이의 시아버지이며 자신, 아내, 아들, 며느리까지 모두 인도의 톱스타인 연예계 명문가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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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참, 이 장면에서 * 역으로 동원된 건 초콜릿과 땅콩 버터라는군요. 이 정도면 그리 심한(?) 아동 학대는 아니라고 봐도 되겠죠?




** 예전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아역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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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길 바라. 나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을거야." 가끔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대사지만, 현실에서의 이 말은 주로 "이제 네가 지긋지긋해"라는 말의 '고운 말'로 사용되곤 합니다. "어딘가에 네 짝이 있겠지만 난 아니다"라는 뜻이죠.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첫번째 시사회는 다른 바쁜 일로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했죠. 첫번째 사람에게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냉철하게 보고, 특히 이런 멜러 영화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후배였죠. 그런데 "나쁘지 않다"는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두번째 사람에게 물었을 때엔 놀랄만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람은 업계에 종사한지 10년이 넘은 노련한 여자 관계자. '어땠냐'고 묻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끝나고 여자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자들이 눈이 벌겋더라. 몇몇은 그때까지도 훌쩍거리고, 내가 들어가니까 다들 민망해하면서 시선을 피하던 걸." 다른 여자 후배 기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나도 좀 찡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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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어떤 영화 제작자도 기자 시사회의 반응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객들보다 냉정하기 때문이죠. '가문의 영광'도 기자 시사회때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정준호 등 배우들이 무척 불안해 하자 제작자는 "야, 이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야(?)^^. 진짜 반응을 보려면 일반 시사회때 봐야 돼"라고 안심을 시켰다는군요. 그리고 이 영화는 실제로 '터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자들도 울었다니, 관심이 안 갈 수 없는 얘기더군요. 그래서 부리나케 영화를 봤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뮤직비디오와는 많이 다릅니다)

케이(권상우)와 크림(이보영)은 고교시절부터 단짝처럼 지내던 사이. 서로 부모 형제 없이 외톨이인 둘은 케이의 부모가 남긴 집에서 남매처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다 케이는 라디오 PD가 되고, 크림은 작사가가 되죠.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케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바로 옆 스튜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치과 의사 닥터 차(이범수)에게 크림이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닥터 차에게는 집안에 맺어준 약혼녀(정애연)가 있습니다. 케이는 약혼녀와 닥터 차를 헤어지게 해서라도 크림이 닥터 차와 결혼하게 해 주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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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었을 때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지는 줄거리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와 맺어주려고 애쓰는 남자?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남자가 불치병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물론 스포일러도 아닙니다. 둔한 분들도 영화를 10분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치병이라도 이런 진행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성패는 자명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그럴법하게 여겨지게 포장되어 있다면 성공이고, 아니라면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겠죠. 과연 원태연 감독은 이 한편의 뮤직비디오같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했을까요.

아마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는 다들 비슷할 겁니다. 권상우 주연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심 저의 첫번째 반응은 '이 뭥미?'였습니다. 영화가 원태연 시인의 영화 데뷔작이 될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권상우가 또 가시밭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권상우가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을 기회가 무산된 직후라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검증된 4번 타자를 빼고 무명 신인을 대타로 내는 감독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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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원감독은 괜히 스타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인답지 않게 노련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케이의 시선으로 사건의 진행을 죽 서술해준 다음, 이번엔 크림의 시선으로 같은 사건에서 케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정리해줍니다. 마무리는 닥터 차의 몫입니다.

케이의 시선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상당히 답답해합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 뒤로 크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왠지 이 이야기를 납득해야만 한다는 묘한 설득을 당하게 됩니다. 아, 그렇다고 말이 안 되던 스토리가 갑자기 말이 된다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걸 꼭 짚어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되는 겁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원태연 시인, 아니 원감독의 설득력은 본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 저런 스토리가 실제로도 가능할거야'라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얘기가 사실이었으면(혹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라고 기대(또는 개입)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죠.

일각에선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양치질이라고 답하는 권상우의 말("남들이 안 볼 때엔 양치질 안 하세요?" - 언제나 하고 있다는 뜻) 같은 감각적인 대사가 원감독의 장점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 이상의 기획력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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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동안 수많은 액션 느와르에 출연했지만 아직 권상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이런 식의 감성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편없는 진행과 플롯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히트한 것은 결국 권상우의 얼굴이 그런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극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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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도 어느새 늘어난 주름살이 좀 아쉬움을 남깁니다만 탄탄한 기본기를 이용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범수 역시 흠잡을 데는 하나 없지만 역할이 너무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뮤직비디오에서 더 큰 활약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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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을 배우는 정애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4년 영화 '아홉살 인생'에 피아노 선생님 역으로 출연했을 때부터 '흔치 않은 느낌의 좋은 마스크'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세월이 꽤 흘렀군요. 이 영화에서는 쉬크한 느낌의 사진작가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 냈습니다. 단지 이런 마스크의 캐스팅 범위가 한국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커플을 괴롭히는 부잣집 딸 이미지로 너무 한정되어 있는 듯 해서 좀 더 넓은 도전을 위해선 본인의 노력도 꽤 따라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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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배우로는 가수 이승철 역의 이승철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과 함께 일했던 관록의 배우 출신답게 매우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어쨌든 누가 뭐래도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한폭의 뮤직비디오'같은 영화입니다. 이런 스토리에 진력이 나고 몸서리가 쳐 지는 분들도 많겠지만, 같은 재료라도 주방장의 솜씨에 따라 사뭇 달라지는 법입니다. 제가 보기에 주방장의 솜씨는 A급입니다.

 

화이트데이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함께 할 일이 필요한 연인들이라면 매우 좋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40대 이상의 관객들이라면...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p.s 주제가는... 빨리 연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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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온 세상이 기억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 그런 그에게 전혀 뜻밖의 인물로부터 인터뷰 제의가 들어옵니다. 인터뷰 제의를 해 온 사람은 장난스러운 토크쇼 진행으로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 프로스트(마이클 쉰이 연기합니다).

지구 최강국의 대통령으로서, 그 이전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의 부통령으로 10여년간 세계 정세를 좌우했던 노 정객 닉슨(프랭크 란젤라)은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떳떳함을 국민들에게 해명하고, 재기의 기회를 얻으려는 욕심에 인터뷰를 수락합니다. 프로스트 정도의 풋내기는 충분히 가지고 놀 수 있다는 확신 또한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뒤늦게 이 인터뷰가 자신의 방송 인생을 좌우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전력을 다해 닉슨을 인터뷰합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닉슨 또한 유감없는 관록으로 여기 맞서죠. 과연 두 사람의 커리어가 달린 이 인터뷰는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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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Frost/ Nixon)'은 처음 시놉시스만 들어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박진감을 보는 이에게 제공하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인터뷰라는 것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치열한 대결인지를 보여줍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한때는 1주일에 6회씩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런 일상적인 인터뷰들과, 상대방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있고 준비할 자료가 있는 인터뷰와는 레벨이 다르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터뷰는 데이비드 프로스트라는 한 방송인의 인생을 바꿔 놓은 사건이자, 미국 저널리즘의 역사에 남을 경험입니다. 이 인터뷰 이전의 프로스트는 언제 프로그램이 편성에서 밀려날 지 알수 없는 고만고만한 수많은 방송 진행자 중 한명이었지만, 닉슨의 본질을 꿰뚫은 이 인터뷰 이후 세계적인 셀러브리티가 되고, 영국 왕실로부터 OBE를 수여받고, 부와 명성을 한번에 꿰차게 됩니다. 시장의 논리가 미디어 업계까지도 지배하는 영-미의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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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라면 여러가지로 이런 과정이 힘들어 질 겁니다. 닉슨 정도의 명망가가 3대 지상파 네트워크도 아닌, 프로스트같은 독립방송업자(혹은 군소 외주 프로덕션)의 인터뷰 제의에 응할 리도 만무하고, 인터뷰를 한들 콧대가 설악산 대청봉인 지상파에서 그 프로그램을 거액을 내고 사서 방송해줄리도 없습니다("돈을 달라구? 공짜로 틀어달라고 빌어도 틀어줄까말깐데...").

뭐 얼마쯤 실비를 낼 수도 있겠지만, 프로스트처럼 이것 '한방'으로 갑부가 되는 건 꿈도 꾸기 힘든 얘깁니다. 방송사에 적을 둔 사람이 이런 성과를 거둔다면 간부 승진 정도는 기대해도 좋겠지만 외부인이라면 뭐 그냥 유명해지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겁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미국 얘기고, 프로스트와 닉슨은 동상이몽을 품고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초반은 닉슨의 페이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닉슨에게 혐오감을 품고 있어 "절대 손을 내밀어도 악수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던 자료 조사원이 닉슨과 대면하는 순간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며 악수에 응하는 모습입니다. 그만치 대통령의 포스가 강했다는 것이죠. 닉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게 자신의 논리로 인터뷰를 리드해갑니다. 과연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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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풍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과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감독 론 하워드라는 이색적인 조합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스포츠 영화의 문법으로 풀어갔다는 점에서 일단 가장 눈길을 끕니다.

수많은 스포츠 영화들은 누가 봐도 별볼일 없는 패자(underdog)이 절대적인 강자를 만나 승리하거나 승리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스토리를 통해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 냅니다. 격투기라면 '록키'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일 것이고, 기록 종목이라면 '쿨 러닝'도 이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겠죠. 다윗과 골리앗의 격돌 이후 수없이 많은 이야기꾼들이 이 구도에 도전했지만 성공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로 든 두 작품은 이 구도가 주는 상투성에서 최대한 벗어난 걸작으로 꼽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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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에서 방송 인터뷰, 혹은 그 가운데 벌어지는 토론은 스포츠와 마찬가지입니다. 백전노장인 챔피언 닉슨과 야심만만한 무명 도전자 프로스트가 카메라가 지켜보는 링에서 자신의 온 지혜와 힘을 다해 겨루는 것이죠. 인터뷰는 본래 격투기와 비슷합니다. 격투기중에선 온몸을 다 쓰는 이종격투기보다는 복싱의 특징을 갖고 있죠.

이런 구도의 영화라면 자연히 도전자가 철옹성같은 챔피언의 가드를 뚫고 한방을 날리는 순간, 관객은 환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론 하워드 감독은 그런 관객의 속성을 꿰뚫고 있죠. 그래서 별다른 액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 vs 닉슨'은 박진감넘치는 볼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록키'의 사운드트랙이 울려퍼져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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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과 실제 인터뷰를 영화화한 것이므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바로 데이비드 프로스트의 오늘날이죠. 저 인터뷰를 통해 스타가 된 프로스트는 현재 알 자지라 방송(!)의 영어 채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지난번 '발퀴레'관련 포스팅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 연주와 이스라엘-아랍 청소년의 공동 오케스트라 활동 등에 대해 물어보던 토크쇼 영상을 퍼온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쇼의 진행자가 이 '프로스트/닉슨'의 실제 주인공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입니다. 쇼의 정확한 제목은 'Frost over the world'입니다.






또 하나 개인적으로 주목한 인물은 샘 록웰이 연기한 제임스 레스턴 주니어입니다. 언론계 전공자나 종사자들이라면 친숙한 이름이죠. 뉴욕 타임즈 편집국장을 역임한 20세기 최고의 미국 언론인으로 불리는 제임스 레스턴과 이름이 같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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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첫 부분에 "아버지가 닉슨 하야 방송을 보라고 전화해서 봤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 아버지가 바로 제임스 레스턴이었던 겁니다. 영화 뒷부분에서 레스턴 주니어가 닉슨과 대면하고 서로 소개하는 장면에서 "제임스 레스턴"이라는 이름을 댔을 때, 닉슨이 "그 제임스 레스턴과 어떤 관계냐"고 물어봤더라면 더 자연스러울 걸 그랬습니다. 닉슨이야말로 아버지 레스턴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죠. (뭐 영화의 흐름상 거기서 그런 군더더기를 달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보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짧게 느껴집니다. 그만큼 론 하워드는 이 영화에서 관객의 호흡을 앞지르는 신공을 발휘합니다. 닉슨의 하야 원인이 된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 또한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두 파이터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훌륭한 스포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듯 즐기면 어느새 122분짜리 영화가 끝나 있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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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어느날, 미국을 보호해온 히어로 집단 왓치맨 Watchmen의 일원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괴한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역시 왓치맨의 한 사람인 로어셰크(재키 얼 헤일리)는 이 사건 뒤에 만만찮은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지만 이미 현역을 떠나 은퇴해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그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왓치맨의 대표격인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구 소련의 군비 확장으로 인한 인류 말살의 위협을 막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 세세한 인간사에 관심을 돌리려 하지 않죠. 또 전 사회적으로도 핵전쟁의 불안감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코미디언의 죽음은 쉽게 묻힙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멤버 오지맨디아스(매튜 굿)의 살해 시도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물러나 있던 와치맨 멤버들은 현역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듯, 음모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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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Watchmen'은 지금까지 보던 슈퍼 히어로 영화들 중 가장 현실과의 경계가 엷은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 예를 들어 '배트맨'이 고담이라는 뉴욕을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하는 등 어느 정도 현실과 코믹스(혹은 그래픽 노블) 사이에 선을 그어 놓고 시작하는 반면, 왓치맨은 적극적으로 현실을 끌어들인 대체 역사물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진짜 역사와 '왓치맨' 사이의 거리는 월남전을 계기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2차대전의 승전과 케네디 암살까지는 실제 역사와 차이가 없죠. 하지만 월남전에 초인중의 초인 닥터 맨해튼이 투입되면서, 미국은 승전국이 되고 지긋지긋한 월남전의 악몽에서 벗어납니다. 승리한 대통령 닉슨에게 워터게이트 사건 따위는 일어나지 않고, 닉슨은 5선까지 성공하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군림합니다.

닥터 맨해튼과 왓치맨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실 너무도 자명합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누가 봐도 미국을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 놓은, 군부를 포함한 국가 지도 세력에 대한 은유입니다. 특히 그 핵심에 서 있는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최강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닥터 맨해튼입니다. 닥터 맨해튼이라는 이름에서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연상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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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또 다른 분위기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지속되는 한 핵무기의 전능한 파괴력은 인류의 말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지미 카터의 민주당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한때 군축과 데탕트가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극우파인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다시 한번 전쟁 발발의 위기감을 부추깁니다.

어느 쪽이든 핵전쟁을 일으키면 양쪽 모두 파멸을 면치 못한다는 위기감, 즉 '공포의 균형'이 세계 정세에서 유일하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이론이었습니다. 서유럽에서는 미국의 핵 배치에 반대하는 데모대가 '죽음보다는 공산주의가 낫다'는 구호를 외쳤고, 미국은 여기에 맞서 '공산주의는 죽음이다(스탈린 치하에서의 대숙청을 예로 듭니다)'라는 프로파간다로 맞서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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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왓치맨'은 바로 이 시기, 핵무기를 알게 된 인간이 스스로 인류의 미래를 말살시켜 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비관이 팽배해 있던 시절의 소산입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불안감은 꽤나 기우였던 셈이죠. 이 작품이 나오고 몇년 가지 못해 무리한 군비경쟁의 결과로 소련은 패망해 지금의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민족 국가로 흩어졌고, 엄청난 규모의 핵군비는 대량으로 해체됐습니다. 일부 남은 자투리 핵탄두가 중앙아시아의 암시장을 떠돈다는게 가끔 액션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쓰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왓치맨'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핵전쟁의 공포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건 뭥미'라는 반응을 낳을 만도 합니다. 물론 80년대의 세계 정세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보면 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40대 이상의 구세대가 보면 재미있을만한 요소도 꽤 있습니다. 리처드 닉슨을 비롯해 미국 극우파의 상징인 패트 뷰캐넌, 크라이슬러 자동차 신화의 주역 리 아이아코카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실명으로 출연 - 물론 닮은 대역이 -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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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인정하듯 잭 스나이더의 손맛은 여전합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렬한 액션과 깔끔한 화면, 그리고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영상은 충분히 현대 관객들의 수준에 맞춰진 것이죠. 사실 이 영화의 폭력성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높지만 이미 1분에 50명씩 테러범들을 쏘아 죽이는 '둠'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자라난 세대에게 이 정도의 영상으로 폭력성을 말한다는 건 농담에 가깝죠.

그렇다고 해서 스나이더의 원초적 폭력성을 옹호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생각하지 마라, 그냥 즐겨라'라는 수준에서 조금도 더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영화의 철학적 메시지나 심오함에 대한 논설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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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는 '어쩌면 스포일러'인 내용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영화를 보겠다는 분들은 건너뛰시고, 영화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신 분은 마지막 문단만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원작의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 가장 난감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의 결말 부분입니다. 음모의 전모가 밝혀지는데 그 음모의 내용에 주인공 중의 주인공인 닥터 맨해튼은 너무도 쉽게 수긍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닥터 맨해튼은 누가 뭐래도 신의 캐릭터입니다. 신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그에게서는 인도-힌두 신화 혹은 불교의 영향이 짙게 느껴집니다. 절대적인 평화를 기원하기도 하지만, 인간사의 사소한 문제에는 이미 초탈해버린 면이 그렇습니다. 전체 우주의 차원에서 인류 하나가 멸종하거나 말거나 그에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화성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수백미터 높이의 구조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이 영화의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있는데 핵전쟁 따위를 고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앞부분에 고의적으로 "소련의 핵탄두는 5만개나 된다. 닥터 맨해튼이라 해도 그 모두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99%를 막는다 해도 나머지 1%만 목표에 적중하면 인류는 끝"이라는 대사가 들어 있지만 영화의 다른 부분에서 보여주는 닥터 맨해튼의 능력은 5만개 아니라 500만개의 핵탄두가 날아온다 해도 그걸 모두 초콜렛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쉽게 러시아 어딘가로 날아가 소련의 전략 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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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든 것을 초월해 있던 듯한 닥터 맨해튼은 한편 자신의 내면에서는 초등학생 수준의 번민과 판단 실패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가 결론적으로 선택하는 내용은 관객을 아연실색하게 합니다. 모든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편의에 의해 주인공이 지나치게 희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강대한 힘과 거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판단력과 지성, 이 두가지를 겸비한 닥터 맨해튼이 바로 미국의 현주소에 대한 비판이라면 그건 납득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결론에서는 서구인의 정신적인 취약성이 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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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팬들이라면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 '왓치맨'에서 어떤 철학적인 심오함이나 깊이를 찾기는 힘듭니다. 그저 남아 있는 것은 80년대 한때 유행했던 인간의 판단력에 대한 혐오 정도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지금에 와선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 어디서 이 작품의 위대함이나 통찰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왓치맨'이 주는 교훈은 한 시대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통찰은 10년도 못 가 뒤집힐 수 있다는 데 대한 경계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왓치맨'이 그 당시, 혹은 1990년대쯤에 영화화됐다면 이보다는 훨씬 설득력있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무엇이 이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어 줄까요. 그저 원작을 재미있게 보았던 팬들의 동호회용 영화로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뿐입니다.

잭 스나이더의 팬들이라면 여전한 파괴와 살육, 그리고 입가심으로 슈퍼 히어로들의 정사신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걸로 만족하실 분들이라면 얼마든지 보셔도 좋겠죠. 하지만 오랜만의 슈퍼 히어로 무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데이트를 생각하셨던 분들이라면 다른 영화를 고려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p.s. 마지막으로 원작 팬들께 질문:

1. 코미디언이 실크 스펙터를 강간하려 할 때 제압하는 캐릭터는 누굽니까?

2. 영화에선 케네디 암살의 범인이 코미디언으로 보이던데, 원작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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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잘 알려진대로 '에일리언 3'에서 '세븐', '파이트 게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묵직한 작품들을 남겨왔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서 만든 듯한 '조디악'에서는 좀 달랐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보는 사람이 눈치채든 그렇지 않든, 언제든지 과감한 시각적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 그가 시도한 영화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자에 대한 거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비주얼만 요란한 영화들을 가리켜 'CG로 떡칠을 한 영화'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죠. 하지만 핀처는 'CG로 떡칠을 하건 말건' 그건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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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차대전 승전 기념 축제가 열리던 1918년 어느날, 한 소년이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곡절 끝에 양로원 앞에 버려진 아이는 선량한 도로시 부부를 만나 벤자민(나중에 브래드 피트가 되죠)이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잘 자라납니다.

7세에서야 걷기 시작한 벤자민은 십대의 어느날, 예쁜 소녀 데이지(뒷날의 케이트 블랜칫)를 만납니다. 데이시 역시 노인의 모습인 벤자민을 낯설어하지 않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그로부터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과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는 데이지의 평생을 가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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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입니다. 남들이 겪는 세월을 거꾸로 가는 사람. 1922년에 나온 원작과 영화의 얼개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의 기발한 소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거의 3시간에 걸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는 '남과 나의 다름'에 대한 비유입니다.

만약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는 살아가면서 어느 세대와도 진정한 유대나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유소년기에는 마음이 젊은 데 비해 몸은 늙어서 어느 한 쪽과도 어울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노년기에 접어든다면 젊은 겉모습 때문에 양쪽 모두와 어울리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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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일하게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를 잊을 수 있는 시기는 인생의 한 복판, 중년일 겁니다. 그때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외모와 나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이 짧은 시기를 위해 앞의 반생을 보낸 그는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모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셈입니다.

이런 남과 다름에 대해 벤자민 자신은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좌절하지도 않죠. 거기에 연연하지도 않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남의 시선 따위를 의식할 틈은 그에겐 없습니다.

물론 '벤자민 버튼...'은 이런 벤자민이 느끼는 본질적인 슬픔을 그때마다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미덕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외양을 보고 그를 판단하지만 역시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그 다름이 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개별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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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한폭의 동화에 다른 영화 한 편이 겹쳐집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를 스타로 만든 '포레스트 검프'죠. 포레스트 검프가 남과 다른 부분이 지능이었다면 벤자민 버튼의 다름은 남들과 반대인 외모입니다. 하지만 둘 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둘 다 자신들이 왜 남과 달라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런 신세 한탄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남들이 보기에 '열등한 인자'라고 할만한 것들을 타고 났지만 스스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죠.

검프와 버튼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생의 한 사람, 진정 사랑한 여인의 의미입니다. 검프에게 그 여인은 어린 포레스트만 남겨줄 뿐, 평생을 아쉬움 속에서 지내다 사라지지만 그나마 버튼은 반생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검프와는 달리 이들 커플은 처음부터 인생의 한 시기 외에는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이죠. 이들 커플이 아이를 낳고 해로하기에는 세상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정상적으로 점점 늙어가는 아내와,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들보다 더 젊어질 남편이 함께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동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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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스의 성숙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벤자민의 노년에 대한 부분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벤자민(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과 그를 바라보는 데이시의 모습은 오랜만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벤자민 버튼의 모든 세대를 브래드 피트 혼자 연기하지는 않습니다. 5명의 다른 배우들이 각자 연령대에 맞는 역할을 연기합니다. 물론 피트의 특수분장이 한몫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특히나 50-60대 정도로 분장한 피트의 모습은, 물론 지금까지도 몇만번 들은 얘기겠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와 너무나 흡사해서 감탄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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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에서 유일한 아쉬움은 케이트 블랜칫이 예쁜 여자 역으로 나온다는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력으로 자기 몫을 합니다. 틸다 스윈튼은 여전히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신비로운 역을 맡았고, 줄리아 오몬드는 결국 1990년대 한때의 각광이 거품이었음을 증명하더군요.

몇몇 평론가연하는 기자들이 '그래도 좀 지루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다', '밋밋했다' 등의 관점을 내놓고 있던데 한번 정말 그런지 직접 겪어 보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그런 말에 관람을 포기했다가 진짜 좋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는 매우 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벤자민의 인생 역정에 자신의 연령대를 투영해 보는 것일 듯 합니다. 과연 저 나이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혹시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거나 너무 미숙해서 동년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지금의 나는 과연 나의 동세대와 얼마나 어울리고 있을까. 이런 자문자답과 함께,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해야 할 몫은 충분히 다 한 셈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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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아기가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샤일로입니다. 이 영화에는 뒷부분에 벤자민-데이지 사이의 딸 역으로 잠깐 출연합니다. 물론 1년 전 모습이니 이 사진보다 훨씬 어려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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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흥행의 최대 강적은 일단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영화 속에서는 슈타펜버그라는 미국식 발음으로 나옵니다. 앞으론 슈타펜버그로 통일합니다)의 음모가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슈타펜버그와 그밖의 음모가들이 꾸민 1944년 7월20일의 히틀러 암살과 쿠데타 시도가 실패했다는 건 모르더라도, 히틀러가 베를린 함락 직전인 1945년 4월30일 벙커에서 정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는 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죠. 정확한 날짜까진 모르더라도 최소한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미 이 영화의 결말은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경우는 한둘이 아닙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고 트로이에서 아킬레스와 파리스가 모두 죽는다는 것 역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최근들어 줄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이런 영화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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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작전명 발키리'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먼저 줄거리입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왼쪽 눈과 오른손, 왼손의 손가락 2개를 잃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은 승전의 가망은 없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를 지켜보던 폰 트레스코프 장군(케니스 브라나)과 노장 벡(테렌스 스탬프) 등 반 히틀러 음모가들은 대령을 실제 작전 책임자로 영입하죠.

이들은 베를린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예비군이 베를린 지역을 계엄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발키리(발퀴레) 계획을 이용, 히틀러를 암살한 뒤 베를린을 접수하고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꾸밉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현장에서의 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틀어지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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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슈타펜버그 이전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히틀러도 암살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계획을 변경했고 자신의 동선을 쉽게 눈치채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위협을 뚫고 히틀러 암살 직전까지 갔던 1944년 7월20일의 음모는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만약 이들의 거사가 성공했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겠죠. 독일이 아직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서 나치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부가 휴전 협상에 들어갔다면 최소한 동서 분단은 막을 수 있었을테고, 냉전시대의 양상도 상당히 크게 변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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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유럽에서의 전쟁을 마감하고 태평양 쪽으로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게다가 전후에 세워진 독일 정권을 공산주의의 서진을 막는 보루로 이용한다면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는 휴전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히틀러를 보호했고 수많은 위험을 넘어 살아남은 히틀러는 결국 조국을 미국과 러시아군의 발길 아래 짓밟히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9개월 동안 독일 전토는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고 나라는 44년 동안 분단되는 고통을 맛보게 됐죠. 지금도 부강한 독일을 보면 그게 그거랄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 70년대의 시각에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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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 반드시 흥미로운 사건이란 법은 없죠. 더구나 이런 음모와 모의는 대개 담배 연기 속에서 남자들끼리의 은밀한 대화로 이뤄집니다. 스크린을 채울만한 볼거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엑스맨' 시리즈를 만든 흥행의 귀재 브라이언 싱어가 이걸 모를 리는 없죠. 당초 싱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앞부분의 아프리카 전투 신도 없는, 저예산의 암울한 영화였지만 톰 크루즈가 스타펜버그 역에 관심을 느끼면서 규모가 갑자기 커져 버린 영홥니다. 그런데도 흥행에서도 제법 성공을 거뒀죠.

싱어는 다 아는 결말 대신, 음모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좌절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의 영상이 보여준 것은 쿠데타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분쇄되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쿠데타를 통해 본 인간의 단면'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군들과 장교들은 총 대신 전화기를 붙잡고 전투를 벌이지만, 이 전투는 직접 몸을 날리는 싸움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박진감을 제공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영화도 있습니다.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모든 영화가 방 하나 안에 앉은 12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하지만 결코 정적인 영화가 아니죠.) 그런 면에서 싱어는 자신의 재능을 다시 과시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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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작전명 발키리'의 운명은 관객이 이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매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 관객들은 미국 관객들에 비해 이 영화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제5공화국' 드라마를 한국 아닌 다른 나라 국민들이 재미있어 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예상을 뒤엎고 흥행에서도 꽤 성공한 것은 당연히 톰 크루즈의 힘일 겁니다. 슈타펜버그의 유족들은 "키가 너무 작다"며 불평했다지만 타고난 닮은 얼굴에 힘입어 크루즈는 배우로서 할만큼 했습니다. 아마도 목표로 했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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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의 매력은 아무래도 쿠데타라는 작업의 현실적인 묘사죠.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30대 이상의 한국 남성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를 광경은 바로 12.12일 겁니다. 어느 나라나 쿠데타라는 것이 일어나는 과정은 비슷합니다.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음모를 탐지해 방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어느 쪽에 가담하는 것이 좋을까 저울질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음모를 눈치챈 사람의 수에 비해 적극적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람이 항상 부족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누구라도 음모를 꾸미는 쪽이나 막으려는 쪽에 적극 가담하기 보다는, 음모의 결과에 관계없이 살아남는 쪽을 우선 선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냉엄한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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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정경이 매우 친숙합니다. 이미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두 차례 모두 쿠데타를 주도한 장군들은 대단히 관대했습니다. 쿠데타에 맞섰던 장군들 중 끝까지 항거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 걸 보면 말입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어쩌면 그 '항거'의 진실성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5.16 때에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까지도 '긴가민가'한 태도로 일관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작전명 발키리'의 홍보 담당자들이 왜 한국인에게 친숙한 5.16이나 12.12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초기에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영웅' 톰 크루즈가 나타나 나치의 잔당들을 쓸어 버리는 활극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관객들은 영화의 수준에 대대적인 실망을 했을테고 최악의 입소문이 돌았겠죠.

톰 크루즈를 한국에까지 데려온 것으로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했다고 판단했다면 참 안이한 생각입니다. 5.16이나 12.12를 마케팅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영화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좋은 편'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는 '나쁜 편'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상의 논의가 지루한 분이라면, '작전명 발키리'는 전혀 볼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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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7월20일의 음모로 인한 가장 유명한 피해자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원수(위 사진)일 겁니다. 롬멜이 이 음모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음모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롬멜의 유족들은 롬멜이 "이렇게 히틀러를 해치우면 전쟁을 끝내더라도 '내부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이길수 있는(!) 전쟁에서 패했다'고 주장하는 히틀러 광신도들로부터 역습을 당해 반역자로 몰릴 것"이라는 이유로 가담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독일은 1차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내부의 적 때문에 패할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우매한 군중의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히틀러는 1944년 10월14일 롬멜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공개 재판으로 가면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자살하면 전쟁 영웅의 지위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밀약이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에는 '혹시 롬멜일 지도 모르는' 장군이 아프리카 신에 등장했다가 죽을 뿐, 롬멜이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유명한 장군이 등장하면 주인공 슈타펜버그에게 몰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p.s.2. 잘 알려진대로 발키리(Valkyrie)는 북구 신화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혼을 천국 발할라로 인도하는 여신들입니다. 전통적으로 바그너 악극의 제목인 '발퀴레'라는 표기로 알려졌죠. 이를 굳이 '발키리'라고 쓴 건, 스타크래프트 유닛 이름을 사용해서 10-20대 관객들을 끌어들이려는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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