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뒤늦게 프레드릭 포사이스(1938-2025)의 부음을 들었다.

그를 문화적 멘토로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최소한 한국에선 지극히 드물 것 같다. 한국의 분위기에서 포사이스는 절대로 '순문학 작가'는 아니고,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페이퍼백 스릴러 작가 정도로 분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인생 최고의 작가 중 한명이다. 

가장 먼저 읽은 그의 작품은 1979년작 <악마의 선택 Devil's Alternative>이었다. 아직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구 소련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독립을 바라는 지하조직 요원들이 KGB 의장을 암살하면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동-서방의 균형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다. 소련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 이익이 되는 쪽과 당시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쪽의, 인류 역사를 건 대결이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수준에서나 간신히 해외 문물을 접하고 있던 1980년대 한국 고교생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거대한 충격을 던졌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미국과 영국을 축으로 한 세계 정보망, 소련의 권력 구조, 흑해와 지중해, SR-71의 비행, 루비앙카 지역의 KGB 본부 묘사를 보며 도대체 이 사람은 소설가인가, 아니면 신인가 감탄해가며 읽었다. 작품 속에 나오는 배 이름 '프레야(Freya)' 호를 '플레이어'라고 번역한 것을 보면 영어 원본은 보지도 못한 사람이 일본어 중역을 한 것이 분명했지만, 당시로선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소설 때문이었다. 지도를 찾아 보니 실제 있는 나라(물론 소련 연방 내의 한 공화국으로)였고, 무소르그스키 때문에 들어본 키에프라는 도시가 바로 우크라이나의 수도였다. 이 소설 때문에 지금도 우크라이나 국가의 첫 대목, '시츄 니에 우메를라 우크라이나' 라는 구절을 기억한다. '우크라이나는 죽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바로 이 구절이 떠올랐다. '우크라이나는 죽지 않는다'.  

뒷날 로버트 카플란이나 피터 자이한의 책에서 러시아라는 나라의 지정학적 입장을 서술한 부분을 읽으며,  포사이스가 '서쪽으로 독일과 폴란드 방향을 바라보면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탱크로 질주할 수 있는 평야뿐이라서'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심정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이 책을 읽어본 사람만 알겠지만, 2007년 서해안 석유 유출 사고 때에도 <악마의 선택>이 생각났다. '오염을 최소화하는 가장 빠른 방법'도. 


그 뒤로 포사이스의 작품들은 눈에 보이는 족족 읽었다. 이제는 상식이 된 '냉혹한 불사신 암살자'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는 <재칼의 날>은 또 다른 의미의 걸작이었고, <전쟁의 개들>, <오데사 파일>, <제4의 핵>도 멋진 작품들이었다. 역시 모든 작품들이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세계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들이었고, 우리가 늘 느끼는 세계의 이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물론 내게는 어느 작품도 <악마의 선택>을 넘는 충격은 주지 못했다. 

기자로서, 파일럿으로서, 또 한때 MI6의 정보제공자로서 겪은 생생한 디테일들이 책장을 뚫고 나오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주인공들의 치열한 대결은 물론이고, 마지막의 대반전은 또 얼마나 멋진가.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국 작가들은 대부분 스파이 관련 경력을 가진 것 같다. 존 르 카레, 그레이엄 그린, 서머셋 모옴, 로알드 달, 이블린 워... 스파이 업무가 스토리텔링 능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걸까. 혹시 제프리 아처나 줄리언 반스도 첩보 경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대체 왜 지금까지 <악마의 선택>이 영상화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재칼의 날>은 훌륭한 제작진과 에드워드 폭스라는 훌륭한 배우를 만나 영화로 성공했고, 얼마 전 에디 레드메인의 드라마 <재칼>로도 성과를 거뒀다. 나머지 작품들은 영상화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괜찮은 작품들이 나왔고, 그 덕분인지 쓰는 족족 많이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이 최고의 작품이 빠진 것인지.)



포사이스의 작품을 읽다 보면 감탄하게 되는 부분, 그가 단지 엄청난 디테일과 스릴을 살리는 방향에 특화된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심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의 문장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톰 클랜시가 그의 계승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미안하지만 클랜시와 포사이스는, 비록 원문으로 본 문장은 많지 않지만, 이 문장력 부분에서 너무나 격이 다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읽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포사이스의 솜씨를 보려면 간단히 그의 단편집 <면책특권>을 어떻게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영어 제목은 'No comebacks'인데 왜 저 한국어 번역본은 저런 제목을 선택했는지...).

10편 모두 정말 주옥같은 단편들이지만 <돌아오지 않는다>와 <제왕>은 특히 압권이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런던의 성공한 사업가가 가난한 퇴역군인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서 생기는 일, <제왕>은 은퇴를 앞둔 배불뚝이 아저씨가 아내와 함께 열대의 섬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우연히 바다낚시를 경험하면서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아마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대한 역대 최고의 패러디가 아닐까 한다. 이밖에 <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도 아일랜드에서 우연히 막노동을 하게 된 인도 유학생의 이야기인데, 아마 다른 앤솔로지를 통해 잘 알려진 작품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포사이스의 글쓰기에서도 참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만큼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확실히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 아무래도 현장감을 강력한 무기로 갖고 있던 작가다보니 나이들어 현장을 떠난 뒤로는 뭔가 생생함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맨하탄의 유령>같은 작품은 대체 왜 썼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대체 어쩌다 이 작품을 갖고 <오페라의 유령> 속편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물론 한창때의 작품 중에서도 실망스러운 작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본을 무대로 한 <은신처>는... 제아무리 천하의 포사이스도 이렇게 '모르는 나라의 모르는 정서'를 표한하는 것은 무리였구나 하는 생각을 주는 작품이었다. 

어쨌든 꽤 장수하다 가셨네요. 포사이스 옹, 마음의 양식을 풍성하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그런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읽을만한 작품들은 죄다 절판.... ㅠ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