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교토 3화] 아라시야마의 빛, 조잣코지(상적광사)의 첫인상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2025 교토 3화] 아라시야마의 빛, 조잣코지(상적광사)의 첫인상
오전 9시30분 경. 사가 아라시야마 역은 꽤 분주했다. 당초의 목표는 사가 아라시야마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그 유명한 도케쓰 다리를 보고, 거기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려는 것이었는데 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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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어집니다~

이 절의 이름이 기오지가 된 것은 기오라는 12세기 기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고, 이 기녀는 당대 일본 최강의 권력자였던 다이라 기요모리(1118-1181)의 첩이었다가 버림받아 비구니가 되어 이 절에서 만년을 보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런데 기녀가 비구니가 된다고 자기가 절을 짓고 자기 이름을 지었을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기오가 이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별 근거 없는 속설인 셈이고, 사실 이 절의 역사는 정확하게 밝혀진게 없다(팬들이 지어준 것인가...).
창건연대도 대략 헤이안시대 말, 그러니까 12세기 후반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대략 다이라 기요모리가 살았던 시절 언저리의 언제쯤이라는 얘기다.

다이라 기요모리는 이른바 겐페이 합전(源平合戦) 시대의 핵심 인물이다. 일본 역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대략 흐름을 따지면, 헤이안 시대에 이미 권력은 천황에게서 무사들에게 서서히 넘어가게 되고, 그 무가들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원씨(겐지, 미나모토씨)와 평가(헤이케, 타이라씨)가 최고 권력의 자리를 다투게 된다. 결국 여기서 이기는 원씨가 가마쿠라 막부를 창건하고, 이때부터 천황은 뒷방 신세가 된다...고 알고 있다.
겐페이 합전 당시에 다이라 기요모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세가 기울지 않았으나, 그가 죽은 뒤로 평가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결국 단노우라의 대결전에서 평씨 일문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소설과 전기로 후세에 전해졌고, 고바야시 마사키의 <괴담>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재가 되었다. 심지어 이 해역에 사는 게들의 등딱지에는 당시 죽은 헤이케 무사들의 원혼이 새겨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올 정도다.

아무튼 다이라 기요모리는 유명한 인물. 이때 헤이케는 사라지고 겐지의 세상이 되지만, 이 승자 겐지의 적통 호조씨는 또 애니메이션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의 내용대로 유력한 무가 아시카가씨(사실 여기도 겐지의 후손이긴 하다)에게 몰살을 당하고 권력을 빼앗긴다. 그러니 인간의 역사란, 승자와 패자란 참 부질없기 짝이 없다.

그건 그렇고, 기오지는 진심 안 왔으면 후회할 만한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이 사원의 핵심은 바로 이끼 정원.
봄 여름에는 이끼로 뒤덮인 녹색의 정원이 유명한데 여기에 단풍이 들면 적/녹 보색의 미친 조화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일단 이 이끼 위에 떨어진 단풍 낙엽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절집이나, 조경이나, 일단은 매우 소박한 편.

그러나 이 소박함이 바로 교토인들이 최상의 가치로 추구한다는 와비사비 わびさび, 侘び寂び)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문화에 대한 나의 이해 수준에서, 와비사비가 무엇인지를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완벽함이나 정교함을 추구하지 않고, 세월의 흐름을 쇠퇴로 보지 않으며, 꽉 채우기보다는 살짝 덜어낸 것, 완벽하기 보다는 어딘가 슬쩍 비어 있는 것을 더 높은 경지로 인정하는 그런 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련됨을 추구하는 일본의 공경귀족들이 조선의 막사발을 최고의 다기로 인정한 것도 이 와비사비의 미학에 충실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기오지의 정원은, 자로 잰 듯 정리된 가레산스이와는 전혀 다른 미학을 보여준다.

이 경내에도 대밭이 있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조경 덕분에 꽤 깊은 숲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깊은 나무그늘 때문에 이끼가 더 잘 자라는지도.
그리 넓지 않은 경내라 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휙 돌면 10여분에도 가능하.
하지만 그럴수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입장료의 힘인가...)

한국적인 개념으로는 절 구경을 왔으면 전각이며 불상도 좀 보고 해야 할텐데 애당초 그런 개념이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건물이며 전각은 별로 있지도 않고, 있어도 매우 소박한 초가 느낌. (물론 기오지가 그렇다는 얘기)

'이끼의 질감'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동영상으로 설명하는게 적절할 것 같다.
그야말로 카펫 같은 이끼


이렇게 단풍이 고운데도 단풍보다 바닥을 더 보게 되는 신기한 느낌.

그늘이라야 이런 느낌이 나겠지


누워 보고 싶다. 정말 새로운 느낌이라 형용하기 어려운.


아무튼 이렇게 묘한 질감의 절 기오지를 나섰다.

절 문을 나서면 또 다른 절... 이 많은 절을 다 구경하다간 그야말로 교토 귀신이 될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라시야마 지역을 대표하는 텐류지, 치쿠린, 도게쓰교는 모두 남쪽에 있다.

절 문을 나서니 작은 공터에서 아저씨가 기름에 지진 모찌를 팔고 있다.
이른바 교토의 대표적 간식이라는 요모기모찌. 요모기가 쑥이다. 한개 300엔.

아저씨는 양손에 장갑을 끼고 열심히 떡을 지지고 있는데, 돈을 어떻게 받나 했더니, 옆에 귀여운 접수원이 손을 내민다.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귀여운 V 포즈.

대략 할아버지와 손녀 느낌인데(뭐 늦둥이일수도), 집안 일손을 돕는 어린이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조잣코지 방향으로 다시 돌아 나와서, 치쿠린 가는 방향으로 접어드니

상당히 큰 연못이 나타난다.
시든 연꽃으로 가득 찬 연못도 묘한 느낌을 주는데, 연꽃이 한창 필 때 오면 이것도 대단한 장관일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여기저기 사진에서 많이 보던 치쿠린.
치쿠린이란 말 자체가 한자로 죽림을 뜻하는데, 여기서부터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단풍철의 교토 아라시야마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가능한 한 사람이 적게 보이려 찍었는데, 실제로는 인파 때문에 걷기가 어려울 정도. 그러니까 일찍 도게츠 다리, 텐류지 쪽을 구경한 다음 치쿠린을 통과해 조잣코지 등이 있는 북쪽 구역으로 넘어오는 인파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아까 사가 아라시야마에서 남쪽 문으로 나간 그 인파 아닌가.
사가 아라시야마 역에서 북쪽으로 길을 잡은게 다시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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