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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기 전에 검색을 했어야 하는데 쓰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이런 기사가 이미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뭐, 블로거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역시 기업들이 잘 하고 있군요.^^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0531000185 

사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62908030008344 이런 기사 때문에 헷갈렸단 말입니다. ㅜㅜ >>


KIA의 K-5, K-7이 판매 호조를 보이면서 KIA차가 K 번호를 고유 브랜드로 삼을 방침을 정한 모양입니다. 하위 차종인 포르테도 K-3, 그리고 고급 차종인 오피러스의 후속 모델이 K-9로 이름지어질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숫자로 차의 등급을 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BMW의 3, 5, 7 시리즈에서 따 온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미 삼성르노의 SM3, 5, 7이 써먹은 숫자이기도 합니다. 뭐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그 위의 숫자인 K-9는 '더 좋은 차'라는 이미지를 심는데 도음울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약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K-9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 때문입니다.


저는 차에 대해서는 전문가도 아니고,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도 사실 전혀 모릅니다. 자동차 담당 기자를 한 적도 없고, 작명 전문가도 물론 아닙니다. 그저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이 알고 있는 수준일 겁니다.

KIA차의 성능이나 제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름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있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 문제가 안 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만 팔 차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 이름이 '세계시장을 겨냥한(특히 북미 시장)' 것이라는 보도 때문입니다.

사실 K-9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영어의 canine이라는 단어입니다. 아주 널리 쓰이지는 않는 단어인 듯 하지만, 이런 뜻입니다.



발음은 K-9과 똑같은 '케이나인'입니다. 이때문에 이 단어가 쓰여야 할 곳에 영문자로 K-9을 쓰는 일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일종의 영어식 말장난이죠. 뭐 only 4 you 처럼 for를 써야 할 곳에 four를 쓴다든가, eye for eye(눈에는 눈)을 I4I로 쓴다든가 하는 거나 비슷한 거죠.

그런데 꽤 보편적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국내에도 개 훈련소 가운데 K-9이라는 표기를 한 곳도 있고, 군견이나 경찰견은 아예 거의 공식적으로 K-9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런 영화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사진만 봐도 뻔히 알 수 있지만 경찰견과 형사 제임스 벨루시에 대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SF 시리즈 '닥터 후'에 나오는 강아지 로보트의 이름도 K-9이죠. 물론 드라마의 시대가 바뀌면서 개 로보트의 모델은 계속 바뀌었지만, 이름은 항상 똑같이 K-9입니다.


(뭐 이 걱정을 하시는 분도 있다지만 이걸 외국 소비자들이 알 리는 없겠죠. 게다가 나쁜 이미지도 아닌 것 같고...^^)


결론은 K-9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개를 연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게 고급 차를 판매할 때 적절한 이름이 될지, 아니면 좋은 결과를 낳을 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솔직히 저같으면, K-7보다 고급인 차에 '개'를 연상시키는 이름이 붙어 있다면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미국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며칠 전에도 나눈 얘기지만, 스웨덴 영화 '개같은 내 인생'에서 '개같은 삶'이라는 건 현지 표현으로는 '아주 팔자 좋은 인생'을 뜻한다고 하는군요.^^ 어떤 특정한 표현이 그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로 통하는지는 제3자가 쉽게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물론 영미권에서도 머스탱이나 재규어처럼 동물의 이름을 붙인 차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개라고 안될 이유는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궁금한 것은, K-9이라는 이름을 정할 때 이런 요소들이 고려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KIA라는 회사 이름이 영어 약자로는 '전사자(Killed in Action)'를 뜻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K-9이든, canine이든,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요소들이 고려된 이름인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미국 생활을 하시는 분이나 미국 문화에 정통하신 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오피러스 후속 정도의 고급 차종에 K-9이라는 이름이 적당할까요?


P.S.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KIA 차를 폄훼하거나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KIA 관계자들의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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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의 스핀오프(히트한 전작의 기본 설정 중 일부를 따 와서 만드는 드라마. '전부'를 잇지 않기 때문에 '속편'과는 다릅니다)인 SBS TV '아테나' 첫회를 본방사수했습니다. 방송 전에는 은근히 걱정도 많았죠. 예상보다 사전제작의 진척이 빠르지 않다, 정우성과 수애의 존재감이 이병헌과 김태희만 못하다, 줄거리가 마지막까지 확정되지 않고 있다 등등... 그래서 '아이리스'의 히트를 잇기는 좀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회를 본 결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회에서 이미 '아이리스'의 완성도는 넘어섰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뒷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테나' 첫회의 완성도는 대단히 높았습니다. 기존의 '아이리스'에서 군더더기로 지목됐던 부분이 깔끔하게 제거됐고, 대작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첫회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해 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역시 추성훈이 있었습니다.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첫회를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면:

대통령(이정길)은 북한 원자력 기술의 핵심인 김명국 박사를 남쪽으로 데려오려 하지만 러시아 기관이 개입, 일본에서 김박사를 빼앗깁니다. 전 세계가 차지하고 싶어하는 김박사지만 해외에서 한국 정보기관이 작전을 펼칠 경우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결국 국가와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권박사(유동근)의 팀이 동원됩니다. 팀 구성은 권박사와 B1부터 B6까지 총 7명.

그러나 작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B5, B6가 각각 혜인(수애)과 손혁(차승원)에게 제거당하고, 작전은 위기에 놓입니다. 그래도 무리하게 작전에 들어간 권박사 팀은 결국 김명국 박사를 되찾지만 전원이 사망하고, 권박사 본인도 생포된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납니다. (이때 손혁이 왜 권박사를 살려 두었는지는 차후 복선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이 과정에서 손혁은 CIA 팀의 일원으로 이 작전에 개입했음이 드러납니다.



3년 뒤. 대통령은 김박사를 주축으로 한 신형 원자로 개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국정원의 외부에 NTS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초야에 묻혀 있던 권박사를 불러내 NTS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권박사는 거절하려 하지만 손혁이 미국 DIS 동아시아지부장이 되어 서울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막기 위해 나섭니다.

국정원 요원 출신인 정우(정우성)는 우연히 국정원 홍보팀에서 일하는 혜인을 보고 반해버리지만 혜인은 쌀쌀맞기만 합니다. 은밀히 권박사가 NTS의 지휘를 맡은 직후, 정우는 갑자기 미지의 해외 임무 수행을 위해 이탈리아로 파견되고, 거기서 뜻하지 않게 다시 혜인을 만납니다. (1부 끝)


대체 추성훈은 언제 나오냐고 하실 분들, 저 줄거리에서 손혁(차승원)과 격투를 벌이다 죽음을 당하는 B6가 바로 추성훈입니다.

추성훈의 등장은 차승원이 연기하는 손혁이 얼마나 신체적으로 터프한 인물인가를 설명해주는 데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추성훈이 격투기의 강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보면, 그 추성훈과 1대1로 맞붙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대인 격투에서는 손혁을 넘어 설 사람이 거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정은 이렇습니다. B6가 권박사 팀의 일원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손혁이 그가 팀에 합류하기 전에 미리 제거에 나선 것이죠. B6의 일터에 나타난 손혁은 그를 미행, 그가 들어간 화장실 앞에 '보수중' 표시를 걸고 안에 들어가 볼펜형 독침으로 그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만만찮은 B6는 그의 기습을 피한 뒤 역공을 가해 오죠. 그래서 호텔 화장실(?) 공간 하나를 박살내는 혈투가 펼쳐집니다.

사실 화장실은 격투를 벌이기엔 대단히 위험한 공간입니다. 미끄럽기도 하고, 사방에 단단한 변기와 세면대 등 도기들이 널려 있습니다. 거울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 '터미네이터3'에서 사이보그들이 대격돌을 벌이는 장소로는 적절할 지 모르지만 뼈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싸우기에는 너무 위험한 공간입니다.



물론 전투력이 사이보그급인 손혁과 B6는 변기를 박살내고, 거울 파편을 맞아 가며, 세면대에 내동댕이쳐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격전을 펼칩니다. 뭐 드라마다 보니 과장이 개입돼 있지만, 아무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실제 격투 장면만 추리면 채 4분이 안 되는 시퀀스이지만, 이 격투 신이 보여주는 힘은 압도적입니다.




이 장면에 앞서 수애의 멋진 니킥(물론 니킥은 턱에 맞아야 위력을 발휘합니다. 가슴에 부딪히는 니킥은 사실 공격으로서의 효용이 크지 않죠)이 등장하는 B5 암살 신도 있었지만, 1회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차승원-추성훈의 땀방울이 쏟아진 화장실 격투 신이었습니다.


이 신에서 발휘된 흥분은 곧바로 권박사 팀의 김박사 구출작전, 권박사-손혁의 자동차 치킨 게임으로 이어져 확실하게 시청자들을 손아귀에 쥐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물론 일부 여성 시청자들은 이 장면 언저리에서 "너무 잔인하다"며 채널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격투 신의 완성도는 '올해의 드라마 장면'으로 꼽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밖에도 주인공 정우성이 시작한지 40분이 지나서야 처음 등장하는 구성, 빠른 사건 진행, '비교적' 말이 되는 플롯(물론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이 '비교'의 기준은 당연히 '아이리스'입니다), 그리고 첫회에 보여준 수애의 매력 등은 '아테나'가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진행되다 보면 수애와 김태희가 비교의 대상이 되겠지만, 솔직히 말해 연기력 면에서는 비교하는게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특히 수애가 첫회에 보여준 양면성 - 잔인한 살인자와 흰 셔츠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여교사의 모습 - 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물론 '아테나'가 시청률에서 '아이리스'를 앞지를 것인가 하는 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죠. 1회만 놓고 볼 때, '아테나'는 좀 더 잔혹하고, 좀 더 세련되고, 좀 더 빠른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전체 시청자'가 그렇게 생각할지는 좀 더 두고 볼 문제입니다. 드라마의 장르에 무관하게 '어쨌든 한국의 모든 드라마는 멜로드라마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촌스러운 시청자'가 여전히 많이 있다는 점 역시 앞으로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만약 이런 요소들을 극복하고 첫회에 보여준 톤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아테나'의 업적이 되겠죠.


P.S. 추성훈의 손끝이 움직인 것은 역시 유동근이 살아 남았듯 추성훈도 살아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아무래도 한번만 나오고 말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어쨌든 미국의 수족이 된 듯한 차승원이 사실은 숨은 애국자...였을 가능성은 계속 열려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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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눈이 내리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겨울 하면 눈이죠.^^

물론 제멋대로 고른 리스트입니다. '눈이 소재인 영화 10선'도 아니고, '눈이 소재인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 10선'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눈발이 날릴 때면 그냥 저 혼자 생각나는 영화 10편일 뿐입니다. 대략 1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이긴 하지만,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가 크게 의미가 있는 숫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 놓고 시작해도 반드시 왜 그 영화가 있냐, 이 영화는 왜 없냐, 뭐 리스트가 이따위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그냥 직접 리스트를 꼽으시라는 말밖에 드릴 수가 없을 듯 합니다. (네. 많이 겪어 봐서 하는 얘깁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좀 예상을 뒤엎어 보고도 싶지만, 1위는 너무나 뻔한 영화 -


네. 오겡키데스카 맞습니다. 바로 그 영화. 다른 영화가 떠오른다 해도 솔직히 이 영화보다 먼저 떠오르지는 않더군요.

이 영화와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때문에 저 먼 홋카이도의 오타루라는 도시가 관광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물론 다녀오고 나서 만족하신 분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참 뭐 이런걸 보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곳이었습니다. 관광 명소로 꼽히는 오타로 운하, 오타루 유리 박물관 등등은 뭐 그냥 예쁜 동네 레벨.

개인적으로 홋카이도의 겨울 관광은 눈, 온천, 식도락 외에는 전부 무시하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눈이 오면 러브레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2번은 좀 튑니다. 국내 제목은 '존 카펜터의 괴물'. 영어 제목 'The Thing'이라야 좀 더 아실 분이 늘어나려나요.

북극 기지에 갑자기 개 한마리가 나타나고, 그 개의 뒤를 쫓아 미친듯이 총을 쏴 대는 사람이 보입니다. 어찌 어찌 해서 북극 기지에서 그 개를 키우게 되는데, 그 뒤로 자꾸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개 안에는 산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 숨어 있었던 거죠.

눈과 얼음으로 고립된 기지. 그 기지 안에서 필사적으로 외계 괴물과 싸우는 인간들. 특히 누가 괴물이고 누가 진짜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지금 보면 특수효과가 좀 유치할 지 모르겠지만, 당대에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1951년작인 '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의 리메이크라고 해도 좋을 듯 한데 리메이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더군요. 물론 줄거리는 흡사하지만 내용은 훨씬 정교합니다.

구해서 보실 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으면 보셔도 좋을 듯. 재미납니다.




하얀 자작나무 숲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신화처럼 떠받드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아무튼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흡혈귀 소녀의 종이면서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던, 그리 유능하지는 못한 옆집 아저씨의 운명이 매우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안 보신 분은 한번쯤 보셔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입니다.


다음 세 편의 영화는 좀 얼굴을 찌푸리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1년간 산촌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도 하고, 극중 할머니 역의 여배우는 자해 장면을 위해 일부러 돌에 이를 부딪혀 부러뜨리는 연기 아닌 연기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쯤되면 열정을 넘어 광기의 수준이죠.

이런 부분에서는 참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영화입니다만, 마지막 시퀀스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의 고려장 장면은 참 가슴이 미어지는 명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생각하고 나면 떠오르는 영화 두 편이 있습니다.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년의 '명화극장'에서는 '바렌'이란 제목으로 방송된 작품입니다. 원제는 'The Savage Innocents', 1960년작입니다. 앤서니 퀸이 에스키모 청년 이누크 역을 맡았고 일본 여배우 타니 요코가 그 아내, 그리고 지성파 배우 피터 오툴이 이들을 이해하는 문명인 역으로 등장합니다.

'바렌'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황무지를 뜻하는 barren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은데, 어쩌다 저런 '한글 제목'이 붙었는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주인공 이누크는 빙원의 황무지에서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가끔씩 사냥한 바다표범 가죽 등을 가져가 백인들이 만든 교환 상점에서 쓸만한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 이들에겐 유일한 문명과의 접촉 기회입니다.

그런 이누크가 어쩌다 살인 혐의를 쓰게 되고, 사법관인 피터 오툴은 이누크를 체포하기 위해 빙원을 건너 옵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고, 오툴은 오히려 이누크 부부의 보호를 받는 처지가 됩니다.

평범한 감독이 만들었다면 매우 서정적이고 슬픈, 문명이 순수한 야만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 없는 반항'의 니콜라스 레이 감독은 이 영화를 문명과 야만에 대한, 놀랍도록 뛰어난 통찰이 담긴 코믹 터치의 걸작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길게 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뭐 아무튼 에스키모 영화이니 당연히 눈과 얼음이 넘쳐 납니다.^^)



그 세번째 영화는 일마즈 귀니 감독의 '욜' 입니다. 1980년대 그래도 영화에 대해 한마디 하려면 반드시 봐야 했던 영화죠. 한때 '매춘'의 개봉에 즈음한 외국 문화의 일제 해금기에 어쩌다 이 영화도 개봉관에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 전편을 즐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 남편과 부정을 저지른 아내, 그리고 아들이 눈 덮인 들판을 건너는 에피소드는 정말 집중하고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관객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주는 설득력은 앞부분의 지루함을 충분히 잊게 할만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시작된 세 편의 자유연상은 여기까지.


눈 덮인 환경과 인간의 비극을 그린 작품들을 건너 다시 눈의 서정이 강조된 작품입니다. 바로 '에드워드 가위손'.

뭐 설명이 필요 없겠죠.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에드워드가 만들어 내는 인공 눈(?)을 맞으며 그를 그리워하는 위노나 라이더의 청순한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네. 솔직히 이 영화가 생각났지만 너무 뻔해 보일까봐 참고 있었던 거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프란시스 레이의 그 유명한 음악과 함께, 이 영화의 눈 장난 장면은 그야말로 클래식이 됐죠.

너무 젊어서 제목을 모르는 분들에게 서비스하자면 제목은 '러브 스토리'입니다. 네. 정말로 영화 제목이 '러브 스토리'라니까요.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다. 스토리는... 부잣집 아들이 가난한 집 여자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갖은 고생 끝에 남자가 변호사가 되자 여자가 백혈병으로 죽는 이야기입니다.

네. 정말 그런 뻔한 영화가 있었다니까요. 거 참... ;;


뭐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안 보신 분이 의외로 많은 영화입니다. 코엔 형제의 재능이 발휘된 수많은 걸작 중 하나(물론 모든 영화가 걸작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죠. 저는 이 영화와 '밀러스 크로싱'을 최고로 칩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눈 덮인 벌판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던 영화. '파고' 입니다.

 

이 영화에서 대체 눈이 뭐 중요하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눈에 대한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이 영화가 떠오르는 걸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이 영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1편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였지만 공간이 LA였기 때문에 눈발은 날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편은 그야말로 눈밭에서 개고생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분투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이 하드 2'는 1편 못잖게 재미있었던 2편의 예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제아무리 항공유라고 해도, 불이 번지는 속도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속도에 비해 비교도 안 되게 느리다는 과학적인 상식 따위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잠시 꺼 두시는게 좋습니다.



 마감 때가 되면 효율이 높아지듯 이미 열 편은 찼지만 왠지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 '쿨 러닝'. 이 영화에서 언제 눈 내리는 장면이 있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이 선수들이 밟고 있는 건 모두 눈 맞습니다.

물론 그런 기준이라면 '국가대표'도 꼽고 싶어지는데... 아무튼 패스.


아울러 이 영화도 꼽고 싶어집니다만, 이 장면에서 날리는 것은 보시다시피 눈이 아니라 종이 테이프입니다. 그럼 대체 이 영화에서 눈이 나오는 장면은 어디일까요? 스케치 북 넘기는 고백 장면의 뒷 배경이 눈 덮인 길이었던가...?

기억이 안 나서 패스.



개인적으로는 위 영화, '프랑켄슈타인, 더 트루 스토리'도 꼽고 싶었지만 너무 마이너해서 빼기로 했습니다.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이었던 레너드 휘팅(화이팅?)이 프랑켄슈타인박사 역으로 나오는 TV판 영화입니다.

1973년작으로 역시 오래 전 베타 VTR과 TV 방영을 통해서만 봤지만 지금까지 본 프랑켄슈타인 영화 중에서는 단연 최고입니다. TV 영화라지만 본드걸 출신인 제인 세이무어, 제임스 메이슨, 데이비드 맥컬럼 등 호화 출연진이 눈길을 끌죠.

이 영화에서도 박사에 의해 창조된 '아담'이 처음 자살을 기도하며 눈밭 위에 뿌리는 검붉은 피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만, 패스.



좀 로컬한 퀴즈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영화가 생각나시나요? 하긴 이건 퀴즈라기보다는 공감도 테스트 같군요.^^ 힌트는...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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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위대한 탄생'을 바라보는 외부의 눈길은 전혀 곱지 않습니다. '골리앗' 지상파가 '다윗' 케이블 TV의 히트작을 흉내내고 있고(뭐 둘 다 제3의 본보기를 흉내내고 있다고 주장하면 사실 할 말은 없지만), 그 추진 과정에서 이모저모로 졸속 진행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한달 전쯤 방송된 예고편 형식의 첫회가 워낙 혹평을 받아서인지, 한달만에 방송된 3일 일본 오디션 편은 꽤 신경쓴 태가 역력했습니다. 다만 편집의 속도감이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보이는 진행 등이 눈에 띄는 걸 보면 그만치 '슈스케'가 정교하게 연출된 프로그램이었다는 게 새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의 앞날도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권리세라는 참가자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교복 차림으로 나타나 그저 여학생의 느낌뿐이었는데 좀 지나고 보니 2009 미스 코리아 재팬 진. 방송상으로는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었지만 미스 재팬이란 뜻이 아니라 미스 코리아 재일교포 진이라는 뜻입니다.

지난해 몇 차례 국내 언론에도 소개가 됐더군요. 어쨌든 그때부터 소망은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고 싶다'는 것인 걸 보면 꽤 오랜 꿈인 듯.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 이후에 계속 국내에서 활동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면 설명이 되긴 합니다. 대학은 몰라도 고등학교 정도는 제대로 다닌 뒤에 활동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그때 바로 국내 기획사와 접촉을 했다면, 그때부터 1년 정도는 합류해서 연습생 생활을 할 것을 기대했을테니 그때 아예 국내 기획사들과 접촉을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일단 학업을 마친 뒤에 생각해 보자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권리세에겐 정말 안 어울리는 스타일링...ㅋ)

3일 방송을 보니 권리세는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했다고 말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특히 깨끗한 음색에다, 전문적인 가수 훈련을 받은 기색이 없는 자연스러운 창법이 장점으로 꼽힐만 합니다.

     
                               (어찌 보면 김연아를 연상시키기도...)


사실 권리세라는 존재가 나타난 덕분에 '위대한 탄생'이 그나마 주목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과연 MBC가 Mnet처럼 그런 관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원천적인 문제지만 '슈퍼스타 K' 방송 기간 동안은 아예 편성이 '슈퍼스타 K' 중심으로 돌아갔던 Mnet과는 달리 MBC에서 '위대한 탄생'은 수많은 프로그램들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건 뭐 지켜보면 알 일이고, 당장은 권리세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시청자의 도리일 듯 합니다.^



아울러 권리세와 함께 선발된 백새은도 주목할만한 신인입니다.



노래할 때 관객에게 시선을 맞추지 못한다거나, 별다른 액션이 없는 걸 보면 생판 아마추어이긴 합니다만, 깔끔한 외모나 역시 무공해 음색은 충분히 스타성을 갖춘 걸로 보입니다.





와세다에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더니 '록크라'라는 밴드였군요. 밴드 공연 때 의상(아래 사진)과 '위대한 탄생'의 의상(위 사진) 이 똑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스스로 공개한 것이니 퍼와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실명으로 싸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주소는
http://www.cyworld.com/mermaiddd/2357688

이제 시작인 '위대한 탄생', 국외에서 치른 오디션을 보니 생각보다는 괜찮은 후보들이 참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뽑힌 사람들을 어떻게 스타로 부각시키는가 하는 건 그 다음 문제죠.



그리고 이 분의 노력을 외면하면 안될 듯 합니다. 이름을 붙여도 되겠군요. '사이먼 시혁'. 앞으로 활약이 기대됩니다.^^



P.S. 네. 이렇게 불쑥 복귀했습니다.  구구절절 할 말은 없고 노래나 한곡 붙입니다. 제목은 'As if we never said good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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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오래 전, 학교 다니던 시절에 자주 들을 수 있던 노래 가운데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

주위엔 비슷한 행색의 누추한 사람들 뿐입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빛이 나는 반면, 나이의 증거는, 고생의 흔적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보통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광경을 보면 뭔가 약간 의아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쇠창살 너머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 '새'라는 노래를 들을 때 문득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시절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Annie Haslam이란 이름을 들을 때 Renaissance 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분들은 만만찮은 연력을 쌓은 분들이겠군요.^^

퀴즈: 이 여가수와 민해경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정답: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을 편곡한 노래를 불렀다. 애니 해슬럼은 이 노래, 민해경은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





정답은 예전처럼 'Indiana Jones3: Last Crusade'에 나오는 방법으로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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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어쩌다 아주 가끔씩, 몇초 동안의 여유에

언뜻 언뜻 떠오르는 옛날 생각으로 흘러가는 달.

스스로를 격려할 필요.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

그런데 그 제목을 가진 노래가 한둘이 아니더라는.

어쨌든 찾으려던 노래는,

바로 이거.



 
언뜻 들으면 그냥 쿵/딱/쿵/딱 막 치는 드럼 같은데 이 양반, 왕년에 제프 벡과 BBA 트리오도 하고 바닐라 퍼지도 하고 한창 잘 나가던 카마인 어피스라는 형.

어쨌든 에리어 88도 참 옛날 생각 나게 합니다그려. 신이 F8 타는 걸 보니 초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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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그런 경험 있으실겁니다.

무슨 짓을 해도 여유없을 시간에 잠깐 한눈 파는게 얼마나 달콤한지 느껴볼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죠.

학력고사 2주 남은 재수생 시절에도 어쩐지 당구 한 게임 안 치면 시험 당일날 장이 꼬여서 쓰러질 것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느낌.

사람이 나이 먹어도 절대 철이 안 든다는 게 바로 지금 또 느껴지는 듯 합니다.





지난번엔 밑도 끝도 없이 카레짜 호수가 떠오르더니 어제부터 불현듯 이 노래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놀랍게도 이 노래가, 이 영화가 나올때에는 저도 10대였군요.

이 노래에는 두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위의 연주곡 버전이 있고, 육성 버전이 있죠. 목소리가 있는 버전의 제목은 For Just A Moment 입니다. 사실 박자도 육성 버전이 조금 느리죠. 어쨌든 데이빗 포스터의 전성기입니다.



왠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갑자기 코 끝에 볏짚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스치는 듯 했습니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의 들판, 끝없이 뻗은 듯한 지평선. 지는 해. 지는 나뭇잎.

비슷하게 느끼시는 분이 또 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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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덕분에 구경은 제법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 보겠다고 마음먹은 곳도 많습니다만, 그 중에 카레짜 호수(Lago di Carezza, Carezza lake)란 곳이 있습니다.

갑자기 이 호수가 생각난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 호수의 영상이 떠올라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네요. 그저 아름다운 호수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 때문인지는 쓰면서 정리가 될 듯도 합니다.

이 호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거울같은 호수 위로 침엽수림이 잔뜩 우거져 있고, 그 뒤로 눈덮인 알프스의 연봉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건 어쩐지 영화의 세트지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로 환상적인 공간입니다.

이 호수가 있는 곳은 북부 이탈리아, 돌로미티(Dolomite)라고도 불리고 남 티롤(South Tyrol)이라고도 불리는 알프스 산맥의 남쪽 끝자락입니다.


(당연히 A자 마크가 있는 곳이 바로 이 카레자 호수가 있는 곳입니다.)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한참 올라가다 보면 볼차노(Bolzano)라는 제법 큰 도시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국경선은 알프스 산맥입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눈 덮인 알프스를 관광자원으로 화려하게 개발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는 제가 가 본 10년 전까지 아직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구글 어스의 힘으로 이 호수의 주변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사실 그리 큰 호수는 아닙니다. 긴 쪽의 길이가 한 100m 정도?


그런데 이런 주변 여건 덕분에 저런 환상적인 풍경이 나타나는 겁니다. 사진의 각도상으로는 북쪽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남쪽으로 저렇게 거대한 바위산이 있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 덕분에 이 각도의 광경을 좀 더 실감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호수 주변은 죄다 이런 바위산 투성이입니다. 이 바위산들이 절경 중의 절경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 지역에서는 이 동네를 '신의 장미정원'이라고 부른다는군요.

그런데 사진이 도저히 그 실체를 따라가지 못하는군요. 왜 저렇게 빛바랜 색만...

이 사진이 비교적 실제 색상에 가깝습니다.

이런걸 바로 벽옥색이라고 해야 할까요. 황룡 오채지의 물색이 어떤지는 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렇게 녹색, 푸른색, 하늘색, 연두색이 뒤섞인 채로 투명하게 빛나는 물색은 다른 곳에선 본 적이 없습니다.

뚱딴지같은 먼 호수 얘기에 당황하신 분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마음이 좀 가라앉는 듯 합니다. 언제쯤 저런 물색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음달 초까지는 블로깅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뭐 트위터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나날이 계속되다 보니 이렇게 푸념처럼 떠드는 것도 사치일테지요. 아무튼 가끔씩 뜬금없이 한두마디씩 올리는 걸로 위안을 삼아 보렵니다.

날이 쌀쌀합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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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과 존 박의 아름다운 성공드라마가 여전히 화제입니다. M.net의 '슈퍼스타K' 시즌2를 통해 두 사람은 매주 금요일 늦은 밤마다 온 국민을 설레게 하며 열띤 경쟁을 펼쳤고, 우승자 허각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의해 정치권 화두로도 등장했습니다.

거의 10주간에 걸쳐 시청률 10%가 넘는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고정출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10%는 방송/연예/가요계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에서는 그 몇 배나 될만한 수치고, 마지막에는 거의 20%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이들 두 사람은 웬만한 신인 가수와 소속사가 약 1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활동한 수준의 지명도를 얻고 정식으로 데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수많은 기획사들이 이들에게 문전성시를 이뤄야 정상이겠지만, 어쩐지 수많은 회사들이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과연 눈치를 본다면 이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요.



허각과 존 박의 미래를 보기 위해 가장 좋은 비교 대상은 지난해 '슈퍼스타 K' 우승자 서인국입니다. 지난해 10월, 서인국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우승 직후 내놓은 싱글 '부른다'는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연말까지 서인국은 이해 최고의 신인으로 당당히 꼽힐만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내로라할 소속사와 계약도 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서인국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분명 지난해 연말이 최고점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활동을 쉰 것도 아니죠. 올해 5월과 8월 미니앨범을 내놓고 활동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서인국의 활동을 지상파 3사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서인국의 지상파 나들이는 아직도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KBS는 최근 '남자의 자격' 합창단 멤버로 나선 것을 비롯해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뮤직뱅크'에도 꽤 여러번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의 자격'에서 서인국이 과연 얼마나 비중을 차지했는지는 보신 분들이면 다 아실 겁니다.

SBS는 '슈스케' 우승 직후 '김정은의 초콜릿'과 '강심장' 등에 출연하며 부각되는 듯 하더니 역시 올해 봄 이후 소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5월 초, '인기가요'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져 "대체 왜 안 나오는 거냐"는 의혹의 대상이 됐죠. 정말 대단한 것은 MBC입니다. 이제껏 서인국은 MBC TV를 통해선 한번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는 건 세 지상파 채널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사실 요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선 채널의 경계가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강호동이나 유재석은 수시로 다른 채널에서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해 버리고, 다른 채널에서 뜬 스타를 이쪽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띄워 주는 것도 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풍조에 앞장섰던 연예 정보 프로그램들에서도 '슈퍼스타K'에 관련된 소식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연예계에서 최강자는 세개의 지상파 채널입니다. 어떤 영화도, 어떤 노래도 지상파 3사의 도움 없이는 히트할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죠. 이런 현실의 영향인지 서인국은 지난 9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묘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슈퍼스타K'에는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겁니다. "어릴 때부터 회사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후 가수로 데뷔하고 싶다"는 뜻이었다는데, 과연 그렇게 했더라면 '슈퍼스타K'를 통해 얻은 엄청난 관심과 지명도를 한방에 얻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이 발언은 어떤 뜻이든, "이제는 '슈퍼스타K'와 연결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과연 그를 지치게 한 것이 '슈퍼스타K'에 따라다니는 아마추어의 인상인지, 아니면 지상파 TV들의 외면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허각과 존 박의 미래도 사실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과연 현재 이들 두 사람에게 열광하고 있는 대중이 지상파 TV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어도 지금처럼 지지해 줄 지도 의문입니다. 어쨌든 큰 변화가 없다면, 지상파 TV들은 앞으로도 '슈퍼스타K'를 통해 배출된 신인들에게 그리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지금은 '강심장' 등 몇몇 프로그램에서 섭외 제의를 하고 있지만,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허각이나 존 박이 현재의 지상파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대형 기획사와 손을 잡는다면 그건 또 새로운 국면이 될 듯 합니다. 이를테면 SM이나 JYP, YG같은 회사들 말입니다(하긴 현재 CJ계열, 특히 M.net과 적대적 관계인 SM이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이건 또 상상하기 힘든 국면이군요^^). 물론 10대 초반부터 신인을 선발해 육성하는 것을 장기로 여겨온 이런 회사들이 이미 '머리가 굵은' 이런 거물들에게 관심을 보일지, 혹은 이런 대형 회사들이 제시하는 조건이 이미 눈이 높아진 슈퍼스타K 우승자들의 성에 찰지도 알 수 없는 일이죠.



또 하나의 변수는 CJ계열 채널들의 약진입니다. 이미 M.net은 고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케이블 TV는 CJ계열 채널들의 독무대가 된지 오래죠. 그룹 차원에서 힘을 모은다면 TVN이나 온스타일, 올리브나 스토리온 등(온미디어도 CJ와 합병했습니다)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슈퍼스타K'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밀어줄 수' 있습니다. 이들이 역량을 집중한다면 지상파도 무시할 수 없는 매체력이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미 국민적인 인기인이 되어 버린 허각과 존 박이 과연 프로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게 될 것인지, 내년 이맘때에는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KBS와 SBS는 이미 허각-존박을 어떻게 이용할지 연구에 들어간 듯 합니다만, MBC는 여전히 '위대한 탄생'에 골몰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는 사이, 예능 프로그램에는 다뤄지지 않던 허각이 MBC 뉴스데스크에는 등장하는 사건도 있었죠. 자사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을 홍보하기 위한 뉴스에 허각이 등장한 겁니다. '키워주지는 않으면서 우리 프로그램 홍보에는 이용한다'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P.S. 이런 상황이면 '위대한 탄생'에서 발굴된 신인을 KBS나 SBS에서 어떻게 대우할지도 매우 자명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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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으로 기획된 KBS 2TV '성균관 스캔들'이 마침내 마지막 4회를 남겨 놓고 금등지사 찾기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이미 홍벽서-재신(유아인)가 금등지사를 거론하며 조정 중신들을 공격했고, 윤희(박민영)의 아버지와 재신의 형이 모두 정조의 최측근들인데다 금등지사와 관련된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금등지사 이야기는 드라마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 자명했습니다.

대체 금등지사가 뭐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초간단으로 설명하자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론 벽파를 처단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비밀 문서'라고 하는게 가장 적절할 듯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어쨌든 이인화 소설 '영원한 제국' 이후 수시로 등장했던 소설/드라마/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이 드라마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그리 분명치 않아 보입니다.



본래 금등지사란 일반명사입니다. 그냥 '후대에 전하기 위해 고이고이 간직된 글' 정도의 뜻입니다. 중국 주나라때부터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 만큼, 널리 쓰이던 단어입니다.


금등지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정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영조는 손자 정조를 왕위에 올려놓는 조건으로(즉 노론 벽파가 정조의 등극을 반대하지 않게 하는 명분으로), "나(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다. 만약 누가 나를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부르는 자가 있다면 역적으로 다스리겠다"고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선언하게 합니다. 또 영조는 여러 차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주모자'가 있다면 첫째는 자신이요, 그 다음은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즉 정도의 외조부)이라고 주입시킵니다.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냐 싶지만 사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대왕인 영조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은 정조의 국정 운영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조가 왕이라 해도 이런 무리수를 두다간 반정이 일어나 왕위를 빼앗길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영조가 뒷날 입장을 바꿔 '사도세자를 죽인 것은 내 뜻이 아니었고, 너(정조)는 왕위에 오르게 되면 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단하라'는 밀지를 내린 적이 있다면 상황은 일변합니다. 정조는 영조의 명을 거역했다는 정치적 부담 없이 보복을 할 수 있고, 이는 곧 정조와 대신들의 힘겨루기에서 정조가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금등지사입니다. 그럼 실제로 금등지사가 존재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금등지사는 소설 속의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러가지 정황을 볼 때 금등지사는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정조 17년인 1793년 5월28일, 영의정 채제공은 상소를 올립니다. 잘 알려진대로 채제공은 남인이고 정조가 노론인 윤시동, 김종수와 함께 자신이 탕평책으로 국정을 논할 수 있는 세 사람의 중신으로 꼽은 사람입니다(아울러 이 드라마에서 4인방이 이뤄낸 성과로 그려지는 신해통공의 주역이죠^^). 그런데 상소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정조가 즉위한지도 이미 17년, 그런데 갑자기 그는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재조사하고 확실히 진실을 밝힌 뒤 역적들을 토멸하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전략) 신이 기유년 현륭원(顯隆園, 사도세자의 묘)을 옮길 즈음에 우리 성상(정조를 말함)께서 입으신 소매자락에 흐른 눈물이 피로 변하여 점점이 붉게 물든 것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일찍이 옛 글에서 혈루(血淚)라는 두 글자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것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었는데 부득이하게 군부의 소매자락에서 직접 그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 하늘이여, 이것이 무슨 까닭입니까.

신은 전하께서 제왕의 효성으로 몸소 증자(曾子)·민자(閔子)와 같은 효도를 행하시는 것은 본디 알지만, 진실로 원통함이 하늘에 사무치고 맺힌 한을 펴지 못한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눈에서 흘러 내리는 눈물이 어떻게 참으로 피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가슴 속에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히고 억제하고 또 억제하여 의리가 크게 천명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단지 혹시라도 선대왕(즉 영조)의 훌륭한 덕에 털끝 만큼이라도 관계됨이 있을까 염려하신 때문입니다. 신이 어리석어 죽을 죄를 짓사오나, 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대왕께서 이미 전하를 위해 큰 괴수로서 원수가 되는 자들에 대하여 이름을 들어 말씀하였으니 선대왕께서 확연히 느껴 깨달았음을 이로 미루어 대략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선대왕께서 느껴 깨달으심이 이미 이와 같이 정녕하였고 보면 전하께서 속히 천토(天討)를 거행하시어 사도 세자의 무함 입은 것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이야말로 비록 성인에게 질정해보더라도 어찌 의심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중략)


                                                 (번암 채제공)

신이 수십 년 동안 마음을 썩히고 뼈에 사무치는 아픔으로 마치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았던 까닭은 바로 여러 역적 무리가 무함하였던 일들은 곧 천고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아직까지 미처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서 그 거짓들을 소상하게 변파하여 천하 만세에 알리지 못한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신이 굳게 결심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선세자에 대한 무함이 깨끗이 씻겨져서 징계와 토죄가 크게 시행되기 이전에 신이 만일 다시 관복을 찾아 입고 반열의 한가운데에 선다면 이는 의리를 잊어버리고 부귀를 탐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하가 신을 영의정에 발탁시킨 뜻이 어찌 신을 부귀하게 해 주려고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신으로 하여금 의리로써 마음을 가지고 의리로써 임금을 섬겨 온 세상을 의리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하도록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전하를 섬기는 일 가운데서 이 큰 의리를 버려두고 다시 어디에다 손을 쓰겠습니까. (중략)

신의 부적합한 실상과 병에 찌든 상태는 오히려 부차적인 일에 속한 것입니다. 오직 이 큰 의리만이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으니,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나갈 것이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대로 간직한 채 황천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신에게 새로 제수한 수상직을 체직하시어 하찮은 신의를 온전히 지키도록 해주시고, 이어 신의 말을 채택하여 의리가 크게 밝혀지도록 하신다면 비록 죽는 날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해와 같을 것입니다.”


은유고 뭐고 없습니다. 정면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정조 혼자 끙끙 앓고 안타까워 할 일이 아니라, 이제 그 죽음을 다시 현실 정치의 아젠다로 삼고,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처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방 유생 몇몇이 아니라 국정의 수반인 영의정이 말입니다.

정조는 이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서 논란을 잠재우려 하지만 이미 알 사람은 다 안 이상 정국은 발칵 뒤집히고, 좌의정이자 노론의 수반인 김종수는 목숨을 걸고 이 상소를 올린 채제공을 역적으로 규정합니다. 



물론 김종수 본인이나 노론 전체가 그 책임을 지지는 않겠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정치적인 복수가 감행된다면 정국의 균형은 일시에 무너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김종수로서는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조용한 해결을 택합니다. 채제공과 김종수를 모두 파직시킴으로써 이 상소에 대한 논의를 강제로 덮어 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여론이 전부 가라앉을리는 없습니다. 3개월 뒤까지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8월8일, 2품 이상의 모든 대신들을 소집한 정조는 금등지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하게 합니다.


"(전략)전 영상(채제공을 말합니다)의 상소 가운데는 비(非) 자 한 구절로 말머리를 꺼내고 즉(卽) 자 한 구절로 말을 끝맺었는데, 즉 자 이하의 내용은 아무해의 일(사도세자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지극히 중대한 일이었다.

가령 전 영상이 국가를 위하여 한 번 죽기로 작정하고 미덕을 천양하려는 애타는 마음과 피끓는 정성에서 한 말이라 하더라도 내가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전 영상이 감히 말하였으니 그 겉면만을 얼핏 본다면 그의 죄는 용서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략) 그러나 전 영상이 남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히 말한 것은 대체로 곡절이 있어서였다.

전 영상이 도승지로 있을 때 선조(先朝, 즉 영조)께서 휘령전(徽寧殿)에 나와 사관(史官)을 물리친 다음 도승지만을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어서(御書) 한 통을 주면서 신위(神位)의 아래에 있는 요[褥] 자리 속에 간수하도록 하였었다. 전 영상의 상소 가운데 즉 자 아래의 한 구절은 바로 금등 가운데의 말인 것이다.

내가 처음 왕위에 오른 병신년 5월 13일 문녀(文女,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 정조가 즉위한 직후 처단됨) 의 죄악을 드러내어 공포할 적에 전 영상이 윤음(綸音)을 교정하는 일에 참여하여 아뢴 것이 있었고 승지와 한림(翰林)을 보내어 이를 받들어 상고한 일까지도 있었다. 지금 물러가기를 청하는 상소에서 죽음에 임박하여 이런 진실을 말한 것은 전 영상만이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혼자서 그 일을 말한 것이니, 이는 속에서 우러나온 충성과 의리의 발로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전 좌상은 이런 본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단지 그 표면에 나타난 것만을 의거하여 지난 여름 이후로는 감히 말하지 못할 의리로써 성토한 것이니 이 또한 속에서 우러나온 충성과 의리에서 발로된 것이다. (하략)"


그럼 정조는 그것이 전해진다는 사실만을 알고 그 내용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예 정조는 작정하고 그 내용을 공개합니다. 단 두줄만. 이것이 바로 영조가 직접 썼다는 금등지사 가운데 공개된 20자입니다.


피묻은 적삼이여 피묻은 적삼이여, 동(桐)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血衫血衫, 桐兮桐兮, 誰是金藏千秋? 予懷歸來望思)

"내가 이덕사(李德師)와 조재한(趙載翰)을 사형에 처하게 하던 날 문녀와 김상로(金尙魯)도 처단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때 이미 금등의 글 가운데 들어 있는 선왕의 본의(本意)를 이해하고 그 뜻을 약간 반영하였던 것이다. (중략) 내가 차마 이 말을 하는 것은 나도 생각이 있어서이다. 요컨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 영상이 상소에서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또 전 좌상이 준엄한 성토를 한 것도 내면의 사실을 모른 데에서 나온 것임을 알리고 싶을 뿐인 것이다.(중략)

오늘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대체로 ‘대고(大誥)’의 뜻을 모방하여 사람마다 그 뜻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이다. 지금으로부터는 다시 이를 빙자하여 이러쿵저러쿵 시끄럽게 구는 일이 있으면 사람마다 성토할 것이다. 오늘 이후로 사리를 천명할 책임은 오로지 경 등에게 있는 것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정조는 다음날, 김종수를 따로 불러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설명합니다. 즉, 채제공이 한 상소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면서 왜 채제공을 처벌하지 않는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입니다.
 
“(전략) 아무해의 사변(사도세자의 죽음)은 차마 제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이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차마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양조(兩朝)의 미덕을 천명하기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여태껏 차마 제기하지 못하고 감히 말하지 못했기에 차라리 덮어둔 채 드러내지 않은 지가 지금 거의 10년이나 되었는데도 끝내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중략)

전 영상(역시 채제공)이 설사 국가를 위하여 한 번 죽기로 작정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차마 제기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을 제기하여 나에게 들려준 것은 죄가 되는 것이고 가령 그 마음이 옛날의 미덕을 드러내기 위한 데에서 나왔더라도 도리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막중한 자리에 미치게 한 것도 죄이며, 옛날 일을 언급하면서 선조에게까지 언급이 된 것도 역시 죄인 것이다. (중략) 이를 보았거나 들은 뭇신하들로서 그를 엄중히 성토하려 했던 것은 경(김종수) 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군들 그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다만 전 영상이 차마 제기할 수 없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을 혼자서 말한 데에는 대체로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대왕(先大王, 영조)께서 휘령전에 친림했을 적에 전 영상이 도승지로 입시하였었는데 사관을 문밖으로 물러가게 한 다음 선대왕께서 한 통의 글을 주면서 신위(神位) 밑에 있는 요의 꿰맨 솔기를 뜯고 그 안에 넣어두게 하였던 바 그것이 바로 금등 문서였던 것이다. 내 그 내용을 반포하는 것이 막중한 관계가 있고 또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아픔을 참고 억울함을 간직한 채 오늘까지 끌어온 것은 오로지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녀의 처분에 관한 전교를 내리면서는 그 속에 약간의 언급이 있었던 것이다. 전 영상의 상소문 가운데 즉 자 이하는 바로 아무해 이전의 흉도(凶徒)들이 한 흉악한 말이었는데
아무해 이후에 선대왕께서 즉각 이를 깨닫고 이 금등의 글을 내렸던 것이고 전 영상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혼자서만 이를 말하게 된 것이다.

그 상소문이 나온 뒤로 조정이 시끄럽게 들끓었으나 그대로 방임했던 것은 내가 차마 제기할 수 없어 아직껏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인데, 오늘에서야 한 번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나서 비로소 말하게 된 것이다.

(중략) 이제 와서 내가 차마 말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여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가 도리어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세상에 멋대로 전파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세상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볼지 모를 일이니, 그렇다면 한때에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은 작은 문제이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그 사실이 후세에 흘러 전하게 되는 것은 관계됨이 매우 중대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볼때 정조의 입장은 분명해집니다. 즉,

"나는 금등지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고, 그 내용이 영조가 한때 사도세자를 미워해서 죽였지만 그것이 실책이었음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후손에게 분명히 알리고자 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따라서 그 사실을 전한 채제공을 처벌할 이유는 없다. 아울러 나머지 중신들이 채제공을 비판한 것 역시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니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로 정치적인 보복을 할 생각 따위는 없다. 채제공의 상소를 묵살하고 그를 즉시 파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논의가 가라앉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그 상소의 내용을 이유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불안해 하거나, 상대 당파를 공격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혼란을 빚어내고 있기 때문에 온 중신들에게 분명히 밝혀 둔다.

병신년 3월10일(정조가 즉위하던 날) 분명히 밝힌 대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것을 밝힌다는 것이 그 사건과 관련된 일들을 다시 캐내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모든 의혹이나 불안을 씻고, 나와 함께 정국을 이끌기 바란다."



물론 정조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정조와 김종수는 다소 삐걱거립니다만, 아무튼 이상의 내용을 보면 금등지사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이라는 건 전혀 비밀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석에 따르면 정조는 금등지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즉 실제로 금등지사 카드를 사용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들먹여 노론 세력을 억제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럴듯 합니다.

사실 정조는 집권 초기에 금등지사 없이도 꽤 신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7년. 다시 또 사실을 캐고 한대봐야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늙어 죽었거나, 정조 초기에 죽거나 귀양을 가거나 했죠. 30년이나 지난 뒤에 굳이 복수를 거론하는 건 결국 왕권 강화를 위한 명분쌓기였을 뿐인 듯 합니다.

아무튼 너무 길어져서 정작 금등지사와 현재 '성균관 스캔들'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겨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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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각이 우승하고 존 박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TOP11이 TOP6으로 줄어들 때까지만 해도 예측은 전혀 달랐죠. 존 박의 우승에는 별로 장애가 없어 보였습니다. 여성 팬들의 고정 지지는 절대적이었고, 이하늘 같은 출연자들이 "어차피 우승은 존 박이 하게 돼 있어. 너희(허각, 김지수)는 꽁치같은 아이들이야"라고 농담을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의 미션 사이에 상황이 일변했습니다. 허각은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그리고 마지막 자유 선택곡인 김태우의 '사랑비'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곡들을 누구보다 완성도있게 소화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존 박에게는 그렇게 인상적인 선곡과 가창을 보여줄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존 박에게 가장 인상적인 무대는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였죠. 최종 자유 미션으로 왜 팝송을 부르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한국어 노래와 영어 노래를 할 때의 존 박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노래 실력만으로 승부가 가려진 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허각의 우승 드라마를 엮어낸 1등공신은 바로 제작진이죠.



첫 방송부터 마지막 방송까지, 제작진은 '누가 결승에, 누가 우승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물론 방송사 측에) 결과를 낳을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울러 그런 고민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방송에 반영되기 마련이죠(물론 결과가 조작됐다거나 하는 큰일 날 상상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심지어 그런 '상상'만 하고 있어도 이상할 정도로 그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결국 허각의 우승은 '스타성'에 대한 '스토리'의 승리이자 전 국민에게 정의의 승리라는 만족감을 안겨줬습니다.


또 한가지는, 2위에 그친 것이 존 박에게도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겁니다. 존 박은 아주 깔끔한 패자의 모습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쉬운 기색 하나 없이 허각의 우승을 축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겠죠. 이 결과는 두 사람 모두에게 최선으로 보여집니다.

하고싶은 얘기는 산처럼 많지만 그렇게 주절주절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이만 줄입니다. 더 이상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제 쓴 칼럼으로 대체합니다.



 
대회가 스타를 만들까, 스타가 대회를 빛낼까. 1970년대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라면 단연 ‘대회’ 쪽에 무게가 실린다. 유럽방송연합 회원국 가수들이 국가 대항전을 펼치는 이 대회는 명실공히 스타의 산실(産室)이었다. 스웨덴의 무명 그룹이었던 아바(ABBA)도 74년 ‘워털루’로 우승한 뒤 곧바로 월드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80년대 이후 이 대회의 명성은 퇴색했다. 세계 팝 시장이 급속히 미국 중심으로 개편돼 버렸기 때문이다. 88년에는 캐나다 출신의 프랑스 여가수 셀린 디옹이 발군의 가창력을 뽐내며 우승했지만, 그가 세기의 디바(diva)로 성장한 것은 5년 뒤 영어로 ‘파워 오브 러브’를 발표하고 나서의 일이다. 사람들이 디옹의 프로필을 보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기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3일 새벽 두 번째 우승자를 내놓은 노래자랑대회 ‘슈퍼스타 K’가 화제를 양산 중이다. 케이블TV로는 공전의 15%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신인 가수 선발대회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30여 년 전 ‘대학가요제’를 연상시킨다. 77년 시작된 ‘MBC 대학가요제’도 활짝 핀 것은 2년째인 78년이었다. 1회 대회의 성공으로 수준 높은 참가자가 대거 몰렸고, 그들 중 배철수·노사연·임백천·심수봉 등이 80년대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역시 78년 출범한 TBC ‘해변가요제’도 왕영은·주병진·구창모·이치현(벗님들) 등을 배출했다. 이후 다양한 대학생 가요제가 한국 방송·가요계의 등용문(登龍門)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90년대 이후 가요계는 개인의 재능보다 기획사의 육성 능력이 중시되는 쪽으로 변했다. 대학생 가요제는 빛을 잃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스타K’의 성공은 ‘만들어진 가수’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대회가 앞으로 명성을 계속 유지할지도 결국 이 대회 출신의 신인들이 새로운 흐름을 이루며 가요계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로 수많은 ‘슈퍼스타K’ 도전자들이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심수봉이다. 대학생 가요제 출신의 숱한 스타들 가운데 최고의 가수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서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너무 기성 가수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슈퍼스타K’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승자는 가려졌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p.s. 어쩐지 어제 허각에게서 엘튼 경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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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 때도 그랬고, 이번 SBS TV '대물'도 그렇습니다. 여자가 최고 권력자에 오른다는 내용의 드라마 때마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아예 '경상도 출신의 여자 최고 통수권자'가 주인공이라는 바람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노골적으로 밀어주자는 드라마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어야 했죠. 하지만 만약 '박근혜를 밀어주자'는 드라마였다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보니 진짜 주인공은 여왕이 아니라 미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물'은 아예 무대가 현재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더 말들이 많습니다. 물론 나올법한 얘기겠지만 이번에도 박근혜 대표와 유사점을 찾는 얘기들이 주루룩 등장했죠. 하지만 드라마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말이 쑥 들어갈 정도로 '대물'의 서혜림과 현실의 박근혜 사이엔 비슷한 점이 없습니다. 같은 여자라는 것 외에는 전혀 공통점을 찾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러고 나니 이번엔 '박근혜가 아니면 누구라도 닮아야 한다'는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듯, 야권 정치인들이 대거 물망에 올랐습니다. 민노당의 이정희 대표가 나오는가 하면 얼마 전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한명숙 전 총리 얘기도 나왔습니다. 참 고소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대물의 고현정'과 닮은 점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인들이야 어떻게든 한번 비슷한 점을 찾아서 '대물의 실제 모델'로 행세하는 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위 언론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당찮은 놀이에 끼어들어야 하는 걸까요.

'대물' 속 서혜림은 사투리가 심한 드센 시골 처녀에서 어찌 어찌하다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고, 어찌 어찌 하다가 남편이 무리한 해외 취재 끝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는데, 거기에 대해 항변하다가 해고당하고, 고향에 내려갔다가 환경운동가로 변신하고, 그러다 갑자기 여권의 젊은 실력자 강태산(차인표)의 눈에 띄어 출마하는 인물입니다.



과연 현재 정치권에 있는 사람 중에 이 사람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전개 과정이 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황당무계한데다, 주인공 서혜림의 캐릭터 역시 지독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저런 캐릭터와 삶의 궤적을 살던 사람이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나라가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한명숙/박선영/박영선/이정희 어느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댈 수 있는 근거라면 하차한 황은경 작가가 "나는 박근혜보다 한명숙 박영선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게 전부일 정도입니다. 방송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중 서혜림이 박영선 의원과 비슷하다면, 전여옥 의원도 '나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네.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 드라마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 추측하고 비슷한 점을 빗대 보는 건 시청자의 즐거움입니다. 이를테면 '제빵왕 김탁구'의 윤시윤을 실제 제빵계의 성공한 기업인들과 견주어 보는 건 당연히 나올법한 얘기죠. 하지만 누가 봐도 상상의 산물인 것이 너무나 분명한 주인공을 엉뚱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편을 닮았다'고 우겨대는 건 참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드라마 '대물'이 호평을 얻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이 억울하게 피해보는 일은 없게 하겠다'는, 국민의 가려운 데를 확실히 긁어 준 드라마라는 데 있을 겁니다. 그럼 정치인 여러분, 드라마 속 고현정과 자기 사연이 닮았다고 좋아하실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 안 본다고 금배지 못 달 일도 없을테니 닥본사하지 마시고, 하던 대로 국정에 힘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 정작 드라마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벌써부터 표류하고 있던데 거기에, 작가 교체, 연출자 교체, 연출자 사퇴 선언, 연기자 촬영 거부 등등 난리도 아니군요. 배우들의 열연은 훌륭하지만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는 듯 합니다. 광고는 벌써 완판됐다던데 이러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건 아닐지.

P.S. 새로 들어온 유동윤 작가는 왕년의 히트작 '여인천하'의 작가입니다. 여성 정치인을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된 덕분에 기용된 것일까요? 아무튼 앞으론 '대물'의 고현정에게서 '여인천하'의 전인화 냄새가 나는지 지켜볼 만 할듯 합니다.^^ (그럼 차인표가 경빈 박씨?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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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K'는 드디어 두 사람만이 남은 결승전이 됐습니다. 누가 우승하건 이번 대회가 낳은 최고의 신데렐라로 남을 것이고, 또 스타덤에 오를 것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우승자만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대회의 TOP4, TOP6 정도에 오른 후보자는 이미 대부분의 신인 가수들에 비해서는 훨씬 유리한 조건을 잡았습니다. 온 국민을 상대로 이 정도의 지명도와 실력 검증을 거친 신인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개별 출연자들 가운데서도 등수보다 더 득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자 외의 출연자 중에도 대단히 득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최고 수혜자는 윤종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윤종신은 이번 대회를 통해 '슈퍼스타 K'의 사이먼 코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실 사이먼 코웰이 '아메리칸 아이들'의 상징이 된 것은 그저 독설을 퍼부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코웰이 한 말 중에서 틀린 말은 없었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가입니다.

때로는 상대적 약자인 출연자들에게 너무 지나친 공격을 한다는 부분에서 욕을 먹고 안티들에게 시달리기도 하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판정관이 코웰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느 심사위원보다도 냉정하고 정확한 지적을 했기 때문입니다.



'슈퍼스타k'의 심사위원 중 역시 직선적인 평으로 출연자들의 가슴을 찢어놨던 이승철은 황금의 목소리를 가진 톱스타의 명성에도 불구, 가끔은 기분에 치우친 듯한 평가를 내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윤종신은 적절한 유머감각을 바닥에 깐 상태에서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심지어 '가수로서의 윤종신'을 모르는 일부 시청자들(지난번에 지적했던 한국 가요계의 세대 단절이 가져온 결과입니다)은 '대체 왜 개그맨(!!!!)이 슈퍼스타 K 심사를 하고 있는거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고도 합니다만, 실제 심사에 들어간 뒤에는 '역시 윤종신'이란 평이 잇따랐습니다.



윤종신이 누린 덕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본능적으로'는 그리 큰 히트곡이라고 할 수는 없던 노래입니다. 하지만 TOP4에서 강승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상황은 일변했습니다. 1주일이 지났는데도 강승윤이 부른 '본능적으로'가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고, 윤종신이 부른 버전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윤종신이 강승윤을 이용한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이런 사례는 프로듀서로서 윤종신의 재능을 확인하게 해 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과적으로 윤종신은 '슈퍼스타K2'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결과 (1) 예능 늦깎이로서 형성된 '촐삭이' 이미지를 덮을 수 있는 전문가 이미지를 얻었고 (2) 냉철하고 설득력있는 심사평으로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에 대해 신뢰감을 더욱 높였으며 (3) 심지어 윤종신이 가수라는 것을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새롭게 그 사실을 각인시켜 주는 효과까지 얻었습니다. 이쯤 되면 누가 우승을 하건, 윤종신 또한 그 우승자 못잖은 수혜자라고 감히 인정할 만 하지 않습니까?

P.S. 여기에 트위터로 장재인에게 보낸 '팥빙수 빨리 먹자'는 내용은 따뜻한 스승 이미지까지 굳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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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해피선데이 - 1박2일'의 센티멘탈 로망스 1,2편이 고전 명곡 10곡으로 정리됐습니다. 두 편에 걸쳐 소개된 10곡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 가요사'를 정리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발표 연대도 대략 1984년에서 1990년 사이로 한정되어 있죠. 그러니까 80년대에 20대를 보낸 40대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선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이룬 노래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습니다. 사실 이 노래를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히트곡들이 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허공'에 이르는 트로트 계열의 히트곡들, 그리고 '물망초'에서 '자존심', '청춘시대', '모나리자'에 이르는 록 위주의 곡들과는 또 궤를 달리하는 서정적인 발라드 중에서도 쉽게 첫 손에 꼽히지 않는 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전면에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2주간에 걸쳐 방송된 10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이 노래들 외에도 수많은 노래들이 흘러갔지만, 제작진이 힘을 주어 순위에 포함시킨 노래들은 이 10곡입니다.

(1주)
이문세 '시를 위한 시'.
유재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홍성민 '기억날 그날이 와도'
산울림 '너의 의미'
부활 '사랑할수록'

(2주)
최호섭 '세월이 가면'
전영록 '종이학'
조용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양희은 '한계령'
김광석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 중에서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취침 미션도 끝난 뒤, "수면을 앞두고 감상용으로 틀겠다. 제목을 맞추거나 하는 미션이 걸린 것이 아니니, 조용히 들어 보기 바란다"는 설명과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은지원도 후드 티셔츠로 얼굴을 가린 뒤, 김종민에게 모창을 권유하는 등 '예능 모드'를 끄지 않았지만 곧 분위기를 눈치챘습니다(아마도 연출진의 손짓 제지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이내 다섯 멤버들이 모두 노래의 분위기에 젖어 진지한 '감상 모드'가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승기는 틀고 또 틀고 하면서 노래에 푹 취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네. 분명히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가사입니다.

작사:박주연 작곡:조용필

나는 떠날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너를 보낼때부터 다시 돌아올걸 알았지
손에 익은 물건들 편히 잘수 있는 곳
숨고 싶어 헤매던 세월을 딛고서 넌 무얼 느껴왔는지
하늘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건 모두 잊고 산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마음 아물게해
소중한건 옆에 있다고 먼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1988년 이후 조용필은 방송을 통한 전방위적인 활동에서는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88년의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89년의 'Q', 90년의 '추억속의 재회', 91년의 '꿈'에 이르는 히트곡들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지만 방송 활동 자제의 영향으로 음반 판매량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과 노랫말의 조화는 더욱 원숙해졌고, 음악적으로는 1980년대, 폭발적인 대중의 호응이 있던 때보다 훨씬 성숙했던 시기입니다. 이런 흐름은 1993년의 '슬픈 베아트리체', 그리고 1996년의 '바람의 노래'(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에 이릅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추억속의 재회'와 함께 1990년 앨범(통칭 12집)에 수록됐던 곡입니다. 마니아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노래이지만, '추억속의 재회'에 비해 훨씬 덜 알려졌고, 80년대 히트곡에 비하면 확실히 지명도가 떨어지는 곡이죠.

이 곡을 듣다 보면 새삼 느끼는 것은 노랫말의 완성도입니다. 명 작사가 박주연의 명성이야 굳이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 가사의 탁월함은 단연 눈길을 끕니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요즘 가요의 노랫말들입니다.




물론 최근이라고 해서 노랫말의 중요성이 덜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연히 예나 지금이나, 곡만 좋아서 히트하는 노래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가요의 주 소비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그 세대의 고민과 감흥에 맞춰진 가사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대라고 서정이 없고 관조적인 태도가 없을 리 없건만, 요즘 히트하는 노래의 가사들을 볼 때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한번 더 걸러 보다 높은 수준의 감정으로 승화시키거나, 즉물적인 고통이나 분노, 환희나 절망을 조금 더 보편적인 정서에 비쳐 해석하거나 하는 느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웃기면 웃긴다, 미우면 밉다의 선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직선적은 표현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어른들이 듣는 노래라고 해서 아이들이 듣는 노래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현재의 가요계에선 '어른 노래'와 '아이 노래' 사이의 차별점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 사이에는 아무 차별점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노래를 듣다 보면 저런 '옛날 노래'들의 서정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요즘도 저런 노래가 어딘가에서는 만들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자취를 감췄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1박2일'에서 2주간에 걸쳐 방송된 '센티멘탈 로망스'가 의도한 것은 바로 이런 가사에 대한 향수로 집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조용한 시점, 가장 방해가 없는 타이밍에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흘러나온 것은 그런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바로 '직선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충분히 숙성된 가사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그런 메시지 말입니다.

강호동이 '조용필 선생을 모시고 1박2일 명사특집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은 그냥 개인의 바람일 뿐, 이 분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서 함께 복불복을 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연출진의 의도가 그런 섭외에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남자의 자격'에서 흘러나온 '넬라 판타지아', 그리고 얼마전 MBC TV '놀러와'에 출연한 음악다방 4인조(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의 서정 탐험을 통해 드러난 시청자의 욕구가 이번 '센티멘털 로망스'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S. 시청자들에게 시적인 노랫말을 전해준 건 고맙지만 자막엔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합니다. 시청자들의 대다수가 청각장애인이 아닌 이상, 이런 자막은 출연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놓는 데에도 유용하지만, 출연자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비속어나 틀린 말을 정정해주는 효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틀린 말을 그대로 자막으로 옮겨 놓는 건 출연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죠. 물론 10년 전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작가나 PD들이 좀 더 신경을 써 줬으면 좋겠습니다.


수훈갑일까요, 수문장일까요. 수훈장은 대체 뭘까요. 처음 듣는 말.



혹한데라는 건 대체... 혹한(매혹당한) 데라는 뜻일까요? 아마도 '혹한을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데'라는 의미를 한방에 표현하신 듯 하지만, 효율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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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의 '슈퍼스타 K2', 마지막 3명 중에서는 솔직히 누가 떨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을 볼 때 세 사람 중 고정표가 가장 적은 건 허각이었죠. 존 박이나 장재인은 확고한 고정표를 안고 있었고,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가수의 느낌이 강했던 허각에 비해 존 박은 블루스와 흑인 음악, 장재인은 포크 록 혹은 브릿 팝 느낌의 깔끔한 음악성으로 개성을 뽐냈습니다. 또 짧은 결선 기간 사이에 투표자들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허각이 가장 불리할거란 예측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허각은 오직 실력으로 이런 열세를 한방에 뚫어 버렸습니다. 허각이 부르게 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는 오선지 저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를 다 써야 하는 힘든 노래입니다. 게다가 음의 진행도 일반적인 가요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노래죠. 이런 노래를 잘 부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허각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허각의 성공과 장재인의 실패 뒤에는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들 느끼셨겠지만 그건 바로 선곡입니다.


이날 세 사람은 모두 네티즌이 골라 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 공모에서 허각은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존 박은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 그리고 장재인은 박혜경의 '레몬 트리(Fool's Garden의 동명곡을 리메이크한 곡입니다)'를 부르게 된 겁니다.

존 박에게 박진영의 노래를 골라 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선곡입니다. 상식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윤종신이 지적한대로, 이 노래가 '노래를 잘 하게 보이는 곡'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미 이 블로그를 통해, 이번 대회가 시작된 뒤로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 왔습니다. 본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할 뻔 했던 존 박이 특별 심사위원 이문세가 바꿔 준 노래 한 곡 덕분에 일약 돋보이는 도전자로 변신한 사연(이문세는 어떻게 존 박을 되살렸나?  http://fivecard.joins.com/858), 여기에 마이클 잭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곡이 또 한번 존 박을 최강의 도전자로 거듭나게 했던 그 다음 도전(왜 강승윤 존박을 무시하나?  http://fivecard.joins.com/863), 그리고 비록 퍼포먼스가 당락을 결정짓지는 못했지만 허각과 강승윤이 돋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경우(강승윤, 잘 하고도 떨어진 이유  http://fivecard.joins.com/867)에 걸쳐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제가 주장한, 선곡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드라마틱한 노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니가 사는 그집'은 분위기 있는 노래이긴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경합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 줄수 있는 노래가 절대 아닙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장재인에게도 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목소리와 가창력, 해석력을 겸비한 장재인에게 '레몬 트리'는 너무도 평이한 노래입니다. 절대 클라이막스를 형성할 수 없는 노래죠. 박혜경의 노래라면 'It's You'같은 노래가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장재인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 장재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음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설마 그랬을 리는 없겠죠. 예를 들어 4위에 오른 노래가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라는 데서는 전에 장재인이 김윤아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데 대한 자우림 팬들의 반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2위를 한 '어떤이의 꿈'같은 노래는 장재인이 재해석해서 부르면 꽤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은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일부 불순한(?) 세력의 선곡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레몬트리'를 부르게 한 것은 장재인을 지지하던 팬들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한마디로 안타까운 일이죠. 만약 남이 대신 골라 주는 거라면 윤하의 '비밀번호486'이나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같은 곡들을 새롭게 해석해서 불러 보도록 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혹은 히트곡은 아니지만 W&Whale의 '월광' 같은 노래도 궁금합니다.

그랬다면 장재인의 3강 무대가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보이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허각이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노래를 받은 것은 단지 행운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주로 발라드를 부르며 고운 목소리와 탁 트인 고음을 자랑했던 허각은 바로 지난번, 미군 부대 미션에서 본 조비의 'You Give Love a Bad Name'을 화끈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이 미션에서 1등이었죠).

이 노래를 통해 허각은 그저 예쁜 목소리의 발라드 전문 가수가 아니라 꽉 찬 무대에서 제대로 로큰롤을 소화할 수 있는 재목이라는 점일 시청자들에게 확연히 일깨웠습니다. 오랜 행사 무대 경험이 큰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많은 허각 팬들이 '하늘을 달리다'를 허각에게 권한 데에는 이 미군 부대 미션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어쨌든 허각의 이날 열창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나 평이했던 존 박과 장재인의 부진은 최약체로 평가됐던 허각을 1등으로 결승에 진출시키는 이변을 자아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이상한 선곡의 주역이 제작진...? ㅋ) 그리고 결승은 그동안 너무 친한 모습을 보여 '슈퍼스타 게이(줄여서 슈스게)'라는 농담까지 나왔던 절친한 존 박과 허각의 차지가 됐죠.



이번엔 허각의 가창력과 존 박의 폭넓은 인기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 될 듯 합니다. 지난해의 서인국-조문근에 비쳐 '보나마나 존 박'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3강에서 허각이 보여준 위력은 슈퍼스타K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결승에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고 보면, 매우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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