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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주간 <프라이데이>에 쓴 첫번째 칼럼입니다.

당시는 WBC가 한창일 때라 야구 열기가 뜨거웠죠. 마침 ESPN 연예인 야구리그도 시작됐고, 실력으로 한국 연예인 야구리그의 최고 선수들은 누군인지 뽑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야구기자를 거친 만큼 야구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터라 말이죠.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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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휩쓴 한국 야구의 위력이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다. 하긴, 그럴 만 하다. 한국인의 야구열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프로야구 리그는 물론이고 연예인들이 주축이 되어 뛰는 전 세계 유일의 '연예인 야구 리그'가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케이블 TV 스포츠채널 MBC ESPN은 요즘 주말마다 연예인 리그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다. 정준하 이휘재 유재석 등이 주축이 된 '한', 박상원 김태균 이종원 등의 '조마조마', 강성진 손무현 정웅인 등이 뛰는 'CRP', 그리고 양상문 김용철 등 왕년의 스타들이 나서는 'MBC 올스타(아나운서-해설위원 팀)' 등 4개 구단이 매주 2경기씩을 펼친다.

이들 외에도 연예인이 주축을 이룬 팀으로는 안재욱 김건모 이성진 등이 주축인 '재미삼아'와 장동건 주진모 정우성 조인성 등 초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플레이보이스'가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두 팀이 MBC ESPN 리그에는 참가하지 않게 됐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장 역사가 오랜 한과 재미삼아의 라이벌전은 '연예인 야구'를 대표하는 명승부로 꼽혔다.

그렇다면 연예인 야구계를 뒤흔드는 스타플레이어들 중 베스트9은 과연 누구일까. 이쯤에서 '연예인 드림팀'을 한번 뽑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 싶다. 경기 결과가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야구의 생명인 통계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각 구단 관계자들과 상대 팀 선수들의 평가에 따라 포지션별로 베스트 플레이어를 꼽아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연예인 야구계 최강의 에이스는 함정엽 지티비엔터테인먼트 대표(CRP). 차승원 유지태 허준호 김소연 등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함대표는 서울고 재학시절 시속 154km를 던져 1년 아래인 부산고의 박동희와 함께 80년대 중반 고교야구계의 양대 강속구 투수로 군림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한양대 진학후 부상으로 야구계를 떠나 매니지먼트계로 진출했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 <웰컴 투 동막골>의 장진 감독(CRP)과 의기투합, 연예인리그에 뛰어들었다. 물론 왕년에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으니 연예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도 시속 13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상대 팀들이 일제히 항의, 연예인리그에서는 '선수 출신은 한 경기에서 3이닝 이상을 못 던진다'는 '함정엽 룰'을 만들었다. MC로 변신한 프로야구 10승 투수 강병규(전 두산)가 오지 않는 한 '이 판'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다.

SBS 염용석 아나운서(한)와 장동건(플레이보이스)도 시속 120km대의 수준급 구속을 자랑한다. 특히 염용석은 볼끝이 좋아 '라이징 패스트볼'로 불릴 정도. 반면 만화가 박광수(조마조마)는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하는 변화무쌍한 구질로 에이스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3D 직종인 포수는 '연예인 야구단'에서는 기피 포지션이다. 가끔이라도 포수를 보는 선수는 해설위원 겸 선수인 배칠수(한)나 개그맨 위양호(조마조마) 정도.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1루수로는 현재 정준하를 위협할만한 선수가 없다. 거구에서 뿜어나오는 힘과 유연한 허리, 여기다 드문 왼손잡이라는 이점도 겹쳐 '연예인야구의 이승엽'으로 군림하고 있다.

2루수에는 야구 명문 신일고의 내야수였던 허준호(한)의 아성에 수비가 좋은 스위치 히터 윤종신(한)과 강타자 이종원(조마조마)이 도전하는 양상. 3루수로는 NRG 이성진(재미삼아)이 최고로 꼽히고 유격수 부문에선 연예인 야구계 최고의 강타자 중 하나인 김승우(플레이보이스)가 '재치있는 야구'로 손꼽히는 안재욱(재미삼아), 이휘재(한)과 경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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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에서는 춘천고 재학중 선수로 뛰었던 가수 김C(한), 사회인야구 8년의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는 강성진(CRP), 영화 <사랑니>의 주인공으로 2년전 서울고 재학중 청소년대표 상비군에도 뽑혔던 신인 배우 이태성(한)이 각각 중견수-좌익수-우익수의 베스트로 꼽힌다. 여기 경합하는 선수들은 호타준족의 공형진(플레이보이스)과 김태균(조마조마) 정도.

궁금한 것은 이렇게 야구라면 죽고 못 사는 스타들이 많은데 <YMCA야구단>이며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야구 영화에선 왜 이들 스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하는 점. 할리우드에서 야구광을 꼽자면 요즘은 별 소식이 없는 케빈 코스트너가 첫 손에 꼽힌다. <19번째 남자(Bull Durham)>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the Game)> 등 야구영화만 3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케빈 코스트너처럼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도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의 케빈 코스트너'는 과연 누가 될지도 궁금하다.

혹시 아나. 이들이 당장 내일 의기투합, 세계 4강에 오른 한국 WBC 대표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을지.

2006. 3. 16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런 스타들이 대거 야구영화에 뛰어든다는 소문도 아직 전혀 없고. 취미는 취미로 그냥 즐기자는 생각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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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동네 골목길은 '또또또또' 혹은 '차차차차'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며 슬로비디오로 움직이는 꼬마들로 들끓었습니다. 60마일로 달리는 두 다리와 무적 오른팔, 전자 줌렌즈를 장착한 스티브 오스틴은 그야말로 무적의 주인공이었죠.

하지만 그는 정말 무적이었을까요? 사실 <600만불의 사나이>에는 그보다 강한 주인공들이 몇몇 나옵니다. 특히 공식적으로 그보다 강한 존재는 바로 그보다 100만달러를 더 들인 바이오닉 인간,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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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늙은 사진밖에 구할 수 없었지만 몬티 마컴 Monte Markham은 바로 스티브 오스틴을 위협했던 그 700만불의 사나이였습니다. 양 팔과 양 다리를 모두 바이오닉 조직으로 바꿔 친 700만불의 사나이 바니 밀러는 74년 11월1일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첫회에서 자동차 선수 출신인 바니 밀러는 OSI가 스티브 오스틴에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예비용 바이오닉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오스틴이 없어야 자신이 세계에서 유일한 바이오닉 인간이라는 망상에 빠져 오스틴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두 사람의 팔씨름 장면입니다. 바니 밀러는 오스틴을 팔씨름으로 눌러 버리고 씩 웃죠. 이 인상적인 악당은 이듬해인 75년 11월9일 방송된 THE Bionic Criminal 편으로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고서야 이 드라마에서 퇴장합니다.

솔직히 말해 600만불이건, 700만불이건, 지금으로서는 영화 한 편 찍을 수 없는 푼돈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제법 큰 돈이었습니다. 한국이 70년대말 미국에서 F-4 팬텀 전투기를 들여올 때 600~700만불 정도의 가격을 매겼기 때문이죠. 물론 대당 1억3000만달러나 하는 F-22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오늘에 와서 이 정도의 돈이 크게 느껴질 리는 없죠. F-22 한대 값이면 600만불의 사나이들로 축구팀의 풀 엔트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선수들로 나가면 월드컵은 문제가 아니겠군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몬티 마컴은 이 작품 이후로 별 신통한 역할을 맡지 못하다가 <SOS 해상기동대 Bay Watch> 에서 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왕년의 날카로운 700만불의 사나이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다음 적수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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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의 올드 팬들은 기억할 지도 모르는 이 남자. 바로 프랑스의 거인 앙드레 더 자이언트 입니다.

이 사람이 600만불의 사나이와 무슨 관계? 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겠지만,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번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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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도 신랑 신부가 모두 조글조글합니다. 어떤 사연이냐구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75년 9월14일과 21일 방송된 The Return of the Bionic Woman 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스티브 오스틴은 어느날 바이오닉 조직의 다리에 이상을 느껴 OSI의 의료원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눈 좋은 죄로, 어느 건물 방의 커튼 사이로 꿈에도 잊지 못하던 제이미 소머즈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잘못 봤을리가 없다고 확신한 오스틴은 루디 웰스 박사를 집중 추궁하고, 제이미 소머즈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결국 제이미 앞에 서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감았던 눈을 뜬 소머즈는 오스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냉동치료 끝에 바이오닉 조직에 대한 거부반응은 극복했지만 그로 인한 뇌손상이 기억상실을 유발한 것이죠.

오스틴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주치의인 젊은 미남 의사와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소머즈를 보며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소머즈는 서서히 오스틴에게 마음을 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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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머즈는 기억 회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오스틴과 함께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납니다.

이 장면은 이상하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는 소머즈에게 오스카 국장이 몸조심을 당부하자 소머즈는 오스틴의 손을 잡고 웃으며 오스카에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오스틴을 보며) 오빠같은 분이 있으니까요."

오빠같은 분. 오빠같은 분. 이 말 앞에 좌절한 작업남은 대체 인류 역사상 몇명이나 될까요. "오빠는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진짜 친오빠 같은 걸요." 반대로 "너는 나에게 그냥 여동생 같은 존재야" 이런 말 앞에 좌절한 여자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이런 남녀관계의 요체를 알 나이가 아니었건만, 저 대사가 가슴 한 구석에 던졌던 찌릿한 느낌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별일이군요.

...아무튼 오스틴과 소머즈는 임무 수행을 위해 노력하지만, 소머즈는 갑자기 오스틴과의 옛일이 환상처럼 눈 앞에 드리우며 발작을 일으킵니다. 오스틴과의 옛 기억이 현실과 충돌한 것이죠. 결국 임무 수행은 실패하고, 두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옵니다.

결국 오스틴은 결단을 내리죠. 둘이 같이 있는 것은 또 이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소머즈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고, 둘이 같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떨어져서 별도의 임무만 수행하게 하라니! 솔직히 저는 감동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스핀오프(물론 그때는 이런 말을 몰랐지만)라는 것이 가능해지는구나. 이렇게 해서 <600만불의 사나이>와 <특수공작원 소머즈>라는 두 개의 시리즈가 별도로 진행될 수 있게 되는 거였구나. 무릎을 쳤죠.

4개월 뒤인 76년 1월11일, Welcome Home, Jaime라는 두 편짜리 에피소드의 첫회가 방송됩니다. 바로 새로운 시리즈 Bionic Woman의 첫회였던 것이죠. 이렇게 해서 소머즈라는 미녀 공작원이 자신만의 새로운 모헙을 시작합니다. 물론 자매 시리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시리즈에 우정출연합니다. 특히 사스콰치와의 두번째 에피소드인 The Return of Big Foot이나 로보트인 가짜 오스카가 등장하는 Kill Oscar 등에서는 멋진 협력을 펼치죠.

그럼 두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되느냐. 해피엔딩이냐는 것이 궁금해지는데, 두개의 드라마를 통해 두 사람은 그냥 어정쩡한 상태로 시리즈의 끝을 봅니다. 후반으로 가며 소머즈 쪽이 다른 방송사에서 나가게 되면서 협력 체제에도 금이 가고, 그러다보니 두 사람을 맺어줄 여유 같은 건 제작진에게 기대할 수 없었죠.

린제이 와그너는 83년, 리 메이저스가 주연하던 드라마 <스턴트 맨 Fall Guy>에 우정출연합니다. 이게 아마 바이오닉 시리즈가 끝난 뒤의 첫번째 재회일 겁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3편의 TV용 영화에서 공연합니다. 모두 바이오닉 시리즈의 후속편격입니다.

The Return of the Six Million Dollar Man and the Bionic Woman (May 17, 1987)
Bionic Showdown: The Six Million Dollar Man and the Bionic Woman (April 30, 1989)
Bionic Ever After? (a.k.a Bionic Breakdown. November 29, 1994)

이 중에서 두번째 편인 Bionic Showdown은 <돌아온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주말명화 시간에 방송됐습니다. 두 늙은;; 바이오닉 영웅과 두 젊은 신세대 바이오닉 영웅의 이야기가 엇갈렸는데 여기서 젊은 여자 '소머즈' 역으로 산드라 불록이 나왔죠. 하지만 두 사람은 애틋하기만 할 뿐, 맺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스틴은 한번 결혼해 아들을 두고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죠. 아무튼 추억을 반추시키는 효과 정도만 있을 뿐, 영화적인 재미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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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은 94년, Bionic Ever After에서 웨딩마치를 올립니다.


스티브 오스틴이 바이오닉 파워를 잃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뭐 안 봐서 모르겠지만 참 기구한 인연의 연인들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75년에 처음 만났으니 19년만에 드디어 면사포를 쓴 것 아닙니까. 방송의 상업성(?)에 끌려다니다 결국 온 인생을 허비한 비운의 커플인 셈이죠. 아무튼 그 기구한 사연 끝에 결국 두 사람을 맺어준 것이 드라마 세계의 의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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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늘그막에야 맺어 주다니. 린제이 와그너가 수영복 입은 사진 찾느라 제법 힘들었습니다. 노출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이렇게 해서 3편에 걸쳐 소머즈의 탄생신화를 정리했습니다. 다음번부터는 두 바이오닉 영웅들을 위협했던 막강한 적수들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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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600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에게 여자친구를 붙여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멋진 터프가이에게 여자가 없다는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시즌2의 13번째 에피소드인 Lost Love에 출연한 린다 마쉬를 비롯해 오스틴을 거쳐간 여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75년 3월16일. 이미 OSI의 비밀 공작원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던 스티브 오스틴은 고향 동네에서 옛 여자친구 제이미 소머즈를 만납니다. 둘 사이에는 어느새 다시 불꽃이 튀기고, 둘은 어느새 약혼을 하기에 이르릅니다. 이 내용이 동네 신문에 실릴 정도로 우주비행사 출신의 오스틴 대령은 유명인사였죠. 그러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스포츠를 즐기던 소머즈는 어느날 스카이다이빙 중 추락 사고로 오른쪽 귀와 오른쪽 팔, 두 다리를 잃고 목숨도 위험해집니다.

오스틴은 소머즈를 구하기 위해 오스카 국장에게 그녀를 자기같은 바이오닉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수술은 성공합니다. 그러나 소머즈의 몸은 새로 이식된 바이오닉 조직을 거부하고, 결국 소머즈는 근육 이상 반응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I love you, Jaime'라는 가사의 애절한 노래가 마지막에 깔리고, 말탄 소머즈의 모습이 눈물을 흘리는 오스틴의 얼굴에 오버랩되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상-하편으로 나뉜 이 에피소드는 국내에선 <600만불의 사나이>와 <특수공작원 소머즈>가 양 채널에서 열심히 방송되고 있던 한 중간에 방송됐습니다. 당연히 소머즈가 뒷날(?) 바이오닉 공작원으로 맹활약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국내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해졌죠. 이렇게 소머즈가 죽어 버린다니? 아무튼 언제든 소머즈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국내 시청자들은 무척 재미있어하긴 했지만 그리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그저 <600만불의 사나이>의 두 회 에피소드로 이 스토리를 접한 미국 시청자들은 엄청난 정서적인 충격에 사로잡힙니다. 저렇게 예쁜 애인을 잃다니, 불쌍한 오스틴. 그러다 보니 "오스틴이 안됐다. 왜 소머즈를 죽게 내버려뒀느냐, 도로 살려내라"는 항의가 빗발칩니다. 돈 되는 거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미국 방송사들이 이런 호재를 내버려둘 리 없습니다.

프로덕션 측은 당초 이 역할을 샐리 필드(국내에선 나중에 <포레스트 검프>의 엄마 역으로 늘그막에 유명해집니다)나 스테파니 파워스(<부부탐정 Hart to Hart>에서 로버트 와그너의 상대역으로 나옵니다) 등에게 맡길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26세였던 린제이 와그너의 이전 경력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꼭 이 사람을 써야겠다고 생각할만한 거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방송사는 아예 The Bionic Woman이란 새 시리즈를 만들 때에도 다른 배우를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팬들의 반응을 체크해 본 결과 린제이 와그너에 대한 충성도가 예상외로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괜히 다른 사람을 새로 띄우느니 이 배우를 밀고 나가는게 훨씬 낫겠다는 판단을 하게 할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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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고민의 여지는 별로 없을 듯 한데.

결국 제작진은 75년 9월14일과 21일, <600만불의 사나이> 시즌 3의 첫 두 에피소드로 The Return of the Bionic Woman 1편과 2편을 내보냅니다. 물론 국내에서는 이 두 에피소드가 앞서 말한 두 에피소드, 즉 '소머즈가 죽는 에피소드'에 곧바로 이어서 방송됐습니다. 즉 <600만불의 사나이> 시간에 소머즈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4편을 연이어 '소머즈 특집'으로 방송한 거죠. 이 두 편의 에피소드 또한 당시 국내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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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가 월요일 밤 <600만불의 사나이>로 한창 장안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을 무렵, MBC는 목요일 밤 <특수공작원 소머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시청자들은 잠시 의아해했지만 곧 적응했습니다. 두 시리즈는 주인공 외에는 모든 배경이 똑같았기 때문이죠.

두 시리즈는 쌍둥이입니다.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과 제이미 소머즈(린제이 와그너)는 모두 오스카 골드맨(리처드 앤더슨)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OSI의 요원들입니다. 시청자들은 자세한 속사정은 몰랐지만, 아무튼 두 드라마가 같은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 차립니다. 심지어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몇몇 에피소드에는 '오스틴 대령'이 함께 등장합니다. 단지 방송사가 달랐기 때문에 귀에 익은 양지운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는 게 불만인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한국 시청자들은 몰랐지만 <특수공작원 소머즈>, 즉 Bionic Woman은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갈라져 나온 드라마입니다. 인기 절정이던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오스틴 대령에게 여자친구를 마련해 주고, 그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자 이 여자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탄생시킨 것이죠.

한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설정을 그대로 끌고 나와 또 하나의 새로운 드라마를 론칭시키는 것을 흔히 스핀오프 Spin-off라고 부릅니다. 이 두 드라마는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스핀오프의 모범 사례로 꼽히죠. 최근의 히트 시트콤이었던 <프렌즈>는 스핀오프로 <조이>를 탄생시켰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데어데블>과 스핀오프인 <엘렉트라>는 두 편 모두 신통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죠.


아무튼 처음으로 제이미 소머즈, 미모의 프로 테니스 선수이며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의 옛 애인이었다는 스펙을 가진 이 여인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등장한 것은 1975년 3월16일의 일입니다. 두번째 시즌으로 접어든 <600만불의 사나이>의 19번째 에피소드였죠.

이 에피소드의 소제목이 바로 The Bionic Woman입니다. 이듬해부터 3시즌에 걸쳐 방송될 인기 시리즈의 제목이 이때 정해진 것입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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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그렇게 온 반 아이들(특히 남자 아이들)의 화제가 한 곳에 집중되는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셨는데, 절반 이상이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그 전날이 바로 <원더우먼>의 첫회, 트레버 소령(라일 와고너)이 버뮤다 삼각지대에 떨어져 원더우먼 린다 카터를 처음 만나 인간 세계로 데려오는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방송된 날이었거든요.

전 세계인에게 원더우먼=린다 카터라는 등식은 깨진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 시리즈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사진을 보면 "원더우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린다 카터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원더우먼'이라고 말하면 '아하'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인데다, 린다 카터는 그 역할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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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배우들의 기준으로 볼 때 분명히 빠지는 얼굴은 아닙니다. 5피트 7인치(1m68 정도 되는군요)의 키에 35-23-34의 몸매, 윔블던 본선에도 올라간 적이 있는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에 저 정도의 외모라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1974년, 미국 방송이 린다 카터보다 2년 전에 원더우먼 역할을 할 여배우를 찾았을 때 선택된 것은 캐시 리 크로스비였습니다. 크로스비라는 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빙 크로스비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이 <원더우먼>은 코믹스 판 <원더우먼>에서 다이애나 프린스와 트레버 소령이라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갖고 오긴 했지만 코믹스의 세계와는 사실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 원더우먼의 능력도 뛰어나긴 했지만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에 비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총알을 막는 팔찌 따위도 없었고, 대신 정교한 폭발물과 기계 장비가 임무 수행을 도왔을 뿐입니다. 의상도 독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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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원더우먼>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저 파일럿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 이 1974년판 <원더우먼>은 한국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이 한창 방송되던 도중-아마도 TBC의 구매 담당자와 미국 프로그램 판매사 사이에 뭔가 차질이 빚어진게 아닌가 추측해보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캐시 리 크로스비의 <원더우먼>이 방송된 것이죠. 물론 성우까지도 다른 성우들을 썼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방송이 나간 뒤에 시청자들로부터 상당한 항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체 '우리의 린다'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대역으로 데리고 왔느냐"는게 항의의 주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크로스비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였다 해도 그가 린다 카터를 이기기는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누가 저런 '국제 표준 미녀'에게 감히 대항할 수 있었을까요.

린다 카터에게 극장판 원더우먼 역할은 누가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캐서린 제타 존스...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차라리 린다 카터가 그냥 하라"는 약간 정신나간 팬들도 상당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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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얘기 나오는 산드라 블록요? 그냥 영화 예산을 현찰로 바꿔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 외에는 배우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갑부 변호사 로버트 알트만(BCCI 스캔들이라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관련된 엄청난 금융 스캔들의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돈과 권력도 장난 아니란 얘기죠)과 결혼해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반면 크로스비는 근육에서 힘이 빠지는 희귀병으로 불행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운명이 그에겐 지나치게 가혹했다고나 할까요.


캐시 리 크로스비판 원더우먼의 오프닝입니다.




그중 한 장면. 함정에 빠진 원더우먼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린다 카터 원더우먼. 위기 돌파가 훨씬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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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됩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13)


흔히 조선 3대 악녀(?)로 정난정, 장녹수, 장희빈을 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개똥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조선같은 신분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정권을 농단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봐야겠죠.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에 비해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강성연은 농염한 연기로 전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TV에선 지나치게 바른생활소녀 역할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무튼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실제로는 강성연 만한 미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녀가 아닌데도 남자를 녹이는 별난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 요지인데, 한번 자세한 내용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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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연산군이 정씨와 엄씨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은 원문에는 '裂而?之, 散棄山野'라고 되어 있다. '잘게 찢어 해(?, 젓갈)로 담가 산과 들에 흩뿌렸다'는 뜻이다. 시신마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최고의 형벌을 뜻한다. 일찌기 한고조 유방이 통일의 공신인 팽월을 죽인 뒤 시체를 해(?)로 만들어 각지의 장수들에게 돌려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내용은 뒷날 '중국인은 사람 고기를 수시로 먹었다'는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분풀이가 되지 않았던 새디스트들이 개발한 복수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4. 장녹수는 정말로 연산군을 아이 다루듯 했나?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연산군을 아기 다루듯 하며 공길과 연산의 관계를 질투하는 드센 여자로 나온다. 과연 실제의 장녹수는 어떤 여자였을까.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는 이팔 청춘도 아니었고, 빼어난 미인도 아닌 30여세의 농염한 여인이었으며 특히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온다. 실록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보통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엄청난 상을 내렸다. (중략)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려 있었다.'


5. 이극균은 정말 역모를 일으켰나?

광대들을 동물처럼 풀어놓은 사냥놀이에서 진짜 화살을 쏘다 잡힌 신하에게 연산군은 "네놈은 내 어머니에게 사약을 안긴 놈이 아니냐"고 말한다. 대본상으로 이 인물은 이극균이다(사실 진짜 이극균은 연산군에게 처단될 때 이미 67세의 노인이었으므로 활을 쏘아 누구를 노리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종조에 북방의 야인들을 무찔러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공이 많았으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당할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사약을 받든 탓에 갑자사화의 희생양이 됐다. 영화와 같은 사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연산군은 이극균이 '나라의 명을 따랐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가 없다'며 사약을 먹지 않고 목을 매어 죽자 시신의 목을 베어 효수한 뒤, 나중에는 무덤을 파 백골을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복수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극균과 이세좌의 운명은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뒷날 숙종 때의 장희빈은 사약을 거부하며 "나에게 사약을 안기는 자는 뒷날 이세좌의 꼴이 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가 뒷날 경종이 될 운명이었으니 그리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다만 경종이 단명하는 바람에 갑자사화와 같은 피바람은 다시 일지 않았다.


6. 한글로 연산군을 욕한 벽보가 붙었나?


이것이 유명한 익명서 사건이다. 1504년 7월, 신수영의 집에 익명으로 된 투서가 날아들어왔다. 살펴보니 3명의 의녀들이 모여서 임금을 비판했다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익명서가 순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한 의녀가 '옛 임금은 난시(亂時)일지라도 이토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지금 우리 임금은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를 파리 머리를 끊듯이 죽이는가. 아아! 어느 때나 이를 분별할까?’ 하고 묻자 다른 의녀가 ‘그렇다면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하려니와, 무슨 의심이 있으랴’라고 대답했다는 등의 대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이 익명서를 보고 연산군은 대노하여 익명서의 등장인물들인 실재 인물들을 잡아들여 문초를 했으나 다들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대신들은 '고발하는 자에게는 범인의 재산과 베 500필을 주고, 벼슬이 없는 자라면 3품 벼슬을 주며, 천민이면 양인을 만들어 준다'는 후한 상을 내걸기를 주청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범인이 잡히자 않자 연산군은 몸이 달았다. 7월22일에는 한글을 쓰는 자를 처벌하고, 한글로 구결을 단 책까지 불태우라는 '언문 금지령'이 내려지고, 7월23일에는 한글을 잘 쓰는 자들의 필체를 보고하게 하여 필적 대조를 통해 범인을 잡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결국 25일에는 한글과 한문을 잘 쓰는 자들의 필적을 사헌부 등에서 보관하게 하여 뒷날의 사단에 대비하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이렇게 난리를 피운 데 비하면 범인이 잡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필적 대조 사태는 영화에 나온 것과 과히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7. 연산군은 동성애자였나?

정사든 야사든 '연산군과 동성애'에 대한 암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산군에게서는 과도한 이성애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나중에 숙원의 직첩을 받은 장녹수를 비롯해 전향, 수근비 등의 수많은 여인들이 실록에 이름을 드러낸다. 특히 '사대부가의 여인들을 잔치에 불러 오래도록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종친인 월산대군부인 박씨와도 관계를 맺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월산대군은 아버지 성종의 친형이니 자신의 큰어머니를 능욕한 셈이다.

연산군 12년(1506년) 7월20일, 월산대군부인 박씨가 사망한 내용을 다루며 실록은 '사람들은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자결한 것이라고 쑥덕거렸다(人言見幸於王, 有胎候, 服藥死)'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스캔들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바로 이 대군부인 박씨의 남동생이었던 것이다. 박원종은 누이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고 그로부터 불과 40여일 뒤인 9월2일, 성희안 유자광 등과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물리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옹립한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연산군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 인용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의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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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와 관련된 코멘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만들걸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한 30% 정도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독의 '역사 비틀기' 솜씨는 이미 <황산벌>에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 부문에서는 <황산벌>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햄릿>을 이용한 경극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기에는 약간 부족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아무튼 국민의 1/4이 봤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지독하게 못난 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은 영화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릴 무렵인 지난 2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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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1)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갖 대작들이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 대목을 겨냥하고 일제히 포문을 여는 12월. '킹콩'과 '태풍'의 쌍끌이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던 '왕의 남자'는 예상밖의 선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관객 동원면에서는 '태풍'의 절반 정도인 200만명 선을 웃돌고 있지만 제작비는 '태풍'의 1/4 수준이니 효율면에서는 두배가 넘는 셈이다.

원작 연극 '이'가 보여준 이색적인 소재, 감우성과 정진영에서 신인 이준기에 이르는 출연진의 호연, 이미 '황산벌'에서 역사의 재해석에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 그런데 '왕의 남자'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과연 이 영화는 얼마나 역사 속의 사실과 일치하고 있을까? 예전같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최근 전산화된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의 힘으로 일반인들도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단, 이하의 내용은 그냥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글일 뿐, 영화의 공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찌기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개봉됐을 때 한 재야사학자는 '최제우와 전봉준은 보은 집회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영화에서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부정확한 고증'을 지적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는 영화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영화 작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사건들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울 권리가 있다.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장생과 공길은 실존 인물인가?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의 연산군조에 장생이란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길은 딱 한번 나온다. 연산군 11년(폐위되기 1년 전) 12월 29일의 일이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중략)'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날 왕은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로 모이면 도둑이 된다"는 이유로 아예 광대들이 대거 참석하던 전통 유희인 나례를 폐지시켜버렸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지간히 비위가 상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이보다 6년 전인 연산군 5년(1499년) 12월19일만 해도 은손(銀孫)이라는 뛰어났던 광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은퇴했으니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대신들에게 요구할 정도로 연희에 애정이 두터웠던 연산군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런 기록 한 줄로 추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길이 미소년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2. '왕의 남자'가 커버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

시작의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부분의 내용이 갑자사화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 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1506년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체 시간은 약 2년에 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년이 흘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연산군은 정말 성종의 후궁들을 영화처럼 죽였나?

놀랍게도 실록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20일,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마침내 모친에 대한 복수의 칼을 뽑았다. 폐비 윤씨의 죽음이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 그리고 이들을 궁으로 들인 할머니 인수대비의 참소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산군은 일단 정씨의 소생인 두 동생,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잡아들여 곤장을 친다. 그 다음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기 힘든 패륜의 극치였다.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은)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중략)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다음날 왕은 자신의 명대로 어머니를 곤장으로 친 안양군에게 말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는, 제 정신인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안양군 봉안군 형제는 1년 뒤 유배를 거쳐 사약을 받는다.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기 전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첩들을 다른 종친들에게 첩으로 보내는 등 악착같은 복수의 집념을 보였다. (2편에서 계속  http://isblog.joins.com/fivecard/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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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무어라는 이름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로 변신하기 전, 두 편의 주목할만한 TV 시리즈에 출연합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세인트>일 겁니다. 항상 성자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고, 특유의 사인을 현장에 남기는 괴도 세인트의 모습은 그가 표현한 제임스 본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저 무어의 세인트 연기는 AFKN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볼 수 있었던 <세인트>는 무어의 후계자 아이언 오길비가 사이먼 템플러 역할을 맡았던 <돌아온 세인트>였죠. 그래서 오늘 여기서 소개할 시리즈는 바로 <전격대작전>, The Persuaders입니다.

The Persuaders (1971-72)

Tony Curtis ....  Danny Wilde
Roger Moore ....  Lord Brett Sinclair
Laurence Naismith ....  Judge Fulton

설정에 따르면 대니 와일드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집안 출신의 미국 백만장자, 브렛 싱클레어는 뼈속부터 영국 귀족인 모험가입니다. 성분이 영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만사태평에 겁이라곤 없는 사나이들이라는 점이죠. 어느날 풀턴 판사는 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국제 범죄자들을 두 사람을 통해 처단하자는 야심을 품게 됩니다. 안 그래도 아드레날린이 넘쳐 나는 두 사람은 당연히 OK를 하죠. 이렇게 해서 한 시즌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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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팬들은 <스팔타커스>의 미남 스타 토니 커티스의 '망가진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빅 스타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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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슬럼가를 헤치고 살아남은 야심만만한 와일드와 사빌 로우의 고급 양복을 걸친, 그야말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금방 걸어나온 필리어스 포그의 현신 같은 싱클레어는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분위기상 두 사람은 기관총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상황 속을 걸어나오면서도 농담을 주고 받을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앞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겠죠. 이런 장면이 기억납니다.

(지독한 난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두 사람. 대니 와일드는 완전히 거지 꼴이 다 된 반면, 싱클레어 경은 양복-그것도 흰 색-에서 톡톡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와일드: 이봐, 자네는 어떻게 이 난리통에서도 그렇게 깔끔한거야!
싱클레어: (눈길도 주지 않고 먼지를 털며) 흠. 그거야말로 자네와 내 차이 아니겠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농담은 오래 전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과 함께 주연한 <뜨거운 것이 좋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격대작전>에서는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이 되고, 로저 무어가 토니 커티스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사실 두 주인공이 너무도 위력적이라는 것은 이 시리즈가 단 1시즌으로 끝맺게 된 요인이 됩니다. 절대로 실패할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이 두 사람이나 되는데 대체 어떤 놈의 악당이 거기에 당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즉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 보니'  한두번이면 몰라도, 한 시즌 내내 흥미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전격대작전>은 한 시즌으로 막을 내리고, 로저 무어는 안 그래도 전부터 오라고 오라고 난리를 치던 007 쪽으로 눈을 돌려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에 출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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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여유 넘치는 영국 신사 스파이의 모습은 <세인트>에서건, <전격대작전>에서건, 그리고 007 시리즈에서건 결국 그게 그거였죠. 물론 그게 그거라서 싫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진정한 007은 숀 코너리가 아니라 로저 무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p.s. 이제 제목에 대해 얘기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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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전격대작전>의 오프닝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노자무어 형님이 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100불짜리 벤자민이겠죠.

저 장면을 보고 맨 위에 있는 <영웅본색>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과연 우연일지, 아니면 모방일지, 오우삼씨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전격대작전>의 오리지널 오프닝입니다.

 


2009년 개봉 예정으로 제작중인 영화판 <전격대작전>.

누굴까요? 조지 클루니와 휴 그랜트입니다.

현역 배우로는 최고 캐스팅인 것 같군요.^^




물론 오리지널 배우들에게는 그래도 좀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지만.

원작의 향기를 살짝 느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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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비 가족>이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 <엔젤 하트>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로버트 드 니로와 미키 루크라는 두 빅 스타가 주연한 이색적인 분위기의 악마에 대한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신비의 인물 로버트 드 니로의 의뢰로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립탐정 미키 루크는 소녀를 갓 면한 미모의 흑인 여인과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죠. 영화가 끝날 무렵, 그와 그녀는 서로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의 베드신은 80년대로서는 사뭇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TV에서 보던 미소녀가 어느 새 저런 노출 신을 소화하게 됐다는 건 사뭇 놀라운 일이었죠(개인적으로 참 놀랐습니다^^). <코스비 가족>의 둘째딸 리사 보넷은 만 스무살이 된 기념(?)으로 <엔젤 하트>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님'을 알린 것이었죠.

비슷한 시기에 리사 보넷은 레니 크래비츠와 결혼까지 해 버립니다. 에릭 베네-할리 베리 커플의 탄생 전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흑인 가수-연기자가 엮인 커플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었죠. 그러고 보니 윌 스미스-제이다 핀켓 커플도 이 범주에 들 수 있겠군요.

아무튼 <엔젤 하트>의 반향은 미국에서도 제법 커서, 타블로이드들은 리사 보넷이 빌 코스비의 명을 어기고 <코스비 가족>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했다고 떠들어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넷은 <코스비 가족>이 막을 내릴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코스비는 보넷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Different World를 내놓는 등 각별한 총애를 자랑합니다.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위자료가 너무 많았는지 리사 보넷은 그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윌 스미스와 공연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그리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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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는 출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인상적인 역할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존 쿠색이 반해 하룻밤 풋사랑에 빠지는 포크 여가수 역할이죠. 이 영화에서만도 사뭇 멋졌지만 이제 마흔 줄에 들어선 리사 보넷,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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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sby Show, 1984-1992

Bill Cosby ....  Dr. Heathcliff 'Cliff' Huxtable
Phylicia Rashad ....  Clair Hanks Huxtable
Sabrina Le Beauf ....  Sondra Huxtable Tibideaux
Lisa Bonet ....  Denise Huxtable Kendall (1984-1991)
Malcolm-Jamal Warner ....  Theodore 'Theo' Huxtable
Tempestt Bledsoe ....  Vanessa Huxtable
Keshia Knight Pulliam ....  Rudy Huxtable


흑인 중산층(아빠가 의사고 엄마가 변호사면 사실 상류층이군요)을 무대로 한 이색 시트콤인 <코스비 가족>은 국내에서 정말 드물게 히트한, '흑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입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흑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 놀랄 사람이 많을 겁니다. 90년대까지 한국 공연업자들은 '흑인 여가수 공연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을 정도입니다. 서울에서만 사신 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있죠.

아무튼 <코스비 가족>은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 방송되며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무래도 딕 반 패튼이 주연한 <아들과 딸들 Eight is enough> 이후 처음 한국 시장에 나온 본격 가족 드라마라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늘 TV에는 범죄자나 극빈층으로만 묘사되던 흑인들이 안정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는 점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역인 빌 코스비는 이런 부분에 항상 이의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코스비는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방송된 92년, 당시 로드니 킹 사건으로 빚어진 LA 난동 사태(한국인들의 피해가 컸죠)때 흑인들을 상대로 자제를 호소했을 만큼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이 큰 사람입니다. 그는 이 시트콤의 인기가 한창이던 87년 둘째딸 드니즈 역을 맡은 리사 보넷을 주인공으로 한 A Different World 라는 스핀오프 시트콤을 내놓습니다. '젊은 흑인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후반기에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이 주연하기도 한 이 시트콤도 나름대로 6시즌을 이어가는 짭짤한 성공을 거뒀죠.

초기에 헉스터블 부부와 네 딸, 한 아들(이는 진짜 코스비의 자녀 비율과 일치합니다)로만 단촐(?)하게 시작했던 출연진은 두 명의 사위가 추가되고 어린애였던 자녀들이 장성하며 이런 거대 가족이 되었습니다.

<코스비 가족>이 방송 9년만에 막을 내리자 '미국을 대표하는 가족 드라마'의 위치는 <심슨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어찌보면 <아메리칸 뷰티>가 괜히 나온게 아니죠.


당시의 주역들의 현재 모습을 담은 UCC입니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사람이 없군요?



<코스비 가족> 이야기는 조금 할 얘기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둘째 딸 드니즈에 대한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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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an's Heros (1965-1971)

Bob Crane .... Col. Robert E. Hogan
Werner Klemperer .... Col. Wilhelm Klink
John Banner .... Sgt. Hans Georg Schultz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이 시트콤(?)의 무대는 2차대전 중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었던 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입니다. 그러나 영화 <대탈주>에서 보여지는 페이소스를 기대하면 큰 일납니다. 비록 포로로 잡혀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 나오는 미군 포로들은 호텔보다 더 안락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지도자 호간 대령과 수하의 골때리는 재주꾼들 덕분이죠.

수용소장인 클링크 대령은 "호간 대령, 내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알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절대 그 속을 모릅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하죠. 아무튼 이 수용소의 미군 포로들은 수시로 이미 구축돼 있는 땅굴을 통해 독일 국내 곳곳은 물론 어디든 쉽사리 드나듭니다. 간혹 '탈출 시도'가 발각될 때도 있는데, 이건 경비부대의 일원인 슐츠 상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거죠. 처음엔 그냥 포로들에게 이용당하다가 나중엔 아예 포로들의 편이 되어 버리는 슐츠 상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슐츠: 이건 좀 약속해줘.
호간: 뭘?
슐츠: 만약에 당신들이 정말 탈출할 일이 생기면, 나도 꼭 데려가.

아무튼 이 수용소를 거의 2차대전중 연합군의 대 독일 공작 본부처럼 활용하는 이들은 가끔 클링크 소장을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다루기 쉬운 클링크 대령이 계속 소장으로 남아 있어야 수용소를 '운영' 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웃기는 것은 이 드라마가 독일에서도 매우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점 정도일까요. 생각해보면 독일 사람들은 참 속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보면 진짜 반성을 하고 있든지요.



'호간의 영웅들' 팬들이 만든 하이라이트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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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Avengers(1976-1977)

Patrick Macnee .... John Steed
Joanna Lumley .... Purdey
Gareth Hunt .... Mike Gambit (1976-1977)




자, 왜 키트도 안 나오고 라이더도 안 나오나 하는 분들,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제트>가 아니고 <제로>입니다. <전격제트작전>보다 훨씬 먼저 방송됐던 외화입니다. 80년대초 KBS 2TV에서 화요일인가 수요일 밤에 방송했죠.

영국산인 이 시리즈의 원제는 NEW AVENGERS입니다. 그냥 AVENGERS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두 시리즈 사이에는 약 7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같은 존 스티드고 두 작품에서 모두 패트릭 맥니가 그 역할을 맡았으니 연결되는 시리즈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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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부터 69년까지 방송되던 인기 시리즈(인기가 있으니 9년이나 했겠죠) AVENGERS는 본래 주인공 존 스티드가 미모의 여성 파트너들을 바꿔 가며 사건을 해결하던 스파이 시리즈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제임스 본드가 대외용이었다면 존 스티드는 영국을 위협하는 외국 스파이나 범죄자들을 잡는 방첩물이었던 셈이죠.

아무튼 시리즈 끝나고 7년, 제작자들은 존 스티드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원래 시리즈때 팔팔한(?) 40대였던 패트릭 맥니가 이미 50대 중반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예전처럼 젊은 미녀들과 짝짓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결국 마이크 갬비라는 젊은 남자 캐릭터가 필요해집니다. 미녀 퍼디가 나오긴 하되 러브 라인은 마이크와 퍼디 사이에서 그려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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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타깃'이라는 코너입니다. 비밀요원을 육성하기 위한 사격 훈련장을 지나간 요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자 스티드와 갬비가 수사에 나섭니다. 여기서 남미 오지에서 발견한 기이한 독이 발견되고, 퍼디가 그 독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갬비와 스티드는 비장한 대화를 나누죠.

갬비: 만약... 퍼디를 살려내지 못하면
스티드: 그런 소리 말아.
갬비: 이 세상을 나 혼자서 다 뒤지더라도 그 독을 퍼뜨린 놈을 해치워 버릴 겁니다.
스티드: 안돼.
갬비: ?
스티드: 혼자는 안돼. 나하고 같이 해야 되네.

뭐 이런 약간 유치한 비장미. 그러나 주인공이 죽어서는 시리즈가 끝나 버릴테니 결론은 해피엔딩.

제임스 본드는 물론이고 로저 무어에 이어 아이언 오길비가 이어갔던 <세인트>, 로저 무어와 토니 커티스의 <전격대작전>, 그리고 다음번 쯤 얘기할 마틴 쇼의 <특공대작전> 등 영국제 스파이 드라마에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관객을 걱정하지 않게 하는, 이 여유 넘치는 주인공들의 아우라가 오늘날에 와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게 돼 버렸다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98년 레이프 파인즈, 우마 서먼 주연의 영화로 되살아난 <어벤저>가 망한 것도 결국은 요즘 배우들에게 이런 아우라는 재현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션 코너리가 악역으로 나온다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죠.


<전격제로작전>의 몇몇 장면들을 조아나 럼리 중심으로 편집한 영상입니다.





이건 오리지널 시리즈인 <어벤저>. 7년 전의 얼굴이지만 패트릭 맥니는 거의 용모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때의 대표적인 여성 파트너 다이애나 릭은 뒷날 본드걸로 훨씬 더 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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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요계를 악의 소굴로 생각하는 재야 가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를 과연 '순위' 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순위를 '납득할 수 있는 기준'만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트인 빌보드 차트도 결코 판매량으로 매기는 차트는 아닙니다.

차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나마 방송사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차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맹목적인 비판만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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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왜 방송사는 가요 순위를 매기면 안되나?

MBC TV '음악중심'이 순위 발표를 포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가요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던 각종 시민단체들은 무척 속 시원해 할 일이겠지만 기자의 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과연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가요계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기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가요계의 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동물원을 없애면 야생동물 남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소산일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논리를 살펴보자. 비판자들은 가요의 순위 매기기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물론 방송은 대다수 가수와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지만 매주 발표되는 음반의 수에 비해 매주 방송에서 다뤄줄 수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수들에게 있어 1차적인 문제는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일단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비리 근절의 가장 좋은 수단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송에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 1위냐 2위냐 순위를 다툴 수 있는 가수들이 전체 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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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를 매기든, 매기지 않든, 가요계의 비리가 이슈가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무명의 신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성 인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냈을 때,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아무리 담당 PD가 자신의 귀를 믿고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도 어딘가에서는 잡음이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순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특정 장르에만 편중해 대중음악의 저질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순위 매기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방송사의 자체 기준에 의한 출연자 선정에 외부의 입김이 개입됐을 때, '카우치 사건'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10대 취향의 음악에만 편중해 대중음악계를 왜곡시킨다'는 주장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가 높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계층은 바로 10대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일이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을 뜯어고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주장을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하면, '10대를 겨냥한 시트콤'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져야 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일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순위 매기기 자체가 가요계의 '상업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까지 응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방송사든 아니든 가요 순위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인기가수이고 누가 인기가수가 아닌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난 뒤 누군가 한국 가요사를 정리하려는 상황이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를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음반 판매량도 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가 그저 음반판매량 순위가 아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와 명성을 획득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빌보드 지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판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순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회수, 다운로드 회수,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방송사보다 권위있고 공정한 순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보다 믿을만한 순위 작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이런 중요한 과업을 일부의 비판 때문에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끝)





이 글을 쓴지 2년이 돼 가지만 상황이 달라진게 있다면 지상파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극도의 시청률 저하로 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가수들은 시청률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도 이런 현실을 만든 범인 중 하나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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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킹콩'에 열광했던 건 이렇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도 세고, 잔머리 따위는 굴리지 않고, 외모는 좀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일편단심인 남자친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온 '킹콩 무비'들을 비교해서 즐겨보실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송원섭의 through*2] 세 '킹콩'들에 대해 궁금한 8가지 것들

지난 1933년 처음 극장에 등장한 이후 킹콩은 슈퍼맨과 배트맨을 포함해 어떤 캐릭터 못잖은 유명한 존재가 됐다.

이번에 피터 잭슨이 만든 작품은 72년 전의 오리지널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것. 과연 이 사이 킹콩은 얼마나 달라졌고, 그 동안 어떤 변천사를 겪어왔을까? 모르고 봐도 상관없지만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킹콩' 이야기를 모아 봤다.

1. 킹콩은 지금까지 3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라이언 쿠퍼의 오리지널은 1933년작. 1976년에는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주연의 '킹콩'이 만들어졌고 2005년, 피터 잭슨이 33년작을 리메이크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미지의 섬에 석유를 찾아 나섰다가 킹콩을 발견한 유조선 선원들의 모험을 그린 76년판의 감독 존 길러민은 1986년 암컷 킹콩이 나오는 속편을 제작하기도 했으나 그 수준은 참혹할 정도였고, 이 영화는 정식 '킹콩' 계보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33년판에도 '킹콩의 아들(Son of Kong)'이라는 속편이 있지만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계보는 할리우드판 킹콩만을 감안한 것. 지난 76년 만들어진 이낙훈 주연의 한미합작 3D영화 '킹콩의 대역습(Ape)'이나 킹콩이 등장하는 고지라 시리즈를 합하면 킹콩이 출연한 전 세계 영화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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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킹콩 중에서 실제로 가장 컸던 것은 신장 12미터(40피트)였던 76년판의 킹콩. 33년판 킹콩의 키는 대사에는 15미터(50피트)로 되어 있지만 피터 잭슨은 33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사람이나 건물의 높이와 비교할 때 실제 키는 그 절반 정도라고 판단하고 2005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7.5미터(25피트)로 결정했다.

3. 세 편 모두 킹콩은 뉴욕에서 최후를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세 편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무대가 된 것은 아니었다. 76년판에서 킹콩은 9.11 테러로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기어올라간다. 뉴욕의 마천루를 대표하는 빌딩들이 '킹콩' 유치를 위해 벌인 경쟁에서 WTC가 이긴 결과였다.

4. 피터 잭슨의 2005년판은 33년판의 충실한 재현.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어머니의 털 코트를 잘라 킹콩 인형을 만들고 놀았다는 잭슨의 33년판에 대한 존경심은 가끔 장난기로 변해 나타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화감독 데넘(잭 블랙)과 조수 프레스톤(콜린 행크스)은 여배우 캐스팅에 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다.

데넘: 페이는 어때?

프레스톤: 페이는 쿠퍼와 함께 영화 찍고 있어요.

데넘: 맞아. RKO 영화였지.

페이(레이)가 출연하고 (머라이언)쿠퍼가 연출한 RKO 영화란 바로 오리지널 '킹콩'. 잭슨은 원작에서 앤 대로우 역을 맡은 페이 레이를 2005년판에도 특별출연시켜 마지막 대사인 "킹콩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야. 미녀가 야수를 죽인 거지"라는 대사를 맡기려 했지만 레이는 지난해 8월 97세로 사망했다.

5. 33년판과 2005년판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일단 캐릭터 중에서 남자 주인공 잭 드리스콜은 2005년판에서 앤 대로우(나오미 와츠)가 존경하는 작가지만 33년판에서는 그냥 용감무쌍한 부선장일 뿐이다.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의 종을 초월한 애틋한 감정은 76년판에서 시작됐다. 33년판의 여주인공 페이 레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킹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76년판의 제시카 랭은 마지막 순간 헬기 편대의 기총소사를 막기 위해 흐느끼며 킹콩을 감싼다. 2005년판에서 피터 잭슨은 여기에 감미로운 스케이팅 신까지 추가하며 '미녀와 야수'라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6.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역을 맡아 명성을 얻은 앤디 서키스 는 이번에는 1인2역을 해내 피터 잭슨의 오른팔임을 증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디지털 킹콩의 표정은 서키스의 표정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킹콩 역할을 위해 런던 동물원의 고릴라들과 안면을 틀 정도로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또 하나의 캐릭터는? 바로 애꾸눈 선원 럼피다.

7. 이밖에 프레스톤 역의 콜린 행크스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톰 행크스의 아들. 또 지미 역의 제이미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의 그 소년이다. 카일 챈들러가 연기한 극중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박스터는 어딘가 클라크 게이블을 희화화한 듯한 모습. 실제로 브루스 박스터라는 배우가 있기는 했지만 원작이 만들어질 무렵인 30년대에 활동하지는 않았다.

8. 피터 잭슨은 두 권의 책을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첫째는 1912년에 출간된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원시 생물들이 군집해 살고 있는 절해고도를 탐험하는 내용인 이 책은 오리지널 '킹콩'의 발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2편의 제목이 '잃어버린 세계'인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잭슨이 그려낸 해골섬의 장벽 모습은 '잃어버린 세계'의 삽화에서 영감을 얻은 33년판의 영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또 2005년판에서 지미가 항해중 읽는 책은 1899년에 나온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훗날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지옥의 묵시록'의 원안이 되는 바로 그 책이다. 서구인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저개발국의 자연과 주민들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거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이 책을 등장시킴으로써 잭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송원섭 기자





p.s. 심지어 한국 영화 '킹콩의 대역습'은 입체영화였습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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