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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라고 원대한 포부와 인생의 계획을 정립하는 건 그냥 부지런히 살아서 큰 일 하실 분들의 얘기인 것 같고, 이런 블로그를 돌아보실 여유를 가진 분들은 그냥 사시던 대로 사시는 게 좋겠습니다.

 

 

 

Paul, Stella and James, Scotland © 1982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그러니까 저 밑에 쭈그리고 앉은 소녀가 아디다스 삼선을 촌스러움의 상징에서 벗어나게 한 그 분이란 얘기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5)

 

송년 모임으로 퀭한 눈을 하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세번째 새해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리네. 어찌나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혹시 그 전에 이 칼럼을 본 사람이라면 새해라는 건 그냥 달력 위로 지나가는 표시일 뿐이야. 1월 한달 어떻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냥 살던 대로 살라는 지침은 지난해와 똑같아.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안달복달하지 말고 살아. 남들이 뭘 하고 얼마나 앞서 가건, 조금만 길게 보면 언젠가 다 비슷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있어.

 

새해의 첫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118, ‘정명훈과 서울시향 10이라는 10주년 기념 공연이었어. 서울시향을 두고 시민의 혈세로 1%의 상류층을 위한 서비스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절인데, 그런 사람들에겐 세금으로 뭘 해야 낭비가 아닌지 궁금해. 도로 포장? 하수도 보수? 정말 그거면 충분해?

 

또 다른 일각에선 정명훈이 온 뒤와 오기 전 서울시향의 연주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일각에선 무식한 게 죄냐고 방어벽을 쳐 주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은 무식한 게 죄야. 자기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건 더 큰 죄고.

 

아무튼 그런 분들의 생각보다는 이런 공연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티켓 가격은 무려 1만원 부터시작해) 상류층이 꽤 많은 덕분인지, 이 공연은 거의 매진 직전이야. 이 칼럼이 책으로 나갈 때에는 매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 추천하기는 곤란하네.. 연주 곡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황제’(협연자가 심지어 김선욱이야),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 혹시 취소표가 나오는지 각자 확인해 보도록 해.

 

이 공연을 포기하면 아쉽긴 하지만 1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요엘 레비 지휘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 B 3만원, C 2만원. 

 

오랜만에 연극 한 편. 국립극장에선 118일부터 해롤드 앤 모드라는 연극이 공연돼. 늘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19세 소년이 삶에 무한히 긍정적인 80세 할머니를 만나면서 훈훈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는 줄거리.

 

 

 

잠깐, 그런데 이거 내가 아는 연극 같은데?’라고 말하려는 분? 그거 맞아. 지난해까지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 맞아. 다만 원작자 측에서 원제 해롤드 앤 모드를 그냥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해. 벌써 한국에선 여섯번째 공연인 셈이지. 할머니 모드 역은 계속해서 박정자가 나서고, 19세 소년 해롤드 역은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으로 주목을 끈 강하늘이 맡게 됐어.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극중 40) – 유아인(극중 20) 커플은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최강 연상연하 커플의 훈훈함이 추위를 날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이런 추운 날씨엔 집에 콕 박혀 볼 책을 소개하는게 더 맞을 것 같지만, 건강을 위해선 추워도 바깥 출입을 좀 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1월은 아시다시피 전시의 성수기잖아. 방학이기도 해서 괜찮은 전시들이 몰리는 시점이지.

 

우선 지난 1213일부터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리, 일상의 유혹전에 눈길이 가.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Les Arts Decoratifs)에 소장된 장식 예술품과 가구, 식기, 기타 생활용품 등을 통해 18세기 파리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야. 그동안 흔히 있었던 예술품이나 사진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네. 13000. 329일까지.

 

 

Jimi Hendrix Experience, London © 1967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서울 대림미술관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전시야. ‘매카트니라는 이름에서 바로 느낌이 오겠지. 비틀즈의 리더 폴 매카트니의 전처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어머니인 린다 매카트니는 그룹 윙즈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래 출발점이 사진작가야.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해. 물론 이런 칭찬은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동세대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사진(바로 위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처럼) 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야.

5000. 116일부터 426일까지.

 

1. 16. KBS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B 3만원

1.18~2.28 연극 해롤드 앤 모드                                 S 5만원

11.6~4.26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5000

12.13~3.29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파리, 일상의 유혹     13000

                                                                      98000

 

 

 

사실 한달에 10만원을 자기를 위한 비용으로 쓰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한달에 10만원을 쓴다면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 한두번, 혹은 괜찮은 바에서 마시는 보드카 한 병 정도의 값으로 쓰는 게 훨씬 더 효용이 높은 분도 계실 겁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새해 담배값이 많이 올랐더군요)을 한달간 매일 즐길 수 있는 돈이기도 하군요. 옷이나 가방, 화장품 가격으로 따지면.... 비교하는 게 바보같을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10만원을 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아주 한정된 방법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어느게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소비의 방법에 우열을 두고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는 이상,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소비는 모두 욕먹어 마땅한 짓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종문화회관 앞을 그냥 지나치는 대중'에 대한 헛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몰입해서 즐길 거리가 있는 삶이(다른 말로 하자면 '취향을 가진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골프와 온천, 여행과 쇼핑, 그리고 낮 시간의 정치 토크쇼만이 인생의 전부인 노장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 두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뭐든 말입니다.

 

어쨌든 새해니까. 

 

그러고 보니 저렇게 팔팔하게 활동하시던 로린 마젤 옹도 지난해 이승을 뜨셨더군요.

 

살아 있을 때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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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neujahrskonzert 실황을 메가박스 생중계로 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생중계' 라든가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 '생중계' 등이 있긴 했지만 사실 진짜 생중계는 거의 없었죠(일단 그쪽에서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저녁 시간일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대략 24시간 이내에 다른 국가의 극장에서 방송되는 건 '생중계'로 친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1월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진짜 생중계였습니다. 주빈 메타 지휘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빈 현지 시각으로 1월1일 오전 11시15분부터 치러진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빈의 시차는 8시간. 대략 7시20분 쯤 중계방송(?)이 시작됐으니 생중계 맞습니다.

 

 

 

 

사실 저도 보기 전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본 건 아니고, 그냥 대략 "시간으로 볼 때 이번엔 진짜 '거의' 생중계겠구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시차를 따져 보니 진짜 생중계라서 좀 놀랐습니다. (분명히 생중계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 영상에서는 앵콜 곡이었는데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고, 생중계 방송사에선 자막까지 다 만들어 놓고 뭐 이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예전에도 몇 차례 쯤 국내 방송에서 신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방송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시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BGM으론 가능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사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소감을 좀 기록해 놓을까 합니다.

 

 

 

 

 

1. 생중계의 품질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 대략 15분에서 20분마다 화면과 음향이 LP 튀듯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영상과 음향이 싱크로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물론 결정적으로 방송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30분짜리 '음악' 콘텐트를 중계하는 데 7~8회 정도(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수신 이상이 발생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2.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5개관이 동원됐고 기타 지점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석 매진이란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콘텐트를 신년 이벤트로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 과장하면 '매년 1월1일은 메가박스에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3.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약 150여곡,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170여곡의 월츠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사실 월츠라는 음악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위한, '실용음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월츠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콘서트장이나 이런 이벤트를 통해 월츠를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것은 댄스뮤직을 좌정하고 앉아 '감상'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

 

4. 그러다 보니 전반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미션이 지난 뒤, 2부부터는 주빈 메타의 적극적인 진행 감각이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을 연주할 때에는 곡 후반을 피아니시모로 유지하다가 관객을 향해 큰 소리로 "etc, etc, etc" 라고 외쳐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더군요. 끝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곡 특성을 유머로 승화시킨.

 

5. 처음 들어 본 곡입니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학생 폴카'라는 곡이 연주됐는데, 이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곡이더군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에 나오는 '가우디아무스 이기투르 Gaudeamus Igitur' 파트의 변주로 보이던데... 이건 브람스의 패러디지, 아니면 브람스와 슈트라우스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래가 그 가우디아무스...

 

 

 

 

6. 이밖에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곡들에 발레 안무를 덧붙이는 아이디어(물론 공연 주최측보다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ORF가 짜낸 것이겠지만)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마음에 든 연출은 바로 Hans Christian Lumbye 의 곡인 Champagner-Galopp 을 연주할 때 등장한 '샴페인 병 따는 소리 내는 악기'와 단원들에게 술잔을 권하던 메타 옹의 퍼포먼스.  

 

8.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엔딩 곡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때 보여준 메타 옹의 박수 지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 음악의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크기의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얻어 내는 노련한 지휘자의 기량을 통해 '과연 음악에서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보여줬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앞부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메타 옹이 단원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빈 거주자, 독일어 능통자 내지는 음악 고수 여러분의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

 

9. 결론은 강추. 다음 기회에라도 한번 보실만한 콘텐트입니다. 정 뭐하면 2016년 1월1일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10. 이 이벤트를 놓친 분들께 추천 하나. 1월3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5 신년음악회'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단, 제목은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2014년 12월29일(현지시간) 열린 '새해맞이 음악회'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제목은 '신년음악회 New Year Concert'가 아니라 '새해맞이 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20332/ ) 인 겁니다. 뭐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죠.^ 물론 이런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1항 에서 지적한 생중계의 문제도 없고, 오히려 감상용 공연으로는 훨씬 더 좋을 듯.

 

 

P.S. 일본의 상류층 여성 사이에는 '기모노 입고 1월1일 빈에서 신년음악회 보기' 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기모노 입은 일본 여성 관객들이 최소 10명은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1090유로급  좌석인 모양이던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가장 싼 좌석은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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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순화동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9년.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2015년은 상암동에서 시작합니다. 새로운 방송 메카로 부각되고 있는 상암동...이지만 주변 환경은 아직 척박하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특히나 순화동 주변의 오래된, 혹은 내공 있는 맛집들이 매우 그리워 질 듯 합니다.

 

시청-순화동-충정로 주변에서 자주 가던 맛집들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순화동 주변에는 워낙 오래된 맛집들이 많습니다. 아시는 맛집이 없어서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텐데, 뭐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들은 제외했습니다. 유명하긴 한데 왜 유명한지를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제외한 집들도 있습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맛집은 취향. 따지지 맙시다.

 

[지금부터 반말 모드]

 

 

 

1. 비진도 해물뚝배기 (A+뚝배기)

 

 

 

 

사진을 보고, 저 앞을 수십번 지나간 사람도 "아, 저 집이 그런 집이야?"라고 물어볼 정도. 주변을 잘 아는 사람에게 "고가도로 밑에 한정식 은정과 중국집 한성각이 있고, 그 건물 1층에 있는 집"이라고 설명해도 "거기에...?"라는 반응이 나옴.

 

이렇듯 존재감은 없으나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충정로 최강의 맛집으로 정평이 난 집. 뚝배기에 해물을 그득 담아 국물을 내 주는데, 국물에서 MSG 맛이 거의 나지 않으나 놀랍게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남. (참고로 글쓴이는 절대 MSG 배제론자가 아님. MSG 맛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함. 다만 MSG 맛이 나지 않는 소박한 맛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음.)

 

비진도 해물뚝배기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서울 시내 여타 지역의 지점들과 이 집이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이 집이 그중 원조격인 것은 분명함.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비진도 해물뚝배기 충정로 직영점'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지점이 표시되는데, 아래 지도에 나오는 지점이 맞음.

 

단 테이블이 4~5개 뿐이고 11:30에 정확하게 오픈하기 때문에 경쟁률 장난 아님. 정말 앉기 힘든 집이라 더욱 가치가 드높은.

 

 

 

 

2. 진주회관(콩국수)

 

한여름에는 20~30분 대기가 필수인 서울시내 굴지의 콩국수. 일단 콩국수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젓가락 뜨는 순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콩국수 좀 빨아 봤다고 주장하면서 이 집을 부정하는 사람은 클래식 좀 듣는다면서 "난 베토벤은 좀 별로더라" 라는 식의 코멘트를 던지는 사람과 비슷한 대접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1만원 넘는 가격은 좀 아쉽.

 

여의도 백화점 지하를 통일한 진주집과는 친척이라는 후문. 사실 콩국수를 1년 내내 팔지는 않고, 콩국수 철에는 매우 불친절해진다는 특징이 있음. 이렇게 이미 유명한 집을 굳이 다시 소개한 건, 비수기에는 섞어찌개(내용은 부대찌개+오징어)와 김치볶음밥(이라기보다는 깁치철판비빔밥)이 맛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히 섞어찌개는 근동의 부대찌개류 중 최고.

 

 

 

 

 

 

 

3. 원조집 (닭한마리)

 

공식명칭은 "닭한마리 칼국수 원조집". 사진은 찍어놓은게 없는 것 같고, 비주얼은 맑은 국물의 일반 닭한마리와 매우 유사. 그런데 뭣보다 닭고기의 질이 순화동 주변의 여타 닭한마리 집들과 비교가 안 되는 양질이고,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와 나박김치의 중간 형태 쯤 되는 국물 시원한 배추김치가 일품.

 

남비를 올릴 때 마늘을 추가로 요청해 잔뜩 국물이 넣고, 간장소스+식초+겨자+매운 양념을 배합해 고기를 찍어 먹고, 국물이 적당히 졸았을 때 익은 마늘과 국물을 같이 먹는 맛이 일품. 배추김치로 국물 뒷맛을 없애면서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으면 식사 끝. 인당 1만5천원 정도 소요.

 

 

 

 

 

 

4. 남도식당 (추어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동 한복판의 추어탕집. 가벼운 된장 기운에 부담스럽지 않은 국물이 시원하고, 정갈한 반찬에 상을 받으면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워지는 명문의 위력이 여전하다. 서울 전역에 있는 추어탕집들의 내공이 동반 상승해 요즘은 웬만한 집이면 비슷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집의 매력은 여전하다. 특히 추운 날 강추.

 

다만 어느 시간에 가도 붐빈다는 점 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 눈으로 보는 줄의 길이에 비하면 회전률이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그러니까 기다릴 만 하다. 그래도 죽어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은 정동까지 가기 전 전통찻집 덕수궁 옆 골목에 있는 '월매네남원추어탕'을 가셔도 된다. 이 집도 남도식당 근처라 인정을 못 받아 그렇지, 꽤 한다.

 

 

 

 

5. 버즈 앤 벅스 (각종 샌드위치)

 

일단 정동으로 접어들면 절대 가면 안 되는 집이 '길***기'라는 아주 으리으리하고 멋진 집. 뭐 워낙 입지가 좋아 늘 손님으로 미어 터지는 집이니 여러분이 안 간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앞을 주저없이 지나 경향신문 쪽으로 죽 가면 왼쪽으로 고풍창연한 한옥 대문 형식의 이화여고 구 교문이 있고, 그 교문 안으로 들어가면 버즈 앤 벅스가 있다.

 

각종 샌드위치와 파이, 정식류를 비롯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맛을 낸다. 채광이나 조경도 일품. 근동의 '예쁜 밥집' 중 최고.

 

 

 

 

 

 

6. 진주집 (꼬리곰탕)

 

부근에서 추운 날, 중년 남자와 약속이 있다면 필승의 집. 유명한 갈치조림 골목 안에 있다. 꼬리곰탕이 워낙 비싼 음식이다 보니 보통 꼬리곰탕으로는 면이 안 살고, 이집 비장의 '토막'을 시켜야 하는데 19,000원 정도 하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다만 비슷한 가격의 파스타 한 접시로는 느낄 수 없는 투박하면서도 섬세한, 차가운 한파가 두렵지 않은 짙은 고기 국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4인 기준으로 6만원 정도 하는 꼬리찜을 시키고, 고기를 건져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밥과 국수를 끓여먹는 것도 별미. 남대문 시장의 꼬리곰탕이라면 올리브타워 지하에도 분점이 있는 은호식당이 라이벌인데, 개인적으로는 지방 맛이 좀 과한 은호식당보다 다소 은은한 진주집을 훨씬 선호함. (이 정도는 취향 차이로 인정 가능)

 

 

 

 

7. 중림장 (설렁탕)

 

순화동 주변의 설렁탕이라면 전통의 잼베옥과 중림장이 쟁패를 벌인다. 가장 큰 차이는 MSG의 촉촉한 맛. 잼베옥은 거의 MSG의 수혜를 못 본, 다소 슴슴한 국물 맛이 일품이고 중림장은 상대적으로 고소하고 감칠맛도는 M의 세례가 선명하다. 김치도 중림장 쪽이 단맛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중림장 국물 맛이 훨씬 친숙한데, 이 집을 두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어마어마한 냄새. 한경빌딩 주변 50M 반경에까지 꼬랑꼬랑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밥을 먹고 나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생각나는 중독성을 보유하고 있다.

 

 

 

 

 

 

8. 고려정 (국수전골)

 

이 동네가 익숙지 않은 사람들을 데려가는데 가장 고민이 덜할 집. 가츠오부시+다시마+멸치 베이스 육수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끓여 먹는, 전형적인 국수전골이 일품이다. 물론 주 1회 이상 먹으면 금세 물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처음 먹었을 때는 매우 감동스럽다. 예전엔 낮에는 한정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방을 내주지 않는 거친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은 듯. 1만2천원 정도. 아울러 밤에는 상당히 양질의 삼겹살을 낸다.

 

 

 

 

 

9. 마마스 (각종 샌드위치)

 

뭐 워낙 유명한 집이고, 여전히 경쟁력도 넘쳐난다. 1만원대 초반의 샐러드로 2인 식사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필리치즈샌드위치가 최근 질이 낮아지고 있어 아쉽긴 하다. 아무튼 최고.

 

 

 

 

10. 부원면옥 (냉면)

 

생각해보면 냉면이 그리 고급 음식이었을 리 없건만 날이 갈수록 천정부지인 시내 고급 냉면집들이 야속한 분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냉면집. 적당히 시장스럽고, 적당히 전통미 있는 달달한 국물이 씨원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빈대떡을 부치는 데 쓰는 돼지 비계 냄새가 확 풍기지만, 자리 잡고 앉아 있으면 그 냄새 또한 이 집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부원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걸어 내려 오면서 적절한 지점에 있는 옛날식 팥도너츠를 사먹는게 부원면옥 방문의 완성.

 

 

 

11. 버거B

 

번지도 없는 위치라 좀 의아하지만, 프레이저 플레이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정면에 교통센터같은 건물(실제 왕년엔 교통센터였다고)에 있다. 맛 매우 훌륭. 이 근방에 이런 맛을 내는 수제버거집이 있다는 게 감동일 뿐이다.

 

아울러 이 집의 진정한 강점은 옥상. 야외가 부담스럽지 않은 계절에 옥상에서 식사를 하거나, 해가 저문 뒤 가로등 불빛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 도심 속의 낙원이 따로 없다. 언젠가 이 옥상에서 가든 파티를 해보겠다는 작은 꿈이 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떠난다. 슬프다.

 

 

 

12. 센나리

 

시청역 부근의 메밀국수집으로는 전통의 유림면(김수현이 별그대에서 간 그 집)이 있어 다른 집은 아예 안 보인다. 유림면의 명성에 누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국물이며 단무지가 좀 짜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 냄비우동은 비추지만 비빔메밀은 강추.

 

그런데 유림면이 부럽지 않은 작은 식당이 하나 감춰져 있다. 센나리(千成)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작은 집. 테이블이 4개 정도 뿐인 작은 집인데 소바 정식이나 오뎅 정식이 먹을만. 밤에는 간단한 안주에 한잔 술을 곁들이는 작은 술집으로 변신한다. 운치있다.

 

 

 

13. 해원각

 

원래 신문사의 로망은 짜장면과 탕수육이 맛있는, 오래된 중국집 골방인데 불행히도 순화동에는 그런 중국집이 드물다. 가장 기본인 짜장면 맛이 약하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집으로는 한경빌딩 바로 옆에 있는 해원각을 추천하고 싶다. 단 기본 메뉴 - 짜장 짬뽕 탕수육 깐풍기 - 에서 벗어나면 책임지기 힘들다.

 

 

 

14. 산수갑산 (삼수갑산)

 

양질의 목살구이로 정평이 난 집. 낮시간에는 목살과 된장찌개를 결합한 목살구이 정식으로 유명했다. 저녁에는 목살 못잖게 곱창전골이 맛있다. 가끔 순화동의 다른 집이 곱창전골 맛집으로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데, 이 집을 한번 가 보신다면 생각이 달라지실 듯.

 

물론 본래 지명은 '삼수갑산'이 맞는데, 이 집 안에는 두 표기가 다 써 있다. 그냥 혼동을 피해 병기.

 

 

 

 

15. 안춘선 갈비배추탕

 

좀 멀리 갈 각오가 돼 있을 때 가는 집. 제목은 갈비배추탕이지만 돼지고기 수육이 우선 일품. 절대 싼 집은 아니지만 음식이 그만한 값을 한다. 좁은 자리에 다닥다닥 앉아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집. 삶은 돼지고기를 깍두기 국물과 깻잎에 싸 먹으면 시름이 절로 가신다. 엷게 된장을 푼 갈비배추탕에선 우거지 갈비탕과 또 다른 달콤한 배추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보다는 '저녁에 한잔'이 어울림.

 

 

 

16. 뚜껑집

 

서울 시내에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고 부르는 집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태원의 바다식당과 서대문 경찰서 뒤의 뚜껑집 정도? 물론 이름만 같을 뿐,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뚜껑집은 그냥 '전형적인' 부대찌개. 칼칼하고 진한 맛이다. 햄 구워 먹다가 찌개 해서 소주 한잔 하면 좋을 집.

 

 

 

 

17. 중림집

 

정작 사무실이 한경빌딩에 있을 때는 존재를 몰랐던 집. 꽤 연식이 있다. 점심 메뉴로는 갈치조림, 동태탕, 제육볶음이 인기다. 가격도 1인분 만원 미만인데 내용이 실하다는게 놀랍다. 제법 두툼한 갈치를 보고 '어떻게 이 가격에...?'라고 물으면 '중국산이야. 그런데 어차피 서해바다에서 잡은 거라 똑같애'라고 시원하게 말해주시는 사장님. 사실 이 집을 한번 가 보면 남대문시장의 희락을 갈 수 없게 된다. 메뉴는 파전, 두루치기, 제육 등이 있어 저녁에 슴슴하게 소주 한잔 하기에도 딱 어울린다.  

 

 

 

 

18. 대보찻집

 

밥집은 아니고 찻집.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외부 찻집 중 하나. 호암아트홀 맞은 편, 마마스와 장호왕곱창 사이 지하에 있다. 굉장히 허름하고, 70년대 역전 다방 같은 느낌이 난다. 하지만 전통차는 진하고 맛있다. 특히 여름에 마시는 냉대추가 일품이다.

 

그런데 검색하니 2호점이라고 나와서 깜짝 놀람. 대체 1호점은...?

 

 

 

 

19. 에가오

 

에가오라는 집이 꽤 많은 것으로 보아 체인인 듯. 나름 괜찮은 케이크와 커피를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집의 빙수맛이 일품이다. 가격도 7~8천원대. 물론 아티제도 빙수가 좋지만 가성비로는 에가오에 당할 수 없다. 우유맛이 너무 진하지도 않은 것이, 팥을 너무 많이 주지도 않는 것이 은은하고 적당한 맛.

 

 

대략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집은 이 정도. 물론 독립문 바로 옆으로 이사간 대성집 도가니탕이나 청파동의 민물매운탕집, 마포의 진미게장, 명동 중국대사관 입구의 오래된 화상들 등 '범 서소문권'의 맛집들도 생각이 간절할 것 같다.

 

이 동네에 남아 계신, 혹은 새로 오신 분들에겐 이 리스트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14.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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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그룹 어나니머스의 활동,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홍콩 민주화 시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공통점은 뭘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뾰족한 코와 팔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어떤 남자의 얼굴을 묘사한 가면이죠. 그런데 최근까지 이 가면이 누구의 얼굴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가이 폭스, 가이 포크스라는 남자는 한때 영국인들에게 반역자, 혹은 악당의 대명사로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이 폭스 데이'라고 불리는 매년 11월5일 밤이면 영국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 뒤꽁무니에 폭죽을 달아 공중으로 날려버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다 보니 어느새 이 남자는 자유와 민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가이 폭스

[인명] Guy Fawkes(1570~1606).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에 폭탄을 설치해 국왕 제임스 1세와 주요 귀족들을 몰살시키려다 실패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21세기 들어 그의 얼굴을 본딴 가면이 민중 저항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로 변신했다.

 

비슷한 얼굴의 가면을 쓴 시위 인파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를 메우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시작으로, 프랑스 터키 헝가리 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같은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추고 구호를 외쳤다. 웃는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자 형으로 멋지게 치켜올라간 콧수염이 특징으로 누구나 같은 얼굴의 가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2014 11월에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이 가면을 쓴 시위대가 포착됐다.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도 자신들의 상징으로 같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거나, 웹상에 표시되는 영상에 이 가면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때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가면을 가리켜 어나니머스 가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면은 가이 폭스 마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귀도 폭스(Guido Fox)라고도 불리는 가이 폭스(한글 표기로는 가이 포크스라고 쓰기도 한다) 1570년 영국 중부 요크의 가톨릭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군인의 길을 걸었고, 스페인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페인 군에 가담해 싸울 정도로 골수 카톨릭 전사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영국 국왕이 된 제임스 1세는 본래 스코틀랜드 왕가 출신으로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왕위에 오른 뒤에는 국론 통합을 위해 영국 국교만을 인정하고, 이에 반발하는 카톨릭과 청교도 모두를 탄압했다. 폭스는 제임스 1세의 배신에 분개했고, 동지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지하로 땅굴을 판 뒤 폭약을 설치해 왕과 그 측근들을 일거에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음모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 일이 너무 커질 것을 겁낸 음모자 중 누군가가 왕의 측근 몬티글남작에게 익명의 편지로 계획을 고발했다. 몬티글 남작의 하인 중 하나가 다시 일당들에게 음모가 들통났다고 알려 줬지만, 눈에 띄는 대응 조치가 없자 폭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을 끌자 제임스 1세 본인도 음모를 전해 듣게 됐고, 폭스는 거사를 저지르려던 115일 당일 밤 체포됐다. 폭스와 동지들은 1606 131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영국인들에게 가이 폭스라는 국왕 시해를 시도했던 흉악범으로 유명해졌다. 115일은 가이 폭스 데이’, 혹은 음모의 밤(Plot Night)’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 노는 축제일이 됐다. 미국 학원문학의 고전인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골목대장(The Story of a Bad Boy)’에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소년들이 가이 폭스 데이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가면을 쓰거나, 가이 폭스 인형에 폭약을 달고 거기에 불을 붙여 인형을 불태우는 놀이를 했다. 한마디로 아주 유명한 악당이었던 셈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이뤄졌다. 몇몇 역사가들은 그의 계획이 단순한 역모가 아니라 종교 탄압에 대항한 민중 봉기라고 해석했고, 미국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는 이런 재해석을 바탕으로 1982년 만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내놨다. 전 세계적인 민중의 저항을 주도하는 주인공 V가 가이 폭스의 가면 뒤에 얼굴을 감췄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주인공 V(휴고위빙)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중이 가이 폭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동참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후 이 가면은 세계 곳곳에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이 폭스 자신도 음모에 성공한 것 보다 이런 명성을 더 흡족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기다.

 

사실 그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다. 그의 이름인 ‘guy’이상한 옷을 입은 기이한 남자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됐고, 19세기 쯤 미국으로 건너가녀석, 친구라는 의미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guy’라는 단어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끝>

 

뉴욕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홍콩에서도, 가이 폭스의 물결입니다.

 

가이 폭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영국의 종교 지도에 대한 지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영국 인구의 절대 다수는 기독교도이지만 그 분포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파는 흔히 성공회(Anglican Church)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입니다. 카톨릭에 대항해 만들어진 교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동기가 다른 신교(protestant) 교파와는 매우 다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스페인 출신인 왕비 캐서린(원래 형수였던)과의 이혼을 반대하는 카톨릭 교회에 한대 먹이기 위해 '영국 국왕의 명은 교황의 명보다 우선한다'고 선포한 데서 비롯된 교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聖公會 라고 부르는 것인데,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된 헨리 8세의 사적을 보면 과연 '성공'이라고 불릴만한 왕인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아무튼 헨리 8세와 아들 에드워드 6세, 그 뒤를 이은 제인 여왕(재위 9일만에 왕위에서 밀려난)에 이어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외가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므로 영국을 다시 카톨릭의 나라로 되돌려놨지만 그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가 아버지 헨리 8세의 유지를 이어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잉글랜드'만의 이야기고, 저 북쪽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카톨릭의 땅이었습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당연히 후사가 없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엘리자베스 1세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장남인 제임스 1세였습니다. 당연히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탄압(?) 당했던 카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1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수장답게 성공회를 장려하고 카톨릭을 억눌렀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가이 폭스를 비롯한 카톨릭 과격파들은 제임스 1세를 배신자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P.S. 가이 폭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 소설 'A story of a bad boy'는 '얄개전'의 저자인 조흔파 선생에 의해 '골목대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바 있습니다.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같은 분들이 쓰신 '얄개전'이나 '남궁동자', '에너지 선생', '6학년 0반 아이들', '아파도 웃는다', '나는 둘' 등의 학원 문학 장르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유산이랄까요. 그래서 지금도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라는 표기보다는 '토마스 베리 올드릿취'라는 표기가 훨씬 정겹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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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쓴 글들을 방출합니다. 물론 이미 '매거진 M'을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십상시의 여파가 남은 동안 매년 연말 등장하는 교수협회의 고사성어에 '지록위마'가 등장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0.2초 내로 답이 나옵니다. '환관'이죠.

 

어째서 우리는 2014년에 환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이고 중간에 조고와 지록위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록위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더군요.

(마지막에 2001~2014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들이 궁금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거의 '동의어 찾기' 수준.)

 

 

 

 

 

십상시

 

[명사] 十常侍.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세를 장악했던 장양 등 열 명의 환관을 통칭해 부르던 말.

 

500여년간 동양 남성의 필독서였던 소설 삼국지연의천하의 대세란 본래 갈라지면 하나로 합쳐지고, 합쳐지면 또 갈라지는 것(天下大勢, 分久必合,合久必分)이란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광무제에 의해 시작된 후한(後漢)의 정세가 어떻게 어지러워지면서 위, , 촉 삼국의 뿌리가 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서기 168,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영제(靈帝)는 평생을 환관들의 영향 속에 살았다. 몇몇 신하들이 도전했으나 영제는 매번 결정적인 시기에 환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선대 환제(桓帝) 때 부터 황제를 모신 열 명의 내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권을 농단했다. ‘삼국지연의는 이들의 이름을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건석、정광、하휘、곽승이라 기록하고 있다. 정사인 후한서도 장양, 조충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그 수가 12명이다.

 

이들의 폐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의 통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됐지만 영제는 주색에만 탐닉하다 189, 34세로 숨을 거뒀다. 16세인 영제의 장남 유변(劉辯)이 뒤를 이었으나 5개월 만에 십상시의 난을 겪으며 동탁에 의해 쫓겨나 소제(少帝)라 불렸다.

 

명색이 십상시의 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와 그 일족들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정권 탈취 음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는 이름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환관들의 권력이 철저하게 황제의 총애에 기반한 것이고 보면, 환관들이 황제를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었다. 하지만 해바라기 권력의 속성상 이들은 군왕의 심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였으므로, 대개 국정은 극도로 어지러워졌다.

 

십상시 외에도 중국 역사에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진시황 때의 조고를 비롯해 촉한의 황호, 당 현종 때의 고역사, 당 희종 때의 전영자 등 부지기수다. 명 태조 주원장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환관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정치 참여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엄한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고작 37년 뒤인 1435, 5대 영종 때 다시 환관 왕진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시대를 전횡한 내시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치 사대부들의 견제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5(1494)에는 임금이 몇몇 환관들과 의관들에게 가자(加資, 관료들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를 내리자 조정 백관들이 크게 반발한 기록이 있다. 특히 대사간 윤민은 한나라 원제가 석현 한 사람을 등용했을 때 뒷날 오후(아래에 자세히 설명)나 십상시의 권세를 예견했겠느냐228일부터 312일까지 11회나 상소를 올리며 가자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성종 또한 결국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훨씬 신중해졌다.

 

이렇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내시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수준의 학문과 교양을 갖춘 이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학식을 갖추면 정치에 관여한다 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업무 수행에 걸맞는 교양을 쌓는 것을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연구서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엔 내시부에 환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3명의 내시고관을 상주시키고 어린 내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순조 때 시문집 노곡만영을 남긴 이윤묵 같은 문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중국 내시가 조선 내시에 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이유를 황제의 권력과 조선 국왕의 권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은 일찍이 사대부의 나라로 자리잡았고, 어떤 군왕도 중국 황제처럼 전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 황제들이 권력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던 두 축은 종실(또는 외척)과 환관이었다.

 

환관 권력의 대명사인 십상시는 본래 영제의 전임자 환제의 시대에서 태동했다. 환제는 외척 세력 타도를 위해 암암리에 환관들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공을 세운 다섯 환관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오후(五侯).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영제는 자연스럽게 환관들을 자신의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인의 장막이 최고 통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제와 십상시의 시대에서 2천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외척환관의 권력 암투가 뉴스가 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담일 수도 있겠다(끝)

 

 

 

 

 

요약하자면 내시 권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척? 자기 집안 생각 뿐이고 삼촌? 사촌? 다들 내가 어떻게 되면 이 자리를 탐낼 자들이야. 아예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환관들? 저들에겐 가문도 없고, 그저 믿을 건 나 뿐이잖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주고, 나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은 쟤들밖에 없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시 권력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 옆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안위가 내시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시 권력은 '어르신'의 기분과 안전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흉악하고 불측한 것들'과 '어르신'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죠. 그러는 사이 국정은 개판이 되고 맙니다.

 

정치는 본래 욕망의 콜로세움입니다. 그 다양한 욕망과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해서 스스로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때로 그 욕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로를 수정하는 것이 통수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듣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을 던져 주는 오래된 측근들, 그들의 인의 장벽에 갇혀 '욕망의 정치판'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시 권력'의 핵심이고, 세간에서 말하는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현실인 것입니다.

 

 

 

 

아울러 2001년부터 교수신문의 한해 정리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01 오리무중 五里霧中  설명이 필요 없는.
02 이합집산 離合集散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국론 분열
03 우왕좌왕 右往左往  설명이 필요 없는.
04 당동벌이 黨同伐異  같은 편끼리 떼지어 상대방을 치는 국론분열에 대한 개탄
05 상하화택上火下澤   위는 불이요, 아래는 못. 다급한 상황

06 밀운불우 密雲不雨  구름은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07 자기기인 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누구를 속이려느냐는 개탄

08 호질기의 護疾忌醫  의사를 믿지 못해 병을 더 키움. 누가 자기 편인지도 모르고 충고를 무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탄
09 방기곡경 旁岐曲逕  곧은 길이 아닌 구부러진 골목길. 한마디로 '정도를 가라'는 뜻.
10 장두노미 藏頭露尾  머리는 감췄는데 꼬리는 뻔히 보임.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11 엄이도종 掩耳盜鐘  자기 귀만 막고 종을 훔치다. 역시 눈 가리고 아웅.
12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 썩은 세상.
13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

(하지만 '도행역시'의 경우에는 고사를 살펴보면 본래의 맥락은 "어쩔수 없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이므로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절한 사용은 아닙니다. 이건 교수신문의 무리수.)

그리고... 올해의 지록위마 指鹿爲馬. 뭐 속성상 어떤 해라도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탄 일변도인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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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ivecard.joins.com/1278 에서 이어집니다.

 

마야 우붓의 그림 같은 숲속 수영장.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리버 카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화창한 날씨 속이지만 오전까진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셀카봉의 성능 테스트를 하려면 물에 들어가야...

 

아직 좀 차갑다.

 

 

 

사진으로는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 정글 속의 수영장은 진정 아름답다.

 

 

 

리버카페 뒤로 나 있는 샛길로 언덕을 올라가 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계곡을 따라 가면 끝없는 밀림.

 

약간 과장이 보태지긴 했지만 정말 밀림이다.

 

 

 

 

기억나시겠지만 마야 우붓은 호텔 경내로 강이 흐른다. 물론 강을 보려면 계속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꽤 한참.

 

그리고 강이 나온다.

 

 

 

 

 

호텔 경내에 이런 밀림과 급류가 흐른다. 어마어마하다.

 

 

 

위쪽을 쳐다보면 까마득한 밀림 속 절벽.

(그런데 이게 호텔 안의 정원...이라니까.)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면 폭포도 나온다.

 

 

                                                                다시 올라갈 길이 막막한 수준.

 

 

 

이렇게 호텔 안에서 대자연을 만끽하고, 흐르는 땀을 씻는다.

 

 

                                                  간신히 돌아온 지상. 이제야 살 것 같다.

 

 

저녁에는 호텔의 유일한 바에서 이브닝 드링크를.

 

영국식 풍습인지 오후 4시에 애프터눈 티를 준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기대할 만한 서비스는 아니다. 티 두어 종류에 과일과 인도네시아 식 떡 종류가 나오는데 가짓수도 한가지 뿐인데다 양도 부실하다. 떨어지면 바로 바로 리필해 놓지 않는다. 예전에 다녀오신 분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 애프터눈 티가 식사 대용이 될 정도로 풍성했다던데, 그게 호텔 경영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흐뭇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아무튼 호텔에서 우붓 시내로 가는 셔틀이 오후 5시, 시내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셔틀이 5시30분에 끊긴다는 건 여행자 입장에선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물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손님의 수를 늘려 보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사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차라리 우붓에서 식사와 유흥을 좀 즐기고 사설 택시를 이용해 호텔로 돌아오는 편을 더 선호한다. 호텔 택시(라이드)를 부르면 4~5만 루피아, 우붓 시내에서 마야 우붓 정도로 들어오는 택시를 잡아 타면 딜 하기 나름인데 3만 루피아 내외다(처음에는 거리에 서 있는 택시 - 라기보다는 나라시 - 기사들이 한 5만 정도를 부른다). 어차피 한화로 3천원 내외라 크게 다투게 되지는 않는다.

 

우붓 시내에서 식사를 하면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으나 대략 10만 루피 이내에서 2인 식사와 음료가 해결된다. 반면 호텔 구내에서는 1인에 최하 15만 루피는 든다고 봐야 한다. 뭐 체면이 깎인다고 싫어할 사람도 있겠으나, 비용 절감을 생각하면 컵라면(포트 이용)이나 햇반(뜨거운 욕조 이용^^) 등을 사용해 방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셔틀을 타러 나와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호텔 로비를 보게 됐다.

 

 

우붓 시내는 그리 큰 볼거리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붓 시내에 장신구며 전통 예술품, 혹은 공예품 등 살 거리가 많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우붓의 인사동'이라는 잘란 드위시타(Jalan Dewisita)를 가 봐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붉은 선 정도가 가장 잘 발달한 쇼핑가. 그리고 왼쪽 아래로 보이는 사각형 운동장 아래 쪽으로 죽 내려가면 역시 번화가인 몽키 포리스트 로드가 나온다. 거의 한 집 건너 맛사지 샵과 식당, 카페가 있다. 맛사지는 60분 기준 10만 루피아, 한국 돈으로 1만원 정도. 태국보다도 엄청나게 싸다. 다만 스타일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흔히 타이 마사지라고 불리는 종류는 관절을 꺾고 근육을 주물러서 맺힌 곳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안마에 더 가깝다. 하지만 발리 마사지는 진짜 마사지, 즉 기름을 피부에 문질러 흡수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많이 걷거나 수영으로 지친 근육을 풀어 주는 데에는 큰 효과가 없다. 피부에는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가격이 워낙 싼 탓인지 마사지 샵의 시설에 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좀 강하게 주무르는 안마를 좋아하는 취향이라 그런지 발리에서의 마사지에 큰 감흥을 느껴 보지 못했다.

 

물론 음식에 대한 한 우붓은 어느 집을 가거나 신뢰해도 좋다. MSG를 넉넉하게 써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뭘 먹어도 입맛을 당긴다. TRIPADVISOR에서 추천한 멜팅 웍 아룽(Melting Wok Arung)을 가 봤다.

 

 

 

이 집에서 추천하는 정식류가 4800~5800 원 수준. 저렴한데 맛도 훌륭하다.

 

 

인도네시아 전통주인 아락(Arak)에 레몬과 꿀을 탄 음료. 아락은 40도 가량의 독주다. 쨍한 느낌이 온다. 고량주같은 깔끔한 맛이라기보다는, 많이 마시면 바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열대산 스피릿의 느낌이 있다.^

 

 

 

 

손님 중에는 서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프랑스계로 알려진 여주인은 한국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센스를 갖췄다. 월드와이드 맛집의 지위를 즐기는 모양새라고나. 아무튼 맛도, 서비스도 추천하고 싶은 집이다.

 

 

우붓 야경. 밤에는 제법 운치가 있다. 여름 성수기에는 이 길을 세계 각국 청춘들이 가득 메운다고 한다. 10월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거리는 한산했다. 쿠타나 짐바란 같은 해변에는 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고들 하는데, 과연 산속인 우붓에 오는 젊은이들은 뭘 기대할지 궁금했다. 래프팅? 하이킹?

 

 

우붓의 할거리 중에는 리조트 투어도 있다.

 

흔히 우붓 지역 리조트에는 두가지 뷰(view)가 있다고들 한다. 바로 밸리 뷰(Valley view)와 논 뷰(^^)다.

 

밸리 뷰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조트 중에 앞서 말한 행잉 가든이 있고, 이 바이스로이(Viceroy)가 있다. 바이스로이는 모든 객실이 풀빌라인 고급 리조트다. 가격도 1박에 150만원 이상. 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식사를 하러 갔다.

 

 

 

바이스로이 메인 풀의 위용. 저 수영장도 우붓 특유의 인피니티 풀(infiniti pool)이라 끝에서 저절로 물이 흘러 넘쳐 공중에 뜬 느낌을 준다. 저 밀림지대는 건너편 언덕이라, 수영장 끝 벽에 매달리면 일망무제의 호쾌한 뷰를 즐길 수 있다.

 

다만 뭘 먹어도 맛난 우붓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식사가 바로 이 바이스로이에서의 식사였다. 가격에 비해 맛은 그닥. 어쩌면 주 고객인 유럽인들의 취향에 맞춰진 탓일 수도 있겠다.

 

 

 

식사 후에 정중하게 요청하면 버기 카를 이용해 리조트 구경을 시켜준다. 물론 구경은 공짜다.

 

 

150만원짜리 풀빌라의 위용. 모든 객실에서도 메인 풀에서 볼 수 있는 밸리 뷰의 위용을 즐길 수 있다.

 

다만...이런 리조트에서 1박을 하느니 나같으면 마야 우붓에서 5박을 하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바이스로이가 멋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치 마야 우붓이 마음에 들었다.

 

 

 

마야 우붓에서는 밤 시간에 야외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엄밀히 말해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 앞 테이블을 예약해야 하지만, 사실 2층의 바에서 내려다 보면 공짜다.^^

 

 

 

이렇게.

 

 

 

 

밤하늘과 리조트의 조명은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카메라가 너무 좋아서 생긴 풍경. 저 점점이 다 별이다.

 

바이스로이의 쭉 펼친 뷰가 아무리 좋다 해도 마야 우붓의 메인 풀 역시 뒤지지 않는다.

 

수영장 저 끝에 매달려 건너편의 계곡과 밀림을 바라보면, 1년 내내 그러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지치면 이런 옆 동굴 공간까지 완비.

 

 

 

동굴 공간에 음식과 음료를 넉넉하게 배달시키면 2인 기준 한화로 3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아주 싼 비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호텔 휴가라고 생각하면 지출할 수 있는 가격.

 

 

그리고 종일 있어도 동포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야 우붓이 취향이 아닌 것인지, 아니면 다들 관광을 나가신 것인지.

 

 

바에서 맥주 한잔을 즐긴 뒤 바라본 메인 풀.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휴양을 위해 태어난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했다.

 

다양한 외부 활동과 관광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호텔. 하지만 어딘가 조용히 콕 박혀서 한없는 휴식과 낮잠, 햇살과 독서, 약간의 수영을 즐기면서 그야말로 retreat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호텔을 권하고 싶다. 글자 그대로 낙원의 다른 이름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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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늦은 휴가를 발리로 다녀왔다. 발리 얘기를 하면 다들 "해변에서... 좋았겠다" 라고 얘기하지만 이번엔 바다 짠 내음도 맡지 않고 돌아왔다. 발리 섬 한 복판의 우붓(Ubud) 지역에 있는 마야 우붓 (Maya Ubud resort & spa) 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야 우붓을 가리라고 마음 먹은지는 꽤 됐지만 이번에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된 것. 그리고 마야 우붓은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다. 지금껏 가 본 리조트 호텔 가운데 당당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야 우붓의 메인 수영장. 한달 가량 지났는데 벌써 그립다.

 

 

 

 

이번에는 발리의 우붓 지역을 가겠다고 했더니, 현재 발리에 거주하며 발리 지역 탑클래스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발리 전문가 K씨는 "형, 우붓을 누가 가요? 한국 사람 아무도 안 가요. 거기 너무 멀고 별로야"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에 마음이 흔들려선 안된다. ;;  

 

 

지도상의 위치는 보는 바와 같다. 아래쪽, Kuta라는 지명 바로 아래,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곳이 발리 웅우라이 국제공항의 위치다. 한국에서 발리로 가는 관광객의 90% 이상은 그 아래, 그러니까 South Kuta라고 써 있는 작은 반도 지역으로 간다. 공항에서 가까운 이 지역에 누사두아, 짐바란, 쿠타, 레기안, 스미냑 등 중요한 해변 관광지대가 몰려 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유명 리조트 호텔들도 거의 다 이 지역에 있다.

 

하지만 처음 발리에 갔을 때 누사두아의 인터콘티넨탈을 갔고, 두번째는 짐바란 부근의 풀빌라를 갔기 때문에 이번엔 색다른 발리를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우붓 지역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위 지도에서 보듯, 우붓 지역은 공항에서 북북동으로 꽤 떨어져 있다. 물론 절대 거리가 먼 것은 아니나 발리의 교통 사정이 썩 좋지 않아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구글맵으로 때려 보면 공항에서 마야 우붓 리조트까지 40km 내외. 택시를 이용하는데 갈때는 약 70분, 귀국 길에는 50분 정도 걸렸다. 갈 때 시간이 오후 6시 정도로 퇴근시간이 막 시작될 때라는 점을 생각하면 양호한 듯 하다. 하긴 공항에서 출발할 때 택시 기사가 "노 트래픽, 노 트래픽" 하면서 기도하는 시늉을 한 걸로 볼 때, "발리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듯. 전언으로는 공항에서 우붓 갈 때 90분 쯤 걸렸다는 주장도 있었다.

 

말 난 김에 얘기하자면 공항의 택시 서비스에서 우붓까지는 25만 루피아로 가격이 매겨져 있었지만, 목적지인 마야 우붓은 우붓 외곽이므로 35만 루피아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지도상으로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단호하게 "30만 루피아"를 주장했고, 관철시켰다.

 

(환율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놓인 시점의 여행이었으므로 대략 1USD = 1,000원 = 10,000 루피아로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싼 가격도 가능. 한국어 상담이 가능한 우리발리 www.uribali.com 를 이용하면 25달러에 공항 픽업 또는 송영을 받을 수 있다. 5천원 차이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발리에서는 꽤 큰 돈이다.

 

 

 

 

우붓이 뭐하는 데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대개 이런 사진을 보여 준다. 처음 보면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머, 이 호텔로 가시는 거에요?" 라고 말하면 조금 머쓱해진다.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붓의 행잉 가든(Hanging Garden) 리조트 사진이기 때문이다.

 

발리 남쪽의 해안가 호텔들이 자랑하는 것이 오션 뷰라면, 우붓 지역의 리조트들은 저 밸리 뷰(Valley View)를 자랑거리로 갖고 있다. 사진만 봐선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 수영장과 건너편의 원시림 사이에는 거대한 계곡이 있고, 수영장 끄트머리에서 건너편 원시림을 바라보는 맛이 일품이다. 특히나 행잉 가든은 수영장을 2단으로 배치해 사진을 찍었을 때 밸리 뷰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즉 사진발이 최고인 리조트다.

 

행잉 가든은 이 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1) 우붓 시내에서도 차로 20분 이상 떨어진 외진 곳에 있고 2) 이름 값을 하느라 비싸고(전체 룸이 풀빌라고 1박 최하 500불 수준), 3) 직원들의 수준이 떨어져 불친절하고 4) 음식이 그저 그렇다는 평도 얻고 있었다(tripadvisor에 나온 내용들이니, 행잉 가든 관계자가 혹시 항의하시려거든 그 쪽으로 하시기 바란다).

 

반면 마야 우붓은 1) 우붓 시내에서 차로 5분(3분?) 거리고, 2)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고(계절에 따라 조식 포함으로 230~300불 정도), 3) 음식 및 서비스가 최고라는 평이었다. 여기 하나 보태자면 사실 행잉 가든은 저 밸리 뷰 하나 뿐이지만 마야 우붓은 광대한 대지 위의 조경 하나하나가 예술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숙박비의 차이는 행잉 가든은 룸 전체가 풀빌라고, 마야 우붓은 풀빌라 외에도 일반 객실이 있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풀빌라끼리만 비교한다면 행잉 가든이 훨씬 더 비싸다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개인적으로 풀빌라라는 형태의 방이 왜 선호되는지 모르겠다. 본인이 절대 다른 사람과 섞이고 싶지 않은 셀렙이거나, 수영복 알러지가 있어서 수영을 반드시 알몸으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비싼 풀빌라에 묵는 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마야 우붓으로 마음을 정하고 호텔 예약에 들어갔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호텔 홈페이지보다는 익스페디아나 호텔스닷컴이 더 싸야 정상인데 마야 우붓은 메인 홈페이지가 더 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국 사람이 사기에 가장 싼 곳은 국내 사이트인 트래블발리(http://www.travelbali.co.kr/) 였다. 무슨 비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발리에 대한 한 분명히 가장 싸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이트다. 비교해 본 결과 확실히 그렇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마야 우붓의 모양. 남북으로 엄청나게 길다. 사진 위쪽, 그러니까 북쪽에 메인 출입구가 있고, 출입구에서 차로 1분 정도 더 들어 와야 로비와 메인 빌딩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 왼쪽(서쪽)은 논, 오른쪽(동쪽)은 강이 흐른다. 강이 있다는 것은 깊숙한 계곡이 있다는 뜻.

 

 

마야 우붓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위성 사진. 왼쪽이 우붓 시내 중심가, 오른쪽이 거기서 동쪽으로 쭉 가면 있는 마야 우붓이다. 왼쪽 중간의 네모 칸이 우붓 한복판의 운동장(아마 우붓에 가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보셨을 그 운동장이다). 호텔 하나가 우붓 다운타운 거리의 크기와 맞먹는다. 직접 가 보면 그 규모에 일단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호텔 한 복판의 메인 빌딩 확대 사진. 1번이 웨스트 윙, 2번이 로비, 3번이 이스트 윙이다. 4번은 레스토랑과 라운지 등 부속 건물, 5번 위치에 메인 풀이 있다. 웨스트 윙과 이스트 윙은 일반 객실이 있는 3층 건물. 사진 아래 쪽으로 이빨같이 풀빌라들이 박혀 있다.

 

 

 

웨스트 윙 2층의 일반 객실(수피리어 룸)은 평범한 동남아 지역의 호텔 객실이다. 당연히 에어콘이 빵빵하게 나온다. 별 장식 없는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좋았다.

 

 

침대 쪽에서 본 화장대와 기타 집기들. 왼쪽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발코니가 있다. 물론 마야 우붓에서 발코니에 앉을 일은 별로 없을 듯 하고, 주로 빨래 너는데 사용한다.

 

웨스트 윙에 객실을 잡으면 서쪽의 논 뷰(Rice Field View), 이스트 윙에 묵으면 밸리 뷰가 보인다는 설명인데, 이 말만 들으면 이스트 윙이 좋아 보이지만 불행히도 이스트 윙은 울창한 숲 때문에 밸리 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반면 웨스트 윙은 논 뷰..가 제법 쓸만하다.  

 

 

 

 

도착 첫날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 창밖으로 펼쳐지는 논 뷰. 평화롭고 정겹다.

 

 

 

자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풍경. 가슴이 설렌다.

 

아침 식사!

 

 

레스토랑은 메인 빌딩 1층에 하나, 그리고 남쪽 끝에 있는 리버 카페에 하나 있다. 메인 빌딩 2층엔 바가 있다.

 

 

개방형 구조가 아름답다. 특이한 건, 이런 개방형 구조인데도 레스토랑 안에서 벌레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점.

 

 

음식의 가짓수가 엄청나게 많지는 않지만, 맛은 매우 훌륭하다. 오믈렛도 잘 부치고, 특히 빵 종류의 수준이 높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과일에 탐닉했다. 특히 망고스틴. 조식 때마다 10개씩은 먹었다.

 

...그리고 바로 딴 망고스틴은 개미의 서식지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저 윗부분의 녹색 이파리를 뜯어내면 개미가 20마리씩은 나온다. 유독 망고스틴을 개미가 좋아하는 듯.

 

 

 

식당에서도 바로 밸리 뷰가 보인다.

 

사실 사진으로 이 밸리 뷰를 설명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말로 설명하자면, 사진 아래쪽의 연한 녹색 식물군과 사진 위쪽의 진한 녹색 식물군 사이에 바로 페타누 강이 흐르는 큰 협곡이 있다.

 

그러니까 이 뷰가 협곡을 끼고 있는 건너편의 밀림지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호쾌한 뷰인데, 사진상으로는 그 효과를 표현할 재간이 없다. 아무튼 직접 보는 뷰는 이 사진보다 1,000배 이상 멋지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있는 메인 풀 역시 마찬가지.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끄트머리로 가면 일망무제의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밀림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줄 정도.

 

하지만 일단 메인 풀보다 먼저 남쪽의 리버 카페 앞 수영장을 가 보기로 한다.

 

 

호텔 남쪽으로 향하는 길. 야자수가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다.

 

 

남쪽 끝. 리버 카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 엘리베이터 타워 앞에서 이 계곡 뷰는 절정을 이룬다. 물론 이런 사진으로 보는 뷰는 실제 풍경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직접 가서 보신다면 절대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남쪽 수영장을 내려다 본 모습.

 

이 두번째, 남쪽 수영장은 메인 빌딩이 있는 지대에서 약 5~60미터 가량 낮은 지대에 있다. 즉, 강이 굽이치는 계곡 아래 쪽에 있다는 말이다.강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밀림 속에 폭 파묻힌 느낌을 준다.

 

 

 

수영장 바로 밑으로 강이 굽이쳐 흘러간다.

 

 

 

내려와서 보면 이렇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선베드도 5~6개 뿐이므로, 오전인데도 경쟁이 치열하다. 숲과 계곡에 폭 파묻힌 곳이므로, 오전에는 사실상 수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물이 차다. 당연히 물속에는 아무도 없다.

 

 ....지만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후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수영장 바로 아래로 저렇게 강이 흐른다. 셀카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각도 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음;;;

 

 

 

에라. 쉬자.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문제는 이게 이미 과거 시제라는 것... ㅠㅠ. 돌아가고 싶어요.)

 

 

http://fivecard.joins.com/1286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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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빠뜨린 것 같은데...하면 역시 빠뜨린게 있습니다. 네. 12월이 1주일 지난 12월 가이드.

 

다행히 아직 유효기간이 지난 볼거리는 없네요. 잘 나가시는 분들은 송년회 날짜가 부족해 두탕씩 뛰기도 하신다던데, 이젠 그냥 마음 편히, 시간 안 되는 사람은 다음달에 본다고 생각하시고, 이런 속세의 번뇌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분들은 좀 조용하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2월의 문화가이드 (2014)

 

12월이야. 1년이 다 갔어. 가슴이 저리지? 이렇게 또 해놓은 것도 없이 한살을 더 먹는다는게 답답하겠지? 그런데 남들도 다 그래. 그건 그냥 원래 그런 거야. 금세 새해가 오고, 또 그렇게 부대끼다가그렇게 인생이 가.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는데, 12월은 온갖 공연이 넘쳐 나는 달이라 볼 거리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아. 아무래도 12월은 한해를 정리하는 고급 공연들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이 칼럼에서 주로 다루는 가격대 성능비 높은 공연은 오히려 부족하기 마련이지. 혹시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 유명 연주자들이 나오는 으리으리한 공연에 못 간다고 한탄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해. 얼마 전 한 고마운 분의 성의 덕분에 비싼 연주회를 간 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진리를 확인했어. ‘관객의 수준은 공연장 좌석 가격과 완전히 반비례한다는 것 말이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바이올린 솔로의 피아니시모에 딱 맞춰 기침들을 하시는지. 반면 여기서 추천하는 공연들은 실제 공연장에 가 봐도 기분 잡칠 일이 없어. 훨씬 고품격의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야. 믿어도 좋아.

 

지난달에 얘기한대로 12월 들어 갑자기 합창교향곡 공연장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야. 올해 서울시향의 합창교향곡 공연은 2회 모두 매진이거든. 그러니 적당한 DVD를 사서 집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1222, 국립합창단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를 듣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 아닐까 싶어.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아니지만 어쨌든 할렐루야코러스도 송년 분위기로는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S석이 3만원, A석이 2만원으로 저렴해.

 

 

 

좀 더 특이한 송년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겐 1231일 밤 8시에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를 권하고 싶어. 현존하는 명창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안숙선 명창의 완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다, 공연이 끝나면 국립극장 앞에서 불꽃놀이도 구경할 수 있어. 전석 3만원. 같은 날 열리는 예술의전당 제야 음악회보다는 이쪽을 추천.

 

더 활기찬 연말을 누리고 싶은 사람에겐 딱 맞는 공연이 있어. 국립극장의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일부터 111일까지. 지난 30년간 마당놀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해 온 손진책 김성녀 국수호 같은 대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고 볼만한 공연이지. 굳이 이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 S 4만원, A 3만원.

 

 

 

연말이라 책 읽을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아 건너 뛸까도 했는데 그래도 올해를 마감하면서 국내 작가의 소설을 한권 정도 소개하고 싶었어. 그래서 결론은 이재찬 작가의 안젤라 신드롬이야.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며 밝게 살아가던 한 10대 소녀가 인간극장류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며 일약 주목받게 되는데, 그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야. 언뜻 봐도 TV 단막극 류의 코믹 설정 같지만, 페이지를 조금만 넘기면 예상 밖의 큰 스케일과 탄탄한 플롯에 놀라게 돼. 이 수준이라면 한국 소설은 도대체 재미라는 걸 어디다 팔아 먹은 거냐는 욕은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작가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야. 인터넷 가격으로 11000원 선.

 

마지막으로 12월은 방학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 성수기인데, 올해는 그닥 개성있는 전시가 별로 눈에 띄질 않네. 그래서 뽑은 건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불멸의 여배우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스타일 아이콘이기도 한 이 분의 그림자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 13000.

 

전시를 보고 나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다시 보고 싶어질텐데 이건 각자의 선택에 맡길게. 아마도 이 칼럼의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은  트루먼 카포티의 원작 소설이 집에 있을 테니(2014 1월 추천) 그걸 다시 읽어 봐도 좋고, 영화를 다시 볼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서 DVD 3천원대에 구할 수 있어. 물론 IPTV를 이용해도 되겠지. 그리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푹 자면 좋은 꿈을 꿀 거야. 새해에 만나.

 

국립합창단, 헨델, ‘메시아’ 12.22    A 2만원

안숙선의 제야 판소리, ‘강도근제 흥보가 12.31  전석 3만원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12.10~1.11  A 3만원

이재찬, ‘안젤라 신드롬   11000

오드리 헵번 전시회, ‘뷰티 비욘드 뷰티 11.29~3.8  13000

합계 약 104000

 

 

'연말=합창'이라는 등식은 어느 정도 고정이 된 듯 한데 그 '합창'을 꼭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뭐 저는 2014년과 2015년은 예매 완료...^^ 2015년도 다들 서두르셔야 할 듯). 그런 의미에서 헨델의 '메시아' 도 좋고, 아래 곡 같은 합창도 연말 공연에선 충분히 시도해 볼 만 한데 국내에서는 아직 이 곡이 그닥 자주 연주되지 않는 듯 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곡입니다.

 

 

최상의 녹음과 연주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 곡이 갖고 있는 고양감을 제대로 표현하는 듯한 패기 넘치는 공연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혹시 이 곡 때문에 '탄호이저'를 집에서라도 감상하고 싶은 분이라면 콜린 데이비스 경의 1978년 바이로이트 실황 DVD를 권하고 싶습니다. 늘 제임스 레바인의 메트로폴리탄 판이 화질 등에선 좀 더 낫기도 하지만, 바로 저 곡, '순례자의 합창'이 매우 실망스러워서 개인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말띠 해가 가고 있죠.)

 

특히 저는 12월24일 저녁에 외출하고 뭐 이런 사람들은 정상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날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를 만나더라도 변두리나 각자의 집/하숙집/원룸/펜션 등등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강남역, 명동, 종로, 홍대, 연남동, 가로수길, 대학로 등등에서 방황하시는 분들은 정말 지긋지긋한 기억(추억이 아니라)을 남기게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반백년 가까이 살아 본 결과, 뭔가 이름 있는 날 사람 많은 데 가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동네에서 장사하시는 분들 빼고.

 

뭐 이런다고 바뀔 분들이면 애당초 그런 실수를 저지를 리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건 뭔가 영상 시설이 갖춰진(뭐 대단할 필요는 없고, 요즘은 그냥 디지털 TV와 블루레이 플레이어 한대 정도만 있으면 뭐든 가능) 장소에 모여서 고전 명화를 감상하며 먹고 마시는 겁니다. 가능하면 러닝타임이 긴 것들이 좋겠죠. 대부1,2,3편을 몰아 보시는 것도 좋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1,2,3편, 혹은 매트릭스 1,2,3편, 혹은 스타워즈 4,5,6편을 보셔도 괜찮습니다(취향에 따라 터미네이터 1,2,3이나 죠스 1,2,3일 수도...). 더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히치콕의 이창-현기증-레베카를 몰아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소파며 마루에 포개 앉아 술잔을 기울이면 시간 잘 갑니다.

 

좀 더 수다에 초점이 맞춰진 분들이라면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로열 알버트홀 축하 공연(절판된 모양인데 중고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혹은 카메론 매킨토시를 그리는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이건 아직 만원 미만으로 살 수 있는) 같은 DVD를 BGM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의 영상물들은 조금만 품팔이 하시면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뭐 이건 그냥 예로 든 거고, 아무튼 명절날은 좋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TV만 같이 봐도 즐겁죠.)

 

 

술 마시다 노래가 하고 싶은 분들은 아이패드(뭐 아쉬운대로 스마트폰이라도) 하나만 있으면 노래방 앱 다운로드로 만사 해결. http://www.enuri.com/knowbox/KbCopy.jsp?kbno=322636 뭐 이건 옆집 항의받을 우려가 있으니 그냥 여기까지...

 

아무튼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석양'으로 정했으니 석양이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 한 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추위에 과음하지 마시고 다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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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 참 많다.

 

사실 스페인을 여행지로 결정한 뒤부터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역시 현지에 가 보니 놓친 것들이 꽤 있었다.

 

핵심적인 내용만 정리하면 이렇다. 최신 유행에 따라 10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대체 언제 다녀온 여행을 여태 우려먹고 있느냐는 분들이 꽤 많다. 하지만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아직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마지막 마무리. 혹시 스페인에 가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은 지금까지 했던 포스팅들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http://fivecard.joins.com/search/스페인

 

 

 

 

 

 

1. 과일, 최고다.

 

 

오렌지, 멜론, 포도 등 거의 모든 과일이 상상 이상의 맛을 낸다. 특히 감 맛이 최고다.

(물론 사과,배와 딸기는 현재까지 한국산이 최고)

 

특히 위 사진, 'KAKI'라고 되어 있는 은 가을이라면 꼭 드셔 보시기 바란다. 수십년간 감을 먹어 온 한국인으로서 인생 최고의 감을 스페인에서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연시와 단감, 대봉시의 장점만을 취한 환상의 감이다.

 

 

 

2. 예약 시스템, 뭔가 조금씩 이상하지만 어쨌든

 

 

여행을 계획하셨다면 아마 렌페(Renfe)의 자주 다운되는 예약 시스템에 당황하셨을 듯. 하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건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거의 반드시 T10(10회 탈 수 있는 지하철 패스. 저 위의 기계에서 살 수 있다)을 사용하시는 게 좋고, 알함브라 궁전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공연 티켓을 인터넷으로 예매한다면, 어느 도시에서나 잘 보이는 라 카이샤(La Caixa) 은행 앞에 ATM 기계와 함께 있는 티켓 발매기에서 출력해 사용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두시길. 

 

 

3. 유로자전거 나라, 싸진 않지만 유용하다

 

 

여행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단순 안내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유로자전거 나라의 가이드들든 새로운 도시를 돌아 보는데 매우 유용했다. 특히 피카소가 자주 가던 카페에서 피카소의 일생 스토리를 듣고 피카소 미술관에 들르는 구성은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됐다.

 

 

4. 시장, 무조건 가야 한다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이든,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이든, 시장을 가 보면 스페인이 달라 보인다.

 

시장(식료품 시장으로 특화된)을 가 보면,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먹고 마시고 떠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밤낮도 없다. 광장시장의 약간 밝고 예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5. 타파스라는 종류의 음식은 없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타파스(Tapas)는 음식의 사이즈다. 한국에서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도 먹고 싶고, 깐풍기도 먹고 싶고, 난자완스도 먹고 싶을 때 인원이 적으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스페인에선 그걸 모두 타파스로 시키면 된다. 서너 입씩 먹을 분량으로 여러가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스페인의 식문화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혹시 가게 된다면 타파스보다 더욱 미니멀한 핀초(Pincho)도 잊지 말고 드시길.

 

 

6. 식사 시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시에스타 시간에는 식당이고 가게고 모두 쉰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지만, 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시에스타의 개념이 점점 흐려져 간다고도 하고, 그 시간에 사람들은 낮잠을 자는게 아니라 카페며 식당에서 계속 먹고 마시고 떠들고 있다.

 

아무 시간이나 가서 먹고 떠들고 마셔도 된다. 웬만한 바나 레스토랑은 심야까지 한다. 한국과 비슷한, 참 좋은 나라다.

 

 

7. 하늘, 평원의 하늘은 다르다

 

 

 

안달루시아의 하늘. 평원 위의 하늘은 구름부터 다르다.

 

 

8. 알함브라, 역사를 알아야 보인다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결혼으로 맺어지며 탄생한 대 스페인 왕국, 그리고 알함브라의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지는 15세기 말 스페인의 황금기를 이해하지 못하면 남부 스페인 여행은 의미가 반감된다. 가기 전에 대략의 윤곽이라도 파악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물론 유로자전거 투어 같은 곳에선 어느 정도 설명을 해 주지만, 공부는 스스로.

 

 

 

9. 달리, 상상 그 이상

 

 

바르셀로나를 간다면 인근 피게레스(Figueres)에 있는 달리 미술관을 꼭 가 보시길 권한다. 난 미술엔 개뿔 흥미 없어, 하시는 분들, 인간의 상상력이란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된다.

 

 

10. 야경, 가는 곳마다 꼭 놓치지 말길

 

 

밤의 고딕 지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으슥할 것 같지만 오히려 한밤중에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그래도 멋지다. 그리고 알함브라의 야경은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길(안타깝게도 봄, 여름에만 가능해서 나는 실패).

 

그리고 다음에 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

 

- 바르셀로나에서 분수 쇼 보기 (왜 매일 안 하냐고)

- 리세우 오페라 (그 날짜에 적절한 공연이 있는지가 행운의 시작)

- 톨레도에서 1박 (밤의 톨레도가 진짜라던데)

- 세고비아에서 돼지 통구이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 달리가 살던 지중해의 어촌까지, 더 나아가 프랑스 국경까지.

- 그리고 국경을 넘어 모든 방문자가 '거기서 살고 싶다'던 리스본.

 

 

 

 

 

 

물론 이곳은 언제 가도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다. 매혹의 공간.

 

이렇게 해서 1년여(;;)에 걸친 스페인 여행기 끝.

 

곧이어 발리 방문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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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에 우연찮은 인연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며 긴 인연이었기를 바라던 사람을 얼마 전 잃었습니다.

 

며칠 되지도 않아 늘 샘나던, 사람다움과 재능이 넘쳐 나던 친구 하나를 또 잃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란. 그 가볍고도 얇음이란.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그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In heißem Liebesstreben,
Werd'ich entschweben
Zum Licht, zu dem kein Aug' gedrung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Sterben werd' ich, um zu leben!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Herz, in einem Nu!
Was du geschlagen
Was du geschlagen
zu Gott wird es dich tragen!

 

 

 

 

 

And, 제목 그대로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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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를 보고 나오는데 웬 여학생 둘이 열심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싸우더군요.

 

"그러니까 플랜 B 대로 된거지!"

"아니지, 그건 플랜 A도 아니고 플랜 B도 아닌거지. 블랙홀 들어가면서 새로운 길이 열린거잖아!"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무런 물리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게다가 평소 조용하시던 SF 덕후, 물리학 전공자, 전문 지식인들까지 합세해서 "그거랑 그거는 말이 안돼. 그리고 그건... 알지만 그렇게 한 거야. 그리고 이 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었습니다만, 굳이 169분, 3시간에서 11분 모자라는 러닝타임이 다 필요했나 하는 생각도 드는 작품입니다. 어쨌든 격찬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인데도 불행하게 '난 그 긴 시간을 졸지도 않고 봤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라는 분들이 꽤 계신 듯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들과 나름대로 생각한 답들을 적어 봤습니다.  당연히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바라는 의미에서 공개하는 글입니다. 끝부분에는, 도저히 제 수준에선 답을 생각할 수 없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우선 질문 0.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e good night 은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입니다. 밥 딜런이 예명을 따 온 바로 그 시인이죠. 전문과 해석은 http://dubunut.blog.me/220173993086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고사성어도 생각나고...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해 주는 시입니다.

 

이 글은 당연히 스포일러의 덩어리 입니다. 영화 아직 안 본 분은 여기서 패스. 그리고 영화는 꼭 보세요. 당연히 강추. 욕하실 분들도 일단 보시고 욕을 하세요. 물론 언제나 그렇듯, 가끔 '난 결말 알고 보는 게 더 좋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분들은 환영.

 

 

 

 

 

간단 줄거리:

 

지구가 기상이변과 자원고갈로 식량부족 상태를 맞게 되어 절멸의 위기에 놓인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왕년의 엔지니어이자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똑똑한 딸 머피의 방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관찰하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NASA와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종말에서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프로젝트가 진행중임을 알게 됩니다.

 

쿠퍼의 옛 보스였던 NASA의 리더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쿠퍼에게 우주로 나가는 탐사선을 조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단 인류를 구하는 길에는 플랜A와 플랜B가 있음을 설명하죠(아래 상술). 가족과 수십년이 될 수도 있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쿠퍼는 고민하지만 결국 대의를 따릅니다.

 

그리고 우주로 향하는 4명의 탐사대원. 이미 12명의 선발대가 생명이 존재 가능한 성단 지역 열 두곳을 탐사했고, 그중 세 곳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행성(밀러의 별)은 육지 없이 거대한 바다로만 이뤄진 행성이라 사람이 살 수 없었고, 두번째 별(만의 별)은 얼음으로만 뒤덮여 있습니다. 심지어 그 별에 먼저 도착한 만 박사(맷 데이먼)의 배신으로 탐사는 절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질문 1. 대체 플랜 A는 뭐고 플랜 B는 뭐냐?

 

간단히 말하면 플랜 A는 현재 지구에 살아남은 인류가 외계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하는 것, 그리고 플랜 B는 수정란 상태의 인류를 외계의 보금자리에 새로 심어서 거기서 인류의 혈통이 살아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외계 어딘가에 인류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갈 데가 있어야 이식(플랜 A)이든 파종(플랜 B)이든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쿠퍼 일행이 탄 탐사선 인듀어런스 호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브랜드 박사는 쿠퍼에게 설명합니다. '일단 네가 탐사대를 이끌고 떠나고, 나는 여기 남아서 플랜 A를 위한 문제를 네가 돌아올 때까지 해결하겠다'. 이 문제란 대규모 인구의 우주 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문제(질문 4의 답에서 더 자세히 설명) 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왔듯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그것을 토성 근처까지(웜홀이 있는 곳까지) 가져다 놓는 것을 해결하는 수준의 기술이 있어야 플랜 A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 박사를 포함한 NASA는 최대한 플랜 A를 위해 노력하되, 그 가능성이 사라지면 플랜 B라도 실행하라는 미션을 탐사대에게 준 것입니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죠.)

 

 

 

 

질문 2. 그럼 플랜 A가 성공하지 못하면 쿠퍼도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플랜 A가 성공한다면, 쿠퍼가 지구로 돌아오지 않아도, 반대로 가족이 우주로 가서 쿠퍼와 재회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아니면 쿠퍼가 지구로 일단 돌아와서 가족과 재회할 수도 있고. 다만 전제는 '돌아올 연료가 충분할 때' 라는 것입니다.

 

이미 탐사대가 떠나기 전, 연료와 물자의 제한 때문에 '3개의 목표를 모두 돌아보고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불가능'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밀러의 별(바다의 행성)'을 거친 뒤 아멜리아 브랜드(앤 해서웨이)는 쿠퍼에게 말합니다. "두 번째 별(만의 별)로 갔는데 이곳이 인류의 정착지로 가능성이 없으면, 세번째 별(에드먼즈의 별)로 갈지 지구로 귀환할 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도 냉정하게 선택하기 바란다"고.

 

그리고 두번째 별. 만 박사는 "이 별의 높은 곳은 얼음뿐이지만 저지대로 내려가면 토양이 있고, 암모니아도 사라져서 호흡도 가능하다"고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탐사대는 이 별을 정착지로 삼고, 일단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죠(마침 플랜 A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쿠퍼는 얼음 행성에서 플랜 B를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미 플랜 A가 불가능해진 상황,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구 문명의 종말을 맞겠다는 뜻입니다.

 

 

질문 3. 대체 만 박사는 왜 미쳐 날뛰나?

 

처음 12명의 선발대를 얘기할 때 브랜드 교수는 "가장 용감한 사람들(the bravest men)"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몇년간의 고독한 우주 여행 끝에 별에 도착해서, 그 별이 인류의 새로운 고향이 될수 있는지를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능성이 없다면 이들에게 남은 것은 고독한 죽음 뿐입니다.

 

만 박사는 거기서 마지막 자제력을 잃은 것입니다. "혼자서, 무의미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공포에 패배한 것이죠. 그래서 컴퓨터를 망가뜨려 자동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임의로 조작한 데이터를 보내 얼음뿐인 그 별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옥토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후발 탐사대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우주에 인류의 씨앗을 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명예욕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쿠퍼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지구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쿠퍼를 제거하려 합니다. 인듀어런스호가 있어야 제 3의 별(에드먼드의 별이라고 하지요)로 가서 플랜 B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4. 그럼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

 

('방정식은 40년 전에 이미 풀었다'는 말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리.)

 

브랜드 교수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중력의 문제입니다. 현재(혹은 영화 시작 시점) 기술로 인류는 고작해야 서너명의 탐사태원을 먼 우주로 쏘아올릴 수 있습니다.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갈 수도 있다지만, 일단 토성 근처의 웜홀까지 가는 데 2년이 걸리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대규모의 인구가 거주하고, 자급자족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 거주 시설을 겸한 우주선(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거대한 우주정거장 같은)을 쏘아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 이미 쿠퍼가 출발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그것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인류의 우주 이민, 즉 플랜 A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죠.

 

브랜드 교수가 방정식을 풀었다는 것은, 절반의 답, 즉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데이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해결했지만, 지구에서 얻을 수 없는 데이터, 즉 '중력의 비밀'을 알아야 그 공식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구상의 데이터만으론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그리고 23년 간 바다 행성의 궤도에서 쿠퍼와 아멜리아를 기다리며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브랜드 교수가 알아내지 못한 답이 블랙홀 안에서 측정한 중력의 의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혹시라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도록 컴퓨터 타스(TARS)를 세팅해 놓죠.

 

하지만 브랜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머나먼 지구에서 숨을 거두고, 그 연구를 이어받은 머피 쿠퍼(제시카 차스테인, 쿠퍼의 딸)는 교수의 거짓말에 일단 분개하지만, 곧바로 브랜드 교수를 이해합니다. 교수가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희망을 잃었을 것이고, 설사 브랜드 교수나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해결한다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질문 5.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뭐 영화 속에 답이 있습니다만, 어떤 분들은 그 답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어떤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영화 속 쿠퍼의 추정으로 '그들'은 고도의 과학력을 가진 미래 인류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미 중력의 비밀을 알았고, 생각의 힘을 통해 그 중력이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다른 차원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직접 그 방법을 써서 쿠퍼나 머피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단지 쿠퍼나 머피를 '그것이 가능한 상황'에 도달하게 하는 듯 합니다. 흑은 이런 부분이 '그들'을 신의 위치에 놓고, 신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놀란의 해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에겐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직접 행사하기 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는다..는 식의 기독교적 해석일 수도.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절대 상세하지 않고, 이 영화의 방향으로 볼 때 상세해 질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6. 대체 왜 아멜리아는 그 시점까지 혼자서 에드먼즈의 별에 있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늙은 머피는 쿠퍼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혼자 기다리고 있는 브랜드(아멜리아)에게 가리고 말합니다. 그리고 쿠퍼는 수리한 타스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아멜리아에게 떠나고, 화면은 먼 별 어딘가에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비쳐 줍니다.

 

쿠퍼는 블랙홀로 들어갔으니 124세지만 당연히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지구 나이로 그 나이를 먹은 머피는 아마도 90대 정도의 나이일 것입니다. 즉 쿠퍼가 블랙홀에서 지구 시간으로 한 50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1) 왜 아멜리아는 젊은 모습 그대로인 것이고 2) 왜 '혼자' 있는 것일까요. 즉 쿠퍼가 전송한 데이터를 통해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공식에 반영시킨지 근 50년이 흘렀는데, 왜 머피는 아멜리아가 있는 별까지 후발대를 보내지 않은 것일까요.

 

뭐 1)에 대한 설명이야 아멜리아가 수시로 동면하면서 젊음을 유지했다면 굳이 가능한 일일 듯 하지만 2)는 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거대한 우주정거장까지 가능한 상황이라면, 머피는 쿠퍼를 발견하든 말든(애당초 발견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혹은 아멜리아가 에드먼즈 행성에 도달하건 말건 계속해서 후발대를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설명은 그 마지막 신의 별 풍경은 그냥 쿠퍼의 상상일 뿐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이미 활성화된 우주 식민지에서 90세의 할머니가 된 아멜리아든, 또는 동면으로 젊음을 유지한 아멜리아든 누가 쿠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 '혼자' 어쩌고 하는 것은 그냥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무리하면 아예 우주정거장 장면 전체가 쿠퍼의 꿈이라고 할 수도...)

 

어떤 분들은 그 별에서 아멜리아가 바라보는 곳에 이미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다고도 하시는데 이건 아마 착각일 듯. 이미 인듀어런스 호에는 아멜리아의 실험실을 포함해 별에 설치할 수 있는 건물과 기관이 실려 있습니다 - 얼음 행성에서 언급됩니다. 그걸 설치해 놓은 모습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죠.

 

 

 

 

 

 

 

질문 6,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제가 답을 생각하는 데 한계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7. 대체 왜 웜홀 너머에선 '어떤 정보'는 송신 가능하고 '어떤 정보'는 송신 불가능한가?

 

영화를 보다 보면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웜홀 너머를 다니는 인듀어런스호는 지구의 가족들로부터 영상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모르스 부호조차도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수신은 되지만 송신은 안 돼." 무려 23년간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이 연구 내용을 브랜드 교수님께 전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합니다. 아울러 전 승무원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안부 한 줄 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12년 전에 출발한 세 사람의 개척자들로부터는 신호가 도착합니다. 만의 별과 에드먼즈의 별 중 어디로 갈지를 싸우는 쿠퍼와 아멜리아의 대화를 보면 이들이 보낸 신호가 그 별의 환경에 대한 약간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 박사가 자신이 보낸 신호를 조작하고 동면한 뒤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만 박사의 신호가 거짓말이라고 밝히는 내용을 송신할 수 없다면, 만 박사는 일부러 컴퓨터를 고장낼 이유도 없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들은 웜홀을 통과한 외계 은하에서, 대체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있고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없는 것일까요?

 

 

 

질문 8. NASA에 이상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

 

맨 처음 쿠퍼와 머피가 NASA에 도달했을 때, 대체 어떻게 여기를 찾았느냐는 질문에 쿠퍼는 "믿을 리가 없겠지만..."하면서 곤혹스럽게 초자연적인 중력 현상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로밀리는 "이미 여러 차례 이상한 중력 신호가 '그들'로 부터 오고 있다"면서 의외로 '초자연 현상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말을 쉽게 믿습니다.

 

거의 마지막. 거대한 책장 모양의 블랙홀 신에서 이미 우리는 머피에게 보낸 다양한 중력 신호는 쿠퍼가 보낸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럼 대체, NASA에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일까요. 12명의 탐사대 중에 누군가가 쿠퍼보다 먼저 블랙홀에 갇힌 적이 있는 것일까요?

 

(아울러... 쿠퍼는 이미 지구를 떠나기 직전, 머피가 책장을 통한 신호가 'STAY'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 이미 알고 있는 그가 대체 왜 블랙홀 공간 안에서 안간힘을 써서 'STAY'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과거 시점에 이미 그 메시지를 전해 듣고도 무시한 자신에 대한 후회로? 그냥 그렇게 해야 앞뒤가 맞을 것 같아서?  그냥 감동하기엔 좀....)

 

 

 

질문 9. 왜 만 박사는 처음부터 플랜 B로 가지 않았을까?

 

얼음 행성에서 다른 탐사대원들이 머피의 메시지 "플랜 A는 뻥이다"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만 박사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 박사는, 위에서 말했듯,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플랜 B를 달성하기 위해 갖은 미친 짓을 하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는 지구를 출발할 때 어차피 방법은 플랜 B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질문: 대체 왜 12명의 선발대는 처음부터 플랜 B를 실시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인류의 수정란 갯수가 한계가 있었다면 모를까, 영화 앞부분에서 보듯 수정란은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만들 수 있고, 공간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럼 인듀어런스호에 실린 것만큼 대량은 아니더라도, 선발대가 각기 수정란을 갖고 많은 후보지로 출발했다면 인류의 생존 가능성도 훨씬 높아 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영화의 근본 설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말이 된다 안된다를 따지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인류의 남은 자원량이 인듀어런스 호 하나를 날려 보내는 정도로 달랑달랑했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한 대답은... 그냥 '그랬으니까 그런 거지' 정도?)

 

 

물론 이런 사소한 질문들에 대해, '영화가 주는 거대한 메시지에 감동할 생각은 않고,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 끝만 보는 저열한 행동거지'라고 야단 치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랍니다. 이런 거 따져 보는 재미가 또 이런 영화 보는 재미거든요. 그냥 할일 끔찍히 없다 생각할 분들은 그렇게 하시고, 혹시 이 질문들에 대해 다른 답이 있는 분들은 제게도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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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이 다 흘러가버렸네요. 다시 봄이 오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이 급해지지만 그래도 잠시 여유를!

 

 

 

10만원으로 즐기는 11월의 문화가이드 (2014)

 

왠지 12월과 1월이 시작과 끝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달로 꼽히다 보니 11월과 2월은 약간 곁다리처럼 느껴지곤 해. 하지만 올해 11월은 상당히 볼거리 많은 달이더군.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마이클 볼튼, 제이슨 므라즈, 림프 비즈킷, 여기에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같이 오시는 거 아니야. 각각이야)까지 굵직굵직한 내한공연이 잡혀 있다. 물론 이 페이지에서 다루기엔 매우 비싼 공연들이야. 그러니 개인적으로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알아서 카드를 긁으시고, 우리는 갈 길을 가자고.

 

평소 클래식에 전혀 관심 없던 분들도 연말만 되면 왠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나 말러 교향곡 2, 모짜르트의 레퀴엠, 가끔은 베르디의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 물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서울시향이 올해도 1226일에 합창교향곡 공연을 준비했는데, 이미 늦었어. 매진이야. 그런 분들 때문에 27일 추가로 만들어진 공연 역시 매진이야. 하지만 프로이데를 듣지 않으면 도저히 2014년이 마감될 것 같지 않은 분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어.

 

11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헨델 메시아 & 베토벤 합창 교향곡공연이야. 서희태가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 연주에 김동규 박미자 등의 협연으로 메시아의 하이라이트와 잘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들, 그리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의 4악장을 연주해. 뭔가 처음 보는 형상의 발췌 공연이라 좀 지나치게 대중적인 포맷이란 느낌은 드는데, 아무튼 앞서 말했듯 꼭 필요한분들을 위한 안내. ‘추천은 아니야. 티켓은 20만원부터 4만원 짜리까지.

 

 

(...참 묘한 공연)

 

그럼 추천은 지금부터. 이달은 국립극장의 레퍼토리가 좋아. 일단 1031일부터 시작되는 단테의 신곡무대에 눈길이 가. 누구나 다 아는 고전을 한태숙 연출로 재해석해서 이미 지난해 매진사례였던 작품이지. 정동환 박정자 등 대배우들의 관록이 빛난다고나 할까. 7만원부터 3만원까지 있는데 볼게 많으니 일단 3만원짜리 A석으로 하자고.

 

 

 

 

다음은 20일부터 126일까지 공연되는 안드레이 서반의 춘향이야. 혁신적인 연출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창극 춘향전의 연출을 맡은 무대지.

 

유럽 연출가가 창극을? 그게 말이 돼?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거야. 하지만 그렇게 친다면 한국 연출가가 셰익스피어 극이나 푸치니의 오페라를 연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또 한국에서도 같은 햄릿이라 해도 기국서 판 햄릿이나 안민수의 하멸태자처럼 변형한 작품이 각광을 받기도 하고. 아무튼 개인적으로도 매우 관심이 가. 5만원에서 2만원. 달오름 극장은 그리 크지 않으므로 2만원으로 일단 설정.

 

 

마지막으로 국악을 넘어 선 마스터 양방언의 공연 에볼루션 이 있어. 굳이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지? 특히 지난 7여우락때 매진이라서 공연을 놓친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를 노리는 게 좋을 것 같아. 7만원~3만원 까지 있는데, 그냥 우리는 3만원 정도로 하자고. 중요한 건 현장이고, 음악이잖아?

 

이달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나온지 좀 됐어. 200년 정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로 읽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어.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성장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이야. ‘역린에서 이산’, ‘성균관 스캔들’, ‘비밀의 문까지 수많은 작품들의 원형을 여기서 볼 수 있거든. 여러 출판본 중에선 정병설 교수의 번역본을 권하고 싶어. 그냥 번역만으로는 맛볼 수 없는 상세한 해설을 통해 풍성한 배경 지식까지 얻을 수 있어. 인터넷 가격으로 약 12000.

 

11월은 이렇게 보내도록 해. 연말에 보자고.

 

10.31~11.8 국립극장, 단테의 신곡, A 3만원

11.20~12.6 국립극장,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A 2만원

11.28~11.30 양방언, Evolution 2014, A 4만원

한중록, 정병설 편역  12000

총액 약 102000

 

 

안드레이 서반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닙니다. 다같이 참고용으로 서반이 연출한 파리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에서 '광란의 루치아'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건 영국 로열 오페라의 2013년 '투란도트' 공연. 서반이 처음 디렉터를 맡은 것은 1984년의 일이지만 당시의 연출 버전을 아직도 공연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1943년 생이니 이미 70대의 노장. 1960년대, 그러니까 팔팔하던 20대에 벌써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가부키 스타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려서 역사상 가장 야심만만한 연출이라는 호평을 받은 양반입니다. 그러니 70, 80년대에 이미 최고의 거장 대접을 받았고, 연극에 머물지 않고 오페라와 영화에까지 발을 뻗었던 양반입니다.

 

이런 경력에 비쳐볼 때 '아니 어떻게 서양 사람이 춘향전을...'이라는 식의 생각은 한참 기우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어떤 무대가 될지 저부터도 참 궁금합니다. 꼭 가 볼 생각.

 

 

 

마지막으로 한중록.

 

사실 고백하자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사도세자와 정조, 그 시대에 대한 글을 썼지만 지금껏 한중록을 통독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중록이야말로 그 시대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미 혜경궁 홍씨는 노론의 영수 홍씨 집안의 딸이었으므로 그 기록은 사도세자에 대한 왜곡으로 점철돼 있을 거라는 논리에 노출된 뒤였으므로, 굳이 그 내용을 봐야 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탓도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감안하고 '한중록'을 읽으면 혜경궁 홍씨의 스탠스는 참 정치적으로 절묘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을 죄를 지었다 해도 곤란하고, 안 지었는데 누명을 쓰고 죽었다 해도 곤란할 처지에 있으니 글의 방향은 '일련의 사건들은 사실이나, 세자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병(광증)의 소치'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과연 그 주장 하나 하나가 얼마나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겠으나, '한중록'을 한번쯤 읽어 보고 나면 혜경궁을 '남편의 목숨보다 친정의 권력에 더 무게를 실었던 여자'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그 반대쪽의 논리가 좀 부실하다는 점도 큰 몫을 합니다.)

 

 

그리고 중간의 '헨델의 메시아+베토벤의 합창' 공연은 그냥 '살다 보니 이런 공연도 있더라' 정도로만 이해해 주시길.^^

 

 

좀 이르긴 하지만, 뉘른베르크에서 올해 6월에 있었던 플래시 몹입니다. 들을 만 합니다.

 

연말에 잘 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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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나긴 스페인 여행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지루하셨겠지만 이제 끝.]

 

기대 이상이었던 알카자르 덕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한 터라 톨레도의 나머지 지역 구경을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했다.

 

사실 톨레도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엘 그레코의 도시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이제 일단 엘 그레코는 뒷전. 우선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찬탄했던 언덕 위의 톨레도 뷰를 보기 위해 서둘렀다.

 

 

사상 최악의 길찾기 코스인 톨레도 관광에서 그나마 뭔가 트인 공간을 보려면 조코도베르 광장으로 가야 한다. 사실 처음에는 '뭐? 이따위가 광장이라고?' 라는 생각이지만, 톨레도에서 30분만 여기저기로 걸어 보면 '아, 이게 광장이구나'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로다.

 

그래서 조코도베르 광장의 저 M 사인이 보일 때 매우 반가웠다.

 

 

건물을 찍을 때는 사진에 표현되지 않지만 참 아름다운 날씨였다.

 

 

잠시 대기하며 배룰 채우고, 드디어 미니열차 Zocotren 출발. 요금은 5유로 정도고 약 40분 가량 톨레도 주위를 돌며 구경을 시켜준다. 톨레도 내부에서도 저렇게 다니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톨레도 내부엔 저 정도의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다. 조코베르 광장을 벗어나면 도보 이동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못 봤지만, 만약 그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려 한다면 한참 욕을 먹을 듯.

 

 

그러니까 이런 길은 여기 말고는 없다고.

 

 

성벽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성 밖으로 나가기 전. 톨레도 성은 주변 지역보다 표고가 높다.

 

 

 

톨레도는 대략 이렇게 팝콘 알갱이 같이 생겼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외곽의 70%를 타호 강이 감싸고 있는, 평지보다 살짝 높은 고지대에 도시가 건설된 것이다. 방어를 위한 최선의 거점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굉장히 중요한 팁: 이 미니열차는 톨레도 시내를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도시외곽을 돈다. 그 말은 즉...

 

기차 안의 좌석은 한 줄에 약 4명씩 앉는 배치인데, 오른쪽 창가 쪽에 앉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 된다.

 

다들 저렇게 팔을 내놓고 촬영에 열중하게 된다. 그만치 풍광이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성 밖으로 나서면,

 

 

 

타호 강을 건넌다. 그림같다.

 

 

강 건너에서 시계방향으로 순환도도를 달리며 톨레도를 바라보게 된다. 오른쪽 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아까 가본 알카자르가 역시 도시의 상징답게 눈에 확 들어온다.

 

 

 

 

 

왕년에 쓰이던 다리와 정문.

 

이런 몇 군데의 포인트만 차단하면 톨레도는 그야말로 철벽 방어 태세가 된다.

 

 

 

남쪽으로 돌아 나오면 알카자르 말고도 볼만한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

 

 

 

아이 이뻐.

 

 

 

잠시 후 차를 뷰포인트에 세워 준다.

 

강 건너편은 절벽. 만약 성문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가 강을 건너고, 다시 톨레도의 성벽을 넘어야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대구경 화약무기가 발달하기 전까지 톨레도로 쳐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알 수 있다.

 

 

 

 

오른쪽의 알카자르와 비슷한 높이인 첨탑이 톨레도의 카테드랄이다.

 

성-속 권력의 경쟁 구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살짝 다른 각

 

 

이런 장난을 쳐 보고 싶게 하는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 올망졸망한 골목길.

 

잠시 후, 저 골목길에서 좌절하게 된다.

 

저 골목 안에 갇히면 길찾기의 제왕도 당황하게 된다. 바로 옆에 저만한 높이의 대성당이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혹시 이런 것도 침략자에 대비한 설계인 것일까.

 

 

도시의 서편. 아무튼,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라 그냥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게 된다.

 

 

 

이건 동쪽 다리. 그러니까 정면의 성문(북문)이 있고, 다리는 동편과 서편에 하나씩 있다.

 

 

북쪽 성문을 통해 다시 성 안으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보 톨레도 관광이 시작된다.

 

 

 

아니 웬 롯데리아...

 

근데 잘 보면 t가 하나 없다. 저 로떼리아는 복권. lotto와 같은 어원이겠지?

 

 

지금까지는 그나마 넓은 길. 사실 저렇게 차가 서 있지만, 톨레도 주민들은 대체 이 골목으로 어떻게 차가 다녀? 싶은 곳까지 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듯 싶다. 뭐 동네가 동네다 보니 적응한 것이겠지만.

 

 

 

그런데 예쁘다 예쁘다 하고 다니다 보니 길을 잃었다. 뭐 여행 다니면서 길 찾는 거야 평소 일도 아니라고 자부했던 터라 아무 걱정 없이 잘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여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위를 올려다 봐도 저렇게 자기 머리 위의 하늘만 보여.

 

 

밑을 봐도 표지판 하나 없고...

 

 

저렇게 빤히 보이는 건물도 막상 가다 보면 길이 없고 건물은 사라져 버린다. 골목길의 마술이다. 나중엔 무서워진다.

 

 

한참을 헤맨 뒤에 가까스로 도착한 카테드랄. 저 첨탑이 그 도시 밖에서도 잘 보이던 바로 그 첨탑인데, 막상 도시 안에선 저 첨탑이 보이질 않는다. 물어 물어 간신히 찾았다. 골목이 하도 복잡하니 현지인들도 마땅히 가르쳐 주기기 쉽지 않은 듯. 톨레도 가시는 분들은 농담 아니고, 나침반을 휴대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웅대한 카테드랄의 규모. 막상 대성당 앞에도 공터가 없으니 건물의 규모가 제대로 드러나는 사진은 감히 찍을 방법이 없다.

 

곧 내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나게 크고 장대하다.

 

 

엘 그레코의 도시에 왔으니 역시 엘 그레코 앞에 서야 한다. 그가 1603년에 남긴 'Santo Doming'라는 작품.

 

 

 

이런 식으로 엘 그레코의 그림들이 전시된 공간을 살짝 지나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걸개 그림이 방문자를 반긴다. 아직 놀라면 안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스페인 역사의 진짜 수도는 마드리드가 아니라 톨레도였다는 것은 카테드랄을 보면 안다.

 

 

이제 슬슬 익어가는 카테드랄의 기본 구조. 가운데에는 파이프오르간과 성가대석이 있다.

 

 

 

 

 

규모는 세비야 카테드랄이 더 클 수 있으나, 장식의 화려함은 톨레도 카테드랄이 훨씬 앞서 있다.

 

 

 

 

황금색으로 뒤덮인 장식 속에 곳곳의 이런 목각이 눈길을 잡는다.

 

 

 

진정 요란한 주 제단.

 

 

 

 

역시 딱 보면 알 수 있는 엘 그레코의 손길.

 

 

뜻하지 않은 곳에서 카라밧지오의 그림을 만난다. 그가 그린 San Juan Bautista.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San Juan Bautista는 앞서도 말했지만 Saint John the Baptist, 즉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스페인식 표기다. 어디선가 '바우티스타 성인'이라는 기이한 번역도 본 것 같다.

 

 

 

더 화려한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아무튼 이 카테드랄의 주제는 '화려함'이다. 금색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

 

 

고개를 돌려 위쪽을 바라보면 채광창을 통해 왕실 예배당으로 햇살이 비친다. 신비롭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엘 그레코의 12사도 그림이 있다. 익숙한 사람은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누가 봐도 엘 그레코'.

 

 

 

그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하는 길.

 

 

 

 

 

부속 건물은 고승들의 묘지로 쓰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카테드랄과 이별.

 

엘 그레코를 찾아 산토 도메 성당까지 가는 것이 당초의 목표였으나 불행히도 알카자르에서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잡아 먹고, 카테드랄을 찾느라 너무 헤매는 바람에 감히 산토 도메 성당을 찾아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리 예매해 놓은 열차 시간이 달랑달랑.

 

어느 분이 톨레도는 관광객이 떠나간 오후 다섯시 이후가 진짜 끝장이라던데, 안 그래도 언젠가는 톨레도에서 하룻밤 자 보고 싶다.

 

 

 

그렇게 해서 톨레도 역으로 복귀.

 

 

그래도 톨레도에 오면 꼭 먹어 봐야 한다는 마사판(Mazapan)은 한 상자 샀다.

 

엄청나게 달다. 우유나 쓴 커피가 없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

 

이렇게 해서 스페인에서의 열흘간이 지났다. 총정리편은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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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해진 생활용어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셋이서 어울려 다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아유 셋이 아주 삼총사야"하고 말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널리 쓰입니다. 뭐든 세명이 두각을 보이거나 중요한 존재가 되면 무조건 삼총사로 묶입니다(듀오, 삼총사, 사인방, [독수리]오형제...로 나가는 공식은 정말 영원불멸일 듯).

 

그런데 정작 이 삼총사가 본래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뒤마의 소설 제목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그 내용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얼마 없더군요. 오히려 그 바로 뒤에 나오는 '사인방'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듯 합니다. 

 

'삼총사'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첫 단계는 가운데의 '총'입니다. 이 총이 쏘는 그 총이라는 걸 아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삼총사

[명사] 본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제목. 이후 세 명이 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용중.

 

한자 표기 三銃士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놀라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총이 탕 하고 쏘는 그 총 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원제인 ‘Les Trois mousquetaires’에 나오는 mousquetaire는 영어의 musketeer, 즉 화승총과 현대식 라이플의 중간 세대에 위치한 화약 무기 머스킷(musket)으로 무장한 근대식 기병을 말한다. ‘머스킷을 쓰는 병사를 압축해 번역하다 보니 총사(銃士)라는 한자어가 등장한 것이다.

 

삼총사에 나오는 프랑스 총사대는 1622년 루이 13세에 의해 국왕 직속부대로 창설됐다. 아버지 앙리 4(‘낭트 칙령을 발표해 프랑스 내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를 모두 정당한 신민으로 인정한 왕으로 유명하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마고 여왕의 남편)가 거느리고 있던 경기병(Carabinier)의 화력을 보강해 개편한 프랑스 육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왕이 직속부대를 강화하자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 추기경도 자신의 직속 경호대를 창설했다. 국왕에 비해 꿀릴 것이 없는 권력자인 만큼 자신의 경호대가 왕의 총사대에 비해 규모나 무장 등에서 손색이 없도록 구성한 모양이다. 당연히 두 부대 사이에는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싹텄다. 소설 삼총사의 앞 부분, 즉 달타냥이 파리에 도착해 총사대와 경호대 사이의 분란에 뛰어드는 대목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설 삼총사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루이13세와 안느 왕비, 왕비의 연인이며 영국의 총리대신인 버킹엄 공작 존 빌리어스, 달타냥의 숙적인 추기경 리슐리외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달타냥과 삼총사는 실존 인물과 행적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달타냥의 모델은 뒷날 달타냥 백작이 된 군인 샤를 드 바츠(1811~1873)라는 게 정설이다. 소설과는 달리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궁정과 추기경 사이를 누비며 은밀한 활약을 펼쳤고, 뒷날 총사대의 대장에도 올라 실제 소설의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달타냥 백작의 일생에 감명을 받은 가티엥 드 쿠르틸 드 상드하(Gatien de Courtilz de Sandras)라는 동시대 작가가 달타냥 씨의 비망록이라는 기록(제목은 비망록이지만 내용은 무협지 수준의 과장이 넘쳐난다고 전한다)을 출판했고, 200년 뒤 사람인 뒤마는 이 기록을 모태로 자신의 대표작인 삼총사’ 시리즈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공을 거둔 이 책은 20세기 이후 수십차례 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4년 한국에서는 원작의 배경을 조선 인조 때로 옮겨 놓은 드라마도 나왔다.

 

 

삼총사의 총이 그 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왜 소설에선 칼싸움 밖에 안 나오냐고 반문하는데, 사실 총 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삼총사의 후반 1/3 가량은 1627~28년에 걸쳐 벌어진 라 로셸 포위전에서 피아 5만의 군대가 대포와 총을 동원해 벌이는 대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총은 안 나오잖아?'하는 분들은 이 책의 앞 쪽 50페이지만 읽은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굉장히 옛날 같지만 1622년이면 이미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에서 사수,살수와 함께 조총병인 포수를 양성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번역을 했다면 소설 제목 삼총사삼포수(三砲手)’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달타냥과 삼총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삼총사'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 두고 싶다. 뒤마는 삼총사와 달타냥을 주인공으로 1844삼총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년 후’, ‘브라젤론 자작(Le Vicomte de Bragelonne)’등 속편을 내놨다. 삼총사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젤론 자작 3부가 바로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철가면 에 등장하는 철가면과 루이 14세 이야기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20년 후1995년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어 구해 볼 방법이 없고, ‘브라젤론 자작은 아예 출간된 적이 없다. 영화 철가면이 나왔을 때 뒤마 원작이라고 아는 척 했던 분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읽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삼총사도 수십가지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 아동용 압축본인 게 한국의 출판 현실이다.

 

P.S. 30여년 전, 아동문학전집에 섞여 있던 삼총사는 국왕 폐하에게 충성하는 달타냥이 카르지나르라는 간신과 싸우는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 카르지나르가 악당의 이름이 아니고 추기경(Cardinal)’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어 중역본 시대의 웃픈 이야기.

 

 

 

 

 

 

무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밀덕들에게 당할 수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삼총사 - Three Muskuteers 라는 말은 초콜릿 바 이름에까지 쓰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단 저렇게 영어로 써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삼총사라는 말과 Musket이라는 무기를 연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비해 '삼총사'라고 쓰면 그게 저 무기와 관련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죠.

 

흔히 arquebus를 '화승총'으로, rifle을 '(현대식)소총'으로 번역하는 반면 그 중간 단계인 musket에는 마땅히 붙일 만한 번역어가 없습니다(물론 아퀴부스와 라이플 사이에 머스킷 한 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다른 단계와 다른 이름의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머스킷 총'이라고 부릅니다.

 

머스킷은 아퀴부스의 약점인 짦은 사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멀리 나가게 하려면 총신이 길고 견고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연히 무게가 더 나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초기의 머스킷은 대단히 무거워서 받침대가 없으면 혼자 사격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무기였지만, 차츰 개량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머스킷과 라이플의 차이는 단적으로 말해 총신에 강선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rifle 은 동사로는 '총신(bore)에 회오리 모양의 강선을 파다'라는 뜻입니다. 즉 머스킷의 총알이 그냥 총구에서 밀려 나오는 방식이었다면, 라이플로 쏜 총알은 총구에서부터 회전하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더 빠르고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어떤 사람은 rifle을 '장총'이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은 '소총'이라고 번역합니다. 정 반대의 의미인 셈이죠. 물론 길이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이긴 합니다만, 어쩌다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참...^^)

 

 

 

 

 

 

아무튼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총사'는 여러 번 읽어 봤지만 '20년 후'나 '브라젤론 자작'은 당연히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20년 후'만 해도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서점에 서서 몇 줄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에 나오는 안느 왕비가 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왕년에 왕비님을 도와준 달타냥을 기억하십니까? 그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하자 왕비가 "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하는 반응을 보이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던 듯 합니다.

 

그러니까 '삼총사'에서 달타냥과 세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일을 성사시켰더니 20년 뒤 왕비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져 있다니. 등장인물에 대한 배신감이 확 일어서 책을 사 볼 마음이 없어졌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책도 구할 길이 없어져 버리고 나니, 그때 그 책을 샀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아무튼 언젠가 '20년 후''브라젤론 자작(혹은 철가면)'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수십 수백개의 삼총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삼총사는 이 쪽.

 

 

 

혹은 그 원형인 이쪽.

 

 

 

 

아 이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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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밝은지 좀 됐군요.

 

어쨌든 더 늦기 전에 얼른 올립니다. 다행히 로스 로메로스 공연은 9일이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0월의 문화가이드

 

매년 하반기의 낙이라 할 수 있는 추석 연휴가 칠천량 해전에 나간 원균의 함대처럼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겠지? 남은 건 송편이랑 갈비찜 때문에 찐 살과 가족들 선물 산 카드값 밖에 없다는 건 잘 알겠어.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마. 10월엔 아직 개천절과 한글날이 충무공의 열 두 척처럼 남아 있으니까. 사즉필생!

 

10월의 공연 전시 리스트를 보다가 이건 봐야 해하는 느낌이 딱 오는 이벤트가 있었어. 바로 109일 예술의 전당 IBK 챔버 홀에서 열리는 로스 로메로스 내한 공연 이야. 세계적인 스패니시 기타리스트 셀레도니오 로메로가 창설한 로스 로메로스(눈치챘겠지만 로메로 가족이란 뜻이야)는 스패니스 기타의 쿼텟 스타일을 처음으로 만든 팀이지.

 

세월이 흘러 셀레도니오의 둘째 아들이며 아버지를 능가하는 명성의 페페 로메로가 리더 역할을 이어받았고 두 손자가 멤버로 들어와 팀이 3대째로 접어들었어. 가을 밤의 스패니시 기타 소리. 네 명의 기타 명인이 연주하는 알베니스의전설(Leyenda, 혹은 Austurias)’. 어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지?

 

물론 다 좋지만 문제는 가격. 11만원 짜리 R석과 7만원 짜리 S석밖에 없어. 고민되지만 이럴 때 한번 질러 보는 거지 뭐. IBK홀은 그리 크지 않아서 굳이 11만원짜리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 7만원 투척.

 

다음은 지난달 카르미나 부라나에 이은, ‘들으면 다 아는데 쉽게 연주되지 않는 곡시리즈 2탄이야. 1031일 예술의전당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 연주돼. 네이버 지식인에 둥당둥당 둥당둥당 밤~ ~ ~ 빠밤으로 시작하는 클래식 곡 제목이 뭐죠?’ 라고만 물어봐도 누군가가 답을 알려 줄 만큼 유명한 곡이지. 하지만 실제 연주를 들어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아.

 

 

 

이번 연주는 스타 지휘자 임헌정이 올 연초 코리아심포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뒤 내놓은 기획이야. R석이 5만원인데다, 1층 사이드와 2층 대부분 좌석이 2만원 짜리 A석이라는 건 감동적인 보너스지. 단 곡의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를 꼭 읽고 오라고 부담 주고 싶지는 않아. 이 곡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도 끝까지 보려면 힘들 수도 있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음악만 들으러 와.

 

, 다음은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이야. 이미 821일부터 열리고 있는 전시인데다 워낙 유명하지만 그래도 1만원에 이만한 효용의 전시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제목이 교감 - Beyond and Between’ 이듯 우리 고전 미술 작품과 국내외 현대 미술 작품 간의 대화를 상징하는 전시야. 혹시 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8월의 추천 전시였던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의백자예찬과 비슷한 컨셉트의 전시라고 볼 수 있겠네. 물론 리움의 소장품이 등장한다면 더 말 할 게 없겠지. 1221일까지니까 여유있게 들러 봐.

 

이달의 책. 전 세계적으로 사 놓고 안 읽는 책 1라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추천해서 여러분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하거나(책값만 3만원…), 저 책을 읽은 척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이드로 알려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 읽기를 추천할 생각은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도 너무 뻔한 선택이라 탈락. 뭐 이미 보신 분도 많을테고.

 

 

 

그래서 고른 이달의 책은 조시 베이젤의 비트 더 리퍼. 뭐 이 코너를 지켜보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어쨌든 모토는 재미있는 책이야. 그리고 대략 취향도 파악됐을 거야. 깜찍발랄한 소설 참 좋아해.

 

비트 더 리퍼는 병원 인턴 피터의 일상에서 시작해. 그런데 사실 이 피터는 평범한 의대생이 아니고 전직 마피아의 킬러였어. 그것도 천재적인 킬러. 그런데 과거를 씻고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한 거야. 킬러 출신 인턴, 멋지지 않아?

 

하지만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알던 마피아 멤버 하나가 환자로 병원에 나타난 거야. 그리고 요구하지. “내가 죽으면 (너의 비밀을 폭로할 테니) 너도 죽는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살려라.”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2011년 출간된 책이라 가격도 싸. 7000원대면 살 수 있어. 그러니 늘 당부하지만, 신작에 목 매지 말라고.

 

그럼 이달은 여기까지. 11월에 만나.

 

로스 로메로스 내한공연                                         S 7만원

코리아 심포니,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 2만원

리움 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 교감                              1만원

조시 베이젤, ‘비트 더 리퍼                                     7000

합계                                                            107000

 

 

 

자, 영상 학습 시간.

 

영화에 좀 관심있는 분이라면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어디선가 들어 보셨을 유명한 장면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 장면이죠.

 

그냥 별 할일 없이 자빠져 뒹굴고 있던 원생 인류(외견상 침팬지와 별 차이가 없죠^^)들이 어느날 외계에서 날아온 모노리스(검은 색의 비석)로 부터 영감을 얻어 동물과 선을 긋고 진화의 방향을 선택하는 그 장면이죠. 모노리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한 유인원이 동물의 다리뼈를 도구로 이용하는 법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팔과 다리 이외의 도구를 확장된 몸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인류 문명이 시작되는 그 순간을 큐브릭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무 길어서 다 못 보시겠다는 분들은 5분25초 쯤부터 보시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번의 '까르미나 부라나'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한번 영화를 통해 음악의 위용이 드러난 다음에는 엄청난 남용의 시기가 찾아오고, 그러다 보면 음악이 실제 갖고 있는 의미는 저 뒷전으로 사라집니다.

 

패션쇼 오프닝이나 지하철 상가 개장 광고에서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어 오신 분들이 한번 이 기회에 진짜 음악을 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페페 로메로 옹의 연주. '스패니시 기타 연주곡' 이라면 누구라도 딱 머리에 떠올릴 알베니스의 '전설'.

 

 

 

 

한곡 더?

 

 

 

 

Los Romero: 50th Anniversary Concert at 92Y - GIMÉNEZ: El baile de Luis Alonso (1896)

 

영상에도 표시되듯 2009년 3월21일 연주입니다.

 

날씨 참 기가 막히게 좋군요. 좋은 10월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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