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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한가지만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세 드라마 모두 궁금해서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어젯밤에는 리모콘을 여기저기 돌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볼만한 배우들과 탄탄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올 연초에도 '공부의 신'과 '제중원', '파스타'가 동시에 출격하면서 상당히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대결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손예진의 '개인의 취향', 문근영의 '신데렐라 언니', 김소연의 '검사 프린세스'로 대표되는 세 작품이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까요.

첫날 시청률에서는 일단 '신데렐라 언니'가 앞섰습니다. 나이 먹은 시청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시청률 면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듯 합니다. 세 드라마 중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의 비교 포인트를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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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예진 vs 이미숙

왜 손예진 vs 문근영이 아닐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본 대로 얘기하자면 확실히 이랬습니다. '농익은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이미숙은 당연히 - 딸 문근영에게 의붓아버지를 백만명씩 가져다 붙여 주는, 없느니만도 못한 엄마 역으로 너무나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도망가면서도 옷 구겨질 걸 걱정하는 여자, 장농에 감춰둔 반지 빼내 온 걸로 그 남자와의 인연을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여자, 새로운 표적 앞에선 연기대상감의 솜씨를 보여주는 여자. 특히 김갑수와의 자전거 신은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반면 손예진은 첫회에서 너무 망가지는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코믹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다 보여줬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어쩌면 이 배우가 자신의 미모를 이제 신뢰하지 못하고 연기파 배우로 완전히 지향점을 바꿔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로... 봉태규가 덮치는 장면에서의 박력(?)은 좀 아쉬웠지만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우는 장면은 이제 이 배우가 어느 선을 넘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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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민호 vs 문근영

이 두 배우가 한데 묶이는 것은, '나는 이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년배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어제 두 드라마의 첫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직은 조금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일단 문근영은 80점 정도. 앙칼지게 소리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더라는 점에선 좋았지만, 그 결과 발음이 뭉개져 대사 전달이 힘들었다는 점도 지적할만 했습니다(하긴 서우와 비교하면 발음 얘기는 할 수가 없겠죠). 너무 신경질적인 아이로 방향을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늘 얘기 나오던 '성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지만 변신의 시도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민호는 이보다는 좀 더 역할 적응력이 돋보였습니다. 두가지 톤으로만(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상어와 화난 말투) 연기하면 충분했던 '꽃보다 남자'에서 실제 살아있는 남자를 연기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하긴 '꽃남' 전에도 꽤 탄탄한 솜씨를 뽐낸 이민호니까... 그런데 '완전히 나쁜 남자'일 때에 비해서는 매력이 덜하다는 지적(저의 동거인의 주장입니다)도 있더군요.

어쨌든 두 배우 모두 자기 몫의 시청자를 끌어들일만한 솜씨는 충분히 보여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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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은지 vs 강성진

사실 제 생각에 '개인의 취향'의 최대 강점은 손예진도 이민호도 아닌 조은지입니다. 정말 채널을 돌리다 '개인의 취향'을 보게 된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조은지의 한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달콜살벌한 연인'에서 정평이 난 조은지의 코믹 조연 연기는 일단 믿을만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신데렐라 언니' 쪽의 카드로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강성진을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소년 정우는 코믹 카드로 훌륭하지만 이 소년이 곧 자라서 옥택연이 될테니...(어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똥땡이 소년이 짐승남 택연으로 성장하다니... 뭐 이건, 진짜 신데렐라는 소년 정우더군요). 일단 주인공들을 소개하는데 바빠 첫회에는 강성진에게까지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결국 이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건 그의 역할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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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희 vs 김규완

일단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가 단연 앞섭니다. 지나치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문근영의 독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갑수와 이미숙의 자전거 신 같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독특한 잔혹 동화같은 느낌을 잘 살려 줍니다.

'개인의 취향'은 원작자인 이새인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는데 물론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몇 부분에서 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민호가 건축 모형을 들고 버스에 탈 때부터 그 모형이 온전하지 않을 거란 점도 잘 알고,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남자가 시간을 끌 때 같은 장면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죠. 물론 장르의 클리셰라는 것도 있어야겠지만 이 시간대에는 언제든지 채널을 돌리게 할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이 큰 부담입니다.

반면 전체적인 배우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솜씨는 '개인의 취향'의 압승입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능숙한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신데렐라 언니' 쪽은 어떻게든 서우와 천정명을 나머지 배우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천정명의 대사 솜씨가 하루 아침에 나아 질 리는 없겠지만, '파주'와 '탐나는도다'의 서우가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마 그건 서우의 책임으로 비쳐지진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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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AM vs 2PM

뭐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데뷔하는 임슬옹과 '신데렐라 언니'의 옥택연은 모두 연기 데뷔입니다. 개인적인 인기로는 옥택연이 단연 앞서지만 연기력은 임슬옹에게 훨씬 기대가 갑니다. 이유는 '패떳2'를 보신 분이라면 당연히 짐작하실....

하지만 뭔가 벗은 상태에서의 박력은 택연에게 대적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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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두 드라마 첫회를 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 봤습니다. 두 쪽에 더 신경을 쓰느라 '검사 프린세스'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김소연의 새 머리 모양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 실망입니다.


재미있으셨으면 아래 왼쪽 손가락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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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 눈에 띄는 낚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 합니다.

'추노'의 가장 큰 힘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하는 짤막짝막한 대사 사이 사이에 적절한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 주던 천성일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치러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추노'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각본상을 따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물론 '추노'의 설정에도 살짝 억지는 있습니다. 일단 배경을 인조 때로 잡아 소현세자와 원손 석견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잡고 여기에 주인들을 죽이러 다니는 노비 패거리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때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분명 실제 역사의 진행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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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에서 가장 큰 역설은 대길의 묘 위로 흐르는 송태하의 후일담 나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송태하는 인조의 죽음과 효종의 즉위, 그리고 석견의 복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역사와는 정 반대로 얘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조가 승하하고 세자 봉림대군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쇄는 중지되었다.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석견이 효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나고 왕족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55년에 노비 추쇄가 끝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55년은 노비 추쇄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효종이 노비 추쇄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이듬해에 석견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4년 뒤인 1659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655년, 효종과 신하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보시겠습니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1월 27일(임자) 1번째기사

(전략)상이 이르기를,
“어제 장례원(掌隷院)이 경기의 노비를 살펴 아뢴 것을 보니, 어린 것까지 모두 3백 구(口)뿐이었다. 시노비(寺奴婢)는 어찌 낳은 것이 없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경기 화량(花梁)을 옮겨 들여보내어 한 진을 만들고, 또 해서의 변보(邊堡)를 옮겨서 한 진을 만들고, 본부의 속오(束伍)로 한 진을 만들고, 시노(寺奴)로 한 진을 만들어, 모두 네 진을 만든다. 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들여보내고 바라지 않는 자는 베를 거두어서 모집하여 들여보내는 군졸에게 주면, 폐단이 없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영돈녕 김육(金堉)이 한가히 노는 사람들에게서 베를 거두려 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도 또한 하려 하였다. 19만의 노비에게서는 어찌 그 신공을 죄다 거두어 군수(軍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이 으레 행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따로 도감(都監)을 세워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추쇄관(推刷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쇄관을 차정(差定)한 뒤에 꼴찌에 해당한 자는 사율(死律)로 논하라. 명나라 태조(太祖)는 뭇 신하 중에서 죄를 범한 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찌 한낱 추쇄관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이제 어느 관원으로 추쇄를 맡게 할 것인가?”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음관(蔭官) 또는 문관(文官)으로 하되 삼조(三曹)의 낭관(郞官)인 자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심지원이 아뢰기를,
“장례원·형조가 맡되 이조를 시켜 극진히 가리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김익희(金益熙)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형조·장례원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빨리 결단해야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경의 이 말을 비웃고 욕하겠으나, 이제 경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추쇄는 모두 대사헌의 말대로 시행하되 대신 한 사람이 통괄하여 살피는 것이 옳겠으니, 우상이 맡게 하고 어사는 명관(名官)을 차출하여 보내라. 국가에 이익이 있다면 내가 모발이나 피부같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 분의(分義)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대사헌의 말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이조 참판 홍명하(洪命夏)에게 이르기를,
“추쇄관은 명관을 차출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조가 중벌을 받을 것이다. 사노비는 달아났거나 죽었거나 잡탈이거나를 막론하고 해원(該院)을 시켜 사실대로 초록(抄錄)하여 들이도록 하라. 또, 연미(燕尾)와 갑곶에는 첨사(僉使)를 두고 그 나머지 두 곳에는 만호(萬戶)를 두도록 하라.” (후략)


길고 복잡하다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655년은 북벌 사업에 매진했던 효종이 국가 재정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문서상 기록된 19만의 공노비 가운데 사라진 자들을 찾아 오게 한 해인 것입니다. 또 이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기존 관서에서 다루기보다는 특별 기관을 설치하고, 중앙 관료를 뽑아 추쇄관으로 임명해 그 일을 독려하게 하고, 그중에 추노 실적이 가장 뒤지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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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견을 살려낸 효종을 성군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노비 추쇄에 대한 한 효종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종 이후의 왕들은 혹독한 노비 추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숙종은 추노 과정에서 노비를 함부로 죽인 관료를 엄벌했고, 영조 때에는 추쇄관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고, 정조는 마침내 추쇄관을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추쇄관이 없어졌다고 해서 추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조가 남긴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평등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제목: 추노

1684년 12월 13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의 진노를 전한다. 지평(持平)을 지낸 정제선(鄭濟先)이 살인죄로 사형 위기에 놓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선처를 요구한 데 대한 분노였다. 사헌부의 정5품 벼슬인 지평은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정승도 탄핵할 수 있는 요직이었고, 정제선은 급제 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30대의 유망한 관료였다.

그런 정제선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추노(推奴) 때문이었다. 정제선은 연행 사신단의 일원이던 1683년, 달아난 노비(叛奴) 2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비 2명과 양민 1명까지 잡아들였고 술에 취해 이들을 무리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끝에 정제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유배됐다.

하지만 숙종은 이때 정제선을 사형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24년 뒤인 1708년에도 숙종은 “정제선 뒤로도 양반 사대부 가운데 살인죄로 사형당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대부가 법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처벌하는 자들이 꺼렸기 때문인가?”라며 법 적용이 공평하지 않음을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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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인기 드라마 '추노'가 25일 마지막 회를 맞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17세기 인조 때지만 실제 추노의 기록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도망친 노비의 체포와 환원이 당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잇따라 겪으며 신분제도에 혼란이 오자 효종 때에는 아예 추노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추쇄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쇄관의 폐해가 심해지자 정조는 이를 혁파하고 노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파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가 이리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이 없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天之生人, 豈亶使然哉). 가련한 마음은 한이 없다.”(홍재전서)

추노와 관련된 기록을 살필수록 신분의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도 인권과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민하던 깨인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18세기 조선이 문물의 중흥기를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끝)


마지막 부분 정조의 말은 홍재전서 12권에 나오는 '노비인(奴婢引)'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존재가 노비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팔조지교는 그것이 악을 징계하자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했던 것인데, 역대로 그것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인습해 왔기 때문에 대를 물려 가면서 남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팔고 하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로 전해 가면서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며, 오랑캐 비슷하게 반드시 어미를 우선하고, 아비 성을 따르지 않고 종[奴]으로 성(姓)을 삼는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이웃에서도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니, 높고 두꺼운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 없는 자와 같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 약간의 인정을 베푼 열성조의 사랑으로 인해 비록 몸은 보존하고 살 곳 정해 살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은 한이 없다.
내가 국정에 바쁜 여가를 이용하여 두 쪽 다 똑같이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우선 노비 규정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신 고용(雇傭)의 법을 만들어서 대물림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한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그에 관한 방략(方略)을 먼저 정하여 대금을 주고 드나들게 하는 데도 다 일정한 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한 한두 신하들과 함께 그 영(令)을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명분만을 숭상하는 편인데, 만약 양민과 천민을 한데 섞어서 반벌(班閥)이 분명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무시하고 덤빌 자가 틀림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남의 부림을 받는데 자식은 도리어 주인에게 항거한다거나, 작은 역(驛)과 보(堡)에 부릴 하인이 없다거나, 궁한 선비 집에 땔감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만 한 가지 폐단이 다시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작은 절목 내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평민과 섞여 사는 것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병행될 수만 있다면 단연코 결행할 것이다. 지금 공의 주고를 인하여 이와 같이 내 뜻을 약간 밝힌다.

생각할수록 정조는 참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추노'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좀 의문입니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의 지성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숙-경-영 시대를 거치며 조선 후기의 문화가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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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허공의 활로 하늘의 해를 쏘는 대길의 엔딩은 참 멋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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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예언자(Un Prophète)'를 봤습니다. 주인공의 옥중 생활을 그린 영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현재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올드 팬들에게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명연이 빛났던 '빠삐용'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 밖에도 알란 파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꼽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지독하게 건조한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이나 임영동의 '감옥풍운' 역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 수많은 '감옥 영화' 가운데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작품일까요. 세계 여러 나라의 교도소와 다른 프랑스의 교도소를 소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만 특이한 영화일까요? 이 영화가 위에서 거론된 기라성같은 선배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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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아랍계 프랑스인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 라힘 Tahar Rahim)는 6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입감됩니다. 그 전에도 소년원은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성인 자격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죠. 가족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그에게 교도소를 지배하고 있는 코르시카 계 갱단의 두목 세자르 루치아니(닐스 아레스트럽)가 손을 뻗어 옵니다.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는' 말리크에게 청부 살인을 요구해 온 것이죠. 당연히 말리크는 소극적으로 반발을 시작하지만 이미 세자르 파의 손길은 간수들을 포함해 교도소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죠. 마침내 말리크는 면도칼을 입에 물고 표적이 된 '그 남자'에게 다가갑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신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건 이 긴 영화에서 도입부에 해당하는, 그냥 한가지 계기가 되는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리고 나서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리크라는 한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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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할리우드식 '기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상식에서 볼 때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대 이후 반영웅(anti-hero)도 하나의 조류로 자리했지만 원칙적으로 반영웅도 영웅의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교도소를 무대로 하는 경우, 죄수가 주인공이라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 죄수는 억울한 죄수여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경우라야 그 안에서 주인공이 펼치는 갖가지 행동들이 합리화되고, 그것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어색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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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는 사실 교도소 안에서도 천대받을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프랑스 안에서 아랍계 이민 자손들은 범죄의 온상 취급을 받곤 합니다. 마티유 카소피츠의 '증오' 같은 작품이 이런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입니다.  '예언자' 안에서도 아랍계 범죄자들은 교도소를 손에 꽉 쥔 코르시카계에게 완전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한 말리크도 종 취급을 계속합니다.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유명한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한 주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섬입니다. 지중해의 패권에 따라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던 섬이기도 하죠. 최근에는 분리 독립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섬 출신의 대표적인 범죄 조직은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이탈리아 마피아에 비견되는 코르시칸 마피아라고 불리기도 하고, 유니오네 코르세(Unione Corse)라는 이름으로 한때 전 세계적인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미 오래 전 영화인 007 시리즈 '여왕폐하(조지 라젠비가 본드 역을 맡은 작품입니다)'에도 이 조직이 등장하죠. 또 진 해크먼 주연의 고전 수사극 '프렌치 커넥션'도 이 코르시칸 마피아와 경찰의 혈투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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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권하기는 힘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시선에서 한 범죄자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고 싶은 분에게는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굳이 이 말을 여기 쓴 이유는, 이후의 내용은 상당히 스포일러 역할을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내용은 영화를 보신 뒤에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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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에게 있어 교도소는 학교, 특히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말리크가 죽이도록 되어 있던 죄수 레예브는 말리크가 그를 찾아갔을 때 "공부를 좀 해 보는게 어때?"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말리크에게는 태어나서 몇 번 들어보지 못한 '건설적인 제안'이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레예브는 죽고 나서도 수시로 말리크에게 찾아와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가끔 예리한 통찰을 주죠. 이 영화의 제목이 '예언자'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참 별난 유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같으면 '왜 나를 죽였어어어어어'하면서 악몽을 꾸게 할 원귀여야 정상인데 반대로 그를 계속 도와주니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지혜를 흡수하기 위해 시체의 골을 먹었다는 석기시대적인 발상인지...)

아무튼 말리크가 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교도소 안의 학교를 찾아갔을 때, 많이 배운 죄수 리야드가 등장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무지=범죄, 지식=개과천선'이라는 구도에 입각해서 이 리야드는 '좋은 죄수' 캐릭터여야 하겠지만 이 영화에선 어림 없는 예측입니다. 리야드는 오히려 말리크가 진짜 거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어쨌든 19세의 말리크가 수년간 다양한 수업을 쌓고 졸업(출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대학 진학에 대한 패러디처럼 여겨집니다. 프랑스의 교도소가 과연 범죄자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도 기관인지, 범죄자로서의 성공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인지를 정면으로 비꼬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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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오디아르 감독은 한때 교도소를 돌아보고 비인간적인 환경에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TV에 닌텐도 게임기, 심지어 담배까지 피우고 커피도 타 마시며 다른 죄수의 방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교도소가 비인간적이라는 데 의아해 할 만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교도소 환경이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지 절대 확인할 일은 없어야겠지만, 영화 속 교도소를 무대로 펼쳐지는 생존 드라마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리즌 브레이크' 보다 50배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고 할까요.


P.S. 결론은 심지어 교도소 안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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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타하 라힘. 영화 속과는 달리 상당히 인상 좋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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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신작인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 1,2회가 지난 주말 방송됐습니다. 격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더군요. 결코 적지 않은 인물들을 소개하느라 약간 나열식이 되긴 했지만 지난 수십년간 김 작가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예전의 드라마와 새로운 드라마를 비교하는 게 짭짤한 재미를 줬을 듯 합니다. 하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아직 태섭(송창의)의 여자친구 채영 역을 맡은 유민은 예고편에서만 얼굴을 내밀더군요.

물론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3대 대가족이 함께 사는 홈 드라마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난번 '엄마가 뿔났다'에서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엄마'에 맞춰졌던 초점이 이번엔 83세의 시아버지(최정훈)와 80세의 시어머니(김용림) 커플, 그리고 장남인 병태(김영철)-민재(김해숙) 부부의 장남인 태섭(송창의)의 예사롭지 않은 애정 문제 쪽으로 옮겨 갈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태섭과 채영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고, 태섭의 진짜 애인은 사진작가인 경수(이상우)라는 점이죠. 네. 이번엔 동성애 문제가 정조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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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그것도 트렌디풍의 드라마(곧 방송될 '개인의 취향'에서는 다소 코믹하게 동성애자 이야기를 등장시킬 전망입니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흉내를 내는 젊은이'일 뿐입니다)가 아닌 홈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몇 차례 특집극이나 베스트셀러 극장 식의 단막극에서 다뤄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온 가족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한 복판에서 동성애 문제가 조명된 적은 없었습니다. 세상이라는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면, 이번엔 동성애의 문제가 결코 자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정면으로 부각될 듯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이 놓인 환경도 결코 만만찮습니다. 34세의 아들이 결혼하지 않고, 딱히 사귀는 여자도 없다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태섭의 어머니인 민재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입니다. 워낙에 살짝 극성스러운 성격인데다 남들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까봐" 민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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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섭이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남자와 연인 관계라는 것이죠. 그 상대인 경수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뒤 스스로의 정체성 때문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상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태섭에게도 "더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가족에게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태섭이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밝히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우리 어머니도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전처 뿐이니 다시 새 여자 찾아 결혼하라고 한다"는 경수의 말은 한국 사회의 부모 세대들이 동성애자인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의 평균 선을 대변합니다. 주인공인 민재라고 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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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고편을 보면 태섭의 '명목적 연인'인 채영까지도 '뭐든 참아낼 수 있다'며 태섭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이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에 나오는 2남1녀 커플의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지만, 어쨌든 정통적인 홈 드라마의 틀 안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지 궁금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화제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할 선을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TV는 그런 현실을 애써 무시해 왔습니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젊은 층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소재가 이제 정면으로 다뤄진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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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사회적인 금기에 대한 도전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일찌기 코믹 터치의 드라마 '사랑합시다'에서도 겹사둔이라는 '민법상 합법'인 관행을 다뤘고, '엄마 아빠 좋아'나 '모래성' 같은 드라마는 황혼 이혼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중년의 위기를 짚었습니다. 논쟁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특기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불륜 문제,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엄마의 가출 등이 그렇습니다.

방송 출연 정지 상태였던 이승연, 학력 위조 파문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장미희,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설 기회가 없었던 홍석천을 기용해 '재활' 시킨 것도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사실 별 이유 없이' 방송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나는 쓴다'는 것이 일각으로부터는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손끝에서 해석되는 '동성애'는 어떤 색채를 띨까요? 지금껏 한국 안방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던 동성애라는 소재가(심지어 시트콤에서도 비유적인 의미나 공포의 대상으로나 여겨지던) 70을 맞은 노작가에 의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그동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열광했던 중/노년층 시청자들에게는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극중에서 송창의와 이상우의 키스신 정도라도 방송된다면... 파장은 정말 만만찮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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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결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섯 소실을 거느렸다가 80대의 나이에 본처에게로 돌아오겠다는 할아버지 커플, 30대의 나이에 각각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재혼한 아버지 커플의 얘깃거리나 비중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커플의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설킬지는 지금부터 지켜 볼 일입니다.)

P.S.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의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게 이 노장 작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인 모양입니다. 그분의 트위터에도 "에고 김연아는 진짜 물건이네요. 어찌 견뎠을까요 ㅎㅎ"라는 말이 쓰여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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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MBC TV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회 때문에 온통 난리 법석입니다. 흘낏 보니 '신세경 귀신설'까지 등장했군요. '하이킥'의 126회 종영을 다룬 기사마다 댓글에는 '최악의 엔딩'이라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분노의 전제는 일단 두 사람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김병욱 감독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죠. 하지만 김병욱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처리에 대한 해석으로 "아무 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너무 늦은 사랑의 자각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만 얘기했습니다.

누가 봐도 둘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왜 이런 말이 필요할까요? 거기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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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앞뒤 생략하고, 병원에서 세경은 아슬아슬하게 지훈을 만나고, 지훈은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합니다. 둘이 탄 차가 빗속에 길을 달리고, "서울 올때 맨 처음 만났던 사람이 아저씨였는데 떠날때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아저씨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라디오로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는 뉴스 음향이 들려오고, '3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준혁과 정음이 등장합니다. 정음은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고 준혁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이맘때였지...?'라며 정음이 이런 회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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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지훈씨가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했더라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더라면..."

후회 가득한 말들이지만 여기서 정음은 '둘이 죽지는 않았을텐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상복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죽었다는 표현은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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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장면, '2010년 3월19일 오전 11시15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다시 빗길을 달리는 지훈의 차가 등장합니다. 이 차 안에서 세경은 그동안 지훈에게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차가 달리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지훈이 눈물을 흘리며 세경을 바라보고, 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다음 화면은 정지합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는 여기서 두 사람이 죽음을 맞았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네. 지금 500원짜리 제휴 동영상을 왔다갔다 다시 보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소식을 알린 라디오 뉴스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11시30분 공항로에서 빗길에 차들이 미끄러지면서 8중 추돌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공항로'를 검색해 봅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양화대교(제2한강교) 남단에서 김포공항 정문까지 직접 연결되는 도로. 총연장 7.1km, 폭 40m이다. 강서구 등촌동·가양동·내발산동·공항동 등의 지역을 통과한다. 특히,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도로일 뿐 아니라 서울-강화 간 국도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공항로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인천공항고속도로'입니다. 일반인들이야 틀릴 수 있지만 뉴스에서 둘을 착각할 리는 없습니다.

타히티로 가는 비행기를 김포공항에서 탈 수도 없죠. 물론 지훈과 세경이 묘하게 코스를 선택해 공항로를 거쳐 김포공항 입구에서 인천공항 가는 길을 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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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과 세경이 탄 차가 잡힌 시점이 11시15분. 준혁과 세경의 대화(공항에 나오지 말라는)에서 알 수 있는 비행기 시간은 12시입니다. 사고 시간인 11시30분에 공항로라는 건 비행기 탑승을 기대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너무 늦죠. 그래서 11시30분에 만약 사고가 났다면, 사고 지점은 공항로가 아니라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공항에 거의 도착한 어느 지점이어야 하는 겁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라도 물론 정상적인 탑승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이긴 합니다. 하지만 11시15분에 인천공항고속도로 위에 있다면 그건 아슬아슬하게라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이죠. 더구나 미리 도착한 아빠가 짐가방을 부쳐 놓은 상태라면 탑승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교통사고 뉴스'는 시청자의 주의를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교묘한 술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라디오 뉴스와 무관하게 공항고속도로에서는 다른 사고가 났을 수도 있죠. 정음의 말만으론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문제의 사고로 아빠와 신애가 죽었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타히티에 갈 이유가 없어진 세경과 지훈이 맺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빠와 신애는 그대로 타히티로 떠나게 하고, 그대로 지훈과 세경은 차를 돌려 둘만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음의 회한에 가득찬 말은 "그때 그렇게 둘이 (따로)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둘이 맺어지는 일은 없었을텐데..."라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죠.

네. 물론 상당 부분 억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혹시 둘이 죽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한 가지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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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시청자들은 '언니와 잘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지훈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세경, 반지를 싸들고 대전으로 내려가려다 세경의 고백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는 지훈을 싸잡아 '재수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얼마나 연약하고 걷잡을 수 없는 것인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 시트콤 마지막회의 핵심은 세경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길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눈빛은 그냥 세경을 향한 측은함일까요, 아니면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이 아이였구나'하는 깨달음의 표현일까요. 정음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 표현 외에도 지훈이 세경을 남다르게 생각했다는 건 지속적인 시청자들이면 다 알고 있는 얘기일 겁니다. 다만 왜 세경을 소개시켜주지 않느냐는 동료의 말에 '얘는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불쌍한 애야'라고 말하듯, 스스로에게도 '얘를 좋아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라고 다짐하면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물론 이런 복잡다단한, 디테일 가득한 사람의 마음 속에 대한 묘사를 거부하고 '그런 게 어딨냐'고 떼를 쓰듯 '이지훈은 정말 개자식이었다' '세경이는 뭐냐'고 외치는 시청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눈에는 전날 준혁과 입맞춤을 하고 다음날 지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제 이 나라를 떠나 다시는 못 볼 거란 사람에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맘에 담아뒀던 말들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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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어도 그 뒤로 행복했는지, 저는 아무 것도 모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세경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내 인생에도 이렇게 불이 환하게 밝혀진 날이 올까요?'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런 세경이, 마지막 몇분간이라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그렇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엔딩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가슴아픈 결말도 충분히 받아들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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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작진과 출연진,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를 다시 볼 수 없다니, 대체 다음 주부턴 무슨 낙으로 살란 말인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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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초반 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합니다. 드라마 속 오지호나 장혁의 인기 못지 않게 원손 석견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진우 어린이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더군요.

이 원손 아기씨는 아시다시피 비명에 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석견(石堅)입니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데 이어 어머니 강빈은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아 세 아들은 모두 고아가 된 상태에서 1647년, 제주로 귀양을 떠납니다. 당시 맏이 석철(石鐵)이 12세, 둘째 석린(石麟)이 8세, 그리고 막내 석견은 불과 4세입니다. 하지만 어린 이들 형제에게 유배 생활이 어찌나 고된 것이었는지 불과 1년만에 위로 두 형들은 죽고 석견 혼자 살아남습니다. 그 밖에 두 딸이 있었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없습니다.

'추노'는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내 석견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의정 이경식(아마도 김자점을 형상화한 인물로 보이는)에 의해 송태하, 대길 등과 함께 죽음을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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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석견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 대신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 숙부 봉림대군의 결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죠. 핵심적인 기록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1647년의 기록입니다.

인조 48권, 25년(1647 정해 / 청 순치(順治) 4년) 5월 13일(계축) 1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에 유배시키다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인 이석철(李石鐵)·이석린(李石麟)·이석견(李石堅)을 제주에 유배하였다. 처음에 의금부가 석철은 제주에, 석린은 정의(旌義)에, 석견은 대정(大靜)에 유배하자고 청하였다. 당시 석철은 12세, 석린은 8세, 석견은 4세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한 곳에 정배하여 서로 의지해서 살도록 하되, 내관(內官)과 별장(別將) 등을 교대로 지정해 보내 외부인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세 고을에 정배(定配)된 사대부는 모두 다른 섬으로 옮겨 정배하라.” 하였다. 이에 홍무적은 남해현(南海縣)으로, 신득연(申得淵)은 진도군(珍島郡)으로 이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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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중에 석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효종). 효종은 즉위 즉시 정권을 농단하고 있던 김자점의 무리를 처단하고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런 효종도 즉위 10년이나 지나서야 석견을 유배 간 죄인에서 왕자의 자리로 복권시킬 수 있었습니다. 1659년의 기사입니다.

효종 21권, 10년(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4일(갑자) 2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아들과 딸들을 군과 군주에 봉하라고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였다.
“소현 세자의 1남 이백(李栢)은 경선군(慶善君)을 증(贈)하고, 3남 이회(李檜)는 경안군(慶安君)으로 하라. 그리고 1녀에게는 경숙 군주(慶淑郡主)를 증(贈)하고, 2녀는 경녕 군주(慶寧郡主)로 하고, 3녀는 경순 군주(慶順郡主)로 하라.”

이회가 바로 석견입니다. 지난주 '추노'에서 송태하가 짝귀에게 석견의 이름을 '회'라고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요.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소현세자의 아들에 대한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남 대신 차남인 효종이 왕위에 있는데 장남의 아들 - 다시 말해 인조의 종손 - 이 살아 있다는 것은 후계구도를 복잡하게 하고, 효종의 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기저기에 소현세자의 복권을 명분으로 하는 반란의 위협이 있고, 그 위협이 존재하는 한 석견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뒷날 효종이 죽고 현종때 벌어진 예송논쟁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효종이 조카를 역적에서 다시 왕손으로 복권시킨 것은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효종은 역모에 휘말린 배다른 동생들을 용서했고, 여기에 하나 보태 석견까지 복권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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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석견, 즉 경안군은 1643년에 태어나 4세때인 1647년 귀양을 갔고, 12년간 귀양살이를 한 뒤 만 16세 때인 1659년에야 왕자로 복권됩니다. 장가도 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리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현종 11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9월 18일(신축) 4번째기사
경안군 이회의 졸기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가 졸(卒)하였다. 경안군은 곧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이다. 소현의 자녀(子女)가 모두 죽었고 유독 경안군만이 살아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병이 나서 실려 돌아와 죽었다. 상이 매우 애도하여 정원에 하교하기를,
“경안군의 상사(喪事)는 뜻밖에 나온 것이어서 내가 매우 비통하게 여기고 있다. 아, 선조(先朝) 때부터 돌보아 기르고 어루만져 보살펴 왔으니 진실로 후세 자손들은 의당 이를 본받아야 한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1643년에 태어나 1665년에 사망. 고작 만 22세에 숨을 거두고 마는 것입니다. 안된 일이긴 하지만 효종 시대의 중신들은 경안군의 죽음을 맞아 겨우 한숨을 내쉬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조정에서 경안군이라는 존재만큼 효종의 왕위를 불안하게 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경안군은 죽었지만 임창군 형제를 후사로 남깁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적통'이라는 핏줄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숙종 8년(1679년), 서울 장안에 흉서가 나붙고, 그 흉서에는 '경안군의 아들 임창군이야말로 왕이 되어야 할 성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행히 숙종이 "반도들이 마음대로 임창군을 거론했을 뿐, 임창군이 연루된 증거가 없다"고 막아 임창군은 반란의 수괴로 지목되는 비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창군의 아들 밀풍군은 영조 초 이인좌의 난 때 반란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밀풍군이 직접 난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왕권에 도전한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고, 결국 밀풍군은 자결합니다. 이것이 소현세자의 후손들, 즉 왕이 되지 못한 왕손의 운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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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효종의 결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종대왕 행장에 보면 왕이 대신들에게 경안군의 복권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석견에게)작호(爵號)를 써서 내리도록 하겠다. 오늘 첨의(僉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내가 소현(昭顯)과 동시에 북행(北行)하여 험난한 이역 땅에서 어렵고 위험한 지경을 모두 겪었는데 늘 좌우에서 이끌어 주면서 주야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쪽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인사(人事)가 갑자기 덧없이 되어버리고 불량한 사람이 이어 변을 야기시켰다.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을 경솔히 고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항상 아프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영령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어찌 한스러움이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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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리하면 인조가 죽고 왕이 바뀌기 전까지 석견은 귀양살이 도중이었지만 생명은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추노'의 상황으로 보면 석견이 살아남는 것은 송태하와 대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인 셈이죠.

물론 드라마의 장중한 마무리를 생각해보나, 이미 사람 많이 죽이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추노' 제작진을 보나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는 걸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듯 합니다. 이제 두 남자 주인공 가운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혹은 둘 다 죽을지가 궁금해질 상황인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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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Up in the air)'를 만든 제이슨 라이트먼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만든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라고 해 봐야 그런데 어쨌다는 거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땡큐 포 스모킹'이나 '주노'를 보신 분이라면 '아' 할만한 감독입니다. 미국의 젊은 감독들 가운데서는 제가 가장 기대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조지 클루니와 함께 또 한번 희한한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 '인 디 에어'는 지난번 골든 글로브에서 각색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에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한 부문도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기대는 부풀었지만 영화는 쉽게 볼 수 없었고, 마침내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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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해고 통보자라는 희한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를 대신해 '당신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해 내는 직업입니다. 안 그래도 발에 불이 나게 돌아다니던 그는 미국 국내의 온갖 기업들이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으로 정리 해고에 들어간 이후 1년에 300일 이상을 여행하며 보낼 정도로 바빠집니다.

심지어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내에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 하나 이상의 짐은 필요 없다'는 내용으로 대중 강연을 할 정도의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유목민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친구나 연인 같은 기본적인 인간관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1년에 한달도 머물지 않는 '집'은 그림을 떼넨 미술관 같은 분위기일 뿐입니다. 냉장고 안에도 있는 건 미니어처 술병 뿐입니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항공사 마일리지 모으기입니다.

그런 그에게 두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그냥 그런 일시적인 상대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알렉스(베라 파미가)와의 관계가 점점 깊어 가는 것,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회사에서 갓 사회에 진출한 명문대 출신의 여사원 나탈리(애나 켄드릭)의 아이디어대로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상 채팅으로 해고를 전달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는 것입니다.두 방향에서 자신이 안정해 있던 세계에 위협을 받게 된 라이언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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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주인공 라이언 빙엄은 말하자면 '인생의 비밀'을 일찌기 깨닫고 그걸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을 쓸데없이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수많은 변수(혹은 짐)들을 포기하지 않고 갖고 가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변수(혹은 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생을 혼란시키는 것은 바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빙엄은 과감하게 '관심 안 주고 안 받기'가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려 놓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감정의 소모야말로 시간낭비라는 걸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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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그리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그어 놓은 경계선 내로 사람이 들어올 때 저절로 머리 속에선 비상 경보가 울립니다. 타고난 매력 덕분에 중년의 나이에도 잠자리 파트너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절대로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나 희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잘라 버리는 데' 선수인 사람이죠.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나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과정은 어쩐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스크루지처럼 살아가고 있는(물론 모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일리지일 뿐이지만) 클루니에게 두 여자는 '당신의 삶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묻고, 결국 클루니는 장고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 리얼하고 그럴싸해서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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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의 장편 영화는 이제 세편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영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달변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땡큐 포 스모킹'의 주인공 닉 네일러는 각계로부터의 비난 여론에 맞서 담배 회사를 옹호하는 대변인 닉 네일러입니다. 말을 못 할 수가 없는 사람이죠. '주노'의 주인공 주노 역시 나이답지 않은 엉뚱한 논리로 어른들을 꼼짝못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엄 역시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인 만큼 말재주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라이트먼의 영화는 한결같이 아주 입심 좋고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와 하룻밤 술자리에서 듣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연상시킵니다. 때로는 이야기꾼 특유의 과장도 살짝 느껴지지만, 아무튼 잠시라도 다른 데 주의를 돌릴 수 없게 하는 세심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이야기 솜씨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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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라이트먼의 재능은 캐스팅에서 정말 무릎을 치게 합니다. 반생을 '캐주얼하게' 살아온, 매력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중년 남자 역을 조지 클루니보다 잘 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건 물론 시작에 불과합니다(각본가를 겸한 라이트먼도 '클루니가 안된다면 대본을 대폭 고쳐야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남자가 내 인생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 역의 베라 파미가, 그리고 얼굴에 '내가 사회 경험은 없을 지 모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사는 건지는 책으로 다 배웠어'라고 쓰여 있는 겉똑똑이 사회 초년병 역할의 애나 켄드릭은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트와일라잇'에서 여주인공의 진짜 인간 친구 4인방 중 하나일 때 애나 켄드릭을 본 사람이라면 놀라운 변신 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두 여배우가 모두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배우들 개인의 재능보다 라이트먼의 혜안이 빛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다만 베라 파미가가 73년생이라는 건 좀 놀랍습니다.^^ 한 69, 70 정도면 적당할듯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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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영화에 대한 얘기가 좀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들이라면 사전지식이고 이해고 아무 필요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냥 보는 즉시 '이건 내 얘기' 이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얘기'일 수도 있고, 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얘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가슴에 콕콕 박히는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몇몇 장면에선 77년생인 라이트먼 감독이 어떻게 저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올랐습니다. 그 부분에선 아마도 노련한 조지 클루니의 도움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일종의 교훈담이라고 친다면, 젊은이들도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과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의 10년 후나 20년 후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어떤 중년, 어떤 장년이 나의 모습일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나이에 꽤나 유용한 영화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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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빠른 분들이라면 아마 영화 중간 쯤에서 주인공 라이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굳이 이 영화의 장르를 꼽는다면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지난 겨울 이후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게 될 많은 다른 분들 가운데는 눈물 흘리는 분도 있을 듯 합니다. 특히 나이만 먹었지 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 혹은 나이가 어리고 별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생 뭐 있냐'며 세상 다 산 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클루니의 마지막 표정이 오래 오래 기억날 듯 합니다.

뭐 취향 탓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감히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P.S 아메리칸 에어를 비롯해 어느 항공사에도 1천만 마일을 기념하는 카드는 없다고 합니다. 단, 알렉스가 감동한 콘시어지 키 카드라는 건 실제로 존재한다는군요. 기업체의 정리 해고를 도와주는 사람은 실제로 '전직 상담 서비스(Career Transition Counsel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성업중이라고 하는군요.

P.S.2. 어쩐지 아버지 이반 라이트먼의 라이벌이랄 수 있는 해롤드 레미스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니콜라스 케이지의 '패밀리 맨'에 이어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좀 더 공감하는 영화의 전설' 반열에 들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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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는 참 희한한 영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송강호의 영화'였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재발견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두 말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고, 개인적으로 '의형제'라는 영화를 뒷날 기억할 때 어느 쪽이 더 의미가 더 각별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후자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송강호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가운데 '송강호의 영화'가 아닌 영화가 몇 편이나 있겠습니까?
 
그리 긴 활동기간을 보낸 배우는 아니지만 강동원만큼 '재발견'이 많이 된 배우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팬들은 강동원의 작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재발견'을 얘기했지만 냉정한 눈으로 볼 때에는 아직 '최강의 하드웨어를 가진 강동원'이 보일 뿐 '연기자 강동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형제'에서는 마침내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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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프로페셔널 킬러 그림자(전국환)을 마중나간 고정간첩 지원(강동원). 하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그를 바싹 쫓고 있는 국정원 팀장 한규(송강호)가 있습니다. 지원의 임무는 그림자의 암살 임무를 돕는 것. 한규는 그리 늦지 않게 현장을 덮치지만 그림자와 지원을 잡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결국 지원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정보 유출의 혐의를 쓴 채 버림받고, 한규 또한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퇴직당합니다.

3년 뒤, 한규는 결혼했다가 도망친 베트남 여자들을 남편에게 다시 데려다주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하다가 우연히 지원을 발견합니다. 서로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모를 것이라고 확신한 채 은근히 접근하는 두 사람. 속내를 감춘 채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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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간첩과 국정원 직원 이야기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습니다. 오랜 경험상, 정보가 많아서 도움이 된 기억은 한번도 없었지만, 어쨌든 영화를 본 뒤의 심정은 매우 흐뭇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국정원 직원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쉬리'와 비교하곤 하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이 영화와 비교해야 할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입니다. 생각해보면 'JSA'가 개봉한지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의형제'는 그 10년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한번 더 유연해 질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JSA'와 '의형제'는 모두 1953년 휴전 이후 거의 60년째 남북간의 준 전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 양쪽의 사람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훈련된 남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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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JSA'의 이야기는 개인에게서 시작해 점점 줌 아웃되어 그들을 둘러싼 온 세상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의형제'는 다르죠. 역시 개인에게서 시작해 전체 틀을 보여주는 듯 하다가 다시 개인으로 환원되어 끝납니다. 다시 말해 'JSA'의 결말은 '그들을 둘러싼 전체 환경'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것이었던 반면, '의형제'는 거기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습니다. '까짓 세상이야 아무렴 어때'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이건 어찌 보면 10년 사이 생긴 여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뭔가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 영화라고나 할까요. (물론 '간첩 리철진' 이후 실제 상황에 대한 별 이해 없이 남북관계를 그저 코미디 소재로 사용한 수많은 영화들은 제외하고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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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화의 초점은 서로 전혀 믿지 못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처지를 낫게 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두 남자가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JSA'에서는 네 인물이 모두 '자의와는 관계 없이 군대에 끌려와 있는' 상황이란 면에서 매우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의형제'에서 두 사람이 놓인 환경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애당초 두 사람에겐 체제 따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한규에게 간첩 잡이는 일반 직장인들이 내는 '실적'과 마찬가지고, 지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든, 아내가 내려오든 가족과 다시 합치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JSA'에서 수혁이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 '함께 (남으로) 내려가자'고 설득하는 것이고, 거기에 오중사(송강호)가 '야, 내 꿈은 공화국이 이 쪼꼬파이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이야'라고 대답하는 상황은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의형제'의 세계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게 중요하지 체제는 무슨 개뿔'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JSA'에서 어쩌면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먹물'이 쭉 빠진 셈이고, 관객들에게도 그걸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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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볼때마다 훌륭한 건 당연하지만 그건 매번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찬탄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건 강동원의 발전입니다.

바로 직전의 '전우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강동원의 연기도 뭐 나쁘달 순 없었지만 어쨌든 그건 누가 봐도 '전우치 분장을 한 강동원'이었지 전우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밖에도 '우행시'의 강동원, '형사'의 강동원,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전까지 가장 연기력이라는 면에서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차라리 '그녀를 믿지 마세요'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강동원이 송지원으로 겹쳐지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그 인간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혼란(어쩌면 '대체 이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하는 혼란일 수도...^^)이 송지원의 표정을 통해 생동감있게 전달됐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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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에게 가장 큰 수확은 아마도 지난번 '영화는 영화다'보다 다섯배나 되는 제작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감독임을 확인시켰다는 것일 듯 합니다. 소형 영화일 때에는 펄펄 날다가도 막상 돈뭉치를 보면 뒷걸음질 치는 감독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핵심적인 두 인물에게 집중하는 맛은 좀 떨어졌지만 어쨌든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완결성이나 규모 큰 대중 신에서의 통제력은 매우 훌륭합니다.

과연 장훈 감독의 다음 영화도 '두 남자'의 이야기일지, '여자가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언제쯤 재능을 보여줄 지, 그리고 세번째 극장용 영화에도 배우 고창석이 등장할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튼 기대를 갖고 기다릴 수 있는 감독이 늘어났다는 점이 매우 기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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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침에 일제히 엉뚱한 기사들이 일제히 포탈 사이트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유승호-고아성 키스신'이 KBS 2TV '공부의 신'에 나왔다는 거죠. '어라, 키스신은 안 나왔는데...'라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많은 분들이 키스신으로 생각하신 듯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장면을 키스신으로 보신 건 착각입니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백현(유승호)과 풀잎(고아성)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뭔가 서로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서로에 대한 느낌을 살짝 나누는 것은 맞지만, 그 장면은 그냥 머리를 털어 주는 장면이었던 겁니다.

물론 현정(지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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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부의 신'의 설정은 처음부터 이런 갈등을 예고하고 있긴 했습니다. 백현과 풀잎은 어린시절부터 잘 알던 친구 사이, 그리고 현재 백현과 현정은 사귀는 사이로 돼 있습니다. 물론 애정의 강도는 현정 쪽에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강했죠.

드라마가 시작한 뒤로 늘 현정은 백현을 '서방, 서바앙~~'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니지만 백현 쪽에서 그런 애정표현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백현을 좀 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하는 듯한 풀잎과 뭔가 뜻이 담긴 눈빛을 주고 받곤 했죠.

문제의 장면은 본래 대본상으로는 볼에 뽀뽀를 살짝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장에서 유승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아직 그런 애정표현을 TV에서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이 너무 어린 나이인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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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일각에서도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형들의 관심이 유난히 뜨거운 드라마인데, 갑작스레 멜로드라마로 바뀌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결국 그냥 머리의 먼지를 털어 주는 정도로 수정된 것입니다. 위 사진들처럼 살짝 분위기만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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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진짜 키스가 아니라고 해도, 현정의 눈에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란 점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겠죠. 사실 요즘의 진짜 고3 들이라면 키스신 정도에 긴장하거나, 실생활에서도 키스의 경험에 그리 민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35% 정도가 이성 친구와의 포옹 정도를, 20%는 키스를 경험해 봤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316081106818&p=segye)

물론 1/5에 불과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준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방송에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인 것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공부의 신'처럼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려는 마음을 심어 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작품에서 이런 비 교육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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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 신'은 당초 일각에서 제기됐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날 에피소드나 다양한 교육 현장의 문제를 조명하며 일본판 '드래곤 자쿠라'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11부인 일본 드라마에 비해 16부인 한국 드라마가 내용이 더 풍부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 부분은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의 교육 현장에 대한 정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P.S. 어쨌든 진짜 키스하는 장면이 아니었으니 '아악! 안돼!' 라고 외쳤던 많은 분들, 이제 진정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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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부의 신'은 연기자 김수로에게도 큰 획을 긋는 작품이 될 듯 합니다. 이미 방송 초기부터 '강석호 쌤' 혹은 그냥 '강석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때문이죠.

만화 원작이든, 일본판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든, 한국 드라마 '공부의 신'이든 어느 작품이거나 주인공은 다소 반골 기질이 강한 변호사 캐릭터입니다. 변호사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문제아 학교의 특급 문제아들을 지도해 최고 명문대에 합격시키는 것으로 아이들의 운명은 물론 자신의 운명까지 대역전을 노리는 인물이죠. 그리고 김수로는 '너희같이 멍청한 놈들일 수록 천하대에 가서 인생을 바꾸라'고 소리치는 강석호 역을 통해 대한민국 학부형들의 선호도 1위 연예인으로 떠오른 동시에 각계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럼 김수로가 이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어떤 선택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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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본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에서 이 역할을 누가 연기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최고 연기자 중 하나인 아베 히로시가 등장했습니다.

아베 히로시는 일본 배우로는 드문 장신에다 호남형 외모와는 달리 엉뚱한 예측불허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의 소유자입니다. '트릭'이나 '히어로'에선 무표정과 망가짐을 오가는 절묘한 코믹 연기를 보여준 반면 최근 화제작 '천지인'에서는 또 진지한 표정으로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무장 우에스기 겐신 역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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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히로시를 아는 한국 시청자들에겐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차승원이죠. 차승원을 '한국의 아베 히로시'라고 하건, 아베를 '일본의 차승원'이라고 하건 거의 비슷한 느낌입니다.

훤칠한 키와 독특한 유머 감각이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시청 직원 김선아가 시장이 되는 드라마 '시티 홀'에서 차승원의 캐릭터와, 초등학교 교사 기무라 타쿠야가 총리가 되는 일본 드라마 '체인지'에서의 아베 히로시의 캐릭터가 얼마나 비슷한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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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승원이 강석호 역을 맡았어도 훌륭한 한편의 볼거리가 나왔겠지만, 상당히 다른 캐릭터가 됐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드래곤 자쿠라'의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대로, 아이들에 대한 열정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음모를 꾸미는 신비로운 인물의 이미지가 강조되지 않았을까요.

반면 현재의 김수로가 연기하는 강석호는 훨씬 '빈 몸으로 시작해 몸으로 부딪히는' 사나이의 이미지가 훨씬 강조돼 있습니다. 그리고 김수로가 연기하는 쪽이 훨씬 '교사적'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결과일 듯 합니다. 어쩐지 영화 '울학교 ET'에서의 교사 느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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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과 카리스마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죠. 만약 '강마에' 김명민이 강석호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이것 역시 나무랄 데 없는 한편의 드라마가 됐겠지만,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카리스마틱한 강석호 변호사가 등장하고, 이런 인물이 왜 학교를 한꺼번에 손아귀에 넣지 못하는 지 의문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유승호나 이현우 같은 '공신돌'들도 오히려 반항하는게 더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현재의 김수로는 아이들과 적절한 선에서 대립과 억압의 상황을 잇달아 연출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물론 김명민이 강석호 역을 맡아서 똑같이 강마에 연기를 할 리는 만무하지만, 만약 '강마에=강석호'라면 어떨까 하는 예상을 전제로 하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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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버럭 범수'로 불렸던 이범수도 이 역할의 적임자로 꼽힐 만 합니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선임자 역할을 비롯해 '킹콩을 들다'에서 헌신적으로 여중생들을 이끄는 역도 코치, 그리고 '온에어'에서는 역시 헌신적으로 자기가 맡은 배우를 이끄는 매니저 장기준 역으로 줄곧 '신뢰감 가는 남자' 역할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해 왔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반면 뭔가 너무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역할을 잇달아 맡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커리어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이범수가 강석호 역을 맡았다면 뭔가 매회 두어번씩 아이들과 멱살잡이를 하는, 박력 넘치는 '강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래저래 독특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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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저런 다른 선택들과 비교해 봐도 김수로의 강석호 연기는 발군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역할로 등장하는 김수로를 보고 있으면, 김수로가 아니었더라면 '공부의 신'의 초반 붐이 이렇게 확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김수로의 열연 덕분에, 냉철한 듯 하면서도 인간적인 강석호 선생님은 2010년의 기억할만한 드라마 캐릭터에 꼽힐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방송 시기가 연초라는 점 때문에 연말 연기상의 논공행상 때에는 상당히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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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유소습격사건2'가 나오면서 오리지널 '주유소습격사건'이 새삼 생각납니다. 전편이 만들어 진 것이 벌써 11년 전. 1999년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사실 이성재-강성진-유오성은 그때 이미 꽤 이름 있는 배우들이었습니다. 물론 유오성도 '친구'이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트'의 태수 역을 통해 그해의 신인 후보로도 거론되는 좋은 연기력을 보였고(그 해에는 '비트'의 임창정과 '초록물고기'의 송강호도 있어 주의가 분산됐습니다), 이미 주연급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유지태는 아직 배우와 모델 사이에 있는 파릇파릇한 신인이었죠. 사실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살짝 어설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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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나오는 유지태를 보면서 오늘날의 스타 유지태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별 신통치 않은 역으로 나왔던 배우들이 오늘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경우가 '김혜수의 남자'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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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영화를 본 뒤에도 유해진의 얼굴과 인상은 강렬하게 남았지만, 컬컬한 탁성과 다소 거친 연기 때문에 '배우가 아니라 진짜 동네 양아치를 데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진짜 배우 출신이라곤 생각지 못했죠. 하지만 그때도 연극 마니아들은 유해진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양아치를 데려왔나' 싶었던 연기가 진짜 고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준 연기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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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뿐만 아니라 이 분도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왔을 때는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기억이 분명치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바로 이원종. 그 전에도 출연작은 많았지만

이원종과 유해진은 3년 뒤, 역시 김상진 감독의 히트작인 '신라의 달밤'을 통해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자리합니다. 당시 이원종은 보스 역으로, 유해진은 배신의 귀재인 파마머리 오른팔 역으로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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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해진의 휘하 양아치 중에는 지금은 낯익은 얼굴 이종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혼자 카메라를 차지하는 신이 없을 정도로 단역이었죠.



지금까지 거론된 분들은 이 영화 이후에도 꽤 숙성기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다음 분들은 이 영화 덕분에 바로 수직 상승 효과를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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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기는 철가방' 역의 김수로. 이 영화 이후 '반칙왕'에서 최고 레슬러 유비호 역을 비롯해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은 '공부의 신'에서 타협 없는 강석호 변호사 역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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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리 양아치 역의 정은찬(당시 이름은 정소영)도 이 영화를 통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다가 몇년 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뭉치 역을 통해 상당한 인기를 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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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은 뭐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시 '남자의 향기'로 데뷔한 지 1년 된 파릇파릇한 새싹 이요원은 이 영화에서 야자수머리를 팔랑이는 10대 알바 역을 통해 바로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손꼽히는 블루칩이 됐고, 순탄하게 톱스타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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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폭주 자동차를 모는, 손만 나오는 남자가 차승원이란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어쨌든 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톱스타들이 배출된 것도 참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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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개봉한 '주유소습격사건 2'에서는 과연 어떤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될까요.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빠뜨린 사람이 있으면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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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이 인기를 끌면서 '공부의 신'의 원작 만화인 '꼴찌 동경대 가다'와 원작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자쿠라'에도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드래곤 자쿠라'는 일본에서 비운의 드라마로 통합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일본에선 그리 성공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별반 학생들로 출연한 배우들은 2,3년 사이 모두 톱클래스로 성장했죠.

만화 원작에선 2명뿐이었던 특별반 학생들이 드라마에선 6명으로 늘었고, 다시 한국에서는 5명으로 축소되는 등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아무래도 '공부의 신'의 원작은 만화 '꼴찌 동경대 가다'라기보다는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그만치 만화 원작 보다는 드라마로부터 받은 영향이 더 커 보입니다.

그럼 한국판의 다섯 특별반 학생과 일본판의 여섯 학생들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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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백현 vs 야지마 유스케 (유승호 vs '야마삐' 야마시타 토모히사)

잘생긴 반항아이고, 구체적으로 학교의 보스라거나 이런 지위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 황백현은 별 특기는 갖고 있지 않지만 야지마 유스케는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었습니다. '드래곤 자쿠라'에서는 사쿠라기 변호사가 야지마를 끌어들이는 데 이 트럼펫이 꽤 큰 역할을 하죠.

황백현의 부모는 어려서 죽고 백현은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지만 야지마는 아버지가 빚 독촉에 몰려 가출하는 바람에 졸지에 어머니와 두 식구만 남아 빚을 짊어질 상황이 됩니다. 만화 원작에서 명문가의 버림받은 막내인 야지마와는 전혀 다릅니다. 대신 전교 여학생들이 달려들어 고백을 하고자 한다는 새로운 특징이 생깁니다.

유승호는 다소 박력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점 외에는 다혈질이었다, 차분했다 하는 약간 이중적인 백현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야지마 역을 맡았던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김현중과 쌍둥이같은 잘 생긴 얼굴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솔직히 연기력이 뛰어나다고(특히 이 시기에는) 보기는 어렵습니다. 야지마 역을 연기하면서 늘 똑같은 패턴으로 흥분했다가 가라앉는 바람에 '드래곤 자쿠라'가 일본에서 그리 큰 붐을 조성하지 못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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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풀잎 vs 미즈노 나오미 (고아성 vs 나가사와 마사미)

만화 원작과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이 여주인공 캐릭터는 모두 술집을 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너무나도 앳되게 보이는 고아성과는 달리 '드래곤 자쿠라'의 미즈노 역을 맡은 나가사와 마사미는 꽤 성숙해 보입니다.

'드래곤...'에서 미즈노는 나중에 과로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술집을 운영하는 억척스러운 면까지 보이지만, 이런 역할은 아무래도 고아성에겐 무리일 듯. 그리고 이 미즈노는 남자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는 고사카 요시노를 늘 긴장시키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 이후 가장 큰 성취를 보인 배우라면 나가사와 마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윤은혜와 닮은꼴인 건강미인 이미지를 살려 아다치 미츠루 원작인 '터치'와 '러프'에서 잇달아 주인공을 맡으며 또래 중의 1인자로 떠올랐습니다. 최근엔 '천지인'에서도 닌자 풍의 미녀 스파이 역으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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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찬두  vs 오가타 히데키 (이현우 vs 고이케 텟페이)

사실 '드래곤...'에서 오가타는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캐릭터입니다. 오가타까지 캐릭터를 살려 주기에는 일본 드라마의 기본인 11부작은 너무 짧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16부작이 기본이기 때문에 캐릭터별로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공부의 신'의  찬두에게는 부잣집 막내라는 캐릭터가 주어지고, 풀잎과의 살짝 러브라인도 그려집니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만화 원작, 그냥 조연 느낌이던 '드래곤...'과는 천양지차.

오가타 역을 맡은 고이케 텟페이는 '의룡' 시리즈에 순진한(?) 인턴 이주인 역으로 인기를 모았고 '고쿠센' 시리즈에도 얼굴을 비쳤습니다. 반면 이현우는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 역에 이어 꽤 비중있는 역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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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현정 vs 고사카 요시노, 고바야시 마키 (지연 vs 아라가키 유이, 사에코)
[사진은 사에코 - 아라가키 유이 - 지연 순]

양쪽 모두 남자주인공과 여자친구로 대략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남자주인공은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일 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고사카는 나중에 폭주족과 어울리기도 하는 다소 터프한 캐릭터지만 '공부의 신'의 나현정은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드래곤...'의 특별반에는 '최초의 동경대 출신 아이들이 되겠다'는 고바야시 마키 캐릭터가 있지만 '공부의 신'에서는 이 캐릭터가 아예 사라졌죠. 나현정이 정작 걸 그룹 멤버인 지연(티아라)에 의해 연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언제고 '연예인이 되고 싶어' 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사카 역의 아라가키 유이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신예죠.

어쨌든 이 경우에도 11부작과 16부작의 차이 때문에 황백현을 사이에 둔 나현정 - 길풀잎의 삼각관계는 상당히 강조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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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봉구 vs 오쿠노 이치로 (이찬호 vs 나카오 아키요시)
[나카오 아키요시: 사진 왼쪽]

가장 공통점이 없는 캐릭터. '드래곤 자쿠라'에서 오쿠노는 쌍둥이 형제의 형입니다. 동생은 진학 명문고에 다니고 있는 수재로 집안의 모든 기대는 동생에게 몰려 있습니다. 오쿠노도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고, 착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우리 집안에서 동경대에 갈만한 수재는 동생 하나로 족하다"며 현실을 그냥 웃어 넘기는 학생이죠. 그러다 막차로 특별반에 합류하게 됩니다.

비쩍 마르고 기운없어 보이는 오쿠노에 비해 오봉구는 외형부터 완전히 다른 캐릭터죠. 고깃집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란데다 부모 역시 '너는 공부까지 잘 할 필요 없으니 쉬엄 쉬엄 하라'고 전혀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어쨌든 '공부에 관심은 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정말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는 학생이 어느날 계기를 맞아 정말 공부에 올인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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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까지 다 끝내 버릴까 했는데 너무 길어지는건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교사 편에선 따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드래곤 자쿠라/꼴찌 동경대 가다'는 모두 현실에 대한 풍자를 배경으로 깔고 있습니다. '동경대? 동경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해? 미안하지만 동경대 들어가는 편법도 얼마든지 있어'라는 식의 생각이죠. 아마 이런 식의 태도가 결정적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악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쨌든' 이 드라마는 '감동의 학원 드라마'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공부 열심히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으로, 그렇지 않고 학생 인권이나 들먹이는 교사는 무능하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한국 정서에서는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이대로 가면 또 뻔한 학력만능주의 조장이니 뭐니 하는 비판이 나올 듯도 한데, 여기에 '공부의 신' 팀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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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라는 이름만으로도 소년시절의 추억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요즘도 국내에서 방송되는 BBC의 수사드라마들을 볼 때마다 저 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셜록 홈즈의 후예들을 길러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모리스 르블랑은 '괴도 루팡' 시리즈 중 한 권인 '기암성'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영웅 셜록 홈즈를 패러디해 '해록 숌즈'라는 이상한 영국인 탐정을 루팡의 경쟁자로 등장시킵니다. 결론은 루팡의 완승. 르블랑의 이런 비겁한 반칙 때문에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호감'과 '프랑스란 나라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생긴 분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셜록 홈즈를 영화로 만든 감독이 가이 리치라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비록 가이 리치의 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 팬이긴 하지만, 가이 리치의 세계와 셜록 홈즈의 세계는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주인공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물론 좋아하는 배우고 좋아하는 감독이긴 한데, 이건 뭐랄까... 김병욱 감독님이 줄리엔 강을 주인공으로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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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줄거리.

런던 베이커가 221B에 사는 탐정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단짝 친구 왓슨(주드 로)과 함께 사이비종교 교주 풍의 흑마술사인 블랙우드 경(마크 스트롱)을 체포합니다. 그와 동시에 홈즈는 이제 상대할 범죄자가 없다는 허무에 빠지고, 왓슨은 메리 몰스턴을 만나 결혼을 약속합니다. 그러는 사이 홈즈의 한때 애인이자 매력적인 도둑 아이린 아들러(레이첼 매커덤스)가 갑자기 나타나죠.

하지만 교수형을 앞둔 블랙우드는 홈즈를 불러 면회를 신청하고,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언은 적중되고 블랙우드는 묘지에서 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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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셜로키언'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열성 팬은 아니지만, 홈즈의 추억을 소년 시절의 중요한 부분으로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참 황당무계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홈즈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터프한 남자고, 한때 권투 경력도 갖고 있었으며,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잠수를 탔을 때는 마약굴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괴짜스러운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왓슨에 비해 똑부러진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해도, 이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수다스럽고 온 사방에 농담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죠.

왓슨 역시 잘생기고 꼿꼿한, 튼튼하고 용감한 남자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이렇게 액션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니 홈즈, 자네는 대체 그런걸 어떻게 다 알지?"가 고정 대사인 원작의 왓슨과는 달리 이 영화의 왓슨은 홈즈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며 초보 법의학자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장족의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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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영화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 낸 세계와는 달리 장난기가 흘러 넘칩니다. 당연히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라고 하기는 좀 힘들 정도입니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처럼 막 나가지 않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 영화를 접했을 때, 홈즈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 어느 쪽의 호응이 훨씬 클 지는 자명합니다. 당연히 후자 쪽이죠. 그리고 아마도, 2010년의 영화 관객 중에는 후자 쪽이 훨씬 더 많을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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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의 제목이 '셜록 홈즈를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이라고 해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셜록 홈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읽지 않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우삼이나 '적벽대전' 관게자들이 -심지어 출연하는 배우들까지도- 아무도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가이 리치와 '셜록 홈즈' 제작진들은 홈즈의 세계를 속속들이 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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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아이린 아들러라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은 '보히미아의 추문' 단 한 편 뿐이지만, 아마도 전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홈즈에게 '여성'으로 그려지는 중요한 존재입니다(언급되는 작품은 훨씬 더 많죠). 홈즈의 로맨스가 언급된다면 아들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네 사람의 서명'은 왓슨이 첫 아내인 메리와 맺어지는 사건이기도 하죠. 이런 식의 구성을 보면 결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홈즈의 세계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이 리치의 태도는 "이봐, 솔직히 당신들 홈즈 홈즈 이름은 너무나 잘 알지만 책은 안 읽어 봤지? 괜찮아. 어쨌든 재미있게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냐!"라는 식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재능있는 배우들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상큼합니다. 좀 지나친 개그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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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어느 케이블 TV에선가 줄곧 틀어 주다가 사라진, 제레미 브렛의 TV판 셜록 홈즈 시리즈가 그립습니다. 브렛이 연기하는 홈즈는 어딘가 좀 다른 듯도 하면서도 '그래, 저런게 바로 홈즈야'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말입니다.

P.S. 미국에서도 '아바타'에 밀려 한번도 박스 오피스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억달러를 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아마도 속편이 나오고, 그때는 영원한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의 한판승부가 예상됩니다. 과연 그때는 누가 모리어티를 연기할까요. (이번 영화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 영화를 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2. 닥터 하우스의 원작(?)이 홈즈 시리즈라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서인지 유독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홈즈가 하우스처럼, 왓슨이 윌슨처럼 보이곤 합니다. 아, 물론 전편에서 계속 그런 건 아니고 어떤 장면들이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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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 관객 동원을 향해 가고 있는 '전우치'를 뒤늦게 봤습니다.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야 여전했지만 연말연시엔 도무지 짬이 나질 않더군요. 기대대로 영화는 재미 만발. 제작비를 물 쓰듯(그래 봐야 '아바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쓸 수 있게 된 최감독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걸 다 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도사 전우치'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홍길동만큼 친숙하지는 않지만 암행어사 박문수나 홍의장군 곽재우 정도로는 익숙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전우치는 홍길동 못잖게 도술과 해학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다만 홍길동과 차이가 있다면, 이 전우치는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이죠. (홍길동 역시 홍길동이란 도둑이 조선 중기에 있기는 했습니다만, 소설 속 홍길동과는 스펙이 너무나 다릅니다)

실존인물 전우치가 궁금하신 분은 바로 맨 아래로 가시기 바랍니다. 일단 영화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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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수장 표훈대덕이 잡아 놓고 있던 요괴들이 어리숙한 세 제자 신선들의 실수로 풀려나고, 이들을 제압하고 있던 보물 피리(만파식적?)가 함께 사라져 인간 세상을 어지럽힙니다. 시대는 조선 중기. 세 신선은 당대 최고의 도인 화담(김윤석)을 찾아가 요괴를 잡고 피리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죠. 한편 천관도사(백윤식)의 제자 전우치(강동원)는 부적을 사용하는 재주를 이용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온갖 장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우연히 요괴와 싸우던 전우치의 손에 피리가 들어가고, 화담은 피리를 찾아 전우치와 스승 천관도사가 살고 있는 선경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어찌어찌하다가 전우치는 요괴와 한 편으로 몰려 그림 속에 봉인된 채 50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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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동훈 감독이 만들어 낸 전우치는 고대소설 '전우치전'보다는 '서유기'의 손오공에 가깝습니다. 말썽꾸러기 도사 전우치가 500년 세월을 봉인당했다가 새로운 시대에 풀려나 엎치락 뒤치락 코믹 액션을 펼치는 설정은 누가 봐도 손오공 이야기에서 따 온 것이죠. 중간에 벼슬을 주어 전우치를 달래자는 신선들의 이야기 역시 제천대성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꿰뚫는 정서는 전복의 미학입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전우치가 2009년의 서울 한복판에서 액션을 펼치는 것(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청계천과 한강, 남산타워 등 서울 시내의 볼만한 장소들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영화 전체가 서울의 홍보 역할을 하고 있죠)부터 이 전복은 시작됩니다.

전우치가 도술을 뽐내다 화담 서경덕에게 제압당하는 원작의 설정과는 달리 여기선 조선시대의 명 유학자로 이름을 날린 화담이 악당 중의 악당으로 등장하죠. 게다가 보쌈을 두려워해야 할 과부(임수정)는 오히려 20세기풍의 낭만적인 연애를 꿈꿉니다. 제자리에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최감독이야말로 전우치보다 더 악동인 셈이죠.^ 모조리 자리를 바꿔 놓고, 마지막엔 초랭이의 정체(?)까지 뒤집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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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늘 얘기하는 거지만 '전우치'의 경우에도 영화를 볼만하게 만드는 건 현란한 특수효과가 아닙니다. 한 순간도 '저기서 왜 말도 안되게 저기로 넘어가?'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는 탄탄한 구조와 속도감 높은 편집입니다.

사실 주인공 강동원은 물론이고 김윤석이나 임수정, 염정아, 도사 3인방 역의 주진모 송영창 김상호 등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할 일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쉴새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배우 하나가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배우들이 낭비됐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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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도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살려 내는 솜씨를 보입니다. "더 살아 봐야 아무 것도 없단다." 대단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당연히 강추작입니다. '어린이용 영화가 아닐까' 주저하셨던 분들, 어서 극장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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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제목에 대한 책임입니다. 실존인물 전우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정확한 생몰연대는 밝혀진 데가 없지만 조선 중기에 실제로 활동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출신지에 대한 기록은 황해도, 개성, 평안도 등으로 다양합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61권에 따르면 전우치는 '순오지'의 저자로 알려진 홍만종의 '해동이적(海東異蹟)'이라는 책에 한국 선도의 대표적인 인물 38인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중에는 한라선인, 지리선인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도사들도 있지만 토정 이지함이나 남사고처럼 예언가로 후세까지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고, 김시습 강감찬 서경덕 곽재우 등 도술을 썼거나 신선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이기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도 '명나라 세종 연간(16세기 중엽)에 해서(황해도) 사람 전우치가 도술로 역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죽은 뒤에도 나타났다는 기록 등이 여기 저기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전우치의 시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늦가을 맑은 못에 서리 기운 해맑은데 / 秋晩瑤潭霜氣淸
공중의 퉁소 소리 바람 타고 내려오네 / 天風吹下紫簫聲
푸른 난(鸞)은 오지 않고 하늘 바다 넓으니 / 靑鸞不至海天闊
서른 여섯 봉우리에 가을 달은 밝도다 / 三十六峯秋月明

당대의 문장가인 허균이 '그의 시를 읽으면 시원하다'고 소개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행동거지가 남다른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한 듯 하며, 이런 실재 인물을 배경으로 후세 사람들이 '전우치전'이라는 고대 소설을 남긴 듯 합니다. 다만 소설 속의 전우치는 실제의 행동보다 훨씬 과감해져서 임금을 희롱하기도 하고 군사를 지휘해 군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데에는 차이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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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도입부의 나레이션에서 '신선 표훈대덕'은 아마도 신라시대의 명승 표훈대사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굳이 고승에게 붙이는 칭호인 '대덕'을 신선에게 붙인 것도 이상하고, 그 다음에 '미관 말직의 세 신선'이라고 한 것 역시 대체 왜 신선을 미관 말직이라고 부르는 지 알 수가 없더군요. 왕년의 명 논술 강사 최동훈 감독의 손이 간 작품 치고는 이런 부분이 좀 의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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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둘째주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이제사 이런걸 추린다는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연말엔 나름 바빴습니다(네. 블로그상으로는 시상식 설거지하느라 바빴습니다.^).

2009년에도 꽤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만, 마음이 바빠서인지 생각만큼 많이 리뷰를 쓰지는 못했습니다. 꽤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인데도(ex.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상하게 글이 나오지 않아서 다루지 못한 영화도 있습니다. 솔직히 케이트 윈슬렛에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강추하고 싶습니다. 흔히 호평을 받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보다 이 영화 쪽이 훨씬 더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좀 늦게 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막판에 튀어나온 것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아바타'를 3D로 보기 전에 순위를 작성했다면, 그리고 '10대 영화'에 포함시키지 않았더라면 참 빈곤한 리스트가 됐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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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바타

카메론은 영화의 미래.
 
 


2. 국가대표

어떤 오글거림도 배우들이 하늘을 나는 순간 용서하게 된다.
 
 


3. 마더
 
제작자만 빼면 모두 행복한 영화.

 


4. 디스 이즈 잇

물론 다른 영화와 비교한다는 건 좀 무리일 수 있지만 - 어쨌든 편견이니까.
 
 

5.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형, 멋져요. 형은 그래도 돼요.
 
 


6. 파주

"난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2009년의 대사.
 
 


7. 스타트렉
 
이런게 바로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고!

 


8.7급 공무원

제발 5급 공무원도 만들어 주세요.
 
 


9. 박쥐
 
그런데 혹시 만들기 전에 '트와일라잇'을 보셨다면 어떤 영화가...^^

 


10. 슬럼독 밀리어네어
 
'어차피 운명이니까', 혹은 '어차피 대본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That's entertainment.

 


그리고 '아바타' 때문에 두 편으로 늘어난 아차상.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CG나 모션캡처로도 이런 따스함이 나올 수 있다.
 
 


* 똥파리
 
새로울 건 없지만 어쨌든 새로웠던 영화.

 






다음은 2009년의 돈 아까웠던 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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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벽대전2
 
...이건 나의 삼국지가 아니야!

 

2. 불꽃처럼 나비처럼

...도대체 사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3. 터미네이터4
 
...세번째부터 이미 아니 만났어도 좋았을.

 


4. 트랜스포머2
 
...듣기 좋은 콧노래는 딱 한번?

 


5.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애꿎은 비는 왜 들먹이고?
 


혹시 안 보신 작품들이 있다면 마지막 다섯 편은 절대 비추입니다.
(하긴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은 '욕하더라도 보긴 보겠다'도 가능하겠군요.)




아, 추천창이 너무 많긴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 대한 추천은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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