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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매직이 유로 2008에서 부활했죠. 네덜란드까지 이길 줄은 정말 몰랐는데, 역시 네덜란드는 뒷심이 없는 팀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한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도 전력을 보면 어느 팀과 붙어도 지지 않을 것 같은데 절대 우승을 못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죠.

또 얘기가 곁길로 샜는데 아무튼 히딩크, 정말 대단합니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납니다. 히딩크 감독이 희동구가 된 사연에 관련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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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뜨거운 열기가 온 나라 안에 넘쳐 흘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열기가 뿜어나온 것은 6월4일, 폴란드전에서 한국이 월드컵 본선 사상 첫 1승을 올린 다음부터라고 얘기해야 정확할 겁니다.

당시 다른 회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던 저도 한 술집에서 폴란드전의 승리에 들떠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는데, 데스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너 히딩크 시나리오가 뭔지 알지?"

인터넷에는 일찌감치 히딩크가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축구당을 만들어서 대통령에 출마한다, 뭐 히딩크교가 생긴다 어쩐다 하는 유머가 나올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연히 안다고 대답했죠.

"그럼 그 속편을 빨리 우리가 발굴해야겠다."

속편 같은 건 본 적도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원작도 없는데 무슨 속편입니까.

"니가 만들어."

만들라니요. 이건 기자로서의 윤리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어차피 농담인데 뭘 그래. 그리고 니가 만들어서 유행시키면 될 거 아냐."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요즘 분위기면 그런 건 아무도 따질 사람 없으니까 걱정 말고 재미있게만 만들어라. 진짜로 유행이 되면 될거 아니냐' 는 지시였습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히딩크를 영웅으로 만드는 분위기'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터이므로 다음날 뚝딱뚝딱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OK가 나서 신문에 실렸습니다.


http://www.sportschosun.com/news/news.htm?name=/news/life/200206/20020606/26f81001.htm

(옛 직장이지만 이제는 경쟁사 비슷한 처지라 그냥 퍼올수가 없어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보실 분은 좀 불편하지만 직접 건너가서 보시길. ;)

다른 건 뭐 다 그저 그런 얘기들이고, 이미 인터넷에 떠돌던 이야기에 살을 입힌 것인데 두 가지는 좀 신경을 썼습니다. 하나는 '4강에 오를때'의  '상암 희씨의 시조 희동구'라는 이름을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결승에 오를 때'에서  '한국 국민이 되더라도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지 않으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선거법 규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후자는 선관위에 문의해서 알아본 내용이었거든요.

'희동구'라는 이름은 개화기 한국에 기여한 외국인들이 대부분 원두우(언더우드), 석호필(스코필드) 처럼 한국식 개명을 한 것을 본딴 것입니다. 굳이 '히동구'가 아니라 '희동구'라고 한 것은 '히딩크'의 '히'가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글자라서 가능한 한 발음이 비슷한 한자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한문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성은 당연히 기쁠 喜, 이름은 동방의 공이라는 뜻으로 東球 정도로 생각했고 본관인 상암은 당연히 상암 경기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동구'란 이름은 그 뒤로 엄청나게 널리 쓰였습니다. 간혹 '히동구'라는 경쟁 표기도 보였고 한자의 뜻까지 생각한 '희등구' '희동규'라는 이름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희동구'가 대세가 되는 걸 보고 신이 났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희동구'라는 이름을 새긴 주민등록증도 인터넷에 등장하더군요. 발급일은 월드컵 개막일인 5월31일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喜東丘라는 한자는 저 주민등록증을 만든 분이 붙이신 걸 겁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서 그 유명한 이규태 칼럼에도 '상암 희씨'라는 말이 나온 걸 보고 혼자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노파심에서 토를 달지만 제가 이 이름에 대해서 무슨 권리를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희동구'라는 이름은 누구도 조금만 생각하면 지을 수 있는 별명이고, 누군가는 우연히 같은 별명을 붙인 경우도 있을 겁니다. 선동열 감독의 별명인 '무등산 폭격기'를 지은 것도 어느 기자일텐데 이 별명이 이렇게 히트했다고 해서 그분에게 무슨 영광이 돌아가겠습니까. 그저 만만한 주위 사람들에게 '저게 어떻게 해서 나온 건줄 알아?' 하면서 흐뭇해하고 마는 거죠. )

이 전통을 잇듯 2006년 대표팀을 한때 지휘했던 조 본프레레에게는 '조봉래', 본선 대회를 이끈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는 어느새 '안두복'이라는 한국 이름이 붙었습니다. 물론 현재의 허정무 감독에게는 이런 이름이 필요없겠죠. 다 지나간 시절의 기억입니다.

아무튼 히딩크,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나이들어 스웨덴 대표팀은 못 맡겠다고 손을 홰홰 젓지만 그래도 한번쯤 월드컵 우승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히딩크가 지휘하는 아프리카 팀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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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히딩크는 왕년의 김성근 감독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경기를 지휘하는 스타일이나 선수를 선발하는 스타일 등은 전혀 다르지만, 약팀의 무명 선수들을 강하게 조련해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어 놓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스타플레이어가 많은 강팀에서는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히딩크도 한때 바르셀로나 감독을 했고 김성근도 90-92년 삼성 감독을 했습니다. 성적은 둘다 그저 그랬죠), 우승은 시키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다 아다시피 김성근 감독도 이제는 우승을 시킬 수 있는 감독이 됐죠.^^ 히딩크도 언젠가는 월드컵 트로피에 키스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p.s. 저 회사의 웹 관리에 문제가 있는지 링크가 깨지고 기사가 안 나오더군요. 사실 기사라고 하기도 유치한 장난이지만, 모두가 행복했던 그 시절엔 아무도 그런 걸 문제삼지 않더군요.^^

그냥 본문을 첨부합니다. 2002년 6월6일 기삽니다.






히딩크의 축구당 창당, 귀화설 운운했던 히딩크시나리오에 이어 2탄격인 신 히딩크시나리오가 나돌아 화제다.'히딩크 사단'이 16강을 넘어 더 좋은 성적을 낸다는 가설에서 출발한 기막힌 스토리. 인터넷과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공전절후의 사태, 즉 히딩크 가상시나리오를 공개한다. < 편집자주>


한국 4강 오르면... 히딩크 귀화...'상암 희씨' 시조

한국을 빛낸 위인에 선정
 
16강에 오를때

히딩크는 "16강은 애당초 목표도 아니었다"는 코멘트로 한국 국민들을 열광시킨다. 종래의 '히사모'(히딩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히귀모'(히딩크를 귀화시키기 위한 모임)로 변해 '히딩크 잡기'에 나선다, 히딩크의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몸값 관리를 위해 광고 모델제의를 전면 거절하고, 노래방 히트곡인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이 히딩크가 들어간 가사로 개사되어 나온다.

출판사 종신 모델로 고용
 
8강에 오를때
 
히딩크를 스카우트하려는 일본을 비롯한 축구 개도국들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보디가드가 붙는다. 일단 히딩크는 2006년까지 대표팀을 맡게 된다. 히딩크의 캐릭터 상품 '히동크'가 등장해 인기를 끈다. 히딩크 붐으로 네덜란드에 '조기 축구 유학'을 보내려는 과열 학부모들 때문에 네덜란드의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 치열한 경쟁 끝에 '꼴찌가 우등생 되는 법'을 주제로 한 학습교재 출판사에서 히딩크를 종신 광고 모델로 고용한다.

4강에 오를때
 
히딩크가 밀려드는 권유와 압력에 귀화, '상암 희씨'의 시조 '희동구'로 개명한다. 히딩크의 조상이 한국인이었다는 설이 재야 사학계에서 제기된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사실은 희사부였다, 향가 '찬기파랑가'가 사실은 '찬희파랑가'였다는 주장 등이 나온다. 대선주자들의 입당 제의가 쏟아져 히딩크가 '정치 중립'을 선언한다. 톱스타 A양이 "히감독의 아이를 가졌다"고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국내 모든 대학이 경쟁적으로 히딩크학과를 개설한다.

대선출마 선거법 논란 일어

결승에 오를때

'히'자가 붙지 않으면 상품이 팔리지 않고 상호를 '히언대 그룹'으로 바꾼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폭등한다. 국적을 취득한 히딩크가 2007년 대선 후보로 나설수 있느냐를 놓고, 선거법 16조의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해야 한다'는 법조문의 해석에 논란이 벌어진다. 국사 교과서 표지 모델이 히딩크가 된다.

'대통령 만들기' 헌법 개정

우승할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히딩크 스토리' 제작을 발표한다. 주인공 히딩크 역을 맡기 위해 션 코너리는 가발을 새로 맞추고, 해리슨 포드가 체중을 늘려 경합을 벌인다. 네덜란드 정부가 가족과 친지들을 동원, 히딩크의 한국 국적 취득을 반대하고 나서지만 히딩크는 한국인이 되고, 대통령선거가 그의 정권 장악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은 헌법상의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를 포기한다.

2004년 올림픽 金 재기
 
선전하지만 16강에는 실패할때
 
전 국민이 축구를 저주하게 되고 집집마다 내다 버린 피버노바가 길에 쌓인다. 국내 축구 지도자들이 대표팀 감독 자리를 위해 일부 선수들을 사주, 고의로 16강에서 탈락하게 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고, 이 음모의 배후인물로 지목된 지도자들이 해외로 도피한다. 히딩크는 2004년 올림픽 팀을 맡아 금메달을 따내며 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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