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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모임에서 AI의 창작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AI가 교장선생님의 졸업식 축사 같은 글을 꽤 잘 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하지만 재미는 없다. 물론 AI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80% 정도도 재미있는 글을 써내지 못하면서 AI에게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 비율이 70%인지 80%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사실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부터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튼 대부분의 인간들은 AI가 잘 써내는 종류의 글조차도 잘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창의적으로 재미있는 글, 예를 들어 <보건교사 안은영>이나 <나혼자만 레벨업>같은 글을 써 낼 가능성은 인간 쪽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인간 중에는 극소수라도 그런 글을 써낼 가능성을 가진 인간들이 있지만, AI의 경우에는 0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반면 이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웹소설 시장에서는 이미 상당히 분석적으로 독자가 원하는 패턴을 분석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회에는 두 주인공의 관계가 어느 선까지 나가야 하고, 3회 이내에 키스신이 나와야 하고, 6회에 이내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유형 분석이 끝나 있다고도 한다. 이런 식의 패턴화가 가능하다면, 그 틀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섞은 작품들을 엄청나게 양산해 내면 그중에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들도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공식에 따라 AI가 그럴싸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주장이 있고, 이미 중국에서는 AI작가들이 양산해낸 작품들이 시장에 등장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거대한 중국 웹소설 시장에서는 대략 1700만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중 100만명 정도는 진짜 인간이 아니라 AI라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써 낼 수 있다는 것'과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 히트작이 나온다는 것' 은 제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 개인적으로 첫번째는 당연히 가능하지만 두번째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 중에는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로알드 달의 단편 <위대한 자동문장 제조기 The Great Automatic Grammatizator>가 떠올랐다.

1953년에 발표된 이 단편은 한 천재가 자동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시작된다. 이용자가 주제를 선정하고, 각종 요소의 비율(에로틱, 스릴러, 코믹 등등)을 배합하면 타자기와 비슷한 기계가 이미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단어와 문장, 사례를 배합해 30초에 한 페이지씩 글을 써내려간다. ‘문법에 맞는 글을 써내는 기계라는 뜻인 Grammatizator라는 단어는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다.

투자자는 신기하긴 한데 대체 이걸 어디에 써먹느냐고 묻고, 엔지니어는 이걸로 우리는 이 나라의 문학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엔지니어의 주장은 현실이 된다. 이들은 100여명의 새 작가 이름으로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내놓고, 이들의 물량 공세에 소설을 싣던 온갖 신문이며 잡지들은 모두 이들의 고객이 되어 버린다. 심지어 이들은 기존 작가들에게도 앞으로 작품을 기계에 맡기는 대신 고액의 계약금을 받고 은퇴하라는 제의를 한다. 소수의 정상급 작가를 제외한 많은 작가들이 골치아픈 창작 대신, 작가 이름을 넘겨주고 편히 사는 길을 택한다.

인공지능은 커녕 집채만한 ENIAC, EDVAC 같은 것들이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에 이런 상상을 한 걸 보면 역시 달은 보통 사람이 아닌게 분명하다. 물론 당시 문학 시장에 대한 달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긴 우화에 가깝지만,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한 21세기에 소설 속 대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참으로 놀랍다.

개인적으로 소위 인공지능의 본질은 응용통계, 즉 문장을 생성해 가면서 이미 나온 수많은 문장들 가운데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즉 다수결에 의해 가장 틀릴 가능성이 적은) 단어를 배치하는 것이므로 이 방법을 통해 소위 창의적인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은 0이라는 생각 테드 창을 비롯해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런 의견을 냈다 에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콘텐트 소비자들이 항상 참신하고 독특한 것을 선택한다는 법은 없고, 때로 너무나도 진부하고 뻔한 것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AI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을 써낼 수 있다'와 '히트하는 작품을 써낼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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