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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에서 알함브라 궁전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이런 다리가 있다.  

 

헤네랄리페를 먼저 보든, 나중에 보든 알함브라 관람은 이 문에서 시작하게 된다. 알함바르 궁전의 동쪽 끝에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어디냐 하면...

 

 

 

 

고구마처럼 동서로 긴 알함브라 궁에서 빨간 동그라미가 있는 이 위치다.

 

다시 말하면 동쪽 끝이란 얘기.

 

 

 

문 위의 문장. 무슨 뜻인지 일일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알함브라 연구자도 아니고...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의 qa'lat al-Hamra, 즉 '붉은 성(red castle)'에서 왔다고 한다. 물론 선홍빛으로 붉지는 않다.

 

알함브라의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9세기부터. 중동/북아프리카를 손에 넣은 이슬람 정복자들의 칼날은 마침내 8세기 초, 지브롤터를 건너 바로 빤히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로 향했다. 정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졌고, 이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말을 달려 중부 유럽까지 진출하려 했다.

 

하지만 칼 마르텔(카를로스/샤를마뉴/칼/찰스 대제의 할아버지.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조상. 지금은 유명한 브랜디 브랜드인 'Martell'을 통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에 의해 투르-프와티에의 결전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에서의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프랑크 인들 또한 그 서쪽으로는 넘어 오지 않아 이슬람인(스페인에서는 특히 무어 인이라 불림)들은 약 800년에 걸쳐 사실상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코르도바, 세비야 등과 함께 아랍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 중에 그라나다가 있다.

 

 

 

그라나다 부근은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지형이 험한 곳이다. 남쪽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끼고 있는 등 툭 터진 안달루시아의 평원 가운데서 꽤 지대가 높고, '가려져 있는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악 지형 한가운데 그라나다가 있고, 그 그라나다를 제압하는 언덕 위에 알함브라가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압도적인데다 물까지 풍부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들여 놓을 수 있는 알항브라 터는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한 땅이다. 그래서 9세기부터 조금씩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기. 나스르 왕조의 첫 왕인 무하마드 1세가 이곳에 자신의 궁성과 요새를 포함한 '도시 안의 도시'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이후 나스르 왕조의 다른 왕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속 건물을 지으며 알함브라를 완성시켰다. 천혜의 요새 알함브라는 이 시기 기독교 세력의 확대로 이슬람의 강역이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200년 가량 더 왕조의 운명을 지속시켰다. 

 

아마도 알함브라에 도성을 정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1492년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얼마나 더 버텼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는 것을 알면 알함브라를 구경하는데 꽤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알함브라 안으로 들어서도 왕년의 거대한 도시는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문을 들어선 뒤로 한참 동안 건물은 보이지 않고, 조경이 잘 된 공원 속 같은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길이 15세기 중엽에는 화려한 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다 보면 첫번째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스팟.

 

 

바로 7층탑의 문 Torre de los Siete Suelos, 토레 데 로스 시에테 수엘로스다.

 

스페인어로 써 놓는다고 더 멋져지는 건 아니다. 지금 관람자가 성 안에 있으므로 안쪽에서 본 모습인데, 꽤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성 밖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이게 밖에서 본 모습. 이 광경을 보려면 밖으로도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반바퀴 쯤 돌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아무튼 밖에서 보면 꽤 그럴싸한 광경이다.

 

그런데 문의 이름이 7층탑의 문인 것은 지하에 일곱 층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발굴해 본 결과 두 층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론은...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야 이거)

 

 

 

그리고는 계속해서 예쁜 조경 산책로.

 

 

 

그리고 걷다 보면 왼쪽으로 이런 폐허가 나타난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또 걷는다.

 

그리고 약간 넓은 뜰이 나온다.

 

 

이 문은 알함브라의 파라도르로 통한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파라도르 Parador 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검색하게 된다. 유서깊은 유명 관광지의 경내에 위치한 숙박업소다. 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므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느낌이 다른 숙소라는 평이 있다.

 

특히나 그 유명한 알함브라 성내에 있는 이 알함브라 파라도르는 명성이 자자해 몇달 전부터 예약이 차 있다고 한다. 뭐 이런 숙소는 감히 예약할 생각도 못했던 터라, 여기서도 그냥 정문만 보고 지나쳤다.

 

 

 

이 빨간 원 정도의 자리. 참 좋긴 좋아 보이는 자리다.

 

 

 

근처에 이런 호텔도 있다. 아니 대체 유서깊은 알함브라 안에 호텔이 두개나 있는거야.

 

이름도 그렇고...뭔가 좀 무성의한 느낌.

 

 

그리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골목 사이로 카를5세 궁(스페인 식으로 하면 카를로스 5세 궁)이 보인다.

 

좌우의 건물들은 그리 세련되지 않은 기념품 등속을 팔고 있다.

 

 

 

이게 카를5세 궁.

 

모든 지도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겉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안에서 보면 원형인, 재떨이같이 생긴 건물이다.

 

 

 

굳이 이 궁 안에 이런 식의 유럽식 건물을 세우려고 생각했다는 것도 불순하고, 건물 자체가 그리 정감 가는 데가 없다.

 

1527년 카를 5세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정작 1957년에 완공됐다는 건물.

 

 

그리고 게속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알카사바 Alcazaba 가 나타난다.

 

 

 

지도상으로는 이 위치. 그러니까 알함브라의 서쪽 끝이며, 전체 알함브라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구축된 지역이다.

 

당연히 군사 주둔 지역. 주위를 압도하는 전망탑이 그 상징이다.

 

 

 

알카사바 쪽에서 본 카를 5세 궁. 크긴 참 크다.

 

 

 

알함브라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사람 따위가 구경을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함을 갖췄다. 유서깊은 비궁의 주민 답다.

 

 

 

결코 먼저 관심을 보인다거나, 관광객 따위가 내는 어설픈 고양이 소리 흉내 따위엔 절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온다. 뭐 운치를 더한다면 더하는 느낌.

 

 

세월의 더깨.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천년이 넘은 성벽이다.

 

중간에 또 보수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천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이 고성을 지키고 있는 전망탑. 자못 감동적이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오르면,

 

 

 

이런 광경에 도달한다. 속이 탁 트인다.

 

 

 

클릭해 보시면 파노라마.

 

 

 

크고 아름답다.

 

 

알카사바의 무너진 부분은 문득문득 앙코르 와트를 생각나게 한다. 붉은 색의 성벽 때문일까.

 

 

왼쪽으로는 과거 병사들의 숙소 유적이 보인다. 아무튼 요새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아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면,

 

 

 

 

성벽과 성벽 사이의 좁다란 정원.

 

이 정원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작 나무가 너무 우거져 전망은 살짝 가려진다.

 

이곳의 성벽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갔다 와서 알았다.)

 

프란치스코 A. 데 이카사 Francisco A. de Icaza 라는 시인의 유명한 시라고 한다.

 

 

대략 해석하면

 

그를 부축해다오, 여인이여.

그라나다에서 장님으로 사는 것보다

금생에서 더 비참한 일은 없으려니.

 

 

 

 

 

다시 좁다란 문을 지나 내려가면

 

 

 

알카사바의 출구가 보인다.

 

 

알카사바 안녕.

 

 

 

알카사바를 나와 알함브라의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이런 정경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알함브라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뷰포인트, 산 니콜라스 전망대다. 사진 속에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있다.

 

이제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을 입장할 시간이 왔다. 줄을 서야 한다.

 

 

 

 

나스르 공원의 입구에 있는 마추카 정원 Patio de Machuca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 앞에서 줄이 끊겼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입장시키지 않기 위해 안내원들이 계속 머릿수를 헤아린다.

 

 

 

드디어 긴 기다림이 끝났다. 이제 나스르 궁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됐다.

 

알카사바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알함브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나스르 궁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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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방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몇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그냥 가서 표를 사자면 대략 낭패.

 

티켓마스터 스페인 홈페이지 http://www.ticketmaster.es/ 를 방문해 따지지 말고 메뉴 맨 윗줄의 'Family and More'를 클릭한다. 그럼 이런 화면이 뜬다.

 

 

큼지막하게 La Alhambra 가 보인다. 클릭하고 들어가면 예매 페이지가 나타난다.

 

주의사항 페이지에는 반드시 읽어 둬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 가령 10월25일의 티켓을 샀다면 그 날짜에는 오전 오후 중 자신이 선택한 시간엔 언제든 궁전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스르 궁전 지역만큼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아니면 나스르 궁전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매때 확인하는 시간은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임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이걸 혼동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요약해 보자.

 

10월25일 표를 샀는데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오후 4시로 정했다 치자. 해당일의 알함브라 궁전의 오후 개장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그럼 오후 2시에 가든 3시에 가든, 나스르 궁전 이외의 지역을 먼저 마음껏 구경하고 오후 4시까지 나스르 궁전 앞에 가서 줄을 서서 입장하면 된다. 반대로 오전 10시 나스르 궁전 입장 조건으로 티켓을 샀다면, 오전 8시30분~오후2시 사이엔 마음대로 궁전 여기저기를 봐도 좋다. 단 나스르 궁전만큼은 오전 10시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주의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약할 때 오후 4시라니까 오후4시에 가서 나스르 궁전만 보고, 나머지는 시간이 없어서 못 보는 분들도 있다.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하절기와 동절기 사이에도 꽤 차이가 있다. 3월15일부터 10월14일까지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개장하지만 그 이후 기간에는 오후 6시까지만 개장한다. 이밖에 몇가지 야간 개장은 동절기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 점이 사실 매우 아쉬웠다. 애당초 처음 알함브라를 꼭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은게 바로 그 야간 개장 때 찍은 사진 때문이었기 때문에.

 

기타 알함브라 예약 요령http://blog.naver.com/enehye85?Redirect=Log&logNo=188319175 이 블로그 해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위 지도를 보면 아래쪽의 긴 고구마가 알함브라, 그리고 오른쪽 위의 돌도끼같은 모양이 헤네랄리페 Generalife 다.

 

헤네랄리페는 흔히 알함브라의 부속 여름 별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방문자 가운데는 이곳이 정작 알함브라 본편보다 인상적이었다는 분들도 꽤 있는데, 사실 그 말에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아무튼 헤네랄리페가 완공된 것은 14세기. 그리고 그라나다가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는 예배당으로 쓰였다.

 

저 알함브라 표지판이 있는 입장 관리소는 딱 한군데 있다. 미리 예매한 티겟은 이 자리에서 등록을 해야 궁전 구역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바로 사서 들어가시는 분도 있다는데, 가을 이후엔 어떨지 모르지만 봄 여름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야 간신히 그 날짜의 입장권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저 위에 써 있는대로 반드시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시기 바란다.

 

 

 

입장관리소를 통과하면 거대한 사이프러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타난다. 조경이 멋지다.

 

 

 

하이 시즌이 아닌 10월말이지만 어쨌든 관광객은 우글우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에서 보곤 정말 저렇게 생긴 나무가 있을까 했는데, 이 지역에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신기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멋지다.

 

 

 

나무 사이로 숲 건너편, 알함브라의 한 자락이 보이고 저 멀리 구시가의 산동네도 언뜻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그라나다에 가 보면 알함브라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코르도바는 1236년, 세비야는 1248년 함락되었지만 그라나다는 건재했다.

 

 

 

본격적인 헤네랄리페 지역의 입구. 조경이 정교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원근감이 없어져서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왼쪽은 알함브라의 서쪽 끝자락인 알카자르. 오른쪽은 그 건너편의 오래된 산동네다. 탁 트인 전망에서 보면 아 소리가 나온다.

 

 

 

 

 

헤네랄리페 입구의 계단식 정원. 간이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을 듯. 생김새가 독특하다.

(실제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깎았을까 싶은 나무 문을 지나면

 

 

전형적인 스페인/아랍식 정원의 정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의 상징은 물이다. 산 위에 요새를 건설하는 일은 건물만 지어서 될 일은 아니다. 바위산 위에 건물을 짓고 병력과 민간인이 거주하게 하려면 풍부한 수원이 있어야 한다. 일단 알함브라는 그 조건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알함브라는 안달루시아의 혹독한 직사광선과 더위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모든 조경에서 물의 활용을 극대화했다. 가는 곳마다 분수와 수로가 조경의 필수적인 요소다. 여긴 그냥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도 매혹적이다.

 

 

 

 

 

이런 그림 같은 정원 사이로

 

 

이렇게 한시간 두시간씩 앉아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피 공간이 있다.

 

 

어릴 적 한창 꿀을 빨았던 사루비아가 만발해 있는 정경이 반갑다.

 

샐비어(Salvia)는 뭔 놈의 샐비어. 사루비아는 사루비아라고 써야 제 맛이다. 꽃 꽁무니의 달콤한 꿀 방울도.

 

 

 

 

 

어디에나 깔려 있는 라임 나무.

 

처음에는 몇개 따 볼까도 생각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너무 흔해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느낌이다. 나중에 세비야로 넘어가면, 아예 가로수가 라임나무다. 문득 은행나무가 우거진 서울 거리의 가을 냄새가 생각났다.^

 

가로수가 라임이면 어느 철에는 도시에서도 라임 냄새가 날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이다.

 

정원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헤네랄리페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관개수로의 정원 Patio de la Acequia 에 도착한다.

 

 

 

 

헤네랄리페를 상징하는 바로 이 한 컷.

 

'관개수로의 정원'이란 번역 대신 그냥 '아세퀴아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실 오늘날의 헤네랄리페는 거의 유적에 가깝다.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헤네랄리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1670년 경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되는 헤네랄리페는 기독교 점령 시대에 예배당으로 개조됐다.

 

지금 남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파티오 데 아세퀴아 정도. 얼마나 더 화려하고, 얼마나 더 정교했을까.

 

 

 

반대쪽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난간 너머로 건너편 알함브라를 바라보는 맛도 최고.

 

 

 

 

잠시 후 알함브라에서 본격적으로 보게 되지만, 건물의 정교한 장식이 지금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관개수로의 정원에서 한 단계만 올라 서면 또 하나의 보물같은 정원이 나타난다.

 

 

 

 

 

이른바 '사이프러스 정원 Patio de los Cipreses'.

 

 

 

 

 

 

꼭대기의 사자상을 한번 잡아당겨 봤다. 벽돌로 된 아치와 기와를 얹은 지붕은 언뜻 친숙하게 느껴진다. 창덕궁 어느 한 구석에도 비슷한 색감의 벽돌 문을 발견할 수 있으니.

 

구불구불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사이프러스 정원을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실로 왕이 거닐었을 법한 정원이다.

 

 

난간으로 물이 흐르게 한 유수 계단의 아이디어. 꼴꼴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흥취를 더한다.

 

헤네랄리페의 많은 건물들과 구조물들은 모두 '여름 스페인의 태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태양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러자니 그 시절에 가능한 냉각제는 '흐르는 물'과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가능한 한 여러 곳의 그늘' 외에는 없었을 듯.

 

 

 

계단 위에 사려깊게 건설된 햇빛 가리개.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로본 관개수로의 정원.

 

 

규모가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헤네랄리페의 정원은 '이래서 사람들이 알함브라 알함브라 하는구나' 하고 수긍이 가게 하는, 정교하고도 품위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한껏 기대를 높인 상태에서 알함브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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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에 알함브라 이외의 볼거리가 많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차피 평생 스페인에서 보낼 게 아니라면 선택은 불가피했다. 아무튼 그라나다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것도 아침 일찍 기차에서 내려 좀 휴식을 취하고 나니 대략 오전은 다 지나갔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정문을 나서 바로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이런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앞에서도 말했듯 알함브라는 시내의 가장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식당-호텔 등이 몰려 있는 누에바 광장 Plaza Nueva 까지 가려면 약 1Km 정도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위의 경로와 대략 일치한다.

 

지도가 커서 멀어 보이지만 약 10~15분 정도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리막길이란게 매우 중요. 오르막이면 힘들다.)

 

 

 

산 위쪽을 바라보면 알함브라의 성벽 끄트머리가 숲 사이로 슬쩍 슬쩍 보이는 정도.

 

 

 

내리막이라 그렇지 만약 오르막이라면 꽤 힘들게 올라왔을 길이다. 경치는 참 좋지만 내리막으로 활용하는게 좋을 듯.^

 

 

 

시내까지 거의 내려오면 급수탑(?)이 나타난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길 안쪽에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함브라 처럼 산 위에 대단위 요새를 구축하려면 물이 필수였을 터. 헤네랄리페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고지이면서 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알함브라의 가장 핵심적인 입지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이 알함브라의 메인 게이트.

 

 

밖에서 성을 향해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이 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알함브라 영역이다.

 

물론 진짜 알함브라 성문은 이 문을 통과해 산길을 1Km 정도 올라가야 나타난다. 

 

 

 

플라멩코 기타의 장인(?)이 운영하는 기타 샵.

 

사진으로는 별 느낌 없지만 이 거리에 있으면 굉장히 운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저 골목 끝으로 보이는 곳이 누에바 광장이다. 위의 기타 샵 처럼 골목 곳곳에는 고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다양한 가게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는 흔히 세비야라고 하지만 스페인의 온 도시에 파에야 가게 없는 곳이 없듯 플라멩코 공연장 없는 곳도 없다.

 

특히 그라나다는 집시들의 거주지역인 동굴 내에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동굴 플라멩코는 아니지만(그건 구 시가의 알바이신 지구에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플라멩코 공연장이 여기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큰길 도착.

 

 

 

이것이 누에바 광장의 상징인 분수대.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광장은 이미 각종 레스토랑들이 전진배치해 놓은 식당들의 야외 좌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 좋은 곳에 있는 식당의 메뉴는 너무나 관광객용이다.

 

물론 지난번에 말했듯 프라이드 치킨, 햄버그 스테이크 등 관광객들이 고민하지 않고 먹을만한 메뉴 델 디아 의 향연이다. 뭔가 좀 전통 스페인식으로 보이는 음식을 시키려 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메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 음식은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메뉴 델 디아가 뭔가 싶은 분: 그란비아, 그리고 메뉴 델 디아란 무엇인가 http://fivecard.joins.com/1181 )

 

 

적당한 식당이 없어 그란비아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라나다 그란 비아의 이면 도로. 호텔에서, 그러니까 알함브라 궁전에서 누에바 광장을 거쳐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도 한눈 팔지 않고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말 아담한 도시다.

 

 

 

그리고서 바로 모퉁이만 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라나다의 유명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de Granada 이 나타난다. 그라나다라는 도시의 사이즈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라나다에선 모든 것이 가깝다.^^

 

 

 

이렇게 생긴 왕실 예배당. 바로 뒤에 그라나다의 카테드랄이 보인다.

 

거대한 카테드랄 옆에 있으면 소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사벨라 여왕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여왕 자신이 그라나다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 아무래도 콜럼버스의 영광보다는 스페인 땅의 마지막 이슬람 영토였던 그라나다 정복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혹은 새로 정복한 땅 그라나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자신이 이룩한 국토 통일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후손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아무튼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카테드랄도 마찬가지.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골목 안에 식당 하나. '세비야'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왠지 식당 간판의 느낌이 좋아서 바깥에 앉았다. 골목 안에 테이블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골목에서 바로 밖으로 나오면 바닥까지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세비야 샐러드 Ensalada de Sevilla(뭐 이런 이름의 샐러드가 어디 가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식당 이름을 단 샐러드)'와 기본 파에야 주문. 음료까지 25유로 정도.

 

 

 

작은 감자 샐러드를 먼저 전채 요리처럼 준다. 빠에야가 오래 걸릴 테니 기다리는 동안 맛보란 배려.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리브유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럽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흩뿌린 치즈,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잘게 썬 하몽이 샐러드 재료들과 어우려져 좋은 맛을 낸다.

 

신선한 야채와 함께 씹히는 짭짤한 하몽이 포인트. 통 올리브가 들어 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쉬웠다.

 

 

 

샐러드를 해치우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오너 셰프(?)가 직접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보는 앞에서 각각 접시에 덜어 준다.

 

토마토 소스에 조갯살, 닭가슴살, 오징어, 새우,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 있는 볶음밥이다.

 

 

 

흔히 리조또와 비교되는 것이 빠에야인데, 해외에서 먹은 리조또는 사실 맛있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기본적인 리조또의 상식은 쌀을 반 정도만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리조또는 한국식으로 푹 익혀 조리하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리조또는 오독오독 쌀이 씹힐 정도로, 한국 사람의 입장에선 설익은 밥의 수준을 넘어 절반 정도는 생쌀의 느낌이다.

 

왕년에 라스베가스에서 한국인 손님 유치를 위해 식당에 한식을 배치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주방장에게 밥 하는 법을 '설득'하는게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을 많이 붓고 쌀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 말을 해도 계속 설익은 밥을 가져오더라는 거다. '더, 더'하고 요구하니 '아니 그럼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식의 반응이더라는 얘기.

 

반면 빠에야는 몇번 먹어볼 때 한번도 쌀이 설익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즉 한국 복집에서 복 지리를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볶아 준, 약간 죽 비슷한 볶음밥의 느낌. 밥 상태가 아니고 쌀 상태에서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리조또와 마찬가지지만 '쌀을 충분히 물에 불려 둔다'는 것이 중요한 레서피라고 한다. 이 쌀의 익힘 정도가 리조또와 빠에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위 부분은 일천한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 구별이 정확한 것인지 검증을 구합니다. '나는 설익은 빠에야도 많이 먹어 봤다' 하는 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빠에야가 만족스러워서 아저씨와 사진 한 컷. 잘 먹었어요~~.

 

 

혹시 찾아 가실 분을 위한 주소. 그냥 왕실 예배당 옆구리 골목을 찾으시는게 나을 수도.

 

 

 

 

못 들어가는 왕실 예배당 한 컷.

 

 

카테드랄 옆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색색깔의 상가가 이어진다. 꽤 정감있는 뒷골목이다.

 

 

카테드랄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작품화 한 듯 한 관광객용 소품.

 

 

 

 

그라나다는 본래 '석류'라는 뜻이라는데 석류는 아닌 희한한 가로수가 자주 눈에 띈다.

 

 

 

여기가 아까 식당 앞에 있던 왕실 예배당의 정문. 카테드랄과 나란히 붙어 있다.

 

 

고개를 돌려 보면 모습을 드러낸 카테드랄.

 

 

 

아까 그 노란 열매가 익으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체 불명.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라나다의 카테드랄. 세비야보다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웅장하다.

 

 

 

그런데 스페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카테드랄을 지어 놓고 건물 앞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지 않은 것은 그라나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데까지 물러서 봐도, 이 정도 뷰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독특한 양식. 짓기 시작할 때에는 그냥 고딕 양식으로 설계했다는데 막상 완상할 때에는 아랍 풍의 느낌이 추가되며 약간 희한한 모습이 됐다. 내부도 상당히 화려하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카테드랄의 개관 시간까지 기다리다간 알함브라를 못 볼 상황.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는 것을 상징하듯 아랍풍의 말린 과일과 향초 등을 파는 가게들 천지다.

 

 

 

 

야자수 가로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구경을 하자면 두세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알함브라로 향했다. 그란 비아 어디에서나 미니버스 32번을 타면 알함브라로 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라나다처럼 작은 도시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서비스는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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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야간열차와 (저가)항공이다.

 

야간열차는 당연히 침대차가 기본이다. 스페인은 매우 큰 나라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약 600Km)은 고속전철 AVE가 있어 2시간 30분이면 주파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 그라나다-바르셀로나 구간(약 800Km)은 아직 고속화되지 않았다.

 

야간 열차의 좌석이나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몸 상하는 일.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이동하는 일(대개 공항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다)을 꽤 싫어하고, 동시에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침대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 1인으로서(사실 동행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차를 선택했다.

 

늦은 시간. 그래도 산츠 역은 꽤 붐비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외진 곳이라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애매하게 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침대차가 꽤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지만 지금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남아 있는 노선 중에는 파리행과 그라나다행이 꽤 유력하다고 한다.

 

 

야간열차 트렌오텔 Trenhotel 은 밤 10시 출발. 그라나다에는 다음날 오전 9시11분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도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히 기차가 서고 내린다.

 

야간 열차라고 해서 모든 칸이 침대칸은 아니다. 일반 좌석이 있는 칸도 있다.

 

렌페 renfe.com 에 가서 야간 열차를 예매하려면 이런 화면을 만나게 된다.

 

 

다섯 등급의 좌석을 판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좌석 2등급, 좌석 1등급, 침대차 4인 1실, 침대차 2인 1실, 침대차 2인 1실(특실)에 식사 포함이라는 기준이다. 위에서 네번째인 Cama Preferen(2인 1실. 1등칸)을 선택했다.

 

일단 11시간을 이동하는데 좌석...도 굳이 타라면 못 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청춘이 아니다. 최소한 침대차는 되어야 한다. Cama Turista는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타 본 쿠셋 형의 변형인 듯 하다. 그래도 쿠셋은 방 하나에 간이 침대가 6개인데 이건 그나마 4개. 그리고 방 안에 세면대도 있다. 4인 1실이라도 남자 칸과 여자 칸이 따로 있다.

 

Cama Preferen은 164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가격은 아마도 당일 구매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인 듯. 약 1개월 전에 미리 사면 1인당 110유로 정도, 즉 2인 1실에 220 유로 정도에 탈 수 있다.

 

어쨌든 기차 표 끊는 법, 역에서 표 찾는 법 등은 이런 블로그 http://blog.naver.com/familyjhjh?Redirect=Log&logNo=90172132856 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여기서 새로 또 늘어놓지는 않는다.

 

220유로. 가격으로 따지면 재수가 좋은 경우 1박 요금+저가항공 2인 요금이 더 쌀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육상 교통, 특히 기차 이동을 매우 선호하는 본인으로서는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궁금하잖아.

 

 

 

문을 열고 2인 칸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 물론 가방을 넣어 두고 한숨 돌린 뒤에 찍은 거다. (문을 열자 마자의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첫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좁아!"

 

그런데 걱정하실 필요 없다. 조금 지나면 대략 익숙해 진다.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머물만 하다.

 

 

2층 침대에서 문 쪽을 본 모습. 안으로 들어와 방 문(오른쪽)을 닫아야 욕실 문(왼쪽)을 열 수 있다.

 

사진상으로 엄청나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맞다.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욕실 설비는 제법이란 느낌이 든다.

 

 

 

욕실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양치질용 물과 컵이 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잘 나오지만, 생수 2병을 굳이 넣어 뒀다. 물론 마실 수 있는 물이고, 럭셔리하게 양치질 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양치질하는 데 썼다. 이유는... 1.5리터짜리 에비앙을 이미 사 왔기 때문에. 다 마시느라 애썼다.) 

 

 

 

왼쪽을 보면 변기와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위에 샤워용의 큰 타월 두 장과 예비용 두루마리 휴지 등이 있다. 제법이다.

 

세면대와 변기를 합해 여객기 기내 화장실 정도의 크기. 하지만 거기엔 없는 호사스런 서비스가 있다.

 

 

 

제법인 이유는 더 안쪽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 여행 자료를 보면 Cama Preferen에 샤워가 있다, 샤워는 없고 세면대만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면 샤워실이 있었다.

 

넓이는 작은 사이즈의 샤워박스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갇힌 느낌으로 죽을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간 침대 열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호사다.

 

그리고 비록 좁다지만 원통형이라 나름 합리적이고, 사진에서 보듯 장시간의 입식 샤워(?)에 피로한 당신을 위해 엉덩이를 살짝 걸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울러 바닥은 배수가 잘 되도록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좁은 침실로 샤워 물이 넘쳐 방이 물바다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은 이 정도. 열차로 두 칸 정도 넘어 가면 스낵바가 있고, 스낵바 바로 너머에 식당칸이 있다.

(열차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진동...)

 

 

 

하긴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건 식당칸 옆의 부엌을 살짝 찍은 것. 철판 위에서 스테이크가 혼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식당칸에서 음료 정도는 마셔 주는 것도 괜찮을 듯 했으나 어찌나 에어콘을 세게 틀었는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밤 10시 출발. 한국인들에겐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이쪽 사람들에겐 한창 저녁을 즐길 시간이니.

 

 

 

이건 스낵바. 아주 가벼운 간식거리와 커피, 음료, 맥주 등을 판다.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데, 혼자 여기서 맥주라도 홀짝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이 측은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열차 안의 복도는 매우 좁다. 기내용 캐리어는 통과할 수 있지만 1주일 이상 여행용의 트렁크는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넓이다. 그 점 하나만 빼면 침대차 내의 시설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이건 방 안에 있는 1인용 위생 팩.

 

 

조립식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화장솜. 빗 등이 키트로 들어 있다.

 

준비 없는 사람이 1박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설비다.

 

 

 

1층 침상. 다리를 충분히 뻗을 수 있다. 위쪽으로 개인용 독서등도 있고, 충전용 전원도 있다.

 

 

동행인이 최종적으로 1층을 선호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은 왼쪽의 전화기를 빼면 시설에 아무 차이가 없다. 쿠셋과는 달리 두 층 뿐이므로 1층과 2층 모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침구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

 

누운지 몇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 기차 위이기 때문에 제법 흔들린다. 그 진동에 대한 적응엔 개인차가 꽤 크다. 앞서도 말했듯 본인은 그 진동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람 속 같다고나 할까), 눕자마자 금세 잠들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아침. 그라나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을 열었다.

 

안달루시아의 아침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느꼈지만, 땅이 넓은 곳에선 구름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쇼콜라를 마시고 산 초코 머핀과 초콜릿 크루아쌍으로 아침 간식.

 

그라나다가 가까워 온다. 침상 정리를 해 본다.

 

 

 

위층 침대를 접으면 이런 모습,

 

 

그리고 아래층 침대를 마저 접고 그 아래 감춰져 있는 좌석을 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오래 전 다녔던 오리엔트 특급 같은 열차에선 낮엔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저녁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식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낮 이동이 훨씬 지루하긴 하겠지만.

 

 

오전 9시. 그라나다 도착.

 

그라나다는 춥고, 역무원들은 불친절하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우리는 관광안내소가 아니다' 라며 지도 한 장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쌀쌀맞아.

 

 

택시를 잡아 타고 그라나다의 그란 비아(사진 오른쪽 가게 간판 쪽에 써 있다)를 따라 호텔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선 반팔이 더 많았다면 여긴 확실히 가을 느낌, 그것도 늦가을 느낌이 난다.

 

그래도 왔다. 그라나다. 기다려라, 알함브라.

 

 

그라나다는 굉장히 작은 도시다. 여행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숙소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에서 그라나다는 단 1박, 그리고 알할브라 궁전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숙소를 아예 알함브라 궁전 바로 코앞으로 잡았다. 이름하여 알함브라 팰리스 호텔 Alhambra Palace Hotel.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h-alhambrapalace.es/default-en.html

 

 

 

 

이번 여행 중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방을 달라면 어떤 반응일지 조금 궁금했지만, 비수기인데다 기차 도착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굳이 얼리 체크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해 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중엔 TV를 거의 안 봤다. 마드리드에서나 좀 채널을 돌려 봤던가...

 

 

 

 

아랍풍으로 꾸며진 욕실이 특히 넓고 화려했다.

 

 

 

호텔이라기보단 무슨 성 처럼 보일 정도로 요란한 장식이 있다.

 

 

사실 이 호텔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호텔이라는 점(호텔을 나서 언덕배기를 3분정도 걸으면 바로 알함브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알함브라 구경을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달려 들어오면서, 역시 가까운 호텔을 고르길 잘 했다며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기뻐했다.

 

아울러 두번째는 트립어드바이저에 누군가 써 놓은 fantastic city view. 알함브라가 보이는 뷰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알함브라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함브라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도 알할브라 쪽의 뷰는 그냥 산 뿐이다. 대신 시내 쪽 방은 이렇게 알함브라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방 구경과 짧은 오전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출동.

 

 

 

 

기다려라 알함브라! (사진은 헤네랄리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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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집을 소개할까 말까 좀 고민을 했다.

 

우리가 이 집을 간 건 맛집 소개를 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숙소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깥 여정에서 일찍 돌아온 날, 시내로 나가기 위해 민박집 주인장에서 시내에 가볼만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동네 식당 한번 가 보는게 어때요? 우리도 가끔 가는데, 시내 식당보다 나아요" 라며 이 집을 찍어 주셨다.

 

그래서 가 본 곳이 라 펠라 La Perla.

 

 

 

풀네임은 La Perla Groupo Reloj.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구글에 있다.^^

 

https://maps.google.co.kr/maps?ie=UTF-8&q=la+perla+barcelona&fb=1&gl=kr&hq=la+perla&hnear=0x12a49816718e30e5:0x44b0fb3d4f47660a,%EC%8A%A4%ED%8E%98%EC%9D%B8+%EB%B0%94%EB%A5%B4%EC%85%80%EB%A1%9C%EB%82%98&ei=HUW2UrPbA8HoiAe_o4GoCg&sqi=2&ved=0CPgBEMgT

 

 

 

 

 

혹시라도 산츠 역에 내려 잠시 식사할 데를 찾는다거나(하긴 산츠 역에서 도보로 딱 10분. 아주 가깝다고 할 수 는 없다^^), 숙소가 아바 호텔, NH 누만시아 호텔, 그리고 그 주변인 사람들을 위해 적어 놓는다.

 

산츠 기차 역 광장으로 나와 누만시아 Carrer de Numancia 라는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쭉 직진하면 바로 나온다. 찾기는 절대 어렵지 않다. 아바 호텔 Abba Hotel 만 찾으면 끝.

 

 

 

실내는 이렇게 생겼다. 왼쪽에 굉장히 독일식 발음을 하던 웨이터 아저씨가 보인다.

 

사실 이 식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음식, '바르셀로나의 국물'이라고 부를 만한 사르수엘라 Zarsuela 때문이다. 발음은 '사르수엘라'와 '자르주엘라'의 딱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르수엘라는 본래 노래와 무용이 결합된 스페인 특유의 가극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어디 사르수엘라 하는 데 없나"하고 묻자 "무슨 오페라 같은 걸 찾는 거냐?"는 답이 나왔다. 접객 업무가 많은 호텔 직원이 이런 반응인 걸 보면 마드리드에선 이 음식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했다.

 

정식 명칭은 사르수엘라 데 마리스코 Zarzuela de Marisco. 마리스코는 해산물을 뜻한다. 사진에서 보듯 꽃새우, 대하, 조개, 대구살, 홍합 등을 넣고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스의 국물에 걸쭉다기 보단 멀끔하게 끓여 낸 스튜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기가막히게 맛있다.

 

 

뭐 보시다시피 국물 재료에 맛 없을 것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맛은 보장인데,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육수 재료에서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달콤짭짤한 맛이 난다. 그게 일품이다.

 

같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는 뭔가 비슷한 느낌의 음식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 홍합 찜 Zuppa di Cozze 도 국물을 흥건하게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낸다. 예전 서울 청담동의 올리비아라는 레스토랑에선 여기서 발전된 혇태의 얼큰한 홍합 국물에 파스타가 떠 다니는 요리를 나띠보라고 불렀는데, 한때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다(그런데 왜 이름이 나티보인지는 모르겠다. Naitv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native에 해당하는 말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파는 자숙홍합으로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럴 듯 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식 해물탕인 야베스 bouillabaisse 도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부야베스는 강한 버터 맛이 났다. 물론 부야베스도 식당 따라, 조리사에 따라 레서피가 다를테니 그 강한 버터 맛이 부야베스의 본질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요리 자체를 비교하는 건 무작위로 태권도, 유도, 합기도 선수를 1명씩 데려다 놓고 싸움을 붙여 무도의 서열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우연히 태권도 9단과 합기도 8급이 맞붙을 수도 있으므로)로 바보같은 짓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어 본 지중해 풍의 해산물 스튜 요리 가운데서는 이날 라 펠라에서 먹은 사르수엘라가 단연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레서피를 배워다 한국에서 스페인식 해물탕집을 차려 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

 

가격이 싸지는 않다. 이 집에서 24유로. 하지만 먹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듯. 바르셀로나의 식당가에서 어느 식당이든 들어갔다면, 한번쯤 메뉴판에서 사르수엘라를 찾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같이 먹은 음식 중 하나. 아스파라거스와 조갯살이 들어간 스페인 식 계란 찜.

 

태국에 갔을 때 대부분의 요리 이름들이 직관적으로 재료의 이름을 붙이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 이를테면 뿌는 게, 팟은 볶다, 카리는 커리, 합하면 뿌팟퐁가리가 된다 - 생각해보면 한식도 비슷하다. 설렁탕이나 육개장처럼 이름만 봐선 뭘로 만든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만, 대개 아구찜은 아구를 찐 것이고 통닭은 닭을 통으로 구운 거다.

 

스페인도 대략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에는 스페인어의 식재료를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이게 하나 둘 셋 넷 세는 것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여기에 몇개 보태자면,

 

마늘 Ajo 아요, 고추 Picante 피칸테, 고기 Carne 카르네 (카르네는 거의 쇠고기지만 구별하면 쇠고기는 Ternera, 돼지고기는 Cerdo) 등이 있다. 알면 알수록 당연히 도움이 된다.

 

세상에 먹는 것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고, 물어보기 귀찮고, 괜히 말 안 통하면 답답할까 어색하고, 이런 게 싫어서 여행 가서 맥도날드만 먹다 오면 그것보다 큰 불행이 없을 듯 하다. 더구나 스페인처럼 맛난 것이 많은 나라에서.

 

 

 

하다못해 패스트푸드를 먹더라도, 스페인 곳곳에 있는 이런 '빤스' 같은 체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야간 촬영이라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노란 바탕에서 저 검은색 로고를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가격은 맥도날드와 비슷한 수준. 바게트 샌드위치 세트가 5~6유로 선이다.

 

샐러드도 박스로 팔아 좋았다. 맛도 굿.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됐다.

 

스페인 여행의 첫 방문지라서,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서 동경했던 도시라 아쉬움도 크지만, 아직 남은 여정이 긴 터라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게 됐다. 가우디, 피카소, 그리고 달리. 20세기를 장식한 천재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포만감 느끼는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거리에서 바 안을 들여다 보고 찍는 사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안은 멋지고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또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과 고민이 있을게다.

 

나흘이 후딱 지나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더 푹 젖어 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에 이렇게 안녕을 고하게 됐다.

 

 

 

다음은 그라나다로 가는 침대 열차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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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은 휴식과 쇼핑을 겸한 날이었으므로 포스팅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중에서도 하나만 골라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사 바트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라면 카사 밀라도 뭔가 관광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외관 사진도 잘 안 받는 카사 바트요에 비해 카사 밀라는 이렇게 사진발도 잘 받는다.

 

물론 입장료는 싸지 않다. 1인당 16.15유로.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꽤 거칠어서 카사 바트요에 비해 생활 건축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보기는 좋지만 실제로 살기에 그리 편할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본래 입구는 이랬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로비가 보인다.

 

 

1층으로 들어가면 카사 밀라 전체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다. 천장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은 뭘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실제로 뻥 뚫린 중정(中庭)이 있다. 스페인 전통 건축의 특징을 살린 셈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카사밀라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옥상이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이 기괴한 모습의 두상.

 

 

 

 

 

 

이 투구 같은 머리가 바로 카사 밀라의 상징. 

 

멀리 악바르 타워가 보이기도.

 

 

 

이 투구머리가 스타 워즈에 나오는 스톰 트루퍼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닮긴 닮았다.

 

 

정말 조지 루카스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갔을까? 물론 진실은 은하계 저 너머에...

 

 

멀리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도 보이고...

 

 

뭐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기이한 녀석들은 대부분 통풍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도 매우 그럴싸하다.

 

한국에 이런 게 있었다면 아마 주변 고층건물 사이에 폭 파묻혀 버리지 않았을까.

 

 

다양한 머리 가운데 이 머리들만 깨진 녹색병 조각을 사용한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카사 밀라의 특징은 천장 바로 아래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이다. 가우디 건축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카사 밀라의 모형.

 

 

 

카사 밀라의 기초.

 

 

그리고 이것이 가우디의 미완성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건축 때 등장했다는 철사 모형이다. 보다시피 쇠사슬에 매듭을 지어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의뢰인인 구엘 가문에서 새 건물의 디자인을 요구하자 가우디는 이 사슬 모양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뢰인 측은 이해하지 못했다.

 

의뢰인: 대체 이게 뭔가요? 어떻게 이렇게 생긴 건물을 짓겠다는 거죠?

가우디: 누가 이대로 짓는대?

의뢰인: 그럼요?

가우디: 답답하긴, 거울 좀 갖고 와 봐.

 

 

 

이렇게. 이걸 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딱 쳤다고 한다. 역시 가우디!

 

 

 

 

저 모습을 구현하겠다고 한 스케치가 이렇다. 하지만 이 스케치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현재의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이 아랫단 부분만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 지어졌더라면 또 하나의 명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 전시공간은 가우디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스-로마 시대 열주형 건물의 기둥을 가우디가 어떻게 변형했는지 보여주는 모형들.

 

 

건축의 안정성을 위해, 그리고 보다 훌륭한 채광을 위해 가우디가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게 설계한 카사 밀라.

 

 

그리고 가우디가 자신의 건축물에 응용한 자연물들의 모습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옥수수.^^

 

 

그리고 한 층을 더 내려가면 카사 밀라 완공 당시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이 남겨져 있다.

 

카사 밀라는 본래 바르셀로나의 신흥 부르주아들을 위한 아파트로 설계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바르셀로나에도 신흥 유산계급이 형성됐고, 이들은 중정이 있는 저택보다 가장 모던하게 설계된 주거공간을 요구했다. (물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카사 밀라 분양계획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한다.^^)

 

 

 

암모나이트 문양이 새겨진 육각 타일로 마감된 바닥. 그 정성이 참 대단하게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모형.

 

 

 

이렇게 보면 분양에 실패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천장이며 벽이 모두 곡선이다. 이런 집에선 기존의 장롱이며 의자 등을 놓고 사는게 영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20세기 초. 지금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실내 싱크대도 있다.

 

 

 

꽤 스타일있어 보이는 난방/조리용을 겸한 스토브.

 

 

 

비데까지 있는 널찍한 욕실.

 

어찌 보면 '현대 생활'에서 갖춰야 할 것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아르누보의 시대에 모두 마련된 것 같다.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소재가 좀 달라졌을 뿐 온수용 가스 보일러를 포함해 현대 가정에서 필요한 편의 도구는 이 시기의 사람들도 이미 누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듯 하다.

 

 

 

 

물론 카사 밀라 측은 '카사밀라는 가구를 사서 들어올 필요가 없는, 모든 가구와 생활용 시설이 붙박이로 부착된 신개념 주거공간'이라고 열심히 홍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좀 흉물스럽고... 사람이 막상 들어가 살기엔 많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들어와 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행 소유가 됐다고.

 

지금이라면 더더욱 살고 싶지 않을. 하지만 분명 멋진.^^

 

 

 

이렇게 해서 사실상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은 끝났다. 이제 저녁식사와 함께 그라나다행 침대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연내 바르셀로나 탈출이 목표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맞춰가고 있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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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apela] 스페인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빠에야 많이 먹고 와"라고 한다. 빠에야 Paella가 유명한 스페인 음식이긴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아무데나 가서 빠에야 먹지 말라'는 거였다.

 

일단 스페인 사람들은 '발렌시아가 아니면 빠에야를 먹지 말라'고 한다는데, 사실 요즘처럼 인구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이건 별 설득력 없는 얘기인 것 같다. 그 다음 중요한 얘기는 '주문하고 15분 이내에 나오는 빠에야는 냉동 빠에야'라는 설명이다(이 이야기는 빠에야 먹은 이야기 때 자세히).

 

아무튼 그래서 빠에야는 대단히 후순위에 있었고, 대신 타파스 Tapas 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런데 현지에 가 보니 타파스에서 한발 더 나간 핀초 Pincho 라는 것이 있다는 거였다. 핀초? 대체 핀초가 뭐야?

 

 

 

이게 핀초다. Pincho라는 말은 꼬챙이를 뜻한다. 그러니까 핀초의 정의는 '꼬치로 찍어서 한입에 넣을 정도 사이즈의 음식'을 말한다.

 

가끔 보면 '스페인 식 타파스 전문점' 같은 설명을 보게 되는데, 물론 타파스에 더 강점을 가진 식당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이번 스페인 여행 중 가본 식당 중에 특정 메뉴만 파는 '전문 식당'이 아닌 식당 중엔 '타파스를 팔지 않는 식당'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좋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면 웨이터가 "타파 Tapa로 줄까, 플라토 Plato로 줄까?'하고 묻는다. 이건 중국집이나 아구찜 집의 중/대 메뉴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요리를 0.5인분 이하 사이즈인 작은 타파로 시키든, 1인분이 넘는 큰 플라토로 시키든 그건 손님의 자유다.

 

대신 두 사람이 가서, 여러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싶을 때 타파스만큼 좋은 선택은 없다. 플라토로 시키면 기껏해야 1~2개밖에 먹지 못할 음식을 타파스로 시켜서 5~6가지를 맛보고 기분 좋게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스페인 음식 문화를 선진적이라고 칭찬하는 이유다.

 

핀초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맛있어 보이는 꼬치 요리를 다양하게 준비하고, 손님들이 골라서 먹게 한다. 그리고 핀초의 상징인 꼬챙이(이쑤시개) 수로 음식 값을 계산한다는 거다. 말하자면 이건 회전초밥의 서빙 방식과 거의 똑같다.

 

그라시아 거리에 나간 김에 핀초를 맛보기로 했다.

 

 

 

이건 물론 핀초 전문점이 아니라 서점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아직 명품 거리 한 복판에 서점이 있다.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직 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 그것도 대로변에 서점이 있다면 과연 한국인들은 믿으려고 할까.

 

이런 현실은 잠시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정문 사진은 빌려왔다.

 

요즘 바르셀로나에서 잘 나가는 핀초 전문점이라고 한다. 이름은 차펠라 Txapela. Passeig de Gràcia, 58, 08007 Barcelona

 

핀초는 본래 바스크 지방의 전통이라고 한다. 어디 보면 Pincho도 Pintxo라고 쓴 곳이 있던데, 지역의 특성을 살린 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한 메뉴. 물론 식재료 이름이 모두 스페인어로 써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이쯤 되면 회전초밥에 익숙한 분들은 아, 어떤 시스템이구나 하는게 딱 감이 오실 듯.

 

 

레스토랑 안쪽에서 바깥쪽을 찍으면 이렇다.

 

입구 쪽의 바에서는 진열장에 나와 있는 핀초 가운데 손님이 직접 골라 먹기도 한다.

 

하지만 안쪽은 메뉴를 보고 주르르 주문하면 주방에서 만들어 갔다 주는 시스템.

 

 

 

이런 시스템을 쓰는 이유는 핀초의 변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려진 대로라면 핀초는 모두 '식어도 상관 없는 음식' 들이다. 즉 변형된 샌드위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뉴를 보듯 이미 이 집의 핀초는 차가운 음식과 더운 음식이 혼재되어 있다. 구운 고기나 햄버그 종류도 포함된 거다. 그러니 오르 되브르 Hors d Oeuvres 풍의 핀초만 있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타파스보다 더 미니화 된 소형 음식' 으로서의 핀초가 등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덕분에 손님들은 더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둘이서 욕심사납게 12개를 시켰다.

 

이렇게 접시에 담겨 나온다.

 

 

 

 

위 메뉴에서 1, 8, 10, 12, 22, 24, 27, 29, 30, 31, 41, 47번을 골랐다. 개당 가격은 1.75~2.45 유로 사이. 평균 2유로 정도다. 

 

1. 미니햄버거,

8. 대구 샐러드

10. 하몽 슬라이스를 뿌린 계란 토스트

12. 새우 베이컨 등을 꿴 꼬치구이

22. 구운 오징어 토스트

24. 세가지 치즈를 넣어 만든 크로켓

27. 튀긴 영계와 소시지

29. 새우 샐러드 토스트

30. 머쉬드 포테이토와 고추 절임

31. 바르셀로나 식 오믈렛

41. 엔초비와 절인 고추, 올리브 꼬치

47. 토마토와 아투라 치즈 토스트

 

친한 사이라면 한입씩 나눠 먹으며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메뉴들을 보면 알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독특한 요리 같은 것은 없다. 대부분 큰 무리 없이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맛은 좋았다.)

 

물론 지난번에 소개한 라 볼라처럼 한가지 요리를 잘 하는 전문 식당을 찾아가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스페인 특유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핀초 전문 레스토랑 차펠라. 둘이 먹은 가격은 음료 포함 약 30유로. 점심 치고는 좀 넉넉하게 먹은 편이다.

 

 

 

마지막 날이라 그라시아 거리 부근을 걸었다. 여자 다리를 설치한 극장 간판이 눈길을 끈다.

 

 

뭘 해도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 한 켠의 대형 삼성 네온사인.

 

한국인 여행자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삼성 간판이 있는 건물의 바로 오른쪽 1층에 하드 락 카페가 있다.

 

여기서 소개한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저 건물 뒤편, 라 람블라 거리와 고딕 지구에 있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를 떠날 시간.

 

그래도 저녁식사는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간 동네 식당에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이었던 사르수엘라를 먹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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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우디의 작품을 꼽으라면 그건 누가 뭐래도 당연히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그리고 조금 더 꼽아 보라면 카사 바트요 Casa Batillo 카사 밀라 Casa Mila 를 꼽게 된다. 두 건물은 모두 바르셀로나의 청담동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두 건물과 주변 거리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http://fivecard.joins.com/1181 이쪽 참조. )

 

첫날 그 주변을 돌아봤고, 넷째날에는 건물 안까지 들어가서 살펴봤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다보탑,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석가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고르라면 카사 바트요 쪽.

 

 

 

카사 바트요의 모습이 무엇을 본뜬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비 모양, 고양이 모양, 해골 모양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이 건물을 왜 '뼈로 만든 집'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건물 한채가 전부 인체의 뼈대를 압축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한편 카사 바트요의 옥상을 보면 용의 비늘과 등뼈가 드러난다. 이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용이라는 설.

 

 

 

뭐 이런 데를 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고양이 해골인데, 이게 나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다고.

 

 

 

아무튼 카사 바트요는 전체 모습을 찍기가 꽤 까다롭다. 앞의 보도가 좁은데다 건물이 동향이라 오후에는 항상 역광이 된다. 차라리 밤에 가서 야경을 찍는게 좋을 듯. 야경은 이렇게 환상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건 기본 조명이고, 여기서 더 나가아면 특정한 날마다 다양한 조명으로 이 건물을 화려하게 꾸민다고 한다. 안 봐도 엄청나게 멋질 것 같다. 앞으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시는 분은 밤의 카사 바트요를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나는 야경은 못 봤다.

 

대신 적잖은 입장료를 내고 건물 안으로 진입.

 

무려 1인당 20.35유로다. 바르셀로나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0%로 할인권을 주긴 하는데 그래 봐야 18.3유로. 몇 층 되지도 않는 건물 치고는 정말 비싼 입장료가 아닐 수 없다.

 

 

 

1층. 바로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의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개의 도자기 형상이 방문자를 반기는데 그 바로 위에 앙증맞은 채광창이 따로 나 있다. 이게 바로 이 건물에 담긴 철학을 압축한 모습.

 

 

 

2층의 응접공간.

 

 

밖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 된다.

 

 

 

흔히 말하길 '가우디의 건물에는 직선이 없다'고들 하는데, 방 구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직선이 있긴 있다. 하지만 최대한 직선을 직선같지 않게, 원만한 선으로 감싸게 디자인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아름다움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채광. 이 건물 2층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이다. 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바로 앞의 불투명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자연광이 건물 안의 깊숙한 속살에까지 미치게 되어 있는 디자인. 가우디가 괜히 가우디가 아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복도. 정면에 보이는 작은 유리 문은 엘리베이터 룸이다.

 

 

 

어찌 보면 해골 무늬같은 창이 잇달아 있어 약간 코믹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 해골의 입 부분에 나 있는 세 줄의 구멍은 환기구 역할을 한다. 아무튼 푸른 색 타일로 장식된 계단 회랑이 마냥 아름답다.

 

 

 

2층 바깥쪽에 있는 작은 테라스.

 

 

 

그리고 그 테라스에서 바라본 카사 바트요의 뒷면. 앞면만큼 아름답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그 중간 층은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몇층 더 올라가면 천장의 채광창이 바로 보인다. 이 빛 역시 사방으로 나 있는 창을 통해 각 층의 공간으로 전달된다.

 

물론 공기도.

 

 

 

 

 

중간 층의 굳게 닫힌 문들. 이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1층과 2층, 그리고 맨 꼭대기층만이 공개된다.

 

 

이것이 꼭대기층의 복도.

 

 

어디서나 나선 계단은 기본이다. 이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꼭대기층의 시뮬레이션 룸에선 카사 바트요에 조명을 비추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모형으로 보여준다.

 

 

카사 바트요 옥상에서 뒤편을 바라보면 그라시아 거리의 이런 광경이 보인다.

 

 

 

그리고 옥상 앞쪽으로 가면,

 

이런 기둥들이 보인다. 바로 가우디 특유의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이 사용된 전형적인 예다.

 

 

 

동화속 같은 굴뚝 너머로 용의 등뼈가 보인다.

 

 

 

카사 바트요의 상징인 마늘 십자가와 용의 등 껍질.

 

 

정면에서 바로본 길 건너편.

 

 

 

 

 

 

 

 

다시 옥상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뭐 화장실은 그리 특이하지 않다.^^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확실히 스페인이 디자인 강국임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바로 이 의자.

 

그렇다. 사진을 키워 보면 가격이 1400유로. 뭐 한국 돈으론 약 200만원밖에 안 한다.

 

보면 볼수록 예쁜데 그냥 몇개 사 올 걸 그랬다. 가격도 얼마 안 하는데... (스페인 여행 카드 영수증을 받고 슬슬 미쳐가고 있음)

 

 

이건 미니어처. 하지만 가격은 결코 미니어처가 아니었다.^^ 디자인 값.

 

평소보다 조금 짧은 포스팅으로 마친다.

 

카사 바트요를 본 소감은 '어쨌든 죽기 전에 다시 와서 알록달록 야간 조명으로 물든 카사 바트요를 다시 보고 싶다'다.

 

 

 

다음 순서는 기대하시라 카사 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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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게레스를 다녀와 찾은 곳은 누가 뭐래도 바르셀로나의 여러 식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이미 이곳들 들러 본 사람들의 평을 여러 블로그에서 봤고, 또 민박집 주인장으로부터도 강력한 추천을 받은 곳이다. 바로 엘 레이 델 라 감바 El Ray De La Gamba. '새우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리 럭셔리하거나 분위기가 엄청나게 로맨틱한 곳은 아니다. 그런 곳들은 따로 있다.

 

다만 적당한 분위기와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맛으로 평가할 때 이 집이 준 감동은 매우 컸다.

 

 

 

 

바르셀로네타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불쏙 솟아 있는 작은 반도다. 바르셀로나 항구를 위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햔다. 아무튼 해변이 넓게 발달되어 있고, 제법 정취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기본적으로 남동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항구다. 그리고 바르셀로네타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네타 아래쪽, 그러니까 해변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항만이 개발되어 있다.

 

반대로 바르셀로네타의 바깥쪽(위 지도에서 파선이 그어져 있는 부분)부터 북동쪽으로는 대양을 맞는 모래톱이 죽 이어져 있다. 바로 파도가 적은 지중해를 향한 환상의 천연 해수욕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지도에서 A가 바르셀로네타 역, B가 목적지인 엘 레이 델 라 감바 다. A에서 B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 가장 좋은 코스라면 고딕 지구를 거닐다가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에서 바르셀로네타 역까지 걸어서 약 5,6분, 그리고 바르셀로네타 역에서 직선 길을 따라 내려와 약 10분이면 닿는다. B는 주소상으론 Pg. Joan de Borbo' 53.

 

가다 보면 수많은 비슷비슷한 해변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가다 보면 엘 레 델 라 감바 2호점이 먼저 나오고, 거기서 한 20미터만 더 가면 1호점이 등장한다. 사실 20미터 거리의 1호점과 2호점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어쨌든 1호점이 먼저 차고, 그 다음에 2호점이 찬다고 한다.

 

 

 

이렇게 생겼다.

 

 

본래는 건물 안이 레스토랑이겠지만 이렇게 노천으로 나와 있는 테이블이 당연히 훨씬 선호된다. 10월이라 밖에 앉아 있으니 꽤 선선한 날씨. 물론 반팔부터 점퍼까지 다양한 차림새가 공존한다.

 

지시대로 해물 모듬 절반 Parillada Medio Plato 을 주문했다. 본래 Parillada Plato 가 2인분 기준으로 40유로인데 '그걸 시키면 후회할 것'이란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Jamon y Melon을 먼저 주문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흔히 나오는 프로슈토+멜론과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결론은 똑같다. 프로슈토와 하몽은 본질적으로 국적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 식품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재료가 같고(돼지 뒷다리), 불기운 없이 소금에 절여 말린다는 공정이 같으니 맛이 그닥 다를 이유가 없다.

 

멜론은 스페인 멜론이 더 달다는 느낌.^^ 아무튼 맛있다.

 

 

 

그리고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팡 콘 토마테 Pan con Toamate.

 

항상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식'을 이야기할 때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거기다 간 토마토와 다진 마늘을 쓱쓱, 그리고 올리브 기름으로 마무리...'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팡 콘 토마테다.

 

구수하고 좋다. 그 자체로 맛이 좋은데, 아마 먹고 자란 사람이라면 꽤 생각날 음식인 수 있겠다.

 

 

 

나왔다. 절반 사이즈로 보기엔 꽤 거대하다.

 

구성은 꼭대기의 닭새우 1마리. 갑오징어 Sepia 1마리, 그리고 대구와 메로 종류로 보이는 생선살이 각각 한 피스(통으로 썬 단편 하나 정도), 대하가 약 20마리, 나머지는 접시 가득 홍합이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새우의 맛이다. 찐 새우 위에 뭔가 올리브 오일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 되어 있는데, 그 양념 맛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뭔가를 가미하니 새우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

 

새우 한 마리를 까서 입에 넣으면 바로 다음 마리에 손이 가 있어야 할 정도로 입에 침이 고인다. 저 새우에 뿌린 소스 맛의 비밀만 알아낸다면, 서울에서 당장 '바르셀로나식 해물찜' 가게를 차리고 싶다. 아무튼 처음 먹어보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양도 적지 않아 먹다가 홍합을 좀 남겼다. 그런데 옆자리의 백인 아저씨는 체구도 별로 크지 않은데 똑같은 Medo를 시켜서 혼자 다 뜯어먹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식사량이 만만찮은 듯.

 

 

 

식당 안쪽. 1층은 거의 다 주방으로 쓰는 듯 하고, 지하에 화장실과 테이블들이 있다. 뭐 굳이 해변까지 와서 지하에 앉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스페인 어디나 매달려 있는 저 하몽들.

 

아, 물론 1층 야외 테이블이라고 해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은 아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길 건너편도 육지다. 갈매기가 좀 날아다니는 정도?

 

 

물론 해물 전문 식당이니 하몽만 걸려 있지는 않다. 식재료로 쓰이는 바닷가재들이 어항을 헤엄치는 모습.

 

 

 

식사 후 천천히 바르셀로네타 해변 쪽으로 걸어내려왔다.

 

그리고 마주친 건 호수처럼 잔잔한 지중해 위의 달. 어쩐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파도는 거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잔잔하게 밀려오고, 그 위로 구름 낀 하늘, 그리고 구름 속의 달.

 

철 지나 텅 빈 바닷가에 이렇게 달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광경.

 

자연상태가 아닌, 촬영용 세트 안에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여름엔 세계 각국에서 온 피서객들이 즐비했을 해변. 10월엔 쓸쓸하기만 하다.

 

고성방가 금지, 해변 수면 금지 사인만이 한때의 영화를 대변해 줄 뿐.

 

 

가다 보니 희한한 기념물이 등장했다. 정말 달리의 그림 배경에나 나올법한 초자연적인 구도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이렇게 바다 가까이 나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달을 감상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분위기로 따지자면 이런 곳들이 우리가 식사한 엘 레이 델 라 감바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로맨틱해 보인다.

 

특히 맨 아래 간판의 살라망카라는 가게 뒤켠이 눈에 들어왔다(그 바로 위 사진). 사진상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화톳불까지 군데군데 피워 놓은 것이 아주 제대로라는 느낌이다.^^

 

혹시 신혼여행 같은 걸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게들을 가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택시로 숙소행.

 

엘 레이 델 라 감바는 저 해산물 모듬 절반을 먹는다는 전제하에 2인 기준 약 35~40유로 정도로 음료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식후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산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한여름이라도 점심 보다는 저녁에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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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미술관의 미로같은 내부를 헤매다 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방에 도달한다.

 

유명한 '메이 웨스트의 방 Mae West Room'. 메이 웨스트(1893~1980)는 흑백영화시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1920~30년대의 섹스 심벌이다. 실제 발음은 분명 '메이' 인데, 많은 한국인들이 Mae라는 철자 때문에 이 배우를 '매 웨스트'라고 부른다. 뭐 일본에선 '마에 웨스트'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보면 의도가 보이긴 하지만 그냥 방이다. 도시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약간 코믹하게 생긴 벽난로가 있다. 마지막으로 입술 모양의 소파가 놓였다.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그 방을 입술 각도에서 바라본다. 물론 전체를 조망하는 큰 돋보기 앞에는 거대한 금발 모양의 가발이 걸려 있다. 사실 줄이 너무 길어서 직접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보는 건 포기하고, 달리가 의도한 형상을 찍어 왔다. 그러니까 위 광경이 이렇게 보이도록 하는게 달리의 의도였다. 

 

 

 

 

메이 웨스트의 실제 모습. 아마도 이 사진을 모델로 한 듯 한데, 달리의 시도에 대해 웨스트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달리 극장미술관의 한 전시관은 이 미술관의 공동 설계자이며 달리 사후 관장을 지낸 화가 안토니 피초트(피쇼트라고 읽을 수도) Antoni Pitxot에게 헌정되어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모든 세상을 저 색색깔의 조약돌로 환원시켰다는 데 있다. 해설에 따르면 그는 일단 조약돌로 자기가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다시 그걸 유화로 그리기를 즐겼다고.

 

...달리와 어울렸다니 뭐 일단 그것부터 정상인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기억의 우화 Allegory of the memory'. 이 그림의 변형만도 수십종이다. 아마도 기본 형태는 루벤스의 '삼미신(三美神) Three Graces'을 돌멩이로 재구성한 듯한 느낌이다.

 

 

 

이 유명한 그림 말이다. 물론 루벤스 시대의 취향에 따라 좀 굵으시긴 하다. 이 그림의 원본은 며칠 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영접하게 된다. 아무튼 화면에 있는 세 여성 형상의 구도로 보아 이 그림을 변형시킨 것으로 느껴진다.

 

 

혹은 오른쪽에 남자로 보이는 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루벤스의 또 다른 그림, '파리스의 선택 Judgement of Paris'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이 셋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가를 놓고 파리스에게 판정을 요구한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광경이다. 여기서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그 댓가로 헬레네를 요구하면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 가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두 권의 책은 꼭 읽어야 한다. 바로 그리스 신화와 성경이다. 인상파 이전의 수많은 거장들이 그린 그림 중 80% 정도는 성경과 그리스 신화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이다. 어느 정도나 보면 되냐고? 위 그림을 보고 투구와 방패가 있는 여자(아테네), 날개달린 꼬마 에로스를 거느린 여자(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여자(헤라), 유명한 지팡이 카듀케우스 Caduceus 를 들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남자(헤르메스), 그리고 목동 형상을 하고 누구에게 사과를 줄까 고민하고 있는 남자(파리스)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면 웬만한 그림은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면 다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런 걸 알 수 있는 눈과 그렇지 않은 눈으로 루브르나 프라도, 우피치, 내셔널 갤러리 같은 유럽 굴지의 미술관을 갔을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크기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얘기다. 어찌 보면 '최소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심지어 초현실주의의 거장, 달리의 극장 미술관에서도 고전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필요하다. 여담 끝.

 

 

 

이 달리 미술관은 엄청나게 규모가 큰 미술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구석 하나 빈 곳이 없다. 어디 한 군데라도 눈이 스칠 곳이 있으면, 그곳이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구경할 수 있는 동선 역시 공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짜여졌다.

 

 

 

제목도 알 수 없는 소품 하나. 반쯤 비치는 조명을 통해 '에일리언'에 나올 법한 형상이 슬쩍 드러나 보인다. 그냥 드러나 있다면 별 특이한 점이 없었겠지만, 이렇게 장막을 통해 보여주면서 호기심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공들인 대작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소품들도 즐비하다. 뭘 그렸는지 가장 궁금했던 그림. 메두사일까, 밥 말리일까.^^

 

 

 

그리고 매우 드문 생활형 그림. 갈라를 그리고 있는 달리 자신의 자화상(?)

 

전시실을 돌다 보면 바람의 궁전 Palace of Wind 이라는 매우 인상적인 방에 들어가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웅대한 규모의 천정화가 일단 방문자를 압도한다.

 

 

 

도록 버전으로 빌려오면 이렇다. 물론 구상은 웅대하지만 내용은 코믹하다. 양쪽의 거상은 당연히 달리와 갈라(오른쪽 파란 바지 입은 사람의 콧수염을 주목하라^^). 양쪽 가장자리와 사방에는 숲속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는 갈라와 달리, 그리고 피게레스에 내리는 금화의 비 등 얼핏 봤을 때 중세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운 내용이 그려져 있다.

 

 

 

 

이 바람의 궁전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조각. 위쪽은 메두사의 머리를 높이 든 페르세우스, 그리고 아래 쪽은 십자가 없는 예수다.

 

 

그리고 그 조각 아래의 받침대는 니케 여신상을 거울로 반사해 양쪽 날개를 모두 갖게 한 형상이 뒤집힌 모습이다.

 

...이미지의 폭격은 끝없이 이어진다.

 

 

 

 

바람의 궁전 한켠에 설치된 스튜디오. 유명한 '기억의 집착'이 태피스트리 버전으로 걸려 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서재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가구에서는 가우디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갑자기 다른 화가의 그림이 보인다. 부게로 Bouguereau 의 그림이나,

 

 

 

달리에게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거론되는 엘 그레코 El Greco의 작품.

 

 

 

바람의 궁전 한켠의 작품. 방 하나가 궁극의 여성성을 설명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위에 소개한 부게로의 그림과 미국 조각가 존 디 안드레아 John De Andrea의 이 작품. 존 디 안드레아는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하이퍼리얼한 누드 상(이라고 쓰고 마네킹이라고 읽어도 좋을 듯. 주 사용 제료가 '폴리에스터'다)을 즐겨 작품으로 내놓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 위에 문어 한마리가 버티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모세와 일신교 Moses and Monotheism. 이런 작품이 꽤 많은데, 이걸 어디까지 달리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도 조금 의문이긴 하다. 

 

아무튼 박물관 구경도 막바지를 넘어섰는데,

 

 

이번 방문에서 또 하나 큰 충격을 받은 작품이라면 바로 이 작품. '사이버 공주 Cybernetic Princess'. 물론 이 작품에도 해설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냥 제목만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사연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작품은 그냥 갑옷을 입은 로보트처럼 보인다. 발바닥이며 온 몸에 회로도나 기판 같이 생긴 것이 새겨져 있어 제목과 뭔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의 제목이 '사이버 공주'일까.

 

중국이 자랑하는 한나라 때 유물 중에 금루옥의(金縷玉衣)라는 것이 있다.

 

 

 

바로 이것. 모르는 사람은 이게 달리의 작품인 줄 알 정도로 외양은 똑같다.

(물론 잘 보면 남성용과 여성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달리의 작품은 당연히 여성용. 이 사진은 남성용.^^)

 

2000여장의 작은 옥판을 금실로 이어 붙여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옷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산 사람이 입을 수는 없고, 죽은 뒤에 입는 수의다. 중국 한(漢)대에는 옥의 찬 기운과 금의 녹슬지 않는 기운이 사람의 시신을 썩지 않게 보관해 준다고 믿었고, 이런 수의를 입으면 언젠가 다시 살아나 영생불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금루옥의의 주인은 한나라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 유승(中山靖王 劉勝)과 그의 아내인 두관(竇琯)이다. 경제는 열 세명의 아들을 왕으로 봉했는데 유승은 그중 중산국의 왕이 되었고, 정(靖)이란 시호를 받아 중산정왕이라 불린다. 1968년에서야 중국 하북성 능산(凌山)에서 발굴된 뒤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개인적으로 이 금루옥의를 처음 본 것은 국내에 개봉됐던 허관걸 주연 영화 '미스터 부'를 통해서였다(확인해 보니 이 영화는 미스터 부 시리즈 4편, '마등보표'였다^^). 물론 그 옷이 세계적인 보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여담이지만 '중산정왕 유승'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분들이 꽤 있을 거다. 그렇다. 유비가 자신의 조상으로 꼽는 한나라의 황족이다. 유승은 무려 42년간이나 중산국의 왕으로 있으면서 부귀와 향락이 하늘에 달해 딸 아들 합해 120명을 두었다는, 한나라 때 '좋은 팔자'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사람이다. 중산국은 유비가 살던 탁군 바로 옆이고, 그 수많은 아들들이 다 자손을 뿌렸을테니 후손 가운데 짚신 장수 하나 쯤 있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아무튼 저 금루옥의를 이역 만리 스페인 피게레스에서, 그것도 달리의 작품 속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새삼 감개가 무량.

 

 

 

 

 

 

 

2층의 휴게공간에서 눈길을 쓰는 사이프러스 소나무. 달리 미술관답게 나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초자연적으로 보인다.

 

 

 

 

 

 

아쉬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섰다.

 

피게레스에서 1박 이상 할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당일 여행을 온 사람들은 시간 관리에도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소요시간은 AVE라서 얼마 안 걸리지만, 배차가 2시간에 한대 꼴이다. 미리 차 시간을 확인하지 않으면 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시내에서 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냥 되지는 않는다. 일단 관광안내소를 찾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까운데 뭐 택시 타고 들어가면 되지'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워낙 좁은 촌동네라 다운타운(스페인 도시들의 다운타운은 Gran Via라고 누차 얘기했다)으로 가지 않으면 택시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달리 미술관을 관람하고, 피게레스 시내 구경을 마쳤다면 첫째 그란비아를 찾아 택시를 타거나, 둘째 버스 정류장 위치와 배차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게 상책이다. 버스도 2013년 10월 기준 배차 간격이 약 30분 정도이므로, 여차하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저녁에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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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간다면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 바로 인근의 도시 피게레스 Figueres 였다. 이유는 단 한가지.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의 고향이며 달리가 직접 구상한 달리 극장 미술관 Theatro-Museo Dali 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달리에 대한 외경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아마도 달리라는 화가를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된 그림은 누구나 다 아는 '기억의 집착'이었지만  그 그림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피카소 이후의 화가들은 전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의 어느날, 친척집에 있는 꽤 큰 화집에서 놀라운 그림 하나를 보게 됐다. 바로 이 그림이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의 성사(聖事)'라는 1955년작. 두 페이지를 펼쳐 소개된 이 그림을 보고 단번에 빠져들었다. 당시의 소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현대 화가 중에도 이렇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웅대한 구도와 구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소견으로는 인류 역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보다 이 그림이 훨씬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대학 진학 후에는 프랑스 광고계의 거물 자크 세겔라 Jacques Séguéla 가 쓴 '광고에 미친 사나이' 라는 책에서 우연히 달리와의 일화를 접하게 됐다. 세겔라가 고급 빌라의 광고를 맡으면서, 빌라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위해 달리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난 뒤 벌어진 에피소드였다. 상당히 긴 내용이라 여기 소개하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달리라는 사람이 작품 만큼이나 기괴한 사람(을 넘어 사실상 정신병자)이라고 느끼기엔 충분했다.

 

가장 최근 접했던 달리와 관련된 문건은 스탠 로리센스의 책 '달리와 나' 였다. 지금도 이 책의 황당무계한 내용이 어느 정도 소설이고 어느 정도 실제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한 달리의 일화, 그리고 지금도 시장에 달리의 그림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기에 읽은 리처드 폴스키의 책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에 나오는 현대 미술 시장과 컬렉터들의 행동 양식에 비쳐 볼 때 상당 부분은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달리와 나'를 읽은 뒤 피게레스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또다시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왔다. 

 

 

 

바르셀로나(지도 아래 A)에서 피게레스(지도 위쪽 B)로 가는 길은 북동쪽, 그러니까 프랑스와의 국경으로 가는 길이다. 피게레스에서 조금만 더 가면 프랑스 땅이다. 피게레스에서 동쪽으로 죽 간 해변의 #표시가 있는 곳이 카다케스 Cadaques. 발리가 들르곤 했다는 바닷가 어촌 마을인데 달리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호젓한 지중해 어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내친 김에 바르셀로나 교외에서 사람들이 많는이 찾는 곳이 몬세라트 Montserrat 와 기로나 Girona 다. 일단 기로나는 위 지도에서 피게레스로 가는 길 중간에 '헤로나'라고 표시된 곳이다. 거의 모든 관광 책자와 자료에 '히로나'라고 되어 있는데, 기차 안에서 안내 방송을 할 때에는 분명히 '기로나'라고 했다. 현지인들도 '기로나'라고 한다.

 

아무튼 바르셀로나를 가게 되면 암벽과 수도원이 유명한 몬세라트(위 지도에서 바르셀로나 북서쪽, C-16 사인 옆의 빨간 동그라미 표시), 중세 성곽 도시의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기로나, 그리고 달리 미술관이 있는 피게레스 중 하나 정도는 가 보게 된다. 어디를 선택하느냐는 시간의 문제.

 

가까운 거리와 경관을 좋아한다면 몬세라트, 중세 도시의 정취가 그리우면 기로나라고들 한다(둘 다 안 가봤으므로 길게 할 말은 없다). 그리고 미술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피게레스를 선택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피게레스는 약 140Km 거리. 예전에는 바르셀로나의 중앙역인 산츠 역 Sants Estacio 에서 피게레스까지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리면 도착할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고속전철 AVE가 개통됐다. 단 문제는 AVE로 닿는 역은 시 외곽에 새로 지은 피게레스-빌레판트 Figueres-Vilafant(우리나라로 치자면 대략 천안아산역 같은 경우) 역이라는 점이다.

 

작은 시내 복판에 있던 구 피게레스 역과는 달리 이 역은 지도상으로 2Km 정도 외곽에 있다. 그깟 2Km라고 코웃음 치실 분도 있겠지만, 막상 걷자면 텅 빈 언덕과 벌판을 거쳐 30분 정도는 잡아야 할 거리였다. 차량 이동을 권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대략 피게레스 관광안내소 근처에서 내리게 된다. 불행히도 시내 표지판은 엉망이라 중간에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너무나 좁은 동네라 어떻게 하든 달리 미술관에 닿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길 묻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단 노인에겐 절대 물으면 안 된다.^^)

 

이내 달리 미술관의 위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빨간 건물 위의 금색 조상과 달걀의 기괴한 조화가 눈길을 끈다.

 

...근데 왠지 멋져.

 

 

여기서 또 한번, 피게레스의 성당 종탑이 보이는 골목으로 꺾어진다.

 

 

그리고 나서 전혀 이런 게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 입구가 나타난다.

 

 

정면의 달걀머리 마네킹 같은 형상은 카탈루냐의 철학자 프란세스코 푸욜 Francesc Fujol 에게 헌정된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도 멋져.

 

 

구형 잠수복과 황금으로 된 바게트 빵을 든 자와 Jawa(스타워즈 IV의 사막 부족) 같은 형상이 나란히 선 기괴함.

 

...역시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멋지다고.

 

표를 사서 입장하고 나면 작은 뜰이 나타나고, 정면의 기이한 형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원형의 작은 정원이 있고, 한복판에는 캐딜락 한 대. 그리고 캐딜락 위에는 고대 원시인들의 비너스 여신상을 연상시키는 여자 조각상이, 그 뒤에는 타이어로 만든 탑이 우뚝 서 있다.

 

이것이 표를 끊고 중정으로 들어선 관람객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광경이다.

 

 

 

탑 위에는 뜬금없이 배 한 척. 그리고 배의 마스트 끝에는 검은 색 우산이 매달렸다.

 

이 정원을 둥근 벽이 둘러싸고 있고, 벽에 난 창에서 금색 마네킹들이 환영하듯 손을 흔든다.

 

 

 

여성상의 이름은 '에스더 여왕 Queen Esther'.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른스트 푹스 Ernst Fuchs 의 작품이다.

 

에스더 여왕은 구약성서에서 페르시아 왕에게 시집간 유태인 처녀로서,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한 페르시아 중신들에 의해 유태인이 몰살당할 위기에 놓이자 목숨을 걸고 남편인 왕에게 간청해 동족들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다.

 

 

 

물론 그 에스더와 이 조각상이 대체 무슨 관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구석기 유물인 빌렌도르프의 관능미 넘치는 비너스 Venus of Willendorf, 혹은 아스타르트나 이슈타르 여신상이 떠오를 뿐이다.

 

 

 

 

뭐 이런거 말이지.... 아무튼 뭔가 멋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 에스더 여왕상은 쇠사슬을 통해 뒤의 타이어 탑과 연결되어 있다. 타이어 탑은 달리 스스로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의 기둥을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하필 왜 트라야누스의 기둥일까. 이유는 트라야누스가 스페인에서 태어난 로마 황제이기 때문이라고.

 

육로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스페인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를 거쳐야 갈 수 있는 땅이다. 게다가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고울 지방(지금의 프랑스)보다 히스파니올라(당연히 스페인) 훨씬 더 먼저 로마의 영토로 편입됐다. 로마인은 기본적으로 바다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을 죽 훑어내려가며 북아프리카에서 그리스, 소아시아를 죄다 장악하고 지중해를 자신들의 수족관으로 만든 뒤에야 비로소 북으로 알프스를 넘어 중부 유럽으로 진출했다.

 

이러니 뱃길로 지중해를 건너 바로 도착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는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게다가 이베리아 반도의 끝에는 '길만 건너면 아프리카'인 지브롤터가 있다. 지중해 장악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할 곳이다.

 

...또 삼천포로 빠졌다. 아무튼 그래서 '트라야누스의 기둥'의 타이어 버전이 여기 있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 아치 모양의 거대한 격자창 너머로는 달리가 메트로폴리탄 발레 '라비린스'에 사용했던 거대한 무대 배경막이 걸려 있다. 이 배경막을 통해 왜 이 이상야릇한 전시장을 '극장 미술관 Theatre-Museo' 라고 이름붙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왕상(왠지 자꾸 여신상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의 뒤쪽에서 보면 그 벽을 장식하고 있는 기괴한 조각상들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구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흐르는 음악은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화적인 느낌이 신비로운 맛을 더한다.

 

 

 

 

정원을 지나 들어간 박물관 메인 건물 1층. 건물 밖에서 보던 바로 그 돔(cupola)이 있는 부분이다.

 

정원에서부터 1층까지,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상상 이상이고,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다. 쏟아지는 이미지의 폭격이라고나 할까. 거대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그야말로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어때, 이래도 인정 안 할래?'하는 달리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쿠폴라 아래로 들어와 정원을 바라보고 좌우 벽에는 거대한 그림이 각각 걸려 있다. 그중 오른쪽 그림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그림이다. 바로 '환각을 일으키는 투우사 The Hallucinogenic Toreador'. 어디선가는 '투우사의 환상'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된 그림이다.

 

그런데 원본은 아니라고 한다. 원본은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다^^)에 있는 달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2층에 유명한 '링컨의 얼굴' 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작품의 제목은 '18미터 밖에서 보면 링컨의 얼굴인, 해변을 바라보는 갈라의 누드 Gala nude looking at the sea, which, at 18 meters appears as President Lincoln'다.

 

정말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그렇다. 그는 18미터 밖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를 갖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 외에도 이 미술관에는 익히 보던 작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섹스 어필의 유령 The spectre of sex appeal' 이라든가. 이 그림이 이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엽서 두세 장 정도의 크기.

 

 

역시 유명하고 여러 작품으로 재생산 된 '갈라리나 Galarina' 당연히 다들 아시겠지만 갈라는 달리의 아내이자 뮤즈다.

 

 

유명한 빵 바구니 그림은 앞에 금으로 도금된 빵 바구니가 함께 있어야 완성된다.

 

 

백조로 변해 레다를 유혹한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아토믹 레다 Leda Atomica'. 물론 여신의 원형은 역시 또 갈라다.

 

 

'풍자적 구성 Satirical compositon'. 히든싱어 관련 글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앙리 마티스의 '춤' 연작과 너무나 닮아 있다. '춤'의 모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달리 같은 거장도 초기에는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훈련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시도 중의 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의 재해석.

 

 

 

 

루브르에 있는 유명한 니케 여신상을 재해석한 이 작품의 제목은 '릴리스-레이먼드 루셀에 대한 오마쥬 Lilith-Hommages to Raymond Roussel' 이다. 에반게리온 덕분에 이제는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릴리스는 유다 전설에서 이브(하와) 이전에 존재했다는 아담의 짝이다. 아담에게 종속된 이브보다 독립적인 여성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권 운동의 심볼로 가끔 쓰이기도 하는데, 니케 여신상을 여성의 성기와 연결한 상상력이 다만 놀라울 뿐이다.

 

지하로 내려가면 달리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인 금속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신인 나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법은 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달리. 그러고 보면 금이 등장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금빛이 찬란한 지하 전시실 벽면을 보면, 이 놀라운 박물관에서 가장 감명깊은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달리의 묘비.

 

그렇다.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의 '극장 미술관'은 달리의 거대한 묘지였던 것이다.

 

달리 미술관을 정리하자면 갈길이 워낙 멀지만 달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테니 대략 다음편으로 마감. 그리고 나서 그날 밤. 가을날의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갔는데... 달리의 그림 속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이런 느낌.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벌써 10편째 기행문인데 아직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까지 언제 가나. 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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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가기 전부터 리세우 Liceu 극장 이나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중 한군데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시다시피 리세우 극장은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장. 그리고 카탈루냐 음악당은 '가우디의 라이벌'이었다는 평 때문에 슬슬 스페인 바깥에도 알려지고 있는 몬타네로가 지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연장을 방문하는 낮 투어 가격만도 30유로. 게다가 투어 내내 사진 촬영 금지를 강조한다고 한다. 그럴 바엔 공연을 보는게 낫지! 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공연을 예매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낚인 것 같기도 했다.

 

이 투어의 존재가 어쩌면 공연 관람을 유도하는 마케팅이었는지도.^^

 

 

 

그런데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선 극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19세기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이 건물에 바치는 정성은 예사롭지 않다. 1층 출입문 옆의 오래된 매표구 자리를 보면 알 수 있듯, 원형 그대로의 보존하려는 노력이 매우 가상하다.

 

건물 뒤편의 정식 매표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식당이 있다. 여기서 한 첫번째 실수는, 이 극장 뜰에 있는 레스토랑과 내부의 카페테리아가 너무 격이 다른 식당이었다는 것. 당초 뜰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뭐, 카페테리아도 모습은 훌륭하다.

 

 

 

 

고풍스러운 시설에서 간단한 먹거리(pincho)와 음료, 맥주, 와인 등등을 판다.

 

문제는 식사. 10유로에 파스타와 음료를 주는 메뉴가 있었다. 웨이터라는 작자에게 무슨 파스타냐고 물었다. '오늘의 파스타'란다. 그래서 그 '오늘의 파스타'가 대체 무슨 파스타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이 가관. '오늘의 파스타는 스파게티'라는 거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스파게티가 어디 한두가지냐. 그럼 그 스파게티는 '어떤 스파게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냥(just) 스파게티'라는 거다. 그래서 '뭐가 들어가는 스파게티' 냐니까 '밀가루, 물, 소금, 토마토...' 동행인만 없었으면 확 때려 엎을 뻔 했다.

 

아무튼 시간도 그렇고, 다른 사정도 있어서 그 '그냥 스파게티'를 시켰다. 그 결과는 이랬다.

 

 

 

토마토 소스도 아닌, 케첩도 아닌, 뭔가 붉은 국물에 버무린 스파게티였다. 먹어보니 아주 오래 전, 1980년대 학교 구내식당에서 팔던 함박스테이크(한 7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에 살짝 끼어 나오던 '스파게티'의 맛이었다. 햄버거로 치자면... 한 30년 전에 중고등학교 매점에서 팔던 계두버거(패티에 닭 머리를 갈아 넣는다는 소문이 있던 햄버거. 공식 명칭은 '빅보이'인가 그랬다. 먹다 보면 뭔가 뼈처럼 딱딱한 것이 씹혀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런 우아한 공연장에서 이따위 음식을 팔다니. 기분이 팍 상했다. 관광객의 속을 터지게 했던 웨이터의 태도가 문득 이해가 갔다. 대체 저따위 음식을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먹는 둥 마는 둥(물론 그렇다고 남겼을 리는 없다) 접시를 물리고 공연장으로 입장.

 

 

 

안쪽에서 본 1층 로비.

 

 

뉘신데 여기 계신지...

 

 

 

1층에는 로비뿐이고 실제 공연장은 2층부터다. 그리고 계단 하나, 벽 마무리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2층에는 뭔가 좀 더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이 있다.

 

 

 

레스토랑 입구의 휴게공간. 인터미션 때 왕년의 귀족 아저씨들이 샴페인과 시가 한 대를 즐겼을 법한 공간이다.

 

아르누보적인 느낌이 오늘날 보기엔 약간 조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최대한의 공력을 들여 치장한 느낌.

 

 

 

극장 내부. 무대의 정면. 대형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무대는 다소 좁아 보인다. 풀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나 말러를 공연하기엔 다소 비좁아 보일 정도.

 

 

 

 

낮에 보면 더 예쁘다는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렇게 4층 객석의 아치와 연결된다.

 

 

 

2층이 무대와 같은 높이. 3층과 4층에 객석이 있다.

 

 

자세히 보면 이런 느낌.

 

 

 

무대 정면의 위쪽도 화려함의 극치다.

 

 

조금 확대해 보면 이런 느낌. 그러니까 저 가장자리를 둘러 친 거대한 장미꽃 모양을 비롯해 전체 내부의 인테리어 컨셉트가 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거대한 꽃밭이다.

 

 

 

 

딱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무튼 대단히 공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규모는 꽤 작은 극장이다.

 

 

 

아무튼 공연 시작.

 

볼 공연은 오페라와 플라멩코를 결합해 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오페라 이 플라멩코 Opera y Flamenco. 지난 2009년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거의 상시 공연되고 있고, 수시로 해외에서도 초청됐던 공연이다.

 

홈페이지는 http://www.barcelonayflamenco.com/shows.php?id=486#cast-tab 

카탈루냐 음악당은 http://www.palaumusica.cat/en/

 

 

 

2013년 10월19일의 출연진은 이랬다.

 

 

바이올린, 첼로, 카혼(상자같이 생긴 타악기), 피아노에 노래를 겸하는 기타리스트까지 반주자 5명, 칸타오르 cantaor(남)와 칸타오라 cantaora(여) 라고 불리는 플라멩고 전문 싱어 2명, 그리고 소프라노와 테너가 각각 1명씩 등장하는 제법 큰 규모다.

 

 

 

 

물론 이 위에 쓴 사람들은 보조 출연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뭐니뭐니해도 무대의 꽃은 각각 바일라오르 bailaor(남)와 바일라오라 bailaora(여) 라고 불리는 플라멩코 댄서들이다. 특히 이 무대의 꽃은 카티아 모로 Katia Moro(바로 위 사진) 라는 이름의 바일라오라였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공식 예고편을 보는 게 빠를 듯.

 

 

 

 

뭔가 좀 아쉽다. 카티아 모로의 모습을 좀 더 볼 수 있는 다른 공연장의 모습이다.

 

 

 

사실 오페라와 플라멩코의 결합이란 플라멩코의 발상지로 꼽히는 세비야가 무대인 오페라 '카르멘'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나중에 세비야에서 본 플라멩코 공연에도 '카르멘'의 한 장면이 동원된다). 그 밖의 다른 오페라들은 사실 플라멩코와 큰 접점은 없다. 그리고 '오페라' 파트에서 등장하는 두 성악가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실제 오페라의 주역급은 아니라는 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와 플라멩코(스페인어 y는 and의 뜻)'는 꽤 매력적인 콘텐트다. 이유는 전체 공연에서 약 1/4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오페라와는 별개로 3/4 정도의 비중인 플라멩코의 수준이 워낙 훌륭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위에서 거론한 카티아 모로의 열연은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스페인도 인터넷 사용이 꽤 보편화되어 있는 느낌인데 비해 플라멩코 관련 내용은 온라인으로 검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 플라멩코도 한국에서의 국악의 위치와 다소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80분 정도의 공연을 마치고 박수갈채에 답하는 출연자들.

 

반대쪽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다. (물론 이 사진은 위의 Opera y Flamenco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

 

이렇게 해서 첫 이틀이 폭풍같이 지나갔다.

 

 

P.S. 스페인을 여행중인 한 관광객이 이 음악당에서 이 무지치 합주단의 공연을 본 뒤 "이렇게 소리가 좋은 공연장은 오랜만"이라는 소식을 알려 왔다. 카탈루냐 음악당은 보기만 좋은 공연장은 아닌 듯 하다.

 

 

 

(예고) 셋째날, 드디어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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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 언덕으로 가는 길은 에스파냐 광장에서 시작된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몬주익 언덕의 주요 포스트를 거쳐 몬주익 성을 지나 다시 광장으로 내려온다. '그 중간 중간'에 카탈루냐 미술관, 호안 미로 미술관, 보타닉 가든 등의 볼거리가 있다. 전부 샅샅이 구경하고 나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한 오후. 다리도 아프고 그럴 여유가 없다.

 

심지어 이런 중요한 포스트도 버스 안에서.

 

 

 

 

 

 

제일 크게 나온 사진이 제일 흔들렸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웅,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부조다.

 

당시를 기억할만한 또래라면, 결승점에 선두로 달려들어오던 황영조의 모습을 중계하는 캐스터의 "몬주익 언덕에.... 몬주익 언덕에...."라는 숨가쁜 코멘트를 통해 '몬주익 언덕'이란 이름을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92년 8월10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폐막 경기인 마리톤에서 황영조는 전 세계의 황금 다리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황영조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우승후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황영조가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이유는 더위에 강하다는 점. 당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위원회는 초여름 무더위를 피해 오후 6시30분로 출발 시간을 미뤘다. 그래도 시내는 스페인의 태양에 후끈 달아올라 있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결승점인 몬주익 경기장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대로 곁에 지어져 마지막 2km 정도는 오르막을 뛰어올라야 하는 난코스였다. 이미 세계 마라톤은 지구력에서 스피드로 패러다임이 바뀐 시점이었지만, 이런 난코스라는 점을 감안할 때 누구보다 폐활량이 크고 지구력이 강한 황영조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더위에 강한 한국 마라톤'은 이미 10년 전, 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누구도 예상 못한 금메달을 따낸 김양곤 때부터 검증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김양곤은 기록상으론 2시간22분대의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뉴델리의 무더위 속에서 페이스를 잘 지켜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몬주익 영웅'의 탄생.

 

 

 

예상대로 당시 세계신기록보다 7분 정도 뒤진 기록이었지만 무더위 속에서 기록한 값진 승리. 특히 손기정 이후 56년만의 마라톤 금메달이라 의미는 더욱 컸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황영조 신화의 시작이다. 황영조는 2년 뒤인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국민 영웅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98년 이봉주의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한국 마라톤은 전성기를 이어갔다.

 

 

어쨌든 중간의 포스트들은 모두 통과하고 도착한 곳이 바로 몬주익 언덕 정상에 있는 몬주익 성이다.

 

몬주익은 '유태인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뭐 유태인이 어쨌든 가 보면 이 자리야말로 바르셀로나라는 항구 도시를 수호하는 최대의 군사 거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요충지 중의 요충지다.

 

 

 

당연히 이런 대포도 있고,

 

 

성벽이 있다.

 

 

성벽 위로 올라가 보면 탁 트인 전망.

 

 

 

바르셀로나 시에는 어떤 건축물도 몬주익 성의 높이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꽤 큰 규모의 성이다.

 

 

 

 

 

반대쪽으로 나오면 바르셀로나 해안선이 역시 한 눈에 들어온다.

 

 

 

 

갈매기가 한가롭게 날고,

 

 

해변의 랜드마크가 된 W호텔이 멀리 보인다. 사진상으론 그리 인상적이지 않지만, 몬주익 성은 바르셀로나 전체를 한번쯤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들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성 아래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출발점인 에스페냐 광장으로 내려왔다.

 

 

 

토요일 저녁. 저 몬주익의 분수 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꾸역꾸역 까탈루냐 미술관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아나운서 출신 여행작가 손미나가 "바르셀로나를 떠나 가장 생각났던 시공간"으로 지목했던 바로 그 분수 쇼. 장관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는데 안타깝다. 여행중에 들를 수 있는 날은 금,토 이틀밖에 없었는데, 지금 분수 쇼를 바로 앞에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카탈루냐 음악당의 공연을 예매해 두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에 한껏 줌을 당겨 봤다(위 사진).

 

 

실제로는 꽤 먼 거리.

 

 

분수쇼는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다음번 바르셀로나를 찾을 때 보기로.

(...이번 생에 다음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다들 분수쇼는 이 노래가 나올 때가 클라이막스라고 한다.

 

당연히 프레디 머큐리, 몽세라 카바예가 함께 부른 'Barcelona'. 본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로 만들어진 이 노래는 프레디 머큐리가 AIDS로 급사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그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리고 나서 등장한 것이 사라 브라이트먼과 호세 카레라스가 부른 'Adios Para Siempre'. 모든 사람이 앞의 노래가 더 좋다고들 했지만 당시만 해도 '에이즈로 죽은 사람이 부른 노래를... 상서롭지 못하게...'라는 분위기였다. 요즘같으면 오히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더 난리가 났을 일이다.

 

 

 

 

에스파냐 광장을 대표하는 쇼핑몰. 모습을 보면 눈치챌 수 있지만 본래 투우장이라고 한다.

 

해변에 서 있는 콜럼버스 동상이나 마찬가지로, 옆에 있는 탑 같이 생긴 옥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꽤 인기있는 관광 코스다. 물론 올라가 보지 않았다.

 

다 아시겠지만 본래 바르셀로나는 투우를 즐기는 문화권이 아니다(아시다시피 대부분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우리는 카탈루냐 사람이지 스페인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본래 두 군데의 투우장이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상 관광객용이었고, 몇해 전에 아예 카탈루냐 주 법령으로 투우가 금지됐다. 그래서 기존 투우장은 모두 용도변경이 이뤄졌다고.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어찌어찌 해서 카탈루냐 음악당 도착.

 

이날 저녁, 극장 안의 식당에서 이번 스페인 여행 내내 가장 잊을 수 없는 식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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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마리아 델 마르 광장에서 점심시간을 보낸 뒤 본격적인 고딕 지구 탐방이 시작됐다. 그런데 줄지어 있는 기념품 매장 가운데 똑같은 포즈의 인형들이 즐비한 진열장이 눈길을 끈다.

 

 

 

 

 

 

잘 보면 알만한 세계적인 인물들인데, 포즈가 약간 이상한 느낌을 풍긴다. 조그만 인형 하나에 16유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뒤쪽을 보면 헉 소리가 난다. 피케, 파브레가스, 푸욜, 사비, 메시 등 바르셀로나의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앉아서... 대변을 보고 있는 인형이다. 위 사진의 근엄한 세계적인 인물들도 모두 마찬가지.

 

 

 

 

 이 인형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전통적인 명물 까까네로 Cacanero 인형이다. 한국어로는 과자를 가리키는 까까가 스페인어로는 바로 대변이란게 좀 뜨악하다. 아무튼 이 까까네로 인형은 액운을 막아 준다는 행운의 상징으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관광 상품이라고 한다.

 

 

 

사이즈도 다양하다.

 

 

맨 왼쪽은 누군지 모르겠고(캐머런 영국 총리...?) 카스트로, 사르코지, 올랑드, 엘리자베스 2세 까지 다양한 세계 각국 명사들도 모두 뒤를 돌려 보면 엉덩이를 까고 덩어리를 낳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의 싸이도 (아마도) 밥 말리와 함께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략 훑어본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으로 이 까까네르 인형의 반열에 오른 건 이 싸군 한 사람 뿐인 듯 하다.

 

 

 

저게 싸이야? 하시는 분들, 만든 사람이 곰손이라 그렇지 싸이 맞다. 나름대로는 이 모습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이해하자.

 

 

 

그리고 다시 찾아온 왕의 광장 Placa del Rei. 밝은 날 보니 약간 낯설다.

 

 

 

지도 위의 파란 줄이 바르셀로나의 핵심 거리인 라 람블라 La Rambla 다. 그 라 람블라를 중심으로 이 글에 나오는 명소들이 죄다 위치해 있다. 위 지도 한복판, 붉은 원 안에 '1' 표시가 있는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 카테드랄과 왕의 광장 Placa del Rei 가 있는 곳이다. 복습하면 왕의 광장은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 발견을 처음으로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고한 역사의 현장.

 

그리고 그 오른쪽의 X표 쳐진 곳이 피카소 미술관. 시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해서 그렇지 다 거기서 거기다.

 

 

 

계단에서 골목 입구 방향을 바라보면 이런 구도가 나온다. 역시 바르셀로나답게 광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뒷마당 정도의 크기다. 아무래도 밤에 오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이 상태에서는 저 멀리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시민들의 환영 속에 달려오고, 이 계단에 이사벨라 여왕이 서서 맞아들이는 장면의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역사적인 대사건의 무대 치고는 좀 초라한 게 사실.

 

 

뭐니뭐니해도 관광객에겐 이런 모습이 제격 아니냔 말이다. 역시 밤이 낫다.

 

 

 

왕의 광장의 유명한 계단을 올라가면 문이 하나 있다. 시립 바르셀로나 역사 박물관 Museu d'Historia de Barcelona 로 통하는 문이다. 땅 위에도 볼 것 천진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별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무척이나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니 막상 시간이 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가 처음 건설된 것은 페니키아 계열의 지중해 해양 민족이었다고 하고, 로마의 진출과 함께 이 지억에 첫번째 전성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스페인 제2의 도시', 혹은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 이전에 '로마의 고대 도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들어가 보진 않았고,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아무튼 바르셀로나의 외피로 덮여 있는 고대 로마 지배하 스페인의 모습(히스파니올라라고 불리던)이 담겨 있다는 전언이야. 다른 구경도 많이 했지만 다녀 오고 나면 이런 게 제일 화가 나지.

 

 

 

 

이건 계단에서 바라볼 때 바로 오른쪽으로 뚫린 입구 안쪽. 바르셀로나 문화청 건물인데 예전 귀족 저택을 개조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 바로 문 안쪽으로 파티오 Patio(中庭)가 보인다.

 

 

 

 

 

이것이 신대륙을 발견한(물론 당시의 인식으로는 서쪽으로만 계속 가도 인도 동쪽에 있는 지팡구로 갈 수 있다는 신항로를 개척한) 콜럼버스의 공적을 인정해 그를 그가 도달한 땅의 총독으로 임명한다는 약조 원문. 뭐가 그리 조항이 많은지 책으로 한 권이다. 신영토를 개척한 콜럼버스와 그의 자손들에게 내리는 특전, 그리고 그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한 내용이 꼼꼼하게 정리됐다고 한다.

 

역시 영토 정복 사업도 해 본 자들이 잘 한다. 하긴 바로 이웃에 온 세계를 다 쓸고 다니며 정복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있었으니 그 전례를 많이 모방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연히 카테드랄 앞에서 마주친 거리 축제. 이른바 '시장 축제'다. 바르셀로나 각 지역 시장들이 나와서 벌이는 판촉 행사인 셈이다. 주로 먹거리 위주의 판매이므로, 안 그래도 점심시간이 긴(어림잡아 오후 2시~5시) 이곳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 벌인 판이 제법 볼만하다.

 

 

 

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구시가의 골목들. 노란색과 빨간색의 깃발이 바로 카탈루냐주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잘 알려진대로 스페인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카탈루냐주는 지속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중앙 정부는 절대 놔 줄 생각이 없다.

 

 

 

 

토요일의 람블라 거리. 차가 다니는 1차선 도로인데도 관광 마차가 다닌다. 승용차 운전자들로선 복장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주말에 람블라 거리로 차를 갖고 나오는 건 애당초 만용이란 생각도 든다.

 

 

 

람블라 거리는 기본적으로 도보 통행을 위한 거리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차도가 있고, 가운데에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처럼 섬 같은 인도가 죽 이어진다. 그냥 인도가 아니고, 그 위에 카페와 레스토랑, 꽃가게 같은 점포들이 이어진다. 물론 노점상은 전혀 없다.

 

 

 

지나다 보면 갑자기 2층에서 깜짝쇼가 펼쳐진다.

 

 

 

뭔가 했더니 에로틱 박물관의 자체 홍보 활동이다. 눈길은 확 끈다. 성공적이다.

 

그 에로틱 박물관의 바로 앞에 유명한 식료품 전문 시장인 보케리아 시장 Mercado de la Boqueria 이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셰프가 '보케리아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대서 더욱 알려졌다.

 

 

기념물 내용을 제대로 읽을 능력은 없으나 대충 때려맞춰 보면 올해가 개장 100주년인 듯.

 

 

 

관광객을 제일 먼저 반기는 건 역시 스페인의 상징인 하몽 Jamon. 돼지 다리를 저렇게 통으로 숙성시켜 만드는데 돼지의 질과 숙성 기간, 산지 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혹자는 이 하몽을 한국의 홍어에 비교하기도 하는데, 홍어에 비해 너무나 보편화된 대중식이란 점이 좀 다르다. 처음엔 살짝 비릿하고 구릿한 맛이 날 수도 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말린 고기 특유의 감칠맛이 난다. 한국에서 육포를 먹듯 살짝 불에 구우면 더 맛이 좋아질 것도 같은데, 체류기간이 짧아서 막상 그렇게 먹는 법은 보지 못했다.

 

그냥 얇게 저며 생으로 먹거나, 그대로 빵 사이에 끼워 다른 재료 전혀 없는 '하몽 샌드위치'로 먹는게 가장 흔한 방식이다. 그 외에는 수만가지 요리에 재료로 쓴다고 한다.

 

 

 

 

스페인 하면 과일. 태양의 나라답게 오만가지 과일이 알록달록 아름답다. 보케리아 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객 유치 수단은 과일 주스인 것 같기도 하다. 가격은 1.5~2.5 유로 정도. 안쪽이 더 싸다.

 

여기서부터 다소 엽기적인 사진이 등장할 수도 있으니 심약하신 분들은 그만 보셔도 좋을 듯.

 

분명히 경고합니다.

 

 

 

사실 그냥 식재료만 마구잡이로 파는 게 아니라 비주얼도 매우 훌륭하다.

 

멋대가리 없이 10개 20개씩 포장된 한국 마트의 계란쌓기와는 좀 차원이 다른 디스플레이. 그럴싸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좀 다른' 식재료는 토끼 고기. 시장에서 이렇게 손질된 토끼고기를 생닭 팔듯 판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 토끼는 식용 동물이라기보단 애완용 동물의 이미지가 강한 데 비하면 참 원초적인 느낌이다. 하체 곡선이 좀 징그럽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람들에겐 이 누드 토끼가 누드 닭만큼 자연스럽다고 한다. 특히나 빠에야의 본산 발렌시아는 항구 도시이지만 해물보다 일단 토끼고기가 들어가야 진정한 빠에야라고 쳐 준다는 설이 있다.

 

아. 가끔 가게에 따라선 닭을 주문할 때 따로 얘기하지 않으면 대가리까지 붙여 준다고.

 

 

 

물론 시장의 재미는 이런 즉석 먹거리. 시장 맨 안쪽에 이런 식의 바 들이 성업중이다. 시장에서 파는 먹거리들을 즉석에서 살짝 살짝 조리해 바로 음식으로 만들어 판다. 여기에 맥주나 와인 한잔을 곁들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들끓는다.

 

보기엔 만원인데 가이드의 설명으론 '아주 잘 되는 집은 아닌' 것 같단다. 이유는 바닥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 이 지역의 문화는 이런 바 바닥에 포장지며 땅콩 껍질, 생선 가시, 닭뼈 등을 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거다. 그래서 바닥에 뭔가 사람이 먹고 마신 잔해가 흩어져 있으면 그게 '잘 되는 가게'의 상징이라나.

 

 

 

하다 하다 보니 한국 점포도 있다. 이름은 마싯따(마드리드에 있는 한식집 마시타와는 무관^^). 한국산 라면이며 고추장 등 먹거리를 팔고, 메뉴를 보면 알 수 있듯 간단한 한국 음식을 낸다. 한국 관광객들이 꽤 오는 듯 했다.

 

바로 아래 사진의 다음 사진을 보기 전, 마음의 준비들을 해 두시길.

 

 

 

시장 한 켠에 있는 코치니요(El Cochinillo) 전문점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다. 세고비아 지역의 명물인 새끼 돼지 통구이 요리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 전문점이라는 설명이다.

 

그 원조라는 세고비아에서 한번 먹어볼까 했는데 세고비아를 가 보지 못해 그냥 통과. 

전에 상해에 갔을 때 카우루주(烤乳猪)라는 지역 특산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바삭바삭한 껍질이 정말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맛간장으로 양념해 굽는 중국식과는 다르겠지만 스페인식도 대략 훌륭한 맛일 듯.

 

 

 

 

 

 

자, 이제 진짜 충격적인 사진이 나온다.

 

 

 

 

 

 

무슨 사진인데 그렇게 뜸 들이냐는 분들, 난 책임 못 진다.

 

그럼.

 

 

 

카베사스 코르데로 Cabezas Cordero, 새끼 양의 머리다.

 

생선 대가리가 아니고 염소 대가리를 이렇게 시장 정육 코너에서 판다. 이 분들이 염소탕을 집에서 많이 끓여 드시는데, 대가리를 안 넣으면 국물 맛이 제대로 안 난다는 거다. 뭐 우리도 유명한 설렁탕집에선 소머리가 안 들어가면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이분들, 맛 제대로 아신다.

 

 

 

바로 옆에선 내장을 이렇게 판다. 영/미권에선 바로 버리는 내장인데 스페인에선 수프의 주 재료로 쓴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든 대표적인 음식이 카스티야 지방의 대표적 음식인 카요스 마드릴레뇨스 Callos Madrilenoz 라고 하는데, 드셔 본 분들의 말에 따르면 토마토 소스로 끓인 곱창전골 맛이 나서 한국 사람들도 꽤 좋아할 만 하다고.

 

아무튼 이 분들, 음식문화가 참 마음에 든다.

 

 

 

여전히 화려한 디스플레이의 향연.

 

라 람블라를 동남방으로 죽 걸어내려오면 바르셀로나의 바닷가가 나온다. 그렇다. 바르셀로나는 항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닷가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위업을 기리는 기념탑이 서 있다. 엄청나게 높다. 단 저 콜럼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이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의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그냥 웃자는 얘기다.

 

 

 

잡아당겨 보면 이런 포즈. 아무튼 유럽 역사, 특히 스페인 역사에서는 잊을 수 없는 영웅이다. 물론 스페인 사람이 아니고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이라는 게 함정. 실제로 제노바에 가면 콜럼버스가 살았던 집이 관광 명소라는데, 급조된 것이니 절대 가 볼 필요가 없다는 제보가 있었다.

 

 

 

콜럼버스의 동상에서 해변으로 나 있는 구름다리를 건너 면 고래등같은 쇼핑몰 하나가 갑자기 등장한다. 마레 마그눔 Mare Magnum. 바르셀로나의 모든 쇼핑몰과 거의 대부분의 상점들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한국 백화점이 기를 쓰고 일요일에 문을 열고 월요일에 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이 마레 마그눔만은 일요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그리고 저 APP라는 글자 바로 밑, 그러니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올라간 자리에 스타벅스가 있다. 저 자리가 할일없이 해변을 바라보고 앉기에는 최고의 명소라는 평이 있다. (사진은 못 찍었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서 피카소 미술관 이남의 고딕 지구에 대한 간략한 탐방 끝. 다리는 아프지만 뿌듯하다.

 

다음 코스는 그 이름도 유명한 몬주익 언덕이다. 몬주익 언덕에 뭐가 있냐고?

 

 

바로 1992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대한 건아 황영조의 부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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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 둘쨋날. 역시 아침부터 바르셀로나 여행에 나섰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유로자전거나라 투어. 이번엔 도시 곳곳을 누비는 속살 투어다. 특히 전날 밤 투어에서 다녀 본 길들을 낮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끌렸다. 다만 걷는 거리가 이만저만 아닐 것 같아 다소 긴장했다.

 

그런데 정작 집합한 뒤, 카탈루냐 광장 맞은편의 카페로 향한다.

 

 

카페 이름은 4Gats. 4가 Quatro라 콰트로가츠라고 읽는다. 정식 이름은 카탈루냐어로 Els Quatro Gats 다. gat이 영어의 cat이니 네 마리의 고양이란 뜻.

 

이 카페가 바르셀로나에서 무명 시절의 피카소가 늘 죽치고 앉아 시간 때우던 유서깊은 곳이라는 거다. 갈 데가 없어 하루 종일 자리 차지하고 있던 피카소에게 가끔씩 커피도 한잔씩 서비스로 주고 하던 주인장이 사실상 피카소를 키웠다는 이야기. 피카소 뿐만이 아니고 이 카페는 당대 스페인 화단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카페의 주인이 당대의 유명 화가인 라몬 카사스 Ramon Casas 였기 때문. 파리를 늘 동경했던 카사스는 바르셀로나에도 파리의 유명 카페들처럼 예술가들의 보금자리가 될만한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가게(?)를 열었다.

 

아래 그림이 카사스의 유명한 대표작. 자전거 앞자리에 수염난 사람이 카사스 자신, 뒷자리 사람은 콰트로가츠의 공동 경영자인 페레 로메우 Pere Romeu라고 한다.

 

 

여기 있는 그림은 사본이고 진본은 박물관에 있다고.

 

 

 

아무튼 화가들답지 않게 경영 수완도 좋았던지 4Gats는 오늘날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성업중이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를 무대로 한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Vicky Cristina Barcelona' 에도 나왔다. (사실 제목이 주는 기대감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바르셀로나의 풍광이 그닥 많이 소개되지 않는다.)

 

바로 이 아래쪽 자리 중 하나다.

 

 

 

 

아무튼 1897년부터 성업해온 유서깊은 곳 답게 곳곳이 예쁘고 아늑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카소의 일대기(말하자면 피카소와 일곱 여자-아내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날 바르셀로나 투어의 시작이다.

 

사실 공식적인 미술사를 보면 피카소는 수없이 변신한다. 초기 - 청색시대 - 장밋빛시대 - 아프리칸 - 입체파 - 신고전주의 - 다시 입체파 - 자유분방한 만년으로 계속해서 바뀌는 스타일을 보였다. 막연히 이렇게만 알고 있던 터에 그 변화의 시기마다 피카소의 내면이 흔들릴만한 생활 면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는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창백하고 우울한 청색시대는 피카소의 청년기 절친이었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 Carlos Casagemas의 자살, 그리고 1901년 파리로 건너가 느낀 '나는 우물 만 개구리였구나'와 식의 느낌에서 온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다. 피카소가 1881년생이니 이 해 나이 만 스무살. 이 콰트로가츠에서 늘 어울리던 친구, 그리고 파리로 같이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간 친구가 모델에게 구애하다가 거절당하고 자살한 사건 정도면 충분히 인생을 바꿔놨을 만 하다.

 

 

 

이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그림 '인생 La Vie'에 등장하는 남자가 바로 카사헤마스라는 설명. 피카소의 친구에 대한 애도가 느껴진다. 아무튼 이 청색시대는 피카소에게 사랑이 찾아오면서 끝난다. 역시 젊은이에겐 사랑이 약. 피카소가 모델 페르난도 올리비에 Fernando Olivier 와 사랑에 빠지면서 우울한 청색은 사라지고 바로 장및빛 시대가 시작된다.

 

 

 

 

피카소는 올리비에의 초상만 100장 이상 그렸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피카소가 여자를 총 몇명 사귀었는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으나, 그의 여성 편력에서 시작점은 늘 이 올리비에다.

 

 

 

 

에바 구엘 Eva Gouel -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시기. 하지만 구엘은 1912년 피카소를 만나고 3년만에 결핵으로 병사한다. 깊이 사랑했다고는 하나, 피카소는 죽기 직전의 그녀를 나몰라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 대목에서 인상적인 이야기: 피카소는 본래 현실적인 성격이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매우 민감했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처음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것은 1907년이었지만 당시 주위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일제히 혹평을 해 대자 장롱 깊숙히 그림을 감춰 두었다가 1916년, 시대가 큐비즘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전시에 내놨다...는 이야기. 이유야 어쨌든 '아비뇽의 처녀들'이 9년 동안 미발표작으로 남아 있었던 건 사실이다.^^) 

 

 

 

올가 코흘로바 Olga Khokhlova - 러시아 발레단의 발레리나. 이 시기 피카소는 화단의 기린아로 칭송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면서 과도한 실험성에서 도피, 신고전주의의 화풍을 지향한다. 어쨌든 피카소가 실제로 결혼한 첫 여자는 올가.

 

사실 수많은 여자관계에도 불구하고 피카소가 단 두번밖에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올가가 이혼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마리 테레즈 발터 Marie-Therese Walter - 1927년, 피카소는 17세의 마리 테레즈를 만난다. 임신중이던 아내 올가는 마리 테레즈도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격분해 이혼을 요구하지만 피카소는 재산 분할을 거부. 따라서 올가는 1955년 죽을 때까지 피카소의 아내라는 법적 지위를 유지한다. 

 

아무튼 마리 테레즈는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꿈(위 그림)'의 주인공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마리 테레즈의 얼굴들을 보면 평온함과 행복이 느껴진다. 반면...

 

 

 

 

도라 마르 Dora Maar -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낳을 수 있게 했던 여자라는 평. 사진작가이며 그 스스로도 예술가여서 피카소 자신도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여자라고 불렀다고 함. 1936~1944년 사이 피카소의 연인이었지만, 자유분방한 피카소에게 너무 집착하다가 정신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피카소의 유명한 '우는 여자(위 그림)' 연작 그림이 바로 신경쇠약으로 피카소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 도라 마르를 모델로 한 것이다.

 

마리 테레즈를 그린 그림과 뒷날의 도라 마르를 그린 그림 만큼 그 여자들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비교도 없을 듯.

 

 

 

 

 

프랑수아즈 질루 Francoise Gilot - 가장 얘깃거리가 많은 여자다. 1943년, 62세의 피카소는 22세의 미술학도 를 만나 깊은 관계에 빠진다. 젊은 연인의 활력 덕분인지 이 시기의 피카소는 '고전 다시 그리기'의 새로운 세계에 진출한다.

 

 

 

이 그림도 지금은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이 그림을 그릴 무렵의 피카소는 자신감이 흘러 넘친 나머지 "야, 내 그림이 벨라스케스 그림보다 훨씬 낫지 않아?"하고 물어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화면 아래쪽의 개 그림에서 피카소의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이 개는 1992년, 바로 유명한 이 개의 모델이 된다.)

 

 

 

바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모델인 코비 Cobi. 어딘가에서는 피카소가 키우던 개 이름이 바로 코비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치 않다. 아무튼 잠시 곁길로 이야기가 샜다.

 

 

 

질루는 60이 넘은 피카소의 일방적인 만행과 왕자병,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젊은 여자들과의 스캔들에 피카소와 결별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 다른 식으로 피카소에게 복수를 했다. '피카소와의 삶 Life with Picasso'라는 자서전 풍의 책을 내면서, 한 해변에서 늙은 피카소가 큰 양산을 들고 젊은 자신을 공주처럼 모시고 따라다니는 장면의 사진을 표지로 사용한 것이다. 누가 봐도 '망할 놈의 영감, 어디 엿 좀 먹어 봐라' 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유사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은 젊은 연인을 사귀면서 자신의 창의성을 유지했던 것 같다. 피카소 역시 젊은 여성들에게 끝없이 끌렸던 것이 바로 야수와 같은 창작력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다. 질루는 이에 대해 "그 '성스러운 괴물(sacred monster)'에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은 여자는 나 뿐"이라며 피카소의 이기적인 모습을 고발했지만... 그렇게 해서 그 자신이 얻은 건 무엇일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질루가 낳은 딸 팔로마 피카소는 뒷날 티파니의 보석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쳐 피카소의 자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됐다.

 

 

 

 

자클린 로케 Jacqueline Roque - 유로자전거나라 설명에선 '피카소도 결국 질루 이후 지친 탓인지 만년은 35세의 과부와 보냈다'고 되어 있었지만 다른 기록을 보면 피카소는 1953년 27세의 이혼녀 로케를 처음 만났다. 이 시기, 피카소는 도자기에 새롭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1년, 80세의 피카소는 35세의 로케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니까 로케 역시 피카소가 좋아했던 '젊은 여자'였다. 단지 오래 버틴 젊은 여자였을 뿐이다. 운이 따랐다면 피카소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 '공식 아내'인 올가 코흘로바가 1955년 사망했다는 것. 그렇게 해서 로케는 피카소의 '아내 2호'가 됐다.

 

피카소의 두번째 결혼은 1973년 피카소의 죽음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질루를 비롯해 수많은 과거의 연인들, 피카소의 '씨'를 낳은 엄마들이 재산에 대한 권리를 놓고 도전해 왔고, 로케는 이들과 맞서 '피카소의 아내'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1986년, 로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설명에 따르면 로케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다른 유족들의 접근을 막을 정도로 독점욕이 강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피카소 이야기 끝.

 

[물론 저는 미술사 전문가도 아니고, 바르셀로나를 다녀 온 여행객일 뿐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덧붙여 쓴 글입니다. 혹시 더 정확한 내용을 아시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시면 가차없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피카소가 쭈그리고 앉아 있던 카페에서 듣는 느낌도 색달랐다.

 

 

 

바르셀로나 시가 인증한 문화공간으로서의 표석. 바르셀로나 곳곳에 이런 식의 유적 인증 표지가 있다.

 

 

 

"아저씨, 제가 죽치고 있어도 뭐라고 안 해 주셔서 감사해도. 혹시 제가 뭐 해 드릴거라도 없을까요?"

"음. 너 곧잘 그리는 것 같은데 우리 가게 포스터 하나만 그려 봐라."

"포스터요?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로트렉 그림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뭐 대략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 피카소가 그린 4Gats의 포스터.

 

이렇게 해서 첫 코스인 4Gats를 나서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로 간다.

 

 

 

 

 

 

좁다른 고딕 지구의 골목길을 수십번 꺾어져서 도착한 곳이 바로 피카소 미술관. 왜 피카소 미술관인데 철자에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B' 마크를 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바르셀로나 시의 공식 문장인 것 같기도 하다.

 

 

 

 

한 귀족 가문 저택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덕분에 중정이 있는 고운 건물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아름답다. 규모나 소장품의 수가 결코 어마어마하지는 않지만, 위의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과 함께 거론된 피카소의 시대별 변천사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잘 정돈된 미술관이었다. 입장료 11유로. 월요일 휴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특히나 이 글을 읽고 갔다면.^^

 

 

 

 

피카소 미술관에서 역시 다시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넓어지면서 빛을 한껏 안고 나타나는 건물이 있다. 바로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성당 중 하나인 산타마리아 델 마르 Santa Maria del Mar.

 

1384년 완공될 당시에는 이 성당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찰랑찰랑 하는 해변이었다고 한다. 산타마리아는 잘 알려진대로 뱃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

 

 

 

 

고전적인 사원의 양식미가 잘 살아 있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처럼 전 세계에 단 하나 있는 아름다움과는 좀 다르지만, 아무튼 내부에 들어서면 위압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유럽 대 성당의 느낌에 충실하다.

 

 

 

그렇지만 고전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수많은 스테인드 글라스 중에는 1992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하나 있다.

 

1992년은 바로 바르셀로나에서 월드컵이 열린 해.

 

 

자세히 보면 수많은 이니셜들이 쓰여 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 중 메달리스트들의 이름 철자를 이용해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다. 누가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이 중에 황영조 선수의 이니셜이 있다고 한다.

 

눈 밝은 사람이 좀 찾아 주기 바란다. 내 눈엔 안 보여서.

 

 

 

 

 

7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산타마리아 델 마르는 여전히 예배를 보는 성당으로서의 역할을 완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카탈루냐 카톨릭의 상징인 검은 성모상.

 

본래의 검은 성모상은 이슬람 지배 초기, 이교에 대한 박해를 겁내 지하로 숨어들어갔던 시절의 유물이다. 그때도 처음부터 검은 색이었던 것은 아니고, 지하 동굴 성당에서 예배를 보려니 촛불이나 횃불의 그을음 때문에 성모상이 검게 변했다는 것. 그 전통을 기려 이렇게 지상에 나와 있는 성모상에도 검은 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검은 성모상은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중 유명한 관광지인 몬세라트에서 볼 수 있다고.

  

 

 

이렇게 해서 오전 일정 끝. 한여름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의 태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오후엔 난데없이 바르셀로나 뒷골목에서 위대한 한국인과 마주치게 된다. 대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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