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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휩쓸고 있는 '디스 이즈 잇'의 열풍에서 한국은 슬쩍 빗나가 있는 느낌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디스 이즈 잇'의 2주 한정 상영 방침이 바뀌어 연장 상영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지방 몇개 극장에서 상영관이 축소되면서 '상영기간 단축'에 대한 헛소문이 돌고 있다고도 합니다.

마이클 잭슨 같은 대형 스타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에 대한 예우 치고는 좀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물론 개인적인 감상일 뿐입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스타라도 '추모의 열기' 혹은 '사후의 영광' 같은 것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팬들로부터 시작된 감정이 일정한 임계치를 넘어섰을 때에나 조성될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문득 지난 세기를 장식했던 다른 스타들이 남긴 마지막 흔적들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정리해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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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완성 유작

1973년. 홍콩 권격 스타 이소룡은 인기 절정의 순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그해 미주 대륙에 공개된 '용쟁호투(龍爭虎鬪)'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흥행업자들은 그가 더 이상 새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군가가 이소룡이 사망 직전 차기작을 위해 촬영한 10여 분가량의 액션 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5년 뒤 개봉된 영화 '사망유희(死亡遊戱)'는 이 촬영분에 스토리를 덧붙여 만들어졌다. 앞부분을 만들기 위해 이소룡과 닮은 한국 배우 김태정이 기용되기도 했다.

그래도 '사망유희'까지는 이소룡의 작품으로 인정받지만 그의 마지막 출연작으로 알려진 1981년작 '사망탑(死亡塔)'은 지나친 장삿속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 영화엔 이소룡이 나오는 몇 개의 자투리 장면이 스쳐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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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마릴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에도 그가 출연 중이던 영화 '섬싱스 갓 투 기브(Something's Got to Give)' 제작진은 어떻게든 영화를 살려 보려 했다. 하지만 촬영 분량이 너무 짧아 결국 이 영화는 그냥 '먼로의 마지막 작품'이 아닌 미완성작으로 남았다.

곧 개봉될 히스 레저의 유작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좀 더 기발한 방법을 썼다. 2008년 레저가 죽기 직전 연기한 부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서 세 배우가 '얼굴이 변했다'는 설정으로 레저의 역할을 연기한 것이다. 그의 유작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 등 정상급 배우들이 선뜻 나섰다는 미담도 전해진다.

지난 6월 사망한 마이클 잭슨이 준비하고 있던 생애 마지막 공연의 리허설 광경을 편집한 다큐멘터리 '디스 이즈 잇'이 지난 28일 세계 99개국에서 공개됐다. 잭슨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 팬들은 앞다퉈 극장으로 향하고 있지만 몇몇 측근은 본인이 이 영상의 공개를 원했을 리 없다며 개봉을 반대하기도 했다. 누나 라토야 잭슨은 “리허설 때 최선을 다해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는 없다. 마이클이라면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이번엔 팬들의 손을 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이 공연의 기록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잭슨이 살아서 이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면 얼마나 대단한 공연이 됐을지'를 더욱 아쉽게 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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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과 '사망유희'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사망유희'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이 짜낸 스토리는 대략 이런 것입니다.

홍콩 최고의 스타 빌리(이소룡)가 의문의 범죄 조직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하고, 그 실체를 찾기 위해 죽음을 가장했던 빌리는 자신의 장례식이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빌리는 생전의 자기를 위협했던 조직을 하나하나 파괴해갑니다.

그럴싸한 스토리이고, 스토리상에 등장하는 장례식 장면에는 진짜 이소룡의 장례식 장면을 쓸 수 있으니 여러모로 안성맞춤입니다(당연히 이런 부분을 계산한 스토리죠). 다만 진짜 문제는 그 나머지 스토리를 연기할 이소룡이 없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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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축구'와 '킬빌'은 물론 '사망유희'의 '노란 추리닝'은 이소룡의 이미지를 타고 끝없이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빈약한 퀼리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의미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국이라면 죽기 전의 이소룡 역에 다른 배우를 쓰고 '복수를 위해 성형수술을 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홍콩에서는 아시아 전역에서 그를 대신할만한 배우를 찾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탁된 것이 한국의 당룡(唐龍: 위에서 말한 김태정의 예명)과 뒷날 톱스타가 되는 홍콩의 원표였습니다. 특히 당룡은 '선글라스만 씌워 놓으면 똑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죠. 상대적으로 고난도의 액션 연기는 원표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의 퀄리티가 그리 높을 리는 없겠죠. 이소룡의 명성을 쫓아 '사망유희'를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실망 뿐입니다.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당대의 이소룡을 사랑했고, 그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몫일 뿐입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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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 각각 1차 변화후, 2차 변화후, 3차 변화후의 모습을 연기한다는군요. 히스 레저가 테리 길리엄 감독과 만나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스스로 인생을 정리했는데, 레저의 유작을 살리기 위해 감독이 이들 배우들을 만나 "조금씩만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다들 흔쾌히 응해 한 역할을 네 배우가 연기하는 희한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군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좀 너무 어두운 유머 감각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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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디스 이즈 잇'의 퀄리티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보는 사람들 역시 충분히 이런 부분을 고려하고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절대 다수의 반응이 "저걸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가서 (잭슨은) 얼마나 원통할까"인 것으로 봐도, '불완전한 공연'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듯 합니다.

오히려 '디스 이즈 잇'은 일각에서 유포되는 별 근거 없는 이야기들 - 2000년대 이후로 잭슨은 노래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든가, 이미 모든 공연은 립싱크로 이뤄지고 있었다든가 하는 내용들 - 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듯 화려한 춤사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공연 전체를 놓고 봤을 때에는 이런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유능한 무용수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안무가로서의 잭슨이 갖고 있는 무대 장악력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사망유희'가 있어 이소룡을 추억하는 팬들을 위로하고, '디스 이즈 잇'이 잭슨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이런 작품들에까지 완성도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담긴 의미만으로도 존재의 가치는 충분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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