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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무지개!

12월5일

일일 루틴대로 빵집에서 사온 따뜻한 바게트와 쇼시숑, 쇼콜라로 아침 식사. 

 

어쨌든 이번 여행 전후로 확실히 바뀐 것은 바게트에 대한 고정관념의 변화. 늘 딱딱하고 입천장 까지는 빵이라고만 생각했다가, 갓 구운 따뜻한 바게트의 부드러움과 향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따뜻한 바게트는 찾아서 먹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텔 앞의 유명 빵집, LA PARISIENNE

정해진 식순에 따라 베르사이유 행 열차에 올랐다. 베르사이유로 가는 방법은... 물론 렌트를 했다면 당연히 운전을 하고 가면 되겠지만, 그 외의 수십가지 방법 중에 RER C를 이용하는 방법보다 나은 것은 없는 듯 하다. 

 

호텔의 강점 중 하나인 샤틀레 레알 역에서 RER B나 다른 선을 타고 세느강을 건너 한 정거장만 가면 생 미셸 노틀담 역이다. 거기서 RER C로 갈아타고 종점까지 달려가면 끝. 너무 간단하고 편하다. 나비고 카드가 있다면 추가 비용 0. 

이것이 나비고 카드

RER C 를 탈 때에는 2층 좌석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시내에서 베르사유나 에펠탑 방향으로 갈 때에는 당연히 오른쪽 자리. 그러면 약 한시간 동안 달려가면서 세느강 연안의 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올 때는 왼쪽. 

 

어쨌든 베르사유-샤토 역에 내려서 궁전까지는 약 10~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 시절에도 넓었을, 아주 넓은 길을 걸어가는 느낌도 좋은데... 비가 뿌린다. 역시 우산을 챙겨야 한다. 물론 가는 길에 우산을 파는 행상 아저씨들도 꽤 많다. 우산에는 루이 14세 얼굴이 아주 크게 그려져 있다. 

바로 앞까지 가면 이 궁의 주인공인 루이 14세 동상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산 같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주 그럴듯한 위치에서 온 프랑스를 호령하는 자세가 나온다.

여기 처음 와 본 것이 1988년. 무려 35년 전이다. 정말로 감회가 새롭다. 물론 그때는 정확한 베르사유의 위치 같은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아침에 일어나 여행사 버스를 타고 이 광장에 도착했지만,  어쨌든 그때는 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가슴이 뿌듯했다. 

들어가는 곳도 얼추 기억과 비슷한 모습. 물론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있다. 겨울이라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 

18세기, 세계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 

솔직히 1988년의 느낌은 없다. 그동안 워낙 좋은 곳을 많이 가 보기도 했고, 한국에도 정말 좋은 곳들, 호화롭게 치장한 곳들이 워낙 많다 보니 살짝 바랜 느낌이 있는 이 궁에서 감동을 느끼긴 쉽지 않았다. 

설사 1990년대에 태어난 한국인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더라도 별 감흥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베르사유를 그냥 잘 꾸며진 호텔 보듯 하는 사람과 달리, 저 골동품들의 가치를 다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남다른 감동이 있을 수도. 

가구며 침대며 참 정교하고 예쁘긴 하다. 

일단 처음 들어간 건물에서 안쪽으로 나오면, 중정 같은 느낌의 공간이 있다. 

어쨌든 베르사유에 왔으면 베르사유의 상징, 거울 방을 가야 한다.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서 물어 물어 찾아가는 중.

거울방으로 가는 길에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 대관식 그림의 모사품이 있다. 진짜는 루브르에.

사실 루브르의 18세기 그림 전시실과 거의 똑같은 느낌. 

여기까지 오니 아, 예전에 이런게 있었지, 하는 느낌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땐 젊고 우린... 에이 아니다.

여기가 아마 루이14세의 침실이었던 듯. 다른 방에 비해 천장의 그림이 유난히 많다. 

아무튼 그 침실을 지나고 나서 좀 더 가면 드디어 거울 방의 입구가 나온다. 

18세기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 유럽에서 가장 세련된 나라 프랑스의 국왕이 무도회를 여는 곳이니 그 시절에는 온 유럽의 왕족이며 귀족들이 '나도 언젠가 저길 한번 가 봐야 할텐데'라고 생각하고, 막상 방문해서는 '나도 언젠가는 이런 공간을 마련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는 바로 거기다.

이것이 바로 거울방. 

물론 실제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공간이라는 건 감안해야 할 듯. 막상 가 보면 좀 뭔가 뿌옇고 많이 닳고 그런 느낌이다. 누차 말하지만 이 방의 전성기는 약 250년 전이라는 걸 잊으면 안됨.

그래도 저기 처음 갔을 때는 엄청나게 감동했었지. 지난 세기의 어느날.

 

수십년만의 베르사유 에피소드 하나는 화장실에 전화기를 두고 나온 것. 한 100발짝 가서 알아차렸고, 돌아가 보니 화장실에 누군가 들어가 있다. 남미계로 보이는 아저씨가 화장실 문 앞에 있다. 안에 누가 있나? 이 사람도 줄을 선 건가? 음... 뭐라고 말해야 내가 먼저 안에 좀 들어가야 한다고 가장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고 있는데, 뭔가 당황한 눈빛을 본 아저씨가 먼저 말을 한다. "폰?" 

 

네. 폰. 폰 찾으러 온거 맞아요. 

 

"오피스!"

아유 감사합니다

아, 분실물로 오피스에 맡기셨다구요? 활짝 웃으며 그렇다고 말하는 아저씨. 그런데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뭔가 스페인 말인듯한 말로 따발총처럼 다른 아저씨가 뭐라고 하고, 밖에 있던 아저씨는 야 야 넌 그냥 싸기나 해. 내가 다 알아서 해결했어 라는 식의 말로 다스리고 있다. 뭐지. 두 친구가 용변을 보러 온 건가. 안에 있던 아저씨도 라틴계 특유의 수다 본능으로 참견이 하고 싶었던 건가. 어 그거 내가 먼저 들어와서 보고 갖다 맡겼으니까 니 폰은 거기 가서 찾아 뭐 그런 거. 

 

꽤 코믹한 상황이었는데, 20m  쯤 떨어진 오피스에 가서 혹시 전화기 맡겨진게 있냐고 물으니 신중한 아저씨, 어느 회사 폰이냐고 묻는다. "쌤쏭, 갤럭시". 오. 전화기가 맡겨져 있다. 여기서 이 전화기가 니꺼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냐고 묻는 아저씨. 뭐 그거야 패턴을 그려서 오픈해 드리면 되죠. "빠르뻭토!" 

 

그렇게 해서, 수만명이 드나드는 베르사유에서 잃어버린 전화기를 바로 찾았다는 이야기. 이것 때문에 동행인에게 꽤 강력한 빈축을 샀지만, 아무튼 이런 여행운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춥고 비 뿌리는 날의 베르사유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KFC에서 점심. 베르사유를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90% 정도가 KFC나 맥도날드에서 한끼 정도는 때우는 걸 보면서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가 보고 알았다. 궁전과 역 사이에 신기할 정도로 식당이 거의 없다.

수요는 많을텐데...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RER C를 타고 파리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스럽게 에펠탑 역에서 내리게 된다. 

파리가 그렇게 크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서 가는 곳마다 에펠탑이 보이지만, 그래도 한번은 코앞에서 에펠탑을 느껴야 하는 법. 생각해보니 매번 올 때마다 그랬다.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 느낌?

역에서 내려 몇발 걷지 않아 잘 보인다. 에펠탑의 미덕 중 하나는 확실히 '잘 보인다'는 것. 

그 거대한 탑 밑으로 왔는데... 매번 올때마다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처음 보는 광경, 무지개 같은 하단부 옆에 무지개가 그려졌다. 

오홍.

자, 그리고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를 건너 샤이요 궁 Palais de Chaillot 으로 가야 한다는 건 상식 아입니까. 

살짝 기울어가긴 하지만 어쨌든 해가 뜨고 파란 하늘이 나온 건 길조다. 

오, 이런 느낌 좋아 좋아. 점점 개고 있어. 관광사진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에 젖은 바닥에 오후 햇살이 비쳐 금빛으로 빛난다. 

네번째 와 보는 에펠탑이지만 이런 광경은 또 처음일세. 

여전히 바람도 많이 불고, 춥고, 빗발도 간간이 날리고, 그저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정도지만, 이렇게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닥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인증샷.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매번 가도 감동.

저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구스타프 에펠이 "이제 프랑스는 300미터 높이의 국기게양대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는 멘트가 생각난다.

 

잠만 기다려. 밤에 불 켜진 거 보러 또 올게.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장면을 뒤로 하고 숙소로. 꽤 걸었으므로 잠시 쉬었다가 역시 근처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이름은 짧게 레옹 Leon. 아내가 검색해서 예약한 홍합 요리집이다.


벨기에식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전 세계를 돌아봐도 홍합처럼 싸고 맛있는 해산물은 없을 듯. 일단 별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은 전통식 홍합을 주문했다. 

홍합이 홍합 맛이지. 근데 너무 맛있다. 짭조름하고... 다만 국물이 한국식 홍합에 비해 좀 더 짜고 살짝 비리다. 굳이 떠 먹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 맛이다. 

대구 종류(eglefin)로 만든 그라탕. 물론 맛있다. 단 보기보다 그릇이 작다. 

홍합이 짠 점을 감안했는지 빵과 밥이 나오고... 근데 밥이 좀 말라비틀어진 밥. 

그리고 역시 벨기에인이 발명했다는 설이 있는 프렌치 프라이(이게 뭐야)가 나온다.

뭔가 좀 아쉬워서 로슈포르 치즈가 들어간 홍합찜을 추가로 주문. 이것도 맛있는데... 좀 더 짜다. 굳이 치즈의 풍미 같은 것은 없었어도 됐을 것 같다. 아무튼 맛있게 잘 먹었다. 

그렇게 잘 먹고 53.2유로. 서울에서 저 정도 먹고 7만6천원 정도면 제대로 눈 주위를 맞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게 그 다음부터 먹은 저녁식사 중 가장 소박한 식사였다. 팁 문화가 없는게 다행이지 여기다 팁까지 냈다면.... 끄억. 

아무튼 파리 비싸다. 가실 분들은 유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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