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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연이겠지만 2023년 상반기에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본 드라마가 많았던 반면, 하반기에는 재미있을 뻔 하다가 만 드라마들이 많았던 듯 합니다. 굳이 외면한 작품으로는 병자호란-소현세자로 이어지는 시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연인>을 처음부터 안 본 정도? 

아무튼 나중에 생각해 보면 2023년은 개인적으로 '테일러 셰리던의 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냥 개인적으로 '미드계의 박봉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 양반 정말 대단합니다. 2023년 현재 <옐로우스톤> 시즌 6, <라이오니스> 시즌2,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 시즌3, <1923> 시즌2, <털사킹> 시즌2를 동시에 자신의 크레딧으로(작가/제작)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아무리 밑에 유능한 작가들이 많고, 대본 공장을 심하게 돌려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대부분 다 재미있고 성공하고 있다는...)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드라마 중에는 역시 상반기의 <글로리>와 <카지노>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그 뒤로 <소년시대>가 오기 전까지 그닥 인상적인 작품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워터멜론> 정도...? 

 

옐로우스톤, 1863, 1923

테일러 셰리단 월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아마도 2023년의 가장 결정적인 선택이었던 듯. 미국 몬태나 주를 무대로 '그 자체가 서부 개척사'라 할 수 있는 더튼 가문의 150년을 한꺼번에 훑어보는 이 장대한 사가에 한번 발을 들여 놓은 뒤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옐로우스톤>은 현재 몬태나의 실세인 대 목장주 존 더튼의 삶, <1863>은 처음 더튼 가문이 어떻게 서쪽으로 역마차를 끌고 이동해 몬태나까지 오게 되었는지(사실 오레건으로 가다가 중간에 멈춘), 그리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인 <1923>은 자동차가 말을 밀어내는 시대에 미국 서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저런 스틸컷을 보면 이 드라마가 <초원의 집> 같은 미국의 전원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인구밀도가 희박한 몬태나 주는 19세기 후반과 큰 차이 없는 야망과 살육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대하 드라마.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옐로우스톤>의 다섯 시즌, 그리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인 <1863>과 <1923> 을 보고 있으면 어쩌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또 되려고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티빙]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송원섭의 스핑크스 2호점 (joins.com)

 

옐로우스톤, 서부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파라마운트 드라마. 현재 미국에선 시즌5가 방송중이다. (계속해서 테일러 셰리단의 작품을 보고 있음) 배경은 '현재'. 코스트너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로드아일랜드

fivecard.joins.com

털사킹

테일러 셰리단 월드는 몬태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잘 나가던 뉴욕의 마피아 중간 보스에서 하루 아침에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나와바리(?)로 받은 실베스터 스탤론. 30년의 옥살이 끝에 지성과 펀치를 겸비하게 된(노인 우습게 보는 동네 깡패들을 한방에 제압하고 돌아서서 검찰 여수사관에게 치근댈 때에는 세네카를 인용할 수 있는 남자!) 스탤론의 인생 2모작 이야기인 셈인데, 일단 보시면 빠져나오기 어려울 듯. [티빙]

 

라이오니스

셰리던은 <옐로우 스톤> 시리즈와 <털사 킹> 외에도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과 <라이오니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신통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중 더 재미있었던 쪽은 <라이오니스>. 근육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 특수부대 장르에 여자들이 주도하고 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새로운 유닛(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대한 이야기다. <메이요 오브 킹스타운>은 시즌2로 가며 엿가락 신공이 작용하고 있는 듯 해서 애정이 식었지만 이 쪽도 팬이 많다는 정도는 언급해도 좋을 듯.  (이상 테일러 셰리단 시리즈는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한국에서는 웨이브였는데 최근 한국 서비스 OTT가 티빙으로 바뀐 듯.)

조이 살다나, 니콜 키드먼의 조합이 생각보다 좋다.  [티빙]

아무튼 여기까지가 테일러 셰리던 시리즈.

글로리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2023년의 드라마로 과연 이 작품을 빼놓고 뭘 얘기할 수 있을지. 오히려 <글로리>의 임팩트가 너무 컸던 탓에 2023년을 빛낸 다른 한국 드라마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여러 학폭 사태로 인해 하늘이 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무적의 송혜교 외에도 주변의 악역 하나 하나, 그 악당들의 주변 인물 하나 하나까지 모두 살려낸 대본은 실로 '드라마의 신'이 실존한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넷플릭스]

소년시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이성한 감독의 2009년작 영화 <바람>. 그리고 충청도를 무대로 했던 영화 <불타는 청춘>이나 뭔가 촌스러운 큐슈 기지촌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이상일 감독의 <69>는 아마도 반면 교사 역할을 했을 듯. 어떤 면에서는 일본 만화 <엔젤전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년시대>제작진의 위대함은 이미 존재했던 이 많은 작품들을 보고 본인들이 아쉬웠던 점을 후련하게 털어낸 뒤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점. 대본, 연출, 그리고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데뷔한 듯한 수많은 젊은 배우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2022년에 박은빈이 있었다면 2023년에는 임시완이 있었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열연. 물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상진이 연기한 호석이가 가장 사랑스러웠다. [쿠팡]

디플로맷

프로페셔널 외교관 부부. 의뭉스러운 대통령의 의지로 영국 전문가인 남편이 아닌 아내가 주영 미국 대사가 된다. 같은 뿌리를 갖고 있고 항상 같은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긴장이 흐르는('영국 총리는 미국 대통령의 애완견이냐'는 시각은 항상 존재한다 - 물론 이런 것도 <러브 액추얼리>같은 영화에서 본 거지만) 미국과 영국의 관계. 그 안에서 온갖 음모와 싸우는 용감한 여대사 케리 러셀의 1인 무적 드라마인데, 사고를 치는 건지 아내를 도와주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남편(전남편) 루퍼트 시웰이 은근히 더 빛나는 느낌도 있다. 시즌 2를 기다리는 중. [넷플릭스]

브러쉬업 라이프

회귀물을 참 많이 봤는데, 인생 2회차 드라마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고, 성공한 작품은 더더욱 없다. 아무래도 그만치 쓰기 어려운 듯. 그런데 인생 5회차 6회차 7회차를 그리는 드라마가 나왔다. 일본 드라마 <브러쉬업 라이프>. 야망도 뭣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 어찌어찌하다 살아온 삶을 뒤엎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판타지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찰떡같다.

물론 살아 보면, 역시 인생이란 두번 정도 살아서 무슨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과거를 바꾸면 그 과거는 계속 또 다른 과거(그러니까 좀 더 가까운 과거)를 만들고... 아무튼 '젊은 여자들 이야기인데 남자 주연은 하나도 없는' 신기한 드라마. 여자들의 우정이 주제다. 멜로가 없으면 드라마가 아닌 분들께는 비추. [웨이브]

 

플레이리스트

스포티파이라는 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음원 앱을 주제로, 그 앱을 만든 창업자, 개발자, 경영자, 그리고 이 사업을 존재 가능하게 한 변호사, 이 사업과 손을 잡아야만 했던 음악산업의 거물,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인 콘텐트를 제공하는 아티스트라는 6개의 시각으로 그 성장 과정을 살펴본 드라마. 꽃미남/미녀/멜로 전혀 없고, 만듦새부터 내용까지 모두 '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을 주는 혁신적인 드라마. 그런데 재미있다. 특히 IT 비즈니스라는 것이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가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강추. 물론 다큐 아님. [넷플릭스]

카지노

시기적으로 살짝 애매하지만 어쨌든 내가 본게 2023년이니 여기에. 결코 흠이 없는 드라마는 아니다. 초반 주인공의 어린 시절 성장 서사가 사실 너무 뻔하고, 너무 지루하다. 하지만 일단 필리핀으로 넘어가면 중간에 끊고 안 볼 수 없게 하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특히 호구 형님과의 시퀀스가 '아... 저기서 멈췄으면' 하는 생각과 '저런 의지 없는 인간은 밑바닥까지 당해 봐야지'하는 묘한 양가감정을 일으킨다. 드라마를 통해 보는 남의 불행은 이런 식으로 즐길 거리를 주는 걸까. 아무튼 일단 흐름에만 오르면 결말까지(그 결말이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이건 그냥 개취) 한방에 달리게 하는 탄탄한 드라마. [디즈니]

리키시

일본 드라마는 어떤 식으로 넷플릭스를 노릴까. 일단 고레에다가 게이샤/마이코 이야기로 물꼬를 텄는데 아무래도 페도파일 냄새가 불편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드라마(그리고 개인적으로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의 기념비적인 드라마는 바로 이 <리키시>라고 생각한다.

<리키시>는 한자로 역사(力士), 즉 '힘 쓰는 남자=스모 선수'라는 뜻. 모래판을 무대로 강백호보다 10배 쯤 더 말 안 듣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천재형 스모 선수가 어찌어찌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이야기. 전혀 잘생기지 않고, 본받을 데도 없는 주인공이 신선하고 이야기 전개도 좋았는데, 주연급 여성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발암이다. 이런 요소는... 앞으로 일본 드라마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데 분명 걸림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너무 뭔가 아저씨 드라마 판 인것 같아 하나 추가하면,

반짝이는 워터멜론

그렇게 많은 2023년의 말랑말랑 청춘 드라마들 중에서 시간을 기다려가며 볼만한 드라마는 이거 하나였다는 생각.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한국의 그 많은 과거 회귀 작품들 가운데서도 드물게 신선함이 빛났다고나 할까. 특히 최현욱의 신비로운 매력은 정말.  [지금 보려면 티빙?]

기타:

물론 매번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시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만달로리안3>는 따로 꼽을 수 없었다. 좀 경우는 다른데 최근 넷플릭스로 소개된 <나이트 에이전트>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이미 본지는 꽤 오래 된 작품. 드라마 외의  TV show 로 꼽는다면 <피지컬 100>, <사이렌: 불의 섬>, <데블스 플랜>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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