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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코로나의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극장을 찾는 것이 전보다 좀 더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래 리스트 중에서도 극장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네요. 심지어 극장에서 본 영화가 집에 앉아서 본 영화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던 것도 결코 아니고 말이죠.

아무튼 늘 그렇듯 제가 2022년에 봤다는 것이지 제작 연도가 2022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숫자는 순위가 아닙니다. 그냥 갯수를 세기 위해 붙인 넘버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 

1. 프리가이

NPC,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들이 열심히 기관총을 쏠 때 한가하게 옆을 지나가는 백곰들이나 당신이 금괴 판매자를 찾아 중동의 낯선 항구를 방황할 때 옆으로 지나가면서 "메카에서는 향신료가 싸다네"하는 존재들을 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존재를 가지고 만들어 낸 보석같은 영화. 시대정신에 딱 맞습니다.

 

2. 리카르도가족으로 산다는 것

언젠가 '왈가닥 루시'라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세대가 이제 사라져가고 있지만, 한때 미국의 연인이자 세계의 연인이었던 루실 볼이라는 여배우. 그 여배우와 주변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인종주의와 매카시즘의 폭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둥둥 떠다니던 시절이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영화.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는 절대 그냥 주어진 것도 아니고, 태곳적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3. 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든 소설이든 모든 것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영화. 그 이야기를 이렇게 촘촘하게 책으로, 잡지로 만들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웨스 앤더슨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문라이즈 킹덤>과 함께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 

 

4. 탑건: 매버릭 

당신은 왜 극장에 가고 영화라는 것은, 극장이라는 것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장 최근의, 가장 설득력있는 답변. <탑건> 세대가 아닌 관객들까지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직 인류가 낭만, 성취, 우정 같은 동기들에 대해 애착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는...

그리고 영화 보는 동안이라도 스무살로 돌아간 듯한 느낌. 

 


5. 놉

조던 필 감독의 세번째 작품. 대체 우리가 모르는 하늘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뭔가 진지하게 얘기하는 척 하다가 곧바로 병맛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블랙코미디인 척 하다가도 어느새 호러로 변신해 있는 영화. 영화 <놉> 자체가 영화의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거기까지 굳이 갈 필요가 없다. 그냥 한 편의 호러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고 강렬한 작품. 

P.S. 다니엘 칼루야는 조던 필 감독의 세 작품 모두에 출연하지는 않습니다.

 


6. 헌트 

한국 스릴러의 역사는 <헌트> 전의 작품과 그 뒤의 작품으로 나뉠 듯. 특히 한국 현대사의 정치 부분을 건드리면서 시나리오 상태에서 이 정도의 짜임새를 갖춘 영화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고, 이 모든게 신인 감독 이정재의 책임하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진정 놀라울 뿐. 

 


7. 헤어질 결심

이미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이 영화는 박찬욱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죄와 벌에 대한 영화. 박해일의 죄가 '아내를 배신한 죄'가 아니라 '사랑을 외면한 죄'라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벌 역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 그래서 이 영화를 멜로 영화로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처참한 징벌극. 

 

8. 13 라이브스

극장개봉도 하지 않고 단지 아마존프라임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가장 강렬했던 영화 중 하나. 13명의 조난당한 소년 축구단 일행을 구하기 위해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는데.... 너무나 담담한 시각이 가슴을 저미는 영화. '저렇게 모두들, 자기 할 일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이었던 거죠.

 

9. 아바타2 

솔직히 292분은 좀 무리라는 생각도 했지만 2022년에 본 영화 중 10편을 뽑는데 <아바타2>를 꼽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불가능했습니다. <아바타3>이 나와도 꼭 볼 거구요. 물론 그 얘기 외에는 사실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게 함정. 그래도 같은 돈 만원(물론 저는 2만원) 내고 세시간 넘게 이런 시각적 경험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정말 염가라고 생각합니다. 

 

10. 더 스위머

시리아 출신의 두 자매가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하 생략) 내전과 학살의 땅. 먼 나라에 사는 우리는 그저 '거기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그곳에도 젊음이 있고, 누려야 할 삶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무겁고 눈물부터 쏟아야 할 것 같은 톤이 절대 아니고, 거칠 것 없는 젊은이들 이야기답게 흥겹고 씩씩한 영화지만, 어느새 '난민'이라는 말의 무게가 가슴에 실리는 영화. 

 

경합:
범죄도시2

어쨌든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을 가장 위로해준 작품. 손석구 캐릭터가 왜 사람을 죽이는가에 대한 개연성 여부를 비롯해 스토리의 구멍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마동석의 펀치가 작렬할 때마다 울려퍼지는, 500년 된 오동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쩍' 소리의 쾌감 앞에서는 비판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듯. 

엘비스

바즈 루어만에 대한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호오가 엇갈리는 작품이지만, 잊혀져가는 엘비스와 그의 시대에 대한 정리를 더 이상 아름답게 해낼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톰 행크스의 악역이 신선했고, Suspicious Mind가 보고 나서도 한동안 귓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워스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이제 이런 영화를 보기엔 너무 늙었...

 

긴급선언

한국 평론가들이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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