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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안녕]이란 영화가 조용히 개봉했습니다. 아, 물론 주인공들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도 했고, 유시민 전 장관이 공개적으로 추천한 영화입니다. '조용히'라고 얘기한 건 '아이언 맨', '전국노래자랑'이나 '스타 트렉'처럼 요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뜨거운 안녕'이라는 제목을 보고 자니 리라는 옛날 가수를 떠올리려면 꽤나 아저씨여야 하겠지만, 이 영화는 1970년대 히트곡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원래 제목은 '불사조'였다고 합니다.

 

영화 '뜨거운 안녕'은 '인기 절정의 사고뭉치 아이돌 스타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로 가득한 호스피스에 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가정에 굉장히 충실하게 사람을 웃기고 울립니다.

 

 

 

 

줄거리. 인기는 최고고 실력도 있지만 성질머리는 최악인 아이돌 록스타 충의(이홍기). 어느날 술집에서 사고를 치고 '당분간 자숙'하는 의미로 지방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겠다고 서약합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 직전부터 자신의 감독자인 다른 자원봉사자 안나(백진희)에게 정통으로 찍혀 버립니다. 험난한 병원 생활을 예감하고 한숨짓는 충의. 봉사고 뭐고 병원에서 도망쳐 잠수를 탈까 고민하는 그의 앞에 다른 환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환자 주제에 자원봉사자에게 담배를 달라는 건달 출신 무성(마동석), 밤마다 병원을 빠져나가는 봉식(임원희), 대체 왜 병원에 있는지 의심스러운 어린 소녀 하은(전민서)... 충의는 외칩니다. "대체 이 병원 정체가 뭐야?"

 

 

 

 

호스피스(hospice)라는 개념이 한국에 상륙한지도 30년이 넘었고, 꽤 많은 병원들이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곳이 있다'는 곳 조차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란 말기암 등 불치병으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들이 평온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정신적인 안정과 위안에 초점을 맞춘 병원을 말합니다.

 

충의군이 처음부터 호스피스의 개념을 머리에 담고 갔다면 큰 혼란이 없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그런 걸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른이든 아이든, 병원 전체가 이미 가망 없는 환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고 그는 꽤 큰 혼란에 빠집니다.

 

사실 이런 병원의 존재는 코미디 소재라기보다는 뭔가 음울하고 측은한 분위기일 것 같지만, 오히려 '뜨거운 안녕'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남택수 감독은 그 분위기를 영화의 소재로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떠돌이 악사가 조폭 출신에게 "그래, 쳐 봐라, 아주 죽여라. 뭐 제삿날 받아 놓은 놈이 뭐가 겁나겠냐?" 라는 식으로 함부로 대들 수 없겠죠.

 

오래 전의 못된 농담 중에 할아버지가 소방관과 싸우면 이기는 이유로 상대가 '물불을 안 가리는' 소방관이라도 '막 가는 인생'인 할아버지를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입원 환자 전원이 '막 가는 인생'인 상황입니다. 시트콤 등 TV 예능 PD 출신인 남택수 감독에겐 이런 설정이 아주 편안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막 가는 인생들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늘 적자 투성이인 병원이죠. 그 병원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이 뭔가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게 바로 밴드 '불사조'라는 설정입니다.

 

사실 충의는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뮤지션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아이돌이라도 슈퍼주니어 멤버보다는 실제 이홍기의 모습인 FT아일랜드의 보컬에 충실한 설정입니다. 하긴 그래야 악기도 연주하고 곡도 쓰는 배경과 맞을 수밖에.

 

 

 

이홍기와 백진희가 담당한 영화의 비주얼은 상큼하고 쾌적합니다. 물론 연기력을 따진다면 둘 다 어느 정도 점수 이상은 아직 무리겠지만, 다행히도 '뜨거운 안녕'은 그리 심각한 수준까지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착한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을 울리기 위해 넣은 장면도 심각하게 정서적인 장애를 낳을 정도는 아닙니다.

 

 

 

대신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중심 축은 마동석에게 가 있습니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 신설된 남우조연상의 첫 수상자였던 마동석은 "연기상 수상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줍니다. 전직 조폭이지만 이제는 시한부 인생이 되어 '많이 착해진' 무성. 유난히 소시지에 탐닉하고 담배도 수시로 피워대는 무성이지만 그래도 말기암이라는 환경은 그의 마지막 동심을 끌어냅니다. 죽을 날이 되어서야 지나온 날들을 반성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가지 희망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하는 무성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이 영화는 자신이 갖고 있는 웃음과 눈물의 70% 이상을 마동석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차별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음악의 존재.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엄마 환자(심이영)에게 충의가 불러 주는 이문세의 '소녀'를 비롯해 영화 곳곳에 박혀 있는 노래들은 충분히 힐링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실 시장에는 '무공해 영화' 혹은 '힐링 영화'를 표방하면서 지독하게 눈물 짜내기의 설정을 통해 보고 난 관객의 피로감을 더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다 보면 '뜨거운 안녕'은 오히려 지나치게 양심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는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 인공 조미료를 지나치게 쓰지 않은 정갈한 산채 정식같은 느낌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강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힐링 무비는 바로 이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생활 주변을 돌아볼 때 힐링이 필요하다 싶은 분들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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