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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막연히, 언제 홋카이도를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줄곧 갖고 있었습니다. 2001년 겨울에 한번 간 적이 있었고 그 때의 기억도 참 좋았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겨울의 홋카이도는 눈의 천국이죠.

 

어디를 가나 도로에는 중앙선이 허공에 떠 있을 정도(눈 때문에 길 바닥의 선은 전혀 보이지 않음)로 눈이 쌓여 있는 설국. 온 사방에 눈이 쌓인 가운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온천에 들어가 얼굴에 선뜩 선뜩 눈송이가 떨어지는 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당시 온갖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며 국내에서 유명해진 장난감 도시 오타루도 멋졌죠.

 

그런데 언젠가 누가 "홋카이도가 겨울이 좋다지만 사실은 여름이 훨씬 더 좋다"고 얘기한게 계기가 됐습니다. 워낙 귀가 얇은 터라 '그래?'하고 솔깃했지만 이번 여름, 마침내 실천에 옮겼습니다.

 

 

 

2001년 겨울, 김민종은 '하얀 그리움'이라는 노래로 겨울 시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볼 수 없을 정도의 겨울 풍경을 위해 홋카이도로 날아갑니다. 저도 그 일행에 끼어 처음으로 홋카이도 땅을 밟았습니다.

 

바로 이 뮤직비디오죠.

 

 

뮤직비디오 중간에 나오는 설원 장면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도야 호수 근처의 평원에서 찍었는데 바람 한 점 막을 곳이 없는 거대한 눈밭에서 하루 종일 촬영을 진행하는 걸 보고 몸서리를 친 적이 있습니다. 한 5분만 서 있어도 뇌 속의 수분이 모두 얼어붙는 것 같은 강추위였기 때문이죠. (네. 저는 본부 격인 버스 안을 거의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낮 일정이 끝나면 환상적인 온천과 맥주의 휴식을 기대할 수 있는, 참 괜찮은 출장이기도 했습니다. 겨울이라 해도 엄청나게 짧았죠.^^

 

 

 

사진을 보니 참 김민종군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군요.^^ 사진의 날짜가 1999년인 것은 사진기의 오류입니다. 당시만 해도 DSLR보다 더 컸던 코닥 디지털 카메라(거의 시제품)를 처음으로 들고 간 상황이었습니다. 메모리도 15~16장 저장이 고작이던 시절. 찍었다가 확인하고 후진 사진은 바로 지워야 했습니다. 오른쪽은 당시에도 이미 스타 사진작가였던 조선희씨.

 

아무튼 그해 겨울의 좋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홋카이도를 막상 다시 간다고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엔 여행사의 힘을 한번 빌려 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는 절대 사절. 다만 호텔과 교통편 예약을 해 주는 발전된 호텔팩 형태라면 괜찮을 듯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사 서치에서 어렵지 않게 에나프 투어(ENAF, www.enaftour.com)라는 회사를 발견했습니다.

 

이 회사의 장점은 주어진 코스대로 가지 않고 직접 일정을 구성해 자유여행을 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만 코스를 재구성해도 합리적인 가격이 산출됩니다. 총 4박5일. 하루는 아시히카와 행, 하루는 후라노 행으로 조절해 견적을 받았습니다. 견적을 받은 뒤 약간의 절충이 있었습니다.

 

요즘 온 사방에서 욕을 먹는 '파워 블로거지' 흉내를 한번 내 본 거죠("사장님, 제가 블로그에도 한번 쓰고 하면 홍보가 쫘악~~"). 그렇게 해서 아주 약간의 할인(정말 약간입니다. 견적 요금의 10% 미만 ^^;;;)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뭐 꼭 그래서라기보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 온 지금, 다른 지역은 몰라도 홋카이도를 갈 때에는 여행사의 자유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란 생각이 듭니다. 직접 숙소나 교통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여러 모로 바쁜 사람들에겐 숙소와 교통편 예약에 꽤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차차 더 자세히 나올 겁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그렇게 해서 신 치토세 공항에 내린 것이 오후 2시경. 흐리고 비가 쏟아질 거라던 예보가 무색하게 해는 쨍쨍 빛났습니다. 그래도 덥지는 않은 날씨. 22~23도 정도의 기온입니다. 시내까지는 1040엔짜리 공항 특급 전철로 직행합니다. 삿포로 역까지 35분. 운이 없으면 서서 갈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 고유의 날렵한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삿포로 역은 역시 일본답게 노숙자나 사창가, 우범지역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대도시 역과는 전혀 다른 느낌. 대형 쇼핑몰이 잇달아 있어 도쿄의 시부야 역이나 서울의 용산역 같은 느낌입니다.

 

삿포로 시내는 쾌적하게 뚫려 있고 워낙 평지라 삿포로 역 광장에서 남쪽으로 쭉 뚫린 길을 바라보면 스스키노의 랜드마크인 기린맥주 전광판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보인다는 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꽤 가까운 거리 같지만 실제로는 전철 두 정거장. 네. 걸으면 시간과 땀이 꽤 소요됩니다.

 

 

 

 

숙소인 그랜드 호텔은 삿포로 역과 오오토리 역의 어렴풋이 중간에 있습니다. 삿포로 역까지는 약 7분, 오오토리 역까지는 3,4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1층에 스타벅스가 있어 금세 눈에 들어옵니다.

 

삿포로의 명물인 구 도청사가 바로 뒤편에 있어 호텔에서 보입니다. 물론 이렇게만 보고 가 보진 않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삿포로의 고전적인 호텔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랜드 호텔.

 

 

스타벅스 간판 뒤로 길이 막힌 듯 보이는게 삿포로 역사. 지척입니다. 참고로 이 넓은 길은 인도입니다. 정작 큰길은 오른쪽 지하도 입구 때문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리뉴얼을 통해 객실은 깔끔하게 마무리됐습니다. 특히 일본 호텔답지 않게 공간이 널찍합니다. 화장실도 사진은 없지만 꽤 넉넉한 공간. 방 안에 사무용 탁자 하나 정도만 있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쨌든 여장을 풀자 마자 기내식이 좀 부족했는지 '허기지다'는 마나님을 모시고 길을 나섰습니다. 목표는 스스키노 역 바로 옆에 있는 스미레. '도쿄 연예인들이 삿포로에 오면 꼭 들르는 집'이라는 말에 혹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한지 한 7,8년 밖에 안 됩니다. 아직까지는 미소라멘의 진득한 맛 보다는 쇼유라멘의 (상대적인) 깔끔함이 더 끌리는 편이죠. 하지만 삿포로에서는 아무래도 미소라멘이 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예상 적중. 국물에 면을 말았다기보다는 짜장에 물을 약간 부었다고 할 정도로 진하디 진한 미소 국물. 쇼유라멘과는 달리 차슈를 넣지 않고 대신 간 고기를 꾸미로 넣어 줍니다. 면발과 함께 술술 넘어갑니다. 약간 신 맛이 나는 미소 육수가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줍니다.

 

반면 쇼유라멘은 뭐랄까... 간장이 본 육수의 강렬함을 전혀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것이 삿포로 라멘 전체의 특징인지, 아니면 스미레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간사이에서는 라멘에 대만족을 표현하던 동행인이 스미레의 쇼유라멘에 질려 "이번 여행에서 라멘은 이걸로 끝"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멘요코초와 신라멘요코초 모두 그냥 간판만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면: '요코초'란 골목을 말하는 것으로, 삿포로의 명물인 라면 전문점이 모여 있는 작은 골목입니다. 라멘요코초가 인기를 얻어 뒷날 신라멘요코초가 생겼죠. 모두 스스키노 역 주변의 잘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첫날인 만큼 무리하지 않고 소프트아이스크림으로 입안을 정리한 뒤(아이스크림 이야기는 한방에 모아서 다시 소개합니다.) 숙소로 귀환. 잠시 오수를 취하고 느즈막히 저녁식사를 위해 삿포로 역사 상가로 향했습니다. 역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시집 '하나마루'를 가기 위해서입니다.

 

알려진대로 오후 8시30분인데도 늘어서 있는 줄. 안내자는 "3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한다"고 합니다. 뭐 그 정도는 기다려 주지.^^ 그런데 회전초밥인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삿포로 역사 빌딩에는 다이마루 백화점 - 스텔라 플레이스 - 에스타라는 이름의 상가가 한 건물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이 스시집 하나마루는 스텔라 플레이스 6층. 사진으로는 오른쪽으로 보이는(파란색) 다이마루 백화점 연결 통로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가격표. 세금 포함하면 136엔에서 420엔까지 있습니다. 제일 비싼 420엔 짜리는 우니(성게알), 오도로(참치 뱃살), 통 아나고(붕장어) 등입니다. 환율을 감안해도 먹을만한 가격입니다.

 

(가격표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돌아가는 접시 외에 먹고 싶은 스시가 안 보이면 종이에 적어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아무래도 좋아하는 초밥 재료 몇가지 정도는 쓸 줄 아는 쪽이 일본 여행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저도 일본어는 못하지만 초밥 재료는 좀 아는 편입니다.)

 

 

맛있어 보여서 집었는데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먹고 나서도... 뭔가의 껍질을 간장에 졸인 느낌? 아무튼 무척 짰습니다.

 

일본 어디건 바닷가 아닌 곳이 없겠지만 그래도 홋카이도에서 먹는 스시는 참 신선하다는 느낌. 꽤 열심히 먹고 있는데 옆의 커플은 벌써 세 그릇 째 장국을 추가해가며 엄청나게 먹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라아게까지. 남자도 남자지만 여친도 참 대단. (누가 일본 사람이 소식한다고 했냐고.)

 

반면 왼쪽에는 미국인인 것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 커플(?)이 열심히 '이쿠라' '오토로우' 해 가며 초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초밥 한 접시에 간장 한 종지씩을 먹어 치웁니다. 저렇게 짜게 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누가 한국 사람이 짜게 먹는다고 했냐고.)

 

 

아무튼 삿포로 클래식 나마비루 한잔에 대게 다릿살 스시. 최상의 조합입니다. 담백하고 달달한 스시의 밥알 하나 하나가 맥주를 타고 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 왜 서울에서 먹으면 이런 느낌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홋카이도 특산이라는 멜론 한 조각으로 마무리.

 

 

 

필 받은 김에 삿포로에서만 파는 한정 맥주를 사들고 귀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오른쪽은 대기업 브랜드인 삿포로맥주의 홋카이도 한정판이지만 왼쪽은 아예 '스스키노 비어'라는 로컬 브랜드입니다.)

 

 

다음날 예고편은 노롯코 공원. 도심에서 30분 거리에 놀랄만한 대자연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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