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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물론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입니다.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발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해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은주에 이어 최진실마저 보내게 된 상황을 생각하면 이것이 과연 진정한 언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인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에 유포되는 악성 글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처럼 인터넷이 서로에게 소통의 장이 아니라 침 뱉는 장소가 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아날로그로, 펜으로 편지 글을 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우리는 그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원합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우리 감독들은 문화 권력이 너무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 있지 않나 우려합니다. 창작자의 발언, 전문가인 기자·평론가의 발언, 그리고 관객인 네티즌의 발언이 고루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함에도 거의 일방적으로 네티즌의 파워에 쏠려 있는 불균형 상태를 심히 우려합니다. 때로는 막말과 인격 살해를 일삼는 그 네티즌이 과연 관객 전부를 제대로 대변하는 것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후략)."
('최진실을 보내며'. 10월2일 한국 영화감독네트워크 성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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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법'의 추진 움직임이 정치권의 화두가 됐습니다. 물론 어떻게 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번 사건이 통칭 사이버 모욕죄의 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값진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최진실의 죽음의 원인이 100% 인터넷의 악성 댓글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항상 어리석은 사람들일 수록 100%냐 아니냐를 따지죠.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악성 댓글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루머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의 인터넷 환경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지 않은 사람도 없을 듯 합니다. 수많은 댓글과 근거 없는 루머의 확산 채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둡고 습기가 차면 당연히 곰팡이가 핍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웅크리고 세상에 독을 뿜어내는 족속들에게 인터넷은 너무나 바람직한 환경이 됩니다. 슬쩍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익명성, 그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좋다는 방임의 환경이 이런 곰팡이들을 천지에 피어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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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요 포털은 '최진실'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기사에 댓글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죽음을 맞은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식으로 댓글을 차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2년 전, 그러니까 이의정의 암 투병-복귀 기사에 달린 악성 댓글들을 보고 하도 기가 차서, 이런 광경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 접촉했던 포털 홍보 담당자의 말은 이랬습니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의사 교환의 장이며 댓글은 그 중요한 수단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댓글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 아름다운 말입니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보호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근거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맹목적인 옹호는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만연했다는 이런 광경을 연상시킵니다.

남자 A, 남자 B의 뒤통수를 친다.
B: 왜 때려?
A: 자유야.
B: 뭐?
A: 나한테는 너를 때릴 자유가 있어. 이제 해방됐으니 자유야.
B: 뭐가 어쩌고 어째. 오냐. 그럼 이 방망이로 너를 패는 것도 자유지? 맛좀 봐라.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실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라고 있는 것 중에서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면, '자유'라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도 안에서, 혹은 부득이하게 피해를 줄 경우 타인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한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 단군 이래 지금만큼 이 자유가 널리 보장된 적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언론과 출판의 결과물은 엄격한 법에 의해 배포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명에훼손과 사생활 침해, 모욕죄, 업무방해죄 등에 의거해 언론의 잘못되거나 왜곡된 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떻습니까.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아 인터넷에서는 개인의 의견이 어떤 언론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됐습니다. "정선희 남편이 죽었는데 최진실이 왜 기절해?" "글쎄, 돈 빌려 줬었나보지"라는 식의 실속 없는 농담이 "최진실이 거액의 사채를 빌려줬다더라"는 어처구니없는 루머가 되어 돌아오는 게 인터넷 환경의 특징입니다.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남의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는, 고층 건물에서 창밖으로 볼펜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볼펜에 맞고 누군가 죽었다면, 당사자는 책임을 져야겠죠. 그것이 사이버 모욕죄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 의식 없이 툭툭 던지는 심한 말들로 인해 피해를 보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것이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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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존재하는 법규로도 어느 정도의 처벌(그래봐야 솜방망이지만)은 가능합니다. 제가 종사하는 분야가 이런 쪽이라 자주 봐 왔지만, 연예인에 대한 악성 댓글이나 허위 소문의 유포로 막상 경찰에 잡혀 온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하는 짓 또한 너무도 똑같습니다. "별 악의 없이 한 일이다.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지 몰랐다. 용서를 빈다." 그러고 나서, 해당 연예인이 '선처를 호소'하지 않으면 악플이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 재수없다. 지가 대단한 줄 안다. 다 팬들이 밀어줬으니까 오늘의 영화가 있는거지, 뭐 대단한 말을 했다고 안 풀어주고 **이냐?"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티 세력의 등장입니다. '안티가 많다'는 소문이 돌면 가장 큰 수입원인 CF가 끊기기 때문이죠. 결국은 아무리 심한 악플을 달아도 대개는 그냥 훈방해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최진실법이라는 것의 등장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 거론하고 있는 사소하고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내가 이 행동으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그 법으로 인해 처벌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든, 그런 인식의 확산이 무엇보다 절실한 순간입니다. 아니, 이미 2,3년 전부터 세상은 이런 조치를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게 그저 망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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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글에도 아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댓글들이 꽤 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의 끄나풀답다" 뭐 이런 내용도 있겠죠. 그런 분들에게 하나 권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정당하다면,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 누군지를 밝히고 댓글을 달아 보십쇼. 어둠 속에 숨어서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바보같은 손가락질이나 하지 말고 말입니다.


p.s. 2. 최진실에 대한 보도 행태를 보면 사태가 사태인 만큼, 기자들도 예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하지만 일부 보도를 보다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 기사가 가끔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괴담에는 그녀가 동생을 바지사장으로 앞세워 사채업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또 돈 때문에 정선희를 안재환에게 소개시켜줬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다. 이른 바 '정략 중매설'이다. 안재환에게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돈을 잘 버는 후배 정선희를 결혼 상대로 소개시켜줬고 최진실의 의도를 알게 된 정선희가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게 루머의 요체다.

세 사람과 관련된 루머의 핵심은 최진실씨가 안재환씨에게 사채를 빌려줬다는 설. 증권가에 도는 소위 ‘찌라시’(온갓 소문을 모은 정보지)에서 출발한 이 소문은 최씨가 직접 돈을 빌려줬다는 것에서 시작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대신 빌려줬다는 바지사장설, 새아버지가 사채업자라 새아버지를 통해 빌려줬다는 새아버지설 등으로 끈질기게 부풀려져 갔다.

이런 걸 쓰는 기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관련 기사를 쓰면서 '그 소문이란게 사실 이러이러한 것이고 이러이러하게 발전되고 있답니다'라고 그렇게 충실하게 독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까? 오히려 기사가 루머 확산에 더욱 더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까? 혹시 망자에게 미안하지는 않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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