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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해가 기울 무렵, 천천히 호텔을 나서 구시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이든 민박이든, 한번 아침에 길을 떠나면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이제 좀 무리다.

그래서 핵심 관광 스팟에 가까운 호텔이 더 좋은 것이기도.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대도 예쁘게 찍히는 프라하의 마법.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을 음악회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프라하의 수많은 공연장에서는 쉴새없이 공연을 한다. 단, 거의 모든 공연들은 그저 '공연을 감상한다'는 목표에 맞춰져 있다.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소위 말하는 관광객용 공연이다.

 

그런데 또 막상 들어 보면 돈 값 이상은 분명히 한다. 이유는 공연장들이 100년 200년 씩 된 교회 내부라는 데 있다.

 

프라하의 폭염을 피해 들어간 서늘한 교회 내부에서, 파이프 오르간과 오케스트라(소규모지만)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절로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원짜리 공연이 10만원짜리 공연의 효용을 내는 순간이다.

 

지난 2000년 프라하에 들렀을 때, 우연히 길에서 나눠주는 찌라시를 보고 한 교회로 연주를 들으러 갔다. 그때 느꼈던 청량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록 관광객용의 약식 연주회지만, 그래도 프라하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꼭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굳이 고르라면 성당 쪽을 추천한다(교회 공연도 많은데, 교회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없다^^).

 

 

오늘의 목적지는 틴 성당.

 

줄여서 그냥 틴 성당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틴 앞의 성모 성당'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체코어로는 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영어로는 Church of Our Lady before Tyn 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 틴 성당의 내부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함께 달래 보기로 했다.

 

 

 

엄청난 금빛의 물결. 성 비투스 성당보다 훨씬 화려한 색감이다.

 

팁 하나를 더 하자면, 일단 비싼 표를 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일찍 표를 살 필요도 없다. 틴 성당의 저녁 8시 공연은 최고가 1100 코루나(약 5만5000원)에서 500코루나 (2만5000원) 까지 매겨져 있다. 아마 500 코루나는 무슨 장애인 우대 티겟인가 그럴 거다.

 

하지만 늦게 갈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왜일까. 어차피 공연은 하게 되어 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면 이익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공연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하기 바란다. (매진돼서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은 금물. 자리가 다 차면 보조의자 놓고 들여보낼 사람들이다.) '공연이 곧 시작하니 표를 사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말하기 바란다.

 

'Discount Please!'

 

그 먼데까지 가서 체면 구길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들어가시면 된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할인을 해 준다. 오래 버티면 버틸 수록 싸 질 것을 확신하지만, 아무튼 적당히 타협을 해서 적당한 가격을 할인받고 들어가시기 바란다.

 

(할인율을 여기서 딱부러지게 쓰지는 않겠다. 각자 알아서 적당히 깎으시길.)

 

 

파이프오르간은 뒤에 있는 구조.

 

 

폰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법을 좀 잘못 썼더니 기둥이 휘었다. 아무튼 이런 천장 아래서 음악을 듣는다.

 

멋지지 않나?

 

 

천장 한가운데 합스부르크의 독수리 문장.

 

역시 '그것 또한 우리의 역사'라는 체코 식 사고방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8명 정도의 단원이 등장하는 Royal Chech Ochestra의 연주 시작.

(대체 왜 Royal이 들어가는지 매우 의문이지만)

 

연주곡은 비발디의 4계, 파헬벨의 캐논, 그리고 프라하이다 보니 당연히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블타바' 등.

 

그렇다. 클래식 좀 들으시는 분들이라면 입문 후 3개월 이내에 듣게 되는 곡들이다(엔딩 곡은 무려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곡들을 자유자재로 특정 악장만 잘라 내 공연하는 등 전형적인 팝스 오케스트라의 선곡이다. 중간에 독주자로 나온 분은 체코 필하모닉의 악장 출신이라고 하는데... 뭐 누가 확인해 볼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대단한 예술적 경험'을 기대하실 만한 공연은 아니고 - 물론 프라하에서는 그런 공연도 매우 자주 열린다 - 이런 장소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게 매우 이색적이고 영혼을 맑게 해 준다는 것을 한번 경험해 보시라는 뜻에서 추천한다. 각자의 스케줄과 컨디션에 맞춰서.

 

 

공연이 끝나고 구시가 광장 쪽으로 나오면 보게 되는 풍경. 후스 동상과 성 니콜라스 교회 (참, 프라하에는 성 니콜라스 교회가 두 개 있다. 이건 구시가 광장 옆의 니콜라스 교회다)를 배경으로, 거의 항상 거리 예술가들이 판을 벌인다.

 

 

 

아마도 프라하라는 도시가 있는 한 영원히 만남의 장소일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

 

"이번주 토요일 6시에 후스 동상 앞에서 만나" "알았어" 이런 대화가 수없이 오갈.

 

그런데 지금 저녁 9시다. 아직도 날이 너무 훤하다. 서머타임의 위력을 감안해도 너무 밤이 짧다.

 

 

그래서 일단 강 쪽으로 걷고 또 걷다가 적당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Mistral Cafe. 구시가 광장에서 마네수프 다리 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

 

 

Mistral Cafe

Valentinská 11/56
110 00 Praha 1 - Staré Město

 

 

Hovězí maso 150g ve svíčkové omáčce s domácím bylinkovým knedlíkem 이라는 이름의 요리다(좌하단). 200 코루나 정도 하는데 정말 기막힌 맛이다.  대략 안심 그레이비 소스에 버무린 살코기(Beef with Sirloin Gravy 정도?) + 덤플링 이라는 뜻인데, Svíčková omáčka 에 핵심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식당에서라도 꼭 드셔 보시길.

 

나머지는 상식적인 음식들이다. 쇠고기 슈니첼, 팬에 구운 야채, 그린 샐러드. 다 기본 이상의 맛이다. 매우 훌륭

 

아무튼 저렇게 차려 놓고 먹으면 음료까지 한 4만원 정도.

 

 

 

사실 손님은 건너편의 꼬치집^^이 더 많았다. 체코에서는 아마도 스피지 Spizy 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러시아의 샤슬릭이나 그리스의 수블라키 같은 꼬치 구이 요리가 체코에서도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내부는 꼬치 굽는 연기도 자욱하고, 사람들이 미친듯이 맥주와 꼬치구이를 먹으며 떠드는 분위기. 가격도 꽤 저렴해 보였다. 일단 사람이 많길래 저 집을 가볼까 했지만 빈 자리가 없어서 조용해 보이는 앞집으로 왔는데, 음식을 먹어보고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신나게 저녁을 먹고 강쪽으로 나섰다. 해가 이제서야 뉘엿뉘엿 서산으로.

 

 

 

 

 

 

 

막 운치있게 예쁘고 그렇다.

 

 

아무데나 대충 들이대도 그냥 그림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강가로 나오면 건너편에 뜨악 나타나는 프라하 성의 전경.

 

 

 

강가 관광식당에선 관광객들의 식사가 한창. 조명 때문에 나무 색이 계속 바뀐다.

 

 

관광객 티를 팍팍 내면서 이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찾아보니 이 집 http://marinaristorante.cz 인듯. 청담동 보단 싸다.

 

 

 

 

 

찍어도 찍어도 성에 안 차고 자꾸 또 찍고 싶어지는 프라하성의 마력

 

이럴때 해보고 싶은게 카메라 성능 테스트다.

 

밤 촬영에 특히 강한 RX100 시리즈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잡아당겨질까?

 

 

 

이 정도가 한계인 듯. 아무튼 카를교 위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성 야경은 언제 봐도, 누가 찍어도 최고다.

 

 

 

카를 교 동쪽 광장은 항상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일단 저 다리 끝을 알리는 탑이 사진의 배경으로 그만이기도 하고.

 

저 자리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들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허물없이 예쁘고 잘생겼다.

 

여자가 두 남자에게 말했다. "어머, 그럼 정말 여기서 헤어지는 거에요?" 두 남자는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그 말 한마디에 세 사람의 관계가 그려진다.

 

세 남녀는 이번 여행길에 만났다. 어제 만났는지, 그제 만났는지, 오늘 아침에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의기투합해서 프라하 구경을 같이 하기로 한다. 그래서 쟁하니 해가 밝은 토요일, 프라하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기한은 오늘 밤까지. 프라하 구경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 성 야경 보기'를 마친 뒤 두 남자는 원래 정해진 대로 여자에게 "이제 우리는 갈 길(아마도 시간으로 보아 프라하 역에서 떠나는 야간 열차가 아닐까 싶다)을 갈테니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을 한 상태인 것 같다.

 

여자의 마음 속이 과연 어느 쪽인지, 정말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예의인지는 알 수 없다. 두 남자 중 누가 여자에게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하루 다녀 보고 여자에게 질려 예정보다 빨리 이별을 선언해 버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쩐지 프라하의 야경을 배경으로 이런 얘기를 듣고 보면,

 

저 세 사람이 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 프라하에서 함께 보낸 그날을 얘기하는 미래를 상상해보게 된다.

 

 

 

뭐 아무리 메마른 사람도 이런 경관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삼각관계로 발전... 까지는 몰라도.^^

 

 

 

하늘도 파랗고... 밤인데도 파랗다.

 

 

 

이렇게 해서 프라하 여행은 일단락.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집을 들렀는데 분위기도 딱 1980년대 서울의 '하이델베르크'인데다 손님의 절반이 동양인, 나머지 절반 중 절반도 관광객으로 보였다. 큰 감흥 없는 마무리.

 

17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뭔가 롯데월드 같은 느낌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무데나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지만 어딘가 짙은 감흥을 주지는 못하는. 하긴 두 번 합해서 딱 3일 머물고 무슨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저 파란 저녁 하늘과 금빛으로 빛나는 성의 모습을 보면 저만한 볼 거리가 또 있을까 싶은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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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야간 투어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오랜 경험에 따라 '첫날은 일단 피곤하게'라는 원칙을 따르기로 했다. 첫날 무리해서 여정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무서운 건 시차의 극복이었다. 첫날 일정을 오후 7~8시 정도에 마감하고 쓰러져 잠들어 버리면 기껏 많이 자 봐야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정도면 잠이 깬다. 그때부터 다시 자 보려는 부질없는 노력과, 다음날 일정까지 망치면 어쩌나 하는 스트레스가 매우 짜증스럽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가능한 한 첫날은 일찍 잠들어선 안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둘쨋날 기상 시간이 늦으면 늦을 수록 그 여행은 성공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르셀로나 야경 투어는 람블라스 길 한 귀퉁이, 지하철 역으로 리세우 Liceu 역 부근에 있는 레이알 광장 Placa Reial 에서 시작됐다. 레이알 광장은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거의 정사각형의 공간이다.

 

 

 

사실 사진으로 보면 그럴듯하지만 결코 사진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한복판의 랜드마크인 분수는 오물로 가득 차 있고, 주변 건물들의 아치에는 세월의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노천 카페에서 먹고 마시며 금요일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저분하다면 지저분한, 낭만적이라면 낭만적인 그런 장소였다.

 

그리고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색이 다른 가로등, 이게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이게 가우디의 데뷔작이라는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 본래 가스등으로 설계된 것이었다고 하나 "왜 니가 설계한대로 짓기만 하면 뭐든 왜 설치비가 두배씩 드는 거야"라는 시 당국의 반응 때문에 결국 1호 등인 이 등만 남고 나머지는 설치된 곳이 없다고 전한다. 비록 가우디의 건물들이 지금은 입장료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하지만, 건축 당시로 돌아가 보면 정말 경제적으로 성공한 곳이 없다.

 

아무튼 야경을 찍으면서 새로 산 카메라의 놀라운 성능에 혼자 감탄하고 있었다. 이 밝기에서 삼각대도 없이 이 정도..?

 

마침내 가이드 도착. 야경 투어 출발.

 

 

 

 

 

이 지도에서 A라고 표시된 곳이 출발 지점인 레이알 광장, 그리고 B라고 표기된 곳이 일단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이다. 위의 구글 지도상으로는 1.2Km, 도보로 약 15~20분 정도 거리라고 볼 수 있는데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만큼, 약 1시간 동안 골목을 이리저리 돌며 지나간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카탈루냐 광장의 남쪽, 바르셀로나의 구 도심은 엄청나게 미로같은 골목과 골목의 연속이다.

 

그리고 지도 오른쪽의 동그라미 친 부분 바로 아래를 보면 El Gotic 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바로 이것이, 이 주변을 가리키는 이름인 '고딕 지구' 라는 뜻이다. 이 주변에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 Cathedral, 왕의 광장 Placa del Rei, 그리고 시립 역사 박물관 등의 포인트가 있다. 비록 도착 첫날, 한밤중에 골목길을 빙빙 돌아 간 위치가 제대로 기억에 남을 리 없으나, 아무튼 나중에 지도상으로 확인해 보면 그렇다.

 

사실 저 위 지도가 커버하는 영역 안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찾는 바르셀로나 관광 포인트의 절반 가량이 들어 있다. 아무리 미로같은 골목의 연속이라지만 방향만 눈에 익으면,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도 왼쪽 윗부분의 미로처럼 표현된 카탈루냐 광장, 광장을 등지고 바로 오른쪽 아래(바다 방향)로 뻗은 라 람블라 La Rambla 거리,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라이에타나 길 Via Laietana 만 알면 절대 헤매지 않는다. 중간에서 아무리 헤매도 한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10분 내에 두 길 중 한 길과 만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뭐 이건 한참 나중의 이야기고, 일단 밤길을 즐겨 본다.

 

 

 

 

이렇게 가이드의 뒤통수만 보고 골목길 속으로 들어가는게 시작.

 

소니 RX100 2의 렌즈 밝기 때문에 길이 실제보다 밝아 보일 수 있다. 사실은 굉장히 컴컴하고 으슥한 골목이다.  

 

 

 

그런 좁은 길에도 수시로 자전거가 지나간다. 긴장은 해야 한다.

 

 

 

물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수백년 전에 건설된 성벽의 잔해, 그리고 아치와 만날 수 있다.

 

(이 광장은 영화 '향수'의 무대가 되었다는 곳.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작은 광장 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금세 익숙해진다.

 

 

구 도심에는 높은 건물 없는 5~6층짜리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스페인 특유의 파티오 Patio, 즉 중정(中庭)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통으로 된 돌 건물 같지만 내부에는 뻥 뚫린 공간과 작은 정원이 있다는 뜻.

 

도시 경관 유지를 위해 건물의 외부를 수리하는 일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 이건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 대부분 적용되는 규정이다. 그래서 실제로 내부에 들어가 보면 그렇게 오래된 건물이라는 느낌은 없다고 하지만, 건물 외관을 봐선 도저히 현대인이 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역의 아파트들은 특히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래도 도심 한복판인데다, 보기보다는 치안도 좋고, 무엇보다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에 살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집세는 꽤 비싼 편이라고 한다.  

 

아무튼 저 위 사진들이 페란 Ferran 거리, 아비뇽 Avignon 거리 등을 지나며 찍은 것들이다. 잠깐 아비뇽 거리? 그렇다.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에 나오는 바로 그 아비뇽 거리다. 피카소가 살던 무렵에는 도심의 집창촌이었고, 그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 또한 거기서 일하는 매춘부들이었다는 얘기다.

 

 

 

이 아비뇽이 '아비뇽의 유수'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이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거리 이름이었다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 사연을 알고 나니, 이 그림이 그렇게 큰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가 단지 화법이 대담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피카소는 과감했다. 20세기 초에 누가 이렇게 누구나 입에 담기 꺼려 하는 창녀촌의 여자들을 올 누드로 그리고, 제목까지 명확하게 붙여 작품으로 내놓을 생각을 했을까 싶다.

 

 

 

 

사실 야경 투어 가이드의 방침 자체가 '분위기를 느껴보라는 보너스 투어' 형식이지 이해하라는 것이 아니어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지나가다 보니 그럴싸한 건물 벽면에 뭔가 중요한 듯한 설명 명패가 붙어 있어 찍었다.

 

팔라우 델 라 헤네랄리타트 Palau de la Generalitat 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라는 뜻. 팔라우는 스페인어로 궁전, 청사라는 뜻이고 헤네랄리타트는 카탈루냐 특유의 자치 시스템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건 그 자치청사의 뒷골목. 건물과 건물 사이를 '행정적 편의'를 위해 연결해 놓은 모습이다. 공무원 건물이라지만 관광객이야 알 바 아니고, 밤에 보면 꽤 멋지다.

 

 

 

 

미로같은 건물마다 도로명이 써 있긴 하지만 초행자가 길 찾기란 매우 힘들다. 그래도 갈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아 위에서 말한 대로 어느 방향이든 한 방향으로만 계속 가면 람블라 거리나 라이에타나 길 중 하나를 만나게 되니까.

 

단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전 스페인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 주의사항.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잘 모르는 듯한 사람을 만나면 빨리 패스하고 다른 사람을 섭외해야 한다. 상대방이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도, 딱 잘라 이쪽인지 저쪽인지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뭔가 수다를 떤다. 특히 노인들이 이런 경향이 짙다. 마치 '너는 스페인어를 모르지. 하지만 내가 계속 하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너도 귀가 트여 우리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악의에서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니겠지만, 바쁜 관광객의 입장에선 잡혀 있으면 좀... 곤란하다.

 

 

 

어둑어둑한 골목만 보면 마치 유령도시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골목 사이마다 카페나 바가 있고 사람들이 빼곡 들어차 술을 마시고 있다. '있을까' 싶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게 매력이다.

 

 

 

그 골목을 돌고 돌다 가게 된 곳이 유명한 포인트 중 하나인 왕의 광장 Placa del Rei. 저 아마추어 밴드가 공연하고 있는 계단이 바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최대한 스페인 발음에 가깝게 하면 끄리스또발 꼴론)가 이사벨라 여왕에게 신대륙의 발견을 보고한 역사적인 자리다.

 

 

 

 

 

왜 이 자리에서? 하는 생각은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사라진다. 이곳이 바로 스페인이 분할되었던 시대, 아라곤 Aragon 왕국의 궁전 앞이기 때문이다. 아라곤 왕국의 수도는 사라고사 Zaragoza 지만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에도 왕궁이 있었던 모양이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다.

 

초간단으로 설명하면, 아랍계 무어인들과 오랫동안 공존해 온 스페인의 기독교/유럽 세력은 강력한 국토 회복 운동을 벌여 수많은 지역이 몇 개의 왕국으로 통합되어 갔다. 그 결과 중부 스페인 대부분 지역을 다스리던 카스티야 왕국과 동남부, 아라곤과 카탈루냐, 발렌시아 등을 장악한 아라곤 왕국이 양강을 형성하게 됐다.

 

1479년 카스티야의 공주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자 페르난도가 결혼을 한다. 양쪽 모두 기득권 세력의 반대가 만만찮았지만 아무튼 통일과 국토 회복을 위한 대 결단이 내려졌고, 두 나라가 하나로 무혈 통합됐다. 그렇게 해서 국력이 두배가 된 이들은 1492년 1월, 그라나다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고 기독교 스페인의 회복, 즉 레꽁께따 Reconquesta(철자를 보면 알 수 있지만 re-conquest, 즉 '재정복'이란 뜻이다. 레꽁께스따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s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를 완성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해 8월, 스폰서를 구하다 구하다 못 구한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얻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인도를 발견하겠다고 가더니 결국 라틴 아메리카를 발견해 냈다(물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발견한 땅이 인도 동쪽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향료 대신 황금을 가져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다. 1492년이 이토록 중요한 해였으므로 스페인에서는 그 500주년인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아라곤이란 말을 듣는 순간 '반지의 제왕'의 비고 모텐슨을 떠올리며 꺅 소리를 내시는 분들이 꽤 있는데 그 아라곤은 Aragorn. 책에는 아예 아라고른이라고 써 있다.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과는 아무 상관 없이 톨킨이 만들어 낸 이름이다. 혹시 여기 오면 반지의 제왕과 관련된 뭔가가 있을까 기대하시는 분이 있을까봐 기우로 한마디 보태면,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이다. 제발 실제 역사와 판타지는 구별 해 주시길.^^)

 

 

 

 

이렇게 동상과 그림자를 이용한 조명 플레이도 꽤 멋지다. 누구 동상인지는 패스.^^

(지금 찾아보니 바르셀로나의 백작 라몬 베렝게르 3세라고 한다.)

 

 

 

왕궁의 한 귀퉁이. 지금은 이쪽 면이 라이에타나 대로변으로 나와 있다. 대로라고 해봐야 겨우 4차선 정도다.

 

 

 

뒤로 살짝 돌아 나오면 이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 Cathedral. 각 도시마다 있는 카테드랄은 그 도시의 수많은 성당들 중 본당을 의미한다. 당연히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탈리아의 두오모와 거의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지만 바르셀로나의 카테드랄은 좀 서운할 수도 있을 듯 하다. 일단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지어지고 있는 한편, 남쪽 해변 가까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에도 지명도 면에서 뒤지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안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규모나 화려함 면에선 별로 뒤질 게 없어 보이는데... 안됐다.

 

 

 

거기서 길을 건너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카탈루냐 음악당이 나온다. 오페라의 전당인 리세우 Liceu 극장과 함께 바르셀로나 공연 문화의 상징이며, 이 도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대 가우디의 라이벌이라는 건축가 몬타네로의 작품이라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고, 외벽만 봐도 꽃 장식이 요란하다. 심지어 내부 투어만 하는데도 입장료를 받는다.

 

내일 저녁에 공연을 보러 올 예정이므로 이 정도만.

 

 

 

 

아름다운 건 분명하나 명성에 비해 너무 좁은 골목길 안에 있어 건물 전체를 찍을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여기서 불량 체력 관광객들은 일행과 결별.

 

나머지 일행은 한국의 리움 미술관도 설계했다는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지은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물, 아그바 타워 Agbar Tower를 보러 떠났지만, 이만 하면 숙면을 취하기 충분하겠다는 판단 아래 숙소로 향했다.

 

 

 

바로 이 건물. 저렇게 태극 색으로 반짝이는 야경 사진을 보면 가 볼걸 그랬다는 생각도 물씬물씬.

 

그런데 여행은 가서 배우고, 다녀 와서도 배운다. 막상 바르셀로나에서 사람들이 "새로운 명물로 아그바 타워도 있어요"라고 말할 때, "아, 런던에서 그거랑 똑같은 건물을 봤어요. 같은 사람이 지은 건가 보죠?"하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네. 그렇다고들 하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니더라는 거지.

 

알고 보니 지은 사람이 달랐다.

 

 

 

이 건물이 런던에 있는 30 세인트 메리 엑스 30 St. Mary Axe(좀 길지만 건물 이름이 이렇다). 똑같이 생겼지만 이건 장 누벨이 아니라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의 작품이었다. 이럴수가.

 

공법이 전혀 다르다 해도 외관이 이 정도로 비슷하면 표절 시비라도 이는 게 정상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튼 런던과 바르셀로나에 있는 똑같이 생긴(바르셀로나에서는 '좌약 빌딩'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두 건물은 아버지가 달랐다. 놀라웠다.

 

이렇게 해서 첫날을 마무리.

 

둘째 날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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