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박물관 섬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구 국립미술관 Alte Nationalgalerie 일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있으면 자못 멋지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지만 Alte는 old, Neue는 new다. 따라서 Alte가 있으면 Neue가 있다.

 

(예를 들어 뮌헨에도 Alte Pinakothek 과 Neue Pinakothek이 나란히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Alte고 어디부터 Neue 일까는 그때 그때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략 20세기 이전이냐, 이후냐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베를린의 구 국립미술관도 19세기 후반, 살짝 넘쳐 봐야 20세기 초반까지의 독일 화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베를린의 신 국립미술관, 즉 Neue Nationalgalerie 은 언젠가부터 수리에 들어가 아직 폐쇄되어 있었다. 언제 다시 개장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 등 20세기 전반 베를린을 빛나게 했던 작가들의 작품은 좀 더 작은 국립미술관 - 앞에 방문기를 썼던 두 미술관도 규모가 크지 않아 그렇지 당당한 Nationalgalerie다 - 에서 꽤 많이 보았으므로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 온 곳은 Alte 니까 19세기 이전 독일 화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내부도 뭔가 부티가 풀풀.

 

 

언젠가부터 유럽 미술관에 들어가 보면 이런 어린이들을 찍게 된다.

 

테이트 모던, 프라도, 알테 피나코텍, 어디나 이렇게 엎어져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오크가 있는 수도원'. .

 

프리드리히라면 누구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생각하겠지만 그 그림은 함부르크에 있다.

 

 

이 박물관의 스타는 아르놀트 뵈클린 Arnold Boecklin. 그의 45세 때 자화상이다.

 

(독일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명이지만 사실은 스위스 출신이다)

 

자신의 어깨 뒤에서 사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광경을 그리다니. 악취미긴 한데,

 

 

세기말의 냄새가 물씬 나는 이런 '십자가 아래에서의 눈물' 같은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수없이 패러디된 그의 대표작. '죽음의 섬'.

 

딱 봐도 음산하고 무섭다. 2차원의 그림인데 3D 효과도 너무나 선명하다.

 

 

자세히 보니 절벽에 AB 라는 그의 이니셜이 써 있다.

 

 

그리 큰 그림이 아닌데도 을씨년스러움이 온 전시실을 휘감는다.

 

 

역시 인기다.

 

 

'Ocean Breaker (The Sound)' 라는 제목인데, 오딧세우스 신화의 키르케를 묘사한 것일까?

 

 

 

그런데 미술관의 전시 상태에 좀 불만이 있다.

 

그림에 바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환경이라 반사가 심하다. 그 탓에 그림의 세부를 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웠다.

 

아니 세계적인 미술관이 왜 이래.

 

 

그리고 지나는 길에 이건 누가 봐도 오노레 도미에의 누가 봐도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갑자기 이 형님은 여기 왜 계신지.

 

 

그리고 독일에도 인상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막스 리베르만 Max Liebermann의 '정원의 벤치'

 

 

중간의 테라스에서 베를린 돔이 보인다.

 

3층과 2층에서는 사실 뵈클린과 프리드리히 외에 큰 관심 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개취).

 

내 생각에는 1층에 있는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의 컬렉션이 아무래도 이 미술관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von Stuck의 '죄악'.

 

 

 

여인의 얼굴과 뱀의 표정에서 사악함이 뭉클뭉클.

 

 

'키르케를 연기하는 Tilla Durieux' 라는 제목. 역시 비슷한 느낌이다.

 

틸라 두리유(?)는 당대의 유명한 여배우라고.

 

 

 

이런 사악한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슈투크는 이렇게 생겼다.

 

어째 그럴 것 같은 얼굴이다.

 

 

역시 슈투크의 작품인 '폰(Faun)과 인어'. 그런데 인어가 왜 하체가 갈라지는거야. ;;

 

혹시 인어 스타킹?

 

 

그러고 보니 이 전시실의 이름은 분리파(Secessionen)/ 세기말(Jahrhundertwende).

 

프랑스에서 기성 화단에 반항해 일어난 것이 인상파라면 좀 늦은 독일에선 분리파가 기성 화단을 부정하고 일어섰다.

 

슈투크 등의 화가들이 뮌헨에서 일어난데 이어 빈에서는 클림트가 그 깃발을 이어받은 셈이다. 

 

물론 분리파는 사조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슈투크와 클림트는 상징주의의 화풍에서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토마스 데오도르 하이네의 '악마'.

 

 

이 전시실의 분위기와 딱 맞는다.

 

 

막스 클링거의 '조개껍질을 탄 비너스'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시켜서 담았다. 아르투르 캄프 Arthur Kampf의 '연기자' (광대?)

 

물론 전통적으로 베를린을 대표하는 화가는 이들보다는 아돌프 멘젤 Adolph Menzel 이다.

 

프로이센 왕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우아한 궁정 그림이 멘젤의 대표적인 화풍인데,

 

여기 전시된 다른 그림들을 보면 꼭 그렇게 우아한 것만을 고집한 사람은 아니다.

 

 

 

뭔가 격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은,

 

 

제목이 '프라하의 유태인 묘지 Judenfriedhof in Prag.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기심.

 

 

이렇게 해서 박물관 섬의 다섯개 박물관 가운데 세 개를 기를 쓰고 돌아봤다. 꽤나 힘들다.

(3개를 가든 5개를 가든 입장료는 모두 베를린 뮤지엄 패스로 해결된다. 꼭 사라.)

 

베를린 구 박물관과 보데 박물관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않아 그대로 패스. 구 박물관은 그리스/로마 시대 조각이 많다고 하고, 보데 박물관은 중세 기독교 관련 유물이 많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나름 순위를 매겨 상위 3개를 돌아봤다.

 

미안해요. 건물 외관 예쁜 보데 박물관. 그리고 정면 멋진 구 박물관.

(하지만 다음에 와도 들르겠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

 

아직 가 볼 데가 많아요.

 

 

 

728x90

 

 

많이 걷는 날이 될 거란 확신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기로 했다.

 

(물론 다른 날이라고 부실하게 먹은 건 아니겠지.)

 

베를린 풀먼 호텔의 조식은 지금까지 가 본 수많은 호텔들 가운데서도 손끕을만 한 퀄리티다. 너무 맛있고 재료도 풍성하다.

 

 

 

 

 

베를린을 가로(세로?) 지르는 슈프레강 한 복판에 양말같이 생긴 약간 길쭉한 섬이 있다.

 

이 섬의 이름이 바로 박물관 섬이다. 독일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다섯개의 박물관이 이 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섬의 왼쪽, 그러니까 북서방향에 다섯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다.

 

 

 

이렇게 다섯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고 불리는 정원 쪽에서부터 A. 구 박물관, B. 신 박물관, C. 구 국립 미술관, D. 페르가몬 박물관, E. 보데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이좋게 차곡차곡 붙어 있다.

 

사실 이렇게 보면 맨 앞(?)에 나와 있는 구 박물관이 뭔가 약간 왜소해 보이는데,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

 

 

 

베를린 관광의 필수 노선인 시내버스 200을 타고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이 어마어마하게 큰 베를린 돔이다. 이 사진은 약간 옆에서 봐서 그런데, 정면에서 보면 정말 위압감 느끼게 큰 건물이다.

 

 

 

 

그런데 시선을 약간 왼쪽으로 돌리면 다른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잔디밭이 바로 루스트가르텐이고 저 앞의 무식하게 큰 건물이 바로 구 박물관.

 

시선이 꽉 찬다. 어마어마하게 좌우로 길고 크다.

 

 

 

 

 

 

 

그리고 이 풍경이 보일 때 쯤이면 베를린 돔 앞을 지나가고 있다.

 

베를린 돔도 꽤 유명한 관광 스팟이지만 미안하다. 너한테까지 할애할 시간은 없단다. 오늘 형이 좀 바빠.

 

 

 

 

사실 저 어마어마하게 큰 구 박물관은 그냥 통과.

 

박물관 마니아로서 안타깝지만 저 구 박물관까지 돌아보다간 다리가 부러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셔널갤러리 앞을 통과하면,

 

 

 

뭔가 공사판 한 구석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야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을 갈 수 있다.

 

 

 

자. 복습이다. 루스트가르텐에서 A, B, C를 모두 통과해야 D, 즉 페르가몬 미술관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자체가 저렇게 다른 건물들에 포위되듯 둘러싸여 있어 어떻게 해도 전경을 찍을 수가 없다.

 

페르가몬 미술관 외경에 대한 자료 사진이 없는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왼지 뒷문 같은 음침한 입구를 통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즉 0층을 통과해 1층 -한국의 2층 - 으로 올라간 순간)

 

 

 

건물 내부인데 이런 경악스러운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슈타르의 문'이다.

 

베를린에 수없이 많은 박물관들이 있고, 거기에도 나름 가치 있는 유물들이 차고 넘치지만 솔직히 말해 런던에는 대영 박물관이 있고 파리에는 루브르가 있다. 로마? 로마는 도시 자체가 인류사에 남을 유물의 덩어리다.

 

이런 유럽의 슈퍼 박물관들에 대항할만한 베를린 박물관의 에이스가 있다면 아무래도 페르가몬이다. 이 베를린의 자존심 페르가몬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 아침부터 박물관 앞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페르가몬 박물관을 가실 분이 있다면 무조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라. 오후가 되면 줄은 더 길어진다. 박물관 정원제에 따라 일정 인원 이상이 입장한 상태에서는 일단 입장객들이 퇴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에 있던 성문 중 하나를 통째로 옮겨 온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바빌론, 공중정원, 니네베, 뭐 이런 얘기로 넘어가면 그게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전설인지 역사인지 아물아물해진다.

 

(이게 막 지구라트와 바벨 2세가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전설의 시대가 이런 새파란 벽돌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니... 감동적이다.

 

 

 

 

파란 벽돌(타일)을 보니 은근히 사마르칸트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생각해 보면 이 파란 벽돌은 사마르칸트에서 본 색보다 조금 짙고 어두운 느낌이 돈다.

 

(물론 14세기 티무르 제국 유적과 6세기 신바빌로니아 유적을 한데 묶어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어쨌든 그냥 파란 벽돌을 보니 반가웠다는 정도로 정리해 두자. )

 

 

 

문을 등지고 서면 이렇게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부분을 다 뜯어와서 복원해놓고 있다.

 

 

 

 

 

그러니까 외성문에서 내성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허락 안 받고 뜯어 온 거라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페르가몬 박물관 측은 극구 "대영박물관의 엘긴 대리석과는 달리 합법적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할 밖에. 모자이크라기엔 부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이 사자들은 바로 마르두크 신의 상징이고,

 

 

 

이건 당시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용, 뮤슈수(Mushussu)라고 한다. 이 성벽의 부조에 등장하는 동물은 무슈수, 사자, 그리고 역시 신성한 동물인 황소(아우로크 Auroch 라고 한다) 뿐이다.

 

 

 

그리고 이슈타르의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밀레투스의 시장 문(Market Gate of Miletus) 이다.

 

밀레투스는 소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터키 서부 해안을 따라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 중 하나다. 이들 도시 중 가장 유명한 곳들이 트로이 전쟁으로 파괴된 트로이, 그리고 호메로스의 출생지인 스미르나(오늘날의 이즈미르) 등이다.

 

 

이 시장의 정문은 기원후 2세기, 그러니까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10세기 경 지진으로 파괴됐다. 그걸 근세에 발굴하면서 복구했고, 그게 지금 베를린에 와 있는 것이다.

 

높이 16미터, 폭 30미터의 엄청난 사이즈인데,

 

 

 

이 모형의 왼쪽 귀퉁이에 있는 바로 저게 이 시장의 문이다.

 

그러니까 당시 밀레투스의 거대한 도시 규모에 비하면 이 웅장한 문이 별 것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리 보니 귀엽네.

 

 

 

 

아무튼 시장 문과 한 세트인 건너편 제단은 어느 신전의 한쪽 벽면이었던 것 같다.

 

 

 

 

 

물론 크게 상관 없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들도 함께 전시돼 있다. 2세기 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의 에로스 부조,

 

 

 

그리고 이건 레바논의 바알벡(Baalbek) 유적에서 나온 빗물 배출용 사자 머리 가고일이다. 역시 AD 2세기.

 

 

아무튼 쉽게 눈길을 뗄 수 없는 시장의 정문을 뒤로 하고,

 

 

뭔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앗시리아 유적 속으로.

 

(대체 왜 친근감을 느끼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말은 없지만서도)

 

 

 

니네베(니느웨)의 궁전 벽에서 나온 사자 사냥 부조다. BC 7세기.

 

 

 

친절한 베를린 분들은 이 돌이 어디서 나온거냐 하면... 을 이렇게 지도로 꼭 같이 표기해 준다.

 

물론 그래 봐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겠지만.

 

 

좀 알만한 지도로 바꿔 보면 앗시리아의 대표 도시인 니네베와 님루드는 이렇게 붙어 있다.

 

 

 

이건 라마스(Lamassu), 그러니까 '날개 달린 인면 사자상'인데,

 

 

사실 대영박물관에서 그 천장에 닿을 듯 한 거대한 라마스를 본 사람에겐 약간 애교스러운 사이즈.

 

 

 

아마도 영국이 먼저 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독일인들이 도착한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얘들은 다리가 다섯개다!

 

대체 왜 ;;

 

(혹시 실수로 다섯 개?)

 

 

 

 

 

이것은 국왕의 모습으로 추정되는데, 신상들 사이에 위치해 왕=신의 느낌을 주려는 배치라고.

 

 

 

이런 식으로 앗시리아 왕궁의 한 방을 그대로 뜯어와 재현했다.

 

 

 

 

온갖 유물들이 다 있고,

 

 

 

이것은 앗시리아 시대 자유도시였던 사말(Sam'al)에서 뜯어 온 대형 돌사자들.

 

사말은 또 어디야... 생전 처음 들어본다.

 

터키 남부에 있는 유적이다. BC 10세기.

 

 

 

뭔가 마법적인 보호력을 기원하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민화 속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누가 봐도 그렇지?

 

 

휴. 간신히 한 층을 끝냈다.

 

페르가몬 박물관, 한 층 보기가 만만치 않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