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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해진 생활용어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셋이서 어울려 다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아유 셋이 아주 삼총사야"하고 말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널리 쓰입니다. 뭐든 세명이 두각을 보이거나 중요한 존재가 되면 무조건 삼총사로 묶입니다(듀오, 삼총사, 사인방, [독수리]오형제...로 나가는 공식은 정말 영원불멸일 듯).

 

그런데 정작 이 삼총사가 본래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뒤마의 소설 제목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그 내용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얼마 없더군요. 오히려 그 바로 뒤에 나오는 '사인방'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듯 합니다. 

 

'삼총사'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첫 단계는 가운데의 '총'입니다. 이 총이 쏘는 그 총이라는 걸 아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삼총사

[명사] 본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제목. 이후 세 명이 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용중.

 

한자 표기 三銃士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놀라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총이 탕 하고 쏘는 그 총 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원제인 ‘Les Trois mousquetaires’에 나오는 mousquetaire는 영어의 musketeer, 즉 화승총과 현대식 라이플의 중간 세대에 위치한 화약 무기 머스킷(musket)으로 무장한 근대식 기병을 말한다. ‘머스킷을 쓰는 병사를 압축해 번역하다 보니 총사(銃士)라는 한자어가 등장한 것이다.

 

삼총사에 나오는 프랑스 총사대는 1622년 루이 13세에 의해 국왕 직속부대로 창설됐다. 아버지 앙리 4(‘낭트 칙령을 발표해 프랑스 내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를 모두 정당한 신민으로 인정한 왕으로 유명하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마고 여왕의 남편)가 거느리고 있던 경기병(Carabinier)의 화력을 보강해 개편한 프랑스 육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왕이 직속부대를 강화하자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 추기경도 자신의 직속 경호대를 창설했다. 국왕에 비해 꿀릴 것이 없는 권력자인 만큼 자신의 경호대가 왕의 총사대에 비해 규모나 무장 등에서 손색이 없도록 구성한 모양이다. 당연히 두 부대 사이에는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싹텄다. 소설 삼총사의 앞 부분, 즉 달타냥이 파리에 도착해 총사대와 경호대 사이의 분란에 뛰어드는 대목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설 삼총사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루이13세와 안느 왕비, 왕비의 연인이며 영국의 총리대신인 버킹엄 공작 존 빌리어스, 달타냥의 숙적인 추기경 리슐리외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달타냥과 삼총사는 실존 인물과 행적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달타냥의 모델은 뒷날 달타냥 백작이 된 군인 샤를 드 바츠(1811~1873)라는 게 정설이다. 소설과는 달리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궁정과 추기경 사이를 누비며 은밀한 활약을 펼쳤고, 뒷날 총사대의 대장에도 올라 실제 소설의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달타냥 백작의 일생에 감명을 받은 가티엥 드 쿠르틸 드 상드하(Gatien de Courtilz de Sandras)라는 동시대 작가가 달타냥 씨의 비망록이라는 기록(제목은 비망록이지만 내용은 무협지 수준의 과장이 넘쳐난다고 전한다)을 출판했고, 200년 뒤 사람인 뒤마는 이 기록을 모태로 자신의 대표작인 삼총사’ 시리즈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공을 거둔 이 책은 20세기 이후 수십차례 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4년 한국에서는 원작의 배경을 조선 인조 때로 옮겨 놓은 드라마도 나왔다.

 

 

삼총사의 총이 그 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왜 소설에선 칼싸움 밖에 안 나오냐고 반문하는데, 사실 총 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삼총사의 후반 1/3 가량은 1627~28년에 걸쳐 벌어진 라 로셸 포위전에서 피아 5만의 군대가 대포와 총을 동원해 벌이는 대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총은 안 나오잖아?'하는 분들은 이 책의 앞 쪽 50페이지만 읽은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굉장히 옛날 같지만 1622년이면 이미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에서 사수,살수와 함께 조총병인 포수를 양성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번역을 했다면 소설 제목 삼총사삼포수(三砲手)’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달타냥과 삼총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삼총사'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 두고 싶다. 뒤마는 삼총사와 달타냥을 주인공으로 1844삼총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년 후’, ‘브라젤론 자작(Le Vicomte de Bragelonne)’등 속편을 내놨다. 삼총사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젤론 자작 3부가 바로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철가면 에 등장하는 철가면과 루이 14세 이야기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20년 후1995년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어 구해 볼 방법이 없고, ‘브라젤론 자작은 아예 출간된 적이 없다. 영화 철가면이 나왔을 때 뒤마 원작이라고 아는 척 했던 분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읽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삼총사도 수십가지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 아동용 압축본인 게 한국의 출판 현실이다.

 

P.S. 30여년 전, 아동문학전집에 섞여 있던 삼총사는 국왕 폐하에게 충성하는 달타냥이 카르지나르라는 간신과 싸우는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 카르지나르가 악당의 이름이 아니고 추기경(Cardinal)’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어 중역본 시대의 웃픈 이야기.

 

 

 

 

 

 

무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밀덕들에게 당할 수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삼총사 - Three Muskuteers 라는 말은 초콜릿 바 이름에까지 쓰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단 저렇게 영어로 써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삼총사라는 말과 Musket이라는 무기를 연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비해 '삼총사'라고 쓰면 그게 저 무기와 관련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죠.

 

흔히 arquebus를 '화승총'으로, rifle을 '(현대식)소총'으로 번역하는 반면 그 중간 단계인 musket에는 마땅히 붙일 만한 번역어가 없습니다(물론 아퀴부스와 라이플 사이에 머스킷 한 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다른 단계와 다른 이름의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머스킷 총'이라고 부릅니다.

 

머스킷은 아퀴부스의 약점인 짦은 사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멀리 나가게 하려면 총신이 길고 견고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연히 무게가 더 나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초기의 머스킷은 대단히 무거워서 받침대가 없으면 혼자 사격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무기였지만, 차츰 개량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머스킷과 라이플의 차이는 단적으로 말해 총신에 강선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rifle 은 동사로는 '총신(bore)에 회오리 모양의 강선을 파다'라는 뜻입니다. 즉 머스킷의 총알이 그냥 총구에서 밀려 나오는 방식이었다면, 라이플로 쏜 총알은 총구에서부터 회전하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더 빠르고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어떤 사람은 rifle을 '장총'이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은 '소총'이라고 번역합니다. 정 반대의 의미인 셈이죠. 물론 길이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이긴 합니다만, 어쩌다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참...^^)

 

 

 

 

 

 

아무튼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총사'는 여러 번 읽어 봤지만 '20년 후'나 '브라젤론 자작'은 당연히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20년 후'만 해도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서점에 서서 몇 줄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에 나오는 안느 왕비가 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왕년에 왕비님을 도와준 달타냥을 기억하십니까? 그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하자 왕비가 "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하는 반응을 보이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던 듯 합니다.

 

그러니까 '삼총사'에서 달타냥과 세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일을 성사시켰더니 20년 뒤 왕비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져 있다니. 등장인물에 대한 배신감이 확 일어서 책을 사 볼 마음이 없어졌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책도 구할 길이 없어져 버리고 나니, 그때 그 책을 샀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아무튼 언젠가 '20년 후''브라젤론 자작(혹은 철가면)'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수십 수백개의 삼총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삼총사는 이 쪽.

 

 

 

혹은 그 원형인 이쪽.

 

 

 

 

아 이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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