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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08년 8월에 런던에 가면 반드시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빌리 엘리어트 보기'였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찬사를 뿌렸고, 2005년 이후로 영국에 갔다 온 사람들은 죄다 '빌리 엘리어트' 얘기 뿐이더군요. 올해 10월부터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이 열리고, 언젠가 한국에서도 무대에 올려질테니 보긴 보게 되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물론 다 아시겠지만 이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엘튼 존이 노래를 만들어 붙인 뮤지컬입니다. 아마도 '아이다'와 '라이온 킹'을 제치고 엘튼 존 최고의 뮤지컬로 남지 않을까 싶은 작품입니다. 이 뮤지컬이 상영되는 극장은 웨스트 엔드의 다른 극장들과 좀 떨어진 빅토리아 팰리스 시어터였습니다.

저번 비싸게 먹기편에서 설명한대로 고든 램지가 운영하는 호스피탈 로드의 폭스트로트 오스카(Foxtrot Oscar)가 버스로 약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한 코스로 묶을 만 합니다.^ 아, 물론 이 극장은 런던에서 시외로 나가는 버스 거점인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의 바로 앞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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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빅토리아 스테이션에서 뒤로 바로 돌아서면 빅토리아 팰리스 시어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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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 방향으로는 위키드(Wicked)가 상연되고 있는 아폴로 시어터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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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를 볼까도 생각했지만 '라이온 킹'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아동극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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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에는 이미 줄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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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본연의 자세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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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안도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건 막이 오르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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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영화와 똑같습니다. 대처 수상 치하의 영국. 자원 고갈로 경제성이 떨어진 탄광에 대해 대처 정부는 감원을 비롯한 엄격한 경쟁력 강화 조치에 들어갔고, 광부들은 파업으로 여기 맞서고 있었습니다. 광부들의 생활은 악화될대로 악화됐고, 그런 가운데서도 소년 빌리는 우연한 기회에 무용에 눈을 떠 춤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빌리에게 춤을 가르쳐 주는 윌킨슨 부인과 일찍 죽은 빌리의 엄마(영화엔 안 나옵니다)가 겹쳐지는 장면이 좀 추가된 정도죠. 물론 무대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경찰관과 시위대의 대립 같은 장면들도 상당히 잘 고안된 장치로 실감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가장 나빴던 점은 대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점. 영어실력도 실력이지만 워낙 사투리 억양이 강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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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결말은 영화의 결말과 살짝 다릅니다. 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어른 빌리는 이미 뮤지컬 중반에 등장합니다. 소년 빌리와 함께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춤을 추죠.



그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엘튼 존이 부르는 'Electricity' 뮤직비디오를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이 노래는 -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 왕립 무용학교 입학 면접때 빌리가 하는 대답, "춤을 출때면 전기가 내 몸을 따라 흐르는 것 같아요"를 대신하는 곡입니다.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장면이죠.




엘튼 존의 걸쭉한 목소리보다는 제 3대 빌리(초대 빌리라고도 하죠)인 리엄 모우어 군이 부른 버전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이번 뮤지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인 'Solidarity'. "Solidariy, Solidarity, Solidarity Forever"라는 후렴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빌리 엘리어트 전편의 예고편.




웨스트엔드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의 소감을 정리하라면, 통상 수많은 뮤지컬들이 히트하는 노래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성공과 실패로 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뮤지컬은 음악적으로는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 힘듭니다. 'Electricity'를 비롯해 등장하는 노래들 중 '아, 이 노래!'할만한 곡이 귀에 쏙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은 탁월한 무대 연출과 소년 빌리들의 대활약으로 롱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원작 영화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테고, 소년 빌리에 초점을 맞춘 화려한 안무가 뒷받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만큼 이 뮤지컬은 무대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팬텀'의 오리지널 캐스트 CD가 전체 뮤지컬의 60% 정도를 갖고 있다면 이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 CD는 기껏해야 30% 정도를 이해하게 해 줄 뿐입니다.

일부의 '뮤지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극찬은 좀 지나치다 싶지만 세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반드시 감상할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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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원작 영화를 다시 참고했지만, 역시 빌리는 그리 착한 놈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왕립 무용학교에 합격했을 때, 빌리는 윌킨슨 부인에게 달려가 합격 사실을 얘기하며 "전부 선생님 덕분이에요!"하고 울먹여야 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영화와 뮤지컬에서 모두 윌킨슨 부인은 딸 데비를 통해 빌리가 합격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죠. 정말 배은망덕한 놈 아닙니까?

하지만 마음이 하해와 같은 윌킨슨 부인은 런던으로 떠날 때가 되어서야 기껏 찾아온 빌리를 축복해 줍니다. 빌리는 마지못해 "고향에 자주 돌아올 거고, 올 때마다 만나뵈러 올게요"라고(놈이 하던 행태를 보면 당연히 맘에 없는 얘깁니다) 말하지만, 윌킨슨 부인은 "아냐, 너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못을 박아 줍니다. 그리고 나서 말하죠.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 성공을 향해서."

그렇게 해서 빌리는 발레리노로 성공했고,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했을 아버지나 형은 그냥 나몰라라 했을 겁니다. 기껏 공연에 초대는 했지만 "뒤풀이 파티에 가야 해요"라고 가족들 앞에 그냥 등을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성공이란게 원래 이런 면이 있긴 하죠.


p.s. 2 브로드웨이 공연을 위한 미국 빌리 역 소년들의 오디션 장면입니다. 총 1500명이 지원했다는군요. 2분43초쯤에 저희가 웨스트엔드에서 본 빌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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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였던 '8일에 공연 8개 보기' 미션을 마쳤습니다. 가장 비싼 공연은 런던에서 본 '빌리 엘리어트(60파운드)'였는데 가장 싼 공연은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본 '어새신(7파운드)'이었습니다. 거의 1/10 가격이죠.

물론 공연의 수준, 공연장의 수준, 배우의 수준 등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가격 차이만 강조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비싼 공연은 비싼 공연대로 제 값을 하죠. 또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하기 힘든 작품들을 실연 무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에딘버러 프린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입니다.

이번 프린지에서는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두 편을 봤습니다. 나름대로 지명도는 꽤 있는 작품들입니다. '어새신' 은 최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스티브 손드하임의 작품으로 미국 대통령을 암살했거나 암살을 기도했던 저격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암살자들' 이란 제목으로 2005년에 국내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만석이 주연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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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중에서 총 맞아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암살범이나 암살 시도범이 많은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꼽아 보면 이렇게 많더군요.

리온 촐고스(Leon Czolgosz) - 윌리엄 매킨리 암살범
존 힝클리(John Hinckley) -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범
찰스 기토(Charles Guiteau) - 제임스 가필드 암살범
주제페 상가라(Giuseppe Zangara) - 프랭클린 루스벨트 암살 미수범
사무엘 빅(Samuel Byck) - 리처드 닉슨 암살 미수범
리넷 프롬(Lynette "Squeaky" Fromm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사라 제인 무어(Sara Jane Moore) - 제럴드 포드 암살 미수범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 에이브 링컨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 - 존 F 케네디 암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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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암살당한 사람이 4명이나 되는군요. 물론 암살 미수범은 이 뮤지컬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많겠죠. 아무튼 막이 오르면 독점 무기상(proprietor)이 암살자들에게 총을 나눠줍니다. 모든 암살자가 소개되면서 이 뮤지컬의 테마 송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든 권리가 있어(Everybody's got the right)'이 흘러나옵니다.

 
(동영상을 다시 보니 사무엘 빅-산타 복장-역으로 마리오 칸토니가 나오는군요. 누구냐면... 그 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게이 안소니 역으로 나오는 배우 말입니다.)


무슨 권리일까요. 당연히 '대통령을 죽일 권리'입니다. 이 뮤지컬이 블랙 코미디라는 걸 잊으시면 안됩니다. 암살자들 중 존 윌크스 부스는 '우리의 위대한 개척자'로 소개됩니다. '당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든, 그 문제는 대통령을 총으로 쏨으로써 해결될 것'이라는 게 첫 장면의 내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뮤지컬 '어새신'은 암살자들의 사연과 말도 안되는 행태를 보여줍니다. 당연히 하이라이트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리 하비 오스월드에게 맞춰집니다. 사회부적응자인 오스월드에게 등장인물들은 "왜 자살따위를 해? 그러지 말고 대통령을 쏴! 어리석게 무명으로 죽지 말고 존 윌크스 부스처럼 역사에 남아!"라고 설득합니다. 결과는...

'어새신'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나 클로드 미셸 숀버그, 알란 멘켄의 뮤지컬처럼 아름다운 멜로디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는 다른 어떤 뮤지컬에서도 보기 힘들죠. 브로드웨이에서 장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수많은 학생 극단이나 소규모 단체들이 끊임없이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레이건을 저격한 뒤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랬다"고 증언한 존 힝클리와 연쇄 살인마 찰리 맨슨을 사랑하는 리넷 프롬의 듀엣곡 'Unworthy of your love'입니다.




이번에 에딘버러 프린지에서 본 '어새신'은 Rather Like a Shark/DULOG라는 단체의 무대였습니다.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만 공연하는 뮤지컬의 한계는 이미 지난 2002년 프린지에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그냥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더군요. 전체 출연진 중에서 프로페셔널한 가창력이나 무대 적응력을 가진 배우는 3-4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열의는 높이 평가할 만 했다'고 해야겠죠.

밤 10시 공연이라 공연장인 베들렘 극장은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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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연장 주변은 와글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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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입구의 카페에서 술이며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에 한창인 관객들이 한바닥이었습니다. 축제 기간인 탓도 있었겠지만,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그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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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의 무대. 왼쪽의 연주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습니다.





두번째 뮤지컬은 '리틀 샵 오브 호러(The little shop of horrors)' 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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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는 C라는 이름을 가진 공연장이 여럿 있습니다. 프린지에서는 모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소극장들인데, 이번 '리틀 샵 오브 호러'를 본 곳은 C계열인 C too(C2라는 뜻)였습니다. 에딘버러 성 바로 입구의 수백년 된 돌 저택을 지하층을 개조한 극장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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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안뜰도 있습니다.

'리틀 샵 오브 호러'는 로저 코먼의 1960년작 영화를 알란 멘킨이 1982년 오프 브로드웨이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1986년에는 다시 뮤지컬로 영화화됐고(스티브 마틴이 출연합니다), 2003년에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서도 공연됩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알라딘', '포카혼타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신화에 한몫을 담당한 달러박스 작곡가 알란 멘킨이 최초로 만든 뮤지컬이라는 점에 주목해야겠죠.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부모도 없이 꽃집 점원으로 일하는 시무어 크렐번은 지극히 소심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입니다. 그리 약지도 못해서 꽃집 주인인 무쉬닉에게 늘 이용만 당하죠. 같은 꽃집에서 일하는 오드리를 짝사랑하지만 오드리는 애인인 치과의사 오린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삽니다.

그런 시무어가 어느날 이상한 식물의 싹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식물이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는 외계에서 온 괴물이었던 거죠. 하지만 시무어는 이 식물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오드리의 이름을 붙여 '오드리 2' 라고 부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왠지 엄청난 비극이 될 것 같지만 이 뮤지컬은 이런 사연을 아주 경쾌한 코미디로 풀어갑니다. 물론 블랙코미디죠.)

소극장 공연을 위해 이 뮤지컬의 장점이라면 아주 제한된 캐릭터로 공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위 내용에 나오는 다섯명의 배우 외에 각각 쉬폰, 크리스탈, 로넷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 명의 여성 코러스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합니다.

출연진이 적은 반면 음악적으로는 대단히 탄탄합니다(당연하죠. 알란 멘킨의 명성이 짤짤이에서 딴 건 아닙니다). 가장 잘 알려진 노래는 식인식물 오드리2의 곡인 'Feed Me' 입니다. 영화판에서 오드리2 역은 왕년의 R&B 그룹 포탑스의 리드 보컬 리바이 스텁스(Levi Stubbs)가 맡았습니다.



한곡 더 하자면 악당 치과의사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노래. 'Dentist Song'입니다. 스티브 마틴의 젊은 모습이 낯설지도.^^ (아래 동영상엔 없지만 영화에서 환자 역으로 빌 머레이가 나오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이 환자 역은 1960년작 영화에선 젊은 잭 니콜슨의 배역이더군요.^^)



제가 본 '리틀 샵 오브 호러'는 FirstMinute Productions in Association With Ben Monks & Will Young(http://www.dontfeedtheplants.com/home.html)이란 연기단체의 무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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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뮤지컬을 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아마도 가장 돈이 드는 부분은 식인식물의 시각적인 구현일 겁니다. 뭘로 만들든 간에 상당히 돈이 드는 구석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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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 사진 정도는 써 줘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번 프린지 무대에서의 식인식물은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화분 대용의 큰 들통과 녹색 타이즈를 입은 사람만으로요. 괴물을 만드는 소도구비용은 단 한푼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꽤 예산 절약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의외로 대단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아무런 추가 장비 없이 괴물이 희생자를 잡아먹는 모습까지 깔끔한 연출로 커버해버리더군요.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 했습니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대극장에서도 충분히 통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코러스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길 바라는 건 무리였지만, 다섯 주역은 입장료가 2만원이란 게 미안할 정도의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사진 찍는데 상당히 과민한 듯 해서 무대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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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샵 오브 호러'는 대형 무대나 찬란한 효과를 쓰지 않고도 뮤지컬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소품'의 대표적인 예로 불릴 수 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큰 무대를 앞두고 있는 미래의 스타들이 단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작품들이 좀 더 자주 무대에 올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난 2002년에 본 작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빈 햄리쉬(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작곡자이며 영화 '스팅'과 '더 웨이 위 워'로 오스카상을 받은 인물입니다)의 소품 '그들이 우리의 노래를 하고 있어(They're playing our song)' 도 6-8명이면 충분히 공연이 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작품은 작아도 음악이나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절대 작지 않았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죠. 2만원짜리 뮤지컬의 감동이 20만원짜리보다 훨씬 더 클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작은 극장에서도 이런 작은 뮤지컬들이 자주 올려지고, 늘 자리가 꽉 차지는 않더라도 무대와 객석에서 열의에 가득 찬 눈동자들이 서로 부딪히는 광경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뮤지컬 붐이라고는 하지만 20만원짜리 뮤지컬은 꽉꽉 차고 5만원짜리는 손해를 보는 상황, 특정 스타가 출연하는 회차만 매진되고 나머지 회차는 자리가 비는 상황은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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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여성 3인조 밴드의 리더였던 도나(메릴 스트립)는 그리스의 한 섬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하며 스무살 난 딸 소피(아만다 세이프리드)의 다소 이른 결혼식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한이 된 소피는 도나의 일기장을 뒤져 '날짜상' 자신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세 남자를 하객으로 초청해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섬에 나타난 건축가 샘(피어스 브로스넌), 여행가  빌(스텔란 스카스가드), 은행가 해리(콜린 퍼스)의 세 남자. 과연 이들 중 누가 자신의 친아버지인지를 알아내려는 소피의 막무가내 무용담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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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뮤지컬 '맘마미아'(아바가 인기있던 시절만 해도 이 노래의 제목은 그냥 '마마미아'였는데 한번 뮤지컬 제목을 저렇게 지어 놓으니 그냥 저게 표준이 되어 버립니다)는 영화화하기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닙니다.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들을 놓고 보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강한 쪽이 스크린에 옮겨놓기가 훨씬 쉽습니다.

작품별로 설명하자면 '사운드 오브 뮤직'같은 작품이 '에비타'나 '시카고'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오히려 영화화로 득을 보기도 하죠. 무대에 올려진 '사운드 오브 뮤직'도 훌륭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스크린으로 보면 잘츠부르크의 그림같은 절경이 보너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아마데우스' 같은 작품도 연극보다는 영화로 만들어 놓았을 때 훨씬 더 관객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줄거리보다는 무대 연출의 묘미를 살린 작품일수록 극장에서는 삐거덕거리기 쉽습니다. 영화판 '시카고'가 극찬을 받은 것도 그런 한계를 잘 넘어섰기 때문이죠. 연극 무대에서는 당연히 무시해도 좋을 부분을 영화에서는 '뭔가'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시카고' 처럼 미니멀한 무대가 빛났던 작품에서 그 '뭔가'를 잘못 채워 넣으면 군더더기로 보이기가 십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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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본래 무대 연출가 출신인 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지원사격을 해 주는 가운데 '맘마미아'의 화려한 무대를 깔끔하게 화면에 옮겨놓는데 성공했습니다. 51세인 로이드 감독은 브로드웨이판 '맘마미아'의 연출가이기도 했으니 작품에 대한 이해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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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의 외견상 차이는 미세합니다. 노래 몇 곡이 빠진 정도죠. 새로 추가된 곡은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무대에선 필요없는 뭔가'에 섬 주민들로 구성된 익살스러운 표정의 코러스와 지중해의 그림같은 풍광이 들어서니 분위기도 확 살아납니다. 특히 'Voulez Vous'나 'Does your mother know' 등에서 펼쳐지는 군무 장면은 영화에서 훨씬 큰 규모를 보여주고, 완성도도 매우 높지만 전체적으로 뮤지컬판의 균형을 깨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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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다른 건 연출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시선이죠. 물론 뮤지컬 '맘마미아'도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작품이었겠지만, 영화 '맘마미아'는 이미 '여성 영화'라는 걸 여러 군데서 표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볼 때 '댄싱 퀸' 시퀀스에서 온 섬의 아줌마들이 함께 행진을 한다거나 굳이 메릴 스트립을 여주인공으로 삼는다거나 하는 건 우연히 빚어진 일이 아니라는 걸 여러 번 느낄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 영화라고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성 관객들에게 가능한 한 더 어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보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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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가장 두드러진 건 주인공 도나 역으로 메릴 스트립을 기용했다는 모험입니다. 스트립은 1949년생, 올해 59세입니다. 그럼 도나는 몇살일까요. 정확한 나이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대략 45세 전후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고, 많아 봐야 50 아래일 것으로 보입니다. 딸 소피가 만 20세인데 결혼을 한다는 점, 임신 때문에 어머니에게 의절을 당했다는 점(Well, didn't really have much choice, did I? Couldn't really go back home an unmarried Mum in the 70's. My mother disowned me...라는 대사. 이미 30대였다면 혼자 애 낳아 키우는게 의절당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었겠죠) 등으로 미뤄 볼 때 임신한 도나는 20대, 그것도 아마 25세 이하였을 겁니다.

만약 도나가 메릴 스트립의 나이였다면, 나이 40에 세 남자와 일주일 간격으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얘기가 되죠. 물론 메릴 스트립을 옹호하시는 분들은 배우에게 나이가 어디 있느냐고 하시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하게, 이 영화의 메릴 스트립이 40대로 보입니까? 제게는 소피 역의 아만다 세이프리드와 함께 서면 사이 좋은 손녀와 할머니로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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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 좋습니다. 왜 스트립을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나 역에 50대를 쓰건 60대를 쓰건, 혹은 70대를 쓰건 그건 모두 제작진의 권리죠. 그렇다면 스트립의 도나 연기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를 따져 보겠습니다. 일단 대다수 여성 관객들 - 물론 제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 은 스트립이 이 역할을 맡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선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노래는 좀 더 잘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더라"고들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또 불끈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머니의 주름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며, '세월의 풍상과 흠집이 느껴지는 갈라진 스트립의 목소리에서 진정한 나이든 여성의 아름다움과 카리스마를 느꼈다' 운운 하실 분들은 잠시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역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맘마 미아'의 도나는 왕년에 잘 나간 것 못잖게 현재 상태에서도 세 남자의 입에서 "도나, 20년 전이나 변한 게 없군"이라는 감탄을 자아내야 하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상대역이 누군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죠. 007 피어스 브로스넌이 '21년간 당신만 기억해왔다'며 불타는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역할에 메릴 스트립이 어울릴까요? '마지막 시퀀스에서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는 분들이 꽤 됩니다. (물론 한 인터뷰에서 브로스넌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메릴 스트립과 공연한다는 얘기만 듣고 사인을 했다. 내게 그녀는 여신이었다'고 흥분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참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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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스넌의 의견과는 달리 제가 아는 한 선배는(세계 시니시즘협회 한국 지부장은 너끈히 하실 분입니다) 이 영화에 여성 관객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누가 봐도 할머니인 메릴 스트립 정도만 되면 피어스 브로스넌 같은 남자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여자들에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휙 내친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음, 내가 저런 글을 쓰면 악플이 한 350개 정도 달리겠군'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더군요. 오래 전 한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 영화 속에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의 애정행각이 자주 나오는 건 할리우드 스튜디오 오너들의 정신나간 성적 환상이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적이 있었긴 합니다만, 어느새 세월이 그걸 역전시킨 걸까요?^

결론은 그렇습니다. 영화 '맘마미아'는 무대에서 봤을 때의 흥과 속도감을 떨어뜨리지 않는, 훌륭한 영화화 작업으로 평가할 만 합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은 좀 더 신경써서 고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가능한 한 그런 생각을 억제하려 했지만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두 장면, 'Winner takes it all' 시퀀스와 마지막에 보너스로 나오는 'Dancing Queen' - 'Waterloo' 시퀀스에서는 너무나 맥이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도나라면, 마지막 시퀀스의 반짝이 옷을 입었을 때 노망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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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스트립이 일생일대의 적역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인정한다니까요.


p.s.2 아무래도 노래가 없으니 너무 아쉬워서 딱 두곡만 붙입니다. 아바가 'Waterloo'를 부르던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를 기억하는 사람들끼리는 아바 노래가 좋네 어쩌네 하는 거야말로 일생의 쓸데 없는 소리죠.

어린 시절 '이혼'이라는 게 어떤 건지를 처음 막연히 느끼게 해 준 곡입니다.




다음은 영화에서 빠진 최고 명곡 중 하나. 물론 끝까지 기다리시면, 크레딧이 올라 갈 때 아만다 세이프리드의 목소리로 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Thank you for the music, the songs I'm singing

Thanks for all the joy they're bringing

Who can live without it, I ask in all honesty

What would life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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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역사가 그리 오래진 않지만,  이 장르는 현대 문명 사회에서 전통적인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간극을 연결하는 고리 문화의 역할로 충실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긴 두 문화의 세계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한 쪽으로부터는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다른 쪽으로부터는 오히려 어렵고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이번 여름 여행의 모토 중 하나는 '원없이 공연을 보자'는 거였습니다. 에딘버러와 런던에서 여덟 밤을 지새는 동안 뮤지컬 4편(에딘버러에서 '어새신'과 '리틀 샵 오브 호러', 런던에서 '빌리 엘리어트'와 '레미제라블'), 클래식 공연 2회(에딘버러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런던에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퍼포먼스 1회('패밀리'), 무용 공연 1회('도리언 그레이')를 달렸습니다. 본래 창작 뮤지컬 한 편을 더 볼 계획이었지만 체력관리상 휴식이 필요하더군요.

그중에서도 압권이라면 아무래도 런던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을 꼽아야 할 듯 합니다. 무려 22년째 공연되고 있는 대작 중의 대작. 이상하게도 국내에서는 별 이유 없이 저평가되고 있는 듯(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 아니라서?) 합니다만 세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인류가 만들어 낸 단 두편의 뮤지컬을 꼽으라면 웨버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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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테지만 동화(?)로 이 작품을 접하신 분들에게는 오히려 뮤지컬의 뒷부분이 대단히 낯설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이 작품의 뒷부분이 1832년, 민중왕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에서 일어나는 6월5일과 6일의 민중 항쟁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항쟁에서 마리우스는 공작가의 자손이지만 민중의 지도자 앙졸라에게 감화돼 시민군의 바리케이트에서 선봉에 섭니다. 장발장은 친딸처럼 키워 온 코제트의 연인인 마리우스가 바리케이트에서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전장에 몸을 던지고, 마리우스를 짝사랑한 에포닌도 그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죠(뮤지컬에서의 처리는 좀 다릅니다).

본래 소설에 다 나와 있는 진행이긴 하지만, 우리가 잘 아다시피 왕년의 한국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민중봉기에 몸을 던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줄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죠.^^

그래서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있어 '레미제라블', 혹은 '장발장 이야기'는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에게 "왜 촛대는 가져가지 않았나, 친구?"라고 말해 19년의 옥살이 기간 동안 사회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 찼던 장발장을 선인으로 회개하게 하는 미리엘 주교의 감동 스토리만 기억되게 된 것입니다. 뒷부분의 민중 항쟁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구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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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혁명'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이기 때문에 'One Day More'나 'Do you hear the people sing'같은 불온한(?) 노래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빛나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선동의 노래들 때문만이 아니죠. 팡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형사 자베르에게도 'Stars'와 같은 명곡을 줍니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에게 다양한 히트 넘버를 주는 뮤지컬로는 비교할 만한 작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아름다운 스코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는 요령부득의 스토리 때문에 감동이 반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레미제라블'은 탄탄한 원작의 힘과 재치있는 각색 덕분에 스토리와 음악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미셸 숀버그의 역량은 이 작품에서 최절정의 힘을 보여주죠.

아무튼 포스팅의 특성상 노래를 안 들어보면 얘기가 안 되겠죠. 자,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가장 잘 정리한 화면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신화적인 뮤지컬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에게 헌정된 공연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중의 한 장면이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이 화면에는 코러스의 At the End of the Day, 자베르의 Stars, 에포닌의 On my own, 장발장의 Bring him home, 그리고 전원이 부르는 One Day More가 담겨 있습니다. 출연진은 전에 소개한 적 있는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 때의 멤버와 거의 동일합니다.




물론 이 방대한 뮤지컬에 담긴 전곡을 수없이 많은 가수들의 노래로 다 들어 볼 수는 없고, 일단 두 곡만 추려 보렵니다.

먼저 'I Dreamed a dream'입니다. 이 곡은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 사생아를 몰래 키우고 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나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장면의 노래죠. 거친 운명 때문에 마음에 품을 꿈 하나 없어진 여인의 비참한 심정을 담은 노래입니다.

10주년 기념 음반에는 루디 헨셜의 노래로 실려 있습니다. 다시 한번 들어 보시죠.



다음은 웨스트엔드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패티 루폰의 노래입니다. 앞의 사설이 좀 깁니다.





다음은 브로드웨이 초연 때의 팡틴이었던 랜디 그라프.




90년대 브로드웨이의 에포닌이었던 레아 살롱가는 21세기 재공연 때에는 팡틴 역으로 변신했습니다. 2007년, '브로드웨이 온 브로드웨이' 행사의 일환으로 설치된 거리 무대에서 '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을 누가 찍어 뒀군요.

이런 종류의 영상 치고는 화면과 소리가 들을 만 합니다. 그리고 이 가수가 얼마나 가공할 실력을 갖췄는지도 함께 보실 수 있죠.





다음은 'One day more'와 함께 이 뮤지컬의 주제가라고 할 수 있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입니다. '민중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분노한 사람들의 노래 소리가/ 이것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음악이다'로 시작되는 가사처럼 혁명을 품은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10주년 기념 DVD의 힘을 빌어야 되겠군요. 앙졸라 역의 마이클 매과이어가 빛나는 장면입니다.




이 노래는 온갖 합창단에 의해서도 합창으로 불려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버전은 1996년 런던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유로 96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불려진 버전입니다. 웅장하기로는 압권이죠.




10주년 기념 음반의 피날레입니다. 아무래도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결정판이라면 이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겠죠. 1987년부터 96년까지 전 세계 17개국에서 장발장 역을 맡았던 배우 17명이 등장해 이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자, 지금부터 제가 본 공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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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명연들을 일찌기 듣고 있었지만, 웨스트엔드 퀸스 시어터의 '레미제라블'은 여전히 훌륭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간 할인 판매를 하고 있긴 하지만 평일인데도 저녁 공연은 여전히 만원.

22년간 조금씩 보완됐겠지만, 회전 무대를 기본으로 한 무대의 배치와 운영도 완벽합니다. 아쉬운 건 팡틴 역의 배우가 저 위의 스타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는 점 정도. 장발장 역의 드루 자리치가 너무 젊다는 점도 살짝 걸렸지만, 보는 공연 마다 코엄 윌킨슨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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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과 장발장을 거론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코엄 윌킨슨은 '라만차의 사나이'에서의 돈키호테로도 절창을 보여준 가수입니다. 중년의 바리톤 역으로 그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뮤지컬 배우는 현재로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아, 물론 한때는 팬텀 역으로도 등장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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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본 공연의 엔딩 인사입니다. 맨 왼쪽의 여자 빼고 그 다음부터 앙졸라, 테나르디에 부인, 테나르디에, 에포닌, 장발장, 자베르, 팡틴, 마리우스, 코제트입니다.

그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가 이번에야 직접 보게 된 공연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귀국을 앞두고 몸은 피곤하고 부상(?)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이 공연을 그냥 넘어갔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마지막 화면은 지난 2006년, 바로 이 퀸스 시어터 무대에서 있었던 런던 초연 때 멤버들의 재결합 무대입니다. 윌킨슨을 비롯해 마리우스 역의 마이클 볼, 팡틴 역의 패티 루폰, 에포닌 역의 프란시스 루펠, 코제트 역의 레베카 케인 등이 무대에 서서 One More Day를 불렀습니다.





이 공연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아마도 초연 때 가브로슈 역을 맡았던 소년이 자라 장발장 역을 맡을 때까지는 충분히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됐기 때문이죠.

현재 이 뮤지컬을 자국 버전으로 공연한 나라는 21개국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한국 배우들로 이뤄진 '레미제라블'을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김진태, 남경주 주연 버전을 얘기하시는군요. 그렇게 무대에 올려진 적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이제 저변도 더 넓어졌으니 다시 한번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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