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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의 사직구장편이 방송될까 말까, 개인적으로 궁금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27일에 '1박2일' 팀의 나영석 PD를 만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죠. 당시 나PD는 "방송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방송이 나갔고, 예상대로 많은 부분이 해명됐습니다. 물론 앞장서서 '1박2일'을 성토했던 사람들이 이 정도 한방에 입장을 바꿀 리도 없었죠. 어떻게든 비판할 거리를 찾으려면 꼬투리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때부터 '편집에 농락당하면 안된다' '어쨌든 야구장은 야구 팬들의 것이다' '야생 다큐가 왜 도시 한복판에 들어왔느냐' 등등의 억지 논리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립니다. 물론 처음부터 조용했던 대다수 시청자들은 "보니 별 것 없는데 왜 저럴까" 분위기인 듯 합니다.

사직구장에서 한 행동에 대해 '1박2일'은 대략 면죄부를 받은 듯 합니다만, 아직 궁금한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왜 굳이 사직구장에 간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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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1박2일, 사직구장 말고도 갈 곳은 많다

'1박2일'이 아직 시끄럽다. KBS 2TV '해피 선데이'의 인기 코너 '1박2일'이 요즘 전국 최고의 야구 열기에 들떠 있는 사직구장을 방문한 여파가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네티즌들은 50석 예매했다면서 왜 100석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가(알고 보니 뒤에 빈자리가 있었던 건 경기 시작 1시간 전이었기 때문), 왜 롯데의 홈인 사직구장에서 한화의 응원가인 '무조건'을 불렀나(관중들이 '무조건'을 연호하며 요청), 왜 클리닝 타임에 긴 공연을 해 경기를 방해했나(사전 협의된 시간 안에 끝냄)며 '1박2일' 팀에게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결국 뚜껑을 열고 보니 잘못된 정보와 일부 네티즌의 착각이 삽시간에 마녀 사냥으로 비화했던 것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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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눈 빠지게 센 게 다 헛수고였다는 얘깁니다. 하긴 지정석 산 사람들이 경기전 한시간 전에 들어와 있을 이유가 없죠.)

'1박2일' 팀은 사직구장 촬영분에 대해 방송 여부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정면돌파를 택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왜 하필 사직구장에 갔을까'에 대한 부분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1박2일'이 '야구의 인기에 편승'하려 했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사실 편승이란 표현은 오해다. 한국 야구의 가장 큰 잔치인 한국시리즈 경기 중계방송의 시청률은 6∼7% 정도. '해피 선데이' 전체의 시청률은 11%까지 떨어졌지만 '1박2일' 부분의 시청률은 30%대를 오르내린다.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선명하다.

(주: 28일 방송분의 '1박2일' 부분 시청률은 21.7%였다고 합니다. 전보단 좀 떨어졌군요.)

이를 근거로 '1박2일' 팀의 한 연출자는 "야구가 최고 인기 종목이라지만 한국 시리즈 시청률을 보더라도 아직 응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지난해 미국 월드시리즈 1차전은 인기 구단인 보스턴이 진출했는데도 첫 경기 시청률이 간신히 10%를 넘었다. 그렇다고 야구가 비인기종목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확고한 지역 연고제의 영향이 전국 시청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야구가 지금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린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1박2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나도 야구장 한번 가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정상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이 기왕 좋은 일에 나선 거라면 지금도 만원사례인 사직구장보다는 음지 쪽에 애정을 보여주는게 낫지 않았을까.

올림픽 때에만 관심이 쏠리는 수많은 비인기 종목 경기장이나,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불경기로 타격을 받은 텅빈 공연장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죽 한그릇이 간절한 사람들이 널렸는데 그래도 살 만 한 집에 쌀가마니를 얹어 준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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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야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를 떼버린 히어로즈의 암울한 현황은 결국 프로야구가 수익사업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건 관중들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1박2일'로 인해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다 해도, 사직구장의 전체 홈 경기가 매진된다 해도 그걸로는 구단 1년 운영비의 절반 정도나 메울 수 있는게 현실입니다. 프로 구단 모기업의 구장 보유 혹은 염가의 구장 장기 임대, 무엇보다 방송 중계권의 현실화 등등 구단의 수익 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흑자 전환은 요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문제라는 것을 이미 20여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바꿔놓지 못한 KBO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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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야구의 경우에는 이렇듯 경기 외적인 문제가 더 큰 과제로 남아 있고, 그 기반을 이루기 위한 야구 팬들의 성원은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내년 초 WBC가 남아 있긴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의 힘, 그리고 그 주축 선수들이 거의 모두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힘이 됐습니다. 거기에 대한 한 '1박2일'이 더 보탤 수 있는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1박2일'의 영향력을 이용한 국민의 관심 유도는 좀 더 그늘진 곳에 힘을 보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야구장에는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7위와 8위의 경기에도 몇천명씩 관중이 옵니다. 몇백명의 관심이 아쉬운 곳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늘진 곳만 보고 살다간 끝이 없겠죠. 하지만 잘난체 하지 않는 소박함과 친근함이 무기였던 '1박2일'과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의 현장은 어째 좀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하는 느낌도 분명 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1박2일'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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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녹화 직후 올라온, '1박2일'을 비난하는 수많은 낚시 포스팅 중에는 위 사진 같은 사진들을 죽 엮어서 "김C의 어두운 표정을 보라. 야구를 했던 김C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태가 이런 파국으로 올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표정이 어두웠던 거다"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최근 김C를 만날 일이 있어서 이 얘기를 해 줬습니다.

나: 그래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웠어요?
김: 사실 그날 야구가 하도 재미있어서 녹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딴 생각 하는 얼굴이 잡혔나봐요. 근데 나 원래 표정이 그런데... 누군지 참 별 생각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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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얘기를 하다 말았지만 올림픽 스타들의 방송 출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미란이나 이용대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들이 큰 반향을 잇고, 진종오 이배영 등 많은 메달리스트들이 스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에겐 모처럼의 영광이자, 기쁜 조명일 겁니다.

그런데 벌써부터(사실 아직 그리 문제가 생길 정도로 과열됐다는 조짐도 없었습니다. 하나 있었다면 이용대가 출연한 아침 프로그램 중 한 쪽이 방송 날짜를 어기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는 정도..) 미디어들이 '올림픽 스타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아우성을 칠 조짐을 보입니다. 사실 저는 이쪽이 더 우려됩니다.

박태환과 가족들은 이미 '방송 출연은 일체 않겠다'고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물론 너무도 당연히 이 결정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본인이 싫다는데 강제로 출연할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방송 토크쇼에도 나가 보고 싶고, 평소 좋아하던 '웃찾사' 무대에도 개그맨들과 함께 출연해 보고 싶고, 좋아하는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걸 욕할 이유는 아무 데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메달리스트들 중 누군가가 '난 더 이상 운동은 안 하겠습니다. 방송인(혹은 가수, 혹은 연기자, 혹은 주차장 관리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한다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생각이 다른 분들도 아마 꽤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벌써 2주나 됐군요. 너무 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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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박태환의 장래가 걱정되신다면

미디어는 스타가 될 재목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에 넘친다. 특히 이번 올림픽처럼 수영의 박태환에 이어 야구의 김광현, 배드민턴의 이용대까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타들이 잇달아 등장한다면 더 바랄 일이 없다.

튼튼하고 미끈한 몸에다 시원스레 잘 생긴 얼굴, 쉽게 얼어붙지도 않는 자연스러움까지 고루 갖춘 이들은 이른바 미래형 한국인의 표상이라 불러도 좋을 듯 하다. 이들 신세대 꽃미남들이 미소라도 한번 지으면 나이와 무관한 여성 팬들의 한숨 소리가 사방에 가득 찬다.

반면 같은 이유로 이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귀국하는대로 이들을 덮쳐 관객 앞에 내놓으려는 각종 미디어의 극성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TV 오락 프로그램의 손길이나, 이들과 친분을 과시하는 연예인들을 전염병 보균자 보듯 하는 목소리가 지금부터 드높다.

아마도 몇몇 스포츠 영웅들이 연예계를 엿보다 추락의 길을 걸었던 과거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 출연 정도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몇몇은 연기에 도전했고, 몇몇은 음반을 냈다.

막상 연예계로 나서는 순간 그들에 대한 사랑이 싸늘한 눈길로 바뀔 거라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과 친하게 지낸 죄밖에 없는 연예인들까지 비난의 표적이 됐다. 순진한 선수들에게 헛바람을 불어넣고 타락시킨 주범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좀 억울한 일이다. 스스로 운동을 그만 둔 스포츠 영웅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건 금메달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시절의 유산일 뿐이다. 메달 하나 딸 때마다 '빛내자 빛을 내자 대한의 건아야'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절이라면 그런 귀한 인재가 다른 길에 빠지는 걸 국가적 손실로 취급했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연봉 수억원의 엘리트 회사원이 어느날 갑자기 귀농을 선언하면 멋지다고 박수치는 세상 아닌가. 만약 장동건이 연예계에서 은퇴해 팔리지도 않을 그림만 그리고 살겠다면 그게 과연 욕할 일일까.

물론 누구나 박태환이며 이용대가 두고 두고 금메달을 따면서 존경받는 체육인으로 더 성장하길 바란다. 하지만 설사 이들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겠다며 본래의 길을 벗어난다 해도, 스스로의 선택이라면 제3자가 토를 달 수는 없다. 마이클 조던이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해보고 싶었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형편없는 타자가 됐을 때처럼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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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 선수의 경우를 얘기합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그의 모습은 빙판에서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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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이런 장면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과연 모든 경우에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 행동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결국 어떤 경우든, 가장 중요한 건 자기의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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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주익의 영웅도 이어진 승리 이후 특정 연예인들과 친분이 줄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로 인해 선수 생명이 짧아졌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국제대회에 나가는 선수가 몸 관리를 잘못 해서 성적을 그르쳤다면 당연히 비난받을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톱이 빠져도 달렸다. 발바닥의 물집 따위는 고통도 아니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힘든 일을 그가 그만두고 싶어 했다고 해서 욕할 자격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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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이나 이용대는 충분히 이런 모습을 즐길 자격이 있고, 또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게 누구에게도 나쁠 리가 없습니다. 본인들이 싫다는데 강제로 따라다니며 시키는 건 부작용이 있을 지 모르지만, 하고 싶다는 걸 왜 말리겠습니까.

물론 이런 스타플레이어들이 나중에 다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패퇴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연히 욕 먹을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걸 지금부터 내다보고, 팬이라는 이유로 '너 방송 출연 같은 거 하면 헛바람 들어. 그러니까 하지 마' 라는 식으로 반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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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이 정말 변변치 않은 야구선수가 됐을 때 야유할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선수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라도 결국은 '자기 마음'이 가장 우선입니다.



p.s. 아, 물론 팬들이 욕하는 것도 팬들의 선택이라면 그건 또 다른 얘기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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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유명 공연의 티켓 가격이 비쌀까. 이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들어 공연 단가가 더욱 더 치솟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보는 쪽에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싼 가격에 수준급 공연을 보고 싶으시다구요.

런던에 있는 세계적인 음악 공연장 로열 알버트 홀은 7월말에서 9월초까지 매일 서너 차례씩 총 60여회 공연을 한다. 1895년 시작돼 올해로 104년째 계속되고 있는 프롬스(Proms)라는 행사다.

본래 산책하다(promenade)라는 말에서 비롯된 이 프롬스는 '서서 즐길 수 있는 클래식'을 표방하고 있다. 무대와 기타 객석은 평소와 다름 없지만 평소와는 달리 1층 객석이 입석으로 개방되는게 관례다. '서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서서 듣는 사람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 앉아서 듣건, 누워서 듣건 자기 맘대로다.


(이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글)



그렇다고 아무나 나오는 마구잡이 공연이냐면 천만의 말씀이다. 영국의 자존심 런던 필하모닉이나 로열 필하모닉을 비롯해 세계 정상급 지휘자와 독주자들이 스케줄을 빼곡 채우고 있다. 단 가격은 한국 관객들에겐 상상 밖이다.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도 가장 비싼 표가 약 11만원, 좌석 중 가장 싼 표는 1만원이다. 지난 2월 평양 공연을 마친 뉴욕 필하모닉의 서울 공연은 최고가 20만원이었다. 체인점의 햄버거 세트 가격이 1만원대인 런던의 살인적인 소비자 물가를 생각하면 티켓 가격의 체감 온도는 더 내려간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나라도 좀 더 좋은 공연을 싸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올 가을 내한 예정인 한 유명 교향악단 공연의 VIP석이 45만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사정을 알 수록 비싼 티켓 값만 탓할 수는 없다. 한국 '청중'에겐 '되는 공연(세계 톱클래스의 유명 연주자가 서는 공연)'과 '안 되는 공연(그 밖의 모든 공연)'의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그나마 '되는 공연'에 고가를 매길 수밖에 없다는게 공연업계의 오랜 하소연이다.

사실 국내 청중들에게도 꽤 염가에 수준급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널려 있다.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는 비싸야 3~5만원이다. 매달 예술의 전당이 개최하는 '11시 콘서트'는 2만원이지만 국내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나선다. 대중음악 대신 클래식을 들으라는 게 아니다. 관객들이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선택의 기회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지금도 꽤 넓게 구비되어 있다는 얘기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뮤지컬이든 오페라든 가장 싼 공연부터 가장 비싼 공연까지 골고루 관객이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할 때, 한국 공연 시장의 허약한 구조는 확연히 드러난다. 싼 공연이 외면당하지 않을 때 비싼 공연의 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건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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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출처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1/2008061102182.html)


솔직히 국내 유명 공연 단가는 너무 비쌉니다. 최근 몇년 사이 내한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나 셀린 디옹, 비욘세의 공연 티켓 가격은 일본의 두배를 넘는 고가였죠. 클래식은 그 정도 차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고 할 정도로 비쌉니다.

올해 11월 내한 예정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티켓 가격은 제일 비싼 자리 기준으로 45만원. 그야말로 두 사람이 보면 '돈 백'이 깨지는 공연입니다. 윗글에서 얘기한 올해 프롬스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도 들어 있었습니다. 9월3일, 이들이 로열 알버트홀에서 가진 공연의 티켓 가격은 뉴욕 필하모닉과 똑같이 10파운드-54파운드였습니다. 최저가 2만원, 최고가 11만원이었죠. (...못 보고 온게 정말 안타까울 뿐입니다. 평생의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유럽과 한국의 티켓 가격을 그대로 비교한다는 건 항공료나 이동 비용을 무시한 바보짓이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런 부대 비용이 포함되어야겠죠. 여기서 '시장이 좁다'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단원 1명당 해외 공연에 드는 돈이 약 500만원이라고 칠 때(가정입니다), 공연이 2회가 되면 원가 부담은 250만원으로 줄어들겠죠. 이런 식으로 1회 늘릴 때마다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개 이런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2회 정도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일본만 해도 7-8회 공연하죠. 그래서 한국보다 싼 가격에 관객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도 공연을 여러번 하면 되겠죠. 그런데 그 자리를 누가 메운단 말입니까. 그만한 관객이 없는 걸요.

비욘세나 셀린 디옹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선 이런 슈퍼스타들은 전국을 돌며 10회 정도의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서울이 아니면 이런 공연을 수용할 만한 지역이 없다는 게 현실입니다. 최근들어 부산보다는 대구가 좀 더 큰 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정도죠. 아무튼 아무리 큰 스타라도 내한공연은 3회를 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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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업자들은 그나마 이 정도의 큰 공연이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정쩡한(?) 지명도의 공연은 아예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니 결론은... 국내 공연의 티켓 가격을 내리는 길은 공연 시장을 키우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좀 싼 공연부터 비싼 공연까지 관객이 적절히 퍼지는 형태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저런 자잘한 공연을 보면서, 혹은 이것 저것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일 나이에 학생들은 죄다 학교 공부를 하거나 컴퓨터에 머리를 박고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면서 '님 쫌 짱인듯'을 타이핑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도 핸드폰 관리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다른 데 쓸 돈이 없죠. 학부형들은 학부형대로 학원비 대기에 급급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데 쓸 돈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프롬스가 BBC 프롬스가 되어 있듯, KBS와 KBS 오케스트라가 나서서 프롬스처럼 매년 방학때마다 콘서트홀을 빌려 염가의 음악 축제를 정기적으로 가져 보는건 어떨까요. 아, 물론 10년, 20년에 무슨 성과가 나오길 기대하지 말고 말입니다. 위에도 썼지만 프롬스는 103년 전에 시작된 행사입니다. 우리도 100년 쯤 꾸준히 하고 나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p.s.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수준높은 클래식을 많이 듣자는 내용이 아닙니다. 팝, 재즈, 뮤지컬, 클래식, 국악 등 공연 전반에 걸쳐 한국 공연시장이 너무 작고, 그것이 티켓 가격 인상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꾸는 데엔 결코 5년, 10년이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도. (자꾸 엉뚱한데로 빠지려는 분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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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가 방송됐습니다. 일단 느낀 점은 두가지. '(일부러 안 웃기는 건지는 몰라도)여전히 서태지는 웃기는 데에는 재능이 없구나', 그리고 '서태지가 참 친절해졌구나' 하는 겁니다.

물론 골수 팬들에게는 서태지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없고, 서태지만큼 친절한 사람이 없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인의 시각에선 그랬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그러면서 더 보태지는 생각은 '이제 서태지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겁니다.

외모상으로 서태지는 아직도 20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윗세대, 혹은 동년배들에게 이렇게 젊어 보이는 서태지가 과연 그보다 훨씬 어린 10대-20대 팬들에게도 그렇게 젊어 보일까요. 그건 굉장히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싱글 '모아이' 발매 이후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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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서태지도 늙는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는 배트맨의 활약을 로마시대의 케사르와 비교하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영웅일 때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악당으로 변해 있는 걸 볼 때까지 오래 살 것인가."

젊었을 때의 케사르는 로마 공화정의 부패와 경제난을 해소한 구원자였지만 늙어서는 '괴물',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어느 시대든 영웅이 되는 건 쉽지 않지만, 그 영웅이 평생 동안 명성을 유지하는 건 그보다 몇 배나 어려운 일임을 지적한 얘기다.

서태지가 4년여만에 현역에 복귀했다. 팬들은 다시 환호하고 있다. 물론 예전같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충실한 팬들답게 화려한 팡파레를 울려 주고 있다.

서태지는 일반적인 대중 스타와는 다르다. 그는 언제나 왕이었고, 대통령이었고, 교주였다. 16년 동안 그의 말과 행동은 일개 연예인의 말을 뛰어넘는 힘과 위엄을 지녔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와 맞서는 것은 '부패한' 기존 권력의 하수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공감대가 젊은 층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고, 예견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서태지는 더 이상 젊음과 반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서태지를 접한 세대는 이미 30대가 됐고, 그보다는 H.O.T나 god가 친숙한 세대는 오랜만에 돌아온 '중년의 한때 잘 나가던 록 뮤지션'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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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눈에는  U.F.O 이벤트보다 인터넷을 휩쓰는 '빠삐놈' UCC가 훨씬 그럴싸하다. 이들에겐 한때 젊은이들을 대변했다던 서태지가 중산층을 겨냥한 중형차 모델이 되어 있는 '변절'도 불쾌한 일일 뿐더러, '딸랑 네 곡'이 들어 있는 싱글을 만원이 넘는 가격에 파는 것도 못마땅하다. 10년 전, 아니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반응이다.

물론 서태지야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서태지는 사회 변혁을 부르짖지도 않았다. 빌딩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갖고 있는 갑부라는 사실 역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싱글이든 앨범이든, 만원이든 10만원이든 사는 사람이 있는 한 사지도 않을 사람이 볼멘 소리를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싱글 만원이 웬말?'이라는 바보같은 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이쪽)



이번 음반에서는 서태지의 고민이 읽힌다. 일반적으로 뮤지션은 팬들과 함께 늙어간다. 더 이상 신곡이 인기 차트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10대들이 공연장에서 기절하지 않아도 충실한 팬들은 계속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서태지는 그걸로 만족하기엔 아직 너무 젊다. 아직 '새로운 친구들'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도 뜨겁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지금은 그렇다 쳐도 10년 뒤, 20년 뒤의 서태지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한발 한발에 더욱 눈길이 간다. 역시 영웅으로 늙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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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팬들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서태지에게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이유로 반감을 갖고 있는 젊은 층의 목소리를 들어 본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굵은 부분의 원문은 "You either die a hero or live long enough to see yourself become the villain" 입니다. '영웅으로 일찍 죽든가, 오래 오래 살아 자신이 악당이 되어 있는 걸 보든가'라는 말은 다양한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수많은 '젊은 날의 영웅'들이 나이들어 젊은이들에게 비판받는 악당으로 변해왔습니다. 케사르는 말할 것도 없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베토벤이 3번 교향곡의 표지를 찢었다는 얘기도 유명하죠. 한국에서도 멀리는 4.19세대, 가깝게는 386의 영웅들이 어딘가 비뚤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젊었을 때의 이상을 늙어서까지 간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되겠지만, 실제 함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이상을 말하기는 쉽지만 현실은 알수록 어렵다는 것, 혹은 비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책임을 맡아 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스스로는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변해 버립니다. 1980년대에는 너무나 진보적이었던 생각이 21세기에는 케케묵은 구식 생각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유행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끔 복고풍이라는 반발도 가능하지만, 한 시대의 첨단 유행일수록 시간이 흐르면 더 빨리 시들어버립니다.

뒤집어 말하면, 영웅으로 오래 오래 기억되려면 일찍 죽어야 한다는 뜻도 될 겁니다. 케네디가 되거나, 짐 모리슨이 되거나, 알렉산더 대왕이 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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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북공고...'가 방송되기 이틀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리고 '북공고...'를 보고 나니 서태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40대가 된 서태지는 그 시기의 10대들에게 무엇일까, 또 50대의 서태지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혹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면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견딜수 없을 테지요.

아무튼 지금까지의 모습만을 간직한다면 서태지는 '그 시절의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듣던 노래를 부른 뮤지션'으로 서서히 잊혀져 갈 겁니다. 그걸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서태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악을 해야겠죠. 그것이 '더욱 더 가장 젊고 발랄한 세대의 취향'을 선도하려는 노력이 될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될 지는 알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세대를 뛰어 넘어 활약하는 뮤지션들은 나이가 들면 서서히 인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사랑과 질투, 소녀와 이별의 아픔(물론 나이들어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20대 초반에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르죠^^)에서 벗어나 세계와 인간을 가사에 담기 시작하죠. 멜로디도 자연히 부드러워집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이번 싱글은 '중년 서태지'를 위한 시작이 아닌가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생각인 분들도 많겠죠?



p.s. 어제 처음 공개된 '모아이' 뮤직비디오입니다. 칠레와 이스터섬에서 촬영됐다는군요. 가요계의 침체 이후 이렇게 공들인 뮤직비디오는 참 오랜만에 보는 터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글을 추천하시려면: 왼쪽 숫자를 누르시면 됩니다.




혹시나 해서: '다크나이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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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며칠 전 '권상우, 왜 33시간 동안 침묵했나' 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처음 열애 보도가 나가고 나서 권상우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손태영과 자신의 결혼 계획을 밝힐 때까지 왜 33시간이나 걸렸을까에 대한 내용이었죠.

이미 다 보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못 보셨다면






그런데 그 글 아래 흥미로운 댓글이 달렸습니다. 권상우 팬을 자처하는 한 분이 쓴 글이었죠. 물론 이 분도 수많은 팬들 중 한 분이고, 권상우 팬 중에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겠지만, 이 분이 쓰신 글은 많은 분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쓴 글입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아파트까지 사 놓고 신혼의 꿈에 부풀어 있을 권상우가 받을 충격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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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권상우의 배신’에 대한 팬들의 입장

권상우와 손태영의 열애설이 최초로 보도되고 나서 권상우가 기자회견을 가질 때까지 33시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 한국 연예계 초유의 일이다.

권상우는 이 시간 동안 '이해득실'에 입각해 '지금 결혼 발표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주변의 설득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일각에서는 이 결혼으로 인해 권상우가 포기한 금액이 1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이해타산을 따졌다면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정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모인다.

기자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권상우, 33시간 동안 침묵한 이유'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을 소개하자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익보다 사랑을 택한 권상우'의 선택을 인정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권상우의 열렬한 팬임을 주장한 한 네티즌의 댓글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 팬은 '권상우씨 팬들은 거의 유부녀 빼고, 오로지 5~8년간 연애도 안 하고 진짜 권상우씨만 바라봤는데요. 어차피 자기가 권상우씨와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정말 아무 것도 안 바라고, 권상우씨만 바라봐 온 팬들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아십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 팬은 '팬들은 권상우의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손태영)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권상우가 팬들처럼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한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손태영을 공격했다.

그리고 이 분노는 권상우에 대한 서운함으로 발전한다. '팬들의 글을 그저 악성 댓글로만 이해하는 권상우씨가 한심하고 원망스럽군요…. 자기가 지금 그 위치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 누구 덕인데… 이런 배신을… 팬도 이제 다 필요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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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팬이 전체 권상우 팬을 대표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지만, 연예계를 가까이서 보다 보니 이런 극렬 팬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팬클럽에게 있어 그 중심에 선 스타는 같은 인간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 역시 그들 외에 누구도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배우자의 선택은 본인 이외의 누가 대신 책임질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문제다. 그 결정으로 인해 행복해지든, 상처를 받든 거기에서 대해서는 누구도 조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왕정국가의 왕족들이라면 자의로 결혼하지 못 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이혼녀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 왕 자리를 버린 윈저 공 같은 사람이 나왔다. 오로지 두 사람만의 책임이란 면에서 결혼은 누구에게나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스타의 결혼을 통해 그 팬들도 조금 더 성숙하길 바랄 뿐이다. 팬들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바로 성숙이다.

p.s. 팬클럽은 언제나 변치 않는 사랑을 줄 것 같지만 아이들 스타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한다. 만약 팬들이 영원불멸이라면, 현재도 열심히 활동중인 H.O.T 멤버 전원의 음반 판매량을 합한 것이 과거 H.O.T의 음반 판매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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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대체 원문이 어떤 것이길래...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겠죠. 이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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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팬 2008/07/21 21:33 ReplyModify
여기는 거의 축하글이 많군요.지금 팬들은 거의 만신창이가 됬는데요..권상우씨 팬들은 거의, 유부녀 빼고,오로지 5~8년간 거의 연애도 안하고 진짜 권상우씨만 바라봐왔는데요.어차피 자기가 권상우씨와 안될걸 뻔히 알면서도 정말 아무것도 안바라고 연애도 안하고 권상우씨만 바라봐온 팬들의 심정을 여러분들이 아십니까?근데 권상우씨마저도 그런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더군요.그저 자기 상처 받는거만 신경쓰고..그래서 거기에서 한번더 팬들은 큰 상처를 받았죠.팬들은 권상우씨의 결혼을 반대하는게 아닙니다.다만 그 여자를 반대하는거죠..팬들은 권상우씨의 결혼 상대자가 적어도 몇년간을 권상우씨만 바라봐온 자신들과 똑닮은 여자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감히 넘볼수 없는 대단한 여자와 결혼하길 바란겁니다.그런데 지금의 그 여자라뇨...어쩌다가..분명 그여자분도 눈이 있었으니 권상우씨 데뷔때부터 봐왔을텐데..
팬들은 권상우씨를 데뷔 초기에 발견하고부터 정말 한눈 안팔고 그만을 사랑하고 응원해온 골수팬들이 대다수입니다.그리고 권상우씨 힘들때 등 안돌리고 굳건히 지지해서 그를 아직도 그 톱스타 위치에 올려,유지시켜 놓았는데..
근데 그때 그여자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2001년인가요?데뷔초부터 계속 다른 남자들과 사귀면서 그러고 살고 있었을때...그때 팬들은 오로지 권상우씨만 바라보며 거의 연애도 안하고 살아왔는데...그래서 실제로 지금 노처녀 되신분들도 많이 계신데..그게 팬들의 입장인데,정말 팬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여자 연예인이었다면,그리고 권상우씨를 처음 발견했다면 ,그때도 역시 여전히 자기가 연예인이어도 오로지 권상우씨만 바라봐오며 다른 남자들 안만나고, 언젠가 같은분야에서 일하니까 만나게 될지도 모를 권상우씨를 위해 정말 보통의 여자 연예인 같지 않게 공개적으로나,비공개적으로나 스캔들 하나 없이 정말 권상우씨만을 만나길 기다려 왔을겁니다.팬들에게 권상우씨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그런데 그여자는 도대체 뭡니까?권상우씨가 데뷔한 이후에 권상우씨를 분명히 봤을텐데도,딴남자들을 줄곧 끊없이 만나오지 않았습니까?버젓이 권상우씨의 존재를 알면서두요..팬이었다면'아!저남자다.나한텐 저남자 뿐이다!이제부터 딴남자는 만날필요도 없다!'그러면서 딴남자들을 정말 안만나고 권상우씨를 실제로 만나든 안만나든 무작정 기다리며,때론 같은 연예인의 위치를 이용해서라도 만나고 싶어서 노력을 일찌감치 했을텐데..근데 그여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권상우씨가 데뷔한지 언젠데 그를 알면서도 계속 다른 남자를 만나왔단건 애초에 권상우씨를 못알아본거죠..그래서 그 여자는 권상우씨 짝으로 전혀 자격이 없다는겁니다. 권상우씨를 이미 맘에 담아뒀다면 정말 그동안 딴남자들은 절대 만나선 안되는거였습니다.팬들이 그래서 그여자를 반대하는거고, 제발 그 여자보다 더 정말로 권상우씨를 처음보자마자 사랑했던 여자와 결혼하길 바라는겁니다.근데,세상사람 그 어느누구도 이런 팬의 마음을 몰라주고 권상우씨마저도 몰라주고.팬들의 맘을 악성댓글로 치부해버리는 그를 보며 정말 팬들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는겁니다.
권팬 2008/07/21 21:59 ReplyModify
윗글에 이어서..
그러니 제발 송원섭 기자님만이라도 이런 팬들의 맘을 알아주셔서 팬들의 맘을 전달해주는 기사라도 써주셨음 좋겠습니다..이 억울함을.. 팬들은 정말 요즘 밥도 제대로 못먹고 정말 피눈물을 흘리며 차마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그여자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축복을 해줍니까??
팬들이 보기엔 그여자는 그저 멋있는,괜찮은 권상우씨가 온갖 달콤한 감언이설(?)과 이벤트로 그여자를 사로 잡아서 그여자도 권상우씨 정도면 괜찮으니까, 가슴 깊히 정말로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권상우씨와 결혼 하는거로 밖에는 안보입니다..그러니 우리 권상우씨 팬들은 둘-을 축복해줄수 없고 권상우씨야 싫어하시겠지만,그저 둘-이 깨지기만을 정말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권상우씨에게는 지금 그 여자가 아닌 다른 진정한 짝이 따로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듭니다.보통 연예인들 보면 '저 커플은 깨질거 같다'그런 느낌이 오면 정말 깨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권상우씨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들이 정말 결혼을 반대 하는 이유는 어차피 결혼해도 깨질텐데,그럼 이미지만 깍이고 상처만 받고,그게 정말 뭡니까??그 여자한테도 안좋고..그럴바에 결혼을 안하는게 낫죠!!그래서 어차피 깨질꺼 결혼을 하지마라인겁니다..팬들은 그저 권상우씨 상처 안받게 보호 하려고 이러는겁니다..솔직히 송원섭 기자님!!이 보시게에도 그렇지 않습니까??자신을 속이지 마시구요..그러니 괜한 맘에 없는 축하말은 안하셨으면 좋겠구요..그저 팬들의 맘을 권상우씨에게 좀 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천상의 팬들의 글을 그저 악성댓글로만 이해하는 권상우씨가 한심하고 원망스럽군요...자기가 지금 그 위치에서 누리고 있는것들이 다 누구덕인데..이런 배신을..팬도 이제 다 필요 없다니..다른 여자였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요..
저는 이번 기사가 터지고 한번도 울지 않았었는데요..결혼 반대 글도 많이 썼는데도..그동안은 눈물이 전혀 안나다가 지금 이 글을 쓰니 정말 눈물이 왈콱 쏟아져 나오는군요..지금도 울고 있을 팬들을 생각하니..지금 계속 울면서 쓰고 있습니다..팬들 맘을 정말 권상우씨는 몰라주더군요..그여자분 말고 더 좋으 여자분이 분명히 있는데..제발 이젠 정신 차리시고 다른 여자분을 찾아보시는게 바랄뿐입니다...간절히... <끝>




이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분의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댓글을 다셨는데, 아마 그 쪽이 '일반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팬들이 심정이 이럴 수도 있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제 생각은 윗글에도 피력했으니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쉬운 것인지는, 저 글 쓰신 분이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겠군요. 원래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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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 윈저 공-심프슨 부인의 이야기를 놀랍게도(!) 처음 들었다는 분이 있더군요.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에드워드 왕자는 1936년 1월20일 아버지 조지 5세의 뒤를 이어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됐습니다. 하지만 12월 11일, 왕위에서 물러나기로 선언해버리죠.

이유는 왕이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심슨이라고 읽어야겠지만 이 분의 이름은 워낙 이걸로 굳어진 터라)과의 결혼을 고집했습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서 물러난 것은 법률 때문이 아니라(왕이 이혼녀와 결혼하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는군요), 당시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 때문이었다는군요. 이들은 심프슨 부인이 에드워드 왕자와 만날 당시 유부녀였다는 점을 들어, "영국 국민은 이런 부도덕한 여인을 국모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했다는군요. 그래서 세기의 결단이 나옵니다. "에이, 까짓거 왕 안 하면 되잖아."

...그래서 에드워드는 윈저 공(정확하게는 윈저 공작-Duke of Windsor)이 되고, 동생이 왕위를 이어받아 조지 6세가 됩니다. 이분이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죠. 즉 엘리자베스 여왕은 큰아버지 윈저 공의 로맨스가 아니었으면 왕위에 오를 수 없었던 셈입니다. 이 세기의 로맨스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기회 있으면 더 자세히 소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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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 늘 그렇듯 - 그런 사람도 있었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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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개봉을 앞둔 역사적인 국내 시사에 나섰습니다. 너무 인파가 밀려 영화를 못 본 기자들 - 개중에는 기자를 사칭한 정체불명의 인사들도 꽤 많았다지요(^^) - 이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놈놈놈' 자체에 대한 얘기는 좀 뒤로 미루고자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영화 '놈놈놈'이 제작에 들어갈 때부터 꼭 해야겠다고 벼르던 얘깁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얘기죠.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주위에선 '그게 뭐 그리 중요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게 한국 문화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심각해졌군요. 이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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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석양의 무법자'의 제자리 찾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칸에서의 프리미어 갈라에 이어 국내에서도 7일 시사회를 열었다. 175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데다 송강호-이병헌-정우성이라는 세 톱스타의 무게가 몰린 기대작이라 시사회장부터 초만원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듣는 순간 서부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석양에 돌아오다'를 연상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영어로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이기 때문이다(이탈리아어로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립, 일라이 월락이 남북 전쟁과 보물 찾기를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승부의 덧없음을 그린 걸작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한국 제목을 '석양의 무법자'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69년 7월 국내 개봉 때 '석양에 돌아오다'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석양의 무법자'라는 영화는 따로 있다. 이건 이 영화보다 1년 전에 만들어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Per qualche dollaro in piu'이 1967년 국내 개봉될 때 붙여진 제목이다. 영어 제목은 'For a Few Dollars More'.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반 클립이 나오지만 이번엔 악당 잔 마리아 볼론테에 맞서 싸우는 같은 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1964, 65, 66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극 세 편을 연속으로 내놨다. 그리고 세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은 각각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석양에 돌아오다'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3부작의 첫편 '황야의 무법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편의 제목이 혼란에 빠져 있다. 왜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TBC-TV가 '석양에 돌아오다'를 TV로 방송하면서 갑작스레 '속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 비롯됐다.

이후 1980년대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무책임한 제작사가 '석양에 돌아오다'에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을 붙여 버렸다. 이렇게 제목을 빼앗긴 진짜 '석양의 무법자'는 '황야의 무법자 2', '석양의 건맨' 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밀려나는 비운을 겪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지금껏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다.

영화의 원제도 중요하지만 국내 개봉 제목 또한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쏴라'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기억하지,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나 'Bonnie and Clyde'를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석양에 돌아오다'와 '석양의 무법자'는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p.s. '놈놈놈'과 '석양에 돌아오다'는 제목 외에는 그리 비슷하지 않았다. (끝)





뭐든 물증이 필요하겠죠. 이건 1967년 9월 개봉한 '석양의 무법자'의 신문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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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광고를 보면 '석양의 무법자'가 '황야의 무법자'의 2탄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광고에는 'FOR A FEW DOLLARS MORE'라는 원제가 표기돼 있죠.


그리고 이건 2년 뒤, 1969년 7월 개봉한 '석양에 돌아오다'의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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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전작이 '석양의 무법자'라고 명시되어 있죠.

책은 가끔씩 번역될 때마다 새로운 제목이 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번 수입된 영화의 제목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죠. 더구나 윗글에서도 썼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내일을 향해 쏴라'는 영어 원제를 넘어서서 독자적인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한 영화의 시사회에 기자만 1000명 넘게 온다는(?) 나라, 할리우드에 맞서는 영화강국을 자처하는 나라, 인터넷 블로그만 뒤져도 자칭 영화평론가가 넘쳐 나는 나라에서 이런 영화사에 남을 걸작의 제목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혼동을 자초한대서야 웬 망신입니까.

심지어 영상자료원까지 혼동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석양에 돌아오다'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제대로 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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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석양의 무법자'입니다.

영화 제목과 출연 배우가 따로 놉니다. '석양의 무법자'에는 엘라이 월락이 나오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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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엔 '석양의 건맨'이란 영화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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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정비가 됐으면 합니다.



자, 그럼 이 기회에 헷갈릴 수도 있는 세 편의 영화,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을 한번 총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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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야의 무법자(Per un pugno di dollari, 1964)

영어 제목은 A Fistful of Dollars, 즉 '한줌의 달러'입니다. 자꾸 익숙한 영어 제목 대신 이탈리아어 제목을 먼저 쓰는 건 제가 잘난 척 하려는게 아니라 이 영화들의 국적이 미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레오네 본인이 이 시절까지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는군요. 촬영 장소 또한 스페인의 사막지대였을 뿐, 미국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를 번안한 수없이 많은 영화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죠.

-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갱단이 지배하고 있는 마을에 한 총잡이(혹은 칼잡이)가 나타난다. 두 조직은 앞다퉈 이 총잡이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들의 경쟁을 이용해 총잡이는 두 조직을 궤멸시키고 여인(?)을 구해낸다. -

네. 더쉴 해미트의 '피의 수확'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영화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월터 힐 감독의 '라스트 맨 스탠딩', 그리고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 등이 다 비슷비슷한 얘기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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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양의 무법자(Per qualche dollaro in piu, 1965)

영어 제목은 'For a Few Dollars More', '몇달러 더 되는 돈을 위해'(?) 정도의 의미가 되겠죠. '황야의 무법자'로 신이 난 레오네 감독과 이스트우드는 또 한편의 영화를 뚝딱 만들어냅니다. 이번엔 냉혹한 눈매의 리 반 클립이 가세합니다.

바운티 킬러인 몽코(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묘하게 모티머 대령(리 반 클립)과 합세해 멕시칸 은행강도 무리의 두목 인디오(잔 마리아 볼론테)를 쫓게 됩니다. 이를 위해 몽코는 그의 패거리 안에 뛰어듭니다.

대개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이 깨진 예의 시작을 '스타워즈 에피소드5 - 제국의 역습'과 '대부 2'를 꼽지만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를 빼기 힘듭니다. 아, 물론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를 전편과 속편으로 보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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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석양에 돌아오다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영어 제목은 그 이름도 유명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남북전쟁 말기의 미국. 좋은 놈(클린트 이스트우드)은 못생긴 놈(일라이 워크)를 잡아 현상금을 타고, 사형 집행때 다시 못생긴 놈을 구해 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좋은 놈은 더 이상 이런 동업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청산에 나서죠. 어찌어찌하다 이들 둘과 나쁜 놈(리 반 클립)은 남군의 패잔병들이 빼돌린 20만달러를 찾아 경쟁하게 됩니다.

180분의 상영 시간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걸작.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세 편 모두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슴 뛰는 음악이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편의 영화 음악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비교해서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첫번째, '황야의 무법자'입니다.



다음은 '석양의 무법자'.



다음이 '석양에 돌아오다'입니다.



마지막은 '석양에 돌아오다'의 압권을 이루는 '엑스터시 오브 골드' 장면.

메탈리카의 연주곡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죠. 본래 영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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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놈놈놈'에 대해서는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군요. 뭐 아직 개봉이 멀기도 했지만... 짧게 한 마디 하자면, 김지운 감독의 전작('반칙왕',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 등)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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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말에 볼 영화들을 고르다 보면 왠지 심각해지고 피곤해질 것 같은 영화들은 저절로 피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고민할 것 많은 세상, 극장에서 들어가서까지 힘들어 질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이건 그래도 봐야 할 것 같다는 작품들이 나옵니다. 지난해 본 영화 중에는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 그랬죠. 질식할 것 같은 압제 사회에서 한 지식인과 그를 감시하는 남자 사이의 묘한 유대에 대한 영화...라는 설명만 듣고는 별로 볼 의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보고 나서는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되뇌게 되는 작품이었죠.

'크로싱'을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런 현실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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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한국 영화 속의 새로운 북한, '크로싱'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막을 연 '쉬리' 이후 한국 영화에 나온 북한 또는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일정한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민식이 연기한 '쉬리'의 북한 특수부대 지휘관 박무영이나 송강호가 연기한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가 대표적이다. 남한이 상징하는 물질적 풍요에는 전혀 굴하지 않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북한의 '자존심', 혹은 '자주성'은 종종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비쳐진다. 사사건건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듯한 한국 정부가 주로 비굴해 보이는 반면, '우리를 건드리면 핵전쟁이 터진다'며 고개를 빳빳이 처드는 북한 정권의 모습이 시원스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권 아래서 일반 국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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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를 다룬 영화도 꽤 있었지만 '크로싱'과는 달랐다. '국경의 남쪽'의 차승원은 할아버지와의 편지 왕래가 없었다면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인물이었다. '태풍'의 장동건의 주된 분노의 표적은 그들 가족을 받아주지 않은 남한 정부였다. 그의 가족이 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반면 '크로싱'의 김용수는 결핵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중국 국경을 넘어 벌목장에서 일하게 된 인물이다. 군사정권 시절 반공영화 이후로 이런 인물과 이런 북한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암시장을 방황하며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어린 꽃제비들의 모습, 월경에 실패한 사람들이 끌려간 수용소의 참상 또한 다른 영화에서 본 기억이 없다.

'크로싱'이 보여주고 있는 비참한 북한의 현실에 대해 탈북자들은 "햇볕정책으로 가려졌던 북한의 진실을 보여준 것은 고맙지만 실상은 영화보다 훨씬 참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관객의 충격을 고려해 많이 수위를 낮춘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현재 '크로싱'에 대한 대중의 낮은 관심은 북한의 인권과 굶주림에 대한 관심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화려한 휴가'에 열광했던 정치권도 애써 이 영화를 외면하고 있다. 장년층에게 이 영화가 지겹게 받았던 반공교육을 연상시킨다면, 젊은 층에게는 '먼 나라 일'로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크로싱'의 주인공을 차인표가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수년간 세계를 누비며 기아 아동을 돕고 입양아 문제에 직접 몸을 던진 그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나선 5만톤의 옥수수를 북한이 수령 거부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평소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기사에 눈길이 간 건 아마도 '크로싱'을 보고 난지 며칠 안 됐기 때문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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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출신인 북한의 탄광 노동자 김용수(차인표)는 아내, 아들을 둔 가장입니다. 어느날 김용수는 자꾸 쓰러지는 아내가 임신중인데 영양실조와 결핵이 겹쳐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중국을 통해 약을 구해 보려던 김용수는 결국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하죠. 하지만 불법으로 일하던 벌목 공사장을 공안이 덮치면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은 점점 멀어집니다.

사실 영화적으로만 볼 때 '크로싱'의 완성도는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어찌 보면 덜 영악한 영화라고 할까요, 얼마든지 더 슬프게 만들 수 있는 영화입니다. 좀 더 상업영화의 논리에 맞추려면, 이 영화는 지금보다 몇배 더 눈물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연이나 에피소드가 좀 더 정교하게 추가될 수 있었고, 미선의 운명도 어찌 보면 너무 밋밋하게 그려졌죠. 미선에게 생기는 일로 인해 준이에게 생기는 변화도 영화상으로는 표현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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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용수의 캐릭터 구축에는 상당히 공이 들어간 반면 준이는 그저 북한 사회의 참상을 알리는 카메라의 눈 역할을 할 뿐입니다. 이런 부분이 영화의 결말에서 폭발력을 떨어뜨렸다는 '냉정한' 분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준이의 눈이 담담하게 북한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좀 더 관객이 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진은 이 영화가 어린이를 앞세운 최루성 상업영화로 보이는 걸 일부러 기피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입장이 있을 겁니다. 또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만 몇몇 부분, 종교적인 문제가 언급된다는 점은 역시 흥행용 상품으로서의 이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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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진정성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만든 사람들이나 출연한 사람들이 이 영화의 대의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죠. 특히 차인표가 중국의 아들과 통화하는 장면,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흐르는 이 장면을 보고 '저건 연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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