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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동이'가 한효주의 등장 이후 시청률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사극들의 경우 어린이들이 시청률을 벌어 놓은 뒤 성인 연기자들이 그 시청률을 깎아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엔 성인 주인공들, 특히 어른 동이 역의 한효주가 출연한 이후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어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본래 '이병훈표 사극'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어리처럼 시청률이 붙는다는 것이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장금'이나 '이산'도 각각 첫회는 15와 14% 정도에서 출발했죠. 이번 '동이'도 첫회는 13% 정도, 현재 6회째가 15% 정도지만 갈수록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병훈 감독은 시작 전 "어쨌든 관건은 한효주"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효주가 등장한 이후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6일 숙종과 한효주가 담을 넘네 못 넘네 하며 펼치는 한폭의 코믹한 장면들에서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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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는 참 특이한 연기자입니다. 한효주와 함께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매니저들은 입을 모아 "참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유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여자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것이죠.

일례를 들자면 여자 연예인들에게 취미를 물어 '독서'라고 답하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실제로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연예인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효주와 일본 문학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면 두어 시간 내내 그 얘기만 하게 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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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보기 드문 배우입니다. 약 한달 전, '동이'의 방송 전 프로모션과 관련된 행사장에서 한효주를 만났습니다. 행사는 오후 일찍 끝났고, 이날 촬영이 없었던(스태프와 출연진이 모두 이 행사에 참여하느라 촬영은 취소된 날이었죠) 한효주는 뭘 할거냐는 질문에 "지금 파주에 가기로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파주에 뭐가 있느냐고 물으니 "제 묘가 있잖아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하더군요. 이 대답에 저는 그저 감동해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주에는 사적 358호로 지정된 숙빈 최씨의 묘 소령원(昭寧園)이 있었습니다. 본래는 소령묘라고 불렀지만 영조가 생모의 무덤을 키워 나가 '원'으로까지 승격시킨 곳이죠.

가끔 이 드라마의 제목 동이를 과거 한민족을 부르던 동이(東夷)로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동이는 숙빈 최씨의 이름입니다. 최씨는 궁녀로 입궁했다가 한때 물러나오고, 다시 궁녀보다 아래 신분인 무수리로 입궁했다가 숙종의 성은을 입어 후궁이 된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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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즉 동이가 용종(龍種, 임금의 자손)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안 장왕후(이미 이때는 희빈에서 왕후, 곧 중전의 자리에 오른 뒤였죠)가 자신의 궁으로 최씨를 불러다 모진 고문을 하고 목숨을 빼앗으려 하기도 했지만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숙종이 직접 달려와 최씨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야사로도 유명합니다. 장왕후가 최씨에게 큰 독을 덮어 씌워 고문 사실을 감추고 시치미를 떼려 했으나 숙종이 최씨의 신음소리를 듣는 바람에 살려낼 수 있었다는 민담도 있었죠.

왕위에 오르기 전 연잉군이라고 불렸던 영조는 자신이 왕의 정실이 아닌 후궁, 그것도 천민 출신 후궁의 자손이라는 점에 대단히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어머니 숙빈 최씨를 사후에라도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 데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령원을 찾아가 그 정성을 살핀다는 것은 숙빈 최씨를 둘러 싼 당시의 정치적 환경을 이해하는 데 꽤 의미가 있는 행동이죠.

이쯤 되면 제가 왜 감동했는지 아마 짐작하실 겁니다. 대한민국의 배우들 가운데 사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뒤 자진해서 그 인물의 묘소를 찾아가 볼만한 연기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연출진이나 다른 누가 일부러 데리고 가면 모를까, 스스로 찾아가 보겠다고 생각한 연기자는 아마 따로 없을 겁니다. 이 언저리에서 10여년을 일했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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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의 이런 남다른 태도는 연기력 향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경력이 전무하던 시절, 신데렐라처럼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을 때만 해도 '연기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일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에서 긴 호흡을 배웠고, 이후 '일지매'에서도 쪽진 머리를 처음 보여줬지만 이때는 호연에도 불구하고 봉순 역의 이영아에 비해 상대적인 비중이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계단을 밟을 때마다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 게 바로 지난해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찬란한 유산'이었죠.

'찬란한 유산'의 강점은 누가 뭐래도 '밝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밝음'의 핵심이 한효주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냥 밝고 수선스럽기만 한 캔디가 아니라, 그 안에서 점점 성숙해가는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죠. 그리고 그런 '깔끔하고 총명하며 밝은' 이미지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동이'의 타이틀 롤 캐스팅로 이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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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동안 좋은 연출가들을 계속 만나 온 것도 한효주의 복이고, 그 사이에서 자양분을 흡수해 자신의 자산으로 만든 것은 한효주의 힘입니다. 하지만 '동이' 역할은 그보다 훨씬 큰 도전이죠. 지금까지는 10대 소녀 동이의 역할이라 그저 밝고 순수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만 하면 되지만(풍산개^^), 뒤로 갈수록 동이는 정치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고, 그 안에서 왕자를 낳고 키워내며 뒷날의 제왕이 되게 하는 어머니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게 됩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큰 발전을 필요로 합니다.

만 23세, 아직은 나이가 나이다 보니 아직은 미숙한 부분도 보이지만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 여자의 일생을 제대로 연기하고 나면 연기자로서 한효주는 동년배들 중 누구도 쉽게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하고 난 배우가 될 겁니다. 그 뒤의 한효주는 과연 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발전해 있을지, 이 배우에게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아마도 10년이 지나지 않아 '지성미를 갖춘 톱스타' 부문에선 경쟁자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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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이런 모습은 아직 낯설기도 합니다만.^^ 설명이 없으면 못 알아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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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왠지 낚시같지만 낚시 아닙니다. 답이 손예진도 아닙니다. 이민호는 손예진과 공연하는 MBC TV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 첫회 첫 등장하는 장면이 베드신이었죠. 이민호가 데뷔한 뒤 첫 베드신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물론 '꽃보다 남자'에서 산장에 갇힌 구준표가 금잔디와 밤을 지새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산장신'이었고, 이 장면에 침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첫 장면에서 진호(이민호)는 자기 집 침대에서 자명종이 울리는 가운데 오전 8시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에 옆 자리를 바라보다가 헉 소리를 내며 화들짝 놀라죠. 웬 여자가 슬립 차림의 요염한 자태로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진호가 전혀 여자처럼 느끼지 않는 혜미(최은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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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일어나 이민호에게 "어떻게 나같이 섹시한 여자를 외면할 수 있어.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거 아냐?"하며 눈을 흘기는 역할입니다. '어려서부터 진호 집안과 친해 정혼(?)한 사이고, 캐나다 유학중이지만 한국에 오면 진호네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이'라는 설정입니다. 진호는 별 관심이 없지만 태훈(임슬옹)은 혜미를 짝사랑하고 있죠.

그래서 뭐가 어쨌느냐는 분들, 최은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혹시 기억나시는게 없나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전에 이민호가 '꽃보다 남자'로 하룻밤 사이 깜짝 스타로 거듭났을 무렵,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민호가 과거 여친들과 찍은 사진'들이 삽시간에 퍼진 적이 있었습니다. 박보영, 문채원, 다비치의 강민경 등이 그 상대였죠. 그리고 그 사이에 '최은서'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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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있는 '이민호의 첫 베드신 상대역'은 '알고보니 왕년의 스캔들 상대역'이었던 겁니다.^^ 기억을 보완해 드리기 위해 과거 글을 링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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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했던(?) 이민호의 과거...^^]

물론 이민호와 같은 소속사 후배인 최은서는 당시에도 경쟁자들(?)에 비해 지명도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집중 조명을 받을 수 없었고, 이민호가 장난스럽게 '다음에 열애설이 난다면 아마 상대는 최은서일 것'이라고 말한 덕분에 오히려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1988년생인 최은서는 2004년 공포영화 '레드 아이'에 출연한게 데뷔로 기록돼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아니었죠.

그나마 최은서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아마도 '반올림'의 광팬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아라 이은성과 함께 유아인 김정민 등이 나온 시절이 1기, 유아인 대신 김기범(슈주)이 고아라의 상대역으로 등장한게 2기입니다. 최은서는 5년 전 고아라의 고교시절을 다룬 2기에서 불우한 가정 출신의 소녀로 꽤 비중있게 출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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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이후 1년이 지났지만 그 사이에도 최은서의 활약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역시 눈에 띄는 건 이민호와의 화보 촬영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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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이번엔 이민호와 임슬옹 사이에서 살짝 갈등을 일으키는 혜미 역을 맡게 됐습니다. 참 이민호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1988년생. 말하자면 '개인의 취향'은 최은서의 성인 데뷔작이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1-2회에서는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아무튼 자기 몫은 충분히 해 낸 걸로 보여집니다. 앞으로도 이민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받게 하는 상황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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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잘 자랐군요. 앞으로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한 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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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한가지만 집중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세 드라마 모두 궁금해서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아마 많은 분들이 어젯밤에는 리모콘을 여기저기 돌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볼만한 배우들과 탄탄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올 연초에도 '공부의 신'과 '제중원', '파스타'가 동시에 출격하면서 상당히 관심을 모았지만 이번 대결과는 중량감이 다릅니다. 손예진의 '개인의 취향', 문근영의 '신데렐라 언니', 김소연의 '검사 프린세스'로 대표되는 세 작품이 과연 어떤 대결을 펼칠까요.

첫날 시청률에서는 일단 '신데렐라 언니'가 앞섰습니다. 나이 먹은 시청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시청률 면에서는 '신데렐라 언니'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듯 합니다. 세 드라마 중 '신데렐라 언니'와 '개인의 취향'의 비교 포인트를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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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예진 vs 이미숙

왜 손예진 vs 문근영이 아닐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본 대로 얘기하자면 확실히 이랬습니다. '농익은 연기력'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이미숙은 당연히 - 딸 문근영에게 의붓아버지를 백만명씩 가져다 붙여 주는, 없느니만도 못한 엄마 역으로 너무나 적절한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도망가면서도 옷 구겨질 걸 걱정하는 여자, 장농에 감춰둔 반지 빼내 온 걸로 그 남자와의 인연을 정리했다고 생각하는 여자, 새로운 표적 앞에선 연기대상감의 솜씨를 보여주는 여자. 특히 김갑수와의 자전거 신은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반면 손예진은 첫회에서 너무 망가지는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코믹 멜로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는 다 보여줬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어쩌면 이 배우가 자신의 미모를 이제 신뢰하지 못하고 연기파 배우로 완전히 지향점을 바꿔버린게 아닌가 할 정도로... 봉태규가 덮치는 장면에서의 박력(?)은 좀 아쉬웠지만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우는 장면은 이제 이 배우가 어느 선을 넘어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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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민호 vs 문근영

이 두 배우가 한데 묶이는 것은, '나는 이 사람이 나오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배우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년배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어제 두 드라마의 첫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직은 조금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일단 문근영은 80점 정도. 앙칼지게 소리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더라는 점에선 좋았지만, 그 결과 발음이 뭉개져 대사 전달이 힘들었다는 점도 지적할만 했습니다(하긴 서우와 비교하면 발음 얘기는 할 수가 없겠죠). 너무 신경질적인 아이로 방향을 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무튼 늘 얘기 나오던 '성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지만 변신의 시도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이민호는 이보다는 좀 더 역할 적응력이 돋보였습니다. 두가지 톤으로만(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상어와 화난 말투) 연기하면 충분했던 '꽃보다 남자'에서 실제 살아있는 남자를 연기할 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습니다. 하긴 '꽃남' 전에도 꽤 탄탄한 솜씨를 뽐낸 이민호니까... 그런데 '완전히 나쁜 남자'일 때에 비해서는 매력이 덜하다는 지적(저의 동거인의 주장입니다)도 있더군요.

어쨌든 두 배우 모두 자기 몫의 시청자를 끌어들일만한 솜씨는 충분히 보여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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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은지 vs 강성진

사실 제 생각에 '개인의 취향'의 최대 강점은 손예진도 이민호도 아닌 조은지입니다. 정말 채널을 돌리다 '개인의 취향'을 보게 된 사람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조은지의 한방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달콜살벌한 연인'에서 정평이 난 조은지의 코믹 조연 연기는 일단 믿을만 합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신데렐라 언니' 쪽의 카드로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강성진을 첫손에 꼽을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소년 정우는 코믹 카드로 훌륭하지만 이 소년이 곧 자라서 옥택연이 될테니...(어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똥땡이 소년이 짐승남 택연으로 성장하다니... 뭐 이건, 진짜 신데렐라는 소년 정우더군요). 일단 주인공들을 소개하는데 바빠 첫회에는 강성진에게까지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결국 이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하는 건 그의 역할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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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희 vs 김규완

일단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선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가 단연 앞섭니다. 지나치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문근영의 독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인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갑수와 이미숙의 자전거 신 같은 부분은 다른 작가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 작가만의 독특한 잔혹 동화같은 느낌을 잘 살려 줍니다.

'개인의 취향'은 원작자인 이새인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는데 물론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몇 부분에서 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요즘 시청자들은 이민호가 건축 모형을 들고 버스에 탈 때부터 그 모형이 온전하지 않을 거란 점도 잘 알고,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하는 남자가 시간을 끌 때 같은 장면에도 너무나 익숙해져 있죠. 물론 장르의 클리셰라는 것도 있어야겠지만 이 시간대에는 언제든지 채널을 돌리게 할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이 큰 부담입니다.

반면 전체적인 배우들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솜씨는 '개인의 취향'의 압승입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능숙한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신데렐라 언니' 쪽은 어떻게든 서우와 천정명을 나머지 배우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천정명의 대사 솜씨가 하루 아침에 나아 질 리는 없겠지만, '파주'와 '탐나는도다'의 서우가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마 그건 서우의 책임으로 비쳐지진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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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AM vs 2PM

뭐 당연한 얘기지만 '개인의 취향'으로 데뷔하는 임슬옹과 '신데렐라 언니'의 옥택연은 모두 연기 데뷔입니다. 개인적인 인기로는 옥택연이 단연 앞서지만 연기력은 임슬옹에게 훨씬 기대가 갑니다. 이유는 '패떳2'를 보신 분이라면 당연히 짐작하실....

하지만 뭔가 벗은 상태에서의 박력은 택연에게 대적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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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두 드라마 첫회를 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 봤습니다. 두 쪽에 더 신경을 쓰느라 '검사 프린세스'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나름 재미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김소연의 새 머리 모양이 별로 어울리지 않아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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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 눈에 띄는 낚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 합니다.

'추노'의 가장 큰 힘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하는 짤막짝막한 대사 사이 사이에 적절한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 주던 천성일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치러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추노'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각본상을 따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물론 '추노'의 설정에도 살짝 억지는 있습니다. 일단 배경을 인조 때로 잡아 소현세자와 원손 석견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잡고 여기에 주인들을 죽이러 다니는 노비 패거리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때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분명 실제 역사의 진행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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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에서 가장 큰 역설은 대길의 묘 위로 흐르는 송태하의 후일담 나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송태하는 인조의 죽음과 효종의 즉위, 그리고 석견의 복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역사와는 정 반대로 얘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조가 승하하고 세자 봉림대군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쇄는 중지되었다.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석견이 효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나고 왕족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55년에 노비 추쇄가 끝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55년은 노비 추쇄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효종이 노비 추쇄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이듬해에 석견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4년 뒤인 1659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655년, 효종과 신하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보시겠습니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1월 27일(임자) 1번째기사

(전략)상이 이르기를,
“어제 장례원(掌隷院)이 경기의 노비를 살펴 아뢴 것을 보니, 어린 것까지 모두 3백 구(口)뿐이었다. 시노비(寺奴婢)는 어찌 낳은 것이 없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경기 화량(花梁)을 옮겨 들여보내어 한 진을 만들고, 또 해서의 변보(邊堡)를 옮겨서 한 진을 만들고, 본부의 속오(束伍)로 한 진을 만들고, 시노(寺奴)로 한 진을 만들어, 모두 네 진을 만든다. 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들여보내고 바라지 않는 자는 베를 거두어서 모집하여 들여보내는 군졸에게 주면, 폐단이 없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영돈녕 김육(金堉)이 한가히 노는 사람들에게서 베를 거두려 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도 또한 하려 하였다. 19만의 노비에게서는 어찌 그 신공을 죄다 거두어 군수(軍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이 으레 행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따로 도감(都監)을 세워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추쇄관(推刷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쇄관을 차정(差定)한 뒤에 꼴찌에 해당한 자는 사율(死律)로 논하라. 명나라 태조(太祖)는 뭇 신하 중에서 죄를 범한 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찌 한낱 추쇄관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이제 어느 관원으로 추쇄를 맡게 할 것인가?”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음관(蔭官) 또는 문관(文官)으로 하되 삼조(三曹)의 낭관(郞官)인 자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심지원이 아뢰기를,
“장례원·형조가 맡되 이조를 시켜 극진히 가리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김익희(金益熙)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형조·장례원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빨리 결단해야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경의 이 말을 비웃고 욕하겠으나, 이제 경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추쇄는 모두 대사헌의 말대로 시행하되 대신 한 사람이 통괄하여 살피는 것이 옳겠으니, 우상이 맡게 하고 어사는 명관(名官)을 차출하여 보내라. 국가에 이익이 있다면 내가 모발이나 피부같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 분의(分義)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대사헌의 말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이조 참판 홍명하(洪命夏)에게 이르기를,
“추쇄관은 명관을 차출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조가 중벌을 받을 것이다. 사노비는 달아났거나 죽었거나 잡탈이거나를 막론하고 해원(該院)을 시켜 사실대로 초록(抄錄)하여 들이도록 하라. 또, 연미(燕尾)와 갑곶에는 첨사(僉使)를 두고 그 나머지 두 곳에는 만호(萬戶)를 두도록 하라.” (후략)


길고 복잡하다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655년은 북벌 사업에 매진했던 효종이 국가 재정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문서상 기록된 19만의 공노비 가운데 사라진 자들을 찾아 오게 한 해인 것입니다. 또 이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기존 관서에서 다루기보다는 특별 기관을 설치하고, 중앙 관료를 뽑아 추쇄관으로 임명해 그 일을 독려하게 하고, 그중에 추노 실적이 가장 뒤지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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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견을 살려낸 효종을 성군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노비 추쇄에 대한 한 효종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종 이후의 왕들은 혹독한 노비 추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숙종은 추노 과정에서 노비를 함부로 죽인 관료를 엄벌했고, 영조 때에는 추쇄관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고, 정조는 마침내 추쇄관을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추쇄관이 없어졌다고 해서 추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조가 남긴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평등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제목: 추노

1684년 12월 13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의 진노를 전한다. 지평(持平)을 지낸 정제선(鄭濟先)이 살인죄로 사형 위기에 놓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선처를 요구한 데 대한 분노였다. 사헌부의 정5품 벼슬인 지평은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정승도 탄핵할 수 있는 요직이었고, 정제선은 급제 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30대의 유망한 관료였다.

그런 정제선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추노(推奴) 때문이었다. 정제선은 연행 사신단의 일원이던 1683년, 달아난 노비(叛奴) 2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비 2명과 양민 1명까지 잡아들였고 술에 취해 이들을 무리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끝에 정제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유배됐다.

하지만 숙종은 이때 정제선을 사형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24년 뒤인 1708년에도 숙종은 “정제선 뒤로도 양반 사대부 가운데 살인죄로 사형당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대부가 법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처벌하는 자들이 꺼렸기 때문인가?”라며 법 적용이 공평하지 않음을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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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인기 드라마 '추노'가 25일 마지막 회를 맞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17세기 인조 때지만 실제 추노의 기록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도망친 노비의 체포와 환원이 당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잇따라 겪으며 신분제도에 혼란이 오자 효종 때에는 아예 추노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추쇄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쇄관의 폐해가 심해지자 정조는 이를 혁파하고 노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파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가 이리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이 없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天之生人, 豈亶使然哉). 가련한 마음은 한이 없다.”(홍재전서)

추노와 관련된 기록을 살필수록 신분의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도 인권과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민하던 깨인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18세기 조선이 문물의 중흥기를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끝)


마지막 부분 정조의 말은 홍재전서 12권에 나오는 '노비인(奴婢引)'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존재가 노비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팔조지교는 그것이 악을 징계하자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했던 것인데, 역대로 그것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인습해 왔기 때문에 대를 물려 가면서 남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팔고 하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로 전해 가면서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며, 오랑캐 비슷하게 반드시 어미를 우선하고, 아비 성을 따르지 않고 종[奴]으로 성(姓)을 삼는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이웃에서도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니, 높고 두꺼운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 없는 자와 같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 약간의 인정을 베푼 열성조의 사랑으로 인해 비록 몸은 보존하고 살 곳 정해 살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은 한이 없다.
내가 국정에 바쁜 여가를 이용하여 두 쪽 다 똑같이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우선 노비 규정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신 고용(雇傭)의 법을 만들어서 대물림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한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그에 관한 방략(方略)을 먼저 정하여 대금을 주고 드나들게 하는 데도 다 일정한 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한 한두 신하들과 함께 그 영(令)을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명분만을 숭상하는 편인데, 만약 양민과 천민을 한데 섞어서 반벌(班閥)이 분명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무시하고 덤빌 자가 틀림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남의 부림을 받는데 자식은 도리어 주인에게 항거한다거나, 작은 역(驛)과 보(堡)에 부릴 하인이 없다거나, 궁한 선비 집에 땔감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만 한 가지 폐단이 다시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작은 절목 내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평민과 섞여 사는 것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병행될 수만 있다면 단연코 결행할 것이다. 지금 공의 주고를 인하여 이와 같이 내 뜻을 약간 밝힌다.

생각할수록 정조는 참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추노'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좀 의문입니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의 지성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숙-경-영 시대를 거치며 조선 후기의 문화가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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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허공의 활로 하늘의 해를 쏘는 대길의 엔딩은 참 멋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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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신작인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 1,2회가 지난 주말 방송됐습니다. 격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더군요. 결코 적지 않은 인물들을 소개하느라 약간 나열식이 되긴 했지만 지난 수십년간 김 작가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예전의 드라마와 새로운 드라마를 비교하는 게 짭짤한 재미를 줬을 듯 합니다. 하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아직 태섭(송창의)의 여자친구 채영 역을 맡은 유민은 예고편에서만 얼굴을 내밀더군요.

물론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3대 대가족이 함께 사는 홈 드라마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난번 '엄마가 뿔났다'에서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엄마'에 맞춰졌던 초점이 이번엔 83세의 시아버지(최정훈)와 80세의 시어머니(김용림) 커플, 그리고 장남인 병태(김영철)-민재(김해숙) 부부의 장남인 태섭(송창의)의 예사롭지 않은 애정 문제 쪽으로 옮겨 갈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태섭과 채영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고, 태섭의 진짜 애인은 사진작가인 경수(이상우)라는 점이죠. 네. 이번엔 동성애 문제가 정조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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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그것도 트렌디풍의 드라마(곧 방송될 '개인의 취향'에서는 다소 코믹하게 동성애자 이야기를 등장시킬 전망입니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흉내를 내는 젊은이'일 뿐입니다)가 아닌 홈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몇 차례 특집극이나 베스트셀러 극장 식의 단막극에서 다뤄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온 가족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한 복판에서 동성애 문제가 조명된 적은 없었습니다. 세상이라는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면, 이번엔 동성애의 문제가 결코 자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정면으로 부각될 듯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이 놓인 환경도 결코 만만찮습니다. 34세의 아들이 결혼하지 않고, 딱히 사귀는 여자도 없다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태섭의 어머니인 민재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입니다. 워낙에 살짝 극성스러운 성격인데다 남들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까봐" 민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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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섭이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남자와 연인 관계라는 것이죠. 그 상대인 경수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뒤 스스로의 정체성 때문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상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태섭에게도 "더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가족에게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태섭이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밝히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우리 어머니도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전처 뿐이니 다시 새 여자 찾아 결혼하라고 한다"는 경수의 말은 한국 사회의 부모 세대들이 동성애자인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의 평균 선을 대변합니다. 주인공인 민재라고 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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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고편을 보면 태섭의 '명목적 연인'인 채영까지도 '뭐든 참아낼 수 있다'며 태섭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이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에 나오는 2남1녀 커플의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지만, 어쨌든 정통적인 홈 드라마의 틀 안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지 궁금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화제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할 선을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TV는 그런 현실을 애써 무시해 왔습니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젊은 층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소재가 이제 정면으로 다뤄진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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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사회적인 금기에 대한 도전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일찌기 코믹 터치의 드라마 '사랑합시다'에서도 겹사둔이라는 '민법상 합법'인 관행을 다뤘고, '엄마 아빠 좋아'나 '모래성' 같은 드라마는 황혼 이혼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중년의 위기를 짚었습니다. 논쟁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특기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불륜 문제,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엄마의 가출 등이 그렇습니다.

방송 출연 정지 상태였던 이승연, 학력 위조 파문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장미희,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설 기회가 없었던 홍석천을 기용해 '재활' 시킨 것도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사실 별 이유 없이' 방송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나는 쓴다'는 것이 일각으로부터는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손끝에서 해석되는 '동성애'는 어떤 색채를 띨까요? 지금껏 한국 안방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던 동성애라는 소재가(심지어 시트콤에서도 비유적인 의미나 공포의 대상으로나 여겨지던) 70을 맞은 노작가에 의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그동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열광했던 중/노년층 시청자들에게는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극중에서 송창의와 이상우의 키스신 정도라도 방송된다면... 파장은 정말 만만찮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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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결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섯 소실을 거느렸다가 80대의 나이에 본처에게로 돌아오겠다는 할아버지 커플, 30대의 나이에 각각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재혼한 아버지 커플의 얘깃거리나 비중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커플의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설킬지는 지금부터 지켜 볼 일입니다.)

P.S.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의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게 이 노장 작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인 모양입니다. 그분의 트위터에도 "에고 김연아는 진짜 물건이네요. 어찌 견뎠을까요 ㅎㅎ"라는 말이 쓰여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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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MBC TV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회 때문에 온통 난리 법석입니다. 흘낏 보니 '신세경 귀신설'까지 등장했군요. '하이킥'의 126회 종영을 다룬 기사마다 댓글에는 '최악의 엔딩'이라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분노의 전제는 일단 두 사람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김병욱 감독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죠. 하지만 김병욱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처리에 대한 해석으로 "아무 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너무 늦은 사랑의 자각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만 얘기했습니다.

누가 봐도 둘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왜 이런 말이 필요할까요? 거기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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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앞뒤 생략하고, 병원에서 세경은 아슬아슬하게 지훈을 만나고, 지훈은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합니다. 둘이 탄 차가 빗속에 길을 달리고, "서울 올때 맨 처음 만났던 사람이 아저씨였는데 떠날때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아저씨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라디오로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는 뉴스 음향이 들려오고, '3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준혁과 정음이 등장합니다. 정음은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고 준혁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이맘때였지...?'라며 정음이 이런 회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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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지훈씨가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했더라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더라면..."

후회 가득한 말들이지만 여기서 정음은 '둘이 죽지는 않았을텐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상복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죽었다는 표현은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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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장면, '2010년 3월19일 오전 11시15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다시 빗길을 달리는 지훈의 차가 등장합니다. 이 차 안에서 세경은 그동안 지훈에게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차가 달리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지훈이 눈물을 흘리며 세경을 바라보고, 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다음 화면은 정지합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는 여기서 두 사람이 죽음을 맞았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네. 지금 500원짜리 제휴 동영상을 왔다갔다 다시 보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소식을 알린 라디오 뉴스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11시30분 공항로에서 빗길에 차들이 미끄러지면서 8중 추돌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공항로'를 검색해 봅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양화대교(제2한강교) 남단에서 김포공항 정문까지 직접 연결되는 도로. 총연장 7.1km, 폭 40m이다. 강서구 등촌동·가양동·내발산동·공항동 등의 지역을 통과한다. 특히,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도로일 뿐 아니라 서울-강화 간 국도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공항로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인천공항고속도로'입니다. 일반인들이야 틀릴 수 있지만 뉴스에서 둘을 착각할 리는 없습니다.

타히티로 가는 비행기를 김포공항에서 탈 수도 없죠. 물론 지훈과 세경이 묘하게 코스를 선택해 공항로를 거쳐 김포공항 입구에서 인천공항 가는 길을 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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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과 세경이 탄 차가 잡힌 시점이 11시15분. 준혁과 세경의 대화(공항에 나오지 말라는)에서 알 수 있는 비행기 시간은 12시입니다. 사고 시간인 11시30분에 공항로라는 건 비행기 탑승을 기대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너무 늦죠. 그래서 11시30분에 만약 사고가 났다면, 사고 지점은 공항로가 아니라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공항에 거의 도착한 어느 지점이어야 하는 겁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라도 물론 정상적인 탑승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이긴 합니다. 하지만 11시15분에 인천공항고속도로 위에 있다면 그건 아슬아슬하게라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이죠. 더구나 미리 도착한 아빠가 짐가방을 부쳐 놓은 상태라면 탑승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교통사고 뉴스'는 시청자의 주의를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교묘한 술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라디오 뉴스와 무관하게 공항고속도로에서는 다른 사고가 났을 수도 있죠. 정음의 말만으론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문제의 사고로 아빠와 신애가 죽었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타히티에 갈 이유가 없어진 세경과 지훈이 맺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빠와 신애는 그대로 타히티로 떠나게 하고, 그대로 지훈과 세경은 차를 돌려 둘만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음의 회한에 가득찬 말은 "그때 그렇게 둘이 (따로)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둘이 맺어지는 일은 없었을텐데..."라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죠.

네. 물론 상당 부분 억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혹시 둘이 죽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한 가지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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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시청자들은 '언니와 잘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지훈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세경, 반지를 싸들고 대전으로 내려가려다 세경의 고백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는 지훈을 싸잡아 '재수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얼마나 연약하고 걷잡을 수 없는 것인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 시트콤 마지막회의 핵심은 세경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길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눈빛은 그냥 세경을 향한 측은함일까요, 아니면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이 아이였구나'하는 깨달음의 표현일까요. 정음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 표현 외에도 지훈이 세경을 남다르게 생각했다는 건 지속적인 시청자들이면 다 알고 있는 얘기일 겁니다. 다만 왜 세경을 소개시켜주지 않느냐는 동료의 말에 '얘는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불쌍한 애야'라고 말하듯, 스스로에게도 '얘를 좋아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라고 다짐하면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물론 이런 복잡다단한, 디테일 가득한 사람의 마음 속에 대한 묘사를 거부하고 '그런 게 어딨냐'고 떼를 쓰듯 '이지훈은 정말 개자식이었다' '세경이는 뭐냐'고 외치는 시청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눈에는 전날 준혁과 입맞춤을 하고 다음날 지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제 이 나라를 떠나 다시는 못 볼 거란 사람에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맘에 담아뒀던 말들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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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어도 그 뒤로 행복했는지, 저는 아무 것도 모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세경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내 인생에도 이렇게 불이 환하게 밝혀진 날이 올까요?'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런 세경이, 마지막 몇분간이라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그렇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엔딩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가슴아픈 결말도 충분히 받아들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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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작진과 출연진,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를 다시 볼 수 없다니, 대체 다음 주부턴 무슨 낙으로 살란 말인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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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초반 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합니다. 드라마 속 오지호나 장혁의 인기 못지 않게 원손 석견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진우 어린이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더군요.

이 원손 아기씨는 아시다시피 비명에 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석견(石堅)입니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데 이어 어머니 강빈은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아 세 아들은 모두 고아가 된 상태에서 1647년, 제주로 귀양을 떠납니다. 당시 맏이 석철(石鐵)이 12세, 둘째 석린(石麟)이 8세, 그리고 막내 석견은 불과 4세입니다. 하지만 어린 이들 형제에게 유배 생활이 어찌나 고된 것이었는지 불과 1년만에 위로 두 형들은 죽고 석견 혼자 살아남습니다. 그 밖에 두 딸이 있었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없습니다.

'추노'는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내 석견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의정 이경식(아마도 김자점을 형상화한 인물로 보이는)에 의해 송태하, 대길 등과 함께 죽음을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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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석견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 대신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 숙부 봉림대군의 결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죠. 핵심적인 기록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1647년의 기록입니다.

인조 48권, 25년(1647 정해 / 청 순치(順治) 4년) 5월 13일(계축) 1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에 유배시키다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인 이석철(李石鐵)·이석린(李石麟)·이석견(李石堅)을 제주에 유배하였다. 처음에 의금부가 석철은 제주에, 석린은 정의(旌義)에, 석견은 대정(大靜)에 유배하자고 청하였다. 당시 석철은 12세, 석린은 8세, 석견은 4세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한 곳에 정배하여 서로 의지해서 살도록 하되, 내관(內官)과 별장(別將) 등을 교대로 지정해 보내 외부인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세 고을에 정배(定配)된 사대부는 모두 다른 섬으로 옮겨 정배하라.” 하였다. 이에 홍무적은 남해현(南海縣)으로, 신득연(申得淵)은 진도군(珍島郡)으로 이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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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중에 석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효종). 효종은 즉위 즉시 정권을 농단하고 있던 김자점의 무리를 처단하고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런 효종도 즉위 10년이나 지나서야 석견을 유배 간 죄인에서 왕자의 자리로 복권시킬 수 있었습니다. 1659년의 기사입니다.

효종 21권, 10년(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4일(갑자) 2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아들과 딸들을 군과 군주에 봉하라고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였다.
“소현 세자의 1남 이백(李栢)은 경선군(慶善君)을 증(贈)하고, 3남 이회(李檜)는 경안군(慶安君)으로 하라. 그리고 1녀에게는 경숙 군주(慶淑郡主)를 증(贈)하고, 2녀는 경녕 군주(慶寧郡主)로 하고, 3녀는 경순 군주(慶順郡主)로 하라.”

이회가 바로 석견입니다. 지난주 '추노'에서 송태하가 짝귀에게 석견의 이름을 '회'라고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요.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소현세자의 아들에 대한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남 대신 차남인 효종이 왕위에 있는데 장남의 아들 - 다시 말해 인조의 종손 - 이 살아 있다는 것은 후계구도를 복잡하게 하고, 효종의 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기저기에 소현세자의 복권을 명분으로 하는 반란의 위협이 있고, 그 위협이 존재하는 한 석견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뒷날 효종이 죽고 현종때 벌어진 예송논쟁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효종이 조카를 역적에서 다시 왕손으로 복권시킨 것은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효종은 역모에 휘말린 배다른 동생들을 용서했고, 여기에 하나 보태 석견까지 복권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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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석견, 즉 경안군은 1643년에 태어나 4세때인 1647년 귀양을 갔고, 12년간 귀양살이를 한 뒤 만 16세 때인 1659년에야 왕자로 복권됩니다. 장가도 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리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현종 11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9월 18일(신축) 4번째기사
경안군 이회의 졸기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가 졸(卒)하였다. 경안군은 곧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이다. 소현의 자녀(子女)가 모두 죽었고 유독 경안군만이 살아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병이 나서 실려 돌아와 죽었다. 상이 매우 애도하여 정원에 하교하기를,
“경안군의 상사(喪事)는 뜻밖에 나온 것이어서 내가 매우 비통하게 여기고 있다. 아, 선조(先朝) 때부터 돌보아 기르고 어루만져 보살펴 왔으니 진실로 후세 자손들은 의당 이를 본받아야 한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1643년에 태어나 1665년에 사망. 고작 만 22세에 숨을 거두고 마는 것입니다. 안된 일이긴 하지만 효종 시대의 중신들은 경안군의 죽음을 맞아 겨우 한숨을 내쉬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조정에서 경안군이라는 존재만큼 효종의 왕위를 불안하게 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경안군은 죽었지만 임창군 형제를 후사로 남깁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적통'이라는 핏줄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숙종 8년(1679년), 서울 장안에 흉서가 나붙고, 그 흉서에는 '경안군의 아들 임창군이야말로 왕이 되어야 할 성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행히 숙종이 "반도들이 마음대로 임창군을 거론했을 뿐, 임창군이 연루된 증거가 없다"고 막아 임창군은 반란의 수괴로 지목되는 비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창군의 아들 밀풍군은 영조 초 이인좌의 난 때 반란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밀풍군이 직접 난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왕권에 도전한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고, 결국 밀풍군은 자결합니다. 이것이 소현세자의 후손들, 즉 왕이 되지 못한 왕손의 운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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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효종의 결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종대왕 행장에 보면 왕이 대신들에게 경안군의 복권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석견에게)작호(爵號)를 써서 내리도록 하겠다. 오늘 첨의(僉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내가 소현(昭顯)과 동시에 북행(北行)하여 험난한 이역 땅에서 어렵고 위험한 지경을 모두 겪었는데 늘 좌우에서 이끌어 주면서 주야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쪽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인사(人事)가 갑자기 덧없이 되어버리고 불량한 사람이 이어 변을 야기시켰다.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을 경솔히 고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항상 아프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영령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어찌 한스러움이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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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리하면 인조가 죽고 왕이 바뀌기 전까지 석견은 귀양살이 도중이었지만 생명은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추노'의 상황으로 보면 석견이 살아남는 것은 송태하와 대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인 셈이죠.

물론 드라마의 장중한 마무리를 생각해보나, 이미 사람 많이 죽이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추노' 제작진을 보나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는 걸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듯 합니다. 이제 두 남자 주인공 가운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혹은 둘 다 죽을지가 궁금해질 상황인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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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침에 일제히 엉뚱한 기사들이 일제히 포탈 사이트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유승호-고아성 키스신'이 KBS 2TV '공부의 신'에 나왔다는 거죠. '어라, 키스신은 안 나왔는데...'라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많은 분들이 키스신으로 생각하신 듯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장면을 키스신으로 보신 건 착각입니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백현(유승호)과 풀잎(고아성)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뭔가 서로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서로에 대한 느낌을 살짝 나누는 것은 맞지만, 그 장면은 그냥 머리를 털어 주는 장면이었던 겁니다.

물론 현정(지연)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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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부의 신'의 설정은 처음부터 이런 갈등을 예고하고 있긴 했습니다. 백현과 풀잎은 어린시절부터 잘 알던 친구 사이, 그리고 현재 백현과 현정은 사귀는 사이로 돼 있습니다. 물론 애정의 강도는 현정 쪽에서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강했죠.

드라마가 시작한 뒤로 늘 현정은 백현을 '서방, 서바앙~~'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니지만 백현 쪽에서 그런 애정표현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백현을 좀 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해하는 듯한 풀잎과 뭔가 뜻이 담긴 눈빛을 주고 받곤 했죠.

문제의 장면은 본래 대본상으로는 볼에 뽀뽀를 살짝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현장에서 유승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아직 그런 애정표현을 TV에서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이 너무 어린 나이인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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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일각에서도 '학생 뿐만 아니라 학부형들의 관심이 유난히 뜨거운 드라마인데, 갑작스레 멜로드라마로 바뀌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제시해 결국 그냥 머리의 먼지를 털어 주는 정도로 수정된 것입니다. 위 사진들처럼 살짝 분위기만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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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진짜 키스가 아니라고 해도, 현정의 눈에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란 점은 달리 말할 필요가 없겠죠. 사실 요즘의 진짜 고3 들이라면 키스신 정도에 긴장하거나, 실생활에서도 키스의 경험에 그리 민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35% 정도가 이성 친구와의 포옹 정도를, 20%는 키스를 경험해 봤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316081106818&p=segye)

물론 1/5에 불과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준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 방송에서 떳떳하게 보여줄 수 없는 장면인 것은 분명합니다. 더구나 '공부의 신'처럼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려는 마음을 심어 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작품에서 이런 비 교육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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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의 신'은 당초 일각에서 제기됐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날 에피소드나 다양한 교육 현장의 문제를 조명하며 일본판 '드래곤 자쿠라'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11부인 일본 드라마에 비해 16부인 한국 드라마가 내용이 더 풍부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이 부분은 아무래도 한국과 일본의 교육 현장에 대한 정서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P.S. 어쨌든 진짜 키스하는 장면이 아니었으니 '아악! 안돼!' 라고 외쳤던 많은 분들, 이제 진정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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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부의 신'은 연기자 김수로에게도 큰 획을 긋는 작품이 될 듯 합니다. 이미 방송 초기부터 '강석호 쌤' 혹은 그냥 '강석호'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때문이죠.

만화 원작이든, 일본판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든, 한국 드라마 '공부의 신'이든 어느 작품이거나 주인공은 다소 반골 기질이 강한 변호사 캐릭터입니다. 변호사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문제아 학교의 특급 문제아들을 지도해 최고 명문대에 합격시키는 것으로 아이들의 운명은 물론 자신의 운명까지 대역전을 노리는 인물이죠. 그리고 김수로는 '너희같이 멍청한 놈들일 수록 천하대에 가서 인생을 바꾸라'고 소리치는 강석호 역을 통해 대한민국 학부형들의 선호도 1위 연예인으로 떠오른 동시에 각계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럼 김수로가 이 역할을 맡지 않았다면 어떤 선택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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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본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에서 이 역할을 누가 연기했는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의 최고 연기자 중 하나인 아베 히로시가 등장했습니다.

아베 히로시는 일본 배우로는 드문 장신에다 호남형 외모와는 달리 엉뚱한 예측불허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의 소유자입니다. '트릭'이나 '히어로'에선 무표정과 망가짐을 오가는 절묘한 코믹 연기를 보여준 반면 최근 화제작 '천지인'에서는 또 진지한 표정으로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무장 우에스기 겐신 역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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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히로시를 아는 한국 시청자들에겐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차승원이죠. 차승원을 '한국의 아베 히로시'라고 하건, 아베를 '일본의 차승원'이라고 하건 거의 비슷한 느낌입니다.

훤칠한 키와 독특한 유머 감각이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시청 직원 김선아가 시장이 되는 드라마 '시티 홀'에서 차승원의 캐릭터와, 초등학교 교사 기무라 타쿠야가 총리가 되는 일본 드라마 '체인지'에서의 아베 히로시의 캐릭터가 얼마나 비슷한지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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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차승원이 강석호 역을 맡았어도 훌륭한 한편의 볼거리가 나왔겠지만, 상당히 다른 캐릭터가 됐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드래곤 자쿠라'의 아베 히로시가 연기한대로, 아이들에 대한 열정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음모를 꾸미는 신비로운 인물의 이미지가 강조되지 않았을까요.

반면 현재의 김수로가 연기하는 강석호는 훨씬 '빈 몸으로 시작해 몸으로 부딪히는' 사나이의 이미지가 훨씬 강조돼 있습니다. 그리고 김수로가 연기하는 쪽이 훨씬 '교사적'으로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결과일 듯 합니다. 어쩐지 영화 '울학교 ET'에서의 교사 느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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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과 카리스마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죠. 만약 '강마에' 김명민이 강석호 역을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이것 역시 나무랄 데 없는 한편의 드라마가 됐겠지만,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카리스마틱한 강석호 변호사가 등장하고, 이런 인물이 왜 학교를 한꺼번에 손아귀에 넣지 못하는 지 의문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유승호나 이현우 같은 '공신돌'들도 오히려 반항하는게 더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비해 현재의 김수로는 아이들과 적절한 선에서 대립과 억압의 상황을 잇달아 연출하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물론 김명민이 강석호 역을 맡아서 똑같이 강마에 연기를 할 리는 만무하지만, 만약 '강마에=강석호'라면 어떨까 하는 예상을 전제로 하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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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버럭 범수'로 불렸던 이범수도 이 역할의 적임자로 꼽힐 만 합니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선임자 역할을 비롯해 '킹콩을 들다'에서 헌신적으로 여중생들을 이끄는 역도 코치, 그리고 '온에어'에서는 역시 헌신적으로 자기가 맡은 배우를 이끄는 매니저 장기준 역으로 줄곧 '신뢰감 가는 남자' 역할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해 왔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반면 뭔가 너무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역할을 잇달아 맡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커리어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아무튼 이범수가 강석호 역을 맡았다면 뭔가 매회 두어번씩 아이들과 멱살잡이를 하는, 박력 넘치는 '강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래저래 독특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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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저런 다른 선택들과 비교해 봐도 김수로의 강석호 연기는 발군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역할로 등장하는 김수로를 보고 있으면, 김수로가 아니었더라면 '공부의 신'의 초반 붐이 이렇게 확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김수로의 열연 덕분에, 냉철한 듯 하면서도 인간적인 강석호 선생님은 2010년의 기억할만한 드라마 캐릭터에 꼽힐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방송 시기가 연초라는 점 때문에 연말 연기상의 논공행상 때에는 상당히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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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이 인기를 끌면서 '공부의 신'의 원작 만화인 '꼴찌 동경대 가다'와 원작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드래곤 자쿠라'에도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드래곤 자쿠라'는 일본에서 비운의 드라마로 통합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일본에선 그리 성공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특별반 학생들로 출연한 배우들은 2,3년 사이 모두 톱클래스로 성장했죠.

만화 원작에선 2명뿐이었던 특별반 학생들이 드라마에선 6명으로 늘었고, 다시 한국에서는 5명으로 축소되는 등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아무래도 '공부의 신'의 원작은 만화 '꼴찌 동경대 가다'라기보다는 드라마 '드래곤 자쿠라'라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그만치 만화 원작 보다는 드라마로부터 받은 영향이 더 커 보입니다.

그럼 한국판의 다섯 특별반 학생과 일본판의 여섯 학생들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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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백현 vs 야지마 유스케 (유승호 vs '야마삐' 야마시타 토모히사)

잘생긴 반항아이고, 구체적으로 학교의 보스라거나 이런 지위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 황백현은 별 특기는 갖고 있지 않지만 야지마 유스케는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고 있었습니다. '드래곤 자쿠라'에서는 사쿠라기 변호사가 야지마를 끌어들이는 데 이 트럼펫이 꽤 큰 역할을 하죠.

황백현의 부모는 어려서 죽고 백현은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지만 야지마는 아버지가 빚 독촉에 몰려 가출하는 바람에 졸지에 어머니와 두 식구만 남아 빚을 짊어질 상황이 됩니다. 만화 원작에서 명문가의 버림받은 막내인 야지마와는 전혀 다릅니다. 대신 전교 여학생들이 달려들어 고백을 하고자 한다는 새로운 특징이 생깁니다.

유승호는 다소 박력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점 외에는 다혈질이었다, 차분했다 하는 약간 이중적인 백현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야지마 역을 맡았던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김현중과 쌍둥이같은 잘 생긴 얼굴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만 솔직히 연기력이 뛰어나다고(특히 이 시기에는) 보기는 어렵습니다. 야지마 역을 연기하면서 늘 똑같은 패턴으로 흥분했다가 가라앉는 바람에 '드래곤 자쿠라'가 일본에서 그리 큰 붐을 조성하지 못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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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풀잎 vs 미즈노 나오미 (고아성 vs 나가사와 마사미)

만화 원작과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이 여주인공 캐릭터는 모두 술집을 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딸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너무나도 앳되게 보이는 고아성과는 달리 '드래곤 자쿠라'의 미즈노 역을 맡은 나가사와 마사미는 꽤 성숙해 보입니다.

'드래곤...'에서 미즈노는 나중에 과로로 쓰러진 어머니를 대신해 술집을 운영하는 억척스러운 면까지 보이지만, 이런 역할은 아무래도 고아성에겐 무리일 듯. 그리고 이 미즈노는 남자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는 고사카 요시노를 늘 긴장시키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 이후 가장 큰 성취를 보인 배우라면 나가사와 마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윤은혜와 닮은꼴인 건강미인 이미지를 살려 아다치 미츠루 원작인 '터치'와 '러프'에서 잇달아 주인공을 맡으며 또래 중의 1인자로 떠올랐습니다. 최근엔 '천지인'에서도 닌자 풍의 미녀 스파이 역으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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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찬두  vs 오가타 히데키 (이현우 vs 고이케 텟페이)

사실 '드래곤...'에서 오가타는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캐릭터입니다. 오가타까지 캐릭터를 살려 주기에는 일본 드라마의 기본인 11부작은 너무 짧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16부작이 기본이기 때문에 캐릭터별로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공부의 신'의  찬두에게는 부잣집 막내라는 캐릭터가 주어지고, 풀잎과의 살짝 러브라인도 그려집니다.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만화 원작, 그냥 조연 느낌이던 '드래곤...'과는 천양지차.

오가타 역을 맡은 고이케 텟페이는 '의룡' 시리즈에 순진한(?) 인턴 이주인 역으로 인기를 모았고 '고쿠센' 시리즈에도 얼굴을 비쳤습니다. 반면 이현우는 '선덕여왕'의 어린 김유신 역에 이어 꽤 비중있는 역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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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현정 vs 고사카 요시노, 고바야시 마키 (지연 vs 아라가키 유이, 사에코)
[사진은 사에코 - 아라가키 유이 - 지연 순]

양쪽 모두 남자주인공과 여자친구로 대략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정작 남자주인공은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일 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고사카는 나중에 폭주족과 어울리기도 하는 다소 터프한 캐릭터지만 '공부의 신'의 나현정은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드래곤...'의 특별반에는 '최초의 동경대 출신 아이들이 되겠다'는 고바야시 마키 캐릭터가 있지만 '공부의 신'에서는 이 캐릭터가 아예 사라졌죠. 나현정이 정작 걸 그룹 멤버인 지연(티아라)에 의해 연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언제고 '연예인이 되고 싶어' 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사카 역의 아라가키 유이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신예죠.

어쨌든 이 경우에도 11부작과 16부작의 차이 때문에 황백현을 사이에 둔 나현정 - 길풀잎의 삼각관계는 상당히 강조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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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봉구 vs 오쿠노 이치로 (이찬호 vs 나카오 아키요시)
[나카오 아키요시: 사진 왼쪽]

가장 공통점이 없는 캐릭터. '드래곤 자쿠라'에서 오쿠노는 쌍둥이 형제의 형입니다. 동생은 진학 명문고에 다니고 있는 수재로 집안의 모든 기대는 동생에게 몰려 있습니다. 오쿠노도 성실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머리가 뛰어난 편은 아니고, 착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우리 집안에서 동경대에 갈만한 수재는 동생 하나로 족하다"며 현실을 그냥 웃어 넘기는 학생이죠. 그러다 막차로 특별반에 합류하게 됩니다.

비쩍 마르고 기운없어 보이는 오쿠노에 비해 오봉구는 외형부터 완전히 다른 캐릭터죠. 고깃집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란데다 부모 역시 '너는 공부까지 잘 할 필요 없으니 쉬엄 쉬엄 하라'고 전혀 자극을 주지 않습니다.

어쨌든 '공부에 관심은 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정말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는 학생이 어느날 계기를 맞아 정말 공부에 올인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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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까지 다 끝내 버릴까 했는데 너무 길어지는건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교사 편에선 따로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아무튼 '드래곤 자쿠라/꼴찌 동경대 가다'는 모두 현실에 대한 풍자를 배경으로 깔고 있습니다. '동경대? 동경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해? 미안하지만 동경대 들어가는 편법도 얼마든지 있어'라는 식의 생각이죠. 아마 이런 식의 태도가 결정적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악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쨌든' 이 드라마는 '감동의 학원 드라마'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공부 열심히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겠다고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으로, 그렇지 않고 학생 인권이나 들먹이는 교사는 무능하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한국 정서에서는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이대로 가면 또 뻔한 학력만능주의 조장이니 뭐니 하는 비판이 나올 듯도 한데, 여기에 '공부의 신' 팀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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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공부의 신'이 반쪽 1위에서 2회만에 월화드라마 1위의 자리를 꿰찼습니다. 상당히 의미있는 성적입니다. 2010년 1월4일, 지상파 3사는 동시에 세 편(정확하게 말하면 네편이지만)의 월화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나름 칼을 갈았습니다. 그 동안 '선덕여왕'에게 밀려 기를 펴지 못했던 SBS와 KBS로서는 판도를 바꿔 놓을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고, MBC 역시 '선덕여왕'이 장기집권(심지어 연장방영까지)하는 동안 차기작을 준비할 충분한 여유가 있었죠.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 방송사 모두 내놓은 작품이 만만찮았고, 첫날은 오락가락, 세 드라마 모두 시청률 10%를 넘는 대혼전을 벌였습니다. 물론 시청률이라는 건 흔들리는 배 위에 놓인 물잔과 같아서 출렁하는가 싶으면 어느 한 쪽으로 쏠려 쓰러지게 되어 있죠.

'공부의 신'의 1회 포인트가 "너희같이 바보같은 놈들일수록 천하대(사실은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외치던 김수로의 일장 연설이었다면 2회의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유승호의 눈물입니다. 특히 그 눈물의 매개가 할머니가 싸 준 도시락이라는 게 의미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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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학교' 병문고를 되살리기 위해 천하대 입시 특별반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강석호(김수로)에게 놓인 첫번째 미션은 이 특별반에 들어올 학생을 최소 다섯명은 모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죠. (당연히 그렇겠죠.)

드라마의 진행상 반드시 특별반의 주역이 되어야 할 백현(유승호)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셋집에서 쫓겨날 상황입니다. 당연히 목돈이 필요하죠. 학교는 뒤로 미루고 중국집 철가방과 카센터 아르바이트로 돈벌기에 나선 백현에게 짠 하고 나타난 강석호는 말합니다. "대체 이렇게 푼돈 벌어서 어느 세월에 집을 구해 할머니를 모시겠느냐. 네가 지금 돈 버는 시간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인데"라며 질타합니다.

당연히 "상관 말라"며 버럭 화를 낸 백현은 학교를 땡땡이치고 알바를 하다가 공원에서 할머니가 특별히 싸 준 도시락을 까 먹습니다. (급식 세상이라 소풍날 아니면 보기 힘들어진게 도시락이지만 '손자가 특별반에 갔다는데'라는게 갑자기 도시락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게 할머니의 편지. 그리고 강석호를 통해 할머니가 자기 몰래 고시원으로 방을 빼는 걸 알게 된 백현은 마침내 특별반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뜬금없이 남자가 밥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벌써 24년 전 영화군요. 1986년작 '영웅본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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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한 구석에서 도시락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소마(주윤발). 아호(적룡)의 복수를 위해 총격전을 벌이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소마는 왕년의 자기 부하였던 아문(이자웅)의 차를 닦으며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가 돼 있습니다. 오직 밥을 빨리 먹어 없애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듯 목구멍으로 아귀아귀 밥을 밀어넣던 소마에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마, 편지에는 잘 지내고 있다고 썼잖아."

그 순간 소마의 표정은 한 순간에 얼어붙습니다. 보고싶던 친구를 마주했건만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수치와 곤혹스러움이 짧은 시간에 교차합니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입에 든 밥을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이 복잡한 순간을 표정 하나로 연기해내는 주윤발이라는 배우의 솜씨는 절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성 관객들은 이런 장면의 정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

아무튼 유승호군이 도시락 먹는 장면을 보면서 우연히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사나이 눈물'이라기엔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은 명품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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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갑자기 곁길로 샜지만, 할머니의 도시락과 유승호의 굵고 짠 눈물은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충분한 효과를 냈습니다. 물론 일본판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죠. 훨씬 한국적인 정서에 맞닿은 느낌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들이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을 겁니다(앞으로 입시 훈련 과정이 나오면 당연히 더더욱 비현실적인 내용이 등장하겠죠^^). 그런 가운데서 과연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거의 생활보호대상급 고교생이 화려한 그래픽의 최신 휴대폰을 갖고 다녀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이 현재 10대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건 다들 아실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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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중년이 된 이 나이에도 강석호 쌤의 말씀들은 가슴에 콱콱 박힙니다. "너 같은 놈은 아직 자존심 세울 레벨도 안 돼. 아직 내가 도와줄 수 있다." 이렇게 어디서 짠 하고 나타나 도와줄 선생님도 없는 이 나이엔 뭘 어찌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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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가 갑자기 풍성해졌습니다. SBS TV '제중원'은 최초의 양의 병원을 그리는 사극+메디컬 드라마로, MBC TV '파스타'는 레스토랑을 무대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하나인 공효진이 주역으로 나선 코믹 터치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라, 저는 KBS 2TV '공부의 신'을 닥본사했습니다.

'공부의 신'은 잘 알려진대로 미타 노리후사의 일본 만화 '꼴찌 동경대가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도 '드래곤 사쿠라'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꽤 인기를 모으기도 했죠. 이미 이 일본 드라마는 국내에서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일본이나 한국이나, 서울대나 동경대나 비슷한 상황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보니 상당히 정서적으로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 드라마에서는 서울대라는 이름을 피해 천하대라는 이름을 썼죠.

첫 방송이 나간 뒤로 두 군데의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한쪽은 '제중원', 다른 한 쪽은 '공부의 신'을 1위에 내놓을 정도로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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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에는 수없이 많은 관전 포인트가 있겠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유승호와 이현우입니다. 물론 출연 시기가 겹치지는 않았지만 두 배우 모두 월화드라마 부동의 강자였던 '선덕여왕'이 끝나기 무섭게 '공부의 신'으로 옮겨 탔죠.

알려진대로 유승호는 춘추 역을, 이현우는 유신의 아역을 맡았습니다. 초반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이현우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큰 역할을 했다면 유승호는 춘추 역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춘추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공부의 신'은 본래 유승호가 연기하는 백현 역에 초점이 한껏 맞춰져 있기 때문에 유승호 팬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유승호로서는 '선덕여왕' 때 못 다 푼 주역의 한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다만 라이벌이 있다면 같은 학생들이 아니라 스승 김수로가 될 거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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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을 살짝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일거리 없는 3류 변호사 강석호(김수로)는 어느날 주위 주민들의 골치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똥통' 병문고교를 정리하는 일거리를 맡습니다. 하지만 사실 병문고 출신이던 강석호는 이 학교를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는 야심을 품죠.

그래서 하루빨리 학교를 정리할 생각 뿐인 쇼핑마니아 이사장 마리(오윤아)를 꼬드겨 1년간 천하대(물론 서울대를 말합니다) 입시 특별반을 운영해 다섯명의 합격생을 내면 학교를 훨씬 좋은 조건에 다른 운영자에게 넘길 수 있다고 설득합니다. 전인교육을 주장하는 교사 수정(배두나)은 강석호에게 학교를 입시학원으로 만들 셈이냐고 반발하지만 그럼 대안이 뭐냐는 말에 머쓱해집니다.

그리고 반항아 백현(유승호), 엄마가 술집을 하는 풀잎(고아성), 백현을 서방으로 모시는 현정(티아라 지연), 대기업 임원인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진 찬두(이현우), 고깃집 아들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봉구(이찬호) 등 다섯 아이들이 천하대에 가기 위한 특수훈련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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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만에 서울대가기'의 열풍이 보여주듯, '공부'와 '명문대'는 한국 학생들과 학부형의 천형과 같은 존재입니다. '서울대가 밥 먹여주냐'고 애써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밥 먹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그저 성적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에 진학한다는 건 두뇌 외에도 여러가지 면을 복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일단 제도와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는 것, 또 높은 성취 동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천재보다는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입시 제도상 최소한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 일정 기간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기존 질서에도 동화되기 쉽고, 타인의 말을 흘려 듣지 않으며, 무엇이 중요한 부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이밖에도 객관식 시험문제에 맞는 사고방식은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도 어떤 것이 최대 다수의 의견인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에도 적당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과 겹쳐집니다. (뭐 이런 얘기는 그냥 이 정도로.)

아무튼 이 드라마/만화/일본 드라마/의 1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변호사 강석호(김수로)의 일장 연설입니다. "너희같이 공부도 못하고 머리 쓰는게 귀찮은 놈들은 평생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살 뿐이다. 왜? 항상 제도나 조건은 똑똑한 놈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고깝고 이 사회에 불만이 있으면 천하대를 가라. 가서 룰을 만드는 사람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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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는 사람이 10대라면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아, 물론 현실에서는 여기에도 토가 계속 달립니다. 인성을 무시한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냐, 서울대는 아무나 가냐, 어차피 돈 많고 과외 많이 하는 강남 부유층 아이들이 서울대에도 가장 많이 가는게 정상 아니냐, 요즘은 로스쿨 때문에 돈 없으면 변호사도 못 된다... 등등.

드라마에서도 이런 반론이 등장하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이기 때문에, 초현실적인 비법이 등장합니다. 그걸 미리 말하는 건 드라마의 재미를 깎는 부분이니... 그냥 보시면 압니다. 아무튼 그리 현실적이진 않지만, 재미는 있을 겁니다.

그리고 뭐라고 부정하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꾀하는 데 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공부라는 것 역시(로또는 그리 효율적이지는 않죠^^) 맞는 말인 건 분명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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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를 봐선 유승호의 반항아 연기는 꽤 그럴싸 합니다. 할머니와 철거될 건물에서 둘이 사는 가난한 집 학생 치고는 너무 귀태가 난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이현우는 아직 출연 분량이 적어 뭐라 말하기 힘들 상황입니다.

'괴물'의 고아성이야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고, 티아라의 지연 - 한때 리틀 김태희라고 불렸죠 - 이 얼마나 연기에 적응하는지가 꽤 볼거리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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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이 드라마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맥을 잇는 '외인구단' 형 드라마입니다. 루저들에게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길을 열어주고 현실을 돌파하게 해 준다는 내용이기 때문이죠. 자연히 그 지도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아무튼 김수로의 박력은 첫회 제대로 작렬.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더군요. '울학교 E.T'에서 교사 역을 연습한 게 큰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수로의 카리스마에 묻히지 않으려면 유승호도 꽤 노력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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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이상하게 잠이 잘 안 오더군요. 불면증이었나봅니다. 아무튼 억지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풀죽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머리맡에 앉아 있었습니다.

뭐 늘 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더군요. 이름을 물으니 형종이랍니다. 다른 분들은 전부 빙의로 찾아왔는데 왜 이렇게 직접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남들은 잘 되던 모양인데 왜 난 안 되지?"하며 오히려 반문을 하더군요.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빙의도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분도 뭔가 드라마에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받아 적어 봤습니다. 대신 빙의 상태가 아니라서 인터뷰 형식이 되더군요. 진짜 미실과 진지왕의 아들인지도 궁금했지만 거기에 대해선 별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김남길 인터뷰가 아니라 비담 인터뷰입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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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리 결정적인 건 아니지만, 앞선 '빙의' 시리즈를 보시는게 더 이해가 빠르실 듯.

 

 



그리고 비담과의 인터뷰입니다.

- 당신의 성은 무엇인가.
"당연히 김씨다. 그런걸 왜 물어보나. '선덕여왕'에 나온 사람 중 김씨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나."

- 그럼 이름은 정말 비담인가?
"이름이란게 뭔가. 남들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면 그 이름이 내 이름 아닌가? 다들 나를 비담이라고 부르니 나는 자연스럽게 비담이 됐다."

- 문득 '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그렇게 얘기하니 갑자기 당신의 이름이 비담이 아니라 춘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시 같은 걸 알 사람으로 보이나."

- 하긴. 스스로 생각하기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흠... 초기의 나 말인가, 말기의 나 말인가?"

-그래도 그 드라마에서 당신은 비교적 캐릭터가 균등하게 유지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초기의 나는 약간 이중인격적인 캐릭터였다. 한마디로 선악을 초월한 캐릭터였지. 인간적이라기보단 동물에 가까웠다. 즐거우면 웃고, 좋으면 좋고, 대신 누군가 비위를 거슬리면 그 자리에서 검으로 베어 버리는 인물이었다. 머리가 좋긴 했지만 그건 순간적인 대처였기 때문이다. 초반의 비담이라면 오랫동안 고민하고 계획을 짜서 누군가를 무너뜨리고 할 인물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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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렇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 휘딱휘딱 변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염종이 스승을 죽인 범인인 걸 알고도 다음 순간 염종을 살려 주는 행위가 가능한 거다. 그런데 후반으로 가면서 이상하게 성격이 왜곡됐다."

-어떻게?
"지나치게 머리를 많이 굴렸다. 한마디로 생각이 많아진 거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나?
"하긴 그럴수도 있겠군. 아무튼 이번 기회를 빌어 작가들에게 고마운 점은 첫째, 내 역할에 미남 배우를 캐스팅해 준 것이고 둘째, 나를 검술의 명인으로 그려 준 점이다. 솔직히 내가 그 시절에 검을 잘 썼다면 화랑이나 장군으로 출세했겠지. 나는 본래 무인 기질은 없다."

-그럼 고맙지 않은 점은?
"칼을 잘 쓰는 대신 너무 머리가 나쁘게 그렸다. 일국의 상대등을 지낸 나를 그렇게 무식한 놈으로 그리다니. 거기다 귀는 왜 그렇게 얇은가. 누가 무슨 말만 하면 획획 돌아서고... 측근들에게 내가 정말 저렇게 변덕이 심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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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당신은 대체 왜 난을 일으켰나.
"아니 그렇게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도 모르겠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신은 선덕여왕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 걸로 알고 난을 일으킨 걸로 되어 있다. 그런데 당신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선덕여왕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물론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극중에서 당신의 마음 속 소리는 "내가 신국이 되어 너를 차지하겠다"는 걸로 나오던데. 대체 그럼 그 대사를 듣고 감동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 수많은 시청자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거 농담이다. 설마 그런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난을 일으켜 성공해서, 내가 왕이 된다 치자. 폐위된 여왕을 내가 마누라로 삼을 수 있겠나? 설사 여왕이 항복하고 내 마누라가 되어 살겠다고 한다고 치자. 우리 편들은 가만히 있을 것이며, 여왕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편은 또 가만히 있겠나?"

-그럼 대체 왜 난을 일으킨 건가?
"그렇게 모르겠다면 얘기해주지. 나는 독재를 막기 위해 싸운 거다."

-독재?
"그렇다! 진흥제 사후 진평-선덕 2대에 걸쳐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살하려고 시도한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싸운 거다. 우리 신국은 본래 화백회의라는 간접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였다. 어떤 군주도 자기 독단으로 나라를 이끈 적이 없다. 그런데 선덕여왕과 그 후계자로 사실상 지목된 김춘추가 아예 민주주의의 싹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 진덕여왕때 김춘추는 집사부를 설치하고 화백회의를 무력화한 다음 권력을 자신이 독차지했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바로 실현된거다."

-그건 당신을 만들어 준 작가의 생각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작가들에 따르면 이 드라마에 나오는 화백회의는 소수 귀족들의 이권을 대면하기 위해 존재하던 부패한 기관이던데.
"하하. 그건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7세기 신라에 덧씌우다 보니 일어난 코미디다. 화백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걸 오늘날 국회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그리면 속없는 사람들이 '현실 정치에 대한 은유'라면서 칭찬을 해 대더라. 바보같은 짓이다. 그럼 물어보자. 화백회의가 없어지고 왕 혼자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좋은 점은 뭔가? 국회가 공전하면 아예 국회를 없애는게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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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만은 독재자라기보다는 민본정책을 실현하려 한 사람으로 그려졌다고 볼...
"그래서 사람들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거다. 극중에서 덕만도 우리 어머니를 존경한다. 왜? 똑똑해서 혼자 다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자기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적당하게 죽이고 처리해가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유신 체제나 다를 게 없다."

-유신이라니... 김유신 말인가?
"아니. 그 유신 말고. 그 왜 총 맞고 죽은 대통령 있잖나. 내가 보기에 드라마에 나온 우리 어머니의 모델은 바로 그 사람인 것 같다. 별로 인기는 없는 것 같던데, 희한하게 시청자들은 다들 미실 좋다고 난리더라."

-음... 아무튼 왕의 독재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볼 때 '왕권 강화'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국정이 효율화되어 그 이후 신라의 통일 사업에 국력이 집중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효율이 좋으면 지금도 대통령인가 뭔가를 뽑아서 임기도 한 30년으로 하고, 국회 같은 건 없애 버리면 되지 않나? 독재자가 반드시 유능하고 똑똑할 거란 보장이 있나? 당신들은 요즘 '견제가 없는 독재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고 배우는 것 같던데."

-별걸 다 안다. 죽고 나서 공부를 꽤 많이 한 것 같다.
"한번 죽어 봐라. 죽고 나면 남는게 시간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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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듣고 보니 좀 이상하긴 하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그럼 당신은 화백회의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인가?
"그렇다."

-덕만을 좋아한 건 아니고?
"물론 덕만을 사랑했다."

-그럼 대체 왜 난을...
"나는 덕만을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다. 신라를, 신라의 민주주의를 더 사랑했을 뿐이다."

-표절이다.
"알고 있었나? 사실 그 이야기도 덕만에게 들은 거다. 어려서 읽은 플란다스의 개인가 하는 책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하더라. 브루터스가 뽀빠이를 죽이고 나서 그런 말을 했다고..."

-플란다스의 개가 아니라 플루타크 영웅전이겠지. 그리고 뽀빠이가 아니라 케사르다.
"그게 뭐 중요하겠나. 아무튼 우리는 국왕의 전제에 도전한 민주 열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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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7세기 신라에서 민주주의 얘기 하는 건 좀 어색하다.
"뭐가 어색한가? 드라마 나도 열심히 봤는데 덕만이 미실과 6분토론인가 뭔가 하면서 '시대정신(Zeitgeist)' 어쩌고 하더라. 그럼 내가 민주주의 얘기하는 건 이상하고, 덕만이 19세기 철학자 헤세의 용어를 쓰면서 얘기하는 건 괜찮냐?"

-...헤세는 소설가고 시대정신을 말한 철학자는 헤겔이다. 그리고 헤겔보다 괴테가 더 먼저 그 말을 썼다. 인터넷만 보지 말고 책을 좀 읽지.
"미안하다. 인터넷으로 보는게 훨씬 편하고 빨라서... 아무튼 왜 나한테만 7세기 사람이 될 걸 강요하나? 나도 21세기식으로 멋지게 나오고 싶다. 독재자 덕만에 저항하다 죽은 낭만주의자 비담, 얼마나 멋진가."

-아니 그게 무슨 사극인가.
"...그럼 지금까지 '선덕여왕'이 사극인줄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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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밤마다 이상한 어르신들이 꿈속으로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웬 잘생긴 거구의 아저씨가 나타나셨더군요.

사실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른손에 닭다리를 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꿩 많이 드시느냐고 했더니 꿩은 구하기 힘들어서 치킨으로 바꾸셨답니다. 네.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였습니다.

역시 이분도 드라마 때문에 오셨더군요. 그럴만 합니다. 어찌나 말씀을 잘 하시는지 받아 치느라 죽을뻔했습니다(이젠 슬슬 기억이 납니다). 이것도 많이 압축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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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빙의상태에서 제가 태종무열왕의 심기를 대변한 거라는 걸 자꾸 의심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믿는 자에게 복이 있는 법입니다. 사실 자꾸 밤에 이분들이 찾아봐서 저도 피곤합니다. 제가 뭐 바라는게 있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저 경주김씨 종친회와 무관합니다.

아무튼 이해를 위해선 앞의 글부터 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선덕여왕, '선덕여왕'을 말하다

진짜 김유신이 '선덕여왕'을 봤다면

내 이름은 춘추다. 김춘추. 신라 최대의 정복군주인 진흥제와 진지제의 적통을 이은 왕손이다. 비록 할아버지 진지제가 명예롭지 못하게 왕위에서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부계와 모계 모두 손색 없는 왕실의 핏줄이다.

하지만 그때문에 나는 숨을 죽이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 미실은 진평제와 손을 잡고 할아버지 진지제를 폐위시켜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 두었다.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려면 할아버지의 두 아들인 내 아버지 용수와 용춘 숙부를 모두 죽여 없애야 했겠지만 우리 신국의 왕손은 아무나 해칠 수 없는 고귀한 핏줄이었다.

전례도 있었다. 일찌기 실성이사금은 내물이사금이 자신을 고구려에 인질로 보낸 보복으로 내물이사금의 세 아들을 모두 죽여 없애고 싶었겠지만, 그중 둘을 각기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보내는 걸로 그쳤다. 스스로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그만큼 신국의 왕손이 다른 왕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였다.

대신 진평제는 아버지 형제에게 우호적인 손길을 뻗어 왔다. 아버지(용수)와 자신의 딸 천명공주를 혼인시켜 조카를 사위로 삼은 것이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진평제에게 아버지 쪽 촌수로 계산하면 당질이 되는 셈이지만, 진평제는 나를 한결같이 외손으로만 대했다. 마치 나와 진지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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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나의 장래는 신국의 평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내가 진평제의 외손으로 대우받으며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진지제의 후손이나 그와 관련된 귀족들의 피를 흘릴 일이 없다는 보장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평제가 내게 자신의 왕위를 물려줄 리는 없었다. 만약 아버지, 혹은 용춘 숙부, 혹은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진지제의 축출을 주도했던 미실 새주와 그 가문은 처절한 복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숙부, 나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선 절대로 권력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신 신국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때로 목숨도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역시 총명했던 덕만 이모는 이런 나의 존재가 자신의 세력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모는 어찌 보면 나를 적으로 돌려야 할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나와 유신을 자신의 양 날개로 삼고 왕권을 강화하는데 남몰래 힘을 집중했다. 이모의 왕위는 짤짤이로 딴 게 아니었다. 우리가 무슨 팔푼이들도 아니고, 진평제가 아무리 원했다 한들 본인이 그만한 배포와 실력이 없었다면 누가 여자를 왕위에 올려놓았겠는가 말이다.

비담이 난을 일으킨 것은 솔직히 좀 의외였다. 그는 늘 우리에게 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담이 우리 진영에 협조적이지 않았다면 그가 난을 일으키기 1년 전에 우리가 그를 상대등으로 삼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우리 편이 되기를 거부하고 난의 주역이 되어 버렸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가 왕이 된다 한들, 그런 나쁜 선례 이후에도 그가 왕으로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까? 그랬다면 정말 실망이다. 최소한 나는 그가 훨씬 현명할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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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라벌의 귀족들을 거세하면서 우리는 젊은 화랑 출신의 인재들을 대거 등용했다. 유신을 처음 알아본 것은 나였다. 한번 대한 사람은 모두 자기의 수하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엄청난 흡수력에 반해버린 거다. 그가 나와 대등한 신분이었다면 나는 선뜻 그의 휘하가 되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칠숙의 난 때 염장을 발견했고, 비담이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천관이 화랑들을 거느리고 큰 공을 세웠다. 이들이 나의 사람들로 길러진 이상, 나의 권력에 도전할 사람은 없었다.

아무튼 그런데 왜 나중에 왕이 되었느냐고? 사실 내겐 반드시 왕이 되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었다. 내 딸, 고타소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각간의 자리 정도로 일생을 마쳤을 지도 모른다. 백제 장군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했을 때 검일이라는 자가 성문을 열어 항복했고, 성주였던 사위 품석이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다가 목이 잘렸다. 잔인한 백제 놈들은 그 아내인 고타소마저 내 딸이라는 이유로 참혹하게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서서 혼절해 버렸다.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들리지 않는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됐던 모양이었다. 어려서 어미를 잃은 내 딸 아이. 내 인생이 어떤 전란에 빠지더라도 그 아이만큼은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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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석은 누가 봐도 서라벌에서 손꼽히는 신랑감이었다. 멀끔한 인물이며 빼어난 검술 솜씨, 거기에 가문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외양에 속아 놈이 그렇게 비루한 천성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런 놈에게 신라의 숨통인 대야성 성주라는 중책을 맡기다니, 이건 무엇보다 그런 놈에게 김춘추의 사위라는 간판을 달아 준 내 책임이었다.

일국의 재상으로서 딸 하나 보호하지 못하고 적군의 칼날 아래 목이 베이게 하다니. 백번을 후회하고 천번을 가슴을 찢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품석의 아비는 부끄러움에 스스로 목에 칼을 꽂았다. 검일의 아비는 산으로 도망치다 맞아 죽었다. 유신이 아니었더라면 나도 자진했을 지 모른다. 이미 처남이 된 유신과 그날 밤 다시 한번 맹세했다.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에 반드시 사비성을 짓밟고 이 원한을 갚기로 말이다.

물론 사사로운 원한보다는 삼한일통이란 대의가 더 컸다. 그리고 이런 사업을 완수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덕만 이모의 죽음 이후에도 나는 한번 더 참았다. 나 대신 승만 이모를 추대했고, 두번째 여왕을 배경으로 삼아 비담과 염종의 무리를 제거했다. 그 뒤로 집사부를 설치해 화백회의를 무력화했고, 원로인 알천과 실질적인 군부의 1인자 유신의 동의하에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드라마에서 내 역을 맡은 유승호라는 배우가 맡은 것에는 대단히 만족한다. '당서'와 '일본서기', '삼국사기'에 모두 미남에 달변이라고 기록된 나다. 이 정도 인물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첫 등장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수나라 유학을 다녀왔는지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드라마에서 어머니가 미실 새주에게 죽음을 당한 것으로 처리됐으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복수심을 품는 것이 당연한 일일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수나라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여색이나 밝히고 돌아다닌 호화 유학생처럼 그려지면서 뭔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물론 그 뒤로도 내 캐릭터는 꽤 똑똑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겉똑똑이일 뿐이었다. 비담에게 약점을 잡힌 불량학생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 드라마에 즐비한 바보들 중의 하나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살벌한 진평제 치하에서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설치다니. 내가 죽으려고 환장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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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새주의 죽음 이후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좀 지나치게 비담에게 집착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법 머리도 좋고 수하도 거느릴 줄 알았던 내가 이토록 하루 아침에 행여나 비담이 덕만 이모의 총애를 못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질투 심한 꼬마로 전락할 줄은 몰랐다. 하긴, 유신이 보고 왔다는 검을 흑(黑)자가 부수라는 것도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돼 버린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가장 짜증나는 건 642년, 대야성이 함락될 때까지 유승호군이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로 내 역할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당시 내 나이는 38세. 딸이 시집을 갔는데도 홍안의 미소년으로 버틴다는게 정말 말도 안된다. 내가 무슨 호빗이라도 되냐(사실 발을 잘 비추지 않을 때에는 나도 불안했다. 다행히 신발을 신고 다닌 것으로 보아 작가가 나를 호빗으로 묘사하려 한 건 아닌 듯 하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누가 봐도 앞부분 50회는 '여걸 미실'이었고, 뒤의 12회는 '풍운아 비담'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총기를 잃고 자신감도 잃은 김춘추는 결국 마지막회엔 아예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 개망신을 당했다.

결코 비담이 나보다 여자들에게 인기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
(여기서 꿈이 깨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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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드라마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다시 폭식을 시작했다. 한때 하루에 꿩 10마리를 먹던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요즘은 꿩 구하기가 힘들어서 대신 프라이드 치킨을 8마리(양념 반, 프라이드 반)씩 먹는다. 이게 다 드라마 때문이다. 내 미남 이미지를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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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폐하에 이어 간밤에는 웬 우락부락한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 분들이 저 세상에서 심심하셨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자신들이 드라마에 나온다니까 TV를 열심히 보신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분 또한 MBC TV '선덕여왕'에 대해 할 말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또 타이핑된 글이 있군요. 매일 이런 탓에 낮에 피곤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어제와 똑같은 과정이었다는 점만 말씀드리고 그냥 올리겠습니다.

아, 이번 글의 싸인은 흥무대왕(興武大王)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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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은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봤다면' 편을 먼저 보시는 게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빙의 시리즈 두번째 편입니다.^



내 이름은 유신. 당연히 김씨다. 우리 조상은 금관가야의 왕족이지만 일찌기 신라와 나라를 합쳤다. 결코 복속된 것은 아니다(불끈). 증조부 때 신라 조정에 출사했고 내 조부 무력공은 일찌기 진흥제를 도와 관산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백제 왕(성왕)을 전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라벌의 콧대 높은 귀족들이 우리 가야 출신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데에는 조부의 공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 서현공은 감히 만호태후의 딸인 만명부인과 혼인도 없이 사통을 했다.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흥제의 여동생이며 며느리(동륜태자의 부인)인 만호태후가 숙흘종과 사통을 해서 낳은 딸이지만, 숙흘종 역시 진흥제의 동생이었으므로 부/모계가 모두 왕족인 귀인이었다. 다행히 뒷날 만호태후가 나를 보시고 자신의 외손자로 인정하셨으므로 나는 비로소 왕가와 피를 섞은 몸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어머니와 짝을 이루려 한 것도 내게 보다 나은 출세의 기회를, 더 나아가 가야 출신들이 신라에서 더 나은 지위를 얻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런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자진해서 왕실을 상대로 사기를 칠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냐고? 일설에 따르면 나는 어머니가 임신한지 스무달 만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 어떻게 스무달을 뱃속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 건 아마도 어머니가 아버지와 야반도주를 할 때, '나는 이미 서현공의 아이를 가졌으니 더 이상 따라와서 괴롭히지 말라'는 식의 통보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어머니가 나를 가진 것은 그로부터 열달 뒤의 일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스무달 만에 아이가 나왔다'고 얘기하게 된 게 아닐까?

이런 부모님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달리 노력했다. 열다섯에 화랑이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생긴지 백년도 되지 않은 제도였지만 화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위엄은 대단했다. 사다함같은 명문가의 자손들이 화랑이란 이름으로 피를 뿌린 뒤로 누구도 화랑을 무시하지 못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신라는 화랑의 피를 먹고 자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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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이란 이름으로 검을 허리에 차고 나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나라에 내놓은 셈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만큼 삶에 대해 알지 못했고, 늘 자랑스럽게 죽어 나라의 제사를 받는 선배 화랑들의 명예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히 전장에서 적에게 등을 보이는 자가 있으면 적보다 내가 먼저 목을 쳤을 것이다.

내 나이 열다섯. 세상에서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병법을 열심히 연구했으므로 실제로 전장을 지배하는 것은 개개인의 용맹보다는 장수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정병이라도 무능한 장군 아래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을 쌓아 가며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지만, 어쨌든 아군의 희생 없이 거둘 수 있는 승리는 없었다. 필요한 피를 아끼는 것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할 뿐이었다. 만약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이어야 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내게도 목숨을 바쳐야 할 시점이 왔다. 건복 51년, 아버지와 함께 출전한 낭비성 공략은 다소 무모한 싸움이었다. 고구려의 장병들은 날래고 거칠었다.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아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병력은 뒤지지 않았고 훈련도 잘 되어 있었지만 서전의 패배로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투구를 벗고 창을 잡자 놀란 흠순(꽤 유명한 내 동생이다. '선덕여왕'에 자신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다. 나는 혹시 월야가 나중에 흠순으로 개명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이 말고삐를 잡았다. 우리 군의 총수인 아버지에게 결심을 알렸다. 흠순과 달리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단신으로 적진에 돌격해 내가 살아 남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미 죽음의 두려움을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지만, 왠지 자신감이 솟구쳤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내 피는 총명한 아우 흠순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었다.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 나는 신라군의 전설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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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다소 방심한 듯 했다. 설마 한 놈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달려드는 미친 놈에게 다들 길을 비켜 주었다. 내가 홀로 적진을 돌파하고 돌아오자 아군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두번째 말을 달려 적진으로 들어갈 때에는 나를 따르는 아군의 용사가 십여명이나 되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적진을 누볐다. 이때에는 고구려군도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뒤를 돌아 보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슴이 다시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독이 오른 아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들어오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대승을 거뒀다.

그날 이후로 사병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단신으로 창을 잡아 적진으로 돌격한 화랑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두번이나 적진을 돌파하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나는 하늘이 돕는 신장이며, 창과 화살도 나를 꿰뚫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깨를 두드린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으며, 내가 벼린 창검은 부러지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래도 나는 전과 다름 없이 사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사졸들과 같은 곳에서 잤다.

그 뒤로도 적진에서 위기를 맞은 적은 많았지만 휘하의 장병들은 나와 싸우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수백번 전장에 더 나섰지만, 내가 있는 주진이 돌파당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물론 나는 가끔 저 청년들을 대신해 내가 살아남는 것이 더 좋은 일인가 자문하기도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비녕자에게 적진으로 뛰어들어 죽으라고 할 수 있으며, 조카인 반굴에게 죽음으로 모범을 보이라고 할 자격이 있었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나 또한 위기를 맞았을 때 목숨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병사는 운으로 살아남는다. 운이 중첩되면 그 장수는 신장(神將)이 되고, 그 군대는 신병(神兵)이 된다. 신장이 이끄는 신병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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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역을 맡은 배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곱상하고 야리야리한 배우들이 인기라고 들었는데 무엇보다 남자답고 무게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보다 보니 점점 속이 상했다.

나를 따르는 용화향도를 철없는 시골 소년들처럼 그린 것까진 이해한다. 천여명에 달했던 용화향도가 스물 남짓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아무튼 화랑으로서 인정받기까지 내가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내가 역경을 딛고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너무 하는 일이 없었다. 국선이 되고, 풍월주가 된 뒤에도 드라마 속의 나는 도대체 위엄이라는 게 없었다. 나는 휘하 화랑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국선이었다. 화랑들이 나를 그토록 우습게 여겼다면 내가 어떻게 신라군의 수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드라마 속의 나는 사소한 계략에도 쉽게 빠져드는 용렬한 인재였다. 내가 그렇게 단순했다면 나는 일찌기 전장의 백골이 되었을 것이다. 일찌기 손자병법에도 병불염사(兵不厭詐)라 했지만 적의 계략을 꿰뚫는 것은 장수의 기본이다. 내가 저렇게 우둔하고 우직하기만 한 인물로 그려지다니, 슬슬 짜증이 났다.

대체 저 사람들은 김부식이 쓴 내 열전(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을 읽어 보기는 한걸까? 사방에 간첩을 보내 적정을 정탐한 건 염종이 아니라 나라는 걸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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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황고가 등극하신 뒤로 나는 신국을 수호하기 위해 신명을 바쳤다. 그런데 어느날 드라마를 보니 내가 흰 옷을 입고 옥에 갇혀 있었다. 기가 막혔다. 이 드라마를 만든 이들은 나를 약 천년 뒤 사람인 이순신과 착각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다음 회에 내가 졸병으로 강등되어 싸우는 장면(백의종군)이 나오는게 아닐까 의아해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본래 이 무렵의 나는 나가서 싸우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장의 승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뛰어난 내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를 춘추에게 걸기로 했다. 좋은 장군의 재목은 아니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화술, 그리고 놀랍도록 빠른 상황판단은 내가 본 최고의 인재였다.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있다는 것은 신라의 복이었다.

물론 나와 춘추의 동맹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자가 비담이었다. 그와 여왕 폐하가 사귀는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 여왕폐하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나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나오던데 참 보기에 민망했다. ...여자와 관련된 스캔들은 천관녀 하나로 족하다.

아무튼 비담은 자신이 왕이 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이거야말로 최후의 발악이었다. 어차피 전장에서 단련될대로 단련된 나의 군사들에게 비담의 무리는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명활산성에 웅거한지 10일만에 비담군을 격파했다. 물론 연을 날린 것도 나의 계책이긴 했지만, 그게 그리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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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드라마 속 나는 그저 무능한 장군일 뿐이었다. 적군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했고, 제대로 공성전을 펴지도 못했으며, 비담이 스스로 자기 편을 해하지 않았다면 난을 진압하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데 과연 누가 드라마 속의 나를 명장이라고 생각할까. 예상대로 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는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무능하게 그려지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어차피 드라마는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였다면, 그냥 소년시절만 나오고 말았으면 할 정도로 창피했다. 이 긴 드라마에 나오면서 내가 나름 머리를 써서 한 것이 불붙은 연을 날린 것 하나라면,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여왕께서는 드라마 홈페이지의 기획의도를 보고 분노하셨지만, 사실 드라마 시작할 때만 해도 옛날이다. 드라마에서 미실새주가 죽고 나서 그 작가가 이후의 진행 방향을 거론하며 "천하의 기재가 드디어 빛을 발한다. 무적의 군신으로서 서라벌 최고의 중망을 가진 장군인 김유신. 그토록 비담이 갖길 원했던 ‘천년의 이름’을 당당히 거머쥔다. 김유신은 앞으로 삼국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꿈을 위해 덕만을 끝까지 지지하고 덕만 역시 끝까지 김유신을 신뢰함으로써 둘의 완전한 결합은 이뤄진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뭐가 천하의 기재고 뭐가 무적의 군신인가. 드라마 본 사람들에게 물어봐라. 차라리 말이나 말지. 완전한 결합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興武大王.

P.S. 심지어 전화기 광고에도 바보로 나오다니. 가문의 치욕이다.


장군의 분노가 이해가 가시면 과감하게 추천을! (왼쪽 손가락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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