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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무지막지한 아귀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토록 유명한 스님이 돌아가신 뒤로 저서가 잘 팔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여기에 "내가 남긴 책은 모두 절판하도록 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더해지면서 '무소유'는 한 권에 15만원씩에도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과연 그 책을 꼭 절판해야 할까? 오히려 책을 계속 내면서 다른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그저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이 반드시 유언을 실현하는 길일까? 출판사에서 책 한권 절판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상혼이 춤추고 '무소유'라는 책 제목과 전혀 걸맞지 않게 그 책을 '소유'하려드는 중생들이 넘쳐 난다면, 과연 그것이 스님의 유언을 제대로 따르는 길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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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무소유'라는 책의 홍보 문구에도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있군요.^^ 스님이 이 책의 인세로 버신 돈만 해도 지금까지만 해도 상당한 액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스님이 자신을 위해 축적한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말입니다.

스님을 알고 지내던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난스럽게 '스님은 지갑을 갖고 다니십니까' 했더니 아래로 길게 늘어진 승복의 소맷자락을 툭툭 치면서 '여기가 내 지갑이지'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장난기가 더 나서 '스님, 용돈 좀 주세요' 했더니 보지도 않고 소매 안에서 잡히는 대로 수표 한 장을 툭 꺼내 주시더라는군요.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했더니 '뭐 그게 내거냐?' 하시더라는...

과연 15만원씩 내고 그 책을 가져간 사람(분명히 자신의 행동이 '무소유'와는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이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볼 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해도 그 의미를 깨달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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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님이 책을 절판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그 책으로 돈벌이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뜻은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미 수십만권이 팔렸고, 온 천지의 도서관에 그 책이 있는데 이제 와서 그 책을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만약 그런 뜻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전에 쓴 책은 보는 족족 태워 버리라'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책에 세상을 위한 좋은 말이 쓰여 있고, 그 책을 지금에라도 보고 가르침을 얻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책을 좀 더 많이 찍어 내서 그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유언 몇 자를 어긴다 해도 이것이 생전의 뜻을 더 충실히 잇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저 혼자 생각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은 저 말고도 많은 듯 합니다. 다음 기사도 한번 보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7/2010031702115.html

그러고 보니 저도 스님이 입적하신 다음날, 신문에는,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쓴 적이 있군요.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다음 글은 평소나 마찬가지로, 호기심 많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대체 사리란 어떤 것인가 궁금하셨던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사리 같은 건 찾지 말라'고 하셨죠. 옛날 어른들은 스님들이 절을 많이 하면 관절염이 생겨서 연골이 뭉쳐 사리가 된다고도 하고, 채식을 많이 하면 담석이 생겨서 사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다 속설이고, 사리라는 게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건 아무리 봐도 참 신기한 일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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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리

사리(舍利)란 본래 '몸'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Sharira)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로 음역해서 설리라(設利羅), 또는 뜻을 옮겨 영골(靈骨)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광명경'은 석가모니의 말을 빌려 '사리는 정혜(定慧)를 닦은 데서 나오므로 보기 드물고, 사리를 얻는 것은 상등의 복전(福田)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설에는 세존의 사리가 여덟 섬에 이른다고도 하고, 속세의 신도들은 고승일수록 입적할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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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널리 퍼졌다. 중국 의약서 '본초강목'은 사리는 영양의 뿔(羚羊角)로만 깰 수 있을 뿐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학자 이규경도 저서 '석전총설(釋典總說)'에서 사리는 극음의 산물이므로 극양의 재료인 코뿔소의 뿔이 닿으면 바로 녹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틈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던 듯싶다. '고려사절요'에는 효가(曉可)라는 요승이 등장한다. 그는 꿀물과 쌀가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감로사리(甘露舍利)”라고 주장하며 세를 불려 사기 행각을 벌이다 충선왕 5년(1313년) 처벌을 받았다.

또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리는 옛날에도 얻기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승려가 죽어도 반드시 사리가 나왔다며 부도(浮屠)를 세운다. 전에는 사리의 진위를 놓고 승려들이 소송을 하더니 부도를 허물고 진짜 사리인지 깨 보는 일도 있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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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사리는 인간의 신체 내부에 있던 물질이 화장 때의 열로 인해 변형된 것일 뿐 득도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1995년 국제 법의학 저널에 인간의 넓적다리 뼈를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할 때 수정 형태의 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가 실렸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사리를 보물로 만드는 것은 구슬의 가치나 성분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지극한 불심이다. 그저 사리의 개수를 따져 대덕(大德)의 법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11일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열린다. “절대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은 세간의 저속한 관심을 꾸짖는 지엄한 가르침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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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사리는 모두 8섬 4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이죠. 물론 이것도,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사리탑의 수와 사찰의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문득 이 대목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아드소가 스승 윌리엄에게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에서 잘라 낸 나뭇조각이 이 수도원에도 보물로 간직되어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윌리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들이 다 진짜라면 예수님은 십자가가 아니라 큰 숲에 못박혀 돌아가신게 분명해."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이런 식으로 '뭔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을 통해 믿음을 굳히고 싶은 생각은 만국 공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무소유'라는 책에 대한 일부의 집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걸 좀 사회에 긍정적인 자산으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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