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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김명민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충분히 받을만한 상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나 올해는 '박쥐'의 송강호, '국가대표'의 하정우 같은 쟁쟁한 상대들과의 대결을 통해 따낸 주연상이라 가치가 유난히 돋보입니다.

김명민의 연기에는 누가 토를 달지 않았지만, '내사랑 내곁에'라는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가 좀 엇갈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김명민의 이번 수상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듯 합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달라지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단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여전히 수많은 보도들이 '20kg를 감량하는 연기 투혼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식의 도식적인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일전에 썼던 글을 뒤늦게 이쪽으로 가져옵니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리고 나서 상당한 김명민 팬들의 오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해명의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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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우의 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1983)를 본 많은 사람은 리얼리티에 대한 광적인 집착에 혀를 내둘렀다. 중세 일본 어느 산골 마을의 기로(棄老) 풍습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은 3년간 실제로 오지의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흙냄새를 피부 깊숙이 묻혀냈다.

특히 할머니 역의 배우 사카모토 스미코는 돌벽에 이를 부딪혀 부러뜨리는 연기를 조작 없이 실제로 해내는 열의를 보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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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를 돌이켜 보면 과감하게 몸을 혹사해 전설이 된 배우들이 적지 않다. 많은 배우가 극중 인물로의 완벽한 변신을 위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신체 변형을 감행했다. 가장 대표적인 배우는 로버트 드 니로다. '분노의 주먹'(1980)에서 한 복서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모두 연기한 그는 23㎏의 중량 변화를 실제 몸으로 표현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언터처블'(1987)에서도 갱 보스 알 카포네로 변신하기 위해 27㎏을 불리는 한편 앞쪽 머리숱을 뽑아 대머리가 되는 열의를 보였다.

24일 개봉한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이 20㎏을 감량했대서 화제다. 영화에서 루게릭병 환자 역을 맡은 김명민은 평소 체중인 72㎏에서 극중 환자의 상태에 맞게 감량을 시작, 사망 직전에는 52㎏의 앙상한 몸을 드러낸다.

체중의 변화가 연기 열정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것은 제아무리 명배우라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던 시절의 유산이다. 말런 브랜도는 영화 '데지레'(1954)에서 나폴레옹 역할을 맡아 감쪽같은 매부리코를 분장으로 만들어 냈지만 1m83㎝의 키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요즘 같으면 '반지의 제왕'에서 1m67㎝의 배우 일라이저 우드가 키 1m20㎝ 내외인 난쟁이로 변신하는 게 예사지만 말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일상화된 2009년에도 배우의 실제 신체 변형에 가산점이 주어져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글자 그대로 '뼈를 깎고 살을 찢는' 고통을 감수해 가며 성형수술을 통해 불멸의 젊음과 새로운 미인형에 도전하는 여배우들에게 세상은 왜 그리 냉담한 것일까. 첨단 기술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열정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사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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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분들은 이 글이 김명민의 연기 열정에 대한 폄훼라며 흥분하시기도 한 모양인데, 분명히 그게 아니라는 점을 전달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이 글에서 공격하고 있는 것은 '살빼기=명연기(혹은 명배우)'라는 식의 단세포적인 시각입니다. 영화 개봉 당시를 생각해보면 어디를 봐도 '살을 뺐다'는 얘기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그게 영화의 질이나 김명민의 연기의 질을 설명해주는 결정적인 요소인 양 말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얘기해서 김명민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연기를 잘 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살을 많이 뺐기 때문입니까. 연기는 지독하게 못 하는 배우가 다이어트에는 재능이 있어서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20~30kg씩 체중을 늘였다 줄였다 한다면, 과연 그럴 때에도 '연기 투혼'이라는 말로 칭찬하고 '연기상을 줘야 한다'고 칭찬해야 한단 말입니까.

연기란 '실제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관객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위한 예술입니다. 만약 '실제로 그런 것'만이 진정한 연기라면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 연기는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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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자신의 육체를 희생해가며 자신이 연기하려는 상태에 최대한 근접해 보려는 시도는 대단히 숭고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희생의 의지만으로 칭찬받을 수는 없습니다. 축구경기의 예를 들어 보자면, '투혼이 빛났다'는 이유로 우승컵을 줄 수는 없지요. 우승컵은 이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민의 연기력은 '연기력' 자체, 혹은 관객에게 '보여진 결과'를 통해서 칭찬받아야지 '20kg를 감량해 건강에 위협이 왔다'는 이유로 칭찬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김명민은 눈빛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이 연기는 살을 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애를 낳아 보지 않은 여배우가 애 셋을 둔 여배우보다 관객들이 보기엔 더 훌륭한 연기를 해 낼 수도 있습니다. 우주에 한번도 나가 보지 못한 배우가 무중력상태에서의 격투 연기로 갈채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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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성형 수술 이야기는 당연히 농담입니다. '만약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만으로 배우가 칭찬받아야 한다면 가장 칭찬받아야 할 사람들은 수시로 자신의 몸을 고통과 마취의 위협을 감수하고 수술대에 올려놓는 여배우들이야말로 진짜 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아니냐는 얘기죠.

다시 한번 정리해서 말하면 김명민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탁월한 '연기력' 때문입니다. 살을 빼는 '투혼'이 빛나서가 아니라, 그 결과로 관객 앞에 드러난 연기가 훌륭하게 비쳤기 때문이죠.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살 아니라 팔을 하나 잘랐어도 그것만으로 훌륭한 배우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얘깁니다. '배우의 실제 신체 변형에 가산점을 줄 수는 없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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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한번 빠진 살이 잘 돌아오지 않는군요. 요요로 걱정하시는 분들에겐 참 부러운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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