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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 공무원'에 대한 호의적인 평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군요. 사실 이 영화 시사회에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더랬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영화는 '서로 신분을 감춘 정보요원 남녀의 엇갈리는 사연'이라는 출발점만 볼 때에도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조악한 복제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예고편은 지나치게 액션을 강조했는데, 꽤 괜찮기는 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액션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 많은 예고편임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촬영 도중 제작비 부족으로 한때 촬영 중단 위기에 놓였다는 소문(대개 이런 경우 영화가 말이 아닌 경우가 많죠)까지 들은 터라 막상 시사회장으로 가면서도 '이거 헛걸음 하는거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런 우려는 모두 기우였습니다. 영화 보면서 엄청나게 웃었습니다. 바로 뒷자리에 김하늘-강지환씨의 관계자가 앉았었는데, 제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더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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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인 재준(강지환)은 늘 거짓말만 하는 여자친구 수지(김하늘)에게 질려 러시아 근무를 자원해서 떠나 버립니다. 이렇게 이별을 해 버린지 3년,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분주한 수지 앞에 어느날 갑자기 재준이 나타납니다. 의외의 곳에서 조우한 두 사람은 다시 엎치락 뒤치락 하지만 서로의 정체는 굳게 감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지가 뒤쫓는 한국 방위사업체의 노박사(강신일)와 재준이 추적하는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인 테러리스트 빅또르가 관련을 맺으면서, 서로 더 이상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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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에도 많은 단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계속 마주치는 것이 좀 부자연스럽다, 액션의 질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특히 마지막 액션 시퀀스가 필요 이상으로 길다, 등등의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더군요.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모두 뒤엎을만한 강점이 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그것은 순도 높은 웃음입니다. 코믹 액션 영화로서의 장점이 웬만한 약점을 모두 덮어 버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국산 수작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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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는 강지환의 영화입니다. 백전노장 김하늘의 감각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영화는 영화다'에서 거친 모습을 보여줬던 강지환은 '경성 스캔들'에서의 코믹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여러가지로 좀 억지스러웠던 '쾌도 홍길동' 풍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더군요. 특히 강지환의 개인기가 십분 발휘되는 러시아 미녀와의 러브신(?) 비슷한 장면은 정말 눈물 콧물을 빼놓습니다.

여기에 코믹 연기의 달인 한 사람이 가세합니다. 바로 류승룡. '바람의 화원'의 김조년이나 '천년학'의 절름발이 용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재준의 직속 상관인 하리마오 팀장 역을 맡은 류승룡은 정말 야수같은 코믹 연기로 관객을 집어 삼킵니다. 특히 강지환과의 호흡은 박진만-고영민의 국가대표 키스톤이 부럽지 않습니다.

물론 극장에 걸리는 것에 비해 원본 촬영분은 훨씬 더 많겠지만, 영화를 강지환-류승룡 라인의 주도하에 놓은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앞부분은 다소 산만한 부분도 있지만, 두 남자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는 중반 이후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듯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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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뒷받침하는 신태라 감독의 짜임새있는 구성도 돋보입니다. 한 시퀀스에서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는 흐름이 스티브 내쉬가 지휘하는 팀의 패스웍을 보는 듯 합니다. 막힘이 없고, 여유가 빛납니다. 충무로 최고의 편집자 출신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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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 영화의 흥행에서 가장 걸림돌로 보이는 부분은 액션 일변도에 맞춰져 있는 영화의 홍보 방식입니다. 이 영화의 극장용 예고편을 보거나,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 소개를 보거나, 거의 모든 부분이 액션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영화 맨 앞부분에 나오는 김하늘의 웨딩드레스 차림 수상 액션과 공중제비 시퀀스가 등장합니다.

사실 이 장면, 꽤 애써서 찍었다는 건 알겠지만 보는 이에게 '우와'하는 소리를 내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은 자칫 이 영화를 '조폭마누라'의 아류 정도로 착각하게 할 우려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한국식 각색 정도로 착각될 우려가 있는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노출은 잠재 관객들로 하여금 이 영화에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코미디입니다. 액션에 찍힌 방점은 빠지는 게 좋습니다. 같은 액션이라도 저 수상 액션이나 마지막의 격투 시퀀스보다 코미디 쪽에 기울어 있는 강지환과 러시아 테러리스트의 BB탄 액션 같은 쪽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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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순도 높은 코미디입니다. 복선이고 영화적 상상력이고 다 집에 두고 가십쇼.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쿵푸 팬더'와 '월 E' 이후 극장에서 가장 많이 웃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인생의 빛이나 지식인의 고뇌를 찾는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 될 영화입니다. 리얼리티나 창작의 고통은 다른 영화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삶이 너무 짜증스러운 분들, '개콘'을 보는게 일주일의 낙인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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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강지환의 어머니 역으로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만 나옴)가 등장합니다. 주의 깊게 목소리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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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하리마오'는 언뜻 일본말 같은 어감이지만 인도네시아어로 '호랑이'라는 뜻입니다. 일제시대 건달들에게도 많이 쓰였던 별명이죠.

영화 속 국정원 특별팀의 이름을 하리마오라고 지은 제작진이 나중에는 아예 제작사 이름을 하리마오라고 지어 버렸더군요. 그래서 이 영화의 제작사는 '하리마오 픽처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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