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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의 효용은 떠날 상상을 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아주 막연히 시작합니다. 언제쯤 어디를 갔으면 좋겠다. 물론 한날 하루도 회사를 비울 수 없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휴가라는 것이 그저 수험생 자녀들의 학원이 문을 열지 않는 기간에 불과한 분들에겐 너무나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 있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서 최성수기 제주도에 하루 100만원 가까운 호텔/체제비를 들여 며칠 간신히 다녀오는 것으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뭐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니 그런 가격이 가능하겠죠.)

 

이런 분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휴가는 쉬러 가는 건데 대체 왜 쉬러 가는 것까지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계획을 하고 머리를 짜야 하는 건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여행을 디자인하는 것 자체가 이미 즐거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찬찬히 한번 생각해 보시면, 세상 어떤 일에서도 저절로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얻어지지는 않습니다. 쇼핑, 식사, 데이트... 다 그렇죠. 내가 직접 신경 쓰고 싶지 않으면 누군가 대신 신경써줄 사람에게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일찍부터 계획을 짭니다. 특히 항공사 마일리지를 활용해 비행기표를 얻어내려는 경우에는 꽤 일찍 일정을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저라고 돌발상황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두 번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티켓 반납에도 수수료가 꽤 듭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순탄하게 진행돼 '6월 독일행'이 가능했습니다.

 

 

 

 

 

 

 

프라하는 지난 2000년 다녀온 적이 있지만 단 하루를 구경했을 뿐이고, 언젠가는 한번 다시 가 볼 생각이었으므로 여정을 프라하-베를린으로 짜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직행 노선은 기차로 4시간 30분. 버스로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기차는 미리 예매하면 2등석이 20유로대, 1등석은 50유로대로 가능합니다. 버스는 시간대에 따라 10유로대도 가능합니다. 물론 기차가 버스보다는 쾌적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당초에는 두 도시의 거의 중간지점인 드레스덴 경유를 생각했더랬습니다. 독일 최고로 꼽히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오페라 홀)에서 공연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 보니 드레스덴에서 마땅히 볼 작품이 있는 날짜에 일정을 맞추기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프라하-드레스덴-베를린, 혹은 베를린-드레스덴-프라하가 연결되지 않게 되어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사실 같은 이동이라도 한번에 4시간30분은 2시간/2시간30분으로 나눠 하는 이동보다 좀 버겁죠. 어쨌든 항상 원한대로 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오페라를 빼고 나면 굳이 드레스덴에서 1박을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계산 일정은 프라하에서 3박, 베를린에서 5박으로 총 8박10일이 됐습니다. 프라하 도착 시간이 늦어 첫날 하루는 그냥 이동일로 소모하는게 아쉬웠지만 뭐 직장인으로 이 정도 날짜를 빼기는 쉽지 않습니다. 베를린에서 5박이 좀 길게 느껴져 다른 도시로의 이동도 고려했지만 일단 그건 현지 사정을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본 뒤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6월초는 '프라하의 봄' 음악제와 기간이 겹쳐 그런지 프라하 호텔비가 평소보다 30% 정도는 비싼 듯 했습니다. 물론 프라하는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비용이 더 들더라도 숙소는 관광 포인트가 몰려 있는 구도심에 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포인트는 걸어서 이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후보들을 고민한 끝에 K+K센트럴 프라하 (https://www.kkhotels.com/en/prague/hotel-central) 를 선택했습니다.

 

방의 청결도, 위치, 조식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호텔이었습니다. 한 3분만 걸어가면 관광 포인트인 화약탑이 나오고, 술집과 식당, 카페가 즐비한데 골목 하나 바뀌면 바로 조용해진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방이 약간 좁다는 느낌은 가격 대비 감수하기로.

 

 

 

 

베를린에서도 5박이면 숙소를 한번 정도 옮기는게 좋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서울 사는 사람의 기준으로 베를린은 결코 큰 도시가 아닙니다 - 물론 전체 도시 면적으로 보면 베를린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 때 베를린은 오히려 볼거리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일반 관광객이 가는 서쪽 끝은 초 역(동물원 역), 동쪽 끝은 이스트사이드갤러리 정도라고 할 때 그 둘 사이의 이동 시간이 3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절대 호텔을 옮길 필요 없습니다.

 

물론 가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지만, 아무튼 수많은 베를린 호텔들을 검색해보다 풀먼 베를린 Pullman Berlin Schweizerhof (http://www.pullmanhotels.com/gb/hotel-5347-pullman-berlin-schweizerhof/index.shtml) 로 목적지를 결정했습니다. 공원 바로 앞이라는 아늑함과 쾌적함, 그리고 바로 앞에 베를린의 젖줄인 두 개의 버스(100번과 200번) 중 200번 정류장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객실 넓이도 기대 이상이었고, 욕조는 없지만 욕실도 넓고 깔끔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식은 이제껏 가 본 수많은 호텔들 중 거의 수위권. 사용해 볼 일은 없었지만 지하에는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최대 백화점이라는 카데베가 걸어서 10분 이내, 동물원은 걸어서 5분. 아쉬운 점은 주변에 편의점이나 미니마켓이 없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사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유흥가에서 늦게까지 어울리다 바로 방으로 올라가 잔다는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겐 권하지 않을 호텔입니다. 하지만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조용하고 깔끔한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겐 가격 대비 매우 훌륭한 호텔입니다. 아울러 베를린 곳곳을 헤집고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를린을 굳이 목적지로 삼은 것은 공연 관람을 기대했기 때문인데, 사실 이 부분을 중시하는 분들이라면 여행 계획을 미리 짜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베를린이 베를린인 만큼, 클래식 공연에 있어선 DVD 타이틀 급의 아티스트들이 나서는 공연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연들은 대략 60일 전이면 매진돼 버립니다. "자, 우리가 베를린에 왔으니까 큰 맘 먹고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 한번 봐 줘야겠지?" 하고 생각했을 때 표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약 3개월에 걸쳐 공연 티켓도 사고, 기차 표도 사고, 호텔도 예약하고, 그렇게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바쁜 일상이지만 가끔씩 베를린 시내 지도를 보고 있을 때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패키지 여행의 장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싸고, 알아서 밥 주고, 알아서 재워 주고, 알아서 차 태워 주고, '휴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 쪽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문득 베를린 지도를 볼 때마다 느끼는 기대와 흥분을 생각하면, 직접 디자인하는 여행의 재미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훨씬 더 비싸고,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재미를 오래 오래 되씹기 위해서 천천히 여행기를 쓰겠습니다. 대략 1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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