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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입니다.

 

이 코너를 쓰기 시작하고 13번째 글. 그러니까 1년이 돌았다는 얘깁니다.

 

새해 준비, 1년의 마무리...이런 말들에 너무 크게 의미 두고 갑갑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 뭐 있나요? 한살 더 먹으면 그만이지. 사실 남들도 별거 없어요.

 

송년회 못 가고 야근하고 있으면 어떻습니까. 볼 사람들은 새해에 보면 돼요.

 

연말에 괜히 한 것도 없이 올해가 다 갔네 뭐 쓸데없이 자책하지 마시라고 한 얘깁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12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이 연재를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됐어. 세월 징하게 빠르군.

 

12월에 뭔가 문화생활을 하라고 권할 때에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 커플인 사람들에게 이 날은 참 잘 넘기기 어려운 날이야. 솔직히 말해 1224일과 25일에 권하고 싶은 행동 강령은 아무리 재미있는 공연도, 아무리 멋진 콘서트도, 아무리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도그 두 날 만큼은 절대 가지 말라는 거야.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질문. 주위에 알만한 선배나 친척 어른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연인과 함께 보낸 즐거운 기억에 대해 물어봐. 없지? 없는 게 정상이야. 그럼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하다가 힘들었던 기억을 물어봐.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늦게 왔다고 자리 빼서 싸운 얘기, 없는 돈에 마이클 볼튼 공연 예매했다가 차가 밀려서 앵콜 곡밖에 못 들은 얘기, 밤에 명동에서 술취한 여친 등에 업고 택시 잡느라 허리 부러진 얘기, 결국 택시 못 잡고 한남동에서 상계동까지 걸어서 집에 간 얘기 등등, 아마 끝없이 나올 거야.

 

젊어서 힘들었던 얘기가 뒷날의 추억이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냥 크리스마스고 뭐고 당장 군대를 가. 갔다 왔다고? 그럼 해병대 캠프라도 다시 가든가.

 

 

그렇다고 명색이 커플인데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지. 관계가 꽤 성숙한 사람들은 쓸데없이 고생하지 말고 야외로 나가. . 이때도 빠져나가는 길이 엄청나게 밀릴 테니 일찍 출발하는 건 필수. 물론 당일 귀가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야. 대한민국, 특히 서울 주변에는 이런 커플들을 위한 인프라가 굉장히 발달해 있어.

 

아직 이러기엔 서먹서먹한 커플들, 살아 남으려면 뭉쳐. 서너 커플만 모아도 방 하나 빌리는 데 큰 부담은 안 될거야. 호텔엔 방이 없을 거야. 변두리 레지던스를 알아 봐. 넓은 거실, TV, 냉장고, 주방이 있어. 이런 날 한우 등심에 양주 한병이면 정말 추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를 만들 수 있어. 물론 이것도 비용이 꽤 들지만, 밖에서 인파에 치이고, 밀리는 길에 짜증내면서, 별로 대단치도 않은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내고 짐짝 취급 받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라고 장담해.

 

솔로들은 어쩌냐고? 쓸데없이 모여 봐야 한숨만 나올 테니 괜히 모여서 스트레스만 더 받지 말고, ‘이런 날은 외출하지 않는게 내 원칙이라고 해. 그리고 집에서 특집 프로그램이나 봐. 폭설에 한파가 밀려오길 기도하면서. . 이런 얘기는 여기까지.

 

1211, 미샤 마이스키+서울시향의 ‘3 Concertos’. 이렇게 유명한 연주자의 비싼 공연을 추천하긴 처음이야. 하지만 5만원 짜리 예술의 전당 B석이라도, 연말이고 뭔가 감성적이면서도 고상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

 

누구든 포털사이트에 초본데 좋은 첼로 곡 좀 추천해 주세요라는 질문을 올리면 아마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그리고 생상스와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이 1,2,3번 댓글로 달릴 거야. 그런데 이 세 곡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면 아니 좋을 수가 없겠지. 3층이라도 충분히 즐길 만 해.

 

1212, 코리아심포니의 베토벤 교향곡 9합창’. 12월에는 합창을 들어야 한 해가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용. 베스트셀러는 정명훈의 서울 시향 연주지만 1226일과 27일 모두 매진이야. 그 안으로 추천할 만한 공연. 3만원짜리 A석이면 1층에도 앉을 수 있고, 15천원 짜리 B석도 괜찮을 듯.

 

 

 

 

국립 현대미술관이 서울 소격동에 서울관을 오픈하면서 기념 전시에 들어갔어. 국가대표 설치 미술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집속의 집 속의 집을 비롯해 현재의 현대미술 지평을 그리는 연결-전개, ‘자이트 가이스트, ‘알레프 프로젝트전 등 모든 전시를 7000원에 볼 수 있지. 이런 건 일단 가 봐야 하지 않겠나?

 

겨울의 책이라면 역시 미스터리. 이번엔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 집을 추천하겠어. 미미 여사를 구태여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분은 최근 2이란 이름으로 에도 시대를 무대로 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고 있어. 이 작품군을 대표하는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외딴 집이야.

 

10페이지만, 미미 여사 특유의 탄탄한 구성과 감탄을 자아내는 디테일을 읽어 가다 보면 어느 새 입을 떡 벌린 시커먼 동굴로 떨어져 에도 시대의 일본 어촌 마을로 툭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어느 시대나 힘 있는 자들의 게임 사이에서 희생되는 불쌍한 보통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

 

악인에 대한 응징과 복수가 시원하게 이뤄지는 활극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내용이 알고 싶어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미미 여자의 마력은 이 작품에서 진정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 찬바람이 쌩쌩 부는 날, 바닥에 배 깔고 귤 까먹으며 보기엔 최고야. 신간이 아니라서 상/ 2권 세트에 12500원이면 살 수 있어.

 

정리하면, 

미샤 마이스키, 3Concerto B 5만원

코리아 심포니, 베토벤 교향곡 9합창’, B 3만원~C 1500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통합 관람권 7000

미야베 미유키, ‘외딴 집/하권 12500

합계 99500~84500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를 해도, 명절이며 이름 있는 날에는 뭔가 복작거리는 데서 지지고 볶아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2월24일이면 코엑스, 대학로, 홍대앞, 명동 언저리는 미어 터지다 못해 분노 범죄의 온상이 되고, 곳곳에서 패싸움과 난동으로 경찰서 보호실까지 만원이 됩니다.

 

물론 공연장도 일찍 일찍 도착하고, 예약 시간에도 꼭꼭 맞춰 가고, 이런 날 바가지 씌우지 않는(대부분의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속이 이런 날은 '스페셜 디너 코스'라는 이름으로 평소엔 하지도 않던 메뉴로 10몇만원씩 커플들의 - 주로 남자 쪽의 - 등골을 빼놓죠) 착한 업소를 찾고, 어디 가서 술 한잔 걸쳐 분위기를 낸 뒤에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귀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놓는다면(아마도 기사 딸린 리무진 외에는 별로 없을 듯 한데...) 뭐 아무 상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분들, 혹은 그러기엔 좀 사정이 열악한 분들은 저 위의 충고를 따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즘은 아예 파티룸이라는 신종 공간도 임대 가능한 모양이던데 지금부터 서두르면 아직 남아있는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싱글들은... 역시 위에 있는 행동강령을 따르시구요. 싱글들끼리 이런 날 밖에서 만나 봐야 우울증만 더 심해지고 사고 칠 가능성만 높아집니다. 그리고 이런 날 TV에서도 재미있는거 많이 하더라구요. 그래도 정 누구라도 만나야겠다 싶으면, 누구 하나 집에서 모이는게 제일 나을 거에요.

 

본론으로 돌아가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는 '첼로라는 악기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곡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습니다. 게다가 길이도 10분 정도.

'콜 니드라이'는 히브리어로 '신의 날'을 뜻한다고 합니다. 곡의 분위기는 곧 '참회의 기도'.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는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듣는다면 훨씬 강렬한 느낌.

 

 

이어서 하나 더 듣는다면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보다 조금 덜 알려졌다고 할 수 있지만 1악장부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초절정의 기교는, 흔히 첼로라는 악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악기'라는 선입견을 확 날려 버립니다.

 

아울러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어쩌다 보니 연말의 '반드시 들어야 하는 선택' 처럼 된 느낌이라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서울 시향의 경우에는 '합창'과 모짜르트의 레퀴엠 공연이 모두 12월에 있어 분산되는 효과도 있었는데, 올해는 너무 몰린 듯.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으로는 개인적으로 이 곡도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합창교향곡 만큼의 대중적 인지도는 없어서 덜 연주되는 듯 합니다. 물론 베토벤의 9번 교향곡도 4악장의 합창 부분이 잘 알려졌다 뿐이지 1,2,3악장은 그리 말랑말랑한 곡은 아닙니다만...^^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5악장의 피날레, 역시 합창 부분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런던 필하모니 연주.

 

 

혹시 이 곡을 모르시는 분이라면 위 피날레 부분 만이라도 들어 보시라고 강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총 1시간 30분의 대곡이 이 거대한 합창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의 감동이란. 내년 6월5일에는 서울시향 스케줄에 이 곡이 잡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년 리스트에는 말러의 교향곡이 3곡(2번, 5번, 10번)이나 들어 있군요.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 집'은 첫 장을 열면 그야말로 에도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섬세한 묘사가 일품입니다. 물론 이런 평가에는 필연적으로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적으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 하나만 꼽으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이 '외딴 집'을 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연말. 숙취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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